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5. 4. 6. 19:03

 

 

 

§(115) (게송)상월만공산(霜月滿空山)  고안여천비(孤雁唳天飛)  비직향하수(鼻直向下垂)  안횡재상방(眼橫在上方).

 

**송담스님(No.115)—79년 12월 관음재일 법어(79.12.24)(용115)

 

약 3분.

 

상월만공산(霜月滿空山)한대  고안여천비(孤雁唳天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비직향하수(鼻直向下垂)한대  안횡재상방(眼橫在上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상월(霜月)이 만공산(滿空山)한대  고안(孤雁)이 여천비(唳天飛)라.

서리 달이 빈산에 가득한데, 서리 친 밤에 밝은 달이 공산(空山)에 가득한데, 외로운 기러기는 하늘에 울며 날으는구나.

 

비직향하수(鼻直向下垂)하고, 사람 얼굴에 있는 코는 세로, 바로 박혀 가지고 아래를 향해서 드리워져 있는데, 안횡재상방(眼橫在上方)이다. 두 눈은 옆으로 가로 위에 붙어 있구나.

 

고인(古人) 언구에 ‘안횡비직(眼橫鼻直)’이라 한 말이 있습니다. ‘눈은 가로 박혔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처음~3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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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霜月滿空山  孤雁唳天飛’ ; 송담 스님 오도송(悟道頌) 1,2구.

송담 스님 오도송.

‘霜月滿空山(상월만공산)  孤雁唳天飛(고안여천비)  何事枉費力(하사왕비력)  蟾津大江流(섬진대강류)’

‘서릿달이 공산(空山)에 가득한데 외로운 기러기는 울며 하늘을 날아 가는구나. 무슨 일로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섬진(蟾津) 대강이 흐르는구나’

 

*(게송) 鼻直向下垂  眼橫在上方’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안횡비직(眼橫鼻直) ; ‘눈은 가로 박혔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 ‘모든 사상(事象)이 그대로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뜻. 유록화홍(柳綠花紅)이라고 하는 것과 동일.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十類生與十方佛  一時成道,  十方佛與十類生  同日涅槃,  生佛相  本寂  能所度  亦寂。
能所度  旣寂  我人相  何有。 伊麽則  釋迦眼橫鼻直  人人亦眼橫鼻直,  同居常寂光土  共受無生法樂。

시방세계 온갖 중생이 시방의 부처님들과 더불어 일시에 도를 이루고, 시방의 부처님들이 시방세계 온갖 중생과 같은 날 열반(涅槃)하니 중생과 부처님의 상(相)이 본래 공적(空寂)하고, 능도(能度, 제도하는 이)와 소도(所度, 제도받는 이)도 또한 공적(空寂)이로다.
제도하는 이(能度)와 제도받는 이(所度)가 이미 공적한데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어찌 있으리오.
이런즉 석가(釋迦)도 안횡비직(眼橫鼻直, 눈은 가로 박혔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이요, 사람사람도 또한 안횡비직이니 상적광토(常寂光土 법신불이 머무르는 정토)에 함께 머물러 무생법락(無生法樂 생멸이 없는 법의 즐거움)을 같이 받도다.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5. 3. 23. 12:00

§(115) 하루하루가 쌓여 무량겁 / 공부하기에 이 사바세계가 적당 / 핑계를 말고 투철한 각오로 수행해야 / 다른 사람 공부에 지장을 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

하루가 지나 그것이 쌓이면 한 달이 되고, 그것이 쌓이면 1년이 되고, 그것이 쌓이면 무량겁이 되는 것입니다.


절에 와서는 “바뻐서 못 왔습니다. 바뻐서 참선을 잘 못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해도 “아! 그러셨느냐”고, 이렇게 내가 인사로 받기는 합니다. 그러나 염라대왕 앞에 가서는 그런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오직 참선을 해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생사 없는 진리, 열반(涅槃)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우리는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대자유(大自由)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전히 일어나는 생각을 그때 그때 단속함으로써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이것이 바로 정법이요 불법인 것입니다.


과거에 불보살은 어느 손바닥 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몸을 바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몸을 중생을 위해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성현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그 뜻을 받들어 행한다고 하는 불자로서 어찌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게 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송담스님(No.115)—79년 12월 관음재일 법어(79.12.24)(용115)


약 18분.


금년 기미(己未)년은 앞으로 일주일이면 끝납니다. 이름을 붙여서 기미년입니다.
기미년이 되었건, 경신(庚申)년이 되었건 해는 동쪽에서 떠 가지고 서쪽으로 집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가 지나 가지고 기미년 365일이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경신년이 되어도 역시 해는 동쪽에서 떠 가지고 또 서쪽으로 지나갑니다.
꼬박꼬박 하루에 24시간씩이 지나가면 또 그 다음날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경신년 1년이 또 그렇게 지나갈 것입니다. 경신년이 지나면 신유(辛酉)년이 또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금생에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 나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왔고 금년부터서 또 내년, 내후년(來後年) 해서 우리는 금생에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또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갈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불보살(佛菩薩)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해 가지고 스스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서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하루하루를 지내 가지고 금년까지 왔습니다.

아직도 이 정법을 믿는 신심(信心)이 철저하지 못해 가지고 또 내년에 또 내명년(來明年)으로 간다면 우리는 금생 일생도 또한 이렇다한 진취(進取)가 없이 일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내생에 다시 또 사람 몸을 받느냐? 축생이 되느냐? 지옥을 가느냐? 천당을 가느냐? 아무도 보장한 사람이 없습니다.

보장한 사람이 없습니다마는 저는 여러분이 정법을 믿고 이렇게 법회에 참석해서 한 말씀이라도 듣고서 부처님의 혜명을 이을려는 그 신심 그것만으로 내생에 또다시 불회상(佛會上)에서 만날 것을 축원(祝願)하고 또 간절히 축원을 합니다마는,
여러분이 과거에 어떻게 닦아 왔으며 금생 일생 동안을 정말 어떻게 닦았느냐에 따라서 내생에 분명 우리가 다같이 한 회상(會上)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인가?
여러분 자신들이 정말 깊이깊이 반성을 해보실 필요가 있을 줄 생각합니다.

‘이뭣고?’

그럭저럭 하루를 지나면 그것이 쌓이면 한 달이 되고, 그것이 쌓이면 1년이 되고, 그것이 쌓이면 무량겁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밥도 먹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하고, 몸도 씻어야 하고 또 일도 해야 하고, 누구하고 얘기도 해야 하고, 어디 외출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일 하다가 그럭저럭 방치를 하고 하루를 하는 일 없이 지낸다면 나의 생사 문제는 내 대신 아무도 해결해 주지를 않습니다.

‘그런 일이 바뻐서 못한다’ 이런 핑계를 대신 분은 혹 없으십니까? 그러한 핑계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는 듣지를 않습니다.
절에 와서는 “바뻐서 못 왔습니다. 바뻐서 참선을 잘 못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해도 “아! 그러셨느냐”고, 이렇게 내가 인사로 받기는 합니다. 그러나 염라대왕 앞에 가서는 그런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그러헌 일은 자기가 과거에 지어 놓은 빚—자기가 과거에 지은 원에 의해서 그러한 숙제를 금생에 가뜩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인간으로서의 숙제 문제고,
영원한 자기의 마음, 자기의 영혼의 숙제는 그러한 일에 핑계 대 가지고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사바세계, 이 말세(末世)라고는 하지만 천상(天上)보다도 더 공부하기에 좋고, 육도(六途)의 어느 세계보다도 공부하기에 적당하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세입니다.

정법을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사바세계가 온통 불구덩이고, 고해(苦海)이고, 그렇게 여겨지겠지만 정법을 믿는 사람은 차라리 천당보다도 더 좋고, 지옥보다 더 좋은 것은 설명할 여지가 없겠습니다.

어째서 천당보다 더 좋으냐?
천당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가 내 마음대로 되고 하나도 내 뜻에 어긋나는 일이 없이 모든 일이 즐겁고 편안하고 좋기만 한 곳입니다.

‘그렇게 좋으면 참 공부하기는 대단히 좋겠구나. 마음껏 먹고, 마음껏 입고, 마음껏 즐기면서 하나도 공부에 방해될 것이 없으니 누워서 떡 먹듯이 공부가 잘될 것이 아니냐’
혹 그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거기는 너무 좋기만 하고, 너무 내 뜻에 맞는 일만이 있기 때문에 발심(發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역경계(逆境界)를 만나야만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역경계를 만나야만 정신을 차리고 분심(憤心)을 내고 신심을 내고, 각오를 새롭게 해서 다시 새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천당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의 충격적인 일은 없고 모든 것이 편안하고 즐겁고 좋기만 하니 발심할 필요도 없고, 도를 닦을 필요도 없고, 거기에는 오직 즐거움과 편안함과 안일(安逸)만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것이라도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또한 무방하겠으나 자기가 복을 지은 만큼 다 받아 버리면 다시 뚝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통장에 예금을 많이 해 놓은 사람이 당분간 돈을 벌지 않고 그놈만 곶감 빼먹듯이 인출을 해다가 잘 먹고 잘 입고 쓰는 동안에는 좋지만 아무리 많은 액수를 예금을 해 놓았다 하더라도 쓰기에 따라서는 금방 바닥이 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어떤 복을 지어서 천당에 간다 하더라도 천당의 복을 누릴 만큼 다 누리면 결국은 바닥이 나서  지옥이나 축생이나 인간에 다시 되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참선을 해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생사 없는 진리, 열반(涅槃)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우리는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대자유(大自由)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전히 일어나는 생각을 그때 그때 단속함으로써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이것이 바로 정법이요 불법인 것입니다. ‘이뭣고?’


삿된 말, 마구니의 말은 즐겨 받아 듣고, 성인의 가르침과 이 정법의 말을 하면은 짐짓 들을려고 하지를 않는다.

‘어디를 가면 병이 낳는다. 어디를 가서 기도를 하면 재수가 대통한다. 어디가서 무슨 부적을 사 가지고 하면은 삼재가 면한다’ 이러한 삿된 소리는 대번에 귀를 기울이고 솔깃하고 무슨 거짓말, 핑계를 대 가지고라도 빠져나가 가지고 거기는 잘들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참선법, 정법을 설하는 법회에는 핑계가 굉장히 많습니다. ‘무슨 날이라 못 오고, 어째서 못 오고, 어째서 못 오고’ 이것은 웃을 일도 아니고,
예수교에서는 일요일마다 가게문을 닫고 전부 다 교회를 가고, 중간에도 무슨 설교가 있다 또는 부흥회가 있다 하면은 밤이고 새벽이고 노상 아주 제백사(除百事)하고 온 가족이 참여를 합니다.

거기에 비교하면 불교를 믿는 신자들은 겨우 한 달에 한번이나 두 번 밖에 없는 법회인데 너무 핑계가 많고,
그 핑계가 결국은 자기 수행하는데까지 핑계를 대서 그 아까운 시간이 하루하루 무료하게 지나감으로서 또 한 해를 넘기게 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도 이렇다한 투철한 결의와 각오가 없이 맞이했다 또 보내고, 맞이했다 보내고 해서 세월만 흘러갑니다.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지 벌써 6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법회 때마다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듣고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많은 감명을 받고 신심이 돈독해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그러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보다 더 혁명적인 정신, 정신에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 줄 생각합니다.

앞으로 해제도 한 20여 일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해제가 있을 수 없지만 우리는 편의상 정월 보름날을 해제날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20여 일 간을 여태까지 결제 동안에 지나온 그러한 정도에 그치지 말고, 보다 더 알뜰하게 한 시간 한 시간,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결제 중에 보살님네 선방에서 크고 작은 일들, 어린이와 같은 철이 안든 일들, 철철이 같은 내용의 비슷한 일들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은 그러한 사건들이 한 건, 두 건 이렇게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보다 더 공부를 잘할 수 있게는 못할지언정,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 공부에 지장(支障)이 있게 한다고 하는 것은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이라면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에 불보살은 어느 손바닥 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몸을 바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몸을 중생을 위해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성현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그 뜻을 받들어 행한다고 하는 불자로서 어찌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게 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보다 더 채찍을 가하고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 간곡한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내생에 지옥에 떨어져서 ‘그때 그 말을 내가 어째서 깊이 듣고 실천을 안했던가’ 아무리 후회를 하고 한탄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41분23초~58분5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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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후년(來後年) ; 후년(後年 올해의 다음다음 해)의 바로 다음에 오는 해. 곧 올해로부터 3년 뒤의 해를 이른다.
*이승 ;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나 일생 동안을 이르는 말.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내명년(來明年) ; 올해의 다음다음 해. 후년(後年)과 같은 말.
*진취(進取) ;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함.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제백사(除百事)하다 ; 오직 한 가지 일에만 힘을 쓰기 위하여 다른 일은 다 제쳐 놓다.
*지장(支障 가를 지,막을 장) ; 어떤 일을 하는데 거치적거리거나 방해가 되는 장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Posted by 닥공닥정
선(禪)과 교(敎)2015. 3. 21. 11:03

§(115) 팔만대장경과 참선 / ‘이뭣고?’ 한번 하는 공덕 / 물의 습성, 중생의 온갖 생각 속에 진여불성 /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하근기이니까 더 노력을 해야.

「‘이뭣고?’ 한번 할 때 ‘관세음보살’ 육백만 번 한 공덕이 있다.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공덕이 있다」 이렇게 고조사(古祖師) 스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이 말씀은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뼛골에 사무치도록 감사하고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서 보증을 하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우리의 일심(一心)으로부터 전부가 다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생각을 돌이킨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나온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망상, 중생의 온갖 괴로움과 슬픔과 기쁨, 그러한 생각 생각들을 한 생각도 방치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간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진여불성을—뱃속에 똥과 오줌과 고름을 가뜩 담어 갖고 있는 채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위대성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5)—79년 12월 관음재일 법어(79.12.24)(용115)


약 10분.


경(經), 팔만사천경(八萬四千經)이 한량없이 많고 어렵지마는 그것을 다 읽으려고 해봤자 죽을 때까지 십분의 일도, 백분의 일도 다 읽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책으로 된 경만이 부처님의 법문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 산이나 나무나 돌이나 구름이나 새나, 우리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코로 맡을 수 있는 모든 냄새, 입으로 맛볼 수 있는 모든 시고 짜고 달고 하는 모든 맛,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모든 물건, 우리의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이 전부가 다 화엄경(華嚴經)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최고의 설법이요 경전인 것입니다.

이 진짜 경(經)을 읽는 것이 바로 이 참선(參禪)입니다.

종이에 씌여져 있는 경은 팔만사천경이라 합니다마는 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경에다가 비교하면 억만 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경책(經冊)을 한 장도—이 종이로 된 경을 한 장도 읽지도 아니하고서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부처님의 ‘참 경’을 다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뭣고?’ 한 생각 돌이킬 때에, ‘이뭣고?’ 한 번 할 때, 우주에 가득차 있는 경을 한번 읽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자신 있게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 할 때 ‘관세음보살’ 육백만 번 한 공덕이 있다.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공덕이 있다」
이렇게 고조사(古祖師) 스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이 말씀은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뼛골에 사무치도록 감사하고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서 보증을 하겠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우리의 일심(一心)으로부터 전부가 다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생각을 돌이킨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나온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을 통해서 너무나도 배울 것이 많습니다. 물이 없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 물에게는 너무나도 훌륭한 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은 자기의 자성을 지키지를 않습니다. 자기의 고정된 어떠한 모습을 가질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 조건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영하의 추운 기온을 만나면 얼음이 되기도 하고, 그것이 또 기온에 따라서 증기가 되어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되기도 하고, 그 구름이 다시 차운 공기를 만나면 엉켜서 빗방울이 되기도 합니다.
공기에 떠있는 수증기가 차운 공기를 만나면 우박이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합니다. 눈이 되었다, 물이 되었다, 증기가 되었다, 얼음이 되었다, 여러 가지 모양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변해 갑니다.

그런데 얼음이 되었건, 물이 되었건, 눈이 되었건, 수증기가 되었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라도 변하지 아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물의 습성(濕性)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습성, 젖은 성질, 습성, 출렁거리는 물도 젖은 성품은 가지고 있고, 꽁꽁 어는 얼음이 되었을 때에도 젖은 성품은 가지고 있고, 휘날리는 눈이 되었다 할지라도 습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수증기일 때도 역시 습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기온과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면서도 마침내 변하지 아니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마음도 때에 따라서 기뻐할 줄도 알고, 때에 따라서 슬퍼할 줄도 알고, 때에 따라서 성낼 줄도 알고, 때에 따라서 즐거워할 줄도 압니다.
그렇게 별별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우리는 생각을 발휘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낼 때도 진여불성은 그 속에 있는 것이며, 슬퍼할 때에도 진여불성은 그 속에 있는 거여, 괴로워할 때에도 진여불성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성내는 생각, 괴로운 생각, 슬퍼하는 생각, 기뻐하는 생각들이 진여불성에서 나온 것들인 것입니다.
얼음이나 물이나 수증기나 어떠한 모양으로 되어 있건 그 속에 습성은 있는 것처럼 중생의 팔만사천 가지 온갖 생각들 속에도 진여불성은 있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에서 그런 것들이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망상, 중생의 온갖 괴로움과 슬픔과 기쁨, 그러한 생각 생각들을 한 생각도 방치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간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진여불성을—뱃속에 똥과 오줌과 고름을 가뜩 담어 갖고 있는 채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위대성인 것입니다.

‘말세(末世)에 태어났다, 여자의 몸을 받아 났다’ 그런 것이 전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에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또 여자로 태어났으니까, 근기(根機)를 하열(下劣)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도 또는 정법(正法)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보다도 10배, 100배 더 노력을 해야겠다고 하는 이러한 강인한 결심을 다질지언정,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참선을 해봤자 안된다더라’ ‘말세에 태어났으니까 아무리 해봤자 견성성불(見性成佛)은 못하고, 어쨌던지 인연이나 맺고 하는 척이라도 해야 나중에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할 때 구제 받는다더라’ 이러한 너무나도 엄청난 불쌍한 생각을 우리는 가져서는 안되겠습니다.(31분27초~41분2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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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사천경(八萬四千經) ;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참고]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8800게송 1200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경책(經冊 불경 경,책 책) ; 부처님 말씀(經)의 책(冊).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일심(一心) ; 궁극적 근저로서의 마음. 만유의 실체진여(實體眞如)를 말함.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마음. 우주 사상의 기본에 있는 절대적인 진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석가모니 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5. 3. 19. 17:15

§(115) 경일난장일지(經一難長一智) / (게송)설후시지송백조~ / 일 속에서 공부해 나가야 /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은 너무 우리와 가까운 거여. 너무 쉬운 것이다.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경일난장일지(經一難長一智)다. 한 어려움을 겪으면 한 지혜가 길어난다, 성장이 된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더욱 신심을 돈독히 해서 화두를 들고 신심으로 그러한 어려운 일을 하나하나 착실히 밟아서 극복해 나간다면 그 어려운 일은 나에게 좋은 채찍이 되어줄 것이며, 불보살의 법문이 되어줄 것이며, 우리가 도업(道業)이 성장해 나가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것입니다.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정신작용이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한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이해한다면, 우리는 단 한 시간도, 아니 단 1분 동안도 무심코 생각 일어난 데에다 맡겨 버리고 세월을 보낼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욕을 하면 성낼 줄 알고, 바가지도 긁을 줄 알고, 속도 상할 줄 알고, 고민도 할 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이러한 생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면 누구라도 공부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미(迷)하면 팔만사천 마구니였던 것이 ‘한 생각’ 돌이켜 깨달으면 팔만사천 묘법(妙法)이 되는 것이고, 팔만사천 불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번뇌망상, 번뇌망상 하지만 한 생각 깨달으면 번뇌망상이 전부가 다 보리심(菩提心)이 되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법문(法門)이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5)—79년 12월 관음재일 법어(79.12.24)(용115)

 

(1) 약 19분.

(2) 약 10분.

 

(1)------------------

오늘은 기미년 섣달 스무 나흗날, 기미년 마지막 관음재일(觀音齋日) 입니다.
1년이 365일인데 엄벙덤벙하다가 한 달, 두 달이 지나가고 그래가지고 열두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결에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지나간 1년을 잠깐 살펴보건대 국내외적으로 무척 복잡하고 다단한 그러한 해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그리고 석유 값이 오르는 바람에 온갖 물가가 다 뛰어오르고 국제적으로도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들이 연거푸 일어나서 그러한 영향이 결국은 또 우리나라에도 미쳐 오고, 우리 불교 종단도 분열이 되어 가지고 아직도 이렇다 할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또 새해를 맞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우리 종단적으로 이렇게 파란만장하고 복잡다단한 이러할 때에 우리 정법(正法)을 믿는 법보제자는 어떻게 행동을 하며, 어떻게 마음을 가지며, 어떻게 생활을 해 나가야 하는가?
다른 때보다도 몇 배 정신을 차려서 신심을 더욱 돈독히 하고 우리의 수행을 더욱 채찍질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주변이 어수선하고 복잡하다고 해서 나 자신까지 거기에 휩쓸려 가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렁저렁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 것은 정말 신심 있는 정법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럴 수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오히려 주변이 복잡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좋지 못할 때, 그럴 때에 바짝 정신을 차려서 자기의 가야 할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나아갈 줄 아는 사람,
이 사람이야말로 정법을 믿고 불법을 믿는 불자(佛子)로서만이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 가정도 이러한 어려운 때를 만나서 여러 가지가 물심양면으로 어려운 점이 많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우리 정법을 믿는 여러분은 오히려 더 정신을 차려서 신심을 돈독히 해서, 안으로는 착실히 수행을 다져 나가고, 밖으로는 그 수행력을 발휘해서 어른을 존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이끌면서 인화(人和) 단결해 나간다면 시일이 지난 뒤에 오히려 그런 어려운 고비를 잘 극복한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보다 더 성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경일난장일지(經一難長一智)다. 한 어려움을 겪으면 한 지혜가 길어난다, 성장이 된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설후시지송백조(雪後始知松柏操)요  사난방견장부지(事難方見丈夫志)니라
나무~아미타불~

설후시지송백조(雪後始知松柏操)라. 눈 내린 뒤에야사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 푸르름을 알 수가 있고,
사난방견장부지(事難方見丈夫志)라. 일이 난관(難關)에 다달라 봐야 바야흐로 장부(丈夫)의 인격을 볼 수가 있다.

눈과 서리가 내리기 전에는 소나무나 잣나무나 보통 다른 초목이 모두가 다 푸르러서 마찬가지로 보이지만, 서리와 눈이 내린 뒤에야사 모든 나무와 풀은 단풍이 들고 다 시들어서 떨어져 버리는데 오직 송백(松柏)만이 그 푸르름을 더욱 자랑하는 거와 같이,

보통 일이 없을 때는 김 가나, 박 가나 모두가 다 마찬가지 남자들로 보통 다 똑같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정말 난관을 만나서 어려운 고비를 겪을 때에 비로소 장부의 인격을 알아볼 수가 있다 이런 말입니다.

세상이 살기 좋고 아무 일 없을 때는 불법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수행을 열심히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별것이 없습니다. 너도 나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일신상으로 물심양면에 어려운 고비를 만나 봐야만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만큼 철저한 신심을 가진 사람이었던가? 얼마만큼 골똘하게 참되게 수행을 한 사람이었던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굳이 피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지혜롭게 그리고 씩씩하게 참을성 있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두려워하고 자기가 어피차 가야 할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굳이 구태여 피할려고만 한다고 해서 자기 앞에 주어진 숙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더욱 신심을 돈독히 해서 화두를 들고 신심으로 그러한 어려운 일을 하나하나 착실히 밟아서 극복해 나간다면 그 어려운 일은 나에게 좋은 채찍이 되어줄 것이며, 불보살의 법문이 되어줄 것이며, 우리가 도업(道業)이 성장해 나가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것입니다.

지나간 1년을 오늘 댁에 가시면 고요히 반성을 해 보시고 잘못된 점은 잘못된 대로 그것을 반성을 해 가지고 새해에는 그러한 점을 더욱 보완해서 나아갈 것이며, 잘된 점은 더욱 채찍을 가해서 더욱 정진을 하셔야 할 줄 생각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첫째 우리의 중생심, 번뇌 망상심, 별념(別念)이라고 조실 스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우리의 범부(凡夫) 중생의 마음은 마치 바다 위에 파도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높은 파도가 일다가 작은 파도가 일다가 언제나 고요한 때가 없이 일렁거리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도 잠시도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없이 천사량(千思量) 만사상(萬思想)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이 잠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번지다가 결국은 그 생각이 꺼지고, 꺼지자마자 또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서 잠시 머물렀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가지고 또 꺼지고, 이렇게 하기를 수없이 많은 겁(劫) 동안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금생도 역시 우리의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있습니다.
바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양상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 생각의 내용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생주이멸(生住異滅)—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잠시 머물렀다가 딴 생각으로 바뀌어져 가지고 그 생각이 꺼지는, 그 생주이멸의 양상에는 하등에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무심 속에, 무의식 속에 그러한 생주이멸의 우리의 정신작용이 그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천당으로도 가게 하고, 지옥으로도 가게 하고, 축생으로도 떨어지게 하고, 아귀로도 되게 하는 원인이 될 줄이야. 그것을 철저히 인식한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정신작용이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한다」고 하는 사실을 뼛속 깊이 이해한다고 하면, 우리는 단 한 시간도, 아니 단 1분 동안도 무심코 생각 일어난 데에다 맡겨 버리고 세월을 보낼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참선한다 또는 수행을 한다, 도를 닦는다’하면 어떠한 장소가 꼭 필요하고, 어떠한 시간이 꼭 필요하고, 특별한 그러한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마는, 물론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고, 공부하기에 편리한 여건을 갖춘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한 좋은 조건만을 기다려 가지고 공부를 할려고 하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것은 금생에 공부 잘하기는 썩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정을 가진 사람은 가정의 일이 있고, 사회에 직장을 가진 사람은 그 직장의 일이 있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며느리로서 각기 한 몸에 여러 가지의 해야 할 일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은 도저히 우리가 피할라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은 자기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책임을 완수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제쳐놓고 공부를 좀 잘해 볼까? 이것은 조금 무리한 생각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일을 제쳐놓고 할려고 하는 기회를 계속 엿보면서 하루하루를 그렁저렁 지내기보다는, 그러한 일하는 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 관조(觀照)해 간다면 오히려 그 일도 괴로운 줄 모르고 재미스럽게 그 일을 보람 있게 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 마음가짐 하나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의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좋은 환경이 되어 주고, 오히려 그 복잡한 일 때문에 더욱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고,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에 좋은 채찍이 되겠게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행이 가정에 모든 사정이 허락이 되어서 이런 선원에 오셔서 만사를 제쳐놓고 공부하실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을 가지셨다면 그것은 전생에부터서 많은 복을 쌓으신 분이고 또 금생에도 대단히 정법을 믿는 마음이 돈독하고 나아가서는 용기가 있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기 와서 공부하신 분이라고 해서 가정에 꼭 일이 없어서만 오신 것이 아니고, 그만큼 머리를 쓰고 용기와 지혜로서 일을 처리함으로서 와서 공부하실 수 있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에 일이 도저히 자기 몸이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분이라 할지라도 가정에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일을 하는 그 속에서—일 하면서도 계속 우리는 무슨 생각이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니까—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각이 있다면 그분은 벌써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신 것입니다.

무슨 병이 났건, 바보 천치가 되었건, 넋이 나가서 전혀 생각이 일어나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고 속이 상할 일도 없고 슬플 일도 없고 목석처럼 되어 버린 사람이 있다면, 이 참선을 모르는 사람은 ‘아! 그런 사람은 공부하기가 대단히 편리하겠다’ 혹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공부할 자격을 이미 상실한 사람입니다.

욕을 하면 성낼 줄 알고, 바가지도 긁을 줄 알고, 속도 상할 줄 알고, 고민도 할 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이러한 생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공부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3분3초~21분44초)

 

 

 



(2)------------------

언제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일어나는 그 생각 그 찰나를 탁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않고 딴 생각만 자꾸 일어납니다”
‘딴 생각 일어난다’고 생각한 그 생각을 가지고 바로 ‘이뭣고?’를 하실 일입니다.

‘이뭣고?’는 아무 뜻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파고들어 봤자 거기에서 어떤 재미있는 뜻이 전개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맛없는 하나의 말이기 때문에 아무리 되씹어 봤자 여기에서는 별맛이 없습니다.

(별맛이) 없지만 자꾸 돌이켜서 관조하고, 돌이켜서 관조하고 해 나가면—처음에는 ‘이뭣고?’해도 그 속에 벌써 지나간 생각이 떠오르고, 닥쳐올 일이 떠오르고, 이 생각 저 생각이 뿌리도 없이 퍼일어납니다.
그렇지만 그 퍼일어나는 생각을 귀찮다고 생각하지도 말고, 그것을 억누를려고 생각하지도 말고, 다못 거기서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고?’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벌써 딴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 일어나는 생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일어나는 생각 고대로 놔둔 채 ‘이뭣고?’ 이렇게 다그쳐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고, 하루 하루를 그렇게 야무지게 단속해 나가면, 한 달 두 달 해 나가면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그렇게 들려고 애를 써도 깜빡하면 딴 생각이 들어와 버리고 화두는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화두는 입으로는 ‘이뭣고?’해도 속으로는 딴 생각이 바글바글바글 하고 그러던 것이, 애를 쓰고 또 애를 쓰다가 보면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이 항시 가슴속이라고 할까, 눈앞이라고 할까, 알 수 없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거든.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똥을 눌 때도 알 수 없는 생각, 걸어갈 때도 알 수 없는 생각, 시장에를 가도 알 수 없는 생각,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다보면 알 수 없는 그 생각 때문에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버리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그런 상태에 이르러도 조금도 ‘아! 내가 공부가 잘되나 보다, 아! 인자 얼마 안 가면 내가 힘을 얻을려나 보다’ 그런 생각마저도 하지를 말고 계속 단전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중 모르게 지나가고, 그렇게 그전에는 발과 무릎이 그렇게 저리고 했던 것이 저린 것도 없어져 버리고, 몸이 괴로운 것도 없어져 버리고, 그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싱그러울 정도로 정신이 깨끗한 상태에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러서 수행하는 사람은 ‘아! 참 좋다. 이러한 상태로 계속 나갔으면, 영원히 이런 상태에 있었으면’ 이러한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아흔아홉 길까지 올라가 가지고 마지막 한 길을 남겨놓고 천길 만길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그 장면인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가 여일하게 잘 들리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맑다 하더라도 조끔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수행하는 사람 앞에는 팔만사천 마구니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탁! 엿보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우리의 뜻을 통해서 그 여섯 문밖에서 기회만 있으면 들어와 가지고 우리의 심왕(心王), 마음의 왕을 갖다가 낚아채 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잠깐 딴 생각 먹으면 그때 이미 마왕(魔王)의 올개미에 걸리는 것입니다. ‘아! 좋다. 기쁘다’ 이런 생각내면 벌써 마왕의 올개미에 걸려 들어갈려고 하는 그 찰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잘된다고 기뻐하는 생각도 내서는 안 되고, 잘 안된다고 짜증을 내서도 안됩니다. 짜증을 내도 올개미, 기뻐하는 생각을 내도 올개미인 것입니다.

화두가 여일하게 들리고 잘 되어갈 때, 그때 조금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말고 계속 단전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아침부터 점심까지, 점심부터 저녁까지, 저녁에도 잠이 들 때까지 계속 화두를 관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저녁에 이부자리에 들어가서도 계속 화두를 들면서 언제 잠이든 중 모르게 잠이 드는 것입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눈을 딱 뜨면 화두를 새로 들지 아니해도 화두가 저절로 딱 들어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뻐하는 마음을 내며, 어서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무엇이냐 그말이여.

홀득자가저(忽得自家底)하니, 문득 자기집, 자가저(自家底) 자기집을 얻으니,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라. 모든 것이 다못 이것일래라.

육근문두(六根門頭)에—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문두(六根門頭)에 팔만사천 마구니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화두를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면목(本面目)을 깨닫게 되면 육근문두에 어리대고 있던 팔만사천 마구니가 마구니가 아니라 전부가 자기의 종이요, 자기의 식구요, 자기의 살림인 것입니다. 여기에 불법의 위대한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미(迷)하면 팔만사천 마구니였던 것이 ‘한 생각’ 돌이켜 깨달으면 팔만사천 묘법(妙法)이 되는 것이고, 팔만사천 불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번뇌망상, 번뇌망상 하지만 한 생각 깨달으면 번뇌망상이 전부가 다 보리심(菩提心)이 되는 것입니다. 팔만사천 법문(法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르르는.... ‘이뭣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성이 날 때 ‘이뭣고?’ 슬플 때 ‘이뭣고?’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은 너무 우리와 가까운 거여. 너무 쉬운 것이며 너무 가까운 것이여.(21분45초~31분2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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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음재일(觀音齋日) ; 매월 음력 24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인화(人和) ; 여러 사람이 마음으로 서로 뭉쳐 화합함.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난관(難關 어려울 난,관문 관) ; 넘기기 어려운 일이나 고비.
*장부(丈夫) ; ①건장하고 씩씩한 남자. ②참선하는 수행자. ③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관조(觀照) ; ①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②지(智)로써 사(事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와 이(理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를 관(觀)하여 바르게 아는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2)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심왕(心王) ; [산스크리트어, citta] 대상의 전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마음 작용으로, 육식(六識) 또는 팔식(八識)으로 분류함.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올개미 ; 올가미.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게송) ‘忽得自家底  頭頭只此爾’ ; 서산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의 한 구절.
[참고] 『청허집(淸虛集)』 제2권. ‘過鳳城聞午雞(봉성을 지나다 낮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발백비심백(髮白非心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금청일성계(今聽一聲雞)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忽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만천금보장(萬千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화두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면목(本面目) ; 본래면목(本來面目).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