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 (게송)차사본무생~ /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생사심을 깨뜨릴라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화두를 들어라 / 꼭 필요한 말만 하라.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은 ‘참나’를 깨닫는 사업이다 /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 회광반조(廻光返照) 일구월심(日久月深) 면면밀밀(綿綿密密) / (게송)막장사기매서동~.
금생에 일대사를 해결해야 / (게송)백일운위반~ /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것은 세세생생에 좋은 선물 /(게송)화종목출환소목~
〇무량겁을 육도윤회, 생사고해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 할 그 근원이 무엇이냐 하면 눈으로 보고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듣고 중생의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 이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인데, ‘이뭣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해 나가는 것이 생사심을 깨뜨리고, 그 마음길을 끊어버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요긴하고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여.
무슨 생사심, 무슨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즉각 ‘이뭣고?’ 또 일어나면 또 ‘이뭣고?’ 자꾸 ‘이뭣고?’ 간절한 의심으로 ‘이뭣고?’를 거각(擧却)해 나가면 결국은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하게 된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그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조사관(祖師關)을 뚫게 되고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〇영원한 내 재산은 활구참선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일 밖에는 정말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그밖에는 없는 것이여. 이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여기에다가만이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야 할 곳이다.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이여.
다른 것은 살아가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고, 오직 꼭! 해야만 하고 모든 것을 여기에다 믿고 바칠 수 있는 것, 그 사업은 ‘참나’를 깨닫는 자기 사업이다. 여기에는 금생에 뿐만이 아니라 저 내생(來生) 무량겁을 향해서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위대한 사업이다.
**송담스님(No.475)—92년 6월 첫째 일요법회(92.06.07) (용475)
(1/3) 약 19분. (2/3) 약 22분. (3/3) 약 20분.(1/3)----------------
차사본무생(此事本無生)하니 수연처처명(隨緣處處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신료여사지(信了如斯旨)하면 귀가파문정(歸家罷問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사(此事)는 본무생(本無生)이여 수연처처명(隨緣處處明)이다.
이 일은 본래 남이 없어[無生]. 그러니 인연 따라서 곳곳마다 다 밝더라.
차사(此事). 생사(生死). 일대사(一大事).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생사(生死) 문제.
이 생사 때문에 생(生), 나서 죽고 나서 죽고 하는 이 생사, 일대사 문제 때문에 우리 부처님께서는 삼천년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을 하셨고, 역대조사(歷代祖師)도 이 일대사 문제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 오셨고, 우리 이 법보제자 형제자매들도 이 일대사 문제 때문에 오늘 임신년 6월 첫째 일요법회에 또 이렇게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
생사 문제는 그 도리(道理)를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윤회(輪廻)를 하지만, 그러나 그 도리를 확실히 깨달아 버리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남이 없어[本無生]’
분명히 우리는 그 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로병사(生老病死),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어서 병들어서 죽는 이 고통스러운 생애를 가지고, 한 생만 그런 게 아니라 무량겁(無量劫)을 그렇게 살아왔고 또 무량겁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들은 그 도리를 분명히 깨달아서 생이, 남이 없다고 하는 것,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설해 주셨습니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여름에는 더웁고, 겨울에는 춥고 이러한 상황이 남이 없는[無生] 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어.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눈이 와.
확실히 우리 눈에는 무상(無常)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우리 눈에 무상으로 보이는 그 모습이 또 우리 인생,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분명히 부모의 인연으로 이 세상에 몸을 받아났다가 차츰차츰 자라서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지마는, 그 춘하추동 순환하는 것이나 사람이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이나 관점에 따라서는 똑같은 것이여.
똑같이 무상하고 믿을 수 없는 허망한 것으로 보면 한없이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지만, 그 본질에 들어가서는 다맛 인연 따라서 변화가 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조금도 불어나거나 줄어들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봄에 꽃이 핀 도리나, 가을에 단풍이 지는 도리가 바로 거기에 진리가 표현되고 있다. 진리가 설해지고 있다.
사람이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도 다못 인연 따라서 그러한 변화가 있을 뿐이지 그 본바탕에 들어가서는 남이 없고, 남이 없기 때문에 또한 멸(滅)도 없다 이거거든.
아직은 우리는 그러한 이치를 확실히 체달(體達)은 못했지만 모든 부처님과 성현들이 한결같이 그것을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것을 분명하게 ‘이 생사 속에 본래 생사는 없다’고 하는 것을 콱! 믿고, 다못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해 나가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정말 뜻있게 알뜰하게 살아갈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료여사지(信了如斯旨)하면, 이와 같은 뜻을 확실히 믿어버리면,
귀가파문정(歸家罷問程)하리라. 자기의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는데 길을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있는 자리, 지금 하고 있는 일, 밥을 먹을 때나 일을 할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바로 본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거거든.
이와 같은 도리를 믿지 아니하면 밤낮 타향 객지에서 자기 고향이 어디가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 사람 보고 물어보면 이쪽으로 가라고, 저 사람 보고 물어보면 저쪽으로... 갈팡질팡. 그날 하루를 공연히 다리만 아프게 방황하고 안정이 없는 종잡을 수 없는 피로한 하루를 살아가듯이.
인생이라는 게 대관절 해도 해도 그 일이 끝도 없고, 한 일을 겨우 겪으면 또 한 어려운 일이 또 앞을 가로막고. 흥망성쇠와 빈부귀천과 그러한 감내(堪耐)하기 어려운 생로병사의 마주치는 곳에서 한(恨) 많은 인생을 살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법에 의해서 화두(話頭)를 들고 어떠한 어려운 일, 어떠한 괴로운 일,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즉각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들고 살아가면 어떠한 일을 닥치더라도 상관이 없거든.
화두를 들고 자기의 근본을 탁! 가다듬는다면 어려운 일, 슬픈 일, 괴로운 일, 억울한 일도 다 풀어 나갈 수가 있고, 그 사람 앞에는 풀리지 않는 일이라고는 없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일을 지혜롭게 자비롭게 처리해 나가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거거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에도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데 관해 요긴한 법문을 간곡히 해 주셨는데,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생사의 고해 속에서 무량겁을 이렇게 오고, 또 앞으로 무량겁을 생사고해 속에서 몸부림을 쳐야 할 그 근원이 무엇이냐 하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 우리의 생사심(生死心).
눈으로 보고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듣고 중생의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이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인데, 그 생사심을 결국은 그놈을 깨뜨려 버려야 하는데, 억지로 그놈을 깨뜨리려고자 한다고 해서 깨뜨려지는 것이 아니거든.
그 생사심을 깨뜨릴라면은 결국은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단속을 해라. 화두, ‘이뭣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를 들고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 해 나가는 것이 생사심을 깨뜨리고, 그 마음길을 끊어버리는 가장 중요하고도 요긴하고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여.
생사심(生死心)을 억지로 그놈을 누를려고 한다든지, 억지로 끊을라고 한다든지, 억지로 참으려고 하면 그러면 그럴수록 더 일어나는 것이여. 무슨 생사심, 무슨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즉각 ‘이뭣고?’ 또 일어나면 또 ‘이뭣고?’
자꾸 ‘이뭣고?’ 간절한 의심으로 ‘이뭣고?’를 거각(擧却)해 나가면 결국은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화두가 들리게 되고,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터억! 독로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결국은 그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조사관(祖師關)을 뚫게 되고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공부를 해 나가는 데에는 첫째,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돼. 좋은 말이고 궂은 말이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말을 될수록 아니한 것이 좋다.
꼭 필요한 때라도 간단하게 한마디로써 줄여버려야지, 좋은 말도 너무 많이 하다보면 그것이 시비가 일어나는 거고,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니까 결국은 내 시간을—공부해야 할, 화두를 들고 다그쳐 나가야 할 내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되는 것이여.
말을 많이 아니해야 화두를 연속 끊어지지 않도록 단속할 수가 있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지 말아라.
앉을 때나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일할 때나 항상 화두가 목전(目前)에 딱! 있도록.
그렇게 할려면은 금강석(金剛石)과 같은 굳은 지조가 있어야 됩니다. 결심이 있어야 돼. 금강은 금강지(金剛志)를 분(奮) 내 가지고 일념만년(一念萬年)이여. 한 생각이 만년(萬年)토록.
금강석과 같은 굳은 결심이 아니면 금방 주변 환경에 휩쓸려 들어간다 그말이여. 무슨 말 한마디만 들으면 자기도 거기에 참여해서 주거니 받거니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하게 되고.
하! 내가 인생으로 태어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어. 이렇게 정법을 듣고 내가 어찌 그렁저렁 세월을 보낼 수가 있을 것인가.
시시각각으로 시간은 흘러가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 몸은 자꾸 늙어 가는데, 어찌 내가 정법을 알고 믿고서도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는가. 이 생각 저 생각, 이 말 저 말 하다가 퍼떡 깨닫고 딱! 입을 다물고, 화두를 떠억 들고.(처음~19분2초)
(2/3)----------------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그 뿌리를 다시 관조하고 이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거든. 끝없는 회광반조를 되풀이해야 하거든. 그래 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야 돼.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은 자꾸 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자꾸 그럴 것이 아니라 ‘이뭣고?’한 그놈을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그놈을 떠억! 관조(觀照)를 하거든.
그렇게 해 나가다보면 차츰 조용해지고, 조용해지면은 자기도 몰래 또 꾸벅꾸벅 혼침(昏沈)이 올 수가 있고. 혼침, 탁! 정신을 차리다보면 또 끝없는 망상(忘想)이 일어나.
졸지 아니하면 망상, 망상이 아니면 졸음, 참선할려고만 열심히 하다보면은 혼침과 산란심(散亂心)이 번갈아 가면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만 없으면 썩 공부를 잘할 것 같은데. 좀 조용해지면 혼침이 오고, 혼침이 깨면은 산란심이 일어나고.
그래서 다생(多生)에 도 닦아 나가는 데 장애물로써 수마(睡魔)가 막대(莫大)하다. 이 졸음이 오는 이 마구니란 놈이 굉장히 우리 도업(道業) 성취에 장애요소가 된다고 고인(古人)네들도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결국은 그놈한테 내가 져 버릴 수도 없고, 졸림이 온다고 해서 실컷 다리 뻗고 잘 수도 없고. 혼침 산란이 도 닦아 나가는 데에는 멀리 할 수도 없고, 가까이 할 수도 없는 이상야릇한 도반(道伴)이여. 도반은 도반이되 친근히 할 수도 없고, 그놈을 멀리하고 싶어도 끈질기게 따라 붙어.
구참(久參)일수록에 혼침은 더 잘해. 이놈이 속이 떠억 망상이 가라앉으니까 그러니까 조용하다보면은 꾸벅꾸벅. 십 년 참선해서 얻은 것이 앉아서 조는 법을 배웠다고 어떤 분이 그러는데.
앉아서 졸면 10분 20분은 금방 가고, 입선(入禪)하고 죽비하고 5분도 못 되어서 졸기 시작해 가지고 방선(放禪)할 때사 눈을 뜨거든. 그래서 입승(入繩) 스님이 자비가 있으면 가끔 돌면서 그 졸음을 깨주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혼침이 올 때에는 허리를 쭈욱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그래서 정신을 가다듬고, 혼자 정진할 때라면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왔다갔다 포행을 좀 하고 그래서 정신이 좀 맑아지면 다시 와서 정진하고 그러면 참 좋은데,
대중이 같이 한 방에서 입선할 때는 졸음이 온다고 밤낮 들랑날랑하기도 옆에 다른 도반들에게 미안하고, 앉아서 억지로 그놈을 쫓을라고 하면은 굉장히 용을 쓰고 꼬집어 뜯고 이를 악물고 해도 영판 여름에 더울 때 잘 안 도망간다 그말이여.
어쨌든지 힘을 다해서 채찍을 가해 가지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화두를 들고 또 화두를 들어서, 그렇게 해 나가다보면 결국은 그 끈질기고 고약한 혼침과 산란도 결국은 나의 금강지(金剛志)와 끈질긴 정진력(精進力)으로 그놈이 항복을 하고, 혼침도 달아나고 산란심도 달아나서 그래서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들릴 때가 오는 것이여. 순일무잡(純一無雜)해.
그래 가지고 또 그렇게 잘 정진이 되어가다가 또 뚝 변해 가지고 영 화두가 잘 안 들리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머리가 띵하기도 하고, 온몸이 그렇게 이상하게 뒤틀리면서 영 또 정진이 잘 안된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러더라도 분심(憤心)을 내고 신심(信心)을 내서 지혜롭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 나가면 훨씬 공부가 수월하게 잘 되어진다.
잘되다가 안 되다가, 안 되다가 잘되다가 끝없는 고비 고비를 넘겨서 그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해 나가면, 일구월심 면면밀밀하게 잘 해 나가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게 되고.
풍풍풍풍 솟아나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가듯이 마음도 공(空)하고, 경계(境界)도 적적(寂寂)해져서 그래 가지고 몸도 마음도 쾌락안연(快樂安然)한 경계에 이르게 된다 그말이여. 한 시간 두 시간 앉았어도 조금도 몸이 괴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시간이 어떻게 간 줄을 몰라.
의단이 독로해서 그럴 때에 그 너무도 고요하고 너무도 편안하고 너무나 깨끗한 그런 경지가 오면 화두를 드는 것도 귀찮고, 오히려 화두 드는 것이 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를 흐트러지게 할까, 그런 생각도 있어서 화두를 들지 아니한 채 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취해 가지고 화두를 잊어버릴 수가 있다 그말이여.
아무리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더라도 항상 그 화두,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을 잊지 말고 잘 거각해 나가야 한다. 잘 관조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 나가면,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이틀을 지내고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일주일을 넘지 못해서 어떠한 수질각차(手跌脚蹉) 하는—손발을 끕! 접질린다던지 헛디딘다던지 어떤 그런 찰나에 확철대오 (廓徹大悟)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모든 선지식(善知識)들이, 모든 도인(道人)들이 그렇게 애를 써서 그런 과정을 다 경험을 하신 바여.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알뜰히 단속해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어.
우리의 교주(教主)이신 삼계 대도사(三界大導師)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도 과거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이셨고, 모든 선지식들도 과거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였었지만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정진을 함으로써 결국은 그런 확철대오해서 대도사가 되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과정과 그러한 결과를 믿고 우리도 그렇게 해 나가는 것 이외에는 우리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할 것이 없어. 다행히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 법을 믿게 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경행(慶幸)한 일이고 행복한 일이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사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 명예・권리・재산・자손・애정 다 믿지 못할 것들이여. 일생을 바쳐서 그런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다 꿈속에서 얻었다가 놓치는 것들이여.
명예도 그렇고, 권리도 그렇고, 재산도 그렇고 피땀 흘려서 일생을 노력을 해 봤자 결국은 허망하게 빼앗기고 허망하게 내 몸으로부터 다 떠나고야만 말 것이고, 죽을 때까지 꽉 거머쥐고 있어 봤자 황천(黃泉)으로 갈 때에는 하나도 가지고가지 못한 채 빈 몸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내 재산은 참선, 활구참선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일 밖에는 정말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그밖에는 없는 것이여. 이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여기에다가만이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야 할 곳이다.
충분히 믿을 수 있는, 몸과 목숨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사업이여. 다른 것은 살아가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고, 오직 꼭! 해야만 하고 모든 것을 여기에다 믿고 바칠 수 있는 것, 그 사업은 ‘참나’를 깨닫는 자기 사업이다 그말이여.
여기에는 금생에 뿐만이 아니라 내생(來生), 저 내생 무량겁을 향해서 믿고 투자할 수 있는 위대한 사업이다.
세속에 많은 크고 작은 기업가들, 사업가들 있지만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기도 어렵고, 설사 되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2년, 5년, 10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사업이여. 마음먹은 대로 되면 좋고, 안되면은 잠을 못 자고 속이 타고.
그러나 그런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분 따라서 사업할 사람은 하고, 무엇인가 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오히려 더 우선해서 자기 진짜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런 사업을 하면 되면 되는 대로 좋고, 안되더라도 또 뚫고 나갈 길이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
막장사기매서동(莫將些氣賣西東)하라 귀거래혜구산중(歸去來兮舊山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여세인쟁시비(不與世人爭是非)하고 장년무사청송풍(長年無事聽松風)이어다
나무~아미타불~
막장사기매서동(莫將些氣賣西東)하고 귀거래혜구산중(歸去來兮舊山中)이어다.
자기가 명예와 권리가 좀 있다, 재산이 있다, 학식이 있다, 자기에게는 이러이러한 무슨 힘이 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것을 코에다 걸고 동서남북에다 그것을 팔아.
그것으로 그래 가지고 뽐내. 재산이 있는 사람은 재산으로 뽐내고, 권리가 있는 사람은 권리로 뽐내고, 학식이 있는 사람은 학식으로 뽐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뽐내고, 수단이 있는 사람은 수단으로 뽐내고, 그래 가지고 자기 과시를 하고, 남에게 으시대고,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고. 그래봤자 그것이 몇 조금 가는 것이냐 그거거든.
그러지를 말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기 마음, 마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로 발길을 옮겨라 그말이여.
정법을 믿고, 정법을 실천해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 나가면 설사 권리가 있다고 해서 그 권리를 남용(濫用)을 하는 법이 없고, 재산이 있다고 해서 그 재산으로 남을 짓밟을 리가 없어.
권리가 있더라도 그 권리를 뜻있게, 재산이 있어도 그 재산을 뜻있게 잘 쓸지언정 어찌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해서 자기를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일을 할까 보냐.
불여세인(不與世人)으로 쟁시비(爭是非)하라. 세상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 시비(是非)를 다투지 말아라.
장년무사청송풍(長年無事聽松風)이어다. 길이길이 일 없이, 그런 시비로 싸우는 일이 없이 솔바람 소리를 들어라.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물론 여름 석 달, 겨울 석 달을 선원에 들어가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니까 대번에 그러한 솔바람 소리를 듣는 그 뜻을 잘 아시겠지만, 가정 형편이나 모든 사정에 따라서 방부를 들이지 못하고 세속에서, 세속의 직장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한 가운데에도 항상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도회지 자동차 소리, 기계 돌아가는 소리, 그 복잡한 소리가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것이 시비(是非)가 끊어진 솔바람 소리로 들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참선을 안 한 사람은 모든 귀로 들리는 소리가 다 시비요,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가 다 시비요. 서로 물고 뜯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거든.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시비(是非) 속에서 항상 화두로써 대처해 나가기 때문에 시비가 시비가 아니여. 이렇게 되도록 끝없는 발심(發心)과 끝없는 분심, 끝없는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19분3초~40분26초)
(3/3)----------------
언제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함으로써만이 이 문제는 해결이 되어. 일대사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여.
금생에 안 해 놓으면 내가 할 일이 그만큼 또 늦어지고, 금생 일생에 안 하면은 일생이 늦어진 것이 아니라 금생에 안 해 놓으면 몇억 겁이 늦어질 수가 있어.
왜 그러냐? 사람 받아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고, 사람 몸을 받았다고 해서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고, 불법을 만났다고 해서 활구참선 만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여.
금생에 만약에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지금 안 해 놓으면 내생에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나서 활구참선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아무도 할 수가 없어. 지금을 놓치면은 영원히 미끄러지는 것이거든.
백일운위반(白日雲爲伴)하고 청소수작린(淸宵水作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궁세외락(無窮世外樂)에 공락유수인(共樂有誰人)고
나무~아미타불~
백일운위반(白日雲爲伴)하고, 낮에는 백일(白日), 낮에는 하늘에 뜬 저 흰구름을 도반을 삼고,
청소수작린(淸宵水作隣)이다. 맑은 밤에는 흘러가는 물소리로써 이웃을 삼어.
도회지에는 매연이 가득차서 맑은 하늘도 보기가 어렵고, 맑은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도 듣기가 어렵겠지만, 정말 발심을 해서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고 다 도반(道伴)이여.
무엇을 보자마자, 눈에 무엇이 들어오자마자 그 찰나(刹那)에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기 때문에 하늘에 뜬 흰구름뿐만이 아니고, 달이 되었건 별이 되었건 해가 되었건 또는 푸른 나뭇잎이 되었건 지나가는 자동차가 되었건 무엇이고 눈에 띄면, 띄자마자 그놈에 즉해서 떠억 자기 본고향(本故鄕)으로 가는 화두를 들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다 나의 도반이요, 나의 선지식이여.
산중에 맑은 물이 줄줄줄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뿐만이 아니라 귀로 들리는 것은, 자동차 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나 밖에서 외우고 돌아가는 장사꾼의 소리나, 아이들이 웃고 소리지르는 아이들의 소리나 애기 우는 소리나 개 짖는 소리나, 전부가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 소리로 따라가지 아니하고 그 소리에 즉해서 ‘이뭣고?’ 화두를 떠억 들기 때문에,
그 소리가 무슨 소리가 되었건, 음악 소리가 되었건 개 짖는 소리 들었건 그 소리에 즉해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는 바로 그것이 나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해주는 선지식의 법문(法門)이요, 도반의 충고요, 부처님의 설법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한 사람과 이 활구참선을 안 한 사람과의 하루의 생활이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을 안 한 사람은 귀로 뭔 소리를 들으면 바로 그 듣는 그 소리로 쫓아가서 시비에 내가 끌려 들어가고, 무엇을 보면 좋다 나쁘다 그놈에 따라서 성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고 곧 온갖 번뇌 망상이 거기서 벌어지는 건데.
참선한 사람은 듣자마자, 보자마자 떠억 자기의 마음의 고향으로 화두를 들고 단속을 하니, 하나는 시시각각으로 마음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고, 이 법을 안 믿는 사람은 계속 번뇌와 망상과 시비와 흥망성쇠와 생사고해 속으로 계속 끌려 나간다 그말이여. 그렇게 인생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무궁세외락(無窮世外樂)이, 이 끝없는 무궁한 이 세상 속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이 낙(樂)을 누구와 함께 같이 할 것인가.(共樂有誰人)
여간해서 이거 듣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려운 이 공부!
여러분 가운데에는 친구도 많이 있을 것이고, 일가친척도 많이 있을 것이고, 인연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여간해서 이 공부, 물론 권고해야 하고 손을 이끌고 이 법회에 참석하도록 하시겠죠. 그러나 그 말을 믿고 오기도 참 어려운 것입니다.
듣기도 어렵고, 듣고 믿기도 어려운데, 믿고서 조금 하는 척하다가 중단하는 사람이 태반이고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이것을 밀고 나가는 사람,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거든.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좋은 값비싼 선물을 받으면 대단히 좋아하고, 무엇인가 좋아하면서도 ‘내가 받고만 말아서 되겠느냐 보답을 해야겠다’ 그러니 받음으로써 오히려 부담을 느끼게 되는 거여. 받고 뚝 따먹고 입 싹 씻을 수가 없거든.
그만큼 받으면은 그놈 못지않게 또 보답을 하고, 물론 주고받고 하는 것이 인생을 서로 참 재미있는 일이고 보람 있는 일이고,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그렇게 아무도 줄 사람이 없고 받을 사람도 없다면 그것도 참 외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주고받고, 받고 또 주고, 그렇게 서로 사람이라는 게 가는 정, 오는 정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게 형편 따라서 좋은 일인데, 요새는 그런 선물도 차츰차츰 비싼 것으로 자꾸 치중해 나가서, 남 주기도 백 번 생각해야 하고 받고 나서도 굉장히 부담감을 느끼고, 그러니 별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안 됩니다.
생일 때나 무슨 혼사 그런 경우에 부담 없이 주고 또 부담 없이 받고 피차 그렇게 하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것은 상당히 지성인이라고 할까, 좀 인격적으로 향상된 사람들이라야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면서 부담스럽고 받으면서 부담스럽고, 주고받고 하는 가운데 굉장히 점점 그렇게 되어 가는데 이것은 언젠가는 고쳐져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주고받는 것은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인데 이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것, 이것은 그렇게 부담스러울 것도 없고 설사 권고해도 믿지 아니하면 뭐 그만인 것이고, 또 다음 기회에 또 기회가 오면은 또 권고해서 결국은 정법을 믿도록 사돈 간이나 일가친척 간이나 친구 간에 이렇게 하는 것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좋은 선물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는 것이, 그 인연으로 내생에 내가 잠시 망각을 했을 때에 또 그 사람이 나를 또 이끌어 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고. 그러한 인연으로 해서 결국은 다 함께 해탈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종목출환소목(火從木出還燒木)하고 지인정기각제정(智因情起却除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심관망명위지(正心觀妄名爲智)하고 지능입각부사의(智能入覺不思議)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종목출환소목(火從木出還燒木)하고, 불은 나무에서 일어나. 나무를 비비면 거기서 열이 나가지고 결국은 불이 나는데, 그 불은 나무로 조차 일어나 가지고 결국은 나무들을 다 태워버리는 거여.
지혜는 우리의 중생심(衆生心)으로부터 지혜(智慧)가 나오는 거야. 중생심으로부터 지혜가 나와 가지고 마침내는 우리의 중생심, 정(情)을 다—인정, 감정 이 정(情)을 다 없애는 것이다 그말이여.
생사윤회도 중생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중생의 그 정(情)—감정 ・ 애정 ・ 탐착심 이러한 것이 결국은 그것으로 인해서 육도를 윤회하지만 그 생각을 돌이키면, 돌이켜서 ‘이뭣고?’를.
돌이켜서 ‘이뭣고?’하는 것도 내나 우리가 깨닫기 전이니까 그게 다 중생심이여.
그 중생심으로 중생심을 돌이켜서 화두로 돌리면, 그게 바로 정심(正心)으로 망상을 돌이켜 관조하면, 망상 뿌리 일어나는 근본을 돌이켜서 관조하면 거기서 지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혜여.
그 지혜는 지능입각부사의(智能入覺不思議)여. 그 지(智)는 능히 깨달음으로 들어가게 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묘력(妙力)이 거기서 나온다 그거거든.
지금 번뇌 망상, 희로애락, 다 우리는 그것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 가지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울다 웃다가 근심 걱정하다가 시비하다가 싸우다가 원망하다가 일생을 그렇게 살아오고 무량겁을 그렇게 살아오는데, 우리는 금생부터서는 그게 아니거든.
그런 생각 일어날 때 그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에 즉해서 떠억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들고 또 들고. 놓친 줄 알면 또 들고, 들다보면 놓쳐지면, 놓쳐지면 또 들고 해서 끝없이 쉴 사이 없이 끊임없이 이렇게 나아가면 결국은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터억 깨닫게 된다 그거거든.
앞으로 머지않아서 장마철이 돌아옵니다. 오뉴월 또 삼복더위가 돌아옵니다. 모두 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건강을 잘 지키는 법은—모든 병이 마음에서 일어나는데, 되게 속을 상한 뒤끝에는 위장병이 생기고, 심장병이 생기고, 당뇨병이 생기고, 온갖 병이 지나친 슬픔, 지나친 노여움, 지나친 원망, 한탄 이러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파도칠 때에 심장이 나빠지고 위장이 나빠지고 간이 나빠지고.
결국은 암도 되게 슬프고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서 큰 충격을 받게 되면 암이 생기는 거고, 간경화증도 생기는 것이고, 고혈압, 중풍 병도 다 그런 데에서 생겨나, 원인은.
그래서 평상시에 떠억 화두를 들고, 일어나는 자기의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그러면 자연히 우리의 정신이 순화가 되어서 그러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위를 이겨 나가는 데에도 화두를 들고 참선하면, 그 더위도 어떻게 삼복더위가 지나간 줄 모르게, 옷만 젖어서 가끔 빨래만 하면 그럭저럭 하다 삼복이 지나가거든.
인생도 ‘인생이 다 괴롭다, 슬프다’ 그러지만, 고해(苦海)라고 하지만, 이 참선 공부만 열심히 하면 고해도 언제 어떻게 지나간 줄 모르게, 저 새파랗고 맑은 호수 · 바다로 피서(避暑) 가서 뱃놀이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40분28초~60분1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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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차사본무생~’ ; [태고집(太古集)] (雪栖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05 ‘무능(無能)’ 참고.
*무생(無生) ; ①생겨남[生]이 없는 것[無]. 일체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도 자성적 실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생겨나거나 멸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
②성문사과(聲聞四果)의 하나인 아라한(阿羅漢 arhat)의 한역어. 삼계의 번뇌를 여의어 다시 삼계에 목숨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생이라고 한다.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〇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3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본고향(本故鄕) ; 본향(本鄕).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감내(堪耐 견딜 감/견딜 내) ; 어려움을 참고 견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공안(화두)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공안(화두) 하나를 받아서, 그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금강지(金剛志) : 금강석과 같이 견고한 뜻。 일체 번뇌를 쳐부술 수 있는 굳센 의지.
*분(奮) ; 떨치다. 분발(奮發)함(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힘쓰다. 분격하다(憤激--). 일으킴.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의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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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〇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 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 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죽 잇따라 있는.
*관조(觀照) ; ①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②지(智)로써 사(事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와 이(理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를 관(觀)하여 바르게 아는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 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막대(莫大)하다 ; 더할 수 없을 만큼 많거나 크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〇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구참(久參 오랠 구/참구할·참여할 참)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것. 오랫동안 선(禪)을 닦은 것.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에 귀의한지 오래 되는 것. 초학(初學)의 상대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쾌락안연(快樂安然) ; 쾌락하고 편안하다.
*수질각차(手跌脚蹉 손 수/거꾸러질·넘어질 질/다리 각/미끄러질·넘어질 차) ; 각차수질(脚蹉手跌). (몸이 균형을 잃고) 손과 발이 미끄러지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50~52, 『선요』 (원순 역해 | 도서출판 법공양) p40~42 참고.
〇若要的實明證인댄 須開特達懷하며 發丈夫志하야 將從前惡知惡解와 奇言妙句와 禪道佛法과 盡平生眼裏所見底와 耳裏所聞底하야 莫顧危亡得失과 人我是非와 到與不到와 徹與不徹하고
만일 이 일을 적실하고 분명하게 증득하려면 특별한 포부를 품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종전의 나쁜 알음알이와 기묘한 언구(言句)와 선도(禪道)와 불법(佛法)과 평생동안 눈으로 본 것과 귀로 들은 것들에서 위태로움과 죽음, 얻음과 잃음, 남과 나, 옳음과 그름, 도달함과 도달치 못함, 사무침과 사무치지 못함 따위를 돌아보지 말고,
發大忿怒하며 奮金剛利刃하야 如斬一握絲에 一斬에 一切斷이라 一斷之後에 更不相續하야 直得胸次中이 空勞勞地와 虛豁豁地가 蕩蕩然 無絲毫許滯碍하야 更無一法可當情이 與初生으로 無異니라
크게 분발심을 내어 마치 금강 같은 날카로운 칼로 한줌의 실을 벨 때, 한 번 베면 모두 다 끊어져서 그 후에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하면, 당장 가슴속이 텅 비어 호호탕탕(浩浩蕩蕩)해서 실끝만치도 막히거나 걸림이 없으며 다시 한 법도 정식(情識)에 매이지 않음이 마치 갓난아기와 같을 것이다.
喫茶不知茶하고 喫飯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하야 情識이 頓淨하고 計較都忘이 恰如箇有氣底死人相似하며 又如泥塑木雕底相似리라
到者裏하야 驀然脚蹉手跌하면 心華頓發하야 洞照十方이 如杲日麗天하고 又如明鏡當臺하야 不越一念하고 頓成正覺이라
차를 마셔도 차 마시는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 먹는 줄 모르고, 다녀도 다니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몰라 정식(情識)이 단박 깨끗해지고 계교(計較)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 흡사 숨만 남은 시체와 같으며 또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조각 같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갑자기 손과 발이 미끄러져서 마음꽃이 단박에 피어 시방세계를 훤히 비춤이 마치 밝은 해가 하늘에 뜬 것 같으며,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인 것 같아서 찰나에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이다.
非惟明此一大事라 從上若佛若祖의 一切差別因緣을 悉皆透頂透底하며 佛法世法을 打成一片하야 騰騰任運하고 任運騰騰하며 灑灑落落하고 乾乾淨淨하야 做一箇無爲無事出格眞道人也라
恁麼出世一番하야사 方曰 不負平生參學之志願耳니라
이 일대사만을 밝힐 뿐 아니라, 위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온갖 차별된 인연(因緣)을 몽땅 아래 위로 꿰뚫어 알며 불법과 세간법을 한 조각으로 만들어 무심하여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며, 물 뿌린 듯 쇄락하고, 씻어 말린 듯 정결하여 하나의 격식에서 벗어나 일없는 참 도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번 세상을 뛰어나와야 비로서 ‘평생동안 참선하려는 뜻과 원력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리라.
—원문에 있는 '驀然 脚蹉手跌'은 몸의 균형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문득 발이 미끄러지고 손이 미끄러지는 것이니, 아차! 하는 순간을 말한다. 轉身移步 懸崖撒手. (원순 스님 주)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교주(教主) ; 석가세존(釋迦世尊).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높여 이르는 말.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게송) ‘막장사기매서동~’ ; [태고집(太古集)] (雪栖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43 ‘자찬, 장해원사의 청으로(自讚 張海院使請)’ 참고.
*남용(濫用 퍼지다·넘치다·함부로 남/쓸 용) ; ①사물을 정해진 규정이나 기준을 넘어서 함부로 사용함. ②권리나 권한을 본디의 목적이나 범위에서 벗어나 함부로 행사함.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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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일운위반~’ ; [태고집(太古集)] (雪栖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182 ‘운간(雲澗)’ 참고.
*백일(白日 희다·환하다 백/해·햇볕·낮 동안 일) ; ①구름이 끼지 않은 맑은 날의 밝게 빛나는 해. ②환하게 밝은 낮.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즉해서(卽해서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게송) ‘화종목출환소목~’ ;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고덕송(古德頌, 고덕의 게송)’ 참고.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정심(正心) ; 바른 마음, 또는 마음을 가다듬음.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삼복(三伏)더위 ; 삼복(三伏 :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무렵의 몹시 심한 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