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19. 9. 12. 15:18

§(201) 송담 스님의 출가 일화 / 간화선(看話禪)은 모든 중생의 근기에 맞는, 사견(邪見)에 빠지지 아니하고 확철대오 할 수 있는 가장 수승한 법.

 

전강 조실 스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아침마다 법문을 듣고, 그때도 꼭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 법문을 설하시고 그래서 법문을 듣고, 또 법회가 가끔 있어서 법문을 듣고, 또 대중과 같이 하니까 해태심(懈怠心)을 낼라야 낼 수가 없고 그래 좋더니, 혼자 있으니까 아무리 정신을 차려서 헐라고 해도 그 혼침(昏沈)을 막기가 어렵고, 해태심이 나서 억지로 이를 갈아붙이고 해도 잘 안된다 그말이여.

 

앞으로 육조 스님이나 부처님과 같은 또는 달마 스님과 같은 그러한 대종사가 나오셔서 우리 중생의 근기에 맞춰서 이 간화선보다도 더 훌륭한 법을 개척을 해서 지도를 하신 때에는 몰라도, 그러기 전까지는 이 간화선(看話禪)보다도 더 수승한 모든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는, 사견(邪見)에 빠지지 아니하고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법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산승(山僧)은 믿는 바입니다.

 

**송담스님(No.201)—1983년(계해년) 춘계산철 해제 법회 (용201)

 

(1) 약 21분.

(2) 약 2분.

 

(1)------------------

 

송담이 처음에 출가할 때, 출가하기 전에 학생 때부터 ‘참선을 하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방에 가서 참선에 관한 책을 여러 권을 구해 가지고, 근데 일본 책인데 구한 책이 마치 조동종 계통의 책을 구했습니다.

 

일본의 도원 선사(道元禪師)는 귀족 출신으로 어려서 조실부모를 해서 출가해 가지고 당나라로 건너가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선지식(善知識)을 찾은 것이, 여정 선사(如淨禪師)라고 하는 조동종 계통의 대종장(大宗匠)을 만나가지고 거기서 한 3년 간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아서 일본으로 돌아와가지고 조동종(曹洞宗)의 초조(初祖)가 되었습니다.

 

그 조동종 도원 선사의 어록을 구하고 또 조동종의 참선법 · 교리 · 선학 그런 것을 해설해 놓은, 도원 선사에 대한 연구하는 책을 구하고 그래가지고 그놈을 날마다 읽고 그래가지고 조동종의 참선을 참 여러 달을 내 나름대로 했는데, 그 조동종에서는 임제종(臨濟宗) 계통에 간화선(看話禪)을 사마외도(邪魔外道)의 법이라 해 가지고 힐난하게 비방하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임제종 계통에서는 조동종의 참선을 묵조사선(默照邪禪)이니 해 가지고 대단히 또 조동종 계통의 묵조선을 공격을 하고 해서, 중국에서부터서 임제종과 조동종 간에는 대종사끼리 그렇게 힐난하게 아주 사마외도라고 참 극렬한 표현을 하면서 피차 비방을 하고.

그런데 내가 학생 때 마치 그 조동종 계통의 책을 읽어 가지고 나도 '확실히 조동종 계통의 참선법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간화선은 대단히 나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아무래도 속가(俗家)에서는 도저히 참선을 할 수가 없어요. 여러가지 복잡하고 그래서 ‘아무래도 내가 참선을 할라면은 천상 절로 가서 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절에를 갔는데, 마치 전강(田岡) 조실 스님이 훌륭하시단 말씀을 듣고 전강 조실 스님이 계신 절을 찾아갔습니다.

 

광주 지산동 골짜구니에 들어가면 향로봉 밑에 ‘자운사’라 한 조그만한 암자가 있었는데, 그 절에다가 그해 여름에 전강 조실 스님과 또 종정을 지내신 윤고암 스님, 두 스님이 거기에서 참선방을 하신다 그래 가지고 거기를 찾아가서 방부(房付)를 들였습니다.

내가 꼭 중노릇을 할려고 간 것은 아니고 참선을 할려고 갔는데, 집에서 다 한복을 만들고 그래가지고 식량과 찬대(饌代) 모다 그런 것을 다 준비를 해 가지고 가서 방부를 들이고 그래 있는데.

 

가자마자 조실 스님을 만나 뵈옵고, 나는 거기서는 화두 어쩌고 해도 ‘그건 다 못된 참선을 하고 있다’ 이리 생각을 하고, 나는 내 속으로 조동종의 묵조선(默照禪)을 딱 하고 있는데 조실 스님이 "너는 앉아서 뭣을 하냐?"

"참선합니다"

 

"무슨 참선을 어떻게 하느냐?"

"그냥, 이렇게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소상하니 (말하라 해서) "생각없는 생각으로 관조를 하고 있습니다"

 

"너 조동종의 묵조선을 하고 있구나"

"예, 그렇습니다. 왜 그것이 나쁩니까?"

 

"차라리 참선을 안 하는 것이 낫지, 천하 못쓸 것이니다"

"그것이 왜 나쁜가요? 어떤 참선이 좋습니까?"

 

"화두를 타 가지고 화두를 의심을 해야지, 화두도 없이 그렇게 앉아서 무슨 깨달음에 이르겠느냐"

"그 화두라 하는 것이 화두를 들고 앉아서 깨닫기를 기다리고 앉었는 것이 그것이 어찌 바른 참선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원래부터 우리는 본래 이 자신이 부처고 우리 자성이 있는데, 그 있는 자성을 바로 보기 만하면 관조하기 만하면 고대로 새로 깨달을 것 없이 본래 부처인대, 무엇을 깨달을 것을 기다릴 것이 있습니까. 그것이 벌써 시작할 때부터서 소견이 삿된 것이 아닙니까?"

 

내가 조동종 계통에 읽은 책을 본 대로, 있는 대로 다 조실 스님 앞에 내 놓으면서 계속 조실 스님하고 토론을 해서 며칠을 해가지고 며칠 동안을 내가 강경허니 버티다 버티다 내가 딸려 가지고, 결국은 조실 스님한테 항복을 하고 화두(話頭)를 정식으로 타서 참선을 했습니다.

 

 

난 중이 될려고 가지도 않았는데 조실 스님이 장삼(長衫)을 주시면서 입으라고 하시고, 들어가자마자 나를 조실 스님이나 고암 스님이나 거기에 계신 여러 스님네들 또 신도들도 이십 여명 있었는데 모다 나를 스님 대우를 했습니다. 계(戒)도 받지도 않고 또 행자(行者)도 아니죠.

 

그랬는데 나를 ‘은(隱) 수좌, 은 수좌’하고 수좌(首座)로 아주 정식으로 대접을 받었습니다. 장삼을 입고 예불을 하고 또 조실 스님이 어디 법회가 있어서 가시게 되면은 나를 시자(侍者)로 데리고 가시고, 그래서 승속 간에 나를 아주 스님으로 대접을 하고 그래서 참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철을 지냈는데, 그 지내보니까 모다 거기에 모이신 스님네나 모다 정말 이 고봉 스님처럼 목숨을 바쳐서 철두철미하게 정진을 했으면 나도 그것을 보고 발심(發心)을 해서 그냥 그길로 계를 받고 출가를 했을런지도 모르는데,

모다 입선(入禪)하고 방선(放禪)하고 하는데 형식적으로 하고, 방선만 했다 하면은 돌아서서 잡담하고 맨 뭐 못된 소리나 하고.

 

그래서 내 자신이 ‘에이, 이런 데 있으면은 나까지 물이 들겠다’ 그래 가지고 '절에 가서 있을 것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가서 선조(先祖) 산소 밑에 그 산재각(山齋閣)이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런 데 가서 방을 하나 치워 놓고 혼자 생식(生食)을 하면서 차라리 참선을 한 것이 낫겄다’ 이리 생각을 해 가지고 해제를 하고서 짐을 꾸려 가지고 나오니까,

 

조실 스님께서 "아, 중이 될 줄 알았는데 중이 안 되고 가는가?"

"예, 애당초부터 중이 될라고 오지도 않았고, 어디 산재각 같은 데 가서 혼자 생식을 하면서 정진을 좀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 자네가 언제라도 중이 될 때에는 내한테 와서 중이 되어야 하네"

"아, 그렇고 말고요. 되기만 함사 내가 스님한테 와서 상좌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중 될 생각은 아직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실 스님이 손을 잡고 이별을 하시면서 "자네가 아무때라도 날 찾아오고 말 것이네" 그러시거든요.

그래도 속으로는 ‘내가 확철대오나 하면 스님을 찾을까, 내가 중은 될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속으로는 생각을 하면서도 각박하게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가 없어, "예, 제가 스님을 찾아 오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로 그렇게 하고는 보따리를 짊어지고 집으로 와서 다시 산재각 재실(齋室)을 찾아가서 생식을 하면서 겨울 한철을 지냈습니다.

 

지내고 보니, 절에 있으니까 새벽 3시가 되면 자동으로 대중과 같이 일어나서 같이 정진하게 되고 시간 맞춰서 하니까 참 좋은데, 혼자 가서 하니까 새벽에 영 일어나기가 어렵고,

또 자명종을, 시계를 틀어 놓고 하니까 일어나기는 일어나는데 일어나서 억지로 세수를 하고, 추우니까 이불을 둘러쓰고 앉었으니까는 영 졸음이 퍼오고 참 안 좋다 그말이여.

 

조실 스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아침마다 법문을 듣고, 그때도 조실 스님이 꼭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 법문을 설하시고 그래서 법문을 듣고, 또 법회가 가끔 있어서 또 법문을 듣고,

또 대중과 같이 하니까 해태심(懈怠心)을 낼라야 낼 수가 없고 그래 좋더니, 혼자 있으니까 아무리 정신을 차려서 헐라고 해도 그 혼침(昏沈)을 막기가 어렵고, 해태심이 나서 억지로 이를 갈아붙이고 해도 잘 안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다시 내가 결심을 하기를 '내가 천상 이 공부를 헐라면은 싫거나 좋거나 가서 출가를 해서 중이 되어야겠고, 일단 중이 된 이상에는 남이야 공부를 하거나 말거나, 잡담을 하거나 말거나, 술을 먹거나 담배를 먹거나 고기를 먹거나, 무슨 별 못된 짓을 하거나 말거나, 남의 흉을 보지를 말아야겠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고 해태를 할수록에 나는 더 분심을 내고 더 신심을 내서 공부를 해야겠다. 그러니 그 시비에 내가 말려들지 아니하고, 잡담하고 그런 데 내가 말려들지 아니할려면 묵언(默言)을 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가 아직 학교를 졸업을 채 못한 때인데, 그때 집안에선 모다 다니던 학교니까 졸업하고 절에 가도 늦지 않으니까 졸업을 마치고 가라 그래서, 그래서 다시 학교에 들어가가지고 그럭저럭 그냥 졸업을 하고는,

졸업한 날 학교 이발소에 가서 면도로 머리를 싹 깎어버리고는 그길로 절로 가서 조실 스님을 찾아가서 뵈옵고, 가니까 마침 고암 스님도 계시고 조실 스님도 계시고 해서 거기서 며칠 사이로 그저 가사 · 장삼을 준비를 해가지고는 계(戒)를 받았습니다.

 

받고 나서 며칠 안 있다가 묵언을 하고 그렇게 정진을 했는데, 근기(根機)가 원래 둔하고 약해서 고봉 스님처럼 그렇게 철저히 정진을 못하고, 묵언을 하면서도 온갖 시비에 다—자연히 뭔 말을 하면은 손짓 발짓을 하고 뭐라고 써서 문답을 하고, 그렇게 철저히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한 과거를 생각해 볼 때에 ‘선지식(善知識)을 여의고서는 이 공부는 못할 것이다’한 것을 알고.

 

조동종은 원래 그런 무슨 삿된 종파가 아니고, 육조(六祖) 스님 밑에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라고 하는 큰 도인이 있었는데, 그 청원행사 선사 밑에서 벌어지는 종파가 이 조동종입니다.

임제종은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 밑에서 벌어졌고, 조동종은 청원행사 선사 밑에서 벌어진 동산(洞山) 선사나 조산(曹山) 선사, 그런 대선지식 밑에서 벌어진 종파로써 전혀 삿된 종파가 아닙니다.

 

아닌데, 왜 묵조사선이라고 하냐?

 

선학사(禪學史)적으로 본다면은 오히려 조동종이 임제종보다도 더 사형(師兄)이기 때문에 조동종이나 그 선학사상(禪學史上)으로 볼 때에는 조동종이 오히려 달마 스님으로부터서 내려오는 정통이다. 이렇게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는 이 조동종 계통의 종파가 정식으로 내려오지를 못했습니다.

조동종이 내려오지를 못하고 임제종이 계속해서 계계승승해서 오늘날까지 내려와서, 그러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사람으로서 조동종 계통의 묵조선을 헐라야 내려오는 종사(宗師)가 없어서 천상 묵조선을 할라면은 책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는데, 책을 봐가지고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입니다.

 

하는 방법은 알 수가 있지만 공부를 하다가 어떤 소견이 난다든지 경계(境界)가 났을 때에 어떤 종사가 없기 때문에 점검을 받을 수가 없어. 이런 어떤 경계가 났을 때 이것이 옳은 경계인지 나쁜 경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옳게 해 가면서도 그른지 옳은지 의심을 끊틀 못하고, 잘못된 경계가 나타나도 그것이 옳은 경계인 줄 알고 거기에 그대로 나간다면은 정말 삿된 소견에 떨어져서 자기도 그르치고 자기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도 그르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 아닌 것을 생각하라’ 조동종 계통의 어록을 보면 공부하는 방법을 그렇게 표현을 했다 그말이여.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 아닌 생각을 생각하라’ 무슨 말이여?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 아닌 것을 어떻게 생각해?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아까 고봉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단(丹), 단을 얻어가지고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목숨 바쳐서 정진을 여법히 하지 않고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了達)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앞으로 육조 스님이나 부처님과 같은 또는 달마 스님과 같은 그러한 대종사가 나오셔서 우리 중생의 근기에 맞춰서 이 간화선보다도 더 훌륭한 법을 개척을 해서 지도를 하신 때에는 몰라도, 그러기 전까지는 이 간화선(看話禪)보다도 더 수승한 모든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는, 사견(邪見)에 빠지지 아니하고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법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산승(山僧)은 믿는 바입니다.

 

‘과거에, 무슨 육조 스님 이전에 무슨 화두란 소리가 어디가 있느냐?’

좁은 소견으로 내가 삼십 여년 전에 국집(局執)했던 그러한 생각이 떠올라서, 마치 오늘 고봉 스님의 단(丹)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확철대오 할 수 있는 그 단(丹)이라고 하는 법문이 나왔기에 지나간 일을 더듬어서 여러 대중께 말씀을 드렸습니다.(31분2초~51분45초)

 

 

 

(2)-----------------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추위가 한바탕 강추위를 해서 뼈골에 사무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어찌 코를 치는 진한 향기를 얻을 수가 있을까 보냐.

 

언제 읊어봐도 좋은 게송입니다.(51분46초~53분22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종장(宗匠 근본·우두머리 종/장인·우두머리 장) ; 수행한 바가 다른 이의 사표(師表)가 될 만하여 법맥을 이어받은 고승(高僧).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에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은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그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을 선양하였다.

 

이 이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하지 않으나, 법안 문익(法眼文益)선사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동」은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동이겠지만, 「조」는 동산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이 그 종지를 크게 밝혀서 완성한 때문이라 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문법에 선후와 시종을 거꾸로 붙이는 전례가 아주 없는 바도 아니지만 제자의 이름을 스승의 이름 위에 놓은 것이 당연한 경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이후에는 조계산(曹溪山)의 「조」로써 육조의 바른 갈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왔다. 또한 조산 본적의 조산도 조계산을 사모하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 가풍은 정편 오위(正偏五位)를 세워서 아주 세밀하고 말과 행실이 서로 일치하고, 이치와 일이 무르녹게 합하여, 본래면목으로써 종지(宗旨)를 삼는다.

일본의 조동종은 도원(道元: 1200~1253)이 1223년 송나라에 들어가 중국 조동종의 선승인 여정(如淨)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계승하였다. 도원 선사는 1227년 귀국하여 일본에 조동종을 전파하였다.

*초조(初祖) ; 한 종(宗)을 처음 세운 스님.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하였다.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마외도(邪魔外道) ; 불법(佛法)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외도. ‘사마’란 삿된 마구니라는 뜻으로 불도(佛道)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외도 중 삿된 견해로써 불도 수행자를 어지럽히는 자를 사마외도라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찬대(饌代 반찬 찬/대금 값) ; 반찬값. 반찬(飯饌) 값[代].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시자(侍者) ; ①시중(侍從)을 드는 사람. ②스승, 장로를 따라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승(高僧)의 가까이서 시중을 들고 명령에 따르며, 항상 용무를 다하는 제자를 말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재각(齋閣)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

*선조(先祖) ; 한집안에서 윗대의 조상.

*생식(生食) ; 음식물을 익히지 않고 날로 먹음. 또는 그런 음식.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고려 중기 보조지눌(普照知訥)이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의 원효(元曉)가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고려 후기 야운(野雲)이 지은 《자경문(自警文)》의 세 가지의 글을 합쳐서 한 권으로 엮은 책.

《계초심학인문》은 불교에 입문한 초심 행자가 알아야 할 범절과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발심수행장》에는 수행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적혀 있고, 《자경문》에는 수행인이 스스로 일깨우고 경계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육조(六祖) : (638 ~ 713)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 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 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이라 하였다.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지었다. 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육 세로써 입적하였다。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청원 행사(靑原行思) : (? – 740) 속성 유(劉)씨。강서성 길안부(吉安府) 여릉현(廬陵縣)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깨친 바 있어, 조계(曹溪)에 가서 육조의 인가를 받고, 대중의 상수(上首)로 있었다.

그리하여 육조 문하의 장로(長老)이더니, 뒤에 그 고향인 길주(吉州) 청원산 정거사(青原山靜居寺)에서 교화하였는데, 육조가 열반한 뒤에 학자들이 그 곳에 많이 모였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28년에 입적하였다.

*남악회양 선사(南嶽懷讓禪師) ; 『육조단경(六祖壇經)』 참청기연품(參請機緣品)에서.

懷讓禪師  金州杜氏子也  初謁嵩山安國師  安發之曹溪參扣  讓至禮拜

師曰 甚處來  曰 嵩山  師曰 什麼物 恁麼來  曰 說似一物卽不中  師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師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西天般若多羅 讖汝足下出一馬駒 踏殺天下人 應在汝心 不須速說  讓豁然契會 遂執侍左右一十五載 日臻玄奥 後往南嶽 大闡禪宗 敕諡大慧禪師

 

회양 선사는 금주 두씨의 아들이다. 처음 숭산의 혜안 국사를 뵈니 혜안 국사는 조계로 보내 공부하도록 하였다. 회양 스님이 찾아뵙고 예배하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육조) “어디에서 왔느냐?”  (회양) “숭산에서 왔습니다”

 

(육조)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회양)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습니다”

 

(육조) “도리어 닦아 증득할 수 있느냐?”  (회양) “닦아 증득함은 없지 없지 않으나 오염은 없습니다”

 

(육조) “다만 오염되지 않는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호념(護念)하는 바이라 네가 이미 이와 같고 나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서천의 반야다라 존자가 너의 발 아래 한 망아지가 나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인다고 예언을 하셨으니 네 마음속에 두고 모름지기 함부로 말하지 말라"

 

회양이 훤칠하게 깨우치고는 육조 스님을 15년 동안 모시면서 날이 갈수록 공부가 깊어졌다. 뒷날 남악으로 가서 선종(禪宗)을 크게 떨쳤다. 왕이 대혜선사라 호를 내렸다.

*사형(師兄) ; 한 스승 밑에서 자기보다 먼저 그 스승의 제자가 된 스님를 높여 이르는 말. 법형(法兄)이라고도 한다.

*종사(宗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조사(祖師)와 같다.

*언어도단(言語道斷) ;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어이가 없어서 말하려 해도 말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말이 안 됨’으로 순화.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丹) ; 신약(神藥, 신통할 정도로 효험이 있는 약). 여기서는 중생의 무량겁 업장(業障)을 녹이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달을 수 있는 약, '화두(話頭)'를 말한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 ①깨달음과 중생제도의 중대한 부처님의 임무. ②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인연 ③부처님이 정도, 능력이 다른 사람들을 여러가지 방편으로 이끌어, 모두 구한다고 하는 중대한 인연. 일단인연(一段因緣)이라고도 한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고봉 스님의 단(丹)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확철대오 할 수 있는 그 단(丹)이라고 하는 법문' ; 송담스님(No.201)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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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