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15/18) 박산무이선사의 선경어.

**전강선사(No.387)—박산무이선사 선경어(15) (갑인.74.01.29.새벽) (전387)

 

약 31분.


환자의원구(患者醫員求)요  억모영해심(憶母嬰孩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친절주공처(親切做工處)에  홍일동령상(紅日東嶺上)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병이 들어서 꼭 죽게 되었을 때, 아주 꼭 죽게 된 급한 지경에 다달라서 그 목숨 뚝 끊어질 때 그때가 참 설찬히 괴로운 것인가 부여. 고통이 그때가 아마 제일인가 부여. 어디 어디 해도 아무리 몸뚱이에 별 병이 있어 아파도 목숨 뚝 끊어질 때가 아마 제일인가 부여. 그 목숨 똑 잘라질 때, 그 급할 때 그 지경에 낫아 줄 의원이 누군가?
그 의원이, 확철대오(廓徹大悟)허신 큰스님이 중생 그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지경, 깨닫지 못헌 그 지경을 깨게 해 주는 것이여. 목숨 뚝 끊어질 때에 어진 의원이 그 사자(死者), 꼭 죽게 된 사람을 변성활(變成活) 시키듯기.

편작방중(扁鵲方中)에 구유영약(具有靈藥)인디 여조규이기사(如刁圭而起死)라. 편작방중 가운데, 편작(扁鵲)의 의술 가운데 영약(靈藥)이 있는디, 신령스러운 약이 있는디 조규이기사(刁圭而起死)라. 숟구락만 갖다가 대도 살아난다.

이 선법(禪法)이라는 거, 활구참선법이라는 것은 스승이 없이는 도저히 헐 수가 없네. 그 별일이여. 혼자는 혹 생이지지(生而知之) 혼자 깬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지마는, 불법(佛法)이 생겨난 이후 위음왕불(威音王佛)이 최초 불(佛)인디 위음왕불 이후에는 없다 했으니 그 없단 말이나 같애.
그렇게 그 쉽지 못혀. 꼭 그 선각자(先覺者)가 참 바로 터억 일러주는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법이여. 그 벌로 알아서는 틀려.

'내가 그저 용맹정진만 그저 철저헌 정진만 하면 되지, 안될 리가 있나?' 그것도 참 옳은 학자의 그 옳은 뜻이여. 그 그르다는 건 아니여. 그렇게 철저히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갖추어 간다면은 그저 실패는 없지마는 그런 학자한테 병들어서 꼭 죽게 되는 지경, 같거든. 그 알 수 없는 지경만 가지고 있는 학자한테 언하에, 말 한마디 언하(言下)에 턱! 대오(大悟)를 허는 법이니까, 같여.
혼자만 헌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여, 이 활구(活句)라는 것이. 거 참 우리가 옳은 스승을 만난 것이 참 천겁(千劫) 만겁(萬劫)에 기가 맥혀. 그 귀헌 희귀헌 법이여.

어린아이가 어머니 그 금방 낳아 놓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없이 살 두구서가 있나? 어디 금방 어머니 뱃속에 나온 것이 어머니 젖을 여의고 살 수가 있으며, 어머니 품을 여의고 살 수가 있나?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일체 동물도 마찬가지니. 막 알속에 나온 일체 모두 그 비금 주수(飛禽走獸)라든지, 모도 그 태(胎)로 나온 짐승이라든지, 연비충(蜎飛蟲)이라든지, 그 어머니 없이는 헐 수 없지. 꼭 그 어머니가 있어야 돼. 그 지경이다, 스승을 만나는 법이. 틀림없거든.
그걸 여지없이 믿어야 되지. 나 혼자만 아무때나 해서 된 거 아니여. 그렇게 된다면 된닥 하지, 왜 안 된닥 해?

왜 그렇게 달마 스님이 척! 동토(東土)에 나와서 첫 말씀이 뭐라고 했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공과일생이락 했어. 공과일생(空過一生), 아무리 애를 쓴 사람도 공과(空過)라고 했어. 그 뭐 뭐 혼자 되야? 그러니 그 참, 이 대오(大悟)허는 법이 그렇다 그 말이여.
왜 그럼 그런 말을 해 놓았어? 달마 스님 같이, 그대로 해 버렸어. 달마 스님은 방편도 없어. 양무제(梁武帝)한테 말 한마디만 했으면 양무제한테 여섯 번 그 사약(死藥)을 받을 이치가 없는디, 여섯 번 사약 받은 것 보지. 6번을. 꼭 죽일라고 작정을 해. 그놈의 중생의 왕이라는 게, 왕이라도 중생이 그렇다 그 말이여.

그 자기, 한번 ‘거 일체 불상 조성허고 모도 사찰을 짓고 그 공덕이 장하다’고 한마디만, ‘장합니다’고 한마디만 해 주었으면은 그만 달마 스님이 저 꼭대기에 올라앉을 턴디, '소무공덕(小無功德)입니다. 그 공덕 없습니다'
그 공덕 없지 뭐여? 그 까짓게 무슨 공덕이여 그까짓 녀러 것이. 불상 그 뭐 모냥 상(相) 조성, 모냥으로 나무로 깎아서 맨들어 놓고 불(佛)이라고 허고, 절 좀 지어준 것이 그것이 뭔 놈의 공덕이 그까짓 거 필경 무너져 버리는 놈의 거. 그거 좀 짓고 했다고 해서 좀 복 좀 받다가, 복 좀 받다가 타락해 버리는 놈의 거, 그 뭐 그거 유상법, 유위법(有爲法) 뭣 뭣할 거여? 그거 그러고는 진짜 법을 일러줄라고 헌 것이 실패지.

아니라고, '거 공덕 아닙니다' 허면 아! 왕이 ‘아 그러면 어떤 것이 공덕이냐?’고 한번 물을 것 같으면 인자 거기서 척 그 무위(無爲) 정법을, 위없는 정법을, 바로 정법을 일어줄 턴디. 정법을 믿지 않는 거다가서 일러주니 뭣혀? 그 중생 귓구녁이 꽉 먹어서 콱! 철통 같은디, 거다가서 정법을 아무리 송곳으로 뚫고 넣어준들 될 수가 있나? 그 소용없어.
그러니 믿지 않는 중생한테는 아무 소용없는 것이여. 믿지 않는 중생에게는 아무리 백억만 년을 설해 줬자 소용이 없는 이 참 정법이네. 참선법(參禪法)! 참 기가 맥히제. 그러기에 신(信)이라. 처음에 믿어야사 인자 믿는 학자한테 법(法)을 설해 주는 거여.

억모(憶母)가, 어린아이가 어머니 없으면 못 사는 것이, 그것이 스승 없으면 정법을 못 깨달라. 이걸 바로 믿어야 혀.

친절주공처(親切做工處)에, 친절히 공부허는 곳에, 참으로 절대 공부를 허는, 참선 공부를 허는 법에는 이렇게 스승을 옳게 믿고 옳게 참 항상 앉아서라도 정처(靜處)에서 앉어서...
뭐 지금 학자들이 하근 학자(下根學者)지 상근 학자(上根學者)가 누가 있는가? 상근 학자 없어. 돌아앉어서도 망상만 일어나고, 돌아앉기만 하면 잠만 퍼 오는 놈의 하근(下根)들이 앉으면 그만 응... 흥! 앉으면 그만 망상, 그게 하근이여.

상근대지(上根大智)는 처억 앉으면 그만 그 뭐 태산(泰山), 큰 산 같여. 바다 같고. 화두가 처억 그놈이 그만 독로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는 흩어진 법이 없어. 정경이 그 꽉 정해진 그 정경(定境)이 어디로 물러갈 거여? 뭐 천하 없는 무슨 뭐 세상 무슨 애교풀로 가지고 막 때려 붙여 논 뭔 그런 것보담도 더 정경이 화두(話頭)한테 뭉쳐져 가지고는 그대로 독로 되어 있어.
글안허면은 그 정경 그 같은 것도 그만두고 바로 봐 버리고, 툭 깨 버리고. 그런 상근대지라는 것은 지금 없어. 이 말세에 없다고 헐 수 있어. 거 모르지마는 지금 어디 시방 있나? 없지.

최상, 아주 상근대지는 확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허면은 이즉돈오(理卽頓悟)? 이치만 깨달라? 사(事)까장 이사(理事)! 이치(理致)나 사(事)나 그만 그대로, 어디 이(理) 다르고 사(事) 달라? 막 증(證)해 버리지.
증(證)해, 증오(證悟)를 해버려. 언하에 증오를 해버려. 오해(悟解)만 헌 것이 아니라 증오를 해버린다 그 말이여. 그렇게 되지 못헌 학자는...

또 상근도 여러 가지니까, 한번 듣고 의단이 턱 들어와서 독로 되면은 그 정경(定境)이 흩어져? 뭐 흩어져? 그대로 화두 하나 따악.
아! 그거 그거 그 좀 그렇게 좀 갖춰. 좀 정처(靜處)에서 좀 그런 학자라도 정처에서 이득영험(易得靈驗)이고, 정처(靜處)에서 해 가지고는 필경 요중(鬧中)에 가서 쓰는 것이여. 요중 공부, 요처(鬧處)에 가서도 막 그저 그만 별 세상 무슨 뭐 험악한 경계에 가서도 쓰는 것이여. 난중(亂中)이라도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여.

그 좀 공부를 좀 작정을 허고 좀 앉어서, 처중(處衆)이 제일 좋아. 밥 해 주겠다, 옷 해 주겠다, 불 때 주겠다. 왜 앉아서 못해서, 아 뭣이 뭐? 뭣을 찾으러 댕겨? 공연히 고(苦)롭게 뚱뚱한 짐 짊어지고는 산,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闊)을 허냐 그 말이여.
불탄산고수활 허고, 뚱뚱 걸망을 짊어지고 댕기는 것은 스승을 찾아댕기는 것이여, 처음에는. 처음에 스승 찾아야지. 스승을 찾아 정해야지. 아! 스승 찾아서 스승이 있는 디 가서는 한바탕 그렇게 해야 혀. 거 행각(行脚)이라는 것이 처음에 허는 거 아니여.

옳은 스승을 찾아서 확철대오헌 뒤에 인가(印可) 맡고 모암토동(茅庵土洞)에 들어가서 고락수연(苦樂隨緣)해서 증오(證悟)해 가지고는, 깨달라 증해 가지고는 무사인(無事人)이 되어 가지고 아무 일 없는 사람이다. 가나오나 일체경계에 인자 동사섭(同事攝)밖에는 없다.
동사섭(同事攝)! 같이 가서 술 먹는 놈이 있으면은 술도 같이 먹으며, 무애행(無碍行) 헌 놈이 있으면은 무애행 헌 디 가 같이 무애행 허면서, 그대로 인자 제도(濟度)를, 뭐 도를 깨닫게 허는 것이여. 사섭(事攝)을 허는 것이여. 같이 해줘야 되거든. 그래야 내 말을 듣거든. 그놈 노름헌 놈 노름을 같이 해줘야 인자 서로 더 심지가 서로 상통(相通)되어 가지고는 뭔 말허면 듣고 그래 가지고 되는 법이여.

친절주공처(親切做工處)에 가서는 홍일동령상(紅日東嶺上)이라. 바로 깨달을, 그 깨달은 경계밖에.. 깨달을 것밖에는 없어. 뭐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스승 믿고 화두를 철저히 해 가지고는 이렇게 확철대오를 허는 법이다. 게송(偈頌).


공부를 짓되 주도무가용심처(做到無可用心處)허며, 공부를 지어가다가 용심(用心)헐 곳이, 가히 용심처(用心處)가 없어. 어떻게 헐 용심처가 없어. 화두 하나뿐인디 무슨 마음을 써? 어따가 마음을 허비헐 곳이 있나 그 말이여.
용심처 없는 것이, 이놈의 우리 중생념이라 하는 것은 항상 화두를 들어도 그 미세헌 놈의 망념(妄念)이 붙어 있어서—없는 것 같지마는, 홑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고 단도리를 그 잡드리를 해도 그 사이사이 당최 미세헌 분(粉)가루 같은 망념이 들어붙어서 말로 헐 수가 없어.

마음이 심무이념(心無二念)이다. 마음이 둘이 없다 하지마는, 둘이 없는 놈의 마음이 천억 만념(萬念)이 있어. 그놈의 염(念)이라는 게. 그 ‘생각 념(念)’ 자가 그려. 그놈이 드립대 그만 모도 붙어 있는 것이 그 한량도 없어.

용심처(用心處)! 가히 용심헐 곳이 없는 디 이르며, 그 경계가 만인현애처(萬仞懸崖處), 만 길이나 되는 현애(懸崖), 그 절벽이 만 길이나 되는 디 거기 가서 어디 손을 댈 수가 있나? 발을 붙일 수가 있나? 몸뚱이가 거 붙어 있을 수가 있나? 그 어디 그 감히 거그 아무 도무지 손, 발, 몸뚱이 뭐 하나 붙이도 못할 만인현애처(萬仞懸崖處), 똑 그와 같다 그 말이여. 용심(用心) 없는 것이. 일체 마음이 없어.

수궁산진처(水窮山盡處)다. 물도 다하고 산도 다했으니, 산 경계도 다하고, 물 경계도 다했어. 가다가 보니 물도 다허고 산도 다했으니 더 나갈 곳이 있나? 물 다하고 산 다한 곳이 있으니.
결각나문처(結角羅紋處)다. 저 나문(羅紋)을 결각(結角)한 곳이다. 나문(羅紋)이라 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다가는 마지막 다 그리고 뿔때기 그리면 마지막 그린다는 것이여. 마지막 그리는 곳이다. 뿔다구 그리면 다 그리는 것이다.
이런 곳에 이르러 화두가 극미묘, 극지경, 그 큰 지경. 아! 일체 용심처(用心處)가 없고, 현애절벽처(懸崖絶壁處)와 같고, 그림 그리는데 뿔때기 인자 그리면 한 점 찍으면 다한 것, 그러헌 절정(絶頂) 구경처(究竟處), 그러헌 곳이 이른다.

똑 그 지경이 또 노서(老鼠)란 놈이 쥐집에 쥐덫에 들어갔는디, 그 쥐를 잡는 법이 큰 뿔따구를 따악 놓아 놓고 뿔따구 저 안에다가 그 고소헌 냄새 난 그 좋은 물건을 넣어서 놔두면은 고놈 먹으러 들어갔다가, 그놈의 곳에는 대글빡이가 꽉 찡겨 버리면은 나오들 못혀. 뒤로는 못 나오게 되어 버렸단 말이여. 그 노서입우각(老鼠入牛角)이라. 노서(老鼠)가 우각(牛角)에, 소 뿔따구에 든 것 같다. 꼼짝할 수 없는 지경이 있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면. 알 수 없는 지경이 극도해서 거기에 조그만한 망념도 없어.

항상 망념이 들어붙어서, 화두해 나가다가도 그저 이놈이 그저 금방 일어났다 또 멸했다, 일어났다 멸했다 한 놈이 화두는 허지마는 붙어 있기 따문에 그 독로(獨露)가 못 되다가, 인자 그러헌 지경이 있어. 소 뿔다구에 쥐란 놈이 들어갔다가 대갈빡 꼼짝도 못헌 지경이 있어. 그러면 그만 그 쥐는 그러면 거그서 거그서 제 생명 잃는 것이여. 다 된 것이여. 나오도 들어가도 못허니까.
그런 나문처(羅紋處), 그러헌 지경에 들어갈 것 같으면은 자유도단(自有倒斷)이리라. 도단(倒斷)할 때가 있어. 그런 때, 그런 때 가서 살아나는 곳이 있어. 쥐란 놈은 그대로 거기서 나문처(羅紋處)에 가서 죽어버릴는지 살란지 모르지마는, 그러헌 지경이 있어.

그런 지경을 왜 한 번 어쨌든지 갖추어야 하지. 이렇게 다루어야 하지. 허다가 또 조금 놔두고, 허다가 또 말고, 망상 좀 부리고, 잠 좀 자고, 이렇게 허고. 그러고 허다가 또 그만 이리저리 그만 한바탕 산도 넘고 물도 건네고 돌아댕기고 나면은 아! 그만 그 해산정경(解散定境), 정경(定境)이 해산(解散)되어 번지고 자리잽힌 화두가 어디로 간 곳이 없거든.
정처(靜處)에 공부헌 사람들이 한 번 정중(靜中)에서 도를 잘 닦아야 한번 요중선(鬧中禪)이 되지. 시방 요중선 허는 사람이 없어. 돌아댕기면 모도 경계(境界)에 팔리지, 안 팔릴 수 있나? 그 귀중헌 시간을 모도 해산정경(解散定境)해 버리고, 아! 이래 될 것인가 말이여?

부처님 12년 동안 계시듯기, 달마 스님 9년 동안 소림(少林)에 계시듯기, 아! 그런 증(證)해 가지고도 그랬다 그 말이여. 그 후래 후인들 모도 모범 보이기 위해서, 경허 큰스님 같은 그런 분들도 그 수십 년씩을 다 그 참 공부했고, 만공 스님 들어앉아서 공부허신 것도 참 한량도 없이 했다 그 말이여. 저 봉국사 가서.
또 용성 큰스님 같은 어른도 저 무슨 양주 뭔 절에 들어가셔서 하도 안 되아서 육자주(六字呪)를 기가 맥히게 허다, 육자주 기도허다가 또 화두를 허다가 이렇게 해 가지고 견성을 허셨으며, 한암 스님 같은 어른도 그 함흥 희천 금선대인가 들어가셔서 몇십 년을 안 나오시고 계셨다 그 말이여. 그래 이렇게 다 공부를 다 허는 건데, 원 요새는 그만 한 철 지내면은 가기가 바빠. 아! 이런 법이 있나?


주공부(做工夫)허되, 공부를 짓되 최파일개영리심(最怕一箇伶俐心)이다. 가장 처음에 한 낱 영리심(伶俐心)을 두려워헐 것이다.
영리심(伶俐心)은 처꺽 들으면은 ‘옳다! 이것이다’ 고래 따지는 알았다는 성격. 그 영리심이니까 알았다 해도 제법 그럴듯허니 알았다 그 말이여. 아무따나 안 게 아니여. 고것 못써. 그 영리심, 얼른 퍼떡 아는 거. 천하에 화두에는 공부에는 그게 망량이라. 제일 못된 심(心)이여. 들으면 터꺽 아는 아상을 내. 아는 해(解)를 붙여. 영리심을 붙인다 그 말이여. 천하에 못쓴 것이다 그 말이여.
영리심(伶俐心)이 위지약기(爲之藥忌)라. 영리심 그것이 약그릇이여, 약그릇. 독약 그릇이다 그 말이여. 독약을 대려서 사람 죽일라면 약기(藥忌)에다가 붓어 가지고 사람을 멕이니까 약기(藥忌)여 그것이. 약그릇이 없으면 뭐 독약을 어떡헐 수 있나? 천하에 못된 것이여.

범착사호(犯着些毫)하면, 요 터럭끝만큼이라도 영리심을 내 가지고는 요래 영리심(伶俐心)으로 떠꺽 그 아는 심리로 공안(公案)을 만약에 뭐 분석헌다든지 깨달은다든지 요렇게 어떻게 헐라 헐 것 같으면은 그것 수진약(雖眞藥)이여. 그것이 차라리 죽이는 진약(眞藥)이여. 약그릇보담도 진약(眞藥)이여 그놈이. 천하에 참선법은 그런 법 없어.
거다가 공(空)이나 뭣이나 일체 무슨 불법 중 이치나 뭘 붙여 가지고 들여다보고 앉었는 것은 그건 죽은 참선, 사참선(死參禪) 더 말할 것 없고, 영리심도 그렇다 그 말이여. 거 분석해서 알아? 어림도 없다. 그걸 알아야 혀.

약진시개참선한(若眞是個參禪漢) 자인대는, 참으로 진실로 참선허는 자인대는, 참선 공부를 허는 자인대는 안여맹(眼如盲)이요, 눈이 먼, 눈 봉사 같여. 꽉 하나 보이지 안혀. 이여롱(耳如聾)이라, 귀도 꽉 먹었다 그 말이여. 그 무엇인고? 알 수 없는, 참 좋다! 참 알 수 없는 그 한 도리(道理)다.

사사는 무슨 무슨 무슨 도인이, 그 무슨 장에서 고기 팔고 있는 그 도인 한 분이 안 있었어? 어디 법문 허러 갔다가... 뭔 뭔 그런 법문 있는디, 그 잊어버렸구만. 무엇은 사사요... 어디 있다고 거 그 안 나와서 못허겠구마는. 진기여, 진약(眞藥)이여. 죽이는 약이여. 참선에 독해(毒害)라는 것은 영리심(伶俐心)! 뭘 분석해서 아는 거, 기가 맥혀. 그것 소용 하나도 없어.

불능구이(不能救耳)니라. 이 사람은 영리한 사람 뭐 파딱팔딱 해서 그 해석 붙여서 아는 고런 사견학자(邪見學者)라는 것은 구헐 수가 없어. 아무리 구헐래야 구헐 수 없어. 그거 못쓴 것이여. 천하에 못쓸 것이 그것이여.

눈 멀고 귀 먹은 놈이 되어서 은산철벽(銀山鐵壁)이요. 철벽에 나가는 것이요. 물러가면 죽는 것이요. 아주 알 수 없는 진실헌 화두 일념뿐이다. 이걸 갖춰라. 천하에 화두 간택이 이렇게 쉬운 것인디, 뭐 그 어디 어려운 건가?

‘어째서 조주는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조주 스님은 어찌 판치생모?’ ‘조주 어째 판치생모?’ 허면 그만이지. 알 수 없는 놈뿐이지. 그거 다른 달리 헐 것이 무엇이 있어?
‘판때기 이빨에 털이 무엇인고?’ 그렇게 말고. ‘조주가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조주 뜻 찾아내는 거여.

약재참선한자인대는 이렇게 귀먹고 눈먼 놈이 되어라. 심념(心念)이 재기시(纔起時)에, 그 마음에, 마음 뭐 조금이라도 그 망상념이 일어난 때에 겨우 일어날 때에 그놈을 도무지 간섭허지를 말어라. 나거나 말거나, 그까짓 거 뭐 옆에서 무엇이 나거나 말거나 내비두어 번져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의단(疑團)만 갖추어라. 흥! 갖출 것 같으면 철벽(鐵壁)같여.
여차즉(如此則), 이와 같이 공부(工夫)를 철벽같이만 여지없이 항상 해 나갈 것 같으면은 시득상응이(始得相應耳)라. 견성밖에는 헐 것이 없다. 그 견성처가 그곳이다. (처음~30분21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