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화두불명수계)2015. 5. 24. 12:44

§(336) 의심관(疑心觀) / 오계(五戒) / 소승계, 대승계, 최상승계 / (게송)유시독립묘고봉~ / ‘한 생각’ / 우리도 부처님 못지않게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이뭣고...?’ 할 때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 의심을 스스로 이렇게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속으로 하면서도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의심관을 잘 터득을 못하지만, 일구월심 자꾸 이 호흡과 맞춰서 해 나가다 보면 그 알 수 없는 의심관, 그 묘한 그 의심관을 스스로 터득하게 돼. 그 의심관을 터득을 해야 참선의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의심을 가진 사람은 결국 크게 깨닫는 거고, 의심이 적은 사람은 깨달아도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설한 이 『다섯 가지 계는 모든 계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 오계는 천번 만번 받아도 좋고, 이 계를 받아서 실천을 하면 다른 계는 저절로 다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심으로 활구참선을 해가면 그 가운데 계(戒)는 지킬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는 소승계와 대승계와 최상승계가 한목 지켜지는 것입니다. 한목 설해지고, 한목 받고, 한목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비(燃臂)를 받은 뜻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또는 알고 지은 수많은 죄 그것을 전부다 일시에 참회를 하고 연비를 해서 따끔한 그 찰나에 허공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우리가 ‘한 생각’ 자비심을 내면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탐심을 내면 축생이 되고, 한 생각 악한 마음을 내면은 독사가 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처님 못지않게 자유자재(自由自在)한 것입니다. 맘대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1초 뒤의 내생사(來生事)가 결정이 되는 만큼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더울수록에 더 간절하게 화두를 들고, 모든 일이 뜻대로 안될수록에 더욱 이 정진에 박차를 가하시고,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한 생각’을 간절히 단속을 해서 난국(難局)을 하나 헤치므로써 새로운 지혜가 증장이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 (용336)

 

(1)약 18분.

(2)약 8분.

 

(1)------------------

오늘 화두를 타신 분은 그전에는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별도로 그 화두와 불명과 오계를 설하는 법회를 가졌었는데 이번에는 바로 이 법회 시간에 화두를 바로 일러 드립니다.
아까 조실스님께서도 일러 주셨지만 다시 한번 화두를 일러 드립니다.

‘이뭣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화두를 한번 따라서 해 보십시오. ‘이뭣고?’ 해 보세요. (신도분들)‘이뭣고?’

실지로 여러분이 참선하실 때에는 그렇게 소리를 내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숨을 내쉬면서 ‘이뭣고.... ?’
‘이뭣고?’를 길게, ‘이뭣고......?’ '고'를 길게 빼는 것입니다. 숨이 다할 때까지 ‘이뭣고?’
숨이 다 나갔으면 또 스르르르 숨을 들어마셔.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할 때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 의심을 스스로 이렇게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하는 것은—관도 역시 하나의 생각인데,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이뭣고?’ 속으로 하면서도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 ‘관(觀)한다’고 하는 것.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데, 이건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실지로 자꾸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해보면 스스로 그 의심관(疑心觀)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의심관을 잘 터득을 못하지만, 일구월심(日久月深) 자꾸 이 호흡과 맞춰서 해 나가다 보면 그 알 수 없는 의심관, 그 묘한 그 의심관을 스스로 터득하게 돼.
그 의심관을 터득을 해야 참선의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 알 수 없는 그 의심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야 망상을 끊으려고 안 해도 저절로 끊어지고, 망상을 일으키지 아니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서 의심이 끊어져.

속이 상하고 분심이 나고 할 때에도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꾸 몇 번 하면 치밀어 오른 놈이 스르르르 가라앉아 버리거든, 이거 해보신 분은 다 아는 것입니다.

큰 의심을 가진 사람은 결국 크게 깨닫는 거고, 의심이 적은 사람은 깨달아도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을 해 나간 사람은 오계(五戒)를 지켜야 합니다.

첫째 불상생(不殺生).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산목숨을 죽이면 자비심(慈悲心)을 손상(損傷)해.

우리가 도(道)를 닦는 것은 스스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데 궁극의 목적이 있는데, 어찌 도 닦는 사람이 산목숨을 죽일 수가 있으며,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 산목숨을 죽일 수가 없어.
산목숨을 죽이지 아니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죽어가는 목숨을 살려줘야 한다.

둘째는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도둑질을 하면은 복덕종자(福德種子)를 손상을 해. 그래가지고 세세생생에 가난뱅이가 되는 거야.

우리가 불법을 믿고 도를 닦은 것은 스스로 깨달을 뿐만 아니라, 자비심으로써 일체 중생에 모든 것을 보시를 해야 하는데, 재물 보시도 하고—밥 없는 데 밥을 주고, 목마른 데 물을 주고, 병든 데 약을 주고,
어리석은 중생에게 법보시(法布施)를 해서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고 이것이 전부 다 복덕이거든.
그런 복덕심을 길러야 하거든, 어찌 다른 사람의 물건을 승낙 없이 내가 소유할 수가 있을까 보냐.

셋째에는 사음(邪淫)을 하지 말아라. 도를 깨닫는 데에는 마음이 청정(淸淨)해야 되는데,
내 마음을 청정하게 해서 깨달음에 나아가고, 일체 중생에게 마음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생사해탈을 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어찌 내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 삿된 품행을 할까 보냐.

넷째에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을 하면은 나의 진실종자(眞實種子)를 손상을 해. 내 마음의 진실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말이여.

도를 얻으려면 그 마음이 진실해야 도를 얻고, 도를 얻은 다음에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도를 깨닫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데 스스로 마음의 진실성을 잃어 가지고 어떻게 중생의 마음을 진실되게 지도할 수가 있을 것이냐.
그래서 거짓말을 함으로써 진실 종자를 상실하게 되니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다섯째에 가서는 술을 마시지 말아라. 도를 닦는 것은 내 마음을 지혜(智慧)를 얻어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지혜심을 상실하게 된다 그말이여.

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리석고, 어리석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 윤회를 하고 있는데,
금생에 밤낮 술만 마시면 결국은 머리가 지혜를 잃어버리고 결국은 알콜 중독에 걸리게 되면 머리가 돌대가리가 되고, 손발을 떨면서 결국은 폐인이 되는 것이고 패가망신(敗家亡身)을 하는데,
어찌 도를 얻고자 하는 사람이 지혜를 상실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술을 마시지 말아라.

금생에 이 다섯 가지 계를 잘 지키면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빨리 얻을 수가 있고, 금생에 이 오계를 지키지 못한 사람은 금생에 도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부 호궤합장(互跪合掌)을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무릎을 세우고 합장을 하십시오.

이상 오계에 대해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5계를 설명을 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이미 오계, 십계(十戒)와 비구계, 비구니계 또는 보살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 그런 계를 다 받으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마는,

오늘 설한 이 『다섯 가지 계는 모든 계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 근본 된 이 오계는 천번 만번 받아도 좋고, 이 계를 받아서 실천을 하면 다른 계는 저절로 다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오계에는—보통 ‘재가 오계(在家五戒)다’ 이렇게 말합니다마는 소승계(小乘戒), 대승계(大乘戒) 또는 최상승계(最上乘戒) 이러한 3가지 의미에 있어서 이 다섯 가지 계를 설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계가 몸으로만 지키는 소승계가 아니고, 마음으로 지키는 대승계, 몸과 마음을 한목 다 지키되, 지키는 계상(戒相)에 떨어지지 않는 그러한 최상승계를 지킬 수가 있겠는가?

철저하게—산승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태까지 설한—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심으로 활구참선을 해가면 그 가운데 계는 지킬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계는 소승계와 대승계와 최상승계가 한목 지켜지는 것입니다. 한목 설해지고, 한목 받고, 한목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 설한 다섯 가지 계는 불자(佛子)로써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최상승 학자로써 마땅히 잘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能持)”
이상 설한 다섯 가지 계는 부처님의 청정한 계니 불자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이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이상 설한 다섯 가지 계는 불자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청정한 계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능지”

여러분은 오계를 받고 이것을 잘 키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맹세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화두를 탔습니다.
오늘 불명을 받드신 분은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차례차례 받아 가시도록 하고.

계 오늘 받으실 분이 별도로 안 앉았나요? 가운데.
그러면 연비(燃臂)를 하십시오.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계를 받고, 부처님께 맹세를 하고, 그리고 연비를 받았습니다.
연비를 받은 뜻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또는 알고 지은 수많은 죄 그것을 전부다 일시에 참회를 하고 연비를 해서 따끔한 그 찰나에 허공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청정한 마음과 청정한 몸으로써 이제 오늘 이 찰나에 부처님 아들로, 부처님 딸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그 몸과 마음으로 열심히 정진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수재(水災)로 인해서 우리의 형제자매, 많은 동포들이 집을 잃고, 재산을 잃고, 생명을 잃고, 참담한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벌써 수재 의연금(義捐金)을 모다 내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아직도 형편상 안 내신 분이 계시면 동사무소나 방송국이나 신문사나 어디라도 좋으니 분(分) 따라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다 의연금을 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내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내 몸뚱이요. 모두가 다 내 형제요. 우리 모두 다 한 가족인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수재가 일어나도 보내주거든 하물며 내 동포 내 겨레를 위해서 이런 일에 빠져서는 아니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52분26초~70분)

 

 

 



(2)------------------

유시독립묘고봉(有時獨立妙高峯)하고  각래단좌염라전(却來端坐閻羅殿)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견진인간지점두(見盡人間祇點頭)하면  대비수안다방편(大悲手眼多方便)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시독립묘고봉(有時獨立妙高峯)타가, 어느 때는 저 묘고봉(妙高峯),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가,
각래단좌염라전(却來端坐閻羅殿)이로구나. 문득 염라궁에 와 가지고 단정히 앉았구나.

부처님께서는 유시(有時)에는 저 수미산 꼭대기에 우뚝 서 계시고, 유시에는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다가, 유시에는 사바세계에 오신다.

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같은 그런 보살님네는 중생을 위해서—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금 지옥에 가서 계시기도 하고, 미륵보살(彌勒菩薩)은 염라대왕이 되어 계시기도 하고,
그렇게 천당, 지옥에 임의자재로 자유자재, 소요자재(逍遙自在) 하시는 것입니다.

견진인간지점두(見盡人間祇點頭)하면, 인간을 다 보아 다하면 오직 점두(點頭)할 뿐이여.
비단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뿐이겠습니까. 이 법당 안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도 마찬가지입니다.

찰나(剎那)간에 천당에 가고, 찰나간에 지옥에 가고, 찰나간에 축생이 되고 한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부처님과 조금도 손색이 없이 육도(六途)를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견진인간지점두(見盡人間祇點頭)하면, 인간을 바로 보아 다 해 가면은 다못 고개를 끄떡 끄떡 할 뿐이여.
대비수안다방편(大悲手眼多方便)이다. 대자대비한 천수천안(千手千眼)을 가진 관세음보살은 방편(方便)이 많아. 중생의 근기(根機)가 많은 만큼 팔만사천 가지의 중생에 팔만사천 가지의 방편을 자유자재로 쓰시더라.

여러분이 오늘날까지 무량겁을 살아오시면서 육도를 그렇게 돌고 돌다가 오늘 이 법당에까지 오셨습니다.
법당에서 최상승 법문을 듣고, 계를 받고, 화두를 타고 불명을 탔습니다마는,

여러분이 또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자비심을 내면, 여러분이 그 피땀 흘려서 번 그 아끼고 아낀 그런 금쪽같은 돈과 재산을 또 수재민을 위해서 얼마든지 또 보시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우리의 고(苦) 받는 고해(苦海) 중생을 위해서 손을 건져 주신 뜻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가 ‘한 생각’ 자비심을 내면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탐심을 내면 축생이 되고, 한 생각 악한 마음을 내면은 독사가 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처님 못지않게 자유자재(自由自在)한 것입니다. 맘대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삼복(三伏) 성염(盛炎)에 이렇게 법회에 참석을 해주시고 또 장시간 이 산승(山僧)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전생에 같이 도 닦던 인연으로 또 이렇게 만났기 때문에 산승은 또 이렇게 여러분을 위해서 간절한 말씀을 해 드리게 되는 것이고 여러분은 그 말을 뼛속 깊게 새겨들으시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시면,
다음 생(生)에는 여러분이 또 스님이 되고, 내가 또 제자가 되어서 또 그 법문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서 가며 끌어 잡아당기고, 뒤에서 밀면서 목적지를 향해서 간다면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대도(大道) 성취할 것을 나는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을 드립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1초 뒤의 내생사(來生事)가 결정이 되는 만큼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더울수록에 더 간절하게 화두를 들고,
모든 일이 뜻대로 안될수록에 더욱 이 정진에 박차를 가하시고,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더 ‘한 생각’을 간절히 단속을 해서 난국(難局)을 하나 헤치므로써 새로운 지혜가 증장이 되는 것입니다.

못 다한 말을 주장자에 위탁을 하고 법상에서 내리고자 합니다.(70분1초~77분3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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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청정(清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십계(十戒) ; 십선계(十善戒).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 ; [불교] 범망경(梵網經)에 있는 대승계(大乘戒) 가운데 열 가지의 무거운 계에 대하여 비교적 가벼운 죄를 경계한 48가지의 계.
*소승계(小乘戒) ; 소승의 율장(律藏)에서 설하는 계율로, 「사분율」에 의하면 비구 250계, 비구니348계를 말함. 율의계(律儀戒)라고도 말한다.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계상(戒相) ; ①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4가지 분류[계사별 戒四別],  계법(戒法) · 계체(戒體) · 계행(戒行) · 계상(戒相) 하나. 계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차별 있는 행동 양상. () 지키거나[持戒] 범한[破戒] 상태, 또는 계를 범한 경우 그에 대한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 등의 차별된 상.

②계() (). 계율에 대한 생각.  계상(戒相)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10 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식이란 말이다。불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지혜목숨(慧命)을 이어가고, 법의 집과 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의연금(義捐金 옳을 의/줄 연/금전 금) ; 자선이나 공익을 위하여 내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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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유시독립묘고봉~’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는 ‘sumeru’의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지장보살(地藏菩薩) ; 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미륵보살(彌勒菩薩)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소요자재(逍遙自在) ; 아무 것에도 구애(拘礙 마음에 거리끼거나 얽매임)됨이 없는 것.
*점두(點頭)하다 ; (사람이)승낙하거나 찬성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이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 (사람이)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이다.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성염(盛炎 성할 성/불꽃·더울 염)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내생사(來生事)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하는, 다음 생(來生)의 일.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5. 5. 22. 14:39

§(336) 삼요(三要)—신심,분심,의심 / (게송)약인투득상두관~ / 화두순숙 의단독로 확철대오, 공안을 아는 것이 아니라 확 봐 버린다 / 의심관(疑心觀)을 터득해야 한다.

깨달을 수 있다고 믿어야 깨닫게 되는 것이지, 해보지도 않고 ‘나는 깨달을 수가 없다’ ‘나는 중생이기 때문에 나는 지옥 밖에는 못 간다’ 자꾸 스스로를 자포자기하고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는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른 중생을 위해서, 형제·친구를 위해서 다 양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부에 대한 욕심, ‘왜 나는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는가?’한 이 공부에 대한 분심은 천하 없이도 양보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의심을 할려고 해도 자꾸 화두가 잘 잊어버린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분은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고, 분심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이 안 나는 것이다. 참으로 신심이 돈독하고 분심이 있다면 의심을 안 할라야 안 할 수가 없어! 일부러 의심을 안 하고 딴 생각을 좀 해볼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 의심을 스스로 이렇게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속으로 하면서도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 ‘관(觀)한다’고 하는 것.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데, 이건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실지로 자꾸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해보면 처음에는 그 의심관을 잘 터득을 못하지만, 일구월심(日久月深) 자꾸 이 호흡과 맞춰서 해 나가다 보면 그 알 수 없는 묘한 그 의심관을 스스로 터득하게 돼.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 (용336)

 

(1) 약 15분.

(2) 약 16분.

 

(1)------------------

이 참선을 하려면 그래서 대신심(大信心)이 있어야 돼. 대신심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대분심(大憤心)이 있어야 하고, 대의심(大疑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세 가지를 삼요(三要)라 그러는데,

대신심이란 것이 무엇이냐?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많이 올리고, 그런 것도 신심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 대신(大信)이라 하는 것은 ‘내가 부처다’하고 믿는 거여.
내 자신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것,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내가 부처인 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지, 본래 내가 원만한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 깨달으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이것이 바로 대신심이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중생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 실지 내용에 있어서는 부처님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밥 먹고 옷 입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성내고 괴로워하고 하는 이러한 작용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뚱이 속에 살아있는 부처님의 작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한 생각을 미(迷)했기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마음도 내고, 탐심도 내고, 진심(瞋心)도 내고 그렇지만, 그 자체는 다른 데에서 그러한 작용이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부처님한테서 나오는 작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면 자기의 몸뚱이 속에 살아계신 부처님이 분명히 계신 증거이기 때문에 자기도 깨달을 수 있다고 깊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리 참선을 해봤자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깨달을 수 있다고 믿어야 깨닫게 되는 것이지, 해보지도 않고 ‘나는 깨달을 수가 없다’ ‘나는 중생이기 때문에 나는 지옥 밖에는 못 간다’ 자꾸 스스로를 자포자기하고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는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한 그런 큰 신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대분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 신심이 있어도 분심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공부가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분심은 바로 용기인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분심을 내야 공부를 계속해서 해 나갈 수가 있고 깨달음에 나아갈 수가 있지, 분심이 죽어버리고 용기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과 모든 조사, 선지식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생사해탈을 해 가지고 중생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육도(六途)를 윤회하고 있는가?
그러한 생각으로 분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명예나 권리나 또는 재산 모다 그런 것에 관해서는 시기를 내고 질투를 내고,
그래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싸우면서 심지어는 동포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형제 친구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도 싸우면서,
어째서 영원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기 위한 이 깨달음을 위해서는 왜 그러한 분심을 낼 수가 없느냐?

정말 이 문제에 관해서는 부모한테도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이 분심을 내고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의 이 욕심은 아무한테도 양보해서는 아니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른 중생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다 양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공부에 대한 욕심, ‘왜 나는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는가?’한 이 공부에 대한 분심은 천하 없이도 양보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밤을 패서 공부하고,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고, 다른 사람은 앉아서 하더라도 자기는 앉을 시간이 없으면은 서서 하고, 차를 타면서 하고,
방부(房付)를 들이고—금년에도 88명이나 방부를 들이고 보살님네들이 정진을 하고 계십니다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선방(禪房)에 와서 공부는 못하신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질 수가 있겠느냐! ’ 집에서 살림하고, 빨래하고, 소지하고, 밥 짓고 또는 직장에서 이를 갈아붙이고 한 생각 한 생각을 무섭게 돌이켜 가며 다잡이를 해 간다면 그분이 먼저 대도를 성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심을 가지고 그 다음에 대분심을 가져야 한다.


세 번째 가서 큰 의심(疑心)을 가져야 한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을 통해서 화두를 일러 주셨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와 ‘이뭣고?’ 두 가지를 말씀을 하셨는데, 이미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타신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를 하셔야 하고,

조실 스님께 ‘이뭣고?’를 타셨거나 또는 산승으로부터 탔거나, 오늘 화두를 타시려는 분, ‘이뭣고?’
‘이뭣고?’ 그 말은 한문으로는 ‘시심마(是甚麼)’ 그러는데, 우리말로는 번역하면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거든.

‘이것이 무엇인고?’ 그 말을 경상도 말로는 ‘이뭣고?’ 그러거든. ‘이, 것, 이, 무, 엇, 인, 고’하면 일곱 자인데 ‘이, 뭣, 고’하면 석 자란 말이여. 그래서 간단하면서도 의심이 잘 나.
그래서 옛날부터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경상도 말로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이냐?’에서 ‘이것’을 무엇을 지칭해서 ‘이것’이라 하냐 하면은,
『지금 말하는 바로 이놈』 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계시는데 ‘무엇이 듣고 있느냐?’ 그말이거든. 『듣는 그놈』

그놈이 바로 욕도 할 줄도 알고, 칭찬할 줄도 알고 또 정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할 줄도 알고,
그놈이 한 번 삐뚤어지면 찰나 간에 악마가 되기도 하고, 그놈이 한 생각 탁! 돌이켜서 착하게 쓰면은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될 수도 있고, 비로자나 부처님이 될 수도 있고, 관세음보살이 될 수도 있고,
그놈이 나찰 귀신도 될 수도 있고, 독사도 될 수도 있고, 아귀도 될 수도 있고, 지옥찌꺼기가 될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떻게 해서 그놈이 그렇게 찰나간에 천당에 올라갔다가, 찰나간에 지옥에 떨어졌다가, 찰나간에 독사 배때기로 들어갔다가, 찰나간에 돼지가 되었다가, 찰나간에 사람이 되었다 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신기하고 묘하기가 어디다가 비유할 데가 없어. 그래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이뭣고?’

의심을 안 할 라야 안 할 수가 없어!

‘의심을 할려고 해도 자꾸 화두가 잘 잊어버린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분은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고, 분심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이 안 나는 것이다.
참으로 신심이 돈독하고 분심이 있다면 의심을 안 할라야 안 할 수가 없어! 일부러 의심을 안 하고 딴 생각을 좀 해볼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눈을 감으나 뜨나, 앉으나 서나, 그냥 제절로, 자동으로 그냥 ‘이뭣고?’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을 누면서도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하고 억울한 소리를 해도 ‘이뭣고?’ 옛날부터서 해 내온 그 습기(習氣)가 있어서 잠깐 부애가 날 듯 하다가도 냉큼 ‘이뭣고?’ 탁! 챙겨 버리면 ‘이뭣고?’거든.
언제 속상할 겨를도 없고, 언제 억울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고, 미워할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 하나 탁! 챙길 줄 알면 그냥 이 몸뚱이 요대로 바로 천사가 되고 싶으면 천사가 되고, 관세음보살이 되고 싶으면 관세음보살이 되고,
자기가 일부러 독사가 되고 싶으면 독사도 되고, 호랑이가 되고 싶으면 호랑이가 되고, 지옥에도 한번 가보고 싶으면 가 볼 수가 있다 그말이여.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다가도 탁! 한 생각 돌이켜 버리면 금방 천상에 올라간다 그말이여.
죽어서 지옥에 가고, 죽어서 천당에 가는 그렇게도 믿어야 하고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 이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죽어서 가는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찰나간에 생사 문제가 더 소중하고 더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이 몸뚱이 살아서 이렇게 숨 쉬고, 밥 먹고, 옷 입고 할 때에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화두에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두리를 해서 공안을 타파하도록 노력한 사람은 죽어서 어디에 갈 것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인연 따라서 천당에 가게 되면 가는 거고, 인연 따라서 지옥에 가게 되면 가는 것이지,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도 없고, 참으로 죽어서 지옥에 가기 싫고, 축생에 가기 싫거든 지금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지금 한 생각 등한히 해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이지, 지옥에 갈 사람이 미리부터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 생각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지옥에도 가고, 천당에도 가고, 극락에도 가고, 인도환생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를 믿어도 그렇게 믿어야 옳게 믿는 것이고, 그렇게 믿어야 최상승 학자의 믿음인 것입니다.(26분5초~40분33초)

 

 

 



(2)------------------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투득(透得)해 버리면,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관(生死關)을 뚫어 버리면 비로소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너그러운 것을 깨닫게 되더라.

공안을 타파하지 못하고 우리의 생사관을 타파하지를 못하면 이 우주 법계와 산하대지가 이렇게 넓건마는 갈 곳이 없습니다. 어디를 향해서 가겠습니까?

마치 파리란 놈을, 방안에서 문을 닫고 방바닥에 앉은 파리를 내키면 천장에 붙고, 천장에 앉은 파리를 내키면 동쪽 벽에 가 붙고, 동쪽 벽에 붙은 파리를 내키면 서쪽에 와 붙고, 어디가 붙든지 자기가 사방과 상하에 붙지.
지가 붙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이냐? 어디를 갈 것이냐?

공안을 타파하지 못하고, 생사관을 투득을 하지 못하면 갈 곳이 어디입니까?
죽어서 지옥에 가고, 축생이 되고, 아귀 나찰이 되고, 중음신(中陰身)이 되어가지고 허공계를 헤매면서 배고프고 목마르고 영원토록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두를 열심히 참구(參究)를 해서 그 공안을 타파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고 보면 산하대지가 정말 걸림이 없어.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여. 인간의 분별계(分別界)에 떨어지지 아니해. 인간의 분별계란 게 무엇이냐?
탐진치 삼독이 인간의 분별계요. 오욕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희로애락이 인간의 분별계요. 생로병사가 인간의 분별계요. 빈부귀천이 인간의 분별계여.
어디에 떨어지거나 인간의 분별계에 떨어졌다 하면 그것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인간 분별계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이냐. 푸른 물, 푸른 산 무엇에 걸릴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이북은 여행도 마음대로 못하고, 이사도 마음대로 못하고, 가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가지를 못한다고 그럼니다. 우리야 설악산에 가고 싶으면 설악산에 가고, 오대산에 가고 싶으면 가고, 지리산에 가고 싶으면... 어느 좋은 산이 있다면 누가 못 가게 할 사람 하나 없습니다.
어느 강, 어느 바다가 좋아서 갈라고 하면 어디라도 가지 우리가 못 갈 것이 없습니다.
어디로—부산 살다가 서울에 오든지, 서울 살다 부산을 가든지, 팔도에 제주도가 되었건, 강원도가 되었건, 이사가고 싶은 데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이 분별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화두를 참구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수무잡하게 되면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똥을 누나, 차를 타나,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거기에 집착할 것이 없습니다.

다맛 의단이 독로하도록 단속을 해 나가면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돼. 순수무잡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돼. 시간가는 중도 모르고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조차도 모릅니다.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생각도 없고, 누가 와서 나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라는 생각도 없습니다.
다맛 순수하고 깨끗하고 맑은 의단만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지혜롭게, 급한 생각도 없고, 늘어진 생각도 없이 다못 묘한 의심관(疑心觀)만이 독로하도록 해 가는 것입니다. 억지로 힘을 쓸 것도 없고.

그렇게 해서 그 순수무잡한 의단이 독로한 그 경계는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 좋다’는 생각도 내지를 말며, ‘이러한 경계가 영원히 갔으면’ 그런 생각도 내면 못쓰는 것입니다. 벌써 그 생각 내면 한 생각에 아주 그 경계가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안되면 안된다고 번민을 하고, 공부가 화두가 순일하게 되어가면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을 내고 기쁜 생각을 내. 이것이 다 공부를 바르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의 하는 짓인 것입니다.


잘 잡드리를 해서 그 경계가 깨지지 않도록 의단을 잡드리 해가면 어떠한 경계에 그 풍선이 터지듯이,
풍선을 부는 사람이 풍선을 계속해서 불다가 중단해 버리면 다시 바람이 피식 새 버리고, 그래서 잘 조심스럽게 불어야지 대번에 처음에 느닷없이 되게 불면 커지기도 전에 툭 찢어져 버리는 거고,

풍선을 불 때 요령 있게 잘 불면 점점점점 점점점점 커져 가지고, 커지다 커지다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지경에까지 가서 계속해서 잘 불어 나가면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은 팡! 최고로 커질 때 팡! 터지도록.

우리가 화두를 의심해 나갈 때 처음에는 화두를 들면 잠깐 들 때만 의심이 있다가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또 들면 또 그렇고, 그래도 계속해서 들면 나중에는 한 번 들어서 5분도 가고, 10분도 가고,

아침에 일어나서 들던 화두가 아침 먹을 때 까지 있고, 아침 식사 중에도 화두가 흩어지지 않고 식사가 다 끝나고도 그 화두가 고대로 있고, 그 화두가 점심 때까지 되도록 그 화두가 흩어지지 않고, 그 화두가 저녁 먹을 때 까지 잠자리에 들 때에도 화두가 고대로 있다 그말이여.

화두를 든 채 자리에 누웠는데 언제 잠이 든 중 모르게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새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엊저녁에 잘 때 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있고,

이래서 순일무잡하고 그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고 그 경계,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경계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펑! 터지는 것입니다.

분별로 따지지 안해도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이 확연(確然)하고, 천칠백 공안에 확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여 버린다 그말이여. 따져서 ‘아, 이런 것이다’하고 아는 것이 아냐. 그냥 확 그 공안을 봐 버린 거여.

이것은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이렇게 다 실증(實證) 실오(實悟)를 해서 우리에게 그 조사의 어록(語錄)과 법어(法語)를 통해서 소연(昭然)하게 그 증거를 다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 화두를 타신 분은 그전에는 이 법회가 끝난 다음에 별도로 그 화두와 불명과 오계를 설하는 법회를 가졌었는데 이번에는 바로 이 법회 시간에 화두를 바로 일러 드립니다.
아까 조실스님께서도 일러 주셨지만 다시 한번 화두를 일러 드립니다.

‘이뭣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화두를 한번 따라서 해 보십시오. ‘이뭣고?’ 해 보세요. (신도분들)‘이뭣고?’

실지로 여러분이 참선하실 때에는 그렇게 소리를 내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숨을 내쉬면서 ‘이뭣고.... ?’
‘이뭣고?’를 길게, ‘이뭣고......?’ '고'를 길게 빼는 것입니다. 숨이 다할 때까지 ‘이뭣고?’
숨이 다 나갔으면 또 스르르르 숨을 들어마셔.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 의심을 스스로 이렇게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하는 것은—관도 역시 하나의 생각인데,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이뭣고?’ 속으로 하면서도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하는 것입니다.

이 ‘관(觀)한다’고 하는 것.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데, 이건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실지로 자꾸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해보면 스스로 그 의심관(疑心觀)을 터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의심관을 잘 터득을 못하지만, 일구월심(日久月深) 자꾸 이 호흡과 맞춰서 해 나가다 보면 그 알 수 없는 의심관, 그 묘한 그 의심관을 스스로 터득하게 돼.
그 의심관을 터득을 해야 참선의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해 갈수록 알 수가 없어. 알 수 없는 그 의심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야 망상을 끊으려고 안 해도 저절로 끊어지고, 망상을 일으키지 아니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거기서 의심이 끊어져.

속이 상하고 분심이 나고 할 때에도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꾸 몇 번 하면 치밀어 오른 놈이 스르르르 가라앉아 버리거든, 이거 해보신 분은 다 아는 것입니다.

큰 의심을 가진 사람은 결국 크게 깨닫는 거고, 의심이 적은 사람은 깨달아도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40분34초~56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다잡이 ;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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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제65책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제13권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투득하다(透得-- 통할 투,얻을 득) ; (사람이 무엇을)막힘이 없이 환하게 깨닫다.
*화두(공안)를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생사관(生死關) ; 생사의 관문.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분별계(分別界) ; 분별 경계(分別境界).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확연(確然)하다 ; (어떤 사실이나 증거가)아주 분명하고 확실하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실증(實證) ; 실제로 수행해서 깨닫는 것. 실증의 반대는 비증(比證 추론에 의해 깨닫는 것).
*실오(實悟) ; 진실의 깨달음.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소연(昭然)하다 ; (일이나 이치가)밝고 뚜렷하다.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5. 5. 20. 17:05

§(336) 화두(공안) / 의리선(義理禪) / 활구참선(活句參禪).

우리가 참선을 하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중생심(衆生心)을 쳐부수고, 중생심을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가는 것이고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이지, 무슨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대관절 무엇이냐?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이 끊어진다.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고 알아 들어갈 것이 없어. 해 갈수록 꽉 막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렇게 잡두리를 해 가는 것입니다.


의심이 독로해서 꽉 막혀야 거기에서 분별이 끊어지고, 사량이 끊어지고, 생사심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여. 끊어짐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 사량분별을 점점 치성하게 해 가지고 참선한다고 앉아서 계속해서 분별로 따지고 앉아 있으면 언제 사량분별이 끊어질 것이냐.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 (용336)

 

약 10분.

 

오늘 화두를 새로 타고 또 불명(佛名)을 타고, 계(戒)를 받으려고 하는 분들은 특별히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을 들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화두(話頭), 화두는 이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이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법인 것입니다.
그 법에 의해서 관청의 모든 사무를 보고 또 백성을 다스리고 하는 근본법을 갖다가 관공기관의 안(案)이다, 법안(法案)이다. 이래서 공안이라 그렇게도 말하고 또 꼬집어서 화두라고도 하고 그러는데,

이 화두라고 하는 것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세속의 모든 문제, 모든 수수께끼나 문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을 총동원해 가지고 그것을 분석하기도 하고 또는 종합하기도 하고 또 비교하기도 하고 또는 적용해 보기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어떠한 ‘아! 이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얻어내는 것인데,

이 참선(參禪)하는 데에 과제인 이 화두는 그러한 이론이 동원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지식과 상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서 알려고 하는 그러한 방법은 올바른 참선이 아니고 올바른 수행이 아니고 올바른 참구(參究)가 아닌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공안을 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불교의 교리나 어떤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이리 따져서 ‘아하 그렇구나!’ 이렇게 아는 것은 그것은 의리선(義理禪)이라 해 가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이지 그것이 바른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무리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해도 그것은 마침내 중생의 번뇌(煩惱)요,망상(妄想)인 것이요, 분별심인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과 분별은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힐 뿐이지 깨달음에 나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선을 하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중생심(衆生心)을 쳐부수고, 중생심을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가는 것이고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이지, 무슨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근자에 일본식 참선, 그 의리선이 많이 한국에 흘러 들어와 가지고 참 많은 지식인들이 그런 일본 참선에 물들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경향이 있습니다.
공안을 갖다가 의리로 따져 가지고 열 개, 스무 개, 백 개 내지 오백 개, 천 개 이렇게 해서 그 공안을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통과를 하면 그것으로써 깨달음에 나아갔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의리선(義理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보고 또 그 말을 들어보니 일본에서는 그러한 의리선을 오래전부터서 해 오고 지금도 역시 해 가고 있어서 오백 개를 통과를 하면은 법사(法師)로써 참선을 지도할 수가 있고, 천 개 이상을 통과를 하면 조실이 될 자격이 있다 이런 말도 내가 들었습니다마는,

우리 한국의 참선은 그러한 의리선이 아닙니다.
깨달을 때까지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그 화두를 갖다가 타파(打破)함으로써 천칠백 화두가 일시에 툭 터지는, 그래 가지고 자성(自性)을 깨닫고 불조(佛祖)의 면목(面目)을 깨닫는 이러한 참선인 것입니다.

왜 일본에서는 똑같은 중국으로부터서 그 받아들인 참선인데 그렇게 의리선으로 그렇게 나아가냐?
내가 생각해 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섬사람들이 되어서 생각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고, 느긋하지를 못해서 빨리 무슨 마음의 얻은 바가 있고, 느끼는 바가 있고, 알아지는 것이 있어야지,

한국처럼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십 년 내지 이십 년, 삼십 년 내지 일생 마지막 숨질 때까지라도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잡두리 해 나가는 그렇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의리선이 발달을 되지 아니했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공안을 백 개, 이백 개, 수백 개를 통과한들 그것이 ‘참 깨달음’이 아니라면 그것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세속의 어떤 학문은 그만큼 열심히 해서 석사도 되고 박사가 되고 한다면 그것으로써 자기의 일생동안 보람을 거기서 찾을 수도 있고, 그걸 가지고 학자가 되기도 하고, 자기의 그 먹고 사는 방책도 되겠지만,

이 화두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인데 그것을 다 의리(義理)로 따져서 안들 그것 했다고 해서 어디 취직을 해 가지고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 몇백 개 통과했다고 해서 생사해탈하는 것도 아니요. 그것 했다 해서 불조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지옥에 가 봤자 그것 몇 개 알았다고 해서 염라대왕이 알아 줄 바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애써서 참선을  해가지고 아무 소용이 없다면 그거 무얼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불교를 만났고, 불교 가운데에서도 이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대관절 무엇이냐?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이 끊어진다.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고 알아 들어갈 것이 없어. 해 갈수록 꽉 막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렇게 잡두리를 해 가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고, 꽉 막혀야 그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자꾸 해 가면 무엇이 알아지는 것이 있고, ‘아하 그렇구나! 그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지면 중생심이여.

알아지는 참선은 그것은 분별만 조장을 시키고, 사량분별이라 하는 것은 더욱 생사심(生死心)을 갖다가 치성(熾盛)하게 만드는 거여. 불타는 데 기름을 찌틀어 가지고 더 불이 훨훨 타게 만드는 것이지, 그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여.

꽉 의심이 독로해서 꽉 막혀야 거기에서 분별이 끊어지고, 사량이 끊어지고, 생사심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여.
끊어짐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 사량분별을 점점 치성하게 해 가지고 참선한다고 앉아서 계속해서 분별로 따지고 앉아 있으면 언제 사량분별이 끊어질 것이냐 그말이여.

길을 막고 물어봐도 확연한 것이고, 세 살 먹은 어린애 보고 물어봐도 그렇게 해 가지고 깨달음에 나아갈 것인가?(16분4초~26분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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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5. 5. 19. 17:22

§(336) (게송)석화광음주~ / 인간 백년의 꿈이 하루살이 일생 /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삼재(三災)의 재난 / 일념(一念) 속에 육도윤회를 해탈(解脫)하게 하는 제도.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태풍과 폭풍, 폭우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볼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나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나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순전히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를 찰나 간에 윤회(輪廻)를 하면서 백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신다’고 하는 것은 한 생각, 한 생각 돌이키고, 한 생각 다스려서 일념(一念) 속에 육도윤회를 해탈(解脫)하게 하는 그러한 의미의 중생 제도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 (용336)

 

약 16분.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요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한데, 돌과 돌이 부딪치면 불이 번쩍 나는데, 그 석화(石火)같이 빠른 광음(光陰)이 세월이 그렇게 달아나고 있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데,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홍안(紅顔), 청소년의 그 불그스레한 그 얼굴이 모두가 다 허연 서릿발 같은 흰머리가 되고 말았구나.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인간의 백 년 동안 꾸는 꿈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로구나. 하루살이의 일생사와 같구나.

인간이 태어나서 빨리 죽은 사람은 태중에서 죽기도 하고, 출산하다 죽기도 하고, 10세 이내에 죽기도 하고, 오래 산 사람은 90세, 100세 사는 사람도 더러는 있지마는,

그저 100년을 산다고 해 봤자 그동안에 잠자는 시간 빼고, 앓는 시간 빼고, 근심 고통 고민하는 시간 빼고 하면 정말 기쁘게 사는, 보람 있게 사는 시간은 불과 얼마가 되지를 않는, 꿈도 길몽이 아니라 기쁜 꿈이 아니라 정말 악몽에 시달리는 그러한 하루살이와 같은 일생에 지나지 못합니다.

엊그제 내가 소년 시절로 불그스레한 얼굴을 가지고 그렇게 생기발랄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 육십을 넘어서 흰머리가 허옇게 나게 되는 것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태풍과 폭우로 인해서 전국 방방곡곡이 모다 그 수재(水災)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오륙백 명 그 아까운 생명을 잃고, 많은 수십 억 되는 재산을 손실을 당했습니다.

이 가운데에 오신 분 가운데에도 그러한 그 가족이나 일가친척 또는 친지 가운데에 그러한 재난을 당하신 분이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그런 재난에도 불구하시고 이렇게 이 법회에 참석을 해서 한 법당에서 법문을 듣게 된 것만 해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비록 우리는 그런 큰 손실을 입지 않고 생명을 부지해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을 해서 참 감사할 일이나 그 비참한 그러한 재난을 당한 사람을 생각을 하면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런지 가슴이 아플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또 바람이 불고 한 그러한 재난은 사실은 큰 재난이라고 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재(水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재(火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팔풍(八風)의 그 풍재(風災) 이러한 재난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수재가 일어나서 육백 명이라고 하는 인명(人命)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참혹하고 무서운 재난은 우리 낱낱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무서운 재난인 것입니다.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얻은 재난은 재산을 앗아갑니다. 재산은 또 부지런히 벌면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수재로 인해서 생명을 잃었다 하드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지옥에 가란 법은 없습니다.

몸을 바꿔서 좋은 데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화재로 일어난 그 재난은 영락없이 우리를 축생(畜生)이나 또는 아귀(餓鬼)나 지옥(地獄)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조실 스님의 화두 법문, 활구참선(活句參禪)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마는, 비록 녹음을 통해서 들었으나 상태가 대단히 좋아서 그렇게 생존시에 대사자후(大獅子吼)를 하신 그 육성을 마치 살아계셔서 설하신 것처럼 우리는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

거기에 너무 그 감동적인 설법, 고구정녕(苦口叮嚀)한 설법이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겠습니다마는, 오늘 8월 일요법회는 새로 화두를 타실 분 그리고 불명(佛名)을 받으실 분 또 재가오계(在家五戒)를 받으실 분들이 많이 신청을 하셔서 아울러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무량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마음속의 그 수재와 화재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그 탐진치 삼독, 오욕락(五欲樂), 팔풍경계에 우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금 이 폭풍이나 태풍 이런 것은 여름 한때 장마철에 지나가 버리고 며칠간 그러다가 그치면 또 조용합니다. 또 내년에 이맘때 되면 또 그러한 것이 오겠습니다마는,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거야 우리가 미리미리 취약지구에 대한 대처를 해 나가고 모다 또 댐이라든지 장기적인 안목으로 잘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그건 온 나라의 여러 국민들이 모다 합심을 해서 모다 의연금품을 내고 나라에서도 모다 구제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또 상처를 또 아물게 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태풍과 폭풍, 폭우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볼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나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나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단히 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재와 화재 또 수재 이런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지나간 그러한 폭풍이 유(類)가 아닌 것입니다. 폭우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고대로 놔둔 채,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을 갖다가 지옥구덩이에 갖다가 쳐 박기도 하고, 축생의 뱃속에—이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독사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또 아귀와 그런 악마가 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것입니다.

순전히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를 찰나 간에 윤회(輪廻)를 하면서 백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중생 교화를 하시기 위해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서 대자비심을 일으키셔 가지고 사바세계에 탄생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마는 중생을 어떻게 제도(濟度)합니까?
중생을 제도한다니까 무슨 돈을 많이 주어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겠습니까? 무엇을 많이 주어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시겠습니까?

순전히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신다’고 하는 것은 한 생각, 한 생각 돌이키고, 한 생각 다스려서 일념(一念) 속에 육도윤회를 해탈(解脫)하게 하는 그러한 의미의 중생 제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복을 빌고, 부처님을 믿는다고 삼십 년, 사십 년 일생을 절에 다니지만 유루복(有漏福)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도 지극정성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올리고 모다 그렇지만, 이것은 부처님의 참뜻을, 부처님이 우리를 제도하시려는 참뜻을 이해를 못하고 유루복을 빌기 위해서 불법을 믿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물론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참회하고, 불공을 드리면 소원을 이루지 아니한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그러한 것은 ‘참 불법’을 옳게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마음 다스리는 법, 내 생각 돌이켜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법』을 우리는 들어야 하고 그것을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처음~16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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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부유(蜉蝣) ; [동물] 하루살이목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석화(石火) ; ①돌과 돌이 부딪치거나, 돌과 쇠가 맞부딪칠 때 번쩍하고 일어나는 불. ②몹시 빠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광음(光陰) ; 햇빛과 그늘, 즉 낮과 밤이라는 뜻으로, 시간이나 세월을 이르는 말.
*서릿발 ; 겨울철에 땅속의 수분이 얼어 성에처럼 되어 기둥 모양으로 뻗어 있는 것. 또는 그로 말미암아 지면이 부풀어오르는 현상.
*수재(水災) ; 홍수로 입은 재해(災害).
*팔풍(八風) : 팔경(八境). 팔풍경계(八風境界).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함<몽산법어 p155, 용화선원刊>
--이쇠(利衰 이로울 리,약할 쇠)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예훼(譽毀 기릴 예,비방할 훼) 나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칭기(稱譏 일컬을 칭,나무랄 기)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고락(苦樂 괴로울 고,즐거울 락)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樂)
[참고] 팔풍=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세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 칭찬과 비난, 고통과 행복<칠각지 p57,고요한소리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역경계와 순경계이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축생(畜生) ; 삼악도(三惡道) 또는 육도(六道)의 하나로, 죄업 때문에 죽은 뒤에 짐승으로 태어나 괴로움을 받는 세계.
*아귀(餓鬼) ; 육도(六道,六途)의 하나.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질투하는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곳으로,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함.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