정진(精進) 수행2019. 5. 31. 16:37

 

 

§(394) (게송)작일지두개난만~ /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 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 (게송)견색비간색~ / 황벽스님의 "계급' 법문 / 무상함을 철저히 느껴 시간을 아껴 정진하라.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참선(參禪)이 제일 수승한 법이고, 참선 가운데에도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참선하는 사람은, 수행하는 사람은 색상을 보되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이뭣고?’ 온갖 소리를 듣되 거기에 분별심을 내거나 집착하지 말고 바로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뭣고?’ 화두를 거각(擧却)한다.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하면 우리의 생각,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데에서 우리의 생사윤회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우리의 생사윤회를 해결 짓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394)—1989년 7월 첫째일요법회. (용394)

 

(1) 약 13분.

(2) 약 14분.

 

(1)------------------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니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고

나무~아미타불~

 

작일지두개난만(昨日枝頭開爛漫)터니  금조지면낙분분(今朝地面落紛紛)이로구나.

어제 가지 끝에 그렇게도 곱게 피어 있던 꽃이 오늘 아침에는 벌써 땅바닥에 송이송이 떨어져 있구나.

 

영인차석번생괴(令人嗟惜飜生愧)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 떨어진 꽃을 아까워하다가 도리어 부끄러운 생각을 나게 하는구나.

영욕무심숙사군(榮辱無心孰似君)고. 흥망성쇠에 무심(無心)하지 못해. 흥망성쇠에, 그 화려하게 피었다가 떨어져 버려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는 것이 어찌 그대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 누가 그대와 같이 무심할 수가 있겠는가.

 

꽃은 그렇게 화려하게 아름답게 향그럽게 곱게 피어 있으면서도 ‘나는 지금 곱게 화려하게 피어 있다’하고 조금도 자랑하는 마음도 없고,

그렇게 화려한 꽃이 하룻밤 새에 그렇게도 떨어져 버려도 조금도 꽃 그 자신은 꽃이 떨어졌다고 해서 조금도 가슴 아파하거나 아까워하는 생각이 없어. 피어 있을 때도 무심하고, 꽃이 진 뒤에도 무심하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꽃을 감상하는 사람은 피어 있을 때는 '곱다'고 '아름답다'고 야단하다가, 그 꽃이 져 버리면 그렇게도 애석하게 생각해.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돈이 잘 벌리거나 높은 자리에 영전을 하거나 하면 온통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좋아하고 참 야단이다가, 재수가 없어서 살림이 망하거나 높은 자리에서 떨어져서 파면을 당하거나 하면 그냥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자고 그렇게 속을 상한다.

그러니 사람이 만물 가운데 영장(靈長)이라고 하지마는 식물인 저 꽃만도 못하구나. 이러한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

 

 

방금 전강(田岡)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법에 대한 간곡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 그 한 대목만 들으면 다시 오늘 무슨 더한 법문을 들으실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참선(參禪)이 제일 수승한 법이고, 참선 가운데에도 활구참선이야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데에 가장 지름길이다 그말이여.

 

활구참선을 해 나가는 데는 화두(話頭),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 가지고 공안을 타파(打破)해 버려. 의단(疑團)을 타파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달라 버리는 것인데.

화두 하나만을 제대로 참구할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참선을 바르게 하는 길이다. 그래서 법회 때마다 그 화두를 참구하는 법에 대해서 항상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는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이론이나 지식이나 분별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여.

그러기 때문에 화두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슨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또는 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교리로 온갖 지식과 상식을 동원을 해서 이렇게도 따져 보고 저렇게 따져 보고 그래 가지고서는 깨달음, 참다운 깨달음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여. 공안을 타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사용하지 않고 그 공안을 참구해.

그것이 참 아까 조실 스님 말씀과 같이 천하에 간단하고도 쉬운데, 실지로 해 나가는 것을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별을 하고 있고 따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무슨 그럴싸한 해답을 얻으면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것이 아닌가' 스스로 착각을 하고 그러한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는 기본자세,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죽비(竹篦)를 치고서 입선(入禪)을 들이고 떠억 결제 때에는 선방에서 그렇게 정진을 하지만, 참선이 꼭 죽비 치고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여.

 

물론 그것은 기본자세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따악 가부좌를 하고, 반가부좌를 하고 하는 것이 참 좋기는 좋지만,

꼭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의자에 걸터앉아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차 타고 가면서도 하고, 심지어는 진심(瞋心), 속이 상할 때도 하고, 슬플 때도 하고, 기쁠 때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하고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고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온갖 울긋불긋한 온갖 색상을 보되 그 색(色)에 간여하지 아니해. 간섭하지 아니하고. 그 색에 집착하거나 그 색상으로 인해서 분별심을 내지 않는다.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온갖 소리를 듣되—기차 소리, 자동차 소리, 비행기 소리,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 이웃에서 모다 떠들고 잡담하는 소리, 어린아이들이 소리소리 지르는 소리, 음악 소리, 새 우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온갖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아니여. 그 소리에도 끄달리지 않는다 그말이여.

 

색성불의처(色聲不疑處)에, 온갖 색성(色聲), 색상과 온갖 소리에 의심 없는 곳이면 바로 그것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다. 법왕(法王)이 계신 궁성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 중생은 눈으로 온갖 색상을 보면 거기에 끄달려 끌려가서 온갖 분별심이 거기서 일어나고 번뇌 망상이 일어나거든.

무슨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로 인해서—칭찬하는 소리, 욕하는 소리, 새소리, 음악 소리, 차 소리, 시끄러운 소리, 그 소리로 인해서 온갖 분별심을 내고 짜증을 내고, 때로는 기쁜 마음을 내고 슬픈 마음을 낸다 그말이여.

 

참선하는 사람은, 수행하는 사람은 색상을 보되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이뭣고?’ 온갖 소리를 듣되 거기에 분별심을 내거나 집착하지 말고 바로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뭣고?’ 화두를 거각(擧却)한다.(처음~13분11초)

 

 

 

(2)------------------

 

황벽(黃檗) 스님께 여쭙기를 “어떤 것이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입니까?”

 

계급. 그 계급이라 하는 것은 소리를 귀로 듣거나, 온갖 색상을 눈으로 보거나,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을 상대할 때에 좋은 소리, 나쁜 소리, 고운 빛깔, 보기 싫은 빛깔, 온갖 그 차별 경계 그것을 여기서는 계급이라 그러는 거여.

 

“일체 차별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거기에 떨어지지 않는 도리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여쭈니까,

황벽 스님께서 이르시기를 “다맛 종일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은 바가 없고, 종일 행하되 종일 걸어가되 한 조각 땅도 밟은 바가 없어”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는다’ 그 말은, 밥을 먹되 '맛이 있다 없다, 밥이 질다 되다’ 이러한 그런 생각이 벌써 일어나면 벌써 쌀을 씹고 있는 거여.

그런데 밥을 먹되 '질다 되다' 그런 생각도 없고, 맛이 있고 없는 분별심도 생기지 아니하고 다못 이 깨닫지 못한 경지에서는 화두의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종일 걸어가되 한 쪽, 조그만 한 쪽의 땅도 밟지를 안 해.

어떻게 걸어가는데 땅을 밟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땅을 밟고 걸어가되 ‘땅이 평편하다 울퉁불퉁하다’ 그러한 일체 분별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러면 그것이 '종일 걸어가되 한 조각 땅도 밟지 않는다' 그말이여.

 

이러할 때에 무인아상(無人我相)이여.

‘내’라 하는 생각, '내가 지금 걸어간다'는 생각도 없고, '내가 지금 밥을 먹고 있다'는 생각도 없어. 이것이 인아상(人我相)이 없어.

 

종일불리일체사(終日不離一切事)하되 불피재경혹(不被諸境惑)이여.

종일토록 일체 사물을 여의지 아니해. 일체사를 여의지 안 하되 일체 경계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것을 이름해서 「자재인(自在人)」이라고 한다 그말이여.

 

소리가 시끄럽다고 해서 귀를 막고, 모든 모양이 뵈기 싫다 해서 눈을 막고 그런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다 보고 귀를 막지 않고 귀를 열어 놓되,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들은 바가 없어. 다맛 화두에 대한 의단만이 독로하도록 자꾸 잡드리를 해 나가는 거여.

종일토록 일체 일을 여의지 아니하되 일체 경계에 현혹된 바가 없어. 이렇게 되어야 이것을 바로 「자재인(自在人)」이라고 한다 그말이여.

 

우리는 완전한 자재인이 될 수는 없어.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완전한 자재인은 될 수 없지만 자꾸 화두를 거각하고 또 화두를 거각하고, 깜박 잊어 버리면 또 챙기고, 놓쳐 버리면 또 챙기고, 자꾸 챙기고 챙겨서 챙기다 보면 나중에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된다 그말이여.

 

이렇게 하면 이것이 바로 일체,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똥을 누게 되면 똥을 누고, 어디를 가야할 일이 있으면은 걸어가기도 하고 차를 타고, 일이 있으면 밭도 매고 빨래도 하고 이러되, 그러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면 경계에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된다.

 

시시때때로 생각 생각이 일체상(一切相)을 보지 마라. 일체상을 보지 말고 과거 · 현재 · 미래, 이 삼제(三際)를 인증하지 말아라.

앞으로 지나간 과거도 가는 것이 없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현재에 대해서도 주착(住着)함이 없고, 미래에 대해서도 오는 것을 생각하지 마.

 

뭐하러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고, 또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당겨서 생각하고, 현재 닥쳐 있는 일에 무엇을 거기에다가 집착을 해서 생각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지나간 일도 생각할 것 없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없고, 현재 닥쳐 있는 모든, 닥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거기에 생각을 두지 말고, 오직 화두만을 거각해라 이거여.

 

그래 가지고 안연단좌(安然端坐), 편안히 단정하니 앉아서 임운불구(任運不拘)여. 일체 것을 터억 다 놔 버려. 긴장도 다 풀어.

마음의 긴장도 다 풀어 버리고, 몸뚱이의 긴장—어깨의 긴장도 다 풀어 버리고,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눈에도 힘을 주지 말고, 다못 지긋이 어금니를 물고 입을 ‘한 일(一)’자로 따악 다물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리고서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이렇게 생각 생각이 단속을 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걸어갈 때나, 머물러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어묵동정(語默動靜), 무슨 필요가 있어서 말을 할 때나, 또 말을 안 할 때나, 몸뚱이를 움직일 때나, 또는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있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한 생각 한 생각을 간절히 간절히 단속을 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하루 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을, 1분 1분을 그렇게 단속을 하고 노력을 해 갈 것이다.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 사람 만 사람이 참선을 한다고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겨우 그 천 명, 만 명 가운데 겨우 세 사람이나 다섯 사람, 서너 사람, 그런 정도 밖에는 도(道)를 깨달은 사람이 없다. 왜 그러냐?

 

안 한 것이 아니라 하기는 하되 아까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노력을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조금 하다가 말다가 그렇기 때문에 한다고 해도 정말 도를 이룬 사람은 그렇게 극소수에 지내지 못한다 이거여.

 

이 공부가 어려워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 공부가 복잡해서 그런 것도 아니여. 또 공부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여.

다못 그 한 생각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다가 말다가, 조금 할라고 마음먹었다가도 금방 딴 생각[別念]이 나면 그리 끄달려 가 버리고, 조금 무슨 일이 있으면 그리 끄달려 버리고,

앉어서 ‘이뭣고?’하다가 서면서 잊어 버리고, 금방 화두를 들고 있다 무슨 소리 들으면 거기에서 화두가 놓쳐 버리고.

놓치자마자 또 챙기고 또 챙기고 해야 할 텐데 놓치면은 놓친 데에서 그냥 그리 끌려가 버리고, 경계에 끄달려 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황벽 스님은 정말 이 공부를 할려고 마음을 먹으면 정말 여기에다가 몸과 목숨을 바치고 정말 간절하게 그렇게 해야지, 공부한답시고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없이 그렁저렁하면은 수앙(受殃)이 유일재(有日在)다. 재앙이, 곧 재앙이 닥쳐온다.

 

어떻게 닥쳐오냐?

지금 이만큼 건강할 때, 이만할 때 철저히 해 놓지 아니하면 금방 늙어서 병들어서 곧 죽게 된다 그말이여.

 

죽게 되었을 때, 그때 그 생사(生死)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여?

눈 한번 감으면 내생(來生)인데,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내생인데, 그때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내가 참선을 했습니다’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참선을 그렇게 했으면은 그 깨달은 도리를 일러 봐라. 생사 없는 도리를 한번 일러 봐라’할 때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

그러기 때문에 금생에 이 생사 문제를 결정코 요달(了達)을 할 것이니라.

 

금생에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누가 대신해서 그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고통을 대신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은 진즉 이 문제를, 이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시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한결같이 하신 말씀이 '생사, 생사, 생사는 무상(無常)한 것이다'

어쨌든지 무상함을 철저히 느끼고 시간을 아껴서 정진을 하도록 간곡히 부탁을 하신 것입니다.

 

생사는 어디에서부터 오느냐 하면 우리의 생각,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데에서 우리의 생사윤회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우리의 생사윤회를 해결 짓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13분12초~26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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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작일지두개난만~' ;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진각혜심) '낙화(落花)' 참고.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게송) '견색비간색~'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야부 게송 참고.

*법왕(法王) : [범] dharmarā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2)

 

*배휴와 황벽 스님의 문답 ; 『전심법요(傳心法要)』 (당唐의 배휴가 황벽 스님의 법문을 편집한 책)

問, 如何得不落階級.

師云, 但終日喫飯, 未曾咬著一粒米. 終日行, 未曾踏著一片地. 與麼時, 無人我等相, 終日不離一切事, 不被諸境惑, 方名自在人.

 

“어떻게 하여야 계급(階級 : 차별 경계)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다맛 하루 종일 밥을 먹되 한 톨의 쌀알도 씹은 바가 없고, 하루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은 바가 없다. 이러한 때에 아상(我相)·인상(人相)등의 견해(相)는 없고, 하루 종일 모든 일을 하면서도 그 경계에 현혹(眩惑)되지 않아야 비로소 ‘자재한 사람(自在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更時時念念不見一切相, 莫認前後三際.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安然端坐, 任運不拘, 方名解脫. 努力努力.

 

다시는 때마다 생각 생각에 일체상(一切相)을 보지 말고, 앞뒤의 삼제(三際 과거·현재·미래)를 인정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편안하고 단정하게 앉아 주어진 상황에 되는 대로 맡겨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解脫)’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고 노력하라.

 

此門中千人萬人, 祇得三箇五箇. 若不將爲事, 受殃有日在. 故云, 著力今生須了却, 誰能累劫受餘殃.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인(千人)·만인(萬人)이 있지만 겨우 서너, 너댓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는다. 만약 이 도 닦는 일을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금생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오랜 세월(累劫) 남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다”

*계급(階級) ; ①사물을 대립적으로 분별하는 망상. 인·아(人我), 유·무(有無), 선·악(善惡) 등으로 분별하는 의식을 말한다. ②수행의 점차적 단계. 선종에서는 점수(漸修)를 뜻하며, 반대로 계급이 없음은 돈오(頓悟)를 말한다.

*육진(六塵) ; 육경(六境).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이것은 마음을 더럽히므로 육진(六塵)이라 한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인아상(人我相) ; 나와 남을 갈라놓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남을 경시하는 마음.

*자재인(自在人) ; ①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은 8대자재(八大自在 : 8종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의 덕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 이름이 붙었다. ②아미타불.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별념(別念) ; '딴 생각'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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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4/4)(끝) 고담화상 법어.

 

**전강선사(No.252) - 고담화상 법어 4 (72.06.05)[몽산법어 부록 07-2]

 

(1) 약 17분.

(2) 약 14분.

 

(1)------------------

 

출가수도배(出家修道輩)여  재색최선금(財色最先禁)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허소  독거요방심(獨居要防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출가수도배(出家修道輩)야, 출가해서 도 닦는 대중들이여.

그 얼마나 다생 과거에 참 인연(因緣)이 중해서, 그 좋은 복을 지어서 좋은 몸 받아 와서 수도 대중이 되었냐 말이여. 그 뻘로 알지마는 뻘로 알 수 없는 거여.

 

우리가 아침마다 이렇게 모아서, 좋은 대중이 모아서 도 닦는 이걸 좀 인연을 가만히 생각해 봐.

그 인연이 얼마며, 어떠하며, 얼마나 그 참 한량없는 복인가. 그런 대중이 모아서 도(道)를 닦는구나.

 

재색최선금(財色最先禁)이니라. 조금이라도 거기에 재물이라든지 돈... 돈,

나 먹고 살면, 수도 대중이 먹고 살면 그만이지. 먹고 사는 밖에 무슨 돈을 취(取)혀? 돈을 알아서 뭣혀? 그저 먹으면 도 닦으면 되는 것이지.

 

그다음, 세상에 그런 무슨 장가들고 애욕—처자 생활, 부부 생활, 그녀러 것이 뭣이여?

부부 생활 그녀러 것 해 가지고는 그 무슨 놈의 숭악한 놈의 여러 가지 그 모도 탐심, 욕심, 취하는 마음, 그놈의 것 땀세 무슨 조금이라도 도 닦을 겨를이 있어야지? 부부 생활이라 하는 것이.

 

부부 생활 딱 만나 놓으면 혼자 똑 둘이, 둘이만 살면 하지마는 그저 이놈 큰놈 나와, 적은놈 나와, 또 나와, 또 그놈 손자 나와. 뭣혀?

그래서 도무지 그거 부처님이 헐 수 없이 금욕(禁慾)허라는 것이여. 그놈의 그 숭악한 욕(欲) 중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하니 불가불이다. 도학자는 헐 수가 없어.

 

암만 '세계에서 인연 속에서 부부지간 속에서 왜 못햐?' 거 말이 그렇지, 그렇게 할 도리가 없는 것 같어.

그러길래 고불(古佛), 고조사(古祖師)가 다 처음에는 모두 출가했고 모두 그 도 닦는 처소를 가렸고, 할 수가 없는 모냥이지? 그러니 가장 그 무슨 재색(財色)을 멀리 해라.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해라. 아무리 여러 이렇게 대중이 모아서 살지마는 입이 없어 버려라.

거 입, 거 함부로 무슨 입을 벌릴 것이 있느냐? 헐 말이 뭐냐? 도 닦는 이외에 말이 무슨 말이 있을 건가?

 

다시 말만 열면은 넘의 말뿐이니, 넘의 말할 것이 뭐가 있어?

세상에 응, 내 말도 할 것이 없거늘 넘의 말을 뭘 할 것이 있느냐 말이여. 입이 없어 버려라.

 

독거(獨居)에 요방심(要防心)해라. 혼자 있을수록에 더욱 마음을 막아라.

무슨 못된 마음이 날까, 행여나 무슨 조금치라도 그릇된 마음이 있으면 못쓴다. 마음을 그렇게 방심(防心)을 해야 할 것이니라. 수도 학자의 생애다.

 

 

대지여일(大智如日)이 보조삼천(普照三千)이다.

깨달은 도리가 비유컨댄 나를 한번 턱 깨달라 버리면 깨달은 도리가 비유컨댄, 저 큰 그 해가 지혜 같애서 지혜 날이라. 지혜 날. 지혜 같애서, 지혜 날 같애서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비추리라.

 

삼천세계 뿐이여? 삼천세계를 저 해는 비출는지 모르지마는, 우리 깨달은 지혜는 삼천세계 뿐이여? 지옥, 천하없는 암(暗) 칠통(漆桶)이라도 다 깨져 버리는데.

어둡고 밝은 것이 다 거기는 붙지 못헌디, 뭐 밝다고 말을 할 것이여? 어둡다고 말을 할 것이여? 어둡고 밝은 것이 붙을 수가 있어야지? 아! 이런 각(覺)이네.

 

어둔 것이 있으면 대(對)로 밝은 것이 있을 것이여. 낮이 있기 따문에 밤이 있는 것이여. 밤이 있기 때문에 낮이 있고.

우리 대지(大智)는 한번 내가 내 마음을 깨달라 번지면은 밝고 어두운 것이 없어. 삼천세계! 삼천세계가 다 뭣이여?

 

그러니 그렇게 한번 깨달라 번질 것 같으면은 우리 눈앞에 무엇이 뭐 뭐 걸릴 것이 뭣이 있으며, 맥힐 것이 뭣이 있으며, 지옥이 무슨 지옥이며, 천당이 무슨.. 천당인들 뭐 천당 뭐 좋은 데를 가릴 것이 뭣이 있나?

어디가 안 좋은 데가 어디 있으며, 어디가 걸릴 데가 어디 있어서 안 걸릴 데를 가리고, 천당을 가리고, 무슨 좋은 데를 가릴 것인가?

 

없어. 지옥세계라도 모두 그만 그대로가 응, 그 자리가 그만 극락이요. 그만 뭐 더 말할 것도...

극락은 무슨 놈의 또 거다 극락을 붙일 것인가.

 

대지여일(大智如日)이 보조삼천(普照三千)이라. 큰 지혜 날이, 큰 지혜가 날[日] 같애서 삼천세계를 비추리라.

 

미운(迷雲)이 산진(散盡)혀. 미(迷)헌 구름이 흩어져 다해 버렸어.

 

우리는 미운(迷雲)뿐인데. 구름, 미(迷)해서 구름 꽉 찌인 콱 찌어버린 우리 중생 소견인데.

미운(迷雲)이 어디 있어? 미운(迷雲) 그놈이 간 곳도 없고, 어디 무슨 뭐 어디 가서 쟁여진 디가 있나?

미운(迷雲)이 다해 버리고 없어.

 

그래서 그 경계가 만리청천(萬里靑天)이다. 만리(萬里)나 된 청천(靑天)에 중추보월(中秋寶月)이다.

똑 팔월 달 중추(中秋)에 보월(寶月) 보배 달이다. 훤허니 경계도 깨끗허고, 달빛도 깨끗허고, 그 춥도 더웁도 않고. 그 보월이여.

 

이거는 내 마음 보월이여. 내 마음 보배 달이 그렇다 그말이여. 깨달라 놓으면 경계가 그렇다 그말이여.

담철징원(湛徹澄源)이다. 그 깨끗하고 깨끗하고 하도 깨끗해서 그 근원을 사무쳐 버린다.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버리면, 그때 '허공(虛空)에 발염(發焰)이면, 허공 가운데 불이 일어나면 바다 밑에 연기가 나리라' 그랬네.

아주 그 깨달은 확철대오한 경계가 '허공에서 불이 일어나면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리라' 그랬어.

얼마나 훌륭하게 깨달라서 허공에 불꽃 나면 바다 밑에 연기가 난다 그말이여.

 

맥축착합착(驀築着磕着)이라. 맷돌 맞듯 대쪽 맞듯 한다.

'맷돌 맞듯 대쪽 맞듯 한다'는 것은 맷돌이 두 짝인데, 아래 짝 우 짝인데,

우아래짝을 갖다 딱 합하면 딱 맞지. 한 짝씩만 있으면 소용없지. 두 짝을 딱 맞춰야 딱 들어맞지.

 

대쪽을 딱 쪼개놨는데 딴 대쪽은 맞추면 안되지?

똑! 제 대쪽 쪼갠 놈 갖다 맞춰야 딱! 맞지. 고렇게 맞는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일체 공안이 다 맞어.

깨달은 부처님의 그 말씀, 그 공안이 다 맞어. 하나도 조금도 빈틈없이 꼭꼭 맞는다.

 

고조사(古祖師)의 일체 공안도 다 그와 같이 맞는다. 안 맞는 말이 없어.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다 맞어.

고 공안이 맞어야사 견성(見性)이라 하고, 공안이 다 그렇게 딱딱 맞어져야 거기서 인가(印可)를 받고 옳은 것이지,

 

부처님 깨달은 도리 다르고, 조사 깨달은 도리 다르고, 저 깨달은 도리 달라 가지고, 제 소견(所見) 가지고 견성했다 하고, 그것은 마구니 중에는 세상에 못쓸 마구니여.

제 소견대로 모두 부처님 말씀을 갖다 맞추고, 조사의 모두 말씀을 제 소견대로 갖다가 맞추고, 모두 그런 거여. 그것은 천하에 못써.

 

할 수 없어서 그 공안에, 천칠백 공안에 인가법이 딱딱 있거든.

 

인가법이 없으면은 그 어떻게 증거를, 견성해서 그 생사해탈 증(證)을 거 어떻게 헐 것이냐 그말이여.

무슨 도깨비가 되어 가지고 제가 해탈 증(證)했다 해 가지고 남을 속일 것이냐 말이여. 된 법이 없거든.

 

그래서 이의다. 맷돌 맞듯 대쪽 맞듯 딱딱 그렇게 맞아. 안 맞는 법이 없어.

 

타파중현(打破重玄)이라. 거듭 중현(重玄)을 타파해라.

깨달라 가지고도 그 '거듭 중(重)'자 '감을 현(玄)'자, 거듭 현(玄)을 깨달라라.

 

그 만약 깨달라 가지고는 각견(覺見) 같은 거, 거 무슨 이치.. 이치견 같은 거, 천하에 없는 이치가 붙어 있는 거, 그건 다 소용이 없거든. 그러니 더욱 중현(重玄)을 타파해라.

 

중현을 타파하는 것이 탁마(琢磨)지. 그저 여지없이 탁마를 해서 하나도 공안에 맥힘이 없이 이렇게 해라.

 

그래서 조사의 공안을, 부처님의 말씀과 조사의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이라. 한 뀌엄지에 다 뀌어버려야 한다. 조금도 만약에 들어서 공안이 맥힘이 있고 그러면 그 오(悟)가 아니여.

 

그 공안이라는 것이 천칠백 공안이라 해도, 공안이 천칠백 뿐일 겐가? 천칠백이니 만칠백도 될 것이고.

 

허지마는 한 뀌엄지에 뀌어 버려.

공안은 똑 같은 것이지 다른 것이 없으되, 맥힌 공안이 있으면 안되거든.

 

제불묘리(諸佛妙理)를 무불주원(無不周圓)이다. 모든 부처님의 묘한 이치를 깨닫지 아니함이 없이 다 깨달라 버려.(처음~17분10초)

 

 

 

 

 

(2)------------------

 

도이마시(到伊麽時)해야, 이렇게 턱 깨달라 가지곤 조방고현(早訪高玄)해라. 이렇게 투철히 깨달라 가지고는 일찍이 고현을 찾아라.

 

고현(高玄)이라는 것은 '높을 고(高)'자 '감을 현(玄)'자인디, 조실(祖室) 스님을 찾아라. 제일 법 높은 조실 스님을,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조실 스님을 찾아라.

 

기미완전(機味完轉)하다. 그 네가 깨달은 도리가 완전(完轉)혀.

조금도 어김이 없이 (문 조금 통해라. 조금 통혀) 네 맛본 바와 고인(古人)의 깨달은 바가 조금도 틀림이 없이 완전해야 한다.

 

뭐, 혼자 뭣 좀 하다가 깨달랐다 해 가지고, 견성했다 해 가지고... 허! 되아? 된 법 없어.

 

무정무편(無正無偏)해야, 정(正)도 없고 편(偏)도 없다. 무슨 정(正)이 있고 편(偏)이 있나?

 

'정이 제일이고, 정각이 제일이고, 대각이 제일이고, 확철대오가 제일이고...'

정(正)도 없고 편(偏)도 없고 확철대오도 없다. 편벽됨도 없고. 무엇이 가 붙어 있겠나?

 

명사허이(明師許爾)라. 그래서 밝은 스승이, 밝은 조실 스님이 허이(許爾)를 해야 한다.

너를 '옳다! 너는 바로 깨달랐다' 이렇게 인가를 딱! 해야 된다.

 

어름허게, 인가도 없이, 아무데 지내다가 나와서 제가 제일이라고 도인 노릇 하고 선지식 노릇하고, 저 중간에 뭐 그 뭐고? 태백산서 나온 그 뭔 청공인가?

하따! 그것 공부허다 견성했다고 나와 가지고는 제가 제일이라고, 천하에 제일이라고, 고금에 제일이라고 야단을 치고, 대체 그 무슨 신통도 있든 것이여.

 

뭐 신통이 원 허공에서 잠을 잤든가 원, 허공을 그저 하늘을 마음대로 올라갔든가는 몰라도 별소리가 다 있으며 야단났구만 한참때. 한참때 그 야단을 치더니 어디로 간 종적 없어.

 

그런 명사(明師)가 허이(許爾)어든, 밝은 스승이 딱! 허락을 혀.

허락을 하되, 암만 밝은 스님이 허락을 했다 하드래도 그 인가가 확 돌아야 혀.

 

학자(學者)들도 인가한 법이 있거든. 학자도 눈 밝은 학자가 있거든. 눈 밝은 학자는 더 무서운 것이여.

 

눈 밝은 학자도 다 허락하고, 다 그 허락하거들란 그때에 재입임만(再入林巒)해라.

그때 가서는 확철대오해서 명사허이(明師許爾), 명사가 그저 명안 납승이라도 다 인가 있는 뒤에는 다시 산에 들어가거라. 인자 그때 산에 들어가는 법이여.

 

재입입산(再入入山)해라. 다시 산에 들어가거라.

산에 들어가되, 인자 그 뭐 그 대중처소, 뭐 대중처소 들어가라는 거 아니여.

 

자기 마음대로 인자 토굴(土窟), 토굴 마음대로 좋아. 어떤 토굴이든지 인연대로 인연 맞춰서 섬 중도 좋고, 그런 토굴에 혼자라도 좋고, 들어가서.

원효 큰스님 같은 어른도 그 견성 턱 해가지고는 인자 사방 댕기면서 인연 맞추어서 그 동쪽으로 똑 동향으로 집을 짓고 그 모두 보림(保任)허러 댕기시니라고 그렇게 애를 쓰시고.

 

'원효 스님도 견성 못했다'고 허는 사람이 있다등구마는. 자기는 원효 스님보담 더 나아서 그런가 원 모르지마는, 왜 그렇게 고인을 비방하고.

'보조 스님도 견성 못했다'고 비방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 하등구마는 내 누구라도 말하기는 곤란하고 듣기는 들었구마는, 나는 누가 그랬다 소리 한 법도 없고.

 

왜 그렇게 고인을 비방하고 우리 큰스님네를 비방하면 어찌 될 것인가?

원효 큰스님이 견성을 못허고, 보조 큰스님이 견성을 못허셨으면은 세상에 누가 했을 거냔 말이여? 우리 동양, 우리 나라의 부처님인데.

 

낱낱이 바로 제가 견성을 못허면은 고인부터 비방하는 법이여.

고인부터 비방하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되아. 고인부터 비방한 것이 벌써 자기가 몰랐은께, 깨닫지 못했으니 비방을 허고 있거든.

 

학자면 밝게 가려야 되아! 도학자, 도를 배우는 도학자의 그 지혜라니!

우리 참선(參禪) 학자는, 활구(活句) 학자는 지혜 학자인데, 지혜 학자가 스승 하나를 못 가려 되아?

 

또 첫째 또 가닥을 똑! 추리란 말이여.

 

'스님이 견성을 허셨으면은 무슨 공안에 견성을 했습니까? 어떤 스님한테 어떻게 물어서 어떻게 답이 나왔습니까?'

안 나와 그것이? 딱딱 나오지 안 나와? 만공 큰스님 다 나오고, 혜월 큰스님 다 나오고, 어디 그런 큰스님네가 다 없어?

 

밝은 학자들은 말허나, 안 허나 알겠지마는 내가 여까장 말해 주어야 되지.

 

확실히 인가가 있거들랑 모암토동(茅庵土洞)에 고락수연(苦樂隨緣)해라.

 

뗏집, 어디 뗏집 좋다. 도학자들이 무슨 좋은 집, 화각보전 편안하게 뭐 복 받고 복 수용허고 그것 소용이 있어?

어디 가서 그저 뗏집이라도 들어가서 그저, 어쨌든지 그저 인자 참 견성을 했으니까.

 

견성 후(後)라도 어디 시은(施恩)에 뚝 떨어져 가지고는 그 시은 그런 것 받지 말고 토동(土洞)에 들어가서 고락(苦樂)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뭐 그때 뭐 보림(保任)한 사람이 무슨 뭐,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그거 무슨 뭐 걸리나? 하나 걸릴 것 없지.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닥치는 대로 수용하고, 고락을 인연 따라서 해라.

 

무위탕탕(無爲蕩蕩)해야, 깨달라 가지고 인자 참 보림을 해서 함이 없이[無爲], 한정 없이 탕탕혀. 아주 탕탕(蕩蕩), 깨달은 도리가 참 그 탕탕하다 그말이여.

너룹고 너룹고 폭이 그렇게 너룹고, 그만 길이 그렇게 높고, 무위(無爲)해서 한정이 없이 탕탕혀.

 

탕탕해서 성약백련(性若白蓮)이라.

깨달은 도리가 백련 같애서, 백련(白蓮) 그놈 흰 연(蓮)이 향취가 진동한 놈이 암만 더러운 물에다가 집어넣은들 그 연꽃이 검어지나? 물들여지고?

암만 더러운 물에다 넣어봐라. 물이 묻는가? 연 자체라는 것은 물방울이 똘똘 궁글어 버리지, 묻도 않네. 흰 연꽃이 어디 묻나?

 

깨끗한 백련같이 이렇게 보림을 해라.

 

다시 어디가 생사에 물들리면, 깨달라 가지고 미(迷)해서 도로 물들리면 쓰겄나?

이 숭악한 놈의 생사 속에서 한번 우리가 이렇게 참 발심(發心)해 나와서 도를 깨달라 가지고 증(證)했거들랑 다시 매(昧)하지 안 해야 할 것 아닌가? 다시 잃어버리지 안 해야 할 것 아닌가?

 

다시 매(昧)해지고 잃어버리고, 조금 가졌다가 도로 그만 이전 유랑생사(流浪生死) 한다면은 뭣 헐 것인가?

 

시지출산(時至出山)해라.

그렇게 되거들랑 그때 가서는 때가 되었으니,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했으니 출세해서, 세상에 나와서 중생을 교화해라.

 

너만 그렇게, 그렇게 깨달라서 생사 하나 없은께 네 마음대로 너만 생사안락, 생사 없는 낙(樂)만 받고 있을 테냐? 시지출산(時至出山)해라. 때가 되거들란 어서 속히 나오니라.

 

가무저선(駕無底船)해라. 밑구녁 없는 배를 타라.

밑구녁이 없는 배, 그 밑구녁 없는 배를 어떻게 탈 것인고?

 

밑구녁 없는 배다. 그 무슨 놈의 뭐 밑구녁 없는 배가 걸릴 것 뭐 있나?

 

수류득묘(隨流得妙)해라. 그 모도 유(流)를 따라서 묘(妙)를 얻어라.

그 인연 따라서 모도 묘(妙)를 얻어서 한량없는 방편(方便)을 모두 가설해서, 모두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저 중생 봐라. 저 중생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렇게 꽉 매(昧)해 가지고는 다시 저를 찾을 줄 모르고, 그저 점점 무량 천만 겁 중에 오면서 여태까장 퍼지어온 죄업 위에다가 날마다 더 짓고, 때마다 더 짓고, 자꾸자꾸 짓기만 하니, 어쩔 것이냐? 내비둬 버리면 어쩔 것이냐, 그거?

 

광도인천(廣度人天)해라. 그래서 널리 널리 인천(人天)을 제도해라.

 

그 인천이 누구냐? 모두 타인이 아니여.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여.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주고 키워 주든 다생부모(多生父母)요, 과거 부모요.

여태까장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한 가운데 서로서로 그렇게 인연이 걸려 있어. 부모여.

 

어디 금생 부모만 부모냐? 전생 부모는 부모 아닌가?

아! 금생 부모는 좀 더허고, 전생 부모는 덜헌가?

 

전부가 다 그 부모 아니냐!

 

허니 구등각안(俱登覺岸)케 해라. 한 가지 각안(覺岸)에 오르게 맨들어라.

한 가지 모두 생사 없는 해탈 각안에 모두 올라가게 이렇게 원력(願力)을 세워라.

 

그래서 동증금선(同證金仙)해라. 영원히 금선, 우리 부처님이 금선(金仙)인데, 한 가지 금선을 증(證)해라. 꼭 부처님이 되게 이렇게 해라.(17분13초~31분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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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출가수도배~’ ; 『청허당집(清虛堂集)』 ‘명감(明鑑)·상주(尙珠)·언화(彥和) 등 여러 문도(門徒)에게 보이다[示明鑑尙珠彥和諸門輩]’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뻘로 ; ‘허튼(쓸데없이 함부로, 쓸데없이 막된)’의 사투리.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그녀러 ; ‘그따위(그러한 부류의.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의 사투리.

*땀세 ; 땀새. ‘~땜에(~때문에)’의 사투리.

*큰놈 ; '큰아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

*적은놈 ; 작은놈('작은아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

*고불(古佛) : ①과거제불의 약어(略語)。 ②덕 높은 스님을 존경해서 쓰는 말.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삼천세계(三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허공발염해저생연(虛空發焰海底生煙) :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직전에 정신혁명이 일어나는 경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

*축착합착(築着磕着) : 맷돌 위•아래짝이 서로 꽉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때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증(證) ; 깨달은 바를 다시 한번 점검하여 확인하는 것.

*현(玄 검다·심오하다·고요하다·하늘·부처님의 가르침 현) ; ①심오하고, 심원한 도리. 원리. 진리. ②현관(玄關, 공안). ③하늘(天). ④조용함.

*현관(玄關 검다·심오하다·고요하다·하늘·부처님의 가르침 현/관문 관) ; 현묘(玄妙)한 도에 들어가는 관문(關門)이라는 뜻. ①뜻이 심오한 불도(佛道)에의 입구. ②변하여 공안(公案)을 가리켜 말함. ③선문(禪門)에 드는 것. ④보통 집에 있는 정면의 입구.

*각견(覺見) ; 깨달음[覺]에 집착하는 견해.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깨달음[覺]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일관도천(一串都穿 한 일/꼬챙이 관/모두 도/꿰뚫을 천) ;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p137~138. (가로판 p133~134)

〇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뀌엄지 ; '꿰미(물건을 꿰는 데 쓰는 끈이나 꼬챙이 따위. 또는 거기에 무엇을 꿴 것의 묶음)'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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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기미(機味) : ①기질(氣質)。 소승(小乘)•연각(緣覺)•보살(菩薩)의 삼종(三種)이 있음。 수행자의 정신적 종교적 소질。 ②사물의 가장 요긴하고 종요로운 근본。 ③일의 종요로운 고동(예를 들자면 커다란 기계를 작동시키는 부분을 맡은 중요한 장치).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뗏집 ; 띳집(茅庵, 여러해살이풀인 '띠'로 지붕을 이은 집). 누추(陋醜)한 거처(居處).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탕탕(蕩蕩) ; ①넓고 큰 모양. ②평탄한 모양.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유랑생사(流浪生死 흐를 유/물결·유랑할 랑/날 생/죽을 사)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으며 정처 없이 흐르는[流] 대로 삼계육도(三界六道)에 떠돌아다님[浪]. 생사유전(生死流轉). 생사윤회(生死輪廻).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무저선(無底船 없을 무/밑·바닥 저/배·선박 선) : 밑바닥이 없는 배.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영수(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공적(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수류득묘(隨流得妙) : 모든 경계와 인연에 따르되 집착함이 없고 자유자재함.

*묘(妙) ; 묘법(妙法).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다생부모(多生父母) ; 다생에 걸쳐서 몸을 받아 태어날 때마다 길러주신 모든 부모.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9. 5. 2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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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이만큼 건강할 때 철저하게 발심해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자성 부처님을 깨달아라 / 사람 몸 받기 어렵다 / (게송)인간부명전광중~.

사람마다 인간 세상이 무상(無常)한 줄은 다 알고, 도를 닦으면 좋다고 하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마는,
정말 이 무상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서 얼마만큼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그 가운데 몇 사람이 정법에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무량겁으로부터서 금생에까지 와서 불법을 믿고 정말 철저하게 정진을 해서 나의 자성, 불성을 깨달은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느냐.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을 챙기면 생사를 벗는 길이 거기서 열리고, 참나를 깨닫는 길이 거기서 열린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망각하지 않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면서 이 세상 숨을 거둘 때까지 그것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하기는 할지언정 그것이 인생의 궁극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8)—2019(기해)년 하안거 결제(19.05.19) (용798)

 

 

(1) 약 19분.

 

(2) 약 11분.

 

(1)------------------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인간의 생사 진로(塵勞)를 벗어버리는 것은 그 일이 보통 일이 아니야. 긴밀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한번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 수가 있겠느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이라야 매화꽃 향기가 코를 찌르도록 진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매화꽃에다가 비유해서 읊은 게송이지마는, 우리가 정진을 하는데 그럭저럭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가 어렵다 그거거든.
사람마다 불법을 믿고, 또 머리를 깎고 출가해서 도를 닦지마는 그럭저럭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무량겁으로 지어 온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조사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참나를 깨닫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말이지.

세계 60억 인구가 있지마는 그 가운데 몇 분의 일이나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나의 자성(自性), 불성(佛性)을 깨달은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사람마다 인간 세상이 무상(無常)한 줄은 다 알고, 도를 닦으면 좋다고 하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마는,
정말 이 무상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서 얼마만큼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 그 가운데 몇 사람이 정법에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무량겁으로부터서 금생에까지 와서 불법을 믿고 정말 철저하게 정진을 해서 나의 자성, 불성을 깨달은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느냐.

다 불법을 믿고 참선을 하면 다 좋은 줄을 알지마는 얼마만큼 철저하게 발심을 하고, 얼마만큼 철저하게 이 세계가 무상하고, 이 육체가 무상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인 줄 알고는 있지마는.
얼마만큼 철저하게 알고, 믿고, 분발해서 수행을 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그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피차 이 육체는 사람마다 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잘 먹이고 입히고,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단속을 하고 있지마는 정말 그 가운데에서도 철저하게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올바른 방법으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철저하게 단속을 해서 정진을 해서,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건강을 유지할 때 정말 철저하게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이 자성불을, 자성 부처님을 깨달라야만 할 것입니다.

다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손과 발이 있고 육체가 있으니 누구든지 무상을 깨닫고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철저하게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누구든지 깨달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고, 깨달을 수가 있다고 우리는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가 지금 동서남북에 수십 개 국가가 있고, 그 가운데도 수십 억 인구가 살고 있지마는 정말 그 가운데 몇 분의 일이나 나의 이 육체 속에 자기의 자성 부처님이 있는 것을 철저하게 믿고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분심(憤心), 발심한 사람이 몇 분이나 될 것이냐.

천하없이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좋은 약을 먹고 좋은 운동을 한다 해도 이 육체는 백년 못 넘어가서 대부분 다 육체를 버리고 저승에 가게 됩니다.
한번 태어난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법당에 많은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이 가뜩 계시지마는 정말 무상을 철저히 깨닫고 앉아서나 서서나 ‘이뭣고?’를 챙기고 또 챙기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더라고 그 듣는 데로 끌려가지 말고 나는 ‘이뭣고?’를 챙기고, 좋은 말을 듣거나 나쁜 말을 듣거나 앉아서나 서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천하 간단하고 쉬운 일이고 하나도 복잡하고 어려울 것이 없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예사로 그럭저럭 한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그럭저럭 그러다가 일 년이 지나고, 그렇게 해서 오래 살아봤자 백 살.
결국은 이 몸을 버리고 지은 업(業)에 따라서 선업을 지은 사람은 천당에도 가고 극락세계도 가고, 업을 지어서 악업을 쌓은 사람은 축생이 되기도 하고 수라(修羅)가 되기도 하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도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무량겁 이전부터서 영원한 미래가 가도록 윤회(輪廻)의 법칙은 아무도 거역할 수도 없고 피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들도 아직까지는 이만큼 건강하지마는, 언젠가는 이 몸을 버리고 지은 업에 따라서 저승으로 가게 됩니다. 그것은 부자도 못 면하고, 힘이 아무리 좋은 사람도 그것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운명이라고 할까, 업이라고 할까.
우리도 생로병사, 한번 태어난 사람은 하루하루 늙어 가고, 늙다가 보면은 병이 나고, 병이 나서 앓다가 보면은 지은 업에 따라서 또 저승에 가게 되는데.

그것은 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일분일초도 잊지 않고 ‘이뭣고?’를 챙기고, 참나를 찾기 위한 수행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럭저럭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오늘도 그렇게 지나가고, 내일도 그렇게 지나고 그러다가 40세 50세가 되고, 60세 70세가 되고, 8~90이 되면은 병들어서 결국은 이승을 떠나게 되는데.

그것은 아무도 피할 수도 없고 면할 수가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리고 이 육체의 수명이라고 하는 것이 백 세 못 미쳐서 이 몸을 버릴 줄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마는,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사람의 몸을 받아난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지은 업에 따라서 선업을 지으면은 천당에도 가고, 악업을 지으면은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큰 업을 지으면은 지옥에도 가는 사실은, 이것은 이 세상에 아무도 그 법도를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내가 90이 넘은 늙은 나이로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드리는 말씀은 ‘이만큼 건강할 때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참나,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데 일분일초도 등한히 하시지 마십시오’ 하는 그 말씀밖에는 할 말씀이 없습니다.
내가 90이 넘어서 앞으로 얼마를 더 살랑가 그거는 모릅니다마는 결국은 머지않은 장래에 이 몸을 버리게 될 것만은 사실인 것입니다.

정말 무상을 철저히 깨달은 사람은 시간을 그럭저럭 지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처음~18분27초)



(2)------------------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수족을 움적거리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또 저녁이 되면 잠을 자게 되는데. 그것이 인생살이고.
빈부귀천과 아무리 부자고 권리가 있어도 이 생로병사는 면할 길이 없는 것인데, 근데 그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을 하고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팔고,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그러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이라 하는 것은 아무도 면할 길이 없고, 결국은 누가 먼저 가느냐? 얼마만큼 살다가 가느냐?
그것은 모르지마는 결국 죽음은 면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산승(山僧)이 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앉아서도 ‘이뭣고?’ 일할 때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을 챙기면 생사를 벗는 길이 거기서 열리고, 참나를 깨닫는 길이 거기서 열린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망각하지 않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면서 이 세상 숨을 거둘 때까지 그것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하기는 할지언정 그것이 인생의 궁극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 몸 받아 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들도 전부 다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을 때 참나를 찾는,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그 일보다 더 급하고 소중한 일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일분일초도 잊지 말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면서 일 초 일 초를 지내고, 한 시간 한 시간,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야만이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후회를 아니하게 될 것입니다.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여러분께 말씀드린 것은 이 말밖에는 더 여러분께 마음속 깊이 새겨 드리고 싶은 말이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산승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열심히 ‘이뭣고?’를 하겠다고... (박수)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박수로써 산승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는 말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기분 나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이뭣고?’로써 인생을 살아가면 염라대왕 앞에 가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살 만큼 살면 결국은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네가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무엇을 했느냐?” 물어보면,
“돈 벌었습니다” 또는 “높은 좋은 자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염라대왕이 “허허, 애썼다, 잘했다” 염라대왕은 그걸 별로 칭찬을 안 할 것입니다.

염라대왕이 벌떡 일어나서 “참 수고했다”고, 그렇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 나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오면 염라대왕이 일어나서 합장을 하게 될 것이라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여러분도 산승의 말이 옳고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분은 박수를 치십시오. (박수)


인간부명전광중(人間浮命電光中)이요  도비정신주동북(徒費精神走東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퇴은임천빈역락(退隱林泉貧亦樂)이요  부지신곤시비풍(不知身困是非風)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인간부명(人間浮命)은 전광중(電光中)이요, 인간이 태어나서 이 한평생 사는 이 뜬 목숨은 얼마만큼 허망하고 빨리 가냐 하면은 번갯불 번쩍하는 것과 같다 그 말이지.
그런데 도비정신주북동(徒費精神走北東)이로구나. 헛되이 정신을 허비하고 동쪽으로 북쪽으로 헤매고 다니는구나.

퇴은임천빈역락(退隱林泉貧亦樂)이요  부지신곤시비풍(不知身困是非風)이다.
물러가 임천(林泉)에, 숲이 있고 샘이 있는 산중으로 가서 여생을 마치는 것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또한 이것이 즐겁구나.
인간 세상에 살라면은 네가 옳고 내가 그르고, 나는 옳고 네가 그르다, 시비 속에서 싸우고 다투고 이래 가지고 피곤한 줄을 모르고 인생을 그렇게 시비 속에서 사는구나.

부휴 선사의 게송입니다.
이 자리에, 이 법당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께서는 이 부휴 선사의 게송을 깊이 마음속에 새기시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자기의 자성 부처님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하고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8분28초~29분1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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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일분일초(一分一秒) ; '1분과 1초'로 아주 짧은 시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을 받아난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2)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게송) '인간부명전광중~' ; 『부휴당집(浮休堂集)』 '조사대부(嘲士大夫 사대부를 비웃다)'

*부휴(浮休) ; (1543-1615) 조선시대의 스님. 전북 남원 출신. 법명은 선수(善修). 호는 부휴(浮休). 20세에 지리산에 들어가 신명(信明)에게 출가하고, 후에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음. 덕유산,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에 머물고,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입적함. 저서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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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3/4) 고담화상 법어.

 

**전강선사(No.251) - 고담화상 법어 3 (72.06.04)[몽산법어 부록 07-1]

 

(1) 약 22분.

(2) 약 18분.

 

 

(1)------------------

 

일성임제할(一聲臨濟喝)이여 직개천인농(直開千人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초운일성안(楚雲一聲雁)이요 원객고범주(遠客孤帆舟)니라

나무~아미타불~

 

임제일성할(臨濟一聲喝)이, 임제가 한번 고함을 냅대 질러 버렸어.

직개천인농(直開千人聾)이로구나. 그만 바로 일천 사람의 귀가 먹어 버렸어.

 

뭔 소리냔 말이여, 고함을 한번 질러 버려.

부처도 고함 질러 버리고, 조사도 고함 질러 버리고, 그저 무슨 법이던지 입만 열면 할(喝)을 한번 해 버려. 일천 사람이 귀가 먹어 버렸지.

 

초운(楚雲)에 한 소리 기러기요. 저 장천(長天)에 기러기 소리가 나고.

고범(孤帆)에는, 외로운 돛대에는 먼 객이 오는구나.

 

다 도인(道人)의 경계지.

 

 

오늘 아침에는 정견이가 아픈게, 한 대문 헐 놈 없나?

 

물 솟아 올라오는 샘이처럼 그렇게 되어야.

그저 '이뭣고?'가 밤낮 그놈이 그대로 있지. '이뭣고?'가 그저 밤낮 그놈이 고대로 그저 늘 뒤를 연속해서 '이뭣고?'뿐이지. 똑 새암물 나오드끼, 새암물 솟드끼 된다.

 

거다가만 전심(專心)헌데, 화두에만 전심헌데 그러헌 지경(地境)이 올 것 아닌가?

 

그렇게 새암 솟듯 한 화두 지경이 오래될 것이 없어. 다맛 몇 주일이라도 참 성의껏 신심껏 용맹스럽게만 한다면은 그것 불과해야 몇 철 혀? 며칠에 올 것이다 그말이여.

 

몇 해를 해도 오지 않고, 몇십 년을 해도 오지 않고, 내지 일생을 해도 안 온다.

그 까닭이 뭣이냐? 그 허물이. 어디가 허물이 있어 그런가?

단지 그것은 허다가 말다가, 좀 생각나면 허다가 또 내던져 번지고, 또 망상만 가지고 살다가, 또 화두 해 보다가, 헐까 말까 하다가. 거기서 그래 되는 것이여.

 

그 공부허는 사람이, 화두 학자가 그것 하나를 간택 못혀?

그것 하나만 간택해 가지고는 일념 일념만 단속허면, 거각(擧却)하는 그 일념(一念)만 단속헌다면은 속을 이치가 없거든.

 

금방 정성스럽게 '이뭣고?'를 한 번 해놓고는 그 뒤에 더 정성스럽게 '이뭣고?'를 또 거각하고, 또 그놈 없어지기 전에 얼른 또 거각하고, 아! 이렇게 학자가 그 참 근실(勤實)허게 참되게 그 잡드리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면은 역여유천(亦如流泉)이지. 흐르는 샘, 솟아 올라오는 새암물 같이 늘 그저 연속이 되지.

그 연속이 꼭 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이뭣고?'가 꼭 연속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은 심공경적(心空境寂)이 와.

그 마음이, 그 일어나든 마음 망상심, 중생은 망상심밖에 없는데 그 망상심이 그놈이 어디 있나?

없어. 그대로 없어 버려.

 

그러니 경적(境寂)이지.

경계는, 망상으로 인해서 일어난, 망상으로부터서 일어나서 있는 경계(境界)가 어디 있나? 무슨 경계여?

경계 하나도 없지. 뭐 일체 경계를 여의고 없나? 일체 경계 중에서 없지.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해서,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住)해서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지.

 

장 가운데를 가도 사람이 조인 중에, 조인(稠人)이라는 것은 우무러진, 우북허니 질어난 수풀 우게 쏵 베 번지면 그 천조 만조가 솟아 올라온 우북한 것을 조림(稠林)이라 햐. 조인이라 하고.

 

그렇게 꽉 비적거릴 수도 없이 찬 사람 가운데 있드래도 한 사람도 없다.

사람 없는 데 가 없는 게 아니여. 그 사람 가운데 있어도 없어. 그래야 그것이 인자 참 진경이지.

 

하나도 없는 데 가서, 사람 하나도 없는 데 가서 없는 것은 그건 뭐 뭐여? 그건.

그건 모도 여의여 번지고 없는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 디서 없는 것은 그건 조인광중중(稠人廣衆中)에서, 천 사람 만 사람 억만 사람 가운데 없는 거완 다르다 말이여.

 

그렇게 경적(境寂)허리라. 그래서 그 화두 경계가 있다 없다 헌 법이 없고, 그대로 딱 눈앞에 독로(獨露)되어 있는 것을 쾌락안연(快樂安然)이라 그려.

그 조금도 화두가 일념이 빈틈이 없이 의단(疑團) 하나 독로헌 것을 그것을 쾌락안연이라.

 

그때에 가서 그렇게 철저히 공부가 되고 틈도 없이, 사이도 없이 되어 갈 적에 그때에 가서 화두에 마(魔)가 들어와. 입마(入魔).

화두가 입마, 마(魔)가 들어온다 그말이여. '들 입(入)'자, '마구니 마(魔)'자, 입마(入魔)여. 마가 들어와.

 

그때 화두 들어올 때, 화두 그렇게 철두철미허게 화두를 헐 때에, 마(魔)가 들어올 때에 그 마구니 제(除)허는 법이 무엇이냐?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 천하 쉬워.

 

그놈의 마구니 들어오는 법이라는 것은 무척 그 강하고 그놈이 고약하지. 그놈 들어오는 법이.

 

허지마는 내 마음이, 화두 허는 마음이 틈새기가 있어야 들어오지, 화두 허는 마음이 틈이 없이 '이뭣고?' '이뭣고?'만 잘 다루면은 '이뭣고?' 의심 하나가 탁! 그만 일어나서 눈앞에, 내 낯바닥 앞에 독로되어 있다면은 아무리 이놈이 틈을 비워줘도 못 와. 아무리 들어올라고 해도 마(魔)가 들어오는 법이 없어. 어떻게 올 수가 없어.

 

그것을 고인(古人)이 뭐라고 말헌고 하니,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다마는, 너의 기량, 너의 재주, 마구니 네 재주, 마구니 네 그 강한 그 무서운 네가 그러헌 마음은 있다마는, 네 그 재주가 네 마음 네 기술이 있다마는,

 

아지불채무궁(我之不采無窮)이여.

내가 틈을 주지 아니하니, 들어올 틈새기를 주지 아니하니, '이뭣고?'를 딱! 가지고 있으니, 네 힘은 거기서 아무리 별 기량이, 별 재주가, 별 능술(能術)이 다 있다 해도 못 들어와.

 

너는 너는 못 온다. 내가 불채(不采)는 무궁(無窮)인디, 내 화두는 조금도 틈이 없는데, 네 같은 놈이 어디서 들어와.

 

그러허니 조금도 두려워허지 말아라! 마구니가 온다고 두려워허지 말아라!

 

혹 이상스런 마(魔)가 그놈이 심마(心魔)가 변해서, 마음 마가 변해서 이상스럽게도 변해지고, 별짓을 다해서 이놈이 변술을 허거든.

허지마는 화두 하나만 꽉 붙잡고 '이뭣고?'만 딱! 해라. 할 것 같으면은 마구니란 놈이 어디 틈새기가 있어야 들어오지.

 

막구(莫懼)요, 구(懼)도 말고. 막환(莫懽)이요, 환(懽)도 말어라.

 

그놈이 왔나? 그놈이 갔나?

아무리 좋은 경계를 가지고 와도 좋은 경계를 따라 주지 말고.

생각할 거 없어, 따라 주기는 '이뭣고?'만 허지.

 

악헌 경계를 가지고 와도 악 상대를 할 것 없어. '이뭣고?'만 하지.

그것이 마구니 제(除)허는 법이여.

 

딱 정중에 앉아서 마음만 안 내고, 화두만 내 화두만 잘 챙기면은 천만 마구니가 들어왔자 어림도 없어. 똑 공부해 들어갈만 하면 마구니란 놈이 들어와서 그만 마구니 노릇을 혀.

 

 

회광 스님이 한국에서 유명한 스님인데, 그 걸망짐 짊어지고 댕기면서 도 닦고 선방에 댕기다가, '기도를 한번 해서 내가 신력을 입어 가지고는 한국 불교를 내 마음대로 한번 해 보리라'

 

오대산 적멸궁에 들어가서 백일기도를 허는데, 참 틈도 없이 백일기도를 해 마쳤다 그말이여.

마친 날 밤에 꿈에 남방(南方)으로 대고 총을 한 방 땅! 놓았다.

'옳다. 내가 인자 남방을 갈 것 같으면은 내가 불교를 한국 불교를 마음대로 한번 헐 것이로구나. 총을 한 번 쏘았으니'

 

그래 나와서 합천 해인사를 척 나왔다.

척 나오니까 합천 해인사 큰스님네가 아! 꿈을 꾸니, 회광 스님이 들어오자 그날 밤에 꿈을 꾸니, 산중에 벌이, 모도 산중에 벌을 놓았는데 꿀 친 벌을 요렇게 모도 키우는데, 벌이 모도 휭휭 남방으로 그만 날라간다.

 

날라가자 꿈을 깨고 보니 아침에 꿈을 깨고 보니, 벌이 다 도망가네.

도망가는데 마침 그때 회광 스님이 누더기를 입고 그 벌통 앞을 지남서, “원, 이러헌 합천 해인사 같은 거찰(巨刹)에서 벌을 모두 키우다니? 벌이라는 것은 그놈들이 수천만 군중들이 댕기면서 모도 채득백화(採得百花)를 해가지고 백화를 채득해다가 꿀을 맨들어 놔 가지고, 아! 즈그 양식을 장만해 먹고 사는 놈인데,

그놈을 갖다가 살짝 돌라다가 모두 먹으니 도둑질 아닌가. 그 수만 명 먹고 살 도둑질을 모두 해 온 것이다. 그러니 중들이 그런 짓을 할까 보냐” 아! 그러고 나무랜다 그말이여. 객(客)으로 와서.

 

아! 그날 밤 꿈도, 꿈에 벌이 다 날라가더니 회광 스님이 마침 참 뜰에 거닐면서 그런 말을 하니깐, 하! 대중이 도인(道人)이라고 그만 야단나 버렸다. 그래 가지고서는 회광 스님을 참 도인으로 모셨다 그말이여.

도인으로 모셨는디, 그만 그때에 그 천상궁이며 궁녀가 얼마가 내려와서 온통 회광 스님을 '불(佛)'이라고 모셨다, 그만.

 

그것이 뭣이냐 하면은 한참 공부허다가 '한국 불교를 좀 마음대로 해 보겠다'는 마음 한번 일어난 것이 그것이 마경(魔境)이여. 그 뭣 할 것이여?

 

불교도 마음대로 한바탕 잘해 놓으면은 불타의 원력이지마는.

도를 모도 닦게 맨들고, 도인 회상을 맨들고, 도인이 나도록 헌다면은 그것도 좋은 것이지. 이타주의요, 좋지마는.

 

소견이 그릇 뚫어져서 한국 불교를 일본에다 갖다 때려 붙일라고, 일본 임제종에다 때려 붙일라고,

그 해석선, 요리조리 모도 공안을 모도 설파(說破)하는 선(禪), 아! 고런 데다가 맨들라고 생각을 냈다 그말이여. 그것이 마경(魔境)이여. 그 회광 스님 마장(魔障)이여.

 

잘 도를 닦아 나갔을 거 같으면은 회광 부처요, 참 한국 불교가 회광 스님으로부터서 얼마나 발전이 될는지 알 수 없었어.

 

그때부터 그만 한국 불교 전부 그만 일본으로 그만 모도 임제종 위앙종 조동종 법안종으로 때려 붙일라고 그 야단을 쳐서, 우리나라 큰스님네가 기어이 참 붙이지 안 했지마는 안 붙였지마는, 고 마구니여. 마경(魔境)이여.

 

공부해 들어가다가 한참 이러헌 철두철미헌 지경, 화두가 온당하게 들어와 가지고 잘 있다가는 조금만 뭔 마음 하나만 내면은 안되는 법이여.

그것 무서워. 그 마구니 장애가 제일 무서운 것이다 그말이여.

 

허니 화두가 이렇게 독로되어 잘될 때에 막구막환(莫懼莫懽)해라. 구(懼)도 말고 환(懽)도 말아라. 뭔 마음 내지 말아라!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다마는, 네 힘은 다함이 있다. 네 틈 탈라고 한 건 다함이 있어. 틈이 있다마는, 내가 화두 하나 온당히 해 나가는 것은 틈이 없다. 틈새기가 없어.

깨닫기 전에는 그저 이 마음 하나뿐이다. 이렇게 들어갈 것 같으면 화두 해 나가는데 마구니가 없어. 어디가 마구니가 있어?

 

제일, 제일 무서운 것이 공부해 들어가다가 그 참 지경에, 절대 지경에, 그 한바탕 그 참 득력지경(得力之境) 그때 가서 화두가 온당할 때, 뭔 마음을 내아?

조금이라도 선이나 악이나, 좋은 마음이나 나쁜 마음이나 딴 마음을 내아? 그때 가서는 마(魔)가 들어오고 마는 법이여.

 

이것을 대주의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그때에 가서 제일 많이 타락하는 법이여.(처음~21분3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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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생증애(心生憎愛)하면—그때에 만약에 환(懽)도 내지 말고 구(懼)도 내지 말아야 하지마는, 구(懼)는 무서운 것이고, 환(懽)은 좋은 것이여.

좋은 마음이나, 무서운 마음이나, 두려운 마음이나 이런 것도 안 내지마는 증애(憎愛)도 내지 마라. 증애.

 

증애(憎愛)라는 것은 예뻐하고 미워헌 거, 미워허고 예뻐헌 거, 좋아하고 나빠한 것 말이여. 그것도 내지 말아라.

 

화두 하나 밖에 어디 있느냐?

화두 하나 온당하게 되어서 화두 하나 깨닫는 것 밖에는 목적이 없고, 우리는 해 나가는 참! 절대 분심(憤心), 절대 의단(疑團), 절대 신심(信心)인데, 거가서 무슨 마음이 날 것이냐?

 

마구니 제(除)허는 방법이다. 마구니 들어오지 못허는 방법이여!

 

실정성전(失正成顚)허리라. 만약 거다가서 구(懼)를 내든지, 환(懽)을 내든지, 증애(憎愛)를 내든지, 뭔 마음만 하나 냈다가는 실정(失正)이다. 정(正)은 잊어버린다. 우리 정법은 잊어버린다.

 

정(正)이라는 것은 내가 날 깨닫는 화두법인디, 화두 하나 깨달른 것밖에는 정법(正法)이 없어.

지금 월남이니, 뭔 전세계니 뭣이니 해야 정법 아니여, 그것은.

그건 정법 아니여. 방편법(方便法), 그저 뭐 인과법, 인천(人天) 인과법 밖에 안되아.

 

인천 인과법이라는 것은 복(福) 좀 지어서 복 받다 다하면 타락하는 법밖에 안되아. 일체 방편은 타락법밖에 안되거든.

일체 타는 참선법 밖에 정법 밖에는 전부가 그저 끄트머리에는 미(迷)해 버리는 거, 끄트머리에는 떨어져 버리는 거, 다 받고 나면은 복진타락법(福盡墮落法) 밖에 안되아. 그것이 인천 인과법 밖에 안되아.

 

참선법이 어디 인천 인과법인가? 인과에 떨어지는 법인가?

한번 깨달라 증(證)헐 것 같으면은 어디가 끝이 인자 있을 것인가? 요 끝이 어디 어디가 끝이 있어?

 

깨달라 증(證)해야지, 깨닫기만 해 가지고 안되아.

깨달라 가지고 공안(公案)만 환허니 다 보아도 그것 가지고는 안되아. 인자 그 공안 깨달라 본 대로 그대로 딱! 증(證)해 버려야 혀.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가나오나 일체처에 깨달라 증(證)헌 법이 가고 오고 혀? 있다 없다 햐?

그렇잖어. 증(證)이 참 증오(證悟), 오(悟)는 그러기에 증오(證悟)래야 하지, 깨달라 증(證)해야 증오(證悟)래야 하는 것이지, 해오(解悟) 거 소용없어. 그거 깨달랐다 해도 미(迷)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깨달라 가지고는 입태(入胎)에도 매(昧)할 수가 있는 거요, 태중(胎中)에 들어가다가도 매(昧)할 수가 있고, 태중(胎中)에 앉어서도 매할 수가 있고, 출태(出胎)에도 매하고.

출태를 해 가지고도 크다가 매하네. 한 살, 두 살, 서너 살 먹을 때는 매해 버려.

 

그러니 그 매(昧)가 그것이... 그래도 그 매(昧)했지마는 인연이 있어서 처꺽 그만 듣고 툭 깨달라서 다시 들어와서 정법을 믿음사 그것 참 요행이요 다행한 일이지마는.

복가(福家)에 가 떨어지면 못하거든. 복가에 가 떨어져서 복 한바탕 받고 나면 미(迷)해 버리거든.

 

그러니 원력(願力)을 그때 가서는... 그래 항상 도를 닦아도 원력을 세워야 한다 그말이여.

'내가 어쨌든지 금생에 닦고 내생에 또 내가 어쨌든지 그저 중이 되아 발심(發心)이 되어서 또 닦아야겠다. 아무리 내가 타락할 곳이 있다 하드래도, 아무리 좋은 곳이 있고 내가 가서 복 받을 것이 있다 하드래도, 중이 다시 중이 되아서 도를 닦아야겠다' 이렇게 원을 굳게 세워라 그랬지.

 

이렇게 구(懼)도 말고 환(懽)도 말고, 증애(憎愛)도 내지 말고 그래야 정(正)을 잃지 않고 허지, 그렇지 않으면 정(正)을 잃어버리고 전(顚)을 이룬다.

 

정(正)을 잃어버리고 전(顚)을 이루니, 전(顚)이라는 것은 엎더져 버리는 것인디, 어디 엎더지냐?

부귀에 엎어지고, 모도 세상에 그만 도로 그 죄 짓는데 엎어지고, 그래가지고 엎어져 가지고는 그만 죄 때려 지어서 지옥 들어가고, 아귀 되고 그것이, 그것이 엎어지는 것이다.

 

실정(失正)이요. 정(正) 잊어버리면은 이 정법, 생사 없는 해탈 정법, 참선법, 잃어버리면 쓰겄어? 시방 우리나라밖에 인자 없는데.

 

참! 달마선사가 바로 건너와서 일천이백 년 전에 바로 건너와서 바로 설(說)허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 관하는 법이 일체 제행을 다 총섭(總攝)했느니라'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옳은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느니라'

'불인사오자(不因師悟者)는 만중희유(萬中希有)다. 스승 없이 깨달은 자는 만에 하나도 없다' 막 냅대 즉설주왈(卽說呪曰), 그게 정법이여.

 

우리나라밖에는 정법 헌 데가 없어. 그 다음에는 전부 정법이여.

이 정법 하나 바로 유통해 준 데가, 지나(支那)로 나와서 우리나라로 딱 건너와서 우리나라 신라시대, 신라시대가 참 그때가 제일이었었어.

 

신라시대의 정법이라니!

원효 큰스님 같은 어른이, 원효 스님 같은 이가 동양의 불일(佛日)인데, 원효 스님 같은 이를 견성 못했다고 허는 그런 스님네가 있다는구만.

원효 스님은 견성 못했느니, 보조 스님 견성 못했느니, 그런 큰스님네를 견성 못했다고 헌 그런 스님네가 있대야.

 

얼마나 그런 스님은 크게 깨달라 가지고 원효 스님 견성 못헌 거, 보조 스님 견성 못한 것을 아는고? 허허! 그런 법 없다.

선인(先人)을 비방하다니, 먼첨 깨달은 그 큰스님네를 비방하다니, 벌써 그 비방한 사람에 그 법량(法量)을 알 수 있지. 어떻게 비방을 허냐 그말이여, 그런 큰스님네를.

 

이러헌 정법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가지고, 그 참 정법 행여나, 부처님... 부처님 때 그랬어.

이 정법이 내 지금 이렇게 6년 견성해서, 12년 내가 보림해서, 이렇게 참 전해 나온 전해 준 정법, 가섭한테로 전해 준 정법, 가섭은 아난한테로 전한 정법, 아난은 서천 4·7은 28대조까장 전해 주는 정법, 28대조가 달마로써서 지나(支那)에 건너와서 초조(初祖)가 되아가지고 전해 주는 정법,

 

그 정법 그대로 지나(支那)로 건너와서, 지나에 들어와서—지나에 들어와서도 그 참 기맥혔습니다. 태전 스님 때, 태전선사 때 그때도 기가 맥혔지. 꼭 태전선사를 죽일라 했습니다.

태전선사 때 소동파, 이부마, 백낙천, 한문공, 무서운 영웅들입니다. 무서운 거벽(巨擘)들인데 그분들이 없앨라 했습니다.

 

'무슨 놈의 참선법을 해서 참선을 해서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을 허고, 견성해서 죽지 않는 대도가 있고, 뭐 그런 것이 있느냔 말이여. 인생이라는 것은 나와서 부귀영화하고 허다가 죽으면 그뿐인 것이지, 무슨 놈의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놈의 법이 있어?'

 

거 그럴 거 아니여?

 

들으면, 반다시 사람으로서 들으면 생사해탈법 밖에는 어디 더 있느냐.

생사해탈이라니! 죽고 사는 생사를 해탈해야 할 것 아니냐?

 

그것부터 그만 얼른 수입할 텐디 그 이상 밖에 더 없는데 그 지혜인디, 그걸 못 들어.

아! 이런 놈의, 그걸 갖다 못 듣는데, 그걸 뭐 영웅이니 호걸이니 뭐 그것 나 원, 참 내 알 수 없드구만.

어떤 걸 영웅이라 허고, 아! 세제법(世諦法) 밖에는 모르는 것을 영웅이라, 호걸이라 혀?

 

나서 늙어 잘살다가 부귀허다 죽는, 그까짓 놈의 잘살다 부귀허다 죽는 것, 하룻밤 꿈이나 하룻밤 꿈에 잘 먹고 한바탕 일월을 잡아 흔들고 놀다가 꿈 깨면 그만인 거, 아! 그 똑같은 것인디 세상 그것을 갖다가서 그렇게 고것을 하나 밖에는 모르고 착멸을 해 버리고, 그러다 뒈지는 것을 모르니.

나 그거 영웅이라 호걸이라 하데? 나 암만 생각해도 알 수 없드구만.

 

참말로 영웅이요, 호걸이요, 참 영웅호걸이라고 우리 부처님이지.

생로병사를 발견해 가지고는 생사 해탈법을 척 우리 부처님이 선각(先覺)해 가지고 우리 중생들한테다가 그 분파해 주는 거,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나 말이여. 그러헌 정법, 이 정법이여.

 

이 정법이 참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그 얼마나 참 장했냐 말이여.

신라 때 보지. 신라 때는 그 원효국사 같은 아! 그 그런 큰스님이 나오셔 가지고서는, 그 참선법 그래가지고 지금까지라도 그래도 우리 참선법은 우리나라에 지금 그대로 지금 해 나가지. 숫자야 적거나 많거나 지금 그대로 시방 해 나가지 않어?

 

그 정법을, 참선 정법을 우리 부처님이 국왕한테다가 전통을 했어.

국왕이래야, 임금이 되어야사 그 소중헌 참선법, 천상천하에 없는 무상대법(無上大法)—복인(福人)이, 그래도 복을 짓고 나온 복인이 국왕인데, 국왕이래야 우리 부처님의 정법을 보호허리라. 국왕이 아니면 정법을 보호 못허리라. 이렇게 말씀을 해 놨는데.

 

신라 때에 와서 임금 임금이 얼마나 받들었냔 말이여.

그 받들기를 기맥히게 참 정법을 보호허고 받들고 그 모도 군왕, 임금들이 만자(卍字) 관(冠)을 들입대 쓰고 그리고 들입대 해 나오다가... 여기까장 여까장 두고, 다음에 또 연속할 요량하고.

 

그렇게 전해 내려오다가, 내나 헐 말 헐락 하다가 시방 이랬구만.

그렇게 정법을 전해 내려오는 거기에서... 태전선사 때 그거 허다가 거까장 하다가 잊어버릴 뻔...

 

태전선사 때... 아! 이건 우리나라까장 건너와서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참 제왕이 그 정법을 보호해서 무성허게 나왔지마는. 이건 신라 때 말고, 신라 때 아니고 지나(支那) 때, 지나 때여 지나 때.

지나(支那) 때에 그 태전선사 때에 한번 없어질 뻔헌 그놈을 내가 얘기헐라고 허다가 그건 뚝 빼 버리고 어먼 데로 나가 버렸어. 그대로 두지.

 

 

정(正)은 잃어버리고, 이 정법은 잃어버리고 엎어지는 전(顚)을 이루리라.

그러니 화두 해 들어갈 때 틈을 내지 말아라. 틈을 내지 마라.

 

어찌 '이뭣고?' '이뭣고?' 이 알 수 없는 의심—틈이, 의심 하나가 없어지면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내지 말아라. 틈을 안 내면은 아지불채(我之不采)는 무궁(無窮)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해 들어갈수록에 화두를 이렇게 진심 정성으로 해 나가는 디, 입지(立志)를 여산(如山)해라. 딱! 뜻을 세우기를 산같이 해라. 뜻 세우기를 산같이 다시 변통 없이 세워라. 그 밖에 더 있느냐?

 

안심(安心)을 사해(似海)해라. 마음을 편안히 허기를, 정법을 믿었으니 마음을 편히 허기를 바다같이 해라.

전입전심(轉入轉深)허는 게 바다다. 그 깊고 깊은 것이 바다다. 바다와 같이 깊은 마음을 떡 세워라.

 

대지여일(大智如日)이 보조삼천(普照三千)허리라.

그럴 것 같으면 네 대지여일(大智如日)이, 큰 화두의 지혜 날이, 화두 해 나가는 그 지혜 날의 힘이, '이뭣고?' '이뭣고?'했지마는 '이뭣고?' '이뭣고?'가 보태지고 보태져서 중생 일체 망념이 다 거기에는 붙지 못허고, 모두 어디 있나? 없는디 뭐.

 

한덩어리가 다 되어 번져 가지고 의심 한덩어리 뿐이여. 의심 한덩어리 그놈이 큰 지혜 날 같다. 해 같여.

그래서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비추리라. 가나오나 일체처에 '이뭣고?' 하나뿐이리라.

그래서 보조삼천(普照三千)이라. 삼천세계를 비출 때가 있으리라.(21분34초~39분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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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臨濟一聲喝 直開千人聾'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대사) '春日詠懷(봄날의 회포)'

*(게송) '楚雲一聲雁 遠客孤帆舟'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대사) '登鐵城城樓有感(철성의 성루에 올라)'

*임제(臨濟)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할(喝) ; 큰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힐책하다(詰責-- : 잘못을 들어 말해 가면서 꾸짖다)’는 뜻. 선종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진리를 나타낼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토하는 큰 소리.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전심(專心 오로지·전일專一하다 전/마음 심) ; 마음[心]을 오로지 한곳에만 기울임[專].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근실하다(勤實-- 부지런할 근/참됨·정성스러움 실) ; 부지런하고 진실하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조인(稠人 빽빽하다·많다 조/사람 인) ; 많은 사람.

*조림(稠林 빽빽하다·많다 조/수풀 림) ; ①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②번뇌나 망상이 번성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다’ ;

‘너의 기량(伎倆), 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 영원이다. 고봉 스님 『선요(禪要)』 示衆(其二)에 천태(天台) 스님의 글로 인용됨.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우리는 걱정을 할 것이 없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할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생(多生)에 숙연(宿緣)이 있어서 최상승법을 만났으므로 다못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알뜰히 단속만 해 가면 지옥에 떨어져도 겁날 것이 없고, 불구덩이에 빠져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불이 훨훨 타는 가운데에서도 ‘이뭣고?’를 들 것이며, 지옥에 끌려가서도 ‘이뭣고?’를 든다면 마침내 이 최상승법은 모든 마귀(魔鬼)를 이겨내고야만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로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너의 기량(伎倆), 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아지불채(我之不采)는 시무궁(是無窮)이다.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한테 끌려들어가지 안해.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 영원이다 그말이여. 니 멋대로 한번 나를 유혹 할래면 해보고 나를 갖다가 막을라면 막아보고, 니 멋대로 해봐라 그말이여.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팔만사천 모든 경계(境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네가 그럴수록에 나는 오히려 화두를 거각할 따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해제 이후에 정진을 가다듬고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능술(能術) ; 재능(才能)과 기술(技術).

*이회광(李晦光) ; 1862-1933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세에 설악산 신흥사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은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승려였다.

1908년에 친일 성향의 불교 교단 원종(圓宗)을 성립한 이래 1910년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의 예속적 연합을 추진하였으나 이회광은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발포하고 이회광이 추진한 조동종과의 연합은 부결하였으나, 총독부는 그를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했다.

사찰령 이후에도 계속하여 30본산 연합체제를 주도하면서 1920년에는 역시 일본 임제종과의 병합을 추진하였으나 또 다른 친일 승려 강대련과의 갈등으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해인사 주지에서도 밀려났다.

*마경(魔境) ; 마(魔)의 경계(境界).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는 것.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것.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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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인천(人天) ; 인간계와 천상계(天上界). 인간계와 천상계의 중생.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복진타락(福盡墮落 복 복/다할 진/떨어질 타/떨어질 락) ; 지은 복[福]만큼 받아 써 다하면[盡] 다시 또 업에 따라서 떨어지게 된다[墮落].

 

중생은 착한 일 또는 죄짓는 일, 그 자기 업(業)에 따라서 천상에 가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는데, 설사 착한 일을 해서 여러 천상 세계에 나가서 복을 받는다고 해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 버리면 다시 또 업에 따라서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서 힘이 센 사람이 활을 쏴봤자 한없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하는, 생사해탈 하는 참선법이 정법입니다.

*증오(證悟) ; 깨달음.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여 깨달음.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編) ‘달마대사 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에서.

慧可問曰  若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師答曰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

問曰 云何一法 摠攝諸行

師答曰 心者 萬法之根本也  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 猶如大樹 所有枝條 及諸花菓 皆悉因根 栽樹者 存根而始生 伐樹者 去根而必死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心外別求 終無是處

 

혜가(慧可)가 여쭈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즉설주왈(卽說呪曰) ; '곧[卽] 주문(呪文)을 설(說)하여 말하기를[曰]'의 뜻으로 「반야심경」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돌려서 말하지 않고, 곧 바로 핵심을 말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佛]를 태양[日]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의 허망한 집착을 부수는 것을 태양의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는 것에 비유한 것.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가섭, 아난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역대 스님 약력' 참고.(https://emokko.tistory.com/55)

*거벽(巨擘 클 거/엄지손가락 벽) ; 학식이나 어떤 전문적인 분야에서 그 기능이나 능력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세제(世諦) ; 세속적 입장에서의 진리. 진제(眞諦) · 제일의제(第一義諦) · 승의제(勝義諦) 등과 대칭하며, 속제(俗諦) · 세속제(世俗諦) 등이라고도 한다.

*무상대법(無上大法) ; 최상의 위대한 법(法, 가르침).

*들입다 ; 세차게 마구.

*어먼(어문) ; '딴', '다른', '엉뚱한'의 사투리.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