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21.07.30 §((301)) 평등심을 가져야 도에 들어갈 수가 있다 / 부처님의 「좋은 도반」 법문 / 발심해서 공부한다면, 도반 선지식(善知識)은 도처에 계시는 것.
  2. 2021.07.29 §((301)) 아란존자의 등창 수술 일화 /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 깨달음은 아는 것이 아니다. 가리킬 수 없고, 배울 수가 없는 것.
  3. 2021.07.28 §((301)) (게송)원제상야월~ / 모든 경계에 즉(卽)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해야 /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정(大疑情)이 돈발(頓發)해야.
  4. 2021.07.27 §((235)) 울산군(蔚山郡) 원남면 이근홍의 인과설화 / 김천(金泉)에서 어느 부인이 아들 집 개로 태어난 인과설화 / 한 생각 뒤가 바로 내생(來生).
  5. 2021.07.26 §((292)) (게송)운주천무동~ / 이 사바세계에 와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 불법은 괴로운 일에서 오히려 발심을 할 수가 있도록 한다 / (게송)일파유조수부득~. 1
  6. 2021.07.25 §((292)) 무상(無常) / 고집멸도 사제 /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렵고 무서운 발심 / 생로병사의 모습들이 바로 염라대왕 편지 / 올바르게 정진하면 이건 갈 곳이 없다.
  7. 2021.07.24 §((292)) (게송)한서상경방대광~ / 당인(當人)의 신심과 마음가짐에 따라 살아계신 불보살 계시지 아니한 곳이 없는 것 / 한 생각 단속하면 선방이 된다.
  8. 2021.07.23 §((217)) (게송)차신성고취~ / 삼계화택(三界火宅) / 이 세상에 안 태어난 셈 치고 목숨 바쳐 해야만 이 일대사 문제는 해결이 나는 것 / (게송) 천고무인문~.
  9. 2021.07.22 §((217)) 일대사인연 / 심원(心猿)과 의마(意馬) / 생사 문제를 당적하려면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나아가야 / (게송)차신성고취~ / (게송) 천고무인문~.
  10. 2021.07.21 §((217))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일대사인연 / 생사 문제를 당적하려면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나아가야 / (게송)차신성고취~ / (게송) 천고무인문~.
대중 생활2021. 7. 30. 11:01

§((301)) 평등심(平等心)을 가져야 도에 들어갈 수가 있다 / 내가 좋은 수행인이 되어야 자연히 좋은 도반이 모이게 되는 것 / 부처님의 「좋은 도반(道伴)」에 대한 법문, "좋은 도반을 만나서 같이 도를 닦은 것은 도(道) 전부를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느니라" / 발심하고 분심 내서 공부를 한다면, 도반 선지식(善知識)은 도처에 계시는 것.

**송담스님(No.301)—1986년(병인년) 하안거 결제 (용301) (대중생활)

 

 

약 10분.

 


앞으로 석 달 동안을 인제 한솥밥을 먹고, 이 한 도량(道場)에서 수행을 하시게 되는데, 모다 팔도에서 성(姓)도 다르고 피도 다르고 한, 그리고 오늘날까지 살아오는 여러 가지 생활 습관도 다르고, 그런 이 그렇게 다른 그러한 도반(道伴)들이 한 방에서 같이 생활을 하시게 되는데,
내 뱃속으로 난 자식,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도 성격이 각각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습관이 다른데, 하물며 이렇게 성이 다르고 혈통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으니 무엇이 그렇게 다 마음이 잘 맞겠습니까?
그러나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수행을 해 나가는 일불제자(一佛弟子)여. 그러기 때문에 모든 그러한 다른 것을 다 이해할 수가 있고, 그런 것을 다 초월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같다고 해서 그릇된 생각을 낸 것이 탐심(貪心)이요, 내 마음에 안 맞는 일을 당해 가지고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이 진심(瞋心)이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줄 모르는 생각을 어리석은 마음이라 했습니다마는,
한 방에서 거처(居處)할 때, 자기와 좀 뭣이 맞으면 그 사람하고 지나치게 가까워서 남 보기에 눈꼴 사납게 그렇게 지내고, 조끔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그 사람을 허물을 잡아서 이리저리 아주 눈을 흘기면서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몰아낼까?' 이러한 아름답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석 달 동안을 지내게 된다면, 그것은 수행인(修行人)으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마음가짐이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석 달 아니라 삼십 년을 지낸들 도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도(道)는 어쨌든지 평등심(平等心)을 가져야 도에 들어갈 수가 있다 했습니다.
좋은 사람에게도 좋게 하고, 내 마음에 안 맞은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도 좋게 하고, 그래서 모두 평등한 마음, 미워하고 이뻐하고 하는 그러한 차별심(差別心)을 갖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서로 도반을 상대하면서 그렇게 해야 합심(合心)이 되고, 화합이 되고 자연히 한 대중이 견성성불한—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그래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그래서 도업(道業)을 성취할 그러한 도반이 되고 그러한 도량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도반은—내가 좋은 도반이, 좋은 수행인이 되어야 자연히 좋은 도반이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신심과 분심과 의심이 투철하지 못하고서 그리고서 맨 '도반, 좋은 도반이 없다. 좋은 도반을 만날 수가 없다' 좋은 도반 만나지 못한 것을 그렇게 한탄을 해 봤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할 때까지 지내도 좋은 도반을 만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신심(信心)이 철저하고, 자기가 분심(憤心)이 철저하고, 자기가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한다면 간 곳마다 좋은 도반이 전후좌우로 모다 모이게 될 것입니다.

좋은 도반을 만나야 공부는 자연히 되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어쩌다가 습기(習氣)가 동(動)해서 타락을 하거나, 해태굴(懈怠窟)에 빠질 뻔, 그러한 위기가 닥쳐온다 하더라도, 좋은 도반이 앞에 뒤에 옆에 많이 있으면 그 도반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대번에 충고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끌고가지 나를 버리고 가겠습니까?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아란존자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좋은 도반을 만나서 공부한 것은 도(道) 절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그것을 여쭈어서 그것을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부처님께 가서 여쭈어보니, "니 생각이 잘못이다"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래 아란존자는 깜짝 놀랬습니다. '좋은 도반을 얻어서 같이 수행한 것은 절반은 도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과했구나' 그리 생각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너의 생각이 잘못이다. 좋은 도반을 얻은 것은, 좋은 도반을 만나서 같이 도를 닦은 것은, 절반 도를 이룬 것이 아니라 도(道) 전부(全部)를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시고서 대중을 운집(雲集)을 해서 그 「좋은 도반(道伴)」에 대한 법문(法門)을 하시면서, "너희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나와 같은 도반을 가졌으니 너희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좋은 도반은 자기한테 있습니다. 좋은 도반은 어디에도 있는 것이며, 언제라도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발심(發心)을 못하고, 자기가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못하기 때문에 자기 눈에 도반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발심하고 분심 내서 공부를 한다면, 도반은 도처(到處)에 있는 것이고 선지식(善知識)도 도처에 계시는 것입니다.

서리 치는 달밤에 우는 잔나비 소리나, 봄 동산에 피는 울긋불긋한 꽃이 전부 다 부처님에 설법(說法)이요 보살화현(菩薩化現)이며, 온 사바세계에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에 이 무상(無常)한 모든 기멸(起滅) 현상이 전부가 다 나에 도반이요, 나에 선지식이요, 나에 살아계신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병인년 이 석 달을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하셔서 다른 도반들을 위해서 내 자신이 좋은 도반이 되어 주고,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말 내 마음을 비우고서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하고 대중을 위해서 항상 이 봉사하는 마음, 보시하는 마음, 불공(佛供) 드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시봉(侍奉)하는 마음으로 정진을 해 나간다면, 정말 금년 이 병인년 여름 안거야말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了達)할 수 있는 그러한 뜻깊은 한철이 되어 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24분10초~33분5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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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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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화두(공안)2021. 7. 29. 10:52

§((301)) 부처님과 아란존자의 전생. 아란존자의 등창 수술 일화 /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 아는 것이라면 공안(公案)을 해설하는 강의를 한다면 전부가 다 깨달음을 얻게 될 것 / 깨달음은 가리킬 수 없는 것이고,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 부처님과 조사는 깨닫는 방법을 가리키셨다.

 

 

약 15분.

 


**송담스님(No.301)—1986년(병인년) 하안거 결제 (용301) (화두공안)

부처님의 그 시자(侍者)를 지낸 아란존자(阿難尊者)는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신 날 태어나서, 아란존자가 스물다섯에 출가(出家)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시운다섯(55세)이시고 아란존자는 스물다섯에 출가했는데, 그 아란존자는 속가(俗家)로는 부처님 사촌동생이시고, 출가해 가지고서는 부처님 제자가 되셨는데,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설하신 모든 법문(法門)을 한 귀절도 빠짐없이 조르르르 다 기억을 해서 부처님 열반(涅槃)하신 뒤 제일회(第一會) 결집(結集)을 할 때, 아란존자가 그 부처님의 법문을 전부 외어서 그래 가지고 그 결집을 했던 것입니다.

그 아란존자(阿難尊者)는 과연 어떻게 해서 그렇게 기억력(記憶力)이 좋아 가지고 부처님 일대(一代) 소설(所說)을 다 그렇게 외워 바칠 수가 있느냐 하면,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실 때에 얼마만큼 골똘하게 정성스럽게 청법(聽法)을 했냐?' 좋은 일화(逸話)가 있습니다.

아란존자가 등창이 났었는데 기파(耆婆) 대감이 그 등창을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술을 하기 위해서 아란존자를 기둥에다가 묶어 매고 여러 사람이 팔다리를 잡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란존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고 그 묶지 말고 그냥 수술을 해도 좋다고 하니까, 기파 대감은, "도저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칼로 등을 째는데 아무리 참을라고 한다고 해서 그 아픈 것을 참을 수가 없고, 몸을 움직이게 되면은 수술하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으니까 묶어 매야 합니다" 헌게,
"묶어 매지 말고, 내가 부처님 설법하실 때, 부처님 설법(說法)을 들을 때에 그때 내 등을 수술을 하라"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기파 대감이 부처님 설법할 때에 아란존자 등으로 가서 그 등 수술을 마쳤습니다.
법문이 다 끝난 다음에 아란존자가 기파 대감을 향해서, "아, 내가 법문 들을 때 수술을 하라고 했는데 왜 수술을 안 했소?" 하고 물어보니까, "수술은 이미 해 마쳤습니다" 헌게, "아, 그래야" 하고.
얼마나 골똘하게 부처님 법문을 들었으면, 칼로 등을 째고 수술을 하고 고름을 짜낸대도 그 아픈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만큼 골똘히 들었기에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설하신 법문을 한 귀절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다 기억을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 아란존자와 또 부처님과의 전생(前生)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저 무량아승지겁(無量阿僧祗劫) 전에는 아란존자와 부처님과는 도반(道伴)이었었습니다.
함께 도(道) 닦는 아주 다정한 도반이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정말 아주 철저하게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셔서 온전히 아주 활구참선만을 하셨는데, 아란존자는 자꾸 경(經)을 좋아했습니다. 경 보기를 좋아하고 경 외우기를 좋아하고 항상 책을 가까이 하고 이랬습니다.

그것이 생(生)을 거듭하면서도 계속 아란존자와 부처님은, 부처님 태어나실 때마다 아란존자도 항시 같이 이렇게 태어나서 또 도를 닦고 그렇게 여러 생을 그렇게 내려오셨는데, 부처님께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중생교화(衆生敎化)를 하시게 되었는데 아란존자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설법하신 것을 기억을 해 가지고 결집(結集)을 하는 그러한 소임을 맡으시게 된 것입니다.

물론 크게 보면 십대제자(十大弟子)와 삽삼조사(卅三祖師)가 전부 다 과거에 다 불보살이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갖다가 조불양화(助佛揚化)하기 위해서 짐짓 그 제자의 탈을 쓰고 제자로서 나타나서 부처님의 법(法)을 전통하신 것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지마는,
같은 도반으로서 같이 공부를 시작했어도 '그 사람이 얼마만큼 철저하게 정진을 하느냐? 활구참선만을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고 철저히 하느냐?'

여기 가서 이 법문 듣고 저기 가서 저 법문 듣고, '금강경(金剛經)이 좋다' 하면 금강경을 독송(讀誦)하고, '법화경(法華經)이 좋다' 하면 법화경을 독송하고, '유마경(維摩經)이 좋다' 하면 유마경을 독송하고, '무엇이 좋다' 하면 이것도 저것도 하니까, 이 고루고루 하면 다 참 좋은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이 도(道)는, 특히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이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는 외골수로 한 길만을 위해서 몸과 목숨을 옴막 다 바쳐서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열한 근기로 짧은 인생에 있어서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들었습니다마는,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큰 의심 아래 크게 깨닫는다. 적게 의심하면,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큰 의심을 가지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을 전혀 아니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법문이 있습니다.

지끔 참선이 매우 널리 그 관심을 받게 되어서 승속(僧俗) 간에 이 참선에 대해서 모다 관심을 갖고 모다 하려고 하고 있고 거기에 따른 많은 책도 나오고 그랬습니다마는, 이 활구참선은 정말 제일 간단하고 하기가 쉬운 것인데, 실제에 있어서는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를 않습니다.

왜 그러냐?

천칠백 공안을, 전부 다 이 공안(公案)이 생겨날 때에는 부처님과 조사(祖師) 간에 그 법(法)을 거량(擧揚)해서 그 법을 거량하는 그 기연(機緣)이, 어떠한 기회(機會)에 그 공안이 생겨났으므로, 그러한 기연을 잘 알고 또 그 공안을 이리저리 따지고 그렇게 해서 그럴싸한 어떤 해답을 얻으면 썩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재미에 팔려서 공안을 이리저리 따져서 수수께끼 풀듯이 그것을 풀고, 그것을 뭐라고 대답하면 '옳다' 하고 일러주고, 또 다른 공안을 또 주어서 그 공안을 가지고 며칠이고 몇 달이고 그 애를 써서 궁리를 하고 따져서 그럴싸한 답을 얻어서 '이것이다' 하고 그러면, '그러면 옳다' 그렇게 해서 또 한 공안을 통과를 하고, 또 그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해서 열 개, 스무 개, 오십 개, 백 개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참 '누구는 오십 개가 통과했다, 누구는 백 개가 통과했다' 이래 가지고 그것 많이 통과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그걸 많이 통과함으로써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본인도 착각을 하고 남에게 과시를 하고, 이러한 참선이 일본에 진즉부터서 수십 년, 백여 년, 몇백 년 전부터서 일본에서는 그러한 참선이 유행을 해 가지고 헌데, 그러한 참선이 우리나라로 역수입(逆輸入)이 되어 가지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참선을 가리키고 배우고 하는 그러한 경향이 지금 유행을 하고 있는데.

이 임제종(臨濟宗) 조사문중(祖師門中)에 있어서는 차라리 아니할지언정 그러한 참선은 해서는 아니 되고, 차라리 깨닫지 아니할지언정 그러한 식에 깨달음을 요구(要求)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왜그러냐?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의리(義理)로 따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다' 하고 아는 것이라면 구태여 애써서 알 것이 없고, 수십 명 수백 명을 모아 놓고 계속 공안(公案)을 해설하는 강의(講義)를 한다면 그 강의를 들은 사람은 전부가 다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라면 뭣 하러 부처님께서 49년을 설하시며,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어떻게, 조사 밑에 이미 다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전부 다 깨달라 마쳐 버렸을 것입니다.

근데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여. 배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여.
부처님이나 조사가 깨달음을 그런 식으로 가리켜서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 도가 어렵다고 하며 깨달음이 귀하다고 하겠습니까? 깨달음은 가리킬 수 없는 것이고, 배울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러면 부처님과 조사는 무엇을 하셨냐 하면 깨닫는 방법, '어떻게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가 있다. 그러니 너희들이 그렇게 도를 닦아라'
깨닫는 것은 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 가지고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육신통(六神通)이 자재(自在)하신 부처님의 힘으로도 중생에게 가리켜서 깨닫게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소중한 것이고 깨달음을 위해서 수없는 목숨을 바쳐 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많이 들으셨고 또 이 용화(龍華) 이 법보전(法寶殿)에서 많은 법문을 들으신 분은 이미 그러한 사상이 철저해서 누가 뭐라 해도 그런 데에 흔들림을 받으시지는 않겠지만, 행여나 누가 그러한 말로써 유혹을 한다 하더라도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고 한 생각이라도 바로 돌이켜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을 거각(擧却)해 나가도록.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저절로 소멸(消滅)이 되고 거기에서 확철대오할 수 있는 인연(因緣)이 성숙(成熟)되어 가는 것입니다.(9분38초~24분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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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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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301)) (게송)원제상야월~ / 화두 하나만 바로 들을 줄 알면 어디서나 공부를 할 수가 있다 / 모든 경계에 즉(卽)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해야 /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정(大疑情)이 돈발(頓發)해야 / 경계에 끄달려 지내면 어떻게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송담스님(No.301)—1986년(병인년) 하안거 결제 (용301) (의심-화두드는법)

 

 

약 10분.

 


원제상야월(猿啼霜夜月)하고  화소심원춘(花笑沁園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호호홍진리(浩浩紅塵裏)에  두두시고인(頭頭是故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제상야월(猿啼霜夜月)이요, 원숭이는 서리 친 달밤에 울고,
화소심원춘(花笑沁園春)이로구나. 꽃은 깊은 동산에 웃는구나. 꽃은 봄 동산에서 웃는구나.

호호홍진리(浩浩紅塵裏)에, 넓고 넓은 이 띠끌 속에,
두두시고인(頭頭是故人)이다. 낱낱이 이 모두가 이 고향 사람이더라.

원숭이는 서리 친 달밤에 울고, 꽃은 봄 동산에서 웃어.
이 넓고 넓은 이 홍진(紅塵) 속에, 붉은 띠끌 속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 속에,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일월성진(日月星辰)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가 다 고향(故鄕) 사람이요 고향 소식(消息)이더라 그건데.


오늘 병인년 하안거(夏安居) 결제일을 맞이해서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활구참선,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대한 간절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결제 날이니까 화두(話頭)를 드는 법(法), '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하나?'
화두 하나만 바로 들을 줄 알면 어디서나 공부를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오늘 조실 스님의 법문을 그 활구참선, 화두를 드는 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화두는 각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시삼마(是甚麽), 이 뭣고?' 화두나, 무자(無字) 화두나,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나, 무슨 화두를 들던지 그 화두를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의리(義理)로 따져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다못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져, 다만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해야 하는데.
눈으로 무엇을 볼 때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나, 어느 곳 어느 때에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바로 그 곳, 그 때에 즉(卽)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들으면 듣는 데에 쫓아가고, 무엇을 보면 보는 데에 끄달리는데, 이 참선하는 사람은 무슨 색상(色相)이 눈에 보이면 보이자마자 바로 거기에서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 쫓아가지 말고, 그 듣는 것을 버릴려고 하지도 말고, 바로 그 듣는 그곳에 즉(卽)해서 자기의 공안(公案)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선방 스님네와 또 보살선방 보살님네, 이 안거(安居)를 하시게 되고, 또 가정에서 정진을 하신 보살님네도 계시겠습니다마는, 아직은 지금 조석으로는 쌀랑거리는 기운도 있고 그러나, 5월 6월로 들어가면 삼복성염(三伏盛炎)이 되어서 무척 더울 때도 올 것입니다.
그러나 더워도 더운 줄을 모르고, 추워도 추운 줄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이 맛이 있고 없는 줄을 모르고, 반찬을 먹어도 짜고 싱거운 줄을 모르고, 다못 화두를 들어 가고 들어 오며, 화두를 의심해 오고 의심해 가서, 석 달 동안이 어떻게 지낸 줄 모르게 지내야 할 것입니다.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정(大疑情)이 돈발(頓發)한다면, 추워도 추운 줄을 모르고, 더워도 더운 줄을 모르고, 밥을 먹어도 한 알도 씹은 바가 없고, 반찬을 먹어도 짜고 싱거운 줄을 모를 것입니다. 이렇게 정진(精進)을 해 가야 과연 참선을 한다고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우면 더워서 못하고 추우면 추워서 못하고, 밥이 되면 되아서 못 먹고 밥이 질면 질어서 못 먹고, 반찬이 짜면 짜다 못 먹고, 싱거우면 싱거워서 못 먹고, 낱낱이 그러한 주변 경계(境界)에 끄달리게 되고 흔들림을 받게 되는 것은 그 자신이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몰록 발(發)하지를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러한 모든 경계가 눈에 들어오고 귀로 들어오고 몸으로 들어오고 마음으로 들어와서 이리 끄달리고 저리 끄달리고, 그러한 상태에서 석 달을 지낸들, 또 30년을 지낸들, 내지 일생을 지낸들 어떻게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처음~9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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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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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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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인연 비유2021. 7. 27. 13:23

§((235)) 울산군(蔚山郡) 원남면 이근홍의 인과설화 / 인과(因果)와 윤회(輪廻)의 법칙을 부정을 해 버린 사람은 무식하기가 말로 할 수 없는 사람 / 김천(金泉)에서 어느 부인이 아들 집 개로 태어난 인과설화.

금생(今生)에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내생(來生)에 어떻게 받느냐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한 생각 뒤가 바로 내생 /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을 탁! 돌이켜 가지고 '이 뭣고?' 화두를 들면 생사해탈(生死解脫) 길로 나아간 것이 된다.

**송담스님(No.235)—1984년(갑자년) 법보재 법회(84.04.16) (용235) (인과, 인연)

 

 

 

(1) 약 21분.

 

 

(2) 약 20분.

 


(1)------------------

요새 혹 젊은 분들은 이 불교(佛敎)에 인과(因果), 윤회(輪廻)의 이치를 잘 모르는 분은 그런 것을 잘 모르니까, '그런 소리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하기 위한 방편설(方便說)이 아니냐?' 이렇게 잘 믿을려고 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요새는 심령과학(心靈科學)이 상당히 발달이 되어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 영혼까지도 흩어져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설사 몸은 죽어서 땅에다 묻고 화장(火葬)을 해서 한줌의 재가 되어서 물이나 산에 흩어 버리고 그래서 없어졌다 하더라도,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그 영혼은 원래 태어난 때가 없고 또한 영원히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업(業)에 따라서 다시 또 몸을 받아나고 또 한평생을 살다가 또 지은 업에 따라서 천당이나, 지옥이나, 인간이나, 축생에 또 태어나는 노릇입니다.


1938년에 경상북도 울산군(蔚山郡) 원남면(苑南面) 상서리(上西里)에 이규진(李圭鎭)씨라 하는 분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분에게는 이근홍(李根洪)이라고 하는 외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근홍 군이 갑자기 병(病)을 앓다가 손쓸 겨를도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너무너무 애통(哀痛)하다가 두 눈이 짓물러서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그 이근홍이라는 사람이 죽은 뒤에 한 4년쯤 되어 가지고 거기서 한 20리 가량 떨어진 마을에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 청년도 우연히 병을 앓다가 그냥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근데 그 청년이 죽어 가지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저승을 갔는데, 저승에 가니까 어떤 청년이 옷을 깨끗이 입고서 의자에 앉었는데 아, 자기를 보고 대단히 반겨하면서,

"당신이 저 울산 원남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 아니냐?"
"아, 내가 그렇다"고.

당신은 지금 아직 이 저승에 올 때가 아닌데, 그 잘못해 가지고 다른 사람이 잡혀올 텐데 당신이 잘못 잡혀왔어. 그래서 당신은 곧 당신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조끔 있으면 염라대왕이 당신을 부르면 나가게 될 텐데, 그 염라대왕이 당신한테 다시 당신 고향으로 가라고 명령을 할 것이다.

조끔 있으니까 자기 이름을 불러서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갔다 그 말이여. 그 청년을 잡아오는 그 지옥 저승에 사자(使者)를, "어찌 그런 것을 정확하게 자상하게 살펴서 잡아오지를 못하고 어믄 사람을 잡아왔다"고 그 되게 혼구녁을 내서 꾸짖고서, "기왕 이 오기 어려운 곳을 왔으니 이 저승을 구경이나 하고 가라"

그래 가지고 그 이근홍이라는 사람은 4년 전에 와서 그 저승의 모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근홍이가 안내를 해 가지고 그 십대왕(十大王) 궁(宮)을 다 구경을 하고 또 그 죄(罪) 진 사람 죄 받는 모습도 다 구경을 하고, 그리고서 이제 지옥(地獄)에서 떠나오게 되었는데, 그 이근홍이라는 사람이 "내가 당신한테 부탁할 말이 있으니, 내 고향에 가거든 꼭 내 말을 좀 우리 집에다 전해 달라"고. "무슨 말이냐" 한께,

"내가 우리 숙부한테 돈 백 원을 빌려 쓰고서 미처 갚지를 못하고 내가 죽었는데, 내가 죽은 뒤에 우리 숙부께서, 내가 죽은 뒤 2년 만에 우리 숙부가 돌아가셔 가지고 지금 나 있는데 와서 계시는데, 내가 갚지 못한 그 백 원, 그 백 원을 저승에까지 따라와 가지고 갚으라고, 근데 내가 이 저승에 무슨 돈이 있어서 갚겠느냐고.
안 갚으니까 그 숙부가 염라대왕한테 고소(告訴)를 해서 지금 재판이 걸렸는데 아무 때라도 그 돈이 해결이 되어야 우리 숙부도 좋은 곳, 어디로 딴 데로 가시게 되고, 나도 다른 데에 가서 태어날 텐데 아직 그 재판이 계류 중이라 가지를 못하고 이 저승에서 이렇게 4년이나 꼼짝을 못하고 있으니,
고향에 돌아가거든, 울산군 원남면 상서리라고 하는 곳에 가서 우리 아버지 이규진 씨를 찾어 가지고, 저승에 와서 이근홍이란 사람을 만나서 이런 약허약허(若何若何) 허더란 말을 소상하니 얘기를 하고, 돈 백 원을 그 우리 숙부님, 숙부 댁에다가 갖다 갚고, 그리고서 나를 천도(薦度)를 좀 잘해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나를 천도를 하되 울산에 가면 문수암(文殊庵)이라고 하는 절이 있으니까, 그 문수암에 가서 돈과 쌀과 그 정성껏 모든 것을 마련을 해 가지고 가서 하되, 불국사(佛國寺)에 가서 큰스님네를 초청을 해다가 영가에게 법문(法門)도 들려주고, 그 여러 스님네를 많이 초청해서 스님네 공양(供養)도 올리고 그렇게 조끔 말을 해 달라"고.

그리고서 인자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빨리 가라고 그래서, 그래서 인자 조루루 하니 그 지옥에 열두 대문을 전부 구경을 하고 거쳐서 오니까 무슨 강이 있는데, 다리를 건너오는데 중간에 다리가 뚝! 부러져 가지고 깜짝 놀랜 바람에 깨어났다 그 말이여.
눈을 떠 보니까 집에서는 그 초상(初喪)이 났다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그 말이여. 죽은 지가 사흘이 되어 사흘 만에 다시 깨어났어. 그래 가지고 깨어나고 보니까 자기는 꿈꾼 거다. 꿈을 꾸었어. 꼭 꿈속에서 만난 것처럼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기억을 해 가지고 꿈 얘기를 하는데, 집안에서는 모다 초상이 나가지고 울고불고 야단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눈을 떠 가지고 인자 정신을 차려서—그 이근홍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지옥을 안내 받고, 이근홍이가 자기한테 부탁한 말을 전부 다 얘기를 하니까 '하, 그 참 이상하다' 그래 가지고 그 원남면 상서리로 사람을 보내 가지고 그 이규진씨란 사람을 만나서 보니까, 2년 전에 그 이규진씨 동생이 죽었고 또 그보다 2년 전에, 더 2년 전에는 이규진씨 아들 이근홍이라는 사람이 분명히 죽었다 이거거든.
그러니 거짓말이 아니고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확인이 되어서, 그래서 그 돈 백 원을 갖다가 그 숙부집에 갚고, 바로 날을 받아 가지고 문수암(文殊庵)에 가서 큰 재(齋)를 지냈어.

칠일 기도를, 지장기도를 해 가지고 떠억 천도재(薦度齋)를 지냈는데, 마지막 천도한 날 저녁에 이근홍이하고, 이근홍이 숙부하고 떠억 그 청년 꿈에 나타나 가지고,
"내가 그 영 이 저승에서 풀려날 길이 없었는데 당신이 내 약속을, 부탁을 잘 들어주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그렇게 참 천도재를 융숭(隆崇)하게 해 준 그 공덕으로 다 지옥에 재판이 다 끝나고, 우리 숙부와 나와 함께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나게 되었다" 심심한 사과를 하고 마지막 작별을 하는데,
"당신은 앞으로 15년 뒤에는 나한테로, 내가 있는 도리천으로 오게 될 것이니 그때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하고서 이근홍이란 사람 숙질간이 뚝 떠나서 하직(下直)을 했는데, 깨고 보니 그 분명히 꿈이다 그 말이여. 참... 그래서 그럭저럭하다가 15년이 되었는데 과연 그 청년이 15년 만에 죽었습니다.

이것은 1938년이니까, 지금부터 한 50년 전에 울산에 그 원남면 상서리에 있었던 한 실화(實話)입니다마는, 사람을 떡 보면 '저 사람이 전생(前生)에 뭣이었었고 또 내생(來生)에는 어떻게 되겄다' 이런 것을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 알 수가 있고, 또 우리 보통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이 허공계에 있는 모든 귀신(鬼神), 선신(善神) 악신(惡神) 이런 귀신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된 농짝 같은 거, 오래된 무슨 골동품 같은 거, 그런 걸 보면 거기에 그 골동품에 탁! 애착(愛著)이 붙어 있는, 전생에 그 사연이 있는 그러한 영가(靈駕)가 거기에 딱! 붙어서 그것을 의지해 가지고 있는 것이 환히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님 가운데도 있고, 보살 가운데도 있고, 또 불교를 안 믿어도 또 그런 것이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이건 전생에 식(識)이 맑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식(識)이 맑은 사람, 또 입태(入胎) 출태(出胎)에—사람은 태중(胎中)에 환히 모든 것을 이렇게 알고 있다가, 일생 동안 자기가 한 일을 다 기억하고 있다가 딱! 새로운 태(胎) 속으로 들어가는 찰나(刹那)에 콱 매(昧)해 버리기도 하고, 그 태(胎) 속에 들어 있을 때까지도 알고 있다가 그 태에서 나오면서 잊어버리기도 하고, 태에서 나와 가지고도 환히 알고 있다가 차츰 그 어릴 때는 환히 알고 있다가 차츰차츰 밥을 먹고 말을 할 만큼 되면 영 꽉 맥혀 버리기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특수한 사람은 태(胎)에 들어갈 때도 안 매(昧)하고, 나올 때도 안 매(昧)하고, 또 잠깐 매(昧)했다가도 커서 염불(念佛)만 조끔 하던지, 주력(呪力)을 조끔 하던지, 기도만 조끔 해도 금방 그 맥혔던 것이 벗거져 가지고 이리 보면은 귀신도 보이고 모다 그러는 수가 있습니다. 귀신 붙은 것도 보이기도 하고 그러는데.
뭐 귀신 붙은 것이 보이고, 귀신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확철대오한, 그 도통(道通)을 한 것은 아니에요. 그것을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설사 그런 영가가 보이고, 귀신이 보이고, 뭐 전생 일을 환히 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도(道)를 깨닫는 것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인데, 식(識)이 맑으면 그런 것이 보이게 되어요.

혹 이 사부대중 가운데에도 그런 것이 보이기도 하고, 알기도 하는 분이 상당수 있지 않은가, 나는 생각을 합니다마는,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요 나쁜 것도 아닙니다.
좋은 것도 아니요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러한 것에 신경을 쓰고 집착을 해서 아는 소리를 하고, 자기가 무슨 도(道)나 트인 것처럼 그런 그 고런 것 좀 아는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고 뽐내고 으시대고 도인 행세를 하고 이렇게 되면 그건 물어볼 것도 없이 사도(邪道)고, 외도(外道)고,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혹 공부를 하다가 그러한 능력(能力)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도(道)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잘 인식을 하고, 전혀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하고,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하고 또 그러한 힘을 능력을 써먹고, 남 앞에 과시를 하고 그래서는 아니 되는 거여. 아주 깨끗이 본인도 그건 없었던 것으로 취급을 하고, 오직 정법(正法)을 향해서 닦아 가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러한 실화와 또 이러한 능력이 있는 사람, 또 부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보면, 사람이 죽어서 자기의 지은 업(業)에 따라서 천당과 아수라와 인간과 축생과 아귀와 지옥, 이 육도(六道)를 인연 따라서, 업 따라서 윤회(輪廻)한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과학적 사실이요, 틀림없는 법칙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인과(因果)에 법칙(法則)은 그러한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미신(迷信)이라고 믿지를 아니한 사람은 업이 두터운 사람이요, 눈이 극도(極度)에 근시안(近視眼)은 한 5m만 떨어지면—다른 사람은 저 10m, 100m, 저 10리, 20리 떨어진 먼 산도 다 보이는데—극도에 근시안은 안경만 벗으면 코앞에 사람도 잘 못 알아봅니다.
또 육체적으로는 눈이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백지 한 장만 가리워 놓면 그밖이 안 보입니다. 벽 밖에도 우리는 볼 수가 없고, 더군다나 산이 가려 막혀 있으면 산 넘에는 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성과(聖果)를 얻은 성인들은, 육신통(六神通)을 얻은 성인들은 공간적(空間的)으로 아무리 멀고 아무리 산과 벽이 막혀 있어도 바로 이 허공(虛空)을 보듯이 환히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그런 성현이 아니라도, 외도(外道)라도 이렇게 천안통(天眼通)을 얻으면 공간에 걸림 없이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극도에 근시안이요, 그런 천안통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을, 자기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에이, 그런 것은 거짓말이요 미신이다' 이렇게 그러한 인과(因果) 윤회(輪廻)와 윤회의 법칙을 그렇게 간단하게 부정을 해 버린 사람은 무식하기가 말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여.

자기 눈으로 못 봤다고 해서 부정을 한다면 우리가 증조할아버지, 아 고조할아버지나 7대 할아버지, 10대 할아버지 본 사람이 어디가 있어?
아무리 할아버지 많이 봐도 증조할아버지까지는 혹 보는 수가 있어도 고조(高祖)나 육 대조(六代祖), 칠 대조(七代祖) 이상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그러면은 자기 눈으로 못 봤다 해서 자기에게는 육 대조나 칠 대조, 십 대조 할아버지가 안 계셨단 말입니까?
'내 눈으로 안 보면 믿을 수가 없다' 한 그건 참, 코 없으면 똥을 집어먹을 사람이거든.(19분49초~40분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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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바른 말이고, 이치에 합당한 말이고, 성현의 말씀이면 믿을 줄을 알아야지, 자기 눈으로 극도의 근시안이 되어 가지고 5m만 떨어져도 못 보고 더듬더듬한 사람이 저 앞에 산이 있다고 해도 믿지 않고, 차가 온다고 해도 믿지 아니하고 막 함부로 마구잽이 막 쫓아나가면, 그 사람은 자동차에 치이고 허방에 빠지는 길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인과에 법칙을 안 믿는 사람은, 그건 불법을 믿는다고 할 수가 없어요. 정말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인과(因果)의 법칙(法則)만 철저히 믿게 되면 그 사람은 죄를 지을라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인과의 법칙을 모든 사람이 믿으면 이 세상에 법이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형법이나 무슨 민법이고 뭐 아무 법률(法律)이 필요가 없어요. 경찰도 필요 없고, 법원도 필요 없고, 형무소 교도소도 필요 없이 되는 것입니다.

참, 이 불법(佛法)을 철저히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수행을 하면, 내가 저지른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속으로 한 생각 잠깐 일어났다 꺼지는 그 찰나간의 생각마저도 한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고대로 과보(果報)를 받는다고 하는 사실을 뜨겁게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으로 남을 뚜드러 패고 남을 죽이고 그런 것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또 입으로 무슨 거짓말을 하고 그런 것도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속으로 잠깐 한 생각 내는 것도 그렇게 무섭게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 사실을 정말 느끼게 되고 인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철저하게 뜨겁게 와서 느끼고 와서 닿는데, 어떻게 입으로 거짓말을 하며, 남의 재산을 사기를 치며, 나 이롭기 위해서 남을 갖다가 죽이고 패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카가 삼촌의 돈 백 원을 빌려다 쓰고—삼촌이라 하면은 바로 자기 아버지의 동생인데, 아버지의 동생의 돈 백 원 빌려다 쓰고 못 갚었는데—다른 사람이 아닌데, 조카에게 돈 백 원 빌려준 것을 저승에 까지 가 가지고 그놈을 안 냈다고 해서 염라대왕에 재판을 해 가지고 둘 다 그 재판에 걸려 가지고 가덜 못하게 되니, 중생의 그 탐심과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저 김천에 또 어떤 사람은 자기 딸에게, 며느리와 아들 몰래 딸이 오면은 양석[糧食]도—옛날에 참 왜정(倭政) 때는 그렇게 쌀이 귀했거든. 그러니 딸이 오면은 그 며느리 눈치봐 가면서 몇 되씩 퍼 주면은 치마 속에다가 그저 감춰 가지고 가 가지고는 가고, 그저 팥 농사면 팥도 퍼 주고 깨도 퍼 주고 이래가지고 헌데, 그 친정어머니의 마음이지요.
그 시집가 논 딸을 항시 불쌍하고 못 잊고 그러니까, 가서 잘살면 오히려 친정에 모다 갖다 드리겠지만, 시집간 것이 가난한 데로 갔던지 친정에만 오면 어머니가 그렇게 가슴이 아파해서 그렇게 며느리 몰래 퍼 주고 퍼 주고 그랬었는데.

그 며느리가 얌전하고 효심(孝心) 있으면 그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서 며느리가 자진해서 '이거 시누가 왔으니 이거 쌀도 좀 주십시다. 깨도 좀 줍시다' 하고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면 그것이 참 효도가 되고, 얼마나 시어머니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드릴 텐데 그 며느리가 마음이 거기까지 가지 못했던지, 그 시어머니가 며느리 몰래 그 할 때 얼마나 그 참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아 그랬는데, 그 부인이 죽어 가지고 그 집에 개가 되었습니다. 그 개가 된 것을 어떻게 알겄습니까마는, 그 아들 꿈에 떠억 그 개가... 어찌 개가 떠억 자기 어머니로 보이면서,
"내가 니 애미다. 니 애미인데 내가 죽어 가지고 내가 개가 되었어. 내가 왜 개가 되었냐 하면, 너와 며느리 몰래 그 시집간 니 누이동생에 곡식을 퍼 주고 모다 그랬는데, 그 죄로 그것을 갚기 위해서 내가 개가 되어 가지고 느그 집 집을 내가 지키고 있다. 아, 그런데 며느리가 꺼떡하면 나를 발길로 찬다"

시골에 가면 부엌에서, 아주 개가 부엌에서 살면서 밥만 펐다 하면은 그저 밥 냄새 맡고 그저 달라들거든. 발길로 탁! 차기도 하고, 그저 주걱으로 대골통을 때리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는 밥은 즈그들이 다 밥 먹고 솥단지 씻은 거, 뭐 밥 먹고 남은 거, 누룽지 식은 밥, 모다 그런 걸 찌클어 주니 겨울에는 차와서 먹을 수가 없고, 여름에는 또 그 또 변질된 것 고런 것이나 주고.

그래 가지고는 "그러니 내가 밥도 먹을 수가 없고, 그 발길로 며느리... 다른 사람한테 채여도 분할 텐데 며느리한테 채여서 내가 분하고 살 수가 없다. 그러니 니 처(妻)한테 '개, 집에서 키우는 개를 그렇게 차는 법이 아니라'고 일러주어라. 그러고 밥도 좀 따뜻하게 주고, 때맞춰서 주고. 이렇게 하고 내가 겨울에는 추워서 잘 데가 없으니 짚으로 개집을 잘 만들어 가지고 좀 잘 수 있겄게 해다오"

그래서 참, 꿈을 깨 놓고 보니까 묘하다 그 말이여. 그 꿈을 깨 가지고 개 있는 데서, 개를 가서 보니 머끔하니 자기를 쳐다본 것이 꼭 자기 어머니 같다 그 말이여. 아, 그래도 이것이 그 꿈이라 놔서 차마 개 보고 '어머니, 어머니'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차마 그 처한테 그 얘기를 '어머니가 세상에 개가 되었다'는 말을 챙피하기도 하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말을 안 하고는 며칠을 지냈는데, 아, 또 꿈에 그 나타나 가지고 "채여 가지고 눈팅이가 부었다"고, "왜 말을 하라니까 안 한다"고 재차 그런다 그 말이여.

그래서 할 수 없이 인자, "개를 발길로 차지 말라"고, "그렇게 내 집을 지켜주는 개를 그렇게 차지 말라"고, 그 부탁을 하고 "밥도 좀 따뜻이 주라"고 그러는데,
"남자가 조잡하게 무슨 개 밥 주고 말고 한 것을 간섭을 한다"고. "밖에 일이나 허제 개 갖고 그런다"고, 툭! 받어 버린다 그 말이여.

또 며칠 있다가 또 꿈에 또 그런다 그 말이여. 그래서 세 번째는 할 수 없이, "내가 지금 세 번째 꿈을 꾸는데, 저 개가 어머니가 돌아가셔 가지고 개가 되었다고 그런다. 그 어머니가 그 개가 되었다고 그러니, 이것이 한 번이라면 모르는데 세 번째 똑같은 꿈을 꾸니 이것이 아무래도 이상해. 그러니 제발 개를 발길로 차지 말고 하라"고, 아주 따끔하니 아주 타일러서, 그때부터서 인자 개집을 맨들어서 따뜻이 해 드리고, 또 밥도 따뜻하게 해서 잘 때맞춰서 개밥을 주고, 절대로 발길질하지 아니하고 잘 해드렸는데.

아, 그날 저녁에 떠억 어머니가 나와 가지고, "이제는 인자 내가 살겄다. 잠자리도 편하고, 밥도 배불리 먹고, 발길질을 안 하고 그래 인자 살겄는데, 내가 원(願)이 하나가 있다. 저 합천 해인사(海印寺) 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내가 구경을 해야 내가 좋은 곳으로 인제 개 탈을 벗어나서 태어나게 된다고 그러니 나를 그 해인사 가서 절 구경을 시키고, 특히 그 팔만대장경 모셔진 그 대장각(大藏閣)을 나를 좀 데리꼬 다오" 부탁을 해서,
'이제는 틀림없다' 생각을 해 가지고, 그 개를 모시고 직지사(直指寺) 역(驛)을 가서 기차를 탈라고 하니까, 그 역원(驛員)이 "개는 차 못 탄다"고 딱! 가로막는다 그 말이여. 그 참 난감하게 되었다 그 말이여. 그냥 우물우물하고 있는데, 아! 개가 어떻게 잽싸게 이리저리 피해 가지고는 그냥 저리 뒤로 해 가지고는 지가 홀랑 뛰어올라 가 가지고는 그 의자 밑에로 쏘옥 들어가 버려.

그래 가지고는 인자 이 대구역(大邱驛)에 내려 가지고, 인자 내리니까 또 지가 먼저 탁! 내려 가지고는 그래 가지고는 역원에 눈을 피해 가지고는 인자 그 합천 해인사를 가는데,
절을 이리저리 인자 구경을 하고 다니는데, 아! 그 스님이 '개를 절 법당(法堂)에까지 데리고 왔다'고 막 호통을 치니깐, 개라는 놈이 이리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그냥 저리저리 멀리 돌아가 가지고는 저 혼자 이리저리 막 싸다니면서 구경을 하다가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장경각(藏經閣)을 가게 되는데,
아! 거기 또 스님이, 안내하는 그 스님이 못 들어가게 하니까 그놈이 잽싸게 저리 해가지고는 지가 먼저 들어가 가지고는 뚤래뚤래뚤래 돌아다니면서, 칸칸이 돌아다니면서 다 구경을 하고는 나왔다고. 그 주지 스님, 안내한 스님과 주지 스님한테 그 혼이 났다 그 말이여.

그러니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꿈꾸는 얘기 하며 그 소상하니 얘기를 했더니—그 주지 스님이 누구냐 하면 그때 이고경(李古鏡) 스님이라는 주지 스님이 그때 주지(住持)를 했어요.
그 이고경 스님한테 그러한 얘기를 했더니, "그 틀림없이 있을 만한 얘기"라고, "아무리 내 재산이지만, 이미 아들 며느리한테 재산을 갖다가 물려주었으면 당연히 딸한테 줄라면은 다 말을 하고 주어야지 그 며느리와 아들 몰래 재산을 빼돌렸으니까 그 개 과보를 받을 만하다"고.

그래 가지고 그 자기가 그 살림을 빼돌린 그 값을 치루기 위해서 개가 되어 가지고 그 살림을 지키는 거여. 그래 인자 살림을 다 자기 빚을 갚을 만큼 되니까, 인자 그 합천 해인사 절 구경을 하고 팔만장경을 구경을 하고 그러니까 그 인연으로 개 탈을 벗게 되었어.
그래 가지고 집에 왔는데 꿈에, "내가 니 덕으로 참 좋은 구경을 하고 그 공덕으로 내가 개 탈을 벗었어. 내가 인자 좋은 곳으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참 고맙다. 기왕이면은 더 좋은 곳으로 가게 해인사에 가서 나를 갖다가 사십구재(四十九齋)를 한 번 해다오. 그렇다면은 내가 원(願)이 없겄다" 그래 가지고는 가서 인자... 그런데 그 이튿날 꿈을 깨고 보니까 개집에 개가 딱 죽어 갖고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개를 갖다가 저 산에다가 묻어서 개 무덤을 딱 해 주고는 해인사에 가서 사십구재를 떠억 지냈는데, 사십구재 지낸 날 저녁에 꿈에 그 개 탈을 벗어버리고, 이 좋은 옷을 한 벌을 (불에) 사롸 달라고 그래서 사롸 드렸는데, 그 옷을 입고 그렇게 얼굴이 환해 가지고 참 선녀(仙女)처럼 그렇게 되어 가지고 이 천상(天上)으로 태어났다 이거여.
이건 내가 그 아들의 이름도 다 알고 있었는데 내가 오래되어서 그 이름을 기억을 못하지만, 이것도 다 실지로 있었던 실화(實話)다 이것입니다.

아까 이근홍이라는 사람의 얘기와, 이 자기 어머니가 개가 된 이러한 하나에 실화이면서 인과설화(因果說話)인데, 이러한 얘기는, 이러한 실화는 우리 도처에 있는 일이고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심지어는 저 인도나 미국 같은 데도 이러한 얘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최면학이, 최면술 하는 그 최면학이 발달이 되어 가지고 최면(催眠)을 걸어서 연령 소급(年齡遡及), 퇴행법(退行法)을 쓰면, 그 사람이 전생(前生)에 무엇이었으며 그런 것을 환히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사람이 죽으면 아주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기도 하고 개가 되기도 하고, 미국에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한국에 태어나기도 하고 그런다고 하는 사실을 다 과학적(科學的)으로 증명(證明)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한다, 또는 그림을 잘 그린다, 또는 음악을 잘한다, 모다 수학을 잘한다' 이것이, '바둑을 잘 둔다' 이런 게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천재적인, 천부적(天賦的)인 소질(素質)이 있다' 그러는데, 이건 전생에 그렇게 익힌 것이 금생에 그렇게 나면서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소질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마음씨가 착하고 포악한 것 하며, 부자로 살고 귀하게 살고 또는 천하게 살고 하는 것 하며, 백만 가지가 다 전생에 자기가 지어 가지고 그렇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금생에 우리가 전생(前生)에 지은 그러한 인연(因緣)으로 해서 금생(今生)에 이렇게 받어 난 것을 본다면, '우리가 금생(今生)에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내생(來生)에 어떻게 받느냐?' 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금생에 함부로 마음을 쓸 수 있으며, 함부로 말을 할 수 있으며, 함부로 행동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조심(말操心), 행동 조심(操心), 마음씨 바르게 쓰고, 착하게 쓰고, 지혜롭게 해서 과거에 업(業)을 소멸(消滅)을 하고, 지끔 이 시각(時刻) 이후가 바로 내생(來生)이니까—이 몸뚱이를 기준으로 해서 본다면 이 몸뚱이 죽은 뒤가 내생이지만 그것은 옅은 인과법이고, 내생(來生)은 한 생각 뒤가 바로 내생이여. 일 초 뒤가 바로 내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하느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고 무서운 것이다 이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이 구체화되기 전에, 얼굴에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을 탁!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를 들어.
그 생각을 돌이키지 아니하면 큰 죄를 범(犯)하게 되는데, 그 죄(罪)로 형성화(形成化)되기 이전에 그 생각을 딱! 돌이켜서 '이 뭣고?' 이렇게 하면, 죄를 미연(未然)에 방지하고 오히려 생사해탈(生死解脫) 길로 나아간 것이 된다 그 말이여.(40분47초~60분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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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21. 7. 26. 06:43

§((292)) (게송)운주천무동~ / 이 사바세계에 와야 도를 바르게 닦고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 / 불법(佛法)은 슬픔에서, 괴로운 일에서 오히려 발심을 할 수가 있도록 한다 / (게송)일파유조수부득 화풍탑재옥난간.

**송담스님(No.292)—1986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2.23) (용292) (활구참선,최상승법)

 

 

(약 14분)

 


운주천무동(雲走天無動)이요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인디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리오
나무~아미타불~

운주천무동(雲走天無動)이요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로다.
구름이 달아나되, 구름이 계속 바람에 날려서 구름이 달아난 것이지 하늘이 움직인 것이 아니여. 그런데 어떻게 잘못 보면 구름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계속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하늘에 달이 떴는데, 구름이 막 바람에 지내가는데 구름이 지내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달이 계속 달아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또 배가 강(江)에서 강을 타고 막 지내가면, 어떻게 잘못 보면 배가 가는 것이 아니라 양쪽 언덕이 기슭이 계속 달음박질을 친 것처럼 보이거든.
구름이 달아나되 하늘이 움직인 것이 아니고, 배가 달릴지언정 양쪽 언덕이 움직인 것이 아니여.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이여.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리오. 어느 곳에 기쁘고 슬플 것이 있느냐.

사업이 흥(興)하고 또 새 아들이나 손자가 태어나고 또 모다 그렇게 되면 모다 다 기뻐서 모다 어쩔 줄을 모르다가, 사업이 여의치 못해서 손해를 보거나, 또 사람이 아퍼서 죽거나, 내가 소원한 바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모다 슬퍼하는데, 이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죠.
기쁜 일을 당하면 기뻐하고, 슬픈 일을 당하면 슬퍼한 것 그 자체가 꼭 그것이 나쁜 일이라 한 것도 아니고, 기쁜 일을 당하는데 슬퍼하고, 사람이 죽어서 야단인데 거기서 손뼉을 치고 웃고 그러라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좋다 나쁘다' '슬프다 기쁘다' 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이 자기 자신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客觀的) 상황이기는 하지만, 좀더 근원(根源)에 돌아가서 보면 모든 것이 다 그 주관(主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모든 생사(生死)의 현장에서, 모든 생멸(生滅)의 상황 속에서 근본의 이치(理致)로써 관조(觀照)하면 그것이 봄 되았다 여름 되았다 가을 되았다 겨울이 되고, 겨울이 되았다가 다시 또 새봄이 돌아온 것과 같애서, 거기에 무슨 슬퍼할 것도 기뻐할 것도 조끔도 없는 것이지마는, 근본을 떠나서 현상에만, 일어나는 모든 현상계에만 치우쳐서 생각하면 참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너무너무 슬프고 괴로운 일이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도(道)는 이 사바세계에 와야 도를 바르게 닦고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모든 언짢은 그런 일들에서 우리는 그 슬프고 괴로운 일에 빠져 가지고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데에만 근치지 말고, 거기에서 발심(發心)을 하고 자기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契機)로 삼아 나가고, 그런 계기로 우리가 해서 향상(向上)되어 갈 수 있는 발판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말세(末世)라 하고 그거 생사고해(生死苦海)라고 하는 이 사바세계가 정말 도처(到處)가 선지식(善知識)이고, 도처가 불보살(佛菩薩)이고, 도처가 살아 있는 수도에 도장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해제와 백일기도 회향을 맞이해서 지난 석 달, 지나간 석 달을 회고(回顧)해 보고 스스로 부족하고 미흡한 점은 잘 반성을 해서 오늘 이후의 자기의 생활과 정진에 그것을 반영을 해서 새로운 발전과 향상이 되도록 그렇게 살려 나가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정말 불법(佛法)은 슬픔에서 오히려 발심을 하고, 괴로운 일에서 오히려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할 수가 있도록, 그렇기 때문에 불법은 참 좋은 거 같습니다.
이 불법을 모르는 사람은 조그마한 슬픔을 통해서 큰 슬픔으로 빠지게 되고, 조그마한 괴로움과 노여움을, 그것을 거기에서 돌이키지 못하고 그것으로 해서 큰 재앙을, 스스로 재앙의 구뎅이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빠져서 더욱 불행하게 되어 가는데,
이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명두래명두타(明頭來明頭打) 암두래암두타(暗頭來暗頭打), 밝은 놈이 오면 밝은 놈에서 어두운 놈이 오면 어두운 놈에서, 일체처 일체시에서 그놈을 막 잡어서 쓰고, 어떠한 역경계(逆境界)에서도 거기에 넘어지지 않고 바로 거기서 새로운 지혜와 용기를 얻어 나갈 수가 있어서, 그래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참 좋은 거 같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최상승법을 믿음으로 해서 인생의 그 지긋지긋한 슬픔과 괴로움의 구렁텡이에서 용케도 거기에 붙잽히고 거기에 빠지지 않고 거기서 뛰쳐나와 가지고 새로운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게 되신 분이 상당히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역경(逆境)이라도 두려울 것이 없고, 오히려 거기를 잘 살려 나갈 수 있게 되니,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닦아감으로 해서 자기만 행복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아는 모든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까지도 모두 다 말 없는 가운데에 포교(布敎)를 하시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새로 맞이한 이 병인년을 맞이해서 지난 한 해보다도 훨씬 더 큰 비약과 발전이 있기를 바라고, 이 백일기도 회향에 여러분의 과거에 모든 업장(業障)이 다 소멸(消滅)이 되시고 또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빌면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이여. 한 움큼 버들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해서,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다.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다 걸어 둔다.

수영버들이, 그 실 수영버들이 여러 가지가 해가지고 바람에 자꾸 휘날리니까, 그것을 어떻게 이렇게 거두어 잡지를 못해서 그냥 옥난간에, 바람과 함께 옥난간(玉欄干)에다가 걸어 둔다. (26분5초~39분32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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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21. 7. 25. 06:44

§((292)) 생사를 요달하지 못하면 생각 생각이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 /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법(四諦法) / 간절한 도 닦을 마음이 날 때에 그것을 '발심(發心)'이라 그러고, 제일 좋은 발심은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렵고 무서운 발심.
우리 주변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모습들이 바로 염라대왕의 편지 / 철저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과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으로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이건 갈 곳이 없는 것.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게 되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시게 될 그 시간을, 시일을 단축하는 데에는 '본인이 앞으로 얼마만큼 올바르게, 그리고 철저하게 정진을 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금생(今生)에 이룰 수도 있고, 내생(來生)에 이룰 수도 있고 또 저 내생에 낼 수도 있고, 그것은 지끔으로서는 말할 수가 없지마는, 하여간 좋은 줄 알고 처음에는 흉내내다가 차츰차츰 한 철 두 철 하다 보면 공부하는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서 올바르게 정진을 해 간다면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참선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철저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과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으로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이건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92)—1986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2.23) (용292) (발심,자신)

 

 

약 13분.

 


지난 석 달 동안 뭐 30년 만에 처음 추위라고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모질고 강추위 한 이 서해 바닷가에서 공기도 나쁘고 소음도 많고, 수용(受用)도 박(薄)하고 이러한 속에서 잘 견디면서 정진을 모다 알뜰히 해 주셨습니다.
선방(禪房) 대중스님네와 또 보살선방에 백네 분의 보살님네들이 석 달 동안을 잘 정진을 하셔서 별다른 장애없이 해제를 맞이하고, 또 결제에 방부(房付)는 안 들이셨지만 또 가정에서 분(分) 따라서 정진하신 백일기도 동참재자 여러분들, 이렇게 해서 한 철이 또 지내가고 또 병인년(丙寅年) 새해를 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들어서 편의상 '을축년이다, 병인년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였지, 해는 을축년도 동쪽에서 뜨고, 병인년에도 동쪽에서 뜹니다. 문제는 해가 뜨고 지고 할 때마다 우리는, 이 무상(無常)한 몸뚱이는 죽음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미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생사(生死)를 요달(了達)한 분상(分上)에는 죽음을 향해서 갈 것도 없고 삶을 향해서 올 것도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생사를 요달하지 못했으니 생각 생각이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사가 무상(無常)한 줄 철저히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도(道)를 닦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도를 깨달으시고 녹야원(鹿野苑)에 가셔서 초전법문(初轉法門)을 하실 때에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제법(四諦法)을 설하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괴로운 것이다, 이 몸뚱이는 괴로운 것이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다'
왜 괴로우냐 하면은 이 세상에 무엇이고 한 번 생겨난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지고 마침내 죽게 되고 없어지게 되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괴로운 것이요, 또 하루하루 늙어가는 것이 괴로운 것이요, 늙은 뒤에는 또 병든 것이 괴로운 것이요,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 죽어가는 것도 또한 괴로운 것이다.
이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 또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이 사상(四相)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이러한 흘러간 것이 하나도 괴로움 아닌 것이 없다 이것입니다.

그것이 분명 괴롭다고 하는 사실에 철저하면, 무상(無常)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고, 무상을 철저히 깨달으면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도(道) 닦는 마음이 미상불(未嘗不) 간절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 간절한 도 닦을 마음이 날 때에 그것을 갖다가 '발심(發心)'이라 그러는데, 발심도 여러 가지 경우에 따라서 발심이 되는데 제일 좋은 발심이 어떠한 것이냐 하면은 포구발심(怖懼發心)이다. 두렵고 무서운 발심.
생사고(生死苦), 지옥고, 그 지옥고(地獄苦)를 받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이며, 그 지옥고 받는 것에 대한 두렵고도 무서운 생각이 철저하게 나는 거, 그것이 바로 포구발심인데. 우리의 주변에서는 시시때때로 사람들이, 생로병사의 모습들이 여기서 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강 건너 등불'로 볼 것이 아니고, '이것이 바로 나에게 염라대왕(閻羅大王)으로부터서 생사(生死)에 두려움을 깨닫게 하기 위한 그 통지(通知)해 온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집안에 정든 사람이 죽으면 그것을 슬퍼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 다른 사람 죽은 것은 그 예사로 들에 한 떨기 꽃이 피었다가 진 것처럼, 또 나무가지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가 또 날아간 것처럼 보통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도살장에 가서 그 소가 죽게 되는 현장을 본다든지, 또 감옥에 가서 그 죄수들이 그 고(苦)를 받는 모습이라든지, 또 화장장에 가서 그 사람들을 갖다가 화장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그 생사의 괴로움이 어떠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딱! 가다듬고 보면, 구태여 도살장에나 화장장에를 가보지 안 해도 우리 눈앞에 모든 현상을 보고, 또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무상(無常)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중생은 이 생사 없는 도리에서 생사(生死)를 보고, 그 생사를 보고서 무상(無常)을 깨닫고, 무상을 깨달은 그 마음으로 발심(發心)을 하고, 그래 가지고 도(道) 닦을 마음을 내서, 그래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법문(法門)을 듣고, 이 화두(話頭)를 타서 공부를 하고—그 과정이 참 몇 고비를 거쳐서 몇 해를 걸려서 겨우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내고, 겨우 조끔 흉내를 내고 조끔 해본 척하다가 그럭저럭하다 보면 늙게 되는 것입니다.

'철 들자 죽는다'고, 그러니 바로 맨 처음에, 최초에 탁! 한마디에 그 여러 과정을 갖다가 생략을 해 버리고 한 생각 골똘하면 되는 일인데, 그렇게 여러 고비를 거쳐서 10년 20년 30년 만에 겨우 이 '참선(參禪)이 좋다' 한 말을 듣고 이렇게 찾아오셔서 백네 분이나 이렇게 방부(房付)를 들이셨는데, 그 가운데는 벌써부터 발심을 해서 정진을 열심히 하신 보살님들도 계시겠지만,
저 지방에서 참 오랫동안 불교를 믿다가 이렇게 '참선이 좋다'고 하니까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오셔서 그 참 안 해본, 모다 이 고생을 하시면서 석 달을 지내셨는데.

화두를, 화두만이라도 옳게 들 줄 아시고 가시는지, 아직도 화두가 무엇인지, '이 뭣고?' 하면 좋다고 하니까 '이 뭣고, 이 뭣고' 도대체 '이 뭣고?'란 뜻 자체가 무엇인 중도 모르고 '이뭣고를 해야 그것이 참선한 것이다' 자꾸 그 흉내만 내다가 멋도 모르고 그럭저럭 이 해제를 맞이하게 되셨는데.
그 새벽 세 시부터 일어나서 그 씻은 둥 만 둥 하고, 또 아침에 그 씁쓸한 김치 하나에 그저 공양(供養)을 잡숫고, 그러고 죽비(竹篦)를 치면 앉았으니 다리는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꼼짝도 못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석 달을 그럭저럭 지내셨는데.

하여칸 이 숲속에 이 원숭이란 놈이 그 참선하는 스님네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참 그 스님네 흉내를 낸 그 공덕(功德)으로 마침내는 성현(聖賢)이 된 그러한 일도 있고, 어린아이들이 그 진흙에다가 오줌을 싸서 그래 가지고 그 진흙을 버무려 가지고 부처님을 맨들기도 하고, 모다 그래 가지고는 그러한 공덕으로도 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기도 하고.

그러니 직접 이렇게 '이뭣고?'가 무엇인 줄 알았든지 몰랐든지 선방(禪房)에 오셔서 석 달 동안을 같이 정진을 하시다가 그러다가 가시니, 뭐 그분이야 뭐 물어볼 것도 없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道)를 면(免)하실 것이고, 세세생생에 어디에 태어나시든지 항상 정법(正法)을 만나시게 될 것이고, 그래 가지고 반드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게 되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시게 될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그 시간을, 시일을 단축하는 데에는 '본인이 앞으로 얼마만큼 올바르게, 그리고 철저하게 정진을 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금생(今生)에 이룰 수도 있고, 내생(來生)에 이룰 수도 있고 또 저 내생에 낼 수도 있고, 그것은 지끔으로서는 말할 수가 없지마는, 하여칸 좋은 줄 알고 처음에는 흉내내다가 차츰차츰 한 철 두 철 하다 보면 공부하는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서 올바르게 정진을 해 간다면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참선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철저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과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으로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이건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7분1초~19분4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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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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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1. 7. 24. 05:12

 

 

§((292)) (게송)한서상경방대광~ / 당인(當人)의 신심(信心)과 마음가짐에 따라 살아계신 불보살(佛菩薩) 계시지 아니한 곳이 없는 것 / 언제 · 어디서 · 무엇을 하시던지 딱! 한 생각 단속을 하면 선방(禪房), 도량(道場)이 된다.

**송담스님(No.292)—1986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2.23) (용292) (정진, 수행)

 

 

(1) 약 7분.

 

 

(2) 약 6분.

 

 


(1)------------------

한서상경방대광(寒暑相更放大光)하니  막언영악조동방(莫言靈嶽照東方)하라
나무~아미타불~
일조계설대선설(一條溪舌帶宣說)헌디  하처강산부도량(何處江山不道場)고
나무~아미타불~

한서상경방대광(寒暑相更放大光)헌디, 춥고 더운 거, 겨울이 되았다 여름이 되았다 한 춥고 더운 것이 서로 바뀌되 항상 대광명(大光明)을 놓더라.
하늘에 달은 겨울이 돌아와도 밝고 여름이 돌아와도 밝고, 하늘에 해와 달은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상관없이 항상 대광명을 놓더라.

그러니, 막언영악조동방(莫言靈嶽照東方)이여.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여기만 이 동방(東方)에만 햇빛이나 달빛이 비친다고 하지를 말아라.
북쪽이나 남쪽이나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어디에나 해와 달은 한결같이 비추니 거기만 햇빛이나 달빛이 비친다고 하지를 말아라.

일조계설대선설(一條溪舌帶宣說)이여. 한 줄기 시냇물이 선명묘법(宣明妙法)이여. 잘 그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說)하더라 그 말이여. 시냇물 졸졸졸 흘러가는 그 시냇물을 혀로 해서 『화엄경(華嚴經)』을 설하고 계신다 그 말이여.
그러니, 하처강산부도량(何處江山不道場)고. 어느 곳 어느 강산인들 도량(道場)이 아니겠느냐? 도 닦는 곳이 아니겠느냐?

이 게송은 소요(逍遙) 스님의 게송(偈頌)입니다.


오늘 을축년 삼동 결제(三冬結制) 해제일(解制日)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백일기도 회향 법요식도 함께 거행이 되는 것입니다.
석 달 동안 안거(安居)를 오늘로 끝마치고 해제를 하게 되면, 스님네는 또 다른 선지식과 도반과 도량을 찾아서 운수행각(雲水行脚)을 떠나시게 됩니다. 물론 떠나지 않고 눌러서 정진하신 스님네도 계시겠지마는, 옛날부터서 해제를 하면 다 걸망을 지고 또 어느 곳 강산과 선지식과 도반을 따라서 떠나는 그러한 풍습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발걸음 디딘 곳마다, 걸망을 내려놓는 곳마다, 바로 그 곳이 도(道) 닦는 선방(禪房)이요, 도량이요, 부처님의 상주설법(常住說法)을 듣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 곳만이 제일 좋고 또 다른 곳은 좋지 않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당인(當人)의 신심과 마음가짐에 따라서는 천당을 가거나 지옥에 가거나 육도법계(六道法界) 어디를 가든지 매한가지인 것입니다. 어느 곳이라고 부처님의 설법(說法)이 없는 곳이 없고, 어느 곳이라고 해서 불보살, 살아계신 불보살(佛菩薩) 계시지 아니한 곳이 없는 것입니다.
다 중생의 시비(是非) 분별심으로 보니까 좋고 나쁜 곳이 있고 그렇지, 부처님의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버리고 취(取)할 것이 없고, 친(親)하고 먼 것이 없는 것입니다.(처음~6분59초)





(2)------------------

해제(解制)를 했으니 이제 댁에로 돌아가시고 또 산철 결제에 방부를 들이신 분은 또 와서 두 달간 하시게 되겠습니다마는, 댁에 계시던지 절에 와서 방부를 들이시고 하시던지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고, 댁에서는 댁에서 대로, 또 오시는 차중(車中)에서는 차중에로, 이 도량에 들어서면 들어오신 대로, 댁에서도 공양을 잡술 때나, 손자를 갖다가 희롱하실 때나, 그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 어디서 · 무엇을 하시던지 딱!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擧却)을 하신다면 바로 댁에 계신 그 댁이 선방(禪房)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한 생각이, 단속을 하면 도량(道場)이 되고, 한 생각을 방일(放逸)해 그냥 놓아 버리고 범연히 지내면은 그것이 해태굴(懈怠窟)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놓아 버리고 해태한 데에는 온갖 마구니가 그 틈을 타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니 만큼, 그 한 생각만 단속을 하시면 거기에 뭐 마구니가 들어올 수도 없고 삼재팔난(三災八難)도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댁에서 시비와 근심과 걱정과 슬픔과 성냄, 그러한 그 중생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풍우(風雨), 바람 불고 비 오는 그리고 파도치는 그러한 속에서, 떠억 앉었다 섰다 누웠다 거닐다 하는 그러한 속에서 화두(話頭)를 단속하고 그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하도록 잡드리를 하신다면, 바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기 와서 방부를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차 소리 '뛰-' 하는 소리가 나면 그 소리가 바로 죽비 소리고, 손자가 '빽-' 하고 우는 소리가 바로 그 소리가 이 법문(法門)이고, '이러쿵저러쿵 시비하는 소리가 바로 그것이 다 활구법문(活句法門)이라' 이리 생각하고, 그 소리를 듣자마자 화두를 떠억 거각을 하신다면.
또 며느리나 딸이나 손자가 할머니 말을 잘 안 듣고 뭐라고 말대꾸를 하고 그러면 속이 상하지요. 그러지마는 속상할 겨를도 없이 터억 화두를 들고 껄껄 웃으면서 그런 데에 조끔도 마음이 동요가 되지 않고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진다면 그분이 얼마나 그 수행력(修行力)이 생긴 거냐 그 말이여.
그게 바로 자기의 수행력을 그런 데에서 시험을 해 보고, 그런 데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향상되어 가는 것을 스스로 점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비구 · 비구니 모다 여러 수좌 스님네들이 원근에서 모다 정진들을 하시다가 해제라 해서 이렇게 모다 많이 모이셨는데, 스님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산철 동안, 또는 산철 결제를 하시더라도 이 산철 동안에—이제 그 추운 겨울도 지났고, 앞으로 더운 여름도 아직 돌아오지 아니한 이 춥지도 덥지도 않는 이런 좋은 계절에 정말 이 마음껏 정진을 하시되, 아까 보살님네한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규범에, 엄격한 규범에 얽매이지 아니했으되 스스로 항상 근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어느 강변을 지나시든지, 어느 산기슭을 지나시든지, 어느 들녘이나 어느 산중에 처하시게 되더라도 항상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잡드리해 가신다면, 오히려 결제 중에 꼼짝달싹 못 한 그런 규칙 속에 있는 것보다도 더 정진이 활발(活潑)하게 잘 되실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근기(根機)가 약하니까 자진해서 그러한 규범에 얽매이기를 바래고, 그런 규범 속에서 모두가 함께 규칙 생활을 함으로써 스스로 항상 잠깐 동안도 방일(放逸)을 하지 않도록 그러자고 결제를 하고 이렇게 모다 방부를 들이고 그렇게 지내고는 있습니다마는, 참으로 공부에 득력(得力)을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힘을 더는 경계라면 그 동서남북 어데를 가시나 걸림이 없을 것이고, 상관이 없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19분53초~26분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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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21. 7. 23. 07:03

§((217)) (게송)차신성고취~ / 삼계(三界)가 화택(火宅) / 무기(武器)가 순 그게 불덩어리 /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셈 치고 목숨을 바쳐서 해야만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해결이 나는 것 / (게송) 천고무인문~.

**송담스님(No.217)—1983년(계해년) 추계산철 해제 법회(83.09.30.음) (용217) (발심,자신)

 

 

약 13분.

 


차신성고취(此身誠苦聚)허고  삼계진화택(三界眞火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아구출몰(汝我俱出沒)헌디  겁해종난측(劫海終難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신(此身)은 성고취(誠苦聚)요. 이 몸뚱이는 정말 이 괴로움의 뭉텅이다 그 말이여. 온갖 괴로움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말이여.
몸뚱이도 그렇고 우리의 마음도 그렇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여가 안 아프면 저가 아프고, 저가 안 아프면 여가 아프고, 오장육부가 다 그렇고.
우리의 마음도 이 걱정 아니면 저 근심, 저 근심 아니면 이 걱정, 내 일신(一身)뿐만 아니라 부모 걱정 · 자식 걱정 · 남편 걱정 · 사업 걱정 · 가정 걱정, 전체가 이 고통 고민의 뭉텅이다 그 말이여.

그리고 온 이 세계는 참으로 불집[火宅]이여. 불집! 불이 훨훨훨훨 불이 타고 있는 불집이여.
옛날 부처님께서 '이 삼계(三界)가 화택(火宅)이다' 그러셨는데, 정말 이 말세가 되고 보니 저 온 세계가 만드느니 무기만 만들어. 무기가 순 그게 불인데, 불덩어리인데, 맨 새로 만들지 안 해도 이 삼계가 고대로 화택인데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머리 좋은 천재만을 골라 가지고 그 사람들을 시켜서 만드느니 원자탄 · 수소탄 · 레이저 무기, 그러한 무서운 불로써 온 세계를 갖다가 찰나간에 잿더미를 만들어 버리는 그러한 무서운 무기만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한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만들고 또 상대방을 그 태워 죽임으로써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 무기를 만드는데, 결국에 가서는 그 무서운 무기로 인해서 상대방도 타 죽고 나도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에 귀의해서 상대방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을 찾아야만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이르를 텐데,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려고 나를 지킬려고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도 죽고 남도 죽게 하는 결과가 올 것이 빤합니다.
10년 후에 올 지, 20년 후에 올 지, 백 년 후에 올 지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현재 세계 정세의 되어 가는 껄세로 보아서는 그 시간이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언제 올 것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연 추측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거에 얼마나 깊은 복(福)과 인연(因緣)을 지었음인지 이 최상승법을 믿고 또 그것을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경행한 일이나, 이 문제는 범범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결판이 나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셈 치고 목숨을 바쳐서 해야만 이 문제는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불보살이 다 그러셨고, 과거에 모든 고조사(古祖師)들도 역시 다 그러셨습니다. 더군다나 이 말세에 태어난 우리 근기가 약한 우리들은 과거에 불보살과 고조사에 몇십 배, 몇백 배를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해제를 맞이해서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그러한 뜻에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온 세계와 인류, 다시 우리에게 가까이 눈을 돌려보면 우리 조계종 종단 그리고 우리 자신, 멀리 생각하나 가까이 생각하나 우리는 시간을 아껴서 일분일초를 아껴서 정말 이를 악물고 다시 우리 정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천고무인문(千古無人聞)헌디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헌디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고(千古)에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데, 만산(萬山)에는 공연히 두견새만 울고 있구나.
밤새도록 두견이는 울고 있는데, 아무도 그 두견새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에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라.
목동이는 한 소리 젓대를 불면서 소를 타고 석양을 지내가는구나.

전강 조실 스님께서 생존 시에 즐겨 읊으시던 게송이었습니다.

법보단에 모셔 있는 만년위패 법보제자 모든 영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오늘 5재를 맞이한 민병태 영가는 이 법문을 들은 인연으로 속성정각(速成正覺)하시기를 바랍니다. (36분1초~48분22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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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천도재(영가천도)2021. 7. 22. 06:48

§((217))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새로 닦고 새로 깨달을 것이 없이 진묵겁 전에 다 성불(成佛)해 마쳐 가지고 있는 것 / 왜 본래성불(本來成佛)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느냐?

급히 흘러가는 여울물에 배를 갖다가 대는 거와 같이 정진해야(『선요(禪要)』) / 대분심과 대신심과 대의단을 가지고 심원(心猿)과 의마(意馬)를 때려죽임으로써 망상진로(妄想塵勞)를 제거해야 / 사량계교와 겨우 체중현(體中玄) 도리, 그러한 얻은 바를 가지고 생사 문제를 당적(當敵)할 수 없다.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나아가야 / 구경(究竟)의 깨달음.

(게송)차신성고취~ / 삼계(三界)가 화택(火宅) / 무기(武器)가 순 그게 불덩어리 /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셈 치고 목숨을 바쳐서 해야만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해결이 나는 것 / (게송) 천고무인문~.

**송담스님(No.217)—1983년(계해년) 추계산철 해제 법회(83.09.30.음) (용217) (천도재법문)

 

 

(1) 약 21분.

 

 

(2) 약 20분.

 


(1)------------------

오늘은 계해년 가을 산철 해제일을 맞이했습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수행 납자(衲子)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정진을 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너무 감격스럽게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선방대중과 또 도봉산 원효암 대중 그리고 여러 용화사 모다 돈독히 조실 스님의 법을 믿고 정진하는 신도 여러분도 참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특히 5재 천도식을 맞이한 민병태 영가를 위해서 좋은 법문을 설해 달라고 하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이 용화사 법보선원 이 법요식에는 사부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에 만년위패 법보제자 영가들도 동시에 청혼(請魂)을 해서 이 법요식에 법문을 듣도록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특히 이 5재를 맞이한 민병태 영가는 이 해제 법문을 잘 듣고, 과거 무량겁에 지은 선(善) · 악(惡) · 무기(無記)에 업연(業緣)이 봄눈 녹듯이 녹고, 온갖 원한을 다 풀어 버리고 도솔천내원궁이나 또는 극락세계에 왕생을 하고, 다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인연이 있어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게 되면 다시 불법문중(佛法門中)에 귀의해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해서 무량중생을 제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 일대사인연, 일대사인연의 근원을 살펴볼 거 같으면 사람 사람이 본래 다 갖춰져 있는 것이여. 본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낱낱이 다 원만(圓滿)하게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이여. 새로 닦고 새로 깨달을 것이 없이, 닦지 않고 깨닫기 이전에 진묵겁 전에 다 성불(成佛)해 마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주먹을 피어서 손바닥을 만들고, 그 손바닥을 다시 쥐어서 주먹을 만들고 한 것처럼 조끔도 힘을 들일 것이 없어.

따라서 눈으로 보는 것은 전부가 다 『화엄경』이요, 귀로 듣는 것은 전부가 다 법문(法門)이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작위(作爲)하는 모든 행동은 다 그것이 불사(佛事)요.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행하고 느끼고 하는 그리고 말하고 냄새 맡고 하는 주관적인 것이나 객관적인 것이 전부가 다 부처님의 일이요, 부처님의 불사요, 설법이요, 경전이요.

그래서 부처와 조사(祖師)가 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중생을 위해서 법을 설하시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먼저 수행을 해서 닦아 가지고 깨달은 뒤에 중생을 제도한다고 할 때에 부처와 조사의 허물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고 새로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건마는, 우리는 심(心), 마음이, 마음의 원숭이[心猿]가 나부대고, 뜻의 말[意馬]이 날뛰는 바람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종이 되어 가지고 망령되이 인아상(人我相)을 내고, 일어나는 생각,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그럴 때마다 얼음 위에다가 물을 찌뜨린 거와 같애서 점점 얼음덩어리는 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본래성불(本來成佛)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느냐? 그래 가지고 한 생 한 생 거듭될 때마다 업(業)은 점점 더 깊어지고 얽히고설켜서 자기의 영광(靈光), 자기의 신령스러운 빛은 그 업(業)으로 인해서 가리워져 가지고 캄캄한 칠통(漆桶) 칠야삼경(漆夜三更)처럼 되어 가서 영원히 헤어날 길이 없는 까닭은 무엇이냐?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으로, 첫째는 그 문제를 해결할 자신, 자기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지를 못했고, 둘째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른길을 가리켜 줄 수 있는 본분작가(本分作家)를 만나지 못한 탓으로 우리는 이렇게 본래 불보살(佛菩薩) 불조(佛祖)와 조끔도 차등이 없는 그러한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대사(一大事)를 요달치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무량겁을 생사(生死)의 고해(苦海) 속에 빠져서 와서, 금생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또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생사의 윤회는 끄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쇠로 지어 붓은 그러한 굳은 결심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이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것입니다. 대분심과 대신심과 대의단을 가지고, 이 생사윤회를 계속 치성하게 만들고 있는 우리의 마음속에 원숭이와 뜻 속에 말, 그 원숭이와 망아지를 때려잡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원(心猿)과 의마(意馬)를 때려죽임으로써 망상진로(妄想塵勞)를 제거해야 하는데 그 일이 얼마만큼 어려우냐 하면, 급히 흘러가는 그 급수(急水), 급히 흘러가는 여울물에 배를 갖다가 대는 거와 같애.
물결이 세지 아니한 데 배를 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물살이 센 데다가는 물살 따라서 배도 따라서 흘러 내려갈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배를 댄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위태로운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인아(人我) 시비(是非)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밥 먹고 옷 입은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직 염념상속(念念相續)해서 잠깐도 한눈팔 겨를이 없이 발에다가 힘을 주고 버티면서 그 배를 대는 데, 잠깐 사이도 딴생각을 낼 겨를이 없다.
어떠한 사람이 머리를 내 머리를 짤라 가고, 손발을 짤라 가고, 심장과 간장을 도려내서 죽음에 이르른다 할지라도 이 배를 기어코 댈려고 하는 그 마음을 쉬지 아니한 것처럼, 이러한 정도로 정진을 지어가지 아니한다면 어찌 공부를 한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말법에 이르러서 성현 가신 때가 멀어. 말세(末世)가 되어 가지고 이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이 철저하지를 못해 가지고,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한다 할지라도 이리저리 사량분별로 따지고, 보고 듣고 알고 그러한 마음속에 그러한 것으로써 살림을 삼아 가지고, 금년도 이럭저럭 또 내년도 이럭저럭 한 철 한 철, 철은 지나가지만, 정진 속에 사량계교(思量計較)와 천착(穿鑿)으로써 세월을 보내는 그러한 수행은 안광(眼光)이 땅에 떨어질 때에 참으로 그것을 그러한 정진력을 써먹을 수가 있느냐?

사량계교와 겨우 체중현(體中玄) 도리, 그러한 얻은 바를 가지고 생사 문제를 당적(當敵)할 수 있다면 세존(世尊)은 무엇 때문에 6년 동안에 설산(雪山) 고행을 하셨으며, 달마대사는 소림(少林)에서 9년 동안을 왜 묵무언(默無言) 하셨으며, 장경(長慶)선사는 7개 포단(七個蒲團)을 앉아서 뚫었으며, 향림(香林)은 왜 40년에사 타성일편(打成一片)을 했으며, 조주(趙州)는 30년에사 부잡용심(不雜用心)을 한 필요가 있겠느냐.

이 참선은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면 이 사량분별이 끊어지고 번뇌 망상이 없어지고,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마저도 잊어버려. 그래 가지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밥 먹되 밥맛을 모르고,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 어떠한 공안을 보나 하나도 맥힘이 없어, 자기 나름대로. 조주 무자(無字)도 맥힐 것이 없고, 판치생모(板齒生毛)도 맥힐 것이 없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들어봐도 하나도 의심이 안 간다 그 말이여.
부처라고 하나 중생이라고 하나, 된장이라고 하나 똥이라고 하나, 천상천하 두두물물이 무엇을 봐도 그것이 다 바로 그것이 자기요, 자기와 부처와 이 법계가 하나도 걸릴 것이 없다 그 말이여. 이 도리는 이게 체중현 도리여. 공리(空理)라 그 말이여.

여기에 이르러서 만약에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점검을 받지 못하면 자기도 '초견성이다, 한소식했다' 해 가지고, 그러한 그 체중현의 경지에서 보면 천칠백 공안이 하나도 의심이 없고 맥힐 것이 없으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가서는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그 체중현 도리로써 자기의 살림을 삼어 가지고 그것으로써 일대사 문제를 요달했다고 생각을 하게 되지만, 현중현 도리에 나아가서는 그것 가지고는 되지를 안 혀.

더군다나 후배, 다른 사람이 공부를 해 가지고 자기에게 왔을 때에 '그 사람이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냐, 안 얻었느냐?' 그것을 점검하는 데에 나아가서 자기의 경지와 같으니까 '옳다'고 일러줄 수밖에는 없는데, 그렇게 되었을 때에 자기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게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그르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불법(佛法)까지 망하게 하기 때문에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지만, 바르게 닦지를 못하고 바르게 깨닫지를 못하면 저 망하고 남 망하게 하고 마침내는 불법(佛法)까지 망하게 하는 그런 중대한 죄과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8분28초~28분56초)





(2)------------------

지난 산철 두 달 동안에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어떻게 수행을 해 가야 하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지어 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정말 차라리 안 하려면 몰라도 일단 이 문제,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고 정진을 해 나가는 마당에는 득소위족(得少爲足), 조그마한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써 작은 견처를 가지고 만족을 삼지를 말고, 고조사(古祖師)에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진대는 스스로 자기의 견해를 자기의 견처(見處)를 용감하게 부정을 해 버리고 언제나 처음 발심(發心)할 때의 그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 가야 할 것입니다.

고인(古人)의 견처(見處)와 견지(見地)에 이르지 못하면 스스로 자기의 견처를 부정해 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발심 수행인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좋은 병에다가 악지(惡知) 악각(惡覺), 악한 알음 악한 깨달음—마치 우리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어떠한 견처도 스스로 그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좋은 병에다가 썩은 변질한 고약한 음식을 담은 거와 같애서 그 병 속에는 아무것도 어떠한 좋은 음식을 담는다 하더라도 그 병 속에 담어져 있는 변질된 고약한 악취가 나는 음식 때문에 새로 담은 음식까지도 먹지 못하게 되는 데에다가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 병 속에 좋은 음식을 담으려면 먼저 그 병 속에 들어 있는 변질된 물질을 까꾸로 다 쏟아 버리고, 열 번 스무 번 완전히 그 속에서 그 냄새가 없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씻고 또 씻고 소독을 해서 그래도 또 냄새가 나면 그것을 삶고 해 가지고라도 기어코 그 병을 깨끗이 해야, 완전 소독을 해야 그런 연후에 라사 거기에 어떠한 좋은 음식을 담아도 그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 어떠한 견처라도 남아 있으면 그것이 장애가 되어 가지고 진정한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법문을 듣고 최상승법을 듣는다 하더라도 자기 속에 조그마한 견처라도 남아 있으면 그러한 견처로 인해서 어떠한 좋은 법(法)도 들어갈 수가 없고, 좋은 법문을 들어도 바로 자기식(自己式)으로 변질이 되어서 올바른 깨달음은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그러한 불견(佛見), 법견(法見), 어떠한 경전에 있는 말씀이고, 어떠한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그러한 것도 깨끗이 버려 버리고 언제나 초심(初心)! 초심인으로써의 마음가짐과 지조를 가지고 정진을 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른 깨달음을 얻었어도 그 '깨달랐다'고 하는 소견을 가져서는 아니 되거든, 바른 깨달음 아닌 그러한 견처를 가지고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차신성고취(此身誠苦聚)허고  삼계진화택(三界眞火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아구출몰(汝我俱出沒)헌디  겁해종난측(劫海終難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신(此身)은 성고취(誠苦聚)요. 이 몸뚱이는 정말 이 괴로움의 뭉텅이다 그 말이여. 온갖 괴로움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말이여.
몸뚱이도 그렇고 우리의 마음도 그렇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여가 안 아프면 저가 아프고, 저가 안 아프면 여가 아프고, 오장육부가 다 그렇고.
우리의 마음도 이 걱정 아니면 저 근심, 저 근심 아니면 이 걱정, 내 일신(一身)뿐만 아니라 부모 걱정 · 자식 걱정 · 남편 걱정 · 사업 걱정 · 가정 걱정, 전체가 이 고통 고민의 뭉텅이다 그 말이여.

그리고 온 이 세계는 참으로 불집[火宅]이여. 불집! 불이 훨훨훨훨 불이 타고 있는 불집이여.
옛날 부처님께서 '이 삼계(三界)가 화택(火宅)이다' 그러셨는데, 정말 이 말세가 되고 보니 저 온 세계가 만드느니 무기만 만들어. 무기가 순 그게 불인데, 불덩어리인데, 맨 새로 만들지 안 해도 이 삼계가 고대로 화택인데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머리 좋은 천재만을 골라 가지고 그 사람들을 시켜서 만드느니 원자탄 · 수소탄 · 레이저 무기, 그러한 무서운 불로써 온 세계를 갖다가 찰나간에 잿더미를 만들어 버리는 그러한 무서운 무기만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한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만들고 또 상대방을 그 태워 죽임으로써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 무기를 만드는데, 결국에 가서는 그 무서운 무기로 인해서 상대방도 타 죽고 나도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에 귀의해서 상대방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을 찾아야만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이르를 텐데,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려고 나를 지킬려고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도 죽고 남도 죽게 하는 결과가 올 것이 빤합니다.
10년 후에 올 지, 20년 후에 올 지, 백 년 후에 올 지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현재 세계 정세의 되어 가는 껄세로 보아서는 그 시간이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언제 올 것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연 추측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거에 얼마나 깊은 복(福)과 인연(因緣)을 지었음인지 이 최상승법을 믿고 또 그것을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경행한 일이나, 이 문제는 범범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결판이 나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셈 치고 목숨을 바쳐서 해야만 이 문제는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불보살이 다 그러셨고, 과거에 모든 고조사(古祖師)들도 역시 다 그러셨습니다. 더군다나 이 말세에 태어난 우리 근기가 약한 우리들은 과거에 불보살과 고조사에 몇십 배, 몇백 배를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해제를 맞이해서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그러한 뜻에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온 세계와 인류, 다시 우리에게 가까이 눈을 돌려보면 우리 조계종 종단 그리고 우리 자신, 멀리 생각하나 가까이 생각하나 우리는 시간을 아껴서 일분일초를 아껴서 정말 이를 악물고 다시 우리 정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천고무인문(千古無人聞)헌디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헌디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고(千古)에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데, 만산(萬山)에는 공연히 두견새만 울고 있구나.
밤새도록 두견이는 울고 있는데, 아무도 그 두견새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에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라.
목동이는 한 소리 젓대를 불면서 소를 타고 석양을 지내가는구나.

전강 조실 스님께서 생존 시에 즐겨 읊으시던 게송이었습니다.

법보단에 모셔 있는 만년위패 법보제자 모든 영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오늘 5재를 맞이한 민병태 영가는 이 법문을 들은 인연으로 속성정각(速成正覺)하시기를 바랍니다. (29분1초~48분22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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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고봉선요(高峰禪要)』 ‘시중(示衆 其二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129~131, 134~135 참고.
若論此一段奇特之事인댄 人人本具요 箇箇圓成이라 如握拳展掌에 渾不犯絲毫之力이언마는 祗爲心猿 擾擾하고 意馬 喧喧하야 恣縱三毒無明하야 妄執人我等相이 如水澆氷에 愈加濃厚하야 障却自己靈光하야 決定無由得現하나니

만일 이 한 가지 기특한 일을 말하자면 사람마다 본래 갖추었고 제각기 원만히 이루었나니, 마치 주먹을 쥐었다가 손바닥을 펴는 것과 같아서 실끝만한 힘도 전혀 들지 않는다. 다만 마음의 원숭이[心猿]가 흔들리고 의식의 말[意馬]이 시끄러워 삼독(三毒) 무명(無明)을 방자하게 놓아두며 아상, 인상 등을 허망하게 집착하는 것이 얼음에 물을 뿌리면 더욱 더 두꺼워지듯 자기의 신령스러운 광명을 장애하여 결코 나타날 수 없게 된 것이다.

若是生鐵鑄就底漢子 的實要明인댄 亦非造次니 直須發大志立大願하야 殺却心猿意馬하며 斷除妄想塵勞하고 如在急水灘頭泊舟相似하야 不顧危亡得失과 人我是非하고 忘寢忘餐하며 絶思絶慮하야 晝三夜三에 心心相次하며 念念相續하야 剳定脚頭하고 咬定牙關하고 牢牢把定繩頭하야 更不容絲毫走作이니라 假使有人이 取你頭하며 除你手足하며 剜你心肝하야 乃至命終이라도 誠不可捨니 到者裡하야사 方有少分做工夫氣味하리라

만일 생철(生鐵)로 부어 만든 놈이 적실(的實)히 밝혀내려고 하면 또한 경솔히 할 게 아니니 당장에 큰 뜻을 내고 큰 원(願)을 세워 마음 원숭이[心猿]와 의식의 말[意馬]을 죽이고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또한 물살이 거센 여울에 배를 대려하는 것과 같아서 위태로움 · 죽음, 얻음 · 잃음, 아상 · 인상, 옳음 · 그름 등을 돌아보지 말고, 잠도 끼니도 잊고 생각도 걱정도 끊고서 온종일 밤새도록 마음마음이 간단이 없고 생각생각이 계속하여 다리를 딱 버티고 어금니를 악물고 화두[繩頭]를 단단히 잡고서 다시 털끝만치도 딴생각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설령 어떤 사람이 그대들의 머리를 베어 가고 손과 발을 자르고 심장과 간장을 오려내어 목숨이 떨어지는데 이를지라도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조그만치 공부한 기미가 있을 것이다.

嗟乎라 末法에 去聖時遙하야 多有一等泛泛之流 竟不信有悟門하고 但只向者邊穿鑿하며 那邊計較하나니 直饒計較得成하며 穿鑿得就라도 眼光落地時에 還用得着也無아 若用得着인댄 世尊은 雪山六年하시고 達摩는 少林九載하시고 長慶은 坐破七箇蒲團하시고 香林은 四十年에 方成一片하시고 趙州는 三十年에 不雜用心하시니 何須討許多生受喫이리오

아! 슬프다. 말법에 성현과의 시대가 멀어져서 한결같이 범범한 무리들이 많이 있어 깨달음의 문(門)이 있는 것을 끝내 믿지 않는구나. 여기에서 천착(穿鑿)하고 저기에서 계교(計較)하니 설령 계교하여 이루게 되고 천착하여 성취되었더라도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소용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이 설산(雪山)에서 6년 고행하시고, 달마대사가 소림굴(少林窟)에서 9년 면벽하시고, 장경(長慶) 스님이 앉아서 방석이 일곱 개나 헤지도록 좌선하시고, 향림(香林) 스님이 40년만에 비로소 일념을 이루시고, 조주(趙州) 스님이 30년 동안 잡되게 마음을 쓰지 않으시면서, 허다한 고생을 하였겠는가!

更有一等漢子 成十年二十年토록 用工하되 不曾有箇入處者는 只爲他宿無靈骨하야 志不堅固하고 半信半疑하며 或起或倒하야 弄來弄去에 世情은 轉轉純熟하고 道念은 漸漸生踈하야 十二時中에 難有一箇時辰도 把捉得定하야 打成一片이니 似者般底는 直饒弄到彌勒下生인들 也有甚麽交涉이리오

또 어떤 무리들은 10년, 20년이 되도록 공부를 하였으되 깨달은 것이 없는 것은, 그가 전생에 선근이 없기 때문에 뜻이 견고하지 않고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며 혹은 일어나고 혹은 거꾸러져 희롱해 오고 희롱해 감에 세상의 정(情)은 더욱 순숙해지고 도(道)에 대한 생각은 점점 생소해져서 24시간 중에 한 시간도 선정에 들어 일념을 이루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놈들은 설령 희롱하여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함에 이르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若是眞正本色行脚高士인댄 不肯胡亂하고 打頭에 便要尋箇作家하야 纔聞擧着一言半句하면 更不擬議하고 直下에 便恁麽信得及作得主把得定하야 孤逈逈峭巍巍하며 淨裸裸赤灑灑하야 更不問危亡得失하고 只恁麽捱將去라가 驀然繩斷喫攧하면 絶後再甦하야 看他本地風光하리니 何處에 更覓佛矣리오

만일 진정한 본분 행각승[本分行脚高士]이라면 함부로 어지럽게 하지 않고, 당초에 어느 선지식을 찾아가 한마디 말씀이나 반구절 설해 주는 것을 듣자마자 더 망설이지 않고 당장 이렇게 믿으며 주관이 확립되고 안정되어, 외롭게 뛰어나고 빼어나 드높으며, 발가벗은 듯하고 맑아 씻은 듯할 것이다. 다시는 위태로움과 죽음과 얻음과 잃음을 묻지 않고 다만 이렇게 정진해 나가면 문득 밧줄이 끊어져 곤두박질을 하고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여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볼 것이니 어느 곳에서 다시 부처[佛]를 찾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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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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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21. 7. 21. 09:23

§((217))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새로 닦고 새로 깨달을 것이 없이 진묵겁 전에 다 성불(成佛)해 마쳐 가지고 있는 것 / 왜 본래성불(本來成佛)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느냐?

급히 흘러가는 여울물에 배를 갖다가 대는 거와 같이 정진해야 / 대분심과 대신심과 대의단을 가지고 심원(心猿)과 의마(意馬)를 때려죽임으로써 망상진로(妄想塵勞)를 제거해야 / 사량계교와 겨우 체중현(體中玄) 도리, 그러한 얻은 바를 가지고 생사 문제를 당적(當敵)할 수 없다.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나아가야 / 구경(究竟)의 깨달음.

(게송)차신성고취~ / 삼계(三界)가 화택(火宅) / 무기(武器)가 순 그게 불덩어리 /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셈 치고 목숨을 바쳐서 해야만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해결이 나는 것 / (게송) 천고무인문~.

**송담스님(No.217)—1983년(계해년) 추계산철 해제 법회(83.09.30.음) (용217) (정진, 수행)

 

 

(1/3) 약 15분.

 

 

(2/3) 약 21분.

 

 

(3/3) 약 12분.

 


(1/3)----------------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허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煙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한디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동서남북 정처가 없어. 출가해서 걸망을 지고 도반과 선지식을 찾아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하기 위해서 행각을 하는 분상에는 동서남북 정착(定着)함이 없어.
생애(生涯)는 지재일지공(只在一枝筇)이여. 오직 주장자 하나에 온 생애를 다 맽겨버렸다 그 말이여. 주장자가 동쪽으로 행하면 동쪽으로, 금년 여름에는 동쪽에서 지내다가 겨울철에는 북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갔다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주장자 하나로 생애를 맽겼는데.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煙霞味)여.
무엇을 먹고 사느냐? 무슨 음식을 먹고서 영양을 섭취해 가지고 이 생애를 끌고 가느냐?
연하(煙霞), 안개와 연기를 씹어서 먹고 거기에서 영양을 섭취한다.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도 안개는 끼고, 끼어 있는 그 안개를 먹고 살지, 쌀이나 콩이나 팥이나 무슨 고기나 그러한 세속에서 말하는 영양 있는 그것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왜 그러냐?

하루 세끼 밥을 먹되 맛없는 밥을 먹고, 옷을 입되 한 오리도 걸칠 것이 없이, 그러기 때문에 밥을 먹되 쌀이 없는 밥을 먹고, 옷을 입되 실오라기가 없는 그런 옷을 입고, 그리고 먹는 것은 연하(煙霞), 자욱이 아침에 끼었다 낮에는 또 벗거지고, 다시 해가 저물면 또 끼었다가 또 벗거지고 하는 그 자욱한 안개를 먹고 산다.
이 안개라고 하는 것은 생사(生死) 요달(了達)을 하기 위해서 입으로 물질로 된 그것을 먹고 이 영양을 섭취한 것이 아니라,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는 알 수 없는 공안 화두에 대의심(大疑心) 그놈 하나로 그놈에다가 나에 온갖 정성과 온갖 분심(憤心)과 생명을 거기다가 걸고, 먹어도 먹은 줄을 모르고 추워도 추운 줄을 모르고 더워도 더운 줄을 모르고 오직 그 의단(疑團) 하나에 생명을 걸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연하(煙霞)를 먹고 산다.

그래 가지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천봉(千峰), 바로 천(千) 봉아리 속을 향해서 들어가고 다시 또 만(萬) 봉아리를 향해서 간다.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그 수없는 것을 보고, 수없는 것을 듣고, 수없는 생각이 일어나는 그것들이 모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우리 앞에 제출되는 모든 것은 바로 그것이 천 봉오리고 만 봉오리다 그 말이여.
그 봉오리 봉오리 넘을 때마다 거기에서 피렴심(疲厭心)도 느끼지 아니하고, 소득심(所得心)도 갖지를 아니하고, 만족심도 갖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그 의단을 향해서 목숨을 걸어가는 데에다가 비유하는 게송입니다.


오늘은 계해년 가을 산철 해제일을 맞이했습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수행 납자(衲子)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정진을 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너무 감격스럽게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선방대중과 또 도봉산 원효암 대중 그리고 여러 용화사 모다 돈독히 조실 스님의 법을 믿고 정진하는 신도 여러분도 참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특히 5재 천도식을 맞이한 민병태 영가를 위해서 좋은 법문을 설해 달라고 하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이 용화사 법보선원 이 법요식에는 사부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에 만년위패 법보제자 영가들도 동시에 청혼(請魂)을 해서 이 법요식에 법문을 듣도록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특히 이 5재를 맞이한 민병태 영가는 이 해제 법문을 잘 듣고, 과거 무량겁에 지은 선(善) · 악(惡) · 무기(無記)에 업연(業緣)이 봄눈 녹듯이 녹고, 온갖 원한을 다 풀어 버리고 도솔천내원궁이나 또는 극락세계에 왕생을 하고, 다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인연이 있어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게 되면 다시 불법문중(佛法門中)에 귀의해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해서 무량중생을 제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이 일대사인연, 일대사인연의 근원을 살펴볼 거 같으면 사람 사람이 본래 다 갖춰져 있는 것이여. 본래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낱낱이 다 원만(圓滿)하게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이여. 새로 닦고 새로 깨달을 것이 없이, 닦지 않고 깨닫기 이전에 진묵겁 전에 다 성불(成佛)해 마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주먹을 피어서 손바닥을 만들고, 그 손바닥을 다시 쥐어서 주먹을 만들고 한 것처럼 조끔도 힘을 들일 것이 없어.

따라서 눈으로 보는 것은 전부가 다 『화엄경』이요, 귀로 듣는 것은 전부가 다 법문(法門)이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작위(作爲)하는 모든 행동은 다 그것이 불사(佛事)요.
무엇은 좋고 무엇은 나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행하고 느끼고 하는 그리고 말하고 냄새 맡고 하는 주관적인 것이나 객관적인 것이 전부가 다 부처님의 일이요, 부처님의 불사요, 설법이요, 경전이요.

그래서 부처와 조사(祖師)가 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중생을 위해서 법을 설하시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먼저 수행을 해서 닦아 가지고 깨달은 뒤에 중생을 제도한다고 할 때에 부처와 조사의 허물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처음~15분)



 


(2/3)----------------

그러나 원래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고 새로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건마는, 우리는 심(心), 마음이, 마음의 원숭이[心猿]가 나부대고, 뜻의 말[意馬]이 날뛰는 바람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종이 되어 가지고 망령되이 인아상(人我相)을 내고, 일어나는 생각,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그럴 때마다 얼음 위에다가 물을 찌뜨린 거와 같애서 점점 얼음덩어리는 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본래성불(本來成佛)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느냐? 그래 가지고 한 생 한 생 거듭될 때마다 업(業)은 점점 더 깊어지고 얽히고설켜서 자기의 영광(靈光), 자기의 신령스러운 빛은 그 업(業)으로 인해서 가리워져 가지고 캄캄한 칠통(漆桶) 칠야삼경(漆夜三更)처럼 되어 가서 영원히 헤어날 길이 없는 까닭은 무엇이냐?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으로, 첫째는 그 문제를 해결할 자신, 자기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지를 못했고, 둘째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바른길을 가리켜 줄 수 있는 본분작가(本分作家)를 만나지 못한 탓으로 우리는 이렇게 본래 불보살(佛菩薩) 불조(佛祖)와 조끔도 차등이 없는 그러한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대사(一大事)를 요달치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무량겁을 생사(生死)의 고해(苦海) 속에 빠져서 와서, 금생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또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생사의 윤회는 끄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쇠로 지어 붓은 그러한 굳은 결심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이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것입니다. 대분심과 대신심과 대의단을 가지고, 이 생사윤회를 계속 치성하게 만들고 있는 우리의 마음속에 원숭이와 뜻 속에 말, 그 원숭이와 망아지를 때려잡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원(心猿)과 의마(意馬)를 때려죽임으로써 망상진로(妄想塵勞)를 제거해야 하는데 그 일이 얼마만큼 어려우냐 하면, 급히 흘러가는 그 급수(急水), 급히 흘러가는 여울물에 배를 갖다가 대는 거와 같애.
물결이 세지 아니한 데 배를 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물살이 센 데다가는 물살 따라서 배도 따라서 흘러 내려갈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배를 댄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위태로운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인아(人我) 시비(是非)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밥 먹고 옷 입은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오직 염념상속(念念相續)해서 잠깐도 한눈팔 겨를이 없이 발에다가 힘을 주고 버티면서 그 배를 대는 데, 잠깐 사이도 딴생각을 낼 겨를이 없다.
어떠한 사람이 머리를 내 머리를 짤라 가고, 손발을 짤라 가고, 심장과 간장을 도려내서 죽음에 이르른다 할지라도 이 배를 기어코 댈려고 하는 그 마음을 쉬지 아니한 것처럼, 이러한 정도로 정진을 지어가지 아니한다면 어찌 공부를 한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말법에 이르러서 성현 가신 때가 멀어. 말세(末世)가 되어 가지고 이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이 철저하지를 못해 가지고,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한다 할지라도 이리저리 사량분별로 따지고, 보고 듣고 알고 그러한 마음속에 그러한 것으로써 살림을 삼아 가지고, 금년도 이럭저럭 또 내년도 이럭저럭 한 철 한 철, 철은 지나가지만, 정진 속에 사량계교(思量計較)와 천착(穿鑿)으로써 세월을 보내는 그러한 수행은 안광(眼光)이 땅에 떨어질 때에 참으로 그것을 그러한 정진력을 써먹을 수가 있느냐?

사량계교와 겨우 체중현(體中玄) 도리, 그러한 얻은 바를 가지고 생사 문제를 당적(當敵)할 수 있다면 세존(世尊)은 무엇 때문에 6년 동안에 설산(雪山) 고행을 하셨으며, 달마대사는 소림(少林)에서 9년 동안을 왜 묵무언(默無言) 하셨으며, 장경(長慶)선사는 7개 포단(七個蒲團)을 앉아서 뚫었으며, 향림(香林)은 왜 40년에사 타성일편(打成一片)을 했으며, 조주(趙州)는 30년에사 부잡용심(不雜用心)을 한 필요가 있겠느냐.

이 참선은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면 이 사량분별이 끊어지고 번뇌 망상이 없어지고,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마저도 잊어버려. 그래 가지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밥 먹되 밥맛을 모르고,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 어떠한 공안을 보나 하나도 맥힘이 없어, 자기 나름대로. 조주 무자(無字)도 맥힐 것이 없고, 판치생모(板齒生毛)도 맥힐 것이 없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들어봐도 하나도 의심이 안 간다 그 말이여.
부처라고 하나 중생이라고 하나, 된장이라고 하나 똥이라고 하나, 천상천하 두두물물이 무엇을 봐도 그것이 다 바로 그것이 자기요, 자기와 부처와 이 법계가 하나도 걸릴 것이 없다 그 말이여. 이 도리는 이게 체중현(體中玄) 도리여. 공리(空理)라 그 말이여.

여기에 이르러서 만약에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점검을 받지 못하면 자기도 '초견성이다, 한소식했다' 해 가지고, 그러한 그 체중현(體中玄)의 경지에서 보면 천칠백 공안이 하나도 의심이 없고 맥힐 것이 없으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가서는 이빨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그 체중현 도리로써 자기의 살림을 삼어 가지고 그것으로써 일대사 문제를 요달했다고 생각을 하게 되지만, 현중현 도리에 나아가서는 그것 가지고는 되지를 안 혀.

더군다나 후배, 다른 사람이 공부를 해 가지고 자기에게 왔을 때에 '그 사람이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냐, 안 얻었느냐?' 그것을 점검하는 데에 나아가서 자기의 경지와 같으니까 '옳다'고 일러줄 수밖에는 없는데, 그렇게 되었을 때에 자기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게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그르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불법(佛法)까지 망하게 하기 때문에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지만, 바르게 닦지를 못하고 바르게 깨닫지를 못하면 저 망하고 남 망하게 하고 마침내는 불법(佛法)까지 망하게 하는 그런 중대한 죄과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산철 두 달 동안에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어떻게 수행을 해 가야 하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지어 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정말 차라리 안 하려면 몰라도 일단 이 문제,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고 정진을 해 나가는 마당에는 득소위족(得少爲足), 조그마한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써 작은 견처를 가지고 만족을 삼지를 말고, 고조사(古祖師)에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진대는 스스로 자기의 견해를 자기의 견처(見處)를 용감하게 부정을 해 버리고 언제나 처음 발심(發心)할 때의 그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 가야 할 것입니다.

고인(古人)의 견처(見處)와 견지(見地)에 이르지 못하면 스스로 자기의 견처를 부정해 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발심 수행인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좋은 병에다가 악지(惡知) 악각(惡覺), 악한 알음 악한 깨달음—마치 우리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어떠한 견처도 스스로 그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좋은 병에다가 썩은 변질한 고약한 음식을 담은 거와 같애서 그 병 속에는 아무것도 어떠한 좋은 음식을 담는다 하더라도 그 병 속에 담어져 있는 변질된 고약한 악취가 나는 음식 때문에 새로 담은 음식까지도 먹지 못하게 되는 데에다가 비유를 하셨습니다.

그 병 속에 좋은 음식을 담으려면 먼저 그 병 속에 들어 있는 변질된 물질을 까꾸로 다 쏟아 버리고, 열 번 스무 번 완전히 그 속에서 그 냄새가 없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씻고 또 씻고 소독을 해서 그래도 또 냄새가 나면 그것을 삶고 해 가지고라도 기어코 그 병을 깨끗이 해야, 완전 소독을 해야 그런 연후에 라사 거기에 어떠한 좋은 음식을 담아도 그 음식을 먹을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 어떠한 견처라도 남아 있으면 그것이 장애가 되어 가지고 진정한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법문을 듣고 최상승법을 듣는다 하더라도 자기 속에 조그마한 견처라도 남아 있으면 그러한 견처로 인해서 어떠한 좋은 법(法)도 들어갈 수가 없고, 좋은 법문을 들어도 바로 자기식(自己式)으로 변질이 되어서 올바른 깨달음은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그러한 불견(佛見), 법견(法見), 어떠한 경전에 있는 말씀이고, 어떠한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그러한 것도 깨끗이 버려 버리고 언제나 초심(初心)! 초심인으로써의 마음가짐과 지조를 가지고 정진을 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른 깨달음을 얻었어도 그 '깨달랐다'고 하는 소견을 가져서는 아니 되거든, 바른 깨달음 아닌 그러한 견처를 가지고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15분2초~35분50초)

 




(3/3)----------------

차신성고취(此身誠苦聚)허고  삼계진화택(三界眞火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아구출몰(汝我俱出沒)헌디  겁해종난측(劫海終難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신(此身)은 성고취(誠苦聚)요. 이 몸뚱이는 정말 이 괴로움의 뭉텅이다 그 말이여. 온갖 괴로움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말이여.
몸뚱이도 그렇고 우리의 마음도 그렇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여가 안 아프면 저가 아프고, 저가 안 아프면 여가 아프고, 오장육부가 다 그렇고.
우리의 마음도 이 걱정 아니면 저 근심, 저 근심 아니면 이 걱정, 내 일신(一身)뿐만 아니라 부모 걱정 · 자식 걱정 · 남편 걱정 · 사업 걱정 · 가정 걱정, 전체가 이 고통 고민의 뭉텅이다 그 말이여.

그리고 온 이 세계는 참으로 불집[火宅]이여. 불집! 불이 훨훨훨훨 불이 타고 있는 불집이여.
옛날 부처님께서 '이 삼계(三界)가 화택(火宅)이다' 그러셨는데, 정말 이 말세가 되고 보니 저 온 세계가 만드느니 무기만 만들어. 무기가 순 그게 불인데, 불덩어리인데, 맨 새로 만들지 안 해도 이 삼계가 고대로 화택인데다가, 이 세상에서 제일 머리 좋은 천재만을 골라 가지고 그 사람들을 시켜서 만드느니 원자탄 · 수소탄 · 레이저 무기, 그러한 무서운 불로써 온 세계를 갖다가 찰나간에 잿더미를 만들어 버리는 그러한 무서운 무기만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한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무기를 만들고 또 상대방을 그 태워 죽임으로써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 무기를 만드는데, 결국에 가서는 그 무서운 무기로 인해서 상대방도 타 죽고 나도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에 귀의해서 상대방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을 찾아야만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이르를 텐데, 상대방을 죽이고 나만 살려고 나를 지킬려고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도 죽고 남도 죽게 하는 결과가 올 것이 빤합니다.
10년 후에 올 지, 20년 후에 올 지, 백 년 후에 올 지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현재 세계 정세의 되어 가는 껄세로 보아서는 그 시간이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언제 올 것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연 추측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거에 얼마나 깊은 복(福)과 인연(因緣)을 지었음인지 이 최상승법을 믿고 또 그것을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다행스럽고 감사하고 경행한 일이나, 이 문제는 범범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결판이 나기가 어렵습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아니한 셈 치고 목숨을 바쳐서 해야만 이 문제는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불보살이 다 그러셨고, 과거에 모든 고조사(古祖師)들도 역시 다 그러셨습니다. 더군다나 이 말세에 태어난 우리 근기가 약한 우리들은 과거에 불보살과 고조사에 몇십 배, 몇백 배를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해제를 맞이해서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그러한 뜻에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온 세계와 인류, 다시 우리에게 가까이 눈을 돌려보면 우리 조계종 종단 그리고 우리 자신, 멀리 생각하나 가까이 생각하나 우리는 시간을 아껴서 일분일초를 아껴서 정말 이를 악물고 다시 우리 정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천고무인문(千古無人聞)헌디  만산공두견(萬山空杜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헌디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고(千古)에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데, 만산(萬山)에는 공연히 두견새만 울고 있구나.
밤새도록 두견이는 울고 있는데, 아무도 그 두견새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목동일성적(牧童一聲笛)에  기우과석양(騎牛過夕陽)이라.
목동이는 한 소리 젓대를 불면서 소를 타고 석양을 지내가는구나.

전강 조실 스님께서 생존 시에 즐겨 읊으시던 게송이었습니다.

법보단에 모셔 있는 만년위패 법보제자 모든 영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오늘 5재를 맞이한 민병태 영가는 이 법문을 들은 인연으로 속성정각(速成正覺)하시기를 바랍니다. (36분1초~48분22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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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