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12분.
처음에는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그래가지고 화두를 드는 법을 배워서 해 가면, 처음에는 곧잘 그런대로 되어가서 ‘이렇게 되어가면 잘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앉는데 다리가 좀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는 허지만 별로 졸음도 안 오고,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두만 자꾸 들고 나가고, 그대로 가면 ‘이거 석 달만 허면 내가 공부에 대해서 기초를 잡을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3년만 하면 내가 틀림없이 견성(見性)을 할 거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대들었는데,
과연 처음에는 졸음도 안 오고 생각만 좀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나중에 한 달을 해 가도 별로 공부가 처음 시작한 때보다 무엇이 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두 달을 해도 처음에는 졸음은 안 왔었는데 두 달쯤 허니까 졸음이 또 퍼 일어나고, 졸음에 빠졌다가 졸음에서 겨우 어떻게 정신차려서 졸음이 깰만 하면 그때는 또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망상을 실컷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는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졸음과 망상이 번갈라 가면서 일어나 가지고 도대체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지를 않고.
나중에는 울화통(鬱火통)이 터질라 허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시간이 대여섯 시간처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가만히 시계를 보면은 ‘앞으로 10분만 지내면 이제 방선(放禪)을 하겠다’하는데 그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 때 좀 답답할 때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도 좀 하고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5분이나 10분 남겨 놓고 자발없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 달•두 달•한철이 지내갑니다.
그런데 그 답답허고 지루허고 그때 그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때가 참으로 공부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고비다’하는 것을 미리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려면, 그러헌 답답허고 견디기 어려운-이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허고-그런 고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애기를 길러 본 경험이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갓난 애기를 길러 보면 무럭무럭 젖 잘 먹고 잘 크다가 설사병이 나기도 하고 어디 병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병을 앓고 나면 살은 좀 빠지지만 그전에 아니 하던 새로운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재롱을 피우게 되기도 하고, 뭐 이상한 귀여운 짓을 하게 되고, 또 말을 그동안에 한마디도 못하던 애기가 무슨 말도 한마디씩 허기도 허고 그러는데. 병치레하고 나면 푹 크거든. 한 치 가량 푹 크면서, 살은 빠지면서 키는 크고 그러면서 재롱은 늘고 그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사업을 할 때나, 학문을 하거나 또 이런 참선을 헐 때에도, 한 고비 올라서려고 헐 때에는 반드시 그런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공부가 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고비를 만났을 때, 조금도 그것을 짜증을 내거나 ‘내가 이 공부가 안 될려고 업(業)이 두터워서 이 공부 못할 징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이건 공부를 허다 보면 한 계단 올라설려고 할 때에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그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단전호흡을 허면서, 짜증이나 또는 물러서려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서,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 고비를 잘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앉기도 수월하고 공부허기도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부가 수월하게 잘 들리고 화두가 잘 들린다 해서 또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가 쉬운데 그 좋아하는 마음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지어가면 우리 공부허는 사람의 주변에는 항시 마군(魔軍)이가 와서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왜 마군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하면 공부를 해서 도(道)를 이루게 되면 마군이가 살 자리가 영토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법도(法度)가 있어서 잘 해 나가면 도둑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듯이, 나라가 법이 문란해지고 경찰이나 군인이나 이런 힘이 모다 분열이 되어가지고 힘이 타락되어 가지고 힘이 없어지면, 곳곳에 깡패가 득실거리고 도둑이 일어나고 그래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모다 법률에 기강이 서고 그러면 도둑이나 깡패나 모다 사기꾼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둑이나 깡패나 그런 못된 사람들은 나라가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군이들도 역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마군이들도 한 수행인이 공부를 열심히 허면 그래가지고 그이가 도(道)를 통하게 되면 자기네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항시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으로도 들어오고, 귀로도 들어오고, 코나 입으로도 들어오고, 몸뚱이로도 들어오고, 생각을 통해서도 들어와서, 그 육근문두에 항시 마군이가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그 ‘한 생각’에 마군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안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 그 틈을 타서 강도나 절도가 들어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집안 문단속을 잘 하면 그런 도둑이 엿보지를 못하겠지만, 도둑은 항시 그런 틈 나오기를 이모저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들어오고, 그 주인이 잘 단속을 해도 영리한 도둑은 일부러 그 틈을 맨들어 가지고 갖은 수단을 부려 가지고 틈을 내도록 한눈을 팔도록 맨들어 가지고 들어오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점을 명심을 하고,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들어올 때에, 마군이가 나를 유혹할 때에는 언제라도 나의 뜻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한 탈을 쓰고 나에게 접근을 해 온다는 사실. 사기꾼이 어떤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는 흉악한 그러헌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지 아니하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나에게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돈벌이가 잘된다고 유혹을 하고, 그이가 색(色)을 좋아하면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유혹을 하고, 명예나 권리를 좋아하면 명예나 권리 그런 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그것을 잘 해 준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 나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그와 같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러헌 경계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좋은 것을 보아도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더군다나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더 화두를 들고서 공부를 해 나가야 허는 것입니다.(10분35초~21분45초)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울화통(鬱火통) ; [주로 ‘치밀다’나 ‘터지다’, ‘터뜨리다’ 등과 함께 쓰여]몹시 답답하거나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것. ‘울화(鬱火)’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자발없다 ; (언행이)가볍고 참을성이 없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전호흡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521)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 내 안에 있는 써도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투자하자.
〇밖에서 무엇을 구할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써도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우리 몸 안에서 그것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우리의 몸과 목숨과 시간을 거기다 투자를 하자.
**송담스님(No.521)-19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에서.(용521)
약 14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만나기도 어렵고, 믿기도 어렵고, 그것을 실다웁게 닦기도 어렵다고 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금년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참 어려운 그러한 과제를 우리는 안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치를 하는 분이나, 또는 사업을 하는 분이나,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모든 국민이 정말 어려운 그런 한 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잘 해나가기 위한 뚜렷한 방책도 없습니다. 우리 한 나라 안에서만의 일이라면 또 모르는데 온 세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또 일년을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인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여러가지로 머리를 쓰고 연구를 하고 해서 중지를 모아가지고 국책을 세워나가겠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가 나름대로 다 머리를 써야겠지만 문제는 생각할수록 어렵고 복잡할 것입니다.
우리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럴 때에 어떻게 해 가야 하느냐?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또 우주법계가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고 천가지 만가지 얽크러졌어도 그것이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여. 그 원인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말이여. 그 원인을 알지 않고서는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여. 자기 개인 일도 그렇고 가정 일도 그렇고, 사회나 모든 단체의 일도 그렇습니다.
원인을 모르고서는 세상 없이도 근복적으로 해결은 안 되는 거여. 가깝게 생각해서 사람마다 살아가다 보면 병이 나고, 병이 깊어지면은 죽게 되는데 생로병사를 면틀 못하는데, 그 병 하나를 다스리는데 있어서도 뭐 어디가 아프다 하면 약국에 가서 ‘어디가 아픕니다’해 가지고 약 사다 먹고 그렇게 해 가지고는, 보통 조그만한 병 같으면 몰라도 정말 깊은 병은 원인을 알아가지고 근본 치료를 해야지,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어디가 아프다’하면 금방 뭣 사먹고 지멋대로 약국에 가서 되나깨나 사다 먹어갖고는 임시는 조금 통증이 완화될는지는 모르지만 병의 뿌리는 다스릴 수가 없어. 점점 세월이 가면 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고, 처음에는 한 번 약이 듣다가 두 번, 세 번, 네 번 먹으면 차츰차츰 약성(藥性)이 발휘가 잘 안 되는 거여. 그것은 근본 치료를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건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믿어지는데, ‘모든 것이 나의 마음에서 이것이 나온 것이다’한 말은 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좀 믿어지지 않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부가 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거여.
내 한 몸에 관계되는 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와 직접 간접으로 전혀 관계없는 모든 상황도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우선 그렇게 믿어야 돼.
저 달도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서 그 달이 거가 있어 가지고 이렇게 지구를 돌면서 태양을 이렇게 돌고 있는데, 어찌 그 달이 내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느냐?
‘그건 좀 이치가 당치않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만, 저 달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저 태양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우리 지구도 우리의 마음에서 나왔고, 지구에 태어난 모든 사람과 모든 동물과 모든 식물도 다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거여.
왜 그러냐? 여러분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면, 가까운 장래에 또는 먼 장래에 언젠가는 『과연 그렇구나!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되고, 스스로 의심 없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휘양창 밝은 달이 떠 있는데, 그 달은 사실은 아무도 주인이 없어. 각자-저것은 소유권이 누구에게도 없지마는-보고 느끼는 사람 것이여, 그게. 그 달을 보고 기뻐한 사람은 자기에게는 기쁜 달의 소유자가 되는 거고, 그 달을 보고 슬퍼하는 사람은 슬픈 달로써 자기가 그 달을 소유하고 있는 거여.
태양은 뜨면은 환히 밝아지는데 해가 떠서 좋은 사람은 밝은 태양으로써의 소유자가 되는 거고, 도둑놈이나 밤에 나쁜짓을 한 사람은 해가 뜨는 것을 대단히 싫어해. 그 사람은 밝은 해의 소유자가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왜 해도 하나고, 달도 하나인데, 보는 사람마다 다 그 달이나 해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어찌 해와 달 뿐이겠습니까? 곱게 핀 한 송이 꽃도 자기가 마음이 기쁨이 있는 사람이 그 꽃을 보면 그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그 꽃에서 풍기는 향내도 좋다고 느낍니다. 그 아름다운 꽃을 보고 노래가 나오고 시가 나오고 춤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우선 어떠한 불상사가 있어서 슬픔에 잠기면 그 꽃이 조금도 곱고 아름답게 느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 꽃을 봄으로써 더 눈물이 나올 수도 있고, 잔뜩 성이 나 가지고 마음이 진심(瞋心)으로 가득차면 그 좋은 꽃도 막 짓밟아버리고, 그 꽃을 화병에다 담아놨거나 화분에다 담아놨으면 그것을 바닥에다가 메다쳐서 부셔버릴 것입니다. 이건 하나의 가까운 예들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집니다.
법적으로 소유권을 자기 앞으로 등기 이전만을 해야 자기 것이 아니여. 아무리 자기 앞에 고층 건물이 몇십 개가 있고, 땅이 수백억만 평을 자기 앞으로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 자기 소유라고 허잘 것이 없어.
자기 앞으로 하나도 소유권이 없지만 마음에 탐욕심이 없고 마음이 넓고 넓어서, 무소유를 소유로 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산이 전부 자기의 소유가 되는 거고, 부는 바람도 자기 소유가 되는 것이고, 산천초목과 모든 바위들도 다 자기 소유가 되는 거고,
자기가 이뻐하는 자식만 자기 자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 유치원으로부터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모든 학생들도 다 자기 자식이 되는 것이여.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는 거여.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지마는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넉넉한 거여.
자기 앞으로 법적으로 얼마만큼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 때문에 잠을 못자고, 그것 때문에 근심이 끊어지지를 않고, 그것 때문에 가족 형제끼리 싸움질을 하고, 재판질을 하고 하는 그러한 소유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아니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정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새해를 맞이해서 「밖에서 무엇을 구할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써도써도 다함이 없는 누가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한 보물을 우리 몸 안에서 그것을 개발을 하는 사업에 우리의 몸과 목숨과 시간을 거기다 투자를 하자.」 이런 말씀입니다.(10분6초~23분32초)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대증요법(對症療法) ; 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기 곤란한 상황에서,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상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 열이 높을 때에 얼음주머니를 대거나 해열제를 써서 열을 내리게 하는 따위가 이에 속한다. *약성(藥性) ; 약재나 약품의 성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들이다'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은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다 짓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당치않다 ; (무엇이)이치에 어그러져 합당하지 아니하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조실 스님께서 아까 "불 가운데에 그 화택(火宅) 속에 있고, 사방에서 불이 타 들어오고 있고, 바로 불더미 속에 우리가 있으니 거기에서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해서 거기서 해탈(解脫)을 해야 한다"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과연 무엇이냐? 납월 팔일(臘月八日)에 - 초하룻날부터서 십이월 팔일 새벽까지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앉아서 정진을 하고, 화장실에 가는 시간만을 제외하고는 노상 앉아서 정진을 하는데, 그것을 보통 용맹정진이라 그러고, 가행정진이라 그러는데,어찌 참다운 가행정진, 참다운 용맹정진이 어찌 옆구리를 땅에 대고 안 대고 하는 데에 걸려있겠습니까?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억지로 안 자기 위해서 장군죽비(將軍竹篦)로 치면서 - 그렇다면은 불면증이 들어서 잠 못 자는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잘 수 없는 사람은 일찌감치 견성성불(見性成佛)하지 않겠습니까?절대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이 옆구리를 땅에 대고 안 대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여.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뭣고?’ 빨래하고, 소지를 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면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한눈 팔지 아니하고,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보되 본 바가 없고, 듣되 듣는 바가 없고, 먹되 먹는 바가 없고, 걸어가되 걸어가는 바가 없어.
오직 화두(話頭) 하나만을 잡드리 해 나가되,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생각없는 생각으로 터억 의단(疑團)을 관조(觀照)해 나간다면, 저녁 9시나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난다 하드라도, 눈뜨고서는 일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오직 한 생각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잡두리 해 나가고,잠을 10시나 9시에 취침시간이 되아서 자리에 눕되, 누워서도 계속 그 의단을 관조해 나가고 잡두리 해나가다가 언제 잠이 든중 모르게 잠이 든다 그말이여.
잠이 들어서도 꿈속에서도 화두를 - 꿈속인지 꿈이 아닌지 하여간 언제 잠이 든 중 모르게 잠이 들어서도 고대로 그 화두가 있고,새벽에 눈을 딱! 떴을 때 새로 화두를 들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자던 그 화두가 고대로 있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나간다 그말이여.이것이 바로 가행정진이요, 이것이 바로 용맹정진인 것이여.
석 달 동안 안거(安居)를 하는데 결제 때부터서 해제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잡드리를 해 나가. 거기에 무슨 시비가 있으며, 무슨 분별이 있으며, 무슨 밥이 어떻고 반찬이 어떻고, 차가 어떻고, 옆에 사람하고 시비할 겨를이 어디가 있으며, 일체 수용(受用)은 인연(因緣)에 맡겨 버려.
밥이 되면 된 대로, 질면 진 대로, 반찬이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차를 한번 먹게 되면 한번 먹고, 두 번 먹게 되면 두 번 먹고, 그 사찰 선방의 모든 규칙에 따라서 순응(順應)하면서, 오직 자가철주(自家鐵柱), 자기 스스로에 쇠기둥과 같은 법도(法度)를 탁! 세워서 처음 시작한 날부터서 끝나는 날까지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한결같이 그렇게 잡두리를 해 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명실공히 용맹정진이요, 가행정진이 되는 것이여.
듣자니 이번에 세등선원에 결제한 모든 대중, 그리고 저기 군산에 반야선원의 대중들이 정말 산승(山僧)이 이렇게 말한 고대로 정진을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이 부처님 가신 뒤 삼천 년이 되어서 말세(末世)라 할 수가 있는데, 말세에 이르러서 한국에 이 여러 군데 비구·비구니의 선방에서 이렇게 알뜰히 정진을 허고 있습니다.이렇게 알뜰히 해 가지고 일대사(一大事)를 요달하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전생(前生)에 닦은 것, 모든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라서 빨리 깨닫기도 하고 더디 깨닫기도 헐 뿐이지, 중간에 중단하지 아니하고, 중간에 사견에 빠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그렇게 열심히 해 간다면 결국은 깨닫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나무토막이 강 상류에서 강을 따라서 흘러 내려가되, 중간에 맥히지 아니하고, 양쪽 언덕에 걸리지 아니하고, 가다가 썩어버리지 아니한다면, 그 나무토막은 결정코 망망대해(茫茫大海)에 도달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한 덩어리의 나무둥치를 우리 중생의 발심(發心)한 한 수행자에다 비교한 것입니다.
출가해서 선지식을 찾아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바른 법으로 목숨 바쳐서 도를 닦아나갈 때에, 중간에 중단하지 않고, 중간에 사견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끝까지 목숨 바쳐서 수행을 한다면은 만이면 만, 천만 명이면 천만 명, 한 사람 빠짐없이 다 견성성불 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20분44초~28분40초)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을 말함.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장군죽비(將軍竹篦) ; 보통 죽비(竹篦)는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약 2m의 큰 죽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잡드리(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씀. *순응(順應) ; 상황의 변화나 주위 환경에 잘 맞추어 부드럽게 대응함.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결같은 마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망망대해(茫茫大海) ; 한없이 넓고 큰 바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287)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라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깨달음은 갈 곳이 없는 것 / 오후보림(悟後保任).
〇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는 것을 문제 삼지 말아라. 다맛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는 것’ 그것뿐인 것입니다.
〇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라, 꾸준히 그리고 올바르게만 해 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것이.
**송담스님(No.287) - 1986년 2월 첫째일요법회(86.02.02). (용287)
약 5분.
'자유자재다, 해탈이다'하는 것이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사(生死)에 자유자재, 또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전부 우리의 일념(一念)을 두고 하는 것이고, 일념을 잘 단련을 하고 일념을 갖다가 돌이켜서 그놈을 갖다가 단속을 하는 가운데에 생사 자유의 이치,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이라 하면, 무엇이 매우 어디 깊은 데가 있고 높은 데가 있고, 그래 가지고 어려워서 도저히 우리 범부(凡夫) 중생은 손이 닿는 것이 아니고 해 봤자 되지도 않는 것이다. 이리 겁을 집어먹고 그 자꾸 자포자기를 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최상승법이야말로 우리 중생심, 중생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고 하는 것은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깨달음은 갈 곳이 없는 것이지, 뭐 금방 오늘 툭 깨쳤다고 해서 그러면 다 일이 끝났냐 하면 그게 아니거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한 것은 겨우 어린아이 낳아 놓은 거와 같다. 어린아이는 낳아놔서 분명히 그것도 이목구비가 다 있고 사람이지만,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또 이 옷을 입히고 가리키고 해서 제 앞을 꾸릴 만큼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라고 하는 권리를 인증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달랐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우리의 수도(修道)가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에 의해서 잘 보림(保任) 공부를 해서, 그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쓸 수가 있게 되어야 그래야 비로소 도인(道人)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깨달라 가지고 오후보림(悟後保任)을 안 하고 등한(等閒)히 하나, 더디 깨달라도 깨달을 때까지 그 공력을 들여서 정진을 해 놓은 사람은 깨달은 뒤에 오후보림 공부가 벌써 깨닫기 전에 많이 다 숙달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는 것을 문제 삼지 말아라. 다맛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올바르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는 것’ 그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께서도 ‘마음을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빨리 깨달을려고 하는 그런 조급한 생각을 내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누누이 하신 것입니다. 생각을 내 가지고 빨리 깨달을려고 급한 생각 낸 것이야말로 깨달음을 더디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꾸준히 그리고 올바르게만 해 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것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인데. 생각만 공연히 조급한 생각을 내 가지고 올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건 깨달음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46분34초~50분57초)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깨달음은 갈 곳이 없는 것이지, 뭐 금방 오늘 툭 깨쳤다고 해서 그러면 다 일이 끝났냐 하면 그게 아니거든. 확철대오를 한 것은 겨우 어린아이 낳아 놓은 거와 같다.
어린아이는 낳아놔서 분명히 그것도 이목구비가 다 있고 사람이지만,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또 이 옷을 입히고 가리키고 해서 제 앞을 꾸릴 만큼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라고 하는 권리를 인증 받게 되는 것입니다' ; 오후보림, 장양성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부처[眞佛]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묵조(黙照)는 시귀굴(是鬼窟)이요. 묵묵히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이 귀신의 굴택(窟宅)이요. 문자(文字)는 역조강(亦糟糠)이다. 문자•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은 이것은 다 찌꺼기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허되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허면서,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허도록 잡드리를 해 나가야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는 이것은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해 가지고, 아무리 평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허드라도 이것은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오신통(五神通)이 난다 허드라도 이것은 정법(正法)이 아니고 외도선(外道禪)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經典)이라 하더라도, 경전을 우리의 중생 분별심으로 사량•분별로 이리저리 따져서 해석을 허고 있다면, 그것은 곡식의 바른 알곡을 먹지를 못하고, 그 찌꺼기를 씹고 있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도 그 경전을 바로 읽고, 바로 봐서 부처님의 참뜻을 옳게 깨달라야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따지고 문자로 그것을 분석해서 그렇게 일생 동안을 경을 읽고 연구를 헌다해도, 그것은 찌께기-엿 국 다 뽑아내고 엿기름 찌께기를, 그것은 돼지나 주는 것인데-그것을 갖다가, 엿 국물은 받아서 구정물 통에 붓어 버리고 그리고 그 엿밥, 찌께기를 먹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이면, 그렇다면은 묵조(默照)도 아니오 문자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라면은, 그렇다면은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종지(宗旨)가 무엇이냐?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것은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 ‘무슨 목적으로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허고 묻는다면은,
방(棒)을 내리기를, 방맹이로 몽둥이질을 허기를 비 쏟아지듯이 몽둥이질을 허리라(棒行如雨滴). ‘그 무슨 공부를 허느냐? 그대가 하는 공부의 지취(旨趣)가 무엇이냐?’고 묻다가 뭇매를 맞게 된다 이것입니다.
어째서 ‘그대의 공부허는 종지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방맹이를 맞게 되느냐? 여러분이 참선을 열심히 허시게 되면 이 뜻을 스스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74분15초~79분45초)
*(게송)‘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 ; [청허당집(清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게송 참고. *굴택(窟宅) ; 거처, 집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오신통(五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②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③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④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⑤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94-95 참조.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엿 국물(엿물) ;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에 자루에 넣어 짜낸 국물. 맛이 달고 끈적끈적하다. 엿 국물을 고아 굳힌 것이 우리가 보통 먹는 ‘엿’이다. *엿밥 ; 엿을 만들 때 엿물을 짜낸 밥찌끼. *종지(宗旨) ; 주요한 뜻. *지취(旨趣) ; ①어떤 일에 대한 깊은 맛. 또는 그 일에 깃들여 있는 묘한 뜻. ②어떤 일에 대한 기본적인 목적이나 의도.
이런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末世)라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 이렇게 말씀을 해 왔지마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正法)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정법시대를 만난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고 도업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 맺음
아까 시작할 때에 읊은 <원앙수출은 종교간(鴛鴦繡出從教看)이어니와 불파금침 도여인(不把金針渡與人)이라.>하는 것은, “원앙새 수놓은 것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지마는 원앙새 수놓은 그 바늘은 여러분에게 줄 수는 없다” 이러한 내용의 게송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얘기해 드릴 수 있지마는 깨달음 그 자체는 여러분에게 줄 수가 없다. 깨달음은 여러분 자신이 깨달을 수밖에는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처님으로서도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실천을 통해서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금생에 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허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허리라
<금생에 약불종사어허면>, 금생에 오늘 이 자리에서 들으신 말씀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내세에 당연한만단허리라>, 내생에 지옥에 떨어져 가지고 “아! 그때에 열심히 참선을 안 해서 이렇게 지옥에 떨어졌다!” 하고 아무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러한 내용의 게송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더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여러분들도 더 자세한 것을 듣고자 하시겠지마는 오늘은 시간 관계상 이것으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끝)(84분20초~90분30초)
回 이 법어는 송담(松潭)스님께서 1978년 10월 1일, 「법련사 불일 청년회」의 청법으로 설하신 내용이며, 스님께서 직접 편집하신 것을 『불일회보』(1988년 6. 7. 8월)에 게재했었던 원고임.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삼시(三時) ; 붓다가 입멸한 후 불법(佛法)의 성쇠를 나타내는 시대 구분. (1)정법(正法). 불법이 바르게 행해져 가르침과 수행자와 깨달음을 이루는 자가 있는 시기. (2)상법(像法). 정법과 비슷하다는 뜻. 가르침과 수행자는 있어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가 없는 시기. (3)말법(末法). 불법이 쇠퇴하여 오직 가르침만 있고 수행자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시기. 각각의 기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흔히 정법은 500년, 상법은 1,000년, 말법은 10,000년이라 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해제가 지난 음력 대보름에 끝나고, 오늘이 벌써 열흘째 되었습니다. 앞으로 4월15일, 여름결제 때까지는 80일 가량이 남아 있습니다. 그 동안에 춥도 덥지도 않는 이러한 좋은 계절을 이용을 해서 산철 결제를 해 가지고 또 열심히 정진을 할려고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단히 갸륵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정진(精進)이라 하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덜 자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고, 묵언(默言)을 해 가지고 말을 않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다든지, 또는 아침밥을 안 먹는다든지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해 가지고 밥을 적게 먹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다든지, 요새 무슨 그런 잠 안자는 거, 밥 안먹는 거, 말 안하는 거, 그러한 것을 정진으로 삼는 분은 안 계시겠지만,
좀더 알뜰히 공부하기 위해서,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혹 잠을 1~2시간씩 덜 자 보기도 하고, 말도-입을 열었다 하면 쓸데없는 말이 나오게 되고 시비(是非)에 참견하게 되고 그러니까, 그러한 뜻에서 묵언도 하고 또 가행정진(加行精進)도 하고 그러하신 걸로 생각을 할 때에,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마는, 말을 아니한 것보다는, 필요한 말 한마디 딱 해 버리고 또 화두를 들고 차라리 그것이 낫지, 아주 묵언을 하면 꼭 해야할 말을 아니하니까, 자연히 필답(筆答)으로 말하게 되고, 손짓으로 의사를 소통하게도 되고 하니 더 복잡하게 되고 답답하다 이 말씀이여.
조금이라도 공부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잠을 덜 자고 가행정진 하는 것 대단히 좋지만, 가행정진을 한다 해 가지고 잠을 적게 자 놓으면 그 이튿날 오히려 낮 정진할 때에 혼침에 빠지기가 쉬웁다고 볼 때에, 차라리 5시간이나 6시간 푹 자 주고, 그 대신 그 이튿날 성성(惺惺)하게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도 보는 것입니다.
아침을 굶는다든지 또는 저녁을 굶는다든지 또는 단식을 한다든지, 이래 가지고 ‘정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이러한 생각을 가진 것 대단히 참 일리(一理)가 있지만, 차라리 세 때를 너무 적게 먹지도 않고 너무 과식하지도 않고 잘 저작(咀嚼)을 해서 적당히 먹고서, 원기(元氣)를 차려서 그래 가지고 정진을 알뜰히 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고 효과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진(精進)이라 하는 것은, 바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자기를 깨달은 사람만이 정진은 옳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산대사께서도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다.’ ‘마음을 미(迷)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다맛 무명(無明)만 더 치성(熾盛)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정진심(精進心)을 일으킨 것은 벌써 바른 정진이 아니다. 정진심-오늘부터서 잠을 2시간씩 덜 자리라, 밥을 한끼씩을 덜 먹고 하리라, 묵언을 하리라, 오늘부터서는 가행정진을 하리라, 좀더 열심히 하리라-이러한 정진할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벌써 정진에서 탈선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바로 정진한 것인고? 당체(當體)가 변적(便寂)이다. 당체가 문득 공(空)한 것이다. 당체가 변시(便是)다.
당체(當體)! 눈으로 보는 놈, 귀로 듣는 놈, 코로 맡은 놈, 혀로 맛보는 놈, 손으로 만질 때 춥다 더웁다 부드럽다 깔끄럽다. 그 당체가 문득 고요해야 한다. 당체가 문득 이놈이다.
눈으로 볼 때 ‘이무엇고?’, 귀로 들을 때 ‘이무엇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이무엇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앉았을 때, 섰을 때, 걸어갈 때, 차를 탈 때, 음식을 먹을 때, 일을 할 때, 말을 들을 때, 말을 할 때, 일체처 일체시에 무엇을 하든지 간에, 바로 당체가 변적(便寂)으로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간다면, 잠을 덜 잘라고 할 것도 없고, 잠을 더 잘라고 할 것도 없고, 밥을 더 먹을라 할 것도 없고, 덜 먹을라 할 것도 없고, 말을 하느니 말을 안 하느니, 거기에 무슨 그러한 군더더기 생각을 일으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진하는 사람은 스스로 시비심(是非心)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시비를 일으켜 가지고 그 시비 속에 자기가 말려들어가 가지고, 그래 가지고 마음이 불안하고 짜증이 나고 불평과 불만이 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한테 시비를 걸어와도 내가 거기에 끄달리지 아니해야 수행인이거늘, 자기가 자기 속으로 공연히 시비를 일으켜 가지고, 자기가 그 시비의 물결 속에 휘말려 들어가 가지고, 그 원망을 남에게 갖다가 하고, 그 원인을 남에게 갖다가 전가(轉嫁)를 시키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서야 어찌 최상승 참선객(參禪客)이라 하겠습니까?
어느 선방이 좋다, 어느 사람이 좋다, 어느 사람은 나쁘다, 어떠한 사람하고는 내가 같이 공부를 아니하리라, 어떤 사람하고 같이 하면 좋다, 이러한 생각들이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너무나도 소승적인-최상승 활구참선을 하는 최상승 활구참선객답지 못한-그러한 생각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라도 어떠한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최상승적이어야 하고, 최상승 참선객다웁게 살아가야 하고 공부를 해 가야만 될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명색(名色)이 활구참선을 한다는 사람이, 마음자세가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너무나도 소승적(小乘的)인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아무리 해 봤자 공부에는 조금도 진취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는 (마음)자세부터 바로잡어버려. 그렇다면은 차 가운데도 좋고, 장바닥도 좋고, 산중(山中)도 좋고, 도시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고요한 데만 찾고, 편한 데만 찾고, 일 없는 데만 찾아서 공부하면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지고, 오히려 해태(懈怠)에 빠지고, 조그마한 일에도 시비(是非)가 일어나고 짜증이 나고 이럴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대승적이고 최상승적인 그러한 자세를 가질 때는, 눈으로 무슨 색상이 나타나도 상관이 없고, 귀에 어떠한 온갖 소리, 사람소리, 짐승소리, 어떠한 기계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들린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며, 오히려 그러한 소리가 내 귀에 울림으로써 그것을 계기로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화두를 거각하고 생각을 새롭게 가다듬는다면, 오히려 그러한 색상 그러한 음성이 없는 것보단 더 나을 것입니다.
최상승 참선을 하는 사람은 ‘니가 주인이다 내가 주인이다, 니가 객이고 나는 주인이다’, 그런 주객-주관, 객관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다, 대상이다’, 그러한 것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객 또는 나다, 대상이다’ 이러한 소견, 이러한 생각이 결국은 나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육도윤회(六途輪廻)로 나를 끌어가고야만 말게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날 때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이뭣고?’, 누가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나는 ‘이뭣고?’, 누가 나를 비평하고 나의 흠처(欠處)를 말을 하고 비방을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속이 상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뭣고?’
이렇게 화두로써 의단(疑團)으로써, 나를 다스리고 모든 것을 다스려 나갈 때 주객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거기에는 주(主)와 객(客)이 없기 때문에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나’ 찾는 선불장(選佛場)이 되는 것이고, 이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은 나를 위한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이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법문(法門)일 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비로자나불을 친견하고 눈을 떠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을 친견할 때에, 꿈에 부처님만 보고 꿈에 스님만 봐도 업장(業障)이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는데, 현실세계에 있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불보살을 친견하고 불보살의 법문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어디에 육도(六道)가 있으며 어디에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가 있겠습니까?
팔만사천 마군이는 나의 팔만사천 번뇌(煩惱), 나의 일신상(一身上)에서 일어나는 팔만사천 번뇌가 돌아서 나한테로 되돌아올 때에 그것은 마군이로써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념(一念)이 불생(不生)하면 팔만사천 마군이는 자취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아 가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23분33초~40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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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精進) ; 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불교] 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옳고 그름.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일상생활보다도 좌선정진(坐禪精進)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함. *필답(筆答) ; 글로 써서 대답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당체(當體) ; 본체(本體). 참 이치.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 *전가(轉嫁 돌릴 전, 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선객(參禪客)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소승적(小乘的) ; 작은 일에 얽매이는. 또는 개인의 이익이나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무사안일(無事安逸) ; ①아무런 일이 없이 편안하고 한가함. ②일을 쉽게 생각하고, 편안하게만 처리하려는 태도.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흠처(欠處 모자랄 흠,머무를 처) ; 잘못되거나 완전하지 못한 점.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참고 -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 ‘일념(一念)이 불생(不生)하면’ ; [참고]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見境心不起) 나지 않는다고 이름하고(名不生),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不生名無念), 무념을 해탈이라 하느니라(無念名解脫).(선가귀감 四四, p103에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안거(安居편안할안/있을거) ; ①인도의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간우기(雨期)때에외출하면풀이나나무,작은곤충을모르고밟아죽일까두려워했고그래서동굴이나사원에들어가서수행에전념했다. 이것을우안거(雨安居)라고한다. ②선종(禪宗)에서는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다음해 1월 15일까지를동안거(冬安居)라고해서각각 90일간사원에서외출을금지하고안주하여오로지좌선을중심으로한수행에전념한다. 처음을결제(結制)라하고끝을해제(解制)라한다.
*결제(結制맺을결/만들•법도제) ; 안거(安居)에들어감. 하안거는음력 4월 15일에들어가며, 동안거는음력 10월 15일에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