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 (게송)차주비대역비소~ / 참선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 반야영주(般若靈珠) / 몽산화상시중 /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〇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안 할라야 안 할 수가 없다. 의심을 안 할라야 안 할 수 없고, 참선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고. '안 된다' 소리가 무슨 말이냐?”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그 본질을 잘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〇신통묘용(神通妙用)이 자유자재(自由自在)한 그러헌 놈을 우리가 낱낱이 다 가지고 있거든.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말이여. 그놈이 어디로 깊이 깊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먼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공간에 가로막힌 것도 아니여.
〇아무리 달이 밝아도 먹구름이 끼어 가지고 있으면은 껌껌한데 구름만 치워버리면 환히 밝아지듯이, 우리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의 먹구름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먹구름을 찰나(刹那) 간에 날려 버리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다 이거여.
〇우리가 보통 생사(生死)는 이 몸뚱이를 육체가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그러고, 이 육체에 호흡이 끊어져서 써늘해지면 그것을 ‘죽었다[死]’ 그러는데, 이 참선하는 수행인의 분상(分上)에서는 그 육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 생각이 일어난 것이 그것이 생(生)이고, 그 생각이 꺼지는 것이 멸(滅)이여. 죽음이여. 그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團束)을 할 줄 알아야 진짜 수행인이다.
**송담스님(No.539)—94년(갑술년) 동안거결제 백일기도 입재(94.11.17) (용539)
(1) 약 14분.
(2) 약 10분.
(1)------------------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헌데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멱시무물우무종(覓時無物又無蹤)허되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 이 구슬, 반야(般若)의 신령스러운 구슬이 묘(妙)해서 측량을 할 수가 없어. 그런데 이 반야의 영주(靈珠)는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어.
크기로 말하면은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다 싸고도 남고, 작다고 하면은 바늘로 찌를 수도 없을 만큼 작을 수도 있는 것이여.
이 구슬은 어디서 나왔냐? 법성해(法性海) 가운데에서 얻은 거여. 법성해는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무한대로 끝이 없는 대법성의 바다에서 친히 얻은 것이다 그말이여.
금생에 그 반야영주를 부모로부터 이 몸뚱이를 받아날 때 같이 이 몸뚱이 속에 그 반야영주(般若靈珠)가 따라왔어.
그러면 부모한테 태어나기 이전에는 없었느냐 하면은, 부모에게 태어나기 이전에도 그 반야영주는 우주법계에 꽉 차있는 거여.
무량억겁(無量億劫) 전 태어난 때가 없어. 생겨난 때가 없이 그 반야영주는 온 법성(法性) 바다 가운데 가득차서 빛나고 있는 것이거든. 그런데 당장 이 몸뚱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몸뚱이 속에 그 반야영주가 들어있다 그말이여.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다. 태양이 아무리 밝다 해도 낮에만 빛나고 밤에는 태양빛을 볼 수가 없지마는 이 반야영주는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항상 빛나고 있다 그말이여.
멱시무물우무종(覓時無物又無蹤)이다. 그런데 그 반야영주, 어떻게 신통이 자재하고 묘하던지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어.
태양빛이 아무리 밝아도 저 땅속 깊이 들어가면은 태양빛이 거기는 미치지를 못하고 무엇이 가로막으면 거기에는 비추지를 못하는데, 이 반야영주는 시간과 공간에도 걸리지 않고 언제나 빛나고 있건마는 찾아보면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어. 또 자취도 없다 그말이여.
그런데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일어설 때나 앉을 때나 항상 따라댕겨. 그래가지고 항상 요요명명(了了明明)하다 그말이여.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무슨 소리가 나면 들을 줄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신통묘용(神通妙用)이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그러헌 놈을 우리가 낱낱이 다 가지고 있거든.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말이여.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은 조실 스님께서 73세—77세에 열반하셨는데 4년 전에, 열반하시기 4년 전 73세 때 설하신 법문인데,
그 법문 가운데에 “안 할라야 안 할 수가 없다. 의심을 안 할라야 안 할 수 없고, 참선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고. '안 된다' 소리가 무슨 말이냐?”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그 본질을 잘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놈이 어디로 깊이 깊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먼 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공간에 가로막힌 것도 아니여.
우리가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혀로 맛을 볼 때,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배고프고 아프고 육체적인 모든 감각. 정신적으로 근심 걱정, 슬픔과 괴로움, 외로움, 원망스러움, 두려운 생각, 미운 생각, 일체 정신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이 신령스러운 구슬로부터 그러한 작용이 나온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러한 작용이 일어날 때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우리는 그놈을 찾어야 한다 그말이여.
우리가 고양이를 찾을라면 고양이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고, 더러운 오물을 치울라면은 더러운 냄새나는 곳을 찾아가면 거기에 우리가 치워야 할 것들이 쓰레기가 있다 그말이여.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바로 우리가 우리의 신령스러운 구슬, ‘참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이요, 바로 그 때다 그말이여.
잊어버리기가 더 어려워! 안 하기가 더 어렵다!
완전히 죽어서 의식이 없어진 상태라면 모르지만, 살아서 숨쉬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못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방법만을 바로 안다면 이 공부는 안 할라야 안 할 수가 없는 거여. 하나도 어려웁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
누워서도 하고, 앉아서도 하고, 속이 상할 때도 하고, 배고플 때도 하고, 아플 때도 하고, 근심 걱정 있을 때도 하라. ‘이뭣고?’ 하라 그말이여.
속이 상할 때 계속 속상하는 일만 이리 생각, 저리 생각 해봤자 그 속상하는 것이 점점 커질지언정 해결이 안 되거든. 속상할 때 바로 ‘이뭣고?’ 해 보라 그말이여.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주먹탱이 같은 놈이 치밀어 오르다가도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근심 걱정을 없애는 방법도 이것밖에는 없고, 슬픔과 외로움을 없애는 방법도 이것밖에는 없고.
처음에는 별로 잘된 것 같지 않고 별 재미도 없지만, 자꾸 하다 보면 할랴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 ‘이뭣고?’ 한 번에 시커먼 가슴속에 먹구름이 흩어지게 된다 그말이여.
아무리 달이 밝아도 먹구름이 끼어 가지고 있으면은 껌껌한데 구름만 치워버리면 환히 밝아지듯이, 우리는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의 먹구름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먹구름을 찰나(刹那) 간에 날려 버리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다 이거여.
어떤 사람이 “참선이 좋은 줄은 법문을 듣고 잘 알겠는데 변소에 가서도 ‘이뭣고?’를 해도 괜찮습니까?”
“변소에 가서도 해야지요”
“아! 그거, 경전을 읽을 때는 양치질도 하고 손도 씻고 그리고 떠억 향불을 켜놓고 금강경도 읽고 그런데 아!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은 금강경이나 법화경 화엄경보다도 더 좋고 그런 경을 읽은 공덕보다도 훨씬 몇백 배가 더 수승하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육백만 번 부른 공덕보다도 ‘이뭣고?’ 한 번 하는 것이 더 공덕이 낫고 그렇다는데 그렇게 좋은 것을 어떻게 화장실에 앉아서 실례하고 있으면서 ‘이뭣고?’할 수가 차마 있습니까?”
그분이 정말 이 참선이 소중하고 참 좋다고 한 것을 너무나도 깊이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을 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혹 이 가운데도 그런 분이 계실란가 모르지만 전혀 염려할 거 없습니다. 변소에 가서 끙끙거리면서도 ‘이뭣고?’ 그렇다고 해서 전혀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희로애락, 생로병사, 빈부귀천, 일체 시비와 흥망성쇠 속에서도 오직 이 ‘이뭣고?’ 하나라, 이것으로써만이 거기에서 나의 중심을 잡아가고, 나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지혜로써 자비로써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이 길밖에는 없는 것이여.
병을 앓고 있을 때도 끙끙 앓으면서도 ‘이뭣고?’ 사람이 코앞에서 곧 죽어갈 때도,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도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야. 그러한 굳은 신념이 있다면 ‘공부가 안 된다, 의심(疑心)이 안 난다’ 그러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따라다니거든. 우리의 주인공(主人公)을 여의고는 우리는 단 1분 1초도 살 수가 없는 것이고. 이 살고있다고 하는 자체가 이 신령스러운 이 ‘한 물건’의 뿌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처음~14분3초)
(2)------------------
오늘은 결제일이기 때문에 불가불 우리 선방에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분에게 몽산법어(蒙山法語)의 한 편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약유내차(若有來此)하야 동감적요(同甘寂寥)인댄, 여기에 모두 와 가지고 같이 참선 정진을 하기 위해서 왔을진대는,
사차세연(捨此世緣)하며, 세속 인연을 다 버려 버려. 다 놔 버려야 한다 그말이여. 이 도량에 와 가지고 다른 걱정, 나라 걱정, 정치 걱정, 경제 걱정, 집안 걱정 다 놔 버려야 하는 거야. 제거집착전도(除去執着顚倒)하야, 집착심과 잘못된 모든 생각을 쏴악 다 제거해 버리고.
진실위생사대사(眞實爲生死大事)하야, 정말로 생사대사(生死大事)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긍순암중규구(肯順菴中規矩)하야, 그 선원의 청규(淸規)를 자발적으로 솔선해서 잘 순응해야 한다 그말이여.
절단인사(截斷人事)하고, 인사로 왔다갔다 하는 그것을 아주 끊어버려야 해. 그래서 일체 편지 왕래도 하지 말 것이며 전화 왕래도 하지 말 것이며, 일단 선원에 방부를 들이면은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터억 해 가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수연수용(隨緣受用)허되, 먹고 입고 자고 하는 이 모든 수용(受用)은 되는 대로 인연 따라서, 밥이 오면 밥을 먹고, 죽이 오면 죽을 먹고, 찰밥이 나오면 찰밥을 먹고, 국수가 나오면 국수를 먹고, 밥이 때로는 될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고, 반찬이 입에 맞기도 하고 안 맞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할 것이나, 되는 대로 그 끼니 한 끼니를,
이것은 수차수식(須此受食)이 단료형고(但療形枯)요 위성도업(爲成道業)이 응수차식(應受此食)이라. 이 밥이 이 몸뚱이 마른 것을 막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해서 먹는 것이라면 잘 씹으면서 ‘이뭣고?’하는 그 의단(疑團)이 고대로 독로(獨露)한 상태에서 오십 번, 백 번 입안에서 미음(米飮)이 되도록 씹으라 그말이여.
제삼경외(除三更外)에는 불허수면(不許睡眠)이여. 9시에 자서 3시에 일어나는데, 그 지정된 수면 시간 외에는 자지를 말고. 불허출가(不許出街)하며,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지 말며, 밖에서 공양 청장(請狀)이 오거나 그러더라도 그런 데에 나아가지 말라.
미유발명(未有發明)이어든,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전까지는 경이나 어록이나 일체 보지를 말 것이며. 비공계청(非公界請)이어든, 공계(公界) 대중적으로 읽을 때 이외에는 경도 읽지를 말아라 이거거든.
이것은 용화선원의 청규가 바로 이것에 기본해 가지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선원에 가서 공부하실 때에도 이러한 몽산 스님의 짤막한 이 법문을 명심을 해 가지고 정진을 하신다면은 반드시 금생에 공안을 타파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것이 의심이 없습니다.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普濟尊者)가 각오선인(覺悟禪人)에게 보이신 법문에,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없어지는 것을 그것을 생사(生死)라고 한다.
우리가 보통 생사(生死)는 이 몸뚱이를 육체가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그러고, 이 육체에 호흡이 끊어져서 써늘해지면 그것을 ‘죽었다[死]’ 그러는데,
이 참선하는 수행인의 분상(分上)에서는 그 육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 생각이 일어난 것이 그것이 생(生)이고, 그 생각이 꺼지는 것이 멸(滅)이여. 죽음이여.
그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무섭게 단속(團束)을 할 줄 알아야 진짜 수행인이다 그말이여.
사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는데, 숨 한 번 들어마셨다 내쉬고,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벌써 내생(來生)이거든. 사실도 그런 거여. 그래서 생사가 바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는 줄 깊이 명심해야 한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사의 즈음에 모름지기 힘을 다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해라 그말이여.
화두가 순일(純一)하면은 기멸(起滅)이 없어지고, 기멸이 다하면은 그것을 적(寂)이라 그래. 적(寂). 적멸(寂滅)의 적(寂).
적(寂)한 적중(寂中)에 화두가 없는 것을 무기(無記)라 한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망상이 없으되 화두가 없으면 그것이 무기(無記)다. 아무리 망상이 다 끊어져서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되 화두가 없는 상태에서 있으면 그것은 무기여.
무기(無記)의 상태에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거여. 설사 그 무기의 상태에서 몇 겁(劫)을 지낸다 하더라도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해.
그래서 적중(寂中)에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의단이 독로해야지, 적적한 데에 빠져가지고 화두가 없으면 그것은 무기다 그말이여.
정진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번뇌와 망상이 다 없어지고 조용하고 깨끗해지면 그 깨끗하고 고요하고 편안한 데에 탁 잠겨 가지고 화두를 놓쳐, 화두를 들라고 안 해요.
화두를 들면 그 고요하고 깨끗한 것이 깨질까 두려워서 화두를 안 든 채 그 고요한 데에 빠져서 그놈을 맛보고 앉았거든. 그 아무짝에도 못 쓰는 참선이여. 아무리 번뇌와 망상이 가라앉아서 깨끗해져도 그 가운데 화두가 성성하도록 잡드리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그 화두가 매(昧)하지 아니해야 그것을 영(靈)이라 그러고, 그 공적(空寂)한 가운데에 화두가 성성한 것을 그것을 영지(靈知)라고 그러는데, 공적영지(空寂靈知)한 상태가 무너지지 아니하고 흐트러지지 아니해야, 그렇게 공부를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면은 불일성지(不日成之)여. 머지않아서 공안을 타파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정진을 해 가지고 3년 만에 깨닫지 못하면은, 이렇게 3년 동안을 알뜰히 공부를 해가지고 깨닫지 못하면은 대중을 대신해서 내가 지옥에 가겠다’ 몽산 스님은 그렇게 대중한테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기왕 출가를 해서 선방에 나와서 마땅히 이렇게 잡드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31분14초~40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차주비대역비소~’ ; [전등록(傳燈錄)] (제30권) 단하화상(丹霞和尙)의 ‘완주음(翫珠吟)’ 참고.
*반야(般若) : [범] prajna [파] panna 파리어를 음대로 쓴 것인데, 지혜(智慧) 또는 밝은 것이란 말이다.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약칭.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무량억겁(無量億劫) ;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법성(法性) ; ①있는 그대로의 본성, 상태. ②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변하지 않는 진실, 진리.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요요명명(了了明明) ; 요요(了了)하고 명명(明明)하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고 분명한 모양. 명확한 모양. 슬기로운 모양. 현명한 모양.
*명명(明明) ; 환히 드러난 모양. 분명한 모양.
*신통묘용(神通妙用) ; 신통(神通)과 묘용(妙用).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①신기(神奇 : 신비롭고 기이하다)할 정도로 묘(妙)하다. ②모든 것을 신기(神奇)롭게 통달(通達)함.
*묘용(妙用) ; 신묘(神妙 : 신통하고 기묘함)한 작용(作用).
*자유자재(自由自在) ;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주먹탱이 ; 주먹(다섯 손가락을 모두 오무려 쥔 손)같이 둥글고 단단하게 한데 뭉쳐진 어떤 것.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 - 業 - 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한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한 물건’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 11~13.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2)
*불가불(不可不) ; 어찌할 수 없이. 부득불(不得不 : 하지 아니할 수 없어).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7-99.
〇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 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3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씀.
*끼니 ;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하루 세 번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미음(米飮 쌀 미/마실 음) ; 쌀이나 좁쌀에 물을 많이 넣고 푹 끓여 체에 밭친 걸쭉한 음식.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청장(請狀 청할 청/문서·편지 장) ; 청첩장(請牒狀 : 결혼 따위의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을 초청하는 글을 적은 것).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타파(打破) ; 공안(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공안(화두 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공안(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공안(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〇念起念滅(염기염멸)을 謂之生死(위지생사)니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가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이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를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에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요 寂中(적중)에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과 靈知(영지)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一三二〇 ~ 一三七六)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후기의 스님으로 중국 구법승. 호는 나옹(懶翁), 본래 이름은 원혜(元慧), 실호는 강월헌(江月軒), 성은 아(牙)씨. 영해부(寧海府 : 경북 영덕군 영일면)에서 태어났다.
一三三九년(충숙왕 복위 8) 20세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요연(了然) 선사에게 출가하였다. 여러 산을 돌아다니다가 一三四四년(충혜왕 4) 양주 회암사(檜巖寺)에서 밤낮으로 정진하여 4년째 되는 어느 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一三四七년(충목왕 3) 동짓달에 원나라로 가서 다음해 3월 13일에 연도(燕都)의 법원사(法源寺)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指空)화상을 만났다. 스님은 지공화상의 문하에서 5년을 지내고 다시 정자사(淨慈寺)로 가서 임제 18대손인 평산처림(平山處林)선사의 법을 얻고 법의(法衣)와 불자(拂子)를 받았다. 그 뒤 그는 명주(明州) 보타낙가산(補陀落迦山)으로 나아가서 관음을 참례하고 육왕사(育王寺)와 무주(婺州) 복룡산(伏龍山)에 등에서 훌륭한 선승을 만났다.
一三五五년(공민왕 4)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北京의 옛 이름)으로 돌아가 원나라 순제(順帝)의 명으로 광제선사(廣濟禪寺)에 주석하고, 이듬해 그곳에서 개당(開堂) 법회를 여니 황제가 금란가사를 황태자가 상아불자(象芽佛子)를 주었다.
다시 법원사에 가서 지공화상의 부촉을 받고 一三五八년(공민왕 7)에 귀국하였다. 요양·평양·동해 등으로 다니면서 설법하다가 一三六〇년 가을에 오대산 상두암(象頭庵)에 계시었다.
一三六一년(공민왕 10) 왕의 청을 받고 상경하여 내전에서 왕을 위해 법을 설하였다. 一三七〇년 광명사에 머물면서 선교 양종의 납자를 시험하는 공부선(功夫選)을 관장하였다. 이듬해 왕사가 되고 수선사(송광사) 주지로 가 있었다.
다시 회암사 주지가 되어 절을 중수하고 교화 활동을 펴자 사람들이 본업을 잊을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에 조정에서 멀리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옮기게 했으므로, 스님은 가는 도중에 여주 신륵사에서 병으로 수일을 머물다가 一三七六년(우왕 2) 나이 57세, 법랍 37년으로 입적하셨다. 문하에는 환암 혼수(幻庵 混修), 무학 자초(無學 自超) 등 1백여 인이 있었다.
저술로는 『나옹화상어록』 1권과 『나옹화상가송』 1권이 있으며, 그 외 몇몇 별행 사간본도 전해지고 있다.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