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에 해당되는 글 95건

  1. 2014.09.17 §(760) (게송)수행막대빈모반~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잡담(雜談)하지 마라 / 정진과 소임이 둘이 아니다 / '한 생각'을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해야.
  2. 2014.09.11 §(551) (게송)권군심심참묘화~ / 올바른 정진을 해야 / 황벽스님 법문 / 하루씩 결제, '한 생각'씩 결제 / (게송)사자굴중무이수~ / ‘묘(妙)한 관(觀)’으로 의심.
  3. 2014.08.23 §(768)(게송)화불능소수불익~ / (게송)거심진속윤회업~ / 쇳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가슴속에 / 우리는 도반(道伴)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4. 2014.07.18 §(377)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선가귀감(禪家龜鑑)-팔만대장경의 골수(骨髓) / 도인 81행-영아행(嬰兒行) / 참선에 요긴한 점-삼요, 무조건 ‘이뭣고?’
  5. 2014.07.09 §(455) 불방일(不放逸) / (게송)수행수시용심진~ / ‘용심(用心) 하나 참되게 한다’한 것은 불방일(不放逸) /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6. 2014.06.13 §(401) 심우송(尋牛頌) /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라-의단독로 하도록 잡드리해 가야 /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 선용기심(善用其心).
  7. 2014.04.30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
  8. 2014.03.29 §(521)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 내 안에 있는 써도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투자하자.
  9. 2014.03.26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10. 2014.03.10 §(세등68) 가행정진(加行精進)•용맹정진(勇猛精進)이 과연 무엇이냐? / 자가철주(自家鐵柱).
정진(精進) 수행2014. 9. 17. 06:53

 

 

§(760) (게송)수행막대빈모반~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잡담(雜談)하지 마라 / 정진과 소임이 둘이 아니다 / '한 생각'을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해야.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면 화두(話頭)에 대한 철저한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되어 있습니다.


잡담을 하면 자기에게도 해로울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고 제3자에게도 해를 끼치니 우리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잡담이 제일 해로운 것입니다.


수행도 정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알뜰히 정진을 하고 알뜰히 단속을 해야,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일해서 어떠한 찰나(剎那)에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자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임을 알뜰히 살면서 정말 이 정법을 믿는 사람은 화두를 들고 아침으로는 법문을 들으면서 하루 일과를 알뜰히 살아간다면, 비록 머리는 안 깎았어도 출가한 스님과 마찬가지로 정진할 수 있습니다.


**송담스님(No.760)—2013(계사년) 하안거 결제(05.24) (용760)

 

(1) 약 10분.

 

(2) 약 13분.


(1)------------------

수행막대빈모반(修行莫待鬢毛斑)하라  호리신분진소년(蒿裡新墳盡少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고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나이가 40, 50이 넘어가면 차츰차츰 흰머리가 하나씩 둘씩 생겨나는데, 수행을 머리털 흴 때 하리라 그렇게 기다리지 말라.
호리신분(蒿裡新墳)이 진소년(盡少年)이다.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 많다.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이면, 한 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언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냐!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고, 지옥에 한 번 떨어지면 팔만사천 겁(劫)을 지내도 벗어나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어떻게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할 것을 기대할 수가 있겠느냐?

사람이 생겨난 때가 없어.
비록 금생에 사람 몸 받았다하지만은 그 이전에도 우리의 생명은 몇 억만 겁 전에부터서 우리는 사람이 되었다, 업(業)에 따라서 천당(天堂)에도 가고, 축생(畜生)도 되고, 축생도 가지가지 축생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또 사람이 되고.

그런데 수백만 번을 몸을 바꿔서 태어나면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다가 금생에 다행히도 사람 몸을 받았는데,
사람 몸을 받았으나 인생이 무상(無常)함을 철저히 깨닫고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을 믿고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것은 더 말할 수 없이 다행한 일이고.

사정에 따라서 출가해서 스님이 못되었더라도 가정에 살면서 결혼해 가지고 아들딸 낳으면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불법을 믿고, 법문(法門)을 듣고 참선(參禪)을 하는 분도 많은데 그러기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말이지.

여태까지 우리가 성불(成佛)을 못한 것은 수많은 몸을 받아났으면서도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철저하게 수행을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성불을 못한 채 이렇게 중생(衆生)의 몸으로 있다 그말이야.

신심(信心)! 무엇을 믿느냐 하면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음식을 먹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슬퍼하고 기뻐하고 이러한 작용을 하는 — 작용력이 있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성(自性) 자리인데.

그 자성 자리는 부처님이나 보살님이나 우리 중생(衆生)이나 축생이나 그 자성(自性) 자리 자체는 조금도 차등이 없지만,
그러한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아서 성불을 못하면 고대로 중생으로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 것이고,

자기한테 그런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발심을 해서 비록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났지만은 철저하게 무상함을 깨닫고 정법을 믿고 수행을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그렇게 해서 신심과 분심(憤心)과 — 분심은 무슨 분심이냐?
‘왜 억만 겁(劫)토록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도 내가 깨닫지 못했던가? 무엇을 하느라고 여태까지 성불을 못했는가?’ 생각해 보면, 분심이 날 수밖에는 없어.

그래서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면 화두(話頭)에 대한 철저한 의심이 돈발(頓發)하게 되어 있습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이뭣고~?’ 화두에 대해서 그렇게 간곡히 자상하게 법문을 해주셨는데,
정말 옛날에는 녹음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행히 녹음기가 있어서 조실스님의 육성(肉聲) 법문을 녹음기를 통해서 언제라도 들을 수 있으니 그 법문을 듣고 참회(懺悔)하고 분심을 내서,
그날 하루하루를 짬지게 알뜰하게 산다면 비록 사바세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무상을 깨닫고 정진을 할 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옛날에 부처님 이후로 역대 조사(祖師)스님이 계시지만은 경전으로는 그 법문이 전해 내려오지만은 그 육성(肉聲)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녹음기라고 하는 기계를 발명을 해 가지고,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살아계신 조실스님한테 듣듯이 그 법문을 들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아침 6시부터 40분간 불교 방송국에서 저의 설교한 것이 방송이 됩니다.
그것을 들으면 내가 들어도 ‘아, 내가 저런 말을 했구나’하고 감개(感慨)가 새롭고, 아침에 늦게까지 잠자지 말고 6시에는 꼭 일어나서 법문을 들으시고, 그날 하루를 알뜰하게 정진하면서 살아가신다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박수)(처음~10분4초)

 

 

 



(2)------------------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지금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15명 대중, 인제 용화선원 49명, 광주 용화선원 13명, 용주사 중앙선원 17명, 망월사 천중선원 24명, 약사암 10명, 위봉사 위봉선원 31명, 승련사 9명, 원효사 송나선원 17명, 회룡사 선원 20명, 세등선원 18명, 복전암 22명, 전라도 끄터리 도덕사 3명 — 합해서 248명의 수좌(首座)들이 이 법당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사찰에 청신사∙청신녀, 신심(信心)있는 신도님들도 많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비록 13개 선방(禪房)으로 갈라져서 각각 그 선방에서 정진을 하고 있지만은 우리는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의 법문을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기 때문에,
비록 장소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도 같은 신심과 같은 믿는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해서 정진을 하기 때문에 비록 멀고 가까운 것에 상관없이 한 도량에서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하루하루를 정진을 하면 잡담(雜談)하고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항상 우리가 한 회상(會上)에서, 한 선방에서 같이 정진을 하고 있으면 말 한마디 잡담을 할 수도 없고, 허튼소리 할 수도 없고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항상 같이 우리가 정진하고 있다는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정진을 해서 석 달 동안, 90일 동안을 하루같이 그렇게 알뜰하게 정진을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잡담을 하면 자기에게도 해로울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고 제3자에게도 해를 끼치니 우리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잡담이 제일 해로운 것입니다.

그러니 잡담을 하지 말고 선방에서 죽비를 치고 입선(入禪)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放禪) 시간이나, 공양하고 난 뒤끝이나, 소지(掃地)를 하거나,
또 각기 소임 따라서 용상방(龍象榜)에 어제 다 방을 짰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만은 각자 자기가 맡은 소임(所任) — 선덕이나 입승이나 부전이나 공양주나 채공이나 별좌나 모든 소임은 각기 분 따라서 다른 소임을 맡았으나 그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소임을 보면서도 항상 경건하게 화두를 들면서 그 소임을 보아 나아가면 오히려 소임 보는 것이 자기의 정진에도 보탬이 되고 소임을 각자 열심히 살므로 해서 다른 스님네가 정진을 장애(障礙)없이 잘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임'이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소임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기 한 사람으로 해서 여러 대중 스님네께 수행을 해나가는데 지장(支障)을 주는 것인 만큼 소임을 예사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소임을 살면서 그 속에서 또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진! 정진과 소임이 둘이 아닌 것을 확실히 깨닫고 열심히 소임을 보면서 수행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라 하는 것은 이 사바세계 우리가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성주괴공(成住壞空), 그러한 살아가는 것이 수고로운 것인데, 진로형탈—‘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정말 이 일상생활 속이 정진을 안 한 사람은 온통 업(業)을 짓는 것이고, 진로(塵勞)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떠억 화두를 챙기고 정진을 하면 일상생활이 바로 그것이 수행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소임을 보면서도 승두(繩頭)를 꽉 잡아 — 승두가 무엇이냐 하면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사람은 ‘화두’인 것입니다.
숨을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기분이 나쁠 때도 ‘이뭣고~?’, 언짢은 말을 들어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체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놓치지 않도록 잘 잡드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다, 한바탕 정진을 해 가지고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매화는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피어야 향기가 난다는 것입니다.

수행도 정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알뜰히 정진을 하고 알뜰히 단속을 해야, 의단이 독로하고 화두가 순일해서 어떠한 찰나(剎那)에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자성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잡담이나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 3년, 10년, 30년을 선방에서 산다 하더라도 공부에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공부라 하는 것은 꼭 오랜 세월 해야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길게 무엇을 연구해 갖고 알아지는 것이 깨달음이 아니고,
알뜰하게 화두를 단속해서 화두가 순일하고 의단이 독로해야 거기에서 어떠한 찰나에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이니, 한 생각 한 생각을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富者)는 공연히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뜰히 작은 돈을 잘 함부로 쓰지 않고 모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큰 돈이 되는 것이지,
부자라 돈이 많으니까 돈을 아무렇게나 풀풀 써버릴 것같지만은 부자일수록에 더 재산을 소중히 알고 돈을 소중히 간직했다가 쓸 때 알뜰하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까지 살아왔지만은 ‘우리를 끌고다니는 나의 마음자리, 나의 주인공를 정말 얼마나 알뜰히 단속을 하면서 살아왔는가?’ 냉정히 반성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선방에서 살면 소임없이 살 수 없는 거고, 가정에서도 남편은 남편의 할 일이 있고, 아내는 아내의 할 일이 있고, 가족은 가족 나름대로 다 자기 할 일이 있고, 학생은 공부하고.
그런데 그 자기의 소임을 알뜰히 살면서 정말 이 정법을 믿는 사람은 화두를 들고, 아침으로는 법문을 들으면서 하루 일과를 알뜰히 살아간다면 비록 머리는 안 깎았어도 출가한 스님과 마찬가지로 정진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는 것보단, 머리를 안 깎았으면서도 세속에서 살림하면서도 알뜰히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심, 그러한 분심, 그러한 의심으로 금년 계사년 여름 하안거 정진을 스님네나 보살님네나 거사님이나 정말 산승이 오늘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린 말씀을 깊이 명심을 하고 정진을 잘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처음~22분3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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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참고.
[참고] 〇宏智禪師示衆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굉지(宏智)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쑥대밭 ; 쑥이 무성하게 나 있는 거친 땅.
*겁(劫) : [범]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축생(畜生) ;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나 괴로움을 받는 세계.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6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감개(感慨) : 마음속에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강하게 복받쳐 일어나는 것. 또는, 그 느낌이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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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전강선사(田岡禪師) ;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음)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셨다.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 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 12월 2일(음)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하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후학(後學)을 위한 700여 개의 육성 법문테이프를 남기셨다.
세수(世壽) 77세, 법랍(法臘) 61세.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소임(所任) :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9. 11. 08:10

 

§(551) (게송)권군심심참묘화~ / 올바른 정진을 해야 / 황벽스님 법문 / 하루씩 결제, '한 생각'씩 결제 / (게송)사자굴중무이수~ / ‘묘(妙)한 관(觀)’으로 의심.

묵언을 한다든지, 장좌불와를 한다든지, 일종이나 3년 결사, 백일 가행정진, 칠일 용맹, 다 좋지마는 그렇게 해서 육체만을 못살게 굴고 들볶는 그것이 진정 훌륭한 정진이 아니여.

 

그러한 형식 속에 들어있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화두를 잘 들고 나갔느냐’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화두(話頭)만 정말 여법(如法)하게 거각(擧却)할 줄만 알면 그 참선이란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전강 조실스님 법문을 어쨌든지 자주 듣고, 듣고 또 듣고 해서 그 화두를 ‘묘한 관’으로 그 의단(疑團)을 거각하고 잡드리 해 나가는 그 길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송담스님(No.551) - 1995년(을해년) 하안거결제 법어(95.04.15.음)(용551)

 

(1) 약 22분.

 

(2) 약 22분.


(1)------------------

 

권군심심참묘화(勸君深心參妙話)하니  난득양신가허과(難得良可虛過)리요

나무~아미타불~
무량겁래무차일(無量劫來無此日)하니  장부심지지임마(丈夫心志只恁麽)니라
나무~아미타불~

권군심심참묘화(勸君深心參妙話)하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깊은 마음으로 묘한 이 화두를 참구(參究)할지니.
난득양신가허과(難得良可虛過)리요. 얻기 어려운 이 좋은 세월을 가히 헛되이 지낼 수가 있겠는가.


무량겁래무차일(無量劫來無此日)하니, 무량겁(無量劫)으로 오면서 이와 같은 좋은 세월이 없으니,
장부심지지임마(丈夫心志只恁麽)다. 장부(丈夫)의 그 마음과 지조를 다맛 이와 같이 잡드리해 갈진저.

방금 을해년 4월 15일 삼하(三夏) 결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이 조실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결제일에 활구참선(活句參禪) 학자가 들어야 할 고구정녕(苦口叮嚀)하고,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구구절절이 간곡하고도 간절한 그런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우리는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서 생겨난 때가 없이 우리는 있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까지 몇 억만 생을 거쳐서 여기서 나 가지고 저기 가서 죽고, 저기서 나 가지고 여기 와 죽고, 수없는 몸을 바꿔 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꼭 사람으로만 태어난 것이 아니고 육도(六道)를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어.

다행히 좋은 몸뚱이를 받아 나 가지고 그 좋은 몸 받아 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인데, 이만큼 좋은 몸을 받아 가지고, 좋은 몸을 받았으되 불법(佛法)을 만나기가 어렵고, 불법을 만났으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인데,

그러한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 가운데 최상승법을 만났으니, 이러한 좋은 세월을 어찌 가히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겠느냐.
그러한 항상 만나기 어려운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법을 만났다고 하는 그러한 다행한 마음, 경행한 마음으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수행자들은 그 생각이 너무 간절(懇切)해서 ‘어떻게 하면 이 한 철을 목숨을 바쳐서 철저하게 공부할까?’ 그러한 생각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결과로서 어떤 사람은 묵언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종(一種)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백일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칠일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3년 결사(結社)를 하고, 이리하면서 있는 모든 힘을 몸과 목숨을 다 바쳐서 정진을 할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한 결과로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조사들도 다 그러한 고행(苦行), 난행(難行) 정진을 거쳐서 다 도업(道業)을 성취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산승이 그러한 도반들에게 한 말씀 은밀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다 그러한 공부할려고 애쓰는, 몸과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난행고행(難行苦行) 반드시 해야 하고,
정말 발심(發心)하고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을 일으킨 수행자라면 다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거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렇게 육체를 못살게 굴고, 용을 쓰고, 갖은 고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도업을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릇을 만드는데 그 그릇이 겉으로 보기에 멋있고 튼튼하고 아름답고 한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 그릇 속에 공간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릇을 만드는 것은—‘그릇의 그 껍데기가 왜 필요하냐’하면은 그 그릇 안에 있는 비어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 겉으로 보기에 참 아름답고 멋지게 지은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마는 그 집안에 공간이 어떻게 편리하고 편안하고, 그 안 공간이 사람에게 어떻게 잘 되어 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하죠.
겉으로 봐서 그 집이 아주 문화 주택으로 되었고, 사치스럽게 되었고, 멋지게 되었다고 해서 그 집이 좋은 것이 아닌 것이여.

아까 말한 묵언을 한다든지, 장좌불와를 한다든지, 일종이나 3년 결사, 백일 가행정진, 칠일 용맹, 다 좋지마는 그렇게 해서 육체만을 못살게 굴고 들볶는 그것이 진정 훌륭한 정진이 아니여.

그것도 대단히 하기가 어려운 일이고, 그것도 끝까지 잘 장애없이 마치기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형식 속에 들어있는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화두를 잘 들고 나갔느냐’하는 문제가 더욱 소중한 것이여.

흔히 발심한 도반들이 모여서 3년 결사 하는데, 중간에 그것이 깨져 버리기도 하고, 중간에 병이 나가지고 병원으로 떠메가기도 하고, 중도에서 그만두기도 하고, 하고 나서 평생동안 도는 이루지 못하고 병만을 얻기도 하고 그런 수도 많습니다.

그 3년 결사를 처음에 시작해 가지고 그것을 끝까지 채우기 위해서 온갖 육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참고 견디면서 3년을 채우기 그거 어렵지만은 그것이 그렇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3년 동안을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내용으로 정진을 했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여.

그래서 부득이 해서 대중이 이렇게 석 달을 지내기 위해서는 결제(結制)라고 하는 법요식을 갖고, 또 법문을 듣고, 그래 가지고 신심과 분심과 그런 것을 잘 가다듬고서 시작하는 날이 바로 이 결제날인데,

앞으로 금년 여름에 얼마만큼 작년 여름보다 더 더울런지, 덜 더울런지 그건 지내봐야 알겠지만,
그 무더운 더위 속에 서늘한 데 앉아서 선풍기 틀고, 부채질을 하면서 그렇게 지내기도 어려운데, 그 더운 날에 죽비를 치고 2시간씩, 3시간씩 정진을 한다고 하는 것은 다 해보신 분은 다 아시고, 오금쟁이, 사타구니가 땀띠로 더덩캥이가 져 가지고 쓰리고 가렵고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여름 결제를 우리는 오늘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석 달을 지낸다’하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 ‘하루! 오늘 하루 정진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 오늘 하루를 정말 알뜰하게, 여법하게, 실속 있게 그렇게 정진을 하시면 됩니다.

하루를 하되, 『하루를 24시간을 지낸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1초씩 또는 1분씩, ‘한 생각’씩을 결제를 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앉았을 때나, 걸어갈 때나, 공양을 할 때나, 이를 닦을 때나 또는 화장실에 갔을 때나, 언제 어디서 행주좌와 간에 항상 화두를 거각(擧却)을 해서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것만 잡드리 하시면 되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1시간이다, 2시간이다’하는 생각도 없는 거고, ‘하루다, 이틀이다’하는 그런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매일 하루씩 결제를 하되 해제는 없어. 해제는 없고 하루씩 딱 결제하고, 마지막에 그날 방선(放禪)을 하고 자리에 눕되 그게 해제한 것이 아니거든.
누웠을 때는 누워서 떠억 화두를 들고 누워있는 거여. 억지로 잘라고 할 것도 없고, 안 잘라고 할 것도 없고, 취침시간이 되면은 다 같이 눕되 누워서도 화두를 거각하면서, 언제 잠이 들은 줄 모르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그말이여.

아침에 3시가 되어서 일어나면서, 어제 저녁에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딱! 눈 뜨면서 들어져 있는가 그걸 점검을 해야 하거든.
화두가 안 들려져 있으면 탁! 화두를 거각을 하고, 거각을 한 채 일어나서 화장실도 가고, 세수도 하고, 이도 닦고, 예불도 하고, 그렇게 해서 하루의 결제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간다면 90일 동안의 하안거가 하루씩 결제한 것이 모인 90일간이 어느새 어떻게 간 줄 모르게 석 달이 지내가도록.
마지막 해제날은 불가불 90일 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한번 해제날 반성을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벽(黃檗) 선사는 『종일 밥을 먹되 한 알톨의 쌀도 씹은 바가 없고, 종일 걷되 한 조각 땅도 밟은 바가 없고, 이렇게 정진을 해 가면 그 사람에게는 인상(人相)도, 아상(我相)도 거기에는 있을 수가 없어.』

종일 무엇인가—아침에 일어나면은 이 닦고, 세수하고, 예불하고, 입선하고, 방선하고, 또 아침공양하고, 공양하고 나서 양치질하고, 입선시간 되면 또 입선하고, 하루 종일 새벽에 일어나서 저녁에 자리에 누울 때까지 무엇인가 하고 있는데, 그 일체사(一切事)를 여의지를 안 해.

그냥 다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주어진 일이고, 하루를 살다보면은 무엇인가 해야 하거든.
몸을 움직이거나 손을 움직이거나, 또 앉았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또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무엇인가 하는데, 정진한답시고 그걸 다 관두고, 다 여의어 버리고 살 수 없는 것이여.

무엇인가 하는데 ‘하되, 그 경계(境界)에 집착하지 말아라’ 이거거든. 그 경계에 현혹(眩惑)되지 말아라.

무엇인가 하되 집착하지 않고 현혹되지 아니하려면, 하면서 화두가 독로하도록—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단이 항상 현전(現前)하도록 거기다가 초점을 맞추는 거여.(처음~21분25초)




(2)------------------

 

처음에는 그럴려고 아무리 해도 금방 경계에 속고, 속아서 집착하고, 집착하다 보면 퍼뜩 깨우쳐서 다시 또 화두를 들고 그러기 마련인데,
중단하지 않고 신심과 분심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할려고 안 해도 그렇게 되어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생각생각이 일체상(一切相)을 보지를 말아라. 다른 사람이 웃거나 울거나, 앉았거나 섰거나, 잘하거나 못하거나, 다른 사람 시비(是非)를 가리지 말라 이거거든. 가릴 시간이 없어.
시간도 지나간 시간 지나간 일을 따질 것 없고,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시간도 따질 것이 없고,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에 대해서 그걸 붙잡고 늘어지지 말라 이거여.

여름에 더울 때는 벌써 반살림 지내면은 ‘어서 빨리 해제를 했으면! 해제를 하면 어디로 갈까?’ 그런 생각들, 겨울에는 납월 팔일(臘月八日) 용맹정진이 끝나면은 벌써 해제 다 한 거와 같이 걸망 챙기고, 벌써 해제하면 어디 갈거 생각하고, 그렇게 되는 수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 지나간 시간,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나 한 생각 한 생각을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해가되 항상 안연단좌(安然端坐)여.
태산(泰山)과 같은 묵직한 그런 마음으로 터억 앉아서 시간과 공간에 집착하지 말고, 거기에 끄달리지 말고 다못 의단만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가라.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을 해 가야지!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인(千人) 만인(萬人)이 다 참선한다고 하지만 겨우 서너 사람, 너댓 사람 밖에는 정말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사람이 그렇게 드물다』 이거여. 그렇게 황벽 스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의단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철대오한다고 하는 이 일대사 문제를 자기의 온 목숨을 거기다 걸고서, 정말 철저하게 해 나가지 아니하면 정말 천인 만인 가운데 세 사람, 네 사람 나오기가 어렵다고 한 황벽 스님의 말씀이 맞아떨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이면 그거 너도나도 참선한다고 할 것이 없지 않냐.
차라리 누구라도 할 수 있는, 한만큼 무엇인가 얻어지는 그러한 이행교(易行敎), 행하기가 쉬운 그런 공부를 차라리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선 뿐만이 아니라 염불이나 주력(呪力)이나 또는 경(經)공부도 어렵기로 말하면 똑같은 것입니다.

염불(念佛)은 그저 되나깨나 손으로 염주를 돌리면서 입으로 끊임없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만 부르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만 끊임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르기만 하면 다 목적을 이루고, 성불하고,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그것도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해야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어렵기로 말하면 똑같이 어려운 것입니다.

차라리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아까 어려운 쪽으로 얘기해서 그렇지, 정말 활구참선이야말로 천하에 간단하고, 간결하고, 묘하고도 쉬운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는 것이니까! 밥 먹을 때, 옷 입을 때, 눈으로 볼 때,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 앉았을 때, 섰을 때, 일체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그것이 1초 동안도 나를 떠나서 그런 것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여.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 어느 때 어느 장소라도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을 여의고 존재하지는 못하고 그것을 행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언제나 따라 다녀. 그림자처럼, 그림자 보다 더 가깝게 따라 다녀.
차라리 그림자는 해가 없고, 불빛이 없으면 그림자는 없어진 때가 있지만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은 눈을 떴을 때나 감을 때나, 심지어 잠을 자고 꿈을 꿀 때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일체처에 일체시에 언제나 같이 있는 놈이거든.

그러기 때문에 찾는 방법만 옳게 알고, 화두(話頭)만 정말 여법(如法)하게 거각(擧却)할 줄만 알면 그 참선이란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초학자(初學者)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규제도 엄격하고, 선원마다 다 청규(淸規)가 있어서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통제를 하고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그건 여러 사람이 모여서 다 같이 공부하는데 그만한 규칙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규칙을 만들기는 했으되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그것을 잘 지켜나가면 되는 것이여.

하나씩 하나씩 따지면 별것도 아니고, 다만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하다 보면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그런 것들이죠.
세속의 무슨 법률도 자발적으로 자기가 자진해서 잘 지키면 그거 별로 그렇게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경찰이나 형사나 형무소 있다고 해도 그까짓 것 하나도 겁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선방에 청규나 규칙도 발심해서 여법하게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다 저절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 정진만 올바르게 하면 신경을 쓰지 안 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여.
정진을 안 하고 딴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방일(放逸)하고, 해태(懈怠)하는 가운데에서 그런 규칙에 어긋나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고, 선원의 규칙을 어지럽히고, 다른 사람 공부에 방해를 끼치고 자기도 도를 제대로 닦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자굴중무이수(獅子窟中無異獸)하고  상왕행처절호종(象王行處絶狐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하야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여. 사자굴 속에는 다른 짐승이 들어가서 살 수가 없어. 사자굴 가운데에는 크나 작으나 사자들이 살 수 밖에는 없는 거여.
상왕행처(象王行處)에 절호종(絶狐蹤)이다. 코끼리들이 가는 곳에는 여우 같은 그런 짐승의 발자취가 끊어진 것이다.

사자굴 속에는 다른 짐승이 있을 수 없고, 코끼리가 가는 곳에는 코끼리가 따르는 것이지, 여우 새끼 같은 것이 그런 속에는 있을 수가 없다.

갱파일지무공적(更把一枝無孔笛)하야, 다시 한 가지 ‘구멍 없는 젓대(無孔笛)’를 가지고,
등한취출만년환(等閑吹出萬年歡)이다. 등한히 만년환(萬年歡)에 무상곡(無上曲)을 부릅시다 이거거든.

이 자리에 모이신 선배·후배 도반 여러분, 남녀노소 도반 여러분. 우리는 금생에 한 시대에 한 나라에 태어난 깊은 인연을 가진 인연입니다.
더군다나 다 같이 불법을 만났고 최상승 문중에서 우리는 도반의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자굴(獅子窟) 속에서 만난 우리들은 사자의 종자(種子)들이고, 코끼리의 행처(行處)에서 만나는 코끼리의 후손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방에는 결제날 용상방(龍象榜)에다 우리들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하늘을 날으는 짐승 가운데에는 용이 최고고, 육지에서 사는 짐승 가운데는 코끼리가 최고이기 때문에 발심해서 도를 닦는 수행자들을 용상대덕(龍象大德)이라 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황벽 스님의 법문처럼 그렇게 정진을 해 나가면 대자재인(大自在人)이 되고, 대해탈자(大解脫者)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5월이 되고, 6월이 돌아오면 또 삼복성염(三伏盛炎)을 맞게 됩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덥지 아니하니 열심히 정진들 하시고, 그렇게 더운 여름이 돌아오더라도 지혜롭게 건강관리를 하시고,
육체를 들볶기보다는 그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용을 쓰지 아니하면서도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거각하는 묘(妙)한 관(觀)을 스스로 터득을 하셔야 합니다.

초학자는 발심을 해 가지고 정진을 좀 정말 알뜰히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다 하면은 용을 쓰기 시작해. 그러고 육체를 들볶어.
육체를 들볶고, 정신적으로 용을 쓰는 것은 까딱하면 상기병(上氣病)이나 그 밖에 정진에 장애되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우려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월하게 그럭저럭 지내라는 말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 법문을 어쨌든지 자주 듣고, 듣고 또 듣고 해서 그 화두를 ‘묘한 관’으로 그 의단(疑團)을 거각하고 잡드리 해 나가는 그 길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단정히 앉아서 올바른 호흡법을 하면서 화두를 올바르게 거각을 해 나가면,
상기병도 안 생기고, 소화불량 같은 그런 병도 생기지 않고, 큰 부작용 일으키지 아니하면서도 알뜰하게 정진하는 길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상한 공부해 나가는 법은 아까 조실스님 법문을 통해서 우리가 다 같이 들었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간단히 이것으로써 여러 도반들에게 대한 말씀을 끝내겠습니다.

보살선방에 방부를 들인 분, 또 시민선방에 방부를 들인 분들도 열심히 정진하시고,
출퇴근하는 그런 신도님네들도 집안 일이 바쁜데 어렵게 시간을 쪼개서, 그 더웁고 송곳 꽂을 틈도 없는 전철을 타고 여기 와서 불과 한두 시간, 서너 시간 그렇게 정진하다 가고,
대단히 참 어려운데도 이렇게 방부를 들이고 정진하러 다니신 그 뜻이 대단히 갸륵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와서 선방에 앉은 시간만이 정진이 아니고, 집에서 일하면서, 또 전철까지 오는 시간, 전철을 타고 오는 시간, 전철에서 내려서 오는 시간도 그것도 역시 입선(入禪) 시간이라 생각하고 오며 가며 열심히 하면,
수마(睡魔)에 시달리지 아니해서 오히려 석 달 동안을 줄곧 선방에만 앉아 계신 분보다도 더 짬진 정진을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위안과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부탁하고, 가정에서 계신 분들도 형편상 선방에 나오시지는 못하더라도 가정에서 일하면서, 거기서 조실스님 법문 틀어놓고 들으면서 앉아서나, 서서나, 일하면서도 생각생각이 잡드리해서 정진하신다면 그것도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시다가 기회가 주어지면 오셔서 또 정진하시면 되는 것이니까 모두가 비구 스님네나, 비구니 스님네나, 청신사나, 청신녀나, 다 각자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가 다 같이 이 자리에서 결제를 했으니,
비록 용주사나 위봉사나 세등선원이나 회룡사나 또는 어디서 석 달 동안을 지내시더라도 우리가 함께 이 자리에서 결제를 했기 때문에 한 회중(會中)입니다.
한 회중에 같은 대중이기 때문에 그러면서 우리는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처음~42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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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권군심심참묘화~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下) ‘送寧宏二禪師歸山-산으로 돌아가는 영(寧)·굉(宏) 두 선사를 보내며’ 참고.
[참고] [태고집(太古集)] (설서雪栖 編,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19.
'送寧宏二禪師歸山'
君不見  悉達多之碧山行  警汝呼吸棄人生
勸君深心叅妙話  難得良晨可虛過  無量劫來無此日  丈夫心志只恁麽

'산으로 돌아가는 영(寧)·굉(宏) 두 선사를 보내며'
그대들은 실달다(悉達多)가 푸른 산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잠깐인 인생을 버리라고 그대들을 일깨우신 것이다
그대들에게 권하나니, 깊은 마음으로 묘한 화두 참구하라얻기 어려운 좋은 때를 어찌 허송하겠는가. 한량없는 세월에 이 날이 또 없나니대장부의 마음은 그저 이러해야 하네.
*화두(話頭) : 공안(公案)·고측(古則)이라고도 함.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장부(丈夫) ; 참선하는 수행자.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삼하(三夏) ; 여름의 석 달.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결사(結社)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관심에 따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합한 집단.
불교의 경우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진할 것을 위해 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 할 때 결사(結社)를 함.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난행고행(難行苦行)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 단번에 내는 센 힘.
*더덩캥이 ; 더뎅이(부스럼 딱지나 때 따위가 거듭 붙어서 된 조각).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황벽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황벽(黃檗) 선사의 법문 ; [참고] 황벽 스님의 [전심법요(傳心法要)]에서.
問, 如何得不落階級.
師云, 但終日喫飯, 未曾咬著一粒米.  終日行, 未曾踏著一片地.
與麼時, 無人我等相, 終日不離一切事, 不被諸境惑, 方名自在人.
更時時念念不見一切相, 莫認前後三際.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安然端坐, 任運不拘, 方名解脫.  努力努力.
此門中千人萬人, 祇得三箇五箇.  若不將爲事, 受殃有日在.
故云, 著力今生須了却, 誰能累劫受餘殃.

“어떻게 하여야 수행의 등급(階級)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다맛 하루 종일 밥을 먹되 한 톨의 쌀알도 씹은 바가 없고, 하루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은 바가 없다.
이러한 때에 아상(我相)·인상(人相)등의 견해(相)는 없고, 하루 종일 모든 일을 하면서도 그 경계에 현혹(眩惑)되지 않아야 비로소 ‘자재한 사람(自在人)’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는 때마다 생각 생각에 일체상(一切相)을 보지 말고, 앞뒤의 삼제(三際 과거·현재·미래)를 인정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편안하고 단정하게 앉아 주어진 상황에 되는 대로 맡겨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解脫)’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고 노력하라.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인(千人)·만인(萬人)이 있지만 겨우 서너, 너댓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는다. 만약 이 도 닦는 일을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금생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오랜 세월(累劫) 남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현혹(眩惑 아찔할·어두울 현,미혹할·어두워질 혹) ; 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 또는 그렇게 되게 함.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2)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께서 성도(成道)한 날을 말함.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단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게송) ‘獅子窟中無異獸 象王行處絶狐蹤’ ; [전등록] 권16 ‘예주(澧州) 악보산(樂普山) 원안(元安) 선사’ 참고.
*(게송) ‘更把一枝無孔笛 等閑吹出萬年歡’ ; [증집속전등록(增集續傳燈錄)] 제4권 ‘천의업해요청(天衣業海了淸) 선사’ 참고.
*구멍 없는 젓대 ; 무공적(無孔笛). ①무저선(無底船)·몰저선(沒底船)·무영수(無影樹)·몰현금(沒絃琴)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만년환(萬年歡) ; 만년(萬年)의 즐거움.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회중(會中) ; 설법의 자리에 모인 사람들. 수행자의 집단.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8. 23. 17:05

 

 

§(768)(게송)화불능소수불익~ / (게송)거심진속윤회업~ / 쇳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가슴속에 / 우리는 도반(道伴)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쇳덩어리를 삼켜 가지고, 가슴속에 얹혀서 내려가지도 않고, 녹지도 않고, 소화도 안되고 그런 것처럼,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가 — 항상 화두에 대한 의심이 가슴속에 있게 하면은 그것이 바로 그런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도반들은 명예나 재산이나 권리, 그런 것을 위해서 맺어진 인연이 아니고,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그러기 위해서 같이 가는 도반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768) - 2014(갑오년) 하안거결제(05.13) (용768)

 

(1) 약 19분.

 

(2) 약 6분.


(1)------------------

화불능소수불익(火不能燒水不溺)이요  풍불능표도불벽(風不能飄刀不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연사도라경사철(軟似兜羅硬似鐵)하고  천상인간불능식(天上人間不能識)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화불능소수불익(火不能燒水不溺)이요,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는다.
풍불능표도불벽(風不能飄刀不劈)이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칼로 쳐도 잘라지지 않는다.

연사도라경사철(軟似兜羅硬似鐵)이요, 부드럽기로 말하면은 도라솜과 같이, 굳기로 말하면은 쇳덩어리와 같다.
천상인간(天上人間)에 불능식(不能識)이요. 하늘 위나 인간 세상에서 대관절 그런 것이 무엇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는 그런 것이 어디가 있어?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다 흔들리는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칼로 치면 천하 없이 다 잘리는데  이것은 칼로 쳐도 뽀개지질 않는다.

부드럽기로 말하면 도라(兜羅)솜 — 도라솜은 부드러운 명주솜인데 — 부드럽기로 말하면 명주솜 같이 부드러운데, 굳기로 말하면 쇳덩어리보다도 더 강하다. 그런 것이 어디가 있어?

그런데 고인(古人)네는 — 부처님께서는, 역대 조사들은 이런 물건이 우리 모든 사람한테 낱낱이 다 가지고 있다고 설파(說破)를 하셨습니다.
그러한 우주간에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보물을 우리는 이 몸뚱이 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몸은 부모님으로 인해서 태어났는데 그 물건은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해서 들어왔는지 그것은 밝히기가 어려우나 부모님으로부터 이 육체를 받아남으로부터서 그러한 우주간의 대보물을 우리는 가지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금생에 일생 동안을 어떻게 살던지 살다가 인연이 다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떠나게 되더라도 그때 화장(火葬)을 해도 이것은 타지를 않고, 땅에다 묻어도 땅 속에도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인연 따라서 또 새로운 몸을 받아나게 될 것입니다.
지은 바에 따라서 천상에 가서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간에 태어날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업을 많이 지었으면 축생이 되기도 하고, 아주 못된 짓을 많이 했으면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중한 보물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는 그것만 해도 우리는 부모님께 감사하고, 우주 법계에 모든 것에 대해서 엄숙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은 그 은혜를 보답할 수 있을까?

거심진속윤회업(擧心盡屬輪廻業)이요  동념무비생사근(動念無非生死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요여태허무향배(要與太虛無向背)거든  상탄일개철혼륜(常呑一箇鐵渾侖)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거심진속윤회업(擧心盡屬輪廻業)이요. 마음을 일으키면 다 그것이 윤회의 업(業)에 소속이 되는 것이고.
동념무비생사근(動念無非生死根)이다. 생각을 움직거리면 생사의 근원이 아닌 것이 없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벌써 그것을 보며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말이야.
마음이 일어났다 하면은 그 마음이 일어난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윤회의 업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고, 슬픈 생각, 기쁜 생각, 좋은 생각, 나쁜 생각 무슨 생각이 되었건 생각이 움직였다 하면은 생사의 근원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살아서 모든 것을 보고, 귀로 듣고, 생각으로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생사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빠지지 않을 방법이 무엇인가?

항상 쇳덩어리를 삼켜 가지고, 가슴속에 얹혀 가지고 내려가지도 않고, 녹지도 않고, 소화도 안되고 그런 것처럼,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가 — 항상 화두에 대한 의심이 가슴속에 있게 하면은 그것이 바로 그런 생사윤회로부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철학적으로 연구하고, 종교적으로 연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 활구참선(活句參禪)! — ‘이뭣고~?’ 화두를 한 분은  ‘이뭣고~?’.
‘무(無)’자 화두를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무~?’ ‘어째서 무~?’.
자기의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만 단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날이 차츰 더워지면 죽비(竹篦) 치고 입선하고 앉으며는 등허리에 땀이 줄줄 흐르고,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고 허리를 쭉 펴고 화두를 든다고 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앞으로 숙으러지면서 혼침(昏沈)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더라도 다시 또 정신을 차려서  ‘이뭣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만을 단속해 나가야 하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뭣고~?’. ‘무’자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간절(懇切)하고도 알뜰한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결제를 하면 방(榜)을 짜는데 — 조실, 선감, 선덕, 입승 이렇게 해서 공양주, 채공, 별좌까지 주루룩 각기 소임을 맡게 되는데,

입승(入繩)이란 소임은 입선(入禪)에 죽비 치고, 방선(放禪) 죽비를 치고 하는 그런 소임인데, 입승 스님이 자기도 앉아서 죽비만 치고서 딱 정진하기 마련인데,
날씨가 더웁고 여기서 저기서 꾸벅꾸벅 졸고, 뭣한 사람은 앞으로 숙여가지고 코가 방바닥에 대놓고도 일어날 줄을 모르고 그렇게까지 잠이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입승 스님은 가끔 조용히 죽비를 들고 일어서서, 한 바퀴 빙 돌면서 너무 졸음이 와가지고 정신을 못차리고 꼬부라져 갖고 있는 사람은 죽비로 등허리를 탁탁 조용하니 해가지고 일깨워 주는 그런 자비를 갖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량겁(無量)으로부터 오면서 금생에 이런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이렇게 활구참선을 하게 되었으니 —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 노소남녀 할 것 없이 정말 좋은 도반이고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정말 서로 마음으로 아끼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궁극의 목적지까지 같이 가야 할 좋은 도반(道伴)인 것입니다.

우리 도반들은 명예나 재산이나 권리, 그런 것을 위해서 맺어진 인연이 아니고,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그러기 위해서 같이 가는 도반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도반들과 석 달 동안을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정진하는 그러한 금년 갑오년 여름의 인연을 갖게 된 것입니다.

쇳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알 수 없는 의심 뭉텅이가 가슴속에 있어서, 그 의심에 대한 철저한 의단이 독로한다면,
저절로 혼침에서 오랫동안 거기에 묶여 있지를 않고 퍼뜩 정신을 차려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의단을 들고, 화두가 성성하도록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합니다.

결제 중에 모다 소임을 맡게 되는데 자기 소임을 충실히 완수하면서 그러면서 자기 정진을 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임 본다고 자기 정진에 추호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거고, 또 자기로 인해서 대중에게 지장을 주거나 불편을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방선 시간이라하더라도, 물론 화장실에도 가고 포행(布行)도 하게 되겠지만은 잡담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편의상 입선·방선이 있지,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하고 그러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금년 갑오년 하안거가 그동안에 지내온 여러 철과 앞으로 다가올 결제·안거 가운데에서도,
금년 갑오년 여름이야말로 정말 알차고 좋은 기억에 남을만한 — 정말 그때 좋은 도반들과 정말 알뜰하게 정진했다고 하는 기억이 남도록 그런 한 철이 되기를 여러분께 부탁을 합니다.(처음~18분26초)

 

 



(2)------------------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데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생사, 진로(塵勞)를 벗어 버리는 일이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여.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화두를 긴(緊)히 잡고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데, 겨울에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는 그런 추위를 겪어야,
매화꽃 향기가 진동할 것이다 그말이여.(爭得梅花撲鼻香)
겨울 날씨가 미적지근 해가지고 강추위를 않으면 매화가 피어도 향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진도 그와 마찬가지여서, 정말 알뜰히 잡드리하고 단속을 해서 정진을 해야 반드시 의단을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성(自性)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금년 갑오년 하안거에 용화사 법보선원은 16명, 인제 용화선원은 41명, 광주 용화선원은 11명, 용주사 중앙선원은 18명, 망월사 천중선원은 28명, 약사암은 11명, 용화사 시민선방은 300명 가량 됩니다.
위봉사 위봉선원은 26명, 승련사 선원은 18명, 원효사 송라선원은 16명, 회룡사 선원은 15명, 세등선원은 13명, 복전암 복전선원은 18명, 이렇게 해서 531명이 하안거에 방부를 드리고 같이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각 선원 이름을 낱낱이 부르고, 방부(房付) 드린 대중 인원을  말한 것은,
정말 만나기 어려운 금년 갑오년 한 철이 정말 그럭저럭 허술하게 지내지 말자고 하는 뜻으로 방부를 드린 여러 도반들과 정말 깊은 약속을 하고 싶어서 한 것입니다.

산승의 말씀을 동감을 하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하겠다고 하는 결심을 가진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박수)(처음~24분17초)(끝)

 

 


------------------(1)

*(게송) ‘화불능소수불익~’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게송) ‘거심진속윤회업~’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三十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2)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의단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7. 18. 18:18

 

 

§(377)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선가귀감(禪家龜鑑)-팔만대장경의 골수(骨髓) / 도인 81행-영아행(嬰兒行) / 참선에 요긴한 점-삼요, 무조건 ‘이뭣고?’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지마는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느니라.


참선이란 것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 끊어져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 해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그 의단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허는 것이 참선이지, 그러헌 그 선(禪)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서 해석허고 잘 안다고 해서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가귀감이라는 이 책은 그러헌 책과는 다릅니다. 어쨌든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신심이 일어나고 분심이 일어나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77) - 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89.2.5)에서. (용377)

 

(1) 약 21분.

 

(2) 약 22분.


(1)------------------

삼라만상동귀환(森羅萬像同歸幻)한디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라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라만상(森羅萬像)이 동귀환(同歸幻)이다.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환(幻)으로 모두 다 똑같이 환(幻)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결국은 한줌의 흙이 되고 나중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은 어디로 갔는지 볼 수가 없고,
집도 오래되면 허물어져 버리고, 나무도 오래되면은 죽어서 없어져 버리고,

저 태양도 오래오래 저렇게 발광을 하고 있을 것 같지마는 일초 일초 열이 식어가고 있고 모양이 변해가서 언젠가는 저 태양과 달과 모든 별들도 결국은 다 부서져서 없어져 버릴 때가 오는 거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일초 일초 쉼 없이 모양이 변해 가지고 결국은 언젠가는 이것이 없어져 버릴 때가 오는 것이여.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저 새가 저 긴 하늘을 날아가매 날아간 자취가 없어.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듯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생겨났다 없어진 자취도 또한 찾을 길이 없더라.

그러면 모든 것이 생겨났다 없어져 버리면 결국은 허공으로 돌아가 버리고, 자취가 없으니까 허공으로 돌아가 버리는데,
그러면 그 허공이라는 것이 과연 이 몸뚱이, 나 자신을 거기다가 감출만 하냐?(虛空不是藏身處)
그 허공이라는 곳에 이 몸뚱이와 우리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을 거기다가 떠억 안신(安身)헐 만한 곳이 못 되더라 그말이여.

그러면 어디다가 우리의 이 몸뚱이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놈을 어디다가 갖다가 붙일 것인가?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다. 저 바람 앞에 비에 흔들리는 저 소나무, 그놈을 똑바로 들어라.
바람이 불며 비가 그 소나무에 뿌릴 때, 비 뿌리는 가운데에 바람이 소나무에 지나갈 때, 소나무에 그 솔바람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솔바람 부는 거기를 똑바로 보고 알아차려라 이거거든.

오늘, 무진년이 마지막 끝나는 섣달 스무 아흐레 그믐날입니다.
그리고 양력으로는 2월 5일 첫째 일요법회 날인데, 어제는 입춘법회가 있었습니다마는, 오늘 또 이 무진년 마지막 끝나는 날이 하필 또 일요법회와 이렇게 맞섰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퍽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그러헌 해였습니다.
세계가 그렇고 나라가 그렇고, 그러헌 커다란 대해에 파도가 치는 속에 우리는 낱낱이 조그마한 조각배를 그 파도 속에 띄우면서 용케도 엎어지지 아니하고 이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 드시고 억센 파도 속에 그놈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그 파도에 덮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어 버리는 그러헌 나라도 있고, 그러헌 회사도 있고, 또 그러헌 사람도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용케도 그 억센 파도를 잘 견디고 극복해서 다시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우리는 부처님의 따스한 자비의 가피(加被)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에, 무한히 부처님께 감사헌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해서 한 해가 저물었으니, 지난 1년 동안에 있었던 모든 몸 아프고 마음 아팠던 그리고 괴롭고 쓰리던 모든 일들, 원망스럽고 미웠던 일들, 다 깨끗이 자취없이 사라져 가는 한 해와 더불어 그런 언짢은 생각, 언짢은 일들도 함께 다 흘려보내 버리는 것이 참 좋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릇 속에 담겨 있었던 좋지 못한 음식, 변질된 음식, 독한 음식, 먹을 수 없는 음식들, 그런 것은 깨끗이 비워버리고 깨끗이 씻어서 아주 더운물에 끓여서 그래서 그릇을 비워놔야 거기에 다른 음식을 담을 수가 있듯이,
지난 1년 동안에 우리의 주변에 일어났던 일, 또 우리 일신상에 일어났던 일, 우리의 마음속에 스쳐간 모든 일들을 깨끗이 다 버려버리고, 허공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허고서 새해 첫날을 맞이해야 또 새해는 싱그럽고 희망찬 한 해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지마는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하시고 절절한 그런 법문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돌아올 때 새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분 1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초 1초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참 축복 받을 만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최웅식 동자(童子)가 오늘 백일(百日)을 맞이하는 날로, 그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하는 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골수가 똘똘 뭉쳐서 수록되어 있는,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저술하시고, 우리 용화사에서 84년도에 번역을 해서 간행한 이래로 이번까지 16판을 간행을 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은 바로 팔만대장경이 바로 이 한 권 속에 축약(縮約)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헌 경을 여러분께 법공양(法供養)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동자가 새로 태어난, 정말 어느 집에 어느 아들이라도 새로 태어났을 때에는 집안 식구뿐만이 아니라 온 이웃사람 일가친척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들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왜 새로 태어난 동자와 어린 애기를 축복하느냐’하면은,
원래 생(生)과 사(死)가 없는 것이고 또 생과 사가 둘이 아닌 것이지만, 생(生)하고 또 한평생을 살다가 인연 따라서 다시 또 몸을 바꾸고 허는 이러헌 일들이,
낱낱이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우주의 진리 체(體)인 진여불성이 있기 때문에 그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는 증거로서 새로운 생을 받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애기가 태어난 것은 바로 한 부처님이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은 바로 그것이 죽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생(生)은 바로 고통이다,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 이외에 뭣이 있느냐?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마는,

진리를 깨달은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도 진리요, 늙음도 진리요, 앓는 것도 진리요, 이승을 하직하는 죽음도 진리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마치 봄에 잎이 피고 꽃이 피며,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춘하추동 사시(四時)가 있듯이, 인생에는 생로병사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이런 것이 전부가 다 진리 체의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갓난애기가 태어나는 것은 온 우주법계로부터서 축복을 받고, 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저 하늘나라의 선신(善神)들도 축복을 하고, 저 축생이나 미물(微物)까지라도 축복을 허는 것입니다.
개나 호랭이 같은 그러한 축생도 갓난애기는 절대로 해롭게 허지 않습니다.
어른은 보고 왕왕 짓고 물려고 허면서도 갓난애기는 보고 그렇게 저런 개들도 사랑을 하고, 사람이나 돼지를 막 잡아먹는 호랭이도 갓난애기는 그렇게 애끼고 사랑허는 뜻을 표하는 것입니다.

갓난애기는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청정무구(淸淨無垢)해서 쪼끔도 물들지를 안 해서, 그래서 그 갓난애기의 마음가짐은 바로 도인(道人)의 경지와 거의 흡사하는 것입니다.

도인의 여러 가지 그 도인의 행에, 도행(道行)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좋고 궂은 행위가 다 포함 될 수가 있습니다.
광행(狂行)-미친 행도 있고, 승행(僧行)도 있고, 속행(俗行)도 있고, 남자행, 여자행, 심지어 화엄경에는 창녀-53선지식 속에는 창녀도 있습니다, 마을의 장자(長者)도 있고.

그 창녀(娼女)라 하면은 세속에 빈축을 받는 상대지마는 53선지식속에 창녀가 있다 그말이여.
그 창녀는, 사람이 그 창녀 얼굴만 봐도 마음이 맑아지고, 그 창녀의 손만 한번 잡아도 업장(業障)이 소멸허고, 그 창녀하고 한 번 잠만 자도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허는 그러헌 창녀도 있다 그말이여.

그런 81행 가운데에 어떠헌 행(行)을 최고로 치느냐 허면,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치거든.

갓난애기,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갓난애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다못 배고프면 울 줄만 알고, 뜨거워도 울 줄 알고, 너무 추워도 울고, 또 목이 말라도 울고, 다쳐서 아퍼도 울고.

어린 아기의 언어(言語)는 우는 것이 언어여. 어린 아기 우는 것은 그것이 바로 언어이면서 그것이 바로 설법이요, 그것이 바로 예술이고, 그것이 바로 진리다 그말이여. 왜 그러냐?
어린 아이에는 아무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없거든. 완전히 깨끗하고 순수무잡해서 거의 무심(無心) 경계에 들어가는 도인(道人)의 심경(心境)과 같더라.

그래서 그 어린 아이는 우리 집 애기가 아니고, 남의 집 애기라도 애기가 났다고 하면 모두가 다 축복을 하거든.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천국에도 간다’고 하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까닭이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한 동자의 백일을 맞이해서 오늘 이 선가귀감을 공양(供養)을 올리니까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이 책을 받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손에 드신 분은 세세생생에 삼계(三界)에 떨어지지 아니하실 것이고 언제나 부처님 불법 문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허면은 이 한 권 속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역대 조사(祖師)가 깨달은 경지에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法門)의 골수(骨髓)가 이 속에 다 포함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선가귀감 속에서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데 대단히 요긴한 점 몇 군데를 설해 드리겠습니다.

참선(參禪)은 모름지기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할 것이니, 첫째는 대신근(大信根)이요, 둘째는 대분지(大憤志)요, 셋째는 대의정(大疑情)이니라.
만약 그 한 가지만 궐(闕)하드라도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마침내 폐기(癈器)를 이룰 것이다.(처음~20분34초)

 

 

 



(2)------------------

참선을 해 나가는 데는 대신근(大信根), 큰 신심이 있어야 돼. 무슨 신심(信心)이냐?
‘나도 바로 부처다.’ 중생이 바로 부처고, 번뇌(煩惱)가 바로 보리(菩提)요, 생사(生死)가 바로 열반(涅槃)이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고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바로 부처다.’ 나라고 하는 놈을 내놓고는 부처를 찾을 수가 없다.
부처는 반드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 그놈을 갖다가 철견(徹見)함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무슨 경전 속에 문자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여.
앉으나 서나 누우나, 일을 허나 밥을 먹으나, 번뇌·망상이 일어나거나, 진심(瞋心)을 내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의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卽)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 그 신념이 여지없이 꽉 박혀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대분심(大憤心). 무슨 분심이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현과 모든 도인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중생의 탈을 쓰고서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어찌 이래 가지고 잠을 편안히 자며, 편안히 밥을 먹으며, 무슨 한담(閑談)으로써 세월을 보내며,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그럭저럭 이 아까운 목숨을 보낼 것인가?
아~! 속에서부터 넘쳐흐르는 그 대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입니다.
좋은 줄 알면서도 분심이 없으면 일체 것을 다 털어 버리고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이 몸과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가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셋째, 대의정(大疑情)이 있어야 하느니라. 무슨 의정(疑情)인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이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생사를 거듭허면서 오늘날까지 왔으며, 어떤 분은 진즉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고 어떤 중생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고 있느냐?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기에.. ‘이 무엇이여?’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이, 지어서 ‘이뭣고?’ ‘이뭣고?’하는 게 아니라, 저 속에서부터 자동으로 의심이 나와서 항상 눈을 뜨나 감으나 눈앞에 환히 현전(現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심(大疑心). 이것은 셋이 동시에, 3가지의 이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야 해.
신심만 있고 분심이 없다든지, 분심만 있고 의심이 없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의심과 분심과 신심이 이 3가지가 항상 함께 일어나면 화두를 일부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잘 안 들립니다.” “자꾸 들면 그냥 이뭣고 뿐이지 정말 간절(懇切)한 의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허면 간절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이러헌 하소연을 하신 분을 간혹 만납니다.
그건 다름이 아닙니다. 신심과 분심과 의심이 한목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주작(做作)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아야지, 그냥 의식적으로 일부러 들면 그때 잠깐 있다가, 들지 아니하면 그냥 달아나 버리고, 이것은 삼요(三要)를 동시에 갖추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용(日用)에 인연을 응(應)하는 곳.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고, 냄새 맡고, 맛보고,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이러헌 일상생활 허는 곳에서 ‘이뭣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타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하신 분은 ‘이뭣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앞도 생각하지 말고, 뒤도 생각허지 말고, 잘되고 못되고 헌 것도 따지지 말고, 다못 그렇게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고 그렇게 화두를 들어오고 들어가란 말이여.
그렇게 애써서 들다보면, 이치 길이 딱 끊어져버려. 뜻 길이 딱 끊어져버려. 그래가지고 아무 자미(滋味)가 없어져버려.

그래 가지고 심두(心頭)가 열민(熱悶)해. 마음이 열민해. 다맛 가슴이 답답할 뿐이라 그말이여.
이것을 공부가 잘된다고 할 수도 없고, 못된다고 할 수도 없고, 도대체가 앞뒷이 딱 끊어져버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기만하다 그말이여. 바로 그때가, 당인(當人)이 몸과 목숨을 갖다가 내던질 곳이여.

가슴이 답답허면 그 답답한 것을 이기지 못해 가지고 ‘어이구, 이거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이런 것인가? 이러다가 이거 내가 상기증(上氣症)이 생길라고 이런 것인가? 이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할까?’
이것이 무슨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잘못될라고 이런 것이 아니여. 그런 의심을 하지 말어.

알 수가 없어.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지고, 일체 그 동안에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아무 재미도 없어. 그러는 가운데 가슴만 답답…. 바로 그 경계가 몸과 마음을 갖다 내던져 놔버릴 곳이여.
이것이 바로 성불(成佛)하고 조사(祖師)가 될 수 있는 기본이여, 그것이.

이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이 일은 마치 모기가 쇠로 된-쇠로 지어 붓어서 만든 소, 소 등어리를 향해서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불문(不問)하고, 몸뚱이 채, 입부리를 갖다가 소 등어리를 향해서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소 등어리에 앉어 가지고, 입부리를 거기다가 들어간가 안 들어간가 이렇게 박어 보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 채 압량해서 아주 그냥 그 소 등어리로 아주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마치 수영선수가 높은 데에서 물을 향해서 다이빙을 허듯이 그렇게 소 등어리... ‘쇠로 맨들었나 말았나, 쇠로 되았으니 안 들어갈 것이다’ 그러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야.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몸뚱이 채 뚫고 들어가. 그래 가지고 이 몸과 목숨을 갖다가 탁! 거기다 갖다가 내던지면서 뚫고 들어갈 때 바로 그 몸뚱이 압량해서 소 속으로 풍 들어가는 거라.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산중으로 검술을 배우러 들어갔어. 그 산중에 정말 아주 검술을 통달한 큰 도사가 있단 말을 듣고, 어렵게 어렵게 찾아가서 간신히 그 분을 만났어.
만났는데, “검술을 배우러 왔습니다.” “니까짓 놈이 무슨 검술을 배워?”
“그래도 내가, 선생님이 정말 검술에 통달한 도사란 것을 나는 알고 왔습니다. 절대로 선생님이 아무리 가라고해도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죽어도 안 가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장작이나 패라.”

날마다 나무를 비어다가 하루에 아주 수십 짐씩 장작을 팼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열흘, 한 달, 두 달… 한 삼 년을 두고 장작을 팼어.
처음에는 헛 찍기도 하고 잘 못했지만, 한 3년을 하니까 아무리 큰 나무도 한번 탁! 치면 쩍쩍 갈라졌습니다. 아무리 질긴 뿌럭지 끌통도 그 어디를 찍으면은 이 장작이 쩍 갈라진다고 허는 것을 다 터득을 했습니다.

소나무가 되았건, 참나무가 되었건, 귀목나무가 되았건, 아주 장작 패는데 아주 도가 텄습니다.
하루는 장작을 패기 위해서 저 도끼를 쳐들고 탁! 찍을라고 할 때에, 그 선생이 살짝 뒤에서 숨어 서있다가 냉큼 그 장작 위에다가 크만한 돌멩이를 갖다가 척 놨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일심(一心)으로 그 도끼를 갖다가 내리쳤는데, 탁! 깨진데 보니까, 장작이 아니라 차돌멩이가 쩍 갈라졌다 그말이여. 깜짝 놀래 가지고,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서로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다른 돌멩이를 하나 놓고 다시 쪼개봤습니다. 도끼날만 뭉그러졌지 돌멩이가 쪼개지질 않았습니다. 몇 번을 해봐도 돌멩이가 쪼개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왜 선생님이 턱! 갖다 놓은 돌멩이는 쩍 갈라졌는데, 자기가 그 돌멩이를 쪼갤라고 하니까 안 쪼개졌겠습니까? 처음에 내리칠 때에는 그것이 돌멩이라고 하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못, ‘안 뽀개질 것이다. 쪼개질 것이다’, ‘쪼개진가, 안 뽀개진가 한번 해보자’ 그러헌 망상(妄想), 그러헌 사량심(思量心)이 전혀 붙어있질 않았습니다.

다만 내리치는 자신이나 내리치는 도끼나 거기에 놓여지는 돌이나, 그 삼자가 하나가 되았어. 그것을 무심(無心)이라 그래.
무심 속에서 갖다 내려치니까 돌멩이 아니라 쇳덩어리를 놨어도 쩍 갈라졌을 것이다 그말이여.

두 번째 세 번째 시험 삼아서 헐 때에는 벌써 이것이 돌멩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마음속에 먹고 있었고,
‘돌멩인데 또 한번 쪼개진가 한번 해보자’허는 그런 번뇌심(煩惱心)이 발동을 했기 때문에 몇 번을 찍어도 쪼개지질 않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활을 가지고 사냥을 나갔는데, 그 사람도 활 공부를 허는 사람으로서 사냥을 나갔는데, 저 만큼 큰 호랭이란 놈이 떡! 버티고 섰다 그말이여.
그래서 “너 이놈, 저리 비키지 못할까” 몇 번 소리를 쳤지마는 그 누런 얼룩얼룩한 호랭이가 꿈쩍도 안 해.

그래서 활을 댕겨 가지고는, 저놈을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내가 죽느냐 니가 죽느냐, 아주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 활을 땡겨 가지고 팍 쐈는데 화살이 쏙 들어갔다. 그런데도 그 호랭이가 넘어지질 않고 턱 있다 그말이여.
살살 가까이... 지가 심장에 아주 정통으로 맞아서 화살이 갖다가 쏙 들어갔으니 지가 안 죽고 베길 수가 없을 것이다. 가봤더니, 호랭이가 아니라 바윗돌이였었다.

‘참, 이상하다. 뭔 놈의 바윗돌 속에 화살이 들어갈까?’ 다시 그 자리에 되돌아와 가지고 몇 번 활을 쏴 봤지만은 탁탁 되받아 버리고 화살이 그 바위 속에 백히질 안 했다 그말이여.
이것도 역시 도끼로 차돌을 깬 것과 마찬가지 이치여.

우리의 정신력, 우리의 이 마음자리에서 나오는 정신작용, 정신력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이 동하면 그것이 바로 번뇌요, 망상이요, 생사심이요, 아주 그건 그런 것인데,
앞뒤가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끊어지고, 무모색(無摸索)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다맛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들어갈 때에는 바위가 되었건 쇳덩어리가 되았건 호랭이가 되았건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속가(俗家)의 문구에 ‘정신일도(精神一到)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이냐’ 이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러헌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화두를 들을 때, 바로 이렇게 해야 된다 그거여.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렇게 잡두리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이뭣고?’

‘내가 중생이다, 내가 여자다, 남자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늙어서 인자 해봤자 안될 것이다’
‘그 동안에 내가 참선을 안 해보고 염불만 했기 때문에 갑자기 참선을 헌들 언제 될까?’
그러헌 쓸데없는 생각을 허는 것이 아니여.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이뭣고?’ 화두를 탔으면 되고 안 되고 헌 것을 따지지 말어. 다못 무조건 하고 ‘이뭣고?’ 뿐이거든.

요새 일본서 나오는 이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이 번역해 나옵니다.
지식 있는 사람들은 그러헌 '참선이 좋다'고 말은 듣고 또 참선에 대해서 좀 알고는 싶은데, 우리 한국에 큰스님네들이 그 참선에 대한 내논 책은 그렇게 구해 보기가 어렵고,
그러니 일본 책을 많이 사다보고, 그래 가지고 뭣인가 도대체 참선에 대해서 알아야 또 헐 맛이 날 것이다 그래서 일본 책을 많이 보면,
그 공안(公案)에 대해서 무문관(無門關)이라든지 뭐 벽암록(碧巖錄)이라든지 모다 참선에 대한 많은 책들이 일본에서는 번역이 되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선을 갖다가 널리 보급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참선을 허도록 권장허기 위해서 허는 그 뜻은 좋았지만은,
이 참선이라고 허는 것이 그렇게 공안을 풀이를 하고 그래 가지고 그렇게 많이 염송(拈頌)이나 또는 벽암록이나 무문관이나 이러헌 책을 갖다가 많이 읽고, 풀어서 재미있게 얘기처럼 모다 풀어서 해석을 해놨는데,
그걸 읽었다고 해서 절대로 참선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을 닥치는 대로 다 읽어서 다 해석할 줄 안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참선이란 것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 끊어져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 해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그 의단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허는 것이 참선이지,
그러헌 그 선(禪)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서 해석허고 잘 안다고 해서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가귀감이라는 이 책은 그러헌 책과는 다릅니다.
어쨌든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신심이 일어나고 분심이 일어나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용화사에서는 16판토록 이렇게 간행을 해서 법공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처음~42분1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삼라만상동귀환~’ ; [소요당집 外]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p71 소요 스님 게송 ‘賽義玄法師(의현법사에게 답함)’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다사다난(多事多難) ; 여러 가지로 일이나 어려움이 많음.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절절한 --> 절절(切切)하다 ; 매우 간절하다.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서산대사(西山大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공양(法供養)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풂. ②불서(佛書)를 사람들에게 베풂.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미물(微物) ; 벌레 따위의 하찮은 동물.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정무구(清淨無垢) ;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음.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 동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문수 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선지식(스승).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체모(體貌) ; 체면(體面).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궐(闕) ; ①마땅히 해야 할 일을 빠뜨림. ②여러 자리 가운데 일부 자리가 비거나 차례가 빠짐.

 

 

 



-------------------(2)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자성불(自性佛)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가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한담(閑談) ; 심심풀이로 이야기를 나눔. 또는 그러한 이야기.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주작(做作)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뭣고(시심마) ; 분류 ‘화두(공안) 참고’
*당인(當人)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상기증(上氣症 오를 상,기운 기,증세 증)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증세. 상기증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증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입부리 ; 새의 부리나 동물의 입을 말하는 ‘주둥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의단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7. 9. 22:36

§(455) 불방일(不放逸) / (게송)수행수시용심진~ / ‘용심(用心) 하나 참되게 한다’한 것은 불방일(不放逸) /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불방일이야말로 도업(道業)을 성취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만공 스님께서는 ‘용맹정진(勇猛精進)·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할라면은 잠을 한 시간씩 더 자라. 그래야 정신이 쇄락(灑落)하고 성성(惺惺)해서 정진을 참으로 여법하게 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열반하실 직전에 무슨 법문을 하셨냐?’하면은 『비구들아, 너희들에게 이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이 말씀을 최후에 제자들에게 남기시고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도(道)가 왜 친(親)하냐’하면은 도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속에 도가 들었어. 도(道)가 가까운 데에 있어.
언제나 즉시에 있어. 지금에 있고,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도(道)거든. ‘이뭣고~?’ 그 ‘용심(用心) 하나 참되게 한다’한 것은 불방일(不放逸)이거든.


**송담스님(No.455) - 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용455)

 

(1) 약 17분.

 

(2) 약 7분.

 


(1)------------------

부처님께서 아함경(阿含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의 16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달빛은 밤하늘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不放逸)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기에 온갖 착한 법에 있어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불방일(不放逸). 불방일의 반대말은 방일(放逸)·해태(懈怠)라고 말할 수가 있고, 불방일을 다른 말로 표현하며 정진(精進)이란 말로 바꿀 수도 있으나 정진과 불방일과는 조금 그 느낌이 다릅니다.

이 자리에는 신미년 하안거를 성취하고 제방에서 모다 도반들이, 사부대중들이 법당 가득히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 그 도반(道伴)들에게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불방일(不放逸)입니다.

불방일(不放逸)의 참뜻, 바른 정진의 참뜻, 이 불방일의 참뜻만 잘 알고 실천해 나간다면 결제·해제가 상관이 없습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성성(惺惺)하게 한 생각을 돌이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해 나갈 줄만 안다면 앉었거나, 누웠거나, 섰거나, 일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운력을 하거나 전혀 상관이 없어.

물론 선방 규칙에 있어서 입방선 시간을 정해 놓고, 입선(入禪) 시간에는 죽비(竹篦)를 치고 좌선을 하고, 물론 그것 여법(如法)하게 지켜 나가야 하지만,

참으로 정진을 바르게 할 줄 알고, 참으로 발심(發心)한 분상(分上)에는 앉어서는 앉어서 하고, 섰을 때는 서서 하고, 걸어갈 때는 걸어서 하고, 결제 때는 결제대로 하고, 해제 때는 해제대로 하고,
일체처가 도처(到處)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정진해 나가는 바로 입선 시간이다 그거거든.

계행(戒行)을 지키고, 보시를 하고, 무슨 인욕을 하고, 사성제(四聖諦)나 육바라밀(六波羅蜜)이나 그밖에 부처님 팔만대장경 속에는 우리가 수행을 해 나가는 참 가지가지 조도법(助道法)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다 하늘에 반짝이는 그 무수한 별에다가 비유한다면 이 불방일은 그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불방일이야말로 도업(道業)을 성취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 말씀이거든.

불방일은 꼭 잠 안 자고, 아주 이를 갈아붙이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고, 단식(斷食)을 하고, 묵언(默言)을 하고 이렇게 하는 것만을 말한 것이 아니여.

그것은 그렇게 무리하게 억지로 정진을 해 가지고서는 특별히 대근기(大根機)로써 석 달 열흘을 안 자도 그만, 한 열흘씩 굶어도 그만, 그러다가 자고 싶을 때는 며칠씩 자고, 먹고 싶을 때는 말밥을 먹고,
그런 아주 몸과 모든 것을 대근기로 타고난 사람은 혹 그럴 수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사람은 백만 명 가운데 하나나 있을 둥 말 둥 하고,

중근기·하근기가 그러한 자기의 근기(根機)도 모르고 그렇게 무리하게 하면 병나기 백발백중(百發百中)이여.

조실스님께서는 그렇게 참 무서운 정진을 하셔서 병환은 났지만은 다행히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다행이나,
우리 모두가 다 그런 본을 봐 가지고 피가 꿀꿀 넘어온다면, 도(道)도 이루지 못하고 피만 콧구녁으로 목구멍으로 선지 덩어리가 넘어온다면 그렇게 피 꿀꿀 넘어와 가지고서는 선방에서 방부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도 다섯 시간 정도는 재워주고, 공양할 때는 먹을 만큼 먹고, 또 옷도 추위와 더위를 방어할 만큼... 사치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서 의부족(衣不足), 겨울에 추운데 옷을 너무 얇게 입어가지고 콜록거리고 기침하고 감기들고, 그래 가지고 그것이 쇠면은 폐렴이 걸리고 이것도 지혜롭지 못한 것이고,

‘내가 어찌 시주(施主) 것을 함부로 입을까’ 그래 가지고 너무 얇게 입어가지고 병나는 거, 이것도 퇴전(退轉)할 원인이 되는 거고,
‘시주 것을 내가 어찌 함부로 많이 먹을까’해 가지고 너무 조금씩 먹어가지고 피골이 상접해서, 그것도 어리석은 거고,
‘내가 도업을 성취 못했는데 어찌 편안하게 잠을 잘 것인가’ 그래 가지고 잠을 너무 안 자 가지고 낮에 입선시간에도 꾸벅꾸벅, 밤에 잠을 안 자 놓으니까 그 이튿날 꾸벅꾸벅 하거든.

차라리 그러느니 최소한도(最小限度)로 너댓 시간은 푹 재워주고, 보통 여섯 시간으로 하고 있지만,
‘여섯 시간은 너무 길다.’ 그러면은 한 시간 정도는 덜 자고 다섯 시간만 자되, 다섯 시간은 푹 자고 일어나서, 그 대신 일어난 뒤로는 꾸벅꾸벅하지 않거든. 다섯 시간을 자 놨으니까 그만하면 족(足)하고.

그렇게 해서 식부족(食不足)·침부족(寢不足)·의부족(衣不足) 이 삼부족(三不足)은 퇴타(退墮) 인연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도인도 계십니다.

그래서 만공 스님께서는 ‘용맹정진(勇猛精進)·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할라면은 잠을 한 시간씩 더 자라. 그래야 정신이 쇄락(灑落)하고 성성(惺惺)해서 정진을 참으로 여법하게 할 수가 있다.’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산철에 산철 방부를 들이신 도반이나, 또 산철 방부를 안 들인 분이나, 또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어쨌든지 너무 11시·12시까지 너무 오래 그러지 말고, 늦어도 10시 쯤에는 잠들고 그 대신 새벽에 서너 시에는 꼭 일찍 일어나서 떠억 정진을 하되 단전호흡을 하면서 그렇게 정진을 하시고,

그리고 낮에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잡담을 하지 말아라.
지난 여름 동안에 보살선방에 167명이라고 하는 많은 보살님이 방부를 들이고 모다 정진을 하셨는데, 참 애써서 모다 정진들을 하셨다고 보고를 받았는데,
그런데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방선 시간에 너무 잡담을 많이 했다.

물론 선방에서 하시지 않고 저 지대방에 가서 쉬면서 잡담을 하셨다는 건데, 지대방이라고 해서 잡담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이거거든.
화두를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한 것이 꼭 큰방에 앉았을 때만 하라는 게 아니거든.

지대방에 있을 때 툭 터질 수도 있고, 화장실에 가서 툭 터질 수도 있고, 해제해 가지고 행각(行脚)을 할 때 툭 터질 수도 있고, 닭 우는 소리 듣고 터질 수도 있고, 돌이 빗자루에 맞는 소리를 듣고 깨달을 수도 있고, 시장터에 가서 ‘이 자식, 저 자식’하고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도인(道人)도 있는데,

결제 중에 더군다나 방선 시간에 지대방에 갔다고 해서, 거기 가서도 정 허리가 아프면 다리를 뻗을 수도 있고, 허리를 좀 펼 수도 있으나,
거기서도 화두를 들고 떠억 그럴수록에-입선시간에는 졸음이 잘 오지만은 방선을 하고 지대방에 가면 잠은 달아나고 오히려 성성한 수가 많은데, 아! 그 성성한 때를 타서 화두를 떠억 성성하게 잡두리를 할 일이지.

입선 시간에는 조느라고 공부를 못하고, 방선 시간에는 잡담을 하느라고 정진을 못하면 석 달을 언제 공부를 할 것이냐 이거여.
그래서 여러 도반들은 이 해제 때, 또 이 방선 때, 그 졸음 안 오는 그때에 화두를 힘써 잡두리를 해라.

이것을 내가 오늘 해제하고 나서 첫째번 일요법회, 9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해제하고 온 여러 도반들에게 이것을 당부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마지막 열반하실 직전에 무슨 법문을 하셨냐?’하면은
『비구들아, 너희들에게 이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불방일(不放逸)하여 정진하라.』 이 말씀을 최후에 제자들에게 남기시고 열반(涅槃)에 드셨습니다.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이르리라. 모든 것은 변화하느니라.』 이 ‘변화하느니라’는 말은, 말은 간단하지만은 범위가 참 넓습니다.
‘시시각각으로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그런 말씀이고,

또 여러 신남신녀들에게는 ‘지금 아무리 높은 벼슬을 하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언제 상태가 바뀌어질른지도 모른다’는 뜻이 그 속에 다 들어있고,
또 지금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못해서 사업이 잘 안되거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정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도 다 변화하고 있어.

그러니 너무 그러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그런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어쨌든지 불방일(不放逸),
화두를 들고서-그 일념(一念)을 돌이킴으로 해서 화두를 들고, 화두의 의심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잡두리를 해 나감으로써 생사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해탈을 하라고 하는 그러한 부처님의 마지막 법문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80세를 일기로 열반하실 때에 마지막으로 하신 법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마지막 법문을 세세생생에 망각해서는 아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방일(不放逸)’이라고 하는 이 석 자 글 말씀을 망각을 하지 않고 항상 우리가 명심을 한다면 정진은 저절로 될 것이고, 일체 장애는 거기에 침범을 못할 것입니다.

이 방일(放逸) 때문에 우리는 해태하게 되고, 일체 장애와 일체 마군(魔軍)이가 그 틈을 타서 우리에게 들어와 가지고 우리의 도업을 방해하는 것입니다.(37분22초~53분39초)

 

 



(2)------------------

수행수시용심진(修行須是用心眞)이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하니  시비이자막수인(是非二字莫隨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은 수시용심진(須是用心眞)이라. 도 닦아 가는 데에는 모름지기 이 용심(用心)을 참되게 하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다. 마음이 만약 참되다면 도(道)는 참 친하기 쉬우니라.

‘도 닦기가 어렵다. 도를 이루기가 어렵다.’ 참 모두 도 닦기를 이 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들 하지만 가장 쉬운 것이여.

무엇 때문에 그렇게 쉬운 것을 어렵다고 하냐? 용심(用心)을 참되게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지,
‘용심 하나 참되게 해 버리면 천하에 쉬운 것이 도다’ 이거거든.

그러면 ‘도(道)가 왜 친(親)하냐’하면은 도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한 생각' 속에 도가 들었어.

도(道)가 가까운 데에 있어.
눈으로 볼 때는 보는 데에 있고, 들을 때는 듣는 데에 있고, 말할 때는 말하는 데 있고, 밥 먹을 때는 밥 먹는데 도가 있는 것이지, 그놈 떠나서 멀리 저 먼 데에 있는 것이 아니거든.

언제나 즉시에 있어. 지금에 있고,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도(道)거든. ‘이뭣고~?’

그 ‘용심(用心) 하나 참되게 한다’한 것은 불방일(不放逸)이거든.

미오이도(迷悟二途)가 단재아(端在我)여.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미경(迷境)으로 생사윤회를 하느냐, 확철대오해서 바로 '참나'를 깨닫느냐 한 것은 그 단서(端緖)가 바로 내게 있어.
내가 어떻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다스려 나가느냐? 그 원인이 바로 당사자(當事者)가 '나'다 그거거든.

시비이자막수인(是非二字莫隨人)이여. 옳다·그르다, 내가 옳고 니가 그르다.
그 옳다·그르다 그 시비(是非)의 두 자(字)를 다른 사람을 따르지 마라.

다른 사람한테 책임을 몰아붙이지 말고, 다른 사람 시비하는데 말려 들어가지 말라 그말이여.
구태여 생각한다면 모든 시비도 나한테 있는 것이고, 시비(是非)의 원인이 다 내게 있는 거여.

‘저 사람이 잘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하고, ‘저 사람이 먼저 시비를 일으켜서 그렇지, 내가 그런 것이 아니다.’ 전부가 다 남에게 시비를 몰아붙이고,

‘세상이 시끄러워서 내가 불행하다. 모든 사람이 잘못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그런다.’
모든 잘못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돌려보내고, 모든 잘한 것은 지가 잘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거든. 거기에서 크고 작은 모든 시비와 전쟁이 거기서 일어나는 거여.

모든 원인이 전부 내게 있고, 모든 시비의 근원이 나로부터서 일어났다고 확실히 믿고 그렇게 살아갈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말이거든.

오늘 신미년 9월 1일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여러 도반들이 이렇게 다 해제를 하고 운집을 했으므로...
이 추계산철 결제가 또 머지않아서 시작이 됩니다.
방부를 들이신 스님네나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방부를 안 들인 분들도 이 춥지도 더웁지도 않는 좋은 서늘한 계절을 맞이해서 이 불방일(不放逸), ‘방일하지 않는다,’

‘방일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 불방일 한마디를 명심을 하고, 알뜰히 정진해 주실 것을 당부하고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37분22초~60분23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아함경(阿含經) ; 아함(阿含)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āgama의 음사로, 전해 온 가르침이라는 뜻.
초기 불교시대에 성립된 수천의 경전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팔리(pāli) 어로 된 니카야(nikāya)가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sanskrit) 본(本)이 아가마(āgama)임.
이 아가마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아함경으로 여기에는 ①장아함경(長阿含經) ②중아함경(中阿含經) ③잡아함경(雜阿含經) ④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네 가지가 있다.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 「잡아함경」 (882. 불방일근본경 不放逸根本經), 「상윳다니까야」 (S45:146) 달(月)경 참고.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증일아함경」 18권 ‘26. 사의단품(四意斷品)’ 제1~4경 참고 요약.
〇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①비유하면 마치 산(山)·강(江)·석벽(石壁)·온갖 풀과 다섯 가지 곡식은 모두 땅을 의지해서 자라나고 큰다. 그래서 땅은 가장 높고 최상(最上)이다. 이와 같아서 모든 착한 도인 37도품(道品)의 법이 다 방일(放逸)하지 않은 땅에 머물러 모든 착한 법을 거기에서 자라나게 한다. 그래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意斷)을 닦는다.
②여러 조그만 나라의 왕과 여러 큰 나라의 왕들이 다 전륜성왕(轉輪聖王)에게 와서 붙어 가까이한다. 전륜성왕은 거기에서 가장 높고 최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37도품법(道品法) 가운데에서 방일(放逸)하지 않는 법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는 비구는 4의단(正斷)을 닦는다.
③모든 별빛 가운데 달빛이 제일인 것처럼, 이것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착한 공덕의 37도품 가운데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가장 제일이요 가장 높고 가장 귀(貴)하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느니라.
④첨복화(瞻蔔華)·수마나화(須摩那華) 등 천상(天上)과 인간(人間) 세상의 모든 꽃들 중에서 바사화(婆師華)가 가장 제일인 것처럼, 모든 착한공덕(功德)의 37도품 가운데서는 방일하지 않은 행(行)이 제일이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은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러면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하고(律儀斷), 이미 생긴 악은 없어지게 하고(斷斷),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게 하고(隨護斷), 이미 생긴 선은 더욱 많아지고 오래 가도록 하는 것(修斷)이며, 원만하게 갖추어 닦아 수행하고 마음과 뜻에 잊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4의단을 닦는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4의단을 닦아야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꼭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불교평론」 (2005년 겨울).
〇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불방일의 가르침은 결국 붓다(깨어있는 자, 覺者)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선법(善法, 산스크리트어: kuśalā dharmāh, 팔리어: kusala dhamma) ; 선법(착한 법)은 '선한 교법'의 줄임말로, 5계(五戒) · 10선(十善) · 3혜(三慧) · 4혜(四慧) · 4성제(四聖諦) · 3학(三學) · 5온설(五蘊說) · 12연기설(十二緣起說) · 8정도(八正道) · 37도품(三十七道品) · 6바라밀(六波羅蜜) 등 이치에 맞고, 자신과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법(法), 즉 도리와 방편, 즉 가르침 또는 선한 행위와 수행법을 말한다.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발심(發心)한 분상(分上)에는 ; 발심한 수행자의 입장에 따르자면.
*도처(到處) ; 이르는 곳.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인욕(忍辱) : [범] Ksanti  욕되는 것을 견디어 참는 것이다。여섯 가지 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 하나。무슨 곤란이나 역경을 당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거나 성내거나 그 고통과 곤란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즐겁게 받아야 한다.
*사성제(四聖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제(四諦)라고도 함.
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조도법(助道法) ; 37조도법(三十七助道法)을 말한다. '깨달음(도, 보리)에 이르는 37가지의 수행법(修行法)'을 말한다. 사실상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통칭하는 낱말이다.
4념처(四念處, 四念住) · 4정단(四正斷, 四正勤) · 4신족(四神足, 四如意足) · 5근(五根) · 5력(五力) · 7각지(七覺支, 七覺分) · 8정도(八正道)의 37가지 도품(道品) 또는 선법(善法) 또는 수행법(修行法)을 말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말밥 ; 한 말 정도 분량의 쌀로 지은 밥.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백발백중(百發百中) ; 무슨 일이든지 틀리지 않고 꼭 들어맞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쇠다 ; (무엇이)제 한도를 벗어나서 정도가 점점 심해지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이라고도 한다.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쇄락(灑落) ;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
*산철(散철) ; 본철(本철-하안거,동안거)가 아닌 시기.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2)


*(게송) 수행수시용심진~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二十九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단서(端緖) ; 어떤 일이나 사건 따위를 풀어 나갈 수 있는 실마리.
*당사자(當事者)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6. 13. 14:15

§(401) 심우송(尋牛頌) /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라. 의단독로 하도록 잡드리해 가야 /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 / 선용기심(善用其心).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을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퍽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이 '마음 소'를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앞과 뒷이 콱 맥힌 상태에서 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해 나가는 그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


어쨌든지 공안을 참구하는데 가서는 앞뒤가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꽉 맥혀서 오직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 가야 그래야 그 사람이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


오직 그 화두 한 마디, 한 의심만을 향해서 의단이 독로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해. 답답허면 답답헐수록 그렇게 해 나가고, 아무리 공부가 안되면 안 될수록에 그렇게만 해 나가야 돼.


**송담스님(No.401) - 1989년 11월 첫째일요법회(65분)에서. (용401)

 

(1) 약 13분.

 

(2) 약 17분.

 


(1)------------------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십우송(十牛頌)-10가지의 소를 찾는 게송에 대한 그 심우송(尋牛頌)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그 마음자리를 ‘소’에다가 비유해 가지고 고인(古人)들이 게송(偈頌)을 읊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리심(菩提心)을 발해 가지고,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중생교화하는 데까지 10단계로 노나서 게송으로 읊은 것인데 그 게송에 따라서 고인들은 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많이 여러 가지 종류의 게송도 나오고, 여러 가지 종류의 그것에 의한 그림도 나오고, 요새는 달력 캘린더에도 그런 그림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마는,

첫째, 제일의 심우(尋牛)-'찾을 심(尋)'자, '소 우(牛)'자-‘소를 찾는다. 심우(尋牛)’ 그 단계는 보리심을 발하는 위치여.
우리는 언제 생겨날 때가 없는, ‘언제 그 마음자리가 생겨났다’하고 헤아려 볼 수 없을 만큼 우주세계가 생겨나기 이전에부터서 있었던 그 '마음 소'인데,
그 '마음 소'를 부처님도 가지고 계시고, 모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도 그 '마음 소'를 다 가지고 계시고, 우리의 중생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개·소·돼지·미물에 짐승·벌레까지라도 그 자리를 다 가지고 있다 그말이야.

근데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잊어 버렸어. 가지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해 모르고 살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의 법, 조사의 법문에 의지해서 잃어버렸던 그 '마음 소'를 찾는다 그말이여.
그 마음, 진여불성 자리를 찾는 것을 그 ‘소를 찾는다’고 해서 심우(尋牛)라 그러는데, 보리심을 발(發)해야 그때부터서 '마음 소'를 찾기 시작한 거다 그말이여.

그래 아까 조실 스님께서 첫 번째 읊으신 게송이 바로 그 '마음 소' 찾는 데에다가 두고 읊으신 게송인데, 그 게송이 중국의 그 곽암(廓庵) 선사라고 하는 도인(道人)이 읊으신 게송입니다.

그 다음에 가서 견적(見跡)이거든. 자취를 봐. 소를 찾아서 인자 집을 떠나 가지고 그 소를 찾으러,
그 산이 험하고 물이 넓고 하는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그 소를 찾으러 방방곡곡이 다니는데 그 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이 막심을 하다 그말이여.
근데 그렇게 찾아다니다 보니 발자취를 발견을 했어. 발자취를 발견한 것을 두 번째 견적이라 그러는데,

그리고 세 번째가 견우(見牛)고-소를 보고,
또 소를 본 다음에는 득우(得牛)-소를 붙잡는 거여.
그리고 다섯 번째 가서 목우(牧牛)여. 소를 먹이는 거여. 길들여서 먹여.

그러니 처음에 소를 찾을랴고 하는 그 보리심을 발한 것도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세계 50억 인구가 있다 하지마는 정말 그 '마음 소' 찾으려는 마음을 낸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1600년 전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고구려·백제·신라를 거쳐서 또 고려, 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1600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태어난 사람은 참 이 불교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참 여기에 까지 왔으나 그러한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런 불교와 인연이 없는 나라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할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소를 열심히 찾다 보면은 그 자취를 발견하게 되고 그 자취를 따라서 나아가다 보면은 결국은 소가 거기에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 소를 본 다음에는 그놈을 붙잡을라고 하면 도망치거든.

그놈을 잘 어떻게 해서 지혜와 인내와 방편으로써, 그놈을 잘해서 접근을 해 가지고 그놈을 재치있게 붙들어야지. 소를 저 먼 밑으로 소 봤다고 해서 막 지혜없이 쫓아가서 어거지로 잡을라고 하면 그 소가 도망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도 역시 그 바른 선각자의 바른 지도하에 여법하게 정진을 해야 되지,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우격다짐으로 막 몰아붙인다고 해서 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를 본 다음에는 그것을 잘 붙들고, 붙든 다음에도 그놈을 참 지혜롭게 요령있게 소를 잘 먹여야지, 붙들어만 놨다고 해서 그걸 아무렇게나 놔두면 다시 또 도망쳐 버릴 것이고.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이 소를 잘 다스려 나가는가? 그것을 참 정성을 다해서 잘 그 소를 먹이고 거두어 나가야 그 소가 토실토실 살이 찌고 번질번질하니 기름져서, 그 소가 농사도 짓고 병도 안 나고 그 소를 인자 맘대로 참 잘 길러 가지고,

여섯 번째 가서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외양간에다 딱 묶어 놓고 잘 먹이는데, 얼마동안 잘 먹이다 보면,
일곱 번째 가서 망우존인(忘牛存人)이거든.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어.
인자 딱 잘 먹여서 외양간에다 해 놓으니까 소가 길이 들어서 도망가질 않으니까, 소에 대한 인자 관심을 놔 버리고 딱 주인만 있는 거지.
'소에 대한 생각'은 인자 아주 길이 잘 들여있고, 편안하게 외양간에 길들여져서 있으니까, 이것도 다 공부해 나가는 절차를 거기에다 그렇게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쉬웁게 말하자면은 이 길을 들이는 과정에서는,
화두를 열심히 열심히 애를 써서 열심히 들다 보면은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제대로 의단(疑團)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리는 과정, 그놈을 거쳐서 나중에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하거든.
확철대오를 하면은 일체처 일체시에서 깨달음의 경지가 낭연독존하며-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한 경지에 이르르거든. 무수이수(無修而修)거든. 닦음이 없이 닦는 거거든.

그리고 여덟 번째 가서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거든. 사람과 소를 완전히 다 잊어버리거든.
그래서 '집에 돌아와 가지고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것[忘牛存人]'은 잊어버리고 그 다음에 사람과 소를 둘 다 잊어버린 것은 보리(菩提)를 이룬 위치다.

또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것[忘牛存人]'은 소승(小乘)에서는 아공(我空)의 경계를 그렇게 표현을 했다 그러고, 그 다음에 인우구망(人牛俱忘)의 자리는 대승의 경지에서 말하는 보리를 이룬 경지에다가 비유해서 그렇게 했다고 고인은 그렇게 해설을 합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 와서 이 반본환원(返本還源) 이것은 열반(涅槃)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이것은 대승이나 소승이 다 같이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열 번 째 가서 수수입전(垂手入廛) 손을 드리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계로 나아가는 것인데.

이런 10가지 단계로 보리심을 발(發)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해서 보림(保任)을 다 완성을 한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그러한 단계를 10가지로 이렇게 구분한 것인데,
참 대단히 그 '마음 소'를 찾는 경계를 그 '소' 찾는 경계에다가 비유해서 이렇게 게송을 읊고 또 그림을 이렇게 그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를 닦아가는 데에 퍽 이해하기 쉽고 재미스럽게 표현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께서는 첫 번째 제일 심우(尋牛) 단계와 두 번째 자취를 보는 견적(見跡)의 단계만을 게송으로 읊으시고 그것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9분43초~22분30초)

 

 

 


(2)------------------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을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퍽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이 '마음 소'를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앞과 뒷이 콱 맥힌 상태에서 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해 나가는 그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산승이 읊은 그 게송에 ‘불법(佛法)이다. 전등(傳燈)을 계승한다’ 그러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다못 자기의 공안-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위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공부를 지어 가는데,

공부를 지어 가는데 있어서 고인(古人) 공안 상에 복탁(卜度)하고 망령되이 해석을 가하지 말아라. 비록 낱낱이 해석을 해 가지고 그럴싸한 해답을 얻었다 할지라도 '참나'를 깨닫는 일과는 아무 교섭(交涉)이 없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공안을 갖다가 사량분별로 따져서 이것은 무슨 최초구다, 이것은 말후구(末後句)다, 이것은 제삼구(第三句)다, 이것은 제2구다, 이것은 체(體)다 용(用)이다, 체용동시(體用同時)다, 이런 식으로.. 이것은 본분이다 신훈이다.
옛날에 강사나 또는 의리선(義理禪)을 하는 사람들은 공안을 낱낱이 그렇게 분석하고 따져 가지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서 그 공안을 다 깨달은 것처럼 그렇게 여겼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니여. 그러한 식으로 백 천 공안을 다 따져서 결론을 내려 봤자 그것은 생사해탈도 아니고 견성성불도 아니여.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렇거늘, 하물며 그 불 속에 어떻게 앉거나 누울 수가 있겠는가?
공안을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그래 가지고 어떤 분별심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마치 불덩어리에 훨훨 타는 무서운 불길 가까이 가 가지고 그것을 만져 볼랴고 그러고 또 그 속에 들어갈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거거든.

그 공안 속에, 크게 나누고 작게 나누고 논상논하(論上論下) 이러쿵 저러쿵 체(體)다, 용(用)이다, 체용동시(體用同時)다, 신훈이다, 본분이다, 일구·이구·삼구다, 이렇게 따진 것이 다 분대분소(分大分小)하고 논상논하 한 것이거든.
이러면 그것이 상신실명(喪身失命)-벌써 수행자로써 공안을 갖다가 의리(義理)로 따지고 사량분별로 이렇게 따지는 짓을 하는 것은 벌써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여.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것은 이 공안을 가지고 사량분별로 따진 것을 극히 엄격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까닭이 바로 공안은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가까이 하면은 수행자로서의 생명을 잃어버려.

공안을 그런 식으로 따져서 무슨 공안을 대하든지, 법문을 듣던지, 어록을 보던지, 보면은 자기 나름대로 이러쿵이러쿵 따져서 결론을 내려.

조실 스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시기를 사견종자(邪見種子)라 그랬습니다.
사견(邪見) 삿된 종자, 삿된 견해를 가진 씨알머리다 그거거든. 사견종자는 암만 해봤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러주면 『예 알았습니다.』 그래 놓고는 금방 다음에 또 사견을 내거든.

어쨌든지 공안을 참구하는데 가서는 앞뒤가 끊어져 버려야 하거든. 꽉 맥혀서 오직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 가야 그래야 그 사람이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

그리고 또 하나, 공부하는 사람이 주의할 것은 불가심문축구(不可尋文逐句)여. 글을 찾고 글귀를 쫓는 거여.
그것이 공부하다가 답답하고 암만해도 안 되고 하면은 뭐 전등(傳燈)·염송(拈頌) 기타 조사어록 모다 이런 것을 뜨적뜨적 하며 행여나 거기서 무슨 좋은 해결이 나올까?

워낙 해도 해도 안 되고 가슴은 못 견디게 그렇게 답답하니까 혹 그런 것을 보면 좀 후련하고 시원해지는 맛이 있어서 그런 것을 다 볼라고 그러고,
또 그런 어록 속에 기언묘구(奇言妙句)-'기특한 말과 묘한 글귀'가 있으면 그런 것을 마음속에 기억을 하고, 이런 것은 다맛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 큰 장애가 된다.
진실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러한 짓을 하지 말아라.

그 공부가 안 되고, 암만해도 공부가 진취가 없고,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앉아서도 답답하고 서서도 답답하고 추호도 어떤 그 공부가 잘된다고 하는 그런 시원한 대목이 없으니까,
대단히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마는, 그 답답하고 꽉 맥히고 이 단계가 이러한 경지가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중요하고도 좋은 경계라 그랬습니다.

대혜 스님도 그러한 경지야말로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계니까, 거기에서 번뇌심(煩惱心)을 내지 말아라. 번뇌심을 내지 말고 거기에서-그 답답하고 답답한 그런 경지에서,
선용기심(善用其心)-잘 그 마음을 잡드리를 해 가지고, 화두를 놓치지 말고 참구를 잘 해가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를 것이다. 고인이 한결같이 당부하신 말입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은 이 비량(比量)-이것과 저것을 비교허고 공안을 이 공안과 저 공안을 비교허는 거야.
그래 가지고 마음을 가져서-이 공안 저 공안에 대해서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서 주박(湊泊)을 혀.
그걸 따지고 그놈을 가지고 속으로 속 살림을 해 나가는 거여.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하고.

이것은 그렇게 하면은 도(道) 하고는 점점 더 멀어지는 거야. 공안을 가지고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고, 이놈과 저놈을 비교허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로 복탁(卜度)하고 이런 것은 미륵불(彌勒佛)-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출생허실 때까지 이르러도 그 사람은 참 깨달음과는 아무 교섭(交涉)이 없다.

그래서 이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 속에 갇혀 있는 거와 같애서,
‘다못 어떻게 허면 이 사방이 은산철벽으로 둘러서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허면 여기서 빠져나갈까?’ 오직 그 활로(活路)를 찾는 그 한가지 일만이 문제가 되야 해.

그래서 그 활로를 찾는 방법이 「이 뭣고?」거든. 「이뭣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 화두를 말씀허셨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무자 화두를 허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허신 분은 「이 뭣고?」

오직 그 화두 한 마디, 한 의심만을 향해서 의단이 독로허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야 해. 답답허면 답답헐수록 그렇게 해 나가고, 아무리 공부가 안되면 안 될수록에 그렇게만 해 나가야 돼.

또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머리가 개운하면서 화두를 들랴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리면서 그렇게 깨끗하고 조용하고 잘 들릴 때가 오되, 그럴 때라 하더라도 ‘아! 됐다. 이제 공부가 잘된다’ 그런 기쁜 마음을 내서는 안 돼. 그런 기쁜 마음을 내면 금방 또 경계가 확 변한 거거든.

그래서 설사 공부가 좀 수월허게 화두가 잘 들리고 의심이 의단이 잘 순일허게 된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안 돼.
왜 그러냐 하면은 우리의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항상 마왕(魔王) 파순(波旬)의 권속이 육근문두에 와서 지키고 있거든. 그래 가지고 잠깐이라도 틈만 있으면 그 육근을 통해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내란을 일으킬라고 작정을 허는거여.

마치 한 국가도 이웃나라가 그 나라를 침범을 할라며는 항상 간첩을 보내 가지고 그 나라의 모든 것을 감시허다가, 감시허면서 계속 서로 이간(離間)을 붙이는 거여.
정부와 백성을 이간을 붙이고, 백성과 백성을 이간을 시키고, 신하와 임금을 이간을 시켜 가지고, 이간을 시켜서 싸움만 일어나면은, 그것이 바로 침범해서 그 나라를 갔다가 빼앗기가 가장 좋기 때문에,
그래서 그 나라가 이웃나라로부터서 침범을 안 받고 멸망을 안 할랴며는 어쨌든지 그 나라 백성이 서로 화합을 해야 하거든.
그 나라 백성이 화합이 돼 가지고 모두가 서로 믿고 자기의 맡은바 소임을 열심히 허고 그러면은 그것이 바로 가장 나라를 위하고 국가 민족을 위하는 것이 되어서 외부에서 침범해봤자 도저히 성공을 못 허는 것이여.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도 눈과 코와 입, 귀-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서로 눈은 자기의 역할이 따로 있고, 입은 입의 역할이 따로 있고, 또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고,
그러니 우리의 발심한 그 마음으로 주재(主宰)가 되아야, 육근(六根)이 심왕(心王)의 명령에 모두가 다 복종을 하고 합심해서 한 대사(大事)를 향해서 합심이 될 때에 도(道)도 이룰 수가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놈이 흩어져 가지고 오욕락(五欲樂)에 빠지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의 종이 된다면 도업(道業)은 성취허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마군(魔軍)이의 함정에 빠지고 그 홀랑게에 걸려서 도업 이루기 커녕은 마군이의 종자(種子)가 되고 마는 것이여.
그 마군이의 종자가 안 되고 법왕 권속이 되는 길은 마군이의 올개미가 무엇인가를 잘 알면은 그 올개미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올개미가 바로 사량분별이거든.

우리 공부하는 분상에는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가장 중요헌 것이야.
일체처 일체시에 알 수 없는 의단으로 그렇게 나가면은 마군이가 거기에는 발붙이지를 못하는거여.
꽉 맥히지 않고 알아 들어가고 이치 길이 있고 말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 갈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마군이 올가미에 걸려드는 것이여.(9분43초~39분3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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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
[참고]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2)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방금 산승이 읊은 그 게송>>> 이 법문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이간(離間) ;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헐뜯어 관계가 멀어지게 만듦. 또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각각 제삼자를 헐뜯고 일러바치고 하여 사이의 정을 떨어뜨림.
*주재(主宰) ;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또는 그 사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홀랑게 ; '매듭'의 사투리.
*올개미 ; '올가미'의 사투리.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4. 30. 12:57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12분.

 


처음에는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그래가지고 화두를 드는 법을 배워서 해 가면, 처음에는 곧잘 그런대로 되어가서 ‘이렇게 되어가면 잘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앉는데 다리가 좀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는 허지만 별로 졸음도 안 오고,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두만 자꾸 들고 나가고,
그대로 가면 ‘이거 석 달만 허면 내가 공부에 대해서 기초를 잡을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3년만 하면 내가 틀림없이 견성(見性)을 할 거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대들었는데,

과연 처음에는 졸음도 안 오고 생각만 좀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나중에 한 달을 해 가도 별로 공부가 처음 시작한 때보다 무엇이 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두 달을 해도 처음에는 졸음은 안 왔었는데 두 달쯤 허니까 졸음이 또 퍼 일어나고, 졸음에 빠졌다가 졸음에서 겨우 어떻게 정신차려서 졸음이 깰만 하면 그때는 또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망상을 실컷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는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졸음과 망상이 번갈라 가면서 일어나 가지고 도대체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지를 않고.

나중에는 울화통(鬱火통)이 터질라 허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시간이 대여섯 시간처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가만히 시계를 보면은 ‘앞으로 10분만 지내면 이제 방선(放禪)을 하겠다’하는데 그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 때 좀 답답할 때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도 좀 하고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5분이나 10분 남겨 놓고 자발없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 달•두 달•한철이 지내갑니다.

그런데 그 답답허고 지루허고 그때 그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때가 참으로 공부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고비다’하는 것을 미리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려면, 그러헌 답답허고 견디기 어려운-이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허고-그런 고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애기를 길러 본 경험이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갓난 애기를 길러 보면 무럭무럭 젖 잘 먹고 잘 크다가 설사병이 나기도 하고 어디 병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병을 앓고 나면 살은 좀 빠지지만 그전에 아니 하던 새로운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재롱을 피우게 되기도 하고, 뭐 이상한 귀여운 짓을 하게 되고, 또 말을 그동안에 한마디도 못하던 애기가 무슨 말도 한마디씩 허기도 허고 그러는데. 병치레하고 나면 푹 크거든. 한 치 가량 푹 크면서, 살은 빠지면서 키는 크고 그러면서 재롱은 늘고 그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사업을 할 때나, 학문을 하거나 또 이런 참선을 헐 때에도, 한 고비 올라서려고 헐 때에는 반드시 그런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공부가 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고비를 만났을 때, 조금도 그것을 짜증을 내거나 ‘내가 이 공부가 안 될려고 업(業)이 두터워서 이 공부 못할 징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이건 공부를 허다 보면 한 계단 올라설려고 할 때에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그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단전호흡을 허면서, 짜증이나 또는 물러서려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서,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 고비를 잘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앉기도 수월하고 공부허기도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부가 수월하게 잘 들리고 화두가 잘 들린다 해서 또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가 쉬운데 그 좋아하는 마음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지어가면 우리 공부허는 사람의 주변에는 항시 마군(魔軍)이가 와서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왜 마군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하면 공부를 해서 도(道)를 이루게 되면 마군이가 살 자리가 영토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법도(法度)가 있어서 잘 해 나가면 도둑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듯이, 나라가 법이 문란해지고 경찰이나 군인이나 이런 힘이 모다 분열이 되어가지고 힘이 타락되어 가지고 힘이 없어지면, 곳곳에 깡패가 득실거리고 도둑이 일어나고 그래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모다 법률에 기강이 서고 그러면 도둑이나 깡패나 모다 사기꾼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둑이나 깡패나 그런 못된 사람들은 나라가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군이들도 역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마군이들도 한 수행인이 공부를 열심히 허면 그래가지고 그이가 도(道)를 통하게 되면 자기네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항시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으로도 들어오고, 귀로도 들어오고, 코나 입으로도 들어오고, 몸뚱이로도 들어오고, 생각을 통해서도 들어와서, 그 육근문두에 항시 마군이가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그 ‘한 생각’에 마군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안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 그 틈을 타서 강도나 절도가 들어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집안 문단속을 잘 하면 그런 도둑이 엿보지를 못하겠지만, 도둑은 항시 그런 틈 나오기를 이모저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들어오고,
그 주인이 잘 단속을 해도 영리한 도둑은 일부러 그 틈을 맨들어 가지고 갖은 수단을 부려 가지고 틈을 내도록 한눈을 팔도록 맨들어 가지고 들어오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점을 명심을 하고,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들어올 때에, 마군이가 나를 유혹할 때에는 언제라도 나의 뜻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한 탈을 쓰고 나에게 접근을 해 온다는 사실. 사기꾼이 어떤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는 흉악한 그러헌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지 아니하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나에게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돈벌이가 잘된다고 유혹을 하고, 그이가 색(色)을 좋아하면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유혹을 하고, 명예나 권리를 좋아하면 명예나 권리 그런 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그것을 잘 해 준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 나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그와 같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러헌 경계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좋은 것을 보아도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더군다나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더 화두를 들고서 공부를 해 나가야 허는 것입니다.(10분35초~21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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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울화통(鬱火통) ; [주로 ‘치밀다’나 ‘터지다’, ‘터뜨리다’ 등과 함께 쓰여]몹시 답답하거나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것. ‘울화(鬱火)’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자발없다 ; (언행이)가볍고 참을성이 없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전호흡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3. 29. 21:56

§(521)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 내 안에 있는 써도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투자하자.

 

밖에서 무엇을 구할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써도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우리 몸 안에서 그것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우리의 몸과 목숨과 시간을 거기다 투자를 하자.

 

**송담스님(No.521)-19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에서.(용521)


약 14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만나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렵고, 그것을 실다웁게 닦기도 어렵다고 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금년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참 어려운 그러한 과제를 우리는 안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치를 하는 분이나, 또는 사업을 하는 분이나,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모든 국민이 정말 어려운 그런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잘 해나가기 위한 뚜렷한 방책도 없습니다.
우리 한 나라 안에서만의 일이라면 또 모르는데 온 세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일년을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인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여러가지로 머리를 쓰고 연구를 하고 해서 중지를 모아가지고 국책을 세워나가겠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가 나름대로 다 머리를 써야겠지만 문제는 생각할수록 어렵고 복잡할 것입니다.

우리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럴 때에 어떻게 해 가야 하느냐?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또 우주법계가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고 천가지 만가지 얽크러졌어도 그것이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여. 그 원인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말이여.
그 원인을 알지 않고서는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여. 자기 개인 일도 그렇고 가정 일도 그렇고, 사회나 모든 단체의 일도 그렇습니다.

원인을 모르고서는 세상 없이도 근복적으로 해결은 안 되는 거여.
가깝게 생각해서 사람마다 살아가다 보면 병이 나고, 병이 깊어지면은 죽게 되는데 생로병사를 면틀 못하는데, 그 병 하나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도 뭐 어디가 아프다 하면 약국에 가서 ‘어디가 아픕니다’해 가지고 약 사다 먹고 그렇게 해 가지고는,
보통 조그만한 병 같으면 몰라도 정말 깊은 병은 원인을 알아가지고 근본 치료를 해야지,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어디가 아프다’하면 금방 뭣 사먹고 지멋대로 약국에 가서 되나깨나 사다 먹어갖고는 임시는 조금 통증이 완화될는지는 모르지만 병의 뿌리는 다스릴 수가 없어.
점점 세월이 가면 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고, 처음에는 한 번 약이 듣다가 두 번, 세 번, 네 번 먹으면 차츰차츰 약성(藥性)이 발휘가 잘 안 되는 거여. 그것은 근본 치료를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건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믿어지는데, ‘모든 것이 나의 마음에서 이것이 나온 것이다’한 말은 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좀 믿어지지 않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부가 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거여.

내 한 몸에 관계되는 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와 직접 간접으로 전혀 관계없는 모든 상황도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우선 그렇게 믿어야 돼.

저 달도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서 그 달이 거가 있어 가지고 이렇게 지구를 돌면서 태양을 이렇게 돌고 있는데, 어찌 그 달이 내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느냐?

‘그건 좀 이치가 당치않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만,
저 달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저 태양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우리 지구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지구에 태어난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과 모든 식물도 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거여.

왜 그러냐? 여러분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면,
가까운 장래에 또는 먼 장래에 언젠가는 『과연 그렇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되고, 스스로 의심 없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휘양창 밝은 달이 떠 있는데, 그 달은 사실은 아무도 주인이 없어.
각자-저것은 소유권이 누구에게도 없지마는-보고 느끼는 사람 것이여, 그게.
그 달을 보고 기뻐한 사람은 자기에게는 기쁜 달의 소유자가 되는 거고, 그 달을 보고 슬퍼하는 사람은 슬픈 달로써 자기가 그 달을 소유하고 있는 거여.

태양은 뜨면은 환히 밝아지는데 해가 떠서 좋은 사람은 밝은 태양으로써의 소유자가 되는 거고, 도둑놈이나 밤에 나쁜짓을 한 사람은 해가 뜨는 것을 대단히 싫어해. 그 사람은 밝은 해의 소유자가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왜 해도 하나고, 달도 하나인데, 보는 사람마다 다 그 달이나 해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어찌 해와 달 뿐이겠습니까?
곱게 핀 한 송이 꽃도 자기가 마음이 기쁨이 있는 사람이 그 꽃을 보면 그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그 꽃에서 풍기는 향내도 좋다고 느낍니다. 그 아름다운 꽃을 보고 노래가 나오고 시가 나오고 춤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우선 어떠한 불상사가 있어서 슬픔에 잠기면 그 꽃이 조금도 곱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 꽃을 봄으로써 더 눈물이 나올 수도 있고, 잔뜩 성이 나 가지고 마음이 진심(瞋心)으로 가득차면 그 좋은 꽃도 막 짓밟아버리고, 그 꽃을 화병에다 담아놨거나 화분에다 담아놨으면 그것을 바닥에다가 메다쳐서 부셔버릴 것입니다.
이건 하나의 가까운 예들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집니다.

법적으로 소유권을 자기 앞으로 등기 이전만을 해야 자기 것이 아니여. 아무리 자기 앞에 고층 건물이 몇십 개가 있고, 땅이 수백억만 평을 자기 앞으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 자기 소유라고 허잘 것이 없어.

자기 앞으로 하나도 소유권이 없지만 마음에 탐욕심이 없고 마음이 넓고 넓어서, 무소유를 소유로 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산이 전부 자기의 소유가 되는 거고, 부는 바람도 자기 소유가 되는 것이고, 산천초목과 모든 바위들도 다 자기 소유가 되는 거고,

자기가 이뻐하는 자식만 자기 자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 유치원으로부터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모든 학생들도 다 자기 자식이 되는 것이여.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는 거여.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지마는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넉넉한 거여.

자기 앞으로 법적으로 얼마만큼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 때문에 잠을 못자고, 그것 때문에 근심이 끊어지지를 않고, 그것 때문에 가족 형제끼리 싸움질을 하고, 재판질을 하고 하는 그러한 소유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아니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정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새해를 맞이해서 「밖에서 무엇을 구할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써도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우리 몸 안에서 그것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우리의 몸과 목숨과 시간을 거기다 투자를 하자.」 이런 말씀입니다.(10분6초~23분3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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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대증요법(對症療法) ; 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기 곤란한 상황에서,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상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 열이 높을 때에 얼음주머니를 대거나 해열제를 써서 열을 내리게 하는 따위가 이에 속한다.
*약성(藥性) ; 약재나 약품의 성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참고]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制譯) 제19권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각림보살(覺林菩薩) 송(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19권)』 (여천 무비 강설 | 담앤북스) p133~142 참고.

爾時 覺林菩薩承佛威力 遍觀十方而說頌言 譬如工畵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 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 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 而有色可得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은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彼心恒不住 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 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 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 없도다.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일체 빛깔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도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도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心不住於身 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다 짓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당치않다 ; (무엇이)이치에 어그러져 합당하지 아니하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3. 26. 11:23

§(445)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하다.

 

활구참선에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을 하느냐, 용맹정진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송담스님(No.445)—1991 5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약 11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설사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해도 악업(惡業)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냐?  화두를 참구하는 참선법(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에 의해서 타성일편이  사람은 부처를 구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구하지도 않고, 누가 나를 깨닫게  주기를 바래지도 않아. 천당도 갈려고 하지 않고, 지옥도 피할려고 하지를 안 해.

천당 지옥이며 일체 그러한 바깥 경계나  경계에 대해서 끄달리지를 않기 때문에 두려워 지옥도 없는 것이고,  현혹될 천당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

 

마지막 숨이 ! 끊어질 때까지도 떠억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것이 그것이 활구 참선객이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지조(志操) 마땅히 그래야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지조와 그러한 요지부동(搖之不動) 수행력이 쌓인 사람이 지옥에  까닭도 없고,  사람은 이미 확철대오 안 했어도, 확철대오를 바래지 않아도, 확철대오   밖에는 없는 사람이여, 사람은.

 

 거둘  부처님이 나타나신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것이며, 숨을 거둘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사자(使者) 온다해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거든.

 세상에 흥망성쇠에 동요가 되지도 않고,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함으로 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도  물리쳐 버렸고, 오욕락(五欲樂)도  물리쳐 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현혹하고 좋아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거든.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의해서 수행을 해가는 사람은 부처님과 같은, 고조사(古祖師) 같은 그러한 견지(見地)에 이르기 전에는 어떤 소견(所見)  나고 공안에 대해서 무슨 소견이  난 거, 그러한 것에 착각을  가지고 방황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까짓 것을 없는 것으로  버려야 되거든.

 

 그러한 공안이나 불법(佛法) 대해서 어떤 소견 난  그런 것도 그렇지만, 계행(戒行) 철저히 지키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 맑아져 가지고 무엇이 보이는 수가 있거든.

사람을 보면 전생(前生)  사람이 소가 사람이 되었다’ ‘전생에  사람이 개가 사람이 되었다’ ‘ 사람은 전생에 천상에서 왔다 그런 것이 볼라고  해도 이렇게 보이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그거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런 경계가 나타나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마는 자기가 알라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우연히 () 맑아지니까 그런 것이 보인 것이라,

바른 법문을 듣지 못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숙명통(宿命通) 열리고, 그것이 무슨 도인(道人)이나   것처럼 착각을  가지고 어디가서 그런 아는 소리나 풀풀하고.

 

그래 가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  스님이 뭣을 훤히  아는 스님이다’ ‘ 스님은 도통했다’ ‘ 스님은 도인이다  가지고 여기서 저기서 떠받들고  갖다가 도인으로 대접을 하고 그러니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도인인  하고 아주, 그래 가지고 외도(外道)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가끔 있거든.

 

그건 자기 신세 망치고 불법 망해 먹고, 그래 가지고  점쳐 주고  가지고 그거 어디다  것이냐 그말이여. 우리 수행하는  최상승법을 믿는 학자는 ! 그런 데에 떨어져서는 아니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이 . 그렇게 되면 식이 맑아진 것은 사실이여. 그럴 때에 반드시 팔만사천 마군(魔軍)이가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엿보고 있어.

어떠한 틈만 있으면  틈을 타서 들어와 가지고 아주 도를 이루지 못하게 하리라 아주  팔만사천 마군이가 육근문두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데, 그걸 모르거든.

 

어떠한 경우에도 단속을 철저히 해서 화두 의단독로하도록만 거기에다가만  정성과 신경을 거기다가 두고  나가면 팔만사천 마군이가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엿보고 있은들,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여.

내가  생각 삐끗  생각[別念]을   좀을 타서 들어온 것이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야 지가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거든.

 

옛날에 어떤 선원에 조실(祖室) 스님이 계셨는데 후원에 나가보니까 수챗구녁에, 공양주(供養主) 솥을 씻어 가지고  구정물을 붓다가 그냥 구정물에 밥알이 떠내려 가지고 수챗구녁에 있는 것을 조실 스님이 보셨습니다.

   톨에 시주(施主) 은혜가 일곱근 반인데  쌀을 이렇게 함부로  가지고 수챗구녁에다가 버리다니 스님이 아주 화를 내셨어.

 

그러니까 도량신(道場神) 나타나 가지고 여러  동안을 내가  도량(道場) 있으면서 스님을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사 스님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거든.

 

 스님은 평소에 항상  깨달은 경지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그렇게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지내시니까 도량신도  스님을 볼라야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생각 화를 내니까  좀을 타서 도량신이  스님을 보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것은 우리가  생각 냄으로 해서 도량신뿐만이 아니라 팔만사천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  있다고 하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일화(逸話)지마는.

 

우리 불법(佛法) 믿는  참선을 하는 수행인은  ‘한 생각 단속하는 것이 기가 막히게 중요한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을 어떻게 단속을  나가느냐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느냐,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느냐 또는 해태굴(懈怠窟) 빠지냐가 판별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지옥으로 가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바로 기로(岐路),  마군이의 올가미에 걸려들고  걸려드느냐의  판가름이  생각 단속하는 데에 달려있다 그거거든.(4247~53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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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지조(志操 /절개 ) :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

*요지부동(搖之不動) ;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자극에도 움직이지 않거나 태도의 변화가 없음을 이르는 .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사자(使者 사신 / ) :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는 저승의 귀신.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樂,五慾,五欲)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견지(見地)견처(見處). 안목(眼目). 사물현상 따위를 관찰하거나 판단하는 입장.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오온(五蘊)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가르침. 또는  신봉자.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  . 육근과의 경계.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 : 시간적으로 짧은 동안에.

*별념(別念) ; ‘ 생각[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것이요,  묻는 사람이 친히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수챗구녁 ; ‘수챗구멍(허드렛물이나 빗물 따위가 빠져나가는 구멍)’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시주(施主) : ①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②절이나 스님에게 재물을 바침, 또는  사람.

*일미칠근(一米七斤) ; ‘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 수호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 않고 도량으로 읽음.

*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 대지(大智)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 깨달음. 진여(眞如)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수심결 강의) (지눌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 땅을 짚고 일어나라 - 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태(懈怠 게으를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기로(岐路 갈림길 / ) :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3. 10. 12:50

§(세등68)  가행정진(加行精進)•용맹정진(勇猛精進)이 과연 무엇이냐? / 자가철주(自家鐵柱).

 

**송담스님(세등선원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에서. (세등68)

 

약 8분.

 


조실 스님께서 아까 "불 가운데에 그 화택(火宅) 속에 있고, 사방에서 불이 타 들어오고 있고, 바로 불더미 속에 우리가 있으니 거기에서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해서 거기서 해탈(解脫)을 해야 한다"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과연 무엇이냐?
납월 팔일(臘月八日)에 - 초하룻날부터서 십이월 팔일 새벽까지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앉아서 정진을 하고, 화장실에 가는 시간만을 제외하고는 노상 앉아서 정진을 하는데, 그것을 보통 용맹정진이라 그러고, 가행정진이라 그러는데, 어찌 참다운 가행정진, 참다운 용맹정진이 어찌 옆구리를 땅에 대고 안 대고 하는 데에 걸려있겠습니까?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억지로 안 자기 위해서 장군죽비(將軍竹篦)로 치면서 - 그렇다면은 불면증이 들어서 잠 못 자는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잘 수 없는 사람은 일찌감치 견성성불(見性成佛)하지 않겠습니까? 절대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이 옆구리를 땅에 대고 안 대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여.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뭣고?’  빨래하고, 소지를 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면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한눈 팔지 아니하고,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듣는 바가 없고, 먹되 먹는 바가 없고, 걸어가되 걸어가는 바가 없어.

오직 화두(話頭) 하나만을 잡드리 해 나가되,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생각없는 생각으로 터억 의단(疑團)을 관조(觀照)해 나간다면,
저녁 9시나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난다 하드라도, 눈뜨고서는 일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오직 한 생각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잡두리 해 나가고, 잠을 10시나 9시에 취침시간이 되아서 자리에 눕되, 누워서도 계속 그 의단을 관조해 나가고 잡두리 해나가다가 언제 잠이 든중 모르게 잠이 든다 그말이여.

잠이 들어서도 꿈속에서도 화두를 - 꿈속인지 꿈이 아닌지 하여간 언제 잠이 든 중 모르게 잠이 들어서도 고대로 그 화두가 있고, 새벽에 눈을 딱! 떴을 때 새로 화두를 들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자던 그 화두가 고대로 있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나간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가행정진이요, 이것이 바로 용맹정진인 것이여.

석 달 동안 안거(安居)를 하는데 결제 때부터서 해제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
거기에 무슨 시비가 있으며, 무슨 분별이 있으며, 무슨 밥이 어떻고 반찬이 어떻고, 차가 어떻고, 옆에 사람하고 시비할 겨를이 어디가 있으며, 일체 수용(受用)은 인연(因緣)에 맡겨 버려.

밥이 되면 된 대로, 질면 진 대로, 반찬이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차를 한번 먹게 되면 한번 먹고, 두 번 먹게 되면 두 번 먹고, 그 사찰 선방의 모든 규칙에 따라서 순응(順應)하면서,
오직 자가철주(自家鐵柱), 자기 스스로에 쇠기둥과 같은 법도(法度)를 탁! 세워서 처음 시작한 날부터서 끝나는 날까지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한결같이 그렇게 잡두리를 해 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명실공히 용맹정진이요, 가행정진이 되는 것이여.

듣자니 이번에 세등선원에 결제한 모든 대중, 그리고 저기 군산에 반야선원의 대중들이 정말 산승(山僧)이 이렇게 말한 고대로 정진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이 부처님 가신 뒤 삼천 년이 되어서 말세(末世)라 할 수가 있는데, 말세에 이르러서 한국에 이 여러 군데 비구·비구니의 선방에서 이렇게 알뜰히 정진을 허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뜰히 해 가지고 일대사(一大事)를 요달하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전생(前生)에 닦은 것, 모든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라서 빨리 깨닫기도 하고 더디 깨닫기도 헐 뿐이지, 중간에 중단하지 아니하고, 중간에 사견에 빠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그렇게 열심히 해 간다면 결국은 깨닫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나무토막이 강 상류에서 강을 따라서 흘러 내려가되, 중간에 맥히지 아니하고, 양쪽 언덕에 걸리지 아니하고, 가다가 썩어버리지 아니한다면, 그 나무토막은 결정코 망망대해(茫茫大海)에 도달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한 덩어리의 나무둥치를 우리 중생의 발심(發心)한 한 수행자에다 비교한 것입니다.

출가해서 선지식을 찾아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바른 법으로 목숨 바쳐서 도를 닦아나갈 때에,
중간에 중단하지 않고, 중간에 사견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끝까지 목숨 바쳐서 수행을 한다면은 만이면 만, 천만 명이면 천만 명, 한 사람 빠짐없이 다 견성성불 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20분44초~28분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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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을 말함.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장군죽비(將軍竹篦) ; 보통 죽비(竹篦)는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약 2m의 큰 죽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잡드리(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씀.
*순응(順應) ; 상황의 변화나 주위 환경에 잘 맞추어 부드럽게 대응함.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결같은 마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망망대해(茫茫大海) ; 한없이 넓고 큰 바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