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마나 다생 과거에 참 인연(因緣)이 중해서, 그 좋은 복을 지어서 좋은 몸 받아 와서 수도 대중이 되었냐 말이여. 그 뻘로 알지마는 뻘로 알 수 없는 거여.
우리가 아침마다 이렇게 모아서, 좋은 대중이 모아서 도 닦는 이걸 좀 인연을 가만히 생각해 봐.
그 인연이 얼마며, 어떠하며, 얼마나 그 참 한량없는 복인가. 그런 대중이 모아서 도(道)를 닦는구나.
재색최선금(財色最先禁)이니라. 조금이라도 거기에 재물이라든지 돈... 돈,
나 먹고 살면, 수도 대중이 먹고 살면 그만이지. 먹고 사는 밖에 무슨 돈을 취(取)혀? 돈을 알아서 뭣혀? 그저 먹으면 도 닦으면 되는 것이지.
그다음, 세상에 그런 무슨 장가들고 애욕—처자 생활, 부부 생활, 그녀러 것이 뭣이여?
부부 생활 그녀러 것 해 가지고는 그 무슨 놈의 숭악한 놈의 여러 가지 그 모도 탐심, 욕심, 취하는 마음, 그놈의 것 땀세 무슨 조금이라도 도 닦을 겨를이 있어야지? 부부 생활이라 하는 것이.
부부 생활 딱 만나 놓으면 혼자 똑 둘이, 둘이만 살면 하지마는 그저 이놈 큰놈 나와, 적은놈 나와, 또 나와, 또 그놈 손자 나와. 뭣혀?
그래서 도무지 그거 부처님이 헐 수 없이 금욕(禁慾)허라는 것이여. 그놈의 그 숭악한 욕(欲) 중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하니 불가불이다. 도학자는 헐 수가 없어.
암만 '세계에서 인연 속에서 부부지간 속에서 왜 못햐?' 거 말이 그렇지, 그렇게 할 도리가 없는 것 같어.
그러길래 고불(古佛), 고조사(古祖師)가 다 처음에는 모두 출가했고 모두 그 도 닦는 처소를 가렸고, 할 수가 없는 모냥이지? 그러니 가장 그 무슨 재색(財色)을 멀리 해라.
군거수구신(群居須口愼)해라. 아무리 여러 이렇게 대중이 모아서 살지마는 입이 없어 버려라.
거 입, 거 함부로 무슨 입을 벌릴 것이 있느냐? 헐 말이 뭐냐? 도 닦는 이외에 말이 무슨 말이 있을 건가?
다시 말만 열면은 넘의 말뿐이니, 넘의 말할 것이 뭐가 있어?
세상에 응, 내 말도 할 것이 없거늘 넘의 말을 뭘 할 것이 있느냐 말이여. 입이 없어 버려라.
독거(獨居)에 요방심(要防心)해라. 혼자 있을수록에 더욱 마음을 막아라.
무슨 못된 마음이 날까, 행여나 무슨 조금치라도 그릇된 마음이 있으면 못쓴다. 마음을 그렇게 방심(防心)을 해야 할 것이니라. 수도 학자의 생애다.
대지여일(大智如日)이 보조삼천(普照三千)이다.
깨달은 도리가 비유컨댄 나를 한번 턱 깨달라 버리면 깨달은 도리가 비유컨댄, 저 큰 그 해가 지혜 같애서 지혜 날이라. 지혜 날. 지혜 같애서, 지혜 날 같애서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비추리라.
삼천세계 뿐이여? 삼천세계를 저 해는 비출는지 모르지마는, 우리 깨달은 지혜는 삼천세계 뿐이여? 지옥, 천하없는 암(暗) 칠통(漆桶)이라도 다 깨져 버리는데.
어둡고 밝은 것이 다 거기는 붙지 못헌디, 뭐 밝다고 말을 할 것이여? 어둡다고 말을 할 것이여? 어둡고 밝은 것이 붙을 수가 있어야지? 아! 이런 각(覺)이네.
어둔 것이 있으면 대(對)로 밝은 것이 있을 것이여. 낮이 있기 따문에 밤이 있는 것이여. 밤이 있기 때문에 낮이 있고.
우리 대지(大智)는 한번 내가 내 마음을 깨달라 번지면은 밝고 어두운 것이 없어. 삼천세계! 삼천세계가 다 뭣이여?
그러니 그렇게 한번 깨달라 번질 것 같으면은 우리 눈앞에 무엇이 뭐 뭐 걸릴 것이 뭣이 있으며, 맥힐 것이 뭣이 있으며, 지옥이 무슨 지옥이며, 천당이 무슨.. 천당인들 뭐 천당 뭐 좋은 데를 가릴 것이 뭣이 있나?
어디가 안 좋은 데가 어디 있으며, 어디가 걸릴 데가 어디 있어서 안 걸릴 데를 가리고, 천당을 가리고, 무슨 좋은 데를 가릴 것인가?
없어. 지옥세계라도 모두 그만 그대로가 응, 그 자리가 그만 극락이요. 그만 뭐 더 말할 것도...
극락은 무슨 놈의 또 거다 극락을 붙일 것인가.
대지여일(大智如日)이 보조삼천(普照三千)이라. 큰 지혜 날이, 큰 지혜가 날[日] 같애서 삼천세계를 비추리라.
미운(迷雲)이 산진(散盡)혀. 미(迷)헌 구름이 흩어져 다해 버렸어.
우리는 미운(迷雲)뿐인데. 구름, 미(迷)해서 구름 꽉 찌인 콱 찌어버린 우리 중생 소견인데.
미운(迷雲)이 어디 있어? 미운(迷雲) 그놈이 간 곳도 없고, 어디 무슨 뭐 어디 가서 쟁여진 디가 있나?
미운(迷雲)이 다해 버리고 없어.
그래서 그 경계가 만리청천(萬里靑天)이다. 만리(萬里)나 된 청천(靑天)에 중추보월(中秋寶月)이다.
똑 팔월 달 중추(中秋)에 보월(寶月) 보배 달이다. 훤허니 경계도 깨끗허고, 달빛도 깨끗허고, 그 춥도 더웁도 않고. 그 보월이여.
이거는 내 마음 보월이여. 내 마음 보배 달이 그렇다 그말이여. 깨달라 놓으면 경계가 그렇다 그말이여.
담철징원(湛徹澄源)이다. 그 깨끗하고 깨끗하고 하도 깨끗해서 그 근원을 사무쳐 버린다.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버리면, 그때 '허공(虛空)에 발염(發焰)이면, 허공 가운데 불이 일어나면 바다 밑에 연기가 나리라' 그랬네.
아주 그 깨달은 확철대오한 경계가 '허공에서 불이 일어나면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리라' 그랬어.
얼마나 훌륭하게 깨달라서 허공에 불꽃 나면 바다 밑에 연기가 난다 그말이여.
맥축착합착(驀築着磕着)이라. 맷돌 맞듯 대쪽 맞듯 한다.
'맷돌 맞듯 대쪽 맞듯 한다'는 것은 맷돌이 두 짝인데, 아래 짝 우 짝인데,
우아래짝을 갖다 딱 합하면 딱 맞지. 한 짝씩만 있으면 소용없지. 두 짝을 딱 맞춰야 딱 들어맞지.
대쪽을 딱 쪼개놨는데 딴 대쪽은 맞추면 안되지?
똑! 제 대쪽 쪼갠 놈 갖다 맞춰야 딱! 맞지. 고렇게 맞는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일체 공안이 다 맞어.
깨달은 부처님의 그 말씀, 그 공안이 다 맞어. 하나도 조금도 빈틈없이 꼭꼭 맞는다.
고조사(古祖師)의 일체 공안도 다 그와 같이 맞는다. 안 맞는 말이 없어.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다 맞어.
고 공안이 맞어야사 견성(見性)이라 하고, 공안이 다 그렇게 딱딱 맞어져야 거기서 인가(印可)를 받고 옳은 것이지,
부처님 깨달은 도리 다르고, 조사 깨달은 도리 다르고, 저 깨달은 도리 달라 가지고, 제 소견(所見) 가지고 견성했다 하고, 그것은 마구니 중에는 세상에 못쓸 마구니여.
제 소견대로 모두 부처님 말씀을 갖다 맞추고, 조사의 모두 말씀을 제 소견대로 갖다가 맞추고, 모두 그런 거여. 그것은 천하에 못써.
할 수 없어서 그 공안에, 천칠백 공안에 인가법이 딱딱 있거든.
인가법이 없으면은 그 어떻게 증거를, 견성해서 그 생사해탈 증(證)을 거 어떻게 헐 것이냐 그말이여.
무슨 도깨비가 되어 가지고 제가 해탈 증(證)했다 해 가지고 남을 속일 것이냐 말이여. 된 법이 없거든.
그래서 이의다. 맷돌 맞듯 대쪽 맞듯 딱딱 그렇게 맞아. 안 맞는 법이 없어.
타파중현(打破重玄)이라. 거듭 중현(重玄)을 타파해라.
깨달라 가지고도 그 '거듭 중(重)'자 '감을 현(玄)'자, 거듭 현(玄)을 깨달라라.
그 만약 깨달라 가지고는 각견(覺見) 같은 거, 거 무슨 이치.. 이치견 같은 거, 천하에 없는 이치가 붙어 있는 거, 그건 다 소용이 없거든. 그러니 더욱 중현(重玄)을 타파해라.
중현을 타파하는 것이 탁마(琢磨)지. 그저 여지없이 탁마를 해서 하나도 공안에 맥힘이 없이 이렇게 해라.
그래서 조사의 공안을, 부처님의 말씀과 조사의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이라. 한 뀌엄지에 다 뀌어버려야 한다. 조금도 만약에 들어서 공안이 맥힘이 있고 그러면 그 오(悟)가 아니여.
그 공안이라는 것이 천칠백 공안이라 해도, 공안이 천칠백 뿐일 겐가? 천칠백이니 만칠백도 될 것이고.
허지마는 한 뀌엄지에 뀌어 버려.
공안은 똑 같은 것이지 다른 것이 없으되, 맥힌 공안이 있으면 안되거든.
제불묘리(諸佛妙理)를 무불주원(無不周圓)이다. 모든 부처님의 묘한 이치를 깨닫지 아니함이 없이 다 깨달라 버려.(처음~17분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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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마시(到伊麽時)해야, 이렇게 턱 깨달라 가지곤 조방고현(早訪高玄)해라. 이렇게 투철히 깨달라 가지고는 일찍이 고현을 찾아라.
고현(高玄)이라는 것은 '높을 고(高)'자 '감을 현(玄)'자인디, 조실(祖室) 스님을 찾아라. 제일 법 높은 조실 스님을,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조실 스님을 찾아라.
기미완전(機味完轉)하다. 그 네가 깨달은 도리가 완전(完轉)혀.
조금도 어김이 없이 (문 조금 통해라. 조금 통혀) 네 맛본 바와 고인(古人)의 깨달은 바가 조금도 틀림이 없이 완전해야 한다.
뭐, 혼자 뭣 좀 하다가 깨달랐다 해 가지고, 견성했다 해 가지고... 허! 되아? 된 법 없어.
무정무편(無正無偏)해야, 정(正)도 없고 편(偏)도 없다. 무슨 정(正)이 있고 편(偏)이 있나?
'정이 제일이고, 정각이 제일이고, 대각이 제일이고, 확철대오가 제일이고...'
정(正)도 없고 편(偏)도 없고 확철대오도 없다. 편벽됨도 없고. 무엇이 가 붙어 있겠나?
명사허이(明師許爾)라. 그래서 밝은 스승이, 밝은 조실 스님이 허이(許爾)를 해야 한다.
너를 '옳다! 너는 바로 깨달랐다' 이렇게 인가를 딱! 해야 된다.
어름허게, 인가도 없이, 아무데 지내다가 나와서 제가 제일이라고 도인 노릇 하고 선지식 노릇하고, 저 중간에 뭐 그 뭐고? 태백산서 나온 그 뭔 청공인가?
하따! 그것 공부허다 견성했다고 나와 가지고는 제가 제일이라고, 천하에 제일이라고, 고금에 제일이라고 야단을 치고, 대체 그 무슨 신통도 있든 것이여.
뭐 신통이 원 허공에서 잠을 잤든가 원, 허공을 그저 하늘을 마음대로 올라갔든가는 몰라도 별소리가 다 있으며 야단났구만 한참때. 한참때 그 야단을 치더니 어디로 간 종적 없어.
그런 명사(明師)가 허이(許爾)어든, 밝은 스승이 딱! 허락을 혀.
허락을 하되, 암만 밝은 스님이 허락을 했다 하드래도 그 인가가 확 돌아야 혀.
학자(學者)들도 인가한 법이 있거든. 학자도 눈 밝은 학자가 있거든. 눈 밝은 학자는 더 무서운 것이여.
눈 밝은 학자도 다 허락하고, 다 그 허락하거들란 그때에 재입임만(再入林巒)해라.
그때 가서는 확철대오해서 명사허이(明師許爾), 명사가 그저 명안 납승이라도 다 인가 있는 뒤에는 다시 산에 들어가거라. 인자 그때 산에 들어가는 법이여.
재입입산(再入入山)해라. 다시 산에 들어가거라.
산에 들어가되, 인자 그 뭐 그 대중처소, 뭐 대중처소 들어가라는 거 아니여.
자기 마음대로 인자 토굴(土窟), 토굴 마음대로 좋아. 어떤 토굴이든지 인연대로 인연 맞춰서 섬 중도 좋고, 그런 토굴에 혼자라도 좋고, 들어가서.
원효 큰스님 같은 어른도 그 견성 턱 해가지고는 인자 사방 댕기면서 인연 맞추어서 그 동쪽으로 똑 동향으로 집을 짓고 그 모두 보림(保任)허러 댕기시니라고 그렇게 애를 쓰시고.
'원효 스님도 견성 못했다'고 허는 사람이 있다등구마는. 자기는 원효 스님보담 더 나아서 그런가 원 모르지마는, 왜 그렇게 고인을 비방하고.
'보조 스님도 견성 못했다'고 비방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 하등구마는 내 누구라도 말하기는 곤란하고 듣기는 들었구마는, 나는 누가 그랬다 소리 한 법도 없고.
왜 그렇게 고인을 비방하고 우리 큰스님네를 비방하면 어찌 될 것인가?
원효 큰스님이 견성을 못허고, 보조 큰스님이 견성을 못허셨으면은 세상에 누가 했을 거냔 말이여? 우리 동양, 우리 나라의 부처님인데.
낱낱이 바로 제가 견성을 못허면은 고인부터 비방하는 법이여.
고인부터 비방하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되아. 고인부터 비방한 것이 벌써 자기가 몰랐은께, 깨닫지 못했으니 비방을 허고 있거든.
학자면 밝게 가려야 되아! 도학자, 도를 배우는 도학자의 그 지혜라니!
우리 참선(參禪) 학자는, 활구(活句) 학자는 지혜 학자인데, 지혜 학자가 스승 하나를 못 가려 되아?
또 첫째 또 가닥을 똑! 추리란 말이여.
'스님이 견성을 허셨으면은 무슨 공안에 견성을 했습니까? 어떤 스님한테 어떻게 물어서 어떻게 답이 나왔습니까?'
안 나와 그것이? 딱딱 나오지 안 나와? 만공 큰스님 다 나오고, 혜월 큰스님 다 나오고, 어디 그런 큰스님네가 다 없어?
밝은 학자들은 말허나, 안 허나 알겠지마는 내가 여까장 말해 주어야 되지.
확실히 인가가 있거들랑 모암토동(茅庵土洞)에 고락수연(苦樂隨緣)해라.
뗏집, 어디 뗏집 좋다. 도학자들이 무슨 좋은 집, 화각보전 편안하게 뭐 복 받고 복 수용허고 그것 소용이 있어?
어디 가서 그저 뗏집이라도 들어가서 그저, 어쨌든지 그저 인자 참 견성을 했으니까.
견성 후(後)라도 어디 시은(施恩)에 뚝 떨어져 가지고는 그 시은 그런 것 받지 말고 토동(土洞)에 들어가서 고락(苦樂)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뭐 그때 뭐 보림(保任)한 사람이 무슨 뭐,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그거 무슨 뭐 걸리나? 하나 걸릴 것 없지.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닥치는 대로 수용하고, 고락을 인연 따라서 해라.
무위탕탕(無爲蕩蕩)해야, 깨달라 가지고 인자 참 보림을 해서 함이 없이[無爲], 한정 없이 탕탕혀. 아주 탕탕(蕩蕩), 깨달은 도리가 참 그 탕탕하다 그말이여.
너룹고 너룹고 폭이 그렇게 너룹고, 그만 길이 그렇게 높고, 무위(無爲)해서 한정이 없이 탕탕혀.
탕탕해서 성약백련(性若白蓮)이라.
깨달은 도리가 백련 같애서, 백련(白蓮) 그놈 흰 연(蓮)이 향취가 진동한 놈이 암만 더러운 물에다가 집어넣은들 그 연꽃이 검어지나? 물들여지고?
암만 더러운 물에다 넣어봐라. 물이 묻는가? 연 자체라는 것은 물방울이 똘똘 궁글어 버리지, 묻도 않네. 흰 연꽃이 어디 묻나?
깨끗한 백련같이 이렇게 보림을 해라.
다시 어디가 생사에 물들리면, 깨달라 가지고 미(迷)해서 도로 물들리면 쓰겄나?
이 숭악한 놈의 생사 속에서 한번 우리가 이렇게 참 발심(發心)해 나와서 도를 깨달라 가지고 증(證)했거들랑 다시 매(昧)하지 안 해야 할 것 아닌가? 다시 잃어버리지 안 해야 할 것 아닌가?
다시 매(昧)해지고 잃어버리고, 조금 가졌다가 도로 그만 이전 유랑생사(流浪生死) 한다면은 뭣 헐 것인가?
시지출산(時至出山)해라.
그렇게 되거들랑 그때 가서는 때가 되었으니,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했으니 출세해서, 세상에 나와서 중생을 교화해라.
너만 그렇게, 그렇게 깨달라서 생사 하나 없은께 네 마음대로 너만 생사안락, 생사 없는 낙(樂)만 받고 있을 테냐? 시지출산(時至出山)해라. 때가 되거들란 어서 속히 나오니라.
가무저선(駕無底船)해라. 밑구녁 없는 배를 타라.
밑구녁이 없는 배, 그 밑구녁 없는 배를 어떻게 탈 것인고?
밑구녁 없는 배다. 그 무슨 놈의 뭐 밑구녁 없는 배가 걸릴 것 뭐 있나?
수류득묘(隨流得妙)해라. 그 모도 유(流)를 따라서 묘(妙)를 얻어라.
그 인연 따라서 모도 묘(妙)를 얻어서 한량없는 방편(方便)을 모두 가설해서, 모두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저 중생 봐라. 저 중생을 어떻게 할 것이냐?
그렇게 꽉 매(昧)해 가지고는 다시 저를 찾을 줄 모르고, 그저 점점 무량 천만 겁 중에 오면서 여태까장 퍼지어온 죄업 위에다가 날마다 더 짓고, 때마다 더 짓고, 자꾸자꾸 짓기만 하니, 어쩔 것이냐? 내비둬 버리면 어쩔 것이냐, 그거?
광도인천(廣度人天)해라. 그래서 널리 널리 인천(人天)을 제도해라.
그 인천이 누구냐? 모두 타인이 아니여.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여.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주고 키워 주든 다생부모(多生父母)요, 과거 부모요.
여태까장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한 가운데 서로서로 그렇게 인연이 걸려 있어. 부모여.
어디 금생 부모만 부모냐? 전생 부모는 부모 아닌가?
아! 금생 부모는 좀 더허고, 전생 부모는 덜헌가?
전부가 다 그 부모 아니냐!
허니 구등각안(俱登覺岸)케 해라. 한 가지 각안(覺岸)에 오르게 맨들어라.
한 가지 모두 생사 없는 해탈 각안에 모두 올라가게 이렇게 원력(願力)을 세워라.
그래서 동증금선(同證金仙)해라. 영원히 금선, 우리 부처님이 금선(金仙)인데, 한 가지 금선을 증(證)해라. 꼭 부처님이 되게 이렇게 해라.(17분13초~31분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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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출가수도배~’ ; 『청허당집(清虛堂集)』 ‘명감(明鑑)·상주(尙珠)·언화(彥和) 등 여러 문도(門徒)에게 보이다[示明鑑尙珠彥和諸門輩]’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뻘로 ; ‘허튼(쓸데없이 함부로, 쓸데없이 막된)’의 사투리.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그녀러 ; ‘그따위(그러한 부류의.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의 사투리.
*땀세 ; 땀새. ‘~땜에(~때문에)’의 사투리.
*큰놈 ; '큰아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
*적은놈 ; 작은놈('작은아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
*고불(古佛) : ①과거제불의 약어(略語)。 ②덕 높은 스님을 존경해서 쓰는 말.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삼천세계(三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각(覺) ; 깨달음.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허공발염해저생연(虛空發焰海底生煙) :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직전에 정신혁명이 일어나는 경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
*축착합착(築着磕着) : 맷돌 위•아래짝이 서로 꽉 들어맞듯이 수행자가 애를 쓰다가 어느 때 홀연히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비유함。 「축착합착(築着磕着)」합해서 쓰임.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뀌엄지 ; '꿰미(물건을 꿰는 데 쓰는 끈이나 꼬챙이 따위. 또는 거기에 무엇을 꿴 것의 묶음)'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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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기미(機味) : ①기질(氣質)。 소승(小乘)•연각(緣覺)•보살(菩薩)의 삼종(三種)이 있음。 수행자의 정신적 종교적 소질。 ②사물의 가장 요긴하고 종요로운 근본。 ③일의 종요로운 고동(예를 들자면 커다란 기계를 작동시키는 부분을 맡은 중요한 장치).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뗏집 ; 띳집(茅庵, 여러해살이풀인 '띠'로 지붕을 이은 집). 누추(陋醜)한 거처(居處).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탕탕(蕩蕩) ; ①넓고 큰 모양. ②평탄한 모양.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유랑생사(流浪生死 흐를 유/물결·유랑할 랑/날 생/죽을 사)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으며 정처 없이 흐르는[流] 대로 삼계육도(三界六道)에 떠돌아다님[浪]. 생사유전(生死流轉). 생사윤회(生死輪廻).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무저선(無底船 없을 무/밑·바닥 저/배·선박 선) : 밑바닥이 없는 배.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영수(無影樹 그림자 없는 나무)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공적(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다생부모(多生父母) ; 다생에 걸쳐서 몸을 받아 태어날 때마다 길러주신 모든 부모.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그때 화두 들어올 때, 화두 그렇게 철두철미허게 화두를 헐 때에, 마(魔)가 들어올 때에 그 마구니 제(除)허는 법이 무엇이냐?
다른 것 아무것도 없어. 천하 쉬워.
그놈의 마구니 들어오는 법이라는 것은 무척 그 강하고 그놈이 고약하지. 그놈 들어오는 법이.
허지마는 내 마음이, 화두 허는 마음이 틈새기가 있어야 들어오지, 화두 허는 마음이 틈이 없이 '이뭣고?' '이뭣고?'만 잘 다루면은 '이뭣고?' 의심 하나가 탁! 그만 일어나서 눈앞에, 내 낯바닥 앞에 독로되어 있다면은 아무리 이놈이 틈을 비워줘도 못 와. 아무리 들어올라고 해도 마(魔)가 들어오는 법이 없어. 어떻게 올 수가 없어.
그것을 고인(古人)이 뭐라고 말헌고 하니,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다마는, 너의 기량, 너의 재주, 마구니 네 재주, 마구니 네 그 강한 그 무서운 네가 그러헌 마음은 있다마는, 네 그 재주가 네 마음 네 기술이 있다마는,
아지불채무궁(我之不采無窮)이여.
내가 틈을 주지 아니하니, 들어올 틈새기를 주지 아니하니, '이뭣고?'를 딱! 가지고 있으니, 네 힘은 거기서 아무리 별 기량이, 별 재주가, 별 능술(能術)이 다 있다 해도 못 들어와.
너는 너는 못 온다. 내가 불채(不采)는 무궁(無窮)인디, 내 화두는 조금도 틈이 없는데, 네 같은 놈이 어디서 들어와.
허지마는 화두 하나만 꽉 붙잡고 '이뭣고?'만 딱! 해라. 할 것 같으면은 마구니란 놈이 어디 틈새기가 있어야 들어오지.
막구(莫懼)요, 구(懼)도 말고. 막환(莫懽)이요, 환(懽)도 말어라.
그놈이 왔나? 그놈이 갔나?
아무리 좋은 경계를 가지고 와도 좋은 경계를 따라 주지 말고.
생각할 거 없어, 따라 주기는 '이뭣고?'만 허지.
악헌 경계를 가지고 와도 악 상대를 할 것 없어. '이뭣고?'만 하지.
그것이 마구니 제(除)허는 법이여.
딱 정중에 앉아서 마음만 안 내고, 화두만 내 화두만 잘 챙기면은 천만 마구니가 들어왔자 어림도 없어. 똑 공부해 들어갈만 하면 마구니란 놈이 들어와서 그만 마구니 노릇을 혀.
회광 스님이 한국에서 유명한 스님인데, 그 걸망짐 짊어지고 댕기면서 도 닦고 선방에 댕기다가, '기도를 한번 해서 내가 신력을 입어 가지고는 한국 불교를 내 마음대로 한번 해 보리라'
오대산 적멸궁에 들어가서 백일기도를 허는데, 참 틈도 없이 백일기도를 해 마쳤다 그말이여.
마친 날 밤에 꿈에 남방(南方)으로 대고 총을 한 방 땅! 놓았다.
'옳다. 내가 인자 남방을 갈 것 같으면은 내가 불교를 한국 불교를 마음대로 한번 헐 것이로구나. 총을 한 번 쏘았으니'
그래 나와서 합천 해인사를 척 나왔다.
척 나오니까 합천 해인사 큰스님네가 아! 꿈을 꾸니, 회광 스님이 들어오자 그날 밤에 꿈을 꾸니, 산중에 벌이, 모도 산중에 벌을 놓았는데 꿀 친 벌을 요렇게 모도 키우는데, 벌이 모도 휭휭 남방으로 그만 날라간다.
날라가자 꿈을 깨고 보니 아침에 꿈을 깨고 보니, 벌이 다 도망가네.
도망가는데 마침 그때 회광 스님이 누더기를 입고 그 벌통 앞을 지남서, “원, 이러헌 합천 해인사 같은 거찰(巨刹)에서 벌을 모두 키우다니? 벌이라는 것은 그놈들이 수천만 군중들이 댕기면서 모도 채득백화(採得百花)를 해가지고 백화를 채득해다가 꿀을 맨들어 놔 가지고, 아! 즈그 양식을 장만해 먹고 사는 놈인데,
그놈을 갖다가 살짝 돌라다가 모두 먹으니 도둑질 아닌가. 그 수만 명 먹고 살 도둑질을 모두 해 온 것이다. 그러니 중들이 그런 짓을 할까 보냐” 아! 그러고 나무랜다 그말이여. 객(客)으로 와서.
아! 그날 밤 꿈도, 꿈에 벌이 다 날라가더니 회광 스님이 마침 참 뜰에 거닐면서 그런 말을 하니깐, 하! 대중이 도인(道人)이라고 그만 야단나 버렸다. 그래 가지고서는 회광 스님을 참 도인으로 모셨다 그말이여.
깨달라 가지고는 입태(入胎)에도 매(昧)할 수가 있는 거요, 태중(胎中)에 들어가다가도 매(昧)할 수가 있고, 태중(胎中)에 앉어서도 매할 수가 있고, 출태(出胎)에도 매하고.
출태를 해 가지고도 크다가 매하네. 한 살, 두 살, 서너 살 먹을 때는 매해 버려.
그러니 그 매(昧)가 그것이... 그래도 그 매(昧)했지마는 인연이 있어서 처꺽 그만 듣고 툭 깨달라서 다시 들어와서 정법을 믿음사 그것 참 요행이요 다행한 일이지마는.
복가(福家)에 가 떨어지면 못하거든. 복가에 가 떨어져서 복 한바탕 받고 나면 미(迷)해 버리거든.
그러니 원력(願力)을 그때 가서는... 그래 항상 도를 닦아도 원력을 세워야 한다 그말이여.
'내가 어쨌든지 금생에 닦고 내생에 또 내가 어쨌든지 그저 중이 되아 발심(發心)이 되어서 또 닦아야겠다. 아무리 내가 타락할 곳이 있다 하드래도, 아무리 좋은 곳이 있고 내가 가서 복 받을 것이 있다 하드래도, 중이 다시 중이 되아서 도를 닦아야겠다' 이렇게 원을 굳게 세워라 그랬지.
이렇게 구(懼)도 말고 환(懽)도 말고, 증애(憎愛)도 내지 말고 그래야 정(正)을 잃지 않고 허지, 그렇지 않으면 정(正)을 잃어버리고 전(顚)을 이룬다.
정(正)을 잃어버리고 전(顚)을 이루니, 전(顚)이라는 것은 엎더져 버리는 것인디, 어디 엎더지냐?
부귀에 엎어지고, 모도 세상에 그만 도로 그 죄 짓는데 엎어지고, 그래가지고 엎어져 가지고는 그만 죄 때려 지어서 지옥 들어가고, 아귀 되고 그것이, 그것이 엎어지는 것이다.
실정(失正)이요. 정(正) 잊어버리면은 이 정법, 생사 없는 해탈 정법, 참선법, 잃어버리면 쓰겄어? 시방 우리나라밖에 인자 없는데.
참! 달마선사가 바로 건너와서 일천이백 년 전에 바로 건너와서 바로 설(說)허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 관하는 법이 일체 제행을 다 총섭(總攝)했느니라'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옳은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느니라'
'불인사오자(不因師悟者)는 만중희유(萬中希有)다. 스승 없이 깨달은 자는 만에 하나도 없다' 막 냅대 즉설주왈(卽說呪曰), 그게 정법이여.
우리나라밖에는 정법 헌 데가 없어. 그 다음에는 전부 정법이여.
이 정법 하나 바로 유통해 준 데가, 지나(支那)로 나와서 우리나라로 딱 건너와서 우리나라 신라시대, 신라시대가 참 그때가 제일이었었어.
신라시대의 정법이라니!
원효 큰스님 같은 어른이, 원효 스님 같은 이가 동양의 불일(佛日)인데, 원효 스님 같은 이를 견성 못했다고 허는 그런 스님네가 있다는구만.
원효 스님은 견성 못했느니, 보조 스님 견성 못했느니, 그런 큰스님네를 견성 못했다고 헌 그런 스님네가 있대야.
얼마나 그런 스님은 크게 깨달라 가지고 원효 스님 견성 못헌 거, 보조 스님 견성 못한 것을 아는고? 허허! 그런 법 없다.
선인(先人)을 비방하다니, 먼첨 깨달은 그 큰스님네를 비방하다니, 벌써 그 비방한 사람에 그 법량(法量)을 알 수 있지. 어떻게 비방을 허냐 그말이여, 그런 큰스님네를.
이러헌 정법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가지고, 그 참 정법 행여나, 부처님... 부처님 때 그랬어.
이 정법이 내 지금 이렇게 6년 견성해서, 12년 내가 보림해서, 이렇게 참 전해 나온 전해 준 정법, 가섭한테로 전해 준 정법, 가섭은 아난한테로 전한 정법, 아난은 서천 4·7은 28대조까장 전해 주는 정법, 28대조가 달마로써서 지나(支那)에 건너와서 초조(初祖)가 되아가지고 전해 주는 정법,
그 정법 그대로 지나(支那)로 건너와서, 지나에 들어와서—지나에 들어와서도 그 참 기맥혔습니다. 태전 스님 때, 태전선사 때 그때도 기가 맥혔지. 꼭 태전선사를 죽일라 했습니다.
태전선사 때 소동파, 이부마, 백낙천, 한문공, 무서운 영웅들입니다. 무서운 거벽(巨擘)들인데 그분들이 없앨라 했습니다.
'무슨 놈의 참선법을 해서 참선을 해서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을 허고, 견성해서 죽지 않는 대도가 있고, 뭐 그런 것이 있느냔 말이여. 인생이라는 것은 나와서 부귀영화하고 허다가 죽으면 그뿐인 것이지, 무슨 놈의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놈의 법이 있어?'
거 그럴 거 아니여?
들으면, 반다시 사람으로서 들으면 생사해탈법 밖에는 어디 더 있느냐.
생사해탈이라니! 죽고 사는 생사를 해탈해야 할 것 아니냐?
그것부터 그만 얼른 수입할 텐디 그 이상 밖에 더 없는데 그 지혜인디, 그걸 못 들어.
아! 이런 놈의, 그걸 갖다 못 듣는데, 그걸 뭐 영웅이니 호걸이니 뭐 그것 나 원, 참 내 알 수 없드구만.
어떤 걸 영웅이라 허고, 아! 세제법(世諦法) 밖에는 모르는 것을 영웅이라, 호걸이라 혀?
나서 늙어 잘살다가 부귀허다 죽는, 그까짓 놈의 잘살다 부귀허다 죽는 것, 하룻밤 꿈이나 하룻밤 꿈에 잘 먹고 한바탕 일월을 잡아 흔들고 놀다가 꿈 깨면 그만인 거, 아! 그 똑같은 것인디 세상 그것을 갖다가서 그렇게 고것을 하나 밖에는 모르고 착멸을 해 버리고, 그러다 뒈지는 것을 모르니.
나 그거 영웅이라 호걸이라 하데? 나 암만 생각해도 알 수 없드구만.
참말로 영웅이요, 호걸이요, 참 영웅호걸이라고 우리 부처님이지.
생로병사를 발견해 가지고는 생사 해탈법을 척 우리 부처님이 선각(先覺)해 가지고 우리 중생들한테다가 그 분파해 주는 거,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나 말이여. 그러헌 정법, 이 정법이여.
이 정법이 참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그 얼마나 참 장했냐 말이여.
신라 때 보지. 신라 때는 그 원효국사 같은 아! 그 그런 큰스님이 나오셔 가지고서는, 그 참선법 그래가지고 지금까지라도 그래도 우리 참선법은 우리나라에 지금 그대로 지금 해 나가지. 숫자야 적거나 많거나 지금 그대로 시방 해 나가지 않어?
그 정법을, 참선 정법을 우리 부처님이 국왕한테다가 전통을 했어.
국왕이래야, 임금이 되어야사 그 소중헌 참선법, 천상천하에 없는 무상대법(無上大法)—복인(福人)이, 그래도 복을 짓고 나온 복인이 국왕인데, 국왕이래야 우리 부처님의 정법을 보호허리라. 국왕이 아니면 정법을 보호 못허리라. 이렇게 말씀을 해 놨는데.
신라 때에 와서 임금 임금이 얼마나 받들었냔 말이여.
그 받들기를 기맥히게 참 정법을 보호허고 받들고 그 모도 군왕, 임금들이 만자(卍字) 관(冠)을 들입대 쓰고 그리고 들입대 해 나오다가... 여기까장 여까장 두고, 다음에 또 연속할 요량하고.
그렇게 전해 내려오다가, 내나 헐 말 헐락 하다가 시방 이랬구만.
그렇게 정법을 전해 내려오는 거기에서... 태전선사 때 그거 허다가 거까장 하다가 잊어버릴 뻔...
태전선사 때... 아! 이건 우리나라까장 건너와서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참 제왕이 그 정법을 보호해서 무성허게 나왔지마는. 이건 신라 때 말고, 신라 때 아니고 지나(支那) 때, 지나 때여 지나 때.
지나(支那) 때에 그 태전선사 때에 한번 없어질 뻔헌 그놈을 내가 얘기헐라고 허다가 그건 뚝 빼 버리고 어먼 데로 나가 버렸어. 그대로 두지.
정(正)은 잃어버리고, 이 정법은 잃어버리고 엎어지는 전(顚)을 이루리라.
그러니 화두 해 들어갈 때 틈을 내지 말아라. 틈을 내지 마라.
어찌 '이뭣고?' '이뭣고?' 이 알 수 없는 의심—틈이, 의심 하나가 없어지면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내지 말아라. 틈을 안 내면은 아지불채(我之不采)는 무궁(無窮)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해 들어갈수록에 화두를 이렇게 진심 정성으로 해 나가는 디, 입지(立志)를 여산(如山)해라. 딱! 뜻을 세우기를 산같이 해라. 뜻 세우기를 산같이 다시 변통 없이 세워라. 그 밖에 더 있느냐?
안심(安心)을 사해(似海)해라. 마음을 편안히 허기를, 정법을 믿었으니 마음을 편히 허기를 바다같이 해라.
전입전심(轉入轉深)허는 게 바다다. 그 깊고 깊은 것이 바다다. 바다와 같이 깊은 마음을 떡 세워라.
대지여일(大智如日)이 보조삼천(普照三千)허리라.
그럴 것 같으면 네 대지여일(大智如日)이, 큰 화두의 지혜 날이, 화두 해 나가는 그 지혜 날의 힘이, '이뭣고?' '이뭣고?'했지마는 '이뭣고?' '이뭣고?'가 보태지고 보태져서 중생 일체 망념이 다 거기에는 붙지 못허고, 모두 어디 있나? 없는디 뭐.
한덩어리가 다 되어 번져 가지고 의심 한덩어리 뿐이여. 의심 한덩어리 그놈이 큰 지혜 날 같다. 해 같여.
그래서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비추리라. 가나오나 일체처에 '이뭣고?' 하나뿐이리라.
그래서 보조삼천(普照三千)이라. 삼천세계를 비출 때가 있으리라.(21분34초~39분1초)(끝)
*할(喝) ; 큰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힐책하다(詰責-- : 잘못을 들어 말해 가면서 꾸짖다)’는 뜻. 선종에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의 진리를 나타낼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토하는 큰 소리.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전심(專心 오로지·전일專一하다 전/마음 심) ; 마음[心]을 오로지 한곳에만 기울임[專].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근실하다(勤實-- 부지런할 근/참됨·정성스러움 실) ; 부지런하고 진실하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〇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조인(稠人 빽빽하다·많다 조/사람 인) ; 많은 사람.
*조림(稠林 빽빽하다·많다 조/수풀 림) ; ①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 ②번뇌나 망상이 번성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〇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다’ ;
‘너의 기량(伎倆), 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 영원이다. 고봉 스님 『선요(禪要)』 示衆(其二)에 천태(天台) 스님의 글로 인용됨.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〇우리는 걱정을 할 것이 없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할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생(多生)에 숙연(宿緣)이 있어서 최상승법을 만났으므로 다못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알뜰히 단속만 해 가면 지옥에 떨어져도 겁날 것이 없고, 불구덩이에 빠져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불이 훨훨 타는 가운데에서도 ‘이뭣고?’를 들 것이며, 지옥에 끌려가서도 ‘이뭣고?’를 든다면 마침내 이 최상승법은 모든 마귀(魔鬼)를 이겨내고야만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로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너의 기량(伎倆), 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아지불채(我之不采)는 시무궁(是無窮)이다.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한테 끌려들어가지 안해.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 영원이다 그말이여. 니 멋대로 한번 나를 유혹 할래면 해보고 나를 갖다가 막을라면 막아보고, 니 멋대로 해봐라 그말이여.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팔만사천 모든 경계(境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네가 그럴수록에 나는 오히려 화두를 거각할 따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해제 이후에 정진을 가다듬고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능술(能術) ; 재능(才能)과 기술(技術).
*이회광(李晦光) ; 1862-1933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세에 설악산 신흥사로 출가하였다. 이회광은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적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조선의 마지막 대강백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승려였다.
1908년에 친일 성향의 불교 교단 원종(圓宗)을 성립한 이래 1910년 조선불교를 일본 조동종과의 예속적 연합을 추진하였으나 이회광은 ‘불교계의 이완용’으로 불리며 많은 반대에 부딪쳤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에 대한 행정 통제를 강화하고 식민지 지배 구조에 불교를 예속시키기 위한 규제 일변도의 악법인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을 발포하고 이회광이 추진한 조동종과의 연합은 부결하였으나, 총독부는 그를 해인사의 주지로 임명했다.
사찰령 이후에도 계속하여 30본산 연합체제를 주도하면서 1920년에는 역시 일본 임제종과의 병합을 추진하였으나 또 다른 친일 승려 강대련과의 갈등으로 반대에 부딪쳐 실패하고 해인사 주지에서도 밀려났다.
*마경(魔境) ; 마(魔)의 경계(境界).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는 것.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것.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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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인천(人天) ; 인간계와 천상계(天上界). 인간계와 천상계의 중생.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복진타락(福盡墮落 복 복/다할 진/떨어질 타/떨어질 락) ; 지은 복[福]만큼 받아 써 다하면[盡] 다시 또 업에 따라서 떨어지게 된다[墮落].
중생은 착한 일 또는 죄짓는 일, 그 자기 업(業)에 따라서 천상에 가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는데, 설사 착한 일을 해서 여러 천상 세계에 나가서 복을 받는다고 해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 버리면 다시 또 업에 따라서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서 힘이 센 사람이 활을 쏴봤자 한없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하는, 생사해탈 하는 참선법이 정법입니다.
*증오(證悟) ; 깨달음.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여 깨달음.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〇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즉설주왈(卽說呪曰) ; '곧[卽] 주문(呪文)을 설(說)하여 말하기를[曰]'의 뜻으로 「반야심경」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돌려서 말하지 않고, 곧 바로 핵심을 말하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佛]를 태양[日]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의 허망한 집착을 부수는 것을 태양의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는 것에 비유한 것.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가섭, 아난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역대 스님 약력' 참고.(https://emokko.tistory.com/55)
*거벽(巨擘 클 거/엄지손가락 벽) ; 학식이나 어떤 전문적인 분야에서 그 기능이나 능력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세제(世諦) ; 세속적 입장에서의 진리. 진제(眞諦) · 제일의제(第一義諦) · 승의제(勝義諦) 등과 대칭하며, 속제(俗諦) · 세속제(世俗諦) 등이라고도 한다.
*무상대법(無上大法) ; 최상의 위대한 법(法, 가르침).
*들입다 ; 세차게 마구.
*어먼(어문) ; '딴', '다른', '엉뚱한'의 사투리.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줄여서 대천(大千), 대천계(大千界), 대천세계(大千世界), 삼천세계(三千世界), 대천국토(大千國土)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여. 전 세계와 저 비비상천까지, 삼계(三界) 비비상천(非非想天)까지 없어, 참선활구법이.
똑 이 남섬부주(南瞻部洲)에 있는데, 남섬부주라도 인자 한국밖에 없다 그말이여. 기가 맥히지.
내가 조금도 헛소리 아니여. 만국 그때 뭐 지도자 대회에 어디 뭐 참선법이 있어? 한 나라도 없지.
그 불교 유명한 나라는 다 왔는데. 또 이 중간에 16개국이 또 모였었고.
없어. 그 공안법을 물어 보니 공안(公案) 뭐 알도 못햐.
불교는 각처에 다 있지마는 참선허는 법은, 참선법은 없다 그말이여.
나는 그래도 그렇게는 안 알았거든.
'그 참선법이 어디 들어간 데가 더러 있는가? 혹시 아는 데가 있는가?'했더니, 참 과연 없다 그말이여.
우리 꼭 활구(活句)를 고대로 공부허는, 공안 참선을 고대로 공부허는 학자는 우리나라밖에 없거든.
언제든지 이렇게 그저 야삼주삼(夜三晝三)에 안벽(眼壁)허고 관심(觀心)허고 앉어서 꼭 그 공안을 연구해 나가는 거, 화두 의심해 나가는 거.
'누가 행여나 행여나 그 해석해 줄까, 누가 행여나 그 모두 글 가르켜 주드끼, 글 가르쳐 알려 주드끼 고렇게 해 줄까' 오히려 무서워허고, 학자는.
우리 참다운 학자는 그렇지 않어? 그저 뭐 천하 없는 해석을 다 해 줄까 무서워서.
응, 어림도 없지. 참다운 우리 학자가.
이렇게 닦아 나가는 데는 없어. 그걸 정법(正法)이라 하는데. 꼭 그 정법이여, 다른 정법 아니여.
부처님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수도허셔서 견명성(見明星) 오도(悟道)허신 그 법이여. 그 정법이여.
고 정법 이외에는 다 사견(邪見)이여. 다 별별 것이 다 방편(方便)이고 환(幻)이여. 환이여. 방편이고.
'내가 방편으로 했다, 내가 모도 환으로 했다, 내가 사견으로 느그를 꼬였다' 부처님이 다 해 놓으신 말씀 아니신가.
똑! 정법, 정법 고대로 우리나라에 와서 머물렀네, 달마 선사의 법이.
한참 중국에 건너와서, 중국에 달마 스님이 첫 조사요. 달마 스님, 2조 혜가 스님, 3조 승찬 스님, 4조 도신 스님, 5조 홍인 스님, 6조 혜능 스님까지.
그 밑에 내려와서는 임제종, 위앙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 5종이 벌어져서, 하 참! 거 대단했지. 그때 도인이 참 무수허게 나오고.
그래 가지고 우리나라로 딱 건너온 뒤에는 여기서 활구참선 딱 멈추어져 버리고는.
어디 일본 건너갔자 일본이 어디 무슨 뭐 일본이 어디 임제종이 건너갔다 가기는 하지만 임제종 역시 조동종 임제종 조동종이 선종(禪宗)이라고는 허지마는 임제종 조동종에 지금 그 모도 뭐 해 놓은 거, 『벽암록(碧巖錄)』 같은 거 뭐 해 놓은 거, 전부 해석 다 해 놓았지.
하나나 무슨 활구학자 한국마냥으로 한국 선객(禪客)마냥으로 안벽관심허고 어디 무슨 뭐 화두 해 나가는 거, 여기 있어?
'하나씩 깨닫는다'고. 하루 하나씩 깨달는다든가? 날마다 하나씩 깨닫는다든가? 그거 있다지? 그것 참!
활구참선객이 우리나라밖에는 없어.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냐. 어떠헌 사람이 참선객(參禪客)과 쌍(雙)을 허겄냐? 참선허는 사람하고 같은 쌍이 되겄나?
참선허는 사람 같을 사람이 누고? 천상천하에는 없어. 아무리 천상락(天上樂)이 그렇게 훌륭허고 허지마는 참선은 없어.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이 목숨, 참선허다가 이 목숨 내버릴 날에.
우리가 내버릴 날이 있지 않는가. 이 몸은 얻으면 내버리는 것밖에 없지. 이 몸 하나 어머니한테 받아 가지고, 가지고 있다가 내버릴 날이 오지.
그날이 안 와? 안 내버릴 사람이 누구여?
천하에 필생필멸(必生必滅)이지. 이 몸뚱이 받아 나면은 내버리기 마련이요, 죽기 마련이요.
어디 안 내버리고 안 죽을 수 있나? 그건 없어. 고금으로 통해 놓고 없어.
원효 국사가 안 돌아가셨다고?
안 돌아가시기는 왜 안 돌아가셔. 안 돌아가신 이 누구여, 글쎄. 부처님인들 안 돌아가셔?
그 같은 몸뚱이 그거 죽는 것이 거 죽는 것 아니여.
몸뚱이 그놈 내던져 버리고 죽지 않는 놈을 바로 봐 버려야사 그걸 도통(道通)이라고 햐. 도통을 참선이라고 하고.
참선이라 한께 못 알아듣거든. 아! 여기 지금 진여궁 보살님이 대단히 혜(慧)가 밝은 보살님인데, 참선법 인자 들어오니까 모르거든.
인자 들어와서 들으니 알 것이여? 참선법이 뭔지 모르지.
알게 좀 알아듣도록 말하자면은 참선법이라는 것은 도통허는 법입니다. 도통허는 법. 도를 통헌다 그말이여.
왜 '도통했다'고 안 합니까? 도통법(道通法)이여.
그 도통을 할 것 같으면은 그만 이 몸뚱이 가지고 있는, 이 몸뚱이 뒤집어쓰고 댕기는 내 마음, 내가 내 마음, 내 말허고 보고 듣고 아는 내 마음, 그놈을 알아 버린다 그 말입니다. 그놈을 통해 버린다 그말이여.
그렇게 들으면 거 쉽게 듣지 않겠소?
밥 먹는 놈, 옷 입는 놈, 가는 놈, 오는 놈이 몸뚱이 고것이 헙니까? 송장 몸뚱이 고것이 혀?
내 마음, 내 마음이 허지.
내가 내 마음, 그놈을 바로 통해 버려. 그러면 도통이여. 그걸 참선이라 햐.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이 몸뚱이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이 몸뚱이 내버릴 날이 닥쳐와.
염왕(閻王)이 자귀강(自歸降)이라.
염라대왕은 이 삼계 모도 화택(火宅) 중생, 우리 모도 인생들 선악을 관찰하고 앉었는데, 누구는 죄를 짓고, 누구는 선을 짓고, 그러헌 모도 그 선악 관찰을 딱 하고 있다가, 이 몸뚱이 내버리면은 혼을 잡아다가 그 다스리는데.
몸뚱이 그 같은 건 내던져 버렸으니 몸뚱이가 뭐 소용 있나? 몸뚱이 그놈이 뭐 죄 지었나?
마음 그놈이 모두 시켜서 죄는 지었지마는, 그 같은 거 주인이 마음인디 그거 소용 있나?
갖다 다루어서 죄를 모도 “너 이놈 세상에서 무슨 죄를 지었으니 무슨 지옥 가거라. 어떠헌 죄를 지었으니 어떠헌 지옥 가거라” 모도 이렇게 죄를 다 다슬러 그 염라대왕인디.
염라대왕이 참선허는 분께는 참선해서 도통헌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이거 도통헌 이를 말하는 거 아니여. 바로 참선허는 학자한테는 스스로 항복하니라 그래 버렸어.
염라대왕이 무슨 선악 관찰할 것이 없어. 과거에 천만 겁 중에 전겁(前劫)에 아무리 죄업이 많이 있다 하드래도 숙업(宿業)도 거기 다시 문제가 없어.
'염왕(閻王)이 이렇게 귀강(歸降)하느니라' 이랬습니다. 이 참선법입니다.
참선법은 세상에 그렇게 쉬운 것이 없어.
'원 참선법, 참선을 해 되나?' '참선을 해서 견성(見性)을 혀? 아! 참선해서 견성헌 사람이 있나?' 아! 이러고 있다 그말이여.
세상에 참선같이 쉬운 것은—다른 것은, 저 돈 같은 것을 번다든지, 무슨 금 같은 것을 그놈을 금 같은 것을 어떻게 땅속에서 캔다든지, 여의주 보배 같은 것을 바닷속에서 구한다든지, 이런 것은 무척 어렵고 못혀.
땅속에 그놈 금이 꼭 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나?
어쩌다가 참, 땅을 파 가지고 금도 나와서 얻기도 허지마는, 거 어쩌다가 그거 원 참! 봉사 문고리 잡기라더니. 문고리같이 쉬운 것이 없지마는 봉사는 눈이 없으니까 문고리를 못 잡거든.
금이 땅속에 바로 모두 묻혔지마는, 알면 파면 거기 있지마는, 그거 누가 아나?
모르니까 금 있는 데는 파들 못하고, 없는 데만 파 제끼니 생전 파니 있나?
바닷속에 여의주가 있건만, 바닷속에 여의주가 그놈이 어디가 있는지를 알 수가 있어야 바닷속의 여의주를 캐지.
그것은 어쩌다가 바닷속의 여의주를 캘 수도 있고, 어쩌다가 땅속에 금을 팔 수도 있고, 어쩌다가 다행히 봉사가 문고리를 잡을 수도 있지마는, 참으로 얻기가 어렵다 그말이여. 영판 어려워. 전연 없던 않지마는 어려워.
허지마는 참선이라 하는 것은 『내가 나를 찾아』
내가 나를—보는 놈, 아는 놈, 밥 먹는 놈, 똥 싸는 놈, 가는 놈, 오는 놈, 그놈이 낸디, 그놈을 찾는 것이여. 그 찾는 놈을 찾아.
그놈은 분명히 있거든. 분명히 있는 놈을 찾는디.
어디가 뭐 바닷속에 여의주는 없나? 있지. 허지마는 어디가 있는지 아나?
허지마는, 아! 이 참선은 찾는 놈 고놈이여. 이것 보소. 말하는 놈 이놈이여.
세상에, 내가 '나'다.
어째서 내가 나를, 찾은 놈을 찾는데 못 찾아?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찾느니라' 내가 한 말이여, 이 말이? 부처님이 바로 허신 말씀이지.
'콩인지 팥인지만 아는 사람이면은 다 찾느니라' 하! 이렇게 말씀해 놓았다 그말이여.
그런데 참선허라고 허면, “아이고! 참선을 해서 견성을 혀? 하이고! 견성헌 사람이 있는가?” 이렇게 그만 이렇게 미(迷)해 버렸다 그말이여.
이 미(迷)해서, 하도 오래오래 미(迷)해서, 내가 나를 찾을 줄 믿지 않아서.
믿으면 그만이요. 믿으면 그만 그놈이 낸.. 응, 참선인데.
믿지 않고, 하지 않고, 겁약심만 낸다. “흐! 내가 어찌...” 이것 참.
참선이라는 것은 안 된 법이 없느니라.
또 화두를 어제 아침에 말했지마는 '이뭣고?'
화두 어저께 와, 어제 좀 감서 옴서 떡 서서 “화두 좀 가르켜 달라”고. 그런 법이 아니여. 어디 도를 그렇게 묻고, 그렇게 배우는 법 있는가?
그 단정히 참, 위법망구(爲法忘軀)라니 법을 위해서 몸을 바치는 법이고.
하룻밤 하룻낮을, 참선이 천하에 쉽고 찾는 놈, 내가 나를 찾는 놈, 찾는 놈을 되찾는 놈, 아! 천하에 쉽지마는 불가불 배우자면은 그 스님을 찾아가서 조실(祖室) 스님을 찾아가서 여법(如法)히 법다이 그 신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그렇게 배우는 법이지,
가다오다가 '나 참선 좀 가르켜 주시오' '나 화두 하나 일러주시오' 그렇게 허는 법이 아니다 그말이여. 생각해 봐. 거기서 화두를 일러줄 거여?
한 번 혀, 또 한 번 혀. 그렇게 안되지마는 퇴타하지 말아라. 안될수록에 더욱 발심(發心)을 하고 더욱 믿고 더 철저히 해야 하는 법이다.
한 번 혀, 두 번 혀, 세 번 혀, 열 번 혀, 백 번 혀, 천 번 혀, 만 번 혀, 자꾸 해 봐라.
자꾸 허면은 그 모도 일어나는 망념 망상이 고놈이 그 자리에서 잦아지고, 그 자리에서 다 녹아지고, 나중에는 '이뭣고?'가 의심이 그 들입대 일어나는 바람에—잠도 고놈이 어디 온 곳이 있나? 잠도 고놈이 오도 않는다. 인자 '이뭣고?' 그놈의 의심이 턱 일어나면은 잠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오래 할 것 같으면 역여유천(亦如流泉)이다. 흐르는 저 물, 솟아 올라오는 물구녁에 물 나오듯, 그 물 항상 떨어지지 않고 나오는 물이 있지 않는가?
항상 부증불감(不增不減)으로 나오는 석간수(石間水) 같은 물 같애서, 항상 물이 나오드끼 이 화두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일어난다.
그 반야력(般若力)이 '이뭣고?' 생각하는, '이뭣고?', '이뭣고?' 그 참 생각하는 그 활구 의단이 의심이 그 일어나기 시작하면 없앨래야 없애지 못해아.
그 물구녁 아무리 막아 봐라. 껍닥에서 나오는 디 아무리 틀어 막아봐라. 기어니 옆을 뚫고 나온다.
'이뭣고?' 역시 똑같다. '이뭣고?' 역시 그렇게 나오는 거여. '이뭣고?'가 똑 새암물 솟아 나오드끼 그 '이뭣고?'가 절로 자꾸 나온다. 이것을 유천(流泉)이라 한다. 흐르는 샘에 물 나오듯 헌다 비유했어.
역여유천(亦如流泉)한다. 그래 가지고는 나중에 심공경적(心空境寂)이 된다.
마음이 공(空)한다, 심공(心空)이라는 것은, 마음이 공(空)했다는 것은 이놈 마음이 들어서 구백생멸심(九百生滅心)이 일어나고, 별별 망념이 구름 퍼일어나 듯헌디, 고것이 없어져 버려. 고걸 심공(心空)이라 햐.
그렇게 잘난 예쁜 동자가 참 그 그림같이 그릴래야 그릴 수 없는 동자가 앞에 나와서 절을 하고 아! 저 환영 나왔다 하니, “아! 그럴 것이다. 내가 극락세계를 내가 원해 발원허고 꼭 내가 갈라고 했거늘 안 갈 이치가 있겠느냐? 나도 지금 극락세계를 가는 길인디 네가 마침 나왔구나. 오냐, 너를 따를 수밖에 없다”
“예, 저를 따릅시오” 아! 이놈 동자를 앞세우고 생사대해를 건너갔다.
생사대해를 건너가는 금단청... 금다리여. 다리가 당최. 건너갔어.
그 건너가서는 극락세계 상품(上品)을 올라가는디 다리가 층계 층계 있다. 한 층, 두 층, 층을 이렇게... 뭐 금사다리여, 사다리. 발 딛고 올라가는 층계 다리여.
그 금이라니 당최 뭐 뭐 금빛이 그럴 수가 있나? 찬란한 그런 저 위에는 극락세계 보궁(寶宮)이 있어. 보이여. 보궁으로 올라간다. 층계 층계 올라가는데.
아! 무용 노장(老長)이, 무용 노장이라고 그 산중에 있어. 암만 쫓가내도 도로 들어오고, 열두 번 중이 떨어졌어.
아 이럼서 강사 옆에 서도 못한 것이 아! 극락세계로 들어가는디 뒤에 와서 때린다 그말이여, 작대기로. 얻어먹는 작대기로.
아따! 그냥 뚝! 떨어지다 깨어나니까 꿈이여.
죽었어. 죽어서 깨어났어. 꿈이라도 꿈 같은디 죽어 깨어났다 그말이여.
아, 그러니께 그때 마침 죽어 깨어났는데 대중은 모도 열반종(涅槃鍾)까장 다.. 죽었다고 열반종까장 다 쳤네.
아! 깨어나 가지고 가만히 보니까 하도 죽었다가 깨어난 것 같지 않고, 꿈꾸다가 깨어난 것이여.
그 죽었다 깨어난 것이 죽은 줄 누가 아나? 꿈꾸다 깨어난 것이 그것이지. 꿈에 깨어난 것, 그 꿈꾸고 깨어났어.
깨어나서 아! 옆에 보니까 무용 노장이 딱 앉았다 말이여, 무용이. 얻어먹는 패방 거지가 앉었어.
쓸데없는 무용 그것이 와서 딱! 앉아, 강사가 죽는다고 헌께 무용이 들어와서 작법을 했든 것이여.
작법, 작법허니 누가 무슨 작법을 아나? 도인(道人)의 작법을 누가 아나 말이여?
무용 선사는 그때 패방 거지 노릇허면서 벌써 그때부텀 참선을 해서 숨은 도인이야. 아무도 모르게 저 무용(無用)이다, 못쓸 물건이 되어 가지고 참선을 해서 바로 도통을 했던 것이여.
그래 가지고 강사가 죽으니까, 강사 죽은 임명(臨命) 증사(證師)가 되었어.
청(請), 누가 청헐 것 뭐 있나? 청헐 것도 말 것도 없지. 가서 가만히 입정관(入定觀)을 해 주었어. 강사가, 입정관 해준디 극락세계를 못 갔다 그말이여.
그 무용당(無用堂)이 거기 앉었으니께 아! 부해가 나서 “저놈의 무용이 저 못된 무용이 내가 이번에 극락세계를 가는디 저것이 내 열반석에 와서 저것이 모두 모두 나를 갖다가 극락세계 못 가게 모도 마구니가 되았구나. 저 못된 것이 저 무행꾼이 괴기나 쳐 먹고 괴기나 찢어 먹고 저 무행(無行)헌 것 저것이 나를 극락세계 못 가게 했구나, 저것이. 타락시켰구나”
아, 부해가 나서 그냥 무용을 그냥 나무래 대고, 깨어나 가지고는 그랬다 그말이여.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 말이 없이 며칠 지냈는데, 병이 차츰 쾌차했어. 병이 나았어.
낫은 뒤에는 무용(無用)이 강사한테를 가서 스님이 인자 겨우 일어나실만 하니까 "나와 산보 좀 갑시다" 그런게.
“썩을 녀러 자식, 더러운 자식, 저런 것이 나를 뭐 산보 가자고 허네”
사람 같잖은 게 그걸 누가, 그 이렇게 높으신 강사인디 강사 큰스님이 그까짓 무용을 가지고 어디 말이나, 뭐 말이나 되나?
아! 그래도 수차 “날 좀 따라 나오십시오. 내가 할 말이 있으니까”
아! 꿈꾼 것이 하도 이상스러우니까 꿈도 그렇거니와, 그 또 그 죽은 그 열반석에 와서 앉어 있는 것도 이상스럽고 병은 좀 나았고, 저것이 뭣 헐라고 가자고 헌고 싶어서 따라나섰다.
앞에 떡 서서, 무용이 앞에 서서 강사를 뒤에 요렇게 따라오게 맨들고는 “스님이 이번에 돌아가실 적에 이번에 가실 적에 요 문으로 나왔지요?”
그 문으로 나왔거든. 뒤 바라지문으로 나왔거든.
“바라지문 열고 요리 콱 나오셨죠?”
“응, 그랬지. 그랬다”
또 한참 가다 “여기서 동자 만났지요?”
하! 이거 “그랬지”
아! 그때부텀은 참 기맥히네. 그 동자가, 그 잘 어여쁜 동자 만난 것이 역력하다. 그랬지.
“여기서 생사대해를 건넜지요?”
그 그러니까 그 내나, 그 송광사 앞에서 그 물또랑 개천 하나 건넌 다리가 고것이 생사 노두로 보였든 것이여. “요 생사대해를 건넜지요?”
한참 가다가 큰 역사적 고목 둥구나무가 하나 있어. “둥구나무 여기서 그 나무 저 공중누각을 올라갔지요? 차츰차츰 올라갔지요?”
여지없거든! 생사대해도 그 또랑이 분명허고, 그 좀 건네가서 몇 발 건네가서 그 올라간 것도 분명하고, 그 냉기[나무]로 올라간 것이 금단청이란 말이여.
아! 이런 말이 분명 다시 뭣이 여지없어.
저기 저 집이, 저 나무 위에 저 까치집 저것이 공중누각으로 보였든 것이여.
“저건 공중보전이 누각 공중미타전으로 보였고, 이것 모도 올라가는 이 냉기 모도 그 혹 달린 것이 모도 다리로 보였고, 이렇게 변했소. 이 개천이 생사대해로 보였고, 그 어린아이는 그 스님을 인도허는 그 저 까치집으로 인도허는 인도비요.
까치 새끼가 꼭 될 것인디, 내가 당신을 그 일대 강사(一大講師)로서 그래도 우리 대본산(大本山), 우리 본산에 큰 산에 그 대승경전 강(講)허는 강사 스님이 까치 새끼가 되어서야 되겄소? 내가 그래서 그 내가 작법해서 까치집에 못 들어가게 만든 것인데 나를 왜 그렇게 모두 원망허우”
세상에 그 설법을 들으니까 기맥히다 그말이여.
'과연 참 무용 선사로구나. 무용으로 있으면서 쓸데없는 무용이 되아 가지고 참선을 해서 '이뭣고?'를 깨달라서 도통을 했구나' 그 생각이 꽉 드면서, 부처여. 다시 무용 스님이 부처여.
"꼭 그러헌디 저 냉기 시방 올라가서 저 까치집에 가 볼 것 같으면은 까치 새끼 한 마리가 죽었으니 그걸 한번 알아보십시오”
냉기 잘 올라가는 사람을 올려 보내서 가서 보니께 까치 새끼가 죽었어. 한 마리가 죽었어. 고 한 마리 속으로 들어갈 것인디, 안 들어갔다 그말이여.
알 탁! 터짐서 영(靈)이 붙기도 허고, 여러 가지가 다 있다드구만.
그놈의 누가 생리적으로 알 수가 있나? 허지마는 알이 하나가 곯았어, 안 나오고. 새끼가 죽은 게 아니라.
그걸 보고서는 참으로 믿었어. 믿어서 그 강사 스님이 무용 스님 제자가 되었어. 불과 얼마 안되았어.
그 강사, 무용 스님 제자, 강사여.
그 강(講) 내던져 버리고 저 선객이 되어 가지고 '이뭣고?'를 잘 허다가 돌아가신 일이 있습니다. 그 사실 얘기 하나 오늘 법문 끝에 했습니다.
사견(邪見)으로, 아무리 부처님의 경을 보지마는 방편에 사견으로, 사견으로 그 보니 되아?
그거 응, '이뭣고?'를 깨닫지 않고 극락을 가냐 그말이여. '이뭣고?'와 극락은 한 곳인디.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안벽관심(眼壁觀心) ; 눈은 벽을 보고, 마음은 화두를 관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견명성(見明星) ; 부처님이 12월 8일 새벽별[明星]을 보시고 성도하였다는 고사.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저히 깨닫는 것을 말한다.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벽암록(碧巖錄) ; 선종의 대표적인 공안평창집(公案評唱集). 10권. 본이름은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 또는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한다. 송나라 때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 지음.
이 책은 원래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이 경덕전등록 · 조주록 · 운문록 등에서 백 개의 고칙(古則 ; 공안)을 선별하여 각각의 게송을 붙인 『설두송고백칙(雪竇頌古百則)』을 그 뒤 원오극근이 제자들의 청에 의해서 1102년 성도의 소각사, 협산의 영천원, 상서의 도림사등에 머물면서 『송고백칙(頌古百則)』을 강의했다.
이 『송고백칙(頌古百則)』의 각 칙에 대한 서론 형식의 '수시(垂示)'와 본칙과 송에 대한 해설·비판·선양의 '평창(評唱)' 그리고 본칙의 각 구절과 송의 각 구절을 평가하는 형식의 '착어(著語)' 등을 붙였는데, 제자들은 스승의 강의를 1105년경부터 모아 기록하기 시작하여 1125년에는 이미 『벽암록』 필사본이 나왔다고 한다. 『벽암록』의 간행은 1128년(남송 건염 2년) 원오극근의 제자 보조(普照)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원오극근의 제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당시의 학인들 중 이 책의 선화(禪話)를 익혀 알음알이를 늘리기만 하고 실제적인 수행을 게을리 하는 자가 많은 폐단을 보고, 근본 뜻을 다시 세우고자 벽암록 판각과 책들을 모두 한 데 모아 대중 앞에서 불태워버려(1156년 또는 1163년 무렵) 총림에서 사라졌었다.
그러다가 원나라 때인 대덕년간(1297~1307)에 장명원(張明遠)이 여러 절에 비장되어 있던 것을 모아서 중간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유통되었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숙업(宿業) ; 숙세(宿世), 즉 과거세(過去世), 전생(前生)에 지은 선악의 행업(行業 : 고락苦樂의 과보果報를 받을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 현세에 그 과보를 초래하는 업을 말하며, 숙작업(宿作業) · 선업(先業)이라고도 한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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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무명(但助無明) ;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용화선원刊) p82. (가로판 p86)
〇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관(觀)한다 ;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〇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그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그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그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안 올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관(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다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때 ‘이뭣고?’를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단전에 딱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39분12초~41분12초)
*역력(歷歷 지낼·수를 셀·다할·두루 력) ; '뚜렷하다'는 말. 눈앞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묘사이다. 사유 분별할 여지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현상을 묘사한다.
*역력명명(歷歷明明) ; 뚜렷하고 분명하다는 말. 역력과 명명은 동일한 뜻이며, 중첩하여 어감을 강하게 한다.
사유 분별할 여지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현상을 묘사한다. 어떤 조작도 없고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없는 본분(本分)이 드러난 경계를 나타낸다.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는 경절문 활구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성불도(成佛圖) ;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놀이 가운데 하나.
염불 · 참선 · 교학의 수행을 통해 성불의 길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을 108단계로 구성한 도판(그림판)과 '나무아미타불'이 적힌 3개의 주사위와 두 분의 부처님과 18분 보살님 명호가 적힌 20개의 말을 사용하여 수행을 통해 육도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구성된 놀이.
*오십오위(五十五位) ; 처음 건혜지(乾慧地)를 지나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사가행(四加行)·십지(十地)를 하나하나 거쳐서 올라가야 성불하게 된다는 말.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대각(大覺) ; 부처님의 깨달음. 정각(正覺) 대오(大悟) 등과 같은 뜻이다. 스스로 깨닫고[自覺] 남들도 깨달음으로 인도하여[覺他] 각(覺)과 행(行)이 원만하게 갖추어졌으므로 대각이라 한다. 또는 부처님 자체를 가리키는 말.
*차제(次第) ; 차례(次例 순서 있게 구분하여 벌여 나가는 관계).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땀세 ; 땀새. ‘~땜에(~때문에)’의 사투리.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〇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 · 아귀 · 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 : 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들입다 ; 세차게 마구.
*반야력(般若力) ; 반야의 힘. 참된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가 생사윤회의 원인이며, 반야는 진리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 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심공(心空) ; ①허공과 같이 큰 마음. 마음이 본질적으로 무한히 넓고 커서 만상을 포용하는 허공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마음이 텅 빈 경계 또는 그러한 도리. 마음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 텅 비고 고요하며 어떤 상에도 걸리지 않는 경지에 들어 있다는 뜻.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〇‘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어디 꼭 ‘어째서 판치생모~’ 그 해서 되나? 나중에는 그만 판치생모가 그대로 의심 하나뿐인데, 이뭣고가 그대로 의심 하나뿐인데.
살피고 다시 관하는[察而復觀] 것이, 그것이 거기에 가서 용맹도 더하고 신심도 더하고 분심도 더하고 못된 중생념이 붙지 못하게, 거기서 뭐 그러헌 무슨 별념(別念)이 생겨 나올 것이 뭣이 있나?
그렇게 되어 나가는데 가서 혼침(昏沈) 산란(散亂)이 어디가 붙어 있어? 혼침(昏沈)이, 잠이 어디서 오며 산란심(散亂心)이 어디서 들어와?
진력가편(盡力加鞭)해라. 그래서 그 혼침 산란도 못 들어오고 화두(話頭) 독로(獨露)에 힘을 더하고 채찍을 더해라. 행여라도 거기 뭐가 붙을라.
거다가서 사렴(邪念) 사의상량(邪意商量)이 붙어?
그래 가지고 고인(古人) 공안을 천착(穿鑿)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알았다'고. 아! 이걸 붙이고 저걸 붙이고, 이런 것이요 저런 것이요. 아! 요런 놈의 짓을.
아무리 가르켜 주어도 안 듣네. 고런 것은 참 큰일나지.
작년에 거년에 혜우가 어쨌어? 혜우가 여기서 입 한번 벌릴 때, 내 다시 한번 물으니 거기서 그만 입 딱.. 주먹으로 볼태기를 두 번을 내가 쳐부숴 가지고 안 쫓아내 버렸어?
그런 것이 큰일나는 것이여. 그러기 땀세 방(棒)이 여우적(如雨滴)이라, 방할(棒喝)이 여우적(如雨滴)이여. 방할(棒喝)이라는 게 뭣이여? 방맹이(棒)와 할(喝)인데.
임제 스님 가풍도 보란 말이여.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다. 붉은 손 홑칼로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느니라. 뭐 이사(理事)가 다 막 들어가는 것이지.
그러니 그 활구참선 화두에는 분석, 그 해석, 될 것이여?
아! 그 조그만한 그 어린 녀석, 인자 들어온 어린 거, 그저께 벌써 따지고 들어서 헌 풍을 보니, 벌써 알거든. 아! 이놈이 그만 그 무슨 염화미소(拈花微笑)니 뭐니 다 해석을 혀. 아! 이것 보소.
그래 가지고는 그 모도 그렇게 종류가 있어. 그렇게 모도 가르키고 '옳다!' 해 놓고 요런 놈의 것, 선지식이라는 게 그러고 앉었는 게 있어. 거가서 지내고 나온 사람 다 그 모냥이여. 이것 참 큰일이지.
스승 만나지 못하면은 다 도깨비 되고 마는 거여. 될 거여? 그 뭣혀?
아! 제 경계(境界)를 제가 생각해 봐도 알 것이고. 참 부끄러울 일이지.
깨달지도 못한 것이 깨달은 체 해 가지고 그만 주뎅이만 모도 논하(論下)를 하고 논상(論上)을 하고, 고인(古人)의 공안을 천착(穿鑿)하고. 미득위득(未得謂得)허고 미증위증(未證謂證)해서, 그 죄 보다 더 큰 죄는 없네.
뒷 후인(後人)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쫓아내야 하는 것이고, 여지없이 때려 멸망시켜 버려야 하는 거여. 고런 종들이 모도 일어나 가지고 불법 망해 버리고 그 되겄는가 말이여?
천마만련(千磨萬鍊)해라. 천 번이나 화두를 의심을 하고 만 번이나 화두를 단련해라.
화두 하나 밖에 없으니, 깨달기 전에는—깨달을라면 언하(言下)에도 있고 그저 그만 일념지간(一念之間)에도 있고 중생성불(衆生成佛) 찰나간(刹那間)에도 있다마는, 그놈이 잘 못 깨달을라고 할 것 같으면 참 누년(累年)도 가고 일생(一生)도 가고 삼생(三生)도 가고 이런 것이다.
깨달기 전에는 네 실력이 그뿐인데, 네가 원래 깨달지 못할 만한 업력(業力)이 그만큼 눌은밥 눌데끼 퍼눌러 있으니 그런 건데 한탄(恨歎)하면 뭣할 것이냐, 한탄도 그만두고 그저 해라.
아무리 업력이 태산(泰山)같이 눌은밥 같이 눌러 붙었더라도 그까짓것 돌아보지 말고 그저 하면은 화신투입(和身透入)한다. 네 온전한 몸뚱이, 네 전체 몸뚱이 한번 푹! 들어갈 때가 있다.
안된 법이 없는 것이 화두(話頭)니라.
천 번이나 만 번이나 퇴타(退墮)없이 금강(金剛) 철석 같은 마음을 가다듬어서 이렇게 닦아 나가라.
전전신선(轉轉新鮮)이다. 그렇게만 신심이 철저히 닦아 화두만 해 나갈 것 같으면 신심이 점점 더 난다.
신심도 한량이 없으니까 바다와 같애서 전입전심(轉入轉深)이다. 들어갈수록 더 깊다. 신심도 해 들어갈수록 더 난다. 전전신선(轉轉新鮮)이다.
일구월심(日久月深) 해 봐라.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봐라. 그렇게 잘 해 나가면서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봐라. 밀밀면면(密密綿綿)하야, 그 화두가 은밀허고 은밀허고 면면허다.
은밀(隱密)이라는 것은 아주 조그만한 티끌만큼도 망상이 섞이지 않는 것을 밀밀(密密)이라고 해햐. 다른 마음이 조금도 섞이지 않고 의심만 따악 독로(獨露)헌 것이 그것이 밀밀이여.
면면(綿綿)이라는 것은 솜이 한덩거리가 되아, 솜 그놈이 모도 한덤벵이 되아 가지고, 그 먼지 같은 것이 그것이 면(綿)인디 면(綿) 털인디, 털 같은 것이 모도 그놈이 한데 합해져서 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떨어지지 않고 뭉쳐져 있는 것을 면면(綿綿)이라 해야.
화두가 그렇게 되었다 그말이여. 조금도 떨어짐이 없이 조금도 흩어짐이 없이 고대로 탁! 몽쳐져 있는 것을 면면(綿綿)이라 해야. 밀밀(密密)과 면면(綿綿)이 똑같은 거여.
화두 한덩이가 그렇게 철저허게 들어붙으면은 그만 내외(內外)가 지시일개의단(只是一箇疑團)이다. 바깥 경계나 내 안 마음 경계나 의단 하나뿐이여. 아무것도 없어.
허! 이런 경계가 닥쳐오면은 화두낙(話頭樂)도 기맥히네.
못된 것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그 잠 같은 것이 모도 들어와서 무기(無記)가 모도 거기에 섞여졌기 때문에 그만 고롭고, 그만 이놈의 잠을 억지로 뗄라고 해도 들어붙고 잠이 오고, 자꾸 망상이 또 들어붙고 이놈이 야단치고 헌게, 화두 해 나가는디 고로와 죽겄다 그말이여.
'아이고! 이놈의 화두 내 던져버리고 좀 누웠으면' '아이고! 편안히 잠 좀 자 봤으면' 맨 요따구로 되어 버린다 그말이여.
고놈이 깨끗 깨끗해서 무기와 망념이 들어오지 못하고 화두가 밀밀면면만 되아 번진다면은 그 화두낙이라는 게 기맥히네. 거다가 그 또 너무 낙관해도 못쓰지마는, 화두의 낙이라는 거 기가 맥혀.
불거자거(不擧自擧)가 된다. 화두 들라고 할 것이 없다 그때는. 화두 챙길 것이 없어. ‘이뭣고?’ 헐 것이 없어. ‘판치생모?’ 헐 것이 없어.
그대로 ‘이뭣고?’뿐인디 뭘 ‘이뭣고’를 또 추켜들어? 뭐 ‘판치생모’를 다시 헐 게 뭐 있나?
이러헌 지경이 꼭 오고 마는 것이고, 공부허는 지경이 이러헌 지경인 것인디.
그 뭐여, 참선헌다고 앉으면 자고. 잠 그놈 깨면은 별 망상(妄想) 더하고. 별 망상 더혀. 선방에 들어와서 더혀.
허! 그 망상도 또 이상하지. 망상도 재미난 망상이 있네.
'돈이나 많이 벌어 놓고, 돈 그놈 내년에는 지르면 얼매고, 내년에 지뤄서 얼매가 되면 그놈 논 사고, 그놈 밭 사 놓고' 요런 같은 망상하면 좋네. 부자 될 것인께. 서호당마냥으로.
그런 것 생각하다 보니 한 시간이 버떡 가 버리고, 두 시간이 버쩍 가 버리고.
자기는 고런 것 생각하니 잠 안 자면서 남 존 것은 숭보고. 요러고 앉은 참선이 있네. 고약한 참선이지.
불거자거(不擧自擧)가 된다. 화두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는 지경이 온다.
그러헌 지경이 그게 참으로 응, 일진(日進) 지경이다, 날로 참된 지경이다.
일용 거각을, 날마다 참선 거각(擧却)을 이와 같이 해야겄다.
역여유천(亦如流泉)이니라. 비유컨댄 항상 새암물 흐르는 것 같다.
어디 더 흐르고 덜 흐르나? 고 구녁에서 나온 그 물이. 고대로 항상 흐르는 물같이 그렇게 화두가 처억 될 때가 와.
만리경년별(萬里經年別)이요 고등차야심(孤燈此夜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이 몸뚱이 얻어서, 이 몸뚱이를 터억 가지고 불문(佛門)에 들어와서 도학자가 되었구나.
자, 이 몸뚱이, 이 도 닦는 몸뚱이, 도학자의 이 참 만나기 어려운 이 몸 이별해 버리면 만리경년별(萬里經年別) 되어 버려 다시 또 얻기 어렵다. 과연 어렵다.
고등차야심(孤燈此夜心)이여. 이 원통(寃痛)헌 마음, 이 외로운 등(燈)에 이 원통헌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몸 만나서 이렇게 만났으니 금생에 결정코 속성대각(速成大覺)하야 광도중생(廣度衆生)이니라.(20분27초~37분28초)(끝)
*‘등불만 훤허니 써 놓고~’ ; 쓰다 —> ‘켜다’의 사투리(경기,강원,경상,전라,충청,함경)
*본래가풍(本來家風) ; 본가풍(本家風). 본래의 가르침. 천연 그대로의 가르침.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윤회고(輪廻苦)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받는 고통.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〇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선(公案禪) = 활구선=활구참선(活句參禪)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다잡이 ;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무시(無始) 이래 쌓인 번뇌가 불성(佛性)을 덮고 있는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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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만년(一念萬年) : ‘한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의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낸 말.
*회광자간(廻光自看)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는 뜻이다.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〇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 - 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 - 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방할(棒喝)이 여우적(如雨滴)’ ; 방할(棒喝)을 비가 내리듯 주라. 태고 보우(太古普愚) 스님의 참선명(參禪銘) 참고.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 『선가귀감』(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201 임제가풍(臨濟家風) 참고.
*염화미소(拈花微笑) ;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범어의 Grdhraku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⑤일, 사건.
*미득위득(未得謂得) 미증위증(未證謂證) ; 얻음[得]이 없는데 얻었다고 말하고, 증(證)한 것이 아닌데 증했다 말하는 것.
*업력(業力) ; 과거에 한 행위가 결과를 낳는 힘. 업(業)이 원인이 되어 과보를 일으키는 힘.
*화신투입(和身透入) ;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60~61
〇此事는 如蚊子가 上鐵牛하야 更不問如何若何하고 下嘴不得處에 棄命一攅하야 和身透入이니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들듯이, 다시 여하약하를 묻지 말고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 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때가 있으리라.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빈틈없이 빽빽하게 죽 잇따라 들어차 있다'는 말. 끊이지 않고 빈틈없이 행하는 것을 말한다.
*면면(綿綿 솜·이어질·연속할 면) ; 끊어지지 않고 죽 잇따라 계속 이어지는 것.
*밀밀(密密 빽빽할·촘촘할 밀) ; 빈틈없이 빽빽히 들어찬 것.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