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삼요)'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9.03.28 §(세등41) (게송)무한심중사~ / 소요 스님의 위법망구 / 진발심(眞發心),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을 일시에 돈발(頓發)하라 / 공양하는 법.
  2. 2018.11.01 §(183) (게송)무변찰해허명경~ / 올바른 믿음 / 분심, 사리불과 아나율의 일화 / 조는 사람 눈구녘을 쑤셔 버린다 / 자기 속으로부터의 분심.
  3. 2018.05.06 §(578) (게송)춘종동해남비석~ / 참선은 모름지기 대신근(大信根), 대분지(大墳志), 대의단(大疑團),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한다.
  4. 2018.02.07 §(356) (게송)금강보검의천한~ / 활구참선을 해야 / (게송)증위탕자편련객~ / 삼요 / 부처님 인행(因行) 때의 열반경 설화 / (게송)여래증열반~ / 위법망구의 정진.
  5. 2017.05.28 §(627)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중생이 곧 부처니, 바로 나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 번뇌가 곧 보리(菩提)이니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6. 2017.01.03 §(465) 영훈선사와 귀종선사 / 깨달은 것과 아는 것 / (게송)시비해리횡신입~ / 선재동자 /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신심 / 立志發願.
  7. 2016.06.15 §(712)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신심·분심·의심 삼요(三要) / ‘이뭣고?’화두가 화두의 근본 / 진정신심(眞正信心)을 발해야.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발해야.
  8. 2015.10.26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 (게송)광명적조변하사~ / (게송)단제번뇌중증병~.
  9. 2015.08.09 §(560) (게송)사중구의원~ / ‘이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신심 / 선원(禪院)에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
  10. 2015.07.01 §(256) (게송)좌간백운청수성~ / 사리불의 부정식(不淨食)과 아나율의 졸음 / 사리불과 아나율의 결심 / 권아라한(權阿羅漢).
신심(삼요)2019. 3. 28. 10:59

 

 

§(세등41) (게송)무한심중사~ / 소요 스님의 위법망구 / 진발심(眞發心),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을 일시에 돈발(頓發)하라 / 공양하는 법.

 

**송담스님(세등선원No.41)—임술년 동안거 결제 법어(82.10.17) (세등41)

 

(1) 약 18분.

(2) 약 20분.

 

(1)------------------

 

무한심중사(無限心中事)를  평생설향수(平生說向誰)오

나무~아미타불~

양춘탄일곡(陽春彈一曲)한디  송월만창시(松月滿窓時)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한심중사(無限心中事)를  평생설향수(平生說向誰)오. 한없는 마음 가운데 일을 평생에 누구를 향해 설할꼬?

양춘(陽春)에 탄일곡(彈一曲)하니, 양춘(陽春)에 한 곡조를 타는데,

송월(松月)이 만창시(滿窓時)로구나.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창에 가득한 때로구나.

 

 

오늘은 임술년 10월 17일 세등선원 동안거(冬安居) 결제일입니다. 세등선원 삼동 결제뿐만이 아니라, 군산 흥천사 반야선원 동안거 결제도 이 자리에서 동시에 갖게 되었습니다. 그 먼 데에서 대중과 신도님네들이 이 법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고(故)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혜가(慧可) 대사가 달마(達摩) 스님을 찾아가서 눈 속에, 눈이 허리까지 찰 때까지 달마 스님 계신 굴 앞에서 달마 스님의 법(法)을 듣기 위해서 서 있다가 마침내는 신(信)을 보이기 위해서 팔을, 자기 손으로 자기의 팔을 잘라서 바쳤습니다.

 

그래 가지고 달마 스님의 법(法)을 이은 법문과 또 우리나라 이조 때 서산(西山) 큰스님 밑에 소요(逍遙) 스님이 대강사로 삼 년 동안을 능엄경 한 토씩을 배우면서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서산 스님 밑에 수행을 하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서산 스님을 하직하고 떠날 때에 서산 스님이 주신 때묻은 공책 하나를 가지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대관절 그 공책에 무슨 글이 쓰여 있기에 이것을 주셨나?'

 

3년을 위법망구적으로 서산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참선(參禪)은 가리켜 주지도 않고, 화두(話頭) 한마디도 일러주지 아니하고, 다 알고 있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능엄경을 하루에 글자 넉 자씩만 배우라 하니 삼 년이란 세월이 너무 지루하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법(法)인가 보다. 이렇게 하다 보면은, 내가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나에게 화두도 일러주실 것이고, 참선하는 법을 가리켜 주실 것이다' 이리 생각을 하고, 다 알고 있는 거지만 참고 참으면서 3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지냈습니다.

3년이 지낸 뒤에는 도저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래서 퇴태심(退怠心)이 나 가지고, 말하자면 반감이라고 할까, 배신이라고 할까, 퇴태심이 나 가지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공책을 열어 보니,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그 게송을 읊으시기만 하고 그 게송의 뜻은 해설을 해 주시지 아니했기 때문에 간단히 그 게송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 우습구나, 소를 탄 자여.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로구나. 소를 타고서 소를 찾고 있구나.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야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니라.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물 가운데 버큼을 녹일지니라.

 

허허 참 우습구나.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고 있구나.

'내 소가 어디가 있는가?'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고 있구나.

그것은 여러분들도 '아! 그 무슨 뜻이로구나' 상식적으로 가남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아는 것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3년 동안을 위법망구적으로, 저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그러한 신심으로 3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서산 스님 밑에서 능엄경 넉 자씩을 배우면서 그 일심으로 지낸 그러한 신심 끝에 그 글을 보니까 소요 스님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맨 처음부터 그 글을 봤다고 해서 터질 리가 없습니다.

 

소요 스님은 그 글을 보고 천칠백 공안을 타파(打破)해 버리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골수를 깨달라 버렸지만, 우리가 그 글을 아무리 해석할 줄을 알고 상식적으로 무슨 뜻이다 하고 아는 것 가지고는 깨닫게 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句)에 가서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야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니라. 그림자 없는 나무를 찍어다가, 베어다가 물 가운데 버큼을 다할지니라. 물 가운데 버큼을 녹여 다할지니라' 그 무슨 말씀이여?

이것은 사량심(思量心)으로, 상식적으로, 분별심으로도 따져서 알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깨달은 사람만이 이 글의 뜻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세등선원 삼동안거(三冬安居) 대중이 오십여 명이나 됩니다. 또 흥천사 반야선원 대중도 십여 명이고, 그리고 여기 각처에서 오신 여러 스님네와 신남신녀도 몇백 명이 오셨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법문을 들어서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그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가운데에는 10년 20년 내지, 30년 40년을 참선을 하신 분도 있을 것이고, 금년에 처음으로 선방에 나온 그러한 수좌(首座)도 있을 것입니다.

소요 스님은 3년 만에 글 한 수(首)를 보고서 확철대오를 했는데, 오늘 이 대중 가운데에는 이 서산 스님이 주신 이 게송,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라. 이 게송을 듣고서 과연 확철대오한 사람이 있느냐 말이여.

 

왜 고인(古人)은 이 한 수의 게송을 보고 확철대오를 했는데, 어째서 나는 그 게송을 듣고도 확철대오를 못하는가? 과연 법을 위해서 내 몸과 목숨을 바쳤는가?

 

법을 위해서 참으로 내 몸과 목숨을 바쳐 버린 사람은 이것이 바로 진발심(眞發心)인데,

진발심을 한 사람은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이 일시에 돈발(頓發)해서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는 것이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고, 땅을 봐도 땅이 보이지를 아니하는 것이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오직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단(疑團)뿐인 것입니다.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의단이 돈발해서 번뇌 망상이 저절로 일어나지 아니하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오직 알 수 없는 의단만이 현전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세수를 할 때나, 양치질을 할 때나, 방선(放禪)을 하거나, 입선(入禪)을 하거나, 화두 하나만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일부러 화두를 들 것이 없어. 저절로 화두가 독로(獨露)해.

 

이렇게 해서 이러한 경계, 심지어는 꿈속에서까지 화두가 현전(現前)을 하게 되는 거여. 이렇게 나가면 일주일이 못 가서 확철대오를 하는 것이여. 이것은 과거에 여러 도인(道人)들이 다 증험을 해서 말씀을 하신 것이여.

 

'혼침이 와서 못한다. 잡념이 일어나서 못한다. 상기(上氣)가 되어서 못한다. 소화가 안되어서 못한다' 이건 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 이 삼요(三要)가 갖추지를 못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 것이여.

 

오늘은 결제날이라, 삼동에 지내 가는데 있어서 대중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해 갈 것인가?

삼요(三要)!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이 몰록 발(發)하면 여러 가지 잔소리가 필요가 없습니다. 규칙에 대한 말도 필요가 없고, '이렇게 공부를 하고 저렇게 공부를 해라' 그런 말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처음~17분44초)

 

 

 

 

 

(2)------------------

 

참선은 첫째, 신심(信心)이요.

 

무슨 신심? 무엇이 신심이냐?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대중 외호(外護)를 잘하고, 불사를 많이 하고, 보시를 많이 하고, 계행을 청정하게 지키고, 이런 것도 신심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물론 신심이지만 이 종문(宗門) 중에 있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의 참다운 신심이라 하는 것은 「나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정진만 하면 나도 결정코 확철대오 할 수가 있다.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 이렇게 믿는 것이 이것이 진정한 대신심인 것입니다.

 

「나는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나는 여자니까, 나는 무식하니까, 나는 병이 들었으니까, 참선한들 무슨 확철대오가 있을 것인가? 그저 금생에는 인연이나 맺으리라」 이러한 생각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공부를 해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여.

 

남녀노소도 불구하고, 말세도 불구하고,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나도 결정코 견성성불 할 수가 있다」고 믿는 것이 이것이 진정한 신심인 것입니다. 참선은 그러한 마음 없이 참선해 가지고는 되덜 않습니다. 그 생각이 아주 철저해야 합니다.

「이건 내가 양보할 수가 없다. 나도 기어코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바쳐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해.

 

그 다음에는 대분심(大憤心).

 

「과거에 모든 성현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을 교화하고 계시는데, 나는 어찌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확철대오를 못하고 생사해탈을 못했던가」 그것이 분해 가지고 그 분심(憤心)이 솟구쳐 올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 분심이 있어야 혼침(昏沈)도 물러가고, 산란심(散亂心)도 물러가고, 저절로 신심이 일어나는 법이고, 사소한 시비에 내가 걸려들 까닭도 없고, 사소한 불평불만이 있을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그 신심과 분심이 약하기 때문에 혼침이 일어나고, 산란심이 일어나고, 사소한 시비에 걸려들고 '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시비가 일어나는 법이지,

밥이 맛이 있니, 지니 되니, 짜니 싱거우니 일어나고, 누가 뭔 말을 하면은 사소한 일에 진심(瞋心)이 일어나고 그러지, 참으로 신심과 분심이 돈발했다면 무슨 시비가 그 앞에 있어?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시간이 가는지를 모르고, 칭찬했다고 해도 좋아할 것도 없고, 누가 나보고 잘못했다고 억울한 소리를 해도 성이 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 가서는 대의심(大疑心)이여.

 

시삼마(是甚麽)! 이뭣고 화두를 하는 사람은 '이뭣고?' 조주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분은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는 사람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마삼근(麻三斤)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마삼근(麻三斤)이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앉아서도 화두, 서서도 화두, 밥을 먹으면서 한 숟갈 한 숟갈 밥을 떠 넣으면서도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그 생각뿐이여.

세수를 하면서, 양치질을 하면서, 똥을 누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 있느냐 이 말이여.

 

 

선방(禪房)에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하면, 선방이나 강원이나 발우공양만 하면 쫓기는 사람처럼 막 국에다 반찬에다 밥에다가서 비벼 가지고 그냥, 당장 난리라도 몰아온 것처럼 그냥 후닥닥 긁어 넣는데, 그래 가지고 먹고 나면 가슴이 쓰리고, 트림이 나오고, 소화가 안되고.

 

금년에 반야선원이나 이 세등선원 대중은 특별히 주의할 것이 공양을 잘 씹어서, 한 숟가락을 입에다 떠 넣으면, 밥만 떠 넣고 반찬은 아직은 넣지 아니한 채 50번을 씹어.

50번을 씹은 다음에 그때사 반찬을 집어 넣고 한 20번을 씹어. 그래 가지고 최소한도로 7~80번을 씹어 가지고 따악 삼키라 그말이여. 그렇게 삼키고 또 국을 한 숟갈 떠먹어.

 

또 맨밥을 떠 넣고 한 50번을 씹다가, 완전히 입안에서 밥이 미음(米飮)이 되도록 씹어 가지고 거기다 또 반찬을 또 집어 넣고 한 2~30번을 씹어. 그리고는 그놈을 삼키고 또 국 한 번을 떠먹어.

이렇게 해서 최소한도로 30분간에 걸쳐서 공양을 하라. 먹는 시간만 한 30분을 잡으라.

 

밥 먹는 것도 정진인데, 빨리 밥 먹고 참선 할라고?

그것은 벌써 정신이 틀려 버린 거여. 밥 먹은 것은 정진이 아닌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빨리 밥을 먹고 소화가 안되고, 그런데다 또 무슨 간식을 하고 무슨... 일평생을 끌끌.

 

그 사람은 정진을 바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여. 선방을 몇십 년을 당겨도 그 사람은 벌써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밥도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밥이 그것이 이 몸뚱이, 법당을 잘 간수하는 그 불사(佛事)인데,

첫째, 그 법당을 잘 간수해야 부처님을 잘 모시게 되는 것인데, 법당 하나를 잘 간수를 못한 사람이 무슨 부처님을 옳게 모실 수가 있겠느냐.

 

입승(立繩) 스님이 단단히 알아서 죽비(竹篦)를 천천히 치고.

첫째, 어간(御間)에 앉은 구참 스님들이 느긋하게 공양을 들어야 돼. 그래야 저 탁자(卓子) 밑에서 그 진지를 하는 대중, 진지하고 들어가서 밥을 먹고 또 숭늉을 돌려야 하고 그러니 시간이 없다 그말이여.

 

어간에서 일찌감치 먹고 쳐다보고 있으니 밥을 빨리 먹을 수밖에 없고, 그 빨리 먹어놓으니 소화가 안되고, 그리고 또 넉넉히 먹을 수도 없고 그러니 첫째, 어간에서 천천히 먹어줘야 그래야 그것이 자비고.

 

우리가 무슨 영양을 취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밥이라도 잘 소화를 시켜야 하거든. 또 넉넉히 먹어줘야 하고. 그리고 간식을 안 하는 것이 좋아요.

밥을 넉넉히 잘 먹고, 그놈을 흡족하게 완전히 흡수를 해서 뱃속이 편안해야 화두가 잘 들리지, 소화가 안되면은 영 호흡도 잘 안되고 화두도 잘 안 들립니다. 소화가 안되면은 또 영양을 흡수를 못하기 때문에 건강도 좋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한 근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일이 전국 남녀를 막론하고 선방에서 제대로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30여 년을 겪어봐서 너무나도 이 평범한 일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 잘못되어 가지고 선객(禪客)들의 건강이 좋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니까 깊이 명심을 해서 이것을 실천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공양을 그렇게 50번을 씹는 동안에 무엇을 생각할거냐 그말이여. 그때 화두를 들어 보라 그말이여. 혼침은, 누가 밥 먹다 조는 사람은 없거든. 그러니 혼침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그 딱딱딱딱 씹으면서 화두를 떠억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화두를 그놈을 관조를 하면서 공양을 들어 보라 말이여. 어떻게 신심이 저절로 나거든.

 

밥을 먹고 나면은 그 밥 먹는 시간이 정말 정진이 옳게 되어 가는 시간이여. 그 시간이 정진이 잘되고, 그때 먹은 그 밥이 소화가 잘되고 흡수가 잘되고 그래.

 

밥 먹을 때 제대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또 세수할 때도 해야 하거든. 여러분이 세수할 때 화두를 들어 봐. 양치질 할 때도 화두가 고대로 들어 있고, 세수를 할 때도 고대로 들어 있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면서도 화두가 고대로 들어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변소에 가서 똥을 눌 때에도 화두가 터억 들어져 있고, 똥을 누고 나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면서도 화두가 고대로 또 들어 있어야 될 것이다 그말이여.

 

잠을 잘 때 자리에 들어서도 화두가 터억 들어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래야 잠을 자면서 꿈에서도 화두가 들어질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설사 꿈에는 안 들어지더라도, 마지막 잠이 딱 들 때까지도 화두가 떠억 들어 있는 상태에서 잠이 들면, 그 이튿날 아침에 딱 눈을 떴을 때 화두를 새로 들지 안 해도 엊저녁에 들었던 그 화두가 저절로 딱 들어 있어야 된다 그말이여.

 

이렇게 석 달을 지내 봐요. 정말 수행이란 것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할 것이고.

 

누구를 위한 참선이여? 누구한테 자랑을 하기 위해서 참선을 한 거여?

 

애들은, 유치원에 댕기는 애는 짜증이 나면, '나, 밥 안 먹는다'고. 밥을 안 먹으면 엄마가 제일 걱정을 하거든. 그러니까 엄마 애 태우고 엄마를 이기기 위해서 뭔 데모할 일이 있으면, '나, 밥 안 먹는다'고 떼를 쓰거든.

그건 어릴 때는 그것이 통해서 밥을 안 먹으면 '아나, 돈 줄께 밥 먹어라' '아, 너 뭐 좋은 것 공책 사 줄께 밥 먹어라' 이렇게 달래겠지만, 우리 수좌(首座)는 정진 안 한다고 떼장 놔봤자 저만 불쌍하고 생사윤회 하지, 별 수가 없어.

 

어린아이는 우는 것이 자기 힘을 과시하고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여자는 남편 앞에 골을 부리는 것이 자기 어떤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방법이여. 돈을 울궈낼라면 골낸 척 해 가지고 신경질을 내면 남편이 돈을 줘. 이건 경전에 있는 말이여.

 

『치문(緇門)』을 보니까 '치문사기(緇門私記)'에 그런 말이 쓰여 있더라 그말이여.

어린애는 우는 것으로써 힘을 과시하고, 여자는 성내는 것으로써 남편 앞에 힘을 과시하고, 임금은 교만을 부리는 것으로써 신하들 백성들 앞에 힘을 과시하고, 수행인은 정진을 잘하는 것으로써 힘을 과시해라 그랬단 말이여.

 

속가에서 '머슴, 일꾼을 부리는 주인이 일꾼을 잡을라면은 잘 먹이는 것으로써 일꾼을 휘어잡고, 머슴은 일을 잘하는 것으로써 주인을 휘어잡으라' 이런 속담이 있는데, 우리 수좌는 정진 잘하는 것으로써 나의 힘을 과시해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진을 잘하는 거여?

잠을 안 자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는 것이냐? 묵언을 하고 말을 안 하는 것이 정진을 잘하는 것이냐?

 

물론 묵언을 하면서 정진을 애를 쓰는 것도 정진 잘하는 하나 방법이 될 것이고.

또 단식을 한다든지 일종(一種)을 한다든지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한다든지 그렇게라도 해서 내가 공부에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되게 하자. 이러한 마음으로 하는 것도 그것도 정진의 한 방편(方便)이 될 것이고.

 

'내가 대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장좌불와를 해서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리라' 또는 '내가 세 시간 이상은 잠을 안 자고 정진하리라' 이러한 것도 또한 수행을 애써서 하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묵언을 해서 내가 견성성불 하기 전에는 내가 말을 아니하리라' 또는 '내가 한 소식 하기 전에는 내가 말을 아니하리라' 이렇게 해서 묵언을 하는 것도 발심한 사람의 수행하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 안 한 것이 정진에 전부가 아닐 것이요,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한 것이 정진에 전부가 아닐 것이요, 밥을 안 먹는 것이 정진에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말 안 한 것이 정진에 제일가는 수단이라면 어릴 때부터 벙어리는 뱃속에서부터 도통(道通)해 나와야 할 것이고, 장좌불와 한 것만이 정진에 전부라면은 앉은뱅이는 참선 안 하고도 도통을 할 것이고, 밥을 안 먹는 것이 정진에 전부라면은 목구녕에 병이 있거나 위장병이 걸려서 밥을 못 먹는 사람은 공부가 아주 잘될 것 같지만 그렇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한 방편 하나는 될지라도 그것만이 정진에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말이여.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이 독로해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려져.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성성(惺惺)한 가운데 적적(寂寂)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성성해. 일념만년(一念萬年) 회광반조(廻光返照) 하는 이렇게 정진이 되어 가야 해.

 

그렇다면은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누워서도 정진이요, 밥을 먹을 때도 정진이요.

하루 세 때 먹어. 잠도 5시간 내지 6시간 자. 자되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자라 그말이여. 대신심과 대의단과 대분심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잔다면 잠도 정진이요. 삼시 세 때를 먹되 먹는 것도 정진이요.

 

아까 그대로 먹어봐. 그것이 그대로 정진이여.

꼭 두 끼만 먹을라고 할 것이 없어. 아까 내가 말한 대로 밥을 먹으면 세끼를 먹으되 소화가 잘돼. 그리고 속도 편안하고. 먹은 밥이 그대로 흡수가 잘돼.

 

그러니 한 숟갈 떠먹는 그 자체가 정진이요, 자리에 누워서도 고대로 정진이요,

구태여 자리에 눕자마자 잘라고 할 것이 없거든. 잠이 올 때까지는 떠억 화두를 들어.

자리에 누워서도 10분 20분 30분 1시간 내에 잠이 안 들어도 상관이 없는 거여. 안 들면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면서 누웠어. 그러다 언제 든 줄 모르게 들으면 그때부터 잠을 자겠지.

 

잠을 자되 아침에 눈을 딱 뜨면, 내가 한 십분도 안 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은 한 너댓 시간이 잘 자졌다 그말이여. 하! 그런데 화두는 엊저녁에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거든. 그렇게 정신이 맑고 몸이 가벼워.

 

이렇게 정진을 해 가면 구태여 옆구리를 땅에 안 댈 것도 없다 그말이여. 구태여 밥을 억지로 안 먹을라고 할 것도 없다 말이여.

이렇게 정진을 하면 몸도 건강하고 정진도 잘되고 어느 사람이 도(道)를 못 통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이번 석 달 동안을 그렇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30분7초~49분4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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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무한심중사~'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著) '사김신사래방(謝金信士來訪 김신사의 내방을 감사함)' 참고.

*양춘(陽春 볕·따뜻하다 양/봄 춘) ; 따뜻한 봄.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무영수(無影樹 없을 무/그림자 영/나무 수) ; 그림자 없는 나무.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저선(無底船 밑바닥이 없는 배)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공적(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2)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마삼근 (麻三斤) : 화두의 하나。『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종(雲門宗)의 동산(洞山) 수초선사(守初禪師)가 대답하기를 『마 삼근(삼 서근)이니라』하였다.

*발우공양(鉢盂供養) ;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발우(鉢盂)라고 하여,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하는 식사’를 말한다. 발우공양을 할 때 《소심경(小心經)》이라는 경전을 외운다.

이 공양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깨달아 신과 인간의 공양 받기를 원하는 ‘하발게(下鉢偈)’, 부처님 일생의 중요한 4대 성지를 생각하는 ‘회발게(回鉢偈),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 삼륜(三輪)이 공적함을 생각하는 ‘전발게(展鉢偈)’

그리고 위로는 부처님, 성인 아래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봉반게(奉飯偈)’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하는 ‘오관게(五觀偈)’

그리고 생반게(生飯偈), 정식게(淨食偈), 삼시게(三匙偈), 절수게(絶水偈), 해탈주(解脫呪)를 하면서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벗어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며 공양하는 수행 의식이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어간(御間 거느릴·다스릴 어/사이 간) ; 절의 법당이나 큰방 한복판에 있는 칸.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 ; 비위에 거슬리거나 언짢은 일을 당하여 벌컥 내는 화.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치문사기(緇門私記) ; 조선 후기의 태선(太先) 스님이 『치문경훈(緇門警訓)』을 주석한 책.

사기(私記)란 경론이나 어록 또는 중요 저술 등의 깊은 뜻을 개인 견해로 풀이하여 기록한 것. 사집(私集)이라고도 한다. 사사로운 견해를 덧붙인다는 뜻이 있지만, 구절이나 대의를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놓은 주석서 혹은 참고서로서 조선 시대 이후에 많이 썼다.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의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낸 말.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연연히(娟娟- 예쁘다·아름답다·맑고 밝은 모양) ; ①빛이 엷고 산뜻하며 곱게. ②아름답고 어여쁘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8. 11. 1. 21:28

 

 

§(183) (게송)무변찰해허명경~ / 올바른 믿음 / 분심, 사리불과 아나율의 일화 / 조는 사람 눈구녘을 쑤셔 버린다 / 자기 속으로부터의 분심.

 

**송담스님(No.183)—82년 9월 첫째일요법회. (용183)

 

(1) 약 21분.

(2) 약 21분.

 

(1)------------------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이요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헌디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나무~아미타불~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이요. 가없는 시방세계(十方世界)가 텅 비고 밝은 거울인데, 그 밝고 빈 거울에 무량겁을 두고 티끌이 쌓이고 쌓여서 그 거울을 티끌로 뒤덮었건만, 그 거울 자체의 광명은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더라.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헌디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모든 성현들은 그 티끌과 한 가지 하지 안 했어. 시방찰해가 온통 티끌인데, 그 티끌에 조금도 묻지를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우리는 소리와 빛, 소리와 빛의 티끌 속에 몸을 비겼는고. 티끌 속에 왜 파묻혀서 허우적거리고 있느냐.

 

 

오늘은 임술년 9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무더웠던 여름도 다 가고 칠석도 지내고, 백중도 지내고 제법 서늘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슬프고 기쁜, 이 슬픔과 기쁨으로 범벅이 된 인생살이는 한 벼개에 꿈에 지내지 못하고[悲歡一枕夢], 한바탕 꿈에 지내지 못하고, 일생동안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만나는 인생살이도 잠깐 불과 10년 동안에 정, 애정, 인정 얽힌 것에 불과한 것이여[聚散十年情].

말없이 머리를, 고개를 돌이켜 보니[無言却回首] 산마루 위에는 흰구름이 일어나는구나[山頂白雲生]' 이러한 게송을 맨 처음에 읊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출현을 하셔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12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갖은 고행을 하시고, 그 가운데 여러 스승을 차례차례로 사사(師事)하고 차례차례로 버리시기를 12년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두고 고행을 하신 끝에 마침내 보리수(菩提樹)하에서 새벽 동천(東天)에 반짝거리는 샛별을 보시고 성불(成佛)을 하셨습니다.

그 부처님이 아니셨던들 우리는 영원토록 생사(生死)의 고해(苦海)에서 몸부림치며 육도법계(六途法界)를 윤회를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무엇이 바른 길인가? 무엇이 우리의 참다운 행복인가? 그것을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그러한 성현 가운데 성현을 스승으로 받들 수가 있기에, 우리는 이 오탁악세(五濁惡世)에 태어났으면서도 우리는 외롭지 아니하고 우리는 슬프지 아니하고,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찾아서 희망과 보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法)을 믿으면서도 아직도 지혜의 눈을 뜨지 못한 까닭은 우리의 신심(信心)이 바르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하고, 실천에 있어서 대분심(大憤心)과 용기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절에 10년, 20년을 다니고 평생토록 부처님밖에는 모르고 그러면서도 바로 깨닫지 못한 것은 그 믿음이 바르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한 까닭인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어떻게 믿어야 바르게 믿는 것이냐?

 

어떤 사람은 '용화사 가서 정법(正法)을 믿어라.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으려면 주안 용화사를 가라' 이런 말을 듣고 분개를 하면서 '어찌 용화사만 정법이고, 용화사만 최상승법이냐, 부처님 법은 온 시방법계에 두루하고, 꽉 차 있는 것이 불법인데 어찌 용화사만 불법일 것이냐. 어느 절에서도 어느 절에 가도 부처님은 다 모셔 있고, 어느 절에 가도 스님은 다 계시고, 설교하는 절은 어디라도 다 정법이 있지 어찌 용화사만 정법이겠느냐' 그렇게 분개를 하는 분이 있다 이것입니다.

 

그 말이 절대로 일리가 있는 말일 것입니다. 어찌 하필 용화사 부처님만 참 부처님이고 용화사 스님들만 진짜스님이고, 용화사 설법만 정법이겠습니까.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은 우주법계에 꽉 차서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고, 오히려 눈을 가리우고 부처님을 아니 볼라고 하니까 열 손가락 사이마다 부처님이 나타났다고 하는 법문이 있습니다마는.

바로 말하자면 부처님 안 계신 곳이 어디가 있으며, 불법 없는 곳이 어디가 있으며, 무엇이 정법이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혜의 눈을 뜬 사람은 눈을 감아도 부처님이요 눈을 떠도 부처님이요, 귀를 막아도 부처님이요 귀를 열어도 부처님이요, 하늘 땅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법신체(法身體) 아닌 것이 없지마는.

지혜의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예를 들자면 철이 들어서 아무데를 가더라도 산에를 가도 좋고, 바다를 가도 좋고, 숲속을 가도 좋고, 사막을 가도 좋고, 아무데를 가도 걱정이 없을 만큼 몸이 단련이 되고 그만큼 튼튼한 사람은 상관이 없지만, 아직 자라지를 못해서 그런 사람은 함부로 산에 가도 위험한 것이고, 함부로 물가에 가도 위험한 것이고, 함부로 험악한 데를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용화사로 가야 참선 하는 법을 기초부터서 잘 배울 수가 있다'한 말이 그렇게 해서 해당이 되는 것이지, 바로 참선을 화두를 들 줄 알고 올바르게 공부할 수 있다면야 산꼭대기를 가나, 바닷가에를 가나, 무인도를 가나, 어디를 가서 한들 공부를 못하겠습니까.

정(正)과 사(邪)를 가릴 줄을 알고 공부하는 법을 바로 안다면 외도(外道), 마구니 속에 들어가서 한들 무엇이 방해로울 것이 있습니까.

 

 

정법은 다른 게 아니고 「나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거, 이것이 바로 바르게 믿는 것입니다.

 

절에 가서 절을 많이 하고, 시주를 많이 하고, 멸치 꼬리 하나도 안 먹고, 파 마늘을 안 먹고, 모기 파리 하나도 안 죽이고,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아니하고, 이렇게 계율을 청정히 지키면서 그저 절밖에는 모르고 일생을 사는 그러한 스님, 그러한 청신사 청신녀들이 계시는데 대단히 훌륭하지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불법(佛法)을 바로 믿었다고 할 수가 없거든. 물론 불교를 믿는 사람이 계율을 청정히 갖는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훌륭한 일이로되 거기에 그쳐 가지고 불법을 참으로 바로 믿었다고 할 수가 없어.

 

'불법을 바로 믿었다', 정신(正信)이라 하면 자기도 아무리 죄가 많건, 근기가 약하건, 여자건, 말세에 태어났건, 무식하건,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자기도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철저한 신념을 가지면 그것이 바로 불법을 바르게 믿는 것이여. 그 신념이 서 있지 아니하면 소용이 없어.

 

'죄가 많으니까 나는 불법을 깨달을 수가 없을 것이다. 업(業)이 많고 근기(根機)가 약하고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깨달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이 무슨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인가.

차라리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차라리 염불을 하고 경을 열심히 읽어야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죽을 때 아미타불이 나를 반야용선(般若龍船)에다 태워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데려다 주실 것이다'

 

이렇게 믿는 것은 어떠한 근기에는 혹 약이 될 수가 있겠지만, 거기에 국집(局執)한다면 불법을 바르게 믿었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불법을 바르게 믿고도 대분심(大憤心)과 대용기(大勇氣)가 없으면은 도는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천안통, 천안제일(天眼第一)인 아나율 존자는 애당초에 부처님 사촌으로 출가해 가지고,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는데 꾸벅꾸벅 졸았다 그말이여.

조니까, 부처님께서 걱정을 하시기를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가 없고, 썩은 흙벽에다가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조개가 바다 속에서 천년 동안을 잠을 자고도 파도 소리 때문에 잠 한숨 못 잤다고 그런 말이 있는데, 세상에 법문(法門)을 들으면서 졸음을 자다니 그래가지고 무슨 도업(道業)을 성취할 것이냐. 축생만도 못한 놈'이라고 크게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법문을 듣다가 졸아? 그것이 축생 과보(畜生果報) 밖에는 무엇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참 뼈아픈 꾸지람을 듣고 분심이 나서 6일간을 잠을 안 잤습니다. 눈 한번 깜빡 아니하고 앉은 채로 6일을 버텼습니다. 6일을 눈을 깜빡거리지 아니하고, 6일을 딱 버티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눈이 탁 멀자 천안통(天眼通)이 열렸던 것입니다. 천안통이 열려가지고 염부제(閻浮提)의 모든 사물과 상황을 손바닥 위에 구슬을 보듯이 그렇게 온 세계를 다 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천안통이 열려서 온 세계를 손바닥에 구슬 보듯이 보았지만, 바느질하는 데에 바늘귀는 꿸 수가 없었던지, 원시경전에 보면 아나율 존자가 바느질을 할 때에는 부처님께서 항시 바늘귀를 꿰어 주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처음~21분31초)

 

 

 

 

 

(2)------------------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6일 동안을 분심을 내 가지고 잠을 안 자 가지고 결국은 눈이 멀어버린 그 제자를 위해서 바늘귀를 꿰어 주시고, 바느질도 해 주시고, 여러 가지 그 시중을 부처님께서 손수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 눈병이 났는데 아사세왕(阿闍世王) 어의(御醫)이며, 부처님의 주치의를 맡고 있던 기파(耆婆)대감을 명해 가지고 아나율 존자의 눈병을 치료하게 했습니다마는, 기파대감이 아무리 좋은 약을 쓰고 침을 놓고 치료를 해도 조금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래 기파대감이 부처님께 "저의 힘으로는 나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가 어의로서 못 고치는 병이 없는데 어찌 아나율의 눈병을 못 고친단 말이냐?"

"못 고친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잠을 자야 하는데, 좋은 약을 쓰면서 잠을 자야 눈병이 나을 텐데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고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네가 내 말 한마디에 분심을 낸 것은 좋지마는, 그래도 잠을 자면서 정진을 해야지 그렇게 잠을 안 자 가지고 되겠느냐"

아무리 잠을 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끝까지 잠을 안 자 가지고 결국은 눈이 그렇게 멀어버렸던 것입니다.

 

 

또 부처님 제자, 십대제자 가운데에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 존자가—목련 존자와 부처님 왼팔 오른팔 그 두 수제자(首弟子)인 그 사리불 존자가 지혜로서 제일인데, 그 사리불 존자는 원래 외도의 제자로 있다가 목련 존자와 함께 자기 자신의 제자 백 명들을 이끌고 부처님께 귀의해서 부처님 법문을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십대제자 가운데에 지혜가 제일인 그러한 성현인데, 그 사리불 존자는 전생에 무엇이었었냐 하면은 독사(毒蛇)였었던 것입니다.

그 사리불 존자는 전생에 독사가 되어 있었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성현이 되어 가지고서도 그 진심(瞋心)을 내는 습기(習氣)가 항시 조금씩 나타났다 이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앉아서 좌선을 하시다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셔서 포행을 하시는데, 부처님의 아드님이신 라후라 존자가 아직 어렸을 때인데 그 라후라가 부처님 뒤를 따라서 부처님을 모시고 같이 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후라 존자는 아주 6살 어렸을 때 출가를 했는데, 출가했을 때 부처님께서 그 당신의 수제자인 사리불 존자를 시켜서 '네가 좀 거두어 주어라' 이렇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래 라후라 존자의 은사 스님이 사리불 존자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처님께서 그 당신의 아드님이신 라후라 존자가 따라온 것을 이리 보시더니, "네가 어떻게 그렇게 해서 바짝 말랐느냐? 어떻게 몸이 그렇게 폐로(肺癆)와졌느냐? 그렇게 쇠약해졌느냐?" 이렇게 물어 보셨습니다.

그 라후라 존자가 게송으로써 대답하기를, 소락(酥酪)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그 빠다(버터)와 비슷한 음식인데 내나 우유를 끊이면은 거기에서 떠오르는 기름을 모아 가지고 만드는 음식인데,

"소락을 먹으면 몸이 튼튼해지고 또 기름을 먹으면은 몸이 튼튼해지고 그러한 것을 또 무슨 고기라든지 모다 그런 것을 먹으면 힘이 생기고 한 것을 부처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게송으로써 부처님께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지금 이 대중 가운데에 누가 제일 큰스님인고?" 그렇게 물어보셨습니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저의 스승인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 밑에 제일 큰스님이지 누구십니까"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이 "사리불은 부정식(不淨食)을 하느니라"

부정식이라 하는 것은, '아니 불(不)’자, '조촐할 정(淨)’자, 부정(不淨), "부정식을 하느니라. 청정한 음식을 안 먹고 청정하지 못한 음식을 먹느니라" 아, 부처님이 밑도 끝도 없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그 라후라 존자가 자기 스승한테 가서 "아, 부처님이 그 스님 보고 부정식을 한다고 하시데요" 그렇게 말을 했다 그말이여.

그 말을 듣고 사리불 존자는 그 뒤부터서는 일체 어떠한 신도나 왕이나 대신이나 장자가 공양 청장을 해도 응하지를 안 했습니다.

 

부처님도 그전에까지도 왕이나 대신이나 장자나 신심 있는 신도가 좋은 음식을 마련해 놓고 공양 청(請)을 하면 모다 제자를 거느리고 가서 공양을 잡숫고 오시고 그랬는데 부처님도 딱! 끊어 버리시고 안 가시자, 부처님이 안 가신 뒤에는 사리불한테 모다 공양 청을 하면은 사리불이 또 가서 공양을 받아 자시고 오시고 그랬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그 말씀을 한 그 말을 듣고 부터서는 사리불도 딱! 끊어버리고 공양에 응하지를 안 했습니다.

 

그때 왕과 대신과 장자들이 사리불에 공양을 청하러 갔습니다. "나는 가지를 않겠다"

"어째서 안 가십니까? 부처님도 안 가시고 사리불 존자까지 안 가시면 우리 신도들은 어떻게 청정한 법문을 들으며, 법의 인연을 맺는 복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마저도 공양을 응하시지 아니하고, 사리불 존자까지도 응하시지 아니한다면은 어떻게 우리 신도가 복을 지으며 법문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발 부처님은 정 안 가신다면 사리불 존자라도 가도록 좀 말씀을 해 주십시오"

"사리불 존자는 내가 아무리 말하고 너희들이 아무리 청한들 결단코 가지를 아니할 것이다"

"왜 그렀습니까?"

 

사리불 존자는 전생에 독사였었는데, 독사로서 어느 왕을 물었다. 그래서 독사가 왕을 물어버리고 어디로 달아나 버렸는데, 왕의 몸에 그 독이 번져가지고 죽게 되었어. 그래서 천하의 명의를 다 불러다가 그 독사에 물린 독을 빼고 병을 낫으려고 했지만 그것이 나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 의원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이 독을 뺄 수가 없고 그 독사로 하여금 스스로 이 독을 빨게 해야만 이 병은 나을 수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그 독사를 오게 할 수가 있느냐?' 그래 그 의원들이 모다 합심을 해 가지고 주문을 외워 가지고 그 독사가 제절로 왕 앞에 오도록 했던 것입니다.

독사가 왕 앞에 와서 딱 도사리고 있는데 그 옆에다가 장작불을 갖다가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불을 펴서 훨훨훨 타게 해 놓고서는, '독사야! 네가 이 왕을 물었는데, 네가 문 자리에서 거기다가 네가 이 독을 빨아먹으면 너를 살려주거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너는 이 모닥불에다가 집어넣어서 태워 죽이리라'

 

독사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의 독을 밖으로 내뿜기 위해서 물었는데 어찌 내가 그 독한 독을 다시 빨아먹을 수가 있을까보냐. 차라리 내가 불더미 속에 들어가서 타서 죽을지언정 나는 그 독을 다시는 못 빨아먹겠다. 이래가지고 그 독사가 펄쩍 뛰어가지고 불더미 속에 들어가서 타서 죽었습니다. 그 타서 죽은 그 독사가 사리불 존자다 이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무슨 말이든지 한마디 딱 했다 하면은 한 번 탁! 결심을 하고 독한 마음을 먹고 결심을 해 버리면 천하 없는 사람이 뭐라 해도 그 뜻을 굽히지를 안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그 말씀 한마디 했다고 해서 왕이나 대신이나 장자가 공양 청장을 해도 다시는 응하지를 아니했다 이것입니다.

 

그 부정식이라는 게, 첫째 그 짐승을 죽일 때에 그 현장을 목격하지 아니한 고기, 그 짐승을 죽일 때에 비명 지른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한 고기, 또 나를 위해서 일부러 죽이지 아니한 고기, 또 세 사람 이상의 손을 거친 고기, 독수리나 맹수 같은 것이 먹다가 버린 고기, 이러한 종류의 다섯 가지 고기를 깨끗한 고기라 해서 이것을 오정육(五淨肉)이라, 다섯 가지 깨끗한 고기라 해서 이것을 오정육이라 그러고.

그렇지 아니한 고기는 다 그것이 부정한 고기다 이것입니다. 또 음식에 파나 마늘이나 부추 모다 그러한 것이 들어간 음식은 이것이 깨끗한 음식이 아니다 이것입니다.

 

신도 집에서 밥을 먹게 되면 음식 속에 그러한 부정한 것이 섞여 있을 수가 있기 때문에 무심히 먹다 보면 부정식을 하게 되는데, 그래 사리불 존자는 아라한과(阿羅漢)를 증득한 성현이라 신통이 다 육신통(六神通)이 자재(自在)하고 그렇지만 또 무심할 경우에는 또 그런 음식 속에 그러한 것이 혹 섞여 있을 수가 있어서 무심히 먹었는데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은 부정식을 한다' 한 말씀을 하셨는데.

 

라후라 존자가—'어째서 네가 그렇게 살이 쪽 빠져 가지고 그렇게 그러느냐'한 말 끝에 '뭐 공양 청을 안 하고 그 영양 있는 것을 안 먹으니까 이렇게 살이 빠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한 그러한 뜻으로 넌즈시 그 돌려서 게송으로 읊으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다시는 공양에 응하지 아니할 그 고집, 그 의지력, 그 결단심, 이러한 것이 결국은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그런 밑거름이 되지 안 했겠느냐?

 

그리고 아나율 존자는 '법문 듣다가 존다'고—우리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녹음으로 들으면 '존다'고 그 꾸지람을 하신 법문을 가끔 듣는데, 어떠한 법문 가운데에는 '눈구녘을 쑤셔 버린다'고 이러한 참 과격한 꾸지람을 하시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법문을 듣다가 꾸지람을 듣기도 예사고, '눈구녁을 쑤셔 버린다'고 이러한 말씀을 들을 수도 있는데, 어떠한 신도 하나는 조실 스님 법문을 빠뜨리지 않고 듣다가 눈구녁을 쑤셔 버린다는 말을 듣고 몇 해 동안을 법문을 들으러 안 왔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또 산승의 말을 들으면서 졸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졸고 있는 사람 보기가 싫어서 조실 스님도 법문하실 때 눈을 감고 많이 법문을 하시고, 산승도 그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을 보면 도대체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듣기가 싫으면 꾸벅꾸벅 졸고 있을까?

'차라리 안 보고 모두가 눈이 초롱초롱해서 저의 말을 잘 듣고 계시리라' 이렇게 생각이 들어가야 좋은 말이 술술 나오지, 여기서 저기서 듣기 싫어서 졸고 있고, 하품을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고 있으면 무슨 신심으로 얘기를 법문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한마디 꾸지람을 듣고 그 꾸지람을 명심을 해서 분심을 내서 아나율 존자와 같이 잠을 안 자고, 사리불 존자와 같이 다시는 공양에 응하지 아니할만한 그러한 고집과 결단심이 없어가지고 어떻게 대도를 성취할 것이냐 이 말이여.

 

'분심이 안 난다. 신심이 안 난다. 아무리 화두(話頭)를 들어도 의심(疑心)이 안 난다. 어떻게 하면 의단(疑團)이 일어날 수가 있겠으며, 어떻게 하면 분심이 나겠습니까? 어떻게 좋은 말씀을 한마디해서 신심과 분심과 대의단이 나도록 해달라'고 가끔 그러한 수좌(首座) 스님들이 와서 그렇게 부탁을 합니다마는, 신심과 분심과 의단은 자기 자신이 일으켜야지 어떻게 그것을...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한마디 한 그 말에서 분심을 내고, '법문을 듣다 졸려 가지고 그래가지고 어떻게 도를 성취할 것이냐? 죽어서 조개밖에는 못될 것이다. 죽어서 축생의 과보밖에는 못될 것이다' 이런 말 한마디에도 대분심을 내고.

이러한 스스로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채찍을 가해 가지고 분심을 내야지, 내가 장군죽비(將軍竹篦)로 한 대, 두 대 쳐 본들 그때만 등어리가 따끔하고 돌아서면 그만인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있느냐.(21분32초~42분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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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14권) ‘別傳覺心’

*갓없다 ; ‘가없다(끝이 없다)’의 옛말.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시방찰해(十方刹海) ; 시방세계(十方世界). 찰(刹)은 범어 ksetra의 음역으로 뜻은 토지 · 육지 · 영역. 따라서 찰해는 육해(陸海), 즉 육지와 바다란 의미로 세계를 말한다.

*빗기다[橫] ; ①'가로지르다(양쪽 사이에 기다란 막대나 줄 따위를 가로로 놓거나 꽂다)'의 옛말. ②'비끼다(비스듬히 놓이거나 늘어지다)'의 옛말.

*사사하다(師事-- 스승 사/섬길 사) ; 스승[師]으로 섬겨[事] 가르침을 받다.

*보리수(菩提樹) ; 산스크리트어 bodhi-vṛkṣa  원래 이름은 아설타(阿說他, 산스크리트어 aśvattha)이며, 그 열매를 필발라(畢鉢羅, 산스크리트어 pippala)라고 하는 데서 이 나무를 필발라수(畢鉢羅樹)라고도 하고, 붓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였으므로 보리수라고 함. 상록 교목으로, 잎은 심장 모양이며 끝이 뾰족함.

*샛별 ; 새벽별. 명성(明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법신체(法身體) ; 법신(法身)의 체(體)를 가리키는 말.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부처님을 가리킨다.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絶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업(業) ; (산스크리트어 :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①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②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③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④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⑤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⑥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⑦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⑧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⑨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⑩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축생과보(畜生果報) ; 축생(畜生)으로 태어나는 과보(果報).

*과보(果報 열매 과/갚을 보)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천안통(天眼通) ;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염부제(閻浮提) ; 염부(閻浮).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의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는 jambu의 음역어이며, 제(提)와 주(洲)는 dvipa의 각각 음역어 및 의역어이다. jambu는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네 대륙(四洲)이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에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함. 불전(佛典)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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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거나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페롭다 ; '파리하다(몸이 마르고 낯빛이나 살색이 핏기가 전혀 없다)'의 사투리.

*소락(酥酪 연유 소/쇠젖 락) ; 소나 양 등의 젖.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것(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것(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것(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 저절로 죽은 것(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것(鳥殘).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자재(自在 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①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②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③자유롭다. 자신에게 의존하다. ④독립. ⑤느긋한 심신의 작용. 잡혀지지 않는 것. ⑥불보살에 갖추어진 힘을 말함. 부처님을 자재인(自在人)이라고도 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장군죽비(將軍竹篦) ; 보통 죽비(竹篦)는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약 2m의 큰 죽비.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8. 5. 6. 23:30

 

 

§(578) (게송)춘종동해남비석~ / 참선은 모름지기 대신근(大信根), 대분지(大墳志), 대의단(大疑團),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한다.

 

한번 화두를 탔으면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을 전혀 따질 필요가 없어. 잘되어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낼 것이 없고, 잘 안되어도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낼 필요가 없어. 안될수록에 더욱 그 화두를 향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한결같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대신근과 대분지와 대의정은 그 중에 하나만 없어도, 세 다리로 서 있는 솥이 그 중에 하나만 부러져도 솥이 넘어져 버리는 거와 같아서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가 없다.

 

**송담스님(No.578)—96년(병자년) 동안거결제 법어(96.10.15) (용578)

 

약 16분.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하야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봄에는 동해로부터서 저 남쪽으로 주장자(拄杖子)를 날리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가을이 되면은 서산을 향하고 또 북방을 향해서 다니는구나.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하야, 삼백육십일을 정처 없이 안착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다니드니,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鄕)이냐. 아지 못해라, 어느 날에나 고향에 돌아갈 것인가.

 

해제(解制)를 하면 걸망을 짊어지고 저 동에서 남쪽으로 주장자를 들고 가고, 또 가을이 되면은 동결제를 위해서 저 서산을 향할까 가다가 또 북방으로 가고.

걸망을 짊어지고 주장자를 짚고 그리고 선방을 찾아서, 선지식을 찾아서, 도반을 향해서 행각(行脚)을 하는 수좌(首座) 스님들의 거동을 읊은 것입니다.

 

결제 · 해제를 당해서 '이 철에는 어디로 갈까? 다음 철에는 어디로 갈까?' 이렇게 철 따라서 동서남북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은 옛날부터서 지금까지 변함이 없이 행해지고 있는 모습이어서 그것을 꼭 나쁘다고 할 것도 없고.

 

부처님께서는 "한 돌 위에, 한 나무 밑에 사흘 저녁을 자지 말아라"

'한군데서 붙배기로 있게 되면은 거기에 애착심이 생기니까 그렇게 한곳에 집착해서 있지 말라' 그런 뜻으로 말씀을 하시나,

 

어디가 있던지 한 철을 지내건, 두 철을 지내건, 항상 새로 방부(房付)를 들이고, 새로 첫 철로 그 선원에 들어온 것처럼 엄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낸다면 삼 년 내지 십 년을 지낸들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이냐.

한번 딱! 방부를 들이면 옛날 스님네는 그 선지식(善知識)을 믿으면 그 선지식 밑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 십 년이고 내지 삼십 년도 거기를 떠나지 아니하고, 거기서 아주 바닥을 볼 때까지 그 회상(會上)을 떠나지 않고 정진을 한 그런 예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냥 멋으로, 취미로 이리갔다 저리갔다, 으레이 해제하면 걸망짐 싸매 지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그렇게 뜻 없이 방황한 것에 대한 그것을 경계(警戒)하는 게송(偈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병자년 10월 15일 동안거 결제일입니다.

방금 결제 법어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 더이상 결제 법문을 산승(山僧)이 법문이라고 설할 것도 없고, 이미 우리는 조실 스님의 그 천지를 진동할만한 대사자후(大獅子吼)를 들었습니다.

 

산승이 이 자리에 올라와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새로 선방에 나와서 방부를 들인 초심학자(初心學者)를 위해서 몇 마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참선은 모름지기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 무엇이 세 가지냐 하면은 첫째, 대신근(大信根)을 가져야 해. 둘째는 대분지(大志)를 가져야 하고, 셋째는 대의단(大疑團)이 있어야 한다.

 

첫째, 큰 신근(信根), 큰 신심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믿는 것이냐?

내가 바로 부처요,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정진을 하면 반드시 깨칠 수 있다고 하는, 고조사(古祖師)와 같이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철저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여.

 

왜 내가 고조사와 같이 깨달을 수가 있느냐, 깨칠 수 있느냐.

무량겁 전에는 부처님이나 모든 조사나 우리가 다 같이 원각, 본각(本覺)으로써의 한 존재였었다 그말이여.

 

한 생각 무명심(無明心)이 발동함으로 해서 나는 아직까지도 나의 본각을 잊어버린 채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을 뿐이지,

이 오음(五陰),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친 이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분명히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면목을 깨닫기만 하면 언제라도 우리는 바로 본고향(本故鄉)에 돌아갈 수가 있다.

 

그러한 교리상으로도 그러려니와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조사들이 다 그렇게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선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만 공부하면 왜 나라고 해서 못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한 대신근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는 대분심(大憤心)인데, 무슨 분심이냐 하면은 '왜 과거에 부처님과 조사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해 가지고 확철대오하고 생사해탈을 해서 중생을 교화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삼독 고해(苦海)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느냐' 그러한 속에서 끓어오르는 그런 분심을 가져야 한다 그거거든.

그러한 분심이 없고서는 사소한 일에 끄달리고 철저하게 정진할 수 있는 용기가 나지를 않아.

 

분심(憤心)을 갖느냐, 안 갖느냐에 따라서 아무리 신근(信根)이 철저하다 해도 분심이 없고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이여.

평소에는 도저히 그만큼 무거운 것을 들어 본 적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불이 나면 엄청난 무거운 것을 불끈 들고 문밖으로 나가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이 분심 때문에 그러거든.

 

처음부터 자신(自信)을 갖지 못하고 분심이 없어가지고 그럭저럭 이렇게 지내면 만날 지내 봤자 삼백육십일을 동서남북으로 걸망짐을 지고 왔다갔다해 봤자, 언제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해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느냐.

분명히 자기 고향이 있는 방향을 알고 그 방향을 향해서 자나깨나 그 목적지를 향해서 부지런히 가야할 것이다.

 

셋째, 대의정(大疑情), 대의단(大疑團)을 가져야 한다.

대의정(大疑情)이라 하는 것은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화두(話頭),

화두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인데, 그 화두가 아무리 많다 해도 그 화두를 자기 멋대로 아무거나 하나 추려 가지고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안된다 그말이여.

 

자기가 마음대로 취택한 화두는 언제라도 공부가 좀 잘 안된 성 싶으면 자기가 또 바꿀 수가 있어서, 자꾸 화두를 이놈으로 했다 저것으로 했다 바꿔 싸면, 마치 우물을 파는데 여기 좀 끌적거려 봐서 물이 안 나오면 저쪽에 가서 끌적끌적 해 보고, 몇십 군데를 파 봤자 정말 좋은 물을 얻을 수가 없는 거와 마찬가지여.

화두를 이놈으로 했다 안되면 저놈으로 하고, 저놈으로 화두 했다 안되면 한 철 만에 바꾸고 두 철 만에 바꾸고 그러면 종내 그 사람은 큰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번 화두를 탔으면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을 전혀 따질 필요가 없어. 잘되어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낼 것이 없고, 잘 안되어도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낼 필요가 없어.

안될수록에 더욱 그 화두를 향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한결같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대신근과 대분지와 대의정은 그 중에 하나만 없어도, 세 다리로 서 있는 솥이 그 중에 하나만 부러져도 솥이 넘어져 버리는 거와 같아서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가 없다.

 

그런데 대신심과 대분지와 대의단을—이것은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하나도 없어서는 안될 요긴한 것이다—그러한 것을 염두(念頭)에 항상 가져야 할 것인데.(처음~16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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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춘종동해남비석~'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행각승(行脚僧)' 게송 참고.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붙배기 ; '붙박이(어느 한 자리에 고정되어 박혀 있어서 움직임이 없는 상태. 또는 그런 사물이나 사람)'의 사투리.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바닥(을) 보다 ; ①(사람이) 밑천이 다 없어지다. ②(사람이) 어떤 일의 끝장을 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으레이 ; 으레(①거의 틀림없이 언제나 ②두말할 것 없이 마땅히)의 사투리.

*경계(警戒 경계할 경/경계할 계) ; ①뜻밖의 사고나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여 단속함. ②적의 기습이나 간첩 활동과 같은 예상하지 못한 침입을 막기 위해 일정한 지역을 살펴 지킴.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초심학자(初心學者) ; 발심학자(發心學者 발심한 수행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원각(圓覺) ; ‘원만(圓滿)한 신령스러운 각성(覺性)’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인 청정한 본심을 일컬어 원각묘심(圓覺妙心)이라 한다.

일체의 생명에는 본래부터 깨달음[本覺]이 있고 진심(眞心)이 있어서, 체(體)의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을 하면 일심(一心)이라 하고, 인과(因果)의 인(因)을 잡아서 표현을 하자면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표현하고, 인과(因果)의 과(果)로 잡아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한다.

*본각(本覺) : 본래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 부처님의 본래의 깨달음.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무명(無明) :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육도윤회(六途輪廻)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무더기.

①색온(色蘊) : 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 : 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 :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 :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 :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오음색신(五陰色身) ; 오온색신(五蘊色身). 오온으로 이루어진 육신[色身 형질을 가진 몸].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불급불완(不急不緩) ;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염두(念頭) ; 마음속. 마음의 속.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8. 2. 7. 10:49

 
§(356) (게송)금강보검의천한~ / 활구참선을 해야 / (게송)증위탕자편련객~ / 삼요 / 부처님 인행(因行) 때의 열반경 설화 / (게송)여래증열반~ / 위법망구의 정진.
 
깨달음은 생사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사심에 즉(卽)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 데에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 말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이리 해야 그것이 바로 참선을 해 가는 거고, 참선을 바로 해 가야 바른 깨달음에 도달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소원이 있으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그러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지를 말고, 크고 작은 원이 있으면 보리심을 발해야 돼. 정말 청정한 마음으로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그리고 참선을 열심히 하시면서 원을 세우면 그 원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송담스님(No.356)—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 (용356)

(1/3) 약 19분.

 

(2/3) 약 17분.

 

(3/3) 약 9분.

 

(1/3)----------------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한디  일휘능최만인봉(一揮能摧萬仞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변계마군종차락(徧界魔軍從此落)하면  유하정매틈기중(有何精魅闖其中)고
나무~아미타불~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이다. 금강의 보배 칼이 하늘을 의지해서 서릿발이 치는데,
일휘능최만인봉(一揮能摧萬仞峰)이다. 한번 휘둘러서 능히 만 길이나 되는 봉우리를 갖다가 꺾어 버리더라.
 
변계마군종차락(徧界魔軍從此落),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두루 꽉 차 있는 그 마구니가 이로 좇아 떨어지니,
유하정매틈기중(有何精魅闖其中)고, 무슨 정매(精魅), 도깨비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속을 엿볼 수가 있겠는가.
 
방금 전강 조실 스님께서—갑인년이면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해인데, 그해 정월에 설하신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점은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활구참선!
활구참선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요.
 
요새 참선, 많은 사람들이 참선(參禪)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모두 참선을 알려고 그러고, 참선을 할려고 노력을 하고—그런데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그 선양을 하신 그 참다운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다 그말이여.
 
공안(公案)을 가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분석하고 따지고, 그래서 분별하고 따지면,
아무리 그 공안을 타파해서 생사해탈하는 그러한 공안이라 하더라도 중생심으로 따지고 분석하고 그러면 그 훌륭한 공안이 사구(死句)가 되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백 년을 따지고 천 년을 따지고 무량겁을 따져도, 따질수록 점점 공안의 참뜻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고.
따라서 참 깨달음을 향해서 정진을 해야 할텐데 따지다 보면 깨달음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가거든.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어져 버리고 말아버리는 것이여.
 
비단 조실 스님 법문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께서 설(說)하신 법이 바로 이 활구참선을 설하신 것입니다.
 
성현이 가신 때가 멀고, 법은 마강법약(魔强法弱), 마구니는 강해지고 법(法)은 약해져.
그러니 부처님의 설하신 법도 중생 나름대로 사견(邪見)을 붙여서 사법(邪法)을 만들고, 조사가 선양하신 활구참선법도 이렇게 말세가 되니까 자꾸 중생의 소견으로 사량분별을 붙이고, 이치 길로 따지고 말 길로 따져서 더듬어 들어가서 자기 나름대로 온갖 삿된 소견을 붙여서 분석을 하니, 그것이 참다운 참선인 줄 알고 전부 후래(後來) 학자들은 그 공부 첫걸음부터 그르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기가 쉬우냐 하면 활구참선은 말 길이 끊어지니 뭐라고 입을 벌릴 수도 없고, 이치 길이 끊어졌으니 뭐라고 거기 분석을 할 수도 없고.
밤낮 ‘알라야 알 수 없고,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곳을 향해서 의단(疑團)을 거각(擧却)하라!’ 그렇게 한 달을 해보고 두 달을 해보고 일 년을 해보고 이태를 해봤자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
 
그런데 일본 책이라든지, 그런 모다 공안을 이리저리 분석해서 따져 논 그런 책을 보면 모두 읽을 맛이 있고 재미가 있다 그말이여. 알아지는 것이 있고 얻은 것이 있고 그러니까.
그러니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모두가 다 그런 책을 읽어 가지고, 명색(名色)이 참선을 한답시고 한 것이 모두 의리선(義理禪)만 허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 나라에 경허 스님, 만공 스님 이후로 쭉 내려오는 활구참선법은 공안을 그런 식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행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떠한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해도 사구참선(死句參禪)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어.
설사 10년을 하고 30년을 하고 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아무 소견이 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갈지언정, 무슨 사량분별을 가지고 어떤 소견이 나기를 바래고 어떤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무슨 가늠이 가고 이러기를 바래지를 말어야 한다.
 
열 가지 공안 또는 백 개, 이백 개 내지 삼백 개, 천이백 공안에 대해서 해석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 소견이라,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얻어지는 해석은 생사심(生死心)만을 더욱 조장할 뿐 깨달음에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여.
 
깨달음은 생사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사심에 즉(卽)해서 대의단으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 데에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 말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이리 해야 그것이 바로 참선을 해 가는 거고, 참선을 바로 해 가야 바른 깨달음에 도달을 하는 것입니다.
 
 
증위탕자편련객(曾爲蕩子偏憐客)이여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내하유자부지반(乃何遊子不知返)하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증위탕자(曾爲蕩子)라 편련객(偏憐客)이여. 일찌기 방탕, 방랑하는 사람이 된지라, 치우쳐 객을 어여삐 여김이라.
 
부처님 자신이 무량겁을 두고 고향을 떠나서 육도(六途)를 돌면서 그 방랑자 된 그러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러한 방랑생활을 한 그러한 뼈에 사무치는 그러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치우쳐 객을 어여삐 여겨.
지나치리만큼 일체 중생의 그 생사윤회(生死輪廻)하고 있는 일체 중생에 대해서 정말 가슴깊이 불쌍하게 여기신다 그말이여.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다. 평생 동안을 술을 많이 먹고 과음 폭음을 해서 그렇게 이 술을 많이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술 취한 사람을 갖다가, 그 술 취한 사람의 속사정을 이해를 한다 그말이여.
 
내하유자부지반(乃何遊子不知返), 유랑하는 방랑하는 사람은 객지로 객지로 떠돌기만 하고, 본고향(本鄕)으로 자기집으로 돌아올 줄을 몰라.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다. 길이 타향에 길을 잃고 풍파를 쫓아가고 있구나.
 
모든 불보살과 역대조사와 선지식들은 자신이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 속에서 그렇게 많은 그 고통을 받아왔고 그렇게 받은 그러헌 스스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서 출가를 해서 대도를 성취하고,
대도를 성취한 뒤에도 일신상의 안락을 불구하고 일평생 동안을 중생과 후래 학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그 생사해탈(生死解脫), 어떻게 하면 이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그렇게 목이 쉬도록,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그렇게 간곡히 노바심절(老婆心切)하게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일러주시건만 각자 업(業)이 지중(至重)해서 계속해서 그 업의 풍파, 업풍(業風)에 따라서 계속 객지로 객지로 떠돌고 있을 뿐 고향으로 그렇게 돌아오지를 못한다.
 
불법(佛法)을 믿지 않고 다른 외도(外道)를 믿는다던지 또는 불법을 믿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지 못하고 방편설(方便說)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이 최상승법을 믿고 또 활구참선을 의지해서 공부를 시작한 지가 벌써 오래된 그런 사람도 진정으로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활구참선의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그 삼요는 대신심(大信心) · 대분심(大憤心) 그리고 대의심(大疑心) 대의단, 이 3가지를 한목 갖추어야 그래야 진실한 수행자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18분30초)
 
 
 
(2/3)----------------
 
 
대신심이란 게 무엇이냐? 무엇을 믿어야 대신심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냐?
내가, 내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 내 자신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믿는 것이 그것이 바로 대신심이여.
 
‘이론상으로는 우리도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참선을 해서 가지고 있는 불성을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견성이다’ 이렇게 다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따로 있고, ‘내’라고 한 놈이 불성을 속에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 줄 알고, 말을 들을 줄 알고, 성도 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그 당처(當處), 그 당처를 여의지 않고 그 당처가 바로 불성이라, 바로 그것이 자성불(自性佛)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놈을 철저히 믿어야 그놈을 여의고 따로 부처를 찾지 않게 되는 거여.
그놈을 여의고 따로 ‘참 부처’를 찾는 한에는 영원히 찾어도 부처님은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이 신심이 꽉 아주 견실(堅實)해야 그래야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여. 바른 참선을 할 수가 있어.
 
 
그 다음에 대분심(大憤心).
왜 내 자신이 부처이고, 그러면서 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불보살, 역대조사는 진즉 이 문제를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을 해서 생사해탈을 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면서 생사고해 속에서 이렇게 헤매이고 있는가?
 
왜 멀쩡한 부처님이면서 부처님으로서 살지를 못하고, 부처님으로서 행하지를 못하고, 어찌 이렇게 업풍에 따라서 이렇게 윤회를 거듭하고 있고, 언제 그 기한 없이 이렇게 고취(苦趣) 속에 빠져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뼛골에 사무치도록 분심! 한탄이라고 할까? 원망이라고 할까? 기가 맥힐 일입니다. 그러한 뼛속에서부터 사무치는 그런 분심이 없고서는 도는 닦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은 동시에 발(發)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과거 무량겁 무변 나유타 겁에 이 사바세계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부처님의 호(號)가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하는 부처님이셨다”
삼천년 전에 인도에 출세하신 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지마는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 무량무변(無量無邊) 나유타(那由他) 겁(劫) 이전에도 이 사바세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다” 이것입니다.
 
중생을 위해서 대열반경(大涅槃經)을 설하고 계셨어.
 
그때에 한 친구로부터 ‘지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열반경을 설하고 계신다’ 그 말을 들었다 그말이여. 듣고서 마음 가운데에 큰 환희심을 내고서 바로 가서 공양(供養)을 올리고 법문을 듣고 싶었지만 너무 가난하고 아무 재산이 없어.
그래도 부처님을 가서 친견을 하고 법문을 들을려면 무엇인가 정성스럽게 공양할 거리를 마련해 가지고 가서 공양을 올리고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법문을 들어야 할텐데,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여러 가지로 궁리 끝에 ‘차라리 이 몸뚱이를 팔아 가지고라도 공양구(供養具)를 만들어야겠다’ 이래 가지고 읍에 나가 가지고 “이 몸뚱이를 사시오. 이 몸뚱이를 살 사람이 없소”하고 외치고 댕겼다 그말이여. 워낙 박복(薄福)한 사람이 되어서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은 척도 안 해.
누가 몸뚱이를 살려고 한 사람이 있어야 팔텐데, 이 몸뚱이를 사라고 목이 쉬도록 외쳐도 아무도 살려고 한 사람이 없어. 사람이 모여들지를 않는다 그말이여.
 
그래서 할 수 없이 실망을 하고 집으로 허탈 상태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어. 혹 이 사람은 내 몸을 살랑가 해서 “이 몸뚱이를 사시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 내가 사겠다”고.
 
“그런데 나한테 무서운 병이 있는데 의사한테 진단을 해서 처방을 냈는데 ‘사람 고기를 하루에 석 냥[三兩]중씩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그러니, 당신이 나한테 팔려오면 내가 당신을 사면 날마다 당신 살을 갖다가 석 냥씩 내가 뜯어서 먹어야겠는데 그렇게 먹어도 되겠느냐?”
그렇게 말하니까 “대단히 좋다”고.
 
“그러면 만약 내 집에 와서 하루에 석 냥씩을 나한테 바치면 내가 금전(金錢), 금으로 된 돈을 석 닢씩을 주겠다” 그렇게 해서 서로 언약이 되었어.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서 갔는데, “내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무슨 소원인고 허니는, 내가 이 몸뚱이를 팔아 가지고 그 돈을 다른 데에 쓸려고 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리고 부처님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내가 이 몸뚱이를 팔려고 그런 것이니, 이 몸뚱이를 날마다 그렇게 석 냥씩 띠어내면은 내가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가 없으니 7일 동안을 나한테 허락을 해주면 내가 먼저 가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듣고 와서 그래 가지고 당신에게 이 몸뚱이를 바치겠다”하니까.
 
“그래 좋은데, 7일은 너무 많고 하루만 승낙을 하겠다” 그러면서 돈을 석 닢을 주어서 그래서 인자 그놈을 가지고, 공양구를 마련을 해 가지고 부처님께 그 공양을 올리고서 절을 하고서 열반경 설하신 것을 들었다.
듣는데, 다른 많은 법 설하신 것은 다 잊어버리고 머리가 우둔해 가지고 게송 하나만을 기억을 해 가지고 왔어.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하사  영단어생사(永斷於生死)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지심청(若能至心聽)하면  상득무량락(常得無量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 여래가 열반을 증득하사,
영단어생사(永斷於生死)다. 길이 생사를 끊으셨도다.
 
약능지심청(若能至心聽)하면,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들으면,
상득무량락(常得無量樂)이니라. 항상 무량의 낙을 얻으리라.
 
이 게송, 이 간단한 게송 한마디만 겨우 마음속에 새겨 가지고 돌아왔어. 그래 가지고 그 주인집에 와 가지고 날마다 그 게송을 속으로 읊어.
읊으면서 허벅지로 궁뎅이로, 살 좋은 데로 석 냥씩을 뜯어서 그래 가지고 그 주인한테 약으로 바쳤는데, 그러면서도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이 게송을 염송(念誦)하고 그러면서 했기 때문에 전혀 괴로운 줄도 모르고 아픈 줄도 몰랐어.
 
그러기를 날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해 가지고 한 달 동안을 그렇게 했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좋다는 약은 다 써도 백약이 무효인데, 한 달 동안을 그 사람의 그 인육을 갖다가 먹고서 그 무서운 병이 나았다 그말이여. 그 병 이름이 무엇이라고는 경에 쓰여져 있지 않지마는.
 
그래 가지고 병이 나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주인의 병이 다 낫자마자, 그 온 몸뚱이에 그 한 달 동안 30번을 갖다가 석 냥씩 띠어낸 그 상처도 깨끗이 다 아물어 버렸다 그말이여.
 
날마다 그 석 냥씩이면 굉장히 그 많은 살점뱅이인데,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들어도 잠을 못 자고 그렇게 아리고 쑤시고 아픈 것인데, 한 번만 띠어내도 그 상처가 아물라면은 여러 달이 걸려야 그 상처가 아물고, 염증이 생기면 고름이 나고 그래 가지고 그 새살이 차오를라면 힘이 들텐데,
날마다 띠어낸 자죽이 한 달 동안을 그랬으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 얼마나 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겠지만,
 
부처님께 들은 열반경의 그 게송을 듣고서 그 게송을 갖다가 지극정성으로 독송하는 그 공덕으로 그 신심으로 아픈 줄을 전혀 몰랐고, 아픈 줄만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주인이 병이 다 나았다고 그 말을 듣고 그것도 기쁘려니와, 자기 상처도 이리 보니까 일시에 다 상처가 다 아물어서 다 나은 것을 보고서 너무너무 환희심이 났다.
 
그러자 대보리심(大菩提心)이 돈발(頓發)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원(願)을 세우기를 『내생에 내가 반드시 성불(成佛)을 하면 호를 석가모니불이라 허리라』 이렇게 원을 세웠어.
 
보리심을 발(發)해 가지고 원을 세우면은 그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떠한 소원이 있으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그러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지를 말고, 크고 작은 원이 있으면 보리심을 발해야 돼.
정말 청정한 마음으로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그리고 참선을 열심히 하시면서 원을 세우면 그 원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18분30초~35분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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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언제나 이 기도할 때에도 말씀을 드리지만 ‘청정한 마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그 기도를 성취할 수가 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마는,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몸뚱이를 팔고, 그래 가지고 한 달 동안을 날마다 살점을 띠어서 그 아픈 환자의 병을 낫으기 위해서 띠어 주면서도 계속 열반경에 그 부처님께 들은 그 게송을 외우면서 지극정성으로 했기 때문에, 아픈 줄도 모르고 오직 그 육체와 자기의 모든 것을 법을 위해서 바쳤어. 그래서 아픈 줄을 모르는 것이다.
 
 
세속에서도 그 어머니가 그 자식을 낳을 때, 그 고통이 참 낳아보지 아니한 사람은 도저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고통이 심하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그 은중경(恩重經)을 통해서, 그리고 또 들은 바로서 그 고통이 매우 심하고, 그 애기를 낳으러 들어가면서 ‘다시 내가 또 이 신발을 신을 수가 있을런지’ 그렇게 참,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산고(産苦)라고 하는 것이 어렵다고 그러고.
 
또 애기를 낳아 가지고도 애기가 어디가 아프면은 그렇게 참, 밤잠을 안 자고 애기를 안고서 그 간호를 하고. 그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 뉘우면서 그 애기를 길러낸 어머니의 그 고통.
또 그 애가 커서 학교를 가고 시험볼 때—지금 여러분들도 다 겪고 계시지만 참, 그 애 학교 합격하기 위해서 같이 밤을 지새우면서 그러한 어머니의...
 
또 그 애가 커서 장가를 들고, 그 애가 커서 또 군인에를 간다던지, 그 어머니가 팔구십이 되고 애가 칠팔십이 되어도 그 칠팔십, 육칠십이 된 늙은 아들을 보고도 항상 애기처럼 생각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
그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괴로운 줄을 모르고 다 갖다가 거기 정성을 다 쏟으신 거다 그말이여.
 
그 생각을 미루어서 생각해 보면 정말 이 부처님의 그 전생, 저 무량 아승지겁 이전에 그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바치고 법을 위해서 살점뱅이를 띠어낼 때에 조금도 아픈 고통을 느끼지를 아니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치로 미루어 볼 때에 이해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법망구가 됨으로 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허지만 참, 참선이 안된다. 정진이 잘 안된다. 혼침이 오고 망상심이 일어난다.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하고 화두가 순일하지를 못한다. 무슨 잘못이 있어서, 공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공안을 타파를 못하고 확철대오를 못한 것이 아니냐’
많은 분들이 그것을 호소를 하신 것을 들었습니다마는 순전히 그 원인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세하게 따지면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이 삼요(三要)를 갖추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단(大疑團), 이 삼요를 갖추지 못함으로 해서 공부가 화두가 순일하지 못하고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하는 것이지, 그밖에 딴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만 한목 발(發)해 버린다면, 마치 전강 조실 스님께서 첫 철에 직지사 제산 큰스님 회상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실 때에, 공양 목탁을 치면 가서 발우(鉢盂)를 펴고 공양을 드시고는 온전히 입선 방선이 없어.
법당 뒤에다가 방석을 하나 갖다 놓고 거기서 그저 하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조금 혼침기가 있으면 일어나서 왔다갔다 일직선상으로 포행(布行)을 하시면서, 그래 정신이 깨끗해지면 다시 그 자리에 와서 또 앉고, 또 쪼금 혼침이 온 듯하면 금방 일어나서 또 포행을 하시다가 또 하고, 이렇게 하기를 한 달 두 달,
 
처음에는 모다 대중이 ‘어린 사람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지가 바로 무슨 공부나 한 척한다’고 모다 쑤군덕거리고 모다 그랬지마는.
열흘을 그렇게 해, 스무 날을 그렇게 해, 한 달을 그렇게 해, 두 달을 그렇게 해, 한결같이 그렇게 하니까 나중에는 쑤군덕거리고 모다 빈정거리고 하는 그런 말이 다 쑥 들어가 버리고.
 
예불(禮佛) 시간에 예불을 하면서 “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 엎드린 채 잠에 깊이 빠져 가지고 일어나지를 못해.
그래서 일으킬라고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 “내비둬라. 엎드린 채 좀 한숨 자게 놔둬라” 이렇게까지 모다 입승 스님을 비롯해서 대중스님네들이 모다 그 애껴주셨다 그말이여.
 
그 어린 소년이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정말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어리신 나이로 공안을 타파(打破)하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신 것입니다.
그때에 그러헌 참, 목숨 바치는 그런 위법망구적인 그러헌 그 정진이 없었다면 어떻게 조실 스님이 그렇게 어린 나이로 확철대오를 허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과거의 모든 불보살과 역대조사들이 다 도를 성취하신 데에 있어서는 그만한 위법망구적인 그러헌 신심과 분심이 없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35분28초~44분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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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서릿발(이) 치다 ; ①서릿발이 생기다. ②기세가 매우 매섭고 준엄하다.
*서릿발 ; 겨울철에 땅속의 수분이 얼어 성에처럼 되어 기둥 모양으로 뻗어 있는 것. 또는 그로 말미암아 지면이 부풀어오르는 현상.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정매(精魅 도깨비·정령·요괴 정/도깨비·요괴 매) ; 도깨비(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잡된 귀신의 하나).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명색(名色) ; ①어떤 부류에 붙여져 불리는 이름. ②실속 없이 그럴듯하게 불리는 허울만 좋은 이름.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경허 스님, 만공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게송) ‘曾爲蕩子偏憐客 慣愛貪盃惜醉人’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야부 스님 게송 참고.
*(게송) ‘乃何遊子不知返 長在迷途逐風波’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지중하다(至重-- 이를 지/무거울·소중할 중) ; ①(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②(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업풍(業風) ; 업의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 업의 바람. 업의 세력[業力]을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선하거나 악한 업력에 따라 생사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중생의 현실이 마치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에 날리는 낙엽이나 배와 같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방편설(方便說 방법·수단 방/편할 편/말씀 설) ; 실상(實相)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상대와 조건에 알맞는 방법을 설정하여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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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 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당처(當處) ; ①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②그대로. 지금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곳에서.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견실하다(堅實-- 굳을·강할 견/열매·실하다 실) ; ①튼튼하고 굳건하다. ②의지가 굳고[堅] 착실(着實)하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고취(苦趣) ; 고통의 세계. 공포와 고통이 극심한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 취(趣)는 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지은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발하다(發-- 일어날 발) ; 생기게 하거나 일어나게 하다. 생기거나 일어나다.
*대열반경 법문 ; 『대열반경』(남본南本) (혜엄, 혜관 등 번역) 제20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참고(0740c07~). 『열반경(2)』 (이운허 옮김 | 동국역경원) p494~495 참고.
*무량무변(無量無邊) ; 한없이 크고 넓음. 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음.
*나유타(那由他) ; 나유다(那庾多)라고도 한다. 지극히 큰 수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의 수인지는 명확하지 않음. 천만이나 천억에 해당된다.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석 냥[三兩]중 ; 냥(兩)은 무게의 단위. 귀금속이나 한약재 따위의 무게를 잴 때 쓴다. 한 냥은 37.5그램으로 귀금속의 무게를 잴 때는 한 돈의 열 배이고, 한약재의 무게를 잴 때는 한 근의 16분의 1이다.
‘-중(쭝重)‘은 ‘무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게송)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 ; 『대열반경』(남본南本) (혜엄, 혜관 등 번역) 제20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참고.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염송(念誦 생각할 염/욀·암송할 송) ; 마음속에 부처님을 염원(念願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간절히 바람)하며 불보살(佛菩薩)의 명호(名號 이름)나 경(經), 진언(眞言) 등을 외는 것.
*살점뱅이 ; 살점배기. 살점(살點 : 큰 고깃덩어리에서 떼에 내거나 떨어져 나온 살조각이나 살덩이).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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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경(恩重經) ;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돈황본 『부모은중경』과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지금까지 널리 유통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 있다. 내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고,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에는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열 가지가 있는데, ①아이를 배어서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회탐수호은 懷耽守護恩). ②출산하실 때에 고통을 받으신 은혜(임산수고은 臨産受苦恩). ③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신 은혜(생자망우은 生子忘憂恩).
④쓴 것은 어머니가 삼키고 단 것은 아이 먹이신 은혜(연고토감은 咽苦吐甘恩). ⑤마른 데 아이 누이고 젖은 자리 어머니 누우신 은혜(회건취습은 廻乾就濕恩). ⑥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유포양육은 乳哺養育恩). ⑦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세탁부정은 洗濯不淨恩).
⑧멀리 갈 때 걱정하시는 은혜(원행억념은 遠行憶念恩). ⑨자식을 위해서는 모진 일 하신 은혜(위조악업은 爲造惡業恩). ⑩끝없는 연민으로 사랑해주는 은혜(구경연민은 究意憐愍恩)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한량없는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①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어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살갗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骨髓)가 드러나도록 수미산을 백천번 돌더라도,
②설사 예리한 칼로 부모님을 위하여 자기의 눈동자를 도려내어 여래(如來)에게 바치기를 백천겁을 하더라도,
③가령 어떤 사람이 부모님을 위해 몸을 심지로 삼아 불을 붙여서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④설령 어떤 사람이 뼈를 부수고 골수를 꺼내며, 또는 백천 개의 칼과 창으로 한번에 몸을 찌르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또한 위와 같은 여러 난행고행(難行苦行)을 하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설하셨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중생을 보니 어리석고 미련하여 부모님의 큰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공경치 않고 은혜를 저버려 부모님께 어질지 못하고 효성스럽거나 의롭지 못하다. 이같이 부모님의 은덕은 한량없지만 불효한 허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불효한 사람은 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져, 감당하고 참기 어려운 무서운 고통을 받아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죽고 또 다시 태어나기를 몇 겁이 지나도록 조금도 쉬지 않고 받는다.
 
그리고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갚는 갚으려면 음력 7월 15일의 우란분재(盂蘭盆齋)에 부모를 위해서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이 경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죄와 허물을 참회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재계(齋戒)를 받아지니고, 부모님을 위하여 보시하고, 복을 닦도록 설하셨다.
그리고 부모를 위한다면 이 경의 한 구절, 한 게송을 잘 받아지니고 읽고 쓰며, 잠깐이라도 보거나 들은 사람은 오역(五逆)의 중한 죄라도 영원히 다 소멸된다고 하셨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컬음.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7. 5. 28. 22:32

§(627)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중생이  부처니, 바로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 번뇌가  보리(菩提)이니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 (용627)

 

약 13분.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   본심왕(本心王)을 어기고 등지고 떠난 뒤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번이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으며  번이나 사생(四生)을 겪어 왔던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을 겪어 왔던가.

 

삼도(三途)를 수천만 , 태란습화 사생의 몸을 수억만 번을 거쳐서 이렇게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말이여.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 번뇌(煩惱)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 ()하고 보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본고향(本故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방금 우리는 임자년에, 임자년이라고 하면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 섣달 초이튿날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임자년은 갑인년보다 3 전입니다. 임자, 계축, 갑인, 열반하시기 3 전에 설하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비록 녹음 테이프(tape)를 통해서 들었지만, 금방  법상에 올라오셔서  열렬한 대사자후(大獅子吼)를 우리는 실지로 설하신 것처럼 우리는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오늘 일요법회 법문은 조실 스님 법문    들으면 그것으로서 족하겠지마는, 산승(山僧)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여러 도반(道伴)들에게 일요일이라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실 수도 있고 쉬실 수도 있건마는, 날씨도 더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법회에 나오셨으니 원장으로서 인사 말씀 한마디 하고 우리가  같이 정진을 잘하자고 하는 다짐하고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법문에 내가  찾는 공부, 철저한 신심으로 그것밖에는   없다 하는 요지,  공부해 나가는 구체적인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에 대해서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 부처님이나 또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이나  같이  근본에 올라가서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몸이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 무명(無明)이 동(動)함으로 해서, 이것이 본심왕을 어겼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말입니다. 본심왕을 어기고 떠났다고 하는 것은,  생각 무명심이 발동함으로 해서 아직까지도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 못하고 삼도와 사생을 돌고 돌면서 갖은 크고 작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일은 우리가 본래 법신불이었다고 하는 사실과 그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몸안에 있는 법신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불이나 똑같은  법신불이 우리 안에 역력히 살아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은 업연(業緣)에 따라서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고, 아귀도에도 태어나고 그러고 있지마는,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법신불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손상됨이 없이 고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철저히 믿는 것이 정법(正法)을 믿는 것이고 그것이 불법(佛法)을 믿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월초파일에 이천육백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신 뜻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탄생하셨다 하지만, 어떻게 제도합니까?

‘모든 중생들에게  같이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중생, 너희들이 부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공경을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이 말씀을 하시기를 중생이  부처니, 바로 내가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하시는 거고.

번뇌(煩惱)가  보리(菩提)이니,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봤다 하면 거기서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었다 하면은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은 번뇌의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없는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번뇌를 여의지 않고 거기에 보리가 있다는보리(菩提)는 깨달음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보리라고 하는데 번뇌를 여의지 않고 깨달음이 거기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붙어 있다고 하면  어폐(語弊)가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바로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대승법(大乘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은 파도가 일어나고 있을 ,  파도는 물이  인연 따라서 움직거리면 그것이 파도인데, 파도는 물을 여의고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파도 있는 곳에는 반드시 거기에 물이 있는 거고, 물이 있으면은 물결이 파도가 일어나게  것입니다.

 

물결을 버리고 물을 찾는 한에는 물속에 들어앉어서도 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을 여의고 부처를 찾을 수가 없는 거고,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는 한에는 깨달음 속에 있으면서 깨달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것은 깨닫기 위해서 한다’하지만 깨달으려고  필요가 없습니다. 참선 해  사람이면 끊임없이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마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몸뚱이가 바로 부처님 몸뚱이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수없는 번뇌가 바로 그것이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에서는 아까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인도에서 28,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오셔서 육조 혜능 스님까지 6, 그래서 육조 스님까지 해서 33대를 삽삼이라고 합니다마는 삽삼조사(卅三祖師).

 삽삼조사로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고 하는 것을 금방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것이 오늘날까지 조사들에 의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오늘날까지 최상승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최상승법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부처도   밖에서 찾지  , 참선도 번뇌를 여의고 찾지  ,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처음~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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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분.

[참고]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에서.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여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니라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배반(背反) 이래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냐.  번이나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 들어갔고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  번이나 겪어왔더냐 그말이여.

몇수십만 번을 짐승이 되었다가 날짐승이 되었다가, 긴짐승이 되었다가, 네발 달린 짐승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이러면서 돌고 돌아서 금일에까지 왔더냐.

 

원래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똑같은 조금도 차등(差等) 없는 본심왕이었다 그말이여.  본심의 왕을 배반한 탓으로 해서 우리는 삼악도와 사생을 돌고 돌아서 몇억만 겁을 겪어 가지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더라.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오늘 번뇌에 물든  번뇌염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을 떠나서 객지(客地) 객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써  거러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떠돌다가 비로소 자기 고향 갈 길을 찾았다면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기쁘겠느냐.

 

남북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이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못할 가족 상봉, 그것참 그러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정든 사람과 이별하고, 고향과 가족 친지를 이별하고,  나라에 손바닥만한 땅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런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지마는,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였었는데  왕이  본심왕을 갖다가 등져 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가지고 삼악도로 육도윤회(六道輪廻) 돌고 돌면서 가진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 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來生)에도 무량겁(無量劫) 두고  그런 것이 거듭될 그런 신세가,

다행히 불법(佛法) 만나고 정법(正法)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의 본위치로 돌아갈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50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고 할까, 가장 행복한 삶을 받아났다고 할 것입니다.

 

 정법,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이  생각  생각을 단속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本參話頭)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廻光返照) 함으로써 우리의 본고향(本故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이거거든.

 

고향을 모를 때에는  곳도 없고,  봤자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우선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三水甲山)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 보자, 좋은 차도 가져 보자, 좋은 집도 가져 보자하지만, 고향이 있는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하거든.

 

입는 것도 얼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쨌든지  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게으르지 않게 걸어가는  밖에는 어디에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그거거든.(2120~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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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 · 성냄() · 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본고향()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녹음 테이프(tape) ;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 말한다.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가지 요건. 첫째는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사나불(盧舍那佛) ;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장엄된 몸을 가지고 보토(報土 : 부처님께서 과거 인위因位에서 행한 서원행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정토) 계시면서 설법하는 부처님.

삼신불(三身佛) (1)영원불변의 진리[] []으로 삼고 있는 법신불(法身佛), (2)수행에 의해 공덕을 쌓은 과보(果報)로써 온갖 덕이 원만구족한 불신(佛身) 보신불(報身佛), (3)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화신불(化身佛, 應身) 이르는 말인데, 노사나불은   보신불이다.

 

이들 삼신(三身) 상호관계는 흡사 달의 ()  , 그리고  그림자와 같다고 하며, 이것을 일월삼신(一月三身)이라고 한다.

 법신(法身) 이체(理體) 유일상주불변(唯一常住不變) 것을 달의 () 비유하고, 보신(報身) 지혜가 법신의 이체(理體)에서 생겨 일체를 비치는 것을 달의 빛에 비유하며, 응신(應身) 변화하는 작용으로서 기연(機緣) 따라서 나타나는 불신(佛身)이므로 달의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念佛三昧寶王論卷中).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 행위[]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 또는 ()이라 . ②연기(緣起) 같음.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으로나 []로나 []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불공(佛供 부처 /이바지할·바칠 ) ; 부처님 앞에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어폐(語弊 말씀 /해어질·쓰러질 )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있는 .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 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교단(敎團) 어른을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 전하고,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 되고, 그로부터 2 혜가, 3 승찬, 4 도신, 5 홍인, 6 혜능대사(慧能大師) 내려왔는데,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육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 ;

 

[참고] 송담스님(No.264)—1985 4 첫째 일요법회에서. (5분 50초)

흔히 화두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 많이 말씀을 하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물건이 있으니,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하택신회,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학자밖에는  되겠다

 

 불교()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겠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리자 남악회양(南嶽懷讓)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하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물음에 대해서  맥혀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 몸을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맥혀 가지고   바를 몰라.  뒤로 8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습니다.

 

8 동안을 대관절 이게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생각, 서서도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일을 하면서도  생각, 똥을 누면서도  생각, ‘대관절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하기를 8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 도리어 닦아 () 것이 있느냐?’하니,

수증(修證)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염(汚染)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 것이 없지를 않지마는 오염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 받게  것입니다.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맥혀 가지고,   없이 이뭣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공부를 옳게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6131~6722)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7. 1. 3. 07:09

§(465) 영훈선사와 귀종선사 / 깨달은 것과 아는 것 / (게송)시비해리횡신입~ / 선재동자 /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하는 신심 / 立志發願.

 

네가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문제는 믿을 ()’, 신(信)이거든. 오직 참선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

염라대왕 앞에 가서 ! 자신 있게 내놓을 것은 이것 밖에는 없어. 내가 내놓기 전에 이뭣고?’ 평생 열심히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먼저 알고 자리에 일어나서 합장을 한다 그랬어.

 

법문을 듣고서 들을 때는  정성을 다해서 듣되 듣고 나서는 하나도 속에 남은 것이 없고 오직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되어야  법문을  들은 분이거든.

 

 공부는 첫째,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르겠다’고 하는 철저한 입지발원(立志發願) 가져야 한다.

 

필경(畢竟)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말 자기 자신의 생사(生死)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철저한 발심과 철저한 신심으로, 대의단(大疑團)으로  삼요소(三要素)로써 나아갈 결국은 우리는 허송세월을 아니 하게  것입니다.

 

**송담스님(No.465)—92 2 첫째일요법회(92.02.02) (용465)

 

(1) 약 22분.

 

(2) 약 11분.

 

(1)------------------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라고 하는  선지식이 옛날에 계셨는데,  선사가 최초에 귀종(歸宗) 선사라고 하는 큰스님을 찾아가서 친견을 했습니다.

 

떠억 찾아가서  귀종 선사에게 묻기를 여하시불(如何是佛)이니잇고?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매우 엄숙하고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귀종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향해서 일러주되 네가 믿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말하기를 큰스님께서는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학자를 위해서 정말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감히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귀종 선사가 가로되 네가  부처니라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어떻게 보림(保任)을 해 가야 되겠습니까?”

귀종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예재안(一翳在眼)에 공화(空華)가 난타(亂墮)니라.  티끌이 눈에 있으면 공화가 어지러이 떨어지느니라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영훈 선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해가지고 보림하는 길까지 눈을 떴습니다.

 

 장애가  티끌이 눈에 있으니, 공화(空華)라고 하는 것은 눈병든 사람이 허공을 쳐다보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슨 꽃이 피어서 이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서물서물 서물서물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거든.

 

그런데 내가 너한테 일러주기는 어렵지 않지만 네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어찌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고 성실하게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하니까, “네가  부처니라 거기서 확철대오를 했거든.

 

부처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도 부처님, 부처가 무엇이냐?”하고 물으면 나름대로 삼천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 실달(悉達) 태자  그런 등등 나름대로  말씀하실  있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한 바로 진리를 깨달으신 진리와 하나가  성현이다 아마 그렇게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네가  부처다. 영훈이 네가  부처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묻는 바로 그놈이 부처다

이러한 이것은 이론적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고 또 영훈 선사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수긍을 해서 아하, 바로 내가 부처구나하고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어.

 

네가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그래서 법문(法門)을 듣되  법문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상식 모다 그런 것을 통해서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만,

 

 자리에 모이신 법보제자(法寶弟子)는 무슨 법문을 듣던지 바로법문이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어려운 문자 그런 것만이 아니고,

일상 생활, 말할  있고 들을  있고 평범한 이야기, 무슨 내용의 말이라도  말을  법문을 즉(卽)해서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을 하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이 터억! 드러난 거기에서 모든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참으로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거든.

 

보통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은 귀가 번쩍해서 눈알이 초롱초롱하고 조끔 재미없는 얘기를 하면 꾸벅꾸벅  시간  졸다가  일어나 가지고 누가   것을 봤나  봤나 뚤래뚤래.

 

그런데  그래서 섣달그믐께 모다 신도님들은 모다 바쁘고 여러 가지로 새해를 맞기 위한 여러 가지 가정사, 회사 공장 모다 여러 가지로 모다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다 많이 참석을 하셨는데,

사실 바쁜 것은 생사(生死) 문제보다  바쁜 것이 없고, 우리가   일 초 죽음을 향해서 계속 가고 있는데 자기의 생사 문제보단 더 바쁜 것은 없거든.

 

집에서도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참선도   있지만 그래도 법회에 이렇게 한번 떠억 나와서 부처님께 예배도 올리고 축원도 하고 그러고 도반(道伴)들도 만나고 이렇게   아는 소리  하고  하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도반들이 같이 모여서  이렇게 법회를 갖는 것은   나름대로 뜻이 있는 것이다.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辯我)하라  평생천착불상관(平生穿鑿不相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에게는  가지 얻을 수가 없는 것이 있는데, 도저히 어찌해   없이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어.

 

(첫 번째) 항상 젊고자 해도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거여. 별별  미용원에 가서 다듬고  치르고 바르고 얼굴에다  마사지를 하고 해도 세월이 지내가면 어쩔  없이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에는 흰머리가 생기고.

심지어는 주름살이 생기면 갓을 칼로 자르고 땡겨서 해봤자 잠시는 괜찮은  같아도 별 수가 없어. 무엇을 먹으면 좋다 해가지고  늙고 젊고 힘이 좋다고 해가지고 살아있는  배를 째가지고 웅담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

 

  번째는 아무리 병이 없고자 약을 먹는다, 운동을 한다, 좋다고  것은  해도 언젠가는 병들기 마련이고.

(세 번째) 영원히 죽지 않고 몇백  살고 싶어도 결국은 죽을 때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장수(長壽)하고 싶어도 장수를 맘대로 못하고 저마다  오래 살고 싶지마는 누가 마음대로 되냐 그말이여. 건강하다고 해서  오래 살고  돈이 많다고  먹고 산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니어.

 

 번째는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어. 별별 좋은 주사를 들여다가 매일 맞아도 별수(別數)가 없어.

 

항상 젊고자 해도 마음대로  되고, 항상 병이 없고자 해도 마음대로  되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도 그것도 마음대로  되고, 영원히  죽고 싶어도  된다 그말이여.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는 없는데, 금년 임신년에도 선거가  번인가 있다고 그러고 온통 모든 사업 경제난이다 뭣이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시험지를  도둑맞아 가지고 야단이고  구석  구석 날이면 날마다  없는 때가 없어. 그것이 직접 간접으로  우리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고.

 

그런데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여.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옆으로 비껴서 들어간다 그말이여.

사람들이 길이  터진 데는 이렇게 번듯하니 이렇게 활발하게 걸어가지만 사람이 입추(立錐)의 여지(餘地)없이   있는 데는  사이를 뚫고 나갈라면은 옆으로 몸을 요렇게 비껴가지고 이렇게  뚫고 들어가야 하거든.

 

근데  세상은 온통 시비(是非)여. 옳은  아니면 그른 것이요, 그른  아니면 옳은 거여. 시비의 바다 속이여. 시비의 바다요, 시비의 숲속을 우리는 몸을 비껴서 들어가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호랑이와 범의  속에서 거기서 자재하게 행할  있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러면 표호군중(豹虎群中)이 무엇이냐?

시비해리(是非海裏)라 하는 것은 세상에 옳고 그른 모든 일들이  포함된 것이고, 표호군중은 모든 사람이요 모든 일이거든. 경쟁 경쟁을 통해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세상이다 그말이여.

 

옛날에는 누구하고 다툴 것도 없고 경쟁할 것도 없고 자기 논밭 갈아서 심어서 그저 먹고 살면 그만이고 나물 캐서 먹고 그저, 물론 그것도 알고 보면 농사를 지려면 땅이 있어야 하고 땅을 마련하려면은 남하고 경쟁해서 부(富)를 재력을 얻어야 땅을 사는 것이니까,

다맛 옛날과 지금과는  전쟁이 전쟁의  치열한 도가 달라졌을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렇게 경쟁하고 하는데, 경쟁하는 방법 방법이 나날이 잔혹해져 가고 있다.

 

잠시도, 어떠한 기업체를 운영하더라도 멍청하니 하다가는 언제 어떻게 망한지 망한  모르고 망한다 그말이여. 세계가  마찬가지여. 무서운 마치  호랑이와 범과 사자, , 늑대 이러한 무서운 짐승들이 우글대는 속을 여행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어떻게 하면  무서운  표호군중 속에 무사히 지나갈 수가 있느냐?

 

막파시비(莫把是非)를 내변아(來辯我)하라. 시비(是非), 옳고 그른 것을 가지고 와서 나한테 와서 가릴려고 하지 말아라.

평생천착불상관(平生穿鑿不相關)이다. 평생에 그런  따지는 것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까짓  상관 않는다는 고인(古人)의 시(詩)인데.

 

그러면은 옳고 그른 것도 따지지도 않고, 흥망성쇠도 따지지도 않고 일체를  피해 버리고 자기 혼자  닫고 집안에 앉아 그렇게는  세상은 살 수가 없어.

무엇인가 자기가 해야  일거리를 찾아서 자기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그것이 사회에 이바지할  있는 무슨 일인가는 해야지 우두커니 앉아서 그렇게 살 수는 없어.

 

아주 병들어서 수족이 오그라져가지고 전혀 아무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일거리를 찾아서 해야 되거든. 꼼질꼼질이라도 해야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무엇인가 일을 찾아서 해야 .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수입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무엇인가 일을 찾아서 함으로써 살아가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몸도 건강이 유지가 되고 그런 것인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아니라 그렇게 하면서도 시비에 말려들지 않고 표범이나 늑대에 잡혀 먹지도 않고 그러면서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길이 이뭣고?’거든. ‘이뭣고?’

 

일하면서 이뭣고?’ 무엇인가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항상 그놈을 앞세우고 그놈으로써 살아가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좋은 일을 당하면 좋은 . 궂은일을 당하면 궂은일, 슬픈 일을 당하면 슬픈 , 기쁜 일을 당하면 기쁜 ,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가정 일이나 회사 일이나 직장 일이나 국가 일이나 세계 문제나,

무슨 문제를 보거나 듣거나 또는 직면(直面) 하더라도 항상 이뭣고?' ! 그놈으로 기둥을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라. ! 그놈으로 자기의 핵심을 따악 잡은 거기에서 모든 일을 보고 듣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해보라 그거거든.

 

이건 대단히 말은 쉬워도 사실은 어려운 것이여. 어려운 것이 방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라면은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하는 확실한 신심(信心)이 있어야 .

신심 하나만 철저하게  버리면  공부  할라야   수가 없고, 누가 못하게 해도 막무가내거든.

 

문제는 신(信)—‘믿을 ()’, 신(信)이거든.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고.

아까 말씀드린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 자신 있게 내놓을 것은 이것 밖에는 없어. 내가 내놓기 전에 이뭣고?’ 평생 열심히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먼저 알고 터억 자리에 일어나서 합장을 한다 그랬어.(16분28초~37분51초)

 

 

 

 

 

(2)------------------

 

선재동자(善財童子) 발심(發心) 해가지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법문을 듣고 발심을 해가지고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라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면서 일백십성(一百十城)을 찾아갔어.

 

 일백십성을 넘고 넘어서 가면서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친견을 했는데,  선지식(善知識)마다—한 선지식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그다음에는  선지식이  아무데 성을 가면 아무 이러이러한 선지식이 계시니 거기를 가거라 그렇게 지시를 하면은 그 지시를 받고  그다음 선지식  그다음 선지식한테 법문을 듣고   선지식의 지시에 따라서 그다음 선지식,

 

이렇게 해서 53선지식을 친견하면서  들었던 법문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고대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환희심을 가지고 그렇게 53선지식을 친견하는데 마지막에 가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을 했어.

 

 미륵보살의 법문을 듣고서 다시 문수보살을 가서 친견을 하라 그렇게 지시를 받고 인자 문수보살을 친견을 하려고 마음속으로  마음을 먹으니까 문수보살이 일백십성을, 오른손을  펴서 일백십성을 건너가지고 선재동자의 이마를 떠억 이렇게 만져주신 거여. 그 찰나에 53선지식한테 들었던 모든 법문을 일시에  잊어버린 거여.

 

법문은, 듣고 환히 주렁주렁주렁  외우고  이야기를 하나도  잊어버리고  알고 있는 ,  기억력이 좋고 한눈을 전혀 팔지 않고 그래가지고 온전히 정성을 다해서 잡념 없이 졸음도 없이 법문을 들으면 또 영리한 사람은  환희  아실 것입니다.   일부를 알고 일부를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서 들을 때는  정성을 다해서 듣되 듣고 나서는 하나도 속에 남은 것이 없고 오직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되어야  법문을  들은 분이거든.

 

 선재동자가 일백십성을 건너면서 53선지식을 친견할   선지식이보면 터억 생김새가 거룩하고 누가 보든지 ! 훌륭하고  그런  아니고,

 선지식 가운데에는 별별 종류의 선지식, 도대체가 신심이 아니고서는 먼저 선지식이 지시를 해주지 않았다면은 봐도 선지식인지 아닌지  수가 없고 저런 것이 도인(道人)인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할 그런 사람들이거든.

 

 가운데는 귀신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승려도 있고  창녀도 있고 별별 사람이  있거든. 신심으로 신심을 가졌기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선지식을 친견해가지고 결국은 확철대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신심이 철저해야.

가지가지 공부를 하다보면 온갖 장애를 만날 수가 있거든. 가정적으로도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일신상에 건강상에도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선방에 나와도 이리저리 걸리고 속상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다가 보면은 정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 수가 있어. 혼침(昏沈)이라든지 망상(妄想)이라든지 몸에 병이라든지  능엄경(楞嚴經)에는 53가지의 여러 가지 마경(魔境) 일어날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더라도 조끔도 정법(正法) 믿는 신심이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그럴수록에 더 철저한 신심으로 화두를 들고 정진을 꾸준히 알뜰히 해 나갈수 있어야 그래야만 비로소 도(道)를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는 첫째, 발원(發願)을 철저하게 해야 . 입지발원(立志發願).

입지발원이 철저해야 하는데 어떻게 입지발원을 해야 하냐?’하면은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고인(古人)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르겠다’고 하는 철저한 입지와 발원을 가져야 한다.

 

공부하다 쪼끔 ..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있는 경계(境界)가 나타나면 또는 어떤 보통 말한 지견(知見)이 나면 그것이 자기 구경의 깨달음에 이른 것처럼 착각을 하고 거기에서 주저앉고 그건 득소위족(得少爲足)이라.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만족을 삼는 거라 이것은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는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여.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은 이상한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고 나름대로 어떤 지견이 나타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이 확철대오한 고조사의 구경각(究竟覺)이 아니면, 불조(佛祖)의 구경각이 아니면 언제라도 스스로 인증을  해야 . 누구 보고 물어볼 것도  것도 없이 스스로 부정을 해버려야 하거든.

 

그리고서 항상 초발심, 초발심자(初發心者)와 같은 깨끗한 마음, 순수한 마음, 물들지 않는, 초발심(初發心)은 대체적으로  뜨겁고 깨끗하고 삿된 견해가  붙거든.

차츰차츰 하다보면  순수성을 잃고 나름대로 자기의 별로 내놓을 만한 것도 못된 그런 것을 살림을 삼고 그러한 것은 대단히 공부 도학자(道學者)에게는 무서운 것입니다.

 

필경(畢竟)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말 자기 자신의 생사(生死)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철저한 발심과 철저한 신심으로 대의정(大疑情), 의단으로  삼요소(三要素)로써 나아갈  결국은 우리는 허송세월을 아니 하게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변화가 심하고 그렇지만 그러한 속에서 정말 우리는 발심할  있는 계기를 찾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발심할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3758~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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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천진함을 보전하고  자재함을 따른다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출가하기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수가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법당(법보전) 모셨으니 우리가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 의지해서 도를 닦는   도반(道伴)이면서   가족인 것입니다.

*즉해서(卽해서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게송)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 ; [선문염송] (혜심 지음) ‘1 1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별수(別數 나누다·구별·따로 달리 별/세다·방법·운수 수) ; ①별다른 방법. ②특별히 좋은 운수. ③갖은 방법.

*입추(立錐)의 여지(餘地)가 없다 ; ‘송곳[錐] 하나 세울[立] 만한 빈[餘] 데[地]도 없다’는 뜻으로, 발 들여놓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찬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막무가내(莫無可奈) ; ①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 ②달리 어찌할 수 없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 재판하는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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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 ( :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 길상(吉祥 : 상서로움) 뜻이다. 묘길상(妙吉祥) · 묘덕(妙德) · 유수(濡首)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 손에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 이룸.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선지식.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미륵보살(彌勒菩薩)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화두(話頭 말씀 /어조사 )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 ()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원인과 종류를 밝힘.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있는, 오음(五陰 : 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부처님 가르침.

*마경(魔境) ; () 경계(境界).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발원(發願) ; 원(願)하는 마음을 . 원을 세움.

*()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또는 바라고 원하는 .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입지(立志) ; 뜻을 세움.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준말이다. 간화(看話)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
구경각(究竟覺) ; 깨달음의 극치. 무명()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없다. 구경각(究竟覺)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 가리킨다.

*초발심(初發心) ; 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인 보리심(菩提心)을 처음으로 일으킴.

*도학자(道學者) ; ()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필경(畢竟 마칠·끝낼 /마칠·마침내 ) ; 끝장에 이르러. 결국에는.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용465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6. 6. 15. 10:29

 

 

§(712)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신심·분심·의심 삼요(三要) / ‘이뭣고?’화두가 화두의 근본 / 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발해야.

 

정진을 할려면 첫째 철저한 신심(信心) 있어야 하고, 신심이 있으므로 해서 분심(憤心), 분발심(奮發心) 있어야 하고, 신심과 분발심을 바탕으로 해서 화두(話頭) 들어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슨 신심(信心)이냐 하면은우리도 여법(如法)하게 열심히 수행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가 있고, 성불(成佛) 수가 있다 하는 신심입니다.

 

오종(五宗) 가운데에 임제종(臨濟宗)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이라 해서 화두를 의심을 가지고 깨닫는 간화선입니다마는, 간화선이라 하는 것은 육조 스님으로부터시삼마(是甚)’ 화두가 나왔고, 뒤로 임제(臨濟) 스님이 화두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법을 설법을 하셨고, 뒤로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서 간화선이 체계화가 되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때부터서 화두란 말은 없었지마는 화두의 근본 이념은 법문 속에 들어있습니다.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2)—2007(정해) 하안거 결제 법어. (용712)

 

(1) 약 12분.

 

(2) 약 11분.

 

(1)------------------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생사 진로(塵勞) 멀리 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승두(繩頭) 잡고 한바탕 공부를 해야 것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한번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뒤끝에 매화꽃이 피어야 매화꽃 향기가 진동하는 법인데, 겨울 날씨가 뜨뜻해 가지고 강추위를 하지 아니하면 뒤끝에 매화가 피어봤자 별로 향그럽지 못하다.

 

게송은 황벽(黃檗) 희운(希運)선사, 조사께서 우리 후래(後來) 선학자, 수행자를 위해서 특별히 읊어 주신 게송(偈頌)입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생존시에 법회 많이 게송을 읊어서 설법을 하셨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경청했습니다. 구구절절이 참선해 나가는 있어서 요긴한, 우리가 뼛골에 사무치도록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는 가운데 정진을 해야 그러한 금쪽 같은 법문(法門) 들었습니다.

산승이 더이상 여기 법상(法床)에서 말이 없습니다마는 이렇게 용주사 대중・복전암 선방・회룡사・승련사・위봉사・화운사 그리고 세등선원 결제(結制) 대중들이 법당 가득히 모였으므로 격려의 말씀을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금번 여름에 방부(房付) 들인 수좌(首座) 대중 가운데에는 철에 나온 그런 수좌들이 있기 때문에 화두를 들고 정진해 가는데 말씀 부언해서 말씀하고자 합니다.

정진을 할려면 첫째 철저한 신심(信心) 있어야 하고, 신심이 있으므로 해서 분심(憤心), 분발심(奮發心) 있어야 하고, 신심과 분발심을 바탕으로 해서 화두(話頭) 들어야 의심이,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슨 신심(信心)이냐 하면은우리도 여법(如法)하게 열심히 수행하면 반드시 깨달을 수가 있고, 성불(成佛) 수가 있다 하는 신심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인물이 잘나거나 못났거나, 학식이 깊거나 학식이 별로 없거나 그런 것이 전혀 상관이 없이 우리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불성(佛性)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참선을 하면 반드시 우리도 조사(祖師)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신념이 확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념이 확고하면 우리는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버리고, 형제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 출가(出家) 했고, 설사 세속에 출가 아니하고 산다하더라도 어쩔 없이 가정을 벗어날 수는 없으나 가정에서라도 따라서, 따라서 열심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가정에서도 녹음을 통해서 들으면서 열심히 정진을 한다면머리를 깎지 않은 신남신녀, 청신사 청신녀의 신분으로도 과거에 깨달은 분이 많습니다비록 출가는 했어도 열심히 올바르게 정진하면 깨달을 있다고 하는 신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분심(憤心)이라 하는 것은내가 인생으로 태어나서 오욕락(五欲樂)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했으니 어찌 초라도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겠는가. 과거에 불보살은 진즉 해탈도을 얻어서 중생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깨닫지 못했는가.

지금이라도 불법을 듣고 알고 믿었으니 어쨌든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를 챙겨서 정진을 해야겠다그런 분심이 항상 가슴속에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있다면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종(五宗) 가운데에 임제종(臨濟宗)에서는 간화선(看話禪)이라 해서 화두를 의심을 가지고 깨닫는 간화선입니다마는, 간화선이라 하는 것은 육조 스님으로부터시삼마(是甚)’ 화두가 나왔고, 뒤로 임제(臨濟) 스님이 화두에 대한 구체적인 수행법을 설법을 하셨고, 뒤로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서 간화선이 체계화가 되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때부터서 화두란 말은 없었지마는 화두의 근본 이념은 법문 속에 들어있습니다.

 

화두라고 하는 것은 간단한 한마디고 문헌에 『염송(拈頌)』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있습니다마는, 화두의 최초의 근본은시삼마(是甚) 이뭣고?’ 화두입니다. ‘ 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것이불성(佛性)이다, 자성(自性)이다그런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 화두면어째서 ()라고 했는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면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떠한 화두를 하고 간에 깨달을 때에는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골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이이뭣고?’ 화두가 화두의 근본인데, 이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없는 의심뿐인 것입니다. ‘이뭣고?’

 

입으로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염불하듯이, 진언 외우듯이 그냥 입으로만이뭣고. 이뭣고.’ 하는 것이 아니라이뭣고?’ 없는 의심이 있어야 화두를 올바르게 드는 것이고, ‘이뭣고?’ 오래 하다보면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시 되잡아서 이렇게 들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 ~’하는 이놈이 무엇인가? 없는 의심(疑心)입니다.(처음~123)

 

 

 

 

 

(2)------------------

 

그런데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려면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호흡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숨을 쑤욱 들어마셨다가 한참 있다가 내쉬는 것입니다. 내슀으면 다시 스르르 들어마시고.

들어마실 때는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배꼽 밑에 단전(丹田) 부위가 볼록하니 나오도록 느끼면서 들어마셨다가 한참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되, 내쉼에 따라서 차츰차츰 배가 홀쭉하게 하는 것입니다. 호흡이 나가면은 스르르 들어마시고, 이것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인데.

 

단전호흡을 처음에 준비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준비 호흡은 빨리 잔뜩 가슴으로 들어마셔요. 가득 들어마셨다가 ~ 하고 내쉽니다. 점도 남김 없이 내쉰 다음에는 스르르 빨리 들어마셔요. 번을 이렇게 준비호흡을 하고 다음에 정식으로 단전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들어마실 때는 스르르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볼록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들어마셨다가 한참들어마신 시간 4, 5, 잠시 머무르는 동안이 3, 4, 내쉬면서 4, 5, 대충 10 가량 걸려서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무리하게 오래 참아서는 아니됩니다.

 

자기의 그때 상황에 따라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조용히 이렇게 호흡을 하는데, 단전호흡을 함으로 해서 건강도 좋아지고 소화도 잘되고 혈액순환도 잘되고 해서 건강이 좋아야 정진을 올바르게 수가 있고,

이뭣고?’ 화두를 열심히 들다 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상기(上氣) 되는 수도 있고, 소화가 안되는 수도 있고 그러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어야 상기병도 걸리고, 소화도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심(信心) 분심(憤心) 의심(疑心), 신분의(信憤疑) 가지 요긴한 것과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의심을 하되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뭣고?’ 눈썹과 사이 중간을 찌푸리면서이뭣고! 이뭣고!’ 자꾸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이뭣고?’ 화두를 단전에다 두고 화두를 드는 것을 자꾸 하다 보면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까지는 가지 요소를 지키면서 잘해야지, 처음에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러한 자세와 호흡과 의심을 드는 것을 모르고서 화두를 심하게 힘들여서 하게 되면 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이 자리잡기 전에 병부터 나는 것이니,

초학자(初學者) 산승(山僧) 설한 『참선법(參禪法)』이라고 하는 녹음테이프가 있으니까 그것을 들으면서, 이러한 자세히 공부하는 법을 말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들으면서 기초를 잘해 가지고 그래가지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것입니다.

 

게송에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황벽 스님의 게송을 읊었습니다마는 게송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를 못하면 육체를 억압하고 들볶고 무리하게 하는 것을 바로 용맹정진(勇猛精進), 가행정진(加行精進)이라고 착각을 수가 있습니다.

육체를 갖다가 잠을 자지 않고 밥을 굶고 묵언을 하고, 모다 수행자들이 이렇게 해서 육체를 억압을 하는 것으로써 정진을 열심히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산승도 묵언도 봤고, 단식도 봤고, 잠도 있으면 잘라고 애를 써봤습니다마는, 결과 그렇게 것만이 정말 올바르게 용맹정진한 것이 아니다고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후배 여러분들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컷 먹고, 실컷 자고,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잡담을 하고 그러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지 참선을 하는 사람은 필요한 외에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고, 잠도 선방에서 지정된 여섯 시간이—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니까 여섯 시간을 자도록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선방 스님네들은 그렇게 여섯 시간을 수가 없어서 설사 잠잘 시간에도 시간을 잠자지 않고 자고 할라고 애쓰고.

3시에 일어나게 되었지마는 30분이나 시간 자고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앉아서 정진을 하는 그러한 스님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잠을 잔다던지, 아주 말을 한다던지, 밥도 적당하니 먹어야지 너무 과식을 하면 아니된 것입니다. 과식을 해야 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밥을 적게 먹어도 그것도 영양이 부족해서 정진을 계속해서 하기 어려우니, 말과 수면과 먹는 것도 지혜롭게 해야 앞으로 꾸준히 정진해 나가는데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한다. 진정으로 신심을 내야 한다 그런 구절이 나왔습니다마는 신심이다, 분심이다, 의단이라 하는 것이 억지로 하는 것과 저절로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차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득불 억지로 신심도 내고, 분심도 내고, 의심도 내려고 몸부림을 수밖에는 없겠습니다마는,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억지로 겉으로 지어서 가지고는 몸만 괴롭히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고, 안에서부터 정성심(情誠心) 솟구쳐 나오면 억지로 분심을 낼라고 해도 저절로 분심이 나고, 억지로 화두를 낼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떠억 들어지는 것입니다.

정성심이 안으로부터서 발하면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저절로 잡담을 아니하게 되고, 잠을 억지로 잘라고 해도 저절로 조금만 자도 머리가 개운하고 좋은 것입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123~2230)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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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 벌이는 ). 한판 크게.

*황벽(黃檗) : (? – 850) 법명은 희운(希運),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 어려서 신동이라고 불리더니, 강서성 서주부 황벽산에 가서 출가하였다가, 백장에게서 마조의 할에 백장이 깨치던 사연을 듣고, 자리에서 크게 깨치고 나서 백장의 법을 이었다。그 뒤에 배휴(裵休) 청을 받아 여러 곳에서 교화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이름을 처음 출가하던 이름 그대로 황벽산이라 하였다.

그가 염관사(鹽官寺) 있어 예불하는 자리에서 뒷날의 선종(宣宗) 그에게 법문을 묻는데, 그가 번이나 뺨을 때린 일이 있었다。뒤에 선종이 즉위하여 그에게추행사문(麤行沙門)’ 행실이 거친 중이란 법호를 주려고 하자, 휴가 간하기를 『황벽선사가 폐하에게 손질한 것은, 폐하의 삼제(三際 三世) 윤회를 끊는 뜻입니다』하여 단제선사(斷際禪師) 호를 내리게 되었다.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방부(房付 ·거처 /·부탁할 )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 이르기까지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조사(祖師) : 1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 () 상응(相應)하는 도인.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오종(五宗, 五家)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六祖) 혜능(慧能) 이르러 크게 성했다.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남악회양(南嶽懷讓)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2 백장회해(百丈懷海)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 청원행사 아래 3 운암담성(雲巖曇晟)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 청원행사 아래 5 설봉의존(雪峰義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 청원행사 아래 7 나한계심(羅漢桂琛)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육조 스님, 임제 스님, 대혜종고 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천칠백 화두(千七百 話頭)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참구(叅究)하는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2~53.

무자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라고 하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무자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없이 소리로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무자화두는무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무자화두와 같이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어째서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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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정성심(情誠心 진심·성심·참마음 /정성·진실 /마음 ) ; 정성심(精誠心).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무슨 연고로 나는 아직도 생사 문제를 해결 못했나? 진실로 힘을 다하여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

*오조(五祖) 스님 법문 ; 오조 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서.

經云  衆生若情誠不內發者  於三世縱値恒沙諸佛無所能爲  經云  衆生識心自度  佛不能度衆生  若佛能度衆生者  過去諸佛恒沙無量  何故我等不成佛也  只是情誠不自內發  是故沈沒苦海  努力努力. 勤求本心勿令妄漏  過去不知已過未來亦不及 今身現在有遇得聞妙去  分明相勸決解此語  了知守心是第一道  不肯發至誠心求願成佛受無量自在快樂  乃始轟轟隨俗貪求名利  當來墮大地獄中受種種苦惱  將何所及 奈何奈何  努力努力  但能着破衣飱麤飱  了然守本眞心  佯癡不解語  最省氣力而能有功  是大精進人也  世間迷人不解此理  於無明心中  多涉艱辛廣修相善  望得解脫  乃歸生死苦  了然不失正念而度衆生者  是大力菩薩(아래 밑줄친 한글 문장이 원문에 해당)

 

[법문①] 송담스님(No.644)—2000 7 첫째 일요법회에서.(11분 19초)

 

홍인대사(弘忍大師)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르되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스러운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 비록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득(無所得)이니라. 어찌할 바가 없느니라.

 

고봉 스님께서 말씀하신 선요(禪要)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단(大疑團) 갖추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결정코 공안(公案) 타파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을 수가 없다이런 말씀이 있는데 정성(情誠) 안으로부터 돈발하지 아니하면 삼세제불을 비록 만난다 하더라도 어찌해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이 바로 거기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만약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하고 말을 한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 못했을 것이냐.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돈발하지 못한 연고로 생사고해에 침몰한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부지런히 본심을 깨달라서 잠깐 동안도 한눈을 팔지 말지니라. 이렇게 오조(五祖) 스님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어. 다못 지금 우리가 현재 최상승법(最上乘法) 만났으니 분명히 서로 권고해서 선배는 후배에게 권고하고 후배는 선배를 따라서 밀고 끌면서 결정코 내가 이제 말한 법을 깊이 이해해 가지고 확실하게 자기의 본심을 지킬 줄을 알아야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일의 ()니라.

 

지극한 정성스런 마음을 발하지 못해 가지고 막연하게 성불하기를 바라고 자재해탈(自在解脫)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일이 아니고, 그럭저럭 속심(俗心) 버리지를 못하고 명예나 이끗을 탐구해서 그렇게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당래(當來) 대지옥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노력하고 노력할지니라. 이렇게 오조 스님은 간곡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 끝에 누차(屢次) 산승(山僧) 법상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바로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누더기를 입고, 먹는 것은 산해(山海) 진미(珍味)라든지 고량진미(膏粱珍味) 아니고 거칠고 머트러운 음식을 먹으면서[飱麤飱],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야, 요연히 본래의 자기 참마음을 지키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거짓 바보가 되어가지고 말귀도 알아듣는 사람 같은 그런 바보가 되어가지고 자기의 본심을 향해서 수행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힘은 최고로 적게 들이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도업을 성취할 있으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세간(世間)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아지를 못하고서 무명심(無明心) 가운데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널리 () 나타나는 그러한 () 닦음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 바래니, 그러다가 결국은 생사고(生死苦)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보통 우리는용맹정진한다. 가행정진한다결제 안거 동안에 밤잠을 자고, 먹고, 말도 아니하고 어떻게든지 알뜰하게 정진을 하려고 애를 쓰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건 대단히 칭찬할만한 일이고 갸륵한 일이 아닌 것은 아니나, 세상 사람들은 수행을 육체를 들볶는 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고 형식에 나타나는 특별한 묵언이라든지 또는 단식이라든지 또는 장좌불와라든지 그러한 여러 가지 ()으로 나타나는 수행을 함으로 해서 정말 용맹정진으로 삼는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고 것이 어찌 가시적인 그런 행동이라든지, 육체를 들볶는 것으로써 참다운 정진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조 스님은 요연불실정념(了然不失正念)하야, 요연히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만이 이것이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

쉽게 말해서 먹을 , 공양할 적당히 공양하고,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좋지 않지마는 너무 적게 자므로 해서 정말 입선(入禪) 시간에 노상 꾸벅꾸벅 많이 졸고만 있는 것도 지혜로운 수행이라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너무 음식을 적게 먹거나, 너무 잠을 적게 자거나, 옷을 너무 부족하게 입은 것도 이것도 퇴타(退墮) 인연이 되는 수가 있느니라

그래서 지나치게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지나치게 안락을 취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최소한도(最小限度) 먹을 만큼은 먹어줘야 하고, 입을 만큼은 입어줘야 하고, 최소한도로 만큼은 자줘야 그래야 평상시에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관책진(禪關策進)』에 보면너무 그렇게 초학자(初學者)들에게 말하면 마냥 먹으려고 그러고, 마냥 입으려고 그러고, 잠도 충분히 자려고 한다면 어느 겨를에 정진을 수가 있겠느냐. 적어도 초학자는 잠도 잘라고 하기도 하고, 먹는 것도 어느 정도 제한도 하고, 말이라든지 모든 것도 제한을 가면서 이를 악물고 정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처음부터서 그래서야 수가 있겠느냐이런 고인이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일요법회에 날씨도 더웁고 그런데 과거에 수없이 이런 말씀도 산승도 말했고, 전강 조실 스님도 말씀을 하신 바를 오늘 다시 중언부언 이렇게 말씀을 하게 됩니다마는, 정말 우리는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121~2321)

 

[법문②] 송담스님(No.666)—20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문에서.(5분 20초)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믿고 실천해서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 안으로부터서 ()하지 아니하면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그러한 모든 부처님을 만나뵌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능히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자기가 속에서부터 능동적(能動的)으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속에서 터져 나와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억만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사람을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중생이 자기 마음을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한 것이지,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成佛)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고 있겠느냐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되느니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사라쌍수 간에서 열반하실 유언으로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사람들의 병에 따라서 병을 진단을 가지고 좋은 약을 일러줬지만 좋은 약을 가르켜 주었지만 먹고 먹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니라

나는 인도(引導)하는 사람과 같아서, 바른 길로 안내(案內)하는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일러주었지마는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

마지막에 말씀을 하셨습니다.(912~1432)

 

[법문③] 송담스님(No.706)—2006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7분15초)

 

오조 홍인(五祖弘忍) 대사의 법문에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생사 문제를 해결을 못했느냐. 이런 데에 대한 신심과 분심에 대해서 그리고 화두를 타고 정진하는 사람은 의심이,  자기 마음으로부터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하는 정성심(情誠心) 일어나야 한다 것입니다. 그런 정성심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속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진실한 발심이 아니고 진실한 분심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이러한 오조 스님이 직접 화두(話頭)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아니했지마는 그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법문 끝에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요연(了然) 수본진심(守本眞心) 하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양치(佯癡)라는 것은거짓 ()’, ‘어리석을 ()’, 양치입니다. ‘거짓 ()’, ‘병들 ()’ 양병(佯病)이라 하면, 사실은 병은 났는데 병이 것처럼 거짓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이라 하는데,

실지는 바보도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지마는 바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바보 노릇을 하냐 하면은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바보 노릇을 하라 이것입니다.

 

선방에 가지고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고, 그래 가지고 시비를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대중을 소란케 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양치가 아니라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방에 와서는내가 과거에 좋은 훌륭한 대학을 나왔거나, 과거에 무슨 자랑할 만한 경력이 있거나, 무슨 말을 잘하거나, 외국어를 잘하거나, 수단이 있어서 무슨 일을 처리하고,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고 물건을 만들고....’ 그런 생각을 버리고, 출가한 선방에 나온 지가 여러 철이 되어서 구참이 되거나 그런 생각도 버리고,

오직 말귀도 알아들은 거짓 바보가 되어 가지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한달 한달을 그렇게 지내서, 그러면서 속으로는 떠억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거각을 해서, 퍼뜩 잊어버리면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해서 그렇게 해서 누구하고 잡담할 겨를도 없고,

 

밥이 맛있거나 없거나 반찬이 맛이 있거나 말거나 밥이면 ,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라면이면 라면, 그저 원주 별좌 공양주가 정성껏 해다 올리면 그저 죽비에 따라서 떠억 공양을 들되,

숟갈을 들고 밥을 뜨고, 저분으로 반찬을 드는 이것이 전체가 화두를 드는 의심 속에서 드렇게 하되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철을 하루하루를 지내면 반드시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마침내는 의단을 타파(打破)하고 자기의 본성을 깨닫게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바보 노릇을 하면서 말귀도 알아들은 바보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정진을 해야 기력(氣力) 적게 소모하고서도 정진에 크게 () 있으니 이렇게 정진하는 사람을 과연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수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조 스님 당시에 화두라고 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 없었으나 그때 화두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면 오조 스님께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듯 산승이 지금 말한 것처럼 화두를 어떻게 거각을 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한다면 달이 어떻게 지내간 모르는 사이에 달이 지내가서 정말 정진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틀이 달을 지내고 나면 자리가 잡혀나갈 것입니다.(1212~1927)

 

*( 부술·쓰러질·폐단 ) ;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5. 10. 26. 12:13

 

 

§(366) (게송)행년홀홀급여류~ / ‘내가 바로 부처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 (게송)광명적조변하사~ / (게송)단제번뇌중증병~.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육경(六境) 인식을 하는데,  인식하는  찰나에  객체(客體) 끌려가느냐?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육경(六境)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이렇게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번뇌,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 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 하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 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 계합(契合) 되는 것이다  말입니다.


**송담스님(No.366)—88(무진년) 칠석차례 법어(88.08.18) (용366)

 

(1) 약 22분.

(2) 약 22분.

 

(1)------------------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차일신비아유(只此一身非我有)하니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나무~아미타불~


행년홀홀급여류(行年忽忽急如流)한데, 흘러가는 세월이 빠르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말이여. 잠시도 머꾸지 않고 주야(晝夜) 불철(不撤)하고  년이고  년이고 끝없이 흘러가 버리는데,

노색간간일상두(老色看看日上頭). 늙은 빛이 얼른 얼른 머리 위에,  해가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말이여.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 육십, 칠십이 언제 어떻게 흘러간  모르게 이렇게 흘러갔어.

마치  동쪽에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그럭저럭하다 보면 아침해가 낮이 되고 그럭저럭하다 보면 벌써 서산(西山) 저버린다 그말이여.


지차일신(只此一身) 비아유(非我有)인데, 다못   몸뚱이도  것이 아니여.  소유라고  수가 없어.

휴휴신외갱하구(休休身外更何求). 그렇거든   밖에 다른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


무상한  세월, 무상한  몸뚱이가 낳아 가지고 그럭저럭하다가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 머리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그러한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먹이고 입히고  간수하고   몸뚱이도  몸뚱이다,  것이다하고  수가 없어.


 것이면은 내가 마음대로 해야  텐데, 내가  몸뚱이를 아무리 먹이고 입히고  애끼고 간수를 한다 해도 제멋대로 늙어버리고, 제멋대로 고장이 나고 병이 나서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소용이 없이 결국은 늙어서 병들어 죽어 버려야 하는데,

 몸뚱이도  몸뚱이라고  수가 없는데,  몸뚱이 밖에 무엇을  구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재산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 권리를 구하고 천만 가지를 구해 봤던들 뜻대로  구해지지도 않지마는 설사 뜻대로 이뤄졌다 해도 나와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것 그렇게 구해졌다 해도 실지로 내가 행복해지냐 하면은 오히려 근심과 걱정만 더할 뿐이지 행복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그렇게 피땀 흘려서 벌어놓은 것이지마는,  때는  가지도 가지고 가지 못하더라. 

 

 

방금 녹음 법문(錄音法門) 통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무상한  몸뚱이를 받아났지마는  몸뚱이 받았을 때에 발심(發心)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 귀의해 가지고 어쨌든지  몸뚱이 있을  생사해탈(生死解脫) 해라 그러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이루어졌고,   지수화풍 사대로 구성된  몸뚱이를 부모를 의탁해서, 아버지 어머니에 의탁해 가지고 그래 신세를 지고서  몸뚱이를 받아났습니다.

받아났지마는 최상승법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그저  먹고  입고, 명예와 권리  오욕락(五欲樂) 인생의 전부인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행복인  알고 거기에 집착이 되어서 허대다가 본의 아니게 죄만 잔뜩 퍼짓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업경대(業鏡臺) 앞에 서면은 평생 동안 지은 가지가지 죄가 거기에  나타나고  거기 염라대왕 앞에 있는  저울대에 떠억 달면은  죄를 얼마만큼 많이 지었는가, 무겁게 지었는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 어떻게 짓게 되느냐 하면, 입으로 짓고, 몸뚱이로 짓고, 우리의 마음으로 짓고 이렇게 짓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면서  보는  상대 객체(客體) 따라가면은 눈을 통해서 짓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듣는  소리로 우리의 생각이 끌려가면은 귀로 들으면서 죄를 짓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냄새로 끌려가면은 냄새 맡다가 죄를 짓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은  생각한 쪽으로 끌려가면은 생각하다가 죄를 짓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육경(六境) 인식을 하는데,  인식하는  찰나에  객체(客體) 끌려가느냐?  객체를 만나자마자 바로 거기서 돌이켜 가지고 화두(話頭) 드느냐?

 

여기에 따라서 업을 지어서 생사의 윤회로 떨어질 수도 있고,

거기에서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육경(六境) 만나자마자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하면은 생사해탈 길로 가는 것이거든. 이것이 천하 간단한 것이고 분명한 것이여.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경계(境界) 따라서 굴러가. 마음이 일만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는데,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굴러가는 곳에 실로 능히 그윽하다. ‘굴러가는 이라는  크게 말하면은 육도(六途) 윤회(輪廻)하는 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아귀가 되기도 하는, 천당에 가기도 하고, 아수라가 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하는  육도윤회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선 당장 우리가 금생에, 지금  찰나에 일념에다가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 붙여서 보자면, 바로 육근(六根) 육경(六境) 상대하는 바로  찰나에다가 맞출 수가 있습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심(生死心)이고,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이렇게  때에 육도윤회는 바로 육근이 육경을 상대하는  찰나찰나가 바로 육도윤회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최상승 학자는 항상 시방세계도 일념(一念) 속에서 봐야 하고, 육도윤회도 일념 속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도 바로 일념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에, 아까 말한 눈으로 청황적백 어떠한 색상을  때에 바로  찰나가 바로 전처(轉處)—경계를 따라 굴르는 곳인데,  구를 때에 어떻게 해야 능히 그윽할 수가 있느냐?

구르는 곳마다 실로 능히 그윽하다. ‘그윽하다하는 것은 생사에 휩쓸려 끌려가지 아니한 것을 말하는 거여.

 

깨달은 사람은 바로 깨달은  낭연독존(朗然獨存)  경계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은,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잠깐 사이도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염념불망(念念不忘) 염념불매(念念不昧) 화두를 거각해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 일념을 그렇게 단속을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나가면 마침내는 화두가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낮에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닐 때나 일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가 ()하지 않도록.

 

처음에  안되니 지어서라도, 억지로라도 지어서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게 되고, 망상을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설사 눈으로 무엇을 보아서 저것이 산이다 잠깐 사이에 저게 산인  보이지만 산으로 쫓아가지  .

산이 높다, 푸르다,  산에 구름이 끼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산을 보자마자 처꺽 화두를 들어버린다 그말이여.

 

나중에는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못 의단이 독로할 뿐이다 그말이여.

눈을 뜨고 있지마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귀를 막지 않고 열어놓고 있지마는 아무 소리도  들리게 되어. 그래서  몸뚱이가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인식을 못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라.

 

이렇게  나가면 밤에 자되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리고, 잠이 깊이 들었을 때에도 오직 화두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려져 갖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렇게 되기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가면 어떠한 찰나에  의단이  터져버리게 되는 거여.  밑구녁이 빠져서  통에 담아논 것이  쏟아져 나오듯이.

 

이것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이렇게  가지고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망상(妄想)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망상을 끊을려고 하면 끊을려고 하는  생각 바로 망상이 되기 때문에 망상을 끊을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거여.

마치 일어나는 파도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꾸 손으로나, 판때기로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물을 누른다든지,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이리저리 친다든지, 이래봤자  파도가 없어지기 커녕은 오히려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소승(小乘) 공부하는 법이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없앨려고 한다 그말이여.

망상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을 하고  망상을 없앨려고 무한히 노력을 하고,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서  생사를 없애기 위해서 무한히 노력을 .

 

심지어는 낳다 죽었다  생사가 싫으니까,  생사를 없게 하기 위해서 태중(胎中)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말이여.

사람이나 짐승의 뱃속에 태중에 들어가면은 낳게 되고, 낳으면은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되니까, 늙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받지 않기 위해서 태중에  들어가. 태중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태중에  들어갈려면은 어떻게 해야  들어가냐우리의 중생의 번뇌(煩惱) 끊어야 한다.

번뇌가 바로 생사심이고  생사심 때문에 () 들어가게 되고, 태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낳게 되고, 낳음으로써 늙어서 병들어 죽는다.

 생사(生死)  들어갈라면은 ()  들어가야 하고, 태에  들어갈라면은 우리의 번뇌 망상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번뇌 망상을 끊기 위해서 한량없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승들의 수행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면  대승법, 최상승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아무리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선을 한다고 해도 한량없는 번뇌와 망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은 보는 데에서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듣는 데에서 일어나고, 무엇을 맛보면 맛난 데에서 '쓰다 달다 맛있다 맛이 없다' 끊임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코로 무슨 냄새를 맡으면은 '! 이거 무슨 기름 냄새가 난다, 무슨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무슨 좋은  냄새가 난다, ! 이거 무슨 향내냐? 무슨 화장품 냄새냐?' 이래 가지고 코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런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처음~2135)

 

 

 

 

 

(2)------------------

 

그러나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더운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말이여.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 하면, ‘없다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자성이 없다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 하시고, 선지식(善知識) 없다 하면  말을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성현의 말씀을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 ! 믿어버려믿어 버리면  그게 그렇게, 당장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려서는 하차잖은 것을 보고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실지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는데 굉장히 무서워 .

귀신 나온다, 애비 나온다 가지고 어린애들 갖다 울면은   울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면은 나중에는 애비 나온다 그러면은 울다가도 깜짝 놀랜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배가 고파서 마을로 내려 왔는데 가만히  집에 기어 들어갔다 그말이여. 애기가  울어.

호랑이가 나온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나온다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여기 곶감 있다 그러니까, ! '곶감 있다' 하면서 나중에 쓰기 위해서 깊이  곶감을  개를 내서 주니까 어린애가 울음을  그쳤다 그말이여.

 

호랑이란 놈이  밖에서 가만히  종초지말(從初至末)  들어보니까 아! 호랑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제일 무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호랑이가 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귀신이 왔다'고 해도 그치지 아니하는데 ! '곶감 있다!' 그러니까 울음을  그친다 그말이여.

 

문을 닫아놓으니까  상황은  수가 없으나, ‘도대체  곶감이란 놈은 귀신보다도  무섭고, 호랑이보다도  무서운 것이로구나.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곶감한테 잡히면은 영락없이 죽게 되겠다 이리 생각을 하고 아주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해 가지고다시는  곶감 있는 집에는 가지를 안했다. 그런 얘기가 있는데.

 

 호랑이란 놈은  곶감을 보지 못했지만  곶감이란 놈이 그렇게 호랑이보다도 귀신보다도  무서운 것이다하고 그렇게  믿고는 다시는  집에  가듯이,

우리가 ! 믿을 수만 있으면, ! 믿어버리기만 하면  무서운  힘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미신을 믿고  무당이나 만신이나 또는 무꾸리 점쟁이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점쟁이의 한마디,  무당의 한마디를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몇백만 원을 들여서라도 굿을 하라고 하면 굿을 하고,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하라고 하면은 그걸  합니다.

 그러냐 하면,  무당이나 만신의 말을 믿기 때문에  몇백만 , 몇십만  돈도 아까운 줄을 모르고  엄청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당이나 만신이나 미신의 말은 ! 그렇게  믿어.

 

! 대학을 졸업하고 그러한  최고 학부를 졸업한 그런 지성인들이 어째서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말은 그렇게 여지없이 믿으면서,  부처님 말씀, 선지식의 말은   믿는다. 믿는다 해도 껍데기로만 믿고 속속들이는   믿는  같다 그말이여.

 그러냐?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와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끊어야  번뇌는 없고 해탈해야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귀에 따깽이가 앉도록 일어주어도 그런   상식 그냥 지식으로, 알음알이로 그렇게 알기는 알아도, 그렇게 무당이나 점쟁이  믿듯이 그렇게 속속들이는   믿는다 그말이여.

 

 십분의 일만 믿어도, 당장  최상승법을 믿고 바로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머지않아서 그렇게  텐데 ! 그것을 속속들이  믿는다.

 

우리가 정말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믿는다면  처음에 무엇을 믿느냐하면은 『내가 바로 부처다.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한테 무슨 생사(生死) 있어? 생사 없는 열반(涅槃) 경지를 요달(了達) 분이 바로 부처님인데, 부처님한테는 번뇌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바로 부처다』 그렇게  믿고 대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뇌도 없는 것이다.

 

지금 그러면 우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는 무엇이며, 어머니한테 받아난  육체로 해서 생이 있고, 늙음이 있고, 병이 있고 마침내는 육칠십 살다가 결국은 죽는데,  죽음이 있는데  있는 죽음,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가 ()했기 때문에, 매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선 알아야 하고  그렇게 확실히 조리 있게 알면 그것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그렇게 믿고서 화두를 들어야  번을 들어도 여지없이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들고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그놈을 들어 나가면 우리의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우리의 중생의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없는 생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사일망정 바로 거기서 생사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생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5(前五識) 6(六識, 意識) 7(말나식), 8(아뢰야식), 이런 ()으로 해서 일생을 살아가고, ()으로 해서 업을 짓고, ()으로 해서 일체 생사윤회를 하는데,

 일어나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십팔경계에 있어서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고,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그것이 ! 터져 버리면 자성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되는데,

 

 자기 본래면목을 바로 깨닫자마자,  깨닫기 전의 중생의  육근, 육경, 육식  () 부처님의 ()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 찰나 간에 변해 가지고 () 변하는 것이여.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를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이 없어. 우리의 중생의 마음을 버리고서  부처님이 어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여중생의 마음, 그것이 바로 일념무생(一念無生)하는 도리를 요달해 버리면 거기에서 바로 성불을 하는 것입니다.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하면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라  육근자동피운차(六根纔動被雲遮)니라

나무~아미타불~

 

광명적조변하사(光明寂照徧河沙)  범성함령공아가(凡聖含靈共我家).

광명이 적적(寂寂) 비추니,  항하사(恒河沙)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광명이 고요히 비치는데,

범성함령(凡聖含靈) 공아가(共我家). 범부, 성현 일체 중생이  나의 집이더라. 바로  나의 면목(面目)이더라.

 

일념불생전체현(一念不生全體現)이요,  생각 남이 없으면 전체에 드러나.

일념불생(一念不生),  생각 일어남이 없어. 일념불생하면 전체가 나타나, 전체현(全體現)이다. 부처님의 면목이 바로 드러난다 그말이여.

 

육근(六根) 자동(纔動)하면은 피운차(被雲遮). 벌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생각이 움직이면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환히 비쳤던 데에 거기에 벌써 구름이 가리워져서  광명을 가리게 된다 이거거든.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  생각 돌이켜서 화두가 독로하도록 단속을 하면은 삼천대천세계가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대광명이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이 되는 거고,

 생각 단속을 못해 가지고 육근(六根) 통해서 ()하면 벌써  광명에 구름이 가리워져서  광명을 덮는 것이 된다 그거거든.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하면  열반생사등공화(涅槃生死等空花)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제번뇌중증병(斷除煩惱重增病)이요, 그러면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끊임없이 퍼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끊어서 없앨려고 하면은 거듭  병통을  증가시키는 것이 된다.  번뇌를 치성하게 하는 것이 되고.

취향진여역시사(趣向眞如亦是邪). 진여(眞如) 향해서 나아갈려고 마음을 먹으면은 또한 이것도 삿된 것이다.

 

번뇌,  번뇌 다스리는 법을 아까 말씀을 드렸죠? 번뇌는 끊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진여불성은 우리가 그놈을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여번뇌는 끊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진여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화두를 들어.

화두를 염염불망으로 들어서 타성일편이 되어서 그놈을 타파(打破)하면 거기에서 번뇌는 끊을려고  해도 저절로 거기에서 끊어져 버리고, 진여는 찾을려고 하지  해도 본래면목 진여불성은 찰나 간에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순세간무가애(隨順世間無罣碍). 세간(世間) 수순(隨順)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일체처 일체시에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바로  가운데에서 기쁜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상하는 일을 당해도 이뭣고?’

 

 당하는 일을 좋다 그놈을 탐착을 하고, ‘싫다 해서 없앨라고 피할라고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자기로서 도리를 다하면서 그놈을 화두를 들고서 화두 드는 마음으로 그놈을 척척척척 해결을  나가라 그말이여그렇게 해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말이여.

버리고 취할 것이 없이, 닥치는 대로 자기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모든 일을 처리를  나가. 그럴라면은 그놈을 싫어서 피하지도 말고 좋아서 탐착하지도 마라.

 

어떻게 하면은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이 없느냐? 화두를 들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나가는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걸림이 없이 되면 열반이다, 생사다하는 것이 바로 허공의 꽃과 같이 되어버린다 그말이여.(涅槃生死等空花) 허공의 꽃이 무엇이던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出現) 하실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 아니여중생의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가지 소견을 제도하시기 위해서 나오신 것이다.

생사라고 해서 두려워하고, 열반이라고 해서 그놈을 좋아라고 그놈을 쫓아가는 그러한 자세로 나아가는 동안에는 영원히 생사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열반은 얻어지지를 않는 것이여.

 

바로 생사다, 열반이다하는 그  가지 소견을 제도해 버리면 바로 그것이 생사해탈이요, 바로 그것이 적적열반(寂寂涅槃) 계합(契合) 되는 것이다  말입니다.(2136~431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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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행년홀홀급여류~’ ;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 (진각국사 혜심) ‘식심게(息心偈)’ 참고.

*녹음 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지옥이 정해진다.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객체(客體) ; ①작용의 대상이 되는 . ②주체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대상.

*육근(六根) ; 육식(六識) 경계(六境) 인식하는 경우  소의(所依)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 기관·기능을 뜻함. 육입(六入)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육적(六賊)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게송) 심수만경전~’ ; [직지(直指)] (白雲和尙 抄錄, 조계종출판사) 63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 이치(理致)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라고   일체의 (). ③시비(是非)•선악(善惡)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 순경(順境), 내경(內境) 외경(外境) 있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낭연독존(朗然獨存) ; 홀로 밝게 드러나다.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염념불매(念念不昧) ; 생각 생각에 ()하지 아니하다. 생각 생각에 또렸하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 같다.

*망상(妄想 망녕될 ,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소승(小乘) : [] Hinayana 소승(小乘)이란 작은 수레란 뜻이다。수레는 사람을 태워서 험한 곳을 지나 안전한 곳에 가게 하는 것인데, 작은 수레는 아이들이나 타게 되며, 옅은 물이나 건널  있는 것이다。<법화경>에는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인천교를 말씀하신 다음으로 옅고 낮은 이치의 길을 가르쳐, 생각을 끊고 마음을 비게 하여 열반(涅槃)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셨다。그 속에는 사제법(四諦法) 깨치면 아라한(阿羅漢) 되고,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 깨치면 연각(綠覺)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도  가지 길이 있으므로 이승(二乘)이라고도 한다。소승법을 말씀한 대표적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사분비구니계본> 등이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 三道]

*대승(大乘) : [] Mahayana 대승(大乘)이란  수레를 뜻한다。큰 ()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 만행(萬行)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세상에 온갖 물질과 (森羅萬象)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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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고냥 ;  이상의 변화 없이  상태 고대로.

*그냥 ;  이상의 변화 없이  상태 그대로.

*종초지말(從初至末) ;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 깊은 속까지 샅샅이.

*열반(涅槃) : [] nirvana  []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없이 무엇이나  열반이며 어느 때나  열반이다。이것이 열반인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무명(無明) : []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 이름.

<기신론(起信論)>  이것을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  이치에 어둡게   처음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대상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8식설(八識說)·9식설(九識說) 널리 채택되고 있다.

8식설(八識說) 유식설(唯識說)에서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전오식(前五識) ;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말한다.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의식(意識) ; 팔식(八識) 가운데 6 의식을 말한다. 육식(六識) 하나.

①의식 기능[]으로 의식 내용[] 식별, 인식하는 마음 작용. ②알고 사고하는 마음. 생각하는 마음. 의식은 과거, 미래에의 대상에 대해서도 작용한다.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예상할 수가 있다.

6식설(六識說)에서는 의식(意識)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5(前五識)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末那識) ; 말나(末那) [산스크리트어] manas 음사로, ()라고 번역.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6(第六識) 의식(意識) 구별하기 위해서 ()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8식설(八識說)에서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八識: 8가지의 ) 가운데 하나로 7(第七識), 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말나식은 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  번뇌와 함께 일어난다.

8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아뢰야식(阿賴耶識) ; 8식설(八識說)에서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 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 () 함께 있다고 하여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라고도 하며, 본래 깨끗한 것이 드러나 있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십팔경계 ; 십팔계(十八界). (, 산스크리트어 dhātu)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 제외한 12가지를 12()라고 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 ; ①산스크리트어 jñāna  팔리어 ñāṇa  모든 현상의 이치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이해. 지식.

②산스크리트어 jñāna  깨달음. 깨달은 부분의 지혜. 완전히 아는 . ③팔리어 paññā  지혜. ().

*() () 변하는 것이지, () 없어지고 () 어디서 따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 () 변화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하는데, 전의(轉依) 뜻은 소의(, basis)  발동근거를 바꾼다()’ 성도(聖道)  수행을 통해 번뇌에 오염된 8식을 지혜() 변형시키는 ,  질적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통적인 용어로 전식득지(轉識得智) 또는 전식성지(轉識成智)라고도 한다.

() 전변(轉變) 또는 능변현(能變現) 뜻으로 능동적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 획득(獲得) 성취(成就) 말한다.  수행자가 수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의 8식을 지혜로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번뇌에 오염된 중생의 유루(有漏:세속) 마음인 ‘8’(八識-전오식, 6의식, 7말나식, 8아뢰야식) 질적으로 변혁하여[轉識得智] 얻은 4가지 무루(無漏:열반) 청정한 지혜사지(四智) 다음과 같다.

①대원경지(大圓鏡智) ;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무명(無明) 오염된 8아뢰야식(阿賴耶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8아뢰야식에서 무명(無明)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크고 둥근 거울과 같은 지혜[大圓鏡智]’라고 말한다.

②평등성지(平等性智) ; 인간의 자의식(自意識) 해당하는 오염된 7말나식(末那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7식은 원래 나와 남에 대한 구별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의식이므로 여러 가지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나 일체가 한결같고 평등함을 관하여,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는 자타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를 떠나, 자타(自他) 평등을 깨달아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 바꾸기 때문에 중생교화를 위한 평등한 지혜[平等性智] 발현된다는 것이다.

③묘관찰지(妙觀察智) ; 오염된 6(第六識) 의식(意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모든 () 실상을 묘하게  관찰하여 자유 자재로 가르침을 설하고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는 지혜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 ; ····몸의 5관으로 느끼는, 오염된 5(前五識) 질적으로 변혁하여 얻은 청정한 지혜.  지혜는 5관으로 행하는 일을 올바로 이루도록 하여, 중생을 이익과 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불가사의한 일을 모두 성취하는 지혜[成所作智]이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게송) 광명적조변하사 ~ 열반생사등공화 ; 장졸수재(張拙秀才) 거사(居士) 오도송(悟道頌) 참고.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 法身)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 파괴·변화, () 가운데·간격을 뜻함.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생물들의 세계.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산하대지.  세상.  세상. 세속.

*공화(空花, 空華) ; ().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 .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 말한다.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생기는데,  육식(六識)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 동시에  ()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우주 법계가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소소영령(昭昭靈靈)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불성(佛性) 생사(生死)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없는 이치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송담스님 법문 521, 636 참고)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5. 8. 9. 13:23

§(560) (게송)사중구의원~ / ‘이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신심 / 선원(禪院)에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

‘내가 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 ‘이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신심.


산이 명산(名山)이라 하는 것은 산이 높고 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기에 도인(道人)이 살아야만 명산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그만한 손바닥만한 이 땅이지만 여기에 최상승법이 있고 불법이 살아있으므로 해서, 불법에 의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이 지구는 결코 멸망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95.12.07) (용560)

약 11분.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아억모심(嬰兒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중(死中)에 구의원(求醫員)이요  영아억모심(嬰兒憶母心)이다. 환자가 깊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몸이 쑤시고, 아리고, 아프고, 가슴은 답답하고, 이 약 저 약 먹어봤자 효험은 없고, 어떻게 하면 명의(名醫)를 만나가지고 이 병을 낫을까? 그 좋은 의원을 구하듯이 그러한 간절(懇切)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영아(嬰兒)가 억모심(憶母心)이여. 갓난아기가 그 엄마가 어디를 가서 안 오는데 배가 고파서 울어 싼다 그말이여. 발버둥을 치면서 울어 싸는데 ‘엄마가 언제나 와서 젖을 줄까?’
그 젖 주기를 바래서, 엄마가 오기를 바라는 어린 애기와 같이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그런 간절한 신심(信心)으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하는데 처음에는 별로 재미도 없고, 별로 맛도 없고, 되다말다 하고, ‘이뭣고?’해도 속으로는 온갖 번뇌 망상이 왔다갔다 하고 그렇지만,
‘내가 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 ‘이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신심,

조급한 생각은 갖지 아니하되, 한 걸음 한 걸음 소걸음처럼 걸어가되 착실히 다져나가다 보면 반드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는 때가 와.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고 적적하면서도 성성하게,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때까지, 점심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때까지,
저녁에 누워서도 화두를 들면서 자는데 언제 잠든 줄 모르고 잠이 들었으되 아침에 눈을 딱 뜨고 보면 어제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있어. 심지어는 꿈에서도 그 화두가 그렇게 성성하게 들어지는 수도 있다 그말이여.

하루를 그렇게 하여, 이틀을 그렇게 하여, 사흘, 나흘, 닷새, 엿새를 그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그렇게 되어가면 어떠한 찰나에 툭! 터질 때가 온다 그말이여.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반드시 될 때가 오는 거다 그말이여.

주공진철처(做工親切處)라는 것이 바로 그거여. 공부를 지어서 친절(親切)한 곳에 이르면, 확철대오하면,
홍일(紅日)이 상동(上東)하다. 어제 서쪽에 졌던 그 붉은 해가 그 이튿날 새벽이 되면 동쪽 산너머에서 떠오를 것이다. 반드시 확철대오 할 때가 올 것이다 그거거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행자 또 청신사, 청신녀, 여러 도반들, 오늘부터 내년 정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비록 회룡사나 세등선원이나 또는 위봉사나 그 밖에 크고 작은 절에나 토굴에서 정진하는 도반들도,
‘언제나 한자리에서 우리가 다 같이 도반들이 모이고, 또 조실 스님을 모시고 공부한다’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야 정진도 제대로 되고 또 장애도 없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이 안 계신다고 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그럭저럭 지내면 반드시 장애가 일어나고, 나도 공부를 못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공부를 못하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니까,

우리가 부모와 정든 고향을 다 버리고 또 세속의 모든 오욕락(五欲樂)과 인생과 청춘을 다 버리고, 우리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 여러분도 모든 것을 다 뒤로 미루고 이렇게 정법을 믿고, 이렇게 정진을 할려고 하는 발심(發心)을 하셨으면 스님네 못지않는 지조와 결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도 청신사나 청신녀들도 얼마든지 도를 이룬 사람들도 역사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라고 해서 또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과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도 낙오자(落伍者)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낙오자가 되어서 잘못되느냐, 끝까지 목적지까지 우리가 가느냐?’하는 것은 우리의 결심에 달려있는 것이지, 여건이 좋지 못하고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할수록에 정법을 믿는 사람은 더욱 채찍을 가해서 정진을 할 그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해야만 불법도 실낱끈 같이 위태로운 이 법등(法燈)도 이어가는 거고, 불법이 멸하지 아니해야 세상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산이 명산(名山)이라 하는 것은 산이 높고 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기에 도인(道人)이 살아야만 명산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그만한 손바닥만한 이 땅이지만 여기에 최상승법이 있고 불법이 살아있으므로 해서, 불법에 의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이 지구는 결코 멸망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만이 아니고 여러 도반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여기에 불이라 하는 것은 헤쳐 놓으면 꺼져버리고, 숯불이라든지 장작개비라든지 이렇게 모아서 놓으면 불이 붙어서 이 장작에서 난 불은 저 장작에, 저 장작에 난 불은 이 장작에, 해서 거기에서 서로 가열이 되어가지고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원(禪院)에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원에서 지내다 보면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정말 불이 붙어가지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도반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비웃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자기도 같이 동참(同參)해서 같이 정진을 하고, 또 다른 사람도 거기에 또 발심을 해서 같이 동참을 해서 한 철동안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가행정진을 하도록,

그렇게 해서 한 철이 석 달 동안이 어떻게 지내간 줄 모르게 잘 성취가 되도록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44분6초~54분5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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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중구의원~’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낙오자(落伍者 떨어질 낙/대오 오/놈 자) ; ①어떤 집단이나 경쟁 상대를 쫓아가지 못하여 뒤로 처진 사람. ②편성된 대열에서 뒤떨어져 처진 사람.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미(迷)한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것.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5. 7. 1. 18:24

 

§(256) (게송)좌간백운청수성~ / 사리불의 부정식(不淨食)과 아나율의 졸음 / 사리불과 아나율의 결심 / 권아라한(權阿羅漢).

 

아나율 존자나 그 사리불 존자의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그렇게 매서운 결심을 하고, 부처님이 아무리 설득을 하고 꾸짖어도 끝까지 두 눈이 멀 때까지 잠을 자지 아니한다든지,

국왕이 와서 청하고, 수달장자가 와서 청해도 소용이 없고, 끝까지 공양에 응하기까지 아니한 그런 것은 우리 말세 중생들에게 그런 굳은 결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지 아니 했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심은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굳은 결심이 없고서야 어떻게 다생겁래(多劫生來)로 쌓인 우리의 업(業)을 극복을 해가지고 도업을 성취하는데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물에다 술 탄 듯, 술에다 물 탄 듯, 오늘도 이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금생에 도업을 성취할 것을 기약하기는 매우 어려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용256)

 

(1) 약 21분.

 

(2) 약14분.

 

(1)------------------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한데  도로성색본가풍(都盧聲色本家風)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륜상월만공산(一輪霜月滿空山)한데  한안여천향북비(寒雁唳天向北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좌간백운청수성(坐看白雲聽水聲)하니, 도로성색(都盧聲色)이 본가풍(本家風)이로구나.

앉아서 흰구름을 보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모든 소리와 그 색상이 본래가풍(本來家風)이드라.

 

일륜상월(一輪霜月)이 만공산(滿空山)한데, 한안(寒雁)이 여천향북비(唳天向北飛)다.

한 바퀴 서릿달이 빈산에 가득한데, 휘황찬 밝은 서리친 밤에 그 둥근달이 빈산에 가득한데, 차운 기러기는 북쪽을 향해 울며 날아가는구나.

 

 

오늘은 85년도 2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아울러서 우리 용화사에 어린이 법회를 시작한 이래로 2주년을 맞이하는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회가 끝나고 나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하모니카 할아버지라고 그 이해창 선생님을 초빙을 해서 어린이 법회 2주년을 축하하고, 겸해서 6학년 어린이가 졸업을 하게 되니까 그 졸업 송별을 기념하는 뜻과 아울러서 오늘 이 법회에 이어서 그런 행사가 간단히 있겠습니다.

 

달마 스님께서 인도에서 140세까지 법(法)을 펴시다가, 140세에 중국으로 오셔서 9년면벽(九年面壁)을 숭산(崇山) 소림사에서 하시고, 혜가 대사에게 법을 전하셨는데,

그 달마 스님께서 설하신 『달마혈맥론(達摩血脈論)』, 『달마관심론(達摩觀心論)』, 『달마사행론(達摩四行論) 』, 이런 대단히 요긴한 법문이 전해 오는데,

 

그 혈맥론에 볼 것 같으면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도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바른 스승을 찾아야 한다'고 한 말씀을 강조를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도 왼팔은 사리불(舍利弗) 존자(尊者)요, 오른팔은 목련(目連) 존자라. 사리불과 목련 존자는 그 십대제자 가운데에도 제일 손꼽는 그런 부처님의 수제자이신데, 그 두 제자는 금지국(金地國)이라고 하는 나라에, 그 전생은 금지국왕이고 하나는 그 왕비였습니다.

그 왕이 세상을 떠나니까 그 왕비가 자기도 같이 왕의 화장하는 불더미 속에 뛰어들어 가지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다시 함께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뜻으로 죽음을 같이 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다음 생에 태어나기는 같이 태어나기를 바랐지만, 닦은 바 업(業)이 서로 똑같지 아니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나, 그래도 같은 외도(外道)의 제자가 되어서 그 외도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그 외도가 죽으니까 거기서 떠나가지고 결국은 부처님을 찾아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리불이 지혜가 뛰어난 그러한 훌륭한 아라한(阿羅漢)인데, 오늘은 그 사리불 존자에 대한 말씀을 우리가 듣고서 우리의 수행해 나가는 데에 좋은 채찍을 삼고 거울을 삼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입정(入定)을 하시고, 방선(放禪)을 하고 난 다음에 포행(布行)을 하시는데 부처님의 아들 나후라(羅睺羅) 존자가 부처님의 뒤를 따라서 모시고서 같이 이렇게 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당신의 아드님이신 나후라 존자를 이래 눈여겨보시니까 너무 야위었다 그말이여. 살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고 혈기가 없고 야위니까, “네가 몹시 여위었구나”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기에는 생사를 해탈하셨고, 일체 중생의 희로애락도 다 초월하셨고, 모든 인정과 그런 것도 다 초탈하신 그런 성현이시고, 땅에 발을 디디시지 아니하고 저 오색구름이 영롱한 위로 다니시며 우리 인간과는 영판 거리가 먼 그런 위대한 성현으로 우리는 받들어 모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시경전(原始經典)에 보면 부처님도 우리 인간과 조금도 다름없는 정말 다정한 할아버지와 같은 그러한 따스한 면을 가지시고 그런 자비에 넘치는 눈매로 제자들과 일체 중생을 따뜻하게 이렇게 보살펴주시는 그러한 면이 넘쳐흐르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신의 아들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당신을 따라서 출가를 했는데, 항시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그런 것이 관심이 있다고 해서 ‘부처님이 아니다. 어찌 그런 성현이 당신 아들에 대한 애착을 가질 것인가’

애착이 아니라 인연이 있기 때문에 “네가 참 몹시 여위었구나” 그 한 말씀하시는 데 우리는 너무너무 참 이 콧등이 찡하는 그런 것을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나후라 존자가 말씀을 하기를, “만약 사람이 기름기 있는 것을 먹으면 힘이 생기고, 또 우유로 만든 소락(蘇酪)을 먹으면 피부가 윤택하고, 또 삼 찌꺼기나 채소 같은 것을 먹으면 몸에 기력이 없다고 하는 것을 대덕(大德) 세존(世尊)께서는 응당히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게송(偈頌)으로써 대답을 해 올렸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듣고 끄덕끄덕 하시면서 그것에 대해서는 말이 없으시고 “대중 가운데에 누가 제일 상좌(上座)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나후라 존자가 대답하기를 “화상(和尙) 사리불이 제일 윗자리에 앉으십니다”

 

본래 나후라 존자가 출가할 때에 사리불의 상좌(上佐)를 삼아 주셨던 것입니다. 사리불에게 당신의 어린 아들을 맡겨서 잘 가르키고 지도하도록 그렇게 사리불을 은사(恩師)로 삼아 주었는데.

“그 사리불이 제일 윗자리이십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정식(不淨食). ‘아니 불(不)’자, ‘조촐할 정(淨)’자, ‘밥 식(食)’자, 깨끗하지 못한 식사를 했다.

 

원래 부정식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하구식(下口食). 입을 아래로 하고 얼굴을 아래로 두르고 일을 해서 먹고사는 직업을 하구식이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땅을 파서 곡식을 심어 먹는다든지, 나무를 심어서 이익을 얻는다든지 또는 약초를 심어서 약장수를 한다든지 이런 것은 모두 얼굴을 아래로 두르고 땅에서 그 땅을 이용을 해가지고 먹고사는, 직업을 삼는 이것을 ‘아래 하(下)’자, ‘입 구(口)’자, 하구식이라 그러고.

 

그다음에 앙구식(仰口食)이라 하는 것이 있는데, 얼굴을 하늘로 두르고 거기서 하는 직업.

예를 들자면은 별을 관찰한다던지, 해와 달을 관찰한다던지, 또는 바람이나, 비나, 번갯불 모다 이런 것을 갖다가 일기(日氣), 기상(氣象) 이런 것을 관측해 가지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먹고사는 것을 앙구식이라 하고.

 

그다음에 셋째는 방구식(方口食)이라 하는 게 있는데, ‘모 방(方)’자. ‘모 방(方)’자는 동서남북을 이것을 인자 사방(四方)이라 그러는데,

동서남북 사방의 그 방구식이라 하는 것은 동쪽, 서쪽에 있는 모다 권세 있는 집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면서 그 앞에 굽신거리고 아첨하고 아부하고 해 가지고, 권문세도(權門勢道)에 붙어가지고 거기서 돈을 얻고 그 권리에 빙자(憑藉)해서 그래서 먹고사는 거, 그런 것을 갖다가 방구식이라 그러고.

 

그다음에 넷째는 사유구식(四維口食)이라. ‘유’자는 ‘오직 유(維)’자인데, 동서남북 그 사이사이에 있는 간방(間方)을 사유(四維)라 하는 것입니다. 동남간방, 동북간방, 서남간방, 서북간방, 이 간방을 사유라 그러고, 동서남북 그것을 사방이라 그러는데, 그 네 간방을 향해서 벌어 먹고사는 것.

그건 뭐냐 하면은 점(占)을 치고, 주술을 사용을 하고 그래가지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따져서 하는, 요새 같으면은 사주관상을 하고, 점을 치고 하는 그러한 직업을 갖다가 사유구식이라 하는데, 그러한 방법을 해가지고 먹고사는 것을 갖다가 사유구식이라 하는데.

 

하구식, 앙구식, 그리고 방구식, 사유구식, 이것을 사부정식(四不淨食)이라 그러는데, 원래 ‘비구, 비구니 출가인은 이 네 가지의 부정한 것을 직업으로 해가지고 의식주를 해결하지 말아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리불은 부정식을 하느니라” 그랬으니, 사리불이 설마 인자 막 말씀드린 이러한 유(類)의 부정(不淨)한 방법으로 직업을 삼아서 의식주를 조달했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고.

이 독청(獨請). 어느 왕이나, 장자나, 대신이나 이런 신심 있는 신도가 공양(供養)을 청(請)할 때에 대중적으로 가는 것은 좋으려니와 단독으로 초청을 받아서 가서 하는 것, 이러한 것을 갖다가 이것도 하나의 이러한 의미의 부정식을 했다고 하신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했느니라”한 그 말씀이 나후라 존자를 통해서 했던지, 다시 또 다리를 건너서 갔던지, 사리불이 그 말씀을 듣고서 결심을 하기를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 나를 공양을 청하더라도 나는 일체 응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딱!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파사익왕(波斯匿王)이라고 하는 임금님이 있었는데, 그 파사익왕과 수달장자(須達長者) 두 분이 회상(會上)에 와 가지고 사리불을 친견을 하고 “사리불 존자께서 공양을 청해도 오시지 아니하니 그럴 수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도 공양을 청해도 잘 오시지 않고 또 그 수제자이신 사리불 존자도 공양을 청해도 오시지 아니한다면 우리 백의단월(白衣檀越) 신도들이 어떻게 신심을 돈독히 하고, 청정한 마음을 내고 복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리불 존자가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 보고 부정식을 했다고 하셨는데 내가 어찌 그 말씀을 듣고 감히 공양을 청할 수가 있겠는가”하고 딱 거절했습니다.

 

그러니 파사익왕과 수달장자가 부처님께 가서 “부처님도 공양에 응하시지 않고 사리불도 응하시지 아니한다면 우리 같은 세속에 사는 단월들이 어떻게 신심을 드높이고 공덕을 쌓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제발 사리불한테 특명을 내려서 그런 생각을 고쳐서 공양에 응하도록 좀 해 주십시오”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사리불은 마음이 굳기가 강철 같아서 아무리 내가 말해봤자 응하지를 않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사리불은 부처님의 그런 특명도 응하지 않고 그렇게 고집을 부릴 수가 있겠습니까?”(처음~20분38초)

 

 

 

 

 

(2)------------------

 

“그건 다름이 아니다.... ”

 

옛날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그 국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독사(毒蛇)에 물렸는데, 한번 물리면은 그 독이 전신으로 번져가지고 막 몸이 부어서 죽어 가는데,

국왕이 많은 의사를 불러다가 ‘빨리 이 내 병을 고치라’고 특명을 내려서 그래서 명의를 갖다가 여러 사람을 불러다가 치료를 하는데, 그 독사가 너무 무서운 독사여서 도저히 자기네들의 그 치료 방법으로서는 나을 수가 없어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걸 고칠 수가 있느냐?’

‘이것은 그 문 그 독사를 다시 불러서 그 독사로 하여금 그 문 자리에서 독기를 스스로 빨아내게 하는 재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럼 빨리 그 독사를 불러들여라’

그래가지고는 의사들이 주문을 외워가지고 그 문 독사가 제 발로 임금님 계신 데에 오게끔 했습니다.

 

독사가 오니까 그 옆에다가 장작불을 갖다가 쌓아서 불을 피워 놓고서, 그 독사 보고 하는 말이, ‘네가 이 상감마마를 물었으니, 상감마마에 그 문 자국에서 독기를 스스로 빨아내서 상감마마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면 네 목숨을 살려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은 너는 이 불더미 속에 넣어서 꼬실라 죽이겠다’

 

독사가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하더니 ‘내가 물어서 독한 독을 갖다가 뱉어 냈는데 어찌 감히 다시 그 독을 내가 다시 빨아먹을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그럴 바에는 내가 이 불속에 뛰어들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가지고 그 불속으로 뛰어들어가 가지고 죽었는데, 그때 그 불속에 뛰어들어 죽은 독사가 사리불의 전신(前身)이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리불은 과거에 독사(毒蛇)가 되었던 그 인연—독사라 하는 것은, 원래 독사의 몸을 받는 것은 신경질을 잘 내고, 골을 잘 내고, 조그마한 일에도 불쑥불쑥 화를 잘 내고, 이러한 과보(果報)—진심(瞋心)을 많이 내면 그것이 인자 독사의 과보를 받는 것인데.

그런 독사의 몸을 받았던 과거가 있고 또 불속에 뛰어든 그런 성격으로 인(因)해서, 여러 생(生)을 사람으로 태어나서 도를 닦고 마침내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해서 지혜가 제일가는 그러한 성현이 되어가지고서도 사리불은 그 진심 내는 여습(餘習)이 항시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은 부정식을 했다’ 그러면, 부정식만 아니하면 되었지,

‘일체 공양까지 내가 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한 결심 그러한 성격은 다분히 신경질적인, 그러한 전생에 독사의 몸을 받았을 때 가졌던 그 진심(瞋心)의 여습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증거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부처님 십대제자에 아나율(阿那律) 존자라 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부처님 법문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부처님이 크게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도를 닦는 수행자가 법문을 들을 때 졸을 수가 있느냐? 똥을 가지고는 아무리 좋은 조각을 한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고, 변소에다가는 아무리 울긋불긋 단청을 해봤자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그런 비유를 드시면서 크게 꾸지람을 하셨는데,

 

아나율 존자는 그 부처님의 꾸지람을 깊이 명심(銘心)을 해가지고 ‘내가 도업(道業)을 성취할 때까지는 결정코 잠을 자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명심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옆구리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자지 아니하고, 잠이 오면 일어서서 포행을 하고, 온갖 방법을 써서 잠을 쫓으면서 기어코 잠을 안 자면서 계속해서 가행정진을 용맹정진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보름, 한 달이 되니까 잠을 안 자니까 눈이 발간 하니 되더니 나중에는 눈갓이 찌적찌적하니 물르고 나중에는 눈이 차츰차츰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그것을 대단히 걱정을 하시고 기파(耆婆) 대감을 시켜서 치료를 시켰습니다.

기파대감이 아무리 약을 쓰고, 침을 놓고, 여러 가지 치료를 했습니다마는 차도(瘥度)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제 좀 차도가 어떠냐?”

“저로서는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왜 치료를 할 수가 없단 말이냐?”

“약을 쓰고 치료를 하면서도 잠을 푹 자야만 치료가 될 텐데. 잠을 일절 안 주무시니 아무리 치료해 봤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 부처님께서 “육체가 있어야 도를 닦는 것이니 어찌 그렇게 어리석게 해가지고 치료를 지연을 시킬 수가 있느냐, 잠을 자라”해도, “저는 도를 성취할 때까지는 결정코 잠을 자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타이르고 꾸짖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나율 존자는 두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눈이 멀자 아나율 존자는 천안통(天眼通)을 얻었다 그랬습니다.

천안통을 얻었으나 육안(肉眼)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옷을 꿰맨다든지 모다 그러한 일이 있을 때에는 부처님께서 손수 바늘귀를 끼워주시고, 바느질도 해주시고, 평생을 그렇게 보살펴 주시는 자비를 내리셨다고 하는 것이 전해 내려옵니다마는.

 

부처님의 십대제자나 육조 스님까지 삽삼조사(卅三祖師)는 다 전생에 불보살이 그런 화현(化現)으로 나타나가지고, 부처님의 법(法)을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왔다고 하는 말씀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삽삼조사는 아라한이지만 권아라한(權阿羅漢)입니다. 실지로 다생(多生)에 닦은 것이 겨우 아라한 밖에는 안 된 것이 아니고, 불보살 화현이 그 부처님의 법을 전해 내려오기 위해서 권(權)으로, 방편으로 아라한의 몸으로 출세를 하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마는.

 

아라한의 성질은 다분히 그런 성현이면서도 조그마한 일에 탁! 골을 잘 내시고, 요새 말로 신경질적인 그러한 성격의 일모(一貌)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성(獨聖) 기도나 그런 기도는 정말 몸을 깨끗이 하고, 모든 음식으로부터 모든 조그마한 행실에 이르기까지도 어긋남이 없이 청정한 마음과 청정한 몸으로 기도를 해야지, 잘못하면 벌을 받고, 까딱하면 골을 내 가지고 벌을 주어서 입이 비틀어져 버린다든지,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다든지,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불 존자도 전생에 독사의 몸을 받았던 그 여습으로 해서 성현이 되어 가지고서도 그런 다분(多分)히 그런 진심(瞋心)의 여습이 있었다고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불 존자나 아나율 존자나 그런 진심(瞋心)을 냈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그 말씀 한마디를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고 뼛속 깊이 새겨들었으면 말씀 한마디에 ‘내가 도를 이루지 않는다면 결정코 눈을 감고 자지 아니하리라’

‘결정코 내가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 공양을 청한다 하더라도 나는 공양에 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고서 세세생생에 청정한 공양을 받고 수행을 하리라’

 

이러한 결심은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굳은 결심이 없고서야 어떻게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쌓인 우리의 업(業)을 극복을 해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에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물에다 술 탄 듯, 술에다 물 탄 듯, 오늘도 이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금생에 도업을 성취할 것을 기약하기는 매우 어려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속에 사업을 한다든지, 무슨 학문을 연구를 해서 학자가 된다든지, 무슨 예술가가 된다든지, 사업가가 된다든지, 무엇을 어떠한 방면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모질고 모진 그러한 무서운 굳은 결심이 있어야 그 가지가지 난관을 극복을 하고, 어떤 어려운 일을 닥치고, 두 번 실패,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그 일을 성취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그러한 굳은 결심이 아니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우리가 이 무량겁 업을 극복을 해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이 도(道)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볼 때에 아나율 존자나 그 사리불 존자의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그렇게 매서운 결심을 하고, 부처님이 아무리 설득을 하고 꾸짖어도 끝까지 두 눈이 멀 때까지 잠을 자지 아니한다든지,

국왕이 와서 청하고, 수달장자가 와서 청해도 소용이 없고 끝까지 공양에 응하기까지 아니한 그런 것은 우리 말세 중생들에게 그런 굳은 결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시지 아니 했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20분39초~34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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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都盧) ; ‘모든것’ ‘온통’ ‘전부’ ‘모두’ ‘하나도 남김없이’라는 뜻. 도래(都來)라고도 한다.

*본래가풍(本來家風) ; 본가풍(本家風). 본래의 가르침. 천연 그대로의 가르침.

*상월(霜月 서리 상/달 월) ; ①서리가 내리는 달이라는 뜻으로 음력(陰曆) 동짓달(冬至-)을 달리 일컫는 말. ②서리 내리는 밤의 달.

*빈산 ;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산.

*둥근달음력 보름 전후하여 둥그렇게  .

*달마 스님, 혜가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년면벽(九年面壁) ; 면벽구년(面壁九年). 달마대사가 숭산(崇山 : 중국 하남성 정주의 남서쪽)의 소림사에서 벽을 향해 9년동안 앉아 있었다고 전해지는 고사(故事)를 가리킴.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달마관심론(達摩觀心論) ;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가 설한 심론(心論)을 정리한 선종의 지침서.

내용은 달마대사와 그의 제자 중국 선종의 2조(二祖) 혜가와 주고 받은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가?’의 질문에 ‘마음이 만법(萬法)의 근본이며,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라고 대답하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추는[攝心內照] 이 마음을 관찰하는[觀心] 것을 설명하였다.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니, 이 법이 가장 요긴하다.’
‘心者 萬法之根本也。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온갖 수행을 다 갖추게 된다’
*달마사행론(達摩四行論) ; 『달마대사 이입사행론(達摩大師二入四行論)』 또는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이입사행(二入四行)이란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을 합한 말이다.
도(道)에 이르는 두 길, 곧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제시하고, 행입에 다시 사행(四行)—보원행(報寃行)·수연행(隨緣行)·무소구행(無所求行)·칭법행(稱法行)의 네 가지 실천행을 말한다.
 
이입(理入)은 원리적인 방법으로, 경전에 의지하여 그 종지를 깨달아서, 중생이 동일한 참성품(眞性)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 망념을 버리고 참성품으로 되돌아가 이치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행입(行入)에서 ①보원행(報寃行)은 수행인이 괴로움[寃]을 받을 때, 그것은 모두 과거에 자신이 지은 나쁜 업(業)의 결과이므로 기꺼이 인내하고 받아들여[報] 원망하지 않고 도에 나아가므로[行] 보원행이라 하고,
②수연행(隨緣行)은 모든 고락(苦樂), 득실(得失)이 인연(因緣)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나, 마음 자체는 증감(增減)이 없으니 좋고 나쁜 일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도에 따르므로 수연행이라 한다.
③무소구행(無所求行)이란 세상 사람들은 미혹하여 곳곳에 탐착하는데 이를 구하는 마음이라 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서 모든 것이 실체가 없다고 보아 즐거움을 원하는 바가 없고, 삼계(三界)는 화택(火宅)이며 몸이 있는 이상 다 괴로움이어서 거기에 안주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 망상이 쉬고 구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된다.
④칭법행(稱法行)은 법(法 진리)에 맞는[稱] 행(行)으로, 성품이 본래 청정한 이치를 법(法)이라 한다. 법체(法體)는 간탐(慳貪)이 없어서 보시를 행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고, 중생을 교화하되 상(相)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다른 다섯 바라밀(波羅蜜)도 이와 같아 망상을 없애기 위해 육바라밀을 수행(修行)하되 행한 바가 없으니 이것이  칭법행(稱法行)이다.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鶖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빠띳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그렇게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었다.
*존자(尊者) ; ①산스크리트어 āyumat 수행이 뛰어나고 덕이 높은 수행자를 일컫는 말. ②성자. 현자.
*목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① 성문(聲聞)들 가운데 최고의 성자. 욕계·색계·무색계의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무학위(無學位)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하였으며, 해야 할 바를 다하였고, 윤회에서 해탈하여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
② 존경받을 만한 불제자.
③ 고대 인도의 여러 학파에서, 존경받을 만한 수행자를 일컫는 말.
*입정(入定) ; ①선정(禪定)에 들어가는 것. 마음을 한곳에 정하고 몸·입·뜻(身口意)의 삼업(三業)을 갈무리는 것. ②수행하기 위하여 방 안에 들어앉는 일. 입선(入禪). ③입적(入寂, 수도승이 죽음).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원시경전(原始經典) ; 원시불교(Early Buddhism, 原始佛敎)시대에 결집된 불경. 그것은 한역(漢譯) 아함경(阿含經) 및 팔리 삼장(三藏) 등이다.
*소락(酥 연유 소/쇠젖 락) ; 소나 양 등의 젖.
*대덕(大德) ; 덕이 있는 사람. 덕행이 있는 자의 의미.
①장로, 부처님, 보살, 고승 등에 대한 경칭. ②수행자에 대한 호칭. ③스님에 대한 경칭.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상좌(上座) ; ①상좌(上座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는 뜻. 스님에 대한 2인칭의 경어. 장로. 교단 중에서 수행을 쌓은 지도적 지위에 있는 사람. 덕(德)이 뛰어난 수행승. ②연장자이고 유덕하며, 사원내의 스님을 감독하고, 사원의 사무를 맡는 소임의 스님. ③스님에 대한 경칭.
*화상(和尙, 和上) ; ①산스크리트어 upādhyāya의 음사(音寫). 친교사(親敎師), 역생(力生)이라 번역. 계(戒)를 주는 스승. ②수행 기간이 길고 지위나 덕이 높은 스님에 대한 존칭.
[참고] 친교사(親敎師) : 화상은 제자에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르침을 내려 주기 때문에 친교사라 한다.
역생(力生) : 스승의 능력이 있다는 뜻. 능히 법신(法身)을 장양(長養)시키고 공덕을 쌓아 주며 혜명(慧命)을 길러 주기 때문에 역생이라 한다.
화상은 불교의 3사(師)인 은사(恩師)·법사(法師)·계사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나, 특히 은사의 의미가 가장 크다.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은사(恩師) ; ①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②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빙자( 기댈 빙/빌 자) ; ①어떤 일이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를 내세움. ②어떤 다른 힘을 빌려서 의지함.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파사익왕(波斯匿王)산스크리트어 prasenajit, 팔리어 pasenadi의 음사. 붓다가 살아 있을 때, 코살라국(kosala國) 사위성(舍衛城)의 왕.
*수달(須達)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udatta의 음사. 수달다(須達多), 소달다(蘇達多)라고도 음사. 선시(善施), 선수(善授), 선온(善溫)등이라 번역. 또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므로 급고독(給孤獨)이라고도 함.
석존과 같은 때 사위성에 살던 부호(富豪).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구입한 동산에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붓다에게 바침.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백의단월(白衣檀越) ; 재가(在家)의 시주(施主).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백의(白衣) ; ①흰 의복. ②세속의 사람. 재가인(在家人)의 의미. 인도에서는 수행승(修行僧)이 색깔이 있는 옷을 입고 있었음에 대하여, 세속인은 백의를 입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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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前身) ; 전생(前生)의 몸.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여습(習) ; 번뇌를 끊음 후에도 아직 몸에 남아 있는 습기(習氣 잠재적 가능력)를 말함. 부처님만이 여습(餘習)을 끊을 수 있고, 이승(二乘,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무리는 이것을 끊을 수 없다. 잔습(殘習), 여기(餘氣), 습기(習氣)라고도 함.
*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명심( 새길 명/마음 심) ; 잊지 않도록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둠.
*기파(耆婆)산스크리트어, 팔리어 jīvak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사위성에서 살던 의사.
덕차시라국의 반가라에서 7년간 배운 뒤 본국인 바가타성에 귀국, 여러 사람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고 남쪽 나라의 폭군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불교에 귀의하여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의 병을 치료하였다.
*천안통(天眼通) ;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6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일모(一貌 한 일/얼굴·측면 모) ; 한 측면. 한 면모.
*독성(獨聖)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였다고 하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함. 나반존자는 우리나라에서 말세의 복밭이라고 신앙하는 나한(羅漢). 독수성(獨修聖)이라고도 한다.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다분(多分)히 ; 비교적 꽤 많게.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