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5/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502)—무자십절목(5) (낙재심처까지) (갑인74.05.24. 새벽) (전502)
(1) 약 36분.
(2) 약 18분.
(1)------------------
범과탄금석(帆過彈琴石)이요 운기무학대(雲起舞鶴臺)니라
나무~아미타불~
도원(桃源)이 하소재(何所在)오 낙화만계류(落花滿溪流)니라
나무~아미타불~
범과탄금석(帆過彈琴石)이다. 배 돛대는 금석(琴石)을 지낸다. 거문고 타는 금석대(琴石臺)를 지내간다. 망망창해(茫茫蒼海)에 갓없는 창해에 배 돛대가 가물가물, 그 석대(石臺)에 올라앉어서 거문고 타는 그 대(臺)를 떠억 지내가는구나.
운기무학대(雲起舞鶴臺)다. 구름은 저 무학대(舞鶴臺) 높은 산봉아리에서 일어난다.
도원(桃源)이 하소재(何所在)냐? 도 닦는 곳이—우리 부처님도 금선(金仙)이니까 금신선(金神仙)이니까, 금선이 부처님이여. 금선! 도 닦는 곳을 도원(桃源)이락 해야. 도원이 모도 신선들, 금선(金仙)들, 부처님, 모도 도 닦는 곳을 도원이락 해야. 도원이 어느 곳에 있느냐? 어디 있는고?
낙화(落花)는 만계류(滿溪流)다. 그 떨어진 꽃은 시내 가득허게 흘러 내려오는구나.
세상 부귀 · 공명 · 지위 · 권리, 뭐 천만사를 부모 · 처자, 무슨 애별(愛別), 사랑스러운 것을 애별허는 거, 다 그만 쓸어 버리고 끊어 버리고 여의어 버리고 이별해 버리고는, 척! 나와서 단신(單身), 단 몸으로 비구승 되어 가지고 도 닦는 학자의 도 닦는 처소가 이러허다 그 말이여. 뭐 이런 디 가 앉었으니 아! 그렇지, 뭐가 걸릴 것이 뭣이 있나?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구나.
그렇게 지위가 좋고, 권리가 좋고, 명예가 좋고, 별별 짓이 세상에 애욕락이 그렇게 있다마는, 모도 그놈의 디 걸려 놓을 것 같으면 그것은 그 그물은 더 벗기 어렵다.
애욕 그물 그 부부지.. 그 애착 그놈 참 무섭다. 뭔 놈의 부부지간이 떠억 서로 되아 가지고는 서로 그 뭐 쇠줄도 없고, 그 사이가 노끈도 없고, 그 사이가 뭐 실 터럭만큼도 서로 손그락 하나 잡아매 논 것이 없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그 쇠사슬보담도 더 하고, 끊을 수 없는 놈의 애욕 경계가 그렇게도 나를 잡아매 놓고 꼼짝달싹 못하게 맨드는고? 그게 무슨 짓일 것이냐 그 말이여?
생사(生死)가 그만 이 내 몸뚱이에 칭칭 얽어져 있고 감겨져 있는디, 죽고 사는 생사가 이렇게도 얽혀져 있는데, 그래 그놈의 쇠사슬에 그놈의 노끈에 걸려 가지고는 다시 꼼짝 못허고, 그 생사해탈(生死解脫) 참선법을 이렇게 그만 까마득 그만 닦지 못하고 말아 버릴 것인가?
척~! 우리는 그것이 없이 그 부모도 여의었거니와 처자가 어디 있나? 처자도 없지. 처자가 없으니 자식이 어디 있나? 처옥자쇄(妻獄子鎖)가 어디 있나? 처자는 감옥이 되고, 자식은 그 자물쇠통 같은 디. 딱! 채워졌는디, 우리는 그것 없지.
이렇게 들어와서 탄금석(彈琴石)에 그 배 돛대 지내가는 것이나 보고, 구름이 저 무학대(舞鶴臺) 산상에서 부르르르 일어나는 대자연경이나 뭐 그 내 소유지.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고 헐까? 그 무슨 운기(雲起) 백운이라고 헐까? 모도 그러헌 것이 뭐 내 소유지. 저 명월이 소유지. 명월조(明月照)허고 청풍취(淸風吹)허는, 명월이 비추고 청풍이 부는, 아! 모도 그것이 내 소유지. 하늘에 해가 저 중천으로 떠가고 밤에 달이 척 떠올라 오는 그것이 모도 내 소유지. 그 내 보물이지. 천하에 누가 뺏어 가나? 누가 그놈의...
세상 공명 · 부귀라는 것은 총칼이 모도 딸려 있고 모도 뺏어 갈라고 애쓰고 기가 맥히지마는, 세상에 이 보물이야 누가 뺏어 가나?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이요. 배고프면 밥이 들어오고, 추우면 내 몸에 옷이 감기고, 아! 이 세상에 이렇게 들어와서 도학자가 되았구나.
도 닦는 곳이 어디일 것이냐, 따로 정해져 있느냐? 도원(桃源)이 하소재(何所在)냐, 어디 있느냐? 우리, 우리 도 닦는 곳이 바로 여기다. 여기 앉어서 도 닦는 여기여.
시내에 가득허게 꽃향내만 흘러 내려오는구나. 종일 있어야 뭔 모도 지위 · 권리 · 부귀 뭣헌 뭐 냄새, 그런 그 추접헌 냄새, 어디 그거 뭐 있나? 아무것도 없는 것이, 그 꽃 시내 흘러 내려오면은 향내가 진동하는 그것이 모도 우리 걸림 없는 탕탕(蕩蕩) 걸림 없는 우리 수도(修道) 도학자 도 닦는 경계여. 무엇이 있나 거?
뭐 누가 돈 달라, 쌀 달라, 뭐 이놈아 너는 뭐 내 것 갖다 먹고 안 주냐 마냐 싸우고 뜯고, 그런 놈의 추잡스런 일이 어디 있나?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참으로 한바탕 닦아 보자. 닦아 보는 것이 뭣이냐? 뭣을 닦고 뭣을 믿을 것이냐? 내 마음을 내가 닦고, 내 마음을 내가 찾고, 내가 나를 한번 깨달라 보자.
허! 세상에 나를 두고 뭐 딴 것을 믿어? 무엇을 믿어? 귀신 대갈빡을 믿어? 무슨 우주만물을 창조헌 하나님을 믿어? 뭐 부처님이 당신 깨달은 부처님 마음을 믿어? 부처님 마음, 뭔 부처님 마음 뭐 믿어? 내가 날 믿어야지.
부처님 마음도 그만 두어 버리자. 우리는 부처님 제자니까 부처님을 믿어? 부처님 뭘 믿어? 부처님의 무슨 뭐 누런 저 금(金) 바른 무슨 등상(等像)을 믿어? 등상 믿어 뭣 혀? 우리는 내 가지고 있는 내 마음, 세상에 내가 나를 믿어 보자. 내가 나를 한번 깨달라 보자.
우리 부처님도 참 좀 잘 말씀해 주셨어? 「내가 백억천만 겁(劫) 중 남[生]이 없이, 날 때가 없이 나를 가지고 왔건마는 내가 나 온 곳을 아지 못했으니, 세상에 내 본래 미(迷)헌 경계, 깨닫지 못한 경계, 너무 오래오래 세월을 겪어 왔다. 오다가 내가 이 감겁(減劫) 중에, 겁이 내려오는 감겁(減劫) 가운데 말세 가운데, 인유백세(人有百歲)라. 사람이 백세 나면 죽을 때」 우리 부처님이 삼천년 전에 나오셨다가 그때 돌아가셨으니 삼천년 전에는 백세 때거든. 사람이 백세 먹으면 죽을 때거든.
「내가 백세정명(百歲定命), 이 감겁말세(減劫末世)에 나왔다마는, 인수(人壽) 팔만사천 세인디, 사람이 팔만사천 세를 살다가 죽는 것이 최고 수한(壽限)인디 사람의 수명인디, 팔만사천 세 다 이 내려와서 감겁 중에 차츰차츰 감퇴 되아서, 수(壽)가 감퇴 되아서 감겁 중 백세 때 내가 나왔구나. 얼마나 이 말세에 나왔느냐?」 말세에 나온 것을 무척 탄식을 허셨지마는, 말세에 척 나오셔 가지고서는 그 깨닫지 못한 나를 깨달랐단 말씀이여.
허다한 것 다 두고 그때도 무슨 별별 도가 다 있었지마는 심외도(心外道)? 내 마음 밖에 도(道)? 그거 내 마음, 마음 밖에 도라는 건 다 외도(外道)다. 바깥 도여.
내가 내 복장 속에 들어 있는 내 마음 내가 깨달라야겄다. 그 마음, 부처님 바로 깨달라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 가지고서는—견성(見性)해서, 내 성품을 봐 가지고 성불(成佛)을 했다, 부처가 되었다. 성불이라는 것은 구경각(究竟覺)이여. 부처님이 구경각이다 그 말이여.
척~! 깨달라 가지고 보관일체중생(普觀一切衆生)하니, 저 일체중생을 보니, 깨닫지 못헌 저 인생들을 모도 보니, 천만 국! 만국의 인생들을 보니 하! 구유여래지혜덕상(具有如來智慧德相)이다. 여래(如來)의 지혜덕상(智慧德相)이 다 갖추어져 있구나. 나와 똑같은 각성(覺性)이 다 있다 그 말이여. 나만 있는 것이 아니여. 나만 있어서 내가 홀로 깨달은 게 아니여. 일체중생이 그대로 똑같이 갖추어져 있다. 무흠(無欠)이여, 무여(無餘)다. 모지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아! 이러헌 그 본래각(本來覺)인디 본래 그 각이 있는디, 왜 너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미(迷)해 가지고 지금까장 느그가 그렇게 있나? 나는 느그보담 좀 선각(先覺)했다. 먼첨 깨달랐다. 너도 어서 깨달라라. 어서 깨달을 것 같으면은 나와 같다. 조금도 거기에는 나보담 나을 것도 없고 모지랄 것도 없어.
거, 뭐 불을, 불 하나를 가지고는 쪼끔썩 쪼금썩 나누면은 큰 불덩어리를—그저 조끄만헌 티끌만한 거라도 가서 붙이면은 불이 쪼끄만썩 쪼끄만썩 쪼끄만썩 몇 배, 몇억 억천만 개라도 그 불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합하면 한데 한 뭉터기 되듯기, 우리 중생의 마음 깨달은 자체가 나나 느그나 똑같어.
불을 나누면은 그렇게 숫자가 많지마는 합하면 한덩어리여. 터억 생사 없는 해탈대도(解脫大道)만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거기에 동증무애(同證無礙)여. 같이 동증무애를 증해서 그 뭐 필경에 구경성불(究竟成佛), 구경각을 마자 다 해 버릴 것 같으면은 뭐 색상(色相)을 갖춰도 똑같여. 무슨 색상 하나, 모냥 하나 받아 나와도 똑같여.
그까짓 놈의 색상이야 어디 본래 있나? 어디가 있어? 눈깔 · 귀 · 코 · 입빼기를 가지고 우리가 있지마는 이것 색상으로 받아 나온 건데, 그 원소(元素)를 한 번 가 따져 보아라. 원소는 불멸(不滅)이지마는 어디 그것이 어디 무슨 눈이 그대로가 항상 눈이 그대로 있나? 입이 그대로 있나? 몸뚱이가 그대로 있나? 이것 도로 그만 자체가 변해져 버리고. 원소는 불멸이지. 그 각(覺)이라는 것은 똑같다. 어서 깨달라라.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다 그 말이여.
그러면 이러한 만계(滿溪), 그 꽃이 모도 멀어져서 시내에 가득허게 흘러 내려오는 자연 동천(洞天)에 여의고 떼고 버리고 이별허고 부귀영화 밖에 들어와서 가만히 와서 도 닦는 우리 도학자밖에는 도를 못 얻는단 말인가? 고렇게만 똑 닦아야 하는가? 그것 그 그렇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서 소동파(蘇東坡 : 蘇軾) · 이부마(李駙馬 : 李遵勗) · 백낙천(白樂天 : 白居易) · 한문공(韓文公 : 韓愈), 그 모도 그런 분들이 그 참 얼마나 그 역사적 인물이며 거벽(巨擘)들인가? 그러헌 역사적 거벽들이 그 모도 대도를 깨달라 통해 가지고는 함재조등(咸載祖燈)이여. 다 조등에 올랐으니 그이들은 어찌 또 지위 · 권리 · 부귀 속에서 조금도 손색없이 모도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는 부처님 조등(祖燈)에 올랐냔 말이여? 말할 수 없었지 또.
그러니 꼭 여의고 떼고 들어와서 못허드래도 세상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해 나갈 수 있는 참선법, 임운(任運) 적극적 법이여. 적극적 임운법(任運法)이여. 무슨 못허고 헐 사람이 누구여? 젊은 사람이면 허고 늙은 사람은 못혀? 여자는 못허고 남자만 혀?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처소도 없다. 적고 큰 사람도 없어.
모도 내가 가지고 있는 놈은 내가 그대로 찾는 법이고, 그대로 볼 수 있고, 아 그놈 봐 버리면 내 주인공 내가 봐 버리면 생사(生死)가, 죽고 사는 생사는 그거 그 본래 겉껍데기 그거 뭐 아무것도 아닌 것이여. 있다 없다 헌 것이여. 백운(白雲)이 공중에서 일어났다 멸했다 헌 것이여. 그 뭐, 그 뭐 어디 생사가 있나? 생사 없는 게지!
무슨 귀신 춤춘 것이나 보고, 귀신이 무슨 뭐 노래 부르는 것이나 보고, 무슨 전생일 금생일 후생일이나 알고, 고까짓 것을 법으로 아는가 말이여? 그까짓 것이 무슨 놈의 법이여?
어디 훌훌 날아댕기는 게나 법이고, 뭐 날아댕기는 것 뭐 늘 말, 내가 날마당 시(時)마당 법문할 때마당 허지마는, 모기 깔따구도 날아댕기는데 공중을 훨훨 날아댕기고 그런디 뭐 뭐 그까짓 것이 법이여? 그런 사견법, 늘 그 사견법(邪見法) 내가 상견법(相見法)이라고 안 해?
참! 해탈 참선법, 이 법이다. 뭐 '여의고 떼고 모도 이별허고 들어왔다'고 하고, '세상에 있다'고 못허는 거 아니다. 말허자니 수도학자(修道學者)의 본분 행각(本分行脚), 이렇게 모도 앉어서 아침저녁 시간 정허고 헌 것을 말허자니 내가 여까장 한 것이여.
그러고 또 그다음의 공부해 나가다가 확철대오(廓徹大悟)는 못했다 하드래도 무슨 경계가 척 날 것 같으면은, 아! 그만 그 체중현(體中玄)만 들어가드래도 ‘견성했다’는 소견이 나거든? 체중현.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그런데, 처음에 들어와 체중현(體中玄)이라는 것은 알기 쉽게 말하자면 체(體) 가운데, ‘감을 현(玄)’ 자—‘몸 체(體)’ 자, ‘가운데 중(中)’ 자, ‘감을 현(玄)’ 자, 체중현(體中玄) 선(禪)이라.
체중현 선이라는 것은 뭣을 말하는 것이냐? 공(空)을 말하는 것이여, 공(空). 말하자면 저 허공(虛空)이다 그 말이여. 저 허공에 아무것도 없지. 아무것도 없는디 거기에 뭐 뭐 뭐 빛을 아무리 볼라고 허니 무슨 보이는 것이 있나? 뭐 보이는 무슨 자체가 있나? 아무것도 없거든. 허공이거든.
그거 허공견(虛空見)만 하나 나오드래도 일체가 도무지 거기에는 말이 없고, 이치를 붙일래야 붙일 수가 없기 따문에 말도 없지마는 이치도 없다. 말도 없고 이치도 없는디, 그 가운데 허공이라고 내가 하나 말을 붙여 놨구나.
‘허공이다’ 하면은, 그 허공성을 하나 붙여 놓고 볼 것 같으면은 비유(非有)인디 소유(所有)거든. 그 유(有)가 아닌디 유(有)를 본다 그 말이여. 허공 아닌 도리라도 뭣을 하나 장만해 가지고는 그것을 견해를 보거든, 견해를 붙이거든. 그것이 유집상(有執相)이여.
유집상이라는 것은 내가 들어서 모도 붙인 것이지, 저 공처(空處)에 가서는 없거든. 허공 자체에 가서는 ‘내가 허공이다, 내가 비허공(非虛空)이다, 내가 허공인디 크다, 내가 허공인디 적다, 내가 무슨 우주 삼라만상도 내가 모도 집어 샘키고 있다’ 그런 것이 어디 있나? 허공은 없어, 허공성에 가서는.
유집상(有執相), 우리 유(有)가 들어서 그것을 모도 무집(無執)을 유집(有執)으로 보는 것이여. 그것이 그 모도 견해, 알음알이를 모두 지어 만들아 붙인 것이지. 어디 유(有)가 유(有)가 아니고, 무(無)가 무(無)가 아니다. 유(有)가 유(有)가 아니고 무(無)가 무(無)가 아니기 따문에... 유(有)가 유(有)가 아니고 무(無)가 무(無)가 아니기 따문에 유(有)와 무(無)가 동(動)할 것이 없다, 자체가.
이렇게 들어갈 것 같으면은 벌써 그 무집상(無執相)에 들어가서 무견(無見)에 들어가서 모도 이치가 붙고, 모도 뭔 말이 붙고 해서 이로(理路)가 있고, 어로(語路)가 있어서 그걸 체중현이라 하는디, 체중현 공해라는 것은 그것은 아무리 해 봤던들 소용이 없어. 그 유루견(有漏見)이기 따문에, 없는 것이라도 유루견을 붙였기 따문에 유상견(有相見)에 빠져서 생사고(生死苦)를 받는 것이여. 그게 벌써 생사집(生死執)이여. 그러기에 모도 체중현에가 들어 잠겨 가지고 도를 닦지마는, 없는 상(相)을 하나 봐 가지고는 없는 상을 봐 가지고는 유상(有相)을 맨들어 놓고 그 처백히거든.
그걸 모도 신선(神仙)이, 신선이 아무리 공관(空觀)을 해서 5통(五通)이 나지마는 그러헌 디 집(執)했기 따문에 그 모도 유집견(有執見)이여. 유집상(有執相)이여. 된 법 없어. 그러나 그런 데 들어가서 제 소견(所見)이 나 가지고는 '옳다! 내가 견성했다. 여기에 무슨 남[生]이 있으며 멸함이 있으며, 일체 무슨 명상(名相)이 다 공(空)했으며 공상(空相)까장도 거두아 버렸는디 뭐가 있나? 그대로가 그만 각(覺)이다'
이렇게 ‘깨달랐다’ 해 가지고는, 그만 제가 ‘제일이다’ 해 가지고는 자해진도(自解眞道)허고, 제가 제일이고 남을 모도 방비(謗非), 타비(他非)하고, ‘남은 아무것도 아니라’ 하고 그만 견성했다고 그래 가지고 그만 잠타무한치남녀(賺他無限癡男女)여. 한없는 남녀를 속여 죽여서 모도 도(道)는 꿈에도 깨달지 못하게 만들고 사견외도가 되게 맨들어 가지고는 모도 삼악도(三惡途)에 문을 열어주고, 아귀 축생취에 모도 집어넣어 주고 그러기 따문에 그 죄는 불통참회(不通懺悔)라. 참회를 허락할 수가 없어.
살불살조(殺佛殺祖)는,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 죄는 불전(佛前)에 참회를, 부모를 애비를 죽이고 에미를 죽인 죄는 부처님 앞에 참회를 죄를 빌지마는, 반야(般若)를 비방한 자는—견성 못헌 걸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 거그 견성 제 깨달은 것을 옳다 하고, 남 깨달은 것을 모도 그르다고 막 냅대 비방하고, 고인(古人)을 모도 외도라고 비방하고, 그런 자는 참회할 길이 없어. 죄! 용서할 수 없다 이게여. 바로 그랬지.
아니, 그렇게 가서 무슨 지견이 났다가도 아! 그 탁마해 봐서 스승을 찾아, '오후(悟後)에 약불견인(若不見人)이면, 오후(悟後) 깨달은 뒤에 옳은 스승을 찾아가지 못헐 것 같으면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다' 죽는 약을 먹는 것이다 그 말이여.
가서 떡 찾아가서, 지식(知識)을 찾아가서 탁마를 해 가지고 '옳습니까, 그르습니까?' '아니다' 허면 아닌 줄을 척 알아 가지고는 다시 발심을 더 허고, 다시 도심을 더 허고, 다시 도를 닦으면은 그거는 부처님도 그랬고, 조사도 그랬고, 그렇게 허는 법이여. 그래사 그거 올라가는 건, 향상(向上)으로 올라가는 것이지.
허지마는 제가 깨달은 그것이 깨달도 못헌 것을 깨달았다고 해 가지고 그 집(執)을 가지고는 제가 ‘옳다’ 하고 제일이고 진도(盡道)하고 타비(他非), 타비라 하면 안 되야. 그것은 불통참회(不通懺悔)다 그 말이여. 그래 그것을 알아야 하지, 그런 것을 알덜 못허고는 무슨 뭐 내가 견성했다가 방맹이 맞는다고 그만 '에이! 그것 내가 큰일났구나' 하고 혼자 공연히 장난을 일받지 말란 말이여.
더 튼튼허고 더 참되고 아무리 뚜드려 맞고 아무리 별별 일이 다 있다한들 그 법방(法棒)은, 법 방맹이는 안 맞을 수가 없어. 이 몸뚱이가 천 번 끊어지고, 뼉따구가 녹아지고, 몸뚱이를 갖다 귀신한테 나찰귀신한테 입에다 넣고라도 이 법은 배워야 한다 그 말이여. 물러갈 수가 없어. 뭐 방맹이 좀 맞는다고 물러가고, 무슨 말 한마디에 삐껴서 가고, 잘헌다고 무슨 거그 찬탄에 떨어지고, 그것 없어. 도학(道學)이라는 건 그런 법이 없거든.
그러기에 도학자는 기가 맥히게 다루아 본다 그 말이여. 얼마나 다뤄야 헐 것인가?
지가 무슨 뭐 도 배우러 왔다고, '오냐 내가 도인이다. 아나 도!' 허고 있어? 없어. 그렇게 천허게 개볍게 가르키는 법 없어.
내가 무겁게 가르켜서 그런 것도 아니지마는 8년을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어. 올수록에 더.., 처음에 오면 “나 없닥 해라”. 또 그다음에 와도 “없닥 해라”
‘없다’ 한디 어째? 한번 ‘없다’ 한디 어떻게 헐 거여, 자기가. ‘없다’ 한디 무슨 있다고 뭐 다시 뭐 찾아올 것이여? ‘있다’고 와서 뭐 '당신이 아니요?' 헐 것이여? 소용없지. 한 번 혀, 두 번 혀, 그냥 8년을 했다, 8년. 8년까장 허다가 마지막에는 참 나를 찾아와서 그 어떻게 허다가 알았든지 말았든지 8년이나 왔으니깐 알 것 아닌가? 와서는 그만 엎져서 떠나도 않고, 가도 않고 오도 않고 아! 그만 엎졌다 그 말이여. 나 참! 달마(達摩) 스님 밑에 혜가(慧可) 대사가 와서, 죽게 되니까 팔때기 끊어 올린 것보담도 더했다 그 말이여. 내가 말 안 해 그렇지.
거 뭐 별사람 아니여. 세상에 살림 사는 사람인데, 그래 즈그 마누라는 '중노릇 간다'고 울고 들입대 야단을 쳐도 오고 오고 그랬든가 부여. 근데 내가 그건 아나? 그래 8년만에 하도 그래싸서 말 한마디 일러주었어. 내 두 말도 일러주지 않고. 두 마디 세 마디 일러주면 뭣혀? 그녀러 것이 어디 그런 법이 있어야지? 우리 부처님도 어디 참선법 화두법에 가서 두 말 세 말 있어? 없어.
남악회양 선사(南岳懷讓禪師)가 와서 척~ 절을 허고 도(道)를 구허니까,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한마디 뿐이지. 두 마디 했나? ‘뭔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참 기맥힌 법문이고, 기맥힌 선물이지.
억천만 겁에 모르다가, 제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르다가,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 너 무슨 물건이 왔느냐?’ 눈이, 눈이 보니까 ‘눈이 왔다’고 헐 것이여? 귀가 들으니까 ‘귀가 왔다’고 헐 것이여? 코가 맡으니까 ‘코가 왔다’고 할 것이여?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왔다’고 할 것이여? ‘송장이 왔다’고 할 것이여?
그 뭐, ‘대체 온 놈은 뭔고?’ 뭔고 허다 보니 이뭣고여. ‘이뭣고?’ 허고, ‘뭣고’ 해 놓고 보니 ‘이뭣고?’여. 하! 이놈을 그 ‘이뭣고?’를 허기 시작했다.
8년을 했네. 지독허지. 8년을 그대로 깜깜해 몰랐으니 8년을 허다 보니 그것이 참선이여. 그것이 용맹정진(勇猛精進)이여. 깨닫지 못했으니 헐 수밖에 있나? ‘이뭣고?’ 또 ‘이뭣고?’ 아무때라도 ‘이뭣고?’ 바로 볼 때까장 '이뭣고?'여.
8년만에는 확철대오를 했다. 허! 깨달라 놓고 보니 뭐 내가 육조(六祖) 스님과 못헐 것이 뭣이 있나? 오히려 육조 스님보담도 내가 낫구나 싶지. 뭐 천불조(千佛祖) 만불조(萬佛祖) 구탄불조(口呑佛祖)인디 내 입으로 불조 삼켜 버렸는데 어디 가서 있어? 그만 법만이 난다. 법아만(法我慢)이 생겨서 불조(佛祖)니 무슨 조사(祖師)니, 무슨 성인(聖人)이니 비성인(非聖人)이니 어디 내가 내 앞에 와서 그 독보건곤(獨步乾坤)이요. 홀로 건곤을 척~ 걸음허지.
‘내가 그만 제일이다’ 틀려 버렸어. 고렇게 되어 번지면은 오후(悟後)에, 옳게 깨달랐다 하드래도 오후(悟後)에 불견인(不見人)이여. 오후에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 저는 인자 큰일난다 그 말이여. 거 무섭거든.
어서 큰스님을 찾아가야겠구나. 인자 그때 참으로 찾아온 것이여. 육조 스님한테를 찾아와서—아! 어제 아침에도 헌 법문 아닌가? 매일 허지. 무슨 뭐 내가 빼놓고 허나?
“제가 큰스님 묻는 말씀에 심마물(甚麽物) 임마래(恁麽來)를 바로 봐 가지고 왔습니다”
“응. 일러 봐라”
“일물부중(一物不中)입니다” 참, 말이 싱겁지. ‘일물부중(一物不中)입니다. 한 물건 맞지 않습니다’ 하! 서로 본 분들끼리는 그 뭐 환하지. 세상사도 그렇지. 서로 보고 말허는 것과 안 보고 말허는 것과, 거짓말을 헌 것과 참말 헌 것과, 다 나타나는 것이여, 면목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가히 닦아 증(證)허겄느냐?”
니가 그렇게 깨달랐지마는 닦아 증(證)허겄느냐? 고대로 깨달은 바와 같이 깨달라서 꽉 증(證)해 버리겄냐? 다시는 매(昧)허지 않고. 저 밝은 달에 구름 한 점 없이 환한 달이 다시 그 구름 때꼽재기가 달에 찌이지 않게 허겄느냐 그 말이여, 말허자면, 쉽게 말하자면. 다시는 없어야 할 거 아닌가?
“없지 않습니다마는, 그렇게 허기는 꼭 닦아 증(證)해야 겄습니다마는 오렴(汚染)은 없습니다”
그 오렴(汚染)이란 건 누(漏)는 없습니다. 그 다시, 다시 무슨 그 달에 지금 가리운 것 뭐 그런 거, 그런 누(漏)는 없습니다. 또 찌일런지는 또 찌이면 닦을지언정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거 인가(印可)여. 이러헌 법인디, 이 법이 무슨 뭐 어디 처소가 있고, 무슨 비구니, 뭐 비구, 뭐 신남신녀, 뭐 뭐 남녀노소 차별 어디가 있는가? 없는 이 참선법이여. 그러헌 참선법인데, 왜 모도 이치(理致)를 장만하고 모도 공연히 무슨 도리회(道理會)를 만들아 가지고 그러헌 디 가서 꺼꾸러져 가지고는 본각(本覺)을 보들 못하냐 그 말이여.(처음~35분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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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그 조주 뜻을 바로 봐라. 조주 무(無)라고 헌 뜻을 바로 봐라. 그 무(無)가 무슨 무냐? 그 무(無)는 도무지 이치(理致)로 아무리 갖다 붙여 봤던들 너만 손해날 일이니까 말아라.
뭐 유(有)를 붙여 보기도 허고, 유(有) 가운데도 별별 유가 다 있지 않는가? 유(有)도 유무지상(有無之相)을 떼고 보는 유(有)도 있고, 유무지상을 씻거 버리고 보는 수도 있고.
뭐 무(無)도 무슨 갑중(匣中)에 무검(無劒)허고 우무서(又無書)니, 아무 무(無)까장도 무 정량(情量)까장, 무란 도리까장 다 여의고 떼고 보는 무(無)도 있고. 그 그러헌 유무소견으로 유무소집(有無所執)으로써 그것 말아라. 그거 아니다.
뭐 있느니 없느니, 진무(眞無)니, 그런 관(觀). 고렇게 상(相)을 찾고 여의여 나오기를 여까장 나와서, 여가서는 어떤 놈은 말하기를 '쇠빗자락'이라고 헌다 그 말이여. 쇠빗자락이란 건 ‘막 쓸어버리는 놈’이라고. 쇠빗자락 같이 그 쇠꼬쟁이 빗자루 맨들어 가지고 쏵 쓸어버리니 땅까장 막 패여 버리는, ‘자최까장 막 없애 버리는 빗자루’라고 이런 놈이 다 있으니. 어떤 놈은 ‘자물쇠통’이라고, 일체를 다 망상번뇌를 콱! 못 일어나게 봉쇄, 자물쇠 해 버렸다는 이런 의미로 자물쇠통이라고도 허고.
‘별별 유무지무(有無之無)도 아니다’ 이렇게도 보기도 허고, ‘진무지무(眞無之無)도 아니다’ 고런 거로 보기도 허고, 별별 도(道)를 다 말허니, 한학해(閒學解)로, 한가로운 그러헌 네 알음알이 학해(學解)로 매몰조사심(埋沒祖師心)이다. 조사심(祖師心)을 매몰치 말아라.
이렇게 반대를 척 해 놓고서는 끝에 가서는 ‘철소추(鐵掃箒)라고 헌 놈이 다 있으니, 조주의(趙州意)가 과여시부(果如是不)아? 조주 뜻이 이러허냐?’ 고까짓 고런 것이 생사 없는 해탈도냐?
고 밑에 가서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 어제 아침에 헌 거여.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하야, 후어(後語)를 인타(引他)해다가 끄집어다가 뒷말, 위증자(爲證者)가, 증명(證明)을 삼는 자가 착요야(錯了也)로다, 그르친 놈들이다 한 것.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라는 것은 여태까장 한국불교가—몰라, 지나(支那)에서는 그만두고 한국에 나와서는 강사로서 선사로서 나옴서 해결 못된 말이여. 지금 해결 못허고 있는 말이여.
그러지마는 내가 이거 해결 붙여서 말허니 대단히 내가 방맹이를 천 방(棒)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말이지마는, 내가 내 죽기 전에 바로 일러준다 그 말이여. 바로 내 문자(文字)로 일러줄께. 바로 내가 이렇게 이놈을 다 들은 사람은 듣고 기억해 두고는 다른 디 가서 한번 서로 거론을 해봐. 탁마도 해보고. 이건 아무도 헌 말 아니고, 내가 지금 여 붙여 논 말이여.
유인타후어(有引他後語)라. 후어(後語)를 끄집어다가 위증자(爲證者)가, 증명(證明)을 삼는 자가 착요(錯了)다, 그르쳤다. 무서운 말이여.
이 후어(後語)라는 것은 뒷말이라는 것은 내나 다른 말 아니여. 조주 무(無) 밖에 진무지무(眞無之無)니, 허무지무(虛無之無)니, 유무지무(有無之無)니, 무슨 철소추(鐵掃箒)니, 계려궐(繫驢橛)이니, 나귀 매는 말뚝이니, 별별 소리를 다 해놨다마는, 고밖에 무슨 이치라도 부처님과 조사에 넘는 이치를 갖다 붙여서 말을 허드래도, 그 후어(後語)를, 그런 뒷말을 붙이드래도 붙이면은 눈깔 먼 놈이다.
내가 막 이렇게 해석적으로 의리적으로 막 해 주니까 깊이 들어. 생전 안 해 놓으면은, 몰라 놓으면은 어쩔 것이냔 말이여? 어쩔 거여? 해는 늦어가고, 내가 곧 죽을 때가 닥쳐오는디, 이런 것을 다시는 꼼짝 못한다 하고 말 안 해 놓으면 어쩔 것이여? '이렇게 본 사람이 있는가?' 다 가 물어 봐? 인타후어(引他後語)를 물어 보란 말이여.
도산, 모도 저 여그 무슨 여기서 그 10년을 허고, ‘인자 10년도 마지막 다 채왔으니께 나가 다른 데 가 지내라’ 헌게 나갔지? 내가 나가라고 헌게 갔지? 나가라고 안 하면 또 있을 것이여. ‘여 모도 구참(久參)들은 좀 나가거라. 여 신참(新參) 좀 받아야겄다’ 그 내가 그러고.
정일이 여덟인가 데리고 온 거 그날 돌려세웠어, 가라고. 여그 내가 지금 제일 뭣이 모지래냐 하면은 식량도 없고 할 수가 없다. 여 기본 재산이 있냐? 뭐가 있나? 겨우 이렇게 설법하고 나와서 뭐 불공(佛供)이 들어서 불공이 들어와? 재(齋)가 들어 재가 들어와?
재가 무슨 3만 원짜리만 해도 못 받는디, 여그서 시방 3만 원짜리나 뭐 그런 것은 혹 해 주지마는 5만 원이나 뭐 10만 원이나 그런 건 여그서 못해. '떡 해 돌라, 밥해 돌라고 헌께 못헌다'고 헌께, '아이고! 떡도 밥도 안 해도 좋습니다' 인자 그러고 들어오는 인자 신도도 있구만. 인자 공양을 못해 준다 하니까, '식량이 없어서 한때 공양을 해 주면은 대중이 굶게 되니께 못허겄다'고 해 버렸더니, 공양이 자꾸 들어온다 그 말이여. 그래 시방 공양이 밀려, 인자는. 밀려.
‘이번 때는 누가 하겄소. 이번 때는 누가 하겄소’ 참 그 공양(供養), 참 좋은 공양이지. 도 닦는 공양, 공일(空日)날 대중(大衆)도 모이지마는, 그 대중 가운데에 청신사(淸信士) · 청신녀(淸信女)도 다 모이지 않는가? 이러헌 대중에 공양 한번 올리는 것이 백겁(百劫) 천생(千生)에 그 부귀는 어떠헐 것이냐 그 말이여. 복도 청복(淸福)이지. 깨끗헌 복이지. 추복이 아니여.
내가 벌써 공양 말을 허니까, 이런 공양 말을 허니까 혹 내 귀에 들리기는 ‘에이, 그런 소리 또 헌다’고, 아 그 하품허는 이가 있는 것 같구마는 그렇잖어. 옳게 들어야 보배지. 내가 어디 공양을 허락했나? ‘헐 수 없어서 공양을 못허겄다’고 했더니 저 공양이 밀려. 또 들어왔는데, 또 들어오거든. 그러니 뭐 뭐 그런 공양은 해 올려야지 어쩔 것이냐 그 말이여.
여까장 허다가 보니 그 법문 원 가닥을 잊어버렸네. 뭘 허다가 여까장 했는고? 그 잊어버린 건 그만두지. 그것은 뭐 애 터지게 생각할 것 없는 것이고.
무자(無字)라는 것은 없어. 후어(後語)니 없어. 후어(後語)가 없어. 인타후어(引他後語)하야, 뒷말을 끄집어다가 인증을 삼는 자가 눈깔 먼 놈이다 해 놨거든. 이거 그 후어(後語)를 아무도 모르네! 내가 한번 큰소리헐 만허지.
후어(後語) 붙이들 못햐. 종문지일관(宗門之一關)이요, 종문의 일관이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안목(眼目)이락 했어, 무자(無字)를. 그러니 거그다가 무슨 후어(後語)를 붙일 것인가? 조사선을 붙일 것이여? 여래선을 붙일 것이여?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을 붙일 것이여?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를 붙일 것이여? 천성(千聖)도 불식(不識)을 붙일 것이여? 못 붙여.
잘 들어 두란 말이여. 잘 들어 두어! 이 견성허면은 바로 알 것인게! 거 바로 보들 못허고는 들어봤던들 그 통쾌치 못혀. 그러지마는 그래 들어 놔 두란 말이여.
그래 놓고 고 밑에다가 ‘막장한학해(莫將閒學解)하야, 한학해(閒學解)를 붙여서 조사심(祖師心)을 매몰(埋沒)치 말아라. 조사의 마음을 매몰허지 말아라’ 이렇게 해 놓고 할(喝)을 했다 그 말이여. '억!' 이렇게 따악 조졌어. 또 해 놓고는, ‘또 어떤 사람은...’ 이거 인자 이 오늘 아침에 새로 허는 거야.
‘유운(有云), 어떤 학자는 무자(無字)를 이르되 시계려궐(是繫驢橛)이다. 나귀 매는 말뚝이다’ 그러네. 나귀 매는 말뚝, 나귀란 놈이 그놈이 그 영리해서 분별이, 그 영리한 분별이 보통 말보담도 10배여. 아주 고놈이 뭐 영리해. 당나귀라니 굉장하다 그 말이여. 그 나귀 매는 말뚝이다.
'일체 망상을, 자꾸 일어나고 멸허는 기멸(起滅) 망상을 말뚝에다 나귀 매듯기 무(無)가, 무(無) 그것이 망상 못 일어나게 해 논 것이다. 아무것도 망상도 없지마는 망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가 전연 없고 전후가 다 아무것도 없고, 없는 놈까장도 거기는 붙들 못허는 말뚝이니라' 요렇게 말을 허네. 그건 후어(後語)를 붙이지 말라고 헌 말만도 못혀.
요렇게 말허는 학자가 또 있으니 ‘이재하처(爾在何處)하야 몽견조주(夢見趙州)냐? 네가 어느 곳에 있어 꿈에 조주를 봤냐? 꿈에 조주를 봐 가지고 요런 소리를 허느냐?’ 조주의(趙州意)?
욕득불초무간업(欲得不招無間業)인댄, 네 이놈 네가 무간죄업(無間罪業)을 짓지 않을라거들랑 여래(如來)의 정법륜(正法輪)을 비방(誹謗)하지 말아라. 네 여래의 정법륜 비방한 거 아니냐?
나귀 매는 말뚝이여? 낱낱이 집어내는 거여 지금. 그러니 무슨 견성했다고 무슨 뭐, 뭣 했다고 그 그 견성헌 것이 그런 거여? 견성해 놓고 보니 그려? 그거 아니여. 그런 법 없어
‘여래정법륜(如來正法輪)을 비방(誹謗)치 말아라. 허다폐병(許多弊病)을 도염거야(都拈去也)다. 여 앞에 전부 내려오면서 병을 다 내가 여 잡아내 논 것이다’
후어(後語)를 붙이들 말어라. 후어(後語) 밑에 요 말 하나 만들어 놓고는 딱 그쳐 버렸어. 이걸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이라 해야. 무자의 십절목을, 내가 여기 와서도 법문 인자 어느 때 한번 허고, 이번에 두 번째 한가 부여.
초학자(初學者) 처음 학자, 단순한 학자, 올 여름 학자 그 잘 모여서 하도 지극히 도를 닦고, 하! 운력(運力)을 시켜보면 알아. 꼭 같이 나와서—그만 그저 뭐 운력 쪼끔허면 그만 대가를 취허고, 그만 뭐 한 시간 고것 하는데 대가를 취하고, 고런 그 요망스런 행동헌 것들 그만 쫓아버렸더니, 인자 옳은 학자가 모아서 참 잘 되았다 그 말이여. 내가 바른 대로 말하지 무슨...
이렇게 잘 하거든. 무엇을 말라고 해도 꼭 와서 인자는 허네? 제발 말라고 해도 그 시간에는 착착 들어선다 그 말이여. 그 한 시간썩 일을 해서 왼 대중이 잘 도(道) 양식, 모도 부식대 돈 일절 한푼도 안 들이고 사서 똑 먹고. 아! 이러고 도를 닦아 나간다 그 말이여.
아! 인자 식량은 없다고 했는디 식량은 자꾸 공양이 들어온다 그 말이여. 올 여름 같이 또 수박도 많이 들어오고, 저 외처(外處)에서 공양이 자꾸 들어왔다 그 말이여. 떡을 해 가지고서는 짐으로 그만, 차로 싣고 들어와서 떡 공양을 얼마, 며칠을 했냐 그 말이여. 아 그만 여의식(與衣食)을 헌다 그 말이여. 족(足)하지. 도(道) 닦기가 족하고.
이렇게 진실허게만 정성스럽게만 학해(學解) 내지 말고, 알음알이 붙이지 말고, 닦아 나갈 것 같으면은 그 “무(無)!” 언하(言下)에, 그 여그 그랬어요? 언하대오(言下大悟)라는 게 조끔도 내가 뻘로 헌 소리 아니여. 영리한 놈은 직하흔번(直下掀飜)이다. 직하흔번이라는 것이 언하대오(言下大悟)란 말이여.
영리한 놈은 “무(無)!” 헌디 바로 봐 버릴 게다 그 말이여. 아는 것이 아니여. 바로 봐 버린다 했지. 견성(見性)이라고 했지. 견성, 견성이라고 했지. ‘성(性)을 본다[見]’ 했지. 성지(性知)라, 뭐 ‘성(性)을 안다’고는 안 했어. 본 것[見]은 지(知)와 달라. 각(覺)이래야 성이여. 견성(見性)이여.
‘허다폐병(許多弊病)을 다 잡아내 버렸으니, 도염거야(都拈去也)니 필경자개무자(畢竟這箇無字)는 낙재심마처(落在甚麽處)냐? 그 무자의지(無字意旨)가 어디에 있어서 이렇게 병통을 많이 가려내 놨느냐?’ 이렇게 말씀을 해 놨다 그 말이여. 허니 무자(無字)나, 이뭣고?나, 판치생모(板齒生毛)나 똑같여.
‘어째서 무(無)락 했는고?’나, '무(無)' 있다 없다 그런 것 소용없어. '무(無)!' 있단 말도 아니고 없다고 무(無)가 뭔 말이여, 무(無)가? '무(無), 어찌 무(無)라고 했는고?' '무(無), 무(無)라니?' 이렇게 다롸 해 나갔다 그 말이여.
만공 스님과 저 혜월 스님과 혜봉 스님 같은 큰스님네가 다 그렇게 해 나갔다고 우리를 가르쳤어. '무(無), 어째 무(無)라고 했는고?' 이렇게 해 갈 것이고.
‘이뭣고?’ 헌 이는 ‘이뭣고?’여 ‘이뭣고?’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냐(恁麽來)?” 꽉 맥혀 몰랐으니 ‘이뭣고?’여. ‘이- 뭣고? 이뭣고?’ 이뭣고? 뿐이여.
또 허면 또 ‘이뭣고?’, 또 허면 또 ‘이뭣고?’, 암만해도 이뭣고는 밑천이 떨어지지 않네. 그 이뭣고는 밤낮 나오네. 천년만년이고 두고두고 나온다 그 말이여. ‘이뭣고?’를 알 수 없으면 밤낮 알 수 없는 놈만 나오네. 백 번 허고 천 번 해도 더 알 수 없는 놈만 나오네. 그것이 화두(話頭)여.
알 수 없는 놈이, 알 수 없는 의지가 없고, 알 수 없는 의정(疑情)이 없고, 뭔 지(知)가 붙으면, 빼꼼허니 뭔 아는 것이 뭐 제 소견이 붙으면, 그것은 숭악한 사마외도선(邪魔外道禪)이여. 된 법이 없어.
‘잘되니, 못되니’ 뭐 인증해서 ‘요런 것인가, 조런 것인가?’ 거 사견선(邪見禪)이라 못써. 삿된 선, 사견선이라는 것은 제일 못쓸 것이 사견선(邪見禪)이여. ‘이뭣고?’ 밖의, 알 수 없는 밖의 딴 것은 다 묵조사선(默照邪禪), 삿된 선, 사견선, 견성헌 법이 없어. 견성 아니여.
‘어찌 무(無)락 했는고?’ 요렇게 해 나갈 따름이고.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판자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 조주 뜻 찾는 것이여. ‘판치생모?’ 요렇게 해 나가는 것이여. 오늘은 또 법문이 대중법문이 있을 터니까 여까장 끝을 마쳤어.
허다폐병(許多弊病)을 다 잡아냈으니 필경(畢竟)에는 이 낱 무자의지(無字意旨)는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여까장. (35분50초~53분5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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