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 ( 게송 ) 기래긱반냉첨의 ~ / 일대사 ( 一大事 ) / 大事未明 如喪考 妣 大事已明 亦如喪考 妣 / 오후보림 ( 悟後保任 ) / ( 게송 ) 만리산하평사장 ~ / 의심관 .
〇 어제 살았던 사람이 오늘 죽고 , 오늘 살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황천객 ( 黃泉客 ) 이 되는 그러한 이 말세라 , 이러한 말세일수록에 더욱 정진을 , 이 정법을 믿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이 참선 ( 參禪 ) 수행 밖에는 정말 할 것이 없다 . 그런데 세속의 장사를 하나 , 농사를 짓거나 , 무슨 회사나 , 무슨 직업을 갖더라도 그 직업은 그 직업이 부업 ( 副業 ) 이고 , 우리가 정말 몸과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해야 할 본업 ( 本業 ) 은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그말이여 .
〇 고조사나 부처님처럼 그러한 경계 , 그러한 데에 이르기 전에는 알았다는 생각 , 얻었다는 생각 , 그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언제나 부모 초상 만난 것처럼 , 부모 초상을 맞는 상자 ( 喪者 ) 와 같은 그러한 간곡한 간절한 , 앞뒤가 끊어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알뜰히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
〇 ‘ 한 생각 ’ 이 결국은 만년 ( 萬年 ) 인데 ,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거고 , 그 일어나는 생각을 단속을 하지 않고 끝없는 죄업을 짓는 행동으로 발전 시키는 사람은 하는 짓마다 자기를 생사의 윤회 속으로 끌고가고 , 하는 일마다 남을 해롭게 하고 , 하는 일마다 자연을 병들게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
〇 활구참선! ‘ 이뭣고 ?’ 알 수 없는 의심 ( 疑心 ) 으로 ‘ 이뭣고 ?’ 그뿐이거든 . ‘ 이뭣고 ?’ 할 때 딱 ! 생각이 끊어져야 하거든 . 알 수 없으면 벌써 그것이 화두 들고 있는 것이여 .
** 송담스님 (No.480)—92 년 9 월 첫째일요법회 (92.09.06) (용480)
(1) 약 12분.
(2) 약 18분.
(1)------------------
기래긱반냉첨의 ( 飢來喫飯冷添衣 ) 는 삼척지동야공지 ( 三尺之童也共知 ) 로다
나무 ~ 아미타불 ~
일개화두명역력 ( 一箇話頭明歷歷 ) 한데 여하개안자우치 ( 如何開眼恣愚癡 ) 리요
나무 ~ 아미타불 ~
기래긱반냉첨의 ( 飢來喫飯冷添衣 ) 삼척지동야공지 ( 三尺之童也共知 ) 다 .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추우면 옷을 껴입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 ( 三尺童子 ) 도 다 함께 아는 일이다 그말이여 .
일개화두명역력 ( 一箇話頭明歷歷 ). 한 개의 화두가 또록또록 하고 역력 ( 歷歷 ) 해서 의단 ( 疑團 ) 이 탁 ! 독로 ( 獨露 ) 하도록 잡드리 해 나가면 ,
여하개안자우치 ( 如何開眼恣愚癡 ) 리요 . 어떻게 눈을 뜨고서 그럭저럭 어리석은 짓을 하고 살 것인가 . 벌써 화두를 들고 성성적적 ( 惺惺寂寂 ) 히 화두를 잡드리 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벌써 정법 ( 正法 ) 을 믿는 사람이요 , 정법을 믿는 선학자 ( 禪學者 ) 가 어떻게 어리석은 짓을 해 나갈 수가 있겠느냐 .
이 ‘ 어리석다 ’ 고 하는 것은 딴 것이 아니라 불법을 경전 속에서 이치로 따져서 알려고 하는 것 , 세속의 오욕락 ( 五欲樂 )— 재산이라든지 , 색이라든지 , 명예 권리라든지 , 모든 세속적인 안락이라든지 , 그러한 것에 한 눈을 팔고 , 그런 것이 인생의 행복의 길을 그런 데서 찾는다던지 , 이런 것이 다 어리석은 것을 방자 ( 放恣 ) 히 하는 것이거든 .
화두를 성성적적하게 거각 ( 擧却 ) 해 나갈 줄만 알면 저절로 어리석은 오욕락에 시간과 나의 정력을 거기에 헛되이 소모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
이 생사대사 ( 生死大事 ) 는 시대 — 정법시대나 , 상법시대나 , 말법시대나 어느 때나 이 생사대사는 우리 자신이 나 자신의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해야 하지만 유독 이 오탁악세 ( 五濁惡世 ) 의 말세 ( 末世 ) 에 있어서는 세상이 무상 ( 無常 ) 하기가 말로 할 수가 없어 . 이 몸뚱이가 살아 있다고 믿을 수가 없어 .
날마다 교통사고로 죽고 , 불의의 사고로 죽고 , 옛날과 달라서 몸의 병도 온갖 이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고약한 병들이 일어났어 .
어제 살았던 사람이 오늘 죽고 , 오늘 살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황천객 ( 黃泉客 ) 이 되는 그러한 이 말세라 , 이러한 말세일수록에 더욱 정진을 , 이 정법을 믿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이 참선 ( 參禪 ) 수행 밖에는 정말 할 것이 없다 .
세속의 장사를 하나 , 농사를 짓거나 , 무슨 회사나 , 무슨 직업을 갖더라도 그 직업은 그 직업이 부업 ( 副業 ) 이고 , 우리가 정말 몸과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해야 할 본업 ( 本業 ) 은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그말이여 .
왜 그러냐 하면 세속의 사업은 잘되더라도 그 믿을 수가 없는 거고 . 그것 재산이나 명예 권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칠만한 것이 못되아 . 그것은 엄밀히 따져보면 생사윤회 ( 生死輪廻 ) 의 업을 짓는 일에 지내지 못하고 , 정말 우리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 일대사 ( 一大事 )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참선이고 .
세속의 부귀영화는 잘해봤자 금생 일생에 누린 것 뿐이고 , 그 누리다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이지만 이 참선법은 금생 일생에 생사업 ( 生死業 ) 을 안 지을 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 世世生生 ) 에 무량겁을 두고 영원히 생사윤회를 해탈하는 길이기 때문에 지금도 늦었지만 늦은 때가 바로 이른 때다 .
그래서 고인 ( 古人 ) 이 말씀하시기를 『일대사 , 이 생사문제 ! 이 일대사는 깨닫기 전에도 부모 초상 만난 거와 같이』 부모 초상을 만난 사람이 모든 사업이고 무엇이고 다 중단해 버리고 오직 부모의 초상 ( 初喪 ) 을 당했으니 하늘과 땅이 딱 닿아 버려 . 호천망극 ( 昊天罔極 ) 한 그 슬픔 속에 무슨 딴 생각이 있을까보냐 그말이여 .
『대사 ( 大事 ) 를 미명 ( 未明 ) 시에도 부모의 초상을 만난 거와 같이 그렇게 해 나가고 , 대사 ( 大事 ) 를 이미 밝힌 뒤에도 여상고비 ( 如喪考 妣 ) 다 . 부모 초상 만난 것 같이 해라』
깨닫기 전에도 부모 초상 만난 거와 같이 정말 이 공부해 나가는데 전력투구를 하려니와 깨달은 뒤에는 왜 부모 초상 만난 것같이 해야 하느냐 ?
보조국사 ( 普照國師 ) 가 말씀하시기를 『 ‘ 깨닫는다 ’ 고 하는 것은 애기 막 낳아 놓은 거와 같다』
애기 막 낳아 놓았다고 해서 물론 그것도 사람은 사람이지만 난 뒤에 젖을 먹이고 ,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 가르키고 해서 한 이십 년간 정성을 들여놔야 , 자기 앞을 가려나갈 만한 겨우 하나의 인간이 이루어진 것이지 , 막 낳아 놨다고 해서 그것이 다가 아니거든 .
그와 마찬가지로 견성 ( 見性 ) 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가 아니고 견성한 뒤에 오후보림 ( 悟後保任 ) 을 해서 무량겁의 습기 ( 習氣 ) 를 다 제 ( 除 ) 해서 정말 알뜰히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
‘ 득이수난 ( 得易守難 ) 이다 . 얻은 것은 쉽고 지키기는 어렵다 ’ 그랬습니다 .
대혜 스님도 영리한 놈이 퍼떡 깨달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일대사를 다 요달한 줄 알고 , 그 뒤에 정진을 오후보림을 열심히 아니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다시 본지풍광 ( 本地風光 ) 이 나타나서 미 ( 迷 ) 하게 된다고 . 그래서 오후 ( 悟後 ) 에 정말 알뜰히 정진할 것을 경고하신 법문이 있으려니와 .
이 가운데는 알뜰히 정진하고 여러 해 수행을 해서 상당한 견처 ( 見處 ) 가 있는 분도 적지 아니할 것입니다마는 고조사나 부처님처럼 그러한 경계 , 그러한 데에 이르기 전에는 알았다는 생각 , 얻었다는 생각 , 그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언제나 부모 초상 만난 것처럼 , 부모 초상을 맞는 상자 ( 喪者 ) 와 같은 그러한 간곡한 간절한 , 앞뒤가 끊어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알뜰히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14 분 59 초 ~26 분 53 초 )
(2)------------------
만리산하평사장 ( 萬里山河平似掌 ) 한데 일조관로직여현 ( 一條官路直如絃 ) 이로구나
나무 ~ 아미타불 ~
행인약문궁통사 ( 行人若問窮通事 ) 한데 철벽은산재면전 ( 鐵壁銀山在面前 ) 이니로다
나무 ~ 아미타불 ~
만리산하평사장 ( 萬里山河平似掌 ) 이여 . 만리 ( 萬里 ) 의 강산이 평평하기가 손바닥 같애 . 만리가 툭 트여서 그 넓은 산하가 내 손바닥 같다 그말이여 .
일조관로 ( 一條官路 ) 가 직여현 ( 直如絃 ) 이여 . 한가닥 관로 ( 官路 ), 옛날에는 역과 역 사이를 말이 달려 가지고 그 말로써 온갖 통신을 전하고 , 또 관리나 국가의 어떤 일이 있을 때도 그 관로 ( 官路 ) 를 사용해 가지고 빨리 — 요새 같으면 고속도로처럼 조그마한 그저 꼬부랑꼬부랑 길이 아니라 그 큰 데를 가로지르는 그런 고속도로처럼 그런 관로가 곧기가 마치 줄과 같다 그말이여 .
우리가 공부를 해 나가는데 세속이 아무리 시끄럽고 복잡하고 흥망성쇠와 영욕득실이 날이면 날마다 그 변화가 무쌍해서 굉장히 어려울 것 같지마는 ,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 ( 成住壞空 ) 이 있고 — 이루어졌다가 잠시 머물러 있다가 무너져 가지고 결국은 없어지는 성주괴공이 있고 . 우리 몸뚱이에는 생로병사 ( 生老病死 ) 가 있어 .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이고 .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 ( 生住異滅 ) 이 있어 . 무슨 생각이 딱 일어나면은 얼마 동안 그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금방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화 발전을 해 가지고 결국은 멸해 . 또 그 생각이 없어진다 그말이여 .
그러한 성주괴공과 생노병사와 생주이멸의 현상이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가고 있다 그말이여 . 그래서 빈부귀천이나 영욕득실이나 , 경제계 정치계가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여러 사람이 모다 장관도 드나들고 그러다가 얼마 안 가면 또 뒤바뀌고 .
어제 참 , 승진을 했다고 기뻐하지마는 하룻밤 사이에 파면이 되고 , 어제 참 , 하늘에 날아가는 새도 떨굴 만큼 권세가 무서웠지마는 벌써 황천객이 되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다 그말이여 .
그렇게 무상한 줄을 깨달아 버리는 사람 . 그런 무상 ( 無常 ) 하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발심을 해서 공부하는 사람이 볼 때에는 세속의 흥망성쇠와 영욕득실과 빈부귀천이 내 손바닥 안에 다 들었어 .
누가 대통령이 되고 , 누가 장관이 되고 , 누가 총장이 되고 , 누가 뭐 어느 나라가 무엇을 어쩌고 해봤자 손바닥 안에 환히 손바닥 안에 들어있는 일이라 그게 . 뭐 그렇게 야단스러울 것도 없고 놀랄 것도 없고 , 환한 것이거든 .
아무리 신문에 별별 소리가 나봤자 그것이 초명안첩 ( 蟭螟眼睫 ) 에 — 그 하루살이의 눈썹에다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한 모다 균들이 거기다가 보금자리를 짓고 거기서 ‘ 네 땅이 넓고 , 내 땅이 넓다 ’ 고 서로 싸운 거와 같애 .
하루살이의 눈썹이 얼마나 크며 , 그 눈썹에서 버글거리고 있는 — 원자 현미경으로 봐도 보일랑말랑한 그런 균들이 그 눈썹에다가 보금자리를 치고 네 땅 내 땅을 싸우고 있는 격이나 , 이 지구 덩어리 속에 백칠십여 개로 나라가 노나져 가지고 서로 ‘ 자기 영토다 , 네 영토다 , 내 영토다 ’ 하고 싸우고 .
그러고 있는 사이에 결국은 공기도 오염이 되고 땅도 오염이 되고 , 거기에 흐르고 있는 물도 오염이 되고 바다도 오염이 되었어 . 몇백 년 , 몇천 년 또는 그보다 더 빠른 시일내에 지구가 파멸이 될런지도 모르고 , 다 모든 동물과 식물들이 다 죽어질런지도 모릅니다 .
사람들이 요새 뭐 지구 종말론이니 해 가지고 사람들이 모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흔들려 가지고 야단이다는 말을 들었는데 .
그런 의미의 종말론이 아니라 사람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 정법 ( 正法 ) 을 믿고 착실히 자성 ( 自性 ) 을 깨달아서 우주의 진리를 깨달을라고 노력을 하지 않고서 ,
물질 문명에 눈이 어두워서 인간의 행복이 오욕락 ( 五欲樂 ) 에 있는 줄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것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 자기 자성을 포기하고 자연을 오염을 시키고 , 그래 가지고 투쟁을 일삼는다면 정말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하루하루 이 자연은 병들고 멍들어서 사람이 먹을 물도 없게 되고 , 먹을 음식도 없어지게 되고 .
마치 지옥에서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면은 불이 되어 가지고 목이 타고 , 배가 고파서 무슨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불이 되어서 목이 훨훨 타죽는 거와 같이 ,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이 천지 자연이 오염이 되어 가지고 먹으면은 그것이 암이 되고 몸의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
여러분도 다 뉴스를 통해서 아신 바와 같이 그 큰 고래가 까닭없이 죽어 나자빠지고 , 호주에서는 모두 바다의 짐승들이 육지로 기어 올라오고 다시 바다로 갖다 두면 다시 기어 올라오고 . 얼마 후에 보니 모다 다 그것들이 죽어져 갔고 있더라 이거거든 . 그것이 다 자연의 오염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말이여 .
결국 자연이 오염이 된 것은 인간의 마음이 썩어 문드러졌기 때문에 , 썩어 문드러진 마음으로 하는 모든 생활과 행동이 바로 자연을 오염시키게 되고 , 오염시켜 놓고 인간이 그 속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 , 구정물을 버리지 마라 , 나쁜 비누를 쓰지 말라 , 산에 가서 함부로 더러운 쓰레기 버리지 말라 . 이런 것들 대단히 명심을 해야 할 일이고 , 산에를 가나 바다를 가나 반드시 그런 것을 주의해야 할 일이나 , 어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저분으로 반찬을 집어먹을 줄 아는 사람이 어찌 산에 가서 강에 가서 바다에 가서 함부로 버릴 수가 있는 일이냐 그거거든 .
자기의 생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 ( 話頭 ) 를 들고 또 돌이켜서 화두를 들 줄 아는 사람은 그럴 수가 없어 .
‘ 한 생각 ’ 이 결국은 만년 ( 萬年 ) 인데 ,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거고 , 그 일어나는 생각을 단속을 하지 않고 끝없는 죄업을 짓는 행동으로 발전 시키는 사람은 하는 짓마다 자기를 생사의 윤회 속으로 끌고가고 , 하는 일마다 남을 해롭게 하고 , 하는 일마다 자연을 병들게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
한 생각이 그렇게 소중하고도 무서운 것이다 그거거든 .
‘ 진리 ( 眞理 ), 진리 ’ 하니까 굉장히 무슨 깊디 깊고 , 높디 높아서 우리와 굉장히 멀리 동떨어진 그러한 세계의 일처럼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진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것이여 .
아까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추우면 옷을 껴입을 줄 아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하는 일이라 했으나 , 진리가 바로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데 있는 것이여 . 추우면 옷을 껴입을 줄 아는 데에 거기에 진리가 있는 것이여 .
무엇이 배고프면 밥을 먹을 줄 아냐 그거거든 . 그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것을 우리 다 알고 있지만 , 그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놈이 무엇인가를 찾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리로 들어가는 길목이여 그게 .
진리가 무슨 화엄경을 많이 읽어야 알고 , 법화경을 많이 읽어야 하고 금강경 , 반야심경을 많이 읽어서 그것을 해석할 줄 알면 진리를 알까 그게 아니거든 .
배고프면 밥 먹을 바로 그때에 ‘ 이뭣고 ?’
우리가 찾는 ‘ 이뭣고 ?’ 가 바로 그 ‘ 이뭣고 ?’ 하는 놈이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놈이거든 . 그래서 이 참선은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고 ,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진리를 다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
정법이라는 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여 . 활구참선 !
사구참선 ( 死句參禪 ) 은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 무엇이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 얻어지는 것이 있고 ,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 그것은 그러한 식으로 참선을 하면 그건 죽은 참선이여 , 사구참선이여 . 미륵불 ( 彌勒佛 ) 이 하생 ( 下生 ) 할 때까지 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길이 없는 것이고 .
활구참선 ! ‘ 이뭣고 ?’ 알 수 없는 의심 ( 疑心 ) 으로 ‘ 이뭣고 ?’ 그뿐이거든 .
‘ 이뭣고 ?’ 할 때 딱 ! 생각이 끊어져야 하거든 . 알 수 없으면 벌써 그것이 화두 들고 있는 것이여 .
화두를 거각 ( 擧却 ) 한다 , 의단 ( 疑團 ) 이 독로 ( 獨露 ) 한 것이 무엇이냐 ? 알 수 없는 것이다 . 알 수 없는 그 생각 때문에 앞뒤 생각이 끊어져 버리거든 . ‘ 이뭣고 ?’
‘ 이뭣고 ?’ 한 글자가 아니라 ‘ 이뭣고 ?’ 했을 때 꽉 막혀서 알 수 없으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는 것이거든 .
알 수 없는 의단이 딱 들어 있을 때는 자꾸 거기다 대고 ‘ 이뭣고 ?’ ‘ 이뭣고 ?’ ‘ 이뭣고 ?’ 덮치기로 자꾸 안 해도 괜찮아 .
‘ 이뭣고 ?’ 해서 알 수 없는 의심이 탁 ! 있으면 , 그 알 수 없는 의심만 관 ( 觀 ) 하면 되는 거여 .
그러다가 딴 생각이 일어나거나 , 그 의단이 없어지거나 희미해지면 그때 다시 또 ‘ 이뭣고 ?’ 또 드는 거여 . ‘ 이뭣고 ?’ ‘ 이 ~? 지금 이 ~ 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 그러한 뜻으로 ‘ 이 ~ 뭣고 ?’
밥 먹을 때도 ‘ 이뭣고 ?’ 옷을 입을 때도 ‘ 이뭣고 ?’ 세수하고 양치질 할 때도 ‘ 이뭣고 ?’ 양치질하면서도 ‘ 이뭣고 ?’ 거든 . 선방 ( 禪房 ) 에 앉아서 죽비 ( 竹 篦 ) 를 치고 따악 앉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거든 .
누워서도 ‘ 이뭣고 ?’ 똥눌 때도 ‘ 이뭣고 ?’ 세수하고 빨래할 때도 ‘ 이뭣고 ?’ 차를 타고 걸어갈 때도 ‘ 이뭣고 ?’ 일체처 일체시에 알 수 없는 ‘ 이뭣고 ?’ 항상 간단 ( 間斷 ) 없이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가면 , 산에 가도 ‘ 이뭣고 ?’ 하는 사람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까닭이 없고 , 바다에 가서 ‘ 이뭣고 ?’ 하는 사람은 바다에 가서 무엇을 오염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
한강을 맑게 하고 , 금강을 맑게 하고 , 낙동강을 맑게 하고 , 영산강을 맑게 하고 , 섬진강을 맑게 하는 길은 ‘ 이뭣고 ?’ 를 열심히 하는 거여 . 다 ‘ 이뭣고 ?’ 를 열심히 한 사람이면 자연히 산하대지가 다 맑아지는 거여 .(26 분 56 초 ~44 분 55 초 )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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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송 ) ‘ 기래긱반냉첨의 ~’ ; 중봉명본 스님의 ' 天目中峯和尙廣錄 ( 卷第三十 )' 에서 ' 警世卄二首 ' 게송 참고 .
* 삼척동자 ( 三尺童子 ) ; 키가 석 [ 三 ] 자 [ 尺 ]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 [ 童子 ]. 철없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 . 한 자 [ 尺 ] 는 약 30.3Cm 에 해당한다 .
* 역력 ( 歷歷 겪을 · 지낼 · 수를 셀 · 가릴 력 ) ; ①뚜렷한 모양 . 분명한 모양 . 똑똑한 모양 .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
* 의단 ( 疑團 의심할 의 / 덩어리 단 )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 ( 疑心 ) 의 덩어리 ( 團 ).
* 독로 ( 獨露 홀로 · 오로지 독 / 드러날 로 ) ; 홀로 ( 獨 ) 드러나다 ( 露 ).
* 잡드리 ; ‘ 잡도리 ’ 의 사투리 .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 또는 그 대책 .
* 성성적적 ( 惺惺寂寂 )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 [ 寂寂 ] 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惺惺 ] 한 상태 .
* 정법 ( 正法 ) ; ①올바른 진리 .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 부처님의 가르침 .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
* 방자히 ( 放恣 - 거리낌이 없을 방 / 방자할 · 마음대로 · 제멋대로 자 ) ;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태도가 없이 [ 放 ] 무례하고 건방지게 [ 恣 ].
* 거각 ( 擧却 들 거 / 어조사 각 ) ; 화두를 든다 . ‘ 화두를 든다 ’ ‘ 화두를 거각한다 ’ 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 ( 現前 ) 하면 ,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 ( 觀照 ) 하는 것이다 .
[ 참고 ] 송담스님 세등선원 (No.09)— 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 (76.12.26) 에서 .
〇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 이 화두를 — 호흡하는데 배꼽 밑 [ 丹田 ] 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 이뭣고 ~?’ ‘ 알 수 없는 생각 ’ 관 ( 觀 )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
* 생사대사 ( 生死大事 ) ; ①삶과 죽음 , 생사 ( 生死 ) 의 큰 일 .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
* 오탁악세 ( 五濁惡世 다섯 오 / 흐릴 탁 / 악할 악 / 세상 세 ) ; 명탁 ( 命濁 ), 중생탁 ( 衆生濁 ), 번뇌탁 ( 煩惱濁 ), 견탁 ( 見濁 ), 겁탁 ( 劫濁 ) 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
[ 참고 ] ①명탁 ( 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 ( 惡業 ) 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 ②중생탁 ( 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 ③번뇌탁 ( 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 ④견탁 ( 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 ⑤겁탁 ( 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
* 말세 ( 末世 끝 말 / 세상 세 ) ; ①도덕 , 풍속 ,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 ( 正法 ) 의 세상 , 그 다음 천년을 상법 ( 像法 ) 의 세상 ,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 ( 末法 ) 의 세상이라고 한다 .
* 무상 ( 無常 )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 변해감 . 덧없음 . 영원성이 없는 것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 因 ) 과 조건 ( 緣 ) 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 인연 ( 因緣 ) 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 常 ] 이 없다 [ 無 ].
* 황천객 ( 黃泉客 ) ; 저승 [ 黃泉 ,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 으로 간 나그네 [ 客 ] 라는 뜻으로 , 죽은 사람을 이르는 말 .
* 참선 ( 參禪 ) ; ①선 ( 禪 ) 의 수행을 하는 것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
* 본업 ( 本業 ) ; ①주가 되는 직업 . ②주로 하는 일 .
* 생사윤회 ( 生死輪廻 날 생 / 죽을 사 / 바퀴 윤 / 빙빙돌 회 ) : 사람이 어리석음 ( 無明 ) 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 ( 三界六道 ) 에서 났다가 [ 生 ] 죽고 [ 死 ]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 輪 ] 가 돌듯이 [ 廻 ] 반복함 . 육도윤회 ( 六途輪廻 ).
* 일대사 ( 一大事 )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 수행의 목적 . 깨달음을 얻는 것 . 인간으로서의 완성 .
* 세세생생 ( 世世生生 )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 태어날 때마다 . 세세 ( 世世 ) 토록 .
* 고인 ( 古人 ) ; 옛날 사람 . 옛날 선승 ( 禪僧 ).
* 초상 ( 初喪 ) ; ①사람이 죽어서 장사 ( 葬事 ) 지낼 때까지의 일 . ②사람이 죽은 일 .
* 호천망극 ( 昊天罔極 하늘 · 큰모양 호 / 하늘 천 / 없을 망 / 다할 극 ) ; ①하늘이 넓고 크며 끝이 없음 . ②부모의 은혜가 하늘과 같이 넓고 커서 다함이 없다는 말 .
* 대사 ( 大事 ) ; 일대사 ( 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 삶과 죽음 , 즉 생사 ( 生死 ) 의 일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 수행의 목적 . 깨달음을 얻는 것 . 인간으로서의 완성 .
『법화경』 방편품에 ‘ 諸佛世尊 , 唯以一大事因緣故 ,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 ( 一大事因緣 )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 라고 한 것에서 유래 .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 ’ 이다 .
[ 참고 ] [ 선문염송 · 염송설화 ] ( 혜심 · 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제 692 칙 ‘ 대사 ( 大事 )’
〇 洞山 門僧 世間 是甚 麼物最苦 僧云 地獄最苦 師云 不然 向此衣線下 不明大事 始是苦
동산 ( 洞山 ) 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 “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
스님이 말하였다 . “ 지옥의 고통이 가장 괴롭습니다 ”
선사가 말하였다 . “ 그렇지 않다 . 이 옷 밑에서 큰 일 [ 大事 ] 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진짜 괴로운 일이니라 ”
< 염송설화 ( 拈頌說話 )>
동산 ( 洞山 ) 노인이 노파심이 간절해서 입이 쓰도록 간곡히 일러 준 말씀이니 모름지기 이 대사 ( 大事 ) 를 밝혀야 동산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 .
*‘ 대사 ( 大事 ) 를 미명 ( 未明 ) 시에도 부모의 초상을 만난 거와 같이 그렇게 해 나가고 , 대사 ( 大事 ) 를 이미 밝힌 뒤에도 여상고비 ( 如喪考 妣 ) 다 . 부모 초상 만난 것 같이 해라 ’ ; [종감법림 ( 宗鑑法林 )] ( 권 23) ‘ 睦州示衆 大事未明 如喪考 妣 大事已明 亦如喪考 妣 ’
[ 천목중봉화상광록 ( 天目中峰和尙廣錄 )] 제 3 권 ' 송고 ( 頌古 )' 에 ‘ 大事未明如喪考 妣 大事已明亦如喪考 妣 ’ 에 대한 중봉화상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 ‘ 萬里山河平似掌 一條官路直如絃 行人若問窮通事 鐵壁銀山在面前 ’
[ 참고 ] [ 선문염송 · 염송설화 ] ( 혜심 · 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제 655 칙 ‘ 대사 ( 大事 )’
〇 목주( 睦州 ) 가 대중에게 보여 말하였다 . “ 큰 일 [ 大事 ] 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
睦州 示衆云 大事未辦 如喪考 妣 大事已辦 如喪考 妣
< 염송설화 ( 拈頌說話 )>
“ 큰 일 [ 大事 ] 을 끝내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 大事未辦 如喪考 妣 ]” 함은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달지 않으며 , 소리와 빛에 끄달리지 않고서 마침내 큰 일을 끝낸다는 뜻이다 .
“ 큰 일을 끝냈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 大事已辦 如喪考 妣 ]” 는 들어갈 곳을 얻지 못했으면 들어갈 곳을 얻으려 하고 , 들어갈 곳을 이미 얻었으면 모름지기 나올 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
다른 책에는 “ 봄바람을 만나지 못하면 꽃이 피지 못하지만 꽃이 핀 뒤엔 또 바람을 맞고 떨어진다 [ 不得春風花不開 花開又被風吹落 ]” 고 하였다 .
“ 고비 ( 考 妣 )” 라 함은 , 아버지가 죽으면 고 ( 考 ) 라 하고 , 어머니가 죽으면 비 ( 妣 ) 라 한다 . 어떤 이는 선고 ( 先考 ) · 선비 ( 先 妣 ) 라 하는데 , 이는 잘못이다 . 상 ( 喪 ) 자는 평음 ( 平音 : 平聲 ) 으로 읽어야 하니 ' 장사 지낸다 [ 行喪 ]' 는 뜻이다 . 칙음 ( 則音 : 上聲 ) 으로 읽으면 ' 잃는다 ' 는 뜻이나 이미 고비가 되신 분을 어찌 다시 잃는다 [ 喪失 ] 하겠는가 ?
[ 참고 ] [ 선문염송 · 염송설화 ] ( 혜심 · 각운 지음 | 월운 옮김 ) 제 1206 칙 ‘ 대사 ( 大事 )’
〇 봉상부( 鳳翔府 ) 청봉산 ( 靑峰山 ) 전초 ( 傳楚 )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 “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어째서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합니까 ?
선사가 말하였다 . “ 봄바람이 불지 않아 꽃이 피지 않더니 , 꽃이 피자 바람에 떨어지는구나 ”
鳳翔府靑峰山傳楚禪師 因僧問 大事已成 爲什 麼如喪考妣 師云 不得春風花不開 及至花開又吹落
< 염송설화 ( 拈頌說話 )>
“ 큰 일은 이미 이루어졌거늘 [ 大事已成 ]... ” 이라 함은 다른 곳에서 “ 큰 일을 아직 이루지 못했거든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고 , 큰 일을 이미 이루었어도 부모를 잃은 것 같이 하라 ” 고 하였다 . “ 봄바람이 불지 않아 [ 不得春風 ].... ” 라고 함은 깨달은 곳도 역시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
* 보조국사 ( 普照國師 ) ; 분류 ‘ 역대 스님 약력 ’ 참고 .
*‘ 보조국사 ( 普照國師 ) 가 말씀하시기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애기 막 낳아 놓은 거와 같다』 ’ ;
[ 참고 ] 보조국사 지눌 ( 一一五八 ~ 一二一 0) 의 < 수심결修心訣 > 에서 .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 ( 頓悟 단박 깨달음 ) 란 범부 ( 凡夫 ) 가 미혹했을 때 사대 ( 四大 ) 를 몸이라 하고 망상 ( 妄想 ) 을 마음이라 하여 , 자기의 성품 ( 自性 ) 이 참 법신 ( 法身 ) 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 ( 靈知 ) 이 참 ( 眞 ) 부처인 줄 알지 못하여 ,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
홀연히 선지식 ( 善知識 ) 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 이 성품 ( 性品 ) 자리에는 원래 ( 原來 ) 번뇌 ( 煩惱 ) 가 없고 , 무루 ( 無漏 ) 의 지혜 성품이 본래 ( 本來 ) 스스로 구족 ( 具足 ) 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 ( 頓悟 , 단박 깨달음 ) 라고 한다 .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 ( 漸修 , 차츰 닦음 ) 란 , 비록 본래 성품 ( 本性 ) 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 ( 習氣 ) 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 ( 功 ) 을 이루어 성인 ( 聖人 ) 의 태 ( 胎 ) 를 길러 양성하면 ,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 ( 聖人 ) 을 이루게 되므로 , 점수 ( 漸修 , 점차로 닦음 ) 라고 한다 .
비유 ( 比喩 ) 하면 ,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 ( 諸根 ) 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 ( 歲月 ) 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 ( 成人 ) 이 되는 것과 같다 .
* 오후보림 ( 悟後保任 )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 ( 多生 ) 의 습기 ( 習氣 ) 를 제하고 도 ( 道 ) 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 ( 保任 ) 공부 . 장양성태 ( 長養聖胎 ).
* 습기 ( 習氣 ) ; ①과거의 온갖 업 ( 業 )— 생각 , 행위 , 경험 ,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 ( 阿賴耶識 ) 에 남긴 기운 , 잠재력 . 종자 ( 種子 ) 와 같음 .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 습 ( 習 ), 번뇌습 ( 煩惱習 ), 여습 ( 餘習 ), 잔기 ( 殘氣 ) 라고도 한다 .
* 본지풍광 ( 本地風光 ) : 본래면목 ( 本來面目 ) 이라거나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 ( 父母未生前面目 ) 이라거나 , 천진 면목 ( 天眞面目 ) • 법성 ( 法性 ) • 실상 ( 實相 ) • 열반 ( 涅槃 ) • 보리 ( 菩提 ) 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같은 뜻이다 .
* 미 ( 迷 ) ; 미혹 ( 迷惑 ), 미망 ( 迷妄 ), 미집 ( 迷執 ) 의 준말 . 진리에 어두움 .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 깨달음 ( 悟 ) 의 반대 .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 ( 顚倒夢想 ,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 ) 하는 것 .
* 견처 ( 見處 ) ; ① ( 틀린 ) 견해가 생긴 곳이라는 뜻 . 집견 ( 執見 , 자신의 마음속에서 고집하는 견해 . 여러 종류의 망견妄見 ) 이 일어나는 장소 . 유루법 ( 有漏法 ) 의 다른 이름 . ②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 견해 . 견 ( 見 ) 은 견해 , 세계관이라는 뜻 . 특수한 세계관의 입장 .
* 상자 ( 喪者 상복을 입을 · 잃을 상 / 놈 자 ) ; 초상 ( 初喪 , 사람이 죽어서 장사 지낼 때까지의 일 ) 치르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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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송 ) ‘ 만리산하평사장 ~’ ; [천목중봉화상광록 ( 天目中峰和尙廣錄 )] 제 3 권 ' 송고 ( 頌古 )' 에 ‘ 大事未明如喪考 妣 大事已明亦如喪考 妣 ’ 에 대한 중봉화상의 게송 .
*‘ 大事未明如喪考 妣 大事已明亦如喪考 妣 ’ ; ‘큰 일 [ 大事 ] 을 밝히지 못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고 , 큰 일을 밝혔더라도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 지내는 것 같이 하라 ” [ 종감법림 ( 宗鑑法林 )] 권 23 ‘ 睦州示衆 大事未明 如喪考 妣 大事已明 亦如喪考 妣 ’
*( 게송 ) 萬里山河平似掌 一條官路直如絃 行人若問窮通事 鐵壁銀山在面前 ; 이 게송에 대한 또 하나의 법문 ---> http://emokko.tistory.com/418
* 관로 ( 官路 벼슬 · 관청 관 / 길 로 ) ; 관도 ( 官道 ). 예전에 , 국가에서 관리하던 간선길 ( 幹線길 : 도로 , 철도 , 전신 , 수로 등의 주요 구간 사이를 연결하는 , 중심이 되는 길 ).
* 성주괴공 ( 成住壞空 )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 안정 ( 安定 ) 하여 진행하는 과정 , 쇠퇴하여 가는 과정 ,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 우리 몸도 사회도 , 국가도 ,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
이것을 성주괴공 ( 成住壞空 ) 이니 , 생주이멸 ( 生住異滅 ) 이니 , 생로병사 ( 生老病死 ) 니 하는데 ,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
* 초명안첩 ( 蟭螟眼睫 사마귀 알 · 벌레 이름 초 / 멸구 · 모기 명 / 눈 안 / 속눈썹 첩 ) ; 초명 ( 蟭螟 ) 은 ‘ 아주 작은 벌레 ’ 를 뜻하는데 , 그 초명의 속눈썹 [ 蟭螟眼睫 ] 으로 아주 작은 자리를 말함 .
* 자성 ( 自性 )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
* 화두 ( 話頭 ) : 또는 공안 ( 公案 ) • 고측 ( 古則 ) 이라고도 한다 . 선종 ( 禪宗 ) 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 ( 言句 ) 나 문답이나 동작 .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 만년 ( 萬年 ) ; ①항상 변함없이 같은 상태 . ②아주 오랜 세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이뭣고 ( 是甚 麼 시심마 ) : ‘ 이뭣고 ? 화두 ’ 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 육근 ( 六根 ) • 육식 ( 六識 ) 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 이뭣고 ?’ 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 ( 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 를 찾는 것이다 .
표준말로 하면은 ‘ 이것이 무엇인고 ?’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 이뭣고 ?( 이뭐꼬 )’.
‘ 이것이 무엇인고 ?’ 는 일곱 자 ( 字 ) 지만 ,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 , 뭣 , 고 ’ 석 자 ( 字 ) 이다 . ‘ 이뭣고 ?( 이뭐꼬 )' 는 ' 사투리 ' 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 참선 ( 參禪 ) 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
* 미륵불 ( 彌勒佛 ) : [범 ] Maitreya 대승보살 , 또는 매달려야 ( 梅 呾麗耶 ), 매달례야 ( 昧 怛隷野 ) 。번역하여 자씨 ( 慈氏 ) 。 이름은 아일다 ( 阿逸多 ) 무승 ( 無勝 ) 막승 ( 莫勝 ) 이라 번역 .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 ( 天人 ) 들을 교화하고 ,
석가모니 입멸후 56 억 7 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 — 하생 ( 下生 ) 하여 , 화림원 ( 華林園 ) 안의 용화수 ( 龍華樹 ) 아래에서 성불 ( 成佛 ) 하고 3 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 이 법회를 용화삼회 ( 龍華三會 ) 라 한다 .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 處 ] 를 보충 ( 補充 ) 한다는 뜻으로 보처 ( 補處 ) 의 미륵이라 하며 , 현겁 ( 賢劫 ) 천 불의 제 5 불 ( 佛 ).
* 의심 ( 疑心 ) : 자기의 본참화두 ( 本參話頭 ) 에 대해 ‘ 알 수 없는 생각 ’ 에 콱 막히는 것 .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 ‘ 이뭣고 ?’ ‘ 이놈 ’ 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 ‘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 또는 ‘ 어째서 무 ( 無 ) 라 했는고 ?’ 또는 ‘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 板齒生毛 ) 라 했는고 ?’
자기의 본참화두 ( 本參話頭 ) 에 대한 의심이 ,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 본참화두 ( 本參話頭 ) ; 본참공안 ( 本參公案 ). 생사 ( 生死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 ( 공안 ) 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 거각 ( 擧却 들 거 / 어조사 각 ) ; 화두를 든다 . ‘ 화두를 든다 ’ ‘ 화두를 거각한다 ’ 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 ( 現前 ) 하면 ,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 ( 觀照 ) 하는 것이다 .
[ 참고 ] 송담스님 세등선원 (No.09)— 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 (76.12.26) 에서 .
〇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 이 화두를 — 호흡하는데 배꼽 밑 [ 丹田 ] 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 이뭣고 ~?’ ‘ 알 수 없는 생각 ’ 관 ( 觀 )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
*‘ 이뭣고 ?’ 해서 알 수 없는 의심이 탁 ! 있으면 , 그 알 수 없는 의심 ( 疑心 ) 만 관 ( 觀 ) 하면 되는 거여 ; 의심관 ( 疑心觀 ). 의관 ( 疑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 ( 現前 ) 하면 ,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 ( 觀照 ) 를 하는 것 .
[ 참고① ] 송담스님 ( 세등선원 No.68)— 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 (88.01.17) (5분 59초)
〇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 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
한 철 , 두 철 ,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
그렇게 순일하게 ,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 ( 疑團 ) 이 독로 ( 獨露 ) 하걸랑 ,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 ( 惺惺 ) 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 ( 觀照 ) 를 하는 거여 . 알 수 없는 의심의 관 ( 觀 ) 이여 . 의심관 ( 疑心觀 ).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 ( 疑團 ) 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긴 ( 緊 ) 과 완 ( 緩 ) 긴완 ( 緊緩 ) 을 득기중 ( 得其中 ) 을 해야 혀 . 그것이 묘한 관 ( 觀 )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
관 ( 觀 )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 생각없는 생각을 관 ( 觀 ) 이라 하는 거여 .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 ( 觀 ) 으로 들어가는 거여 .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 묘 ( 妙 ) 한 의심 ( 疑心 ) 의 관 ( 觀 )’ 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
1 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 나는 성성적적 ( 惺惺寂寂 ) 허게 그 의심의 관 ( 觀 ) 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 ( 僧俗 ) 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 ( 選佛場 ) 이요 , 그게 바로 선방 ( 禪房 ) 이요 , 공부처 ( 工夫處 ) 다 그말이여 .
[ 참고② ] 송담스님 (No.256)—85 년 2 월 첫째 일요법회 (85.02.03) (5분 57초)
〇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 호흡을 바르게 하고 ,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 ( 話頭 ) 를 어떻게 의심 ( 疑心 ) 하느냐 ?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한 철 , 두 철 , 세 철 , 3 년 , 5 년 , 10 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 ( 參究 ) 하고 ,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 이것은 한 말로 ‘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 — 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 ( 善知識 ) 도 필요 없고 ,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 ( 疑觀 ) 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 자기가 일구월심 ( 日久月深 ) 항시 면면밀밀 ( 綿綿密密 ) 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 그 의심관 , 관 ( 觀 )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 생각 없는 생각 ’ 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 ( 活句參禪 ) 은 ‘ 의심 ( 疑心 ) 의 관 ’ 이라야 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 서산에 지려고 할 때 ,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 —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 ( 觀 ) 하는 것입니다 .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 ( 觀 ) 인 것입니다 .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 그것을 갖다가 일관 ( 日觀 ) 이라 그러거든 .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 여러 가지 관법 ( 觀法 ) 이 있는데 , 이 참선도 하나의 ‘ 의심의 관법 ’ 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
성성 ( 惺惺 ) 하고 적적 ( 寂寂 ) 하면서도 ,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 ( 疑團 ) 이 독로 ( 獨露 ) 하도록 ,
처음에는 ‘ 이뭣고 ?’ ‘ 이뭣고 ?’ 하지만 나중에는 ‘ 이뭣고 ?’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 — 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 ( 打成一片 ) 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 ( 打破 ) 하게 되고 ,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 ( 一串都穿 ) 을 해 . 자기의 본래면목 ( 本來面目 ) 과 역대조사 ( 歷代祖師 ) 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
* 선방 ( 禪房 ) ; ①참선 ( 參禪 ) 하는 방 . ②선원 ( 禪院 ).
* 죽비 ( 竹 篦 대나무 죽 / 빗치개 · 통발 비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