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나무지기 ; ‘나머지’의 사투리.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 무자(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눈초리 ; ①어떤대상을바라볼때눈에나타나는표정. ②눈꼬리(귀 쪽으로 가늘게 좁혀진 눈의 가장자리).
*호념(護念) ; 불보살이 선행을 닦는 중생을 늘 잊지 않고 보살펴 주는 일.
*(게송) ‘활구참선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2권) '贈熙長老' 참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독보(獨步) ; 남이감히따를수없을만큼혼자앞서감.또는그런사람.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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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용 ; [주로 ‘용을쓰다’의구성으로쓰여]단번에내는센힘.
*초심(初心) ; ①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려고 한 마음. 처음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고 한 마음. ② 처음으로 수행하는 사람. 수행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③ 처음의 결심.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선열(禪悅) ; ①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 ② 참선할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짬지다 ; 일하는솜씨가여물고깐깐하다.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해이하다(解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태도따위가)긴장이풀어져서느슨한상태이다.
*이끗(利끗) ; ①이익이 되는 실마리. ②잇끝(말리 末利)—지말(枝末), 지엽(枝葉)적인 이익. 작은 이익.
*재색(財色) ; 재물(財物)과 타인의 몸(色).
*이양(利養) ; ① 산스크리트어 lābha 이익(利益). 이득(利得). 획득한 물(物 : 특히 출가자에 대하여 말함). 남에게서 물건을 받는 등 실질적인 이득(利得)을 말함.
② 이익(利益)을 얻어 자기몸을 보양하는 것. 재물을 탐하여 자신을 살찌우는 것.
③ 산스크리트어 satkāra 존경. 존중. 공경. 공양.
*솔깃하다 ; (사람이어떤일에)마음이끌리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사념주관(四念住觀) ; 깨달음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고 장엄하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 또는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하나이다.
사념처관(四念處觀)·사의지(四意止)·사념(四念)이라고도 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念處].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염(念, sati, 마음챙김)은 ‘마음을 챙김’으로, 구체적인 의미는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다.
“여기서 마치 송아지 길들이는 자가 [송아지를]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염(念, sati, 마음챙김)으로써 대상을 굳게 묶어야 한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염(念, sati,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身·受·心·法]에서 그들을 각각 더러움[不淨], 괴로움[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사념주(四念住, 四念處)라고 한다.
§(406) 쥐 법문(法門)—'화두'라고 하는 쥐 / 용궁(龍宮) 스님 / (게송)탐착몽중일립미~ / (게송)석화광음주~ / 참선 해서 무량겁 생사윤회의 쇠사슬로부터서 벗어나야.
〇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무명(無明)·업식(業識)·번뇌·망상을 쥐에다가 비유를 한 것입니다.그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번뇌와 망상을 ‘화두(話頭)’라고 하는 쥐를 시켜서 그놈을 다 잡아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〇앞으로 어떠한 불보살(佛菩薩)이 나타나셔서 더 좋은 방법을 설하시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이 활구참선법만큼 훌륭한 깨달음의 길은 없습니다.
〇참선을 안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 불러야죠. 마지막 숨 거둘 때까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르지만, 활구참선을 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마지막 죽을 때도 ‘이뭣고?’하면서 숨을 딱 거두도록 이렇게 해야 돼.
〇인생 일생사가 비록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뭉쳐진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활구참선하신다면 정말 소중한 뭄뚱이고 이승에 사람 몸 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왜 그러냐?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쇠사슬로부터서 벗어나서 영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6)—90년 1월 첫째일요법회 (용406)
(1) 약 15분.
(2) 약 13분.
(1)------------------
어떤 사람이 집에 어떻게 쥐가 들끓어서, 그 고양이를 갖다 놔봐도 몇 마리는 축(縮)지지만은 아주 잡을 수가 없고 또 쥐약을 갖다 놓으니까 집에서 키우는 개가 여러 마리 죽고, 도대체 그것 가지고도 안되고 그럴수록에 쥐는 점점 더 무성해져 가지고는 마을에 있는 쥐가 다 모여들고 산에 있는 쥐, 들에 있는 쥐까지 더 모여든다 그말이야.
파리도 파리채나 약으로 자꾸 잡아 싸면 몇 마리는 축지지만은 점점 더 모여든 것입니다. 잡아서 죽여가지고 그런 것을 해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 가지고 꾀를 냈습니다.
쥐를 잡아다가—쥐덫으로 쥐를 생포해 가지고 꽁댕이를 짤라 버리고는 그 쥐를 독에다 담아 넣고는 굶겼습니다. 굶겨가니까 이놈이 배가 고파서 못 견딘다 그말이야.
그래서 정 못 견뎌하면은 쥐를 잡아가지고는 쥐 고기를 쪼금씩 떼어서 먹였습니다. 그러니까 배고파서 못 견디는 놈이 쥐 고기를 먹더니 차츰차츰 생기가 나.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조금씩 더 주고 더 주고 해 가지고 완전히 쥐에게 쥐 고기를 먹여가지고 아주 뚱실뚱실하니 아주 건강하게 되었다 그말이야.
그래서 나중에는 산 쥐를 넣으니까 벌써 쥐 고기에 맛들인 놈이라 산 쥐를 탁! 잡아서 그놈을 잡아먹었다 그말이야. 매일 한 마리씩 잡아 넣으면 쥐 고기만 먹고도 아주 잘 살게 되었어.
그런 다음에 그 쥐를 풀어놨습니다. 풀어놓으니까 쥐구멍으로 맘대로 드나들면서 집안에 있는 쥐를 다 잡아먹었다 그말이야. 처음에는 새끼 어린 놈을 모다 다 줏어 먹더니 나중에는 큰 놈도 다 잡아먹어버려.
고양이를 놓으니까 어쩌다 겉으로 나돌아다니는 놈은 잡아먹지만은 쥐구멍 속에 딱 들어가 버리면 못 잡아먹는 데, 쥐를 시켜서 쥐를 잡게 하니까 맘대로 쥐구멍으로 다니면서 쏵 다 잡아먹었다 그말이야.
그전에는 마을 쥐, 들쥐 모다 오더니 그놈들도 신문이 있는지, 그 집에 갔다가는 뼈다구도 못 추린다 해가지고 인자 그 집에는 얼씬도 쥐가 안 와.
행여나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쥐 잡아서 쥐 잡을 생각을 마십시오. 이건 쥐 잡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는 끊임없이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 망상이 일어나고, 귀로 들어도 망상이 일어나고 또 가만히 앉았어도 망상이 일어나고, 일어나는 생각—좋은 생각이 일어나면은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일어나면은 나쁜 생각으로 인해서 나쁜 죄를 또 짓게 되고,
희로애락, 흥망성쇠, 가지가지 생각이 일어나고 말로서 나타나고, 얼굴로서 나타나고, 행동으로서 나타나고 해가지고 업(業)을 지어서 그래가지고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는데, 그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무명(無明)·업식(業識)·번뇌·망상을 쥐에다가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번뇌와 망상을 ‘화두(話頭)’라고 하는 쥐를 시켜서 그놈을 다 잡아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화두는 공안(公案)인데 공안은 불덩어리와 같아서 중생이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질 수가 없어. 거기에 접근해 가지고 뭐라고 따질려고 생각하면 벌써 그 불에 타죽는 것이여. 그래서 사량분별로 화두는 따지면 안 돼. 그건 깨닫기 커녕은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야.
그 화두를 올바른 방법으로 잘 거각(擧却)을 하면 끝없이 일어나는 온갖 번뇌와 망상을 그놈으로 다 잡아먹을 수가 있는 것이야. 쥐를 잘 훈련을 시켜가지고 온 쥐를 다 잡아먹은 다음에 그 쥐 한 마리만 딱 없애버리면은 쥐는 아주 멸종이 될 것이다 그말이야.
화두 하나를 타 가지고 그 화두를 참구(參究)를 거각을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잡드리를 해 나가는데, 더이상 의심이 간절(懇切)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
산을 봐도 화두요, 들을 봐도 화두요, 사람을 봐도 화두요, 귀로 새소리를 들어도 화두요, 물소리를 들어도 화두요, 칭찬하는 소리를 들어도 화두요, 나에게 욕을 하는 소리를 들어도 화두요, 밥을 먹어도 화두요, 똥을 눠도 화두요,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만을 거각해서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즉각 화두로서 떠억 의단을 거각을 한다.
이 화두 앞에는 도무지 천하 없는 망상도 번뇌도 얼씬거리지를 못해. 얼씬거렸다면 화두를 딱 들어버리면 탁 잡아먹어버려.
처음에는 잘 안돼. ‘이뭣고?’해도, ‘이뭣고?’하는 속에도 저 속에서는 할 생각 다 하거든. ‘이뭣고?’하면서도 집안 생각 다 하고, 미국에 가 있는 아들 생각 다 하는데, 그래도 자꾸 하고 하고 또 하고 하면 언젠가는 할라고 안 해도 의단이 저절로 성성(惺惺)하게 들릴 때가 오고 마는 것이여.
더이상 간절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하고 더이상 성성할 수 없을 만큼 성성해질 때, 어느 찰나에 그놈이 탁! 터지게 된다 그말이야. 통 밑구녁 빠지듯이 턱 터지게 돼. 그게 확철대오(廓徹大悟)거든.
다른 공안도 환하거든. 이렇게 되면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자기의 그 깨달은 바가 바른가 그른가에 대한 점검을 받아야 되고, 그 점검을 받은 다음에는 공안을 타파한 뒤에 어떻게 정진해 가야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그래, 화두를 드는 것은 망상 없애기 위해서 방편으로 그런 것이지, 뭐 깨달음이 있기는 무슨 깨달음이 있어. 절대로 그렇지 않아’ 이것은 조사(祖師)들이 몸으로서 실지로서 우리에게 그 증거를 보여주신 것인데 어찌 이것이 거짓말일까보냐.
앞으로 어떠한 불보살(佛菩薩)이 나타나셔서 더 좋은 방법을 설하시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이 활구참선법만큼 훌륭한 깨달음의 길은 없습니다.
망상이 일어날수록에 그 망상을 버릴려고 하고 없앨려고 하고 쫓아낼려고 하지 말고 화두만 딱 거각하면 그만이야. 쥐가 나타나면 그놈 쫓아낼라고 하지 말고 그 독에서 키운 그 쥐만 갖다가 그리 풀어 놔버리면 그만이야. 어디로 도망갈 것이냐 그말이야. 도망갈 곳이 없거든.
고양이가 쫓으면 쥐구멍으로 들어가지만 쥐를 내보내는데야 도망갈 곳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면 이놈도 올라갈 것이고 땅속으로 들어가면 이놈도 들어갈 것이고, 갈 곳이 없거든. 화두만 딱! 거각해 버리면.
부애가 나도 ‘이뭣고?’요, 슬퍼도 ‘이뭣고?’요, 억울해도 ‘이뭣고?’요, 몸이 아파도 ‘이뭣고?’요,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될 때에도 다른 거 생각할 거 없어, 아미타불 생각할 거 없어. ‘이뭣고?’
‘이뭣고?’ 참선을 안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阿彌陀佛) 불러야죠. 마지막 숨 거둘 때까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르지만, 활구참선을 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마지막 죽을 때도 ‘이뭣고?’하면서 숨을 딱 거두도록 이렇게 해야 돼.
내가 아는 어떤 노보살님은 그 ‘이뭣고?’하고 가는데 차가 뒤집어졌어. 버스가 뒤집어졌는데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그분은 아무데도 다치지도 않았어.
또 내가 아는 어느 비구니 스님은 화두를 들고 떠억 가는데, 저기 청평 큰 호숫가를 지내다가 버스가 호수로 빠져가지고 그 안에 탄 사람이 몰사(沒死)했습니다. 수십 명이 다 죽었는데, 그 화두를 들고 간 그 비구니 스님은 ‘이뭣고?’를 물에 빠져서도 고대로 ‘이뭣고?’를 하고 있는데 환하니 보여서 그 열려진 문으로 기어나왔다 그말이여.
기어나와 가지고 허부적허부적 헤엄을 치면서 이렇게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안 보이고 이제 돌 돌아간 어린 아기가 물위에 떠가지고 허우적허우적하고 있어서 그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 애기 하나하고 그 비구니 스님 하나만 살았어.
그래서 그 애기를 갖다가 수양아들을 삼아가지고 그 애가 커서 지금 학교 잘 다니고 있고 한데, 그래서 그 비구니 스님을 용궁(龍宮)에 갔다 왔다 해서 용궁 스님이라고 별명이 붙었는데.
참 이상한 것이 화두를 들고 가다가 배가 침몰해도 그분은 죽지를 않아. 차가 뒤집어져도 죽지를 않아. 어떠한 난세(亂世)를 당한다 하더라도 화두를 들고 정진한 사람은 그 난세를 피하게 되고 꼭 죽게 된 데에서도 살아난다 그말이여.
그것이 왜 그러냐? 항상 이십오 신장(二十五神將)이 옹호를 하고 댕기거든. 보통 착한 마음만 가져도 선신(善神)이 지켜주는데,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하는 사람은 선신 하나 둘이 아니라 25신장이 항상 옹호를 하는 거야. 그러니 교통사고에 살아날 수 밖에는 없는 것이여.
여러분은 숙세에 얼마나 선근(善根)을 심었기에 이러한 활구참선을 믿게 되었고 그것을 또 실천하게 되셨냐 그말이야.(35분28초~49분42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몽중에 꿈 가운데에 한 알갱이 쌀을 탐착하다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금선대, 저 금선대에 만겁동안 먹을 수 있는 그 많은 양식을 잃어버리게 되는구나.
무상찰나(無常刹那)라 실난측(實難測)이여. 우리의 이 몸뚱이, 우리의 이 생명은 눈 한번 감었다 뜨지 못하면 내생(來生)이고,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이여. 참, 그 찰나(刹那)라! 언제 1년 후에 죽게 될런지, 한 달 후에 죽게 될런지, 사흘 후에 죽게 될런지, 1분 후에 죽게 될런지, 우리의 수명은 참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니,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어찌 맹렬히 반성을 해서 마음보를 돌이키지 못하는고.
우리는 이렇게 해서 최상승법을 믿고 해탈도(解脫道)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사부대중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고 또 방부(房付)를 들이고 그렇게 참 고행을 하고 계시는데,
무엇이 우리를 구속(拘束)을 했기에 우리는 해탈(解脫)을 할라고 합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구속을 한 점 또는 내가 나 자신을 구속을 한 점. 쇠사슬 보다도 더 견고하고 무서운 것으로 우리 자신들을 그렇게 속박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렇게 얽히고, 물질에 얽히고, 명예와 권리와 재산 모다 그런 것에 얽히고, 원한으로 얽히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으로서 얽히고, 자존심과 체면에 얽히고, 마약 술 그런 것에도 얽히고, 무량겁 지어 놓은 습기(習氣)에도 얽히고, 자기가 자기를 얽히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을 얽어매고, 다른 사람은 또 자기 자신을 얽어매고 또 그 사람이 또 나를 얽어매고 해서,
피차(彼此) 서로 많은 머리카락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뭉쳐 있듯이 인간들이 그러한 형용할 수 없는 무서운 쇠사슬로 서로 얽히고 얽고 그렇게 해서 무량겁을 오늘날까지 이렇게 오고 있는 것입니다.
관성(慣性)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계속해서 움직일려고 그러고, 정지되어 있는 물건은 계속해서 정지되어 있을려고 하는 그러한 성질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관성의 법칙이라 그러는데, 그래서 기차나 전철을 타고 가다가 급정거를 하면 사람이 와르르 넘어질려고 그런거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고, 또 가만히 차에 앉아 있는데 급작스럽게 차가 출발을 하면 사람이 버뜩 뒤로 자빠지려고 그러고 이런 것도 역시 관성의 법칙이고, 옷에 먼지가 있는 것을 탁! 이렇게 털면은 먼지가 떨어지는 것도 역시 그런 관성의 법칙을 이용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뉴월 뙤약볕도 쬐다가 안 쬐면 서운하다’고 그런 구속이라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데, 여태까지 구속되어 있다가 그렇게 풀어준다 해도 그것을 서운하게 생각한다 그말이야.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면 그 무서운 쇠사슬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고 그렇게 목이 마르도록 말씀을 하고, 법문을 들어도 아! 그 무엇이 그렇게 그리운지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여간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런 법문을 들으신 분은 ‘아! 내가 이제부터서는 그런 쇠사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나도 벗어나고 또 다른 사람 내가 얽어매고 있는 쇠사슬도 풀어주리라.’ 그렇게 다 얼굴을 제가 보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댁에 가셔서 정말 탁 풀어 버리실런지 그거 또 아까워서 계속 그러실런지 인자 스스로 가서 잘 생각해 보시면 알 것입니다.
어쨌든지 자유가 좋은 것입니다. 탁! 자기도 풀면 좋고 남 얽어맨 것도 탁 풀어주세요. 풀어주면 그 사람도 나한테 더 잘하고.
어떻게 그놈을 서로 얽어매 놓고 한집에서 살면서 그렇게 서로 불편한 관계로 사실 수가 있겠습니까. 탁 풀어주면은 저도 좋고 남도 좋고 그냥 어제까지의 감옥이 오늘은 극락세계로 변할 것입니다.
화두 한번 터억 화두 든 마음으로 쳐다보면 앞에서 봐도 이쁘고 뒤에서 봐도 이쁠텐데, 화두를 놓쳐 버리고 옛날에 품었던 원한심을 가지고 쳐다보면 볼수록 미웁다 그말이여. 그거 미워해 봤자 무엇이 좋을 것입니까. 터억 화두를 들고 풀어줘 버리면은 당장 그날 저녁 밥상부터 달라질텐데.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여. 이 세월은 돌과 돌을 탁 부딪치면 불이 번쩍하듯이 그렇게 화살같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것이여.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다. 그 젊었을 때 윤기 나고 불그스레한 얼굴이 벌써 머리가 허예져 버린 것이여.
인간(人間)은 백년몽(百年夢)이여. 인간은 백 년 동안 꾸는 꿈이여. 이 몸뚱이는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다. 하루살이 일생사야. 백 년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긴 것 같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인생 일생사란 것이 하루살이 신세 밖에는 안됩니다.
비록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활구참선하신다면 정말 소중한 뭄뚱이고 이승에 사람 몸 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왜 그러냐?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쇠사슬로부터서 벗어나서 영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모든 악업으로 얽혀진 모든 사람들을 다 풀어버리니 일체가 다 좋은 도반(道伴)이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이 되어서 온 세계 온 법계가 행복한 한 가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앞으로 해제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선방에 방부들인 스님네 또 보살님네 그 동안도 열심히 정진들 하셨지만 남은 동안을 더욱 알뜰히 정진을 해주시길 부탁을 하고, 또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신 분들도 방부들이신 분들 못지않게 생활 속에서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자고자 합니다.(49분43초~62분5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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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縮)지다 ; 축(縮)나다. ①일정한 수나 양에서 모자람이 생기다. ②몸이나 얼굴 따위에서 살이 빠지다. *꽁댕이 ; ‘꼬랑이('꼬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얼씬 ; 조금 큰 것이 눈앞에 잠깐 나타났다 없어지는 모양.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몰사(沒死 빠질 몰,죽을 사) ; 모두 다 죽음. *허부적허부적하다 ; '허우적허우적하다(사람이 팔다리를 자꾸 이리저리 내두르다)'의 사투리. *수양아들(收養아들) ; 자신이 낳지 않았으나 데려다가 기른 아들.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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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회두(回頭)' 게송 참고.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하는 미래의 삶. *찰나(剎那) : [범] ksana 지극히 짧은 시간. 하루가 육백 사십 팔만 찰나라 하였는데, 지금 시간으로는 1초의 75분의 1에 해당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관성(慣性 버릇·익숙하여짐 관,성질 성) ; [물리]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고 하는 성질. *(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西山 休靜, 朴敬勛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86쪽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불그스레하다 ; (물건이나 그 빛이)곱고 연하게 조금 붉은 데가 있다. *허옇다 ; (사물이나 그 빛이)정도에 지나치게 희다. *부유(蜉蝣) ; [동물] 하루살이목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406) (게송)시비일침몽~ / 자기반성, 참회, 용서, 이해, 화합 / 새해에는 마음보를 새로 갈아야 / (게송)몽중확득황금장~ / 오욕락 탐착이 마약 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
〇자기반성으로 참회로 용서로 이해로 해서 그런 다음에사 화합으로 들어가지 않고 즉각 화두(話頭) 하나만 딱! 들어버리면, 그 속에 반성과 참회와 용서와 이해가 다 그 숨 한번 내쉬고 화두 한번 드는 속에서 다 되어버린 것. 〇인생으로 태어나서 바르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이 무상(無常)한 몸뚱이로서 영원을 사는 길이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 밖에는 없다.
〇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불교신자는 인과법칙을 잘 이해를 해야 하고 인과의 원리를 깊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〇그런데 인과의 법칙을 나름대로는 모다 이해하고 계시지만 남의 문제를 볼 때에는 다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자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인과의 법칙을 덮어두고 그걸 잘 이해를 못하시게 된다.
〇금생에 사람은 잠잘 때 꾸는 꿈만 허망한 줄 알았지, 이생에 태어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사는 것도 그것도 사실은 틀림없는 꿈인 것인데, 그것이 꿈인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못해. 〇참선을 해서 자꾸 수행을 쌓아서 우리의 팔식(八識) 속에, 잠재의식 속에 잠겨있는 선악(善惡) 종자(種子)가 다 승화(昇華)가 되어야 저절로 마음이 평등해지고 그냥 미운사람도 별로 없고 그냥 이쁜 사람도 없고 모두가 다 평등하게 수수하게 그런 마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다. 옳다 그르다,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 옳다 그르다 하고 시비(是非)를 하는 것은 하룻밤 한 벼개 꿈이여. 하룻밤 꿈에 지나지 못한 것이여.
세월이 지내 놓고 보면은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고, 글렀다고 생각한 것이 세월이 지내 놓고 보면 그것이 차라리 옳은 일이 되는 수가 있더라 그거거든.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여. 모았다가 흩어졌다 하는 거. 한 가정으로 한식구가 되어서 모았다가 또 생이별(生離別) 사이별(死離別)하는 것이나, 한 국민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죽고 다시 내생에는 또 다른 나라에 태어나는 것이나, 이 당(黨) 저 당 당원이 되어가지고 어느 정도 지내다가 나중에는 또 다른 당으로 옮겨가고 그 당이 깨지고 하는 것이 전부가 한때의 정(情)이여.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하면, 자기의 분(分)에 편안히 해서 만족을 해 가지고 마음에 헐떡거리는 생각을 쉬어버리면, 인간 가운데에서도 대장부더라.(人間大丈夫)
그 분(分)에 편안히 하들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탐심을 내고 시비심을 내서, 그 이끗을 좇아서 다투고 싸우고 상대방을 누르고 해꼬자하고 그리고 자기가 더 큰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마음을 쉬지 못하면 시비는 점점 더 일어나고 더 깊어지고 원수는 깊어지고 해서 백만사(百萬事)가 되는 일이 없어.
그러니 안분(安分)해서 마음을 쉬어버리면 인간 가운데에서도 참다운 대장부가 될 것이다. 이런 고인(古人)의 시를 읊었습니다.
경오년, 불기(佛紀) 2534년, 서기(西紀)로는 1990년, 경오년을 맞이해서 1월 첫째일요법회가 되었습니다.
나라안도 화합(和合)을 해야 하고, 가정도 화합을 해야 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세계도 화합을 해야 할 그러한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화합이 되고, 가정이 화합이 되고, 나아가서는 세계도 모다 화합을 해서 평화를 이룰 수가 있을 것인가?
첫째는 화합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반성(自己反省)을 해야 해. 자가반성(自家反省). 전부 잘못한 것은 상대방에다 전부 전가(轉嫁)를 시키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을 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화합은 이룰 수가 없어.
첫째 자기반성을 해야 하고, 반성을 해서 자기의 잘못을 참회(懺悔)를 해야 하고 그러면 자연히 상대방의 설사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는 아량(雅量)이 생기는 것이여. 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그러면은 어찌 화합이 안될 수가 있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고 가정내에 있어서의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는 밤낮 자식 잘못했다고 나무라고. 부부간에도 역시 마찬가지여. 고부간(姑婦間)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또 사회에 나가서도 또는 직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여. 어떠한 기업체도 마찬가지. 노사관계도 그렇고 또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
이러한 자가반성으로 참회로 용서로 이해로 해서 화합으로 나가는 길은 이것은 하근기들이, 하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되는데,
상근기(上根機)는 그러한 반성으로 참회로 용서로 이해로 해서 그런 다음에사 화합으로 들어가지 않고 즉각 화두(話頭) 하나만 딱! 들어버리면, 터억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한참 머물렀다가 후~하고 숨을 내쉬면서 화두 한번만 딱 들어버리면 그 속에 반성과 참회와 용서와 이해가 다 그 숨 한번 내쉬고 화두 한번 드는 속에서 다 되어버린 거여.
그러니 화두 한번 들므로써 자기의 마음속이 깨끗해져버려. 그러니 반성할 것이 따로 무엇이 있으며 참회할 것이 따로 무엇이 있으며 용서하고 이해할 과정이 필요 없어.
금방 고대로 내 마음이 허공과 같이 되기 때문에 다 상대방이 하나도 미웁게 보이질 않아. 그러니 화합을 할려고 안 해도 내 마음이 허공과 같이 되어버리니까 금방 화합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버린 것이다.
방금 조실스님의 법문—참선, 활구참선. 인생으로 태어나서 바르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이 무상(無常)한 몸뚱이로서 영원을 사는 길이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 밖에는 없다 이 말씀이야.
새해를 맞이했으니 여러분이 다 섣달그믐 안에는 모두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목욕을 하셨을 것이고 또 속옷부터서 전부 모다 새로 다 갈아입으시고 겉옷도 모다 갈아입으셨을 것이다. 달력도 묵은 달력은 치우고 새 달력을 걸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또 떡국도 한 그릇 더 잡숫고 그리고 연세도 한 살이 첨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마음보를 새로 갈아서 가져야 할 것인데, 내나 묵은 마음보 그놈을 고대로 간직한 채, 미운 사람은 고대로 미운 사람 남아 있고, 억울한 생각 고대로 속에다 담아 있고, 감정 고대로 담아 있고, 케케묵은 묵은 시비와 원한관계를 고대로 간직한 채, 껍데기만 씻고 닦고 갈아입었으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설사 옷은 헌옷일망정 깨끗이 씻어 입으면 그만이고 마음보를 첫째 새로 갈아 가져야겠다 이 말씀이여. 집단속만 잘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은 새롭게 하지 않고 집 겉껍데기로만 페인트만 잘 칠하고, 속은 방문을 열고 보면은 코를 두를 수가 없이 집안을 해 놓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새해를 맞이해서 화합하고 좀 더 새롭게 발전을 할려면 우리 모두가 다 마음보를 고쳐야겠다 이것입니다.
옷은 갈아입을 수가 있고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비싸고 좋은 옷,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지만 마음보를 어떻게 해야 갈아 넣을 수가 있을까? 정신병원에 입원을 할까? 외과병원에 가서 염통을 갈아 넣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 마음보 갈아 넣는다는 것은 말로는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어떻게 하면 그 마음보를 갈아 넣어서, 탁! 그 마음보를 갖다가 정말 관세음보살과 같은 부처님과 같은 마음보를 간직했으면, 천사와 같은 그러헌 마음보를 갈아 넣었으면 자기도 좋고 남도 좋고 할텐데,
어떻게 그 마음보를 새롭게 갈아 넣을까? 지금 그 문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병원에 가도 이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보는 돈도 필요가 없습니다. 수술도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도 그렇게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힘도 들지 않습니다.
이 마음보 하나만 고쳐버리면—시어머니가 마음보를 고치면은 우선 자기가 좋고, 왜 좋으냐? 마음보를 고쳐 놓으면 우선 자기 마음이 편하고 즐겁고 좋다 그말이야.
마음보를 고약한 마음보를 가지고 있으면 남을 들볶지 않고는 심심해서 못 견디거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남의 오장을 확 찍어서 긁어 잡아당겨야 밥맛이 생기거든. 그러니 남의 마음을 쑤시고 긁어서 비틀어 잡아당겨 놓으면, 상대방 마음을 그렇게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해 놓으니 그 사람이 나한테 좋은 얼굴을 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나한테 잘해 줄 리가 없거든.
남을 물구덩이에다 집어넣을라면 먼저 자기가 들어가서 잡아당겨야하고, 남을 밑으로 넣을라면 그냥 그 사람이 들어가겠습니까. 물구덩이에 안 빠지기 위해서 밑으로 넣은 사람 팔이고 옷이고 붙잡지. 붙잡고 자빠지니 밑으로 넣은 사람도 같이 빠질 수 밖에는 없다 이 말씀이여.
그러니 상대방 보고 잘못했다고 밤낮 미워하고 성질을 낼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보부터 딱 고쳐버리면 상대방도 자기한테 아주 참 잘해 줄 것인데 어째서 그만한 것을 모를 것이냐 그말이여. 50, 60, 70이 넘어가면서 그만한 쉬운 이치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또 그 동안에는 제가 이 법상에 올라와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을 무수하게 했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께 잘하라’고 그것을 참 많이 주장을 했는데, 그 며느리 보고만 꼭 잘못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부모 된 분이나 시어머니 된 분이나 시아버지 된 분, 노인들 어른들도 그 효도를 받을 수 있도록 효도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언제나 이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좋은 자식, 효자, 효부(孝婦)를 두는 것도 전생에 자기가 효자, 효부를 둘 만한 복을 심고 공덕을 쌓아야 좋은 며느리, 좋은 자식을 두는 법이지, 자기가 그러한 복을 쌓지 않고 공덕을 쌓지 않고서 좋은 효자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전생에 내가 잘못해 가지고 누구에게 해를 끼쳐서 원한을 심어 놓으면 그놈이 그 심은 원한을 갚기 위해서 다 불효자식으로 태어나가지고 부모를 갖다가 애를 먹이는 것입니다. 남에게 잘해주고 은혜를 끼쳐 놓으면 은혜를 갚기 위해서 자식으로 태어나고 그 집의 며느리로 들어오면 부모가 별로 잘해준 것도 없으면서도 그렇게 부모에게 효자, 효부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것인데, 그러한 인과(因果)의 법칙을 이해를 못하고 철저하게 믿지를 못하니까 밤낮 남의 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불교신자는 인과법칙을 잘 이해를 해야 하고 인과의 원리를 깊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믿으면 도대체 남을 원망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전부 자기한테 있는 것을 아니까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리고 염불을 하던지, 경을 독송을 하던지 또 참선을 하던지 이래가지고 자꾸 자기를 승화(昇華)를 시키면 자연히 전생의 원결(怨結)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정화(淨化)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업(業)을 참회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죄업을 소멸시키지 않고 자꾸 상대방만 나무라고 상대방을 족쳐봤자 점점 원한만 더 깊어지고 해결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인과의 법칙을 나름대로는 모다 이해하고 계시겠지만 남의 문제를 볼 때에는 다 그렇게 말하면서,정작 자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인과의 법칙을 덮어두고 그걸 잘 이해를 못하시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9분54초)
몽중확득황금장(夢中钁得黃金藏),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황금의 보배, 황금의 뭉텅이를 얻었어. 그래 가지고 청란(靑鸞), 파란 청란새를 떠억 타고서 저 천상 옥경(玉京)에를 올라갔다 그말이야, 꿈에.
그래 가지고 그 청란새를 타고 옥경에 올라가서 하늘나라를 구경을 하니 기가 막히다 그말이야. 너무너무 좋아서 그 난봉새를 타고서 옥경을 이리저리 돌아댕겨. 도대체 앉을 곳이 없어. 어떻게 좋던지 내려앉지 않고 새를 타고 다니면서, 난새를 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를 구경을 하다가 날이 새 가지고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니까 깜짝 놀라서 깨보니 뚝 떨어졌다 그말이여.
그 금은보화 그 좋은 보배로 좋은 옷을 입고 목에다가 머리에다가 팔에다가 모다 그 찬란한 목걸이와 팔걸이·반지·귀걸이 모다 한 것도 간 곳이 없고 그 고운 난봉새도 간 곳이 없고, 자기 방바닥에 누워있다 그말이여.
꿈을 깨고 보니 그 꿈을 좀 더 오래 꿀 것을 일찍 깼다고 아무리 후회를 한들, 꿈을 깨버리니 허망하기가 말로 할 수 없다 그말이야. 밖에서 떠든 사람보고 떠들었다고 혼구녕을 내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낮에까지 꿈꾼다고 해서 소용 있습니까? 언젠가는 깨고 말텐데.
이승에 와서 부자가 되고, 또는 높은 벼슬을 하고, 또 명예와 권리를 한몸에 지고, 마음먹은 대로 천하를 호령을 하고 휘둘러 봤던들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 버리면 꿈 다 꾸고 난 뒤와 마찬가지여. 다 가고만 마는 것이여.
금생에 사람은 잠잘 때 꾸는 꿈만 허망한 줄 알았지, 이생에 태어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사는 것도 그것도 사실은 틀림없는 꿈인 것인데, 그것이 꿈인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못해.
살다가 죽을 때 가서 겨우 ‘아! 인생이라는 것은 꿈이었구나’ 그때 가서도 알면 다행인데 그때 가서도 몰라요.
‘아이고! 내 재산을 어느 놈이 먹을란가’ 그래 가지고 죽으면서도 문서를 손에다 쥐고 죽는다 그말이여. 그 가봤자 소용 있겠습니까? 가지고 가봤자? 죽으면서도 꿈인 줄을 모르고 계속 그 애착과 집착, 탐욕심을 끌어안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 인간 세상에 흥망성쇠(興亡盛衰)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그러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부터 수월하게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꿈인 줄만 안다면 이쁜 사람을 봐도 그것이 꿈인 줄 아니 집착할 것이 없고, 미운 사람을 만나되 그것이 확실히 꿈에 만난 줄 안다면 그렇게까지 미워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다 미운 사람이나 이쁜 사람이나 그저 무심한 마음으로, 평등한 마음으로 상대하면 참선도 훨씬 더 잘 될 것이고, 참선을 또 열심히 하면 자연히 그런 평등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지로 분명하게 깨닫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산승이 이렇게 말씀드린 것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생활에 있어서는 그것이 잘 ‘그렇게 안 하리라’해도 딱 되어지거든.
참선을 해서 자꾸 수행을 쌓아서 우리의 팔식(八識) 속에, 잠재의식 속에 잠겨있는 선악(善惡) 종자(種子)가 다 승화(昇華)가 되어야 저절로 마음이 평등해지고 그냥 미운 사람도 별로 없고 그냥 이쁜 사람도 없고 모두가 다 평등하게 수수하게 그런 마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활구참선, 참선이라 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여법(如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일년 이태 삼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고약한 성격도 많이 순화가 되고 집착심(執着心)도 담박(淡泊)해지고, 탐착심(貪着心)도 담박해지고 흥망성쇠에 그저 그런대로 다 큰 충격 받지 않고 다 적절히 처신을 해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워낙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그러한 탐진치로써 살림을 해 왔기 때문에 워낙 깊이 그 뿌리가 박혔어. 그래서 알면서도 그것이 잘 안되는데.
요새 온 세계가 마약(痲藥)을 가까이 해 가지고 마약에 중독(中毒)된 사람이 나날이 불어나고 있는데, 그 마약이라고 하는 것이 꼭 무슨 아편이나 또는 뭐 대마초 그런 것만이 마약이 아니고, 술이나 담배 그런 입을 통해서 마시고 먹는 그런 것만이 마약이 아니고, 명예나 권리 또 오욕락(五欲樂) 그런 것에 탐착하는 거, ‘그것이라야만 되겠다. 그것만을 얻어야 내가 정말 행복하게 살겠다’고 이렇게 오욕락에 탐착하는 것도 역시—그놈의 탐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마약에 중독된 것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요새는 물질문명이 모다 끝없이 자꾸 발달되어 가서 사람이 무척 살기에 편리하게 되었으나, 마음보를 바로잡지 못하면 그런 물질문명을 갖다가 올바르게 사용을 못하고 결국은 남을 해롭게 하고 세계를 멸망케 하고, 자기까지 멸망케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우리의 심성을 순화시키고 자아(自我)를 자각해서—자아라고 하는 것은 나의 불성(佛性)이거든. 그 불성을 갖다가 깨달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다 불성이 있어.
악한 사람에게도 불성이 있고 선한 사람에게도 불성이 똑같은—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을 모든 사람이나, 모든 동물이나, 모든 생물이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아를 자각(自覺)하는 수행을 쌓은 사람은 모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성도 소중하게 생각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갖다가 미워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할 수가 없고 해꼬자할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러니 자기의 생명도 소중하듯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게 볼 수가 있게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다른 사람을 다 자비(慈悲)로서 상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성(心性)이 된 사람이 어찌 마약을 피울 수가 있게 되겠습니까? 마약은 당장 육체적인 자기를 멸망시키고 나아가서는 자기의 정신까지 아주 못쓰게 만드는 것인데 어찌 마약 같은 것을 함부로 가까이 하겠습니까.
보통 마약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만큼 마음이 괴로우니까—어떤 것에 대한 압박, 구속, 피해의식 그런 것으로 해서 자기 자신을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우니까, 잠시라도 그런 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 것을 한 번 맞고 두 번 하다가 세 번, 네 번하면 벌써 안 하고는 못 배기게 된다 그말이여.
그런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괴롭고 곧 미쳐서 죽을 거 같으니까 그걸 안 하고는 못 배기고, ‘그걸 하면 좋다’고 그런 말하는 나쁜 친구를 사귀어 가지고 ‘한번 해 보라’고, ‘그러면 괜찮다’고. 처음에는 담배를 좀 피워보고 그것으로 안되면 술도 좀 먹어보고, 처음에는 술을 한잔 먹어 놓으면 그럭저럭 괜찮다가 나중에는 술 갖고도 안되니까 또 마약을 가까이 하게 된다 그말이여.
불법을 믿고, 이 최상승법을 믿고 단전호흡과 화두를 거각(擧却)하므로 해서, 자기의 중심을 잡아나가고 자기를 승화시켜 나갈 수 있는 법을 알고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야 아무리 괴롭기로서니 그런 것을 가까이해 가지고 그런 환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자기를 유지해 나갔을 때, 그럴 때에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힘을 얻어 놓으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진다 하더라도 능히 다 적응 할 수 있고 다 극복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19분55초~35분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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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시비일침몽~’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8 ‘준선자(俊禪子)에게’, p47 ‘감흥(感興)’ 게송 참고. *枕(침)베개. 말뚝. *歇(헐)쉬다. 그치다. *벼개 ; 베개(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 밑에 괴는 물건)의 사투리. *생이별(生離別) ; 혈육이나 부부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짐.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이끗(利끗) ; ①이익이 되는 실마리. ②잇끝(말리 末利)—지말(枝末), 지엽(枝葉)적인 이익. 작은 이익.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대장부(大丈夫)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백만사(百萬事) ; 모든 일. *안분하다(安分--) ; (사람이)편안한 마음으로 자기의 분수를 지키다.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화합(和合) ; 서로 간에 마음이나 뜻을 모아 화목하게 어울림. *모다 ; ‘모두, 전부’의 옛말. *자기반성(自己反省) ; 자기의 언행에 대해 스스로 돌이켜 봄. *전가(轉嫁 돌릴 전, 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〇(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아량(雅量 우아할 아,헤아릴 양) ; 깊고 너그러운 마음씨. *상근기(上根機 위 상,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매우 뛰어난 사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섣달그믐 ;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마음보 ; 마음을 쓰는 속 바탕. *내나 ; 결국에 가서는. *효부(孝婦) ; 시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지극한 며느리.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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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몽중확득황금장~’ ; ; [신심명(信心銘)-벽의해(闢義解)]-중봉명본 선사(中峰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2014) p114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난(鸞 난새 란[난]) ; 난새. 난조(鸞鳥).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 모양은 닭과 비슷하나 깃은 붉은빛에 다섯 가지 색채가 섞여 있으며, 소리는 오음(五音)과 같다고 한다. *옥경(玉京) ; 하늘 위에 옥황상제가 산다고 하는 가상적인 서울. *한몸 ; 주로 ‘한몸에’의 꼴로 쓰여, '있는 대로 모두'를 이르는 말.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집착심(執着心)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담박하다(淡泊--, 澹泊--) ; ①(사람이)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②(음식맛이)깔끔하고 느끼하지 않다. ③(치장이)연하고 산뜻하다. *탐착심(貪着心)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마약(痲藥 마비 마,약 약) ; 강한 진정 작용과 마취 작용을 지니고 있으며 습관성이 있어 오래 사용하면 중독이 되는물질. 아편(阿片)ㆍ모르핀ㆍ코카인ㆍ헤로인ㆍ코데인ㆍ페티딘ㆍ메타돈ㆍ엘에스디(LSD) 따위가 있으며, 의료에 사용하지만 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있어 취급 및 사용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배기다 ; ①(사람이)끝까지 참고 견디다. ②(사람이 힘든 일을)끝까지 참고 견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화두를 든다.
§(204) (게송)보만삼천급대천~ / 중생은 '미(迷)한 부처님', 부처님은 '깨달은 중생' / 바른 믿음을 가져야 / '제행무상~'게송 / (게송)도장칠보시삼천~ / 금강경사구게.
〇부처님께서 그 많은 경전을 설하셨지만 참으로 부처님의 그 경전의 뜻을 올바르게 체달(體達)을 하고 보면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으는 그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여. 이 도리를 믿는 사람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도리가 믿어진 사람은 최상승법의 인연을 무량겁을 두고 심어온 그러한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있어.
〇바른 믿음을 갖지 아니하면 마구니를 불보살로 착각하기도 하고, 불보살을 마구니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에 바른 신심을 가지고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해야 그것을 가려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〇망상 일어나는 것도 걱정을 하지 말고 「이뭣고?」 화두를 들 것이고, 나를 정신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뵈인 그러한 미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미움으로써 미운 생각을 일으켜서 미워하지 말고, 빨리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 나간다면 그 미웠던 사람이 바로 불보살의 모습으로 변해질 것입니다.
〇중생의 번뇌 망상, 인간의 생로병사 속에 대해탈도(大解脫道)는 조끔도 숨김없이 열려져 있다고 하는 사실, 어느 망상, 어느 번뇌 한마디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길은 있다고 하는 사실에 명심을 하고, 일어나는 한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화두를 들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백천만 억의 불보살이 출현한다 하더라도 중생의 번뇌를 여의고 부처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만삼천급대천(寶滿三千及大千), 보배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 찬 보배가 있고, 그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그 보배로 보시를 해. 보시를 하면 그 보시의 공덕이 얼마나 많으냐? 하면 하늘나라와 인간의 나라, 인천(人天)에 그 복이 인천에 가득차.(福緣應不離人天)
그 인천(人天)에 가득 찬 복은 어떠한 복이냐 하면, 그것은 무루복(無漏福)이 아니라 유루복(有漏福)에 지내지 않는다.아무리 하늘나라와 인간 세상에 그 복의 인연이 가득차서 온 천하 것이 전부 자기 것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루복이다 그말이여. 유루복은 한도(限度)가 있어.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보배로 보시를 해서 아무리 공덕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말이죠.그래서 그것은 영원한 행복이라 할 수가 없어.
그 복덕성(福德性)이 원래 자성(自性)이 없는 도리를 깨달아야,(若知福德元無性) 이 온 세계에 봄이 오면 잎이 피고 꽃이 피며, 가을이 오면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여름에는 산천초목이 모다 우거져서 무성하게 자라는,이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푼도 돈을 들이지 아니하고 온전히 자기가 즐길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자기의 정원이 되더라.(買得風光不用錢)
복덕(福德)에 자성이 없는 도리가 무엇이냐?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좋은 생각도 일어났다가 꺼지고, 나쁜 생각도 일어났다 꺼지고,그 한 생각을 잘 먹어서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는 원인이 되고, 한 생각을 잘못 먹어서 악한 행동을 하면은 그것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요인이 되는 것이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보물로써 보시를 해서 인천의 복락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 근원을 더듬어 보면 ‘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여.
‘복덕의 자성이 원래 없는 도리는 어떻게 해서 깨닫느냐’하면 우리 한 생각 일어나는 그놈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할 때에 '한 생각이 남이 없는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남이 없는[無生] 이치를 깨닫게 되면 온 삼천대천세계는 바로 자기가 대자유(大自由)로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자기의 낙원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께서 그 많은 경전을 설하셨지만 참으로 부처님의 그 경전의 뜻을 올바르게 체달(體達)을 하고 보면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으는 그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여. 이 도리를 믿는 사람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도리가 믿어진 사람은 최상승법의 인연을 무량겁을 두고 심어온 그러한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있어.
숙세의 인연이 없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해 주어도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고,설사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해가 된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믿어지지를 않고 설사 알음알이로는 믿어져도 그것을 실천을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듣게만 되는 인연도 장하고, 듣고 믿게만 된 인연은 또 장하고, 믿고 실천을 하는 사람 그것도 쪼끔만 하다가 말아도 그것이 굉장한 깊은 인연의 소치지만,일생 동안을 목숨을 바쳐서 이 공부를 실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차는 칠보(七寶)로써 보시를 하는 그 공덕에 몇억만 배, 도대체가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 이 법보전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숙세의 깊은 인연으로 최상승법을 믿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무량겁(無量劫)의 도반이요, 전생의 선배가 금생에는 또 이렇게 위치가 바뀌어져 가지고 또 이렇게 만나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중생(衆生)은 깨닫지 못한 부처님이고, 부처님과 조사와 선지식은 깨달은 중생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요. 중생은 「깨닫지 못한 부처님」이고, 다시 「미(迷)한 부처님」이고, 「잠깐 미(迷)한 부처님」이고,
마치 보석이 잘못해서 쓰레기통에 빠지듯이, 쓰레기통에 빠져서 먼지가 묻어 가지고 또는 진흙밭에 그 몇천만 원이 나가는 그런 세계적인 그런 보물이 하수구에 빠졌다고 해서 그것이 보석이 아닌 건 절대로 아닌 것은 아니거든. 쓰레기통에 빠졌건 똥통에 빠졌건 그 보석 자체에는 아무 변함이 없어.
그렇듯이 중생의 몸뚱이 속에 중생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해서 부처님이 아닌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 중생은 '미(迷)한 부처님'이라 이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고.
부처님은 딴 사람이 아니여! 어디서 본래 부처님이 따로 있어 가지고 종자가 따로 있고, 혈통이 따로 있고, 어디가 그래 가지고 부처님이 어디서 나온 것이 아니라,중생이 깨달으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니까 내나 중생은 중생인데 '깨달은 중생'이다 이거거든.
그래서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설사 내가 망지(妄知)를 가지고 이렇게 법을 설한다고 해서 꼭 그 불에 내가 타져 죽어야 할 만한 무서운 죄가 있다고 만을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쪼끔 안심이 되기는 합니다.
내나 법문을 들은 여러분도 깨닫지를 못했을망정 여러분도 부처님이고, 설사 망지(妄知)로써 내가 설한다 하드라도 미(迷)한 부처님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이 부처님을 향해서 법을 설하고 있다’해도 맞는 말이 될 것이고, ‘중생이 중생을 향해서 법을 설하고 있다’고 해도 맞는 말이 될 것입니다.
요(要)는 나의 죄를 경감하게 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금생에는 내가 내 목숨을 바쳐서 여러분 앞에 말을 하고 있는 그러한 장면이 이 자리에 연출이 되고 있지만,이 다음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는 나를 위해서 여러분이 또 여러분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해서 자비를 베풀어질 때가 또 올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위치를 바꾸어 가며 하나는 앞에서 끌면 뒤에서는 밀면서 따라오고, 한 사람은 뒤에서 밀다가 앞에서 끌고, 앞에서 끌다가 뒤에서 밀면서 우리는 온 세상에 깨달은 중생만이 가득차는 세계가 되고,깨달은 중생이 가득찬 세계는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요 적광토(寂光土)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온 세계는 서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을 위해서 남을 죽이고 자기만을 살려고 하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때인 것입니다.
남을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 할 때에는 저 사람도 나를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고, 남을 죽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진리의 눈을 뜨기 위해서 자기 손에 든 횃불로 인해서 화상을 입는 희생자가 없다면, 어떻게 이 세계는 암흑세계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부처님은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시고 계십니다마는 그러한 원만구족한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 중생 눈에 보여 주시지만을 않습니다. 몇천 년만에, 몇억만 년만에 잠깐 모습을 보였다가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투시는 것입니다.
발심(發心)을 한 사람에게는 그 천백억 화신을 나투신 그러한 불보살(佛菩薩)의 모습을 도처에서 발견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발심을 하지 못한 사람은 코앞에 불보살이 나타나도 그것을 웬수로 보고 그것을 미워하고 몽둥이질을 가하고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불보살은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갖추시고 만을 태어나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나 명심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남편이 불보살의 화현(化現)일런지도 모르고, 시부모가 불보살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원수같이 생각했던 며느리나 자식이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가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자주 찾아와서 돈과 밥을 빌러오는 거지가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내가 여기서 설하고 있는 내가 불보살의 화현일는지도 모른다고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불보살의 모습을 가장을 해 가지고 마구니가 법을 설할 수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불보살은 마구니의 탈을 쓰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나타나시는 수가 있고, 마구니는 불보살의 탈을 쓰고 여러분을 지옥으로 마군(魔軍)이의 권속으로 끌어갈려고 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되,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바른 믿음을 갖지 아니하면 마구니를 불보살로 착각하기도 하고, 불보살을 마구니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에 바른 신심을 가지고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해야 그것을 가려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것을 마구니라고 보지만은 바른 신심을 가진 사람은 마구니가 아니라 불보살의 화신으로 탁! 가려내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은 중생의 망상을 떠나서 깨달음은 있지 않기 때문에, 불법은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야 하고 번뇌 망상을 떠나서 지혜는 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번뇌 망상을 버리고 지혜를 찾는 한은 영원히 지혜는 얻어지지 않고, 일상생활을 여의고 진리를 찾는 한에서는 진리는 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구니의 탈을 썼지마는 거기에서 불보살을 가려내듯이 번뇌(煩惱) 망상(妄想) 속에서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을 해야 거기에서 참다운 지혜는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망상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시끄러워서 참선을 못한다. 남편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처자권속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이러한 말은 최상승법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말입니다.
망상, 번뇌, 무명, 원수, 미움, 슬픔, 노여움 이것들은 그 속에 부처님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요,바로 그러한 것들이 전부가 부처님의 나라로 가는 하나하나의 디딤돌이라고 하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망상 일어나는 것도 걱정을 하지 말고 「이뭣고?」 화두를 들 것이고, 나를 정신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뵈인 그러한 미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미움으로써 미운 생각을 일으켜서 미워하지 말고, 빨리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 나간다면 그 미웠던 사람이 바로 불보살의 모습으로 변해질 것입니다.(35분32초~56분4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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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경(涅槃經)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고행을 하고 계셨는데, 그렇게 목숨을 바쳐서 고행정진을 하고 있건만은 도저히 깨달음의 눈은 열리지를 안 해.
그러자 어디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니라』 하는 그러헌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런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무상하고, 끊임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죽어가는 그러한 무상한 것들이다.」 그러한 내용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리니까 그런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올 만한 아무런 것도 발견을 할 수가 없어. 그래 이리저리 찾아보니까 머지않은 곳에 뿔이 달리고 어금니가 사자처럼 날카로운 사람을 생으로 잡어서 씹어 먹고 생피를 빨어 먹는 나찰귀신(羅刹鬼神)이 입을 벌리고 눈을 희번덕이면서 서있다 그말이여.
『이제 곧 그 노래가 네가 읊은 노래냐?』하고 물어봤습니다. 나찰귀신은 시치미를 뚝 따며 『무슨 소리를 합니까? 나는 지금 배가 고파서 죽겠습니다.』
『아니다. 너 밖에는 그 말을 할 아무런 사람이 없는데 네 입에서 그 노랫소리가 나왔다면 그 노래의 후반부가 있을 테니 그 후반부의 노래를 나에게 일러다오. 그리고서 내 몸을 잡어먹어라.』
나찰귀신은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 생멸이 다하면 생멸심이 끊어지면 바로 그것이 적멸(寂滅)의 대안락(大安樂)이니라.』 그러한 노래를 읊었습니다.거기에서 부처님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했습니다.
당신만 알고 나찰귀신의 밥이 되어버리면 다른 많은 중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그 노래를 나무에다가 바위에다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로써 거기에다가 글씨를 썼습니다.
그 노래를 쓰고서 나무 위에서 나찰귀신을 향해서 몸을 던졌습니다.그 찰나에 온 천지에는 하늘나라의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나찰귀신은 제석천왕(帝釋天王)의 거룩한 몸으로 변화가 되어가지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부처님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모셨습니다.
목숨을 바쳐서 참다운 신심으로 공부를 해 나가면 나찰귀신에게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그러한 사욕(私慾)으로 불법을 믿으면 살아있는 부처님을 친견하고서도 아무 이익을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언제나 귀가 따갑게 거듭거듭 말씀을 드린 바지만,중생의 번뇌 망상, 인간의 생로병사 속에 대해탈도(大解脫道)는 조끔도 숨김없이 열려져 있다고 하는 사실, 어느 망상, 어느 번뇌 한마디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길은 있다고 하는 사실에 명심을 하고, 일어나는 한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화두를 들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백천만 억의 불보살이 출현한다 하더라도 중생의 번뇌를 여의고 부처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게송) ‘보만삼천급대천~’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야부 게송 참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이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가 지은 복(福)으로, 복을 지은 만큼 쓰면 다함이 있다. *자성(自性) ; 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부처님 : [범] Buddha 음을 따라 한자로 불타(佛陀)•부도(浮圖•浮屠)•부타(浮陀)•발타(勃陀)•몰타(沒駄) 등으로 쓰고, 줄여서 불(佛)이라고만 하는데, '깨친다'는 말이다. '부처님'이라 함은 '깨친 어른(覺者)'이란 뜻이다。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는 이를 말함이니,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망지(妄知) ; 중생의 망령(妄靈)된 알음알이. *요(要) ; [주로 ‘요는’의 꼴로 쓰여]사물의 핵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이나 골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住] 정토(淨土).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의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 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마군(魔軍) ; ①불도(佛道)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온갖 악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석가모니의 득도를 방해한 악마의 군사. ③일이 잘 풀리지 않도록 훼방을 놓는 무리.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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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경(涅槃經) : [범] Mahaparinirvana-sutra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어서, 소승부에 속한 것이 세 가지나 되고, 대승부에 속한 것이 남본(南本)과 북본(北本)이 있다. 보통으로 말하는 것은 북본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인데, 13품 40권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석가여래께서 팔십 년의 한 세상을 마칠 때의 설법과 자세한 사연이 적혀 있으며, 특히 부처님의 금강신(金剛身)은 늘 계시어서(常住不滅) 죽음이 없으며, 부처님의 참 수명은 끝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소승의 <열반경>은 주로 역사적으로 기록한 것으로써, 입멸 전후에 걸쳐 유행(遊行) • 발병(發病) • 순타(純陀)의 공양 • 최후의 유훈 • 멸후의 비탄 • 사리 팔분(舍利八分)등을 주요한 것으로 하고, 대승의 <열반경>은 교리를 주로 하여, 열반이란 사실에 불타론(佛陀論)의 종국과 불교의 이상을 말하였다.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시치미를 떼다[따다] ; (사람이) 매를 훔친 사람이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기 매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하고도 짐짓 하지 않은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하다. '시치미'는 매의 주인를 밝히기 위해 주소를 적어서 매의 꽁지 털 속에 매어 둔 네모난 뿔을 이르는 말.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그수미산정상에있는도리천의왕으로,사천왕(四天王)과32신(神)을통솔하면서불법(佛法)과불제자를보호한다.도리천에는33신이있는데,제석은그중앙에있는선견성(善見城)안의수승전(殊勝殿)이라는궁전에살고,나머지32신은그성(城)밖의궁전에서각각산다.
*(게송) ‘도장칠보시삼천~’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예장종경 게송 참고.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204) (게송)춘래동견방초록~ / 영지(靈知) 진지(眞知) 망지(妄知) / 원장(院長)이라 하는 굴레 / 불법(佛法)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〇참선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량분별을 통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팔만대장경을 다 외우고 해설을 하고 설할 줄 안다 하드라도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달은 것이 아니다. 〇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아무리 공안을 따져서 그럴듯한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망지(妄知)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그 자체가 깨달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져 버려.
〇말로써 공부를 할 수가 있고, 말로써 가르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육도(六道)를 윤회하고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〇진리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그 길을 안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여러분은 또한 그것을 듣기 위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꽃다운 풀이 푸르른 것을 모두가 다 같이 볼 수가 있어. 추지동견황엽조(秋至同見黃葉凋)로구나. 가을이 오면 이파리가 누렇게 단풍이 져서 시들은 것을 누구라도 다 마찬가지로 볼 수가 있다 그말이여.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 눈에도 다 똑같다. 깨달은 사람이 봐도 그렇고 깨닫지 못한 사람이 봐도 그렇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봐도 그렇고,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도 그렇고,누가 봐도 봄에는 파란 풀이 돋아난 것을 볼 수가 있고, 가을이 오면 모든 이파리가 누렇게 단풍이 져서 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더라.
불지소이이어인(佛之所以異於人)은, 그런데 부처님은 우리 중생(衆生)과 무엇이 다르냐? 부처님과 우리 중생은 어떠한 점에서 우리 중생과 부처님은 다르냐?
깨달은 부처님은 중생과 무엇이 다르냐 하면 치연작용무기종(熾然作用無其蹤)이여, 치연(熾然)이 작용을 하고 있으되 그 자취가 없어.
중생은 무얼 보면 보는 데에 끄달리고, 무엇을 들으면 듣는 데에 충격을 받고, 무엇을 얻으면 얻는 데에 마음이 흔들리고, 무엇을 잃으면 잃는 데에 실망을 하고, 얻었다고 기뻐하고, 잃었다고 슬퍼하고,
이 세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잠시도 고대로 있는 것은 없고 끊임없이 변해 가고 생겨났다가 변해져서 또 사라지고, 생겨났다 변해가 가지고 사라지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러는데, 중생은 그러한 경계(境界)를 당해서, 그 경계를 자기가 주재(主宰)를 하지를 못하고,그 경계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경계에 따라서 끊임없이 끌려다니고, 얽히고 설켜서 희로애락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취를 남기면서 끌려다닌다 그말이여.
그런데 부처님은 자유자재한 육신통(六神通)으로써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치연하게 치열(熾烈)하게 작용을 해.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고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설법을 하셔.그렇게 치열하게 작용을 하고 계시되, 조금도 그 자취가 없는 점이 중생과 다르더라.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 ‘참선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량분별을 통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팔만대장경을 아무리 육두로 다 외우고 해설을 하고 설할 줄 안다 하드라도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달은 것이 아니다. 참선을 할라면은 사량분별로 무엇을 알려고 하지를 말고, 다못 말 길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져서 더듬어 들어가서 아는 그러한 것이 없이, 다맛 대의단(大疑團)으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관조(觀照)해야 한다.’
그러한 요지의 법문이 있었습니다마는 경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천상 그 경에 쓰여 있는 말을 분석하고 따져서 대관절 무슨 뜻인가를 해석을 하고 배우고 가르키고 연구하고, 불가불 강원(講院)에 가면 그렇게 공부를 하기 마련이지만, 참선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참선(參禪)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니여. 경의 뜻도 참으로 옳게 터득을 하려면 마음을 관조해서 그 말 뒤에 있는 말 없는 뜻을 봐야 하거든, 하물며 참선은 처음부터 말로써 공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깨달은 부처님의 경계에도 ‘알 지(知)’자 '안다'고 할 수가 있고, 이치를 깨달은 선지식도 '안다'고 할 수가 있고, 우리 범부 중생의 번뇌 망념으로 아는 것도 그것도 일종의 '안다'고 할 수가 있는데,
부처님이 아시는 것은 영지(靈知)라 그러거든. 영지(靈知). 신령스럽게 아는 거. 영지는 중생의 분별로써는 그 영지의 경계를 뭐라고 짐작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여.부처님 경지에 가 봐야 부처님의 그 영지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 그 경계에 이르지 못하고서는 영지의 그 경계를 짐작을 할 수가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 경지는 아무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되, 그 자취가 없는 것이여. 자취가 없이 보시기 때문에 그건 영지(靈知)라 그러거든.
도인(道人)이 깨달은 경지는 어떠냐? 그것은 진지(眞知)라. ‘참 진(眞)’자 진지(眞知)라 그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진지도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남이 없는 도리, 무생(無生)의 법을 보아야 그래야 그 진지(眞知)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여.
중생이 번뇌 망상으로 따져서 짐작하고 느끼고 또 그것을 설명해 줄 수도 있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터득을 하고 이러한 것은 모두가 다 망지(妄知)에 속한 것이다 그말이여. 망령(妄靈)된 알음알이에 속한다 그말이여.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나 금강경과 같은 그러한 대승경전에 쓰여 있는 부처님 말씀이라 할지라도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분석을 하고 해석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라 할지라도 망지(妄知)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경전의 말씀뿐만이 아니라 1700 조사 공안(祖師公案)도—이 조사 공안은 용궁(龍宮)에 있는 장경(藏經)에도 없는 교외별전(敎外別傳) 소식이지만, 그 교외별전의 최상승법, 이 공안도 중생의 알음알이로 따져서 『아! 이것이로구나』 하고 알음알이를 붙이면 알음알이로 따지면 공안이 바로, 최상승법이 찰나 간에 망지(妄知)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에 있어서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알음알이로 공안을 따지는 거. 참선을 하다가 알음알이로 어떠한 결론을 얻는 거—얻으려고 하고 또 얻는 것은 모두가 다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들려고 하는 거여. 그건 아무리 삶아 봤자 모래지 그것이 밥으로 변하는 법은 없어.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아무리 공안을 따져서 그럴듯한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망지(妄知)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져 버려.그 자체가 깨달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깨달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버린 거다 그말이여.
공안을 중생의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묻는데, 「마삼근(麻三斤)이다」 「마삼근이니라」 이렇게 조사(祖師)가 대답을 하셨는데. 「어째서 부처님을 마삼근이라 했는고?」 그것을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다가 탁! 속으로 어떠한 결론을 얻었어.
『육도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전부가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체(法身體)다』 그렇게 경전에 분명히 쓰여 있다 그말이야.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다 비로자나 법신인데 어찌 삼[麻]이라고 해서 부처가 아닐까보냐? 그래서 저 삼[麻]도 바로 부처다.」 이러한 식으로 공안을 따져 가지고 자기도 알았다. 공안을 타파했다.
이렇게 결론을 얻었다면 어찌 그것을 깨달음을 얻었다 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것은 강사(講師)의 지견(知見)도 못되고, 그러한 식으로 공안을 따진다면 무엇을 처음부터서 ‘하늘 천(天)’ ‘따 지(地)’ 배우듯이 1700 공안을 놓고 다 그런 식으로 해서 배워 버리면 하나도 힘 쓸 것도 없고 간단할 일인데,뭐하러 그렇게 목숨 바쳐서 고행난행(苦行難行)을 할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이뭣고 화두를 하는데, 아무리 「이뭣고?」 「이뭣고?」 해 봐도 알 수가 없고, 애를 쓰다 보니까 턱!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자꾸 하다 보니까, 「이뭣고?」한 놈이 바로 이놈이더라! 그렇게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 하면, 그거 참 생각해보면 그럴싸하거든. 「이뭣고?」한 놈이 이놈이지, 이놈 말고 무엇이겠느냐 그말이여.
밥 먹고 옷 입은 놈이 바로 이놈이요. 육도윤회를 하는 놈도 바로 지금 「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요.성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놈도 바로 이놈이요. 확철대오해서 깨닫는 놈도 바로 이놈이요. 육도윤회를 하는 놈도 바로 이놈이다. 이놈을 내놓고 무엇이 또 있겠느냐? 그러니 여태 내가 「이뭣고?」「이뭣고?」했는데 바로 「이뭣고?」하는 이놈이더라.
참, 그러한 것을 갖다가 망지(妄知)라 하는 것이여. 망령된 중생의 알음알이다 그거여.자기 딴은 애써서 했지만 ‘이놈이다’ 할 때는 경전에 있는 말씀과 딱 부합이 되어도, 그것은 벌써 이놈이라 할 때는 그것은 망지(妄知)다 그말이여.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도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에 떨어지면 찰나 간에 중생이요, 찰나 간에 윤회에 떨어져버린 것인데, 망령된 소견으로 그러한 결론을 얻었다면 그건 물어 볼 것도 없어.그것은 참선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여.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내가 설(說)한 바가 있느냐? 설한 바가 있다고 하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고 설한 바가 없다 하면은 법을 비방한 것이 된다』 그러한 말씀이 있습니다.(처음~19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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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山僧)이 오늘 이렇게 입을 벌려서 영지(靈知)와 진지(眞知)와 망지(妄知)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부처님은 설한 바 없이 설하시고, 치연(熾然)히 작용을 하시되 자취가 없으시건만,
산승은 영지(靈知)도 얻지 못하고 진지(眞知)도 얻지 못한, 범부 중생으로 아무리 좋은 부처님의 말씀을 설하고, 아무리 조사의 법문을 고대로 설한다 하더라고 나 자신이 망령된 알음알이를 벗어나지를 못했어.
‘어찌 망령된 알음알이로 법을 설해 가지고 뭇 중생의 눈을 멀리고 스스로 구업(口業)을 짓느냐?’ 이렇게 책망을 하신다면 나는 입을 막고 고개를 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망령된 알음알이로 법을 설하는 것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눈먼 장님이 훨훨 타는 횃불을 들고 대낮에 길거리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불을 밝혀 줄려고 하는 거와 같다’ 이렇게 옛날 조사(祖師) 스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훨훨 타는 횃불을 밤에 가지고 다닌다면 혹 다른 사람들이 그 횃불의 광명을 받아서 그 밝음을 이용해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아니하고 바로 길을 찾아가겠지만, 태양이 환히 빛나고 있는 대낮에 횃불을 들고 돌아댕겨봤자 그 밝음은 아무 소용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밝음을 주지를 못하고,오래오래 그 횃불을 가지고 돌아다니면 결국은 자기의 손과 몸뚱이에 화상을 입고 말 것이다.
그래서 달마스님도 그 혈맥론(血脈論)에 말씀을 하시기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법을 설하면 법 설한 사람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요.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사람도 그 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한 사람과 마찬가지다.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하는 사람은 마왕(魔王)이요.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것은 바로 마왕의 백성이다」 이렇게 무서운 법문을 하셨습니다.
산승이 깨닫지 못한 범승(凡僧)으로서 감히 입을 벌린다고 하는 것은 내가 마왕이 되고 여러분을 마왕의 백성을 만드는 죄과(罪過)가 될 것이고,내 손에 쥐었던 횃불이 내 손을 불사르고, 내 몸을 불사르고, 그 불이 잘못해서 여러분에게 번지게 되면 여러분이 또한 큰 화상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산승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면서 어째서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이렇게 다달이 법회를 갖고 있느냐?
산승이 전생에 죄가 많고 업이 두터워서 피할라야 피할 수 없는 굴레를 쓰게 되었어. 출가해 가지고 자신의 생사 문제가 급하고 급하거늘, 어느 겨를에 입을 벌릴 그러한 여유가 없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몸을 뺄라야 뺄 수 없이 되었습니다.
노예가 마치 자기 마음으로는 추호도 하기도 싫은 그러한 중노동을 쇠고랑을 찬 채 가혹한 매질을 당하면서 피를 흘리면서 무서운 노동을 강요 당하듯이 '용화선원 원장(院長)'이라 하는 굴레를 조실 스님의 열반시의 명령에 의해서 피할 수 없이 이러한 굴레를 쓰고 법회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불이 내 몸에 번지기 전에 여러분은—그 조그만한 반딧불만도 못한 그런 조그만 불이지만, 여러분은 그 불이 꺼지기 전에, 또 내 몸을 태우기 전에, 또 그 불이 여러분의 몸에 번지기 전에 그 밝은 것만을 빨리 잘 이용을 해서 바른 길을 찾아 가시기를 바라는 그러한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 소원은 설사 그 불이 내 몸에 덩거서 내가 화상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에게 그 광명이 비춰져서 여러분의 앞길에 바른 법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오직 그 한 생각 뿐입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발심을 하고 참으로 정법을 믿고 자비가 있으시다면 그 불이 내 몸에 덩구지 않도록 그것을 잘 보살펴 주시고, 그 불은 오래오래만 가지고 있으면은 횃불이 타다가 결국은 불똥이 나한테 튀길 것은 분명한 것이니까 빨리 여러분이 시간을 아껴서 정말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정진해서 내 손에 있던 횃불을 여러분이 달라들어서 그 불을 빼앗아 가시든지, 그 불을 빼앗아서 위험하지 아니한 곳에 버려 주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피차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을 때 숙세(宿世)의 깊은 인연으로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 태어났고, 같은 종교를 믿게 되었고, 같은 법당에서 이렇게 다달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숙세의 깊은 인연이 아니면 도저히 한 시대에 태어날 수도 없고, 설사 한 시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만나지들 못하고, 또 한 나라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에 태어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같은 불법에 만나서 이렇게 서로 생사 없는 진리를 향해서 말을 하고 듣게 된 그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써 표현 할 수가 없는 부모자식 간의 인연보다도 수백만 배의 깊은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내 손으로 들고 있는 횃불에 의해서 타서 죽게 되는 것을 여러분은 강 건너 불을 보듯이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여러분이 어두워서 구렁텅이에 빠지고, 물에 빠지고, 허방에 빠진 것을 나도 또한 보고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진지(眞知)와 영지(靈知)를 조사와 부처님처럼 그런 '참된 지(眞知)'와 '신령스런 지(靈知)'를 얻지 못한 몸이면서 나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가 죽을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부처님과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이렇게 여러분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알음알이를 조장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고, 알음알이를 얻는 데에 불법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가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말로써 공부를 할 수가 있고, 말로써 가르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육도(六道)를 윤회하고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써는 이 영지(靈知)와 진지(眞知)를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고 사량 분별심으로 들어서 그것을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불보살과 선지식과 모든 스님들이 ‘말로써 설할 수가 없다’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우리 같은 그러한 부처님과 같은 확철대오를 얻지 못한 범승이라 해서 법회를 갖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 몸만을 생각하고 입을 다물고 일생을 자기만을 위해서 정진을 하고 있다면, 불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 아직은 불법의 어떠한 점이 좋다고 하는 것에 눈뜨지 못한 사람, 어떤 것이 바른 불법인가에 대해서 분간을 못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누가 말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원래 '참진리'는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참된 말씀은 입으로 좇아 나오지 않는 것이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부처님은 그 많은 법을 설하셨건만 한 말씀도 설하신 바가 없다’ ‘무량중생을 제도하시되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는 깊이 마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말로써 설할 수가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입을 벌려서 부처님은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을 설하셨고,선문(禪門)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불립문자(不立文字)하고 직지인심(直指人心)하야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 하시면서도 수없는 조사의 어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입으로 설할 수가 없지만 목숨을 바쳐서 설할 수 밖에는 없고,중생의 사량분별로 귀를 통해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지만 목숨 바쳐서 법문을 들어야 하고, 들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자기에게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다 갖춰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와 우리 중생과의 관계입니다.
진리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그 길을 안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여러분은 또한 그것을 듣기 위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현을 하셔도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부처님도 탄생을 하셨고, 모든 보살님과 모든 조사도 그렇게 해서 탄생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들도 그만큼 내게 갖춰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때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19분10초~35분31초)
*(게송) ‘춘래동견방초록~’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부처님 : [범] Buddha 음을 따라 한자로 불타(佛陀)•부도(浮圖•浮屠)•부타(浮陀)•발타(勃陀)•몰타(沒駄) 등으로 쓰고, 줄여서 불(佛)이라고만 하는데, '깨친다'는 말이다. '부처님'이라 함은 '깨친 어른(覺者)'이란 뜻이다。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는 이를 말함이니,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결(結)·박(縛)·전(纏)·취(取)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치(熾)는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함’의 뜻. 연(然)은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주재(主宰 주인 주,다스릴 재) ; ①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②주재자(主宰者,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하는 사람).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치열(熾烈 성할 채,세찰 렬) ; 기세나 세력 등이 불길같이 맹렬함.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고행난행(苦行難行) ; 난행고행(難行苦行).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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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범승(凡僧) ; 평범한 스님. *죄과(罪過 허물 죄,허물 과) ; 죄가 될 만한 과실이나 허물. *덩그다 ; '불이 붙다'의 사투리. *어피차(於彼此) ; 어차피(於此彼). 이렇거나 저렇거나 귀결되는 바. *숙세(宿世 지날 숙,세상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〇불교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막론하고 화두를 타서 ‘이뭣고?’를 하면, 끝없이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윤회할 것을 일념(一念) 간에 그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〇활구참선을 믿고,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가도, 염라대왕이 그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것입니다.
〇왜 그러냐? 활구참선을 한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라대왕도 합장 배례를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〇불도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하나니,계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송담스님(No.770) - 2014(갑오)년 동안거결제 및 화두 불명 수계식 (용770)
약인(若人)이 정좌일수유(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다. 만약 사람이 잠깐 동안 정좌를 하면,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칠보탑을 조성해 모신 것보다도 그 공덕이 수승(殊勝)하다.
왜냐하면 보탑(寶塔)은 필경쇄위진(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一念精進)은 성정각(成正覺)이다. 보탑을 칠보로 해서 잘 조성을 해서 모셨다 하더라도 천 년, 만 년 가면 지진이 일어나고 그래 가지고 언젠가는 탑이 부서져서 먼지가 될 때가 있고 말지만은 ‘한 생각’ 정진을 하면 그 정진하는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정각(正覺), 바른 깨달음을 얻으면 그것이 성불한 것이다 그말이지.
오늘 갑오년 시월 동안거 결제날을 기해서 이 자리에는 오늘 화두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고, 또 오계(五戒)를 받는 그런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798명의 스님과 일반 신도들이 화두 불명 십선계를 받기 위해서 이 자리에 경건한 마음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특히 유아, 어린이들 7~8, 4~5살 먹은 어린이까지도 이 자리에 모두 참석을 했습니다. 연세가 많으나, 애기처럼 나이가 아직 말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어린 애기거나, 남녀노소를 막론(莫論)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육도윤회(六途輪廻)로부터서 해탈을 해 가지고 정각을 이룰 수 있는 확실한 종자(種子)를 심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일반 종교와 무엇이 다르냐?’하면은 (일반) 종교는 교주를 신봉하고 기도를 하고 해서 천상이나 모다 그런데 가거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목적으로 많이 신앙을 하고 있으나, 불교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막론하고, 화두를 타서 ‘이뭣고?’를 하면 끝없이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윤회할 것을 일념(一念) 간에 그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해탈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解脫)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수 있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 아는 우리의 심성(心性)이 있는데, 그 심성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일생 동안을 살고, 일생을 살다가 다시 또 몸을 바꿔 나서 업에 따라서 천상에도 태어나고 인간으로도 태어나고 죄를 지으면 축생도 되고 지옥도 가지만은 그 근본의 마음자리는 어디를 가나 그것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쓰고 있고, 그것에 의해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것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이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눈으로 무엇을 볼 때도 ‘이뭣고?’, 귀로 무슨 말을 들을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프거나 기쁠 때도 ‘이뭣고?’ 그 화두 하나를 챙김으로 해서 육도법계를 윤회 속에 있으면서 해탈하는 길에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이 활구참선은 얼굴이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전혀 그것이 상관이 없습니다. 철저한 신심(信心)으로 ‘이뭣고?’ 이 한마디는 흙탕물 속에 잠겨 있는 보배를 건져서 냉수에다 씻으면 거기서 빛이 나듯이, 그 동안에는 육도윤회를 무량겁을 해왔지만은 오늘 이 인연과 이 기회를 발판으로 해서 철저히 최상승법을 믿고 ‘이뭣고?’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오늘부터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간에 슬프거나 기쁘거나 속이 상하거나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로써 바로 윤회로부터서 해탈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여, 지금 산승(山僧)의 말을 듣고 이 시간 이후로 열심히 ‘이뭣고?’를 하는 활구참선객은,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리요, 누가 그 사람과 나란히 어깨를 할 수가 있겠는가?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이 세상에 인연이 다해서 살 만큼 살다가 결국 몸을 바꾸게 되는데, 어디로 가냐하면은 — 일반적으로 말할 때 저승에 간다고 그러는데 그것이 자기가 지은 인연 따라서, 업에 따라서 육도(六道) 어느 곳엔가는 태어나는데.
이 활구참선을 믿고, 이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떠억 끌려가도, 염라대왕이 그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이것입니다.
염라대왕은 살아서 천자(天子)를 했거나, 대통령을 했거나, 만석꾼 부자였거나, 장군이거나 누구라도 염라대왕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은 어떠한 사람, 어떤 무서운 권리가 있는 사람이 오더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큰소리를 치고, 지은 업(業)을 심판을 하는데, 활구참선을 하다가 온 사람은 염라대왕이 그 사람이 잘살았거나,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상관이 없이 활구참선을 한 사람이 오면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합장 배례(拜禮)를 합니다.
왜 그러냐? 활구참선을 한 사람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라대왕도 합장 배례를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산승의 이 말을 ‘설사 그럴 수가 있을까?’ 그렇게 혹 의심을 하고, 확실히 안 믿어지는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나 이것은 무엇 때문에 내가 거짓말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이 게송(偈頌)은 과거에 확철대오한 도인(道人)이 읊어 논 게송인 것입니다. 확철대오를 한 도인의 이 게송은 진리에 계합하는 게송이기 때문에 산승도 이 게송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여러분께 읊어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분석한 것도 아니고 이론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속이 상할 때에도 ‘이 속상하는 이놈이 무엇인가?’ 슬플 때에도 슬픈 데로 쫓아가지 않고 ‘이 슬퍼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면 보는 데로 쫓아가고, 귀로 무슨 말을 들으면 듣는 그리 쫓아가는데,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그리 가지 않고,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귀로 좋은 말이나 나쁜 말을 듣더라도 그리 쫓아가지 아니하고, 그런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기 때문에,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희노애락(喜怒哀樂),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서 그것이 바로 자기로 돌아오는 수도장(修道場)이요, 우리 상대하는 모든 것들은 수도장이고, 모든 소리는 법문(法門)이고, 만나는 사람은 나로 하여금 자성불(自性佛)로 돌아오게 하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부처님인 것입니다.
활구참선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살더라도 이 사바세계가 육도윤회 생사 속에의 그런 불구덩이가 아니라 성불로 돌아가는 발판이요, 수도장이요, 부처님이 살아계시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을 믿고 열심히 앞으로 참선을 해 나갈 사람은 절차상(節次上)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처음~19분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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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선계의 첫째는 불살생(不殺生)이니,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앉아 있는 분은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합장을 하십시오.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는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不偸盜) 셋째는 사음을 하지 말라.(不邪淫) 넷째는 망어, 거짓말을 하지 마라.(不妄語) 다섯째는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不綺語) 여섯째는 두 가지 말을 하지 마라.(不兩舌) 일곱째는 악한 욕을 하지 마라.(不惡口) 여덟째는 탐욕심을 내지 말라.(不貪慾) 아홉째는 성을 내지 마라.(不瞋恚) 열번째는 사견을 내지 말라.(不邪見)
어째서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냐 하면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이겁니다. 산 목숨을 죽이면, 나의 자비(慈悲)의 종자(種子)가 있는데 자비 종자를 손상하지 때문에 살생을 하지 말라.
두번째, 왜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하냐 하면은 복덕(福德) 종자를 손상하기 때문에. 복덕이 있어야 살아갈 수가 있는데, 잘살 수가 있는데 복덕 종자를 상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하지 말라.
자기 남편, 자기 아내가 아닌 사람과 관계를 하지 말라. 사음(邪淫)을 하면은 집안의 평화가 깨지게 되고, 자기 몸을 더럽히게 되고 그러니 사음을 하지 마라.
네번째, 거짓말을 하지 마라. 거짓말을 하면은 진실(眞實) 종자를 손상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 거짓말을 해 버릇하면은 남이 자기를 인격적으로 믿지를 않고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 마라.
다섯째,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마라.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게 되면은 그것도 수행자로서의 인격을 손상하고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사람 말을 믿지를 않는 게야.
이간(離間)하는 말을 하지 마라. 이간질을 하면은 여기 가서 이 말하고, 저 가서 저 말하고, 두 가지 말로 이랬다저랬다 하면은 그것도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일곱째는 욕(辱)을 하지 마라. ‘저런 죽일 놈’ 입에 못 담을 욕을 부애가 나면 욕을 하는데, 욕을 하면은 그 욕이 상대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에게 욕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가 자기한테 욕을 하는 거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마라.
부애가 나면은 바로 부애 난 그 마음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를 해야지, 욕을 해서 — 입으로 욕을 하면 자기 입을 더럽히게 되고 자기 인격을 손상하기 때문에 욕을 하지 마라.
여덟번째, 탐욕심을 내지 마라. 남의 것을 욕심을 내고 탐욕을 내 가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착취를 하면은 그 탐욕심으로 인해서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고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에 탐욕심을 내지 마라.
아홉번째, 진심(瞋心)을 내지 마라. 우리 마음에 조금 안 맞으면 성을 내는데, 성을 낸다고 해서 아무도 그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일이라, 성을 내면은 맨 처음 자기가 해로운 것이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열번째, 사견(邪見)을 내지 마라.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가지면, 그 첫번째가 무엇이냐 하면은 인과(因果)를 안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법에 의해서 운영이 되어 가는데, 사견을 낸 사람은 인과를 안 믿기 때문에 어리석은 말, 어리석은 생각, 어리석은 행동을 해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해롭게 하고, 자기 인격을 손상을 하고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는 것입니다.
이상 설한 열 가지 계(戒)는 불도(佛道)를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자기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10가지 계를 지켜야 하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예!’
이 열 가지 계는 마땅히 우리가 지켜야 할 바니 잘 지키겠는가? (예!)
이상 설한 10가지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는 부처님을 믿고, 도를 닦고, 성불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십선계를 지켜야 하니 잘 지키겠는가? (예!)
불도 수행을 성취하고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닦아야 하나니, 계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잠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십악 참회(十惡懺悔)를 하고 또 연비(燃臂)를 하고, 참회진언을 외우면서 연비를 해서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지어온 모든 죄는 다 봄눈처럼 다 소멸이 되었습니다. 이 청정한 몸으로, 청정한 마음으로 앞으로 우리는 일체처 일체시에서 언제 어디서라도 항상 ‘이뭣고?’로써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속이 상할 때에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아가면 자기가 어떠한 처지에 있거나 간에 바로 그때, 그 자리가 바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선방이 되는 것이고, 바로 부처님 세계로 가는 길이니, 우리는 오늘부터 정말 참되게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인생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자기로 돌아오는 수행의 길을 알았고, 그것을 과거에 지은 것은 참회하고 앞으로 잘 이것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서약을 하고 연비를 받았으니, 우리는 비록 이 몸뚱이는 이만큼 늙었지만은 우리의 마음은 갓난애기처럼 깨끗해졌습니다. 그 깨끗한 마음으로 앞으로 열심히 ‘이뭣고?’만 해가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산승은 여러분의 그 진실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열심히 최상승법에 의해서 잘 ‘이뭣고?’를 하겠다고 맹세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하고 여러분의 그런 진실한 마음을 봄으로 해서 비록 내가 늙었지만은 저도 오늘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여러분...(박수)
온포사아귀(溫飽思餓鬼)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옷을 입어서 그럴 때에는 거기에 빠지지 말고 아귀도(餓鬼道)에 빠지는 중생들을 생각해 봐라. 나도 이 더운 것에 빠지고 배불리 맛있게 먹는 데에만 재미를 붙이고 살다 보면은 아귀도에 틀림없이 가게 될 것이다.
몸이 편안할 때에는 그 편안한 데에 빠져서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지옥 중생들을 생각해 봐라. 지옥 중생이 어떻게 해서 지옥에 갔냐 하면은 배부르고 뜨시고 몸이 편안한 데에만 빠져 가지고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가서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생참괴심(須生慚愧心)하야, 내가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살아온 것에 대해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간에 부지런히 ‘이뭣고?’를 하라.
마지막으로 이런 고조사(古祖師)의 게송을 읊고서 자리에서 내려가고자 하는데, 여러분을 만남 김에 두서없이 여러가지 말을 했으나 앞으로 더 많은 말씀을 하고 싶으나 시간 관계로 입을 닫고, 미처 못한 간절한 뜻은 이 주장자를 한번 내림으로써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19분7초~40분3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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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장(章)에서 ‘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게송) ‘활구참선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2권) '贈熙長老'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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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복덕(福德) ; ①착하고 어진 행실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행복과 이익. ②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오랜 세월(百劫) 쌓인 죄업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한 생각에 문득 사라지니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불(火)이 마른 풀을 태우듯이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모두 멸하여 남김없이 사라지리
*참회게(懺悔偈)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이제까지 제가 지어온 모든 악업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모두가 비롯됨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았네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었으니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제가 지금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참회진언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란 스스로 성품이 없어 마음을 좇아 일어나니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마음이 멸하면 죄도 또한 사라지니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죄와 마음 멸하여 모두가 공해지면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이것을 참된 참회라 이름하리라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제가 지금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즉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의 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탁월하다는 뜻)계학·증상심학(心學)·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계·정·혜라고도 한다. ①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게송) ‘삼계진화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1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사대(四大) ; ① 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게송) ‘온포사아귀~’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1권) '寄應禪子兼示神秀沙彌—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참고.
§(160) (게송)귀래좌허실~ /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 (게송)월수벽산전~.
〇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육도윤회를 하고 갖은 업을 짓고 고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정법을 만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고 잡드리 해가면 결국은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고 말더라.
〇한 생각 잘못 먹으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한 생각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바로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〇우리는 죄 많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벼슬을 허건 아니허건, 돈이 많건 적건, 얼굴이 잘생기건 못생기건, 지식이 있고 없건, 나이가 많고 적건, 무슨 직업을 가졌건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최상승 불자(佛子)인 것입니다.
귀래좌허실(歸來坐虛室)하니, 산으로 들로 가시밭길로 물로 동서사방으로 타향 객지(客地)로 돌아치다가 집으로 돌아와 텅 빈방에 앉았으니, 석양(夕陽)은 재오서(在吾西)로구나. 석양은, 저 서산 너머로 해는 여울여울 넘어가고 있구나.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는 것이 바로 고향을 떠나서 타관(他官) 객지로 갖은 피눈물 나는 고생을 하면서 돌아다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겨우 금생에 불법을 만나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돌아왔는데 해는 서쪽에 서산에 걸쳐 있구나.
벌써 나이 들고 몸은 늙어서 기운이 없고, 생각뿐이요 공부를 할려고 하면 자꾸 허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쑤시고 몸이 말을 안 듣고 자꾸 졸리고 온갖 망상은 퍼일어나고,
그러나 수류원입해(水流元入海)요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이여. 물은 흘러서 흘러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고, 아무리 그 달이 천 개, 만 개의 물에 달이 떨어져 비추되 원래 그 달은 하늘을 여의고 떨어진 것이 아니더라.
아무리 죄가 많고 아무리 육도윤회를 하고 갖은 업을 짓고 고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정법을 만나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團束)하고 잡드리 해가면 결국은 깨달음의 바다에 들어가고 말더라.
아무리 깊은 산중에서 조그마한 물줄기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흘르고 흘르면 차츰 강물에 도달하고 작은 강에서 큰 강으로, 큰 강에서 마침내는 바다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여.
월낙불리천(月落不離天). 하늘에 비친 달이 천 개, 만 개의 물에 비춘다 해서 그 하늘의 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요, 작아지는 것도 아니요, 광명이 줄어든 것도 아니여. 언제나 하늘에 있는 달은 고대로 있는 것이여.
달이 설사 떨어져 안 보인다 하더라도 하늘에서 떨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눈에서 보이지 아니할 따름인 것처럼, 중생의 육도윤회—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는 그 번뇌망상 속에서도 조금도 물들지 아니하고 변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여.
우리는 그 도리를 보고 깨달아 증득하기 위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허수히 보내지 말고, 허수히 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할 따름인 것입니다.
1초 동안 화두를 들면 1초 동안에 부처님이다. 1분 동안 화두를 단속(團束)해서 화두를 들면 1분 동안에 성불(成佛)이다. 하루를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하고 정진을 하면 하루 동안에 성불이다.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한 생각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바로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기도 회향날입니다. 기도 회향날이기 때문에 아까 녹음 법문을 통해서 조실스님의 순수한 최상승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업장(業障)을 소멸할 수가 없고, 최상승법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가장 빨리 소원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거기에 만족할 것도 못되고, 그걸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마음 상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큰 호랑이나 코끼리를 잡으러 가는 포수(砲手)가 토끼 한 마리, 무슨 여우 한 마리 그러헌 것에 신경을 쓰지 아니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 많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벼슬을 허건 아니허건, 돈이 많건 적건, 얼굴이 잘생기건 못생기건, 지식이 있고 없건, 나이가 많고 적건, 무슨 직업을 가졌건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최상승 불자(佛子)인 것입니다.
조금도 우리는 비관할 것이 없습니다. 세속적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해서 조금도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야코죽을 것도 없습니다.
柳閎展如蘇子瞻甥也其才德甚美有意於學故以桃李不言下自成蹊八字作詩贈之' 참고. *(게송) ‘水流元入海 月落不離天’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尙廣錄」 제1권(下) '시중(示衆)—師子正宗禪寺示衆' 참고. *객지(客地) ; 자기집을 떠나 임시로 머물러 있는 땅. *타관(他官) ; 제가 나서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고장.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허수히 ; 태도나 태세가 치밀하게 짜이지 않아서 튼튼하지 못하고 느슨하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포수(砲手) ; 총을 쏘아 짐승을 잡는 사냥꾼. *야코 ; ‘콧대(우쭐하고 거만한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속되게 이르는 말. *야코죽다 ; (사람이나 동물이)기세가 꺾여 약해지다. *(게송) ‘月隨碧山轉 水合靑天流’ ; 이백(李白)의 시 '月夜江行寄崔員外宗之(월야강행기최원외종지)' 참고. *(게송) ‘風花亂紫翠 雲外有煙林’ ; 소동파(蘇東坡)의 시 '적영석병(狄詠石屏)' 참고.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해. 당당한 대도가 밝고 분명해서,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로다, 사람사람마다 본래 갖추어져 있어. 낱낱이 다 원만히 성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다못 한 생각 어긋진 그 탓으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다. 무량겁을 만 가지 모양으로 현출(現出)을 한다.
우리의 본성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로부터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祖師)와 우리가 똑같이 그 본성은 차이가 없건만은 한 생각 어긋진 탓으로 해서 무량겁을 두고 윤회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태어날 때부터서 같이 온, 무량겁을 같이 윤회해 온 우리의 본성을 깨달아서 생사윤회(生死輪廻)로부터서 해탈을 하는 그 방법이 바로 방금 조실스님의 법문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깨달아서 생사윤회로부터서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산승이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특별히 무슨 법을 설하기 위해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12개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삼동에 결제에 들어간 262명의 도반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께 오늘 결제에 같이 조실스님께서 평생 설법을 하시던 이 법보전(法寶殿)에 모두가 다 운집을 하셨으니, 용화사 법보선원 원장으로서 앞으로 석 달 동안 무장무애하게 조실스님의 법문에 의지해서 올바르게 정진하자고 여러분께 당부를 하고 인사를 하기 위해서 올라왔습니다.
비록 열두 개 선방에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 멀고 가까운 각 선방에서 정진을 하시지만, 오늘 이 조실스님께서 평생 동안 설법을 하신 이 법보전에 같이 모인 뜻은 각기 자기 선방에서도 녹음 법문을 들으면 되지만은,
특별히 이 자리에 모이신 것은 조실스님의 그 생생한 법문을 같이 들음으로 해서 그 신심과 그 결의로 각기 선방에 돌아가서 석 달 동안 정진을 하되, 오늘 이 자리에서 법문을 같이 들은 그 감동과 느낌을 석 달 동안을 간직을 하면서 각 그 선방에서도 엄숙하고 경건하게, 무장무애(無障無碍)하게 정진을 하자, 그런 뜻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진은 죽비를 치고 입선을 하고, 또 죽비를 치고 방선을 하는데, 그거야 겉으로 보면 다 똑같지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떠한 마음과 어떠한 신심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느냐?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 이것이 삼요(三要)인데 ‘믿을 신(信)’자 신(信)이라는 것은 ‘무엇을 신(信) 하느냐?’
나도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정진만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고 하는 그 철저한 신심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분심은 ‘왜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내가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가?’ 그것에 대한 스스로의 분심(憤心)! 분심이 없고 늘어져 가지고 흐지부지 하고 분심이 없는 정진은 앉으면 졸고, 방선하면 잡담하고 그렇게 석 달 동안을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분심이 항상 탁 몸에 있어야 화두를 들어도 여법하게 들고, 방선을 하더라도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도 선방에 방부만 들였지, 그럭저럭 지낸다면 신심도 없고, 분심도 없이 지낸다면 석 달 동안 금방 아무것도 한 바가 없고 정진에 힘을 얻지 못하고 그렇게 금방 석 달을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심(憤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있는 거기에 자기의 화두에 대한 의단이 철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단이 철저하지 못하면 혼침과 의리선(義理禪)에 빠져 가지고 — 묵조사선(默照邪禪)에 빠져 가지고 석 달 아니라 삼십 년을 지내도 공부에 힘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분들은 이미 무자(無字) 화두나 판치생모(板齒生毛)나 그 밖에 여러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를 타서 다 이미 화두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만은.
화두는 이것 했다가 안 되면 저걸로 바꾸고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화두를 탔으면 되고, 안 되고를 따지지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의단으로 의관(疑觀)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화두가 되었건, 알 수 없는 의심, 의단(疑團)이지. 거기에 대한 이론으로 따지거나 사리(邪理) 상량(商量)으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여법(如法)하게 화두를 들어 나가면—그렇게 한다고 해도 문을 닫고 입선을 하면, 여러 대중이 호흡으로부터서 나쁜 공기가 나와 가지고 공기가 탁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혼침에 빠지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허리가 꼬부라지고 고개가 수그러지면 졸음이 오니까, 허리를 쭈욱 펴고 단정히 앉아서 숨을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판치생모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정진을 지어 나가면 그릇 갈라야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여러가지 면에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중언(重言), 거듭해서 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만은, 어쨌든지 석 달 동안 건강하게 신심과 분심과 의심, 이 삼요를 갖추어서 정진을 잘 하시고 해제날 건강한 모습으로 또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하안거에는 240명이 방부를 드리고 정진을 했는데 이번 동안거에는 262명이 방부를 드리고 정진을 하게 되었다고 보고가 되어 있습니다. 방부 드리는 수좌(首座) 스님네가 불어나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현상이고, 기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겨울철 날씨가 추워도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면서 정진을 잘 하시길 부탁합니다.(끝)(처음~13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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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당당대도혁분명~’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무장무애(無障無碍) ; 일이나 행동을 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방해가 없음.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
•승우(勝友)라고도 함. *사리(邪理) ; 그릇된 이치나 생각.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〇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〇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〇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〇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〇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송담스님(복전암No.26)—지장기도 천도재 회향 (93년) (복전암26)
(1) 약 21분.
(2) 약 21분.
(1)------------------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하니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무연진개대비은(無緣眞箇大悲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웬수와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난 거여.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에 웬수가 없고자 하면 사람을 알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은 친하게 되고, 친함이 생기면은 그것이 언젠가는 변해서 웬수, 빚쟁이가 된다.
그래서 웬수와 빚쟁이를 안 만날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좋다.
이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을 맺는 것인데,
그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잠시 한자리에 만나서 얘기하는 인연,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인연, 함께 길을 가는 인연, 한 집에서 사는 인연, 한 마을에서 사는 인연, 한 나라에서 사는 인연, 한 이 지구상에 함께 태어난 인연,
한 집에서 살되 부모 자식간의 인연, 부부간의 인연, 형제 간의 인연, 그 인연이 천 생, 만 생, 몇백 생, 오백 생 그러한 깊은 인연으로 해서 그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법문을 듣는 그 인연도 몇천 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유위법(有爲法)의 인연은 그 인연이 언젠가는 원수로 변하는 것이고.
무위법(無爲法), 무루(無漏)의 인연 — 법(法)을 믿고, 법을 권하고, 법을 듣고, 법을 실천하고, 법에 있어서의 인연이 바로 무위법의 인연이요, 무루의 인연인데.
그런 인연은 몰라도 유루법, 유위의 인연은 전부 다 웬수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아낄 것이 없고, 자식을 위해서는 한량없는 죄도 서슴지 않고 짓게 된다 그말이여.
그것이 전생(前生)에 깊고도 깊은 전생의 빚이 있기 때문에 — 엄청난 빚이 있기 때문에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금생에 빚 받으러 온 놈이 그것이 자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전생에 지어논 빚을 안 갚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고 아까운 것이 없어.
자식은 물론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은 대부분의 자식이라 하는 것은 빚 받으러 온 웬수거든.
그래서 그놈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다 그말이야. 다 주어도 또 주고 싶어.
그렇게 불효막심(不孝莫甚)해도—남이라면은 그렇게 고약한 놈은 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안 봐 버리면 되는데, 불효자식일수록에 부모는 더 가슴이 아프고 더 못 잊는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짓지마는 자식을 위해서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다 그말이여. 빚을 갚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어 놓은 빚은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빚은 갚을 수 밖에는 없고,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빚은 갚되,
그 빚을 갚으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해야지, ‘이뭣고?’를 안하면 계속해서 또 빚은 늘어나고만 만다.
자식은 ‘으레이 부모는 나를 낳았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별로 고마운 생각도 없는 거여.
알뜰히도 빚을 받으면서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나중에 다 커서는 으레이 부모가 자식을 해주어야 한 걸로 생각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또 자식을 낳으면 자식한테 또 빚을 갚아야 하고.
그러니 ‘이뭣고?’를 안 한 사람은 무량겁을 그것을 되풀이를 해. 되풀이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려.
지금 ‘부정부패 척결’해서 온통 야단이지마는 전부가 다 처자(妻子)·권속(眷屬)을 위해서 저지른 죄다 그말이여.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불자(佛子)!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은 원수 빚을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갚지마는 그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야 되야.
‘이뭣고?’를 해서 묵은 빚은 갚지마는 새 빚을 짓지를 말라.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우리 불문(佛門)에 있어서 널리 제도(濟度)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연(無緣), 무연자비(無緣慈悲), 인연 없는 자비 — 인연을 맺지 아니한 것이 이것이... (無緣眞箇大悲恩)
남에게 보시를 하되 인연이 있고 정을 따라서 주는 보시는 참다운 보시가 아닌 거여.
전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은 주어야 할 때는 무주상(無住相)으로 주고 이리 해야지,
유주상(有住相)으로 주어 놓으면 결국은 그것도 빚을 만드는 것이여. 웬수를 맺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그 사람을 구제를 해 놓고 나중에 많이 주어 놨는데, 나중에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이 되는 거여, 그 사람이.
내 것 많이 먹은 사람이 웬수가 되는 것이지, 전혀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웬수가 전혀 안되는 법이거든.
남에게 보시를 하고 베푸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인데 완전히 무주상으로 주어야 해.
조건 없이 주고도 잊어버리고 주어야지,
“내가 이것을 너를 주었으니까 너는 정말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고 나중에 네가 이것을 내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조건부(條件附)로 주고,
“이것을 주었으니까 언젠가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평생토록 내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런한 조건이 있어 가지고 주어서는 그 사람이 받으면서도 겉으로만 ‘고맙습니다’ 그러지, 속으로는 하나도 고맙지도 않고, 많이 받아먹은 놈일수록에 나중에 그놈이 꼭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나를 해꼬지 하는 것이여.
그래서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7일 지장기도 회향식인데, 윤달을 기해서 왜 지장기도를 주지스님이 그렇게 원력(願力)을 발했느냐 하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로 자기가 그 과보를 받게 돼.
무량겁을 두고 몸으로 지은 죄가 태산과 같고, 입으로 지은 죄가 저 대해(大海)와 같고, 마음으로 지은 죄가 허공처럼 많다 그말이야.
그 자기가 지은 — 지금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또 내생(來生)에 윤회할 그리고 고통을 받아야 할 그 원인을 만드는 거여.
과거에 지은 죄를 금생에 받으면서 또 금생에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생에 받을 죄를 또 짓고 있거든.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懺悔)하고 내생에 받을 과보를 받지 않는 참다운 길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드리기 위해서 지장기도를 봉행한 것이다.
윤달에 예수재(預修齋)도 지내고, 윤달에 가사불사도 하고, 윤달에 개금불사도 하고, 참 수많은 불사(佛事)가 있는데 이렇게 지장기도를 한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주지스님이 원력을 발해 가지고 지장기도를 이렇게 봉행을 했는데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 불자, 신남신녀 여러분은 그 지장기도의 참다운 뜻을 잘 인식을 하셔야 할 것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 중생 — 이 세상에 고통이 제일 심한 곳이 지옥인데.
지옥에는 팔만지옥(八萬地獄)이 있고, 그 가운데 참 무서운 데가 십팔지옥(十八地獄)이 있고, 무간아비(無間阿鼻) 지옥이 있고 그런데.
그 지옥 문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 중생을 위해서 지옥문에 가 가지고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이 그 지옥 중생들에게 고통을 멈추게 해주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다 그말이야.
우리도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따라서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해탈도를 가는 것」이 그것이 지장보살의 참으로 큰 대원력이여.
이미 지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놈을 벗어나기는 참 어려운 거여.
한번 들어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할 만큼 몇 무량겁을 지옥고를 받게 되는 것인데,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열심히 해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탐진치(貪瞋癡),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마음 — 이 세 가지 죄로 지옥, 아귀,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여.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축생보를 받고, 탐심을 내면 아귀보를 받고, 진심을 내면 지옥을 가는 것이여.
물론 중생은 세 가지를 다 고루고루 지어 가지고 축생에 갔다가 아귀도에 갔다 지옥고에 갔다, 그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지만은,
그 어떻게 했으면은 탐욕심을 안 내고, 진심을 안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안 낼 수가 있느냐?
천하에 간단한 것이지.
아무리 탐욕이 과하고, 진심을 성을 잘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많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은 마음에서 그것을 짓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짓는 게 아니여.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이리저리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그런 큰 죄를 짓게 되어.
‘한 생각’이 딱 일어나면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죄를 지어 가지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게 되고 내생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장관도 걸리고, 국회의원도 걸리고, 그 별 단 장성들도 모다 걸려 들어가는데 그 죄가 한 생각에서 일어난거다.
산불이, 건조기에 산불이 지난달에 몇천 건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의 금수강산이 모다 다 타고 그랬는데, 그 엄청난 불이 처음부터 그렇게 큰불이 난 것이 아니여.
처음에는 성냥불 하나나 담뱃불 하나가 결국은 번져 가지고 그렇게 큰불이 된 것이거든.
처음에 담뱃불 하나만 탁! 밟아서 잘 껐어도 그런 큰불이 안 날거거든.
담뱃불 하나만 단속을 잘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성냥불 하나 — 그때는 탁! 손바닥으로 눌러도 꺼지고, 발로 탁! 밟아도 꺼지고.
그때 조심을 했으면 될 것인데 그걸 조심을 안하고, 그때 단속을 안했기 때문에 집도 타고 공장도 타고, 저 엄청난 산도 다 탄다 그말이여.
한 생각 일어난 그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욕심!
아까 그 자식때문에 요새 모다 부정 입학문제도 그 자식이 평소에 공부를 잘해서 실력으로 들어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은 그놈이 국민학교 때는 잘하던 놈이 중학교 가면서 조금 떨어지고, 고등학교 가서는 나쁜 친구를 사귀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대학을 갈라고 하니 되냐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는 돈이 없는 사람은 몰라도 있는 사람은 몇천 만원, 몇억이라도 넣어서라도 들여서라도 입학을 시키고 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말이여. 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은 참 기가 맥히지.
그러나 지가 공부 못한 놈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었다 애당초에.
못하면 못한대로 지가 공부를 안 해 가지고 못한 걸 어떻게 하냐?
전생에 지혜를 닦아 놓지 아니해서 금생에 머리가 나쁘고, 지가 금생에 어려서부터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라하라 해도 지가 안 한 것을 어떻게 돈을 들여서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못하면 못한대로 구두닦이를 하던지,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던지, 신문팔이를 하던지 아주 매정한 마음으로 했어야 한다 그말이야.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켜놨다가 1학년, 2학년 대학에 가 가지고 그때사 퇴학을 당하면 그거 어떻게 되는 것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별자리를 올라갔다 그것이 떨어지니 그것이 될 일이냐 그말이여.(19분41초~40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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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에 떨어져서는 안돼.
제 자식이지만은 지가 공부 안한 놈은 안 하는대로 해야지, 인정(人情) 정을 써서 해 놓으면 결과가 결국은 그렇게 되고만 만다 그말이야.
설사 부정한 짓을 해서 금생에 잘산다 하더라도, 금생에 쇠고랑은 안 찬다 하더라도 내생에 저 내생에는 반드시..(법문 끊김)
탐욕! — 자기 욕심대로 안 되면은 진심(瞋心)을 내고, 그러기를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해 가지고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것도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냐?
‘가장 어리석은 것의 근본이 무엇이냐’하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안 믿는 거여.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은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 털끝 만큼도 어기는 법이 없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인과법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과법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컴퓨터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여. 컴퓨터도 병이 나면 천하 못 믿을 것이 참, 컴퓨터라 그러는데.
진짜 영원히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은 인과법이여.
한 생각 탁! 먹은 것도 벌써 과보(果報)로 나타나고, 말 한마디 나온 것도 과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이뭣고?’는 무엇이냐? 내가 ‘참나’를 찾는 공부거든. ‘참나’로 돌아가는 길이여.
우리가 저 진묵겁(塵墨劫) 전에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었어. 법신불과 똑같은 존재였어.
그러던 존재가 한 생각 일어나는 그 무명(無明) 때문에 이렇게 '업(業)투성이'인 중생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도 일어나는 한 생각만 잘 단속을 하면 본래의 비로자나불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거거든.
이것 말고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도 얻을 수가 없고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회·국가·세계의 평화도 이룰 수가 없는 거여.
근원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해결이 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해 가지고 새 한국을 건설하자고 새 대통령께서 나와서 저렇게 애를 쓰고, 온 국가가 온통 이것 때문에 그 애를 쓰고 있는데,
대단히 부정부패는 마땅히 척결을 해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되어갈 것은 사실이나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해서, 근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것은 잠시 그러다가 조금 법을 느슨히 느꿔주면 또 마찬가지야.
근본은 각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거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자꾸 ‘이뭣고?’로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감으로서만이 부정부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정부패, 부정부패하지만 알고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은 죄여, 그게.
각기 자기가 지은 죄가 노출이 되면 여러 사람이 하니까 온 나라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나, 나라가 썩기는 무슨 나라가 썩어, 태산이 썩어?
아무 것도 썩은 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잘못 삐틀어진거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만 바로잡어!
어떻게 나무가 삐틀어지면 깎아내고 바로잡는다 하지마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잡어?
‘이뭣고?’가 자기 마음 바로잡는 법이거든.
자꾸 ‘이뭣고?’를 해서 자기로 돌아가. 자기의 본심으로 돌아가.
그것이 바로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인데, 마음 하나만 바로잡고 보면 말도 바르게 나오고, 행동도 바르게 나올 것이고, 마음을 바로잡은 사람은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그 일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말이여.
서장이 되거나 검사가 되거나 판사가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마음을 잘못 써 가지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지, 마음만 바로잡으면 무슨 걱정이 있느냐 말이여.
법을 아무리 무섭게 제정을 해서 엄격하게 다룬다 해도 그때 뿐이여, 중생은.
엄하게 할수록에 더 머리 좋은 사람은 그놈의 법망을 뚫고 또 죄를 저지르고 마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현들은 법을 엄격히 적용을 하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지 않고, 각자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고 가리키셨다 그거거든.
‘이뭣고?’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이 아닌가!
집안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두 사람, 세 사람 온 집안 식구가 ‘이뭣고?’를 하고, 그런 집안이 있으면 또 이웃집 사람들도 또 그 본을 따서 ‘이뭣고?’를 하고, 사돈네도 그걸 하게 되고 해서,
차츰차츰 ‘이뭣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과법을 믿고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이 세상이 온통 부처님 세계로 변하는 것이다.
법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여. 형무소도 필요없이 되어 버리고.
지옥도 텅텅 비어서 지장보살도 지옥에서 좀 나올 때가 된다 그말이여.
‘이뭣고?’을 하지 않고는 온 세계가 법을 무섭게 제정을 해 가지고,
도둑질한 놈은 왼손 자르고 또 한번 한 놈은 오른손을 자르고, 유부녀 간통한 놈은 목 매달아 죽이고 총살을 시키고, 지금도 저 아프리카 어디 가면은 도둑질하면 팔목 자르고 목 매달아 죽이는 데가 있다고 하더만.
그래 해봤자 마음보를 바로잡지 않고 아무리 무섭게 해서 날마다 수백 명씩 때려 죽여봤자 끝나는 날이 없어. 온 세계 사람을 다 때려 죽여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말이여. 죽자마자 또 다시 태어날 것을 죽여봤자 소용이 있나.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뭣고?’ ‘이뭣고?’
가정에서도 속상한 거 부애풀이 해봤자 소용 없고, 떠억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열 번, 스무 번 하다보면은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부애난다고 때려 부수고, 부애난다고 술 잔뜩 먹고 와 가지고 막 때려 부숴봤자 무엇이 되는 일이 있냐 그말이여. 집안만 점점 복잡하고 시끄럽고 일은 무장 더 다 안되거든.
‘이뭣고?’를 해야—턱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 다 따라서 숨을 들여마셨다가 ‘이뭣고?’ ‘이뭣고?’
부애가 날 때는 좀 큰소리를 내서 ‘이뭣고?’를 하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해서 만자 중에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사람들이 모다 쳐다보고 그럴테니까 사람 없는 데서는 그렇게 하고, 사람 있는 데서는 속으로 ‘이뭣고?’를 자꾸 해서,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뭣고?’가 되야.
걸어가면서 ‘이뭣고?’
심심하면 ‘이뭣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변소에 가서 터억 앉아서도 ‘이뭣고?’.
‘이뭣고?’ 저절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은 제발 좀 성을 내라고 해도 성을 안 내고, 제발 좀 탐욕심을 내라고 해도 안 내는 거여.
그 사람이 무슨 도둑질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할 리가 있는가!
자꾸 처음에는 잘 안되고 재미가 없지만은 자꾸 하면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희선열(法喜禪悅) —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이 속에서,
향을 피워 놓으면 향내가, 전단향을 피우면 10리 밖에까지라도 그 향내가 풍기는데,
‘이뭣고?’를 한 사람은 마음의 기쁨이 그렇게 넘쳐 흐르고 얼굴이 환해지거든. 그 사람을 본 사람마다 다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간 곳에는 항상 선신(善神)이 옹호를 하고, 마음으로 꼭 탐욕심을 안 내더라도 마음으로 꼭 무엇이 필요하다 하면 저절로 그것이 자기한테 이르러 오는 거여.
지상(地上) 사람은 무엇이 먹고 싶으면 손으로 그걸 집어서 입에다 넣어서 씹어서 먹어야 그때사 배가 부르는데, 복이 많은 저 천상(天上) 사람들은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갖고 있는 거여.
지상 사람은 남녀 관계도 몸과 몸이 접촉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천상 사람은 마음 한 생각만 내면 벌써 이루어지는 거여.
그래서 중생이나 축생은 입으로 씹어서 먹는 거고, 귀신은 냄새로 먹는 거고, 천상 사람은 생각으로 먹는 거고.
부처님은 견식(見食)이여. 떠억 보기만 해도 벌써 충분히 배가 부르신 거여.
그래서 이 법당 탁자 위에다가 떡이다 과일이다 잔뜩 갖다 놓아도 하나도 줄지를 않거던. 부처님은 보시기만 해도 배가 부르시기 때문에 그런 거여. 부처님은 견식이여.
그래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저절로 공급이 돼.
왜 그러냐? 항상 선신이 옹호를 하기 때문에,
선신(善神)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선신은 — 대통령이나 모다 그런 사람들은 항시 호위하는 경호원이 따라다니듯이 —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선신이 우리의 경호원으로 따라다녀 가지고 항상 지켜줘.
먹을 것, 입을 것 전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이뭣고?’하면 걱정을 안 해도 항상 그 사람에게는 의식주 문제가 걱정이 없어.
자기 한 사람의 의식주 문제는 그렇게 크게 걱정을 안 해.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탐욕심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죄를 지어 가지고 부정부패에 걸리는 것이지, 자기가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질라고 하면은 그렇게 큰 죄를, 큰 욕심을 안 내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이 몸뚱이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금방 30까지는 조금 마디다가, 40이 되면 더 빨리빨리 가고, 50이 되면 더 빠르고, 60이 넘으면 금방 늙어서 곧 꼬부라지는 거여.
우리가 이만큼 젊었을 때 어쨌든지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몸뚱이를 백 가지, 천 가지 방법으로 위하고 해봤자 금방 이 몸뚱이는 허망하게 늙어가.
벌써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대부분 흰머리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다 하나, 둘씩 이상 다 생겼을 것인데,
그 흰머리가 처음에는 곧잘 보기 싫다고 뽑아 내버리지만 나중에는 몇 해 지나가면 도저히 그놈 다 뽑다가는 대머리가 되게 생기니까 도저히 못 뽑고, 나중에는 물을 들이는데 물을 들여봤자 밑에서 하얀 것이 곧 돋아나거든.
얼굴에 주름살 생긴다고 여기를 째고 잡아당겨봤자, 정말 늙어서는 흉직하게 늙어간다 그말이여.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죄 지은 것 있으면 참회하고, 어쨌든지 ‘이뭣고?’ 열심히 하고, 남에게 욕심내지 말고, 네게 있는 것을 턱턱 털어서 보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해서 황천에 올 때에는 가벼운 몸으로 오너라.
탐욕심을 잔뜩 탐욕심을 해봤자 너 죄만 짊어지고 오지, 하나도 가지고 오지도 못할 걸, 뭐하러 그렇게 오그려 쥐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그리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한없이 그렇게 죄만 퍼 짓느냐?’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그거여, 편지.
여러분 「지장기도 오늘 회향일을 맞이해서 깨끗이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에 죄짓지 않고 열심히 ‘이뭣고?’ 하겠습니다」하는 뜻으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외우면서 연비(燃臂)를 받으시겠습니다.(연비 준비하세요)
참회진언을 하고 연비를 받아서 과거 무량겁에 지은 우리의 죄는 깨끗해졌습니다.
새 마음, 새 몸으로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몸으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우리는 내일엔 오늘과 다르고, 모레는 오늘과 달라서 점점 젊어지고 점점 이뻐지고, 점점 착해져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옛날에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지고 옛날에 원수로 여겼던 사람이 하나도 웬수로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다 한 식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업(業)의 눈으로 보니까 이 사바세계가 악토(惡土)요 악세(惡世)요 고토(苦土)요 예토(穢土)라고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사바세계가 고대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온갖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는 것이 하나도 지옥세계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돌아와서 산천에 푸른 잎이 돋고 온통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錦繡江山)이 되었습니다.
나라도 새로운 정부가 섰으니 우리도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몸도 새로와지고 우리의 가정도 새로와지고 온 세계가 새로운 새 봄으로 새출발을 하는 그러헌 계기를 우리는 오늘로서 마련을 합시다.(19분41초~61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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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다생원채기어친~’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①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②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〇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〇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〇(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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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