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8/9) 몽산화상의 무자십절목.

**전강선사(No.505)—무자십절목(8) (종하처출까지) (갑인74.05.27) (전505)

 

(1) 약 23분.

 

(2) 약 29분.


(1)------------------

일성초운안(一聲楚雲雁)이요  고범원객주(孤帆遠客舟)니라
나무~아미타불~
해색벽어천(海色碧於天)이요  양양백구비(兩兩白鷗飛)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성초운안(一聲楚雲雁)이다. 한 소리 초나라로 울고 가는 기러기다. 저 장천(長天)에 떠 가지고는 울고 가는 초나라 기러기여. 우리 인생사가 아 그놈 그대로 두고 보면 그놈이 또 제일구(第一句)지. 허지마는 거다가 인생 턱 나왔다가 한번 가는 것이 저 장천(長天)에 뜬 초나라 기러기여, 저 울고 가는.
고범원객주(孤帆遠客舟)다. 외로운 돛대, 저 멀리 가물가물 가 버리는 배여. 이렇게 가 버리는 우리 인생사, 참 무상하다.

해색(海色)은 벽어천(碧於天)이다. 바다 빛은, 퍼런 바다 빛은 하늘과 같이, 같이 푸르여. 퍼러니 푸르러 가지고 있구나.
양양백구비(兩兩白鷗飛)다. 거기에 백구(白鷗)란 놈은 잼겼다가 떴다가, 떴다가 잼겼다가 이러는구나. 그저 그래 두지. 그걸 갖다가 뭐라고 해석허고 번역, 또 뭘 붙일 것도 없고, 그대로 한마디 일러두지. 그대로 한마디 일러두지 그 뭐 뭐 뻘소리 갖다 붙일 것이 뭣이 있나?


어떤 것이 네 자기(自己)냐? 어떤 것이 너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냐? 이 보고 듣고 알고, 가고 오고, 밥 먹고 옷 입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그 본 낯반대기, 본 생명이 그것이 어떤 것이냐? 도대체. 이렇게 신령할 수가 어디 있으며, 이렇게 분명할 수가 있으며, 순전히 이 낸디, 이놈이 낸디, 내가 나를 이렇게도 몰라? 이렇게도 알 수 없어?
별놈의 모냥을 다 붙여 봐라. 그 모냥 뭐 무슨 모냥을 붙일 건가? 과학이니 철학이니 다 들어대 봐라. 일체 논문을 다 갖다 거다가 때려 붙여 지어 봐라. 뭣이냐 그 말이여?

가지고 있는 놈인디, 내가 가지고 있는 이놈, 내가 수용헌 이놈인디. 죄 지면 죄만 받고, 잔뜩 지면 잔뜩 받고, 조금 지면 조금 받고, 맨 놈의 죄만 받는 놈의... 또 선(善) 지면 선만 잔뜩 받고, 한량없이 받고. 아! 이건 지은 대로 받고, 지은 대로 그놈의 업보(業報)가 모두 업(業)이 된다 그 말이여. 뭣이 이런 놈의 물건이 있는가 말이여.

그놈을 잘 닦을 것 같으면은 그만 성불(成佛)을 해서 생사(生死)가 없고. 생사니 뭣이니. 그 이놈을 가졌으니 이 보배를 가졌으니 참으로 이놈을 어서 속히 찾아 가지고는 그 깨끗헌 본 자아를, 내 본래 자아를 잘 닦아야 할 것 아닌가?
그 깨끗허니 그 닦아 놨으니 막 빛도 그 이상 더 날 수 없이 광(光)을 내놨으니, 그 깨끗헌 나를 그렇게 깨끗하게 닦아 증(證)해 버리면은 천하에 대보(大寶)인디 안 헐 수가 있나? 이걸 안 할 수가 있어? 이 우리 닦는 법, 참선법(參禪法).
그런디 이 자기(自己)란 것, 대체 자기—‘스스로 자(自)’ 자, ‘몸 기(己)’ 자—내 몸뚱이, 이 요까짓 놈의 생사 몸뚱이, 죽고 사는 몸뚱이 말고 말이여, 생사 없는 몸뚱이. 이 이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생긴 몸뚱이냔 말이여?

일대장교(一大藏敎)는 부처님의 일대장경, 49년 동안이나 설법해 놓으신 장경(藏經)은 자기(自己)를 주각(註脚) 내논 것이다. 내 마음, 네 마음, 일체 사람 마음, 준동함령지(蠢動含靈之) 마음, 그 마음을 주각을 내놨어.
'이렇게 이렇다 저렇다, 저렇다 이렇다' 뭣 별별 소리를 다 붙이고 떼 놓고 다 해 놨다마는 장경(藏經)으로 아무리 부처님이 천하에 능술(能術)이 있고 천하에 제일 가신 혜통(慧通)이 있어도 그것은 이름도 못 붙여 놓고, 모냥도 못 붙여 놓고, 어림도 없어. 주각(註脚)만 아무리 해 놨자 못혀.

그래서 도무지 부처님도 건드려 보도 못했고, 삼세제불(三世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도 구괘벽상(口掛壁上)이다. 입을 벽상(壁上)에 걸어 버렸다 그 말이여.
그러헌 도리인디 그 자기를 49년 동안이나 주각(註脚)을 내놓으셨으며, 과거 제불도 모도 나오셔서 모도 그 자기를, 이 마음자리를 주각을 모도 내놓았다마는 절각(切脚)이다, 절각. 그 다리 부러진 것이다. 다리 뿌러져. 다리가 온당해야 하지, 뿌러지면 될 것인가? 그러면 ‘다리 부러졌다’는 그 말은 주각(註脚) 내놨다 그 말이여. 이리저리...

아무 본 몸뚱이에 부스럼 하나 없이 보드란—무슨 거 깨끗한 몸뚱이 긁어서, 그놈을 긁어서 손톱자국이 나 가지고는 차츰 이놈이 켜져서 연방(連方) 덧이 나 가지고는, 부스럼이 나 가지고 종창(腫脹)이 되어 버렸다 그 말이여. 종기 종창 되었다 그 말이여. 주각 모두 낸 것이 비유컨댄 그렇다 그 말이여. 고걸 잘 알아들어야 되아. 멀쩡헌 다리를 긁어서 부스럼 내논 것이다 그 말이여.
자기(自己)를, 별별 말씀을 우리 부처님께서 다 해 놓으셨지마는 주각(註脚) 내논 것이다. 온당한 몸뚱이 긁어서 부스럼 내논 것이다 그 말이여. 그걸 절각(切脚)이라. 그거 다리 부러져, 다리 부러져 온당치 못한 것이니, 그거 그 말이여.

증절착자개무자부(曾切着者箇無字否)아? 조주가 '무(無)' 허는 이 무자(無字)도 절착(切着)해 보겄냐?
절착도 주각(註脚)이여. 그 무자(無字)도 한 번 쎄를 내롸 보겠냐 그 말이여. '무(無)'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無)” 거 쎗바닥을 내롸 보겠나?

내가 또, 또 이 법문을 허는구마는 내가 뭐 없는 법문을 어디 가서 장만해서 혀? 내가 맨들아 혀? 그 있는 법문허제.
이 조주 무자(趙州無字)가—그때 무자 화두를 헐 때인디 내가—조주 무자가 하도 그 십절목(十節目)이 다 있으며 그때 당시에도, 과거 큰스님네가 있을 때에도 무자(無字) 모도 분석이 그리 많고.
무자를 헐 때인디, 나도 무자(無字)를 허다가, 거 곡성(谷城) 동리재를 넘어가다가, 어쨌든지 내야 바로 깨달랐든지 바로 못 깨달랐든지 그 학자들이 공부해 나가다가 그런 경계가 있는 것이여. 무자(無字)를 해 나가는디 문득 '담 너머에 가 외 따 오니라'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소를 찾겄습니까?”
“담 너머에 가 외 따 오니라”

아! 이놈이 퍼떡 들어오면서 그만 견성(見性)을 했네. 내가 견성을 했다 그 말이여. 아! 금방 깜깜하던 것이, 아! 견성을 했다.

“운무중(雲霧中)에가 소를 잃었으니, 운무중에다 소를 잃었으니, 구름 안개 속에다가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소를 찾겄습니까?” “담 너머에 가 외 따 오니라” 아! 그 말이 퍼떡 들어오면서 툭 깼네. 확철대오여, 나는. 내가 그랬다 그 말이여. 그 인가도 없고. 뭔 대오(大悟)를 했는지 안 했는지 누가 아나? 나 혼자 시방 헌 거지.

그때에 곡성 뒷재를 넘어가는디, 다리 노지(징검다리)를 건너가는디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만약 이때에 나한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은 녹수암전거(綠水岩前去)로구나. 녹수(綠水)는 암전(岩前)으로 흐르는구나. 암전으로 가는구나’ 뭐 다른 놈 갖다 쓸 것 없어.
그때는 ‘약인(若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만약 사람이 나한테 서래의를 묻거드면, 각하녹수암전거(脚下綠水岩前去)다. 각하(脚下)에 녹수(綠水)는 바위 앞으로 가는구나’ 이놈을 하나, 저 평생 그런 짓 안 보이다 나 혼자 했단 말이여, 그것 나 혼자. 뭐 누가 있어서 옆에 사람한테 헌 것도 아니고.

아! 그러고는 그 재를 넘어가서, 넘어가도 어떻게 넘어간 줄 모르고 뒷재를 넘어가서 곡성 동리사 절을 들어가니까, 고요한 산문(山門)에 뭐 선방(禪房)이라고 했자 선방은 텅 비어 있고, 이름만 선방이지 없고. 큰절 뭐 선방 그 곁에 모도 그 사판중들은 그대로 있고.
누가 아나? 누가 무슨 뭐 뭐 내가 누구한테 뭐 '알았다'고 해 봤던들 누가 알아줄 사람도 없고, 내 혼자 법당에를 들어가 봐도 부처님이 거그 다 그대로 계시건마는 부처님도 하나도 없고, 대체 원 뜰 앞을 봐도 뜰 앞에도 아무것도 없고, 산을 봐도 산이 없... 봐도 없다 그 말이여. 산이 있어도 없다 그 말이여. 없고 없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가 그만 없어. 그대로 텅 비어 버렸다 그 말이여. 그때 내 경계가 그려. 바로 깼는지 못 깼는지는 몰라도.

밤에 달은 환한디 누(樓)에 올라가서—잠이 와? 잠켕이는 뭐, 아무것도 없지. 어떻게 그 이상스러?
누(樓)에 떡 올라가서 그날 지은 것이 그것이여. 그날 처음에 지은 것은 그때는—내가 뒤에 그만 그 대갈빡을 끊어 버렸지마는,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요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이요  암하유수(岩下流水)는 과교래(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아! 그날, 내가 글이라고는 평생에 지어 본 일도 없고, 지을라고도 허지도 않고, 뭐 나 뭐 절에 들어와서 어릴 때 들어와 가지고서는 뭔 놈의 글 내가 얼매나 배웠나?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 배우고는 그냥 그다음에 뭐, 이것도 좀 배우다 저것도 좀 배우다 뭐 그래 그랬지.
그러다가 그만 무상(無常)한 생각이 일어나서 도 닦을 마음이 나니까, ‘그것 쓸데없는 놈의 글 그것 알아 뭣혀, 도 닦으면 그만이지. 도 닦으란 말이니 도 닦으면 그만이지 그것 배워 뭣 혀?’ 그 생각이 일어나니까 죽어도 글을 못 배우겄드구만. 배우면 글만 배우면은 전부 도 닦으란 말뿐인디 뭐 그 뭐 그 밤낮 밥 먹으라고 했으면 밥 먹으면 그만이지, 밤낮 밥 먹도 않고 ‘밥 밥’만 설식기포(說食豈飽, [說食求飽])만 하면 되아? ‘밥’ 말만 하면 앉았으면 배는 그대로 고프지, 먹어야지.

참선을 해야지! 글만 밤낮 보고 있어? 에잇 거 어리석은 일, 그 글 배우다 죽어 버리면 오늘 죽어 버리면 당장에 도(道) 못 닦을 것인디, 내일을 기약해 가지고 '내일 도(道) 닦겠다' 하고 오늘 글 배우고 앉었어? 거 어리석지 않어?
‘나, 나 뭣 뭣 해 놓고 인자 도 닦겠다’고. 그런 놈의 어디 멍청허고 미련헌 놈의 마음이 어디 있어? ‘지금 오늘은 내가 그냥 뭣 내 헐 것 다 해 놓고, 내일부텀 도 닦을란다’고. 오늘 뒈져 버리면 어쩔 것이여. 그 소용없는 것이거든.

무상을 간택하는 법이 그렇지. ‘내일 헐란다, 내년에 가을에 헐란다, 명년에’ 거 소용없는 것이여. 도학자(道學者)라는 것은 그게 아니여. 발심(發心)은 그게 아니란 말이여.
당장에 그만(그대로 곧) 닦아야지. 누가 닦아 줄 것인가? 누가 못하게 한다고 내가 안 닦을 것인가? 무슨 사정이 있다고 안 닦을 것인가? 무슨 사정에 내가 끌릴 것인가?
자식이 뭣이여? 자식 있다고 자식도 키워 놓고 도 닦아? 그놈의 것, 그까짓 놈의 자식 뒈지든지 말든지 내 일을 해야지? 이런 꼴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디 '어머니 따문에 도를 못 닦는다'고 그래. 그 어머니 모시고 있으면은 어머니 시봉 다 해 드리고 그저 어머니 일체사를 효자를 다 허고 도를 닦을 것 같으면 그 여읠 것도 뗄 것도 없고, 아 그대로 그만 상근(上根)이니까 나올 것도 없고.
만약에 어머니가 있어 가지고는 그만 어머니 때문에 시봉허고 어쩌고 모도 어머니 사정에 끌릴 것 같으면은, 도(道)를 끌려서 못 닦을 것 같으면은 그거는 하근(下根)이니까 내던져 버리고 나와야 하고. 그런 거여. 하근 상근이 있어서 상근, 내가 상근인가 보다, 내가 하근인가 보다, 알 수 있지.

그런 디 모도 걸리고 그런 애착 반연(攀緣)에 모도 얽혀서 도를 못 닦게 되면은 아! 그건 열 번 백 번이라도 버리고 출가(出家)해서 도 닦아야 하고.
아무 일이 없으면은 하나도 구애(拘礙) 장애 없이 그저 국민이 되었으니 나라 충성하고, 부모자식이 자식이 되았으니 부모한테 효도를 해야 하고, 마누라가 있고 자식이 있으니 마누라 그저 어쨌든지 잘 동거 생활해 가면서 자식 교육시켜 나가면서 헐 수 있는 것이여. 다 허면서 색색잉구(色色仍舊)를 허면서 그 그렇게 해 나갈 것 같으면은 촌보(寸步)도 옮길 것 없지. 뭘라고 옮겨. 참 거 상근대지(上根大智)인디. 그런 사람은 부처님이 출가를 권헌 법이 없어. 어쨌든지 그렇게 해라 했지. 그렇게 말만 그러지, 언행상위(言行相違)가 되아. 말과 행이 다르면은 뭐 헐 수 없어. 네가 도를 못 닦.. 그래 입으로만.
'일체 반연(攀緣) 경계도 아무 관계없다, 걸림 없다, 뭐 그런 디 손색이 없다' 그런 마음이 있거들랑은 도를 닦고. 그렇지 못허거든 출가를 해라. 어쨌든지 출가를 해야사 도를 닦게 되면은 그렇게 해라. 그 제 근기를 제가 다 알아야 되지.

이렇게 한참 해 놓다 보면은 그 원 가닥을 법문 가닥을 잊어번져. 나 참!
이거 그전에는 그런 법이 없더니 인자는 그만 한참 허다 보면 잊어번져. 그 어디 그렇게 어느 가닥에서 이렇게 했는지를 모르니까 그만두어 번지고, 여그서 그만 이놈은 그대로 두어 번지고 또 계속헐 수밖에 없지.

이렇게 게송(偈頌)을 내가 짓고. 그 게송은 지금도 봐도 하나도 뭐,
작야삼경(昨夜三更)에 월만루(月滿樓)요  고가창외(古家窓外)에 노화추(蘆花秋)라.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인디  암하유수(岩下流水)는 과교래(過橋來)라.

그것 참! 그 송(頌)을 뭐 큰스님네도 봐도 다 절찬(絶讚)을 했다 그 말이여. 절찬했지!
그러고는 그날 밤 지내고 거기 뭣, 뭐 모도 뭐 있지마는 그런 것 다 뚝 떼 번지고, 인자 오늘 그것 하나 허고 싶... 이 이 말 하나 헌 것은 그 헐 말이 있어서 지금 허고 있어.(처음~23분29초)





(2)------------------

거기서 제일 가까운 큰스님이 마곡 혜봉 스님이락 하는디, 마곡 혜봉 스님은 뭐 보통 행(行)이 아니여. 행으로 말하면은 한국 선지식 가운데 제일 먼트러워. 먼트럽다는 것은 제일 당최 행(行) 볼 것이 없다 그 말이여. 그만 공부허다가 견성을 해 가지고는 그만 그길로 마을로 나갔어. 구암사로, 저 구암리로.
구암리 동네로 나가서는 패철을 하나 차고 패철, 그 묏자리 같은 거 보는 그 패철 그걸 차고는 산 지리(地理)가 뭐 명당인지 무슨 뭐 그런 거 잡는다고 산에 올라댕기면서 묏자리 잡는 것을 패철 타고 댕기면서 그래서 허고 있음서, 마누래를 하나 얻었는디 마누라는 제갈량(諸葛亮) 마누래처럼—천하에 못났다는구만, 제갈량 마누래가—천하에 못난 마누래를 얻었어, 혜봉 스님이. 입은 똑 말 이빨 같고, 얼굴을 뭐라고 할 수가 없어, 내가 봤구만. 눈도 어떻게 이상스럽게 툭 까지고, 양쪽 눈이 다 다르게 생기고, 뭣 입이라든지 뭐 말하는 것 봐도 기가 맥히다 그 말이여.
내가 그저 그 마곡 혜봉 스님을 찾아 들어가니까 거그 인자 그 그런 부인이 하나가 있는디 마누래라 하드구마는. 그래 아들 그때 둘 낳아 놨어. 큰놈 작은놈 둘이 커 나는데, 아들을 잘 낳아 놨다 그 말이여. 아들은 잘 낳아 놨고, 또 그 부인이 그렇게 못생겼어도 거 반찬 그런 것 참 썩 잘한다 그 말이여. 감나무 버섯을 따다가서 된장을 지져 놨는디 그 뭐 참 일품이여. 똑 같은 감이라도 지지기 달렸거든.

내가 어저께 우봉(우엉)잎 줄거리를 줏어다 주면서 장(醬)을 지지라고 했지마는, 그것도 잘못 지지면은 그 맛 아무것도 없어, 씁쓸허니. 허지마는 고놈 바탕이 좀 쌉쌀하거든. 쌉쌀한 게 그게 맛이여. 쌉쌀하지마는 고놈을 잘 잘라 가지고는 한 층 안치고, 고 한 층에다가서는 양념장을 그놈을 맛있게 해야 한다 말이여. 인자 뜻밖에 법문허다가 인자 지금 반찬 맨드는구만. 반찬 맨드는 건 법(法) 아닌가?

차분허니 한 층 놓고는 고 우에다가 양념장을, 양념장에다가 설탕 조금 넣어야 혀. 달게는 넣으면 못쓰지마는 조금 넣고, 깨소금 · 고춧가루 적당허게 넣고. 깨소금을 쪼끔 넣고, 고춧가루를 잔뜩 넣고, 그 다 못쓴 것이여. 반절 반절 똑 그래 넣고. 매와도 못쓰고, 얼마 딱 양념이랑 그래 넣고. 참기름 좀 잘 치고, 그래서 장(醬) 좀 붓고, 물을 좀 부어서 간을 맞촤 가지고는 요리 떠 가지고, 숟가락—간 같은 것, 숟가락을 넣어서 그냥 젓어 가지고 입에 쭉 훑어 마시면 그 당최 그 대중공양 허면서 못쓰니까, 요래 찍어서 손바닥에 놔 가지고 맛을 보면은 달도 쓰도 않고 적당하지. 너무 짜도 못쓰고, 싱거워도 못쓰고.
그렇게 해 가지고는 간을 아주 양념장에다 맞춰 가지고는 그놈을 한 층 썰어 놓고 거다 살모시 이렇게 붓고는, 또 고 우게다 또 한 층 놓고 붓고, 대공이 그렇게 놓고 또 잎사귀도 옆에다가 또 쟁이기도 허고, 그래 쟁여서 사이사이에다가서 양념장을 해서 따악 겹겹이 그렇게 올려 가지고서는 딱 해 놓고서는 양념장 쳐 가지고 놓고는, 옆에다가 또 좀 물 좀 살모시 그놈 쟁겨서 끓을 만큼—설찬히 물이 있어야 푹 지져져서, 가만히 물을 붓고는 조금도 건들지 말고 한 두어 시간 푹~ 쪄. 자꾸 자갈자갈 자갈자갈 쪄. 그래 가지고 다 된 뒤에 곁들이 곁들이 이파리는 이파리대로 놓고, 대공이는 대공이대로 딱 떠서 놓고, 아 그래서 놔 봐. 대중 반찬 기가 맥히제. 아! 그래 내가 그리 줏아다 주었지.

또 여까장 헌 말은 뭔 말끝에 내가 이 말을 헌고 모르겄어. 그럼 요놈은 또 여까장 두지. 거 구태야 이것을 무슨 뭐 다 이을라고 헐 것도 없고.

'감나무 버섯을 갖다가 혜봉 스님 부인이 잘 지져서 해 놨는디 그렇게 맛이 있드라' 그 말을 헌디 이놈을 했어. 참말로 맛.. 그러고 또 얻어먹고 댕길 때니까, 입이 뭐 굴퍼서 가난해서 에지간만 해 줘도 꿀맛이지. 허지마는 감나무 버섯을 지져서, 혜봉 스님 그 패철 차고 머리는 길러 가지고 막걸리나 잡솼든가 어쨌든가 그때 그건 잘 모르겄구마는, 그러고 와 계신다 그 말이여.
가서 그 같이 참 맞상에다 차려 가지고는 나를 밥을 주는디 황송허드구마는, 황송허거나 말거나 그녀러 것 뭐 야단스런 체면 채릴 것도 말 것도 없고 그렇게 채려 주셔서, 참 탈속허고 무슨 뭐 무슨 '젊은 사람이다 뭐이다 아들이다' 그런 것도 생각할 것도 없고, 내가 그때 무슨 나이 한 스물두어 살 먹었은께 뭐, 아주 새파랗지 뭐.

그래 얻어먹고 나서 절을 허고, “큰스님께 온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물으러 왔습니다. 무자 화두를 허다가 의심이 없어서, 제가 곡성 동리재를 넘어오다가 그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소를 찾겄습니까?’ 하니까 ‘담 너머에 가 외 따 오니라’ 그 말에 그만 무자(無字)의 의지가 뒤집어져서 견성을 제가 바로 헌 것 같습니다. 좀 큰스님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내가 그랬지. ‘바로 견성했습니다’ 소리도 않고, '헌 것 같습니다. 좀 바로 봐 주십시오'
“그럼, 어디 물어보게”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흥! 반만 일러 달란 말도...
“무(無)!”

“반 안 됩니다. 반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수좌가 일르게. 어떤 게 반(半)인가? 어떤 게 무자의지 반(半)인가? 수좌가 이르소” 나한테다가 돌려보낸다 그 말이여. 법두(法頭)를 돌려보내아.
내가 또 “무(無)!”

고개를 끄덕끄덕허시면서 흠, 인자 그 뒷말이 무서워.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여.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금년 가난은 참 가난해서 송곳까장 없다” 내 그냥 말로 이렇게 헐 테니까. “송곳까지 없다. 그랬으니 고인(古人)이 터억 그 옛 큰스님이 점검을 허시되,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송곳까장 없다고 했으니, 송곳 꽂을 땅도 없지마는 송곳까지 없는 도리는 여래선밖에 안되아. 여래선으로는 그 인가를 헐 수 없는 거고. 조사선(祖師禪)이래야 되니 조사선을 못 일렀다 했으니, “어떤 게 조사선(祖師禪)인가?”

거 조사선 이르기... 터꺽 거그서 용 대그빡 용 몸뚱이를 붙이기가, 용 몸뚱이에 용 대그빡 거 갖다가 붙이기가 그렇게 어렵네. 도저히 못한 법이여. 바로 공안(公案)을 보지 못허면은 못혀. 거기 붙어 있지만 못혀. 그놈을 백 번을 여기서 일러 놨자 소용없어.
'오! 그런 건가 보다' 그런 것 가지고는 안 되는 법이여. 확연해서 그런 이의(異意)가 없는 것이거든, 공안에는. 뉘기 짬이 없어. '그런 겐가?' '아! 그렇다' '오! 고렇다' 그거 없어. 고런 짓이 저 죽는 것이여.

아! 그때에 내가 이르되 뭐 뭐 뭐 뭣 버떡 이르지. 뭐 뭐라고 뭐 주저할 것 없지. 뭐 버떡 일러. 허지마는 참 그것 그래 가지고 저 죽는 것이지.
능각첨첨첨사추(菱角尖尖尖似錐)라고, 그 있는 공안 뭐 말에 있는 것이여. 나는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라 그랬다 그 말이여. “능각첨첨(菱角尖尖)이 타(他)와 같지 않다”고 이래 놨네.
그래 논 게 암 말씀도 안 혀. 아주 태도가 그렇게 좋지 못한 기색을 가지고 아무 말씀도 안 혀. 두 말도 안 혀. 내의 허는 경계를 보고 그랬든지 어쨌든지 아무 말도 안 해.
‘참 나를 인가(印可)를 했다’ 아무 말도 안 하니 인가한 줄 알았네. 하! 이런 미친 발광(發狂)... 아! 그래 그만 그러고는 절허고 나왔다 그 말이여. 나중에 내가 참 그 나중에, 그 뭐 또 인자 그 모도 여러 가지 헌 것 꽉 찼지마는 그것 다 그만두고.

공부에 판치생모(板齒生毛)가 그렇게 맥혀. 그건 암만해도 당최 맥혀 안되겄다 그 말이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아 그놈이 어짠지 그리 맥혀. 최후 그놈을 가지고는 참 애를 무척 썼어.
맥힌 놈, 맥히면은 그전에 했든 공안이 암만 깨달랐다 하드래도 아니라 했으니까 소용이 없거든. 안 되아. 맥힌 놈을 추켜들어 해야지. 그냥 맥힌 놈이 있어도 ‘에잇! 그 다 깨달랐다’고, 그 소용없는 놈의 아무것도 아니여. 뭣이여 그것이? 그래서 그놈을 가지고는 참 살림을 무척 했지. 한바탕 되게 했지.

아! 그놈 내가 바로 참! 그라면 물팍을 냅대 치고는 아! 보니까 혜봉 스님한테 헌 것이 큰 그것 뭣이여? 큰 대죄를 지었다 그 말이여. 그 혜봉 스님이 인가 않고 그 불연(不然)허던 경계가 나타난단 말이여.
내가 그래서 그 인자 그런 공안을 일러 논다한들 어쪄? 일러 놨다고 해서 봐? 못 봐. 소용없어. 전무나 후무나 반무나 온무나 뭐 다 똑같이 맥히는 것이고 소용없거든. 그 공안 암만 일러 놔도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면 뿐이지마는 소용없는 것이여. 그 조주 스님 공안 많이 범연히 많이 일러 놨어? 한량도 없이 일러 놨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치생모'는 바로 이른 것 아니고 뭣이여? 그 알 수 있어?
그 판치생모를 턱 물으면은 ‘무수호손도상수(無鬚猢猻倒上樹)다. 수염 없는 늙은 원숭이 냉기를 올라간다’ 그 그 뭐여? 그건 뭐여? 바로 일러 논 게 아니고 뭐여? 소용없어. 하나, 그놈 했자 뒤는 어쩌고? 거 안되는 것이여.
그 파설(破說)이여? 파설 아니여. 아주 그래 논께 뭐 ‘파설했다’고. 파설이 뭐이 파설이여? 자기들이 봤는가?

법문(法門)이라는 것은 공안에 밝으면은 의리(義理)에 더 밝는 법이여. 의리로 말하라면 의리를 더 더 명백하게 허는 것이여. 의리로 설파는 말라는 것이여.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들어가도 치고 나와도 친다” 그럼 들어가도 치고 나와도 친다 하니까 그때 그 학자(學者) 하나가 푹! 들어갔다. 확 들어가. 들어갔으니께 탁! 쳤다 말이여.
맞고는 학자가 “모갑(某甲)을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께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네.
양구(良久)도 아니여. ‘쉴 휴(休)’ 자, ‘갈 거(去)’ 자, 휴거(休去)여. 그 뭣이여? 그 학자는 왜 들어갔어? 학자가 눈이 있어, 없어? 그놈을 탁! 그대로 환해. 저 길 보면 길이 어떻게 생겼다는 거까지 나타나 버리는 거여.

멋대가리 없이 ‘견성했다’고. 뭔 말하면 휙 대답 한마디, 그 뒤는 어떻게 허고?
아무때나 그러면 주먹 내밀면은 “주먹 낸 의지가 무엇이냐?” 하면, “할(喝)!” 허고, “할(喝)헌 의지(意旨)가 뭐이냐?” 하면, “방(棒)” 허고, 이러고 야단치고 있어? 그거 그거 아무것도 아닌 것이 건방지기만 건방졌지, 뭣 하는 것이냐 그 말이여, 그것이?

아니니께 아니라 하는 것인데 저는 기라고 허는구만. 그러면 뭘라고 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와? 저는 기면, 견성했으면 그대로 가서 어디 가서 보림(保任)을 허든지, 제야 무슨 뭐 성불을 허든지, 중생교화를 허든지 허지.
그것 미쳐 버린 것이여. 그대로 인자 그 지경 되면은, 선지식 말도 안 듣고 그 지경 되면 속한[俗還]이 그대로 가 버리는 거여. 그대로 가서 그만 제대로... 안되야.

그 아! 그때에 그 “어떤 게 조사선, 조사선(祖師禪)을 일러 보소. 조사선이겄는가?” 할 때, 원 세상에 거그서 그놈을 하나를 못 일러 놓고 말았네. 내가 그때 그 일러 논 놈 내가 다시 허지 않네. 다시 허지는 안 해. 않지마는 천하에 도무지 기가 맥히지.

공부라는 것이 학자 때 견성 못하고 '견성했다'고, 제가 인자 공연히 속아 가지고는 돌아댕김서 그 지랄 피운 거 그것 제일 못쓰는 것이니, 참회를 참말로 혀. ‘옳다! 그런 게 아니로구나’ 진참회(眞懺悔)를 허고는 화두를 어쨌든지 인자 그때 참 다뤄, 그때.
뭔 못된 소견(所見)이 나 가지고서는 그 모도 일체 화두를 갖다 제 소견 소집(所執)을 붙여 가지고는 상량(商量)허는 놈의 ‘요런 것인가 보다, 저런 것인가 보다’ 그것 되는가 그것이 어데? 그게 그런 것인가 어데? 부디 거그서 주의해서 그런 지견(知見)이 날까 무서워. 날까 무서워서 활구(活句)만 자꾸 거각(擧却)해. 활구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판치생모? 판때기 이빨에 털 나?’
그놈의 것을 ‘판때기 이빨에 털 난 법이 없는디 털 난다고 했으니 없는 걸 일렀는가 보다’ 요따구 놈의 소견, ‘본래 없는 것을 이르니라고 그랬는가 보다’ 요런 놈의 소견, 별 소견을 다 붙여봐, 그 되는 것인가?

왜 어디 없나? 이렇게 소소(昭昭)허고 이렇게 영령(靈靈)한 주인공이 아무리 모냥을 찾아봐도 없고, 낯반대기도 없고, 코빼기 없지마는, 이렇게 분명허고 전부 이 ‘이뭣고?’ 요놈, 요놈의 모도 소행인디. 없어? '없다'고 해 놓고 보니까 없어야지?
'있다'고 해 놓고 보니 어디 어디 무슨 뭐 몸뚱이가 있어, 모양이 있어, 뭐가 있어? '없다'고 해 놓고, '있다'고 찾아보면 도무지 없네. 아무 모냥다리도 없는데 '없다'고 해 놓고 보니 이렇게 소소영령(昭昭靈靈)해.
주인공(主人公)이 다 알지. 주인공이 다 맨들아 놓았지. 내가 모도 맨들어 놓았지, 누가 맨들어 놓았어? 낱낱이 주인공 개개(箇箇) 주인공이, 사람사람이 주인공이 다 있으니 소소영령헌 주인공이 우주 만물을 창조했지. 우주 만물을 맨들아 냈지. 무슨 놈의 하날이 있어서 우주 만물을 창조했냐 그 말이여.(녹음 끊김)

아담을 창조해 놓고 과수를 따 먹지 말아라. 과수를, 과실(果實)을 따 먹으면은 죄악으로 화하리라. 전서(全書)에다 갖다 모도 이렇게 해 놓고는.. 고것을 그 참으로 비유해 놓은 거여. 잘해 놨지. 그런 비유가 어디 있어?
아! 그 하날(하늘)은 천성(天性)이다. 천성은 하날이다. 천성이 하날인디, 천성이여. ‘하늘 천(天)’ 자, ‘성품 성(性)’ 자. 천성(天性)은 내여. 내가 하날이여. 내가 들어서 ‘하날이다, 땅이다, 우주만물이다, 삼라만상이다, 정여무정(情與無情)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다, 화화촉촉이다’ 누가 해 놨냔 말이여? 누가 이름을 그렇게 맨들아 지어 놔 모도 불러? 내야. 내가 아닌가?

우주만물을 창조헌 주인공은 낸디, 심왕식(心王識) 심왕, 마음 심(心) 낸디. 육일(六日)이라는 것은, 육일이 뭐여? 육일, 육일이란 게 뭐냔 말이여?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6일 아닌가? 눈, 귀 둘, 코빼기 셋, 쎗바닥 넷, 몸뚱이 다섯, 뜻 여섯, 그놈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육식(六識)이라 그 말이여. 육식이 들어서 '하날이다, 땅이다, 우주만물'
눈은 눈은 눈은 보는 놈, 보는 것 밖에는 모르지. 눈은 보는 것 밖에 모르고, 귀는 듣는 것 밖에는 모르고, 코는 냄새 맡는 것 밖에는 모르고, 쎗바닥은 맛보는 것 밖에 모르고, 몸뚱이는 촉식—만져 보는 것, '껄끄럽다, 부드럽다' 아는 게고. 뜻으로 세아리는 거, 세알라 아는 거. 다 달라서, 맡은 게 다르다 그 말이여.
그 육식(六識) 아닌가? 그 육식(六識)이 들어서 모도 맨들어 내는 거 아닌가? 그 비유허는 말 아니여? 하날이 우주 만물을 6일 동안 창조했다는 것이 그 말이여.

거기에 안식일(安息日)이네. 7식(七識)! 제 7일은 안식일이 제7식(第七識)이여. 제7식, 7일이라는 것은 안식일이여. 그날은 쉰다 그 말이여. 그 쉬는 놈 고놈이 제7식인디, 7식이 하나가 있는디, 제8부동식 뢰야식 가운데에서 갖다가서 눈이니, 귀니, 코, 쎗바닥이니, 몸뚱이, 뜻이니 그런 것 발허기 전(前)이 심왕식(心王識)이여. 제8뢰야식장(第八賴耶識藏)이여.
아 꽉! 잠 꼭 들어, 꼭 잠든 상(想)도 없는 그 지경이 제8뢰야식장인데, 그 뢰야식장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는 이놈이 터꺽 눈으로 보는 디로 전해 주는.. 눈으로 보고 터꺽 듣는 귀를, 7식 고놈 하난디 고놈이 들어서 모도 보내주는 것이여. 눈으로 보내고 귀로 보내고 쎗바닥으로 보내고, 그걸 종식(種識)이락 해. 제7식은 종식이여.

제8부동식장, 꽉! 맥혀서 알 수 없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의심, 아무것도 알 수 없고, 그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 ‘이뭣고’는 ‘이뭣고?’
이뭣고? 해 들어가다 아주 의심이 독로해서 그 의단독로헌 지경은 몰라. 아주 곧 혜가 그 가운데 들어앉어서도 의심 가운데 앉어서도 몰라.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그 지경이 그게 제8근본 무명식이여.
꽉 맥힌 놈이 은산철벽(銀山鐵壁)이 나아갈 수 없고, 물러가도 죽고, 알 수 없는 곳에 다달라서, 그 알 수 없는 지경이 의심(疑心)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이레는 못 넘어가. 이레만 넘어가면은 툭 터져 버리는 거여. 폭탄 터지듯기 터져. 툭 터져야사 각(覺)인디, 각은 제9백정식(第九白淨識)이여. 백정, ‘흰 백(白)’ 자, ‘조촐헐 정(淨)’ 자, 백정식(白淨識)이여. 바로 깨달은 식(識)이란 말이여.

뻘로 공연히 입 벌려서 '견성했다'고 허면 되는가? 그래 가지고 공연히 남 속이고 저 죽고. 그런 짓 해서는 못써. 천하에 못헐 짓이 그 짓이니깐 학자가 그것을 삼가치 아니할까 보냐.


장교(藏敎)라는 것은 절각(切脚)이다. 주각(註脚)하는 거여. 내 자기(自己)를 주각 내는 것이지, 그 건들어 보도 못했어. 이 화두 공안이란 무자(無字)는 주각 한번 내 보겠냐? 내 자기(自己)에 대해서, 내란 이 마음자리에 대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부처님이 주각을 냈다고 헐 수 있으니 그건 끊어진 다리다. 다리 부러진 거여.
이 낱 무자(無字)도 한번 주각을 해 보겄냐? '무(無)', 조사 공안 '무(無)' 여그 주각을 한 번 내 보겄냐? 쎗바닥을 붙여 보겄냐? 이 말이여. 이렇게 깊은 법문이여.

무자부(無字否)아? 영리한(靈利漢)은 직하흔번(直下掀飜)해라. 영리한 놈은 여그서 바로 봐 버려라. 무자(無字)를 한번 즉착(卽捉)해 보겄냐? 무자만 바로 깨달라 번질 것 같으면은 통명자기(洞明自己)다. 자기(自己)는 그대로 통명(洞明)이다. 훤출해 버렸다. 뭐 다시 말헐 것 없어. 착파조주(捉破趙州)다. 조주도 착파(捉破)해 버린다. 조주가 '무(無)' 했지마는 조주도 타파해 버려.

감파불조득인증처(勘破佛祖得人憎處)다. 불조인증처(佛祖人憎處)를 감파(勘破)한다. 불조가 인증처, 불조인증처라는 것은 인증처(人憎處)—‘사람 인(人)’ 자, ‘미워헐 증(憎)’ 자, ‘곳 처(處)’ 자여. 불조(佛祖)가 인증처(人憎處) 얻는 것을 감파(勘破)한다. 한문 투는 그려.
그건 무슨 말이냐 허면, ‘불조가 사람 미워헌 곳 얻은 것을 감파한다’ 한 것은 불(佛)도 한번 방맹이 놓는다 그 말이여. 내 자기(自己)는 툭! 터져 번지고, 내 자기 툭 터져 버릴 것 같으면 조주를 한 방맹이 놓을 것이고, 조주를 한 방맹이 놓을 것 같으면은 불조패궐처(佛祖敗闕處)도 절단 나. 불조패궐처라는 건 불조의 허물을 치는 것이여. 불조(佛祖)도 패궐(敗闕), 부처님도 허물이 있다 그 말이여. 불조패궐(佛祖敗闕)을 쳐부수리라.

허이도(許爾道), 너를 허락해서 내가 일러. 허락을 허되, 대장교(大藏敎)가 식옹창지(拭癰瘡紙)니라. 부처님의 대장교가 그 절각(切脚)이라고 아까는 했지마는 인자는 부스럼 닦아 내버린 종이다. 그 부스럼—조주무자(趙州無字) 바로 타파(打破), 탁 깨달라 네 자기 밝혀 버릴 것 같으면은, 아 조주도 한 방맹이요, 부처님도 한 방맹이 놓아 버렸으니, 대장교는 그 아까는 절각(切脚)이지마는 인자는 고름 닦아 내버린 종이때기다.
그 병 다 낫웠으니, 모도 요리조리 모도 분석 따져서 해 놨던 병 낫아 버렸으니, 고름 다 닦아 내버렸다 그 말이여.

수연여시(雖然如是)나, 비록 그렇기는 그렇다마는 이 낱 무자(無字)는 종하처출(從何處出)고? 그러면 이러헌 무자(無字)는 어디서 나왔느냐? 어디서 나왔느냐?
이 무자(無字) 도리(道理)를 한 번 참! 다시 봐 봐라. 이 무자(無字)는 어디서 나왔느냐? 이렇게까장 몽산화상(蒙山和尙)이 십절목(十節目)을, 열 가지 절목을 이렇게 말을 해 놨어. (23분32초~52분16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