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듣는 법2014. 5. 31. 15:57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29분 51초부터 시작됩니다>

 

 

§(240) 법문듣는 법 /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자기 본참화두의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을 해야.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5분.


오늘 갑자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 법요식에 사부대중이 이렇게 모이셨는데, 그 법문(法門)을 듣고 무엇을 많이 알기 위해서 법문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 법문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인가 집착하고 있는 그 생각이 떨어진다면, 그건 좋은 생각에 집착했더라도 마찬가지고 더군다나 옳지 못한 생각에 집착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집착한 마음이 떨어진다면 여기까지 오셔서 법문을 들은 공덕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무슨 법문을 들었어도 그 법문에 국집(局執)을 하면 좋은 약을 먹고서도 그 약에 중독(中毒)이 된거와 같애요.

그 약을 먹은 것은 속에 병이 떨어지라고 먹는 것이지, 그 약을 먹고 약에 중독이 되서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그 약을 차라리 안 먹은 것만도 못하거든.

오늘 법요식뿐만이 아니라 팔만대장경 경전도 역시 마찬가지고,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설하신 모든 법문이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법(法)에 국집하면 - 아주 신심 있는 이는 그 법에 매우 깊이 국집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 국집을 한다면 부처님 법문을 옳게 가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했고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지마는,

법(法)이라 하는 것은 강을 건너가는 배와 같은 것이다. 그 배는 강을 건너는 데 목적이 있지, 강을 건너가지고서도 그 배를 짊어지고 다닌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법에 국집해도 못쓰거든 하물며 법 아닌 것에 있어서랴」 금강경에 분명히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자기의 화두를 놓아 버려서는 아니 되거든.
법문을 들을 때일수록 자기의 화두가 더욱 성성(惺惺)하게 잘 들려져 있어야 하거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를 하시는 분은 ‘이뭣고?’
「판치생모」 화두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정전백수자」하시는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을 해야 하거든.

그 알 수 없는 화두가 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법문을 들어보면 법문이 더욱 더 잘 들리고,
비단 법문 들을 때뿐만이 아니라, 생활을 허면서 밥 먹을 때에도 그렇고, 세수할 때도 그렇고, 차를 탈 때에도 그렇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그 화두가 항시 들려져 있는 상태에서 모든 일을 하시도록 그렇게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29분3초~33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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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5. 11. 14:34

§ 숯쟁이 영감 /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인과설을 들으면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불법(佛法)이다 / 숙명론(宿命論).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21분.

 


언젠가 그 정승(政丞)을 한 사람이 마누라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어서 찾어봤더니 저 강원도 산골짜기의 숯쟁이 영감한테 가서 살고 있게 된 것을 발견을 했어.
그래서 그 할머니 보고  ‘왜 와 버렸냐?’고 ‘따라가자’고 허니까, ‘싫다’고 숯쟁이 영감이 좋으니까 거기서 살겠다고 안 와.

그래서 기가 맥혀서 정승이고 판서고 다 소용없고,
대관절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저 할망구가 나 같은 - 이 임금님 밑에는 이 나라에서 내가 최고인데, 나를 버리고 저 천하에 보기 싫게 생긴 숯쟁이 영감한테 반해가지고 저리 가버렸냐? 너무너무 궁금하고 기가 맥혀서,

그길로 오대산에 들어가 가지고 스님한테 물어봤더니,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참선을 허면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은 그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지 참선을 하라고’

너무너무 분하고, 속이 상하고, 또 의심이 나고 한 바람에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배고프면 한 숟갈 얻어먹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허면서 3년간을 죽어라하고 공부를 했는데,

아! 그까짓 것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런 것 알 생각을 말고 오직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원(願)을 세우고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하도 마누라 도망가 버린 것이 분하고 억울하고 가슴이 아퍼서 마냥 그 생각을 속에다 꼭 가지고서 자나깨나 참선을 했는데,

아! 툭 터져 가지고 터진 것이 누진통(漏盡通)을 한 것이 아니라 숙명통(宿命通)이 터져 가지고 보니까, 전생(前生)에 자기가 그 오대산에서 공부한 스님이었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전에 해서 알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 그 할멈은 무엇이냐 하면 전생에 자기 누데기 속에서 살고 있던 '이'였었다 그말이여.

누데기 속에서 '이'가 되어가지고 사는데 그놈이, 겨울에 누데기를 빨 수가 없어서 한 해 겨울을 누데기를 빨지 않고 입은 바람에, '이'가 그 속에서 차츰차츰 큰 것이 상당히 커졌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똑 까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밖에다 버리면 얼어죽을 것 같고,
이것도 다 전생의 인연이니까 누데기 속에서 살어라 해 가지고, 가려우면 요리 떠들고 보면 크막한, 보리쌀만한 '이'란 놈이 거기서 피를 빵빵허니 빨아먹고 거기서 뻐르적뻐르적 뻐르적하는데,

그놈이 새끼를 쳐 가지고 새끼도 여럿 낳고, 그놈을 집어내 놓고 심심하면 지대방에서 씨름도 시키고 달음박질도 시키고 그랬는데 그렇게 한 해 겨울을 지낸 다음에 인자 누데기를 벗어서 빨게 되는데,
그 누데기를 벗어서 빠는데 그냥 갖다가 삶으면 '이'가 죽을 것 같아서 그 마치 개가 왔길래 개한테다 '이'를 다 건너주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 개한테 가서 잘 살어라’ 그러고 보냈는데, 아! 그 개가 숯쟁이 영감이 되었어.
그 스님한테 있는 동안에는 정승·판서 마누라 노릇을 허다가, 그 개한테 건너간 그 시절이 돌아오니까 어떻게 찾어갔는지 그 산중에 - 서울 사는 그 정승부인이 보따리 하나 싸 짊어지고 그 무작정 걸어간 것이 그 강원도 산중으로 해서 숯쟁이 영감을 찾어가게 됐다 그말이여.

대번에 숯쟁이 영감 집에 간 것이 아니라, 강원도 어느 장터에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까 숯쟁이 영감을 보니 숯쟁이 영감하고 이야기가 되어 가지고 눈이 맞아서 결국은 졸랑졸랑 따러가게 됐어.

가서 보니 생전 처음 만나 - 그 정승의 부인으로서 얼마나 고귀한 집안에서 호강을 하고 살았겠습니까마는, 아! 그 숯쟁이 영감 첫눈에 그냥 그 전에부터서 같이 살던 사람과 같이 그렇게 남같이 느껴지지를 않고 대번에 그냥 따라가는데 조금도 서슴이 없이 따라갔다 그말이여.

이조 때만 해도 남녀가 분명해서 외간남자(外間男子) 하고는 함부로 얘기도 못허고 그러는데, 대번에 첫눈에 그냥 싹 마음에 들면서 기분이 좋다 그말이여.
그래서 따라가 가지고 그 숯쟁이 영감하고 당장 물 한 그릇 떠 놓지도 않고 그냥 사는데, 정승이 자기 본 남편이 와서 그렇게 가자고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고 사정을 해도 다 소용이 없고,
팔팔 잡아떼고 안 가는 바람에 영감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억장이 무너져 가지고 울면서 오대산을 찾아가 가지고 결국은 그 전생사(前生事)를 다 알게 됐다 그말이여.

지금 내가 이 이야기는 인과설(因果說)을 이야기하자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참선(參禪) 이야기만 허면 꾸벅꾸벅 졸고, 어째서 멀쩡허니 앉어서 잡담을 허거나 그럴 때에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도 참선 법문만 허면 꾸벅꾸벅,
조실스님 법문에도 ‘그 꼬라지 보기 싫으니까 눈을 감고 법문(法門)을 한다’ 그러셨는데,

‘왜 참선법을 들으면 졸음이 오냐?’허면, 이 참선법을 바로 듣고 바로 공부를 하게 되면 마군(魔軍)이가 자기의 궁전이 흔들리고 자기의 영토가 좁아지고 자기의 모든 것이 다 권속이 멸망이 되니까,
그래서 그 법문을 못 듣게 허기 위해서 온 천하에 마군이는 그 참선 법문 듣는 사람의 눈탱이로 다 올라붙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눈을 갖다가 잡어 누르는 바람에 아무리 정신을 채리고 눈을 부릅뜰려고 해도 안 된다 그말이여. 손톱으로 허벅지가 멍이 들도록 집어뜯어도 눈탱이 무거운 것은 안 없어져.

그래서 이 참선법을 얘기하면은 조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끔 이런 인과설도 얘기하게 되는데,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멀쩡한 나무랄 데 없이 이쁘고 얌전하고 솜씨있고 한 자기를 놔두고, 한눈을 팔고 첩을 얻거나 외박을 하거나 그러헌 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이 숯쟁이 영감과 그 정승 판서 부인을 생각해보면 ‘아! 이것이 내가 전생에 지은 업(業)의 인연(因緣)으로 이런가 보다’ 내가 미웁고 내가 싫어서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전생에 내 몸 안에 살던 '이'를 내가 개한테 건네주었기 때문에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아니 할만큼 그렇게 못 생기고 천한 숯쟁이 영감한테 간 그 정승의 부인을 생각을 해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거나 또는 남편이 좋아하는 그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갖은 수단을 써서 기어이 뗄라고 하고,
뭣한 이는 남편의 그것을 알기 위해서 그런 남의 뒷조사 잘하는 그런 데다가 돈을 많이 주고 부탁해 가지고 그 뒷조사를 시키니까, 하다 보니까 남편의 법에 저촉된 잘못된 것이 드러나 가지고 그 여자 밝혀낼라다가 남편을 쇠고랑을 차게 허는 그런 참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습니다마는,

그런다고 바가지를 긁고 싸움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자기한테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그럴 때 알면서도 모르는 듯 오히려 더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에게 잘하고 애들한테도 잘하고 그러면서도 인과법을 철저히 인식을 해가지고 이 참선을 열심히 허신다면,
남편도 용서가 되고 자기도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없어지면서 참으로 인생을 똑바로 보고 살게 되고, 더 훌륭한 아내로서 가정주부로서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뜻있게 살 수 있고,
오히려 그런 것이 계기가 되어가지고 진실하게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면 남편이 잠시 바람을 피우다가도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인식을 못하고 기다릴 줄을 모르고 계속 강짜를 부려가지고 기어이 아주 죽여서라도 그것을 뗄려고 하면 무장 더 되게 들어붙는 거고,
처음에는 그래도 비밀리 지낼 때에는 가정에 대해서도 남편으로서 최소한도로 의무를 다허고 그러다가, 자기 부인이 정말 그 내용을 확실히 알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허면 인자 형식마저도 지키지 아니하고 아주 남남이 되고 원수가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나중에 다시 가정에 돌아오지 않고 마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인연이라 하는 것은 전생에 그렇게 맺어서 또 만나게 되는데, 남편이 외도를 허는 것이나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이나 이러헌 관계가 다 전생에 자기가 그렇게 지어 가지고 그러헌 남편을 만나게 되고, 또 그런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생에 참 많은 여자를 울리고 그렇게 난잡허게 지낸 사람은 그 사람이 금생에 여자로 태어나 가지고 그렇게 행실이 얌전하고 얼굴도 참 이쁘고 솜씨도 좋고 허면서도 계속 남편한테 소박(疏薄)을 당하는 그러헌 예도 많습니다.

이 세상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인과의 법칙에 어긋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물질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정확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생성이 되고 변해가고 이렇게 자꾸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법을 한낱 권선징악(勸善懲惡)하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것은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듯이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한 생각’ 잠깐 먹은 것도 그것이 한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런 것까지도 낱낱이 다 현실화되고 마는데, 하물며 내 입을 통해서 밖으로 표현이 되고 행동을 통해서 밖에 표현이 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더 구체적으로 실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그러헌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철저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인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부정(否定)하고 인증을 아니 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증을 하고 틀림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잘못 인식하면 인과를 갖다가 부정해 버리는 그러한 데에 떨어질 수가 있는데,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잘못 이해하면 거기에 딱 국집(局執)을 해서 구속이 당해가지고 자유를 얻지를 못하는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현대인들은 인과의 법칙을 인정(認定)을 할려고 하지 아니하고 부정을 해버리고 그럽니다마는 그런 사람은 극도의 근시안(近視眼)이 되어 가지고 아직 귀가 맥혀 갖고 있어서, 이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매우 유치한 단계에 있는 것이지 과학이 그렇게 훌륭하게 발달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과학은 4천 년 전에 이미 다 발달이 되어 있었고, 만 년 전에는 더 과학이 발달된 때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야 문명이라든지 모다 그런 것이 지금 땅 속에서 바다 속에서 현대 문명보다도 훨씬 발달된 문명의 자취가 지금 다 발굴이 되어 갖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오늘날 과학이란 것은 별로 바람직하게 발달을 못했고, 또 발달했다는 것이 유치한 단계에 놓여있다.
과학이 발달했지만 인간을 쪼끔 편리하게는 해주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인간을 갖다가 매우 해롭게 허는 나아가서는 인류를 멸망하게까지 하는 그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방면으로 발달이 되어서 매우 우려되는 바입니다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살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그 유치한 단계에 있는 과학에 빠져 가지고, 그나마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꺼떡허면 불교를 미신(迷信)이라고 이렇게 비방을 하고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이 세계는 점점 병들어 가고 살기가 어려운 그러한 세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불자들은 철저하게 인과법을 믿고 옳게 인식을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나아가서 실천을 해 나가야만 우리 자신도 바르게 그리고 참되게 살아가는 것이고,
어리석고 불쌍한 인류들을 바르게 살아가고 참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큰 그리고 절박한 의무가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을 하시고, 금년 여름 안거 동안을 보다 더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방부를 들인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정신적으로는 방부를 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가정에서 생활을 하시는 가운데에 무엇을 하시거나,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또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 무엇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48분14초~69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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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이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외간남자(外間男子) ; 여자가 상대하는, 남편이나 친척이 아닌 남자.
*억장이 무너지다 ; 극심한 슬픔이나 절망 따위로 몹시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
*억장 ; ①‘가슴’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억장(億丈)으로 '썩 높은 것. 또는 그런 높이.'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꼬라지 ; ‘꼬락서니(사람의 모습이나 행색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눈탱이 ; 눈퉁이(눈두덩의 불룩한 곳을 속되게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강짜 ; ‘강샘(결혼한 상대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무장 ; 갈수록 더. 더욱. 한사코.
*소박(疏薄 멀리할·거칠 소,엷을·업신여길 박) ; 아내나 첩을 인격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모질게 대함.
*권선징악(勸善懲惡 권할 권,착할 선,혼날 징,악할 악) ;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데 ; ①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 곧 집채의 바깥. 노천(露天). ②일정하게 정하여진 자리가 아닌 다른 곳.
*인증(認證) ; 인정(認定)하여 증명(證明)함.
*부정(否定) ; ①그렇지 않다고 단정함. 또는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음. ②옳지 않다고 반대함.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숙명론(宿命論) ; 운명론(運命論).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
세상이나 인생의 모든 것이 숙명(宿命-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에 의해 예정되고 절대적으로 지배받는다고 보아 인간의지의 자유와 창조는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무력하다는 주장.
*인정(認定) ;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근시안(近視眼) ;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먼 앞날의 일을 짐작하는 지혜가 없거나 소견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4. 5. 8. 16:53

§(240) 아만을 꺾고 하심,  마음이 되어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 동사섭 / (게송)휴설인지단여장~ / 입을 다물어라 / 방선 때도 항상 화두를 들어야.

속담에 ‘양반 못된 것이 장바닥에 가서 큰소리치고, 개 못된 것이 들판에 가서 짖는다’


다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고 한 것을 말하지 말어라.(休說人之短與長)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非徒無益又招殃) 만약 능히 병마개 틀어막듯이 입을 그렇게 잘 막아 버리면,(若能守口如甁去)  이것이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니라.(此是安身第一方)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

 

‘석 달 안거(安居)가 알차게 되었느냐 못했느냐’하는 판가름은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1) 약 15분.

 

(2) 약 6분.

 

 

(1)------------------

 

금년 여름엔 용화사 보살선원(菩薩禪院)이 지대방을 터 가지고 큰방을 만들었고, 지대방은 저 뒤에 별채에다가 지대방을 크게 해서 사물함도 거기다가 다 하고 또 세수하고 씻는 것도 바로 거기 옆에다 넓게 해서 잘 해놓았습니다.

해마다 방부(房付)를 들이는 보살님네 수효가 늘어나고, 또 해마다 좋은 보살님네들이 오시고, 또 해를 거듭할수록 모든 질서가 잘 잡혀가고, 그래서 원장으로서 너무 참 기쁜 마음이 있어서 더 공부를 잘 하시도록 이렇게 모든 선방을 잘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더욱 신심을 돈독(敦篤)히 해서 열심히 또 법답게 정진을 잘 해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이 팔도(八道)에서 각성바지가 모다 모였어.

다 여러분의 가정에 돌아가시면 다 집안 어른이고, 다 집안에서는 큰소리 한번 치면 집안 식구가 꼼짝을 못하고 심지어 거사님까지도 다 꼼짝을 못하시겠지만, 이 선방에 와서는 큰소리칠라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첫째, 하심(下心)을 하고 아만(我慢)을 꺾고 빈 마음으로 - 마음속이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빈 마음이 되어야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집에서 큰소리친다고 해서 여기서도 목에다 힘을 주고, 꺼떡허면 눈을 곤두세우고 큰소리치고, 옆의 사람 꼼짝 못허게 허고 자기 권위를 세울려고 그러고, 그러헌 마음을 가지신다면 여기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결제(結制)를 한 아무 보람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집에서 큰소리칠 수 있을수록에 여기서는 하심을 하고, 옆에 분이나 대중의 뜻을 받들고, 행여나 자기로 인해서 옆의 분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점점 잘 되어가고 있지만 금년에는 더욱 잘 해주시기를 바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속담에 ‘양반 못된 것이 장바닥에 가서 큰소리치고, 개 못된 것이 들판에 가서 짖는다’고 그런 말이 있습니다만은, 참! 이 선방에 오셔서는 무엇이건 간에, 그 선원의 법도(法度)에 자발적으로 따라 주셔서 순종을 허면서,
좀 불편한 점이 있고 내 마음에 안 든 점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편헐려고 여기를 온 것이 아니고 또 큰소리칠려고 온 것이 아니니까, 무엇이던지 일부러 고생을 사서라도 한번 해봐야겠다. 이것을 이기는 것도 도(道)에 들어가는 한 단계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기쁜 마음으로 법도에 순종을 하고 대중과 같이 행동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비구(比丘) 스님네 선방에서도 역시 보살님네와 같이 이 말이 적용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데 선방에 다니신 스님네들은 용화사에 와서 지내시면, 무엇인가 좀 다른 데하고 다른 점이 있는 것을 혹 발견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송광사는 송광사대로 또 해인사는 해인사대로 또 통도사나 범어사는 거기 거기대로 또 불국선원은 불국선원대로 그 선원마다 가풍(家風)이 있고 법도가 있어서, 다른 점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쪼끔 자기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 여기는 이렇게 하는구나.’
내 마음에는 쪼끔 언짢지마는, ‘여기의 법대로 한번 따라 보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나라고 해서 이렇게 못할 것이 뭐 있느냐?’ 그렇게 의젓한 마음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넓은 마음으로 또 그렇게 한번 해 보거든.

이러한 좀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정진을 허시면 훨씬 그릇이.... 앞으로 우리는 내 자신의 생사 문제 뿐만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제도할 그러헌 대원(大願)을 가지고 수행을 해 나가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 중생들은 각기 업(業)이 달라서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 얼굴이 다르듯이 그 성격도 다르고, 그래서 그 많은 중생을 제도헐랴면 나도 그 중생과 동사섭(同事攝)을 해야 하거든.
그 중생과 뜻을 맞춰 가면서 결국은 그 중생을 제도해야 하기 때문에, ‘내’라고 하는 것이 다 비워져 없어져 버려야만 되거든.

당장 이 선방에 와서 참선해 나갈 때부터 내 마음, 내 주견(主見), 내 선입관을 버려 버리고 이 선원의 법도에 따르는 연습부터 해야, 그래야 나중에 일체 중생을 제도할 때 동사섭 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갖추어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무 소리 말고 그저 그러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개선해야 할 좋은 점이 있으면 입승(立繩) 스님을 통해서 좋은 의견을 제출하시면 또 이 원장이나 사무실에서도 고칠 것은 얼마든지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그런 것은 매우 신중하게 지금 당장만을 생각하지 않고 두고두고 장래를 위해서 참으로 그 의견이 좋은 일이고 꼭 고쳐야 할 만한 일이면, 그런 의견은 좋은 기회를 타서 건의를 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실스님 때부터서 내려오는 전통은 될 수 있으면 지켜 가면서 그것을 잘 운용을 해 나가는데 묘(妙)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꾸 법도를 뜯어고치고 자꾸 제도를 이리 고쳤다 저리 고쳤다 허는 것은 좋은 것 같지마는 그것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기본은 항시 서 있으면서도 우리가 신심과 지혜로써 운용을 잘 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다 보완이 되어 가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휴설인지단여장(休說人之短與長)이라  비도무익우초앙(非徒無益又招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수구여병거(若能守口如甁去)하면  차시안신제일방(此是安身第一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휴설인지단여장(休說人之短與長)하라. 비도무익우초앙(非徒無益又招殃)이니라.
다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고 한 것을 말하지 말어라.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

약능수구여병거(若能守口如甁去)하면, 만약 능히 병마개 틀어막듯이 입을 그렇게 잘 막아 버리면,
차시안신제일방(此是安身第一方)이니라. 이것이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니라.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온다』 하셨습니다.

‘병(病)이 입으로 들어온다’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가지고 - 맛있는 것을 과식을 하고, 좋다 한다고 함부로 먹고, 음식을 잘못 먹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병이 나는 수가 너무너무 많고,

또 ‘모든 재앙(災殃)은 입에서 나온다’ 말을 잘못 해 가지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시비가 일어나고 부부간에도 말 때문에 싸움을 참 많이 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동서 간에도 그렇고, 집안에 모다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있는 것은 대부분 말 때문에 그런 거여.

말을 풀쑥한 것이 그것이 사람에 의해서 이리 전해지고 저리 전해지고 하면은 본의 아니게 서로 오해를 사게 되고, 그래 가지고는 속으로 꽁하니 섭섭한 마음을 품고,
차라리 가서 따지고 한바탕 싸움을 하고 나면 다 별것이 아닌데, 차마 따질 수는 없고 계속 속으로 ‘저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했단 말인가?’ 해 가지고는, ‘두고 보자’해서 꽁해 가지고 1년, 3년 되어도 속에 섭섭한 것이 풀리지를 않고, 죽을 때까지 그 마음을 버리지를 못하고,
그래가지고 나중에 뭔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섭섭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좋게 해줄 일도 좋게 안 해주고,

여기에 모이신 분은 마음보를 그렇게 쓰실 분은 안 계시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섭섭한 말을 이리저리 전해 들으면 속상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입도 꼭 다물어 버리고 기왕이면 귀까지 다물어 버렸으면 참 좋겠지만,
그 어떤 사람이 귀를 꽉 먹게 되었는데, 어렸을 때는 대단히 귀가 잘 들렸었는데 중간에 귀가 꽉 먹었어요. 그래 가지고는 여간 귀에다 큰 소리를 질러야 겨우 좀 들리고 그런데, 참 발심을 해서 공부도 열심히 헐려고 그러는데, 그분이 정진을 기도를 열심히 하고 그랬더니,

그 공부를 할 때 그리고 기도를 할 때, 항시 「대관절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이 있어서 금생에 내가 귀를 먹었나?」 항시 그것이 궁금해서 그것이 알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이 항시 마음에 떠나지 아니한 상태에서 참선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랬는데,
아! 우연히 - 전생에 자기가 참선을 했었는데, 옆에서 어떻게 떠드는 바람에 자꾸 그리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저놈의 소리를 안 들을고’하고 항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아! 그것이 원인이 되어가지고 금생에 귀가 절벽이 되었다 하는 것을 스스로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입니다.(33분19초~48분13초)

 

 

 

 


(2)------------------

 

참선불용다언어(參禪不用多言語)여  지재심상묵연간(只在尋常黙然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조주무자(趙州無字)를 여망각(如忘却)하면  수구무언아불간(雖口無言我不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불용다언어(參禪不用多言語)여. 참선하는 데에는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제일이다 그말이여.

지재심상묵연간(只在尋常黙然看)이여. 다못 앉어서나 서서나 평상시에 항시 묵연(黙然)하게 화두를 관(觀)해라.

조주무자여망각(趙州無字如忘却)하면, 말을 안 한 것이 공부에 유익하고 그렇지만 그 말 안 하는 가운데에 화두(話頭)를 놔 버리면, 아무리 말을 안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내가 관계치 못할 일이다. 그 옳다고 할 수가 없다.

선방(禪房)에 방부를 들이신 보살님. 입선(入禪) 시간에는 말씀을 안 하시겠지만 그 방선(放禪)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지내야 하느냐?
거기에 ‘석 달 안거(安居)가 참 알차게 되었느냐 못했느냐’하는 판가름은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방선 시간에, 이제 지대방이 저리 떨어져 나갔으니까 이제 좀 떠들어도 되겠구나’ 지금부터서 그 생각을 허실런지 모르지만 거기도 선방(禪房)입니다.
거기도 넓고 잘해 놨으니까 일이 있으면 거기를 가시겠지만, 거기 가서도 일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항시 화두를 놓치지 말고,

그리고 거기라고 해서 이 소리 저 소리 잡담을 하면, 허고 난 뒤에는 ‘공연히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나...’

말은 허다 보면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고, 또 쓸데없는 소리허다 보면 괜히 남의 오장 건드리는 소리가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시비가 일어나는 법이니까 지대방에 가셔도 어쨌든지 말 많이 허시지 말고 바로 또 선방에 오셔서 정진을 허시도록.

선방은 ‘입선(방선) 시간’에도 항시 그 선방에서는 말허지 않도록. 도저히 말을 않고서는 안 될 만한 일이 있을 때는 저 지대방에 가서 말씀을 하시고.
그래서 입방선(入放禪)이 없이 큰방에서는 언제라도 딱 자기 자리에서 참선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실 것이며.

한 사람이고 두 사람이고 앉어 있으면 누구라도, 아무도 안 앉어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대중적인 무슨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사담(私談)을 하지 않도록. 그렇게 해서 명실공히 알차고 짬진 안거가 되도록 부탁을 합니다.

백일기도도 아울러서 봉행이 되니까 결제(結制)이면서 기도요, 기도이면서 또 결제이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참선 결제에다가 백일기도까지 하는 그러한 마음으로 석 달 동안을 하루와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해 주신다면 업장도 소멸이 되고, 또 세속적인 모든 크고 작은 원(願)도 성취가 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69분29초~75분28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보살선원(菩薩禪院) ; 스님이 수행하는 선원과 같은 기간과 방식으로 보살님(신도)들이 정진 할 수 있는 선원. 용화선원에는 스님선원, 보살선원이 있고 또 매일 언제든지 와서 정진할 수 있는 시민선원이 있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돈독(敦篤)히(도타울 돈,도타울 독) ; 도탑고 성실하게.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팔도(八道) ; ①우리나라 전체. ②[역사] 조선 시대, 전국을 여덟 개로 나눈 행정 구역.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말한다.
*각성바지(各姓--) ; 성이 각각 다른 사람.
*하심(下心) ;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갖는 것.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들어간다.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비구(比丘) ;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스님. 걸식하는 남자 수행승.
산스크리트어 bhikṣu 팔리어 bhikkhu의 음사. 걸사(乞士)·파번뇌(破煩惱)·파악(破惡)·포마(怖魔)라고 번역.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〇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동사섭(同事攝) ; 보살(菩薩)이 중생을 제도하고 섭수(攝受)하기 위하여 행하는 4섭(四攝-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의 하나.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몸을 나타내되, 그들과 사업·이익을 같이하면서,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苦樂)을 같이하고 화복(禍福)을 함께 함으로써 진리의 길로 이끌어 들이는 것을 말한다.
*주견(主見) ; 자기의 주장을 담은 의견.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게송) 휴설인지단여장~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4) '贈許生'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재앙(災殃)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마음보 ; 마음을 쓰는 속 바탕.

 

 

 

 

 

------------------(2)

 

*(게송) 참선불용다언어~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默山人'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묵연(默然)하다 ; 잠잠히 말이 없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오장을 건드리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뒤집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사담(私談) ; 사사로이 이야기함. 또는 그런 이야기.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240) 「내 마음을 찾는 것」이 참선인데, 「찾는 그놈을 되찾는 것」 /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어디에라도 붙으면 안 된다 / 다맛 알 수 없는 의심만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 해 가야.

‘이뭣고?’ 이렇게 허되, 그 속의 뜻은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말이거든.
이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어 버린다면 견성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성불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생사해탈하기를 바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법문(法門)을 듣고 무엇을 많이 알기 위해서 법문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 법문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인가 집착하고 있는 그 생각이 떨어진다면, 그건 좋은 생각에 집착했더라도 마찬가지고 더군다나 옳지 못한 생각에 집착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집착한 마음이 떨어진다면 여기까지 오셔서 법문을 들은 공덕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무슨 법문을 들었어도 그 법문에 국집을 하면 좋은 약을 먹고서도 그 약에 중독(中毒)이 된거와 같애요.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자기의 화두를 놓아 버려서는 안 된다. 법문을 들을 때일수록 자기의 화두가 더욱 성성(惺惺)하게 잘 들려져 있어야.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12분.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내 마음을 찾는 것」이 참선인데, 「찾는 그놈을 다시 되찾는다」 그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이라 하면 일상생활(日常生活)인데, 일상생활에 앉고 서고 눕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성도 내고 슬퍼하기도 하고, 이것이 바로 행주좌와 어묵동정인데, 이것이 일상생활이거든. 그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거든.

 

이 몸뚱이를 끌고 서울도 가고, 서울에서 요리 끌고 오기도 허고, 이 몸뚱이를 시켜서 성도 내게도 하고, 슬퍼하게도 하고, 말도 시키기도 하고, 또 밥도 먹으라 그러고, 그 안에서 조정하는 놈이 있어.
그놈이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도 없고, 생각으로 알려고 해도 알 수는 없는데, 분명히 이 몸뚱이 안에 이 몸뚱이를 운전하는 조종하는 놈이 있다 그말이여.

「그놈이 무엇인가」를 찾는데, ‘그것이 바로 무엇이냐?’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 ‘이뭣고?’
‘대관절 이 소소영령한 이놈이 무엇인고?’ 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을 허지만, 나중에는 「지금 ‘이뭣고’허는 이놈이 바로 무엇이냐?」 이거여.
「‘이뭣고’한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할 때, ‘이’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 뭣고?」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 말이, ‘찾는 놈을 되찾는 것’이거든.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종일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그렇게 허라는 것은 아니여.

‘이뭣고?’ 이렇게 허되, 그 속의 뜻은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이냐?」 그말이거든.
그러나 실지로 헐 때에는 자꾸 「‘이뭣고’ 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그러라는 게 아니여.

또 뭣헌 분은 「‘이뭣고?’ 한 번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또는 아미타불 육백만 번 하는 공덕이 있다」 그렇게 내가 말씀을 했더니, 한 번 할 때에 육백만 번이면 열 번을 허면 육천만 번이고, 또 백 번을 하면 육억 번이다.
그래가지고 내가 백 번이야 그까짓 것 1분 동안에 백 번을 하면 10분 동안이면은 천 번을 할 수가 있고 허니까, 그것을 육백에다 곱하면 이렇게 되겠다 해 가지고는 「이뭣고」 「이뭣고」.....「이뭣고」를 갖다가 수없이 그렇게 하는데, 그건 내 말을 잘못 알아들은 말이거든.

한 번을 하되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한 그 간절(懇切)한 의심(疑心)으로 하라는 거지. 입으로 그저 횟수를 많이 채우라는 말씀은 아니거든. ‘이뭣고?’

그리고 ‘간단(間斷)없이 하라’ 그 말도,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는 말이지,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 말소리가 끊어지지 말라는 말이 아니어요.

이 참선이라는 게 바르게 하는 방법을 가르켜 드리기도 참 어렵고, 또 그것을 방법을 바르게 배우기도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너무 쉬웁고 간단한데 실지로 해보면 이 화두(話頭)를 바르게 들 줄 알기가 그렇게 쉬운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3년씩 또는 10년씩 선방(禪房)에 다니면서도 또 그 공부를 하셔도 그 진짜 화두를 올바르게 들고 있는 분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어 버린다면 견성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성불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생사해탈하기를 바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부득이(不得已)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한다.’ 부득이 해서 ‘견성(見性)을 해야 한다.’ 부득이 해서 ‘성불(成佛)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을 하지, 사실은 생사해탈해야 할 생사도 없는 것이고, 깨달라야 할 법(法)도 없고, 도(道)도 없는 것입니다.

‘생사해탈해야 한다’하면, ‘생사해탈’이란 말에 딱 국집(局執)을 하고, ‘견성을 해야 한다’하면 그 견성이라고 허는 말에 꽉 국집을 하고, ‘성불을 해야 한다’하면 그 성불이라는 말에 딱 국집을 해 가지고, 그 국집하는 찰나에 화두를 놓치게 되고 자기를 놓치게 되는 것이여.

‘견성성불해라, 생사해탈을 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화두를 들게 하기 위해서, 바로 자기를 관조(觀照)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 그 말에 떨어지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안에 있는 파리를 문을 닫고서 파리를 내키면 그 파리가 - 방바닥에 앉은 파리를 내키면 천장에 가서 붙고, 천장에 가서 붙은 파리를 내키면 동쪽 벽에 붙고, 동쪽 벽의 파리를 내키면 서쪽 벽에, 서쪽 벽에 붙은 파리를 내키면 남쪽에 가서 붙고, 이래가지고 그 파리 내키면 반드시 어디 가서 또 붙는다 그말이여.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어디에라도 붙으면 안 되거든.

다맛 알 수 없는 의심만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 해 가야지. 무엇이 좋다고 한다고 해서 그 좋다고 하는데 붙으면 안 돼.

이렇게 오늘 갑자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 법요식에 사부대중이 이렇게 모이셨는데,
그 법문(法門)을 듣고 무엇을 많이 알기 위해서 법문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 법문을 통해서 자기가 무엇인가 집착하고 있는 그 생각이 떨어진다면, 그건 좋은 생각에 집착했더라도 마찬가지고 더군다나 옳지 못한 생각에 집착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집착한 마음이 떨어진다면 여기까지 오셔서 법문을 들은 공덕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무슨 법문을 들었어도 그 법문에 국집을 하면 좋은 약을 먹고서도 그 약에 중독(中毒)이 된거와 같애요.
그 약을 먹은 것은 속에 병이 떨어지라고 먹는 것이지, 그 약을 먹고 약에 중독이 되서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그 약을 차라리 안 먹은 것만도 못하거든.

오늘 법요식뿐만이 아니라 팔만대장경 경전도 역시 마찬가지고,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설하신 모든 법문이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법(法)에 국집하면 - 아주 신심 있는 이는 그 법에 매우 깊이 국집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 국집을 한다면 부처님 법문을 옳게 가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했고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지마는, 법(法)이라 하는 것은 강을 건너가는 배와 같은 것이다. 그 배는 강을 건너는 데 목적이 있지, 강을 건너가지고서도 그 배를 짊어지고 다닌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것이여.
「법에 국집해도 못쓰거든 하물며 법 아닌 것에 있어서랴」 금강경에 분명히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자기의 화두를 놓아 버려서는 아니 되거든. 법문을 들을 때일수록 자기의 화두가 더욱 성성(惺惺)하게 잘 들려져 있어야 하거든.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를 하시는 분은 ‘이뭣고?’ 「판치생모」 화두를 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정전백수자」하시는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을 해야 하거든. 그 알 수 없는 화두가 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법문을 들어보면 법문이 더욱 더 잘 들리고,
비단 법문 들을 때뿐만이 아니라, 생활을 하면서 - 밥 먹을 때에도 그렇고, 세수할 때도 그렇고, 차를 탈 때에도 그렇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그 화두가 항시 들려져 있는 상태에서 모든 일을 하시도록 그렇게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21분46초~33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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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내키다 ; (사람이 무엇을)공간을 넓히려고 바깥쪽으로 물리어 내다.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오백칠십칠 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백오십~이백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4. 30. 12:57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12분.

 


처음에는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그래가지고 화두를 드는 법을 배워서 해 가면, 처음에는 곧잘 그런대로 되어가서 ‘이렇게 되어가면 잘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앉는데 다리가 좀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는 허지만 별로 졸음도 안 오고,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두만 자꾸 들고 나가고,
그대로 가면 ‘이거 석 달만 허면 내가 공부에 대해서 기초를 잡을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3년만 하면 내가 틀림없이 견성(見性)을 할 거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대들었는데,

과연 처음에는 졸음도 안 오고 생각만 좀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나중에 한 달을 해 가도 별로 공부가 처음 시작한 때보다 무엇이 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두 달을 해도 처음에는 졸음은 안 왔었는데 두 달쯤 허니까 졸음이 또 퍼 일어나고, 졸음에 빠졌다가 졸음에서 겨우 어떻게 정신차려서 졸음이 깰만 하면 그때는 또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망상을 실컷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는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졸음과 망상이 번갈라 가면서 일어나 가지고 도대체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지를 않고.

나중에는 울화통(鬱火통)이 터질라 허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시간이 대여섯 시간처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가만히 시계를 보면은 ‘앞으로 10분만 지내면 이제 방선(放禪)을 하겠다’하는데 그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 때 좀 답답할 때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도 좀 하고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5분이나 10분 남겨 놓고 자발없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 달•두 달•한철이 지내갑니다.

그런데 그 답답허고 지루허고 그때 그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때가 참으로 공부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고비다’하는 것을 미리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려면, 그러헌 답답허고 견디기 어려운-이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허고-그런 고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애기를 길러 본 경험이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갓난 애기를 길러 보면 무럭무럭 젖 잘 먹고 잘 크다가 설사병이 나기도 하고 어디 병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병을 앓고 나면 살은 좀 빠지지만 그전에 아니 하던 새로운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재롱을 피우게 되기도 하고, 뭐 이상한 귀여운 짓을 하게 되고, 또 말을 그동안에 한마디도 못하던 애기가 무슨 말도 한마디씩 허기도 허고 그러는데. 병치레하고 나면 푹 크거든. 한 치 가량 푹 크면서, 살은 빠지면서 키는 크고 그러면서 재롱은 늘고 그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사업을 할 때나, 학문을 하거나 또 이런 참선을 헐 때에도, 한 고비 올라서려고 헐 때에는 반드시 그런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공부가 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고비를 만났을 때, 조금도 그것을 짜증을 내거나 ‘내가 이 공부가 안 될려고 업(業)이 두터워서 이 공부 못할 징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이건 공부를 허다 보면 한 계단 올라설려고 할 때에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그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단전호흡을 허면서, 짜증이나 또는 물러서려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서,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 고비를 잘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앉기도 수월하고 공부허기도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부가 수월하게 잘 들리고 화두가 잘 들린다 해서 또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가 쉬운데 그 좋아하는 마음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지어가면 우리 공부허는 사람의 주변에는 항시 마군(魔軍)이가 와서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왜 마군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하면 공부를 해서 도(道)를 이루게 되면 마군이가 살 자리가 영토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법도(法度)가 있어서 잘 해 나가면 도둑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듯이, 나라가 법이 문란해지고 경찰이나 군인이나 이런 힘이 모다 분열이 되어가지고 힘이 타락되어 가지고 힘이 없어지면, 곳곳에 깡패가 득실거리고 도둑이 일어나고 그래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모다 법률에 기강이 서고 그러면 도둑이나 깡패나 모다 사기꾼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둑이나 깡패나 그런 못된 사람들은 나라가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군이들도 역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마군이들도 한 수행인이 공부를 열심히 허면 그래가지고 그이가 도(道)를 통하게 되면 자기네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항시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으로도 들어오고, 귀로도 들어오고, 코나 입으로도 들어오고, 몸뚱이로도 들어오고, 생각을 통해서도 들어와서, 그 육근문두에 항시 마군이가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그 ‘한 생각’에 마군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안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 그 틈을 타서 강도나 절도가 들어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집안 문단속을 잘 하면 그런 도둑이 엿보지를 못하겠지만, 도둑은 항시 그런 틈 나오기를 이모저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들어오고,
그 주인이 잘 단속을 해도 영리한 도둑은 일부러 그 틈을 맨들어 가지고 갖은 수단을 부려 가지고 틈을 내도록 한눈을 팔도록 맨들어 가지고 들어오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점을 명심을 하고,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들어올 때에, 마군이가 나를 유혹할 때에는 언제라도 나의 뜻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한 탈을 쓰고 나에게 접근을 해 온다는 사실. 사기꾼이 어떤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는 흉악한 그러헌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지 아니하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나에게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돈벌이가 잘된다고 유혹을 하고, 그이가 색(色)을 좋아하면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유혹을 하고, 명예나 권리를 좋아하면 명예나 권리 그런 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그것을 잘 해 준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 나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그와 같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러헌 경계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좋은 것을 보아도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더군다나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더 화두를 들고서 공부를 해 나가야 허는 것입니다.(10분35초~21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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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울화통(鬱火통) ; [주로 ‘치밀다’나 ‘터지다’, ‘터뜨리다’ 등과 함께 쓰여]몹시 답답하거나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것. ‘울화(鬱火)’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자발없다 ; (언행이)가볍고 참을성이 없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전호흡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Posted by 닥공닥정

 

 

§(240) (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다못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무조건하고 ‘이뭣고~?’ /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밑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저 ‘이뭣고?’하면은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거기에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을 하고, 거기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그러니까 나도 해야겠다. 다못 그런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바보처럼 탁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용240)

 

약 11분.

 


정종소식몰자미(正宗消息沒滋味)헌데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로다
나무~아미타불~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종소식몰자미(正宗消息沒滋味)라. 최상승 활구참선은 몰자미(沒滋味)여. 아무 재미가 없다 그말이여.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다 소용이 없어. 이러쿵저러쿵 잘하니 못하니, 잘되니 안 되니, 시비(是非)가 여기에는 붙지를 못한다.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은산철벽을 타파해 버리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이때가 바로 생사대하(生死大河)를 건너가는 것이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을 타파해 버려. 무슨 은산철벽이냐?
화두(話頭)의 의심,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이 알라야 알 수 없고, 앞으로 나갈라야 앞도 맥히고, 뒤로 물러설라야 뒤도 맥히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둘러봐야 꽉 맥혀서,
마치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서 나아가자니 앞도 맥히고, 물러서자니 뒤도 맥히고, 쇠뿔통이 좁아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서도 못하고.

‘이 쇠뿔이 무엇이냐?’하면 중국에 가면 물소가 있는데, 물소뿔이 기드란헌데 그 기드란한 물소뿔을 가지고 쥐 잡는 쥐덫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물소뿔 속에 저 안에다가 쥐가 좋아하는 음식물을 넣어 놓으면 쥐가 그 좋은 냄새를 맡고서 그걸 먹으려고 쇠뿔 속으로 들어가서, 그 음식을 물고 잡아댕겼다 하면은 찰크닥! 뒷문이 닫혀 가지고 쥐가 꼼짝없이 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쥐가 물소뿔에 들어가서 꼼짝 못허고 잡혀.

앞으로 나가자니 꽉 맥혔고 뒤로 물러서자니 뒤도 닫혀서 돌아서자니 좁아서 돌아서지도 못하고, 화두를 들고 의심을 허되 이렇게 꽉 맥히도록 맥히게 공부를 지어가야 한단 말이여.

알아 들어갈 것이 있고, 따질 것이 있고 이론적으로 분석허고, 그래 가지고 무슨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알아 들어가고 더듬어 들어가고 그렇게 화두를 참구(參究)를 허면 그것은 사구선(死句禪)이라 해서 의리선(義理禪)이라 해서 그것은 바른 참선이 아니여.

무조건하고 ‘이 무엇고?’ ‘이뭣고?’

다못 바보처럼 멍청이처럼 무조건하고 ‘이뭣고~?’

그저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이 없으니까 모를수록에 더 좋으니까 ‘이뭣고~?’

그저 ‘이뭣고?’하면은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거기에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을 하고, 거기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그러니까 나도 해야겠다. 다못 그런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바보처럼 탁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바보처럼 그렇게 해 갈수록에 그 사람은 상근대지(上根大智)고,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렇게도 해봤다 저렇게도 해봤다, 이렇게 서성거리고 더듬거리고 갈팡질팡하고 이런 사람은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없어. 아직 이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들어가는 인연(因緣)이 성숙하지 못한 증거여.

참으로 이 최상승법에 발심(發心)을 헌 사람이면 뭘 많이 알려고 헐 필요도 없고, 이리저리 따질 것도 없고, 그저 찰나간에 바보 똥멍청이가 되어가지고 그저 ‘이뭣고~?’ 그렇게만 들어가야 된다.
그 상태를 갖다가 쥐가 쇠뿔 속에 들어가서 꼼짝 못한 거와 같고 이것이 바로 은산철벽이다 그말이여.

은(銀)으로 만들어진 산(山)이요, 쇠[鐵]로 맨든 벽(壁)에 부딪힌 것 같애서, 갈라야 갈 수가 없어. 뚫고 나갈라야 뚫을 수가 없어. 화두가 그렇게 되게 맥혀 버려야 헌다 그말이여.

그래서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큰 의심 밑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 되게 맥히고 그 의심이 간절(懇切)하고 크면 클수록 큰 깨달음을 얻는데, 그 의심이 「어떻게 해서 의심이 터지냐 ?」하면,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고 그 동안에 보고 듣고 한 경전이나 불교교리 그런 것을 가지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렇게 나가면은 죽을 때까지 그런 식으로 따져도 그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라 하는 것은 오지를 않고, 무조건하고 꽉 맥힌 의심만으로만 나가. 그러니 얼마나 답답허겄냐 그말이여.

무슨 책을 보면 환히 알아지는 것이 있고 느껴지는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날마다 보면 날마다 본만큼 무엇인가 알아지는 것이 있으니까 좀 재미도 있고 답답허지를 않은데,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무조건하고 그저 ‘이뭣고?’만 하니, 오늘도 그 모냥이고 하루를 더 해도 그만이고, 일주일을 해도 알 수가 없고, 한 달을 해도 알 수가 없고, 석 달을 지내도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고, 답답허기만 허다.

그것이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 그것이 참으로 공부가 바르게 되어가는 것이고, 그렇게 바르게 해 가야 거기에서 업장이 소멸이 되고 결국은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를 해탈하게 되는 것이다.(처음~10분3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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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淳長老' 사명대사(1544-1610) 게송 참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