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게송)좌간백운청수성~ / 사리불의 부정식(不淨食)과 아나율의 졸음 / 사리불과 아나율의 결심 / 권아라한(權阿羅漢).
〇아나율 존자나 그 사리불 존자의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그렇게 매서운 결심을 하고, 부처님이 아무리 설득을 하고 꾸짖어도 끝까지 두 눈이 멀 때까지 잠을 자지 아니한다든지,
국왕이 와서 청하고, 수달장자가 와서 청해도 소용이 없고, 끝까지 공양에 응하기까지 아니한 그런 것은 우리 말세 중생들에게 그런 굳은 결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지 아니 했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〇이러한 결심은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굳은 결심이 없고서야 어떻게 다생겁래(多劫生來)로 쌓인 우리의 업(業)을 극복을 해가지고 도업을 성취하는데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물에다 술 탄 듯, 술에다 물 탄 듯, 오늘도 이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금생에 도업을 성취할 것을 기약하기는 매우 어려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용256)
(1) 약 21분.
(2) 약14분.
(1)------------------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한데 도로성색본가풍(都盧聲色本家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륜상월만공산(一輪霜月滿空山)한데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하니, 도로성색(都盧聲色)이 본가풍(本家風)이로구나.
앉아서 흰구름을 보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모든 소리와 그 색상이 본래가풍(本來家風)이드라.
일륜상월(一輪霜月)이 만공산(滿空山)한데, 한안(寒雁)이 여천향북비(唳天向北飛)다.
한 바퀴 서릿달이 빈산에 가득한데, 휘황찬 밝은 서리친 밤에 그 둥근달이 빈산에 가득한데, 차운 기러기는 북쪽을 향해 울며 날아가는구나.
오늘은 85년도 2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아울러서 우리 용화사에 어린이 법회를 시작한 이래로 2주년을 맞이하는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회가 끝나고 나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하모니카 할아버지라고 그 이해창 선생님을 초빙을 해서 어린이 법회 2주년을 축하하고, 겸해서 6학년 어린이가 졸업을 하게 되니까 그 졸업 송별을 기념하는 뜻과 아울러서 오늘 이 법회에 이어서 그런 행사가 간단히 있겠습니다.
달마 스님께서 인도에서 140세까지 법(法)을 펴시다가, 140세에 중국으로 오셔서 9년면벽(九年面壁)을 숭산(崇山) 소림사에서 하시고, 혜가 대사에게 법을 전하셨는데,
그 달마 스님께서 설하신 『달마혈맥론(達摩血脈論)』, 『달마관심론(達摩觀心論)』, 『달마사행론(達摩四行論) 』, 이런 대단히 요긴한 법문이 전해 오는데,
그 혈맥론에 볼 것 같으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도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한 말씀을 강조를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도 왼팔은 사리불(舍利弗) 존자(尊者)요, 오른팔은 목련(目連) 존자라. 사리불과 목련 존자는 그 십대제자 가운데에도 제일 손꼽는 그런 부처님의 수제자이신데, 그 두 제자는 금지국(金地國)이라고 하는 나라에, 그 전생은 금지국왕이고 하나는 그 왕비였습니다.
그 왕이 세상을 떠나니까 그 왕비가 자기도 같이 왕의 화장하는 불더미 속에 뛰어들어 가지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다시 함께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뜻으로 죽음을 같이 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다음 생에 태어나기는 같이 태어나기를 바랐지만, 닦은 바 업(業)이 서로 똑같지 아니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나, 그래도 같은 외도(外道)의 제자가 되어서 그 외도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 외도가 죽으니까 거기서 떠나가지고 결국은 부처님을 찾아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리불이 지혜가 뛰어난 그러한 훌륭한 아라한(阿羅漢)인데, 오늘은 그 사리불 존자에 대한 말씀을 우리가 듣고서 우리의 수행해 나가는 데에 좋은 채찍을 삼고 거울을 삼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입정(入定)을 하시고, 방선(放禪)을 하고 난 다음에 포행(布行)을 하시는데 부처님의 아들 나후라(羅睺羅) 존자가 부처님의 뒤를 따라서 모시고서 같이 이렇게 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당신의 아드님이신 나후라 존자를 이래 눈여겨보시니까 너무 야위었다 그말이여. 살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고 혈기가 없고 야위니까, “네가 몹시 여위었구나”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기에는 생사를 해탈하셨고, 일체 중생의 희로애락도 다 초월하셨고, 모든 인정과 그런 것도 다 초탈하신 그런 성현이시고, 땅에 발을 디디시지 아니하고 저 오색구름이 영롱한 위로 다니시며 우리 인간과는 영판 거리가 먼 그런 위대한 성현으로 우리는 받들어 모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시경전(原始經典)에 보면 부처님도 우리 인간과 조금도 다름없는 정말 다정한 할아버지와 같은 그러한 따스한 면을 가지시고 그런 자비에 넘치는 눈매로 제자들과 일체 중생을 따뜻하게 이렇게 보살펴주시는 그러한 면이 넘쳐흐르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신의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당신을 따라서 출가를 했는데, 항시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그런 것이 관심이 있다고 해서 ‘부처님이 아니다. 어찌 그런 성현이 당신 아들에 대한 애착을 가질 것인가’
애착이 아니라 인연이 있기 때문에 “네가 참 몹시 여위었구나” 그 한 말씀하시는 데 우리는 너무너무 참 이 콧등이 찡하는 그런 것을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나후라 존자가 말씀을 하기를, “만약 사람이 기름기 있는 것을 먹으면 힘이 생기고, 또 우유로 만든 소락(蘇酪)을 먹으면 피부가 윤택하고, 또 삼 찌꺼기나 채소 같은 것을 먹으면 몸에 기력이 없다고 하는 것을 대덕(大德) 세존(世尊)께서는 응당히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게송(偈頌)으로써 대답을 해 올렸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듣고 끄덕끄덕 하시면서 그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으시고 “대중 가운데에 누가 제일 상좌(上座)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나후라 존자가 대답하기를 “화상(和尙) 사리불이 제일 윗자리에 앉으십니다”
본래 나후라 존자가 출가할 때에 사리불의 상좌(上佐)를 삼아 주셨던 것입니다. 사리불에게 당신의 어린 아들을 맡겨서 잘 가르키고 지도하도록 그렇게 사리불을 은사(恩師)로 삼아 주었는데.
“그 사리불이 제일 윗자리이십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정식(不淨食). ‘아니 불(不)’자, ‘조촐할 정(淨)’자, ‘밥 식(食)’자, 깨끗하지 못한 식사를 했다.
원래 부정식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하구식(下口食). 입을 아래로 하고 얼굴을 아래로 두르고 일을 해서 먹고사는 직업을 하구식이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땅을 파서 곡식을 심어 먹는다든지, 나무를 심어서 이익을 얻는다든지 또는 약초를 심어서 약장수를 한다든지 이런 것은 모두 얼굴을 아래로 두르고 땅에서 그 땅을 이용을 해가지고 먹고사는, 직업을 삼는 이것을 ‘아래 하(下)’자, ‘입 구(口)’자, 하구식이라 그러고.
그다음에 앙구식(仰口食)이라 하는 것이 있는데, 얼굴을 하늘로 두르고 거기서 하는 직업.
예를 들자면은 별을 관찰한다던지, 해와 달을 관찰한다던지, 또는 바람이나, 비나, 번갯불 모다 이런 것을 갖다가 일기(日氣), 기상(氣象) 이런 것을 관측해 가지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먹고사는 것을 앙구식이라 하고.
그다음에 셋째는 방구식(方口食)이라 하는 게 있는데, ‘모 방(方)’자. ‘모 방(方)’자는 동서남북을 이것을 인자 사방(四方)이라 그러는데,
동서남북 사방의 그 방구식이라 하는 것은 동쪽, 서쪽에 있는 모다 권세 있는 집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면서 그 앞에 굽신거리고 아첨하고 아부하고 해 가지고, 권문세도(權門勢道)에 붙어가지고 거기서 돈을 얻고 그 권리에 빙자(憑藉)해서 그래서 먹고사는 거, 그런 것을 갖다가 방구식이라 그러고.
그다음에 넷째는 사유구식(四維口食)이라. ‘유’자는 ‘오직 유(維)’자인데, 동서남북 그 사이사이에 있는 간방(間方)을 사유(四維)라 하는 것입니다. 동남간방, 동북간방, 서남간방, 서북간방, 이 간방을 사유라 그러고, 동서남북 그것을 사방이라 그러는데, 그 네 간방을 향해서 벌어 먹고사는 것.
그건 뭐냐 하면은 점(占)을 치고, 주술을 사용을 하고 그래가지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따져서 하는, 요새 같으면은 사주관상을 하고, 점을 치고 하는 그러한 직업을 갖다가 사유구식이라 하는데, 그러한 방법을 해가지고 먹고사는 것을 갖다가 사유구식이라 하는데.
하구식, 앙구식, 그리고 방구식, 사유구식, 이것을 사부정식(四不淨食)이라 그러는데, 원래 ‘비구, 비구니 출가인은 이 네 가지의 부정한 것을 직업으로 해가지고 의식주를 해결하지 말아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그랬으니, 사리불이 설마 인자 막 말씀드린 이러한 유(類)의 부정(不淨)한 방법으로 직업을 삼아서 의식주를 조달했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고.
이 독청(獨請). 어느 왕이나, 장자나, 대신이나 이런 신심 있는 신도가 공양(供養)을 청(請)할 때에 대중적으로 가는 것은 좋으려니와 단독으로 초청을 받아서 가서 하는 것, 이러한 것을 갖다가 이것도 하나의 이러한 의미의 부정식을 했다고 하신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했느니라”한 그 말씀이 나후라 존자를 통해서 했던지, 다시 또 다리를 건너서 갔던지, 사리불이 그 말씀을 듣고서 결심을 하기를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 나를 공양을 청하더라도 나는 일체 응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딱!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파사익왕(波斯匿王)이라고 하는 임금님이 있었는데, 그 파사익왕과 수달장자(須達長者) 두 분이 회상(會上)에 와 가지고 사리불을 친견을 하고 “사리불 존자께서 공양을 청해도 오시지 아니하니 그럴 수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도 공양을 청해도 잘 오시지 않고 또 그 수제자이신 사리불 존자도 공양을 청해도 오시지 아니한다면 우리 백의단월(白衣檀越) 신도들이 어떻게 신심을 돈독히 하고, 청정한 마음을 내고 복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리불 존자가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 보고 부정식을 했다고 하셨는데 내가 어찌 그 말씀을 듣고 감히 공양을 청할 수가 있겠는가”하고 딱 거절했습니다.
그러니 파사익왕과 수달장자가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도 공양에 응하시지 않고 사리불도 응하시지 아니한다면 우리 같은 세속에 사는 단월들이 어떻게 신심을 드높이고 공덕을 쌓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제발 사리불한테 특명을 내려서 그런 생각을 고쳐서 공양에 응하도록 좀 해 주십시오”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사리불은 마음이 굳기가 강철 같아서 아무리 내가 말해봤자 응하지를 않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사리불은 부처님의 그런 특명도 응하지 않고 그렇게 고집을 부릴 수가 있겠습니까?”(처음~20분38초)
(2)------------------
“그건 다름이 아니다.... ”
옛날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그 국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독사(毒蛇)에 물렸는데, 한번 물리면은 그 독이 전신으로 번져가지고 막 몸이 부어서 죽어 가는데,
국왕이 많은 의사를 불러다가 ‘빨리 이 내 병을 고치라’고 특명을 내려서 그래서 명의를 갖다가 여러 사람을 불러다가 치료를 하는데, 그 독사가 너무 무서운 독사여서 도저히 자기네들의 그 치료 방법으로서는 나을 수가 없어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걸 고칠 수가 있느냐?’
‘이것은 그 문 그 독사를 다시 불러서 그 독사로 하여금 그 문 자리에서 독기를 스스로 빨아내게 하는 재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럼 빨리 그 독사를 불러들여라’
그래가지고는 의사들이 주문을 외워가지고 그 문 독사가 제 발로 임금님 계신 데에 오게끔 했습니다.
독사가 오니까 그 옆에다가 장작불을 갖다가 쌓아서 불을 피워 놓고서, 그 독사 보고 하는 말이, ‘네가 이 상감마마를 물었으니, 상감마마에 그 문 자국에서 독기를 스스로 빨아내서 상감마마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면 네 목숨을 살려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은 너는 이 불더미 속에 넣어서 꼬실라 죽이겠다’
독사가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내가 물어서 독한 독을 갖다가 뱉어 냈는데 어찌 감히 다시 그 독을 내가 다시 빨아먹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그럴 바에는 내가 이 불속에 뛰어들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가지고 그 불속으로 뛰어들어가 가지고 죽었는데, 그때 그 불속에 뛰어들어 죽은 독사가 사리불의 전신(前身)이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리불은 과거에 독사(毒蛇)가 되었던 그 인연—독사라 하는 것은, 원래 독사의 몸을 받는 것은 신경질을 잘 내고, 골을 잘 내고, 조그마한 일에도 불쑥불쑥 화를 잘 내고, 이러한 과보(果報)—진심(瞋心)을 많이 내면 그것이 인자 독사의 과보를 받는 것인데.
그런 독사의 몸을 받았던 과거가 있고 또 불속에 뛰어든 그런 성격으로 인(因)해서, 여러 생(生)을 사람으로 태어나서 도를 닦고 마침내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해서 지혜가 제일가는 그러한 성현이 되어가지고서도 사리불은 그 진심 내는 여습(餘習)이 항시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했다’ 그러면, 부정식만 아니하면 되었지,
‘일체 공양까지 내가 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한 결심 그러한 성격은 다분히 신경질적인, 그러한 전생에 독사의 몸을 받았을 때 가졌던 그 진심(瞋心)의 여습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증거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부처님 십대제자에 아나율(阿那律) 존자라 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부처님 법문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부처님이 크게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도를 닦는 수행자가 법문을 들을 때 졸을 수가 있느냐? 똥을 가지고는 아무리 좋은 조각을 한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고, 변소에다가는 아무리 울긋불긋 단청을 해봤자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그런 비유를 드시면서 크게 꾸지람을 하셨는데,
아나율 존자는 그 부처님의 꾸지람을 깊이 명심(銘心)을 해가지고 ‘내가 도업(道業)을 성취할 때까지는 결정코 잠을 자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명심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옆구리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자지 아니하고, 잠이 오면 일어서서 포행을 하고, 온갖 방법을 써서 잠을 쫓으면서 기어코 잠을 안 자면서 계속해서 가행정진을 용맹정진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보름, 한 달이 되니까 잠을 안 자니까 눈이 발간 하니 되더니 나중에는 눈갓이 찌적찌적하니 물르고 나중에는 눈이 차츰차츰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그것을 대단히 걱정을 하시고 기파(耆婆) 대감을 시켜서 치료를 시켰습니다.
기파대감이 아무리 약을 쓰고, 침을 놓고, 여러 가지 치료를 했습니다마는 차도(瘥度)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제 좀 차도가 어떠냐?”
“저로서는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왜 치료를 할 수가 없단 말이냐?”
“약을 쓰고 치료를 하면서도 잠을 푹 자야만 치료가 될 텐데. 잠을 일절 안 주무시니 아무리 치료해 봤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 부처님께서 “육체가 있어야 도를 닦는 것이니 어찌 그렇게 어리석게 해가지고 치료를 지연을 시킬 수가 있느냐, 잠을 자라”해도, “저는 도를 성취할 때까지는 결정코 잠을 자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타이르고 꾸짖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나율 존자는 두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눈이 멀자 아나율 존자는 천안통(天眼通)을 얻었다 그랬습니다.
천안통을 얻었으나 육안(肉眼)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옷을 꿰맨다든지 모다 그러한 일이 있을 때에는 부처님께서 손수 바늘귀를 끼워주시고, 바느질도 해주시고, 평생을 그렇게 보살펴 주시는 자비를 내리셨다고 하는 것이 전해 내려옵니다마는.
부처님의 십대제자나 육조 스님까지 삽삼조사(卅三祖師)는 다 전생에 불보살이 그런 화현(化現)으로 나타나가지고, 부처님의 법(法)을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왔다고 하는 말씀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삽삼조사는 아라한이지만 권아라한(權阿羅漢)입니다. 실지로 다생(多生)에 닦은 것이 겨우 아라한 밖에는 안 된 것이 아니고, 불보살 화현이 그 부처님의 법을 전해 내려오기 위해서 권(權)으로, 방편으로 아라한의 몸으로 출세를 하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마는.
아라한의 성질은 다분히 그런 성현이면서도 조그마한 일에 탁! 골을 잘 내시고, 요새 말로 신경질적인 그러한 성격의 일모(一貌)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성(獨聖) 기도나 그런 기도는 정말 몸을 깨끗이 하고, 모든 음식으로부터 모든 조그마한 행실에 이르기까지도 어긋남이 없이 청정한 마음과 청정한 몸으로 기도를 해야지, 잘못하면 벌을 받고, 까딱하면 골을 내 가지고 벌을 주어서 입이 비틀어져 버린다든지,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다든지,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불 존자도 전생에 독사의 몸을 받았던 그 여습으로 해서 성현이 되어 가지고서도 그런 다분(多分)히 그런 진심(瞋心)의 여습이 있었다고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불 존자나 아나율 존자나 그런 진심(瞋心)을 냈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그 말씀 한마디를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고 뼛속 깊이 새겨들었으면 말씀 한마디에 ‘내가 도를 이루지 않는다면 결정코 눈을 감고 자지 아니하리라’
‘결정코 내가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 공양을 청한다 하더라도 나는 공양에 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고서 세세생생에 청정한 공양을 받고 수행을 하리라’
이러한 결심은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굳은 결심이 없고서야 어떻게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쌓인 우리의 업(業)을 극복을 해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에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물에다 술 탄 듯, 술에다 물 탄 듯, 오늘도 이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금생에 도업을 성취할 것을 기약하기는 매우 어려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속에 사업을 한다든지, 무슨 학문을 연구를 해서 학자가 된다든지, 무슨 예술가가 된다든지, 사업가가 된다든지, 무엇을 어떠한 방면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모질고 모진 그러한 무서운 굳은 결심이 있어야 그 가지가지 난관을 극복을 하고, 어떤 어려운 일을 닥치고, 두 번 실패,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그 일을 성취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그러한 굳은 결심이 아니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우리가 이 무량겁 업을 극복을 해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이 도(道)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볼 때에 아나율 존자나 그 사리불 존자의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그렇게 매서운 결심을 하고, 부처님이 아무리 설득을 하고 꾸짖어도 끝까지 두 눈이 멀 때까지 잠을 자지 아니한다든지,
국왕이 와서 청하고, 수달장자가 와서 청해도 소용이 없고 끝까지 공양에 응하기까지 아니한 그런 것은 우리 말세 중생들에게 그런 굳은 결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시지 아니 했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20분39초~34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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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都盧) ; ‘모든것’ ‘온통’ ‘전부’ ‘모두’ ‘하나도 남김없이’라는 뜻. 도래(都來)라고도 한다.
*본래가풍(本來家風) ; 본가풍(本家風). 본래의 가르침. 천연 그대로의 가르침.
*상월(霜月 서리 상/달 월) ; ①서리가 내리는 달이라는 뜻으로 음력(陰曆) 동짓달(冬至-)을 달리 일컫는 말. ②서리 내리는 밤의 달.
*빈산 ;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산.
*둥근달 ; 음력 보름을 전후하여 둥그렇게 된 달.
*달마 스님, 혜가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구년면벽(九年面壁) ; 면벽구년(面壁九年). 달마대사가 숭산(崇山 : 중국 하남성 정주의 남서쪽)의 소림사에서 벽을 향해 9년동안 앉아 있었다고 전해지는 고사(故事)를 가리킴.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〇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달마관심론(達摩觀心論) ;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가 설한 심론(心論)을 정리한 선종의 지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