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19.09.12 §(201) 송담 스님의 출가 일화 / 간화선(看話禪)은 모든 중생의 근기에 맞는, 사견(邪見)에 빠지지 아니하고 확철대오 할 수 있는 가장 수승한 법.
  2. 2019.07.16 §(109) (게송)산월투창백~ / 물의 습성 / 중생의 망념을 여의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거각하는 것이 참나를 깨닫는 가장 가까운 길 / 일념단속 / 도솔천내원궁 / 득력.
  3. 2018.09.27 §(311) (게송) '역력이빈주~' /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법, 활구참선법 그거 하나를 위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오신 것 / 활구참선과 사구참선.
  4. 2018.05.25 §(356) (게송)금강보검의천한~ / 활구참선을 하고 사구참선을 하지말라.
  5. 2017.10.05 §(364) (게송)월원불유망~ / 중생의 탐진치 욕심의 무서운 불을 끄는 것이 참선이다 / 재진출진(在塵出塵) 불가잠폐(不可暫廢) / 번뇌의 바다에 들어가야 거기에서 지혜 보물을 얻는다. 1
  6. 2017.05.30 §(627) 우리 자신이 부처 /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최상승법 /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 극락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
  7. 2017.04.04 §(031) 깨닫는 인연—잠시도 본참화두를 놓쳐서는 안된다 / 5가지의 큰 은혜 / 아난과 조달의 지옥 대화 / 사구참선과 활구참선 / 여섯 마리의 짐승, 육적.
  8. 2017.03.27 §(014)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다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유루복 /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다 / 일념단속, 생사심 단속.
  9. 2016.10.22 §(630)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육도윤회의 원인은 '한 생각' 어긋진 탓 / 활구참선은 천하에 쉬운 것이다 / 활구참선이라야 올바른 참선.
  10. 2016.07.07 §(299) (게송)묵좌허회독엄문~ / 도의 낙(樂) / 활구참선이란? / 『몽산법어』 /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탐진치(貪瞋痴) 삼독심 / ‘참 부처님’이란?
활구참선 최상승법2019. 9. 12. 15:18

§(201) 송담 스님의 출가 일화 / 간화선(看話禪)은 모든 중생의 근기에 맞는, 사견(邪見)에 빠지지 아니하고 확철대오 할 수 있는 가장 수승한 법.

 

전강 조실 스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아침마다 법문을 듣고, 그때도 꼭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 법문을 설하시고 그래서 법문을 듣고, 또 법회가 가끔 있어서 법문을 듣고, 또 대중과 같이 하니까 해태심(懈怠心)을 낼라야 낼 수가 없고 그래 좋더니, 혼자 있으니까 아무리 정신을 차려서 헐라고 해도 그 혼침(昏沈)을 막기가 어렵고, 해태심이 나서 억지로 이를 갈아붙이고 해도 잘 안된다 그말이여.

 

앞으로 육조 스님이나 부처님과 같은 또는 달마 스님과 같은 그러한 대종사가 나오셔서 우리 중생의 근기에 맞춰서 이 간화선보다도 더 훌륭한 법을 개척을 해서 지도를 하신 때에는 몰라도, 그러기 전까지는 이 간화선(看話禪)보다도 더 수승한 모든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는, 사견(邪見)에 빠지지 아니하고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법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산승(山僧)은 믿는 바입니다.

 

**송담스님(No.201)—1983년(계해년) 춘계산철 해제 법회 (용201)

 

(1) 약 21분.

(2) 약 2분.

 

(1)------------------

 

송담이 처음에 출가할 때, 출가하기 전에 학생 때부터 ‘참선을 하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방에 가서 참선에 관한 책을 여러 권을 구해 가지고, 근데 일본 책인데 구한 책이 마치 조동종 계통의 책을 구했습니다.

 

일본의 도원 선사(道元禪師)는 귀족 출신으로 어려서 조실부모를 해서 출가해 가지고 당나라로 건너가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선지식(善知識)을 찾은 것이, 여정 선사(如淨禪師)라고 하는 조동종 계통의 대종장(大宗匠)을 만나가지고 거기서 한 3년 간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아서 일본으로 돌아와가지고 조동종(曹洞宗)의 초조(初祖)가 되었습니다.

 

그 조동종 도원 선사의 어록을 구하고 또 조동종의 참선법 · 교리 · 선학 그런 것을 해설해 놓은, 도원 선사에 대한 연구하는 책을 구하고 그래가지고 그놈을 날마다 읽고 그래가지고 조동종의 참선을 참 여러 달을 내 나름대로 했는데, 그 조동종에서는 임제종(臨濟宗) 계통에 간화선(看話禪)을 사마외도(邪魔外道)의 법이라 해 가지고 힐난하게 비방하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임제종 계통에서는 조동종의 참선을 묵조사선(默照邪禪)이니 해 가지고 대단히 또 조동종 계통의 묵조선을 공격을 하고 해서, 중국에서부터서 임제종과 조동종 간에는 대종사끼리 그렇게 힐난하게 아주 사마외도라고 참 극렬한 표현을 하면서 피차 비방을 하고.

그런데 내가 학생 때 마치 그 조동종 계통의 책을 읽어 가지고 나도 '확실히 조동종 계통의 참선법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간화선은 대단히 나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아무래도 속가(俗家)에서는 도저히 참선을 할 수가 없어요. 여러가지 복잡하고 그래서 ‘아무래도 내가 참선을 할라면은 천상 절로 가서 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절에를 갔는데, 마치 전강(田岡) 조실 스님이 훌륭하시단 말씀을 듣고 전강 조실 스님이 계신 절을 찾아갔습니다.

 

광주 지산동 골짜구니에 들어가면 향로봉 밑에 ‘자운사’라 한 조그만한 암자가 있었는데, 그 절에다가 그해 여름에 전강 조실 스님과 또 종정을 지내신 윤고암 스님, 두 스님이 거기에서 참선방을 하신다 그래 가지고 거기를 찾아가서 방부(房付)를 들였습니다.

내가 꼭 중노릇을 할려고 간 것은 아니고 참선을 할려고 갔는데, 집에서 다 한복을 만들고 그래가지고 식량과 찬대(饌代) 모다 그런 것을 다 준비를 해 가지고 가서 방부를 들이고 그래 있는데.

 

가자마자 조실 스님을 만나 뵈옵고, 나는 거기서는 화두 어쩌고 해도 ‘그건 다 못된 참선을 하고 있다’ 이리 생각을 하고, 나는 내 속으로 조동종의 묵조선(默照禪)을 딱 하고 있는데 조실 스님이 "너는 앉아서 뭣을 하냐?"

"참선합니다"

 

"무슨 참선을 어떻게 하느냐?"

"그냥, 이렇게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소상하니 (말하라 해서) "생각없는 생각으로 관조를 하고 있습니다"

 

"너 조동종의 묵조선을 하고 있구나"

"예, 그렇습니다. 왜 그것이 나쁩니까?"

 

"차라리 참선을 안 하는 것이 낫지, 천하 못쓸 것이니다"

"그것이 왜 나쁜가요? 어떤 참선이 좋습니까?"

 

"화두를 타 가지고 화두를 의심을 해야지, 화두도 없이 그렇게 앉아서 무슨 깨달음에 이르겠느냐"

"그 화두라 하는 것이 화두를 들고 앉아서 깨닫기를 기다리고 앉었는 것이 그것이 어찌 바른 참선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원래부터 우리는 본래 이 자신이 부처고 우리 자성이 있는데, 그 있는 자성을 바로 보기 만하면 관조하기 만하면 고대로 새로 깨달을 것 없이 본래 부처인대, 무엇을 깨달을 것을 기다릴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벌써 시작할 때부터서 소견이 삿된 것이 아닙니까?"

 

내가 조동종 계통에 읽은 책을 본 대로, 있는 대로 다 조실 스님 앞에 내 놓으면서 계속 조실 스님하고 토론을 해서 며칠을 해가지고 며칠 동안을 내가 강경허니 버티다 버티다 내가 딸려 가지고, 결국은 조실 스님한테 항복을 하고 화두(話頭)를 정식으로 타서 참선을 했습니다.

 

 

난 중이 될려고 가지도 않았는데 조실 스님이 장삼(長衫)을 주시면서 입으라고 하시고, 들어가자마자 나를 조실 스님이나 고암 스님이나 거기에 계신 여러 스님네들 또 신도들도 이십 여명 있었는데 모다 나를 스님 대우를 했습니다. 계(戒)도 받지도 않고 또 행자(行者)도 아니죠.

 

그랬는데 나를 ‘은(隱) 수좌, 은 수좌’하고 수좌(首座)로 아주 정식으로 대접을 받었습니다. 장삼을 입고 예불을 하고 또 조실 스님이 어디 법회가 있어서 가시게 되면은 나를 시자(侍者)로 데리고 가시고, 그래서 승속 간에 나를 아주 스님으로 대접을 하고 그래서 참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철을 지냈는데, 그 지내보니까 모다 거기에 모이신 스님네나 모다 정말 이 고봉 스님처럼 목숨을 바쳐서 철두철미하게 정진을 했으면 나도 그것을 보고 발심(發心)을 해서 그냥 그길로 계를 받고 출가를 했을런지도 모르는데,

모다 입선(入禪)하고 방선(放禪)하고 하는데 형식적으로 하고, 방선만 했다 하면은 돌아서서 잡담하고 맨 뭐 못된 소리나 하고.

 

그래서 내 자신이 ‘에이, 이런 데 있으면은 나까지 물이 들겠다’ 그래 가지고 '절에 가서 있을 것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가서 선조(先祖) 산소 밑에 그 산재각(山齋閣)이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런 데 가서 방을 하나 치워 놓고 혼자 생식(生食)을 하면서 차라리 참선을 한 것이 낫겄다’ 이리 생각을 해 가지고 해제를 하고서 짐을 꾸려 가지고 나오니까,

 

조실 스님께서 "아, 중이 될 줄 알았는데 중이 안 되고 가는가?"

"예, 애당초부터 중이 될라고 오지도 않았고, 어디 산재각 같은 데 가서 혼자 생식을 하면서 정진을 좀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 자네가 언제라도 중이 될 때에는 내한테 와서 중이 되어야 하네"

"아, 그렇고 말고요. 되기만 함사 내가 스님한테 와서 상좌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중 될 생각은 아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실 스님이 손을 잡고 이별을 하시면서 "자네가 아무때라도 날 찾아오고 말 것이네" 그러시거든요.

그래도 속으로는 ‘내가 확철대오나 하면 스님을 찾을까, 내가 중은 될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속으로는 생각을 하면서도 각박하게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 "예, 제가 스님을 찾아 오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로 그렇게 하고는 보따리를 짊어지고 집으로 와서 다시 산재각 재실(齋室)을 찾아가서 생식을 하면서 겨울 한철을 지냈습니다.

 

지내고 보니, 절에 있으니까 새벽 3시가 되면 자동으로 대중과 같이 일어나서 같이 정진하게 되고 시간 맞춰서 하니까 참 좋은데, 혼자 가서 하니까 새벽에 영 일어나기가 어렵고,

또 자명종을, 시계를 틀어 놓고 하니까 일어나기는 일어나는데 일어나서 억지로 세수를 하고, 추우니까 이불을 둘러쓰고 앉었으니까는 영 졸음이 퍼오고 참 안 좋다 그말이여.

 

조실 스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아침마다 법문을 듣고, 그때도 조실 스님이 꼭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 법문을 설하시고 그래서 법문을 듣고, 또 법회가 가끔 있어서 또 법문을 듣고,

또 대중과 같이 하니까 해태심(懈怠心)을 낼라야 낼 수가 없고 그래 좋더니, 혼자 있으니까 아무리 정신을 차려서 헐라고 해도 그 혼침(昏沈)을 막기가 어렵고, 해태심이 나서 억지로 이를 갈아붙이고 해도 잘 안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다시 내가 결심을 하기를 '내가 천상 이 공부를 헐라면은 싫거나 좋거나 가서 출가를 해서 중이 되어야겠고, 일단 중이 된 이상에는 남이야 공부를 하거나 말거나, 잡담을 하거나 말거나, 술을 먹거나 담배를 먹거나 고기를 먹거나, 무슨 별 못된 짓을 하거나 말거나, 남의 흉을 보지를 말아야겠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고 해태를 할수록에 나는 더 분심을 내고 더 신심을 내서 공부를 해야겠다. 그러니 그 시비에 내가 말려들지 아니하고, 잡담하고 그런 데 내가 말려들지 아니할려면 묵언(默言)을 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가 아직 학교를 졸업을 채 못한 때인데, 그때 집안에선 모다 다니던 학교니까 졸업하고 절에 가도 늦지 않으니까 졸업을 마치고 가라 그래서, 그래서 다시 학교에 들어가가지고 그럭저럭 그냥 졸업을 하고는,

졸업한 날 학교 이발소에 가서 면도로 머리를 싹 깎어버리고는 그길로 절로 가서 조실 스님을 찾아가서 뵈옵고, 가니까 마침 고암 스님도 계시고 조실 스님도 계시고 해서 거기서 며칠 사이로 그저 가사 · 장삼을 준비를 해가지고는 계(戒)를 받았습니다.

 

받고 나서 며칠 안 있다가 묵언을 하고 그렇게 정진을 했는데, 근기(根機)가 원래 둔하고 약해서 고봉 스님처럼 그렇게 철저히 정진을 못하고, 묵언을 하면서도 온갖 시비에 다—자연히 뭔 말을 하면은 손짓 발짓을 하고 뭐라고 써서 문답을 하고, 그렇게 철저히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한 과거를 생각해 볼 때에 ‘선지식(善知識)을 여의고서는 이 공부는 못할 것이다’한 것을 알고.

 

조동종은 원래 그런 무슨 삿된 종파가 아니고, 육조(六祖) 스님 밑에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라고 하는 큰 도인이 있었는데, 그 청원행사 선사 밑에서 벌어지는 종파가 이 조동종입니다.

임제종은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 밑에서 벌어졌고, 조동종은 청원행사 선사 밑에서 벌어진 동산(洞山) 선사나 조산(曹山) 선사, 그런 대선지식 밑에서 벌어진 종파로써 전혀 삿된 종파가 아닙니다.

 

아닌데, 왜 묵조사선이라고 하냐?

 

선학사(禪學史)적으로 본다면은 오히려 조동종이 임제종보다도 더 사형(師兄)이기 때문에 조동종이나 그 선학사상(禪學史上)으로 볼 때에는 조동종이 오히려 달마 스님으로부터서 내려오는 정통이다. 이렇게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는 이 조동종 계통의 종파가 정식으로 내려오지를 못했습니다.

조동종이 내려오지를 못하고 임제종이 계속해서 계계승승해서 오늘날까지 내려와서, 그러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사람으로서 조동종 계통의 묵조선을 헐라야 내려오는 종사(宗師)가 없어서 천상 묵조선을 할라면은 책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는데, 책을 봐가지고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입니다.

 

하는 방법은 알 수가 있지만 공부를 하다가 어떤 소견이 난다든지 경계(境界)가 났을 때에 어떤 종사가 없기 때문에 점검을 받을 수가 없어. 이런 어떤 경계가 났을 때 이것이 옳은 경계인지 나쁜 경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옳게 해 가면서도 그른지 옳은지 의심을 끊틀 못하고, 잘못된 경계가 나타나도 그것이 옳은 경계인 줄 알고 거기에 그대로 나간다면은 정말 삿된 소견에 떨어져서 자기도 그르치고 자기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도 그르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 아닌 것을 생각하라’ 조동종 계통의 어록을 보면 공부하는 방법을 그렇게 표현을 했다 그말이여.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 아닌 생각을 생각하라’ 무슨 말이여?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 아닌 것을 어떻게 생각해?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아까 고봉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단(丹), 단을 얻어가지고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목숨 바쳐서 정진을 여법히 하지 않고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了達)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앞으로 육조 스님이나 부처님과 같은 또는 달마 스님과 같은 그러한 대종사가 나오셔서 우리 중생의 근기에 맞춰서 이 간화선보다도 더 훌륭한 법을 개척을 해서 지도를 하신 때에는 몰라도, 그러기 전까지는 이 간화선(看話禪)보다도 더 수승한 모든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는, 사견(邪見)에 빠지지 아니하고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법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산승(山僧)은 믿는 바입니다.

 

‘과거에, 무슨 육조 스님 이전에 무슨 화두란 소리가 어디가 있느냐?’

좁은 소견으로 내가 삼십 여년 전에 국집(局執)했던 그러한 생각이 떠올라서, 마치 오늘 고봉 스님의 단(丹)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확철대오 할 수 있는 그 단(丹)이라고 하는 법문이 나왔기에 지나간 일을 더듬어서 여러 대중께 말씀을 드렸습니다.(31분2초~51분45초)

 

 

 

(2)-----------------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추위가 한바탕 강추위를 해서 뼈골에 사무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어찌 코를 치는 진한 향기를 얻을 수가 있을까 보냐.

 

언제 읊어봐도 좋은 게송입니다.(51분46초~53분22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종장(宗匠 근본·우두머리 종/장인·우두머리 장) ; 수행한 바가 다른 이의 사표(師表)가 될 만하여 법맥을 이어받은 고승(高僧).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에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은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그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을 선양하였다.

 

이 이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하지 않으나, 법안 문익(法眼文益)선사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동」은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동이겠지만, 「조」는 동산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이 그 종지를 크게 밝혀서 완성한 때문이라 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문법에 선후와 시종을 거꾸로 붙이는 전례가 아주 없는 바도 아니지만 제자의 이름을 스승의 이름 위에 놓은 것이 당연한 경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이후에는 조계산(曹溪山)의 「조」로써 육조의 바른 갈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왔다. 또한 조산 본적의 조산도 조계산을 사모하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 가풍은 정편 오위(正偏五位)를 세워서 아주 세밀하고 말과 행실이 서로 일치하고, 이치와 일이 무르녹게 합하여, 본래면목으로써 종지(宗旨)를 삼는다.

일본의 조동종은 도원(道元: 1200~1253)이 1223년 송나라에 들어가 중국 조동종의 선승인 여정(如淨)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계승하였다. 도원 선사는 1227년 귀국하여 일본에 조동종을 전파하였다.

*초조(初祖) ; 한 종(宗)을 처음 세운 스님.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하였다.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마외도(邪魔外道) ; 불법(佛法)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외도. ‘사마’란 삿된 마구니라는 뜻으로 불도(佛道)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외도 중 삿된 견해로써 불도 수행자를 어지럽히는 자를 사마외도라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찬대(饌代 반찬 찬/대금 값) ; 반찬값. 반찬(飯饌) 값[代].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시자(侍者) ; ①시중(侍從)을 드는 사람. ②스승, 장로를 따라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승(高僧)의 가까이서 시중을 들고 명령에 따르며, 항상 용무를 다하는 제자를 말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재각(齋閣)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

*선조(先祖) ; 한집안에서 윗대의 조상.

*생식(生食) ; 음식물을 익히지 않고 날로 먹음. 또는 그런 음식.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고려 중기 보조지눌(普照知訥)이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의 원효(元曉)가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고려 후기 야운(野雲)이 지은 《자경문(自警文)》의 세 가지의 글을 합쳐서 한 권으로 엮은 책.

《계초심학인문》은 불교에 입문한 초심 행자가 알아야 할 범절과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발심수행장》에는 수행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적혀 있고, 《자경문》에는 수행인이 스스로 일깨우고 경계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 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 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지었다. 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육 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청원 행사(靑原行思) : (? – 740) 속성 유(劉)씨。강서성 길안부(吉安府) 여릉현(廬陵縣)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깨친 바 있어, 조계(曹溪)에 가서 육조의 인가를 받고, 대중의 상수(上首)로 있었다.

그리하여 육조 문하의 장로(長老)이더니, 뒤에 그 고향인 길주(吉州) 청원산 정거사(青原山靜居寺)에서 교화하였는데, 육조가 열반한 뒤에 학자들이 그 곳에 많이 모였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28년에 입적하였다.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禪師) ; 『육조단경(六祖壇經)』 참청기연품(參請機緣品)에서.

懷讓禪師  金州杜氏子也  初謁嵩山安國師  安發之曹溪參扣  讓至禮拜

師曰 甚處來  曰 嵩山  師曰 什麼物 恁麼來  曰 說似一物卽不中  師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師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西天般若多羅 讖汝足下出一馬駒 踏殺天下人 應在汝心 不須速說  讓豁然契會 遂執侍左右一十五載 日臻玄奥 後往南嶽 大闡禪宗 敕諡大慧禪師

 

회양 선사는 금주 두씨의 아들이다. 처음 숭산의 혜안 국사를 뵈니 혜안 국사는 조계로 보내 공부하도록 하였다. 회양 스님이 찾아뵙고 예배하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육조) “어디에서 왔느냐?”  (회양) “숭산에서 왔습니다”

 

(육조)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회양)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습니다”

 

(육조) “도리어 닦아 증득할 수 있느냐?”  (회양) “닦아 증득함은 없지 없지 않으나 오염은 없습니다”

 

(육조) “다만 오염되지 않는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라 네가 이미 이와 같고 나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서천의 반야다라 존자가 너의 발 아래 한 망아지가 나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예언을 하셨으니 네 마음속에 두고 모름지기 함부로 말하지 말라"

 

회양이 훤칠하게 깨우치고는 육조 스님을 15년 동안 모시면서 날이 갈수록 공부가 깊어졌다. 뒷날 남악으로 가서 선종(禪宗)을 크게 떨쳤다. 왕이 대혜선사라 호를 내렸다.

*사형(師兄) ; 한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그 스승의 제자가 된 스님를 높여 이르는 말. 법형(法兄)이라고도 한다.

*종사(宗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조사(祖師)와 같다.

*언어도단(言語道斷) ;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어이가 없어서 말하려 해도 말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말이 안 됨’으로 순화.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丹) ; 신약(神藥, 신통할 정도로 효험이 있는 약). 여기서는 중생의 무량겁 업장(業障)을 녹이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을 수 있는 약, '화두(話頭)'를 말한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 ①깨달음과 중생제도의 중대한 부처님의 임무. ②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인연 ③부처님이 정도,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여러가지 방편으로 이끌어, 모두 구한다고 하는 중대한 인연. 일단인연(一段因緣)이라고도 한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고봉 스님의 단(丹)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확철대오 할 수 있는 그 단(丹)이라고 하는 법문' ; 송담스님(No.201)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2)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9. 7. 16. 11:49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109) (게송)산월투창백~ / 물의 습성 / 중생의 망념을 여의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거각하는 것이 참나를 깨닫는 가장 가까운 길 / 일념단속 / 도솔천내원궁 / 득력.
 
일어나는 그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중생의 망념 그놈을 여의지 말고 거기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는 도리, 오직 여기에서만 바로 참나를 깨닫는 가장 가까운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모든 우리의 중생심, 번뇌 망상을 버리고 따로 찾는다면 그 사람은 무량겁을 닦아도 깨달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중생심(衆生心)을 여의고 불성(佛性)이 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생심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부처님이 있다.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진여자성, 참나, 나는 성불(成佛)을 해서 부처님으로 계실 때나, 죄를 짓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우리 중생으로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건 간에 우리의 진여불성에는 조금도 늘거나 줄거나 새로 생겨나거나 죽거나, 때가 묻거나 깨끗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여불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함이 없으면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천 가지 만 가지로 모습을 나투면서도 원래로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물에 있어서의 습성에다가 비유해서 말씀을 드렸지마는 이것은 하나의 비유에 지내지 못하고 '참나'라고 하는 것은 오직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참선(參禪)을 함으로서만이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은 우리 모두가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이 몸으로, 이 죄 많은 몸으로, 이 똥과 피와 오줌과 고름으로 가득찬 이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반드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여러분에게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제가 석 달 동안, 내년 보름까지 석 달입니다마는 하루 하루씩을, 「오늘 하루 결제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서 알뜰하게 하루를 지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09)—1979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2.4) (용109)

 

(1/3) 21분.

(2/3) 19분.

(3/3) 9분.

 

(1/3)----------------
 
산월투창백(山月投窓白)이요  계성입호명(溪聲入戶鳴)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욕지구년묵(欲知九年黙)인댄  수향차중명(須向此中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에 산위에 뜬 달이 창에 비추어서 환하구나. 그리고 시냇물 소리는 문안에까지 들려온다. 산월투창백(山月投窓白)이요  계성입호명(溪聲入戶鳴)이라.
 
욕지구년묵(欲知九年黙)인댄,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 동안 묵무언(默無言) 하신 뜻을 알고자 할진댄, 그 말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알고자 할진댄,
수향차중명(須向此中明)이니라. 모름지기 이 가운데를 향해서 밝힐지니라.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그 도리를 알고자 할진댄, 산 달이 창에 비추어서 희고 시냇물 소리가 방안에까지 들려온다. 이 속을 향해서 밝힐지니라[須向此中明].
 
 
오늘 기미년 10 15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격외선(格外禪) 도리, 내가 나를 깨닫는 도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도리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서는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무슨 뜻인지 요량을 할 수가 없지마는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고 깊고 깊어서 그래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산 달이 창에 비추어서 환하니 희고, 방안에 앉아서도 시냇물 소리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농부가 쟁기를 짊어지고 논으로 가고, 밥을 먹을 때 숟갈로 밥을 떠서 입에다 넣으면 저분은 반찬 그릇으로 간다.
 
바로 이 평상화(平常話)—우리 일상 생활에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한숨 자고, 부르면 대답하고,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봄이 오면 풀은 파릇파릇 풀이 돋아오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져서 떨어지는 이 도리,
이 도리를 내놓고는 최상승 활구법, 격외선 도리, 도솔천 내원궁, 모든 부처님이 적멸궁(寂滅宮)을 장엄하는 도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가장 빨리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발로 걸어 다니고, 손으로 일하고 글씨 쓰고, 입으로 말하고 하는 중생으로서 육체적인 모든 동작, 정신적인 모든 작용, 일상 생활을 떠나서 이것을 찾을라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 그때 거기서 생각 생각이 일어나는 그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중생의 망념 그놈을 여의지 말고 거기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하는 도리, 오직 여기에서만 바로 참나를 깨닫는 가장 가까운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모든 우리의 중생념, 중생심 번뇌 망상을 버리고 따로 찾는다면 그 사람은 무량겁을 닦아도 깨달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을 버리고서 물의 습성(濕性)을 찾아서는 영원히 그 사람은 습성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중생심을 물에다가 비유한다면 물은 온도에 따라서 때로는 흐를 수 있는 액체로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영하로 내려가면 얼어서 고체가 되기도 하고, 섭씨 백 도가 되면 끓어서 증기로 기체로 변하기도 합니다.
기체도 되었다, 액체도 되었다, 고체도 되었다, 그때 그때 상황 따라서 물도 되었다, 얼음도 되었다, 김으로도 되었다 또는 눈도 되었다, 서리도 되었다, 우박도 되었다 그때 그때 상황 따라서 변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모양으로 있던지 간에 변함이 없는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습성(濕性)이라 하는 것입니다. 습한 성질. 물의 습성이라 하는 것은 그 모양의 여하에 따라서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진여자성(眞如自性), 참나, 나는 성불(成佛)을 해서 부처님으로 계실 때나, 죄를 짓고 지옥에 가서 있거나, 우리 중생으로서 육도(六途)를 윤회(輪廻)하건 간에 우리의 진여불성에는 조금도 늘거나 줄거나 새로 생겨나거나 죽거나, 때가 묻거나 깨끗하거나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여불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변함이 없으면서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천 가지 만 가지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천 가지 만 가지로 모습을 나투면서도 원래로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물에 있어서의 습성에다가 비유해서 말씀을 드렸지마는 이것은 하나의 비유에 지내지 못하고 '참나'라고 하는 것은 오직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참선(參禪)을 함으로서만이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은 우리 모두가 올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이 몸으로, 이 죄 많은 몸으로, 이 똥과 피와 오줌과 고름으로 가득찬 이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반드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여러분에게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도, 모든 성현들도 깨닫기 전에는 우리 범부(凡夫)와 똑같은 것입니다. 깨달으면 그것을 '깨달은 분'이라 해서 '붓다(Buddha)'라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고, 깨닫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범부인 것입니다.
 
범부와 성현과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부처님 경전에 말씀에는 「중생과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은 참 말씀이요, 진실한 말씀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중생심(衆生心)을 여의고 불성(佛性)이 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생심 있는 곳에는 반드시 부처님이 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설사 그것이 얼음이 되었건, 우박이 되었건, 눈이 되었건, 물의 변화체에 어떠한 변화된 상태에 있건 간에 거기에는 반드시 습성(濕性)이 있는 거와 같이, 모든 중생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 중생을 여의지 아니하고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갖고서,
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지도하에 열심히 생활 속에서 슬픈 일을 당하면 슬픈 일 속에서, 괴로운 일을 당하면 괴로운 일을 당한 바로 거기에서 괴로운 것을 띠어 버릴려고 하지 말고, 슬픈 것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바로 그 슬픔 속에 젖어 있는 그 자리에서 그 속에서 '이 뭣고?' 이렇게 한 생각을 돌이킨다면 그 슬픈 그 상황이 바로 선방(禪房)이요, 선불장(選佛場)이요, 부처님 회상(會上)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 하는 방법이며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최상승법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넓고 범위가 넓고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좋은 길인 것이며 또한 어떠한 근기가 하열 하건, 죄가 많건, 몸이 아프건 그런 것, 오히려 그러한 역경계(逆境界) 속에서 더욱 간절해질 수 있는,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그래 가지고 깨달을 수 있는 그러한 미묘하고도 고마운 길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절로 절로 다니시면서 기도를 주로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주로 염불이나 경을 읽으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천수(千手)를 열심히 하시거나, 여러 가지 그러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것도 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한, 정법(正法)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부처님과 성현들이 설허신 다 미묘한 방편(方便)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우리는 방편을 통해서 그것을 징검다리로 해서 바로 구경(究竟)의 길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지, 방편에 오래 집착해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동안 용화사에서 누누이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과 저의 말씀을 통해서 어떠한 것이 방편이고, 어떠한 것이 바로 직접적으로 설해 드리는 경절문(徑截門), 바로 가깝고 바른 길인가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동안거 결제(結制)일인 동시에 백일기도 입재(入齋)일입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 오대산이라든지 남해 보리암이라든지 강화 보문, 낙산사 이런 성지(聖地)로 가서 기도를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마는 참 기도는 때와 장소가 따로 없어야만 정말 참다운 기도가 된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부처님은 꼭 오대산만 가야 거기에 계신 것이 아니고 바닷가만 가야 거기에 관세음보살이 꼭 계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편의상 보다 더 철저한 마음으로 일주일이나 사흘 간을 철저하게 기도를 하기 위해서 그러한 성지를 찾아가는 것도 또한 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마는 우리는 노상 그런 성지만 찾아가야만 기도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한 생각 간절한 마음으로 불보살(佛菩薩)의 명호(名號)를 염(念)할 때 그곳에는 언제라도 불보살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먼 데서 오셔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생각 정성스럽고 간절할 때에는 언제나 거기에 불보살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특별히 기회를 내서 성지에 가는 것도 뜻은 있다고는 하지마는, 우리는 꼭 그때만을 기도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차중에서,
더군다나 이 절에 오시고 가시고 할 때 또 절에 와 계실 때 언제 어디라도 바로 그 자리가 법당이요, 성현이 계시고 기도 도량으로 알고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신다면 그분이야말로 정말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처음~20분42초)
 
 
 
 
 
(2/3)----------------
 
언젠가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옴마니반메훔'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다 좋은 염불이요 주문이지만 '이 무엇고?' 한번 거각(擧却)하는 것이 '관세음보살, 옴마니반메훔' 육백만 번하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곳에 최상승 활구참선을 하면 그것은 바로 팔만대장경을 다 읽고 그것을 바로 실천에 옮긴 것과 똑같은 이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많은 경을 읽으신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아무리 많은 대소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을 다 읽으신다 하더라도 올바르게 읽으신다면 결국은 '이뭣고?' 참선을 할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읽지 아니하고도 이 말씀을 정말 뼛속 깊게 믿고 느끼고 그리고 실천을 하신다면 더욱 좋은 것입니다.
 
참선을 하라고 권고를 하면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경전도 읽어보지를 못했고 절에도 별로 다니질 안 해서 뭘 좀 알아야 하지, 아무것도 몰라가지고 무슨 참선을 하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무슨 읽을 책을 좀 구해달라고 이러한 부탁을 하시는 분들 가끔 만납니다.
 
많이 알아 가지고, 불교에 교리에 대해서 모다 많이 알아야만 참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저것을 많이 알아가지고 참선을 잘 못한 그런 분도 많이 있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경도 별로 읽어 보지를 못하고 다못 시키는 대로만 고지식하게 진실하게 하는 분이 오히려 더 공부를 잘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많이 읽고 생각하고 알고 그래 가지고 교리에 대해서 '뭐?'하면 줄줄줄줄 줄줄줄 아주 거 잘 해설을 하고 말을 하고 그리고 그것으로써 스스로도 흐뭇하게 생각하고, 많이 불교에 대해서 자기가 참 공부를 많이 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신 분도 있습니다.
물론 불교에 대해서 후배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교는 좋다고 하는 것을 얘기함으로써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불법을 믿겄게 하는 데에는 하나의 좋은 재료가 될 수가 있고 방편이 될 수가 있지마는, 자기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서는 그러한 것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공부를 잘한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공부에 장애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물론 불법은 자기 한 사람만 좋으면 그만인 게 아니고—자기만 옳게 믿고 닦으면 그만이다, 그것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도 이러한 좋은 불법을 믿고 실천하게 하도록 해 주기 위해서 손을 이끌어 주고 권고하고 이렇게 하는 것도 큰 복을 짓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좋고 남도 이롭게 하는 대승불교요,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여러분들께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어서 참선을 하도록 서로 이끌고 권고하고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공양미(供養米)라든지 성금을 갔다가 부처님께 올리고 불공을 드리고 기도를 하고 그런 것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불법을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 공덕이 몇십 배 더 수승하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다른 사람에게 밥을 주고 돈을 주고 옷을 준 그런 물질적인 공덕 짓는 것은 한정이 있어. 언젠가는 거기에 해당한 복을 받고 나면 그것으로써 끝이지만,
말로써건, 자기의 마음으로써건 또는 행동으로써 남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어 가지고 자기를 인연해서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닦도록 해 준다면 그것은 영원한 무루(無漏)의 복(福)을 짓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공부를, 자기 마음 닦는 화두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계속 동분서주, 그런 복을 짓기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이루어질랴면 오면서 가면서, 일을 하면서 차를 타면서 화두를 들고 가고, 화두를 들고 오고 이렇게 해서 자기 생활이 완전히 화두를 중심으로 해서 화두 관조(觀照)하는 것을 여의지 아니하면서 생활을 하게 되면 자기도 나날이 향상되어 가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향상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에 모든 재앙과 장애와 업은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지어서 받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정법으로 돌려서, 참나 깨닫기 위한 진실한 수행이 바로 생활이 될 때에 그 생활은 한 걸음 내디디고 한 손 올렸다 내린 모든 자기의 동작, 눈 한번 감았다 뜨고 입으로 말하고 밥 먹는 모든 동작이 고대로 참된 수행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같이 생활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 그러한 행동, 그러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들은 다른 사람에게 많은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수행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는 조금도 옛날보다 더 향상되는 것이 없이 입으로만 '참선을 해라, 정법을 믿으라' 아무리 권고해 봤자 별로 그렇게 그 사람이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내 먼저 철저히 정법을 믿고 일상 생활 속에서 아주 진실하게 수행을 함으로써 '그분의 말과 마음가짐과 모든 행동이 그 전보다 더 모든 점에 있어서 향상이 되고 개선이 되야 한다'고.
나아가서는 그 사람 몸에서는 코로 맡을 수 없는 미묘한 향내가 풍기게 될 때에 주변 사람들은, 더욱이 가정에 모든 사람들 이웃에 모든 사람들은 자연히 그 사람을 따르게 되고 믿게 되고 말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순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의 수행법이며, 생활이며 포교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기도 입재요, 결제로써 우리는 물론 이 용화사 선원에 결제에 방부(房付)를 드린 분도 계시고, 또 결제에는 들지 아니하지만 백일기도에 참석하신 분도 계시고 그러겠습니다.
 
어떻든 간에 '한 생각' 간절하게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곳에 백일기도는 거기에서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여물어 가는 것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고 간에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곳에 성불(成佛)을 향해서 스스로 향상되어 가는 것입니다.
 
백일기도는 한 생각 단속으로,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백일기도를 성취하느냐 못하느냐에 기로가 거기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단속하지 아니하고 방치한 곳에는 마구니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틈을 거기에서 열어주는 것이 되는 것이고, 모든 재앙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터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량겁이 바로 이 한 생각, 일념지간(一念之間)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한다면 무량겁 업도 소멸이 되고, 무량겁 생사를 끊는 길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한 생각이 바로 무량겁(無量劫)인 것입니다. 한 생각을 떠나서 무량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그러려니와 이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자리를 여의고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솔천, 아까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대한 말씀이 계셨지마는 도솔천 내원궁은 불과 물 그런 삼재(三災)의 겁풍이 도달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외원궁까지도 불과 물에 겁풍이 도달하지만 내원궁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솔천 내원궁은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出現)하시기 위해서 지금 대기하고 계신 곳이 바로 도솔천 내원궁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은 바로 극락세계와 조금도 차등이 없을 만큼 그렇게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성현들이 도솔천 내원궁에 환생(還生)하시기를, 거기에 왕생(往生)하시기를 발원을 하셨습니다.
지금 앞으로 56억 7천만년 뒤에 출현하실 하강(下降)하실 미륵 부처님, 미륵불도 지금 도솔천 내원궁에 대기하고 계십니다.
 
그 도솔천 내원궁이 저 하늘나라 높은 데에 있다고 생각하시지를 말고 도솔천 내원궁은 우리의 자성(自性) 본궁이다. 내가 한 생각 탁! 깨달으면 깨달은 바로 그 본각 자리가 도솔천 내원궁이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러한 뜻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이것은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볼 때에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죽어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기를 발원하기보다는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실 수 있다면 그것이 더욱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길을 열심히 한다면 살아서 가는 사람이 죽어서 못 갈까 걱정할 것은 하등에 없는 것입니다.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법이 바로 우리의 중생의 일념, 그 한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어떠한 생각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 어떠한 고약한 욕심스런 생각이건, 누구를 해롭게 헐랴고 하는 그러한 나쁜 생각일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때일수록 그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숨을 깊이 들어마셔서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돌이켜서 단속해 나가면, 그러한 노도(怒濤)와 같이 일어나는 어떠한 중생에 번뇌 망상에 마음이라 할지라도 스르르르르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다 보면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 달 일 년 이렇게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따라서 점점 그것이, 생각 돌려서 화두 드는 것이 습관이 되고 또 나아가서는 그것이 체질화가 되어서 그렇게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그렇게 되어진다면, 언제나 순일무잡하게
일여(一如)하게 그렇게 공부가 되어간다면 바로 그것이 득력(得力)을 하는 것이여.
 
'득력(得力)은 생력(省力)이다, 힘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힘을 더는 것이다'
애를 써도 처음에는 잘 안되고 깜박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서 못하고 그러다가 한 달 두 달 일 년 이태 이렇게 공부를 함으로써 할랴고 안 해도 무심 속에 저절로 그렇게 공부가 되어 가면 그것이 바로 힘을 더는 것인데, 그 힘을 더는 것이 바로 득력하는 것이다, 힘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질 때 스스로 가만히 자기 자신을 반성을 해 보면, 완연히 내가 이 참선 공부를 하기 전의 자기와 참선을 해 가지고 벌써 오늘에 이르러서와 스스로 냉정하게 반성을 해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내가 어쩌다가 이러한 좋은 법을 만났던가?' 스스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참 보람을 느끼고 스스로 참 이 행복함을 느끼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이 정법에서 물러나지 않겠다' 이러한 결심이 서게 될 것이며, '내가 금생에 이 몸 있을 때 기어코 대도를 성취하겠다'고 하는 이런 신심이 돈발(頓發)하게 될 것입니다.(20분46초~40분6초)
 
 
 
 
 
(3/3)----------------
 
결제가 석 달 동안, 내년 보름까지 석 달입니다마는 하루 하루씩을, 「오늘 하루 결제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서 알뜰하게 하루를 지내셔야 하는 것입니다.
 
선방에 계신 스님네와 보살님 또 가정에 계신 보살님네나 거사님들, 하루씩을 딱 결정을 하셔요.
「하루 결제다」 이리 생각하고,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가벼운 운동도 하고 그래가지고 좌선(坐禪)을 떠억 해서 30분이건 한 시간이건 이렇게 딱! 하고서 새벽부터서 하루 결제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직장에 가실 때, 직장에서 모든 사람을 만날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건 간에 하루 결제를 아주 알뜰하게 하셔서 그날 저녁에 침대에 들기 전에 또 30분 내지 1시간을 터억~ 좌선을 하시고,
자리에 누워서 '내가 오늘 하루는 얼마만큼 알뜰히 공부를 했나? 이러이러한 일은 내가 이때 내가 잠깐 화두를 놓쳤었구나. 내일은 더 알뜰히 해야겄다' 이렇게 반성을 하고서 눈을 딱 감은 채 심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숨을 스르르르 들여마셔 가지고 잠깐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
 
눈을 감고 자리에서 잠을 청하지를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생각 생각에 화두를 거각하면은 언제 잠이 오는 줄 모르게 잠이 스르르르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 이튿날 자기가 필요할 때 저절로 눈이 딱! 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딱! 뜨자마자 새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엊저녁에 잠자리에 누워서 들던 그 화두가 고대로 딱 들어져 있는 것을 느끼게 될 날이 있습니다.
 
시간을 보면은 대여섯 시간이 지내갔는데, 실지 자기 생각에는 한두 시간 잠깐 눈 붙인 거 같이 그렇게 잠을 별로 안 잔 거 같이 느껴지지만 그렇게 몸이 가볍고 정신이 깨끗하고, 그러지만 너무 깊이 너무 맛있게 달게 잤기 때문에 대여섯 시간을 잤어도 그렇게 짧은 시간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바로 눈을 감고 자는 상태에서도 고대로 화두가 들려져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공부가 무르익어 가면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는 것입니다. 잠을 잘 때나 눈을 떴을 때나 언제라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될 때까지 한 생각 한 생각을 꾸준히 들고 열심히 해 나가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할까 염려할 것도 없고, 빨리 깨닫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일여하게 되어 간다면 버려야 할 망상도 없고, 해탈해야 할 생사도 없고, 깨달라 증득해야 할 열반(涅槃)도 따로 바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생사가 없는데 증득해야 할 열반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사(祖師)가 말씀하시기를 「단진범정(但盡凡情)이요 별무성해(別無聖解)니라. 다못 범부에 정이 다할지언정 별무성해다. 따로 성스러운 알음알이를 내지 말아라」
 
간절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묵묵히 화두를 관조해 나가는 곳에 일체 범정(凡情), 범부의 망상 번뇌는 거기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범부에 번뇌 망상이 바로 보리심(菩提心)으로 바꿔지는 곳인 것입니다.
보리심으로 바꿔졌는데 무슨 성인의 성스러운 알음알이를 새로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성해(聖解)를 새로 짓는 곳에 망상의 물결이 치게 되는 것입니다.
 
'(법문 끊김) 그것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었습니다마는.
저에게가 오늘 말씀드린 말을 잘 이해를 하신다면 번뇌가 일어난다고 짜증을 낼 것도 없고, 화두가 잘 안 들린다고 짜증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바쁘다고 핑계댈 것도 없고 몸이 아프다고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몸이 아프건 바쁘건, 가정에 어떤 근심 걱정이 될 만한 일이 있건 없건, 그럴수록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오직 이 하나를 위해서 모든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이 똘똘 뭉쳐서 일념 단속하는 데에 회향(廻向)이 된다면 바로 거기에서 모든 재앙(災殃)과 액난(厄難)은 거기에서 소멸이 되고, 재앙과 액난 없으면 소원은 성취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결제와 백일기도 입재를 기해서 여러 사부대중께 간곡히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욕식불조회광처(欲識佛祖廻光處)인댄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약 부처와 조사의 회광처(廻光處)를 알고자 할진대는 다못 그 뜻을 허공과 같이 할지니라.
일부로 마음을 비워서 허공과 같이 헐랴고 허면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로서 가장 빨리 부처님의 마음과 같이 될려면 우리로서는 화두를 거각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것입니다.(40분9초~49분12초)(끝)
 
 
 
----------------(1/3)
 
*(게송) ‘산월투창백~’ ; 『소요당집(逍遙堂集)』 소요 태능(逍遙太能)의 ‘무제(無題)’ 게송 참고.
*달마대사(達摩大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https://emokko.tistory.com/55
*면벽구년(面壁九年) ;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가 9년 동안 면벽했던 고사를 가리킨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하였으나 무제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마침내 물러나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낙양으로 가서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다.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말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기 9년을 지냈다.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뒤부터 선승(禪僧)들이 선원에서 벽을 향하여 좌선하게 되었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을 말한다.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평상화(平常話) ; 평범한 말. 평상시의 말.
*적멸궁(寂滅宮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집·대궐·절·마음 궁) ; 적멸의 궁전은 적멸을 형상화한 말로서, 부처님의 깨달은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欲)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부처님 경전에 말씀에는 「중생과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다」' ; 삼무차별(三無差別). 마음[心]과 부처[佛]와 중생(衆生) 세 가지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삼법무차(三法無差)라고도 한다.
[참고] 60권본 『화엄경(華嚴經)』 불타발타라 역(佛馱跋陀羅 譯) 제10권, 제16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說偈品).
心如工畫師 畫種種五陰 一切世界中 無法而不造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마음은 (빛깔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화가와 같이 갖가지 오음으로 그림을 그리니, 일체의 세계 속에서 짓지 못하는 법이 없네. 마음과 같이 부처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 또한 그러하니, 마음 · 부처 · 중생, 이 세 가지는 차별이 없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근본 성품, 각성(覺性), 자성(自性).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249.
선방만 선방이 아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곧 선방이라, 선방에 상주(常住)하는 것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간단(間斷) 없이 정진할 수 있나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과거시험(科擧試驗 예전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관리 채용 시험 제도로서 보는 시험)을 보는 장소에서 유추된 말이다.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선당(禪堂) · 승당(僧堂) · 선방(禪房) 등을 가리킨다. 수행자들이 선방에서 좌선하여 도를 깨달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4권 「단하천연전(丹霞天然傳)」
鄧州 丹霞天然禪師不知何許人也 初習儒學 將入長安應擧 方宿於逆旅 忽夢白光滿室 占者曰 解空之祥也 偶一禪客 問曰 仁者何往 曰 選官去 禪客曰 選官何如選佛 曰 選佛當往何所 禪客曰 今江西馬大師出世 是選佛之場 仁者可往 遂直造江西
 
등주 단하천연선사는 어느 곳의 사람인지 모른다. 처음에 유교를 배워서 장안으로 과거에 응시하러 가던 길에 여관에서 자다가 홀연히 밝은 빛이 방에 가득차는 꿈을 꾸었다. 이에 점치는 자가 '공을 터득할[解空] 상서로운 조짐이다'라고 풀었다.
우연히 어떤 선객(禪客)이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 '관리 뽑는 시험을 보러 갑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선객이 '관리 뽑는 시험이 어찌 부처 뽑는 시험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단하가 '부처 뽑는 시험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고, 선객이 '지금 강서(江西)에서 마조대사가 출세 했습니다. 그곳이 부처를 뽑는 시험장[選佛之場]이니 그곳에 가보도록 하십시오'라고 한 말을 듣고 그길로 강서로 갔다.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 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이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이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 옮긴 사람이면, 그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그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때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
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를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천수(千手) ;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말함. 82구(句)의 주문(呪文). 천수관음의 공덕을 말한 것으로, 이것을 외면 모든 죄업이 없어진다고 한다.
대비주(大悲呪), 천수주(千手呪),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千手千眼大悲心陀羅尼)라고도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입재(入齋) ; 재(齋)를 시작하는 일. 또는 그 의식.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명호(名號) ; 명자(名字), 명(名)이라고도 함. 이름. 주로 부처님과 보살의 이름이기에 존호(尊號), 가호(嘉號) 등이라고도 한다. 이 명호(名號)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는 것에 커다란 작용이 있다고 여기고, 여기에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등의 행(行)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2/3)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 ; 십이부경(十二部經)은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그 경문의 서술 형식 또는 내용을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은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팔만사천법문.
*대승교(大乘敎) : [범] Mahayana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한다。큰 원(願)과 큰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와 만행(萬行)을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그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
이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 온갖 물질과 일(森羅萬象)이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다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공양미(供養米) ; 공양에 쓰는 쌀. 공양으로 바치는 쌀.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는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일여(一如)하다 ; 내가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면 내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3/3)
 
*좌선(坐禪) ;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선(禪) 수행을 하는 것.
*오매일여(寤寐一如 잠이 깰 오/잠잘 매/하나 일/같을 여) ; 자나깨나 언제나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가로판 p87)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재앙(災殃 재앙 재/재앙 앙)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게송) '욕식불조회광처(欲識佛祖廻光處)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 '부처님과 조사님의 회광처(廻光處 깨치신 도리)를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 뜻을 허공처럼 맑히어라'
[참고] 80권본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역. 제50권 제37의 1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보현보살(普賢菩薩) 송(頌)
약유욕지불경계(若有欲知佛境界)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 원리망상급제취(遠離妄想及諸取) 영심소향개무애(令心所向皆無礙)
만약 어떤 이가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 뜻을 허공처럼 맑히어라. 망상과 모든 집착 멀리 여의면 그 마음 향하는 바 걸림이 없으리라.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8. 9. 27. 13:57

 

 

§(311) (게송) '역력이빈주~' /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법, 활구참선법 그거 하나를 위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오신 것 / 활구참선과 사구참선.

 

요새 참선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지마는, 정말 이 활구참선을 지도하고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 않는 것입니다. 참선이면 다 같은 것 같지마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활구참선은 숙세에 정법(正法)의 씨를 심은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어도 믿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권고해도 마음이 쏠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는 거여. '판치생모'란 뜻이 무슨 뜻인지 그것도 알 필요도 없고, 다못 ‘어째서 조주 스님이 판치생모라 했나?’ 그렇게만 자꾸 해 나가는 거여.

 

**송담스님(No.311)—1986년 10월 첫째일요법회. (용311)

 

약 20분.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요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전근기취(目前勤其取)하라  산립백운중(山立白雲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요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다.

역력해서 빈(賓)과 주(主)를 여의었고. ‘역력(歷歷)하다’는 말은 명백(明白)하다 말이여.

요요명명(了了明明)하고 소소영령(昭昭靈靈)해 가지고, 명백해서 주객을 여의었어. '주관이다 객관이다'하는 주객을 여의어 버렸어.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다.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해서, 고요하고 고요해서 색(色)과 공(空)이 끊어져 버렸다.

 

목전근기취(目前勤記取)하라. 목전(目前)에 부지런히 기취(記取), 정신을 차려서 그놈을 똑바로 봐라.

산립백운중(山立白雲中)이다. 산이 백운(白雲) 가운데 서 있느니라.

 

중생은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반드시 거기에 분별심을 일으켜.

‘좋다 나쁘다, 이것은 니 것이다 내 것이다, 푸르다 누르다' 그러한 분별심을 일으키고. '이것은 색이다 공이다' 그러한 차별심을 일으키기 때문에 벌써 분별심을 내고 차별심을 내면 그것이 바로 주객에 떨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공(空) 아니면 색(色)이요, 색(色) 아니면 공(空)에 걸린 것이다 그말이여.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눈으로 무엇을 보던지,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한 생각이 일어나던지 다못 목전에 알 수 없는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해 나갈 뿐이여.

 

 

금방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활구참선의 법문을 들었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이 이 바쁜 세상에 일주일 동안을 부지런히 일하고 생활을 하다가 일요일이 되면 산이나 들이나 강이나 어디 그런 데 가서 피로를 풀고 하루 동안을 재미있게 부담없이 잘 지내야 피로가 해소가 되고 그래서 또 월요일이 되면은 가뿐한 마음으로 직장에 모두 나가시고 생업에 종사를 하셔야 할 텐데 왜 그러한 재미있는 곳을 버리고 여기를 이렇게 많이 오셨느냐?

재미있는 얘기를 들을라고 오신 것도 아니요, 무슨 어려운 교리를 설명을 듣자고 오신 것이 아니여.

 

재미있기로 말하면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던지, 영화를 보던지 얼마든지 재미있는 곳이 있을 것이고, 어려운 교리 모다 경에 대한 해설을 듣고 싶으면은 여러 군데 다른 절에서도 경에 대한 해설을 하는 곳이 많이 있으니 거기를 가시면 될 것인데, 왜 하필 이 주안(朱安) 염전 가에 이런 절에까지 이렇게 오셨느냐?

 

그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그거 하나를 위해서 여기에 오신 것이다.

마침 오늘 전강(田岡) 대선사(大禪師)의 활구참선에 관한 법문을 오늘 듣게 되었습니다.

 

활구참선.

요새 참선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지마는, 정말 이 활구참선을 지도하고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 않는 것입니다. 참선이면 다 같은 것 같지마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활구참선은 숙세에 정법(正法)의 씨를 심은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어도 믿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권고해도 마음이 쏠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 활구참선은 재미가 없거든.

 

이론적으로 분별해서 일러주고 또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들을 것이 있고 이리해야 가리키기도 좋고 배우기도 좋고 또 고대로 따라서 하면은 할 맛도 나고 그러니 재미도 있고 그럴 텐데, 해 갈수록 꽉 막혀서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여기에 재미를 붙일 수가 있느냐 그거거든.

 

그래서 숙세의 종자(種子), 바른 종자가 아니면 이것은 발을 붙이지를 못합니다.

전부 다 비방하고 돌아서 버리고, 자기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남도 못하게 하는 것이여. '그게 무슨 재미가 있어서 하느냐? 그거 해서 뭐하느냐?'

 

활구선(活句禪)의 상대되는 말이 사구선(死句禪)인데, 이 활구선(活句禪)은 참구(參句)여, 참구. 그리고 사구선(死句禪)은 참의구(參意句)고.

 

참구(參句)라 하는 것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져서 더듬어 들어갈 것도 없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입니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가 무엇입니까?'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셨는데, 인도는 서쪽에 있고 중국은 남쪽에 있으니까, “달마 조사가 서쪽에 있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조주 스님이 답을 하시기를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어.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대해서 여러 가지로 대답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참선법을 펴시기 위해서 왔다든지,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심전심(以心傳心)한 그 진리법을 전하기 위해서 왔다든지, 여러 가지 그리고 누구든지 알아들을 만한 대답이 있을 텐데, 밑도 끝도 없이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어.

 

또 다른 학자가 또 조주 스님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하파부주(下坡不走)니라. 언덕에 내려서 달아나지 않느니라’ 이렇게 대답하기도 하고.

그 묻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하셨는데, 도무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또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어떻게 따져 볼 수 없고, 따져 봐야 알 수 없는 그러한 대답을 하셨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이리저리 따지고 분별하고 복탁(卜度)하고 그래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아하! 이런 뜻이로구나’ 이렇게 따져 들어가면서 그래 가지고 그것을 참선을 한 걸로 착각을 하고. 또 그렇게 따져서 그럴싸한 어떤 결론을 얻으면 자기가 그 공안을 깨달았다고 이렇게 착각을 하고 그런데.

 

그러한 식의 참선을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의리선(義理禪)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또 '참의구(參意句)다, 그 뜻을 참상(參詳)한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모다 '죽을 사(死)'자 사구선, 죽은 참선이여. 영원히 따지고 별별스런 결론을 얻어 봤자 참다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참선이여.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죽은 참선이라 해서 이것을 사구참선이라, 사구선(死句禪)이라 이러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는 거여.

'판치생모'란 뜻이 무슨 뜻인지 그것도 알 필요도 없고, 다못 ‘어째서 조주 스님이 판치생모라 했나?’ 그렇게만 자꾸 해 나가는 거여.

 

이것은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고, 무슨 지식의 유무도 상관이 없고, 또 무슨 경전 금강경이나 뭐 법화경이나 반야심경이나 또는 화엄경이나 능엄경이나 그런 경전에 대한 풀이라든지 해석 그런 것을 알고 모른 거도 전혀 상관이 없어.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어로(無語路)하고 말 길도 없고, 무이로(無理路)하고 이치 길도 없고, 무모색(無摸索)이다. 더듬어 찾을 것도 없어. 거두절미(去頭截尾)여. 머리도 꼬랑지도 없이, 앞도 뒤도 없이 무조건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이여.

 

이렇게 해 나가면 아무 재미도 없지만,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은 퍼뜩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눈으로 하늘에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퍼뜩 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귀에 들리면 그 자동차가 소리로 따라가지 말고 탁! 생각을 돌이켜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거나 좋은 소리를 듣거나 좋은 생각이 나거나 화두를 들고, 슬픈 것을 보아도 나는 화두를 들고, 기쁜 것을 보아도 화두를 들고, 불교의 교리에 관한 어떤 의심이 나거나 세속사에 관한 어떤 의심나는 점이 있어도 나는 화두를 들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렇게 단속을 해 가고, 하루하루를 이렇게 공부를 해 가면, 처음에는 화두를 챙기려고 해도 잊어버리고 챙겨도 금방 잊어버리고 자꾸 화두를 놓쳐 버리고 그런데.

 

일구월심(日久月深) 이렇게 애를 써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져.

앉아서도 화두요, 서서도 의심이요, 걸어가도 의심이요. 이것이 바로 힘을 더는 것이여. 애써서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니까 그 힘을 더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가 이렇게 차츰차츰 익숙해 가면 자기가 가만히 자기를 가끔 반성을 해 보고 자기를 돌아보거든.

'내 공부가 과연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나의 신심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내가 불자(佛子)로서 지금 불교를 믿고 참선을 시작한지가 1년이 되었다든지 또는 3년이 되었다든지 이렇게 되었으니 과연 내가 불자로서 얼마만큼 되어 가고 있는가?' 자기를 한 번씩 반성을 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여.

 

참선을 놓아 버리고 세속 일에 얽매여서 그럭저럭 지낸 뒤끝에 생각해 보고.

또 세속 생활, 그 복잡한 생활 희로애락 속에 살면서도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 내지 30분이라도 한결같이 새벽 정진을 하고, 낮에도 생각 생각에 돌이켜서 애를 쓰고 그럴 때 반성을 해 보고.

 

애써서 한 뒤끝에는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생각해 봐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고, 공부를 놓아 버리고 그럭저럭 지낸 뒤끝에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공연히 불안하고 초조함을 느낄 것입니다.(처음~20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著) ‘도능선자(道能禪子)에게’ 참고.

*요요명명(了了明明) ; 요요(了了)하고 명명(明明)하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고 분명한 모양. 명확한 모양. 슬기로운 모양. 현명한 모양.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명명(明明) ; 환히 드러난 모양. 분명한 모양.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요요하다(寥寥-- 쓸쓸할·텅 빌 료) ; ①(장소가)고요하고 쓸쓸하다. ②매우 적고 드물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공(空) ; ①모든 존재는 여러 인연으로 생겨남으로 항상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 자성이 없음(無自性).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불교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공은 전혀 없다는 무(無)나, 결국 사라져 덧없다는 허무(虛無)가 아니다. 또 공(空)은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체 · 본질이 아니라, 존재의 무실체성 · 무자성 등을 자각함으로써 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표이다.

공을 허무나 실체로 보는 것은 공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참된 공[眞空]이 아니라 무기공(無記空) · 편공(偏空) · 악취공(惡取空) 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의 병[空病]에 대한 약으로 '공도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차별과 분별로써 인식된 대상은 관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 가치나 감정이 부여된 인식 대상은 인식 주관이 조작한 허구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대상은 허구라는 뜻.

③잇달아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이 끊어진 상태. 번뇌와 분별이 소멸된 상태. 분별과 차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기취(記取) ; 명심하다. 기억하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구(參句) ; 언구(言句 화두)를 참상(參祥)하는 것.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參意)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參句)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참상(參祥) ; 참구(參究).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 진리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

*복탁(卜度 점칠 복/헤아릴·추측할 탁) ; 점치고 헤아림.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8. 5. 25. 12:58

 

 

§(356) (게송)금강보검의천한~ / 활구참선을 하고 사구참선을 하지말라.

 

깨달음은 생사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사심에 즉(卽)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 데에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 말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이리 해야 그것이 바로 참선을 해 가는 거고, 참선을 바로 해 가야 바른 깨달음에 도달을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56)—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 (용356)

 

약 11분.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한디  일휘능최만인봉(一揮能摧萬仞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변계마군종차락(徧界魔軍從此落)하면  유하정매틈기중(有何精魅闖其中)고

나무~아미타불~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이다. 금강의 보배 칼이 하늘을 의지해서 서릿발이 치는데,

일휘능최만인봉(一揮能摧萬仞峰)이다. 한번 휘둘러서 능히 만 길이나 되는 봉우리를 갖다가 꺾어 버리더라.

 

변계마군종차락(徧界魔軍從此落),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두루 꽉 차 있는 그 마구니가 이로 좇아 떨어지니,

유하정매틈기중(有何精魅闖其中)고, 무슨 정매(精魅), 도깨비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속을 엿볼 수가 있겠는가.

 

방금 전강 조실 스님께서—갑인년이면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해인데, 그해 정월에 설하신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점은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활구참선!

활구참선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요.

 

요새 참선, 많은 사람들이 참선(參禪)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모두 참선을 알려고 그러고, 참선을 할려고 노력을 하고—그런데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그 선양을 하신 그 참다운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다 그말이여.

 

공안(公案)을 가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분석하고 따지고, 그래서 분별하고 따지면,

아무리 그 공안을 타파해서 생사해탈하는 그러한 공안이라 하더라도 중생심으로 따지고 분석하고 그러면 그 훌륭한 공안이 사구(死句)가 되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백 년을 따지고 천 년을 따지고 무량겁을 따져도, 따질수록 점점 공안의 참뜻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고.

따라서 참 깨달음을 향해서 정진을 해야 할텐데 따지다 보면 깨달음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가거든.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어져 버리고 말아버리는 것이여.

 

비단 조실 스님 법문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께서 설(說)하신 법이 바로 이 활구참선을 설하신 것입니다.

 

성현이 가신 때가 멀고, 법은 마강법약(魔强法弱), 마구니는 강해지고 법(法)은 약해져.

그러니 부처님의 설하신 법도 중생 나름대로 사견(邪見)을 붙여서 사법(邪法)을 만들고, 조사가 선양하신 활구참선법도 이렇게 말세가 되니까 자꾸 중생의 소견으로 사량분별을 붙이고, 이치 길로 따지고 말 길로 따져서 더듬어 들어가서 자기 나름대로 온갖 삿된 소견을 붙여서 분석을 하니, 그것이 참다운 참선인 줄 알고 전부 후래(後來) 학자들은 그 공부 첫걸음부터 그르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기가 쉬우냐 하면 활구참선은 말 길이 끊어지니 뭐라고 입을 벌릴 수도 없고, 이치 길이 끊어졌으니 뭐라고 거기 분석을 할 수도 없고.

밤낮 ‘알라야 알 수 없고,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곳을 향해서 의단(疑團)을 거각(擧却)하라!’ 그렇게 한 달을 해보고 두 달을 해보고 일 년을 해보고 이태를 해봤자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

 

그런데 일본 책이라든지, 그런 모다 공안을 이리저리 분석해서 따져 논 그런 책을 보면 모두 읽을 맛이 있고 재미가 있다 그말이여. 알아지는 것이 있고 얻은 것이 있고 그러니까.

그러니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모두가 다 그런 책을 읽어 가지고, 명색(名色)이 참선을 한답시고 한 것이 모두 의리선(義理禪)만 허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 나라에 경허 스님, 만공 스님 이후로 쭉 내려오는 활구참선법은 공안을 그런 식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행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떠한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해도 사구참선(死句參禪)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어.

설사 10년을 하고 30년을 하고 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아무 소견이 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갈지언정, 무슨 사량분별을 가지고 어떤 소견이 나기를 바래고 어떤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무슨 가늠이 가고 이러기를 바래지를 말어야 한다.

 

열 가지 공안 또는 백 개, 이백 개 내지 삼백 개, 천이백 공안에 대해서 해석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 소견이라,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얻어지는 해석은 생사심(生死心)만을 더욱 조장할 뿐 깨달음에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여.

 

깨달음은 생사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사심에 즉(卽)해서 대의단으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 데에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 말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이리 해야 그것이 바로 참선을 해 가는 거고, 참선을 바로 해 가야 바른 깨달음에 도달을 하는 것입니다.(처음~11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서릿발(이) 치다 ; ①서릿발이 생기다. ②기세가 매우 매섭고 준엄하다.

*서릿발 ; 겨울철에 땅속의 수분이 얼어 성에처럼 되어 기둥 모양으로 뻗어 있는 것. 또는 그로 말미암아 지면이 부풀어오르는 현상.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정매(精魅 도깨비·정령·요괴 정/도깨비·요괴 매) ; 도깨비(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잡된 귀신의 하나).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명색(名色) ; ①어떤 부류에 붙여져 불리는 이름. ②실속 없이 그럴듯하게 불리는 허울만 좋은 이름.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경허 스님, 만공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7. 10. 5. 15:28

 

 

§(364) (게송)월원불유망~ / 중생의 탐진치 욕심의 무서운 불을 끄는 것이 참선이다 / 재진출진(在塵出塵) 불가잠폐(不可暫廢) / 번뇌의 바다에 들어가야 거기에서 지혜 보물을 얻는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탐진치의 불, 이 불 때문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의 이 불 때문에 우리는 삼악도(三惡途)의 불구덩이로 결국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삼악도의 불을 끄고 영원히 청량한 그러한 경지에서 그러한 속에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번뇌 망상 이놈에서 탐진치 삼독의 거센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그렇지만, 그 파도를 잘 타면서 잘 지혜롭게 저어 들어가면 무량겁을 쓰고도 남을 지혜의 보물을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더라. 참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게 정명경(淨名經)에 있는 말씀인데.

 

**송담스님(No.364)—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 (용364)

 

약 18분.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달이 둥굴매, 아무리 달이 둥글고 더이상 둥글 수 없이 둥글다 하더라도 보름을 넘지를 못해. 보름이 되면, 보름날이 되면은 그 이튿날부터서는 차츰차츰 이그러져 가고.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다. 해가 정 중천(中天)에 오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어. 정오가 되면은 되는 그 찰나부터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달도 보름을 넘지 못해서 기울어져 가고, 해도 정오를 넘자마자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건만 오직 뜰 앞에 잣낭기는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홀로 춘하추동 사시(四時)에 푸르른구나.

 

 

지금 삼복(三伏) 중에 이 폭염(暴炎)이 최고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일기(日氣)만, 날씨만 이렇게 더운 것이 아니라 온 세계가 불구덩이 속에 훨훨 타고 있는 것입니다.

저 이란과 이라크라는 데는 땅을 한 치라도 더 뺏고 뺏기 위해서 그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싸우고, 세계 도처에서는 서로 자기 나라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서로 경제적으로 싸우고 있고,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싸우고 있고, 종교와 종교 사이에서는 자기네 종교를 보다 더 펴기 위해서 온갖 꾀를 내 가지고 발버둥을 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올림픽에 어떻게 하면 이걸 잘 치르느냐? 그리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다 더 메달을 많이 따느냐?’ 이런 문제로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피땀을 흘리고 있고. 여당과 야당은 자기 당의 세력을 펴기 위해서 당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 무더위 속에 그 속에서 불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헌 싸움은 설사 그 싸움에 이겼다 하더라도, 또 이기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다 잠정적(暫定的)인 것뿐인 것입니다. 잠시 그러다가 금방 또 기울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이기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용광로처럼, 사방팔방(四方八方) 일체처 일체시에 이렇게 용광로처럼 중생의 욕심의 불이—입으로는 명분을 내세우고, 국가를 내세우고, 민족을 부르짖고, 세계의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속에는 시커먼 중생(衆生)의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욕심의 불이 훨훨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욕심의 불이 언제 꺼지느냐?

꺼질 기약이 없습니다. 그 욕심의 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는 세계의 평화도, 국가의 민주주의도, 민족의 통일도 행복도 이루어질 가망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복더위가 치성을 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더위에 이기지 못해서 어떻게 허면 이 더위를 좀 피헐 수가 있을까? 산으로도 가고 바다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이렇게 해서 좀 피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지 근본적으로 그 더위를 모면헐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사면(四面)이 이렇게 불이 타 오고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고봉 선사도 「진대지(盡大地)가 이렇게 훨훨 타고 있는 이 불구덩이인데 어떻게 허면 이 불구덩이로부터 살아날 수가 있겠느냐?」 이런 실중삼관(室中三關) 속에 이러헌 공안(公案)을 설하시기도 했습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그 태양이 이글이글 이렇게 타므로 해서 이렇게 더운 것쯤은 차라리 바다로도 가고 산으로도 가고 또 선풍기도 돌리고 에어컨도 틀고 해서 부채질도 하면서 그럭저럭 허다 보면, 오늘이 바로 입추입니다마는 입추를 지내고 또 말복이 지내면 금방 처서(處暑)가 오고 해서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해서 그까짓 것쯤은 별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타 일어나고 있는 이 중생의 탐진치에 욕심의 불, 이것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불인 것입니다.

 

태양이 뜨거워가지고, 물론 비는 오지 아니하고 이렇게 혹서(酷暑)가 계속이 되면 세계 어딘가는 더위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도 없지는 않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더위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말은 아직은 못 들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그것이 뜨거워서 타 죽지는 여간해서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탐진치의 불, 이 불 때문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의 이 불 때문에 우리는 삼악도(三惡途)의 불구덩이로 결국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삼악도의 불을 끄고 영원히 청량한 그러한 경지에서 그러한 속에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재진출진(在塵出塵)이요 불가잠폐(不可暫廢)다. 티끌 속에 있으면서 티끌에서 뛰어나며. 그 티끌 속에서 티끌에서 뛰어나는 그 도리, 그것을 불가잠폐(不可暫廢)여. 잠깐 동안도 등한(等閒)히 헐 수가 없어. 정지헐 수가 없는 일이다.

 

‘티끌 속에서, 티끌 속에 있으면서 그 티끌에서 뛰어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전체가 티끌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티끌이고, 우리의 식(識)으로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부가 그것이 다 티끌인 것입니다.

티끌 속에서 도저히 우리는 일 초 동안도, 한 걸음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왼발을 들면 오른발이 땅에 닿아 있고 오른발을 들면 왼발이 땅에 들어있어. 공중으로 뛰어 봤자 1미터도 못 뛰고 다시 도로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도 이 생각 저 생각 희로애락 일체 생각이 선 · 악 · 무기(無記)의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해서 그 생각이 또 꺼지자마자 또 다른 생각이 또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껴졌다 하는데, 이것이 모두 티끌 속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 티끌 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해야 그 티끌 속에서 뛰어날 수가 있느냐? ‘이뭣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에 설하신, 갑인년이 바로 조실 스님 열반하시던 해인데 지금부터 15년 전입니다. 그해에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이 무엇고?’

잠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탐진치 삼독에 번뇌와 망념이 불타듯이 이렇게 훨훨훨훨 타오르고 있는데, 그 일어나는 그 생각 거기에서, 바로 거기에서 그놈을 뛰어나는 방법이 있다.

그놈을 피해가지고 서늘한 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바로 거기에 즉(卽)해 가지고 거기에서 뛰어나는 도리가 바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여.

 

비유컨대 저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아니허면 그 바다 밑에 무진장(無盡藏)으로 있는 그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번뇌의 대해(大海)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파도치는 그 번뇌의 바다 속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일체 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가 없다.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우리 중생의 본업(本業)이고, 우리의 재산이고,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번뇌와 망상을 여의고 살 수가 없지만, 바로 그 번뇌와 망상 그놈이 없으면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바다가 큰 바다가 깊고 넓고 파도가 쳐서 그놈 함부로 들어가면,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면 휘떡 엎어져 갖고 그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도저히 그 바다 속에 있는 그 희귀한 보물을 얻을 수가 없어.

 

이 번뇌 망상 이놈 때문에, 아! 이놈에서 탐진치 삼독의 거센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그렇지만,

그 파도를 잘 타면서 잘 지혜롭게 저어 들어가면 무량겁을 쓰고도 남을 지혜의 보물을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더라. 참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게 정명경(淨名經)에 있는 말씀인데.(처음~18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월원불유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草堂咏栢(초당영백,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음)’ 게송 참고.

*중천(中天 속·한가운데 중/하늘 천) ; 하늘의 한가운데.

*잣낭기 ; 잣나무. '낭기'는 '나무'의 사투리.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폭염(暴炎 사나울·세찰 폭/불꽃·더울 염) ; 폭서(暴暑 매우 심한 더위). 불볕더위.

*일기(日氣) ; 날씨.

*주야불철(晝夜不撤 낮 주/밤 야/아닐 불/거둘·철수할·그만둘 철) ; 불철주야(不撤晝夜). ①어떤 일을 함에 있어 밤낮[晝夜]을 가리지[撤] 않음[不]. ②밤낮없이.

*잠정적(暫定的 잠깐·잠시 잠/정할·머무를 정/대상·것 적) ; ①우선 임시[暫]로 정(定)한 것[的]. ②잠시 동안 그런 것.

*사방팔방(四方八方 넉 사/모·방위·방향 방/여덟 팔) ; ①사방(四方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과 팔방(八方 동, 서, 남, 북, 동북, 동남, 서북, 서남). ②모든 방향과 모든 방면.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부처님께서도 「사면이 이렇게 불이 타 오고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

[참고]  『잡아함 시현경(示現經)』에서.

"비구들아,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眼)이 불타고 있고, 물질(色)과 안식(眼識)과 안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이와 같이 뜻(意)도 불타고 있고, 법(法)과 의식(意識)과 의촉과 의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불타고 있고, 성냄의 불로 불타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불로 불타고 있느니라.

*사면(四面) ; 전후좌후의 모든 방면(둘레).

*실중삼관(室中三關) ; '방장실의 3가지 관문' 고봉 스님이 학인을 제접(提接)할 때 사용하던 관문(공안)이라고 하며, 또는 깨달은 뒤 자신의 보림(保任)이라고도 한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175~176.

室中三關(其二九)

杲日  當空에  無所不照어늘  因甚被片雲  遮却고.  人人이  有箇影子하야 寸步不離어늘 因甚踏不着고.  盡大地  是箇火坑이니  得何三昧하야사  不被燒却고.

 

돋는 해가 허공에 당도함에 비추지 않는 곳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조각구름에 가리움이 되었는가?

사람마다 하나의 그림자가 있어서 몸에서 조금도 떨어지지를 않는데, 무엇 때문에 밟혀지지 않는가?

온 대지가 하나의 불구덩이이니, 무슨 삼매를 얻어야 불에 타지 않을까?

*실중(室中) ; 실중(室中)은 실내(室內)의 뜻인데, 일반적으로 종사(宗師)가 머무는 곳으로 조실(祖室), 방장실(方丈室)을 가리킨다. 선종에서 전법(傳法)할 때 스승이 제자에게 면밀하고 친절하게 지도하는 장소를 말한다. 또는 스승이 제자에게 구전(口傳)한 가르침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삼관(三關) ; 3가지 관문. 종사가 세 가지 질문(공안)을 설정하여 학인의 수행 정도를 시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삼관을 제시하는 스님에 따라서 고봉삼관(高峰三關), 황룡삼관(黃龍三關), 도솔삼관(兜率三關), 자운삼관(慈雲三關) 등이 있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처서(處暑) ; 일 년 중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 이십사절기의 하나. 양력으로 8월 23일경이며,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며 벼가 익는 시기이다.

*혹서(酷暑 독할 혹/더울·더위 서) ; 몹시 심한 더위.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식(識) ; 오온(五蘊) 중 하나.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세 번째 지분으로 지각(知覺), 요별(了別)의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알게 하는 정신적 작용이다.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채택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6식설은 그 발생 근거에 따라 6가지 식(識)을 열거 한다.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 등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6근(六根)이, 물질[色] · 소리[聲] · 향기[香] · 맛[味] · 감촉[觸] · 법(法)의 6가지 외부적인 대상인 6경(六境)을 대할 때 생겨나는 6가지 인식작용이 6식(六識)이다.

즉, 눈이 물질을 대할 때 보는 안식(眼識)이 있으며, 귀가 소리를 대할 때 듣는 이식(耳識)이 있으며, 코가 냄새를 대할 때 냄새를 맡는 비식(鼻識)이, 혀가 맛을 대할 때 맛을 감지하는 설식(舌識)이, 몸이 감촉을 대할 때 느끼는 신식(身識)이 있으며, 의(意)가 법(法)을 대할 때 '안다'는 의식(意識)이 있다.

이와 같이, 6근 · 6경 · 6식은 서로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있는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意識)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전오근(前五根), 곧 안 · 이 · 비 · 설 · 신(眼耳鼻舌身)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전5식(前五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은 일종의 감각지각이고, 제6의식(意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지각과 언어를 매개로 한 인식 등 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8식설은 앞의 6식설에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한 것이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서, 범부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의식이다. 이 말나식은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번뇌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들을 제거하면 7식이 맑아져서 아공(我空)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제8 아뢰야식은 일반적으로 장식(藏識)이라고 번역된다. 장식이란 곧 여래를 감추고 있는 식이라는 뜻으로, 비록 중생이 생사 속에 있지만 이 감춰져 있는 여래만은 결코 상실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이 올바로 발현될 때 곧 여래(如來)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제8식에 대한 견해는 불교에 여러 학설이 있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즉해(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유컨대 저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아니허면 그 바다 밑에 무진장(無盡藏)으로 있는 그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처럼~’ ;

[참고]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구마라집鳩摩羅什 역) 제8 불도품(佛道品)

是故當知  一切煩惱爲如來種  譬如  不下巨海  不能得無價寶珠  如是不入煩惱大海  則不能得一切智寶

이와 같이 모든 번뇌야말로 여래가 되는 씨앗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컨대 넓은 바다 밑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무가(無價)의 보주(寶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곧 일체지의 보배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현장玄奘 역) 제8 보리분품(菩提分品)

又善男子  譬如有人  不入大海  終不能得  吠琉璃等無價珍寶  不入生死煩惱大海  終不能發無價珍寶一切智心  是故當知  一切生死煩惱種性  是如來種性

또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폐유리 등의 무가(無價)의 진보(珍寶)를 끝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생사(生死)의 번뇌라는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끝내 무가의 진보인 일체지에 대한 마음을 일으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생사 번뇌의 종성(種性)이 여래의 종성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무진장(無盡藏 없을 무/다할 진/감출·곳집 장) ; ①다함이 없는[無盡] 창고[藏]라는 뜻으로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 불교에서는 덕(德)이 광대하여 쓰고 또 써도 다함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②배우고 배워도 다함이 없는 무궁무진한 진리. ③무한량으로 많은 재물.

*무가보주(無價寶珠) ; 값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보배구슬이라는 뜻. 불성(佛性), 반야(般若), 일승(一乘) 등과 같은 불교의 요체(要諦)를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무가보(無價寶) · 무가지보주(無價之寶珠) · 무가대보(無價大寶) 등이라고도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정명경(淨名經) ; 『유마경(維摩經)』. 3권. 405년(후진 홍치 8년)에 구마라습 번역. 정식 명칭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또는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이라고도 한다.

반야경에서 말하는 공(空)의 사상에 기초한 윤회와 열반, 번뇌와 보리, 예토(穢土)와 정토(淨土) 등의 구별을 떠나, 일상 생활 속에서 해탈의 경지를 체득하여야 함을 중인도 폐사리(吠舍離)에서 거사(居士)로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한 유마힐을 중심으로 설한 경.

유마힐(維摩詰)은 범어로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 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7. 5. 30. 07:54

§(627) 우리 자신이 부처 /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최상승법 /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 극락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고?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여. 시간도 따로 없는 것이고, 장소도 따로 없는 것입니다. 편의상 입선, 방선의 시간을 두고 선방(禪房)이라고 하는 특별한 조용한 곳을 마련해 가지고 거기에 가서  같이 죽비를 치고 정진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지 진짜 살아 있는 공부는  선방에 와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쩌다가 감옥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감옥에서도 탁! 이뭣고?’   있다면 감옥이 바로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요, 부부간에 사랑하고, 싸우고, 생활에 대한 근심 걱정을  바로 그곳이 살아 있는 선원이라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다시 참선에 대한 관념을 바로 잡아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뭣고?’ 천하에 간단하고 별로 맛은 없지만, 내가 바로 부처요, ‘이뭣고?’ 바로 살아서 극락에 가고,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연습이고, 바로  생각에 여래(如來)의 경지(境地)에 올라가는 공부.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 (용627)

 

약 17분.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공경을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이 말씀을 하시기를 중생이  부처니, 바로 내가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하시는 거고.

번뇌(煩惱)가  보리(菩提)이니,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봤다 하면 거기서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었다 하면은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은 번뇌의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없는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번뇌를 여의지 않고 거기에 보리가 있다는보리(菩提)는 깨달음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보리라고 하는데 번뇌를 여의지 않고 깨달음이 거기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붙어 있다고 하면  어폐(語弊)가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바로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대승법(大乘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은 파도가 일어나고 있을 ,  파도는 물이  인연 따라서 움직거리면 그것이 파도인데, 파도는 물을 여의고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파도 있는 곳에는 반드시 거기에 물이 있는 거고, 물이 있으면은 물결이 파도가 일어나게  것입니다.

 

물결을 버리고 물을 찾는 한에는 물속에 들어앉어서도 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을 여의고 부처를 찾을 수가 없는 거고,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는 한에는 깨달음 속에 있으면서 깨달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것은 깨닫기 위해서 한다’하지만 깨달으려고  필요가 없습니다. 참선 해  사람이면 끊임없이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마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몸뚱이가 바로 부처님 몸뚱이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수없는 번뇌가 바로 그것이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에서는 아까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인도에서 28,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오셔서 육조 혜능 스님까지 6, 그래서 육조 스님까지 해서 33대를 삽삼이라고 합니다마는 삽삼조사(卅三祖師).

 삽삼조사로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고 하는 것을 금방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것이 오늘날까지 조사들에 의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오늘날까지 최상승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최상승법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부처도   밖에서 찾지  , 참선도 번뇌를 여의고 찾지  ,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탐심이 일어날 때도  탐심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 즉해 가지고 이뭣고?’. 미운 생각이 일어나거나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생각을 버리고 따로 참선을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일어나는 그놈에 즉해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나간다면 바로 이렇게 살아 있는 참선을  버릇하면 번뇌가 일어날수록  좋은 것이고, 탐진치 삼독심이 치열하게 일어날수록에 바로 거기에다 발판을 두고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한다면 혼침(昏沈)이 일어날 수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미운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그래서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여. 시간도 따로 없는 것이고, 장소도 따로 없는 것입니다.

 

편의상 입선(入禪), 방선(放禪)의 시간을 두고 선방(禪房)이라고 하는 특별한 조용한 곳을 마련해 가지고 거기에 가서  같이 죽비(竹篦)를 치고 정진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이고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지 진짜 살아 있는 공부는  선방에 와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권도나 검도나 유도나 기본자세를 철저히 익힘으로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의 살아 있는 응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을 철저히 익힌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기는 하나, 언제나 기본에만 입각해서  틀어박힌 참선이 그것은 진짜 살아 있는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쩌다가 업(業)에 걸려서 감옥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감옥에서도 탁! 이뭣고?’   있다면 감옥이 바로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요, 부부간에 사랑하고 부부간에 싸우고 부부간에 생활에 대한 근심 걱정을  바로 그곳이 바로 그곳이 살아 있는 선원이라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다시 참선에 대한 관념을 바로 잡아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무척 살기가 교통이라든지 모든 생활이 편리하게는 되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행복해졌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같습니다. 점점 사는 것이  복잡하고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일체가  곳마다  복잡해지고 다단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때일수록  살아 있는 활구참선(活句參禪) 이것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인생을 바로 살기가 어렵고,  어려운 고비를 극복해 나가기가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 오늘  번뇌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 제(除)한다고 하는 것은 활구 참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올바르게 활구참선하는  근본을 딱! 알고 보면 삼도고(三途苦)니,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이니 그것 버릴 것이 못됩니다.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지옥은 현실 속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형무소 교도소가  지옥이냐 하면 그게 아니고,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 바로 우리 몸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육도(六途)가 들어있다고 봐야 정말 육도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하고 있다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생각 뒤집어지면 지옥도 되고, 독사도 되고, 아귀도 되는 것입니다.  생각 ! 바로 잡으면 아까까지 지옥에 있었던 사람이  생각으로 인해서 천당에도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죽은 뒤에, 금생에 살아서 악업(惡業)을 지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하는  말씀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살아서 우리가 들어가는 지옥도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우리가 인식을 한다면 죽어서 지옥 가는 것은 걱정이 없습니다.

내나 살아서 지옥 가는 연습을  사람이 죽어서 틀림없이 지옥에  것이기 때문에 살아서부터서 지옥에  가는 행위를 한다면 지옥 그렇게 무서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지옥이 무엇인가를 알고,  마음속에 있는 지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살아서 지옥  짓을  하게 되고, 살아서부터 지옥 가는 연습을  한다면 죽어서 지옥 것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술을 많이 먹고 술버릇이 고약한 사람은 술을  먹을 때는 성현 군자고 그렇게 착한 사람이 술만 들어갔다 하면은 자기 자신을 자제를 못하고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용케도 자기집은 찾아갑니다. 가서 꺼꾸러져도 자기집  앞에 가서 꺼꾸러져 가지고 거기서 쓰러져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꺼꾸러져서 잡니다.

 그러냐?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항상 자기집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술에 취해가지고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도 자기집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가는 것도 살아서 지옥 가는 행위를 많이  사람은 틀림없이  몸뚱이를 버리고 영혼이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서 지옥에  가는, 천당에 가는 연습을 많이  사람은  떨어지자마자 천당에 가는 거고, 살아서 극락(極樂) 가는 연습을 많이  사람은  떨어지자마자 쏜살같이 극락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극락에 가는 연습,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고?’ 이것입니다.

 

탐심이 나도 바로 거기서 이뭣고?’  버리면, 탐심의  생각 일어날  그것이 구체화되기 전에 탁! 이뭣고?’  버리면 영락없이 지옥으로  차를 타려다가  타버리고 극락으로 가는 차에 올라탄다면 물어  것도 없이 극락에  거여.

 

그래서 이뭣고?’ 천하에 간단하고 별로 맛은 없지만, 내가 바로 부처요, ‘이뭣고?’ 바로 살아서 극락에 가고,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연습이고, 바로  생각에 여래(如來)의 경지(境地)에 올라가는 공부라고 하는 것을 믿고 고대로 실천한다면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혼탁하고 그래도 한탄할  없습니다.

어려운 고비고비 만날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이뭣고?’ 열심히 한다면 거기서부터서  지상에 극락이 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엄동설한(嚴冬雪寒) 소한, 대한 때는 이대로 가다가는  얼어죽을  같지만  시간에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고  하다보면 금방  입춘, 우수가 돌아와서 봄이  거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그래도 ! 정신만 차리고 이뭣고?’ 열심히 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장, 자기가 해야  일을 찾아서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다보면 머지않아서 우리도 잘살게 됩니다.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마음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드라도 자기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다보면 반드시  살아  길이 있습니다.  국민이 그렇게 노력할  우리나라는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죽을  같지마는  살길이 열리고 좋은 세상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역사는 누가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가 있어서 역사를 만든  아니라 내나 인간이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좋은 역사도 만들고, 어려운 시대를 좋은 시대로 맨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기 때문에 각자 주인이 자기 살림을  돌보고 자기 일을 잘할   집안도 잘되고 회사도 잘되고 사회도 올바르게 되어가는 것입니다.(814~243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불공(佛供 부처 /이바지할·바칠 ) ; 부처님 앞에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 · 성냄() · 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어폐(語弊 말씀 /해어질·쓰러질 )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있는 .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 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교단(敎團) 어른을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 전하고,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 되고, 그로부터 2 혜가, 3 승찬, 4 도신, 5홍인, 6 혜능대사(慧能大師) 내려왔는데,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육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 ;

 

[참고] 송담스님(No.264)—1985 4 첫째 일요법회에서.(5분 50초)

흔히 화두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 많이 말씀을 하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물건이 있으니,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하택신회,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학자밖에는  되겠다

 

 불교()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겠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리자 남악회양(南嶽懷讓)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하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물음에 대해서  맥혀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 몸을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맥혀 가지고  바를 몰라.  뒤로 8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습니다.

 

8 동안을 대관절 이게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생각, 서서도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일을 하면서도  생각, 똥을 누면서도  생각, ‘대관절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하기를 8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 도리어 닦아 () 것이 있느냐?’하니,

수증(修證)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염(汚染)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 것이 없지를 않지마는 오염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 받게  것입니다.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맥혀 가지고,   없이 이뭣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공부를 옳게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6131~6722)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즉해서(--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

[참고] 송담스님(No.299)—1986 5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신 분은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정진(精進)이여.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거든. ‘어느 곳이고 () 아닌 곳이 없고, 어느 때고 참선 아닌 때가 없다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라 하는 것이여.

그래서 걸음 걸음이 미륵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요, 생각 생각이 석가여래가 탄생하신 곳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이러한 도리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3019~312)

 

[참고] 송담스님(No.152)—1981 10 첫째일요법회(참선법B)에서.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니라  염념석가출세(念念釋迦出世)  보보미륵하생(步步彌勒下生)이니라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 어떤 색상을 보는 그때가 바로 참나 깨달을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是證處). 어떤 소리를 듣는 그때가 참나 증득(證得) 바로  곳이드라

그렇게  생각  생각을 무엇을  때마다,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화두를 들고) 다져 나가면,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요,  걸음 걸음 걸어가는   걸음  걸음이 바로 미륵 부처님이 하강하시든 바로 그것이더라.(4122~449) - (게송) ‘견색시증처~’ ; [금강경오가해]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참고.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 방거사(龐居士)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도고(三途苦, 三塗苦) ; 악한 일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지옥아귀축생)에서의 고통.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 :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있다.

*고주망태 ; 술을 많이 마셔 취하여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

*인사불성(人事不省 사람 인/일 사/아니·못할 불/살필 성) ; 사람[]으로서 지켜야  [] 살피지[] 못함[].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극락(極樂) ; 극락세계(極樂世界). 극락정토(極樂淨土).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 ()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뜻。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경지(境地 지경·경계 / )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엄동설한(嚴冬雪寒 혹독할 /겨울 / / ) ; 혹독하게[] 추운 겨울[] [] 내린 뒤의 추위[].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7. 4. 4. 21:31

 

 

§(031) 깨닫는 인연—잠시도 본참화두를 놓쳐서는 안된다 / 5가지의  은혜 / 아난과 조달의 지옥 대화 / 사구참선과 활구참선 / 여섯 마리의 짐승, 육적.

 

밥을 먹다가 깨달을는지, 똥을 누다가 깨달을는지, 걸어가다가 깨달을는지, 누워서 깨달을는지, 일을 하다가 깨달을는지, 어디에서 깨달을는지를모르기 때문에 언제 어데서라도 자기의 본참화두를 정신을 바짝 차려서 염념(念念)이 놓치지 아니하고 본참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疑心)을 놓쳐서는 안된다.

 

다섯 가지의  은혜를 우리는 받고서 지금 살고 있기 때문에  은혜만 받고서 갚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내생에  내생에 무량겁을 두고  빚을갚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빚을 곱게  갚을 수가 있느냐?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 가지고 내가  마음을 깨달어야만  빚은 한푼도 남기지 아니하고  갚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은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결론을 내려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조건(無條件)입니다. 무조건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다못   없어야만 되는 것이고  맥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31)—76 12 관음재일 법문(76.12.24.) (용031)

 

(1) 약18분.

(2) 약 12분.

 

(1)------------------

 

병진년도 오늘 섣달 관음재(觀音齋)를 마지막으로 해서 법회는 끝나는  같습니다. 금년도 마지막 법회를 기해서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신해년에 설하신 참선법(參禪法)에 대한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오늘 법문은 매우 깊고 고준해서 처음 오신 분이나, 여기에 나오신  오래 되시지 아니하신 분은 조금 이해하시기 어려운 대목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조실 스님 설하신 내용을 잠깐 말씀을 드리면은  처음에 임진왜란  승병대장으로 왜적(倭敵)을 물리쳐서 선조 대왕이 의주까지 피난을 가셨던 것을 다시 서울로 환도해 모신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참선(參禪)을 하시다가 깨달으시고 그리고서 읊으신 게송(偈頌)을  처음에 읊으셨습니다.

서산대사께서는 ‘내가 이제 낮에  우는 소리를 듣고서 장부(丈夫)의 큰 일을 마쳤노라 이러한 내용의 (詩)를 읊으셨던 것입니다. 서산대사는 우는 소리를 듣고서 견성(見性)을 하셨습니다.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견성을 하실 때에 서산대사는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으셨지마는 어떠한 도인은 발갛게 복숭아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자 찰나에 깨달으신 도인도 있고,  여름에 발을 쳐 놨는데 그 발을 거두면서 홀연히 깨달으신 분도 계시고,

대빗자리로 마당을 쓸다가 거기에서 튀는 돌멩이가 부딪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깨달으신 분도 계시고, 시가(市街) 지나다가 장꾼들이 멕사리를 잡고 이놈 저놈’하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주먹질을 하고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으신 분도 계십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개천에서 발을 씻으면서 서로 선객(禪客) 스님네들이 이야기하다가 ‘무무(無無)도 역무(亦無)다’하는 그러한 말이 조실 스님 귀에들어오자마자 대오(大悟)를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과거 도인이 여러 가지 경우에 깨달으셨느냐. 깨달으신 경우를 여러 가지로 이렇게 말씀을 해드렸냐 하면은 우리도 언제 어디에서 깨달을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깨달을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도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놓쳐서는 아니  것입니다.

 

밥을 먹다가 깨달을는지, 똥을 누다가 깨달을는지, 걸어가다가 깨달을는지, 누워서 깨달을는지, 일을 하다가 깨달을는지, 어디에서 깨달을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언제 어데서라도 자기의 본참화두를 정신을 바짝 차려서 염념(念念)이 놓치지 아니하고 본참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疑心)을 놓쳐서는아니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번 깨달을  있는 기회는 그렇게 날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량겁(無量劫)을 통해서  한번 깨달을  있는  인연이 잠깐 한눈파는 바람에 지나간다면 다시 언제 그러한 기회가 자기에게 돌아올는지 그것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몸이  세상에,  자리에 존재하게 되는데 있어서 우리는 이루  헤아릴  없는 은혜에 의지해서  몸을 자리에 가지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부모가 계시지 아니하면  몸이 받어 나지를 못했을 것이요.

(둘째)받어 났다 해도 국왕, 대신, 국가와 민족이 없으면은 우리는 세계 어디도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셋째)그리고 스승이 계시지  했다면 우리는 까막눈으로서 사람 구실을 못하게  것입니다.

(넷째)그리고 농사짓는 사람, 옷을 만드는 사람, 모든 기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없으면은 우리는 우리 입에 밥이 들어가지도 못하고, 우리 몸에 옷도 입혀지지를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 이러한 모든 사람을 부처님 제자의 입장에서  때는 시주(施主)’라고 말을  수가 있습니다.

(다섯째)그리고 우리는 , 붕우(朋友)! 붕우가 아니면은,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없다면은 우리는 자기 혼자서만 공부는   없습니다. 무슨 공부를하던지 같이 하는 친구가 있어야만 서로 밀고 서로 끌면서 충고하고 탁마해 가면서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은혜 속에서 다섯 가지 은혜를 대표적으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우리는 받고서 지금 살고 있기 때문에  은혜만 받고서 갚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내생에  내생에 무량겁을 두고  빚을 갚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빚을 곱게  갚을 수가 있느냐? 우리는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 가지고 내가  마음을 깨달어야만  빚은 한푼도 남기지 아니하고  갚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조실 스님 법문에는 참선을 할라고 하면은 많은 마장(魔障)을 만나게 된다’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할라고 할수록 마장은 점점 강하게 우리에게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차라리 공부를 할라고 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그렁저렁 세월을 보내게 된다면 아무 마장도 우리는 만나지 않아도 됩니다. 보다  공부를 열심히 할라고 그러고, 보다  신심을 내서 애를 쓸수록에 점점 우리에게 부딪쳐 오는 마장은 강하게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무로 만들어진 공을 벽에다가 던졌을 때에 가만히 던지면은 가만히 튀겨져 오고, 세게 던지면은 강하게 나한테 되돌아오는 것을  수가 있습니다. 산에다 대고 고함을 치면은  메아리가 소리를 크게 지르면은 크게 돌아오고, 작게 지르면 작게 돌아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선 공부도 열심히 크게 발심(發心)을 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할라고 할수록에 점점 우리에게 부딪쳐 오는 많은 강한 마장을 만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도 10생(十生)을 두고 도를 닦아 오실 적에 조달(調達)이라고 하는 마군이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음으로 양으로 직접 간접으로갖은 수단을 써서 부처님  닦으신 것을 방해를 했고,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실달(悉達) 태자로 태어나셔 가지고 출가하셔서 성불(成佛)을 하셔 가지고 일생동안 교화를 하실 그때까지도 사촌동생으로 태어나 가지고 일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해롭게 하고 심지어는 부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처음에 어려서  때부터서 같이 왕가(王家)에 태어나 가지고 갖은 사사건건이 부처님과 겨루고 시합을 하고 싸우면서 그러다가 결혼할 때에도 야수다라(耶輸陀羅)라고 하는 미인을 두고 서로 자기가 아내를 삼겠다고 갖은 무술로 겨루다가 마침내 부처님에게 야수다라를 아내로 맞이할  있게 것입니다.

 

출가하시자 조달이도  출가해 가지고 중이 되어가지고 처음에는 부처님 제자로 있다가 차츰차츰 말년에 가서는 부처님 제자들을 자기에게 통솔권을 달라고 부처님한테 요구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거절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침내는 대중을 선동을 하고 현혹을 시켜 가지고 부처님 제자들을 많은 사람을 유인을  가지고 다른 처소로 데리고 갔습니다. 마침내 제자들도 정신을 차려 가지고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마는.

 

그래 가지고 뜻대로 안되니까 부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 것을 미리 알고 절벽 위에서 바위를 굴려 가지고 부처님을 치어 돌아가시게 할려다가    할려다가 실패를 하고,  고약한 성난 코끼리를 시켜 가지고 부처님을  돌아가시게 하려고 하다가 그것도 실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조달이가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죄로써 생함지옥(生陷地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란존자(阿難尊者)를 시켜서 “너, 조달이가 지금 지옥에 떨어져 가지고  갖은 고통을 받고 있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가서 물어봐라. ‘지옥고 맛이 어떠냐?’ 그렇게 물어봐라

 

아란존자가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해서 지옥에  가지고 “조달이야, 지옥고(地獄苦) 맛이 어떠냐?

“천상낙(天上樂)보다도  좋다 조달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언제 그러면 지옥에서 나오겠느냐?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지옥에 들어오면 내가 나가겠다”

 

“석가여래 부처님은 삼계(三界)에 대성현이신데 지옥에 들어오실 리가 있느냐?

“석가가 지옥에 들어올 분(分)이 없거늘 내가 어찌 지옥에 나가겠느냐?” 이렇게 문답을  것으로 전해 오고 있습니다.

 

조달이는 원시경전(原始經典)에는 그러한 마왕(魔王)으로서, 마왕의 권속으로서 부처님께서 도(道)를 성취하면은 자연히 마왕은 굴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이라도 성불을 한다고 하는 것은 마왕의 국토가 침범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마왕들은 누구라도 도업 성취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도를 이룰려고 애를  사람이 있다고 하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것을 방해를 한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활구참선(活句參禪) 조사문중(祖師門中)에서는  조달이야말로 부처님보다도 훨씬 먼저 도를 통달하신 위대한 부처님으로서, 부처님으로 하여금 보다  용기와 인내로써 수행을 성취해 가지고 대도를 보다  빨리 보다  크게 성취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마구니의 탈을 쓰고 나와 가지고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께 충격을 주고 격려를 하는 그러한 역경(逆境)적인, 역술(逆術)적인 그러한 특수 수단으로 부처님을 격려한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렇게  때에 우리가 스님네나, 신남신녀를 막론하고 도를 닦고자  때에  나를 방해하는 사람을 일향(一向)으로 미워하고 나쁘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소승(小乘)적인 입장, 관점으로 본다면 분명히 도인이 하나가 나오고 부처님이  분이 출세하시게 되면은 그만큼 마구니의 국토가 멸망을 하게 되니까 무서워서 나온 그러한 삿되고 못된 아귀다고만 보지 마시고,

이미 대도를 성취하신 불보살(佛菩薩)이 나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용맹스럽게 도를 닦아서 하루빨리 대도를 성취하기 위해서 출현해 주신 보살의 화현(化現)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신다면 미운 생각보다는 오히려 고마운 생각이  수도 있고, 오히려 거기에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이 줄로 생각합니다.

 

비단 도를 닦을려고 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겠습니다.

일체 선행을 할려고 하는 데에도, 나는 바르게 살라고 하는데 모든 주변과 사회는 나를 용납을 하지 아니하고 사사건건이 장애가 되고 나의 길을 막는 그러한 경우를 만났을 때에도,

역시 대승(大乘)적인, 최상승적인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상대한다고 하면은 나에게는 나를  따뜻이 이끌어  사람만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나를 방해하고 나를 해꼬자  사람까지도 나에게는 좋은 스승이 되어주고 좋은 나의 불보살이 되어  것입니다.(처음~1756)

 

 

 

 

 

(2)------------------

 

우리는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을 통해서 여러 가지에 대해서 고루고루 말씀을 들었습니다.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 십여 년을 두고 내지 일생을 설하신 법문이 참선법 그거 하나만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어디를 가나, 어느 법회를 가나 참선을 많이 듣습니다. 요새는 서양까지도 참선 붐이 일어나 가지고 모다 참선한다고 야단들입니다. 어느 법회든지 설교했다 하면은 참선 얘기가  나오고는 법회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선! 글자는 똑같지마는 참선처럼 쉬웁고도 어렵고, 어디를 가나 들을  있지마는 참으로 바르게 가리키는 참선은 그렇게  만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냐?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듣거나 보거나 하면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저울로 일단은 달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것입니다.

유식한 사람은 유식한 대로, 무식한 사람은 무식한 대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대로,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어떠한 문제가 제출이 되면은 일단은 자기 나름대로 그것을 ‘몇 근이나 되는가?’ ‘어떠한 것인가?’ 일단은 저울로 달아보고 자기에게 합당해야 ‘아하! 그렇구나.  좋은 것이로구나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참선은 그렇게 해서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결론을 내려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조건(無條件)입니다. 무조건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다못   없어야만 되는 것이고  맥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에 화두(話頭)를  가지고 무조건 하고 ‘이뭣고?’하라니까 ‘이뭣고?~’ 이렇게 들어갈  있는 그러한 바보 같은 사람이라야 헛시간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바로 정도(正道)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은 사구참선(死句參禪) 활구참선(活句參禪) 있습니다.

이론으로 더듬어서 차례차례 알아 들어가고,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따져 가지고 결론을 내리고, 이러한 참선은 사구참선입니다. 죽은 참선.

 

활구참선은 무조건하고, 거두절미하고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맥혀서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또는 ‘이뭣고?’ 다못 기둥에 이마를 뜻밖에 부딪친 것처럼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미가 없고 일년 이태 해봤자 아무 것도 누구 앞에 내놓을 것도 없지마는 이렇게 가는 사람은 깨달음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고.

 

이리저리 따져서 알아 들어간 것이 있고,    책을 읽어서 많은 교리에 대해서 속에 쌓아둔 것이 있고, 누구를 만나서 얘기를 하되 여러 가지로 경(經)에 나오는 말을 비교하고 종합하고 분석하면서 아주 재미있게 얘기할 거리가 속에 많이 들어있는 사람,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참선도 그런 식으로  가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참선을 해도  앞에는 유식한  같고 불교 공부를 많이  사람같이 보이지마는, 실지 자기 자신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점점 멀어지고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 때까지 공부를 해도  사람은 깨달음이  수가 없는것입니다.

 

언제라도  생각 버리고 바보 천치가 되어서 백지가 되어 가지고  맥혀서 들어와야만  사람은 바른 길에  들어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어를  마리 잡고,  여우를  마리 잡고,  개를  마리 잡고,   구렁이도  마리 잡고,  새도  마리 잡고, 원숭이도  마리 잡고, 이래 가지고  여섯 마리 짐승을 끈을 낱낱이  가지고,  끈을 같이 여섯 마리를 함께   묶어 놓았습니다.

 

그래 노니까 악어는 죽자사자 끌고  놀던 물가로 갈라고 하고, 새는 죽자사자 하늘로만 날아갈라고 그러고, 개는 죽자사자 마을로 들어갈라고 그러고, 뱀이란 놈은 죽자사자 다른 놈이야 어디로 가던지  힘을 다해서 구멍으로 들어갈라고 그러고,  원숭이란 놈은 죽자사자 숲속으로 들어갈라 하고,

이렇게 해서  여섯 마리의 짐승이 이놈이 기운이  나면은 그리 끌려갔다가,  그놈이 끌고 가다가다 힘이 방기면은  쭈욱 늘어지면은 어믄 놈이  인자 기운을  가지고  그쪽으로 끌고 갔다.

 

이래 가지고 여섯 놈이 이리 동서남북 사방으로 끌려갔다가 끌려왔다가, 공중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다, 숲으로 갔다 들로 갔다, 물가로 갔다가 구녁으로 들어갔다, 이래 가지고 그런데, 그래 가지고 끝장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여섯 마리 묶은 그놈을 튼튼한 기둥에다  짬매 놨습니다.  고목나무에다  여섯 마리를 짬매 놨습니다.

 

그러니까 이놈이 동서남북으로 이리 끌려갔다 저리 끌려갔다 하던 것이 인자 고목나무에다  짬매 놨으니 가도 못하고, 힘써 봤자 헛심만 쓰다 말고 가지고는 ‘아하! 이거 가봤자 소용이 없구나.  헛심 써봤자 소용도 없고, 천상  고목나무 밑에서 가만히 있어야겠다. 그것이 차라리 유리하겠다 하는 것을 깨닫고서 여섯 마리 짐승이 서로 눈을 흘기면서 처음에는 아니꼽게 쳐다보다가 나중에는 모다 스르르르 모다 피곤해 가지고 눈을 감고서 그래서 씨근덕거리다가 가만히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섯 마리의 짐승을 함께 짬매  것과 같은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눈은 이쁘게 생긴 사람을 보면 눈이 번쩍 거기를 쳐다보고, 어디서 좋은 음악이 들려오면  귀가 솔깃하고, 어디서 맛있는 갈비 굽는 냄새가 나면 코가 벌씬거리고,  부드럽고 좋은 것을 만지면 ! 그거 당장 사서 입고 싶고, 누가 나한테 아주 부드러운 자비로운 말을 하면 아이구!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가 보다 가지고 그날 저녁부터서 눈에 삼삼하고.

 

이리해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적(六賊)! 여섯 가지 문을 통해서 일생을 이리 끌려갔다 저리 끌려갔다, 천당에도 갔다 지옥에도 갔다가, 짐승도 되았다가 아귀(餓鬼)도 되았다가 이러면서 무량겁을 거치고 거쳐서 오늘날까지  오고 있습니다.

이승이 다하고 내생에는  어떻게 되느냐? 그동안에 육적(六賊) 통해서 쌓아 모은 죄의 종자(種子)에 의해서 내생에는   육도윤회(六道輪廻)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금생에 다행이  여섯 놈을 ‘이뭣고?’에다가 묶어 놓을려고 하니, 말을 순수하게  듣고 빨리  고목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기운이 남아 있어 가지고 어디서 뭣이 눈에 번쩍하면 그리, 귀에  소리가 들어오면 그리,  어디서 좋은 냄새가 나면 그리,

남편이다, 자식이다, 돈이다, 명예다, 권리다  가지고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오욕락(五慾樂) 끌려서 참선이 좋다고  것은 믿었지마는 껍데기로만 조금 믿을라고 할까 말까.

 

이러다가  아직도  객기(客氣)가 쉬지를 못해 가지고, 완전히 체념을 하고  고목나무 밑에서 완전히 쉬어야 할텐데, 그래야  여섯 마리 짐승을 길을  들여 가지고 여섯 마리가  식구가 되어가지고 평화롭게   있도록 그런 곳으로 사람이 인도해 줄텐데,

아직도 끈만 풀어놨다 하면은 악어는 바다로 쫓아갈라 그러고, 새는 하늘로 날아갈라 그러고, 원숭이는 숲으로 도망갈라 그러고, 여우는 들로 싸댈라고 그러고, 새는 하늘로 날아갈라고  것이 아니냐.

 

여러분들은 가슴에다 손을 얹고서 냉정히 자기가 지금 어느 만큼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시는 것도 대단히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272~382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관음재일(觀音齋日) ;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고준하다(高峻-- 높을 /높을·험할 ) ; 높고 험준하다.

*서산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장부(丈夫 어른·존칭 /사내·일꾼 )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 이치를깨달은 사람.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선객(禪客 참선 /손님·사람 )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마장(魔障 마귀 /장애 )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헤살;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출가하기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 지옥(地獄) 떨어짐[].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 색계 · 무색계의 여러 () 통틀어 일컬음. ()들이 사는 . () 세계.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 대한 존칭. 여래(如來) 부처님 10(十號)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 ()이다.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삼계(三界) : []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세계. ()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 • () • ()  삼독심(三毒心) 경중(輕重)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원시경전(原始經典) ; 원시불교(Early Buddhism, 原始佛敎)시대에 결집된 불경. 그것은 한역(漢譯) 아함경(阿含經)  팔리 삼장(三藏) 등이다.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 제육천(第六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임금은  마왕(魔王)이니,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때에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천마다.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문중(祖師門中)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조사선(祖師禪) 수행하는 집안.

*역경(逆境) ; 역경계(逆境界).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처지나 환경.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일향(一向) ; 언제나 한결같이.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부파 불교(部派佛敎)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마구니 ; ().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2)

 

*거두절미(去頭截尾)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선사 법어집] (용화선원) p53.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육적(六賊) ;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는 (), (), (), (), (), () 육근(六根) 도둑에 비유한 .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귀신·아귀 )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과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육도(六道)  하나인 아귀도(餓鬼道)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객기(客氣) ; 공연히 부리는 꺼드럭거리는 쓸데없고 싱거운 기운.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7. 3. 27. 22:04

§(014)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유루복 /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다 / 일념단속, 생사심 단속.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이뭣고?’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1) 약 21분.

 

 

 

(2) 약 11분.

 

 

(1)------------------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같이 들었습니다.

 

다달이 관음재(觀音齋)를 기해서 이렇게 신남신녀 여러분께서 이렇게 참집(參集)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사부대중이  같이 이렇게 경청을 해서 우리의 신심을 돋구고 그래서 정진하는데 이익을 얻어서 우리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이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원래 불법(佛法)은 무슨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적으로 연구해서 지식을 많이 얻어 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보거나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거기에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을 일으켜 내가 나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을 보고 법문을 듣는 것이지, 경을 보고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지식을 넓혀 가지고 아는 것이 많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경을 많이 보고, 법문을 많이 들어서 아주 아는 것이 풍부해지면은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이렇게 스스로 자랑을 삼고, 남들도 그러한 이를 부럽게 생각하신 분을 간혹   있습니다마는,  불법은 무엇을 많이 보고 듣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많이 듣고 해서 잔뜩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보다는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을   있으면 하나라도  많이 잊어버리고, 버리는 데에서 오히려 불법에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법보선원에 오신지가 20, 10, 5, 3 또는   아니 되시거나,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많이 법문을 들을수록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비울  있는 그러한 능력이 길러져야 그분이 그동안 법문을  옳게 들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은 오늘 처음 오셨다고 해서 하나도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 초학자(初學者), 오래 전부터서 여기 많이 오셔서 구참(久參)이 되었다고 해서 그분이 공부가 많이 되어 있다고만은 꼭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들으신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랑조랑 이야기할  있다고 해서 그분이 오늘 법문을  들으신 것이라고는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동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없는 이뭣고?’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무슨 경을 많이  가지고 누구한테라도 자랑할  있을 만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있을 만큼 무슨 불교에 대한 교리를 알고 싶어서 밤낮 책을 뒤적거리고 그러실 것이 아니라,

 

어쨌든지 ‘이뭣?’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간단한   말씀만에 의지해서 걸어가실 때나, 앉아 계실 때나, 무슨 일을 하실 때나, 또는 식사를 하실 때나, 변소에 가실 그런 때까지라도 생각 생각이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 들어지고,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고,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생사고(生死苦)를 여의는 길이 바로   생각 단속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대단히 경을 떠들어 봐도 알기가 어렵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고, 암만 읽어봐도 읽어볼수록 점점  어렵고 그래서  불교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어쨌든지 경전을 쉽게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오늘날에 불교의 나아갈 길이다’한 것을 종종 뜻있는 분들이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마는.

 

아무리 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자꾸 간행을 한다고 해서 그래가지고 불법이 성황을 이루고 많은 중생이 제도를 받느냐 하면은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경을 많이 읽어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육두백판으로   안다고 해서 그것이 불법이 아니요, 그런다고 해서 생사해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어쨌든지 간단한  한마디지마는 이뭣고?’ ‘-하는 놈이 무엇인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하지마는 생각 생각이 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시간 시간이, 일 분 일 분마다, 일 초 일 초마다,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이 잡념이 되었건, 번뇌 망상이 되었건, 성을 내건 또는 슬프건, 무슨 생각이 일어났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어 있으니만큼,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것들이 전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8 뢰야식(賴耶識) 속에 고대로  녹음이 되어서 간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틈만 있으면 움이 터 나오고 있습니다.

 

무를 겨울에 땅속에다가 묻어놓으면 계속 거기서 움이 자라가지고  이듬해 무를 파 보면은 노랗게 싹이  나오고 있듯이,

우리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무량겁으로 생활해 내려오면서  속에 녹음되어 감춰져 갖 있는, 쌓여져 갖 있는  선(善)과 악(惡), 무기(無記) 한없는 많은  종자(種子)들이 저장이 되어 있는데,  종자가 무슨 기회만 있으면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움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움이  나오면서 그놈이  씨를 결실을  가지고 또다시 거기에  저장이 되고, 저장된 씨에서는 계속 움이  나오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생각 아니면 악한 생각,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터무니없는 생각, 10년 , 20년 전에 있었던  또는 전혀 보고 듣지도 못한 뿌리도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잠시도  사이 없이 퍼일어났다 꺼졌다, 퍼일어났다 꺼졌다.

 

 가운데에 울다가 웃다가 몸부림치다가 그래가지고 성내다가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러는 가운데에 그것이 바로 업(業)입니다. 선업도 있고, 악업도 있고, 무기업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해서 우리의 생각이 끊일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우리는 육도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불법을 만나서  법보선원에 이렇게 모이셨습니다마는, 이만큼 되실 때까지는 여러분들은 과거에 한없는 정법(正法)에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다행히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기왕 오셨을 바에는 활구참선법을 올바르게 배워서, 지도 받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시면은 금생에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하실 것이고,

설사 인연이 무르익지 못해서 금생에 도업을 성취 못하신다 하더라고 올바르게만 공부하신다면은 내생에 다시  바꿔 나  공부를 하시게 되어서 결정코 내생에는 대도사(大道士)가 되어가지고 당신 자신도 생사해탈을 하실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게 됩니다.

 

오직  길만이 자신도 해탈(解脫)하고, 남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건져낼 수가 있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있을 뿐이지, 다른 어떠한 착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생사해탈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찬 칠보(七寶)로써 모든 중생에게 보시를 한다 해도  복이 한량이 없어서 천당에 태어나고, 인도(人道)에 태어난다 해도 오복(五福)을 누릴 수는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그러한 상(相)으로, 물질적으로 이룬 그러한 복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어서 타락이 있게 됩니다.

 

타락한 날에는   동안 복을 누리다 타락하거나, 억겁(億劫)을 누리다가 타락하거나  타락한  마당에 비참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본래부터 가난했던 사람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으면 별일이 없지마는, 한 삼사십  호강하고 잘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해졌을 때의  비참한 것은 말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有漏福)을 짓는 것은 삼생(三生)의 웬수(怨讐)’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세속에서 말한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바로 유루복인데, 유루복은  유루복을 닦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짓고    있습니까?   짓고 높은 자리 올라갈  있습니까? 높은 자리 올라가고, 높은  부자를 누릴려고  때에  짓지 않고는 도저히 그런 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을 획득하느라고 죄를 짓고,   복을 획득한 다음에   수용 하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재산이 많고, 벼슬이 높고 하다 보니 권리도 부려야 하고, 호강도 해야 하고, 없는 사람 업신여기며 없는 사람을 개돼지처럼 종으로 부리면서   누리느라고 죄를 짓게 되고.

마지막에  복을  받아서 망(亡)해 갈 때에   있으면  복이 달아나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복과 귀(貴)와 권리와 명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갖은 안간힘을 쓰다 보니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얻기 위해서 죄를 짓고, 얻어 가지고 누리느라고 죄를 짓고, 나중에 망해 갈  그놈을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짓게 되어서 삼생(三生) 웬수(怨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 살아가는 데는 돈도 필요하고, 지위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지마는, 그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며, 차라리 우리가 무서워해야  만큼 '웬수거리'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돈도 웬수고 명예와 권리도 웬수면  소용없고, 그러면   파먹고 살아란 말이냐?’  이러한 의아심(疑訝心)을 가지실런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필요하지마는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가 생명 바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을 하시게 되면은, 하시면서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노력도 하시고, 그런 얻어진 것을 필요하게 적절히 사용도 하시고  그것들이 인연이 다해서 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불행해지거나 죄를 짓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활구참선을 하게 되면은 하는 가운데에 돈도 벌고, 명예도 누리고, 권리도 잡고 하신다면은 그것이 죄가  수가 없습니다.  짓지 않고 얼마든지 유효적절하게 얻을 수도 있고, 사용할 수도 있고, 마지막 그것이 나한테 떠난다 해도 모든 것을 인연에 돌리고.

그것이 떠남으로써 일반 사람은 아주 비참한 불행한 맛을 보게 되지만,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떠날 때에도 오히려 좋은 발심(發心)의 계기가 되어질 수가 있고, 참으로 발심할  있는 법문이 되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좋은 법이기 때문에 최상승 활구참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식해도   있고, 나이가 많아도   있고,  많은 중생일수록에 오히려  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냐?

경(經)을 공부한다든지 무슨 어려운 경책(經冊)을 학문을 한다고 하면은 젊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되겠지마는 이 활구참선은 맨주먹으로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앓아누워 있는 사람은 앓아누워서도  수가 있고, 바쁜 사람은 바쁜 가운데도  수가 있고,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사람도 참선(參禪)하는 간단한 법만 지도 받으면은 어디서 언제라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이 법이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것이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고 불러서 대답할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꼬집어서 아픈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배고파서  먹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꼬집어 뜯어서 아픈  알고 “아무개야!”하고 불러서 “예”하고 대답할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만  사람이면은  참선은 능히 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러냐? ! 꼬집었을  “아야!”할 줄만 알면  아픈  아는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공부를  가는 것이란 말이에요.(처음~2026)

 

 

 

 

 

(2)------------------

 

접때 어떤 보살님은 이렇게 조실 스님이 고구정녕(苦口叮嚀) 말씀하시고,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조실 스님의  말씀을  알기 쉽도록 이렇게 말씀을 드리기를 벌써  남짓을 해왔는데,

이러한 말씀들이 전부 스님네나 또는 선방에 앉아서,  큰방에 앉아 계신 보살님만 하는 것이지 그밖에 집에서 왔다갔다 하신 신도 여러분에게는 해당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서 전혀 이런 말씀을 들어도  말씀은 당신한테는 해당된 법문이 아니라’ 이리 생각하고 여태까지 5년 동안을 다니셨다 그럽니다.

그분은 대단히 진실하고, 아주 신심이 돈독한 분으로서 대단히 좋은 진실한 신도님인데, 어떻게  법문을 어디로 들으셨는가? 그것이 당신한테 해당된 말이 아니라 다른 분들한테만 해당된 말이요, 나한테는 해당된 말이 아니다’해 가지고 나도 언제나 저런 공부를  볼꼬?’ 이리 생각하셨다 그럽니다.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그러한 착각을 하신 분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말씀은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해당된 말씀입니다.

누구라도 고대로만 하시면 되는 것이지, 별도로 따로 지도를 받아야 하거나, 지금 자기에게는 해당된 말이 아니어서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누구라도, 지금 저기 어린아이가 있습니다마는,  어린아이라도 다섯 , 여섯  먹은 어린아이라도  말씀만 조용히 들어서 귀담아듣고 고대로만 하면은 오히려 나이 많이 먹어서 학교도 많이 다니고, 지식도 많은 사람보단 아주 철이 하나도 안 든 다섯, 여섯  먹은 애라도 고대로만 한다면 오히려  어린애가 훨씬  빨리 도업을 성취할  있습니다.

 

광주에서 어느 신도분의 아들이 자꾸 자기 어머니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것을 보고서 절에 따라와서 구경하고  자기 집에서도 어머니가 조석으로 관세음보살 부른 것을 보고는,  어린애가 열이 40도가 넘어 가지고  몸부림을 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대단히 곤경에 빠져 가지고  견디게 되니까,

 어린애가 서서 벽에 붙여 놓은 관세음보살 사진 앞에  가지고는,  다섯  먹은 어린애가 합장을 하고 서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가지고   동안을 그렇게 하더니 !  쓰러져 가지고는 쿨쿨 잠을 한숨 자고 나더니 !  40도나 되던 열이 쏴악 식어 가지고.

 

! 병원에서도 얘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고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해서 데리고  어린애가 그렇게 관세음보살을  십 분 남짓을 그렇게 부르더니 !  감쪽같이  병이 낫은 것을 제가  어린애를 봤습니다.

 

순수무구(純粹無垢)한 마음, 천진한 마음으로  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을 많이  보았다’고, ‘나는 아직 불교에 들어온 지가 얼마  되고 경도  번도  봤고, 그래서  같은 사람은 참선해 봤자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시지 말고, 금방 오셨더라도 조금도 상관이 없으니까 ‘이뭣고?

 

성이  때나 또는 슬픈 생각이  때나 또는 어떤 외로움을 느낄 때나, 가정 문제로 사회 문제로 자손 문제로 또는 내외간 문제로 해서, 어떠한 속이 상하고 슬프고 외롭고 또는 기쁘고 간에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 지금 당장 -하는 놈이 뭣고?’ 자꾸 생각 생각이 돌이켜서  번이고,  번이고 들고  들고,  생각이 생활 속에 저절로 ‘이뭣고?’하는 생각이 저절로 되어지도록까지 열심히 하십시요.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때도 ‘이뭣고?’ 잠을  때도 ‘이뭣고?’하면서 언제 잠이 든  모르게 공부를 하시도록, 이렇게 하시면은 무식할수록  좋고, 철이 안 들을수록  좋고, 연세가 많을수록  좋고.

 

연세 많은 분은 내가 인자 이 세상을, 이승을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항시 간절하게 자기에 부딪치기 때문에 무슨 미련이 있고,  잊을 것이 있어서  생각할 겨를이 있느냐 그말이야. 그 죽음이 코앞에 닥쳐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이뭣고?’를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노인은 노인대로  공부하기  좋습니다. 젊었을 때는 미련도 있고 생각도 많아서  생각  생각하다가 그러지마는, 벌써 육십 칠십 넘으신 할머니는  좋습니다. 인제 자식 걱정할 것도 없고, 자기들  ()대로 살도록 놔두고, 나는 ‘이뭣고?’  좋아요.

 

마지막 숨질 , 그때 참으로 마지막 5, 3, 2, 1, 1 그때까지도 ‘이뭣고?’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을  있다면은 그분이야말로 바로 도인(道人)입니다. 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분이 도인이여.

마지막  거둘 때에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이뭣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존시에 무슨 일에 애착이 있어 공부를 못하겠습니까. 마지막 숨질 , 참으로  먹던 힘을 다해서 ‘이뭣고?’를 들을  있는 사람이면 도인입니다.

 

마지막 숨질 때,  사람이 병을 이길 수만 있다면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병한테 지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힘을 총동원해도 그놈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 죽게 되는 것이니 만큼,  죽는 순간에 화두가 들려지고, 들을  있다면  사람의 공부는 어지간한 공부입니다.

 

평상시에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그것이 그때그때 화두가 들어질  있는 사람이라야  몸뚱이  거둘  되어지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부처님께서 49 동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하는 방대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 말씀으로 줄여서 말하면 일념단속(一念團束)하는 , 생사심 단속해서거기에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 단속해서 생사 없는 이치를  몸에 체달(體達)할  영원한 생사윤회는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살아가기는 너무나도 험준하고, 복잡하고, 어려워서  세상 살아가는 속에 정신차려 이뭣고?’ 든다고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니하면 누가 나를 위해서 닦아줍니까?(2027~304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전강 조실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참집(參集 참여할 참/모일 집) ; 어떤 자리에 참가하기 위해 모임.

*돋구다 ; 돋우다(감정이나 기운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다. 정도를 더 높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 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참(久參 오랠 /참구할·참여할 )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 오랫동안 () 닦은 .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 귀의한지 오래 되는 . 초학(初學) 상대어.

*조랑조랑 ; (어린 사람이) 계속하여 똑똑하게 글을 외거나 말을 하는 소리.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생사(生死) ; ①생과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 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두절미(去頭截尾)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뢰야식(賴耶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뢰야식(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아뢰야(阿賴耶) 진제(眞諦) a()+laya()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 ālaya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八識)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 ; ()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 말한다. 그리고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3가지 () ··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 따라 ①선심(善心)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 ②악심(惡心)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 과보를 받는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 상태. 평온한 경지.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칠보(七寶) : []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즉 (), (),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인도(人道) ; 인취(人趣). 인간계(人間界). 인간이 사는 세계.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동승신주(東勝身洲) · 남섬부주(南膽部洲) · 서우화주(西牛貨洲) · 북구로주(北俱盧洲) 대륙을 말함.

동쪽에 있는 승신주의 인간들은 신장이 뛰어나다 하고, 남쪽에 있는 섬부주는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 서쪽에 있는 우화주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한다 하고, 북쪽에 있는 구로주는  대륙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

유학(儒學) 오경(五經) 하나인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편에는 (), (), 강녕(康寧 : 건강), 유호덕(攸好德 :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 고종명(考終命 :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 말하는데, 청나라  적호(翟灝) 『통속편(通俗編)』에는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억겁(億劫) ; 무한이 길고 오랜 세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

()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 아울러 이르는 .

*웬수 ; ‘원수(怨讐)’ 사투리.

*부귀공명(富貴功名) ;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

*웬수거리 ; 원수(怨讐)  만한 재료. 웬수는 ‘원수(怨讐)’ 사투리.  법문에서는 , 지위, 명예, 권리 따위를 '원수거리'라고 말씀하셨다.

*의아심(疑訝心 의심할 의/의심할 아/마음 심) ; 의심스럽고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

*최상승(最上乘)=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경책(經冊 불경 / ) ; 부처님 말씀() ().

*일자무식(一字無識) ;  글자도 읽을  없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음또는 그런 사람.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2)

 

*접때 ; (명사)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를 이르는 말. (부사)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의 어느 때에.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순수무구(純粹無垢) ; 순수하여 몸과 마음이 때묻지 않고 깨끗함.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사불란(一絲不亂) ;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어지간하다 ; ①(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보통이거나 그보다 약간 더한 상태이다. ②(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꽤 상당하다.

*배때기 ; ‘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있게 한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보리도(菩提道) ; 범어(梵語) bodhi 음역(音譯) 보리(菩提)와 그 한역(漢譯)인 도(道)의 복합어. 보리와 같은 말이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6. 10. 22. 18:04

 

 

§(630)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육도윤회의 원인은 '한 생각' 어긋진 탓 / 활구참선은 천하에 쉬운 것이다 / 활구참선이라야 올바른 참선.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 간단한 것이다. 쉬운 것이다  쉽고 간단하느냐 하면은 생각’을 단속하면 윤회를 끊는 길도 거기서 열리는 거고, 끊지 못하고 계속 생사고해로 얽혀 들어가는 것도   생각’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원래 우리가 본래 원만구족해 갖추어 있는 우리의 본성자리는 부처님과 조금도 차등(差等)이 없어서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닦으면 누구라도 자기의 본성을깨달을  있는 것이고, ‘깨달을  있다’고 하는 것을 불보살(佛菩薩)과 역대(歷代)의 조사(祖師)스님네들이 감동의 눈물 없이는 들을  없는, 그렇게 보증을 주신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설명을   수도 없고 설명을  주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바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명예를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요, 남이 알아주기를 바래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하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도 있고 3일이나 7일에도 깨달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630)—99 10 첫째일요법회(99.10.03) (용630)

 

약 17분.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당당한 대도(大道)가 밝고 분명한데, 사람 사람마다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고, 본래부터 원만히 성취 이루어져 있다.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 다맛   생각 어긋진 탓으로,  생각 그르친 탓으로 영겁 동안을  가지 형태를 현출(現出)하는구나. 나타내는구나.

 

우리는 원래 부모님께  몸을 받아나기 전부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노사나불(盧舍那佛)이나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똑같은 본성(本性)자리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인데,  생각 어긋진 탓으로 해서 우리는  가지 형태를 받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 세계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앞으로도 영겁을 두고 가지가지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육체를 받아나고 그래 가지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거듭하면서 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게 되는, 그리고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갖은 고통을 받는 원인이  생각 어긋진 탓으로 그랬다.

 

생사윤회를 끊는 것도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생각을 그냥 방치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끝없이  생각이  생각,  생각으로 번져 나가고 그것이 얼굴에 말로 육체로 표현이 되어가지고 무서운 업(業)을 지어 가지고 점점 생사의 함정에 빠지고,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지옥에도 들어가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 간단한 것이다. 쉬운 것이다 그렇게우리는 법문에 들었습니다.

 쉽고 간단하느냐 하면은  생각’을 단속하면 윤회를 끊는 길도 거기서 열리는 거고, 끊지 못하고 계속 생사고해로 얽혀 들어가는 것도   생각’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말이죠.

 

오십오위(五十五位) 점차(漸次)를 거쳐서 그래 가지고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닦아서 성불(成佛)에 들어간다던지, 십만팔천 국토를 서방으로 가서 극락세계를 간다든지, 부처님의 여러 가지 법문 가운데에는 경(經)마다 도저히 우리 범부(凡夫)로서는 성불은 가망 없는 일이고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말세에 태어나서  육체를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수가 있냐? 그것은 하나의 이상론에 지내지 못하지 감히 어떻게 우리  많은 중생이 더군다나 말세에 태어나서 어떻게 견성(見性)을 하며 어떻게 성불을 하느냐?

 

만나기 어려운 상(想), 현애상(懸崖想)을 지어 가지고 자기를 하대(下待)하고 포기하고 차라리 염불하거나 경을 읽어서 불교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어 가지고 내생에는 최소한도로 악도(惡道)는 떨어지지 말아야겠다 처음부터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법을 믿고 신행을 하고있는 사람이  많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은 정법(正法)시대, 상법(像法)시대, 말법(末法)시대 그것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근기(根機)가 상근대지(上根大智)냐, 중근(中根)이냐, 하근(下根)이냐 그것도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남녀와 노소도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본래 원만구족해 갖추어 있는 우리의 본성자리는 부처님과 조금도 차등(差等)이 없어서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닦으면 누구라도 자기의 본성을 깨달을  있는 것이고, ‘깨달을  있다’고 하는 것을 불보살(佛菩薩)과 역대(歷代)의 조사(祖師)스님네들이 감동의 눈물 없이는 들을  없는, 그렇게 보증을  주신 것입니다.

 

의리선(義理禪), 사구선(死句禪)은 정말 그게 어렵습니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낱낱이 의리로 따져 가지고  공안은 어떻게 되는 공안이다’ 공안을 분류를 하고 그렇게 해서 공안을 하나씩 하나씩을 통과해 나가는 그런 참선이야말로 머리가 나쁜 사람은 도저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참선은 해 봤자, 천칠백 공안을 하나도 남김없이  통과되어 봤자 그것 가지고서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을 못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것은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설사 일생 동안에 이뭣고?’ 하나를 통과를 못했다 하더라도 차라리 깨닫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 채로   없는 의단(疑團)으로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갈지언정, 깨달음이 아닌 의리로 따져서 천칠백 공안을 알면 그것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조실 스님의 법문을 열심히 듣고 들으신 분은 구구하게 이런 말씀을  필요가 없겠습니다마는, 활구참선이라야 진짜 참선인 것입니다.

 

용화사에서 설한 법문만이 진짜 불법이고, 다른 절에서 설한 법문은 법문이 아니다. 이러한 뜻이 아닙니다.

어느 절에 가서 법문 듣던지, 어느 스님의 법문을 듣던지, 활구참선이라야 올바른 참선이고, 활구참선을 통해서 바로 자기 본성을 봐야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바꾸지 못할 진리인 것입니다.

 

따져서 알아 들어갈  있는 거라면 공안도 해설해서 가르켜 주면  성불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서 공부를  필요가 있으며, 부모 형제와 고향과 처자 권속과 인생과 청춘을 버리고 도를 닦을 필요가 어디에있겠습니까? 머리 좋은 사람은 일찌감치  해설을  주고, 듣고 외우고 배우면  것을.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설명을   수도 없고 설명을  주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바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법은 닦음이 없이 닦아야 하고, 행함이 없이 행해야 하고, 말없이 말을 해야 하며, 증(證)함이 없이 증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의 소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부 말고는 닦으면 닦을 것이 있고, 말하면 말하는 것이 있고, 행하면 행한 것이 있고, 증하면 증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없는 의단으로, 오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해  데에서, 행하되 행한 바가 없고, 말하되 말한 바가 없고, 밥을 먹되  톨의 쌀도 씹은 바가 없고, 걸어가되  조각 땅도 밟은 바가 없고, 해 갈수록 의단만 독로하지 보이는 것이 없고, 알아지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갈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하게 되면 의단을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성을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예를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요, 남이 알아주기를 바래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대사(一大事)를해결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하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도 있고 3일이나 7일에도 깨달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빨리 깨달으면 좋고, 5년이나 10년 해서 깨달으면 별것이 아니냐? 그것이 아닙니다.

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는 것은 각자(各自)어떻게 공부를 하느냐? 언제부터 전생에부터서  공부를  뒤끝이냐? 보리심(菩提心)을 발해 가지고 공부 시작한 지가 얼마 안된 사람이냐? 얼마만큼 철저하게 공부하느냐? 근기에 따라서 인연 따라서 그것은 다를 수가 있겠으나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필요가 없습니다.

 

닦음이 없이 닦고, 증한  없이 증해야 한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차지호리(差之毫釐)요 실지수유(失之須臾)니라. 털끝에서 그르치고 찰나 동안에 잃어버린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깨달았으면 그만이지 어찌 털끝에 어긋진다, 털끝 사이에서 그르치고 수류(須臾) 동안, 수류(須臾)라고 하는 것은 찰나란 말과 같은데, 찰나 동안에 잃어버린다고 하셨겠습니까?

 

이것은 얻은 바가 있고, 보는 바가 있는 공부가 아닙니다. 벌써 보는 바가 있고, 얻은 바가 있고, 아는 바가 있으면 그것이 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처음~17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당당대도혁분명~’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노사나불(盧舍那佛) ; ①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의 준말. 또는 보리심(菩提心)의 당체(當體)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부처님과 보살들의 심지(心地)를 가리킨다. ②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장엄된 몸을 가지고 보토(報土 : 부처님께서 과거 인위因位에서 행한 서원행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정토)에 계시면서 설법하는 부처님.

삼신불(三身佛)은 (1)영원불변의 진리[法]를 몸[身]으로 삼고 있는 법신불(法身佛), (2)수행에 의해 공덕을 쌓은 과보(果報)로써 온갖 덕이 원만구족한 불신(佛身)인 보신불(報身佛), (3)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身]으로 변하는[化] 화신불(化身佛, 應身)을 이르는 말인데, 노사나불은 이 중 보신불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 Sakyamuni 석가문(釋迦文)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능유(能儒) 한다。Sakya 종족(種族) 이름이고, muni 존칭이니,  석가 종족에서 나신 거룩한 어른’이란 뜻이다.

서력 기원전 565(<중성점기衆聖點記> 표준한 연대)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vastu) 성주 정반왕(淨飯王) 태자로 나시었다。난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摩耶夫人)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闍波提)에게 자랐다。어릴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Gautama;Gotama) 혹은 실달다(悉達多Siddhartha) 하였다。어려서 온갖 학문과 무예를 고루 배워서 정통하고,  일곱 살에 선각왕(善覺王)  야수다라(耶輸陀羅)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다.

 

 나라의 제도에 종교와 학문을 차지한 바라문족과, 정치와 군사를 차지한 왕족과,  다음으로 평민과 노예족의  가지 계급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개혁할 뜻을  품고 있었다。하루는 농부들이  가는 것을 보고,  같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불볕에 죽도록 일하고, 어떤 이는 놀기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과, 사람이동물을 학대하는 참혹한 일을 아프게 생각하여, 모든 것이 평등하고 싸움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국가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다시 인간에는 살아가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있음을 느껴, 누구나 다같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도리를 찾고 있었다。그리고 우주의 온갖 것에 대하여생각하여 갈수록 의문 아님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드디어  아홉에 왕궁을 뛰쳐나와 산중으로 갔다。처음   동안은 바라문 교도들이 하는 대로 심한 고행(苦行) 하다가,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몸을 보살펴 가면서 마음을 닦아 설흔 살에 비로소 우주의 진리를 크게 깨쳐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그  49 동안   없이 돌아다니면서 묘한 법을 가르쳐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시고, 여든 (기원전 486)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생사윤회(生死輪廻).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가리킴. 생사와  괴로움이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만사만생(萬死萬生) ;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하루 밤과 낮에 만번 죽고 만번 다시 태어난다’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고 또 고통으로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기를... 하루 밤낮에 만번이나 겪는다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표현한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오십오위(五十五位) : 경전마다 조금씩 달리 말하였는데, <능엄경(楞嚴經)> 있는 대로 하면, 처음 간혜지(乾慧地) 지나서  가지 믿음 자리(十信),  가지머무는 자리(十住),  가지 나아가는 자리(十行),  가지 돌이키는 자리(㢠向),  가지  힘쓰는 자리(四加行),  가지 (十地) 낱낱이  지나 올라가야성불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 도저히 헤아릴  없는  시간을 말한다. 아승지겁(阿僧祇劫) 보살이 발심한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아주  시간. 수행의 기간을  부분으로 나누어서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라 한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이라 한다.

*현애상(懸崖想) ; 깎아지른 듯 가파른 언덕[懸崖]을 마주해 스스로 포기하여 ‘나는 도저히 어려워 오를 수 없겠다’는 생각[想]을 하듯이, 자신을 하대(下待)하고 포기하여 ‘불법(佛法)은 어렵고 성불은 아득하게 멀다’고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말법(末法  /부처님의 가르침 ) ; 말법시대(末法時代).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교법(敎法)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정법이 쇠퇴한 시대를 일컫는말이다.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 얻게 되지마는,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다음 말법시대는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 사염주(四念住)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소멸하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반드시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 외도(外道) 번성한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있는 사람이면,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옮긴 사람이면,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등급·같을 )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함께 한역.

(),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십이장경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18장(第十八章)

〇佛言  吾法  念無念念  行無行行  言無言言  修無修修  會者近爾  迷者遠乎  言語道斷  非物所拘  差之毫釐  失之須臾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은 생각하되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고, 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하며, 말하되 말함이 없이 말하고, 닦되 닦음이 없이 닦나니,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진리와 가깝지만 모르는 사람은 더욱 멀어지리라.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물질에 매이지 아니하니 털끝 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잠깐 사이에 잃어버리리라.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또는 말을 하는  즉시.

*보리심(菩提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갖추려는 마음.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6. 7. 7. 19:13

 

 

§(299) (게송)묵좌허회독엄문~ / 도의 () / 활구참선이란? / 『몽산법어』 /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탐진치(貪瞋痴) 삼독심 / ‘ 부처님이란?

 

도의 () 남에게 수도 없고 남에게 받을 수도 없고, 스스로 도를 닦음으로 해서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라 이것은 영원한 ()이라 수가 있어. 도의 낙은 말로써는 어떻다 표현할 수가 없어.

 

활구참선(活句參禪) [語路] 끊어지고, 이치 [理路] 끊어져. 사량분별도 끊어져. 다맛 없는 의심, 화두의 의심(疑心) ‘이뭣고?’ 없는 의심만이 드러나 가지고, 앞도 끊어지고 뒤도 끊어지고, 알아 들어갈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더듬을 것도 없고, 다못 맥혀서 없는.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면 이것이 활구참선인데. 활구참선을 해야 결국은 마음 [心路] 끊어져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이여.

 

몽산법어(蒙山法語) 구절씩항상 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까 공부하다가 가끔 법문을 듣고 싶으면, 몽산법어를 편씩을 떠억 보시면은 선지식 법문 들은 거와 같아서 신심(信心) 돈발(頓發)하고 의정(疑情) 돈발을 해서 참선이 잘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항상 법문을 듣고, 항상 정진한 사람은 탐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이 없어져 버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심을 줄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지가 달아나 버려.

 

부처는 업의 눈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활구참선에 의지해서 정말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해서 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할 때에 여러분은 눈을 감아도 전체가 부처요, 눈을 떠도 전체가 부처인 것이다.

 

**송담스님(No.299)—1986 5 첫째 일요법회(86.05.04) (용299)

 

 

(1) 약 16분.

 

(2) 약 12분.

 

(1)------------------

 

묵좌허회독엄문(黙坐虛懷獨掩門)한데   일성춘조벽산운(一聲春鳥碧山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연하잉득한중취(煙霞剩得閒中趣)한데   지자희이부증군(只自熙怡不贈君)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묵좌허회독엄문(黙坐虛懷獨掩門)이라. 묵묵히 말없이 앉았어. 회포(懷抱) 비우고, 생각을 비워 버리고 홀로 문을 닫고 앉았으니,

일성춘조벽산운(一聲春鳥碧山雲)이로구나. 소리에 푸른 산에 구름이더라. 푸른 산에는 구름이 자욱히 끼었는데 소리 새가 울더라.

 

연하잉득한중취(煙霞剩得閒中趣)인데, 푸른 산중에 한가한 가운데에 정취(情趣), 구름과 연기 안개 끼어 있는 산중에 말로써 표현할 없는 취미(趣味), 정취를,

지자희이(只自熙怡)언정 부증군(不贈君)이다. 다못 스스로 한가한 가운데의 정취를 즐길지언정 이것을 어떻게 그대에게 보내 수가 있겠는가.

 

() 닦아 가면 도의 () 있는데, 도의 낙이라 하는 것은세속의 무슨 바둑을 둔다든지, 화투를 친다든지, 장기를 둔다, 무슨 사회 생활하는 데에도 여러 가지 취미 생활이 있어.

() 버는 낙도 있고, 명예와 권리를 누리는 낙도 있고, 그밖에 무슨 주색을 가까이 하는 낙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 그런 있지만.

 

세속의 ()이라 하는 것은 전부 밖으로부터 얻어지는 낙이라, 언젠가는 내게로부터서 낙이 떠나가 버리게 되고, 떠나게 되면은 견디게 자기의 몸과 마음을 가누지를 못해.

너무너무 허전해서 가누지를 못해서 그것을 가까이 하고, 가까이 하고 나면 허전하고 도저히 자기를 수습을 못하고 그러는데.

그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라 정말 깊이깊이 낙을 즐길 만한 것이 못되고, 결국은 오래오래 그러한 세속적인 낙을 즐기다 보면 건강도 나빠지고 무상함만이 치밀어와서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 () 밖에서 얻어지는 낙이 아니고, 도를 닦음으로 해서 업장(業障) 소멸하고, 구할 것도 없고, 탐착할 것도 없고, 누가 이것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할 것도 없고,

도의 낙은 남에게 수도 없고 남에게 받을 수도 없고, 스스로 도를 닦음으로 해서 자연히 얻어지는 것이라 이것은 영원한 ()이라 수가 있어. 도의 낙은 말로써는 어떻다 표현 수가 없어.

 

산중에, 푸른 산에 구름과 안개는 자욱히 끼었는데 새가 울고, 그러한 청정한 맑은 공기와 맑은 바람 그리고 흐르는 시내, 사이에 새가 노래를 하는 가운데에 떠억! 도의 낙이라 하는 것은 무어라고 표현 수가 없다. 다맛 스스로 이것을 즐길지언정 그대에게 보내줄 수가 없노라.

이러한 부휴(浮休) 선사의 도시(道詩)입니다.

 

 

여러분은 5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경청을 했습니다. 언제 법문을 들어도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평생 동안 거량(擧揚)하시고 모든 설법이 활구참선법이 근간이 되어 있습니다.

 

활구참선이란, 대관절 활구참선이란 무엇이냐?

여러분 가운데 알고 계시겠지만 참선에도 활구참선(活句參禪)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死句參禪)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이렇게 따져 들어가고, 알아 들어가고, 더듬어 들어가는 거여.

이런 것은 전부 깨달을 없는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을 치성(熾盛)하게 만들어 가지고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생사의 구렁텅이로 떨어져 들어가는 참선이기 때문에 이것은죽은 참선이다. 그래서 사구참선이라 그러고.

 

활구참선(活句參禪) [語路] 끊어지고, 이치 [理路] 끊어져. 사량분별도 끊어져. 다맛 없는 의심, 화두의 의심(疑心) ‘이뭣고?’

이뭣고?’ 없는 의심만이 드러나 가지고, 앞도 끊어지고 뒤도 끊어지고, 알아 들어갈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더듬을 것도 없고, 다못 맥혀서 없는. 이렇게 공부를 지어 가면 이것이 활구참선인데.

 

활구참선을 해야 결국은 마음 [心路] 끊어져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이것은 참선이다. 그래서 이것을 활구참선이라 그러는데. 다른 말로는 참구(參句) 하기도 하고.

활구참선을 참구(參句)—‘() ()한다’ ‘ 길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진 글귀를 갖다가 참상(參祥) 한다그래서 이것을 참구라 그러고.

 

사구참선(死句參禪) 참의구(參意句) 그러는데. ‘뜻이 있는 (), 글귀를 갖다가 참상을 한다

그것이 이래서 그랬나?’ ‘이러이러한 말은 이러이러한 뜻으로 그런 것이 아니냐?’ 이렇게 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교리・이론・사량분별을 붙여 가지고 이리저리 뜻으로 더듬어 들어가면서 공부해 나가는 이것을 참의구라 그러는데. 참의구(參意句)라고 하는 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

 

그러고 활구선(活句禪) 참구(參句)거든. 밑도 끝도 없이어째서 () 했는고?’ ‘()?’ ‘어째서 () 했는고?’ ‘이뭣고이뭣고?’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더듬어 들어갈 것도 없고, 다못 캄캄한 밤중에 벼람박에 이마를 ! 부딪칠 찰나처럼그저 앞도 끊어져 버리고 뒤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지고, 사량분별도 끊어져 버린 상태에서 없는 의심만이 드러나. 의심(疑心)만을 () 나가는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인데.

 

풍선을 때에 풍선의 어느 곳에 바늘구멍만한 구멍만 뚫어져 있어도 아무리 불어도 풍선이 커지지를 못하고, 입으로 아무리 힘을 들여서 불어도 바늘구녁 뚫어진 데로 헛짐이 새기 때문에 풍선이 불어나지를 않어.

사구참선, 사구참선이란 바로 그런 거여. 아무리 불어도 커지지를 않고, 커지지를 않기 때문에 터지지를 못하거든.

 

그런데 구녁이 막혀서, 입으로 부는 구녁만 있지 다른 구녁은 완전히 헛짐 새는 곳이 없는 풍선이라야 쪽쪽 점점 커져 가지고, 더이상 커질 없는 지경에까지 불어대면 결국은 그놈이 ! 하고 폭음을 내면서 풍선이 터지는 거여.

 

화두도 사량분별이 없이 전후(前後) 제(). 심로(心路), 마음 길이 끊어진 상태에서 의단(疑團)만을 계속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의단을 거각(擧却)해서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고 이렇게 가면 결국은 더이상 의심이 커질라야 커질 없고, 더이상 간절할라야 간절할 없는 지경에 이르러.

화두를 들라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 가지고 항상 의단이 현전(現前)하면, 그래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에 이르르면 결국은 의심이 ! 터지면서 화두를 타파(打破) 가지고 자기의 본성(本性)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작년에 『몽산법어(蒙山法語)』를 여러분에게 법공양(法供養) 했는데, 아마 대부분 권씩을 받아서 가지고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몽산법어는 활구참선법! 활구참선 하는 데에 관한 법문만을 여기에 수록한 법어집입니다.

여러분이 몽산법어를 받아서 첫째 서문을 읽어보시면 몽산법어라는 책이 어떠한 책이며, 얼마나 공부해 나가는 요긴한 책인가를 여러분 아실 수가 있고.

 

그리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구절씩항상 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까 공부하다가 가끔 법문을 듣고 싶으면, 몽산법어를 편씩을 떠억 보시면은 선지식 법문 들은 거와 같아서 신심(信心) 돈발(頓發)하고 의정(疑情) 돈발을 해서 참선이 잘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금방 조실 스님 녹음법문도 몽산법어를 ()하셨습니다마는 몽산법어를 가끔가끔 보시고몽산법어를 보지 해도 의단이 독로하고 순수무잡해서 타성일편 지경에 들어간다면 구태여 몽산법어도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공부를 하다 보면 때는 단전호흡(丹田呼吸) 잘되고, 화두도 들려서 의단이 순일무잡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변해 가지고 영판 단전호흡도 안되고, 정신도 청쾌하지를 못하고 의심도 나지를 가지고 그렇게 답답하고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억지로 앉아서 시간만을 채울려고 하시지를 말고 가볍게 포행을 하고 와서 정진을 하실 수도 있고,

 

여러분 댁에서 공부하실 때에는 몽산법어도 편씩 떠억 보시고서, 이게 한글로 () 달고 그것을 번역을 하고, 거기 어려운 말에 대해서는 역주(譯註) 붙여서 놨기 때문에 누구든지 보시면 있게 되어 있습니다.(처음~1618)

 

 

 

 

(2)------------------

 

심사학도별무타(尋師學道別無他)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하면   항사제불안전화(恒沙諸佛眼前花)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사학도(尋師學道) 별무타(別無他). 스승을 찾아서 법문을 듣고 도를 배우는 것이 다른 일이 아니여.

지재기우자도가(只在騎牛自到家)니라. 다못 소를 타고 자기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소는 무슨 ? 지금 황소나 무슨 우유를 짜는 ? 그게 아닙니다. 자기의마음 타고서 자기의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더라.

 

마음 ! 부르면 대답할 알고, 욕하면 성낼 알고, 억울한 소리를 하면 () 나고, 칭찬해 주면 기뻐하고, 배고프면 먹을 알고, 그게 바로마음 그림자거든. 마음 그림자 있는 곳에 소가 없겠느냐 그말이여.

마음 그림자를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하면 그게 자기의 마음 소를 찾을 있는 길이 바로 거기에 있어. 마음 소를 찾아서 타고 자기의 마음 고향, 마음 부처, 마음의 극락으로 돌아가는 길이여.

 

어떻게 해야 마음 타고 고향에 돌아갈 수가 있겠느냐? 백척간두(百尺竿頭) 걸음을 나아가야 한다.(百尺竿頭能闊步)

백척간두에 올라가 가지고 떨어져 죽을까 봐서 그놈을 ! 붙잡고 벌벌벌벌 떨고 있어. 재산, 명예, 권리, 자식, ! 그놈을 붙잡고 그래 가지고 행여나 그놈을 놓칠까 벌벌벌벌 떨고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 그러한 탐착심으로 인해서 눈이 가리워졌는데 어떻게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겠느냐?

 

() 장애는 탐심(貪心), 진심(瞋心)이거든. 탐진치(貪瞋痴).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 탐진치 삼독심에 얽매어 가지고 결국은 마음 소를 찾지를 못해.

 

무엇이 탐심(貪心)이냐? 재산에 관한 것만이 아니에요.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서재산이 되었건 명예가 되었건 권리가 되었건, 무슨 사상이 되었건, 무엇이고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 그릇된 생각을 갖는 것이 그것이 탐욕이여.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 거기서부터 그릇된 생각을 .

 

진심(瞋心) 무엇이냐?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서 그릇된 생각을 내는 거여.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도 거기에 끌려가지 아니하고 터억 화두(話頭) 들어 버리고, 마음에 드는 일을 보고 당하고 하더라도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끌려가면 진심(瞋心) 나게 되는 것이니까, 마음에 드는 일을 당하더라도 거기에서 퍼뜩 돌이켜서 화두를 떠억 들어 버리고 그래야 텐데, 전부 그리 끌려가 버리거든.

 

마음에 드는 일을 보고서 거기에 그릇된 생각을 내서 화두를 들을 줄을 모르고 끌려가면그놈을 마음에 드는 것을 보고저건 것을 삼아야겠다벌써 그게 바로 그릇된 생각을 내는 거거든.

마음에 드는 일을 보면 퍼뜩!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야 텐데, 그걸 보고 그릇된 생각을 내면 그것이 바로 진심(瞋心)이여.

 

다음에 치심(痴心) 뭐냐? 무지(無知) 말미암아서해야 해야 분간을 못하면 이것이 어리석은 거여. 그래서 법문을 항상 들은 사람은 자연히 지혜!—내가 해야 일과 해야 , 이것을 자연히 판단이 나게 되는 거여.

해야 , 해야 일을 판단이 것은 법문을 듣지 아니하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당해도 그것이 분간을 바로 못하고, 무슨 말을 들어도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분간을 못하거든.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거여.

 

그래서 항상 법문을 듣고, 항상 정진한 사람은 탐심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탐욕이 없어져 버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심을 줄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지가 달아나 버려.

그래서 항상 계율을 지킬려고 해도 계율을 지키게 되고, 마음은 항상 안정이 되고, 항상 지혜로운 마음이 !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 바르고, 사람의 말이 바르고, 사람의 행동이 바르고, 사람의 모든 생활이 바르게 되게.

그래서 참선을 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 의지해서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모든 생활이 자연히 바로 잡아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탐착심(貪着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으로부터서 해방이 되야 .

그래서 오직 화두로써 눈을 삼고, 화두로써 귀를 삼고, 화두로써 입을 삼고, 육근(六根) 육식(六識) 전부 활구참선으로 무장을 때에 무엇에 집착할 것이 있겠느냐 그말이여.

 

명예를 집착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명예가 것이요, 권리를 탐착을 하지 해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면 권리도 이르른 것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시커먼 마음으로 탐심 낸다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탐착심을 버려 버리고 정법(正法) 의지해서 올바르게 살아가면 자연히 업장이 소멸이 되기 때문에 장애가 없어지고, 장애가 없어짐으로 해서 선신(善神) 옹호(擁護)하고 제석천왕(帝釋天王) 항상 보호를 하시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면 구하지 아니해도 자연히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를 나가면 자연히 그것이 그렇게 되는 것을 스스로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죽어서 극락에 갈려고 하지 해도 이미 살아서 불보살(佛菩薩) 친견하고, 살아서 불보살과 더불어 생활하게 되니, 사바세계(娑婆世界) 바로 극락정토(極樂淨土) 되는 것이여.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입니다.

 

백척간두(百尺竿頭) 능히 활보(闊步) 해야 항사제불(恒沙諸佛) 바로 안전화(眼前花), 눈앞에 꽃이여.

부처님, 부처님하지마는 우리는 극락세계만 가야 부처님을 뵈옵고, 도솔천 내원궁에만 가야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은 하늘나라나 그런 오색 구름 속에 휩싸여 계신 걸로 생각하고 그렇지만, 그것은 중생의 마음으로 맨들어낸 중생의 허망한 부처라고 하는 허상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부처님은 여기에 계시고, 저기에 계신다고 수가 없는 것이여. 법계(法界) 가득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인 것이고.

볼라야 없는 것이 부처님이요, 볼라야 없는 것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중생의 (), 업의 눈으로 보인 것이 그것이 부처일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찾고 있는 그러한 부처는 헛된 망상의 부처님이여.

부처는 업의 눈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활구참선에 의지해서 정말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해서 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할 때에 여러분은 눈을 감아도 전체가 부처요, 눈을 떠도 전체가 부처인 것이다.(3957~515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묵좌허회독엄문~’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 선백(禪伯)에게(贈巖禪伯)’ 참고.

*회포(懷抱 품을 /안을 )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

*자욱히 ; 자욱이. 자옥이. 연기나 안개 따위가 잔뜩 끼어 흐릿하게.

*정취(情趣 ·정취 /·취향· ) ; 심미(審美 아름다움을 살펴 알다) 바탕을 깊은 정서(情緖) 자아내는 흥취(興趣 흥과 취미).

*취미(趣味 ·취향· /·마음에 느끼는 ) ; 감흥을 느끼어 마음에 일어나는 .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거량(擧揚 /나타낼·밝힐 ) ; 화두, 공안(公案)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 말하는 .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치성(熾盛 성할 /성할 )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참상(參祥) ; 참구(參究) 같음.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개도 불성(佛性)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하시니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벼람박 ; ‘바람벽(--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 사투리.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헛짐 ; 헛김( 데로 새어 나오는 ).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법공양(法供養)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풂. ②불서(佛書) 사람들에게 베풂. ③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찬탄함. 경전에 · 등을 바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역주(譯註 번역·뜻을 풀이함 /주해·뜻을 풀어 밝힘 ) ; ①번역한 사람이 붙인 주석(註釋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 또는 ). ②번역과 주석을 아울러 이르는 .

 

 

 

 

 

------------------(2)

 

*(게송) 심사학도별무타~’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어느 선자(禪子)에게(贈某禪子)’ 참고.

*백척간두능활보(百尺竿頭能闊步) ;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척간두에서 걸음을 나아간다는 .

①이미 연구를 쌓을 만큼 쌓은 위에,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다시 연구를 계속하여 노력한다는 .

②백척간두는 높은 장대 위에 섰다는 말로서, 막다른 매우 위험한 지경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걸음 나아가면 죽을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크게 살아나게 된다는 .

③깨달음을 얻었더라도 더욱 깨달음을 넘어서 절대의 살아 움직이는 경지에까지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소의(所依) 되어 육식을 일으켜 대상을 인식케 하는 근원이다。곧 () • () • () • () • () • () 여섯 가지 기관(器官) 말한다.

*육식(六識) ; (((((() 육근(六根)으로 각각 (((((() 육경(六境)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선신(善神) ; 불법(佛法)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

*옹호하다(擁護-- 안을 /보호할 ) ; 어떤 대상을 두둔하고 편들어 지키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 () 불타(佛陀) 준말. 각자(覺者)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활보(闊步 넓을 /걸을·걸음 ) ; 발자국을 크게 떼며 거침없이 힘차고 당당하게 걸음. 또는 걸음.

*항사(恒沙) ; 항하사(恒河沙). 인도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항사제불(恒沙諸佛) ; 무수히 많은[恒沙] 모든 부처님.

*법계(法界) : [] dharmadhatu  dharma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들어 말하고  dhatu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萬有)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성품(法性)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