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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05 §(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2. 2014.06.04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3. 2014.06.03 §(326)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4. 2014.05.30 §(198) (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5. 2014.05.28 §(198)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일상생활이 바로 정진(精進)-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 /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소신통과 대신통.
  6. 2014.05.08 §(240) 아만을 꺾고 하심, 빈 마음이 되어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 / 동사섭 / (게송)휴설인지단여장~ / 입을 다물어라 / 방선 때도 항상 화두를 들어야.
  7. 2014.05.01 §(675) (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 (게송) 제법종본래~ /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
  8. 2014.04.28 §(240) (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다못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무조건하고 ‘이뭣고~?’ /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밑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9. 2014.04.26 §(389) (게송) 운변천첩장~ / 이 사바세계는 성불(成佛)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이 갖추어진 세계다 / '이뭣고?'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 온갖 부처님의 성스러운 관법이 다 들어있다.
  10. 2014.04.24 §(389) (게송) 묘체유래무처소~ / 천상천하(天上天下)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묘체(妙體) 아님이 없어.

§(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약 15분.

 


역지즉노순지환(逆之則怒順之歡)헌대  천하인정몰양반(天下人情沒兩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지즉노(逆之則怒)요 순지환(順之歡)이다. 자기의 마음에 거슬리면 성을 내고, 자기 마음에 순(順)하면 기뻐하는데 이것은 세속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서도 그렇고,
일체처에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에 들면 다 사람들은 기뻐하고, 자기 마음에 거슬리면 다 성을 내는 것입니다.

천하인정(天下人情)이 몰양반(沒兩般)이여. 천하 모든 사람이 이 두 가지-성내지 아니하면 기뻐하고, 기뻐하지 아니하면 성내고.
왜 그러냐? 모든 것이 역경계(逆境界) 아니면 순경계(順境界)거든.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순경계가 다하면 다시 역경계가 돌아온다고 하는 사실을 긍정하면 그것을 믿으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여. 바로 모든 인간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모든 인연법(因緣法)에 눈을 뜨게 되어. 눈을 뜨게 되어가지고 스스로 속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모든 생노병사가 전부 역경계, 순경계로 이렇게 새끼 꼬아지듯이 꼬아지면서, 그렇게 해서 성립이 되었다가 그놈이 또 무너지고 무너졌다가 다시 또...
오른손에 쥐었던 새끼와 왼손에 쥐었던 새끼가 번갈아가면서 서로 바뀌면서 이렇게 새끼가 꼬아지는데,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지내온 것이 그렇게 꼬아졌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서 순경계·역경계, 생(生)과 사(死), 기쁨과 슬픔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면서 무량겁을 또 그렇게 갈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기쁨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나 슬픔만 있으라는 것이 없고, 언제까지 부자가 되어라 하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란 법이 없어요.

가난해졌다 부자되고, 부자가 되었다 가난해지고, 친해졌다가 친한 사람이 웬수가 되고, 웬수가 다시 풀어지면 또 친해지고, 그러한 변화무쌍한 참 믿을 수가 없는거, 허망한 거,

그러한 것에 우리가 말려 들어갈 것이 없고 그런데에 속지를 말고 그런데에 집착을 하지 말고,
바로 거기서 ‘참나’로 돌아와야, 그 속에 살면서 거기에 빠지지 않고 거기에 속지 말아야, 우리가 참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내고 기뻐하는거, 그래서 뭔 사업이 좀 잘되어도 너무 좋아서 못 견디지 말고. 그렇게 좋아서 훌훌 뛰고 야단을 칠 것이 못되어. 그러다 보면 금방 언짢은 일이 툭 생기거든.
사업이 여의치 못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해서 그렇게 의기소침(意氣銷沈)이 되고 비관하고 아주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럴수록에 오히려 더 정신을 가다듬고 부처님 믿는 마음으로 ‘이뭣고?’를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을 최대한으로 잘 살려서 노력을 하다보면 반드시 밝은 길이 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잘되었다고 뭔 일이 성공을 했다고 지나치게 좋아서 훌훌 뛰고 하면 그것이 또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좋아할 것도 없고 지나치게 비관할 것도 없어요.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그래서 우리 공부하는 사람이 어찌 그런 환희마(歡喜魔)나 번뇌마(煩惱魔)를 갖다가 우리 안으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번뇌마도 좋은 것이 아니지만 환희마도 못쓰는 것이여. 환희마가 들어오면 벌써 그게 바르게 공부가 되어간 것이 아니거든. 마군이가 딱 차지하고 있는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공부는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스님네나 또 보살님네나, 또 방부를 들이지 아니한 분이나,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방부를 안 들인 사람도 세 때 밥을 먹고, 방부를 들인 분도 세 때 밥을 먹고, 똥 누고, 걸어가고, 씻고 그게 바로 인간 생활인데 그 생활을 여의고 따로 얻은 공부해야 할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눈으로 모든 색상(色相)을 보되 그것이 그 색상이 관계치 않어.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그말이여.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소리가 아니여.
참선 공부를 아니한 사람은 무엇을 보면  붉다, 노랗다, 저것은 푸르다, 저것은 산이다, 저것은 자동차다. 떡 보는 순간부터서 둘째 생각, 셋째 생각이 계속해서 연달아서 막 가지가 번져 나가는 거여.

또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새소리가 들리면 새에 관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이,
새소리를 들으면 ‘아유, 봄이 왔구나. 봄이 오면 얼마 안 있으면 또 꽃이 피겠지. 그러면 밭에 또 채소 씨를 심어야겠다.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작년에는 농사가 시원찮았으니까 금년에는 잘 지어야겠지’
한 생각이 두 생각, 두 생각에서 세 생각으로 막 번져나가.

참선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슨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여. 색상에 관계를 하지 않고 바로 ‘이뭣고?’거든. 바로 자기로 돌아와 버려. ‘이뭣고?’ ‘이뭣고?’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그리 따라가지 말고,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나는 겨를도 없이 ‘이뭣고?’ 이렇게 돌아와버리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그말이여.

눈으로 보는 색상, 귀로 듣는 소리 거기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것이 바로 법왕이 계신 곳에 도달하는 길이다(親到法王城). 법왕(法王), 진리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눈을 뜨면 무엇인가 보게 되어 있고, 귀는 항상 열려 있으니까 무슨 소린가 듣게 되어 있어.
눈으로 볼 때마다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뭣고?’
우리 생각에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인가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있어.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요,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요, 모든 잡념이 잡념이 아니야.
전부가 다 ‘함이 없는 진리’로 돌아가는 길목이요 발판이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은 경묘년 3월 첫째 일요법회입니다. 그리고 어제가 바로 봄철 산철 결제(結制)날이었습니다.
오늘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다시 새로 결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일초일초를 한생각 한생각을 빈틈없이 단속을 하셔서 어린 소년이 발심을 해가지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가지고 그어린 나이에 확철대오하신 조실스님의 법문을 항상 마음에 새겨서,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못 할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만 한다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41분23초~56분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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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의기소침(意氣銷沈) ;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음.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환희(歡喜) ; ①기쁨. 종교적으로 만족했을 때 일어나는 신심(身心)을 모두 바친 기쁨을 말함. 또, 기뻐하는 것. ②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기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경계를 만났을 때의 기쁨. ③정토종(淨土宗)에서 사후(死後)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미리 기뻐하는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 야부 스님 게송 참고.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〇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〇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4. 6. 4. 16:33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1) 약 15분.

 

(2) 약 18분.

 


(1)------------------

우리가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께서 그 어려서 아주 소년시절에 출가를 해 가지고 어떻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지,
법당 뒤에다가 멍석을 깔고 거기에 방석 하나를 떠억 갖다 놓고서, 가서 공양시간에 공양만 드시고는 바로 나오셔서 그 법당 뒤에 자리에 와 가지고 앉아서 정진하시고,
그러다가 조금만 졸음이 오는 성 싶으면 일어나서 법당 뒤에서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하시다가, 또 잠이 깨지면 다시 또 그 자리에 와서 정진하고, 한 철을 그렇게 한결같이 정진을 하셨습니다.

입선(入禪)·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그저 밥만 한 숟갈 자시면은 바로 그 자리에 가서 공부를 하시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린 것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거 아주 공부한 척 한다고, 지가 저 며칠을 갈까 보냐고?’ 모다 수근덕거리고 모다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그랬었지만,
하루를 그렇게 하시고, 이틀을 그렇게 하시고 사흘, 나흘, 1달, 2달, 계속 한결같이 그렇게 하시거든.

어떻게 참 철저하게-그것이 일부러 지어서 헐랴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그냥 한목 돈발(頓發)을 하신 것이여.
지어서 한 것 같으면 며칠 하다가 배시시하고 식어버릴 텐데 그것이 아니거든.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이 그렇게 참 신심과 분심이 한목 났는가?
어릴 때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병이 나가지고 그래 가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 정든 친구, 같이 뛰놀고 공부하던 친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서 거기에서 결국은 발심(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그 친구가 죽은 뒤에 꿈을 꾸셨는데, 지옥 구경을 하시는 꿈을 꾸었어.
사람을 갖다가 톱으로 썰어서 죽이는 거 또 큰 맷돌에다가 사람을 콩나물처럼 여러 명씩을 집어넣으면서 맷돌을 들들들들 돌리니까 사람이 거기서 뼈와 살과 창자가 짓이겨져서 핏물이 꿀꿀꿀 쏟아지는 그런 광경하며.
그 지옥 구경을 하시고서 놀래서 꿈을 깨셨는데, 꿈을 깨가지고도 그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콧전에서 사라지지 아니하셨다 이거거든.
그런 꿈을 꾸시고서 대발심(大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어떠한 계기를 만나서 그런 발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상(無常)을 느낀다든지,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 흥망성쇠와 생사고뇌 속에서 가정에서나 또는 이웃친구나 그러한 인간의 영욕득실 경계에서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계기를 만나가지고 발심을 해야,
그래야 참 분심이 솟구쳐 오르고 공부를 해도 억지로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께서는 어려서 경을 배우시다가 그만 두어버리고 선방으로 나오셔서, 그때 선방에 나오신 수좌(首座) 가운데에 제일 나이가 어리셨다고 하니까,
그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 가지고 무섭게 정진을 해서 결국은 코에서 피가 쿨쿨 선지피가 넘어오고 그래도 공부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때 앉는 자세라든지 또는 호흡하는 법이라든지, 화두를 드는 법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상하게 지도하신 스님이 있었다면 그렇게 피가 넘어오지 않고도 이 공부를 잘 하실 수가 있었을 텐데,
그러한 분을 만나지를 못해가지고 그 신심과 분심이 복받쳐 오르는 바로 그것으로 화두를 맹렬히 들고 막 부셔나가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기(氣)가 상충(上衝)해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어서,
그렇게 피가 목구멍으로 나오고 콧구멍으로 나오고 해 가지고 하룻밤 지나고 나면은 턱밑에 가슴에 피가 아주 그냥 흘러내려 가지고 멍어리가 지고, 눈알은 벌게 가지고 충혈(充血)이 되고,

그래도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마침내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전라남도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를 가시는 도중에 개천을 건너면서, 그 돌로 이렇게 징검다리를 놓은 거기를 건너시다가 거기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하신 것입니다.

『운무(雲霧) 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하면 소를 찾겠는가?』 불현듯 그 생각이 나시면서 『담 너머 외 따오너라.』 ‘외’라고 한 것은 ‘오이’를 말한 것입니다.
‘담을 넘어가서 오이를 따오너라.’ 그 생각이 떠억 떠오르면서 그 심안(心眼)을 뜨셨는데, 그길로 태안사에 들어가 가지고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고,

이 법당 앞에서 오줌을 출출출출 누니까, 주지 스님이 나와 가지고 법당 앞에다 오줌 싼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님 앞에서 오줌을 눈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 없는 곳을 일러라!』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 대들었습니다.
『요새 수좌 놈들이 건방진 놈의 자식들. 당장 가라!』해 가지고 아침도 못 얻어 잡숫고 쫓겨났다고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라 하는 것은 그렇게 발심이 되어야 하고, 발심이 되어서 헐 때에 정말 그때 참 잘 단속을 하고 공부를 몰아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또 생각을 아무리 가다듬고 할라고 해도 억지로는 힘만 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러한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경계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역경계(逆境界)인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또는 육체상으로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사회 무슨 사업관계로나 도처에 우리가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기를 거기서 놓치지 말고 거기서 돌이켜 나간다면, 우리는 조실 스님과 같이 정말 발심을 하게 되는 것이고 발심이 되어야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발심이 안 되고 ‘참선이 좋다 하니까 나도 좀 해볼까’ 이러한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억지로 하는 것은 그것은 흉내내는 것 밖에는 안 되고, 흉내도 또 안 내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마는,

옛날에 원숭이가 산중에서 이리 뛰놀고 저리 뛰놀고 하다가 그 산중에 숲속에서 참선하시는 스님을 보고서 그 원숭이도 그렇게 그 스님의 흉내을 내서 떠억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
지가 무슨 참선이 무엇인줄 알겠습니까? 원숭이란 놈은 원래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짐승이라, 스님이 참선하고 있으니까 저도 그와같이 흉내를 내고 앉어.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출가해서 참선을 해가지고 도과(道果)를 이룬 것이 그게 바로 독성(獨聖)님이라 그런 것입니다.

잠시 흉내만 내는 인연으로도 그렇게 도과를 이루거든,
사람으로써 참선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도 좀 아침·저녁으로 해 보기도 하고, 또 토요일에 철야정진하기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아! 그것도 쉬지 않고 애를 쓰다 보면 언젠가는 헐랴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그냥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독로(獨露)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다행이 그러한 어떠한 경계를 만나서 신심과 분심이 돈발한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런 경우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자꾸 할라고 노력을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노력을 하고, 기회를 만들어서 노력을 하고, 방부를 들여서 노력을 하고, 또 이 선학원이라든지 그밖에 일요선방이라든지 그런데 가서도 할려고 노력을 하고,
가정에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1시간~2시간씩 하고 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히 분발(奮發)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명예나 부귀·공명,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해여.
산더미 같은 재산을 모여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온 세상을 다 차지할 만큼 큰 부자라도 한 푼 가지고 가지를 못하고, 명예나 권리가 하늘을 뻗지른다 하더라도 10년 20년을 넘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은 하나도 그것을 두려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23분36초)

 

 

 



(2)------------------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하되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니라
나무~아미타불~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헌디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니라
나무~아미타불~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로구나. 가난하고 빈궁(貧窮)하면 천(賤)하게 되고 부자가 되면 교만(憍慢)이 생겨.

사업에 실패해서 재산이 다 없어져 버리고 가난해지면 스스로 아주 천둥이가 된다 그말이여. 기를 피지 못하고 기운이 없고 살맛이 없고 어디 친구도 만나기가 싫고.
그러다가 사업이 잘되어서 돈푼 벌고 좋은 집을 살고 여유가 생기면 교만이 생겨. 남을 업신여기고 아주 자기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처럼 으시대고. 그런데,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여. 가난해서 천하게 느껴지거나, 부자가 되어 가지고 교만심이 나거나, 다 같이 무명(無明)의 불로써 자기가 자기를 태워 죽이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이여. 그러다가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이승을 하직하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부자라고 했다고 해서 더 알아주지도 않고, 가난했다고 해서 동정을 받지도 못해.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여. 염라대왕 앞에 턱 끌려가고서야 비로소, 하! 가난하고 부자고 그래봤자 그거 한 점(點)도 소용이 없다고 한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생사없는 도리, 무위·무위법(無爲法)은 가난한 사람도 가난할수록에 이것을 해야 천둥이가 안 되는 거고,
명예와 권리가 있고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교만심을 낼 것이 아니라 이 무위법-참선(參禪)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설사 가난해졌다 하더라도 천둥이가 되지를 않고, 사업이 잘되어서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남을 업신여기고 교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부자고 한 것이 잠깐 꿈속에서 가난뱅이가 되고 꿈속에서 부자가 된 것뿐인대,
꿈속에서 가난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해질 까닭도 없고, 꿈속에서 무슨 대갑부(大甲富)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교만을 낼 건덕지가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것이라는 하는 것은 이 무위법-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빈부귀천과 이 생노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고 교만하고 천할 것도 없고 하는-이 참선법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니 해 놓으면 천상 천둥이가 되었다가 교만을 부렸다가 허면서 꿈속에서 결국은 지옥 갈 채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하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인데, 아무 소용도 없다면 결과도 아무 소용이 없으면 괜찮하겠는데 결과적으로는 지옥 갈 준비를 한 것 밖에는 안 돼.

그래서 부자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병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죽을 고비에 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겪고 다 겪을 대로 겪어놔야 겨우 그때사 조금 ‘그렇구나’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겪는 것을 보고도 내가 그것을 깨달아버려야 하는데, 자기가 남하는 것은 예사로 보고, 자기가 겪고 겪을 대로 겪고 난 뒤에사 겨우 조금 ‘아하, 그렇구나’하고 느끼는데 그것도 오래가지를 못하고 금방 또 다시 경계(境界)에 끌려가고 경계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제는’하고 자꾸 바래고, ‘이번만 지내고 이 다음부터서 해야겠다’하고 자꾸 뒤로 미루고, 다른 것은 뒤로 미룰 수가 있지만 이 생사 문제, 일대사 문제는 뒤로 미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녀와 노소와 지식의 유무와 빈부귀천 그걸 가리지 말고 금생에 이 사람 몸뚱이 받았을 때 철저하게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법당에 앉아계실 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법당에서 나갈 때는 나갈 바로 그때,
앉았을 때는 앉았을 때 하고, 일어섰을 때는 일어섰을 때 하고, 걸어갈 때는 걸어갈 때 하고, 언제나 지금이거든.

사실은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에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지금이라고 할 때 시계바늘은 벌써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는 붙잡을 수가 없고, 다맛 ‘이뭣고?’ 뿐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1초 1초 생각 생각이 ‘이뭣고?’거든.

공부가 처음에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또 화두드는 법을 배워서 해보면 처음에는 곧잘 잘 된 것 같애.

그런데 한달 두달 석달 해가다 보면 영판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해 갖고 될 것인가 새삼스럽게 회의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보면은 모다 참선한다고 하지마는, 참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見性)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된가. 에이 해봤자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낸들 될 것인가’ 이렇게 해서 스스로 의심하고 자포자기를 하고.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할라고 할수록에 뭔 일이 자꾸 사건이 생겨.
집안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자손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일신상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무슨 근심 걱정거리가 생기기도하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되어간다 싶으면 꼭 무슨 사건이 일어나거든.

이것이 다 우연한 일이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도를 이루게 되면 제일 그것을 싫어한 사람이 누구냐?’하면 마군(魔軍)거든. 마군이는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멸망을 하게 되거든.
도인(道人)이 하나 태어남으로 해서 마군이가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마치 대한민국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면은 제일 싫어한 것이 이북의 공산당이거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치거든.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잘되고 세계적으로 훌륭해지면 자기네 설자리가 없어지거든.
결국은 전 이북(以北) 동포들이 이남(以南)이 행복하고 잘 살고 한줄 알면 전부 대한민국을 그리워하고 모두다 38선을 넘어오게 될것이고 전부 자유통일이 되기를 바라게 되면,
그 공산정권은 아무리 무섭게 탄압을 한다해도 결국은 전 백성이 민주주의를 원하고 전 백성이 대한민국을 그리워한다면 이북 공산당 무너진 것은 그건 참 봄이 돌아와서 얼음 녹듯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것을 다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치하에서 그렇게 무서운 탄압을 해서 그렇게 모다 서로 감시를 시키고 꼼짝을 못하게 하고 여행도 못하게 해도 전 백성이 자유을 원하고 민주주의를 원하고 그렇게 되면은 그 정권은 오래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이라고 모든 백성이 한결같이 바래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마음이요 우주의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 닦는 불자(佛子)도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마군이가 여러 가지 각도에서-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뚱이를 통해서, 우리의 심식(心識)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갖다가 현혹을 시키고 유혹을 하고 방해를 놓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군이의 현혹에 우리가 흔들리지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육근(六根) 문 뒤에서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잠깐 딴 생각 먹고 한눈을 팔면 바로 그 구멍을 통해서 마군이는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1분 1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그 ‘딴 생각(別念)’이라 하는 것은 명예에 대한 딴 생각, 권리나 부귀영화나 오욕락이나 그런것도 물론이지만, 가장 우리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 있어서는 ‘빨리 깨달으리라’하는 그런 생각, 누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기를 바래는 생각, ‘이렇게 해 갖고 이 공부가 깨달을 것인가?’ 그러한 생각, 또 공부해서 조금 득력(得力)을 해서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면 ‘아! 좋다’고 하는 생각, 조금 얻은걸 가지고 만족하는 생각, 이런 것들도 오히려 세속의 그런 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에 대한 생각보다도 더 무서운 생각이 바로 이러한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선지식(善知識)을 여의지 않고 좋은 도반(道伴)을 여의지 아니하고 같이 정진을 하면 자연히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킬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8분28초~41분22초)

 

 

 


------------------(1)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상충(上衝) ; 위로 치밀어 오름.
*멍어리 ; ‘멍울(우유나 풀 따위 속에 작고 둥글게 엉겨 굳은 덩이)’의 사투리.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심안(心眼) ; 마음의 눈. 지혜.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전강 선사 오도송(悟道頌).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3.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가부좌(跏趺坐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도과(道果 길·불교 도,결과 과) ; 불도(佛道) 수행의 결과(結果). 깨달음. 열반.
*독성(獨聖) ;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였다고 하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함.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분발(奮發 떨칠 분,꽃이필·이룰 발) ; 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2)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致(치)이루다. 이르다. 도달함. *賤(천)천하다. 신분이 낮다. *驕(교)교만하다. 자만함. *燒(소)타다. 사르다. *焂(=倏)(숙)갑자기. *忽(홀)문득. 갑자기. *饒(요)넉넉하다. 너그럽다. 풍요. 여유. *點(점)점. 작은 흔적. 작은 조각.
*빈궁(貧窮)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교만(憍慢) ; 자신이나 자신의 행위에 도취되어 일으키는 거만함을 교(憍),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일으키는 거만함을 만(慢)이라 함.
*천둥이 ; ‘천더기(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 또는 그런 물건)’의 사투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무위(無爲) ; ①(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일대사는 수행의 목적으로 말하면 ‘깨닫는 것’이고, 실천으로 말하면 ‘참선(參禪)’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행여나 ; [주로 부정문이나 반어 의문문에 쓰여]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행여(幸-)’를 좀더 분명하게 이르는 말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 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고]딴 생각(別念 별념)’에 관한 [몽산법어] (용화선원刊)에 있는 글.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몽산법어]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 6. 3. 17:30

§(326)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모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탐진·번뇌가 바로 그 ‘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하나의 나타남이다, 진여불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도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번뇌망상을 여읠라고 할 것도 없고, 무위의 이치를 구할라고 할 것도 없다.


물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얼음을 보고 바로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는 줄 안다면, 얼음을 버리고서 따로 물을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약 9분.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하면  쟁사치원왕노형(爭似癡猿枉勞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그대가 이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알고자 할 진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다. 천차만별(千差萬別) 가운데를 여의지를 말어라.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인데는, 다못 저 허공의 달이 못 가운데에 떨어진 줄만 안다면,
쟁사치원(爭似癡猿)이 왕노형(枉勞形)이리요. 어찌 어리석은 원숭이가 헛되이 수고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함이 없는 이치, 우리가 참선(參禪)을 해서 고행 정진(苦行精進)을 한 목적은 무위(無爲), ‘함이 없는 이치’를 깨닫고자 한 데에 있는 것이여.

우리 인생은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이 모든 것이 전부가 유위법(有爲法)이거든.
어떤 원인이 있어서 생겨나고, 어떤 일이 성립이 되었다가, 그 원인이 흩어지면 그것이 죽거나 또는 없어지거나 그러는데, 인간 세상에 그 오욕락(五欲樂)이 모두가 다 ‘함이 있는 법’이고, 흥망성쇠·희로애락·생노병사 일체가 다 유위법(有爲法)이여.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어 가지고, 그러다가 그 원인이 소멸이 되면은 모두가 다 죽게 되고 또 파괴가 되고 멸망하게 되고 그러는데.

영원히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생노병사를 초월한 것을 갖다가 무위(無爲)라 그러는데,
‘함이 없는 이치’다, ‘함이 없는 법’이다 그러는데.

그 ‘함이 없는 법’을 어떻게 해야 깨닫느냐?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하면, 바로 인간의 생노병사와 희로애락과 번뇌망상과 흥망성쇠(興亡盛衰) 바로 그 차별세계,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지 아니해야 한다.(不離千差萬別中)
바로 거기서 찾아야 생사없는 도리를 깨닫게 되지, 그 차별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 저 허공의 휘황찬 밝은 달이 못 가운데에 떨어져 못 가운데에 비춘 줄 안다면, 뭣하러 그 못 속에 있는 그 달을 건질라고 할 것이 있느냐.(爭似癡猿枉勞形)

원숭이가 샘을 들여다보니까 그 속에 휘영청 밝은 아주 좋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건질려고 손을 넣으면은 흩어져 버리고, 또 손을 빼고 한참 있으면 또 나타나고, 또 그놈을 건질라고 손을 집어넣으면 또 흩어져 버리고, 아! 그런 참 어리석은 짓을 한 그 설화가 있는데.
그 허공의 달이 거기에 비추지, 그 물 속에 본래 달이 있는 것이 아니요. 물 속에 비친 것은 허공에 있는 달이 비췄다고 하는 사실만 안다면, 뭣하러 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할 것인가.

우리 인간의 차별 세계에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반겨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모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탐진·번뇌가 바로 그 ‘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하나의 나타남이다, 진여불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도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번뇌망상을 여읠라고 할 것도 없고, 무위의 이치를 구할라고 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물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얼음을 보고 바로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은 줄 안다면, 얼음을 버리고서 따로 물을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처음~8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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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금강경오가해]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무위(無爲) : 조작(造作)을 뜻하는 위(爲)가 없는 생멸변화가 없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함. 곧 실상•열반•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차만별(千差萬別) ; 여러 가지 사물이 모두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음. 세상 사물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각각 모습ㆍ모양이 다름을 이르는 말. ‘온갖 차별이 있는 모양·경계’의 뜻. 모든 경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고행(苦行)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유위(有爲,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5. 30. 11:23

§(198) (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서 1분 1초를 알뜰히 정진해 나가고,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 속에서 1분 1초도 등한히 하지 아니하고 애를 써 나간다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8)-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에서. (용198)


약 16분.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한디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득수반지미족기(得樹攀枝未足奇)요, 나무를 얻어서 그 가지를 붙들고 떨어지지 아니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것은 족히 기특한 것이 되지를 못하고,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니라. 그 낭떠러지에 그 붙잡고 있던 그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지고 안 떨어지려고 매달려 있던 그 손을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탁 놓아 버릴 때 바로 대장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까 두려워서 나무가지를 붙잡고 그 안간힘을 쓴다’하는 것은 무엇을 표하는 말이냐 하면, 한 마음-일심을 얻어가지고 그 일심을 놓치지 아니하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 데에다가 비유를 한 것이여.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거나, 관세음보살을 부르거나 또는 옴마니반메훔이나 그러한 주력을 하거나 그 어떠한 자기 나름대로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한 어떤 한 경계를 맛보아 가지고,
그 경계를 놓치지 아니할려고 그 안간힘을 쓰는데, 쪼끔 시끄러우면 신경질을 내고, 쪼끔 복잡하면 그걸 피하려고 하는 이유가 한 마음 경계를 얻어가지고...

그 시끄럽고 고요한 것, 복잡하고 편안한 것, 그러한 경계에 그러한 것에 집착을 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말고 용감하게 그놈을 놓아버려. 그 한 곳마저도 놓아 버릴 때에 대장부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한야랭어란멱(水寒夜冷魚難覓)이여. 물은 차고, 밤은 냉랭(冷冷)해서 고기를 찾기가 어려워. 고기란 놈이 저 깊은 물 밑 속에 가서 가만히 숨어 버렸기 때문에 고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말이여.

유득공선재월귀(留得空船載月歸)로구나. 빈 배에는 달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그말이여.

‘참선하는 사람은 일체 경계(境界)에 집착을 해도 못쓴다. 또 경계를 버리려고 하지도 말아라.’
‘어떠한 경계를 다달았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해라.’ 이렇게 법회 때마다 그렇게 강조를 하고 주장을 하고 설교를 해왔는데, 한 마음마저도 놓아 버려야 한다.

‘그러면 화두를 들지 말고 놔 버리란 말인가?’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려지면, 어찌 화두에 집착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가 안 되고 공부를 바른길을 찾지 못하니까,
자꾸 일체 경계에 다다러서 ‘그 경계를 즉해서 화두를 들어라.’ ‘화두를 놓치지 말라.’ 이렇게 말을 할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게 되면,

마침내는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의단이 현전(現前)을 해서,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경계가 시끄럽거나 편안하거나, 조용하거나, 복잡하거나, 전혀 그러한 것에 상관이 없이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의단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야 무엇을 집착을 하며, 무엇을 피하며, 무엇을 싫어하고 미워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될 때 까지는 온갖 정성을 다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서, 법문도 열심히 듣고 화두를 올바르게 거각(擧却)을 해서 의심을 관조(觀照)하도록 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피나는 노력 없이 어떻게 그러한 경계가 올 것이냐 이말이여.

‘짜게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게 몸과 목숨을 바쳐서 1분 1초를 알뜰히 정진해 나가고, 역경계(逆境界)와 순경계(順境界) 속에서 1분 1초도 등한히 하지 아니하고 애를 써 나간다면 반드시 대도를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죽비(竹篦)를 치고 잠시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십시오. 오른다리를 밑으로 잡어댕기고 그 위에다가 왼다리를 올려놓고,
그리고 그 발 위에 배꼽 앞에다가 오른손 손바닥을 위에로 해서 놓고 그리고 왼손바닥을 그 위에다가 포개놓고 엄지손을 이렇게 배를 맞대셔.
그러고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뜰썩뜰썩 이렇게 흔들어서 한 가운데에다가 딱 안정을 시키고,
몸을 단정하게 청량골을 세우되 어깨나 목의 힘을 다 빼고,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혀 끄트리를 갖다 대고, 눈은 평상으로 뜹니다.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한 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하는데,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여.
단전호흡에 들어가기 전에 3번 ‘준비 호흡’을 하는데, 준비 호흡은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가뜩 가슴이 그득하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숨을 딱 정지를 해가지고 한참동안 참는 거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데까지 참았다가 입을 조끔 벌리고 입으로 ‘후~’하고 숨을 다 내쉬는 겁니다. 내쉬세요. 가슴속에 한 점도 없이 다 내쉬어.(1번)

다 내쉬었으면 다시 한 번 또 코로 들이마셔. 어깨를 좀 드는듯 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십니다. 가뜩 들어마셔 가지고 딱 정지를 해, 한참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내쉬는 거여.(2번)
다 내쉬었으면 또 한 번 코로 가뜩 들어마셔. 정지. 입으로 또 ‘후~’하고 다 내쉬어요.(3번)
이것이 준비 호흡이 끝났습니다.

다 내쉬었어-완전히 다 내쉰 다음에,
조용하게 코로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코로 들어 마시되, 불룩하기는 배꼽 밑에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면서 아랫배를 불록하게 만들면 되는 거여 의식적으로.

아까 (준비 호흡때) 가슴으로 들어마실 때는 가뜩 들어마셨지만, 이제는 준비호흡이 아니고 정식으로 단전호흡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렇게 가뜩 들어마시는 게 아니에요. 8부(八部) 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약 8부 쯤만 들어마셔. 아랫배가 1~2cm 쯤 약간 볼록해진 듯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여. 들어마셨으면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하니 내쉬는데, 입으로 내뿜는 게 아니라 입은 다문 채 코로 내쉬어요.
코로 내쉬면서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 차츰 홀쭉해지도록 그렇게 하면서 내쉬는 거여.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 코로 들어마시면서 아랫배가 또 차츰차츰 차츰차츰 볼록해지도록 하면서 마시는 거여.  8부쯤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또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하게 또 내쉬는데, 내쉬는 시간은 약 4초나 5초쯤 들어마신 시간보다 쪼금 더 길게 내쉬는 거여.

내쉴 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화두를 생각하면서, 화두를 들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숨을 내쉴 때에 배는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것이 단전호흡과 화두를 함께하는 가장 묘(妙)한 방법입니다.

죽비를 치세요.
(입선 入禪...)

같이 입선을 한 이 공덕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한 사람도 낙오됨이 없이 모두가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게 되기를 축원(祝願)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하셨습니다.
또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치라’ 하셨습니다.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보배 곳, 영원히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소중한 보배. 영원한 보물. 그 보배 곳, 보배 곳이 가까이에 있다 하셨습니다.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쳐라.(27분21초~43분2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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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수반지미족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화두를 든다.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〇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참고]
비구들아, 만일 여래(如來)가 열반할 때가 되면, 또 대중들이 청정할 뿐 아니라 믿고 이해함이 견실하여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이치를 환히 알며 깊은 선정을 성취하게 되면, 여래는 이를 알고 곧 성문과 보살들을 모아 이 가르침을 설한다.
세상에 이승(二乘-성문과 연각)으로 멸도하는 일은 없나니 오직 일불승(一佛乘)으로써만 멸도(滅度)할 수 있다.
비구들아, 알라. 나는 중생들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그들이 소법(小法)을 즐기며 오욕에 깊이 집착함을 알았기에 방편으로 열반을 설했고, 중생들은 내 말을 듣고는 곧 믿고 받아 지녔다.

예를 들어, 아주 험난한 데다 사람마저 살지 않아 무시무시하며, 길이가 5백 유순이나 되는 나쁜 길[惡道]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진귀한 보물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그곳을 지나려 한다고 하자.
그때 그들 가운데 한 길잡이[導師]가 매우 총명하여 그 길의 형세를 환히 다 알고 있었기에, 무리들을 이끌고 그 무서운 곳을 지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귀찮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너무나 피곤한 데다 무서워서 도저히 더이상 갈 수가 없소. 게다가 갈 길도 아직 멀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갖가지 방편(方便)을 지니고 있는 길잡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 참 딱하도다. 어째서 큰 진귀한 보물을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는 방편을 써서 그 길의 3백 유순 되는 지점에 신통력으로 성(城) 한 채를 만들어 놓고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시오. 그리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시오. 여기 이렇게 큰 성이 있으니 들어가서 마음껏 지내시오. 이 성에 들어가면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또 앞으로 더 나아가면 보물이 있는 곳[寶所]에 다다를 수 있소’
그러자 지쳐 있던 무리들은 매우 기뻐하며 기적 같은 일[未曾有]이라고 찬탄하며 말했다.
‘이제 이 험한 길[惡道]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었도다.’
그리고 그들은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성[化城]으로 들어가, 이미 험한 길 다 벗어났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길잡이[導師]는 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 뒤 피로가 다 풀린 줄 알고는, 신통력으로 만든 성[化城]을 없애 버리고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어서 갑시다. 보물 있는 곳이 멀지 않소(寶處在近). 예전에 있던 큰 성은 그대들을 쉬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었소.’

비구들아, 여래 또한 이와 같아서 그대들을 이끄는 큰 스승(大導師)이다. 그래서 모든 생사 번뇌와 악도(惡道)가 험난하고도 하염없이 긴 것을 알고 또 응당 떠나고 건너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만일 중생들이 단지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만 듣는다면, 부처님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가까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또 ‘부처님 되는 길은 멀고도 머니 오래도록 노력하여야 성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겁 많고 약하고 하열(下劣)함을 알기에 중도에 쉬게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두 가지 열반을 설했다.

그리고 만일 중생들이 이 두 경지에 안주하면 여래는 곧 다시 이렇게 설한다.
‘그대들이 머물고 있는 경지는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운 경지일 뿐이니,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얻은 열반을 잘 관찰하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요.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三乘)으로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저 길잡이가 무리들을 쉬게 하기 위하여 신통력으로 큰 성을 만들고, 다시 충분히 쉬었음을 알고는 ‘보물이 있는 곳은 가깝소. 그리고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내가 신통력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 『법화경』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에서.
『법화경』 (청량사 | 조인도철 역해), 『법화경』 (시공사 | 이연숙 옮김) 참고.

*일불승(一佛乘) ; 산스크리트어 eka-buddha-yāna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함.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는 부처님의 유일한 가르침.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할 곳을 향해서 눈을 부딪쳐라'수불세수(水不洗水).  '물로 물을 씻을 수 없다'는 말. '금으로 금을 교환할 필요가 없다[金不博金]'과 같은 비유이며 대구(對句)로 쓰인다.

이 비유는 모든 사람이 불성(佛性)을 가진 부처이기 때문에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 합일해야지 대상화하여 이분(二分)하거나 자기 밖에서 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고 ❶]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6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금강경』 是故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이러한 까닭으로 응당 법을 취하지도 말고, 법 아닌 것을 취하지도 말아야 한다.

【야부(冶父)】 金不愽(博)金 水不洗水
금으로 금을 살 수(교환할 필요가) 없으며,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한다.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只是一般金 豈分能愽所愽 只是一般水 豈分能洗所洗 恁麽 則法則一味 見有二取 二取相亡 一味方現
다만 이 똑같은 금인데, 어떻게 팔 금과 살 금을 나누며, 다만 똑같은 물인데 씻는 물과 씻어지는 물을 어떻게 나누겠는가. 이러한즉 법은 한맛인데 보는 것에 두 가지 취함이 있으니, 두 가지 취함이 서로 없어져야 비로소 한맛이 나타날 것이다.

【야부(冶父)】 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 水寒夜冷魚難覓 留得空般載月歸
가지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요,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로다. 물도 차고 밤도 추워 고기 찾기 어려우니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도다.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得一心存未是奇 一處亦亡是丈夫 到這裡 凡情脫盡 聖解亦亡 但將無私照 却來是非場
일심을 얻어 간직함이 대단한 게 아니라, 그 한 곳마저도 없어야 대장부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범부의 망심도 다 떨어지고 성인의 앎도 없으며, 다만 사심 없는 비춤을 가지고 시비의 마당에 다시 올 뿐이다.

[참고 ❷] 『종용록(從容錄)』 제51칙 '법안선륙(法眼舡陸)'
水不洗水 金不博金 佛不求佛 法不說法
물로 물을 씻지 못하고 금으로 금을 바꿀 수 없으며 부처가 부처를 구하지 못하고 법으로 법을 설할 수 없다.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5. 28. 13:46

 

 

§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일상생활이 바로 정진(精進)-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 /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소신통과 대신통.

‘공부하는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기회(機會)와 경계(境界) 위에서 잡아가지고 쓸 수가 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는 바로 거기서 잡아 낚아채야 하고, 귀로 소리를 들을 때에는 듣는 그 찰나에 퍼뜩 잡아서 써야해. 속담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번갯불 번쩍하는 그 번갯불에다가 콩을 구워 먹어.


이 사바세계는 내 마음에 합당한 일도 있고, 기쁘고 편안한 일도 있으려니와 슬프고 괴롭고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도 있어서 우리가 분심(憤心), 발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발심을 해서 진정으로 대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경계-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어떠한 순경계(順境界)나 역경계(逆境界)를 만났을지라도 바로 그 기회와 그 경계를 단 1분, 1초라도 놓치지 말고 바로 되잡아 써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8) - 83년 4월 첫째 일요법회(83.04.03)에서.(용198)

 

(1) 약 22분.

 

(2) 약 6분.

 


(1)------------------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한데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4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이것을 마음에 얻어. 이것을 얻되, 마음에 있어서 이것을 얻는다.
그리고 응재수(應在手)라. 응하는 데에는 손으로 응(應)을 한다.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구나. 눈달, 겨울에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그 눈이 쏟아지는 속에 달이 뜨며, 봄이 돌아오면 그 봄바람 속에 꽃이 피어.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눈 내리는 속에 달이 뜨며, 봄이 돌아오면 동풍이 부는데 그 동풍이 부는 속에 꽃이 피어난다 그말이여.

우리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육진(六塵)이 우리의 마음에 비추어졌을 때 그게 마음에 얻는다.
마음에 그러한 육진이 비추어지면 그것을 상대하게 될 때에는 손으로-글씨를 쓰게 될 때는 글씨를 쓰고,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일을 하고, 그것이 응할 때에는 손으로 그것을 응하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 일신상(一身上)에는 그러려니와 우주 법계에 자연계에 있어서는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가을에는 휘황창 달이 밝고, 봄이 오면 동풍이 불고 꽃이 피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를 몇억만 겁(劫)을 그렇게 해 내려왔다 그말이여.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하는데, 새벽이 돌아오면 아침마다 닭은 오경(五更)이 되면 울고,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로구나. 봄이 돌아오면 곳곳마다 산이나 들이나 집이나 골짜구니마다 울긋불긋 꽃이 피더라.

방금 조실 스님께서 녹음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을 하는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이나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이신 부처님이나,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역대 조사(祖師)나,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모든 중생들이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인데,
부처님이라고 해서 더 할 것도 없고, 중생이라고 해서 모자랄 것도 없는데, 왜 부처님은 해탈도를 증득을 해서 성불(成佛)을 하셨고, 우리 중생은 왜 깜깜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헤매고 있느냐?

우리가 부처님보단 우리의 본성(本性)·자성(自性) 자리에 있어서 모자라거나, 부처님이 우리 중생보다 더 나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뜻을, 내가 나를 깨닫지를 못해서 오직 그 하나 때문에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달이 법회를 열고 무슨 말을 할 말이 있느냐? 무슨 기특하고 재미있는 이 얘기 거리가 있는 것이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법상에 올라오며, 무엇을 듣기 위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이렇게 법보전(法寶殿)에 이렇게 모이시는 것이냐 그말이여.

왜 과거의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성현들은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동서 사방으로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인가.

천 번 만 번 법문을 듣고 서울로 지방으로 법회를 법문을 들으러 다녀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마냥 마찬가지여.
법문을 들을 때에는 가슴이 좀 후련하고 무엇인가 얻은 바가 있는 것 같다가, 한 시간 두 시간 지내고 하루 이틀이 지내면 도로 답답하고 방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공부해 나가는 그 근본 뜻을 바로 알아버리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정진(精進)이요. 수도(修道)요. 공부를 해가는 것인데,
그 공부해 나가는 그 요점을 바로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행여나 무슨 좋은 말씀을 들을까?’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법문을 들을까?’ 밤낮 들어봐도 들을 때 뿐이고 공부는 조금도 나아가는 것이 없다 그말이여.

일용 생활, 우리 일상생활(日常生活)-앉고, 서고, 눕고, 밥 먹고, 옷 입고, 세수하고, 오줌 누고, 똥 누고, 걸어 다니고, 차 타고, 하는 이러한 일상생활,
일상생활을 여의고 따로 특별한 수행을 찾는다면 이것은 영원히 찾아도 깨달음에 이르기가 어려운 것이여.

여의고 그놈을 떠나서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지고 잡고, 발로 걸어 다니고,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그놈을 버리고,
그놈을 떠나서 나의 자성(自性) 자리가 있다면 백 번 천 번이라도 그놈을 버리고 찾겠지만, 그놈을 떠나서는 세상없이도 없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놈을 버리고 찾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하는 뜻을 모르는 사람은 항시 마음만 급하고 마음만 바뻐.
‘내가 이렇게 공부를 안 해서 어떻게 하나!’
‘오늘도 이렇게 그럭저럭 하루가 지냈구나!’
‘이러한 모다 그 이러한 복잡한 일 때문에 내가 공부를 못한다.’
남편 때문에 못하고, 자식 때문에 못하고, 살림살이 때문에 못하고, 병 때문에 못하고, 그러한 것 때문에 못한다고 핑계를 대고 마음만 조급하다 그말이여.

마음이 조급하니까 짜증만 내고 신경질만 내고 일체 생활에 안정을 잃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평과 불만이 가뜩 차있어. 그러니 무슨 일을 한들 그 일이 제대로 되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그말이여.

「공부하는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은 모든 기회(機會)와 경계(境界) 위에서 잡아가지고 쓸 수가 있다 그말이여.
기회,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기회와 경계상에 그놈을 여의지 않고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턱 잡어서 써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는 바로 거기서 잡아 낚아채야 하고, 귀로 소리를 들을 때에는 듣는 그 찰나에 퍼뜩 잡아서 써야해.

속담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번갯불 번쩍하는 그 번갯불에다가 콩을 구워 먹어.

번갯불 번쩍할 때 바로 그때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바늘에다 실을 폭 뀌듯이, 그 찰나를 잘 잡아 쓸 줄 아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공부하는 바른 길을 터득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여.

선방에 3년, 10년, 20년, 30년을 다녀도 그러한 기회와 경계를 여의고 따로 공부를 지어 나가려고 그러고, 그놈을 여의고 공부를 할려고 헌 사람은 아무리 애써봤자 공부에 진취가 있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쪼끔 시끄러우면 파르르 신경질을 내고, 쪼끔 복잡하면 도망할 궁리를 하고, 경계와 기회를 피하고 도피해 가지고 따로 공부를 찾아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맞는 일, 내 마음에 맞는 사람, 내 마음에 맞는 장소, 모든 일이 내 마음과 내 마음에 순(順)하는, 내 마음대로 되는, 쪼끔도 내 마음을 거슬리지 아니한 그러한 곳은 저 천상에 하늘나라 천당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천당에 가면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고, 모든 즐겁고 기쁘고 편안하기는 하지만, 거기서는 도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성현들이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신 것입니다.

천당(天堂)은 좋고 기쁘고 편안한 일만 있어서 그러한 상태에서는 발심(發心)을 할 수가 없어.
축생(畜生)이나 지옥(地獄)은 모든 일이 괴로움만 있어서 괴로움이 지나치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우리의 근기(根機)로 그것을 이겨 나갈 수가 없어.

오직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이 사바세계는 내 마음에 합당한 일도 있고, 기쁘고 편안한 일도 있으려니와 슬프고 괴롭고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도 있어서 우리가 분심(憤心), 발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야만 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성현들은 일부러 무상(無上)의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해서, 대도를 성취해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사바세계에도 오셨는데,
우리는 과거의 무슨 수승한 인연이 있어서 다행히 금생에 이 사바세계에 왔습니다.

이 사바세계가 좋다고 하는 것은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져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가 좋다는 것이여.

그런데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피하고 슬픈 일은 피하고 기쁜 일만을 찾고, 괴로운 일을 피하고 즐거운 일만을 찾고, 시끄러운 것을 피해서 조용한 것만을 찾고,
벌써 시끄러운 것을 버릴려고 할 때에 그르쳐 버렸고, 다시 편안하고 즐거운 곳을 찾을 때에 두 번째 어긋나 버리는 것입니다. 계속 어긋나고 그르치기만 해 가지고 언제 바른 길을 한 걸음이라도 갈수가 있느냐 이말이여.

공부하는-참으로 발심을 해서 진정으로 대도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경계-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어떠한 순경계(順境界)나 역경계(逆境界)를 만났을지라도 바로 그 기회와 그 경계를 단 1분, 1초라도 놓치지 말고 바로 되잡아 써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21분24초)

 

 

 



(2)------------------

이렇게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지어간다면 우리가 있는 장소는 그 장소가 어디가 되었건, 그 시간이 어느 시간이 되었건, 어떠한 일을 만나건, 어떠한 사람을 상대하건,
우리는 곳곳마다 최상의 선방(禪房)이요, 바로 부처님 회상(會上)이요, 닥치는 일마다 부처님이요, 불보살을 친견한 것이요, 선지식을 친견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면 모든 소리는 나를 칭찬하는 소리나,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나, 새가 우는 소리나, 닭이 우는 소리나, 개가 짓는 소리나, 자동차 소리나, 모든 소리는 바로 부처님의 소리요, 부처님의 법문(法門)이 될 것이며,

내가 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은 저 해와 달은 말할 것도 없고 흘러가는 구름과 물, 겨울에 내리는 눈이나, 봄에 피는 꽃이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나,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이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의 몸이 불신(佛身)이 되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접촉하는 상대하게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진(六塵)이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 되고, 바로 그것이 최상의 육신통(六神通)으로 되는 것입니다.

소신통(小神通)은 내일 일을 알고, 여기서 서울 일을 알고, 앞으로 다가올 10년 20년 뒷일을 알고, 여기서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서울도 왔다갔다 축지법을 하고, 이러한 것은 소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조그마한 신통이라 하는 것이고,
참으로 최상의 대신통(大神通)이라 하는 것은, 부르면 대답하고, 배고프면 밥 먹고, 대간하면 한숨 자고, 이것이 바로 대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삿된 사람은 소신통이 대신통인 줄 착각을 하는 거고,
참으로 불법(佛法)을 이 최상승법을 옳게 인식한 사람은 바로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바로 이것이 신통 중에 최고로 크고 높은 대신통이라 하는 것이여.

대신통을 착각을 해 가지고 소신통을 추구한 사람은 공부해 나가다가 사견(邪見)에 빠지기가 쉽고 마군(魔軍)이의 권속으로 끌려가서 미치거나 삿된 경계에 빠지는 것이고,

소신통에 집착을 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대신통의 위대함에 눈뜬 사람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항시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고 항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대도(大道)를 성취하지 못하겠습니까.(처음~27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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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금강경오가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오경(五更) ; ①하룻밤을 초경(初更)에서 오경(五更)까지 다섯으로 나눈 시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룻밤을 다섯 시기로 나누었을 때의 다섯째 부분.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이다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본성(本性), 자성(自性) ; 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원천리(不遠千里) ; 천리(千里)를 멀다고 여기지 않음.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기회(機會) ; ①어떠한 일이나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나 경우. ②겨를이나 짬.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천당(天堂) ; ①극락세계(極樂世界)인 정토(淨土). ②하늘 위에 있는 궁전.
*축생(畜生) ;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나 괴로움을 받는 세계.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2)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인 법회. ②설법하는 모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자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육진(六塵) ; 육경六境.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4. 5. 8. 16:53

§(240) 아만을 꺾고 하심,  마음이 되어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 동사섭 / (게송)휴설인지단여장~ / 입을 다물어라 / 방선 때도 항상 화두를 들어야.

속담에 ‘양반 못된 것이 장바닥에 가서 큰소리치고, 개 못된 것이 들판에 가서 짖는다’


다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고 한 것을 말하지 말어라.(休說人之短與長)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非徒無益又招殃) 만약 능히 병마개 틀어막듯이 입을 그렇게 잘 막아 버리면,(若能守口如甁去)  이것이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니라.(此是安身第一方)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

 

‘석 달 안거(安居)가 알차게 되었느냐 못했느냐’하는 판가름은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1) 약 15분.

 

(2) 약 6분.

 

 

(1)------------------

 

금년 여름엔 용화사 보살선원(菩薩禪院)이 지대방을 터 가지고 큰방을 만들었고, 지대방은 저 뒤에 별채에다가 지대방을 크게 해서 사물함도 거기다가 다 하고 또 세수하고 씻는 것도 바로 거기 옆에다 넓게 해서 잘 해놓았습니다.

해마다 방부(房付)를 들이는 보살님네 수효가 늘어나고, 또 해마다 좋은 보살님네들이 오시고, 또 해를 거듭할수록 모든 질서가 잘 잡혀가고, 그래서 원장으로서 너무 참 기쁜 마음이 있어서 더 공부를 잘 하시도록 이렇게 모든 선방을 잘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더욱 신심을 돈독(敦篤)히 해서 열심히 또 법답게 정진을 잘 해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이 팔도(八道)에서 각성바지가 모다 모였어.

다 여러분의 가정에 돌아가시면 다 집안 어른이고, 다 집안에서는 큰소리 한번 치면 집안 식구가 꼼짝을 못하고 심지어 거사님까지도 다 꼼짝을 못하시겠지만, 이 선방에 와서는 큰소리칠라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첫째, 하심(下心)을 하고 아만(我慢)을 꺾고 빈 마음으로 - 마음속이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빈 마음이 되어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집에서 큰소리친다고 해서 여기서도 목에다 힘을 주고, 꺼떡허면 눈을 곤두세우고 큰소리치고, 옆의 사람 꼼짝 못허게 허고 자기 권위를 세울려고 그러고, 그러헌 마음을 가지신다면 여기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결제(結制)를 한 아무 보람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집에서 큰소리칠 수 있을수록에 여기서는 하심을 하고, 옆에 분이나 대중의 뜻을 받들고, 행여나 자기로 인해서 옆의 분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점점 잘 되어가고 있지만 금년에는 더욱 잘 해주시기를 바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속담에 ‘양반 못된 것이 장바닥에 가서 큰소리치고, 개 못된 것이 들판에 가서 짖는다’고 그런 말이 있습니다만은, 참! 이 선방에 오셔서는 무엇이건 간에, 그 선원의 법도(法度)에 자발적으로 따라 주셔서 순종을 허면서,
좀 불편한 점이 있고 내 마음에 안 든 점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편헐려고 여기를 온 것이 아니고 또 큰소리칠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무엇이던지 일부러 고생을 사서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이것을 이기는 것도 도(道)에 들어가는 한 단계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법도에 순종을 하고 대중과 같이 행동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비구(比丘) 스님네 선방에서도 역시 보살님네와 같이 이 말이 적용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데 선방에 다니신 스님네들은 용화사에 와서 지내시면, 무엇인가 좀 다른 데하고 다른 점이 있는 것을 혹 발견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송광사는 송광사대로 또 해인사는 해인사대로 또 통도사나 범어사는 거기 거기대로 또 불국선원은 불국선원대로 그 선원마다 가풍(家風)이 있고 법도가 있어서, 다른 점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쪼끔 자기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 여기는 이렇게 하는구나.’
내 마음에는 쪼끔 언짢지마는, ‘여기의 법대로 한번 따라 보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나라고 해서 이렇게 못할 것이 뭐 있느냐?’ 그렇게 의젓한 마음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넓은 마음으로 또 그렇게 한번 해 보거든.

이러한 좀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정진을 허시면 훨씬 그릇이.... 앞으로 우리는 내 자신의 생사 문제 뿐만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제도할 그러헌 대원(大願)을 가지고 수행을 해 나가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 중생들은 각기 업(業)이 달라서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 얼굴이 다르듯이 그 성격도 다르고, 그래서 그 많은 중생을 제도헐랴면 나도 그 중생과 동사섭(同事攝)을 해야 하거든.
그 중생과 뜻을 맞춰 가면서 결국은 그 중생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에, ‘내’라고 하는 것이 다 비워져 없어져 버려야만 되거든.

당장 이 선방에 와서 참선해 나갈 때부터 내 마음, 내 주견(主見), 내 선입관을 버려 버리고 이 선원의 법도에 따르는 연습부터 해야, 그래야 나중에 일체 중생을 제도할 때 동사섭 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갖추어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무 소리 말고 그저 그러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개선해야 할 좋은 점이 있으면 입승(立繩) 스님을 통해서 좋은 의견을 제출하시면 또 이 원장이나 사무실에서도 고칠 것은 얼마든지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그런 것은 매우 신중하게 지금 당장만을 생각하지 않고 두고두고 장래를 위해서 참으로 그 의견이 좋은 일이고 꼭 고쳐야 할 만한 일이면, 그런 의견은 좋은 기회를 타서 건의를 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실스님 때부터서 내려오는 전통은 될 수 있으면 지켜 가면서 그것을 잘 운용을 해 나가는데 묘(妙)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꾸 법도를 뜯어고치고 자꾸 제도를 이리 고쳤다 저리 고쳤다 허는 것은 좋은 것 같지마는 그것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기본은 항시 서 있으면서도 우리가 신심과 지혜로써 운용을 잘 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다 보완이 되어 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휴설인지단여장(休說人之短與長)이라  비도무익우초앙(非徒無益又招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수구여병거(若能守口如甁去)하면  차시안신제일방(此是安身第一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휴설인지단여장(休說人之短與長)하라. 비도무익우초앙(非徒無益又招殃)이니라.
다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고 한 것을 말하지 말어라.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

약능수구여병거(若能守口如甁去)하면, 만약 능히 병마개 틀어막듯이 입을 그렇게 잘 막아 버리면,
차시안신제일방(此是安身第一方)이니라. 이것이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니라.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 하셨습니다.

‘병(病)이 입으로 들어온다’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가지고 - 맛있는 것을 과식을 하고, 좋다 한다고 함부로 먹고, 음식을 잘못 먹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병이 나는 수가 너무너무 많고,

또 ‘모든 재앙(災殃)은 입에서 나온다’ 말을 잘못 해 가지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시비가 일어나고 부부간에도 말 때문에 싸움을 참 많이 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동서 간에도 그렇고, 집안에 모다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있는 것은 대부분 말 때문에 그런 거여.

말을 풀쑥한 것이 그것이 사람에 의해서 이리 전해지고 저리 전해지고 하면은 본의 아니게 서로 오해를 사게 되고, 그래 가지고는 속으로 꽁하니 섭섭한 마음을 품고,
차라리 가서 따지고 한바탕 싸움을 하고 나면 다 별것이 아닌데, 차마 따질 수는 없고 계속 속으로 ‘저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했단 말인가?’ 해 가지고는, ‘두고 보자’해서 꽁해 가지고 1년, 3년 되어도 속에 섭섭한 것이 풀리지를 않고,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버리지를 못하고,
그래가지고 나중에 뭔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섭섭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좋게 해줄 일도 좋게 안 해주고,

여기에 모이신 분은 마음보를 그렇게 쓰실 분은 안 계시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섭섭한 말을 이리저리 전해 들으면 속상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입도 꼭 다물어 버리고 기왕이면 귀까지 다물어 버렸으면 참 좋겠지만,
그 어떤 사람이 귀를 꽉 먹게 되었는데, 어렸을 때는 대단히 귀가 잘 들렸었는데 중간에 귀가 꽉 먹었어요. 그래 가지고는 여간 귀에다 큰 소리를 질러야 겨우 좀 들리고 그런데, 참 발심을 해서 공부도 열심히 헐려고 그러는데, 그분이 정진을 기도를 열심히 하고 그랬더니,

그 공부를 할 때 그리고 기도를 할 때, 항시 「대관절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이 있어서 금생에 내가 귀를 먹었나?」 항시 그것이 궁금해서 그것이 알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이 항시 마음에 떠나지 아니한 상태에서 참선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랬는데,
아! 우연히 - 전생에 자기가 참선을 했었는데, 옆에서 어떻게 떠드는 바람에 자꾸 그리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저놈의 소리를 안 들을고’하고 항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아! 그것이 원인이 되어가지고 금생에 귀가 절벽이 되었다 하는 것을 스스로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입니다.(33분19초~48분13초)

 

 

 

 


(2)------------------

 

참선불용다언어(參禪不用多言語)여  지재심상묵연간(只在尋常黙然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조주무자(趙州無字)를 여망각(如忘却)하면  수구무언아불간(雖口無言我不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불용다언어(參禪不用多言語)여. 참선하는 데에는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제일이다 그말이여.

지재심상묵연간(只在尋常黙然看)이여. 다못 앉어서나 서서나 평상시에 항시 묵연(黙然)하게 화두를 관(觀)해라.

조주무자여망각(趙州無字如忘却)하면, 말을 안 한 것이 공부에 유익하고 그렇지만 그 말 안 하는 가운데에 화두(話頭)를 놔 버리면, 아무리 말을 안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내가 관계치 못할 일이다. 그 옳다고 할 수가 없다.

선방(禪房)에 방부를 들이신 보살님. 입선(入禪) 시간에는 말씀을 안 하시겠지만 그 방선(放禪)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지내야 하느냐?
거기에 ‘석 달 안거(安居)가 참 알차게 되었느냐 못했느냐’하는 판가름은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방선 시간에, 이제 지대방이 저리 떨어져 나갔으니까 이제 좀 떠들어도 되겠구나’ 지금부터서 그 생각을 허실런지 모르지만 거기도 선방(禪房)입니다.
거기도 넓고 잘해 놨으니까 일이 있으면 거기를 가시겠지만, 거기 가서도 일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항시 화두를 놓치지 말고,

그리고 거기라고 해서 이 소리 저 소리 잡담을 하면, 허고 난 뒤에는 ‘공연히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나...’

말은 허다 보면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고, 또 쓸데없는 소리허다 보면 괜히 남의 오장 건드리는 소리가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일어나는 법이니까 지대방에 가셔도 어쨌든지 말 많이 허시지 말고 바로 또 선방에 오셔서 정진을 허시도록.

선방은 ‘입선(방선) 시간’에도 항시 그 선방에서는 말허지 않도록. 도저히 말을 않고서는 안 될 만한 일이 있을 때는 저 지대방에 가서 말씀을 하시고.
그래서 입방선(入放禪)이 없이 큰방에서는 언제라도 딱 자기 자리에서 참선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실 것이며.

한 사람이고 두 사람이고 앉어 있으면 누구라도, 아무도 안 앉어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대중적인 무슨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사담(私談)을 하지 않도록. 그렇게 해서 명실공히 알차고 짬진 안거가 되도록 부탁을 합니다.

백일기도도 아울러서 봉행이 되니까 결제(結制)이면서 기도요, 기도이면서 또 결제이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참선 결제에다가 백일기도까지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석 달 동안을 하루와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해 주신다면 업장도 소멸이 되고, 또 세속적인 모든 크고 작은 원(願)도 성취가 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69분29초~75분2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보살선원(菩薩禪院) ;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돈독(敦篤)히(도타울 돈,도타울 독) ; 도탑고 성실하게.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팔도(八道) ; ①우리나라 전체. ②[역사] 조선 시대, 전국을 여덟 개로 나눈 행정 구역.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말한다.
*각성바지(各姓--) ; 성이 각각 다른 사람.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들어간다.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비구(比丘) ;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스님. 걸식하는 남자 수행승.
산스크리트어 bhikṣu 팔리어 bhikkhu의 음사. 걸사(乞士)·파번뇌(破煩惱)·파악(破惡)·포마(怖魔)라고 번역.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동사섭(同事攝) ; 보살(菩薩)이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4섭(四攝-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의 하나.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몸을 나타내되, 그들과 사업·이익을 같이하면서,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苦樂)을 같이하고 화복(禍福)을 함께 함으로써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
*주견(主見) ; 자기의 주장을 담은 의견.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게송) 휴설인지단여장~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4) '贈許生'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마음보 ; 마음을 쓰는 속 바탕.

 

 

 

 

 

------------------(2)

 

*(게송) 참선불용다언어~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默山人'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묵연(默然)하다 ; 잠잠히 말이 없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오장을 건드리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뒤집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사담(私談) ; 사사로이 이야기함. 또는 그런 이야기.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4. 5. 1. 05:3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675) (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 (게송) 제법종본래~ /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서 그것을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이 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통해서 자성(自性)을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675) - 03년 부처님오신날(03.05.08) 법문. (용675)

 

약 21분.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니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부처님과 같은 분이 안 계시다.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로다. 시방세계에 부처님께 견줄 만한 분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내가 온 세간(世間)을 다 보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다. 부처님과 같은 분은 안 계시다.

이 게송(偈頌)은 무량억겁 전에 백겁(百劫) 수행을 부처님께서 하실 때, 미륵 보살(彌勒菩薩)과 석가모니 부처님이-그때는 보살로 수행하실 때인데, 그때 저사불(底沙佛)이라고 하는 부처님 밑에서 수행을 하시다가 그 석가 보살(釋迦菩薩)께서 저사불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로 인해서-칠일칠야(七日七夜) 동안을 한 발을 들은 채 그 저사불의 거룩하고 위대하신 모습을 찬양하야, 그 공덕으로 구겁(九劫)을 초월해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도 먼저 성불(成佛)을 하신 인연이 있는 게송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할 때마다,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릴 때마다 이 게송으로써 부처님의 모든 위대함을 찬양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째서 부처님은 이렇게 거룩하시고,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부처님의 거룩함을 이렇게 찬양을 하느냐 하면은,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서 그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하셔가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셨습니다.

‘견성성불을 하신다’한 말은 대관절 무엇을 깨달아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팔만사천의 한량없는 법문(法門)이 들어있습니다마는, 오늘 산승(山僧)은 그 가장 요점만을 간략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과연 일생 동안을 무슨 마음으로 사셨으며, 무슨 설법을 초점을 두고 하셨으며, 평생 동안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모든 것을 보실 때, 모든 중생과 모든 것을 다 보실 때에는 ‘망령(妄靈)되지 않다.[不妄]’
관타야불망(觀他也不妄)이요. 관자역무생(觀自亦無生)이다. 당신 스스로는 어떻게 당신을 보셨을까? ‘남이 없다.[無生]’고 그렇게 보셨어.

‘망령되지 아니하다[不妄]’고 하는 것은 모두가 다 진실이요, 모두가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모두가 진리다 그 말씀이고, 스스로를 보실 때 무생(無生)으로 보셨다 그말이거든.

보통 우리 중생으로 볼 때는 「부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셔가지고 그래가지고 출가하셔서 고행을 하셔가지고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중생의 눈으로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無生]’고 그렇게 스스로를 보신 것입니다,

일생 동안 우리 중생들도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서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르고, 혼자도 부르고 여러 사람이 모이면 다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의식이 있을 때도 노래를 부릅니다.

대관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오셔서 무슨 노래를 항상 부르셨을까?(出世謌何事)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로부터 태평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람마다 태평하다.’ ‘태평(太平)하다’고 하는 것은, 모든 고통이 없으며 슬픔이 없으며 아무 근심걱정 할 것 없고, 항상 행복하고 항상 넉넉하고 항상 즐겁기 때문에 그것을 ‘태평하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생로병사가 있고 흥망성쇠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고, 본래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똑같은 존재임을 알지를 못하고,
‘자기는 중생이고, 중생은 생로병사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되어있다.’ 그렇게 착각을 하고 살기 때문에, 본래 부족함이 없고 본래 생사가 없는 존재이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처음에 이 「생사 없는 도리(道理)」를 말씀을 하셨지마는 중생이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원래 우리는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을 없애야 우리가 열반에 드는데 괴로움의 원인이 뭣이냐?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생사가 있는 것이고, 고통이 있는 것이고, 진리 속에서 있으면서 진리를 모른 것이다.’ 이렇게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말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생활 속에서 수행을 쌓아나가면, 「원래 내가 생사(生死)가 없는 존재이고 진리의 존재」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법문을 설하시다가, 나중에 법화경(法華經)을 설하실 때 부처님은 무슨 게송을 읊으셨냐 하면은,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로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다.
제법(諸法)이라 하는 것은, 우주법계 삼라만상을 모두 제법(諸法)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종본래(從本來)로 본래부터, 상자적멸상이다-항상 그대로 적멸상(寂滅相)이다. 열반상이다.
열반상(涅槃相)이라 하는 것은 ‘생사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하면, 불자가 이 도리를 깨달으면,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다, 그 도리를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내세(來世)라고 하니까 이 몸뚱이 80년, 90년 살다 죽은 뒤에 성불한다고 그렇게 해설한 것은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본래로 생사가 없는 진리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는데, 반야심경에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말이 있고, 경전마다 ‘생사는 본래 없다’고 하는 많은 법문이 나와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생사가 있고 고통이 있고 슬픔과 괴로움이 있느냐 하면은,
비유를 들어서 물이라 하는 것은 섭씨 영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됩니다. 고체가 됩니다. 그것을 끓여서 100도가 되면 증기가 나와 가지고 기체가 됩니다.

물로 되었을 때나 얼음으로 되었을 때나 증기로 있을 때나 물의 본성(本性), 습성(濕性)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상황 따라서 모양만 다르지 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그 물의 본성, 습성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거나 그 자체는 언제나 고대로 있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있을 때나, 부자로 있으나, 가난뱅이로 있으나, 죄를 지어서 형무소에 가서 있거나 또는 더 무서운 죄를 지어가지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또는 업에 따라서 축생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그 본성(本性)은 부처님으로 있을 때나, 조사(祖師)로 있을 때나, 빈부귀천 어떤 모습으로 있을 때나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를 못해서 각각 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가지고 잘난 사람은 잘난 채, 못난 사람은 기가 죽고, 부자는 부자라 해가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 권리가 있으면 권리가 있다고 남을 업신여기고 자기의 권리를 휘두르고, 그러다가 부정(不正)을 하다가 잘못되면 또 다시 감옥에도 가고 그러한 흥망성쇠와 생사윤회와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있다하더라도 우리 속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 비로자나법신불이 우리 속에는 살아계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 목적은 ‘너희들 모두가 다 원래로 부처님이다. 진여(眞如)다.’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어가지고 그것을 깨달아서 영원한 생사를 해탈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믿고 그것을 우리가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그 진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참선을 하며 근기(根機)에 따라서 경(經) 공부를 하거나, 주력(呪力)을 하거나, 염불(念佛)을 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가장 유식(有識)·무식(無識)을 막론하고 누구라도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도를 닦을 수 있는 방법이 ‘이뭣고?’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종파(宗派)에 따라서 각기 자기가 믿는 경전에 의거해서 여러 가지로 설법을 하고 교화를 하고 있지마는, 우리 용화사에서는,
일어나는 생각,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서는 온갖 생각이 일어납니다. 좋은 생각도 일어나고 나쁜 생각도 일어나고 슬픈 생각도 일어나고 고통스러운 생각도 일어나지마는,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 ‘한 생각’에 자기의 본마음을 찾는 공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장소가 따로 필요가 없고, 언제 어디서라도 나를 찾는-나의 부처님을 찾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산승이 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부처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고, 그것이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많은 말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 있는 사람은 감옥에서도 ‘이뭣고?’를 하고, 부자도 ‘이뭣고?’를 하고 또 높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자기가 자신을 찾다 보면 자기의 참마음을 깨달아서 진리와 자기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자꾸하다 보면 자꾸 잊어버리고, ‘이뭣고?’를 하지마는 망상(妄想)이 일어날 것입니다마는 그 망상이 어디서 일어났냐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여불성에서 그런 파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래 물은 깨끗하고 조용하지마는 바람이 불므로 해서 물결이 일어나.
물결이 일어났어도 내나 그 물결이 물인 것이고, 그 물은 원래 본성인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고 물을 찾지 말고, 파도에 즉해서 ‘이뭣고?’를 찾으면 진여불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망상과 번뇌를 버리고 찾지 말고 거기에서 ‘이뭣고?’로 들어가면 가장 빨리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전에 열반(涅槃)하셨지만, 우리가 이 법에 의해서 ‘이뭣고?’를 통해서 자성(自性)을 찾는다면 언제나 어디서나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파일에 많은 신도분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이 모이셨고 또 정성을 표하고 소원을 빌기 위해서 많은 등불을 켰습니다마는,

등불을 켜면서도 ‘이뭣고?’를 하시고, 돌아가신 길에도 ‘이뭣고?’를 하시고, 돌아가시면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모든 문제를 ‘이뭣고?’-자기가 자기의 진성(眞性)을 찾는 거기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신다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이 될 것이고, 가정에 분위기도 좋아질 것이고, 사회도 그것으로 인해서 좋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 사람이 이렇게 한다면 부정부패도 없어질 것이고, 대한민국이 정말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고, 온 세계에도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하는 길은 오직 여기에 있다고 산승은 생각합니다.(처음~20분2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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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천상천하무여불~ ;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 찬불게(讚佛偈)라 한다.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먼 과거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때 두 사람의 보살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석가(釋迦) 보살이라 했고 또한 한 사람은 미륵(彌勒) 보살이라 했다.
어느날 저사불께서 두 보살을 관찰해 보시니,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앞서 있으나 중생 교화의 면에서는 석가 보살이 앞서 있어서, 저사불은 석가 보살로 하여금 속히 부처를 이루게[成佛] 하기 위하여 설산에 올라가 보굴(寶窟) 속에서 화광삼매(火光三昧, 火定)에 드셨다.
이때 석가 보살이 산에 올라가 약을 캐고 있었는데, 저사불께서 보굴 속에 앉아 화광삼매에 들어 밝은 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자, 그 거룩한 모습에 어찌 할 수 없어-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또 다른 발을 들어서 걸어가지를 못하고-한 발을 들은 채로 합장하고, 환희하며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박이지 않고 7일 낮과 7일 밤을 있었다.
여기에서 그 칠일칠야(七日七夜) 시일이 지나가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으신 이 없으시고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서도 견줄 이 없도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존재하는 것, 내 모두 보았으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그 어느 것도 부처님에 비할 바 아니네.

이 게송을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찬불게(讚佛偈)라 하는데,
7일 7야 동안 세존(世尊)을 자세히 관하되[諦觀] 조금도 눈을 깜박이지 않으시니, 이로 인해 아홉 겁(九劫)을 뛰어넘어 91겁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를 얻으셨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4권) '初品中菩薩釋論第八' 참고. [전등록 2] (동국역경원) p133 참고.

*저사불(底沙佛) ; 산스크리트어 Tisya. 부처님 이름. 불사(弗沙)·보사(補沙)라고도 함. 명(明)·원만(圓滿)이라 번역한다.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게송) ‘관타야불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99 ‘찬불(讚佛)’ 게송 참고. *謌(가) 노래. 歌와 동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법화경(法華經) ; 본이름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28품.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
경 전체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후반부에서는 세존의 수명이 무량함을 설함.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세존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일승(一乘,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부처의 가르침)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후반부에서는 세존을 법신(法身)과 동일시함으로써 영원한 존재로 상정하여 신앙의 대상을 확립함.
*(게송) 제법종본래~ ; [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 사구게.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종파(宗派) ; 한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큰 갈래.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

 

 

§(240) (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다못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무조건하고 ‘이뭣고~?’ /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밑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저 ‘이뭣고?’하면은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거기에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을 하고, 거기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그러니까 나도 해야겠다. 다못 그런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바보처럼 탁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용240)

 

약 11분.

 


정종소식몰자미(正宗消息沒滋味)헌데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로다
나무~아미타불~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종소식몰자미(正宗消息沒滋味)라. 최상승 활구참선은 몰자미(沒滋味)여. 아무 재미가 없다 그말이여.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다 소용이 없어. 이러쿵저러쿵 잘하니 못하니, 잘되니 안 되니, 시비(是非)가 여기에는 붙지를 못한다.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은산철벽을 타파해 버리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이때가 바로 생사대하(生死大河)를 건너가는 것이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을 타파해 버려. 무슨 은산철벽이냐?
화두(話頭)의 의심,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이 알라야 알 수 없고, 앞으로 나갈라야 앞도 맥히고, 뒤로 물러설라야 뒤도 맥히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둘러봐야 꽉 맥혀서,
마치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서 나아가자니 앞도 맥히고, 물러서자니 뒤도 맥히고, 쇠뿔통이 좁아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도 못하고.

‘이 쇠뿔이 무엇이냐?’하면 중국에 가면 물소가 있는데, 물소뿔이 기드란헌데 그 기드란한 물소뿔을 가지고 쥐 잡는 쥐덫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물소뿔 속에 저 안에다가 쥐가 좋아하는 음식물을 넣어 놓으면 쥐가 그 좋은 냄새를 맡고서 그걸 먹으려고 쇠뿔 속으로 들어가서, 그 음식을 물고 잡아댕겼다 하면은 찰크닥! 뒷문이 닫혀 가지고 쥐가 꼼짝없이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쥐가 물소뿔에 들어가서 꼼짝 못허고 잡혀.

앞으로 나가자니 꽉 맥혔고 뒤로 물러서자니 뒤도 닫혀서 돌아서자니 좁아서 돌아서지도 못하고, 화두를 들고 의심을 허되 이렇게 꽉 맥히도록 맥히게 공부를 지어가야 한단 말이여.

알아 들어갈 것이 있고, 따질 것이 있고 이론적으로 분석허고, 그래 가지고 무슨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알아 들어가고 더듬어 들어가고 그렇게 화두를 참구(參究)를 허면 그것은 사구선(死句禪)이라 해서 의리선(義理禪)이라 해서 그것은 바른 참선이 아니여.

무조건하고 ‘이 무엇고?’ ‘이뭣고?’

다못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무조건하고 ‘이뭣고~?’

그저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이 없으니까 모를수록에 더 좋으니까 ‘이뭣고~?’

그저 ‘이뭣고?’하면은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거기에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을 하고, 거기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그러니까 나도 해야겠다. 다못 그런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바보처럼 탁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바보처럼 그렇게 해 갈수록에 그 사람은 상근대지(上根大智)고,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렇게도 해봤다 저렇게도 해봤다, 이렇게 서성거리고 더듬거리고 갈팡질팡하고 이런 사람은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없어. 아직 이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들어가는 인연(因緣)이 성숙하지 못한 증거여.

참으로 이 최상승법에 발심(發心)을 헌 사람이면 뭘 많이 알려고 헐 필요도 없고, 이리저리 따질 것도 없고, 그저 찰나간에 바보 똥멍청이가 되어가지고 그저 ‘이뭣고~?’ 그렇게만 들어가야 된다.
그 상태를 갖다가 쥐가 쇠뿔 속에 들어가서 꼼짝 못한 거와 같고 이것이 바로 은산철벽이다 그말이여.

은(銀)으로 만들어진 산(山)이요, 쇠[鐵]로 맨든 벽(壁)에 부딪힌 것 같애서, 갈라야 갈 수가 없어. 뚫고 나갈라야 뚫을 수가 없어. 화두가 그렇게 되게 맥혀 버려야 헌다 그말이여.

그래서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밑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 되게 맥히고 그 의심이 간절(懇切)하고 크면 클수록 큰 깨달음을 얻는데, 그 의심이 「어떻게 해서 의심이 터지냐 ?」하면,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고 그 동안에 보고 듣고 한 경전이나 불교교리 그런 것을 가지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렇게 나가면은 죽을 때까지 그런 식으로 따져도 그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라 하는 것은 오지를 않고, 무조건하고 꽉 맥힌 의심만으로만 나가. 그러니 얼마나 답답허겄냐 그말이여.

무슨 책을 보면 환히 알아지는 것이 있고 느껴지는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날마다 보면 날마다 본만큼 무엇인가 알아지는 것이 있으니까 좀 재미도 있고 답답허지를 않은데,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무조건하고 그저 ‘이뭣고?’만 하니, 오늘도 그 모냥이고 하루를 더 해도 그만이고, 일주일을 해도 알 수가 없고, 한 달을 해도 알 수가 없고, 석 달을 지내도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고, 답답허기만 허다.

그것이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 그것이 참으로 공부가 바르게 되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바르게 해 가야 거기에서 업장이 소멸이 되고 결국은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를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처음~10분3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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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淳長老'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초파일)2014. 4. 26. 19:15

§ (게송) 운변천첩장~ / 이 사바세계는 성불(成佛)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이 갖추어진 세계다 / '이뭣고?'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 온갖 부처님의 성스러운 관법이 다 들어있다.

모든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경계는 다 환(幻)으로, 우리의 중생 환(幻)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모든 환(幻)은 몽환(夢幻) 경계인데, 중생의 업(業)으로 나타나는 모든 경계는 꿈속에 앓는 만신창병(滿身瘡病)과 같은 것입니다.
‘꿈속에 앓는 만신창이, 꿈을 깨면서 낫는다’
모든 경계가 환(幻)인 줄 깨닫는 법이 바로 ‘이뭣고?’를 드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해탈도로 가는 길입니다.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용389)

 

약 15분.

 


운변천첩장(雲邊千疊嶂)이요  난외일성천(欄外一聲川)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불연순우(若不連旬雨)하면  나지제후천(那知霽後天)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운변천첩장(雲邊千疊嶂)이요, 난외일성천(欄外一聲川)이다.
저 구름 가에 천첩이나 쌓인 산이 있고, 울담 밖에 한 소리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있더라.

약불연순우(若不連旬雨)하면, 만약 열흘 동안이나 계속해서 내리는 그 비가 없었다면,
나지제후천(那知霽後天)이냐. 어찌 비 갠 뒤에 그 새파란 하늘 있음을 알 수가 있었겠는가.
앞으로 장마 계절이 옵니다마는, 장마에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기를 열흘 스무날 계속한 뒤에 햇빛이 쨍쨍 하고 나야, 비로소 햇빛 고마운 줄도 알고 파란 하늘도 비로소 새롭게 느껴진다 이거거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생로병사•희로애락•흥망성쇠가 이렇게 뒤범벅이 되어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서 발심(發心)하기가 좋고, 분심(憤心)내기가 좋고, 그래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이 갖추어진 세계다 이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병고에 시달리는 분, 사업에 여의치 못해서 고통 속에 빠지신 분, 아들을 못 낳아서 고통에 빠진 며느님들, 또는 아들딸이 공부를 잘 못해서 대학에 못 들어갈까 봐 걱정이신 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의합(義合)이 좋지 못해서 고통 받는 분, 그런 고통을 어떻게 해서 이겨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발심할 수 있는 좋은 계기요,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법회에 나오셔서 듣는 법문 또 듣는 법문이라도 열심히 법문을 듣다 보면, 어느 땐가는 확! 지혜의 눈이 열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거슬리는 일을 당하면은 성을 내고, 우리 마음에 합당(合當)한 그러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기뻐합니다.
천하 사람이 전부 역경계(逆境界) 아니면 순경계(順境界) 속에 걸려서, 노예가 되어가지고 울다 웃다 하면서 아까운 생명을 헛되이 보내면서 삼악도(三惡道)를 향해서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오. 내 마음에 맞는 순경계가 머지않아서 뒤집어져 가지고 역경계로 변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역경계를 만나서 있다 하더라도 그 고비를 잘 참고 견디면서 노력을 하다보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고, 쥐구멍에도 또 볕들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경계•순경계에 놀아나지 말고, 어떠한 경계(境界)를 닥치든지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을 깊이 인식하고 항상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이뭣고?’
역경계•순경계에 끄달려서 울다 웃다한 사람은 항상 경계에 속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경계는 다 환(幻)으로, 우리의 중생 환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衆生)은 곳곳마다 일어나는 그 환(幻)의 업(業)에 끄달려 가는 거고, 성문(聲聞)•연각(緣覺)은 그 환(幻)의 경계가 무서워서 어쨌든지 그놈을 없앨라고 그러면서 그 본심(本心)을 미(迷)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생각만 없앨려고 번뇌 망상만 끊을려고 노력을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관법(觀法)을 닦아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여. 그래야 태어나지 않고, 태어나지 아니해야 죽음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썩 훌륭한 법이 아닌 것입니다.

보살(菩薩)은 그 환(幻) 경계라고 하는 것을 꿰뚫어 봐 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희로애락•성주괴공•흥망성쇠 그러한 명사(名詞)에 얽매이지를 아니 해. 그래가지고 어떠한 경계를 닥치든지 ‘본래 남이 없는’ 무생(無生)의 진리에 딱 마음을 계합시켜 버리는 거여. 그것이 바로 ‘이뭣고?’거든.

‘이뭣고?’를 자꾸 하다보면, 무슨 생각이 ‘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이뭣고?’하면 그 생각이 둘째번 셋째번 생각으로 번질 겨를이 없어.

그것이 번져 가지고 결국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이뭣고?’했을 때 바로 거기서 생사 없는 무생(無生)의 경지(境地)로 들어가는 법이다 그말이여.


우리 중생의 모든 환(幻)은 몽환(夢幻) 경계인데, ‘환(幻)은 왜 환(幻)이라 하냐?’하면은,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 몸뚱이에 아주 종기(腫氣)가 일어나 가지고 차츰차츰 번져서 아주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었다 그말이여.
‘어떻게 해야 이 무서운 창병(瘡病)을 고칠까?’ 그래가지고 너무너무 비탄에 빠지고 고통에 빠졌다가, 누가 텅! 하는 바람에 눈을 뚝 떠 보니까 아! 꿈이었다 그말이여.

그렇게 온 전신이 쑤시고 애리고 가렵고 그러던 것이 눈을 딱! 뜨자마자 몸뚱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그 구녁구녁이 고름이 터져 나오던 것이 간 곳이 없다 그말이여.
우리 중생의 모든 업(業)으로 나타나는 모든 경계는 꿈속에 앓는 만신창병(滿身瘡病)과 같은 것입니다.

‘한 생각’ 터억 돌이켜 버리면, ‘한 생각’ 돌이켜서 깨달아버리면 방편(方便)이 필요가 없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법문(法門)이 이 ‘꿈에 앓는 만신창이, 꿈을 깨면서 낫는다’고 하는 이 말씀 한마디 속에 다 포함이 되어있는 것이여.

여러분이 앞으로 어떠한 고통을 받더라도 ‘이뭣고?’ 한마디로써 모든 고통을 다 치료해 나가셔. 미운 사람을 만나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나, 좋은 경계를 만나나, 괴로운 경계를 만났을 때, 환(幻)인 줄 깨닫는 법이 바로 ‘이뭣고?’니까 ‘이뭣고?’를 드시어. 그것이 바로 새로 태어나는 길인 것입니다.

등(燈) 하나를 올리고 우리는 무량억겁(無量億劫)으로 윤회 할, 윤회(輪廻)를 벗어나는 도리를 우리는 알았습니다.

 

앞으로 이 몸뚱이가 20년, 30년 얼마를 유지할란가 모릅니다마는 그까짓 것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10년을 살다가 가든지 30년을 살다 가든지 이 몸뚱이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건 큰 걱정할 것 없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한 생각’만 무섭게 단속(團束)을 해 나가면, 그 속에 우리는 해탈도로 가는 길이 거기에 열려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2533년 기사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부처님께서 태어나시듯이 우리도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났으니 과거의 모든 일은 완전히 다 잊어버려.
우리가 갓난 애기 새로 태어나면서 전생일 다 잊어버리고, 우리 지금 전생에 무엇이 어쨌다 한 것을 아는 사람 있습니까?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은 전생 과거사도 다 안다고 그럽니다마는, 우리는 새로 태어날 때 과거 일을 다 잊어버린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오늘 이전의 모든 원한(怨恨) 관계도 다 잊어버리고, 근심•고통도 다 잊어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 1분 1분, 1초 1초를 살아갈 것을 기약하면서,

자, 손을 드시고, ‘이뭣고?’(이뭣고?)  ‘이뭣고?’(이뭣고?)  ‘이뭣고?’(이뭣고?)

간단한 한마디지만 팔만대장경이 그 속에 다 들었고, 온갖 부처님의 성스러운 관법이 이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이어서 여러분들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과 축원이 있고, 그리고서 지하실로 내려가셔서 간략한 점심 공양을 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녁에 7시 지나서 우리의 정성스러운 등(燈)에 등불이 켜지게 될 것입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여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여, 한 움큼 버들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玉欄干)에다 걸어 두노라.(44분3초~58분3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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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운변천첩장~ ; [편양당집(鞭羊堂集)] 卷一 ‘偶吟一絶’, 편양언기(鞭羊彦機 1581-1644) 게송 참고.
*疊(첩)겹치다. 포갬. *嶂(장)산봉우리. *欄(난)난간. *旬(순)열흘. 열흘 동안. *那(나) (반어)어찌…할 수 있겠는가. *霽(제)비 개다. 비 그치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합당하다(合當--) ; (…에/에게) 어떤 기준, 조건, 용도, 도리 따위에 꼭 알맞다.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禍]이 바뀌어[轉]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을 이르는 말.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①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자.
②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자.
*연각(緣覺) ;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 ka-buddha
①홀로 연기(緣起)의 이치를 관찰하여 깨달은 자.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깨달은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홀로 수행하는 자. 독각(獨覺)·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함.
② 연각승(緣覺乘)의 준말.
*관법(觀法) ; 마음으로 진리를 관(觀)하고 염(念)하는 수행. 마음의 산동(散動)을 멈추어, 그 결과 생기는 지혜[明知]로 모든 대상[諸法]의 진실한 모습을 관찰하는 수행. 마음의 본성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어떤 현상이나 진리를 마음 속으로 떠올려 그것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한 생각만 주시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는 수행.
*멸진정(滅盡定) ; ①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선정(禪定).
② 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종기(腫氣 부스럼 종,기운 기) ; 사람이나 동물의 피부가 곪아 고름이 차는 질환.
*만신창이(滿身瘡痍 찰 만,몸 신,부스럼 창,상처 이) ;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창병(瘡病) ; 피부나 살에 발생하는 질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4. 4. 24. 14:59

 

 

§ (게송) 묘체유래무처소~ / 천상천하(天上天下)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묘체(妙體) 아님이 없어.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용389)

 

약 4분.

 


묘체유래무처소(妙體由來無處所)한데  관음기재해동문(觀音豈在海東門)고
나무~아미타불~
하처청산부도량(何處靑山不道場)한데  하수특례낙가산(何須特禮洛迦山)고
나무~아미타불~

묘체유래무처소(妙體由來無處所)한데, 묘한 진리의 체(體)는 원래로 처소(處所)가 없어.
어디에는 진리가 있고, 어디에는 진리가 없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불교의 진리는 천상천하(天上天下)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묘체(妙體) 아님이 없어.

전부가 다 어느 곳, 어느 때를 막론하고 진리의 체(體)는 이 허공 법계에 없는 데가 다 없는데,
관음기재해동문(觀音豈在海東門)이리요. 어찌 관세음보살이 저 동쪽 바닷가에만 계시겠는가?

하처청산부도량(何處靑山不道場)인데, 어느 곳 청산(青山)이 관세음보살 계시지 아니한 도량(道場)이 있으리요.

그렇거늘 어찌 모름지기 꼭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에만 관세음보살이 계신 줄 알고 거기만 찾아갈 것이 무엇이 있는가?(何須特禮洛迦山) (처음~3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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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묘체유래무처소~ ;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下] 백운경한(白雲景閑 1299-1375)의 ‘送人洛迦山(낙가산으로 사람을 보내면서)’ 게송 참고.
*천상천하(天上天下)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라 한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 ; 관세음보살이 거주하는 산. 寶陀洛迦山, 普陀落伽山, 洛迦山, 洛山.
'흰 꽃이 피어 있는 작은 산' 또는 '꽃과 나무로 가득한 작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범어 '포타라카(potalaka)'의 음역이다. 보타낙가산을 소화수산(小花樹山), 소백화산(小白華山), 해도산(海島山), 광명산(光明山)이라 부른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