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 팔풍 경계대처'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24.01.10 §(280) 위법망구(爲法忘軀) 용기 / 「한 생각 진실함」에서 신심, 분심, 용맹심, 대의단이 갖추어진다 / 순경계, 역경계 / 공부는 한 생각 단속하는 데에 있다 / (게송)시비해리횡신입~. 2
  2. 2022.04.18 §(308) 민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 / 석가족의 멸망 인과 /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상에 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높다 / (게송)화소계전우~.
  3. 2022.03.03 §(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4. 2021.08.13 §((세등51)) 『논어(論語)』 첫마디 / (게송)종타방임타비~ / 누가 나를 헐뜯어도 그 말을 감로수처럼 달게 받아 마셔라 / 바다와 같은 아량을 가지고 살아가라.
  5. 2021.08.05 §((472)) (게송)우후정화연야발~ / LA 인종 폭동 / 참선법을 배워야 세계가 평화롭게, 인간이 인간답게 / 백인이나 유색 인종이나 인간의 본성에는 차등이 없다.
  6. 2021.07.15 §((466)) 어떤 경계에도 집착 말고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해야 /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 구경각(究竟覺)이라야 / 인연 있는 영가 천도는 좋은 일.
  7. 2021.07.06 §((645)) 구경각, 오무생사(悟無生死) ·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의 마음으로 수행해야 / (게송)사자굴중무이수~.
  8. 2021.01.23 §((596)) 조주 스님과 시자 문원의 '못나기 내기'. 「투열(鬪劣)」 공안 / (게송)만사무여퇴보휴~ / 온 국민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IMF 경제위기).
  9. 2021.01.08 §((479)) (게송)일불이불천만불~ / 선근(善根) / 도를 깨닫는 첫째 관문인 아상(我相) / (게송)견색비간색~ / '이뭣고?' 하나로써 능히 마구니를 퇴치.
  10. 2020.03.14 §(332) (게송)우중간호월~ / 마음에 맞지 않는 일 속에서 바로 자기를 단속해 나가고 바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면 그 속에서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
하심 팔풍 경계대처2024. 1. 10. 13:42

§(280) 깨달음을 얻으려면 위법망구(爲法忘軀)적인 철저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 「한 생각 진실함」에서 신심(信心), 분심(憤心), 용맹심도 거기에 갖추게 되고, 대의단(大疑團)도 거기에 갖추어진다.
과거에 모든 불보살(佛菩薩)들께서는 순경계(順境界)에서 보단 역경계(逆境界)에서 다 대사(大事)를 성취하셨다 / 공부는 한 생각 야무지게 단속하는 데에 있다 / (게송)시비해리횡신입~.

공부는 한 생각 야무지게 단속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구태여 딴생각을 일으켜서 무엇을 잘할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한 생각 딱! 단속을 해버리면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도 그 앞에는 어리대지를 못할 것입니다.

‘일이 많아서 못한다. 우리는 근기(根機)가 박약해서 못한다’ 이러한 생각 낼 바로 그 시간마저도 화두를 드신다면 반드시 목적을 이루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280)—19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85.11.26)(용280)(하심팔풍경계대처)

 

약 13분.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낱낱이 다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 수행을 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리라’ 그러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법망구(爲法忘軀)적인 그런 대용맹지(大勇猛志)가 없어 가지고서는 이 일은 성취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일백십성(一百十城)을 넘으면서 갖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한 생각 퇴전(退轉)함이 없이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차례차례로 친견을 하고 승사(承嗣)를 했습니다. 바로 이 「한 생각 진실함」에서 신심(信心)도 거기에 갖추게 되고, 분심(憤心) 용맹심도 거기에 갖추게 되고, 대의단(大疑團)도 거기에 갖추어질 것입니다.

한 생각 진실하다면 성도 다르고, 연령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팔도에서 운집(雲集)한 선객(禪客) 스님네나 보살선방(菩薩禪房)의 여러 보살님네들은 하등에 걸거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성격을 가진 분하고도 아무 장애가 없이, 간격이 없이 화합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자기 마음과 맞지 않는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적응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마음과 맞지 않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더 분심을 낼 수가 있을 것이고, 더 철저한 간절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고인(古人)네들, 과거에 모든 불보살(佛菩薩)들, 순경계(順境界)에서 보단 역경계(逆境界)에서 다 대사(大事)를 성취를 하셨습니다.
순경계는 모든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빠져들어가고, 속고, 해태(懈怠)에 빠지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그런 역경계에서 오히려 더 용기와 분심과 신심과 의단이 독로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도업(道業)이 증장을 하게 되고 발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에 큰 사업을 이룬 사업가들도 그러한 수많은 역경계를 굴복함으로써 그러한 대기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석 달간 날씨는 엄동설한 움츠려들고, 그 추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예불(禮佛)하고, 십악참회(十惡懺悔)하고 그리고 입선(入禪)을 하고 또 각기 소임에 따라서 소임을 맡아서 행할 때에 문자 그대로 고행(苦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속에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는 허락이 되지를 않습니다. 선원의 규칙에 따라서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 잠깐 비끄러지면 화두(話頭)도 놓쳐 버리고 번뇌(煩惱)와 망상(妄想)과 잡념에 부린 바가 되어서 그동안에 애써서 공부한 경계가 무너져 버리고 천 길 낭떠러지 업(業)의 구덩이에 굴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는 한 생각 야무지게 단속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구태여 딴생각을 일으켜서 무엇을 잘할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한 생각 딱! 단속을 해버리면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도 그 앞에는 어리대지를 못할 것입니다.

오늘 결제(結制)에 들어가면 앞으로 석 달간 아무 장애 없이 하루같이 알뜰하게 정진(精進)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또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비록 선방에 방부를 들이지 아니하고 댁에 계실지언정 바로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생활 그것이 선방(禪房)이요, 가족이 도반(道伴)이요, 이웃이 도반이라 생각하고,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부처님이요, 귀로 듣는 모든 소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이요, 선지식의 법문이다.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장소는 선방이요 그 시간은 입선(入禪) 시간이다’ 이리 생각하고, 선방에 방부 들인 여러 대중보다도 훨씬 더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하신다면 오히려 가정에 계시고, 밖에 속세에 계신 분이 더 힘있고 철저한 정진을 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일이 많아서 못한다. 우리는 근기(根機)가 박약해서 못한다’ 이러한 생각 낼 바로 그 시간마저도 화두를 드신다면 반드시 목적을 이루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辨我)하라  평생천착불상관(平生穿鑿不相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다. 시비(是非)—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그러한 온갖 시비의 바다 속에, 전체가 중생 사는 데는 시비 아닌 것이 없고 전체가 다 시비요 차별이기 때문에 ‘바다’라 하는 거요.
그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비켜서 들어가. 사람이 많이 꽉 들어찰 때에는 이렇게 정면으로 갈 수가 없으니까 몸을 이렇게 비끼고, 이렇게 삐지고 들어가듯이 시비의 바다 속에 몸을 비껴 삐지고 들어가며,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여. 표범과 범이 떼를 이루고 있는 그 속을 갖다가 그 가운데를 자재(自在)하게 나아간다 그 말이여.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네가 잘하고 내가 못한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 이것은 좋다 저것은 나쁘다, 이곳은 밝고 저곳은 어둡다, 이것은 짜고 저것은 싱겁다’ 전부가 다 중생(衆生)의 인아(人我)로 인한, 인아—‘너[人]와 나[我]’라고 하는 그런 시비의 바다 속에, 그 시비가 바로 그것이 호랑이요 표범인 것입니다. 그 속에 그것을 피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몸을 삐지고 막 적극적으로 그 속을 향해서 간다 그 말이여.

시비를 잡아서 나에게 와서 가리지를 말아라.(莫把是非來辨我) 나한테는 그까짓 시비를, 이러쿵저러쿵 나한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말이여. 나는 그까짓 시비를 평생 천착(穿鑿)을 하지 않노라.(平生穿鑿不相關) 그건 내가 따지지 않는다 그 말이여.
시비 속에 마구 들어가서 시비를 막 잡아서 내가 막 요리를 해버리고, 시비를 여의지 않고 시비 속에서 바로 화두(話頭)의 의단(疑團)을 가지고 막 삐지고 들어가는데 시비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말이여.

이러한 기개와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셔서 일생 동안 여태까지 정진한 가운데, ‘금년 삼동(三冬)이 가장 뜻있는 가장 보람 있는 한철이 되고, 금년 삼동에 정말 일대사(一大事)를 갖다가 해결하고야만 말리라’ 한 그러한 각오를 가지고 알뜰히 정진해 주실 것을 부탁을 드리고 맺고자 합니다.(37분47초~50분4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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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용맹(勇猛 날래다·용감하다·결단력이 있다·강하다 용/굳세고 용맹스럽다·맹렬하다·굳고 강하다 맹) ; 기운차고 씩씩하며 두려움 없이 용감함.
*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그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를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을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 동자(善財童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최초로 문수 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53위의 선지식(스승).
*승사(承嗣 받들 승/이을 사) ; 후임자나 후대가 선임자나 선대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음.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보살선방(菩薩禪房) ; 보살선원(菩薩禪院).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걸거치다 ; ‘거치적거리다’의 사투리.
*거치적거리다 ; ①(사람이나 물건이) 거추장스럽게 자꾸 여기저기 걸리거나 닿다. ②(무엇이) 성가시고 귀찮게 자꾸 거슬리거나 방해가 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대사(大事) ; 일대사(一大事).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참고 ❶]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6』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692칙 ‘대사(大事)’ p270~271.
洞山 門僧 世間 是甚麼物最苦 僧云 地獄最苦 師云 不然 向此衣線下 不明大事 始是苦

동산(洞山)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스님이 말하였다.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이 옷 밑에서 큰 일[大事]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진짜 괴로운 일이니라”

<염송설화(拈頌說話)>
洞山老人 老婆心切 苦口叮嚀 須是明得大事 不辜負洞山意

동산(洞山) 노인이 노파심이 간절해서 입이 쓰도록 간곡히 일러 준 말씀이니 모름지기 이 대사(大事)를 밝혀야 동산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

[참고 ❷]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6』 (혜심·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655칙 ‘대사(大事)’ p138~139.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妣 大事已辦 如喪考妣

목주(睦州)가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큰 일[大事]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禮拜)하는 의식.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 치암癡暗)—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 영역.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①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공부는 한 생각 야무지게 단속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구태여 딴생각을 일으켜서 무엇을 잘할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한 생각 딱! 단속을 해버리면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도 그 앞에는 어리대지를 못할 것입니다.

*딴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249.
선방만 선방이 아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곧 선방이라, 선방에 상주(常住)하는 것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간단(間斷) 없이 정진할 수 있나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참고 ❸] 송담스님(No.401)—1989년 11월 첫째일요법회.(4분48초)
이제 가을도 가고 겨울철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음력 10월 보름에 겨울철 안거(安居)가 시작이 됩니다. 보살님네는 뒤로 미루지 말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다 보면 한량이 없습니다. 탁! 큰 마음을 내서 결단심을 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또 이 한 철을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에 새로 선방(禪房)을 확장을 했으니 어찌던지 와서 정진을 잘 하시길 바라고, 부득이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접 나와서 공부를 못하신 보살님네, 거사님네들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 속에서 항상 '바로 있는—발 디디고 서 있는 그 자리, 앉어 있는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뭣고?」만 탁 들면 벌써 용화사 선원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한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용화사에 방부를 들이고, 와서 큰방에 앉어 계셔도 밤낮 여기 앉어서 집안 생각, 아들 생각, 딸 생각 그러고 있으면은 그건 방부 들이나마나 하는 거고.
댁에 계시더라도 항상 「이뭣고?」를 들고 일 하다가도 퍼뜩 챙기고, 앉어서 챙기고, 서서 챙기고, 밥 먹으면서 챙기고, 똥 누면서 챙기면은 바로 집이 용화사 선원이거든.

시간도 공간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척지간(咫尺之間)이 수천 리, 수천 리가 지척이 되는 것입니다. 백년 천년 하면 긴 것 같지마는 일 찰나간이고, 일 찰나간이 잠깐인 것 같지마는 이것이 바로 무량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를 외우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거든. 이것은 진리에 입각해서 하신 말씀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래.

둘이 나란히 한집에서 한 이불 속에서 자도 벌써 생각이 틀어져 버리면은 천리(千里)거든. 부부간도 천리 웬수여. 저 천리 밖에 떨어졌어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있으면은 벌써 부부일신(夫婦一身)이거든.
시간과 공간을 그것이 또 다른 것이 아니야. 시간이고 곧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거든. 공간 없는 시간이 없고 시간 없는 공간이 없어. 시간이 있는 곳에 반드시 공간이고 시간과 공간은 베의 날과 씨가 서로 이렇게 짜여져서 베를 짜듯이 시간과 공간도 역시 마찬가지여.

그래서 어느 때, 어느 시간 무엇을 하실 때라도 항상 화두를 들고, 화두 하나만을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그저 딱 화두를 거각(擧却)하면 그 자리에는 부처님이 계신 자리요, 그 자리는 모든 조사(祖師)가 계신 자리요, 그 자리에는 전강 조실 스님이 계신 자리요, 그 자리에는 입승(立繩) 스님이 탁! 죽비를 들고 앉아 있는 자리다 그말이거든.
그러니 입승 스님이 죽비를 들고 앉아 있고, 조실 스님이 탁! 지켜보고 계시고, 모든 조사 스님이 그 자리에 계시고,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자리에 계시는데 어느 곳이 선불장(選佛場)이 아니겠습니까?(54분57초~59분45초)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박약(薄弱 엷을 박/ 약할 약) ; ①의지나 체력 따위가 굳세지 못하고 여림. ②근거 따위가 충분하지 못하거나 모자란 데가 있음.
*(게송)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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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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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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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22. 4. 18. 21:05

§(308) 민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 / 부처님의 조국인 가비라왕국과 사위국 유리왕과의 악연. 석가족의 멸망 인과. 가비라왕국과 사위국의 멸망.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6권, 34.등견품(等見品) [2] /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상에 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높다 / 최상승법은 세계에다 자랑할 만한 것 / (게송)화소계전우~.

우리 불자들은,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는 서양 사람들이 선진 문화민족이니 일등국민이니 하지만 그건 물질적으로 본 것이고, 정말 정신적으로 볼 때에는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상에 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세계뿐만이 아니라 무한대의 우주 세계에 있어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만큼 고도의 수준을 가진 백성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8)—1986년 칠석법회(86.08.12) (용308) (하심 팔풍 경계대처)

 

약 18분.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원수가 되고, 한 생각을 바로 먹으면 우리 모두가 형제간이요, 한 살붙이가 되고, 한 핏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동서남북이 많은 나라들이 있고 인종도 다르고 하지만, 생각을 잘못 먹고 원수가 되어서 싸우기로 하면 이 세계는 정말 불구덩이가 되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그런 지옥세계와 같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마음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근본이 모든 사람의 근본과 둘이 아닌 도리를 깨닫게 되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싸울 것이 있겠습니까? 먼 다른 나라하고도 싸울 것이 없거늘, 어찌 한 피에 한 민족끼리 싸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형제간이 아무리 성격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싸우다가도 자기 동생이나 자기 형이 다른 사람하고 싸우게 되면 자기 동생 편을 들고, 자기 형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동생이 누구한테 얻어맞으면 그렇게 미워했던 형이지만 동생을 갖다가 편을 들어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진지 사십 년이 되는데 우리가 통일을 못하고, 언제 큰 싸움이 벌어질런지, 언제 이북에서 밀고 내려올는지 모르는 이러한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대단히 중대하고도 어려운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佛子)들은 이 나라에 태어난 이 민족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어쨌든지 민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항상 명심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석가세존(釋迦世尊)께서, 세존의 조국이 이웃나라에 의해서 침범을 받게 되었을 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국경에 가서 떠억 좌선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나라에서 임금이 많은 군대를 통솔해 가지고 부처님 나라를 쳐들어오다가 부처님이 떠억 국경선(國境線)에 죽은 고목나무 밑에 앉아서 참선을 하고 계시니까 가서,
“세존께서는 어찌 하필 이 죽은 나무 밑에 와서 이렇게 계십니까?”
“내가 여기 와서 있는 것은 내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군대를 회군(回軍)을 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 또 얼마 안 있다가 또 부처님의 나라를 침범하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부처님이 또 국경선에 가서 좌선을 하셨습니다. 그때 또 왕이 그걸 보고 되돌아갔습니다.

또 얼마 있다가 ‘도저히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 해 가지고, 세 번째는 '부처님이 아무리 거기 와서 막고 계신다 하더라도 그걸 무시해 버리고 이번에는 아주 그 나라를 침범해 가지고 뺏어버리리라' 이렇게 마음을 먹고 다시 출군(出軍)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세 번째는 이미 그 왕이 그러한 독한 결심을 한 것을 아시고서 세 번째는 국경선에 나아가지를 않았다고 하는 말씀이 경전에 전해 오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이 태어나고 당신의 조국이나 또는 다른 외국이나 일체 이 법계(法界)에 있는 모든 나라나 중생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태어나신 그 조국을 위해서 외국의 침범을 두 번이나 몸소 나가셔서 막아 주신 그 마음을 생각한다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서산대사나 사명대사, 뇌묵대사와 같은 그러한 큰스님네들이 수도하시는 여러 승군(僧軍)들을 거느리고 왜적을 갖다가 물리치고 하신, 그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는 그 성스러운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거 같습니다.

우리 법보제자 사부대중들도 부처님과 서산 · 사명 · 뇌묵대사와 같은 그런 큰스님네의 뜻을 잘 마음에 새겨서 ‘우리가 지금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참선하시는 도 닦는 스님네들은 어쨌든지 이런 국가의 위기 또 민족의 위기 또 세계 인류의 위기를 당해서 어쨌든지 몸과 목숨을 바쳐서 철저하게 수행을 하셔야 할 것이고, 신남신녀 여러분도 역시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시면서 ‘이뭣고?’ 참선을 열심히 하실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소한 일 같지만 생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사치풍조에 빠지시지 말고 어쨌든지 국산품을 애용을 해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내 한 사람이 이런 외제 물건을 사 쓴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
'국산 사 써봤자 얼마 안 가서 망가지니 좀 비싸게 주더라도 일제를 사서 쓰면 내가 더 이익인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너도나도 일제 물품을 쓰게 되면 결국은 온 여성들이 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제 수지의 적자(赤字)는 더욱 늘어나고, 우리나라 경제는 점점 나빠지게 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일본은 '외제 물건을 좀 사라'고 나까소네 수상이 백성들에게 모다 연설을 한 기사를 봤습니다마는, ‘외제 물건 쓰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외제 물건을 쓰라’고 할 정도로 되었다면 얼마나 일본 사람들이 외제 물건을 쓰지 아니하고, 순 자기나라 국산품을 철저하게 애용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을유년(乙酉年) 해방 이후로 벌써 42년이나 되었습니다. 정신차릴 때가 충분히 되었습니다.

그동안에 ‘무엇이 품귀(品貴)하다’ 하면은 너도나도 살려고 해 가지고 점점 값을 올리고, 점점 품귀 현상을 빚었던 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품귀하다’ 하면, 예를 들어서 ‘소고기가 귀하다’ 하면 너도나도 살려고 하면 더욱 귀해지고 더욱 비싸지는 거고, 귀하다고 하면 안 사버리면 그냥 살 사람은 적어지고 물건은 남아돌기 때문에 저절로 물가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양 사람들은 ‘무엇이 품귀하다’ 하면 너도나도 안 사. 안 사고 다른 걸로 대용을 하기 때문에 일반 수요자들이 물가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하다’ 하면은 너도나도 살라고 그러고, 미리부터 나중에 쓸 것까지 사 모이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물가가 올라가고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그 민도(民度) 수준이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건 참 부끄러운 일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는 서양 사람들이 선진 문화민족이니 일등국민이니 하지만 그건 물질적으로 본 것이고, 정말 정신적으로 볼 때에는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상에 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세계뿐만이 아니라 무한대의 우주 세계에 있어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만큼 고도의 수준을 가진 백성은 없는 것입니다.
그만한 긍지를 갖는다면 그까짓 외제 물건 좀 사서 쓰고, 몸에 걸친다고 해서 무엇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뽐낼만한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물건, 우리나라 사람이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여길 때에, 외국 사람들도 우리나라 물건을 서로서로 살라고 할 것이고, 우리나라 국산품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써 줌으로 해서 좋은 품질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경제 계통에 문외한이 되어서 여러 가지 말을 무식한 소리같이 하고 있습니다마는 제 말하는 뜻을 여러분은 충분히 이해를 하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당장 오늘부터 쓰고 있는 외제 물건을 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고, 이미 사신 것은 소중히 잘 쓰시되 앞으로 사시려고 할 때는 어쨌든지 국산품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서 쓰시도록 그렇게 하신다면 그것이 불자로서 참 긍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또 우리나라 고유의 국악,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 예술, 다 세계적인 것입니다. 세계에다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조금도 서구에 손색이 없는 것이고, 대단히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긍지를 가지고 사소한 생활에서부터서 최상승을 믿는 법보재자(法寶弟子)답게 늠름하게, 여유 있게 그리고 밝게, 그렇게 우리 모두 살아갈 것을 기약을 합시다.


화소계전우(花笑階前雨)요  송명난외풍(松鳴欄外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하수궁묘지(何須窮妙旨)리요  자개시원통(這箇是圓通)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소계전우(花笑階前雨)요. 꽃은 층계(層階) 앞에 빗속에 웃고, 돌층계 앞에 비가 내리는데 그 빗속에서 활짝 피어 웃고 있고,
송명난외풍(松鳴欄外風)이로구나. 솔바람은 난간 밖에 바람에서 울고 있구나. 난간 밖에 바람 속에서 소나무가 자연의 비파(琵琶)를 불고 있구나.

하수궁묘지(何須窮妙旨)리요. 어찌 모름지기 달리 묘한 뜻을 찾을 것인가.
자개(這箇)가 시원통(是圓通)이라. 바로 이것이 온 세계에 가득차 있는 진리가 아니고 무엇이냐.(33분31초~50분4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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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부처님의 조국인 가비라왕국과 사위국 유리왕과의 악연. 석가족의 멸망 인과. 가비라왕국과 사위국의 멸망.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6권, 34.등견품(等見品) [2].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의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민도(民度) ; 국민의 생활, 문화, 의식 수준.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게송) ‘화소계전우~’ ; 《벽송당야로송(碧松堂埜老頌)》(벽송 지엄) ‘示眞一禪子’ 게송 참고.
*원통(圓通 온전하다·원만하다 원/통하다 통) ; 걸림 없이 일체에 원만하게 통함. 원통무애(圓通無礙) 원통자재(圓通自在) 등이라고도 한다. 성자가 미묘한 지혜로 증득한 실상의 이치 또는 불보살의 깨달음의 경계를 나타낸다.
체성(體性)이 일체에 두루 미치기 때문에 원(圓)이라 하고, 묘용(妙用)이 자재하여 장애가 없기 때문에 통(通)이라 한다. 또한 지혜에 의해 진여를 깨닫는 실천 수행을 가리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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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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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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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616) (게송)남북동서무정착~ / 장판때 / (게송)이인유밀불수저~ / 수행자는 코뿔소의 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수행자목표.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명예나 이끗이나 이양(利養)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616)—98년(무인년) 동안거결제 법어(98.12.03)(용616)(하심,팔풍)

약 22분.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남북동서무정착(南北東西無定着)하고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동서남북 정착한 데가 없어. 겨울에는 남쪽 선방(禪房)에 가서 지내고, 여름에는 저 북쪽 선방으로 가고,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남쪽으로 동쪽으로 갔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도반(道伴)을 찾아서 또 지내기 좋은 도량(道場)을 찾아서, 동서남북으로 일정하게 딱 정착한 데가 없듯이 계절 따라서 왔다갔다 하는데,

생애지재일지공(生涯只在一枝筇)이다. 수좌(首座)의 일생애(一生涯)라 하는 것이 오직 이 한 가지 주장자(拄杖子)에 달려 있다 그말이여.

설두세작연하미(舌頭細嚼烟霞味)하고, 혀끄터리는 다못 안개와 연기, 연하(烟霞)의 맛을 가늘게 씹는 것이다 그말이여.
연하를 씹으면서 연하의 맛을—무슨 맛있는 고량진미(膏粱珍味), 산해(山海)의 진미를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그 연하(烟霞)의 맛이라는 게 무엇이냐? 법희선열(法喜禪悅)이요, 선열(禪悅)로 위식(爲食)하는 겁니다. 도 닦는 참선의 기쁨을 먹고 사는 것이 수좌의 음식이다 그말이여.

연하의 맛을 씹으면서 직입천봉갱만봉(直入千峰更萬峰)이다. 바로 천봉(千峰) 다시 만봉(萬峰)을 향해서 들어가더라.

‘천봉 그리고 또 다시 거기서 더 만봉을 찾아서 들어간다’ 그 말은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말 길[語路]을 더듬어서 알아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해 갈수록 알 수가 없는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바로 의심관(疑心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들어갈수록 깊고, 들어갈수록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천봉만봉갱만봉(千峰萬峰更萬峰)을 향해서 들어간다고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를 맞이해서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형제자매 도반들이 여기에 모다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각자 자기가 지내는 처소에서 결제를 해도 되겠지만은 조실스님의 최상승법문(最上乘法門)을 뜻을 같이한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 법문을 듣기 위해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 선방에도 다 녹음테이프가 있어서 거기서 들어도 충분하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여기에 와서 지내는 데에는,
도반들 같은 도반들을 여기서 만나서 입을 벌려서 말은 안 하지만은 한번 눈과 눈이 마주칠 때, 마음과 마음이 마주침으로서 한 목표를 향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나가는 선후배 도반이 만나는데 뜻이 있는 것이고,

석 달 동안을 알뜰히 정진을 하고 해제 때 또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 없는 가운데에 거기서 깊은 말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에 활구참선, ‘여하시 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이냐?'하는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 조실스님의 법문 속에 결제 법문은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법문을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어서 산승이 결제 법문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도반들이 이렇게 모이셨으니 석 달 동안을 무장무애하게 그리고 알뜰하고 짬지게 지내기를 바래는 마음에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해마다, 철마다 여름이면 여름 결제, 겨울이면 겨울 결제 하는데, 처음에 첫 철에 나갈 때에는 엄섬하고 경건하고 아주 근신(謹愼)하는 마음으로 방부를 들이고 한 철을 지냅니다.

두 철이 또 지나가고 세 철, 네 철 지내다 보면 엄섬하고 경건한 그러한 기분은 차츰 사라지고 모다 아무 근신하는 마음가짐이 차츰 해이(解弛)해져서 그럭저럭 한 철 지내고,

또 거기서 해제를 하면 또 다른 선방에 가서 지내고 해서 ‘장판때’만 반들반들 묻어 가지고,
철저한 신심으로 정진하는 기운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해이해지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옛날 스님네들은 그 ‘장판때’라는 말을 많이 사용을 했습니다.

여기에 모이신 도반들은 결단코 그러한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말이 해당이 된다면 안 되겠다고 하는 도반으로서의 노바심(老婆心)에서 나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하고  고독지가수막상(蠱毒之家水莫嘗)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인유밀불수저(利刃有蜜不須舐)요, 날카로운 칼날에 꿀이 묻어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 꿀을 핥아먹다가 혀를 베게 되는 것이니 설사 칼끝에 꿀이 묻었다 하더라도 그 꿀을 핥아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고독지가(蠱毒之家)에 수막상(水莫嘗)이여. 고독지가(蠱毒之家)라 하는 것은 그 흉가(凶家)—샘에 독이 풀어져 있는 집의 물은 아무리 목이 마른다 하더라도 그 물을 먹지를 말아라 이것입니다.

무엇이 칼날 위에 꿀이고 고독지가에 물이라는 게 무엇이냐?

수행자는 명예나 이끗이나 재색(財色)이나 이양(利養)이나 모다 이러한 것들이,
누가 나한테 따뜻하게 잘 해주고, 잘 보시를 하고, 좋은 옷을 해주고, 약을 지어주고, 명예를 주고, 어떤 권리를 주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그러한 것들이 다 칼날 위의 꿀이고 고독지가(蠱毒之家)의 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항상 냉정하고 쌀쌀하고, 무슨 그러한 이끗이나 이양이나 재색(財色)에 그런 데에 솔깃하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는 코뿔소의 코뿔처럼 외롭게 지내라’ 그러셨습니다.
다른 모든 짐승은 뿔이 두 개씩인데 코뿔소는 코끝에 뿔이 하나가 딱 있는데, 그 하나만을 앞세우고 일생을 사는데 ‘그렇게 외롭게 살아라.’

이끗과 명예 모다 그런 데에 부합을 하지 말고, 그런 데에 넘어가지 말고,
돈 많이 주는 데 찾아당기고, 맛있게 해 주는 데 찾아당기고, 그런 데에 휩쓸리지를 말고, 먹고 잘 먹고 못 입는 것은 그것은 인연에다 맡겨.

가난한 데에 검박하고 그래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런 데를 찾아가야지,
돈을 생각해서 찾아가고, 맛있게 잘 받들어 주는 데만 찾아다니면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칼끝의 꿀을 빨아먹다 혀를 짤리는 거고, 고독지가에 물을 먹다가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된다 그 말입니다.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요.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비켜서 들어가.
도처가 간 곳마다 시비가 끊어지는 데가 없고,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시비는 있기 마련이고, 그런 시비에 말려 들어가지 말고 그 시비 속에서도 몸을 비켜서 나가는 거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표범과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그런 속에 자재(自在)하게 행해야 한다 그 말인데,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종단이 퍽 시끄럽습니다.

총무원, 조계사 모다 전국승려대회도 일어나고, 이 파 저 파 해 가지고 천여 명씩이 모아서 온갖 불상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어떻게 하면 종단을 잘해 나갈까? 자기가 나가야 이 종단을 잘해 나가겠다. 피차 그런 마음에서 하다보니까 충돌이 생기고, 외부에서 볼 때에는 대단히 참 가슴 아픈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 분은 그런 나름대로 종단을 걱정하고 불교의 장래를 걱정해서 자기가 나가야만 되겠다고 하는 그런 끓는 용기와 원력으로 모다 그렇게 하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것이 진정코 종단을 위하는 일인가? 불교를 위하는 일인가? 그것은 생각하는 사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을 것이고, 일양으로 매도할 일도 못되고,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은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이 수행자로서 불자로서 목표를 삼고 나가야 하는 것인데,

대발심(大發心)을 해서 대지혜와 대자비로 실천 수행하는데 있어서 각자 자신의 원력과 또 자기 믿는 선지식의 지도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는 사람 또 주력(呪力) 공부를 하는 사람, 염불을 하는 사람 또 나름대로 자기가 터득한 부처님의 말씀을 포교하는 데에다가 관점을 두고 또 그렇게 해 나가는 사람,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수행을 해야겠다 또는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념주관(四念住觀), 비파사나(Vipassanā)라고 하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을 향해서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다 있어서 나름대로 열심히 그렇게 수행을 하고 있는데, 각자 그 근기와 수준에 따라서 이것이 그 단계에 따라서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 저렇게 수행하는 사람, 여러 가지 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직절근원(直截根源)하는 이 활구참선에 의해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이신 것입니다.

종단이 이렇게 시끄러울수록에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각자 다른 철보다도 훨씬 더 자가(自家) 중심(中心)을 탁 세우고서 정말 알뜰하고 짬지게 이 한 철을 잘 지내주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스스로의 자기의 깨달음을 얻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공부를 게을리 하고서는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통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금년 삼동(三冬) 안거는 다른 안거 때보다도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그 선원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조용하게 말없는 가운데에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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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남북동서무정착~’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62 ‘혜총선자(慧聰禪子)를 보내며’ 게송 참고.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혀끄터리 ; 혀끝(혀의 앞쪽 끝 부분). '끄터리'는 '끄트머리(맨 끝 부분)'의 사투리.
*고량진미(膏粱珍味 기름 고/기장 량/보배 진/맛 미) ; 기름진 고기와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산해진미(山海珍味) ; 산과 바다의 온갖 진귀한 산물을 다 갖추어 차린, 매우 맛이 좋은 음식.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선열(禪悅) ; ①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 ② 참선할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짬지다 ;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근신(謹愼 삼갈 근/삼갈 신) ; 말이나 행동, 마음가짐을 삼가고 조심함.
*해이하다(解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가)긴장이 풀어져서 느슨한 상태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게송) ‘利刃有蜜不須舐  蠱毒之家水莫嘗’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대혜고(大慧杲) 게송 참고.
*(게송) ‘是非海裏橫身入  豹虎群中自在行’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권 1칙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고독(蠱毒 벌레·害毒 고/독 독) ; 뱀, 지네, 두꺼비 등의 독(毒). 또는 그 독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어서 생기는 병. 복통이나 가슴앓이, 토혈(吐血), 하혈(下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끗(利끗) ; ①이익이 되는 실마리. ②잇끝(말리 末利)—지말(枝末), 지엽(枝葉)적인 이익. 작은 이익.
*재색(財色) ; 재물(財物)과 타인의 몸(色).
*이양(利養) ; ① 산스크리트어 lābha  이익(利益). 이득(利得). 획득한 물(物 : 특히 출가자에 대하여 말함). 남에게서 물건을 받는 등 실질적인 이득(利得)을 말함.
② 이익(利益)을 얻어 자기몸을 보양하는 것. 재물을 탐하여 자신을 살찌우는 것.
③ 산스크리트어 satkāra 존경. 존중. 공경. 공양.
*솔깃하다 ; (사람이 어떤 일에)마음이 끌리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사념주관(四念住觀) ; 깨달음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고 장엄하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 또는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가운데 하나이다.
사념처관(四念處觀)·사의지(四意止)·사념(四念)이라고도 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念處]. 네 종류의 수행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염(念, sati, 마음챙김)은 ‘마음을 챙김’으로, 구체적인 의미는 ‘마음이 대상을 챙김’이다.
“여기서 마치 송아지 길들이는 자가 [송아지를] 기둥에 묶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염(念, sati, 마음챙김)으로써 대상을 굳게 묶어야 한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서.

염(念, sati, 마음챙김)의 대상인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身·受·心·法]에서 그들을 각각 더러움[不淨], 괴로움[苦], 무상(無常), 무아(無我)라고 파악하면서, 또 깨끗함, 행복, 항상함,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는 역할을 성취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러므로 사념주(四念住, 四念處)라고 한다.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정견(正見)·관찰(觀察)·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마음부수[心所]·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직절근원(直截根源) ; 근원(根源)을 바로 꺾었다(다스리다). 근원에 몰록 들어갔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자가(自家) ; ①자신의 집. ②자기 자체.
*중심(中心) ; ①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부분. ②사물이나 일정한 장소의 가장 가운데가 되는 곳. ③굳게 잡은 마음. 또는 확고한 생각이나 태도.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스님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21. 8. 13. 07:13

§((세등51)) 『논어(論語)』,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 (게송)종타방임타비~ / 누가 나를 그렇게 헐고 뜯고 해도 그 말을 감로수(甘露水)처럼 달게 받아 마셔서 수행해 나가는 데 밑거름을 삼아라 / 불자(佛子)라면 바다와 같은, 하해(河海)와 같은 아량을 가지고 살아가라.

무슨 시비가 나한테 상관이 있어? 칭찬을 해도 좋아할 것도 없고,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러울뿐이여. 나를 헐고 뜯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속상할 것이 없어. 거기서 너그러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들여서 더욱 수행해 나가는 데 밑거름을 삼는다면 그 사람은 일장월취(日將月就), 나날이 발전하고 다달이 승화되어 갈 것이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51)—1984(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어(84.07.17) (세등51) (하심팔풍)

 

 

 

약 12분.

 

 


유교 경전에 『논어(論語)』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이 사서(四書) 중에 하나인데, 그 논어의 첫마디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워서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즉 기쁘지 아니한가'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면 불역낙호(不亦樂乎)아. 벗이 있어서 먼 데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되, 성내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별로 뭐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지 아니한데, 깊은 뜻이 있지 아니하면 왜 논어에 첫마디에 그것이 있을까 보냐?  무슨 경전이든지 첫마디에 있는 법문이 그 경전에 최고에 깊은 진리를 표현했다고 보면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워서 때때로 익힌다' 하는 것은 무슨 글공부를 글을 배워 갖고 그것을 자꾸 읽어 쌓으면 기쁘지 아니하냐. 그러한 피상적인 뜻이 아니라, 도(道)를 얘기한 것입니다.

선지식으로부터—우리 불교, 이 선학(禪學) 이 종문(宗門) 중에다가 비유를 한다면,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도 닦는 법을 배워 가지고 시시때때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열심히 공부를 하면 얼마나 기쁘냐 그 말이여. 기쁘지 않겠느냐?
아 공부를 하면 '참 내가 어쩌다가 이런 좋은 최상승법을 만났는가? 내가 어쩌다가 이 몸뚱이를 받아 나서 이런 좋은 법을 만났는가?' 밥 먹다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기쁘고, 중생들의 그 고해(苦海)에 빠져서 그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허덕이는 것을 보면은 불쌍하면서 가엾으면서, 내 자신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참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 말이여.

그다음에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면 불역낙호(不亦樂乎)아.
벗이 있어서 먼 데서 오면—막걸리 친구나 뭐 동창생이 찾아오면 얼마나 기쁘냐? 그러한 말이 아닙니다. 같이 발심(發心)을 해서 도를 닦은 도반이 내가 공부를 참 잘한다는 말을 듣고 나를 만나기 위해서 찾아온다면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그 말이여. 내가 출가해 가지고 별로 훌륭하지를 못하고 도를 잘 못 닦고...(녹음 끊김)

성내지 아니하면 이것이 군자(君子)가 아니냐?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수행인이 아니냐 그 말이여.
자기가 조금 뭣 좀 한다고 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래고 그것을 자랑하고, 내가 제일이라 하는 생각을 갖고 남을 헐뜯고 한다면은 이것을 어찌 참다운 수행인이라 할 수가 있겠느냐?
유교에 있어서 군자(君子)란 말은 불교에 있어서 '진실한 수행인이다. 또는 보살이다' 이러한 정도에 뜻과 같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살 십중대계(十重大戒) 가운데에 하나에, 불자찬훼타(不自讚毁他)라고 하는 조항이 있는데,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고 하는 것은 보살이 지켜야 할 십중대계에 하나를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답지 못한 사람이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을까 보냐 그 말이여.
세속에 선비도 조금 어지간한 사람은 그러한 법이 없거늘, 하물며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을 결별해 버리고 생사를 바쳐서 최상승법을 닦아 가는 수행인이고서야 더욱 말할 것이 있느냐 그 말이여.


종타방임타비(從他謗任他非)여  파화소천도자피(把火燒天徒自疲)니라
나무~아미타불~
아문흡사음감로(我聞恰似飮甘露)하고  소융돈입부사의(銷融頓入不思議)니라
나무~아미타불~

종타방임타비(從他謗任他非)여, 남이 나를 비방하면 비방하는 대로 맽겨둬 버리고, 나를 헐고 뜯으면 헐고 뜯는 대로 그 사람한테 그 맡겨둬. 맘대로 하라고.
파화소천도자피(把火燒天徒自疲)니라. 횃불을 들고 허공을 불사르려고 하는 것 같애서 저만 피로하고 말 것이다 그 말이여. 횃불을 들고, 아무리 훨훨 타는 큰 횃불을 가지고 이 하늘을 불사를라고 막 해봐라 그 말이여. 허공이 타는가? 그러다가 저만 피로해 가지고 지쳐 쓰러지거나 잘못하면 불똥이 튀겨서 지 몸이 타고 말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나 아문흡사음감로(我聞恰似飮甘露)하면, 나는 누가 나를 그렇게 헐고 뜯고 해도, 그 헐고 뜯고 비방하는 그 말을 감로수(甘露水)처럼 달게 받아서 마시면—내가 잘못해서 나의 단점을 누가 헐고 뜯는다면은 그 말을 감사하게 듣고 자기를 반성하고 고칠 것이고, 나는 실지로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모략 중상을 한다면 그렇더라도 그 말을 '아 내가 그래도 전생에라도 뭣을 잘못한 점이 있거나, 나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지마는 나에게 그런 잘못이 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말을 감사하게 듣고, 감로수처럼 받아서 먹어서 잘 소화를 시켜버리면,
소융돈입부사의(銷融頓入不思議)하리라.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 비방하고 헐고 뜯고 한 그것이 소화가 되어 가지고 부사의(不思議)한 경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나는 선지식이 되고 불보살이 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 감로수를 마시고. 이것이 바로 진실로 발심한 수행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조금 뭐라고 한다고 파르르르르 신경질을 내고 속으로 감정를 품고, 꽁하니 미운 생각을 속으로 품고, '언젠가 저년을 갖다가 내가 한바탕 봐주리라' 이러한 소인(小人)의 근성을 가져서 쓸 것인가 이 말이여.
부모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도를 닦은 사람이 어찌 감로수처럼 받어 마셔야지, 그러한 말을 듣고 감정을 품고 언젠가는 봐줄려고 하는 꽁한 복수심을 갖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냐.

아 그말을 감로수처럼 받아 마시고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누가 나 안 듣는 데서 욕을 하거나, 듣는 데서 욕을 하거나, 나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면 어찌 나에 대해서 말을 할까보냐 그 말이여.
성현의 말씀에도 나를 칭찬해 준 사람은 도적이요, 나의 단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은 스승이요 은인이다 그랬어. 하물며 출가인 분상에 그만한 것을 이해를 못하고, 소화를 시키고 거기에서 살아가지를 못하고 죽음의 무덤을 판대서야 말로 할 수가 없거든.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대중방에 나가야 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만한 정신 자세가 되어 있지 아니해 가지고 선방에 나갈 자격이 있는가? 선방에 나간다면 강원의 학인도 그러지 못하고, 선방에 나가서 참선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쯤은 되어야 해. 이쯤되어 가지고 나가 보라 그 말이여.
무슨 시비가 나한테 상관이 있어? 칭찬을 해도 좋아할 것도 없고,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러울뿐이여. 나를 헐고 뜯는다 하더라도 그 그렇게 속상할 것이 없어. 거기서 터억 너그러운 마음, 기쁜 마음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그 말을 받아들여서 더욱 수행해 나가는 데 밑거름을 삼는다면 그 사람은 일장월취(日將月就)여. 나날이 발전하고 다달이 승화되어 갈 것이다 그 말이여.

스님네뿐만이 아니라 세속에 계시는 청신사 청신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자(佛子)라면 응당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이만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바다와 같은 하해(河海)와 같은 아량을 가지고 살아 가신다면은 바로 그이가 보살(菩薩)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보살, 여자 신도를 보살(菩薩)이라고 부르는데 그만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 나가셔야 한다 그 말이여.(42분2초~54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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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472)) (게송)우후정화연야발~ / LA 인종 폭동(1992년). 인과법(因果法)의 과보(果報) / 참선법을 배워야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 / 백인이나 유색 인종이나 인간의 본성(本性)에 있어서는 차등(差等)이 없는 것 / 자기 마음 하나를 잘 다스려야.

 

 

약 21분.

 

 


**송담스님(No.472)—1992년 5월 첫째일요법회(92.05.03) (용472) (하심팔풍경계대처)

우후정화연야발(雨後庭花連夜發)하여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화응유의향인소(花應有意向人笑)언만  만원선승공도춘(滿院禪僧空度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우후정화연야발(雨後庭花連夜發)하니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로구나.
비 온 뒤 뜰에 꽃이 밤을 이어서 피었어. 비가 오니 그 비 기운을 받아서 뜰에 꽃이 아주 만발을 했다 그 말이여.
청향산입효창신(淸香散入曉窓新)이다. 그 꽃에 맑은 향기가 나부껴서 새벽 창을 뚫고 들어왔어.

화응유의향인소(花應有意向人笑)언마는, 그 만발한 꽃은 응당 뜻이 있어서 사람들을 향해서 웃고 있건만,
만원선승(滿院禪僧)은 공도춘(空度春)이로구나. 이 선원에 가득한 모든 대중들은 그 꽃에 깊은 뜻을 모르고서 공연히 이 봄을 지내고 있구나.

편양(鞭羊) 선사의 게송입니다.


오늘은 임신년 5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몽산법어(蒙山法語)』에 나오는 그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라고 하는 분이 그 제자를, 참선하러 떠나는 제자를 향해서 설한 법문[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을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금년도 벌써 5월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눈이 오고 우박이 쏟아지고 비가 오고, 벌써 꽃은 만발하고 있지마는 벌써 여름이 머지않아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 입하(入夏)가 돌아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세월은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간 줄 모르게 지나가고 또 오는 소식도 없이 이렇게 오고, 그렇게 해서 재촉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흰머리가 생기게 하고 주름살이 불어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사형(死刑) 집행일이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서 잘 아시겠지마는, '미국은 민주주의 나라고, 살기 좋은 나라고, 부자의 나라고, 세계에서 제일 참 좋은 나라라고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모다 말들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나라에 흑인들 폭동(暴動)이 일어나 가지고[LA 인종 폭동(1992년)], 폭동이 일어난 피해를 입은 제일 큰 대상이 한국 사람들이라 하니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좀더 잘살아 보려고 미국을 갔는데 무엇을 잘못해 가지고 흑인들이 한국 사람을 상대해서 800개에 가까운 한국 사람의 가게에다가 타거나 파괴가 되고 약탈을 당했다 하니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금생에 설사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잘살아 보려고 애썼을지언정 무슨 흑인들에게 잘못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백인에 대한, 백인들이 흑인을 차별 대우한 그 원한을 참 애잔한 한국 사람들한테 한풀이를 한 모양인데, 우리는 인과법(因果法)을 믿기 때문에 그 인과법에 입각해서 이것을 살펴보면 '설사 금생에 잘못한 것이 없다 하더라고 전생에 잘못한 그 과보(果報)가 있어서 금생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흙으로 빚어서 구웠는데, 처음에 구운 것이 너무 불이 약해 가지고 허옇게 나왔어. 그것이 백인(白人)이고. 너무 허옇게 나와서 화력을 좀 강하게 했는데 너무 화력이 강해 가지고 시커멓게 구워진 것이 검둥이고. 그래서 세 번 만에 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게 적당하게 구운 것이 황인종(黃人種)이다. 우리 동양 사람들은 황인종이거든.

그런데 그러한 황(黃)이라 하는 것은 중(中)입니다. 검은 것은 북(北)이고, 빨간 것은 남쪽이고, 흰 것은 서쪽이고, 푸른 것은 동쪽이고 그리고 노란색은 중앙인 것입니다. 이것이 다섯 가지 색, 오색(五色)을 동 · 서 · 남 · 북 · 중앙에다가 배대(配對)를 하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황인종은 중앙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황인종은 '가장—너무 굽지도 않고, 너무 덜 굽지도 않고—적당하게 구워진 것이 바로 동양의 황인종이다' 인자 그러한 비유의 말이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우리 동양 사람은, 그러한 성현도 동양에서 많이 나오고, 그에 따라서 진리의 개발도 동양에서 일어나고, 모든 문화도 동양에서부터 발원지(發源地)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는 모다 물질문명을 다투어서 발전을 시켜 가지고 모다 살기에 편리하고, 또 그것이 악용이 되면은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서 사람을 모다 죽이고 세계를 멸망케 하는 그러한 위험한 면이 있지만,
우리 동양은 '어떻게 하면 사람의 본성을 개발해서 그래서 진리를 자기에게 찾아 가지고 영원한 행복을 얻고, 나아가서 온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느냐' 이러한 쪽으로 동양의 성현들은 공자님이나 부처님이나 또는 노자나 동양의 성현들은 전부 그러한 방향으로 문을 열어서 우리로 하여금 진리에 나아가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가 동양인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그것 가지고서는 자기 자신도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 가지고 세계평화는 이룩되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 동양 사람들에게 와서 이 참선법(參禪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거기서 열리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고, 백인은 유색 인종(有色人種)을 무시한다 그말이여. 이번에는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흑인들한테 피해를, 본의 아닌 참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입었지만 그것으로써 끝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물론 백인들이 그것을 자각을 하고 유색 인종을 멸시하고 탄압하고 무시하고 천대하는 그러한 생각들이 마음에서 없어진다면 혹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없어지지 않고 백인이라 해서 우월감을 가지고 유색 인종을 종 부리듯 생각하고, 법으로는 물론 평등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흑인뿐만이 아니라 황색 인종까지도 백인들은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과보를 머지않아서 한국 사람이 이번에 당한 것 몇십 배, 몇백 배를 당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미국은 흑인이 지배하는 시대가 앞으로 오십 년, 백 년 후에는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그러한 참혹한 일을 당하지 아니하려면은 마음속에서 유색 인종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그런 마음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우선 법적으로 했지만, 법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실지로 마음속에서 그런 생각이 없어져야만 그런 무서운 과보를 면하리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행여나 백인들이 이 동양 사람, 황색 인종을 무시하니까 황색 인종은 그 마음을 검둥이들한테 부애풀이를 한다든지, 겉으로 부애풀이는 못해도 마음속으로 천대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희거나, 검거나, 누르거나, 전혀 인간의 본성(本性)에 있어서는 차등(差等)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얼굴이 희다 하더라도 마음을 검게 쓴다면 검둥이만 못할 것이고, 설사 얼굴이 누르거나 검더라도 그 마음을 부처님을 믿고 진리를 믿는 마음으로 지혜와 자비로써 모든 사람을 상대한다면 그 사람은 백인보다도 훨씬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귀의 노예가 되고, 눈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귀와 눈은 우리의 마음이 활동하는 문(門)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 문(門)에 지나지 못한, 눈에 비친 색상과 귀로 들어오는 소리, 그것에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다면 무서운 삼악도(三惡途)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으로 무엇을 보건, 귀로 무엇을 듣건, 항상 거기에서 자기의 본심(本心)으로 돌아가고 본지(本旨)에 입각해서 행동을 하고, 본지에 입각해서 말을 하고, 본지에 입각해서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삼악도를 면할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자꾸 불어나서 가정에서, 사회 국가에서, 온 세계에서 자기의 본심을 찾는 본지에 입각한 생활을 해 나간다면 세계평화는 반드시 오고야만 말 것입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싸움을 하고, 빛깔이 다르다고 해서 싸움을 하고, 사상이 다르다고 해서 싸운다면 결국은 온 세계는 원래는 다 한 집안 식구고, 한 형제간인데, 형제간끼리 싸우는 것이 되고, 집안끼리 싸우는 것밖에는 안된 것입니다.
가깝게 생각하면 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에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싸우고, 형제간에 서로 의사가 다르다고 해서 싸우고, 한 가족 안에서도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고부간(姑婦間)에 싸우고 형제간에 싸운다면 그 가정이 불행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인 것입니다.

얼굴 빛깔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히 여기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히 여기고, 그러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가고 언제나 근본에 의해서 근본을 향해서 공통점을 찾아 나간다면 지엽적으로 다른 점은 다 거기에서 적당하게 융화가 되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철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선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구참(久參)의 생각과 신참(新參)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남방에서 온 사람과 북방에서 온 사람이 다를 수가 있고, 다를 것이나 그 선원의 근본 규범에 서로 자발적으로 순종을 하고 개인의 의사를 지나치게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선원은 석 달 동안 아무 장애가 없이 정진을 잘해서 해제(解制)를 맞이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일을 자기의 의사만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짓밟는다면 중간에 결국은 걸망을 싸고 도망가게 되고, 서로 언쟁이 끊일 날이 없을 것입니다.

선방에 규범이 있고, 가정에는 가훈이 있고, 국가에는 헌법이 있고, 온 세계에는 인륜이라고 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왜 이러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느냐?
문제는 자기 마음 하나를 다스리지를 못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의 마음만 다스릴 줄을 알고 자기의 감정만 다스릴 줄 안다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신사요, 숙녀요, 모범이 될 수 있는, 존경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처음~21분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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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21. 7. 15. 06:50

§((466))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안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어떤 경계에도 집착하지 말고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해야.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구경의 깨달음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정진하는 데 몸을 단정히 갖되 힘을 주지 마라 / 화두를 안된다고 해서 바꾸지를 말아라 / 구경각(究竟覺), 확철대오해서 조사(祖師)와 같은 경지가 아니라면, 스스로 그것을 버리고 여법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을 해 나가야 / 영가 천도를 인연이 닿으면은 해 주시는 것도 좋은 일.

**송담스님(No.466)—1992년 동안거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 (용466) (하심팔풍경계대처)

 

 

(1) 약 15분.

 

 

(2) 약 13분.

 


(1)------------------

큰 추위는 없었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겨울은 좀 춥고 여름은 덥고 그런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좋다고 모다 그렇게 생각되어 왔는데, 여기는 해변가가 되어서 해마다 겨울에는 강한 추운 바람이 불고 그래서 새벽에 모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예불 젓숫고 하는데 모다 노보살님들이 감기에도 많이 걸리시고 모다 그랬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겨울이 그렇게 춥지 않은 것이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어피차 편안하고 자유롭고 따뜻한 가정을 떠나서 이렇게 선원에 오셔서 정진하시게 되면, 아무리 고단하고 춥고 힘이 들어도 새벽에는 일어나야 하고 또 잠자리가 편틀 못하고, 눕고 싶을 때 눕지 못하고,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여러 가지 참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이렇게 와서 서로 다투어서 방부(房付)를 드리고 또 심지어는 인원이 차서 방부를 못 드리고 또 울고 돌아가신 분도 많이 계신 줄 알고 있습니다.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고행을 무릅쓰고 이렇게 정진할라고 하신 여러 신도님네들 또 거사님 보살님, 참 갸륵하고 그 고마움을 원장으로서는 참 가슴깊이 느끼는 바입니다.

금생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지 아니하면—편안한 것만 취하고, 맛있는 것만 취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염라대왕 앞에 가면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힘이 들고 어렵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로 그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수행을 해 놓은 사람만이 세세생생에 또 영원토록 참다운 편안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진을 해 나가는 데 처음부터 흡족하게 그렇게 수월하게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첫째는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자기가 지어 놓은 업(業)이 있기 때문에, 그 업이 천차만별이어서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방법으로 정진을 해도 육체적으로 오는 거, 정신적으로 오는 거, 그 나타나는 경계라고 할까 그런 것이 다 다른 것입니다.
능엄경(楞嚴經)에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보면 자기가 지은 업과 현재 정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의 생각들 그런 차이로 해서 여러 가지 경계(境界)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입승(立繩) 스님이 적어 온 걸로 보면 사람 따라서 나타나는 경계가 여러 가지로 있는데,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안 좋은 경계라고 느껴지건 그러한 경계에 집착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법회 때마다 말씀을 했지마는 그런 경계는 집착(執着)을 하면은—환한 경계가 나타난다든지, 껌껌한 이불 속에서도 환히 머리카락이 다 보일 정도로 환하다든지, 머리가 시원하고 개운함을 느낀다든지, 미래 일이 나타난다든지, 꿈속에 뭘 느꼈다든지, 꿈속에 어떤 분이 나와서 뭐라고 일러줬다든지, 사람 몸을 보면 환히 오장육부가 다 보이고 어디가 병이 들었는지 그것도 다 알 수가 있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전생이 어떻다는 것도 알게 되고 또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거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든지, 자기 몸이 풍선처럼 가벼움을 느꼈다든지,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것에 집착하면 공부가 삐뚤어져 나가는 거고, 그런 것에 전혀 생각을 두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좋다 나쁘다’ 생각을 갖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둔 채 자꾸 바른 자세로 화두(話頭)를 들고, 화두를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잡드리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런 경계가 나타났으니 내가 이거 깨달음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것에 대해서 밤낮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그런 것을 자랑하고, 그래 가지고 자기가 지금 공부가 상당한 지경에 이른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남에게 그것을 인정받으려고 자랑을 하고 이런 것은 진실한 수행자에게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보통 이러한 철저한 신심과 법문을 들은 사람이 아니면,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스스로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여. 하도 신기하니까.
그러나 그런 법문(法門)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것에 하도 신기하고 이상하고 묘하고 그러니까 관심을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그런 법문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데에 혼탁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그런 것에 집착하면 벌써 사견(邪見)에 떨어진 것이고, 공부가 삿된 대로 빠져서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점쟁이 같은 거, 이상한 모다 신기(神氣)가 있는 그러한 존재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탁! 놔 버려야 하거든.


그리고 정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몸을 단정히 갖되 몸의 어느 부분에도 힘을 주어서는 안 돼.
허리를 쭈욱 펴고 단정히 앉되 손을 이렇게 수계(手契)를 하는데, 여기도 너무 엄지손에 힘을 준다든지, 또는 엄지손과 (엄지)손이 떨어진다든지 이렇게 비틀어진다든지, (엄지)손으로 이렇게 손장난을 한다든지 그래서는 안 되고, (양 엄지손을) 대되 전혀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대야 돼.

어떤 분은 힘을 꼭 줘야 화두가 잘된 것 같이 느껴진다는 그런 분도 있는데, 그러더라도 (힘을) 꽉 주지 말고 가볍게 대야 돼요. (힘을) 꽉 주면은 나중에는 몸 전체가 그리 힘이 주어지기 때문에 공부해 나가는 데 지장이 있을 수가 있으니까, 우선 힘을 주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대기만 하고.
또 눈에다가 힘을 주고—간절히 의심을 할라고 하면은 미간(眉間)에 ‘내 천(川)’ 자가 쓰여질라고 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거기다 힘을 주어서는 안 돼.

힘을 주지 말고 또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단정하면서도 어깨에도 힘을 주지 말고, 목에도 힘을 주지 말고, 또 미간에도 힘을 주지 말고. 힘을 어디다가 주었다 하면 정진해 나가는 데 장애 요소가 거기서 생길 수가 있다 그거거든.

그러면 단전(丹田)에다 힘을 준 것은 어떠냐?
단전은 숨을 들어마실 때는 약간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차츰차츰 홀쭉하게 하니까 거기에는 약간 힘이 들어가질 수가 있는데 그것도 너무 힘을 많이 주어서는 안 돼. 기분상으로만 가볍게 그렇게 하는 것이지, 너무 힘을 주어서는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걸 말씀을 드리고.


그 화두를—이 화두를 하니까 잘 안되어서 저 화두를 하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했다가 ‘무자(無字)’로 했다가 또는 ‘시삼마(是甚麽) 이뭣고’를 했다 이러는데, 안된다고 해서 화두를 자꾸 바꿔 쌓으면, 새로 바꾸면은 된 것 같다가 나중에 얼마 지내면은 옛날 것이 또 생각이 나 가지고 그것을 들어보면 또 잘되고.
그래서 화두는 아무리 안되어도 한 화두를 가지고 자꾸 여법(如法)하게 단속을 해 나가면 나중에 언젠가는 된 때가 오는 것이지, 안된다고 해서 또 바꾸고, 또 해 봐서 안된다고 또 바꾸고, 자꾸 바꿔 버릇하면은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니니까 ‘여러분들 절대로 화두를 안된다고 해서 바꾸지를 말아라’ 그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고.

이미 바꿔 가지고 현재 잘 되어간다면 그분은 그냥 그것으로 해 나가십시오. 그동안에 자꾸 바꾼 것은 대단히 잘못된 거지만, 이미 바꾼 지가 오래되어 가지고 그대로 쭉 잘 되어가면 그분은 고대로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자기 마음대로 화두를 바꾸면 정진하다가, 쭉 해 나가다가 중요한 고비가 닥쳤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여.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화두를 바꾸는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니까 그것을 조심을 하시고.(처음~13분37초)





(2)------------------

공부를 하다 보면 확 트인 것처럼 시원하고 개운하고 그러한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일시적인 경계니까 ‘이것이 좋으네 나쁘네’ 그런 생각도 할 필요가 없어요.
'좋다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확 트인 것처럼 느끼거나 뭐 성성하거나 적적하거나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런 데에 집착하지 말고, 그런 데에 '좋냐 나쁘냐?' 자꾸 그걸 가지고 싱갱이를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둬.

좋으면 좋은 대로, 시원하면 시원한 대로, 환하면 환한 대로, 껌껌하면 껌껌한 대로 그냥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렇게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아! 사람 건강도 소화가 잘되다 안되다, 뱃속이 거북하다 설사하다가 그렇지만, 그때그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할 거냐 말이여.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고 놔두고 살아가는 거지, 그것이 무슨 큰 괴변(怪變)이나 일어난 것처럼 무슨 큰 일로 취급을 하지 말고, 하다 보면 그런 것도 있으려니 하고 그냥 고대로 놔두고 여법하게 정진만 주욱 해 나가면 상관이 없는 것이니까.

가끔 말씀을 드렸지마는, 어떠한 뭐 밥을 먹다가 한다든지, 차를 마시다가 한다든지, 목욕을 하다가 한다든지, 무슨 소리를 들은 찰나에 그냥 막힘이 확 트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무슨 시(詩)가 나오기도 하고, 다른 공안에 대해서 그냥 의심이 하나도 막히지를 않고 그런 것을 느끼는 수가 있습니다. 여러 해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그런데 정말 바로 깨달았는가? ‘바른 깨달음을 얻었냐, 안 얻었냐’ 하는 것은 자기 혼자로서는 결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자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그래서 선지식이 필요한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점검을 받아야지 혼자로서는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고.
또 아무한테나 물어봐 가지고 옳다고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그것도 참 정말 바른 지혜를 갖춘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아야지, 아무한테라도 가서 받아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데 공부하다가 그런 소견이 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인데, 구경의 경지에 이르르지 않았다면 그러한 소견도 그러한 경계도 깨끗이 놔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거듭 말씀을 드린 것은 누구나 정진하다 보면 텅 빈 경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공안에 대해서 아무 의심도 다 없어져 버리고 너무너무 머리가 개운하고 그런 경계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경의 깨달음—구경각(究竟覺), 확철대오해서 조사(祖師)와 같은 그런 경지가 아니라면, 스스로 ‘이것이 참 깨달음이 아니다’ 한 것을 스스로 그것을 버려 버리고, 부정해 버리고 여법하게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향해서 정진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항상 자기에 영가(靈駕)가 붙어 갖고 있는데, 절 문안으로만 들어오면 영가는 거기서 떨어져서 절에서는 떨어져 버리고 또 절에서 일 다 보고 그러고 나가면은 딱! 또 들어붙고 그런다는 분도 제가 알고 있습니다마는, 영가가 그렇게 붙고 떨어지고 하는 거.
또 항상 영가가 눈에 보여. 남 49재 하는 데도 가서 보면은 그 49재 하는 그 영가가 눈에 다 보인다 그 말이여. 생전시에 무슨 옷을 입고 얼굴은 어떻게 생긴 것을 환히 다 알고, 그래 갖고 재자(齋者) 보고 ‘지금 오늘 49재 지낸 분이 얼굴이 이렇게 생겼고 무슨 옷을 입고 그랬냐’ 하면, ‘그렇다’고.
그런 것이 보인 사람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것은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특수한 사람에게는 영가가 보일 수도 있고 또 영가가 붙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道)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여.

영가라 하는 것은 내나 우리는 ‘몸뚱이가 있는 영가(靈駕)’고, 영가는 ‘몸이 없는 사람’이니까, 혹 지금 이 방에도 영가가 있을 수가 있고, 법당에도 법문할 때는 우주법계의 영가를 다 초청을 하니까 다 영가가 다 들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우리 이 사바세계에 사는 우리 일반 사람에게는 그런 영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그것이 정상적이죠. 보인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고 그런데.
영가는 사람이 죽어서 49재에 딴 데로 다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떠날 수도 있고, 백일에 떠날 수도 있고, 소상(小祥)에 떠날 수도 있고, 대상(大祥)을 지내고 떠날 수도 있고, 소상 · 대상 다 지내고도 떠나지 않고 자기집에서 그냥 또 그렇게 영가가 머물러 있는 수도 있고, 50년 내지 100년간도 안 떠나고 그 집에서 머물러 있는 수도 있다고 그럽니다마는.

참 이 영가는 나는 내 눈으로는 아직 영가를 보지를 못했고, ‘몸뚱이 있는 영가’는 많이 보지마는 ‘몸뚱이 없는 영가’는 내 눈에는 잘 안 보여요.

그래도 본인이 영가가 자기에게 보이고 자기 몸에 항상 붙어 있고, 꿈에도 많이 나타나기도 하고 모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니, 그런 분은 내 생각에는 전생에 지은 업(業)에 따라서 또 금생에 와서 지은 업에 따라서 특수한 그런 체질이라고 할까, 특수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영가가 보이고 나타나고 또 몸에 항상 따라다니고 하면은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상관이 없는 거고, 인연이 다하면 떠나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그냥... 그런 분은 항상 계행(戒行)을 잘 지켜야 하고 심성을 착하게 곱게 써야 하고 또 백중이라든지 법보재라든지 모다 그런 때는 항상 그런 영가들을 위해서 천도(薦度)를 잘 해 줘야 하고 그렇죠.

대부분 그런 분에게 또 그런 영가가 많이 따르고 꿈에도 나타나고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이 우주법계에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그런 참 외로운 영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도를 잘 해 주고, 또 그분한테 가까이 가야만 천도를 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될 경우 그런 분한테 인연 있는 영가가 따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배고픈 사람 밥을 잘 준다’고 소문이 나면은 팔도(八道)의 모다 걸인들이 그 집을 찾아가기 마련인 것입니다. 옛날부터. 그와 마찬가지로 영가 천도를 잘 해 주고 자꾸 그런 분에게는 그런 영가들이 꿈에 와서 현몽(現夢)을 대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천도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까 힘닿는 대로 잘 천도를 해 주신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밥 없는 사람 밥을 주고, 옷 없는 사람 옷을 주고, 직장이 없는 사람 직장을 알선을 해 주고, 병든 사람을 병을 치료해 주고 그러면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와서 잘 봐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또 영가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영가 천도를 그런 인연이 닿으면은 또 해 주시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또 어떤 분은 염라대왕이 자기를 끌고 갈라고 하는 그런 것을 느낀다고 그러는데, 염라대왕이 일부러 와서 자기를 끌고 간가 어쩐가 그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면, 끌려가기 싫어서 안 끌려간다면 그건 잘된 일이고, 그러나 언젠가는 가게 될 테니까 너무 그걸 미리서부터 걱정하실 것은 없고.
염라대왕이 끌고 갈라고 하거나, 염라대왕이 보낸 사자(使者)가 와서 끌고 갈라고 하거나, 참선한 사람은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가다듬고 ‘이뭣고?’를 딱 챙기시면 비명(非命)에 끌려가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꼭 가게 될 인연이 되면은 조금도 두려운 생각하지 말고 ‘이뭣고?’를 하면서 갈 때 되면 가는 것이지 뭐, 이 세상에 한번 왔다가 안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까, 가게 될 때는 가더라도 ‘이뭣고?’ 하는 마음으로 가면 그 상관이 없다 그 말이여.(13분38초~26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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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645)) 공부하다 어떤 소견(所見)이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집착하지 말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을 들고 여법하게 정진을 해 가면 된다 / 구경각(究竟覺), 오무생사 · 증무생사해서 용무생사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항상 초학자와 같은 겸허한 마음으로 여법하게 수행해야.
(게송)사자굴중무이수~ / 불법을 믿고 최상승 참선을 하실라면 사자와 같은, 코끼리의 왕과 같은 그러한 마음과 행동으로 수행을 하시기를.

자기가 조금 평소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견이 났다 하더라도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 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 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송담스님(No.645)—2000년 하안거 해제, 백일기도 회향, 백종법회 (용645) (하심,팔풍,경계대처)

 

 

 

약 13분.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왕림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도 버리시고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그 법문이 문자화 된 것이 우리나라 해인사에도 팔만대장경 장경각에 목각(木刻)을 해서 잘 봉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그 팔만대장경의 법문이 그걸 다 읽기도 어려운 일이고, 다 해석해서 다 알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이 고인네들은, 조사스님네들은 그 안에 있는 요점만을 뽑고 또 뽑아서 어떠한 근기(根機)의 중생이라도 그렇게만 해 나가면 팔만대장경에 있는 진리를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그 길을 개척을 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이 몇 가지가 있지마는, 그 중에 최고의 훌륭한 법—간단하면서도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승속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법 가운데에도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그것이 별 재미도 없고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닌데, 정말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다 보면 해 갈수록 뭣이 알아지는 것은 없어. 알아지는 것은 없지마는 해 갈수록 신심이 더욱 나오고, 더 무상을 철저히 느끼게 되고, 일분일초 시간을 아껴서 이 한 일에 철저하게 정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은 '사람의 근기와 어떻게 정진을 해 가느냐'의 그런 차이로 해서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나오는 거와 같은 그러한 여러 가지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꼭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정진을 하면 다 나타나는 것은 아니나 그런 가지가지의 형상이 나타날 수가 있는데, 나타난다고 해서 꼭 좋을 것도 없고. 그러나 그런 것이 나타나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그것을 ‘아, 내가 이것이 견성(見性)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바로 도통(道通)한 것인가 보다’ ‘이것이 앞으로 좋은 징조인가 보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른 경지냐, 올바르지 못한 경지냐' 그것은 본인이 평소에 선지식(善知識)의 법문(法門)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면 스스로도 그것을 점검을 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안 들어본 사람은 여태까지 보이지 않는, 느껴보지 못한 현상이 일어나니까 신기하고 묘해서 그것을 무슨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고 좋아하고 집착을 할 수가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런 경지를 여기서 50여 가지의 경계(境界)를 낱낱이 얘기할 시간은 없고 대별(大別)을 하면,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업장(業障)이 소멸되어서 그래 가지고 식(識)이 맑아졌다 하면은 그것을 꼭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업장소멸(業障消滅)하고 공부가 앞으로 잘 되어가기 위해서 일어나는 경우라면 거기에 집착을 아니하고 그런 것을 좋아할 겨를도 없고, 깨끗이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다시 본참공안(本參公案)을 들고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것에 집착을 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이 뭣이 알아진 것이 있고—무슨 조사의 어구(語句)나 『전등(傳燈)』 · 『염송(拈頌)』이나 경전을 보면 옛날에는 잘 몰랐었는데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고 그런 수도 있으니까 그걸 보고 ‘아, 내가 한소식 했다’ 이렇게 착각을 하고 한다면 그 공부는 거기서 중단이 되고 말 것이고,
조금 더 보태서 시(詩)를 짓는다던지, 게송(偈頌)을 짓는다던지, 함부로 ‘자기가 한소식 했다’고 떠벌리고 과시를 한다던지, 또 막행막식을 하고 횡설수설해 가지고 많은 사람한테 자기가 도를 통한 것처럼 선전을 하고 과시를 하고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도 망하는 거고, 불법도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망하게 되는 거고, 많은 신도들도 그런 것을 보고 마음에 혼란심을 일으켜서 잘못된 데로 빠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행이라 하는 것이 꼭 해야 하는 것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소견(所見)이 나거나 경계가 일어났을 때, 철저하게 선지식을 믿거나 선지식의 법문을 의지하지 아니한 사람은 까딱하면 잘못된 지경에 말려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그런 점에 대해서 각별히 주의를 하시고,
자기가 조금 평소에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어떤 지견이 났다 하더라도 '이것이 구경각(究竟覺)이냐 아니냐'—정말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다 얻어서 부처님과 조사와 같은 그런 경지에서 오무생사(悟無生死)하고 증무생사(證無生死)해서 용무생사(用無生死)할 지경에 이르지 아니했으면,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 조금 무슨 지견 난 걸 가지고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생각을 속에 품고 있다면은 불조(佛祖)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반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신도 단월(檀越)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것이고 그럴 것입니다.

무엇을 해먹을 짓이 없어서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하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해 가지고 대접을 받을라고 하는 그러한 짓이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를 반성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반성을 하고 참괴심(慙愧心)을 가지고,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는 항상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러한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여법하게 수행해 나가는 그러한 수행자가 되야 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 여러분들은 전부 그러한 도반들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하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다.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있을 수가 없어. 사자굴에는 오직 사자끼리만 사는 것이지, 사자굴 속에 어떻게 다른 짐승들이 사자하고 같이 살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상왕행처(象王行處)에 절호종(絶狐蹤)이다. 코끼리의 왕, 상왕(象王)이 터억 떼를 지어서 걸어가는 데에는 여우같은 그러한 간특한 짐승들이 그 사이에 끼여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정법에 의해서 발심한 여러 도반들, 바로 사자요 코끼리의 무리와 비교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도반들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기왕 우리가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고서 선방에 나와서 도를 닦는 최상승 학자일진대는 사자와 같이 상왕과 같이 그렇게 수행을 해 가야 할 것이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도 기왕 불법을 믿고 참선을 하실라면 사자와 같은, 코끼리의 왕과 같은 그러한 마음과 그러한 행동으로 수행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20분9초~33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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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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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21. 1. 23. 09:44

§((596)) 조주 스님과 시자 문원의 떡 내기(지는 것으로써 이기는 것, 못나기 내기). 『선문염송(禪門拈頌)』 제439칙. 「투열(鬪劣)」 / (게송)만사무여퇴보휴~ .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의 '투열화(鬪劣話)'.

온 국민이 자기 있는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최선을 다할 때 가정 사회 국가도 잘된다(1997년 11월은 대한민국이 외환 위기로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12월에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을 지원받은 어려운 시기)

 

**송담스님(No.596)—1997년 11월 첫째일요법회 (용596)

 

 

 

(1) 약13분. (2) 약 14분.

(1)------------------

 

옛날에 조주(趙州) 스님이라고 하는 큰, 고불화현(古佛化現)이라고 칭찬을 받을 만한 대도사가, 조사(祖師)가 계셨는데, 『전등록(傳燈錄)』이나 『염송(拈頌)』에 보면 조주 스님으로 인해서 나온 공안(公案)이 참 많고, 조주 스님은 참 학자(學者)를 제접(提接)하는데 능소능대(能小能大)하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해서 참 대단히 거룩하고 훌륭한 그런 도인(道人)이신데,

아까 녹음을 통해서 법(法)을 설하신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참 조주 스님을 무척 존경하시고, 조실 스님께서 학자를 제접하는 그 가풍(家風)을 보면 조주 스님과 참 많이 닮으신 데가 있다.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조주 스님의 시봉(侍奉)에 문원(文遠), '글월 문(文)' 자, '멀 원(遠)' 자, 문원(文遠)이라고 하는 수좌(首座)가 조주 스님의 시자(侍者)로 있었는데, 그 시자하고 노상, 그렇게 훌륭한 큰 도인(道人)이시지만 그 시자하고 서로 어울리고 이야기할 때는 할아버지와 손자와 같이 이렇게 인자 문답(問答)을 하시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시고 그러는데.

어느 날 "우리 그 떡을 내기를 하자. 내기를 하는데 서로 말을 해 가지고 지는 것으로써 이긴 것으로 하자. 예를 들어서 가위 바위 보를 하는데, 내가 돌(바위)을 내면 저쪽에서 보자기를 내면 저 사람이 이긴 것이지만, 주먹을 (가위 바위 보) 바위를 낸 사람이 졌지마는, 진 사람이 이긴 걸로 하자. 또 내가 가위를 내면 상대방이 보자기를 내면 보자기 낸 사람이 졌지마는, 그 보자기 낸 사람을 이긴 걸로 하기로 하자" 이랬단 말이야. 그래 가지고 떡 내기를 했어.

 

그러니까 문원(文遠)이라고 하는 시자가, "그러면 스님께서 먼저 하십시요"

그래 인자 조주(趙州) 스님이 인자 먼저 말씀을 하시기를, "나는 나귀다. 나는 한 마리 나귀다" 그랬어. 사람도 있고, 뭐 임금님도 있고, 뭐 하늘도 있고, 뭐 좋은 것이 이 세상에 꽉 찼는데, "나는 나귀다" 그러셨단 말이여.

그러니까 그다음에 문원 시자(侍者)는, "저는 나귀의 팔꿈치입니다" 나귀는 온통 한 마리고, 나귀 다리에 팔꿈치는 그 일부분이니까 문원이 말한 것이 좀 더 작아졌다 그 말이여.

 

그다음에 조주 스님이, "그러면 나는 나귀 똥이다" 그랬어. 나귀의 팔꿈치보단 똥은 더 추접하고 작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그다음에는 문원이, "저는 그 나귀 똥에서 살고 있는 버러지입니다"

 

그런데, 조주 스님이 인자 얘기를 하실 판이라. "너 그러면 그 똥 속에서 무엇을 하노? 하고 있노?" 그러니까, "그 속에서 여름을 지내고 있습니다"

"너 이놈! 떡 가져 와"

 

이거 천칠백... 얘기처럼 되어서 우리는 웃지마는, 사실은 이 속에 웃을 수 없는 무서운 뜻이 이 속에 들어 있어.

 

"나귀다"

"나귀 팔꿈치다"

 

"나는 나귀 똥이다"

"저는 나귀 똥 속에서 살고 있는 버러지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조주 스님이 얘기를 할 판인데, "너 그 똥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노?" 그러니까, "여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단 말이여.

 

"여러 소리 말고 가 떡 가져오너라"

거기에서 이 '누가 지느냐' 하는 내기를 해서 결국은 그렇게 이 공안(公案)은 끝났지마는,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된 거냐?' 이것을 내가 여러분 보고 일르라고 말은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고인(古人)이 한 게송(偈頌)을 읊었는데,

 

만사무여퇴보휴(萬事無如退步休)헌디  백년허환몽중구(百年虛幻夢中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주불시쟁호병(趙州不是爭胡餠)이라  요사시인열처구(要使時人劣處求)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사무여퇴보휴(萬事無如退步休)요  백년허환몽중구(百年虛幻夢中軀)다.

세상만사가 퇴보(退步)해 가지고 뒤로 물러서서 쉬는 것만 같지 못하다. 왜 그러냐?

백년허환(百年虛幻)은 몽중구(夢中軀)여, 백년, 인생이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를 누리고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이 살았다 하더라도, 백년 살고는 기러기 발자죽만도 못하고 벌의 신세만도 못한 그러한 허망한 몸뚱이여.

 

조주 스님이 떡이 먹고 싶어서 떡 내기, 시자(侍者) 데리고 떡 내기 수수께끼를 한 것이 아니고,

요사시인열처구(要使時人劣處求)라. 세상 사람들이 너무 서로 지가 잘난 체하고, 지가 옳다고 그러고, 무엇이던지 지가 해야만 되고, 지가 이길라고 그러고, 크고 작은 싸움 · 전쟁 · 시비, 죽이고 죽고,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싸움이 그칠 세가 없고 그러니,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겸손하고, 서로 사양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사람을 추대하고, 이러한 도리(道理)를 가리키기 위해서 시자(侍者)하고 그러한 수수꺼끼와 같은 그런 법담(法談)을 한 것이다 이거거든.

 

산승(山僧)이 이 법상(法床)에 올라와서 여간해서 정치 문제 그런 데에는 언급을 하지 않고, 언제나 활구참선(活句參禪)을 권장을 하고, 인과법(因果法)을 믿고 세상이 무상(無常)한 줄을 깨달라서 어쨌든지 참나를 깨달라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제도하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우리가 다 같이 참선 공부를 하자. 그런 얘기를 주로 많이 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불과 한달 남짓하면은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대통령 선거는 우리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그러한 중대사입니다. 훌륭한 대통령을 뽑아서 정치를 잘해야 우리나라가 흥하게 되고, 우리 백성이 모다 잘살게 되고, 우리나라가 세계에 일등국(一等國)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중대한 시기입니다.

 

그러니만큼 오늘은 이런 얘기를 조끔 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는 옛날부터서 불교(佛敎)와 유교(儒敎)를 숭상(崇尙)해 오고, 현재도 역시 불교를 믿는 불교신도가 천육백 내지 이천만 명에 넘는다고 그런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마는, 항상 자기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앞세우고, 자기 몸보다도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부처님의 자비사상(慈悲思想)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유교(儒敎)도 인의(仁義)를 역설을 하고 한 것이 모두가 다 중요한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으로 중국의 역사에도 기록될 만큼 우리나라는 그러한 민족성(民族性)을 가지고 내려왔는데, 근자에 민주주의다 해 가지고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무슨 지방장관 선거, 선거 때만 되면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고, 어디 무슨 나라 국적(國籍)을 가진 민족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그러한 양상이 벌어집니다.(12분30초~25분29초)

 

 

 

 

(2)------------------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정치에 있어서, 옛날에 성현(聖賢)들이 정치를 하는 군주주(君主主) 시대, 그것은 우리 눈으로는 직접 보지 못하고, 동양(東洋) 모다 중국역사를 보면은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과 같은 그런 성현(聖賢)이 천자(天子)가 되실 때는 정말 백성이 믿고 살 수 있는 그런 시대였었고, 성현이 천자나 왕이 되지 못할 때에는 훌륭한 성군(聖君)을 만나기가 대단히 어려웠었습니다.

성인(聖人)이 왕(王)이 되고 천자(天子)가 되기가 어렵다면, 그다음으로 좋은 정치는 민주주의(民主主義)가 제일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민주주의도 단점(短點)이 있습니다.

 

세상을 내다볼 줄 알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이 없는 사람은 몇 사람이 안 되고, 전부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고, 자기 개인의 영달(榮達)과 자기 당(黨)에서 정권을 잡어야만 자기도 영달을 할 수가 있으니까 자기 당략(黨略) 당권(黨權) 만을 생각해 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거개(擧皆)가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결(多數可決)로 법(法)을 맨들고 뭔 일을 추진을 하면 그런 사람들 의견으로 다 모든 것이 가결(可決)이 되고 추진이 되어서 정말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위한 그런 훌륭한 사람의 말은 수가 적으니까 마냥 뜻대로 안되는 거, 그것이 민주주의에 단점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데,

그렇다고손 치더라도, 선거 때 자기의 '어떻게 하리라'고 한 자기의 포부를 널리 알려서 자기를 찍어달라고 강의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것은 좋지마는, 상대방을 갖은 모략(謀略)과 중상(中傷)으로 상대방을 짓밟고 차고 꼬집어 뜯고, 귀로도 들을 수도 없고 입에도 담을 수도 없고 눈으로도 볼 수 없는 악랄하고도 비겁하고 한 그러한 방법을 써서 상대방을 비난한 거 이것은 참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장관 선거쯤은 또 모르겠는데,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그런 대통령(大統領)으로 출마한 그런 분들이 나서 가지고는 그렇게 비난하고 헐고 뜯고 욕설을 퍼붓고 한 것은, "저러한 분을 대통령으로 뽑아 갖고 정말 우리가 믿고 정권을 그이한테 맽길 수가 있을 것인가? 저런 비인격적(非人格的)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은 우리나라 운세(運勢)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한 것이 정말 가슴 아프고 한탄스러움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국민(國民)의 권리(權利)요 의무(義務)로써 머지않아서 가서 한 표를 던지셔야 되겠는데, 물론 그분의 과거와 현재와 모든 것을 널리 생각해서 자격도 있고 능력도 있고, 포부도 있고 배짱도 있고 전체를 포섭할 만한 아량도 있고 한 그러한 분을 여러분은 뽑겠지마는, 남을 헐고 뜯고 한 사람은 그 점도 하나를 보아야 한다 이겁니다.

 

자기의, '이렇게 이렇게 잘하겠다. 나는 이렇게 이렇게 잘했다' 그것도 선거 때가 아니면 자기 자랑한 거 별로 인격적으로 챙피한 노릇이지만, 그래도 선거 때는 자기 자랑을 해 주어야 남이 아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하더라도, 남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략중상(謀略中傷)한 것은 그건 나는 별로 그 사람 찍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악랄한 방법을 써 가지고 남을 비방하고 헐뜯고 한 것은 대통령이 될 만한—그분이 잘 대통령을 잘해야 우리가 잘살 수 있고 대한민국이 빛날 텐데, 비인격적이고 부도덕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가지고 어떻게 나라를 빛내고 백성을 잘살게 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조주(趙州) 스님처럼, 자기가 잘난 체하고 그래 가지고 이길라고 하기보다는, 자기가 특히 우리 도(道) 닦는 사람은 잘난 체하고 뽐내고 아만통을 부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한 것을 대단히 안 좋게 여기고,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항상 남의 좋은 점은 찬양하고 남의 좋은 점은 본받으려고 노력을 하고, 설사 다른 사람이 잘못한 점이 있더라도 용서(容恕)를 하고, 아량(雅量)으로 봐주고, 참회(懺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렇게 해서 서로가 화합을 하도록, 이것이 출가한 스님네가 일생 동안에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덕목인데.

 

스님네 뿐만이 아니라, 불법(佛法)을 믿는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이 서로 상대방을 좋은 점은 찬양을 하고 안 좋은 점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이해해 주고 양보해 주고 위로해 주고, 그렇게 해서 부부간이 화목(和睦)해서 잘 살아야 자녀들도 그 부모님들이 하시는 것을 보고, '야! 부부간은 저렇게 사는구나. 나도 커서 장가가고 시집가면 그렇게 살아야겄다' 그래 가지고 그 자녀들이 성장이 되면 또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어 나갈 것이 아니냐 그 말이여.

 

어떻게 된 것인지 연애할 때는 서로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고 찬양하고 이쁘다고 그러고 서로 결혼을 하는데, 결혼을 해 가지고는 첫날 저녁부터 싸움을 시작을 해. 그래 가지고 첫날 저녁에 이혼한 사람도 있고, 머지않아서 패물을 적게 가져왔다고 싸우고, 살면서 '부부간에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해 가지고 부부간에 싸움은 안 하는 것이 이상(異常)이고 싸움하는 것은 보통이 되었고, 그래 가지고 수없이 이혼을 한다 그 말이여.

이혼을 해서 새로 시집을 간다고 해서 꼭 훌륭한 좋은 남편을 만나리라고 한 보장도 없는 거고, 또 재추(재취) 삼추 간다고 해서 좋은 아내를 얻으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거기서 이혼 가정에 아들과 딸들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고아(孤兒)의 신세가 되는 것이고, 결손 가정(缺損家庭)에 아들들은 대부분 문제아가 되어 가지고 학교에 가서도 문제가 되는 거고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데서 싸울 데가 없어서, 싸울 사람이 없어서 부부간에 싸우냐 그 말이여. 아내는 자기를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과 집과 형제자매를 떠나서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을 가서 그 시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시집에서는 그 들어온 그 며느리를 자기의 정든 부모를 버리고 내 집 식구가 되었으니 잘못한 점이 있더라도 잘 봐주고, 위로를 해 주고 따둑거려 주고 용서를 하고, 그래야 할 것이고.

시집에 올 때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왔습니까? 신랑 하나 보고 왔는데 그 신랑이 아내를 위로해 주고 사랑해 주고 그래야 할 것을, 그 달달 볶아서 못살게 군다면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말이여.

 

한 부부간에 문제, 가정의 문제도 그렇고, 형제간에 문제도 그렇고, 사회 국가도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뭐 노론(老論) 소론(少論)이니 동인(東人)이니 서인(西人)이니 해 가지고 자기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 상대방을 역적(逆賊)으로 몰아서 귀양을 보내거나 죽이거나 해 가지고 자기가 정권을 잡고 한 것이 이조(李朝)... 뭐 백 년 이백 년 전에 우리나라 그렇게 하다가 결국은 임진왜란(壬辰倭亂)도 당하고 또 일본에 식민지(植民地)가 되기도 한 역사가 엊그제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 민주주의(民主主義) 시대(時代)니까 여당(與黨)도 있고 야당(野黨)도 있고 그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나, 정책으로 서로 토론을 하고 싸운 것은 그것은 국가 발전을 위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일이나, 그런 것을 떠나서 인신공격을 해 가지고 악랄한 방법으로 이렇게 서로 싸우다가 나라의 꼬라지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누구 한두 사람의 잘못으로 책임을 몰아붙일 일도 아니고, 정치한 사람들이 전부 자기는 잘못이 없고 다른 사람한테 책임을 몰아붙이지만, 모두가 다 같이 책임(責任)을 절감(切感)을 하고 서로 화합(和合)을 해서 '나라를 어떻게 해야 우리가 건질 수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초점을 맞춰서 해 나가야 할 것이고.

 

꼭 정치한 사람한테만 꼭 책임 있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온 국민이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잘살게 될 것인가?' 각자 자기가 있는 자기 위치에서 자기의 직장에서 자기 할 일을 찾어야 합니다.

회사면 회사, 관공서면 관공서, 공장이면 공장 해서, '내 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이 공장이 살아나고 내 한 사람이라도 어떻게 해야 이 회사에 보탬이 된가?'

공장일 그만두고 정치에 어쩌고... 그것은 성현들은 그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있는 자리에서 자기가 할 일을 최선을 각각 다할 때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되아간다고 그랬습니다.(25분29초~38분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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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479)) (게송)일불이불천만불~ / 과거에 그런 부처님들은 어떻게 선근을 심었느냐? / 도를 깨닫는 첫째 관문(關門)인 아상(我相)을 뛰어넘는 가장 간단하고도 중대한 것이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는 것입니다.


(게송)견색비간색~ / 팔풍(八風)이 휘몰아치는 오탁악세(五濁惡世)에 팔만사천 마구니를, 팔만사천 번뇌마(煩惱魔)를 퇴치할 수 있는 좋은 무기는 '이뭣고?' / 마구니는 자기(自己)로부터 나온 것들이 다시 자기(自己)로 돌아온 것이기 때문에, '이뭣고?' 하나로써 능히 퇴치(退治)할 수가 있다.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1) 약 11분. (2) 약 16분.

(1)------------------


일불이불천만불(一佛二佛千萬佛)이  각각안횡겸비직(各各眼橫兼鼻直)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석년친종선근래(昔年親種善根來)하여  금일의전득거력(今日依前得渠力)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일불이불천만불(一佛二佛千萬佛)이, 한 부처님, 두 부처님 내지 천만 부처님이,

각각안횡겸비직(各各眼橫兼鼻直)이여. 부처님들이 모두 다 눈은 옆으로 백이고, 코는 바로 이렇게 백이셨드라 그거거든.


석년친종선근래(昔年親種善根來)로, 석년(昔年)에 무량겁으로부터 오시면서 친(親)히 선근(善根)을 심어 왔어. 온갖 선근을 심어 왔기 때문에,

금일의전득거력(今日依前得渠力)이여. 금일(今日) 이와 같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와 삼명육통(三明六通)을 얻으시게 되었더라.

그러한 선근(善根)을 심어 오지 안 했으면 어찌 삼명육통과 32상과 80종호를 갖추어서 스스로 깨닫고 무량(無量) 중생을 제도(濟度)하실 수가 있겠는가.


그러면 그런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그런 부처님이 몸소 시범(示範)하신 바와 같이 그런 선근(善根)을 심지 않고서는 그런 삼명육통과 32상과 80종호를 갖출 수가 없을 것이다 그거거든.


그러면 과거에 그런 부처님들은 어떻게 선근을 심었느냐?

육조(六祖)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천만 부처님 처소(處所)에서 일심(一心)으로 공양(供養)을 하고, 그 부처님의 가르침에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수순(隨順)을 하고, 또 모든 보살(菩薩)이나 선지식 또는 스승님 · 부모 또는 연세가 많은 어른 존장(尊丈)의 처소에서는 항상 공경하고 그 뜻을 받들어서 순종하고, 그 명령에 어기지 않고 그 뜻을 받들어서 그렇게 해서 선근을 심어 왔고.


그런 부처님이나 보살님이나 또는 선지식 스승 부모뿐만이 아니라 육도(六道) 중생을 만나서는 살해(殺害)를 하지 아니하고, 그러한 중생을 속이지 않고, 천대하지 아니하고, 훼방하지 아니하고, 욕하지 아니하며, 그 축생(畜生)을 타지 아니하며 채찍질을 하지 아니하며 그 고기를 먹지 아니해. 항상 그 육도 중생을 '어떻게 하면은 좋게 해 줄까? 이익되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상대해 왔더라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선근(善根)을 심어.

그리고 일체 빈고(貧苦),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중생을 상대할 때에는 자민심(慈愍心), 불쌍히 여기는 마음, 가엾은 마음으로 상대하고, 싫어하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그 중생(衆生)이 요구하는 바는 자기의 힘 따라서 베풀고, 이렇게 해서 선근을 심었더라.


그러면 일체 악류(惡類), 악한 무리들—나를 해꼬자하고, 해꼬자하려는 그런 악한 무리를 상대할 때에는 유순(柔順)하고 화평(和平)한 마음으로 상대하고, 인욕(忍辱)하고 환희(歡喜)한 마음으로 이렇게 맞이하고.

나에게 좋게 해 준 사람을 환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악한 마음으로 나에게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그러한 상대를 만나서도 유순하고 인욕하고 환희한 마음으로 맞이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보살(菩薩)에 마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맞이하면서 그 뜻을 어기지 아니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런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고, 고집 세고 비꼬인 생각을 쉬게 하는, 그렇게 해서 선근을 심었다 그거거든.


이것이, 그렇게 무량겁을 선근을 심어 왔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대표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우리의 교주(敎主)이시고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인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같은 그러한 성현 중에 대성현(大聖賢)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대한 성현을 스승으로 모셨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우리는 목숨을 바쳐서 순종(順從)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낱낱이 구체적으로 간략히 선근(善根)을 심는 법을 육조(六祖) 스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말씀을 드렸거니와, 우리는 우리와 같은 하근기(下根機)로서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불보살과 스승과 어른 존장, 그리고 모든 육도 중생과 빈곤한 그런 중생들, 심지어는 우리를 해꼬자할 악한 무리들에까지도, 그러한 무리를 만나서도 우리의 마음을 변하지 아니하고 선근을 심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근기 약한 것만을 한탄하고 그러한 선근 심는 것을 포기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런 선근을 심는 데에는 첫째, 나의 욕심(慾心)을 버리고, 나를 생각하는 아상(我相)—우리가 도(道)에 들어가는, 도를 깨닫는 첫째 관문(關門)이 아상(我相)을 뛰어넘는 것인데, 그 아상을 뛰어넘는 가장 중요한 가장 간단하고도 중대한 것이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는 것입니다.(12분38초~23분18초)





(2)------------------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하고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성색불애처(聲色不礙處)가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색(色)을 보되 색(色)에 관계치 아니하고, 관여(關與)하지 아니하고,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아니어.


우리는 눈을 통해서 온갖 색상(色相)을 보는데, 그 색상이 눈에 들어오면 들어오자마자 그것에 관여를 하게 됩니다.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크다 적다', '좋다 나쁘다' 그것이 바로 색에 관여하는 것이거든.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여. 무슨 소리든지 귀로 들으면, '아, 저건 자동차 소리다. 비행기 소리다. 저건 애기 소리다. 저것은 개 짖는 소리다' 거기에서만 끝나지 아니하고, '저것은 나를 해롭게 하는 소리다. 나한테 욕하는 소리다. 나를 칭찬하는 소리다' 온갖 사람의 말을 듣고서 그렇게 관여를 하고, 거기에서 싫어하는 생각을 내고, 미워하는 생각을 내고, 다투는 마음이 속에서 일어나고, 원한심이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색상(色相). '저 사람은 이쁘다. 미웁게 생겼다. 뵈기 싫게 생겼다. 입맛 떨어지게 생겼다' '저 아무 점께 나한테 저렇게 욕한 인간이 또 오는구나'

하루 종일 · 날마다 · 달마다 · 일 년 내내 · 일생 동안을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색상을 보고 그렇게 시비(是非)를 일으키고 업심(業心)이 발동(發動)을 하고, 귀로 듣는 모든 소리를 통해서 시비를 일으키고 업이 발동을 해서, 얼굴에 그 표현(表現)이 되고 행동으로 표현이 돼.

그래서 한량(限量)없는 업(業)을 짓고 업 위에 다시 또 업을 지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는데.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에, 귀로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눈에 무슨 색상이 들어오거나, 처음에는 관여를 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들어오거나 말거나 거기에 걸리지를 안 해.

눈에 보이면 보인 대로 맺겨 두고, 귀로 무슨 소리가 들리면은—내를 칭찬하는 소리를 듣거나, 나를 비방(誹謗)하는 소리를 듣거나 그냥 그런대로 놔두는 거여.

귀를 막고 안 들을려고 할 것도 없고, 눈을 감고 안 보려고 할 것도 없어. 보이면 보인 대로 놔두고 들으면 들린 대로 흘려보내는 거여.


부처님께서 어느 외도(外道)를 만나셨는데, 그 외도가 입에 못 담을 비방(誹謗)을 해. 온갖 비방을, 부처님 비방을 한다. 부처님 제자들에 관한 비방, 부처님에 관한 비방, 다 얼토당토않는 소리로 갖은 고약한 소리를 해 가지고 부처님 앞에 욕을 하고 비방을 하는데, 부처님이 아무 생각 없이 그 소리를 그만하라는 말도 않고 다 들으셨다 그말이여.


다 듣고 난 다음에, "이제 말이 끝났습니까?"

"네, 끝났다"고.


"응, 그러면 내가 한마디 묻겠는데, 내 집에 참 손님이 오셔서 그 주인이 참 갖은 음식을 많이 차려서 내놓고 손님한테 내놨는데, 손님이 그 음식을 안 먹고 가면 그 음식은 누가 먹어야 겠습니까?"


"그 손님이 안 먹으면 주인이 먹어야죠"

"그러면 되었다"고. 그리고서 부처님이 거기서 떠나셨습니다.


내게 당치않는 행동이나, 내게 당치않는 말로써 나를 비방을 하거나 욕을 하거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것을 취(取)하지 아니하면, 그것에 관여(關與)하지 아니하면, 그 욕과 악한 비방은 한 사람이 다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공연한 사람을 흔들어 놓을 흔들려고 그러고, 공연한 사람을 비방을 하고 욕하고 했으면, 상대방이 그놈을 받아들이면 그리 건너가겠지만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무심(無心)으로 상대(相對)해.

화두(話頭)를 떠억—그럴수록에 당치않는 소리를 하면 얼굴 하나 찌푸릴 것도 없이 화두를 떠억 들고 '이 뭣고?' 그러면 구태여 안 들을라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열심히 들은 것처럼 눈을 따악 뜨고 잘 들은 척하고, 들으면서 그냥 '이뭣고?'를 떠억 하란 말이여. 그러면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는 한 사람 입으로 도로 들어가는 거여.

그놈 지가 토해 낸 독(毒)을 잔뜩 들어마시고, 그 사람은 그 지은 죄업(罪業)으로 삼악도(三惡道)에 가서 고(苦)를 받게 될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도, 그 (욕하는) 말을 들으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이뭣고?'를 하고, '판치생모'를 하고, '정전백수자'를 하고, '무자' 화두를 했기 때문에 그 공덕(功德)으로—(욕한 사람은) 한량없는 삼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다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해서 그 (욕한) 사람이 불법(佛法)을 믿게 될 것이다 이거거든.

같이 싸우고 그랬으면 다 같이 지옥에 떨어질 텐데, 내가 거기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시비(是非)에 말려들지 아니하고, 떠억 정심(正心)으로 상대를 하고 나는 화두를 들고 최상승법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 (욕한) 사람이 지은 죄 만큼은 받어야 되는 거고,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받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래도 그놈을 받고 나서는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했을 때에는 불법(佛法)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그 인과법(因果法)이 역연(歷然)하고.

또 내가—그렇게 비방을 하고 욕을 한 데도—동심(動心)이 안 되고 떠억 화두를 들 수 있게끔 된 것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많은 부처님과 많은 선지식에게 공양(供養)을 하고 선근(善根)을 심어 온 그 힘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나를 비방하고 욕한 데 마음이 동요가 안 되고 화두를 거각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은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이미 잘 길렀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적으로 한 그런 예를 들었거려니와, 이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데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겠습니까. 팔풍(八風) 경계, 여덟 가지 종류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그러한 오탁악세(五濁惡世)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가 부닥치는 많은 일들, 정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많할 것입니다마는, 이 예(例)와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자기를 무장(武裝)하고 그러한 '이뭣고?'에 철갑과 투구로써 무장을 하고 나간다면 그 앞에 이기지, 당해낼 수 있는... 아무것도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천하 간단한 무기(武器)의 하나지마는 팔만사천 마구니를 퇴치(退治)할 수 있고, 팔만사천의 번뇌마(煩惱魔)를 퇴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말세에 그러한 좋은 무기를 우리는 지닐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선지식(善知識)과 여러 도반들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 팔만사천 마구니를 우리가 그것으로 이겨 낼 수가 있느냐 하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다른 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속에서 나온 것이거든. 자기의 마음속에서 나온 팔만사천 번뇌(煩惱)가, 그놈이 자라고 자라 가지고 팔만사천 마구니가 되어서 자기(自己)에게 다시 핍박(逼迫)해 들어온 것이거든.

그 마구니가 다른 데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여. 저 타방세계(他方世界)에서 만들어져 가지고 침범(侵犯)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기(自己)로부터 나온 것들이 다시 자기(自己)로 돌아온 것이거든. 자기가 심은 씨가 그러한 열매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이뭣고?' 하나로써 능히 퇴치(退治)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거거든.


'이 뭣고?' 하나만 탁! 챙기면 천하 없이 무서운 마왕(魔王) 파순(波旬)이의 권속도 그 앞에는 무릎을 꿇 수밖에 없고, 결국은 그것들이 나를 보호하고 나로 하여금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크게 깨달라서 성불(成佛)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호위병(護衛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도반들은 앞으로 어데서 어떠한 일을 만나고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항상 정심(正心)으로 화두(話頭)를 드는 그 정진력(精進力)으로 나아간다면 어디를 가거나 무장무애(無障無礙)할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운 일을 만나고 역경계(逆境界)에 처(處)하더라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화두(話頭)를 들고 나아간다면 무장무애하게 어려운 일을 만날수록에 더 분심(憤心)이 나고, 신심(信心)이 돈발(頓發)하고, 대의단(大疑團)이 독로(獨露)해서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23분19초~38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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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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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20. 3. 14. 11:15

§(332) (게송)우중간호월~ / 마음에 맞지 않는 일 속에서 바로 자기를 단속해 나가고 바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면 그 속에서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

 

부처님을 믿는 우리는 세세생생에 보복(報復)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설사 상대방이 나를 고의적으로 또는 고의가 아닌 어떠한 자기에게 물질적으로 해(害)를 끼쳤던지 정신적으로 해를 끼쳤던지, 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보복할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거기에서 인과(因果)의 진리를 살피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할 수 있도록,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우리는 굳게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가족을 상대하고 친구를 상대하고 이웃을 상대하고 그렇게 하면서 수행을 한다면 우리도 반드시 부처님과 같이 될 때가 오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332)—1987년 6월 첫째일요법회(87.06.07) (용332)

 

약 14분.

 

우중간호월(雨中看好月)하고  화리급청량(火裏汲淸凉)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직립두수지(直立頭垂地)하고  횡면각지천(橫眠脚指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우중(雨中)에 간호월(看好月)하고  화리(火裏)에 급청량(汲淸凉)이다.

비 가운데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가운데에서 그 밝은 달을 보고, 불이 훨훨 타는 불 속에서 시원한 맑은 물을 길을지니라.

 

밝은 달은 비가 안 올 때에 볼 수가 있고, 맑은 물은 맑은 샘에서 퍼야지,

어떻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구름 덮인 하늘에서 그 밝은 달을 찾으며, 훨훨 타는 불 속에서 어떻게 맑은 물을 길러낼 수가 있을까?

 

진리(眞理)에 입각해서 보면, 남(南)과 북(北)이 같은 것입니다.

북쪽의 반대가 남쪽일 것 같지만, 북쪽이 바로 남쪽이고 남쪽이 바로 북쪽이여.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남쪽이 돌아오고만 마는 것입니다.

 

콜롬버스가 계속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다보니까 결국은 미국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에 맞는 일을 항상 만나고 항상 보기를 바래지만, 마음에 맞는 일을 만남으로써 행복(幸福)을 삼지만, 사실은 마음에 맞는 일만을 추구하다 보면 머지않아서 불행(不幸)이 돌아오는 거고,

마음에 맞지 않는 일 속에서 바로 자기(自己)를 단속(團束)해 나가고 바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면 그 속에서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더욱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사람도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많고, 일도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많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맞는 사람만 찾을라고 하면 어디에 그렇게 만나겠습니까? 내 마음에 꼭 든 일만 만나고자하나 그런 일은 만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혹 만났다 하더라도 잠시지 다시 또 그것은 나로부터 떠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차라리 마음에 맞지 않는 역경(逆境)에서 거기서 부딪히고, 거기에 몸을 옆으로 비틀고 용감하게 지혜롭게 끈기 있게 헤치고 나가면, 거기에서 이 사바세계에서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도(道) 닦는 것도, 의리선(義理禪)은 따져 들어가면 알아진 것이 있고, 얻어진 것이 있고, 재미가 있고, 맛이 있으니까, 공안(公案) 하나 얻어서 이리저리 해가지고 통과하고, 또 공안 하나를 타가지고 이리저리 따져서 ‘아!’ 알아맞추고 하면 그것 곧 그냥 깨달음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 것같이 느껴지고, 재미가 있고 얻은 바가 있고, 남에게 '나는 공안 몇 개를 알았다' 이렇게 자랑할 것이 있고, 썩 할만 하지요.

 

그러나 그러한 공부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따져서 들어간다 해도 그것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이여.

 

한 가정, 한 가족, 일가친척, 우리 마음에 맞은 사람 엄격히 말하자면 사실은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어렵다고해서 부모가 아니고 자식이 아니고 형제가 아니고 일가친척이 아니고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각각 숙세(宿世)로부터 지어 내려오는 업(業)이 다르기 때문에, 그러고 그러기 때문에 얼굴을 각각 다르게 태어났고, 생각도 성격도 각각 다르고, 따라서 본 바가 다르고 생각한 바가 다르니 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여.

 

서로 지은 바 업(業)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것을, 그 근원은 모르고서 내 마음에 맞기만을 바래고 내 마음에 안 맞으면 미워하고 그 사람을 갖다가 짓밟고 쫓아내고 멀리하고 망하기를 바래고 이런다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너무너무 참 어렵고,

정말 스스로 고통과 불행의 보금자리를 자기가 만들어서 그 안에서 자기가 고통을 받게 되는 거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생(生)을 거듭함에 따라서 점점 고통스러운 생을 만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유리태자가 그렇게 많은 살생을 하고—전생에 살생을 당했다고 해서 원한심(怨恨心)을 품고, 그렇게 해가지고 살생을 해서 무슨 좋은 꼴을 자기는 봅니까? 물에 빠져서 몰살을 당하고, 불이 나서 자기 궁실이 다 타 버리고.

그래가지고 이 전생에 우물 못 속에서 사람들로부터서 잡아먹히더니, 금생에 다시 와서 보복을 하고서 자기도 다시 멸망을 했습니다. 내생에 다시 원한심을 품고 또 보복을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 우리는 세세생생에 보복(報復)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설사 상대방이 나를 고의적으로 또는 고의가 아닌 어떠한 자기에게 물질적으로 해(害)를 끼쳤던지 정신적으로 해를 끼쳤던지, 해를 끼친다 하더라도 보복할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거기에서 인과(因果)를, 인과의 진리를 살피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할 수 있도록,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전생(前生)에 코끼리의 왕이 되어 계실 때에 어떠한 포수(砲手)가 위경(危境)에 처해서 죽게 될 때 그 포수를 살려주었는데—포수가 가가지고 돌아갔는데, 그 광고를 보니까 '아금니가 여섯 개가 달린 코끼리를 잡어 온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소원을, 소원대로 해준다'하고 광고가 붙었어.

 

그 광고를 보고서 '내가 연전에 히말라야 산에 들어가가지고 죽게 되었을 때 나를 살려준 코끼리가 바로 이 상아(象牙)가 여섯 개가 붙었다' 한 것을 깨닫고서 "내가 그 코끼리를 잡어 오겠습니다"하고 자원을 했습니다.

"그래, 니가 잡어오너라"

 

그 코끼리는 스님네를 좋아하고 불법(佛法)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반 보통 사람한테는 도저히 잡혀서 죽질 않는데, 스님네는 살생(殺生)을 아니하기 때문에 그 스님네가 가까이 온 것은 경계(警戒)를 아니해.


그래서 그 포수(砲手)는 머리를 깎고서 가사(袈裟)를 떠억 수(垂)하고 스님으로 가장(假裝)해가지고 들어가 가지고 독 묻은 창으로 그 코끼리를 찔러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코끼리의 그 군사들이, 모다 백성들이 오백 마리가 달라들어서 그 포수를 갖다가 밟아서 죽일려고 하니까 그 코끼리의 왕이 그 포수를 갖다가 자기 네 다리 사이에다가 이렇게 숨겨놓고,


"너희들, 이 죽이지 말아라. 이 포수는 내가 저를 살려준 그 생명의 은혜를 갖다가 이렇게 나를 독 묻은 창으로 쑤셔서 나를 죽이니, 나는 이 포수에게 어떻게 이 보복을 할 것인가?

너희들 식으로 이렇게 밟아서 죽이면 내생에 또 이러한 보복을 당할 것이니, 내가 이 다음 생에 도(道)를 성취해서 성불(成佛)을 하게 되면은 저 포수는 나의 여섯 개의 이 아금니를 뽑아가기 위해서 나를 죽였지만, 내생에 내가 성불하게 되면 이 포수의 여섯 도둑놈을, 이 삼독(三毒)과 육적(六賊)의 마음을 내가 뽑아 주리라" 이렇게 선언을 하고서,

 
"내 아금니 여섯 개를 어서 뽑아다가 너의 임금님에게 바쳐서 영광(榮光)을 누릴지니라" 이렇게 선언을 하고서 그 코끼리는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부처님은 과거 전생에 생(生), 생(生)을 두고 그러한 식으로 해서 수행을 쌓고 또 새 몸을 받아서 또 그렇게 수행을 쌓고 해가지고 마침내는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를 갖추시고 삼명(三明)과 육통(六通)을 얻어서 성불(成佛)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을 믿는 제자는 부처님의 그러한 이 높고 거룩한 뜻을 본받아서, 부처님과 같이 다는 실천을 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이 보복하는 마음, '내가 조금 손해를 보고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보복할 마음을 갖지 말자' 이러한 마음을 우리는 굳게 마음에 새기고, 그렇게 가족을 상대하고 친구를 상대하고 이웃을 상대하고 그렇게 하면서 수행을 한다면 우리도 반드시 부처님과 같이 될 때가 오리라고 생각을 합니다.(62분37초~1시간 16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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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우중간호월(雨中看好月)~' ; 『금강경오가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2분 10초)

[참고] 송담스님(No.88) - (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 (2분10초)

공안(화두)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뭣고?'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 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

 

요새 일본식 참선이 수입이 돼 가지고 화두 하나를 이리저리 따져서 “아, 이런 것이다!”, 또 그 다음에 다른 화두를 이리저리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또 하나를 해결 지어 놓고 또 다른 화두를 하고 해서, 10개 20개······, 화두를 이렇게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그러한 참선이 지금 일본으로부터서 수입이 되어가지고 많은 지성인들이 그러한 참선을 하는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런 참선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쪼끔 생각 있는 사람이면 능히 알고도 남을 상식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차라리 참선을 안하고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부를지언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합니다. 활구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77분41초~79분50초)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숙세(宿世 지날·묵을 숙/세상·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유리태자가 그렇게 많은 살생을 하고—전생에 살생을 당했다고 해서 원한심(怨恨心)을 품고, 그렇게 해가지고 살생을 해서 무슨 좋은 꼴을 자기는 봅니까? 물에 빠져서 몰살을 당하고, 불이 나서 자기 궁실이 다 타 버리고. 그래가지고 이 전생에 우물 못 속에서 사람들로부터서 잡아먹히더니, 금생에 다시 와서 보복을 하고서 자기도 다시 멸망을 했습니다' ;  ‘석가족의 멸망 인과’ 법문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6권, 34.등견품(等見品) [2]에 있는 석가족의 멸망 인과.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할 수 있도록' ; 발심(發心).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위경(危境) ; 위태로운 처지나 지경(地境 경우, 형편).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 성냄 · 어리석음(貪瞋癡 탐진치)을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육적(六賊) ;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근(六根)을 도둑에 비유한 말.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머금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명(三明)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

①숙명지증명(宿命智證明) 나와 남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

②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환히 아는 지혜.

③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육신통(六神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⑥누진통(漏盡通)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