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16. 8. 1. 19:47

§(706) (게송)월원불유망~ / 정진은 ‘한 생각을 어떻게 잡드리 하냐?’ 가장 중요 / 최상승론 / 참선은 생사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 / (게송)운주천부동~.

어떻게든지 해서라도 알뜰하게 착실히 정진을 할라고 마음을 먹은 것은 발심(發心)한 사람이면 다 그런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마는 ‘육체를 고통을 줌으로해서 정진에 더 유익하게 하리라’ 이러한 생각은 썩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어떻게 하면 생사 속에서, 성주괴공 속에서, 생주이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려는 길이 무엇이냐? 영원함을 깨닫는 방법이 무엇이냐?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문(法門)이요, 조사(祖師)의 법문이요. 바로 이 화두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 나가야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거나, 보여지는 것이 있거나, 사량분별로 해 가는 것은 백만겁을 해도 그것은 바른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이 속에서도 정법을 믿는 여러 도반들을 생사 무상 속에서 화두를 들고 착실히 하루 하루를 지내간다면 거기에는 언제나 부처님이 출현을 하신 것이고, 거기에는 항상 조사 스님이 우리를 위해서 눈에 안 보이는 채찍질을 해 주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로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는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우리 앞에는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06)—2006년(병술년) 동안거 결제 법어(06.12.05) (용706)

(1) 약 20분.

(2) 약 21분.


(1)------------------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하고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는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 위봉사 위봉선원, 승련사 승련선원, 대전 세등선원 또 복전선원, 회룡사 선원, 그러고 각지 토굴 사암에서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청신사·청신녀, 형제 자매 도반 여러분들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모여서 결제(結制) 법요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금방 결제 법어는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가 이 결제 중에 어떻게 정진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감동 깊게 법문을 들었습니다.
산승이 더이상 여러분에게 할 말씀은 없습니다마는 기왕 우리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노바심(老婆心)으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법문을 듣고 또 결제에 들어가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번 한 철은 정말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열심히 정진(精進)을 하리라’ 다 다짐은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짐하는 그 마음가짐은 대단히 좋으나 ‘식사를 좀 적게 먹어서 혼침(昏沈)을 좀 막으리라, 먹고 싶은 대로 잔뜩 먹으면 졸음이 더 올테니까 될 수 있으면 적게 먹고 졸음을 쫒으리라’ 이런 생각을 낼 수도 있을 것이고,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말을 하다 보면 자연히 잡담이 나오게 되고, 잡담을 하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주 입을 꽉 닫거나, 입을 아주 묵언을 하지 않드라도 ‘될 수 있으면 말을 적게 하리라’ 이러한 다짐을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단히 좋은 생각이고 어떻게든지 해서라도 알뜰하게 착실히 정진을 할라고 마음을 먹은 것은 발심(發心)한 사람이면 다 그런 마음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마는 ‘육체를 고통을 줌으로해서 정진에 더 유익하게 하리라’ 이러한 생각은 썩 지혜롭지 못한 생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육체라 하는 것은 기계와 같아서, 아주 정밀한 기계와 같아서 적당한 기름을 쳐줘야 하고 그 기계를 적당하게 지혜롭게 조정을 해야 그 기계가 잘 돌아가고 그 기계의 목적을 달성을 해서 무슨 물품을 잘 생산해 낼 것입니다.
이 육체도 과식하고 너무 영양을 많이 섭취하고 그래서는 안되겠지마는 적당하니 먹고 잘 저작(咀嚼)을 해서 먹고 그래야지, 잠도 최소한도로 잘 만큼 자 주어야지 잠을 억지로 안 자 놓으면 그 이튿날 정진을 할 때 정진 중에 자꾸 졸음에 빠져가지고 오히려 성성(惺惺)하게 화두가 잘 안 들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참으로 정진을 잘할 수가 있느냐?
용을 쓰고, 눈썹을 찌푸리면서 용을 쓰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올바른 정진이 아니고 자세는 바르게 하되 너무 용을 써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다 구참(久參) 스님네들도 많이 계시고 구참 청신사 청신녀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이 자리에는 처음으로 나온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발심을 해서 나오신 분도 상당수 있기 때문에 초학자(初學者)들을 위해서 이런 노바심절(老婆心切)에서 말씀을 드린 것이니 그렇게 이해하시를 바랍니다.

해태(懈怠)에 떨어지지 아니해야 그것이 정진이고, 해태의 반대말이 정진인 것입니다.
정진이라 하는 것 용을 쓰고, 밥을 안 먹고, 잠을 안 자고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혼침을 졸음을 쫓고 한 모다 그런 것도 한 방편이 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진정한 정진이라 하는 것은 지나치게 육체를 들볶고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공양(供養)하는 시간에 잘 씹어서 적당히 공양을 하되 공양을 씹으면서도 떠억 화두(話頭)를 잡드리 하고, 소지(掃地)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잡드리를 하고, 포행을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잡드리 하고,
일체 잡담 쓸데없는 말하는 데에 참섭(參涉)은 아니허되 다른 사람이 말을 하거나 말거나 자기가 거기에 끌려들어가지 아니하면 되는 것이지, 남이 말하고 남이 하는 것에 대해서 구태여 시비를 일으키고 그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조사(祖師) 스님네 어록(語錄)을 보면 3일만에도 깨달은 분도 있고, 7일에 깨달은 분도 있고, 백일에 깨달은 분도 있고, 3년에 깨달은 분도 있고, 10년에 깨달은 분도 있어서 이런 것은 과거에 전생부터서 어떻게 닦아왔느냐 그런 것도 작용이 되려니와,
금생에 어떻게 정진을 해 왔으며 어느 선지식의 지도하에 했느냐, 어떠한 도반들을 만나서 정진을 했느냐,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정진을 했느냐, 모다 그런 것들이 다 복합적으로 작용이 되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는 것입니다마는.

과거에 어느 분이 그렇다고 해서 ‘자기도 그와 똑같이 해서 단시일(短時日) 내에 요절을 내리라’ 이러한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됩니다.
날짜야 시간이야 몇 달이 걸리건, 몇 년이 걸리건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아니하고, 당장 이 철 또는 오늘 또는 당장 이 시간, 이 한 생각을 어떻게 잡드리 하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올바르게 잡드리 하면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그렇게 해서 석 달 뒤에 해제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석 달이 어떻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잡드리 했느냐가 그것이 중요한 거지, 시간을 그렇게 크게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의 법문에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다 일대사를 해결했는데 나는 왜 오늘날까지 생사 문제를 해결을 못했느냐? 이런 데에 대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에 대해서, 그리고 화두를 타고 정진을 한 사람은 의심(疑心)이, 자기 마음으로부터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하는 정성심(情誠心)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심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속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진실한 발심이 아니고 진실한 분심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이러한 오조 스님이 직접 화두란 단어는 사용하지 아니했지마는 그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법문 끝에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요연(了然)히 수본진심(守本眞心)을 하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양치(佯癡)라 하는 것은 ‘거짓 양(佯)’자, ‘어리석은 치(癡)’자 양치입니다.
‘거짓 양(佯)’자, ‘병들 병(病)’자 양병(佯病)이라 하면 사실은 병이 안 났는데 병이 난 것처럼 거짓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이라 하는데, 실지는 바보도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지마는 바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바보 노릇을 하냐 하면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바보 노릇을 하라 이것입니다.

선방에 와 가지고 똑똑한 체 하고 잘난 체 하고 그래가지고 시비(是非)를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대중을 소란케 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양치(佯癡)가 아니라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방에 와서는 ‘내가 과거에 좋은 훌륭한 대학을 나왔거나, 과거에 무슨 자랑할만한 경력이 있거나 무슨 말을 잘하거나 외국어를 잘하거나, 수단이 있어서 무슨 일을 잘 처리하고, 무슨 재주가 있어서 뭣을 그림이나 글씨를 잘 그리고, 물건을 잘 만들고...’ 그런 생각을 다 버리고, 또 출가한 뒤에 선방에 나온 지가 여러 철이 되어서 구참이 되거나 그런 생각도 다 버리고,
오직 말귀도 못 알아들은 바보가 되어 가지고, 거짓 바보가 되어가지고 하루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한 달 한 달을 그렇게 지내서, 그러면서 속으로는 떠억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을 해서 퍼뜩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또 놓치면 또 챙기고 해서, 그렇게 해서 누구하고 잡담 할 겨를도 없고.

밥이 맛있거나 없거나 반찬이 맛이 있거나 말거나, 밥이면 밥,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라면이면 라면, 그저 원주 별좌 공양주가 정성껏 해다 올리면 그저 죽비(竹篦)에 따라서 공양을 들되 숟갈을 들고 밥을 뜨고, 저분으로 반찬을 들고 한 것이 이것이 전체가 화두를 드는 의심속에서 그렇게 하되,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한 철을 하루 하루를 지내면 반드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마침내는 의단을 타파(打破)하고 자기의 본각(本覺)을, 본성(本性)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바보 노릇을 하면서, 말귀도 못 알아들은 바보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정진(精進)을 해야 기력(氣力)은 적게 소모하고서도 정진에 크게 공(功)이 있으니 이렇게 정진한 사람을 과연 대정진인(大精進人)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조 스님 당시에 화두라고 하는 그 간화선법(看話禪法)은 없었으나 그때 화두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면 오조 스님께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듯 또 산승(山僧)이 지금 말한 것처럼 화두를 어떻게 거각을 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한다면 석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 모르는 사이에 석 달이 지나가서 정말 정진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틀이 석 달을 지내고 나면 자리가 잡혀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내가 오늘 부탁을 드리는 것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하고.(처음~19분44초)

 

 

 



(2)------------------

또 그 선원에 주지 스님이나 선원장이나 또 삼직(三職) 스님네나 원주·도감·별좌·공양주·채공을 맡으신 그런 분들은 정말 선방 방부 들인 스님네가 구참인 되었건, 새로 나오신 신참이 되었건 어떤 분이 오셨거나 간에 반드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는 그 후보자가 오셨다—지금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확철대오 해서 불법을 선양하고, 이 새로운 부처님이 탄생하실 그런 분들’이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서 잘 외호(外護)를 해 주시를 부탁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 해서 그 선방이 정말 장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선신(善神), 불보살(佛菩薩)들이 항상 그 도량(道場)에서는 다 왕림하셔서 호념(護念)을 해 주실 것이고, 선신들도 다 외호를 잘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비록 전라도·경기도·충청도 이렇게 장소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선원마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외호 대중이나 정진하는 스님네가 그렇게 정진을 하신다면 바로 이 한 자리에 모여서 아까 이 법회가 시작하기 전에 몇 분 동안 우리가 죽비를 치고 입선(入禪)을 했습니다마는,
여러 멀리 떨어져 있는 도량에 계시더라도 우리가 시간 맞춰서 한 도량에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불보살이 항상 호념해 주신 가운데에 그렇게 정진을 한다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내시기를 바래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내면 반드시 우리는 어데서라도 한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해서 우리는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고, 탈선한 사람이 없고 그러기 위해서 결제(結制)날 이렇게 날씨도 춥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우리는 모이게 된 것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교통도 위험하고 그러니 다 각기 있는 절에서 정진을 하지 이렇게 먼 데 오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지마는 그래도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고 보니—산승도 참 멀리서 모다 잘 정진을 하리라 결제도 잘 하리라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러나 이렇게 모여서 직접 여러분을 상면 하고 같이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산승이 이렇게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을 드리게 되니 산승도 대단히 마음에 참 감격스럽고 결제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에 의해서 우리는 잘 한 철을 어떻게 정진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히 들었고, 산승이 또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여러분께 이렇게 부탁을 드리게 되니,
아까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달이 둥글어지면 보름달이 되면은 그날부터서 차츰차츰 적어져서 결국은 조각달이 되어가다가 결국은 없어지는 거고,
해가 아침에 동쪽에서 떠서 차츰차츰 올라와서 하늘 중천(中天)에 이르게 되면 그대로 중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 초 일 초 시간이 지내감에 따라서 차츰차츰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日中爲之傾)

달과 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고대로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이 삼라만상 모든 것은,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어서 이루어지면은 잠시동안 머물러 있다가 차츰차츰 변해가지고 무너져서 결국은 언젠가는 없어져 버리는 거고,
우리의 육체도 부모로부터서 태어나면 조그만한 어린아이가 차츰차츰 젖을 먹고 밥을 먹고 커서 어른이 되고 사십 오십이 되면은 차츰차츰 장년(壯年)이 되어가지고, 오십 육십이 되면은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나고 해서 눈도 침침해지고 귀도 어두워지게 되고 병이 나면은 결국은 죽게 됩니다. 한 사람도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궂은 생각이건 간에 생주이멸(生住異滅)이—생각이 일어나면 잠시 그 생각이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옮겨가지고 결국은 그 생각은 꺼지고, 그리고 또 생각이 일어나면은 그 생각이 일어났다가 변해가지고 그 생각이 꺼지게 됩니다.

그런 것이 바로 무상(無常)한 것이요, 그러한 생각이 결국은 생사윤회(生死輪廻)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 우리는 현재 놓여있습니다.
그러한 속에 놓여 있으면서 우리는 생사(生死) 속에 있으면서 그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出家)를 했고 불법을 믿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생사 속에서, 성주괴공 속에서, 생주이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려는 길이 무엇이냐? 영원함을 깨닫는 방법이 무엇이냐?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문(法門)이요, 조사(祖師)의 법문이요. 바로 이 화두라고 하는 것이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화두라 하는 것은 글을 통해서 자기가 선택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반드시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서 지시를 받아가지고 그 화두 하나를 가지고 참구(參究)해 나가는데,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활구와 사구는, 의리(義理)로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교리적으로 따졌거나 철학적으로 따졌거나 따져 들어간 것은 그것은 사구(死句)라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따져들어가는 것이 없이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이뭣고?’면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면 정전백수자,
‘이뭣고?’ 또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판치생모를 하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 나가야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거나, 보여지는 것이 있거나, 사량분별로 해 가는 것은 백만겁을 해도 그것은 바른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발심해서 처음 선방에 나온 신참(新參) 학자는 이 점에 대해서 각별히 유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한번 화두를 탔으면 아무리 안되어도 고대로 해 나가고 또 해 나가야지, 화두가 잘 안된다고 해서 다른 화두를 들고 해 보거나 다른 스님네한테 가서 다른 화두를 타 가지고 해볼랴고 하는 그런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서 샘을 파는데 1m, 2m 파고들어가도 물이 안 나온다고 해서 또 자리를 옮겨서 또 파고, 또 파다가 몇 미터 파고들어가서 안되면 또 옮기고 하면 그 사람은 십 년을 판다 하드라도 수백 개의 우물을 판다해도 좋은 물은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 그래서 샘을 팔 때에는 자리를 잘 잡아야 합니다. 자리를 잘 잡아서 꼭 물이 나올 수 있는 그 수맥(水脈)을 아는 그런 사람을 청해 가지고 어느 장소에다 파면 좋은 물이 나오겠는가?
그 자리를 딱! 잡았으면 5m, 10m, 20m, 50m, 100m라도 파고들어가서 마침내 암반이 나오면 그 암반을 뚫어야 그 속에서 가뭄을 타지 않고, 춘하추동 아무리 가뭄이 들더라도 증감이 없이 한결같은 좋은 물을 얻어서, 많은 좋은 물이면서 많은 물을 얻어서 몇 년을 먹어도 상관이 없고 몇십 년을 먹어도 변함이 없는 그런 물을 얻듯이 화두를 참구해서 참선을 하는 사람도 그러헌 진실하고 독실한 그런 발심과 원력(願力)으로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이라 하는 것이 결코 수월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 생명을 바칠만한 그러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으로 해 가야, 이 삼요(三要)를 갖추어 나가야지 하나만 빠져도 그것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달은 둥글어도 보름달도 기울어지고, 해는 정오가 지내면은 서쪽으로 기울고 그러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는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정전백수자는, 뜰 앞에 잣낭구는 춘하추동 사시절에도 변함이 없이 홀로 푸르구나’ 이런 고조사(古祖師)의 게송(偈頌)을 읊었습니다.

이런 한결같은 마음으로 한 철 동안을 잘 정진하시기를 바래고, 이 자리에는 법문만 듣고 자기 토굴(土窟)에 들어가서 정진을 헐라고 하는 분도 있고, 가정에서 생활하면서도 정진헐라고 하는 그러한 신도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방부를 들이고 선방에 지내시거나, 결제에 참석을 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정진을 하거나 간에 이렇게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의 간절한 간곡한 부탁드리는 말씀을 명심을 하고 지내시면 어데서 지내시거나 항상 우리는 한 선방에서 지내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 그렇게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백일기도 입제일입니다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날마다 와서 기도는 못하시더라도 가정에서도 결제에 동참하셨고,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셨으니 정진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석 달 동안을 잘 지내시고 건강하게 그렇게 잘 지내시고 알뜰히 정진하시고 내년 정월 보름날 해제 때 또 이 자리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기를 바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운주천부동(雲走天不動)이요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이라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리요
나무~아미타불~

운주천부동(雲走天不動)이요, 구름은 바람에 따라서 달아나고 있지마는 저 위에 하늘은 움직임이 없고,
주행안불이(舟行岸不移)라, 배는 물결따라 흘러가고 있지마는 양쪽 기슭은 움직임이 없구나.

본시무일물(本是無一物)인데  하처기환비(何處起歡悲)리요.
본래 이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기쁨과 슬픔을 일으키리요.
이조 때에 큰 도인이신 편양 언기(鞭羊彦機)선사의 게송입니다.

이 세상은 나라도 여당과 야당 모다 이 신문을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마는 모든 것이 한결같지 않고 어수선하고 복잡하고 온 세계가 도처에서 전쟁을 하고 사람이 죽고 모다 핵 실험을 하고 모다 복잡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보거나 걱정이 안되신 바는 아니겠으나 그렇게 복잡하드라도 그 속에서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으로라도 들으시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자기가 맡은 바 일을 착실히 하고, 착실히 하는 가운데 화두를 들고 정진한다면,
구름이 지나가도 하늘이 움직임이 없고, 배가 지내가도 양쪽 기슭은 움직임이 없듯이 산천초목이 춘하추동에 따라서 잎이 피고 꽃이 피었다 가을이 되면 다 단풍이 져서 떨어지고 겨울이 되면은 흰눈이 내리드라도 잣나무는 푸르름을 지키듯이,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이 속에서도 정법을 믿는 여러 도반들을 생사 무상 속에서 화두를 들고 착실히 하루 하루를 지내간다면 거기에는 언제나 부처님이 출현을 하신 것이고, 거기에는 항상 조사 스님이 우리를 위해서 눈에 안 보이는 채찍질을 해 주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로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는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우리 앞에는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19분44초~40분1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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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월원불유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草堂咏栢(초당영백,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음)’ 게송 참고.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노바심 ; 노파심(老婆心).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힘.
*구참(久參 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것. 오랫동안 선(禪)을 닦은 것.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에 귀의한지 오래 되는 것. 초학(初學)의 상대어.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공양(供養) ; 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참섭(參涉 참여할·간여할 참/건널·관계할 섭) ; 남의 일에 참견하여 아는 체함.
*요절을 내다 ; ‘어떤 뜻한 바 일을 끝마치다’의 강한 표현.
*오조 홍인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성심(情誠心 진심·성심·참마음 정/정성·진실 성/마음 심) ; 정성심(精誠心).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다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했는데, 무슨 연고로 나는 아직도 생사 문제를 해결 못했나? 진실로 온 힘을 다하여 이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
*요연히(了然- 밝을 요/그럴·명백할 연) ; 분명하고 명백하게.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각(本覺) ; 본래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 부처님의 본래의 깨달음.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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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직(三職) ; 주지(住持)를 돕는 세 직책. 곧 총무, 교무, 재무를 말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도량(道場) : 사찰.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호념(護念) ; 불보살이 선행을 닦는 중생을 늘 잊지 않고 보살펴 주는 일.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중천(中天 속·한가운데 중/하늘 천) ; 하늘의 한가운데.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 六途)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生), 사(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게송) ‘운주천부동~’ ; 『편양당집(鞭羊堂集)』 (1권) ‘차동림운(次東林韻)’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6. 6. 15. 10:29

 

 

§(712)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신심·분심·의심 삼요(三要) / ‘이뭣고?’화두가 화두의 근본 / 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발해야.

 

정진을 할려면 첫째 철저한 신심(信心) 있어야 하고, 신심이 있으므로 해서 분심(憤心), 분발심(奮發心) 있어야 하고, 신심과 분발심을 바탕으로 해서 화두(話頭) 들어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슨 신심(信心)이냐 하면은우리도 여법(如法)하게 열심히 수행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가 있고, 성불(成佛) 수가 있다 하는 신심입니다.

 

오종(五宗) 가운데에 임제종(臨濟宗)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이라 해서 화두를 의심을 가지고 깨닫는 간화선입니다마는, 간화선이라 하는 것은 육조 스님으로부터시삼마(是甚)’ 화두가 나왔고, 뒤로 임제(臨濟) 스님이 화두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법을 설법을 하셨고, 뒤로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서 간화선이 체계화가 되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때부터서 화두란 말은 없었지마는 화두의 근본 이념은 법문 속에 들어있습니다.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2)—2007(정해) 하안거 결제 법어. (용712)

 

(1) 약 12분.

 

(2) 약 11분.

 

(1)------------------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생사 진로(塵勞) 멀리 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승두(繩頭) 잡고 한바탕 공부를 해야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한번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뒤끝에 매화꽃이 피어야 매화꽃 향기가 진동하는 법인데, 겨울 날씨가 뜨뜻해 가지고 강추위를 하지 아니하면 뒤끝에 매화가 피어봤자 별로 향그럽지 못하다.

 

게송은 황벽(黃檗) 희운(希運)선사, 조사께서 우리 후래(後來) 선학자, 수행자를 위해서 특별히 읊어 주신 게송(偈頌)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생존시에 법회 많이 게송을 읊어서 설법을 하셨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경청했습니다. 구구절절이 참선해 나가는 있어서 요긴한, 우리가 뼛골에 사무치도록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는 가운데 정진을 해야 그러한 금쪽 같은 법문(法門) 들었습니다.

산승이 더이상 여기 법상(法床)에서 말이 없습니다마는 이렇게 용주사 대중・복전암 선방・회룡사・승련사・위봉사・화운사 그리고 세등선원 결제(結制) 대중들이 법당 가득히 모였으므로 격려의 말씀을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금번 여름에 방부(房付) 들인 수좌(首座) 대중 가운데에는 철에 나온 그런 수좌들이 있기 때문에 화두를 들고 정진해 가는데 말씀 부언해서 말씀하고자 합니다.

정진을 할려면 첫째 철저한 신심(信心) 있어야 하고, 신심이 있으므로 해서 분심(憤心), 분발심(奮發心) 있어야 하고, 신심과 분발심을 바탕으로 해서 화두(話頭) 들어야 의심이,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슨 신심(信心)이냐 하면은우리도 여법(如法)하게 열심히 수행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가 있고, 성불(成佛) 수가 있다 하는 신심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인물이 잘나거나 못났거나, 학식이 깊거나 학식이 별로 없거나 그런 것이 전혀 상관이 없이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불성(佛性)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을 하면 반드시 우리도 조사(祖師)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신념이 확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념이 확고하면 우리는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버리고, 형제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 출가(出家) 했고, 설사 세속에 출가 아니하고 산다하더라도 어쩔 없이 가정을 벗어날 수는 없으나 가정에서라도 따라서, 따라서 열심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가정에서도 녹음을 통해서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을 한다면머리를 깎지 않은 신남신녀, 청신사 청신녀의 신분으로도 과거에 깨달은 분이 많습니다비록 출가는 했어도 열심히 올바르게 정진하면 깨달을 있다고 하는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분심(憤心)이라 하는 것은내가 인생으로 태어나서 오욕락(五欲樂)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했으니 어찌 초라도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겠는가. 과거에 불보살은 진즉 해탈도을 얻어서 중생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깨닫지 못했는가.

지금이라도 불법을 듣고 알고 믿었으니 어쨌든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를 챙겨서 정진을 해야겠다그런 분심이 항상 가슴속에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있다면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종(五宗) 가운데에 임제종(臨濟宗)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이라 해서 화두를 의심을 가지고 깨닫는 간화선입니다마는, 간화선이라 하는 것은 육조 스님으로부터시삼마(是甚)’ 화두가 나왔고, 뒤로 임제(臨濟) 스님이 화두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법을 설법을 하셨고, 뒤로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서 간화선이 체계화가 되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때부터서 화두란 말은 없었지마는 화두의 근본 이념은 법문 속에 들어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간단한 한마디고 문헌에 『염송(拈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있습니다마는, 화두의 최초의 근본은시삼마(是甚) 이뭣고?’ 화두입니다. ‘ 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것이불성(佛性)이다, 자성(自性)이다그런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 화두면어째서 ()라고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면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떠한 화두를 하고 간에 깨달을 때에는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골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이이뭣고?’ 화두가 화두의 근본인데, 이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없는 의심뿐인 것입니다. ‘이뭣고?’

 

입으로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염불하듯이, 진언 외우듯이 그냥 입으로만이뭣고. 이뭣고.’ 하는 것이 아니라이뭣고?’ 없는 의심이 있어야 화두를 올바르게 드는 것이고, ‘이뭣고?’ 오래 하다보면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시 되잡아서 이렇게 들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 ~’하는 이놈이 무엇인가? 없는 의심(疑心)입니다.(처음~123)

 

 

 

 

 

(2)------------------

 

그런데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려면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호흡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숨을 쑤욱 들어마셨다가 한참 있다가 내쉬는 것입니다. 내슀으면 다시 스르르 들어마시고.

들어마실 때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배꼽 밑에 단전(丹田) 부위가 볼록하니 나오도록 느끼면서 들어마셨다가 한참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되, 내쉼에 따라서 차츰차츰 배가 홀쭉하게 하는 것입니다. 호흡이 나가면은 스르르 들어마시고, 이것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인데.

 

단전호흡을 처음에 준비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준비 호흡은 빨리 잔뜩 가슴으로 들어마셔요. 가득 들어마셨다가 ~ 하고 내쉽니다. 점도 남김 없이 내쉰 다음에는 스르르 빨리 들어마셔요. 번을 이렇게 준비호흡을 하고 다음에 정식으로 단전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들어마실 때는 스르르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볼록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들어마셨다가 한참들어마신 시간 4, 5, 잠시 머무르는 동안이 3, 4, 내쉬면서 4, 5, 대충 10 가량 걸려서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무리하게 오래 참아서는 아니됩니다.

 

자기의 그때 상황에 따라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조용히 이렇게 호흡을 하는데, 단전호흡을 함으로 해서 건강도 좋아지고 소화도 잘되고 혈액순환도 잘되고 해서 건강이 좋아야 정진을 올바르게 수가 있고,

이뭣고?’ 화두를 열심히 들다 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상기(上氣) 되는 수도 있고, 소화가 안되는 수도 있고 그러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어야 상기병도 걸리고, 소화도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심(信心) 분심(憤心) 의심(疑心), 신분의(信憤疑) 가지 요긴한 것과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의심을 하되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뭣고?’ 눈썹과 사이 중간을 찌푸리면서이뭣고! 이뭣고!’ 자꾸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이뭣고?’ 화두를 단전에다 두고 화두를 드는 것을 자꾸 하다 보면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까지는 가지 요소를 지키면서 잘해야지, 처음에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러한 자세와 호흡과 의심을 드는 것을 모르고서 화두를 심하게 힘들여서 하게 되면 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이 자리잡기 전에 병부터 나는 것이니,

초학자(初學者) 산승(山僧) 설한 『참선법(參禪法)』이라고 하는 녹음테이프가 있으니까 그것을 들으면서, 이러한 자세히 공부하는 법을 말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들으면서 기초를 잘해 가지고 그래가지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것입니다.

 

게송에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황벽 스님의 게송을 읊었습니다마는 게송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를 못하면 육체를 억압하고 들볶고 무리하게 하는 것을 바로 용맹정진(勇猛精進), 가행정진(加行精進)이라고 착각을 수가 있습니다.

육체를 갖다가 잠을 자지 않고 밥을 굶고 묵언을 하고, 모다 수행자들이 이렇게 해서 육체를 억압을 하는 것으로써 정진을 열심히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산승도 묵언도 봤고, 단식도 봤고, 잠도 있으면 잘라고 애를 써봤습니다마는, 결과 그렇게 것만이 정말 올바르게 용맹정진한 것이 아니다고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후배 여러분들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컷 먹고, 실컷 자고,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잡담을 하고 그러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지 참선을 하는 사람은 필요한 외에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고, 잠도 선방에서 지정된 여섯 시간이—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니까 여섯 시간을 자도록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선방 스님네들은 그렇게 여섯 시간을 수가 없어서 설사 잠잘 시간에도 시간을 잠자지 않고 자고 할라고 애쓰고.

3시에 일어나게 되었지마는 30분이나 시간 자고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앉아서 정진을 하는 그러한 스님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잠을 잔다던지, 아주 말을 한다던지, 밥도 적당하니 먹어야지 너무 과식을 하면 아니된 것입니다. 과식을 해야 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밥을 적게 먹어도 그것도 영양이 부족해서 정진을 계속해서 하기 어려우니, 말과 수면과 먹는 것도 지혜롭게 해야 앞으로 꾸준히 정진해 나가는데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한다. 진정으로 신심을 내야 한다 그런 구절이 나왔습니다마는 신심이다, 분심이다, 의단이라 하는 것이 억지로 하는 것과 저절로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차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득불 억지로 신심도 내고, 분심도 내고, 의심도 내려고 몸부림을 수밖에는 없겠습니다마는,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억지로 겉으로 지어서 가지고는 몸만 괴롭히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고, 안에서부터 정성심(情誠心) 솟구쳐 나오면 억지로 분심을 낼라고 해도 저절로 분심이 나고, 억지로 화두를 낼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떠억 들어지는 것입니다.

정성심이 안으로부터서 발하면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저절로 잡담을 아니하게 되고, 잠을 억지로 잘라고 해도 저절로 조금만 자도 머리가 개운하고 좋은 것입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123~2230)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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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 벌이는 ). 한판 크게.

*황벽(黃檗) : (? – 850) 법명은 희운(希運),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 어려서 신동이라고 불리더니, 강서성 서주부 황벽산에 가서 출가하였다가, 백장에게서 마조의 할에 백장이 깨치던 사연을 듣고, 자리에서 크게 깨치고 나서 백장의 법을 이었다。그 뒤에 배휴(裵休) 청을 받아 여러 곳에서 교화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이름을 처음 출가하던 이름 그대로 황벽산이라 하였다.

그가 염관사(鹽官寺) 있어 예불하는 자리에서 뒷날의 선종(宣宗) 그에게 법문을 묻는데, 그가 번이나 뺨을 때린 일이 있었다。뒤에 선종이 즉위하여 그에게추행사문(麤行沙門)’ 행실이 거친 중이란 법호를 주려고 하자, 휴가 간하기를 『황벽선사가 폐하에게 손질한 것은, 폐하의 삼제(三際 三世) 윤회를 끊는 뜻입니다』하여 단제선사(斷際禪師) 호를 내리게 되었다.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방부(房付 ·거처 /·부탁할 )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 이르기까지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조사(祖師) : 1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 () 상응(相應)하는 도인.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오종(五宗, 五家)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六祖) 혜능(慧能) 이르러 크게 성했다.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남악회양(南嶽懷讓)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2 백장회해(百丈懷海)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 청원행사 아래 3 운암담성(雲巖曇晟)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 청원행사 아래 5 설봉의존(雪峰義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 청원행사 아래 7 나한계심(羅漢桂琛)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육조 스님, 임제 스님, 대혜종고 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참구(叅究)하는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2~53.

무자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라고 하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무자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없이 소리로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무자화두는무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무자화두와 같이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어째서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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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정성심(情誠心 진심·성심·참마음 /정성·진실 /마음 ) ; 정성심(精誠心).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무슨 연고로 나는 아직도 생사 문제를 해결 못했나? 진실로 힘을 다하여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

*오조(五祖) 스님 법문 ; 오조 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서.

經云  衆生若情誠不內發者  於三世縱値恒沙諸佛無所能爲  經云  衆生識心自度  佛不能度衆生  若佛能度衆生者  過去諸佛恒沙無量  何故我等不成佛也  只是情誠不自內發  是故沈沒苦海  努力努力. 勤求本心勿令妄漏  過去不知已過未來亦不及 今身現在有遇得聞妙去  分明相勸決解此語  了知守心是第一道  不肯發至誠心求願成佛受無量自在快樂  乃始轟轟隨俗貪求名利  當來墮大地獄中受種種苦惱  將何所及 奈何奈何  努力努力  但能着破衣飱麤飱  了然守本眞心  佯癡不解語  最省氣力而能有功  是大精進人也  世間迷人不解此理  於無明心中  多涉艱辛廣修相善  望得解脫  乃歸生死苦  了然不失正念而度衆生者  是大力菩薩(아래 밑줄친 한글 문장이 원문에 해당)

 

[법문①] 송담스님(No.644)—2000 7 첫째 일요법회에서.(11분 19초)

 

홍인대사(弘忍大師)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르되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스러운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 비록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득(無所得)이니라. 어찌할 바가 없느니라.

 

고봉 스님께서 말씀하신 선요(禪要)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단(大疑團) 갖추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결정코 공안(公案) 타파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을 수가 없다이런 말씀이 있는데 정성(情誠) 안으로부터 돈발하지 아니하면 삼세제불을 비록 만난다 하더라도 어찌해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이 바로 거기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만약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하고 말을 한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 못했을 것이냐.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돈발하지 못한 연고로 생사고해에 침몰한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부지런히 본심을 깨달라서 잠깐 동안도 한눈을 팔지 말지니라. 이렇게 오조(五祖) 스님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어. 다못 지금 우리가 현재 최상승법(最上乘法) 만났으니 분명히 서로 권고해서 선배는 후배에게 권고하고 후배는 선배를 따라서 밀고 끌면서 결정코 내가 이제 말한 법을 깊이 이해해 가지고 확실하게 자기의 본심을 지킬 줄을 알아야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일의 ()니라.

 

지극한 정성스런 마음을 발하지 못해 가지고 막연하게 성불하기를 바라고 자재해탈(自在解脫)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일이 아니고, 그럭저럭 속심(俗心) 버리지를 못하고 명예나 이끗을 탐구해서 그렇게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당래(當來) 대지옥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노력하고 노력할지니라. 이렇게 오조 스님은 간곡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 끝에 누차(屢次) 산승(山僧) 법상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바로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누더기를 입고, 먹는 것은 산해(山海) 진미(珍味)라든지 고량진미(膏粱珍味) 아니고 거칠고 머트러운 음식을 먹으면서[飱麤飱],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야, 요연히 본래의 자기 참마음을 지키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거짓 바보가 되어가지고 말귀도 알아듣는 사람 같은 그런 바보가 되어가지고 자기의 본심을 향해서 수행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힘은 최고로 적게 들이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도업을 성취할 있으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세간(世間)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아지를 못하고서 무명심(無明心) 가운데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널리 () 나타나는 그러한 () 닦음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 바래니, 그러다가 결국은 생사고(生死苦)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보통 우리는용맹정진한다. 가행정진한다결제 안거 동안에 밤잠을 자고, 먹고, 말도 아니하고 어떻게든지 알뜰하게 정진을 하려고 애를 쓰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건 대단히 칭찬할만한 일이고 갸륵한 일이 아닌 것은 아니나, 세상 사람들은 수행을 육체를 들볶는 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고 형식에 나타나는 특별한 묵언이라든지 또는 단식이라든지 또는 장좌불와라든지 그러한 여러 가지 ()으로 나타나는 수행을 함으로 해서 정말 용맹정진으로 삼는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고 것이 어찌 가시적인 그런 행동이라든지, 육체를 들볶는 것으로써 참다운 정진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조 스님은 요연불실정념(了然不失正念)하야, 요연히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만이 이것이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

쉽게 말해서 먹을 , 공양할 적당히 공양하고,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좋지 않지마는 너무 적게 자므로 해서 정말 입선(入禪) 시간에 노상 꾸벅꾸벅 많이 졸고만 있는 것도 지혜로운 수행이라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너무 음식을 적게 먹거나, 너무 잠을 적게 자거나, 옷을 너무 부족하게 입은 것도 이것도 퇴타(退墮) 인연이 되는 수가 있느니라

그래서 지나치게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지나치게 안락을 취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최소한도(最小限度) 먹을 만큼은 먹어줘야 하고, 입을 만큼은 입어줘야 하고, 최소한도로 만큼은 자줘야 그래야 평상시에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관책진(禪關策進)』에 보면너무 그렇게 초학자(初學者)들에게 말하면 마냥 먹으려고 그러고, 마냥 입으려고 그러고, 잠도 충분히 자려고 한다면 어느 겨를에 정진을 수가 있겠느냐. 적어도 초학자는 잠도 잘라고 하기도 하고, 먹는 것도 어느 정도 제한도 하고, 말이라든지 모든 것도 제한을 가면서 이를 악물고 정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처음부터서 그래서야 수가 있겠느냐이런 고인이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일요법회에 날씨도 더웁고 그런데 과거에 수없이 이런 말씀도 산승도 말했고, 전강 조실 스님도 말씀을 하신 바를 오늘 다시 중언부언 이렇게 말씀을 하게 됩니다마는, 정말 우리는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121~2321)

 

[법문②] 송담스님(No.666)—20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문에서.(5분 20초)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믿고 실천해서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 안으로부터서 ()하지 아니하면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그러한 모든 부처님을 만나뵌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능히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자기가 속에서부터 능동적(能動的)으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속에서 터져 나와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억만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사람을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중생이 자기 마음을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한 것이지,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成佛)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고 있겠느냐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되느니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사라쌍수 간에서 열반하실 유언으로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사람들의 병에 따라서 병을 진단을 가지고 좋은 약을 일러줬지만 좋은 약을 가르켜 주었지만 먹고 먹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니라

나는 인도(引導)하는 사람과 같아서, 바른 길로 안내(案內)하는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일러주었지마는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

마지막에 말씀을 하셨습니다.(912~1432)

 

[법문③] 송담스님(No.706)—2006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7분15초)

 

오조 홍인(五祖弘忍) 대사의 법문에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생사 문제를 해결을 못했느냐. 이런 데에 대한 신심과 분심에 대해서 그리고 화두를 타고 정진하는 사람은 의심이,  자기 마음으로부터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하는 정성심(情誠心) 일어나야 한다 것입니다. 그런 정성심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속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진실한 발심이 아니고 진실한 분심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이러한 오조 스님이 직접 화두(話頭)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아니했지마는 그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법문 끝에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요연(了然) 수본진심(守本眞心) 하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양치(佯癡)라는 것은거짓 ()’, ‘어리석을 ()’, 양치입니다. ‘거짓 ()’, ‘병들 ()’ 양병(佯病)이라 하면, 사실은 병은 났는데 병이 것처럼 거짓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이라 하는데,

실지는 바보도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지마는 바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바보 노릇을 하냐 하면은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바보 노릇을 하라 이것입니다.

 

선방에 가지고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고, 그래 가지고 시비를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대중을 소란케 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양치가 아니라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방에 와서는내가 과거에 좋은 훌륭한 대학을 나왔거나, 과거에 무슨 자랑할 만한 경력이 있거나, 무슨 말을 잘하거나, 외국어를 잘하거나, 수단이 있어서 무슨 일을 처리하고,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고 물건을 만들고....’ 그런 생각을 버리고, 출가한 선방에 나온 지가 여러 철이 되어서 구참이 되거나 그런 생각도 버리고,

오직 말귀도 알아들은 거짓 바보가 되어 가지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한달 한달을 그렇게 지내서, 그러면서 속으로는 떠억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거각을 해서, 퍼뜩 잊어버리면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해서 그렇게 해서 누구하고 잡담할 겨를도 없고,

 

밥이 맛있거나 없거나 반찬이 맛이 있거나 말거나 밥이면 ,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라면이면 라면, 그저 원주 별좌 공양주가 정성껏 해다 올리면 그저 죽비에 따라서 떠억 공양을 들되,

숟갈을 들고 밥을 뜨고, 저분으로 반찬을 드는 이것이 전체가 화두를 드는 의심 속에서 드렇게 하되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철을 하루하루를 지내면 반드시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마침내는 의단을 타파(打破)하고 자기의 본성을 깨닫게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바보 노릇을 하면서 말귀도 알아들은 바보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정진을 해야 기력(氣力) 적게 소모하고서도 정진에 크게 () 있으니 이렇게 정진하는 사람을 과연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수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조 스님 당시에 화두라고 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 없었으나 그때 화두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면 오조 스님께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듯 산승이 지금 말한 것처럼 화두를 어떻게 거각을 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한다면 달이 어떻게 지내간 모르는 사이에 달이 지내가서 정말 정진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틀이 달을 지내고 나면 자리가 잡혀나갈 것입니다.(1212~1927)

 

*( 부술·쓰러질·폐단 ) ;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

 

Posted by 닥공닥정
최근 법문2016. 5. 21. 23:29

 

§(781) (게송)수행막대빈모반~ / 인생이란 것은 무상(無常)하지마는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참나 찾는이뭣고?’밖에는 없습니다.

 

불법(佛法) 믿고참나 깨닫는 () 닦는 사람은 항상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이뭣고?’ 챙기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을 항상 모시고 사는 것이고, 부처님의 () 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아있을 시간을 아껴서 시간 시간, , 생각 생각을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항상이뭣고?’ 챙기시면서 금생에 결정코참나 깨달아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은 반드시 그렇게 주실 것을 믿습니다.

 

돈을 아무리 벌어봤자 가지고 생사(生死) 면하는 것도 아니고, 명예나 권리가 높아봤자 명예나 권리 가지고 생사(生死) 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만큼 건강할 정말 알뜰히 정진해서 결정코 생사해탈(生死解脫)해서, 생사해탈밖에는 영원을 사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81)—2016(병신) 하안거결제(16.05.22.) (용781)

 

약 17분.

 

수행막대빈모반(修行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신일실기시환(此身一失幾時還)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고 호리신분(蒿裡新墳) 개소년(皆少年)이다. 수행을 하는데 귀밑에 희어지기를 기다리지 마라.

호리신분(蒿裡新墳) 개소년(皆少年)이다. 풀이 우거진 공동묘지의 무덤이 늙어서만 죽은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는다 그말이지.

 

차신일실기시환(此身一失幾時還)이면, 잃어버리면 어느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 것인가?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 지옥에 들어가면 팔만사천 () 지내도 인도환생을 할까 말까 아무도 보장을 수가 없으니, 어찌 있을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고 그러다가 잃어버리면은 언제 인도환생(人道還生) 해서 () 닦을 수가 있겠느냐.

고인(古人) 게송(偈頌)입니다.

 

우리 인생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부모의 인연을 만나서 사람 몸으로 태어났는데, 지금 세계 인구가 육십 억이니 얼마니 그러지마는 날마다 태어나고, 날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아직까지는 이만큼 건강하지마는 내일 일을 모르고, 시간 뒷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밥을 먹고 말을 하고 그럴 어쨌든지 생각하지 말고, 잡담하지 말고, 그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보는 찰나에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항상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때 찰나찰나를 범연(泛然) 지내지 말고, 항상 내가 나의 부처를 찾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이뭣고?’ 챙기고 살면 사람으로 태어나서 보람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거고.

 

그렇게이뭣고?’ 자꾸 챙기고 기쁜 일을 당해도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이뭣고?’ 

이뭣고?’ 항상 챙기면서 살면 살아가는 찰나찰나가 바로 수도장(修道場)이요, 수행장(修行場)이요, 비록 우리 육안으로는 부처님을 현재 뵈올 없지마는이뭣고?’ 챙길 찰나에는 항상 우리는 부처님과 같이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부모가 살아계셔도 효심이 없고, 받들지 아니하고 그렇게 살면 부모가 살아계셔도 자식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닌데.

항상 연세가 많은 부모님에 대해서 자식으로서, 딸로서 항상 부모를 생각하고—‘건강은 어떠신가? 식사는 어떻게 하신가? 몸이 편찮하시다더니 어떤가?’ 효자는 항상 부모 생각을 앉아서도 생각하고 때도 생각하고, 좋은 일이 있서도 생각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생각하는 것처럼.

 

불법(佛法) 믿고참나 깨닫는 () 닦는 사람은 항상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이뭣고?’ 챙기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을 항상 모시고 사는 것이고, 부처님의 () 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믿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과 불법을 믿지 않고 그럭저럭 먹고 입고 그런 것이 인생인 알고 그럭저럭 사람은 인생으로 때는 모르는데,

넘어가서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는, 불법(佛法) 믿고 참선한 사람은 염라대왕이 겁이 나고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지만, ‘이뭣고?’ 하고 그럭저럭 사람은 염라대왕 앞이면 벌벌 떠느라고 말대답도 못하는 것이여.

 

다행히 자리에 모이신 청신사・청신녀・비구・비구니, 도반 여러분들은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만났고, 오늘 자리에서 활구참선(活句參禪) 대한 전강 조실스님의 법문을 같이 들었습니다.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살아있을 시간을 아껴서 시간 시간, , 생각 생각을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항상이뭣고?’ 챙기시면서 금생에 결정코참나 깨달아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은 반드시 그렇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조(五祖) 홍인(弘忍)대사 『최상승론(最上乘論)』에 말씀하시기를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손추손(飱麤飱)하며, 다만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으면서,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여, 확실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양병(佯病) 그러면은 실지는 병을 앓지 않는데 거짓으로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이라고 그러고, 바보가 아니고 멀쩡한데 바보 행세를 하는 것을 양치(佯癡)라고 그러는데, 말귀도 알아들은 거짓 바보가 되어서 수행자(修行者) 그렇게 살으라는 것입니다.

 

수행자(修行者) 잘난 척하고 영리한 척하고, 똑똑한 체하고 유식한 체하고 그렇게 하면서 살면 수행자로서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게 되고.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 거짓 바보가 되어 가지고 말귀도 알아들은 것처럼 그렇게 바보처럼 살면, 최생기력이능유공(最省氣力而能有功)이다. 가장 힘은 덜고서도 효과적으로 정진(精進) 있으니 그렇게 해야 최고로 훌륭한 수행인이다[是大精進人也]이렇게 오조 홍인대사께서 그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바보처럼 살면은 말을 많이 필요도 없고, 똑똑한 하면은 누구하고 시비할 까닭도 없고,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누워서도이뭣고?’ 걸어가면서도이뭣고?’ 초를 그렇게 아끼고 정신을 차리면서이뭣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머리를 깎고 스님이 사람은 부모도 버리고, 고향도 버리고, 인생도 버리고 절로 와서 중이 되어 가지고 일생을 머리를 깎고 중노릇 하고 사는데, 잘난 체하면 뭣하며 똑똑한 체하면 뭐할 것입니까? 어쨌든지 바보가 되어 가지고 생각 생각을 철저히 단속을 해서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병신년 4 15 하안거 결제일이기 때문에 앞으로 동안 날씨가 더웁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동안 지내는 데에는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산승(山僧) 이렇게 간곡히 부탁한 말씀을 명심을 해서 동안을 초도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알뜰하게 단속을 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강 조실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 들으면서 항상 정진(精進) 해서 결정코 금생(今生), 이번 철에 득력(得力) 하셔서 출가한 목적을 달성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게송을 하나 읊고 자리에 내려가고자 합니다.

 

금생(今生)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 이렇게 늙은 중이 간곡히 말씀하는 게송을 깊이 명심하지 않고 그럭저럭 지나게 되면 후생에 염라대왕 앞에 끌려갔을 () 만단(萬端)이나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시간 시간 얼마든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마는 아무리 하고 해봤자 내나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정진해서 인생이란 것은 무상(無常)하지마는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참나 찾는이뭣고?’밖에는 없습니다.

 

돈을 아무리 벌어봤자 가지고 생사(生死) 면하는 것도 아니고, 명예나 권리가 높아봤자 명예나 권리 가지고 생사(生死) 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만큼 건강할 정말 알뜰히 정진해서 결정코 생사해탈(生死解脫)해서, 생사해탈밖에는 영원을 사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처음~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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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참고.

[참고] 〇宏智禪師示衆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굉지(宏智)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쑥대밭에 무덤이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 이루면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 구하여라.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 ; ()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 하고, 다시 줄여서 ()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시간단위. 지극히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 무한히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8km) 반석(盤石)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번씩 쓸어 반석이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 재판하는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최상승론(最上乘論) ; 1. 5 홍인대사(弘忍大師)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 확인하여 지키는 수심(守心) 강조한 저술.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안되던 것이 할라고 해도 저절로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힘을 얻었다(得力)’하는 .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득력이라고 말한다.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〇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말을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 갈래나 되리라.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6. 5. 12. 13:59

 

 

§(666) 찬불게(讚佛偈) / 깨달음으로 가는 정진이 우리의 / 사람 받아야 닦기에 가장 좋다 / 팔만대장경도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

 

부처님 인도 말로 붓다(Buddha) 말인데, 붓다란 말은각자(覺者)’, ‘깨달으신 성현이다.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법을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비록 살아가는데 생로병사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야 고통도 있고 낙도 있고 해서 거기서 무상(無常) 깨닫고 도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에 화엄경을 비롯해서 많은 경전이 있지만 경전의 뜻을 정말 옳게 이해하고 보면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밖에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셨지만 그런 법문도 옳게 알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歸結)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로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서있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슬픈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일어나는 생각에 즉해서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바로이뭣고?’ 챙김으로 해서 깨달음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 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송담스님(No.666)—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어(34) (용666)

 

(1) 약 17분.

 

(2) 약 18분.

 

(1)------------------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허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하늘 하늘 아래 부처님과 같은 분이 없고, 시방세계(十方世界) 견줄만한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세간에 있는 바를 내가 봤지만 부처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게송은 찬불게(讚佛偈) 하는데—‘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偈頌)이다그러는데, 게송은 누가 읊은 게송이냐 하면은 과거 저사불(底沙佛) 시대에 저사불 밑에서 석가 보살과 미륵 보살, 보살이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석가 보살이 저사불을 찬양하는 게송입니다.

 

게송을 읊되 저사(底沙) 부처님의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 갖추신 거룩하고 거룩한 찬란한 모습을 보고 읊으신 게송입니다.

 

발을 내디디고 발은 들고 있을 너무 황홀한 모습을 보고 게송을 읊기를 칠일칠야(七日七夜)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찬양을 해서 읊었습니다.

일심불란으로 칠일칠야를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한 공덕으로 구겁(九劫) 건너뛰어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도 먼저 성불(成佛) 하시게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 먼저 하생(下生) 하시고 앞으로 56 7천만 뒤에 미륵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시게 되는데,

게송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 자신이 저사부처님을 찬양하는 게송인데, 부처님 열반하신 삼천년이 되도록 우리는 부처님께서 읊으신 게송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서 깊은 게송으로써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미 우리는 조실 스님께서석가모니 부처님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태자로 태어나셔 가지고 사문유관(四門遊觀) 하시다가 정거천인(淨居天人) 게송을 들으시고 그리고서 성을 넘어서 출가하셔 가지고 육년 고행을 하시고 마침내 십이월 초팔일 동천(東天)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성불을 하신 데까지,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부처님 인도 말로 붓다(Buddha) 말인데, 붓다란 말은각자(覺者)’, ‘깨달으신 성현이다, 그런 뜻인데, 부처님께서 깨달으셔 가지고 깨달으신 진리를 열반하실 때까지 사십구 동안을 팔만사천법문으로써 우리 중생들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는데,

부처님의 위대함은 게송으로 찬양하고 억만년을 두고 찬양을 해도 부처님의 위대함과 우리 중생을 위하신 자비와 중생을 위해서 설하신 지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지혜를 말로써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써 삼천년을 두고 사월 초파일을 행사를 진행하는데, 절절이 등불을 켜고 육법공양(六法供養) 올리고 온갖 다양한 행사로써 초파일을 봉축을 하는데 하나의 연례행사로써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땅히 불제자(佛弟子)로서는 부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고, 찬양하고도 더이상 수가 없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되지마는 우리는 찬양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업장이 소멸이 되고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산승(山僧) 믿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서 우리의 소원을크고 작은 사바세계에 있어서 유루복(有漏福) 성취하는 데에 그쳐서는 진실로 정법을 믿는 불자라고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믿고 실천해서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말씀하시기를중생이 만약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하지 아니하면 삼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항하사(恒河沙) 모래 수와 같은 그런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뵌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능히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속에서부터서 능동적으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속에서 터져 나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억만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사람을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중생이 자기 마음을 깨달라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하는 것이지,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조(五祖) 홍인 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을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를 하고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법을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사라쌍수(沙羅雙樹) ()에서 열반하실 유언으로써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사람들의 병에 따라서 병을 진단을 가지고 좋은 약을 일러줬지만 좋은 약을 가르켜줬지만 먹고 먹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니라

나는 인도(引導)하는 사람과 같아서, 바른길로 안내하는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을 바른길로 일러주었지마는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 하면 그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마지막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유교경(遺敎經) 있는 말씀과 오조 스님께서 인용하신 경전의 말씀과 오조 스님의 말씀을 통합해서 생각해보건대우리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고 그것이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보물로 이렇게 지정을 받았습니다.

그런 좋은 경전을 가지고 있고 고려대장경 연구소에서 CD롬으로 그것을 완성을 해가지고 컴퓨터를 통해서 가정에서도 경전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으로써 교리로써만 알고, 학문으로써만 연구하고, 실지로 그것을 깊이 믿고 실천을 해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를 못한다면 좋은 법문도 휴지에 지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아무리 유네스코에서 세계의 보물로 지정했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서 중생이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게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생사해탈로 나아가는 길잡이는 될지언정 직접 우리가 안내에 의해서 목숨 바쳐서 부처님께서 설산에서 고행 수행하듯이, 역대조사(歷代祖師) 그렇게 용맹정진(勇猛精進)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정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침내 생사해탈을 못하고 것입니다.(처음~1641)

 

 

 

 

(2)------------------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이렇게 도량 법당 안과 법당 밖에 수만 개의 등불을 찬란하게 켜서 부처님의 탄신을 이렇게 축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 안과 밖에 많은 사부대중(四部大衆) 운집(雲集) 해서 법요식을 갖고 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찬양을 하고 그래야 하겠는데,

우리는 오늘을 기해서 정말 특별한 마음을 내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리고 정말 신심을 돈독히 하고 분심을 내서 불법을 닦아가는데, 팔만대장경에 있는 수행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갖은 방법으로 설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산승은 용화사의 전강 조실 스님의 법을 믿고 닦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장 조실 스님께서 팔십 평생을 한결같이 설하시고 찬양하신 (), 그리고 산승도 역시 법을 믿기 때문에 간략히 말씀하겠습니다

 

약국에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약들이 있지만 자기에게 맞는 그리고 가장 자기의 병을 낫을 있는 약은 많은 약을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기 체질에 맞고 자기가 믿어지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병에 맞춰서 약을 먹어야 효과를 보는 것처럼,

산승이 믿는 조실 스님께서 평생에 선양하신 법을 오늘 말씀을 드리는데, 여러분들은 이미 법에 의해서 열심히 공부하신 분도 있고, 수행을 가지고 상당한 지경에까지 이르신 그런 구참 수행자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부처님과 같이 그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기 전에는 득소위족(得少爲足) 해서는 아니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어떤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우리는 그것에, 자기의 이르른 경지에 만족을 해서 아니 되는 것입니다. 득소위족을 하면은 공부는 이상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나 찾는 , ‘참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우리가하면은 자기의 성명(姓名) 것입니다. 성명은 임시로 붙여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고 이름은 몇십 가지를 가질 수도 있고 몇천 개의 이름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눈으로 볼래야 없고, 손으로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우리의 생각으로 아무리 알려고 해도 수가 없는 그러한 주인공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서 시절인연(時節因緣) 돌아오면 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받게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사람의 몸을 받아야 도를 닦기에 가장 좋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당이 좋아도 한량없는 고통을 받지 않고 즐거운 () 받는다고 해도 그것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받을 만큼 복이 다하면 다시 떨어져서 인간 세계에 떨어지거나, 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지는 것이어서 천당에 가는 것도 우리의 구경의 목적지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살아가는데 생로병사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야 고통도 있고 낙도 있고 해서 거기서 무상(無常) 깨닫고 도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많은 분도 있습니다마는 크고 작고 간에 병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결국은 설사 건강하다 하더라도 그래서 오래 산다 하더라도 백년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부자 빈부귀천,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五欲) 마음껏 누리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 꿈에 봉황새를 타고 옥황상제가 있는 천국에 올라간 거와 같아서 깨고 나면은 아주 평범한 다시 본래 자기 살던 곳으로 눈을 떠보면 자리에 있게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천상에 가면 무엇 하며, 꿈에 금은보화를 산더미처럼 소유하면 그것이 어디에다 것입니까? 사바세계에서 많은 재산, 많은 명예와 권리와 지위 부귀를 누린다 하더라도 꿈에 부귀를 얻은 것이나 조금도 차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그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언젠가는 자기 몸으로부터서 재산도 떠나고 명예와 권리도 떠나게 되고, 자기 생전에 그런 것이 망하고 결국은 감옥에도 가고 사형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사바세계의 오욕(五欲)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그래서 도를 닦아서 성불(成佛) 하시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실은 진묵겁(塵墨劫) 전에 성불을 마치신 그러한 성현이지마는 우리 중생들에게 인생이 무상하다고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 도를 닦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바세계에 오신 그러한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경전을 통해서 알고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서 우리는 생각 생각, 걸음 걸음,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통해서 선지식(善知識) 지시에 따라서 역대조사의 법문에 의해서 이만큼 건강할 철저히 정진을 해서 목숨이 다하기 전에 생사해탈의 단계에 이르러야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어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거나, 머리를 깎지 아니하고 세속에서 살거나, 배고프면 먹을 알고, 몸이 아프면 끙끙 앓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알고, 발로 걸어 다니고 앉었다 섰다 있을 만큼 이만큼 건강하면,

바로이뭣고?’ 통해서 항상 자기를 찾고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찾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있다고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 선지식들이 설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빈부귀천을 따질 것도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따지지 말고 항상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팔만대장경에 화엄경을 비롯해서 많은 경전이 있지만 경전의 뜻을 정말 옳게 이해하고 보면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밖에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셨지만 그런 법문도 옳게 알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歸結)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언제나 법상에 올라올 때마다 한결같이 그런 말씀을 여러분께 드렸습니다마는 오늘도 말로써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라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로다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이라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로다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여. 모든 사람 낱낱이 사람 얼굴 앞에는 밝은 달이 환하니 떠있다 그말이여.

인인각하청풍취(人人脚下淸風吹). 사람 사람마다 다리 밑에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휘황창 밝은 밤에 어떤 사람 앞에만 달이 밝은 것이 아니고, 시원하게 바람이 때에는 모든 사람 얼굴에 바람이 부는 것이지, 특수한 사람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말은 모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는 부처가 있는 자성(自性) 진여불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고, 다시 나아가서 말하면 모든 사람마다 법신불(法身佛) 몸뚱이 속에 계시다 말씀이여. 어떤 특수한 사람만 법신불이 계시고 특수한 사람만이 진여불성(眞如佛性)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迹)이여. 거울을 타파해 버리면 거울이라 하는 것은 중생의 팔식(八識) 속에 무량겁으로부터서 오면서 거기에 녹음 녹화된 온갖 번뇌와 망상, 그리고 부처님의 경전의 말씀, 성현의 말씀, 말로써 형언할 없는 것들이 팔식 속에, 무의식 속에 녹음 녹화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이뭣고?’ 화두를 함으로써 그놈을 갖다 타파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타파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으면 나뭇가지 위에 우는 소리가 바로 진리를 설파(說破)하는 말로써 자기에게 닿게 것입니다.

 

진리는 절대로 데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서있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슬픈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일어나는 생각에 즉해서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바로이뭣고?’, ‘이뭣고?’ 챙김으로 해서 깨달음과 진리와 자기가 하나 되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명심을 하시고,

 

오늘 초파일을 기해서 법을, 최상승법(最上乘法) 철저히 믿고 , 초도 생각[別念] 일어날 기회를 주지 말고 자기를 찾는 공부를 열심히 하심으로 해서 진정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 여기에 있고,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해서 설산에서 도를 깨달으신 뜻이 바로 우리 몸에서 실천이 되도록 주시기를 당부 드리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자리에 모이신 여러 법보가족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도반들!

오늘 자리에 참석해서 등불을 켜고 법요식을 같이 인연으로 무량겁(無量劫) 업장(業障) 소멸(消滅)되시고, 그리고 크고 작은 유루복도 성취를 하시고, 나아가서는 참나를 깨달아서 사람도 빠짐없이 세세생생(世世生生) 불회상(佛會上)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을 합시다.(1651~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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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불게(讚佛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거룩한 모습에 어찌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 낮과 7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아니네.

 

게송을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다 해서 찬불게(讚佛偈) 하는데, 7 7 동안 세존(世尊)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九劫) 뛰어넘어 91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시방세계(十方世界) ; 세계. 사방(四方 )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 상하(上下) 있는 무수한 세계.

*저사불(底沙佛) ; 산스크리트어 Tisya. 부처님 이름. 불사(弗沙보사(補沙)라고도 . (원만(圓滿귀숙(鬼宿)이라 번역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싯다르타 태자 때에 가비라성의 4문으로 나가 다녔는데, 동문 밖에서는 늙은이를 보고, 남문 밖에서는 병든 이를 보고,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 밖에서는 출가수행자를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출가 수행에 뜻을 두었다.

*정거천인(淨居天人) ; 정거천(淨居天) 사는 성자, . 그냥 정거천(淨居天)이라고도 .

*정거천(淨居天) ; 불환과(不還果) () 성자가 살아야 곳으로 색계 제사선천(色界第四禪天)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 통틀어 일컬음. 단지 성인만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오정거천(五淨居天)이라고 . 여기에 사는 성자, 신들까지도 정거천(淨居天)이라고 한다.

*육법공양(六法供養) ; , , , 과일, , 여섯 가지 중요한 공양물을 말한다. 향은 해탈향(解脫香)이라고 해서 해탈·공덕을 상징하고, () 반야등(般若燈)으로 지혜·광명을 상징하고, 꽃은 만행화(萬行花) 수행·장엄을 상징하고, 과일은 보리과(菩提果) 깨달음을 상징하고, 차는 감로다(甘露茶) 부처님의 가르침의 공덕과 이익을 상징하고쌀은 선열미(禪悅米) 수행의 기쁨을 상징한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최상승론(最上乘論) ; 1. 5 홍인대사(弘忍大師)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 확인하여 지키는 수심(守心) 강조한 저술.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바른길 ; ①이치에 맞고 정당한 참된 도리. ②굽지 않고 곧은 .

*유교경(遺敎經) ;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설한 최후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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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진묵겁(塵墨劫) ; 티끌[]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귀결(歸結) ; 의논이나 행동 따위가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도달함. 또는 도달한 결론이나 결과.

*(게송) 개개면전명월백~’ ; [소요당집(逍遙堂集)] (한글대장경169, 동국대학교역경원) p100 ‘ 상인(淳上人)에게게송 참고.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 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아뢰야(阿賴耶) 진제(眞諦) a()+laya()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 ālaya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八識)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p180-181)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입춘기도)2015. 12. 21. 13:41

 

 

§(010) 태전 선사 이야기 / (게송)십년불하축융봉~ / 업장소멸과 깨달음을 만드는 활구참선법 / 심호흡과 수식관 / 삼요—대신심, 대분심, 대의심.

항시 이 용화선원에서 조실 스님께서 십 년 동안을 그렇게 간절히,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해 주시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방법은 무량겁으로 내려오는 그 죄업의 열매를 녹여서 깨달음의 과일을 만드는 방법이고, 거기 그 열매로부터 가지가 뻗어 나와 이 세계에 가득차도록 가지가 번지고 번져서 한량없는 죄의 종자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그놈마저도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그놈을 소멸을 해서, 그놈을 돌려 가지고 깨달음이 되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큰 신심(信心)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절에다가 돈 많이 가져오고 부처님 앞에 절 많이 하고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무리 내가 여자고, 아무리 내가 말세에 태어났고, 아무리 내가 몸이 병이 있고 약하다 하더라도 옳은 방법으로 옳게만 공부를 하면은 나도 틀림없이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대정신(大正信)입니다. 바른 믿음입니다.


오직 될 수 있으면 빨리 시간을 단축하고 그리고 바르게 깨달으려면은 무조건(無條件), 무이로(無理路), 무어로(無語路), 무모색(無摸索)—더듬어 들어가지 말 것이며, 따져 들어가지 말 것이며, 이리저리 비교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해서 지해(知解)와 사리상량(邪理商量)으로 알려고 하지 말 것입니다.
다못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고, 해 갈수록 답답하고 꽉 맥힌 것, 그것이 공부가 가장 잘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암만 해도 답답하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안 되니, 이 공부가 잘된 것입니까, 공부가 잘못된 것입니까?’ 이렇게 와서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갈수록 알 수가 없고, 꽉 맥히는 그분이야말로 가장 올바르게 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이고, 그렇게 해 나가야, 갈수록 그 알 수가 없이 꽉 맥혀야 그분은 깨달을 수 있는 분입니다.
솔솔 따져 들어가고, 무엇이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어서 재미를 거기다 붙여 가지고 무엇을 들여다보고 앉았고 이런 사람은—그건 참, 도저히 그런 공부는 차라리 공부 안 한 것만 못합니다. 그냥 아들딸 잘되라고 관세음보살 부르는 게 훨씬 낫습니다.


**송담스님(No.010)—76년 입춘법회 법문(76.02.04)(60분) (용010)


(1/3) 약 19분.

 

(2/3) 약 22분.

 

(3/3) 약 21분.


(1/3)----------------

녹음기 사정으로 조실 스님 법문을 계속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충 그전에 조실 스님께 법문 들은 것을 기억나는 대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축융봉(祝融峰)에 태전 선사(太顚禪師)가 떠억 머물러 계시는데, 그때 민가에 소문이 나기를 도술을 부리고 그런 요승(妖僧)이 축융봉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가 삼 년이나 오지 않아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이런다.
그래 가지고 소문이 나니까 그때 원님이 그 말을 듣고—유가(儒家)에서는 요승이라고 했지마는 그때 불가(佛家)에서는 큰 도사라고 아주 모든 신도로부터서 신임을 받고 존경을 받고 명망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유가의 입장, 선비의 입장에서는 불교의 도인(道人)이 그렇게 계신 것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해 가지고 ‘무슨 트집을 잡어서라도 이 스님을, 태전 선사를 큰 벌을 내려 가지고 없애서 불교가 흥왕하는 것을 방지를 해야겠다’

이렇게 벼르고 있던 차에 마치 비가 이렇게 오지 아니하고 그러니까, 그것을 조건을 잡기 위해서 홍련(紅蓮)이라고 하는 기생을 시켜서—그 홍련이는 그때 당시 중국 천하에서 제일 미인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천하일색으로써 아직 한번도 정조(貞操)를 뺏긴 일이 없이 고대로 그 정조를 지키면서 글 잘하고, 시 잘 짓고,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고 그런데다 천하의 일색이라 그 홍련이를 시켜 가지고,
“너 백일 동안의 말미를 줄 테니, 태전 선사한테 가서 태전 선사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기어이 파계(破戒)를 시켜라.” 원님한테 그러한 특명을 받고서 비밀리 그 축융봉을 올라갔습니다.

올라갈 때에 처음에는 아주 태전 선사를 신(信)하는 신도로 가장을 해 가지고, 아주 가서 절을 석 자리를 하고, 입으실 것, 잡술 것, 향에다가 과일에다 갖은 정성 들인 음식, 기타 모든 물건을 마련을 해 가지고 가서 갖다 바치고 그야말로 생명이라도 바칠 것 같이 온갖 정성을 다 드렸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렇게 정성을 들여 가지고는 차츰차츰 그 스님 가까이 해 가지고 ‘법문을 해 주시라’고 이렇게 해 가지고는, 낮에 그러다가 나중에는 밤에도 그 방에 드나들고, 차츰차츰 익혀 가지고 한 달, 두 달, 석 달 해서 백일이 거의 다 차갔습니다.
그래도 조금도 그 태전 선사는 눈 한번 거들떠본 일이 없고, 처음이나 중간이나 백일이 차도록 조금도 다른 기색이 보이지를 안 해.

그래서 이 홍련이라고 하는 기생은 만약에 백일 동안에 태전 선사를 파계를 시키지 못하면은 자기는 원님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일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온갖 아양을 떨고 마지막에는 아주 노골적으로 아양을 떨고, 야수를 떨고, 꼬리를 치고 해도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새는 날 밤에는 울면서 “저를 살려 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대관절 그대가 신심으로써 불법을 배울라고 왔다고 해 놓고 무슨 속에 그러한 한이 있어서 살려 달라고 그러느냐?”
“다름이 아니라 저는 기생으로서 원님의 특별 비밀 명령을 받고서 스님을 파계 시킬려고 왔습니다. 만약에 오늘 스님을 파계를 시키지 못하면 저는 이 길로 가서 죽게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좋다”

그런데 그 홍련이의 팔에는 앵혈(鶯血)이라고—만약에 살에다가 앵혈이라고 하는 앵무새의 피를 묻혀 가지고 있으면은 정조를 뺏기면은 그 피가 변해 버립니다. 정조를 뺏기지 아니하면 그 피가 빨간 피빛깔이 변하지 않고,
그래서 앵혈을 묻혀 가지고 온 것을 보이면서 “이것을 보십시오. 제가 이대로 가면은 이 핏빛이 변하지 아니함으로 해서 제가 아무리 거짓말로 스님을 파계시켰다고 해도 이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사정을 하니까, 태전 선사가 “그러면 좋다. 내가 글 한 수(首)를 써줄 테니, 이것을 갖다가 원님한테 보이면은 네 생명은 살 것이다”

‘십년불하축융봉(十年不下祝融峰)’  십 년 동안을 축융봉을 내려가지 아니했는데,
‘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이라. 관색관공즉색공—보통 새기기를 ‘색을 보고 공을 관(觀)하니 곧 색(色)이 공(空)했더라’ 이렇게 새기지마는, ‘색(色)을 보는 관(觀)이 공(空)했으니 곧 색(色)이 공(空)했다’ 이렇게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십 년을 축융봉을 내리지 아니하니, 색(色)을 보는 관(觀)이 공(空)했으므로 색(色)이 곧 공(空)했더라.

‘여하조계일적수(如何曹溪一適水)’가, 어찌 조계(曹溪)—육조(六祖) 스님이 조계산에 계셨기 때문에 육조 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모든 도인들은 조계 후손입니다.
그래서 어찌 육조 스님의 법통을 이어받은 이 조계(曹溪)의 한방울 물이 ‘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이냐. 어찌 홍련이의 한 이파리 속에 떨어질까 보냐.

다시 말하자면은 이 육조 스님의, 달마 스님 이래로 내려오는 이 조계의 법통을 가진 나의 한방울 물이 홍련이 너 같은 기생의 몸에 어찌 떨어질 수가 있겠느냐. 어찌 내가 너한테 파계를 할 수가 있겠느냐 그런 뜻이지요.
그러한 글을 써서 홍련이의 옷에다가 그것을 죽죽죽죽 써 가지고, 그것을 네가 갖다가 바쳐라.

그래서 홍련이는 태전 선사를 파계 시킬 그런 목적으로 왔었지마는 백일 동안을 법문을 들으면서 갖은 아양을 떨었지마는 마침내 태전 선사를 극복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태전 선사의 그 덕행과 법력과 도력에 감화를 입어서 정말 안팎이 고대로 진실한 제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백배사죄(百拜謝罪)를 하고 태전 선사가 적어주신 그 글을 갖다가 원님한테 갖다 바쳤습니다.

원님이 그 글을 턱 보고는 그길로 태전 선사한테 와 가지고 사죄를 하고, 태전 선사의 제자가 되어서 철저히 신(信)하고 그 지도하에 공부를 해 가지고 큰 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분명히 전해 내려오고 전등록에 적혀 내려오는 사실입니다.
조실 스님이 이 법문을 하셨으면은 좀 더 실감있게 여러분에게 잘 말씀하셨을 텐데, 제가 간단히 요약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입춘을 기해서 마침 정월 신수기도 도중이지마는 우리나라의 모든 불교를 믿는 분이나 불교를 안 믿는 분이나, 입춘을 기해서 입춘 불공(佛供)을 함으로써,
일 년 모든 관재구설(官災口舌)과 사백사병(四百四病), 팔만사천 재앙을 전부 물리치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 사대(四大) 강건하고 육근(六根)이 청정(清淨)해서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입춘 불공을 하는 준례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방방곡곡의 모든 큰 절, 작은 절에서는 입춘 마지(摩旨)라 해 가지고 아주 새벽부터서 시간을 맞춰서 모다 불공을 하고 그래 내려오고 있습니다마는,
우리 절에서는 새벽에 들었거나 또는 저녁에 들었거나 항시 부처님 마지 올리는 사시(巳時)를 기해서 이렇게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으로써 모든 법요식을 거행해 내려오고 있느니 만큼 오늘 사시를 기해서 이렇게 입춘 법회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태전 선사에 대한 법문 말씀이—불법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기생을 보내 가지고, 기생으로 하여금 갖은 아양을 떨게 해 가지고, 큰스님을 파계를 시킴으로써 불법을 아주 송두리째 뿌리를 뽑아서 아주 종자를 없앨 양으로 했던 것이,
그 태전 선사의 거룩한 덕행과 법력으로써 오히려 그 기생과 원님을 감화를 시켜 가지고, 그 지방에 불법을 융숭하게 한 그러한 역사를 들어서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서화담, 황진이, 또 박연폭포’해서 이걸 ‘개성삼절(開城三絶)’이라 해 가지고 이 황진이 이야기가 나오면은—황진이가 서화담을 그렇게 파계를 시킬랴고 갔다가 서화담은 종래에 극복을 못하고, 서화담은 끝끝내 황진이한테 넘어가지 않았는데,
불교의 지족 선사한테 가니까 지족 선사가 단박 황진이한테 넘어갔다고 하는 그러한 소설도 내려오고, 또 영화로도 모다 그러한 이야기가 만들어져 갖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고려 때 너무나도 불법을 국교로 모시고 임금으로부터서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그렇게 돈독히 신하고,
왕자, 임금님의 아들이나 또는 고관대작, 대신들의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서민들도 그 가문이 좋고, 삼 형제를 낳으면 그 삼 형제 중에 제일 잘난 아들로 골라서 스님이 되도록 부처님께 바치고, 이렇게 해서 온 나라가 참! 속속들이 불교를 그렇게 깊이 신해 내려오다가,

고려 운이 다 가고 이조가 들어서게 되자, 이조에 있어서는 유교를 국교로 해 가지고 유교를 숭상하는 그러한 정책을 쓰게 되니 만큼,
그러기 위해서는 종래 모든 백성들이 불교를 그렇게 신해 오던 터이라, 고대로 두고 유교를 암만 포교를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불교를 없이하고, 불교를 아주 좋지 못한 걸로 일반 백성들한테 이해를 시키고 납득을 시켜 가지고,

그래 해야만 불교에 대해서는 차츰차츰 신심이 떨어져야 유교 정책을 쓰기에 편리하게 되기 때문에 온갖 못된 이야기를 만들고, 조그만한 일도 굉장히 크게 잘못한 것처럼 모다 악선전(惡宣傳)을 하고 퍼뜨려 가지고, 그렇게 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한 인식을 아주 좋지 않게 그렇게 퍼뜨렸던 것입니다.

그리해서 신돈(辛旽)이의 역사라든지, 그것도 일양으로 신돈이란 사람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내용은 그분의 공로도 굉장히 컸었지마는 말경(末境)에 가서 조그만한 잘못도 크게 잘못한 것처럼 그렇게 모다 선전을 해서 전해 내려오고,

또 지족 선사에 대한 이야기도 ‘없는 얘기’를 그렇게—유교 선비인 서화담은 그렇게 훌륭한 분으로 내세우고, 불교의 지족 선사는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선전하기 위해서 황진이를 떠억 내세워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 가지고 소설도 내놓고, 모다 그래 가지고는 방방곡곡에 그 이야기를 퍼뜨렸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아주 실화처럼 되어 가지고 영화에까지 모다 나오고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없이 모다 그런 얘기들을 알고 계십니다마는,
참으로 이 불교의 도인들이 얼마만큼 그러한 위경(危境)에 처해 있을 때, 그런 유혹에 처했을 때 그런 것을 물리치는데 있어서 어찌 마을의 선비에 질 까닭이 있겠습니까?
혹, 그런 지족 선사니 서화담이니 그런 말씀이 어디서 나오더라도 이것은 정책상 유교 선비들이 불교를 말살하기 위해서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퍼뜨렸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고, 그렇게 대응을 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18분18초)

 

 

 



(2/3)----------------

오늘 입춘을 기해서 이 법회를 거행하게 되었습니다마는 우리는 비단 이 입춘뿐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모든 재앙을 소멸하고, 일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로 알고 하루하루를 지내가야 될 줄 압니다.

입춘 하루 불공을 올렸다고 해서 무량겁(無量劫)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자기의 죄가 다 소멸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질 때 벌써 육도윤회(六途輪廻)할 수 있는 종자(種子)를 심고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 종자를 우리 마음 속에 심으면서 동시에 자기 속에 그동안에 심어 놓았던 싹은 밖으로 터 나오게 됩니다. 그 싹이 터 나오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종자가 우리 마음 속에 심어지게 됩니다.
싹이 한쪽으로 트면서 동시에 종자는 거두면서, 종자 거두면서 또 싹은 터 나오고 해 가지고,

한 생각, 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습니다마는, 그 일념 속에 구백생멸—그 생멸이라 하는 것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전깃불보다도 더 빠릅니다.
그 구백생멸(九百生滅) 속에 얼마나 많은 종자가 심어지며, 그 종자 심으면서 얼마나 많은 싹이 또 터 나오느냐 그말이여. 그것이 전부 육도윤회할 수 있는 죄업(罪業)이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은 한번 입춘 마지에 불공을 했다고 해서—계속 그 종자를 심고 있고, 그 종자에서는 계속 그 죄의 싹이 터 나오고 있는데—그것으로써 무량겁 죄가 다 녹아졌다고 안심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이여.

그러기 때문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걸어갈 때나 또는 가만히 서 있을 때나, 또는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하고 있을 때나, 말 안하고 묵묵히 있을 때나 또는 활동을 하고 있을 때나 또는 조용한 상태로 있을 때나—어떠한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우리는 우리의 죄업을 소멸할 수 있는 그러한 방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단 꼭 절에 와서 부처님 앞에 불공을 드리고 절 할 때 그때 뿐만이 아니라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의 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우리의 팔식(八識)에 보관되어 있는 그 씨가 죄의 싹으로 트지 않고 바로 거기에 깨달음의 과실(果實), 보리과(菩提果)가 여물도록 하는 그러한 방법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쉴 새 없이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이나 법화경이나 화엄경 같은 그런 경전을 읽는 그러한 길도 있겠고, 또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나 지장보살이나 이러한 불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그런 염불 방법도 있겠고, 또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 밖의 어떠한 준제진언이나, 그런 능엄주나 그런 주문을 외우는 방법도 있겠고,

또는 절에—낙산 홍련암이나, 강화 보문사나, 저기 남해 보리암 같은 그런 성지(聖地)에 가서 기도하는 그러한 방법도 있겠고, 여러 가지 그런 방법이 있겠습니다마는 우리는 1년 내 그런 성지에 가서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일 년 내 손에서 경을 떼지 않고 경만 읽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면은 잠깐만 쉬어도 그 쉬는 시간에 죄가 막 퍼일어나고, 퍼일어나면서 또 종자는 계속 우리의 마음에 저장이 되고, 저장되었던 그 종자에서는 계속 싹이 터 나오고,
보고 듣고 느끼는 쪽쪽 그것이 벌써 마음에 저장되어 있는 그 종자에 비가 내리는 것이요, 거기에 태양빛이 비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 종자에 거름 주고, 물 주고, 온도를 가해 주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저장되어 있던 그 종자로부터서는 계속해서 그 싹이 터 나옵니다.
그 싹이 터 나오면서 거기에서는 또 죄업의 열매가 영글어져 가지고 그것은 또 마음에 저장이 되어서, 계속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그 쟁여 놓은, 저장된 그 종자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증험을 해 보시면 당장 이해가 갑니다. 잠깐이라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으려고 마음을 잡숴 보시란 말이에요.
시간을 보고 10분을 딱 작정을 해 놓고 ‘내가 이 10분 동안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한번 있어 봐야겠다’ 해 가지고 한번 있어 보란 말이여. 아무 생각도 과연 안 일어나는가?

아마 10분 동안에—오히려 그러한 것을 마음을 먹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은 별로 아무 생각도 안 나겠지마는, 일부러 10분이나 30분 시간을 정해 놓고 ‘이 시간만큼은 내가 아무 생각도 안 하리라’ 마음을 먹으면 별 뚱딴지 같은 생각이 더 일어날 거예요.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마음속에 무량겁으로 지어 내려오면서 저장해 놓은 그 죄업의 종자가 가득 쌓아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물질로 된 종자 같으면은 창고가 가득차서 그 이상 더 들어갈 데가 없어서라도 저장을 못하겠지마는 이 업의 종자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 우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차고도 남을 만한 종자를 갖다 쟁인다 해도 가득차는 법이 없습니다.

다시 바꿔서 얘기하면은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육도윤회하는 그 많은 중생들이 죄를 퍼지어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서 고(苦)를 받고 있는데,
만약에 그 지옥에 이러한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육신을 가진 중생이 몸뚱이로 지옥에 가게 된다면 지옥은 벌써 만원(滿員)이 되어 가지고 들어갈 데가 없어서—요새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은 지옥이 만원이 되었기 때문에 들어갈 데가 없어서, 그냥 죄 지어도 안 잡아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가는 것은 육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래야 볼 수 없고, 귀로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고, 만져 볼래야 만져 볼 수도 없는 업(業)으로 된 몸뚱이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중생이 들어가도 지옥이 만원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 말이 곧 우리의 마음속에 죄업의 종자! 종자가 가득찬다 해도 가득차서 들어갈 데 없을 까닭은 없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많은 죄업을 어떻게 해야 소멸을 할 수가 있느냐? 또 어떻게 해야 앞으로 그 죄의 종자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들어간 종자는 싹이 터 나지 않고 거기서 바로 보리(菩提) 종자가 되게 만드느냐?
이 방법은 아까 여러 가지 방법을 말씀드린 가운데에 제일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어디서라도 할 수 있고, 아파서 죽은 그 찰나에서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간해서 경은 정신 없으면 읽을 수가 없고, 나이가 많아서 늙어지면 눈이 보이지 않아서 읽을 수가 없고, 기운이 없으면 읽을 수가 없고, 바쁘면 읽을 수가 없고, 반드시 경을 읽으려면 그만한 장소와 그만한 시간과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경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을 잠시라도 안 읽으면 계속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짬을 타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무서운 죄의 종자가 저장이 되고, 저장된 종자에서는 계속 죄의 가지가 뻗어 나오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가지가 뻗어 나왔다 하면은 또 거기서 죄의 열매가 열려서 또 마음에 저장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항시 이 용화선원에서 조실 스님께서 십 년 동안을 그렇게 간절히, 그렇게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해 주시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방법은 무량겁으로 내려오는 그 열매를 녹여서 깨달음의 과일을 만드는 방법이고,
거기 그 열매로 부터서 가지가 뻗어 나와 가지고 이 세계에 가득차도록 가지가 번지고 번져서 한량없는 죄의 종자가 주렁주렁 열려 가지고 있는 그놈마저도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그놈을 소멸을 해서, 그놈을 돌려 가지고 깨달음이 되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이렇게 간절히, 자세히 일러 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거나 이것을 실천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세세생생에 후회막급일 것이다.
또 어떤 도인은 이렇게 말해 준 것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녹음 끊김)....고마운 말씀인가! 우리가 신심으로써 그 말씀을 받아들인다면은 그렇게 뼈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스님은 ‘내가 만약에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한다면은 나는 세세생생에 너희들을 대신을 해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거나 행하지 아니 한다면 너희들은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될 것이고,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이 추호라도 거짓말이라면은 내가 무간지옥에 갈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호랑이 밥이 된다’는 말을 그렇게 기분 나쁘게만 들을 일이 아닙니다. 호랑이 밥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말을 믿지 않고 행하지 아니한다면은 갈 곳이 어디냐? 이 말씀이어요.
호랑이 밥은 그것은 육체만 물려 간 것이니까 금방 태어나면 그만입니다. 그까짓 놈의 것, 호랑이가 물어 가지 않아도 몇 해 살다가 다 가기 마련이지, 누가 안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건 문제가 아니고,

이 말을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해 드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행하지 아니한 사람은 무량겁을 두고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는 부인(否認)을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고 죄업 퍼지으면은 갈 곳이 무간지옥 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그 말이 거짓말도 아니고, 공연히 협박하고 무슨 위협을 주는 말도 아니에요, 사실대로 말씀하신 것이지!


‘바빠서 못한다’  ‘시간이 없어 못한다’ 이런 말씀은 발심(發心)을 못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여. 바쁠수록에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 바쁠수록에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바쁘고 시간이 없으면은 경(經)은 혹 못 읽는다 해도 그것은 납득이 가는 얘기고, 다른 어디의 성지에 가서 기도하는 것은 바쁘면 못 가는 것이고, 그것도 납득이 가는 얘기입니다.
또 시간이 없거나 바쁘거나 또는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으면은 다른 것은—혹 '관세음보살'이나 '옴마니반메훔'이나 '아미타불'이나 그런 것은 혹 못한다고 해도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바쁠 때일수록에 할 수 밖에는 없고, 해야만 하고, 또 가능한 것은 활구참선입니다.

가령 누가 나한테 억울한 소리를 해 가지고, 간장이 활딱 뒤집어져 가지고 도저히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고, 막 욕이라도 퍼붓고 무엇이라도 때려 부셔야 하고, 쥐어뜯고, 물어뜯어야만 할 만큼 그렇게 격분을 하고, 성이 났다 하더라도,
‘그 성나는 놈이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그렇게 한번 생각할 줄 알아야 참! 부처님 제자라고 자부할 수 있고, 또 활구참선을 한다고 자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고, 활구참선 한 사람이 아니면 그것을 억지로 참어지지도 않고, 억지로 참으려고 하면은 그것은 당장 혈압이 오르거나, 위장병이 생기거나, 눈이 껌껌해지거나, 무슨 육체적인 병으로 돌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억지로 속상한 것을 참는 것은 대단히 안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육체적인 병으로 돌아서고만 말아요.

그러기 때문에 성이 나면은 욕도 하고, 때려 부수기도 하고, 물어뜯기도 하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렇게 하고 나면은 조금 후련하기는 하지마는 그 뒷수습이 대단히 어렵게 되지 않습니까? 또 다 때려 부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창피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이에요.
억지로 참으면 병이 나고, 그놈을 부회풀이대로 하면은 잠깐은 시원하지마는 돌아서서 참 아랫사람 보기도 안 되었고, 웃사람 보기도 안 되었고,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성이 되게 날 때에 심호흡을 하시란 말이에요. 흡~ 들어마셔 가지고 후~.

아마 속이 되게 상하고 가슴이 답답하면 이 참선법이 무엇인 줄도 몰라도, 흡~ 후유~, 흡~ 후유~ 자동으로 그 호흡이 나올 것이다 이 말이에요.
그것은 배우지 않아도 후~ 하고 그 깊은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함으로써 그 툭 터질라고 하는—그렇지 않으면 중풍이 툭 터지거나, 고혈압이 툭 터지거나 할 것도 그렇게 호흡을 함으로써 그것이 방지가 되는 겁니다.

무의식 중에 배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한 것을 감안해서 아주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하고 개발을 한 것이 조실 스님께서 항시 참선할 때에 심호흡을 하라고 가르켜 주신 그 방법입니다.

그 방법이 인도 오천 년 전부터서 내려오고, 중국에 수천 년 전부터서 내려오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이 몸뚱이의 모든 병을 소멸을 하고, 마음속의 온갖 복잡한 번뇌 망상을 깨끗이 쉬게 안정을 시켜서 몸과 마음을 맑게 해서,
그래 가지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오래오래 살려고 하는 그러한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연구 개발되어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방법입니다. 참선하는 데에도 이 방법은 꼭 필요합니다. 

첫째, 참선을 할라면은 몸이 건강해야 하고 정신이 건전해야—건강한 몸, 건전한 정신으로 정진(精進)이 되어 질 때에 비로소 이 공부가 중간에 탈선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딴 좋지 못한 증상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고대로 우리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단축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몸을 단정히 가지고, 그리고 호흡은 깊이 그리고 조용히 내뿜도록.
이렇게 하는데 맨 처음에는 호흡을 할려고 하면은 요 밑(단전)에까지 기운이 내려가지를 않고 오목가슴까지 밖에는 호흡이 들어가지 안 해 가지고, 답답하고 영 어깨쭉지가 쪄 눌리면서 잘 안된다 이 말씀이에요, 잘되는 분도 있지마는.

그래서 이것을 하면은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되고, 영 애를 먹고 그러한 분도 더러 있는데, 그것은 아직 숙달이 잘 안되어서 그런 것이니까,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이 가운데에는 잘 아시는 분도 있지마는 여기 나오신지 얼마 안 되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까,
잘 아시는 분은 그대로 잘 들으시고, 잘 모르시는 분은 잘 귀담아서 집에 가셔서 당장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내어서 10분 내지 30분씩 이렇게 해서 열심히 열심히 해보시라 이 말이여.

(심호흡을) 하시면은 소화 안되는 분은 소화도 잘되고, 또 신경질을 잘 내고 그러한 성미를 가진 분은 그런 신경질을 안 내고서 아주 마음 편히 살 수 있어서 아랫사람한테는 존경을 받고, 웃어른한테는 귀여움을 받고,
남편하고도 사소한 일에 모다 서로 애들 보는 데에서 주거니 받거니 싸움한 것처럼 그래 가지고 집안을 시끄럽게 하고, 위신 떨어지고 그러한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18분19초~39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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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해서 이러한 방법을 열심히—아주 방법은 간단하고 어디서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기 때문에 문제는 열심히만 하면 되요.
‘아하! 그런 좋은 방법이 있구나. 그럼 나도 꼭 해야겠다’ 이리 결심을 하고 열심히 하면은 처음에는 잘 안되는 것 같아도 차츰차츰 숙달이 되어서 잘될 때가 꼭 오는 것이니까.

그렇게 되어서 자기 몸 가볍고 건강해지고 마음 편해지고, 온 집안이 화목해지고 그렇게 된다면은 얼마나 참! 불교를 믿게 되어서, 이 활구참선을 배움으로부터서 정말 얼마나 일신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렇게 보람 있고 행복해질 수가 있느냐 이 말씀이에요.

그것이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말이지마는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만큼 효과가 있어서 보람을 참 느낄 것이고,
듣고 ‘시간이 없다’ ‘바쁘다’ ‘나중에 나이 좀 더 먹거든 천천히 하지’ ‘아들딸 학교 다 보내 놓고, 장가 들여 놓고 그때 하리’ 이러다가 보면은 결국은 종내(終乃) 이러한 좋은 약을 받아 가지고도 먹지 않고 서랍 속에다 넣어 놓고 계속 병을 앓으며 고생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칠십 세까지 살지, 오십 세까지 살지, 팔십 세까지 살지, 그것은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하는 사람이라야 앞으로 다가올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대비가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뒤로 미루다가 금방 우리 앞에 '섣달 그믐날'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이고! 내가 그때 그 용화사에서 그때부터 내가 공부를 했으면 내가 이렇게 안 되었을 걸!’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 가지고 ‘아이고! 내가 그때 좀 그때 열심히 했으면 염라대왕이 나한테 이렇게 무섭게 안 할 텐데’ 그때 그래야 그것은 소용 없습니다.


호흡이 잘 안되고, 여기가 막혀 가지고 있을 때에는 누워서 처음에 연습을 좀 해 보세요.
편안하게 누워서 배꼽 밑에 아랫배에다가 두툼한 책 한 권을 딱 얹어 놓고, 숨을 떠억 들어마셔요.
들어마셔 가지고 처음에 가슴에 찬 놈을 다시 쑤욱 아랫배까지 들어마셔서 들어밀면은 아랫배가 불룩하니 이렇게 올라간단 말이에요.
올라가면은 배 위에 올려놓은 그 책도 약 3cm, 한 치 가량이 쑤욱 이렇게 올라가게 되요.

더이상 올라가지 못할 때,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면은 아랫배가 밑으로 이렇게 내려가며 책도 따라서 내려간다 말이에요. 그 책이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까지 다 호흡을 내뱉은 다음에, 또 스르르~ 하니 호흡을 들어마셔.
들어마셔서 아랫배까지 불룩하니 들이밀으라 말이에요. 밀면은 책이 또 3cm 가량 쑥 올라가요. 다 올라가 가지고 한참 있다가 또 조용하니 또 숨을 내쉬면은 그 책이 차츰차츰 밑으로 내려가서 등어리 가서 딱 붙게 돼.

들어마실 때는 비교적 스르르~ 하니 좀 쉽게 들어마시고, 내뿜을 때는 아주 아껴서 조용하게 내뿜도록.
들어마실 때는 한 3, 4초 걸려서 들어마시고 내뿜을 때는 한 10여초 걸려서 내뿜도록 이렇게 해서 책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것이 바로 숨을 들어마셨다 내뿜었다 한 것과 마찬가지 얘기인데.

눈을 가만히 감고서 책이 한번 올라갔다 다시 쑥 내려오면 ‘하나’
또 한번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책이 올라갔다가 또 책이 조용하니 밑으로 내려오면 ‘둘’
또 들어마셨다가 내뿜으면 ‘셋’ 해서, '열'까지 세어 보시란 말이여.

열까지 세어 갖고는 그 다음에 열하나로 가지 말고, 그 다음에 아홉, 여덟, 일곱, 여섯...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또 하나까지 내려왔으면 다시 또 하나, 둘, 셋... 해서 열까지 올라갔다가 또 아홉, 여덟, 일곱...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해서, 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올라갔다 내려오고, 몇 번을 해도 계속 딴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중간에 ‘내가 여섯, 다섯까지 했던가? 여섯까지 했던가?’ 그렇게 딴 생각하다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 때에는 무조건 ‘에이! 그냥 일곱인가 보다’ 해 가지고 일곱, 여덟 하지 말고, 다시 쏴악 씻어 버리고 하나에서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하다가 또 딴 생각이 금방 들어오거든. 몇까지 했던고? 모르면 다시 하나서부터서 다시 해서,
무난히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무난히 되면은 그 다음에는 하나에서부터 스물까지 올라갔다가 열아홉, 열여덟...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고,

또 스물까지 그렇게 올라갔다 내려왔다 몇 번을 해도 아주 실수가 없이 잘되면은 그 다음에는 서른까지 하고, 그 다음에는 사십, 오십...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가 아흔아홉, 아흔여덟, 아흔일곱, 아흔여섯... 해서 하나까지 내려오도록.

한 번도 실수 없이 조르르 하니 올라갔다가 하나까지 딱 내려오게 된 사람은, 그 사람은 그렇게 하는 동안에 어지간한 병은 나아 갖고 있고,
그이는 그때 화두를 떠억 들고 한번 해보면은—그전에는 그렇게 번뇌와 망상이 들끓던 사람이 이 백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을 수료를 해서 졸업을 한 다음에 하면은—기가 맥히게 공부가 잘된다 그 말이예요.

그렇게 된 사람은 공부하다가 무슨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고 공부하다가 무슨 딴 병이 생기거나 위장병이 생기거나 그러한 법이 없습니다. 이 방법은 참선을 잘하고, 몸과 정신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만드는 데에 아주 요긴한 방법입니다.

제가 삼십 년을 두고 증험을 해 보니까 이 이상 더 요긴한 방법이 없다 이 말씀이에요.

처음부터 화두를 일러 주고—이 호흡에 대한 기초적인 것을 자세히 일러 주지 않고, 화두만 일러 주고 보니까, 상기병이 일어난다는 둥, 뭐 어쨌다는 둥, 아주 말이 많고 중간에 제대로 한 사람이 아주 드물어요.

그런데 이 방법을 먼저 일러 주어서 잘 훈련시킨 다음에—화두는 아직 일러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만 열심히 석 달 이상이 되니까 벌써 그 사람이 성격이 개조가 되고, 벌써 몸 갖는 것이 의젓하고, 어디다 내놓더라도 훤출한 장부의 기상이 보인다 그말이여.

부인들도 이 방법을 한 석 달 이상 지극히 한 사람을 보니까 그 말이 많고, 잠시도 입을 쉴 줄 모르고 지껄이던 그 사람이 말이 없어져 버리게 되고,
말말이 신경질을 부리고 남 험담을 많이 하던 사람도 이것을 하면서 부터서는 차츰차츰 남 험담하는 법도 없어지고, 시시비비에 들지도 않고—벌써 셋만 모이면 그 사람하고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싸움도 안 하게 되고, 그 조용하고 차분해진 것이 완전히 성격이 개조가 되더라 이 말씀이에요.

그런 다음에 화두를 떠억 일러 주니까 기가 맥히게 정진을 잘하더라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미 이러한 방법을 잘 알아서 이 호흡법과 화두를 겸해서 잘하시는 분은 계속 그렇게 하시고, 아직 화두 공부에 들어가시지 아니한 분, 또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어서 암만 해도 자리가 잡히지 않고 잘 안되시는 분은 이 호흡법부터 좀 관심을 가지시고 열심히 좀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호흡이 잘된 다음에 화두(話頭)를 드시되, 절대로 이 화두는—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느냐?—마음 단속하는 데 가서 인제 이 화두가 필요한 것인데,

화두를 들려면은 첫째, 큰 신심(信心)이 있어야 하고 둘째, 큰 분심(憤心)이 있어야 하고, 셋째에 가서는 큰 의심(疑心)이 있어야 합니다.

큰 신심(信心)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절에다가 돈 많이 가져오고 부처님 앞에 절 많이 하고 그것이 아니라,
‘나도 아무리 내가 여자고, 아무리 내가 말세에 태어났고, 아무리 내가 몸이 병이 있고 약하다 하더라도 옳은 방법으로 옳게만 공부를 하면은 나도 틀림없이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대정신(大正信)입니다. 바른 믿음입니다.

바른 믿음!
부처님 앞에 절을 많이 하고, 불공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가지고 오시고, 그것도 참 좋은 일이죠. 그것도 큰 공덕이 있고 대단히 좋은 일이고, 이호이 신도라고 하면은 스님네한테 대중공양도 형편 따라서 올리고, 부처님께도 불공을 올리고, 기도도 하시고, 절도 많이 하셔야죠.
당연히 그것도 참 그것은 그것대로 공덕이 대단히 말로 할 수 없이 큰 것이지마는 ‘내가 나를 옳게 닦아서 나도 성불할 수 있다’고 믿는 이 믿음이야말로 온갖 믿음 중에서는 최고 가는 믿음입니다.

‘나도 하면 된다’고 믿고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믿고서 해야 되는 것이지, ‘난 여자니까, 말세니까, 근기가 약하니까, 나는 바쁘니까, 이리저리 해서 그저 인연이나 맺지’ 이런 생각으로 해 가지고 무슨 효과가 날 까닭이 있습니까? ‘꼭 나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대신심이여.

둘째에 가서 대분심(大憤心)이 있어야 해. 아무리 신심이 있어도 분심이 없으면 안 됩니다.
분심(憤心)이 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일을, 이 일대사 인연(一大事因緣)을 마쳐서 다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건만, 무엇 때문에 나는 이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이 고생을 받고, 이 해탈을 못하고 있는가?

이것에 대해서 아주 분심이 나야 합니다. 몸을 부르르 떨고 입을 악물고 하는 이러한 분심이 속에서 솟구쳐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심이 나야 용기가 솟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분심이 없고 용기가 없이 다 늘어져 빠져 가지고 게을러서 하다가 말다가, 남이 하면 좀 하는 척하다가 그렇지 않으면 말다가, 이래 가지고는 이 문제는 해결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솥에 어떤 질기고 딱딱한 것을 고을 때에 불을 화력(火力)을 높여서 계속해서 때야지, 지푸라기 하나 둘 때다가 말다가, 때다가 말다가—지푸라기 같은 것 하나 둘 때다 말다 또 계속 때되 지푸라기 하나씩 하나씩 때 가지고 그 무슨 속에 뼉따구 사각 같은 것이 푹 무를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 공부도 계속 화력을 돋구면서—화력을 돋구어도 솥단지가 떡 갈라지도록 그렇게 무섭게 불을 때면 안 됩니다, 이 공부도. 적당하게 때야지.
때되 최선을 다해서 가장 필요한 열량만큼은 계속 그것이 지속이 되어야 속의 것이 물씬하니 물러서 약이 다 고아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공부도 조금씩 하다 말다 형식적으로 그래 갖고는 삼십 년, 백 년을 해도 마냥 죽 떠먹은 자리입니다. 한 숟갈 떠먹으나 마나 마냥 그대로 있지요? 어쨌든지 분심, 용맹심을 내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지어 나가야 하고.

셋째에 가서 대의심(大疑心).
‘나도 하면 될까 말까?’ 그것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것이 무엇인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기에게 주어진 이론으로써는 풀 수도 없고 풀려고 해서도 안 되는, 그 알 수 없는 공안(公案)에 대한 불같은 의심(疑心)!

다른 문제에 관한 의심은 이리저리 따져도 봐야 하고, 이 책 저 책도 떠들어 보고 사전도 펼쳐 보고, 모두 여러 사람한테 물어서도 배우고 모두 다 그렇지마는,
이것은 책을 떠들어 갖고도 소용이 없고, 어떤 경전을 보아 가지고도 소용이 없고, 이리저리 자기가 그 동안에 보고 듣고 한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연구하고 따져 가지고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만 연장을 시키고, 오히려 공부 길만 나쁜 길로 빠질 뿐이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될 수 있으면 빨리 시간을 단축하고 그리고 바르게 깨달으려면은 무조건(無條件), 무이로(無理路), 무어로(無語路), 무모색(無摸索)—더듬어 들어가지 말 것이며, 따져 들어가지 말 것이며, 이리저리 비교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해서 지해(知解)와 사리상량(邪理商量)으로 알려고 하지 말 것입니다.

다못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고, 해 갈수록 답답하고 꽉 맥힌 것, 그것이 공부가 가장 잘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5년, 십 년을 해도 아무것도 알아진 것이 없고, 밤에 눈을 감고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는 것도 없고—"뭣한 이는 밤에 떠억 눈을 감고 앉았으면 부처님이 나와서 뭔 이야기도 하고, 훤하니 무엇이 보이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암만 해도 답답하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안 되니, 이 공부가 잘된 것입니까, 공부가 잘못된 것입니까?" 이렇게 와서 묻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갈수록 알 수가 없고, 꽉 맥히는 그분이야말로 가장 올바르게 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이고, 그렇게 해 나가야, 갈수록 그 알 수가 없이 꽉 맥혀야 그분은 깨달을 수 있는 분입니다.

솔솔 따져 들어가고, 무엇이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어서 재미를 거기다 붙여 가지고 무엇을 들여다보고 앉았고 이런 사람은—그건 참, 도저히 그런 공부는 차라리 공부 안 한 것만 못합니다. 그냥 아들딸 잘되라고 관세음보살 부르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리 아시고요. 

알 수 없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또 ‘이뭣고?’ 하시는 분은 ‘이! 하는 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성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집안에 근심 걱정이 있어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하되 그때 호흡은 계속해서 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하니 나오고, 숨을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고,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알 수 없는 화두를 거기다가 놓고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시라 이 말씀이에요.
이렇게 해서 몸을 단정히 가지고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그 가운데 알 수 없는 화두가 항시 성성(惺惺)하게 드러나도록.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하거나, 그 알 수 없는 화두가 떠억 우리의 눈 앞에 항시 그놈이 앞서도록, 이렇게 참선을 생활화 할 때에 모든 생활은 바로 부처님과 같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왜 그러냐? 이 화두를 놓쳐 버리고 온갖 번뇌 망상하고 있을 때에는 마구니들 하고 같이 어울려서 마구니 판에서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 되고,
어떠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화두를 추켜들고 화두로써 모두 생활이 되어갈 때에는 바로 그 자리는 불보살과 같이 생활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소원대로 이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 계시는 데에 무슨 마구니가 거기에 어리댈 까닭이 있습니까? 극락세계나 또는 천당이나 지옥이 우리가 죽어서만 가는 게 아니라, 우리 살아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고대로 그 지옥과 천당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화두 놓쳐 버리고 그래 가지고 감정에 사로잡혀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휩쓸려 넘어갈 때에는 바로 마구니 지옥에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분이 나고 성이 나고, 속이 활딱 뒤집어지더라도 그때 턱!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떠억 들어 보시란 말이여. 삽시간에 불같이 일어나던 그 생각이 스르르 꺼지면서 나의 본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만큼, 금방 1초 전의 지옥이 천당으로 변하는 것이요, 극락으로 변하는 도리가 바로 이 활구참선법입니다. 

오늘 입춘을 기해서 무량겁.... (39분36초~60분41초)(끝)

 

 

 



----------------(1/3)

*요승(妖僧) : 정도(正道)를 어지럽히는 요사스러운 승려.
*유가(儒家) : 공자의 학설과 학풍 따위를 신봉하고 연구하는 학자나 학파.
*파계(破戒) ; 계(戒)를 받은 사람이 그 계율을 어김.
*야수 ; ‘여우’의 사투리.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백사병(四百四病) ; 인체에 일어나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사대(四大)—지(地)·수(水)·화(火)·풍(風)의 부조화로 각 요소에 대해서 101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지(地)와 화(火)에서 일어나는 열병(熱病)이 202가지, 수(水)와 풍(風)에서 일어나는 냉병(冷病)이 202가지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경전에 그들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이 일정하지 않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시(巳時) ; ①지난날에 쓰던 십이시(十二時)가운데 여섯 번째 시(時). 오전 9시부터 11까지를 말한다. ②지난날에 쓰던 이십사시(二十四時)가운데 열한 번째 시(時). 오전 9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를 말한다.

 

 

 



----------------(2/3)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구백생멸(九百生滅) ; 《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剎那爲一念 一念中一剎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호랑이 밥 ;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에 나오는 구절.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최상승론(最上乘論) ; 1권.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을 확인하여 잘 지키는 수심(守心)을 강조한 저술.
돈황 출토본 중에 「기주인화상 도범취성 오해탈종 수심요론(蘄州忍和尙導凡趣聖悟解脫宗修心要論)」이 이것과 같은 것으로, 제목은 다르나 기주 인화상이 곧 홍인대사이며, 「수심요론」이 우리나라에서 「최상승론」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3/3)

*종내(終乃) ; 끝까지 내내.
*섣달 그믐날 ; 납월삼십일(臘月三十日). 납월(臘月)은 음력 섣달,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 섣달 그믐날은 납월삼십일, 일 년의 마지막 날로 곧 생애의 마지막 날을 뜻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훤출하다 ; 훤칠하다. ①(어떤 대상이)길고 미끈하다. ②(모습이)깨끗하고 시원스럽다.
*말말이 ; 한마디 한마디의 말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 ①깨달음과 중생제도의 중대한 부처님의 임무. ②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인연. ③부처님이 정도,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여러가지 방편으로 이끌어, 모두 구한다고 하는 중대한 인연. 일단인연(一段因緣)이라고도 한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푸라기 ; ①짚의 부스러기. ②또는 낱개의 짚.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리(邪理) ; 그릇된 이치나 생각.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5. 1. 8. 15:08

§(616)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 입중오법(入衆五法) / (게송)활구참선객~ /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 참선 자세와 호흡.


『헤어진 옷을 입고, 거치른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바보가 되어가지고 알뜰하게 짬지게 정진을 해 나가면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다』 이렇게 오조 홍인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화두 의심이 희미해지면 또 들고, 딴 생각이 들어오면은 딴 생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딴 생각 일어나면 일어남 그대로 놔둔 채 터억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것이 딴 잡념과 망상 번뇌를 물리치는 최고의 방법이여.


참선이라 하는 것이 1년, 2년, 3년을 내지 7년, 10년을 해도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알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알아질 것도 없고, 얻어질 것도 없고, 무엇이 보일 것도 없고, 해 갈수록 알 수 없을 뿐이거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정말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의단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라 하셨습니다. 진짜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송담스님(No.616)—98년(무인년) 동안거결제 법어(98.12.03) (용616)


(1) 약 19분.  (2) 약 9분.


(1)------------------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 보면은, 언젠가도 이 말씀을 도반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만은,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다맛 능히 헤어진 옷을 입고,

손추손(飱麤飱)하며,  거치른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고,  요연(了然)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인(亻) 변에 염소 양(羊)’한 자(字)는 ‘거짓 양(佯)’자인데,


양치(佯癡) ‘어리석을 치(癡)’자, 양치(佯癡)는 거짓 어리석은 척 하는 것입니다.

양병(佯病)하면 실제는 병이 안 났지만은 거짓 병을,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佯病)이라 그러는데, 설사 속은 환하니 지혜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지만은 완전히 바보처럼 하루하루를 지내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바보처럼 지내냐?’하면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바보짓을 하라 이겁니다. 뭔 말을 하면 전혀 말귀를 못 알아들어. 아주 팔부도 못되는 바보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이여.


그렇게 하는 것이 최생기력이능유공(最省氣力而能有功)이다. 가장 힘은 적게 들이면서 공부하는데는 가장 효과적이다 그말이야.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 하고, 선방에 와서 잘난 척하고, 그래 가지고 꺼떡하면 시비가 일어나고, 그렇게 해 가지고 다른 분한테 공부하는데 폐(弊)를 끼치고 선방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이러한 것은 진짜 똑똑한 사람도 아니요, 진짜 발심(發心)한 사람도 아니요, 선방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인가를 알 수가 없는 의심스러운 그러한 행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도 공부 못하고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되니, 칼을 들고 거리에 나가서 강도질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죄를 범하고 있다 그말이여.

칼 들고 강도질 해봤자 사람 죽이고 감옥에 가서 징역 살고, 죽어서 지옥에 가면 그 사람 한 사람에 끝나는 거지만,


신성한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 하고 잘난 체 하고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정진하는 사람을 마음을 흩어트려가지고 공부를 못하게 하면 감옥에 가는데에만 그치겠습니까?

무간아비지옥(鼻地獄)에 가 가지고 무량겁토록 헤어날 기약이 없다.


왜 그러냐? 정진을 열심히 해서 성불할 사람을 방해를 쳤으니 사람 생명을 하나 둘 죽이고 재산을 뺏는 죄에다가 비교가 되지를 않는다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헤어진 옷을 입고, 거치른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바보가 되어가지고 알뜰하게 짬지게 정진을 해 나가면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다』 이렇게 오조 홍인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는 육조혜능(六祖慧能) 선사, 육조 스님에게 법을 전한 대선지식(大善知識)이신 것입니다. 


항상 산승이 여러 도반들에게, 특히 이 보살선방에 계신 보살님네한테도 누누이 말씀을 했지마는,

세속에서는 자기를 과시하고 똑똑한 체 하고, 자기의 역량을 항상 널리 남 앞에 선전하고, 그래야 남이 알아주고, 그래야 자기가 대접도 받고 또 여러 가지 사회활동도 할 수 있고 그러지만,


절이라고 하는 데는 특히 선방에 수행하는 곳이라 하는 것은 거기서 무슨 표를 얻어가지고 국회의원이나 무엇에 당선할라고 모이는 곳도 아니고, 자기가 재산이 많다고 하는 것을 자랑할라고 온 것도 아니고, 학식이 많다고 하는 것을 자랑할라고 온 것도 아니고,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가 아니냐 이말이여.


무엇을 물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억울한 소리를 좀 하더라도 ‘예, 제가 잘못됐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항상 그러한 마음으로 산다면 자기도 장애가 없고 남에게도 피해를 안 주니,


그래서 이 선원에서는 조용하게 말없이 묵묵한 가운데 자기 소임을 하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알뜰하게 화두 단속을 하고,

항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석 달 동안이 어떻게 지내간 줄 모르는 사이에 하루하루가 그렇게 지내가도록 그렇게 정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오조 스님께서 최상승론 마지막에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분명하게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자기 본 마음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이것이 제일이니라. 만약 부지런히 이렇게 정진을 안 한다면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냐.

내가 이렇게 말해 준 이것이 너희들을 속이는 것이라면 나는 당래(來)에 18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하늘과 땅에게 맹세하노니 내가 이렇게 간곡히 너희들에게 말해 준 말을 너희들이 믿지 않고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은 너희들이야말로 세세생생에 호랑이한테 물려갈 것이다.』 대단히 무섭고도 엄섬한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는데,


이 오조 스님의 최상승론에 있는 아까 말씀드린 이 요점을 정말 깊이 믿고 일생에 좌우명을 삼도록 간곡히 부탁하는 표현이 이렇게 참 무서운 하늘 땅에 맹세를 하고 말씀을 해 주신 것이니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겹도록 큰 자비에서 나오신 법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율문(律文)에 입중오법(入衆五法)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섯 가지 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첫째, 대중과 같이 살 때에는 하심(下心)을 하라 그랬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하심을 해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주장을 하지 말고, 항상 하심하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비심(慈悲心)을 가지라 그겁니다.

어려운 소임은 자발적으로 맡고, 어쨌든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생활 가운데에 폐를 주지 않도록,

그렇게 말 한마디라도 자비스럽게 하고, 모든 행동을 자비심을 가지고 해라 그거거든.


셋째는 공경심(恭敬心)이니, 항상 다른 스님네를—물론 후배가 선배 스님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선배 스님도 덮어놓고 후배라고 해서 무시하고 억압을 할라고 그러고, 짓밟을라고 그럴 것이 아니라,

먼저 중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수행을 얼마나 했가니 덮어놓고 후배를 업신여기고 자기가 목에다 힘주고 그래서는 안되는 거고, 또 후배는 하루를 먼저 되었다 하더라도 항상 선배를 공경히 여겨야 한다 그말이여.


그러다보니 피차 서로 공경을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보고 잘못된 점을 볼 필요가 없고, 성불(成佛)을 해도 부처님은 중생을 시봉(侍奉)하기 위해서 사시는 것이고,

손바닥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아니한 땅이 없다고 할 정도로 불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몸을 바치고 그러시는 것이 불보살의 생애인 것인데,


하물며 우리 출가한—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아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목표로 하는—우리야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넷째는 지차서(知次序)니라. 차서(次序)를 알아라. 행주좌와 중에 공양할 때나, 법문을 들을 때나, 법당에 오르내릴 때나, 도량에서 운력을 할 때나, 항상 차서를 알아서 자기의 분(分)을 알아 가지고 그렇게 차서를 알아야지,

차서를 모르고 마구잡이 그렇게 하면 질서가 문란해져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게 되니 대중의 처소가 시끄럽게 되고 그런 것이니 차서를 알아라.


다섯째는 불설여사(不說餘事)니라. 나무지기 일을 말하지 마라.

나무지기 일이라는 게 무엇이냐? 우리는 자기 소임을 열심히 충실히 살면서 대중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열심히 도만 닦으면, 무슨 딴 얘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묵언(默言)’이라 하고 묵언표를 달 필요도 없이 하루에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항상 속에는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이 충실하고, 무엇을 보나 무슨 소리를 듣거나 그것이 귀에 들릴 것도 없고 눈에 보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뿐이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그 의심이 희미해지면 또 들고, 딴 생각이 들어오면은 딴 생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딴 생각 일어나면 일어남 그대로 놔둔 채 터억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만이여. 그것이 딴 잡념과 망상 번뇌를 물리치는 방법이여.


물리치는 방법이 그대로 놔두고 화두만 딱 드는 것이 그것이 물리치는 최고의 방법이여.

그러다보니 무슨 잡담할 겨를이 있으며, 무슨 시비를 할 겨를도 없고, 내가 시비에 말려들 것도 없다 그말이여. 


입중오법(入衆五法)을,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이렇게 내가 부탁할 것도 없이 다 그렇게 지키고 계신 분이 대부분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간혹 한두 분이 이러한 것을 어기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이번 한 철 만큼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해 주십사 하는 말씀입니다.


이 다섯 가지 법을 지키고 보면 자기 자신도 장애 없이 잘 정진을 하게 될 것이고, 해제를 할 때에도 ‘참, 내가 이번 한 철은 내가 너무너무 짬지게 잘 지냈다’ 이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해제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철 한 철을 지내고 보면 오조 스님의 그 최상승론에 있는 법문과 저절로 계합(合)이 될 것이고, 호랑이한테도 안 물어가게 됩니다.


또 오조 스님도 이런 법문을 천지에다 대고 맹세를 하셨는데, 우리 후배 후손들이 그 법문을 가슴 깊이 명심을 하고 알뜰히 정진을 한다면은,

오조 스님을 비롯한 역대 조사와 삼세제불보살(三世諸佛菩薩)들도 다 흐뭇하게 생각하시고 우리가 도업(道業)을 성취할 때까지 정말 자비의 눈초리로 우리를 호념(護念)해 주실 것입니다.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  하인작득쌍(何人作得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염왕자귀항(閻王自歸降)이리라

나무~아미타불~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여,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선객(禪客)들이, 어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견줄 수가 있겠느냐? 천상천하에 독보(獨步)다 그말이여.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인가? 권리를 추구하는 사람인가? 재산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색(色)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청춘을 버리고 인생으로서 태어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일대사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말이여. 아무도 견줄 수가 없어. 유아독보(唯我獨步)거든.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모든 인연이 다해 가지고 이승을 하직할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가지고 합장 공경을 할 것이다.(閻王自歸降)


이건 조사 스님의 게송(偈頌)인데,(21분31초~40분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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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이라 하는 것이 1년, 2년, 3년을 내지 7년, 10년을 해도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알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알아질 것도 없고, 얻어질 것도 없고, 무엇이 보일 것도 없고, 해 갈수록 알 수 없을 뿐이거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정말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의단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께서 읊으신 공안에,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라 하셨습니다. 진짜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그랬습니다.


알 수 없는 의단으로 정말...  그 의심이라 하는 것이 눈 미간(間)을 찌푸리면서 용을 쓰면서 의심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심자(初心者)는 간절히 의심을 하라 하니까 용을 쓰면서 ‘이뭣고?’ ‘이뭣고?’하다가 상기(上氣)가 되어 가지고 골치가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세를 단정히 하면서도 어깨의 힘을 다 빼고, 목의 힘도 다 빼고, 머리끝에 머리카락 하나를 들어 가지고 대롱대롱 하니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거기에다 무슨 힘을 어디다 주겠습니까? 그러한 마음..


이건 좀 정진을 많이 해보면 머리카락 하나를 들고—가부좌(跏趺坐)를 하는 그 수행인이 머리카락 하나에 의해서 이렇게 대롱대롱하니 매달린 그 경지를 스스로 이해가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인 것입니다.

단정하면서도 모든 힘을 다 뺐어.


그리고서 눈은 감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뚝! 부릅뜨지도 말고 평상개안(平常開眼)이여.

그래 가지고 방바닥 보기로 한다면 약 3미터 지점, 3미터 내지 2미터 지점이 요렇게 보일 정도로 눈을 뜨되, 그 지점을 응시(視)를 하는 것이 아니여.


눈을 뜨고 볼려고 하면 그 자리가 보일 정도로 자세를 잡으라 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다가 무슨 콩이나 뭐 갖다 놓고 그놈을 들여다보고 있고 그런 짓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서 호흡을 하되, 단전호흡을 하라 하니까 그것을 무리하게 잘 몰라가지고 억지로 하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되고, 오히려 더 상기가 오고, 이런 호소를 하는 분이 가끔 있는데, 단전호흡이라고 해서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하는 호흡으로 다맛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시고 내쉴 때 코로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 배꼽 밑에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또 내쉴 때는 그 아랫배가 약간 차츰차츰차츰 홀쪽한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들어마실 때 너무 가뜩 들어마셔 가지고 억지로 참고 그런 짓 하는 거 아니에요.

칠부나 팔부 정도 조용하니 들어마셨다가 잠시 멎구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는데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여.


조금도 무리가 가는 것이 아니고, 몇 번 하고 나서 ‘허후∼’ 숨을 몰아쉬어야만 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호흡을 하기 전에 준비호흡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숨을 급히 빨리 그리고 가뜩 들어마셔. 코로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셔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내쉴 때는 입으로 ‘후∼’하고 내쉬는데 완전히 가슴을 홀쭉히 하면서 다 내뿜는 거여.


다 내뿜었으면 한번 더 가뜩 들어마셨다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후∼’, 한번 더, 3번을 그렇게 해서 가슴 속에 있는 모든 묵은 공기를 다 뱉어버리는 것이여. 그것이 준비호흡 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여.


그렇게 하면 기분도 상쾌하고 또 몸의 각 기관에 자극을 주어서 정신이 새로워지는 것이고, 그 준비호흡은 3번 처음에 시작할 때 그렇게 하는 거고.


정식으로 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여. 자연스럽게 조용하게 코로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코로 내쉬는데 조금도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들어마시는데 약 3초, 머무르는데 3초, 내쉬는데 약 3, 4초 이렇게 해서 그러면 합해서 한 10초 가량 걸리는데,


그런 정도 호흡은 누구든지 할 수가 있고 조금도 무리가 안 가니까 그런 식으로 해서 한 달 두 달 하다 보면은 차츰차츰 호흡이 안정이 되면 한 15초 또 더 잘되면 20초, 이렇게 늘려서 한 30초에 한번씩..

그것도 무리가 없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렇게 해서 무리하게 하는 것은 부작용이 일어나서 못쓴다 이 말씀입니다.


그렇게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이것은 지극히 초학자를 위해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미 단전호흡도 잘되고 화두도 잘되는 분은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정진을 길들여 가면 상기병이다 소화불량이다 그런 병이 있는 사람도 낫게 되는 거고, 건강도 좋아지고 정진도 잘 될 것입니다. 


오늘 백일기도 입재도 되고 하니 이 백일기도에 드신 분은 가정에서 정진을 하시되, 가정에서도 항상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들으면서 가정에서도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고, 그러면 가정이 바로 선방이 될 것입니다.


요새 세상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하고 어렵지만은 불법을 믿는 사람은 오히려 이럴 때에 더욱 발심을 해서 잘 모든 것을 이겨 나가시면 또 세상이 다시 또 살기 좋게 될 것입니다.(40분35초~49분1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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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 ‘역대 스님 약력’ 참조.

*최상승론(最上乘論) ; 1권.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을 확인하여 잘 지키는 수심(守心)을 강조한 저술.

돈황 출토본 중에 「기주인화상 도범취성 오해탈종 수심요론(蘄州忍和尙導凡趣聖悟解脫宗修心要論)」이 이것과 같은 것으로, 제목은 다르나 '기주 인화상'이 곧 홍인대사이며, 「수심요론」이 우리나라에서 「최상승론」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요연(了然 밝을 요,그럴•명백할 연) ; ①분명(分明)한 모양(模樣) ②명백(明白)한 모양(模樣).

*폐(弊 부술 폐) ; ①어떤 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이나 해로 요소. ②에게 끼치는 신세 괴로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 ‘비’는 구()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육조혜능(六祖慧能) 선사 ; ‘역대 스님 약력’ 참조.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당래(來)죽은  다시 태어난다는 다음 세상 말한다.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차서(次序) 이상  각각 선후() 구분하여 하나 벌여 나가는 순서또는  순서에서 차지하는 위치.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나무지기 ; ‘나머지’의 사투리.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 무자(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눈초리 ; ①어떤 대상 바라볼   나타나는 표정눈꼬리( 쪽으로 가늘게 좁혀진 의 가장자리).
*호념(護念) ; 불보살이 선행을 닦는 중생을 늘 잊지 않고 보살펴 주는 일.
*(게송) ‘활구참선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2권) '贈熙長老' 참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독보(獨步) 감히 따를  없을 만큼 혼자 앞서 . 또는 그런 사람.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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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 ; [주로 ‘용을 쓰다 구성으로 쓰여]단번에 내는  .
*초심(初心) ; ①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려고 한 마음. 처음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고 한 마음. ② 처음으로 수행하는 사람. 수행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③ 처음의 결심.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평상개안(平常開眼) ; 보통 때 처럼 눈을 뜸.
*응시(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 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이나 현상 대하여 깊이 살핌.


Posted by 닥공닥정
오조 홍인대사2013. 9. 20. 15:58



經云衆生若情誠不內發者於三世縱値恒沙諸佛無所能爲經云衆生識心自度佛不能度衆生若佛能度衆生者過去諸佛恒沙無量何故我等不成佛也只是情誠不自內發 (最上乘論節錄 松潭)

경(經)에 이르되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스런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의 비록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득(無所得)이니라. 어찌할 바가 없느니라.
또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하고 말을 한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을 못했을 것이냐.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돈발하지 못한 연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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