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깨달음2022. 7. 10. 21:11

§((301)) 부처님과 아란존자의 전생. 아란존자의 등창 수술 일화 /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 아는 것이라면 공안(公案)을 해설하는 강의를 한다면 전부가 다 깨달음을 얻게 될 것 / 깨달음은 가리킬 수 없는 것이고,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 부처님과 조사는 깨닫는 방법을 가리키셨다.

**송담스님(No.301)—1986년(병인년) 하안거 결제 (용301) (아는 것과 깨달음)

 

약 15분.

 


부처님의 그 시자(侍者)를 지낸 아란존자(阿難尊者)는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신 날 태어나서, 아란존자가 스물다섯에 출가(出家)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시운다섯(55세)이시고 아란존자는 스물다섯에 출가했는데, 그 아란존자는 속가(俗家)로는 부처님 사촌동생이시고, 출가해 가지고서는 부처님 제자가 되셨는데,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설하신 모든 법문(法門)을 한 귀절도 빠짐없이 조르르르 다 기억을 해서 부처님 열반(涅槃)하신 뒤 제일회(第一會) 결집(結集)을 할 때, 아란존자가 그 부처님의 법문을 전부 외어서 그래 가지고 그 결집을 했던 것입니다.

그 아란존자(阿難尊者)는 과연 어떻게 해서 그렇게 기억력(記憶力)이 좋아 가지고 부처님 일대(一代) 소설(所說)을 다 그렇게 외워 바칠 수가 있느냐 하면,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실 때에 얼마만큼 골똘하게 정성스럽게 청법(聽法)을 했냐?' 좋은 일화(逸話)가 있습니다.

아란존자가 등창이 났었는데 기파(耆婆) 대감이 그 등창을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술을 하기 위해서 아란존자를 기둥에다가 묶어 매고 여러 사람이 팔다리를 잡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란존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고 그 묶지 말고 그냥 수술을 해도 좋다고 하니까, 기파 대감은, "도저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칼로 등을 째는데 아무리 참을라고 한다고 해서 그 아픈 것을 참을 수가 없고, 몸을 움직이게 되면은 수술하는데 막대한 지장이 있으니까 묶어 매야 합니다" 헌게,
"묶어 매지 말고, 내가 부처님 설법하실 때, 부처님 설법(說法)을 들을 때에 그때 내 등을 수술을 하라"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기파 대감이 부처님 설법할 때에 아란존자 등으로 가서 그 등 수술을 마쳤습니다.
법문이 다 끝난 다음에 아란존자가 기파 대감을 향해서, "아, 내가 법문 들을 때 수술을 하라고 했는데 왜 수술을 안 했소?" 하고 물어보니까, "수술은 이미 해 마쳤습니다" 헌게, "아, 그래야" 하고.
얼마나 골똘하게 부처님 법문을 들었으면, 칼로 등을 째고 수술을 하고 고름을 짜낸대도 그 아픈 것을 몰랐겠습니까? 그만큼 골똘히 들었기에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설하신 법문을 한 귀절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다 기억을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 아란존자와 또 부처님과의 전생(前生)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저 무량아승지겁(無量阿僧祗劫) 전에는 아란존자와 부처님과는 도반(道伴)이었었습니다.
함께 도(道) 닦는 아주 다정한 도반이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정말 아주 철저하게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셔서 온전히 아주 활구참선만을 하셨는데, 아란존자는 자꾸 경(經)을 좋아했습니다. 경 보기를 좋아하고 경 외우기를 좋아하고 항상 책을 가까이 하고 이랬습니다.

그것이 생(生)을 거듭하면서도 계속 아란존자와 부처님은, 부처님 태어나실 때마다 아란존자도 항시 같이 이렇게 태어나서 또 도를 닦고 그렇게 여러 생을 그렇게 내려오셨는데, 부처님께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중생교화(衆生敎化)를 하시게 되었는데 아란존자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의 설법하신 것을 기억을 해 가지고 결집(結集)을 하는 그러한 소임을 맡으시게 된 것입니다.

물론 크게 보면 십대제자(十大弟子)와 삽삼조사(卅三祖師)가 전부 다 과거에 다 불보살이 부처님의 불법(佛法)을 갖다가 조불양화(助佛揚化)하기 위해서 짐짓 그 제자의 탈을 쓰고 제자로서 나타나서 부처님의 법(法)을 전통하신 것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지마는,
같은 도반으로서 같이 공부를 시작했어도 '그 사람이 얼마만큼 철저하게 정진을 하느냐? 활구참선만을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치고 철저히 하느냐?'

여기 가서 이 법문 듣고 저기 가서 저 법문 듣고, '금강경(金剛經)이 좋다' 하면 금강경을 독송(讀誦)하고, '법화경(法華經)이 좋다' 하면 법화경을 독송하고, '유마경(維摩經)이 좋다' 하면 유마경을 독송하고, '무엇이 좋다' 하면 이것도 저것도 하니까, 이 고루고루 하면 다 참 좋은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이 도(道)는, 특히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이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는 외골수로 한 길만을 위해서 몸과 목숨을 옴막 다 바쳐서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열한 근기로 짧은 인생에 있어서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들었습니다마는,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큰 의심 아래 크게 깨닫는다. 적게 의심하면,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큰 의심을 가지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을 전혀 아니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법문이 있습니다.

지끔 참선이 매우 널리 그 관심을 받게 되어서 승속(僧俗) 간에 이 참선에 대해서 모다 관심을 갖고 모다 하려고 하고 있고 거기에 따른 많은 책도 나오고 그랬습니다마는, 이 활구참선은 정말 제일 간단하고 하기가 쉬운 것인데, 실제에 있어서는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를 않습니다.

왜 그러냐?

천칠백 공안을, 전부 다 이 공안(公案)이 생겨날 때에는 부처님과 조사(祖師) 간에 그 법(法)을 거량(擧揚)해서 그 법을 거량하는 그 기연(機緣)이, 어떠한 기회(機會)에 그 공안이 생겨났으므로, 그러한 기연을 잘 알고 또 그 공안을 이리저리 따지고 그렇게 해서 그럴싸한 어떤 해답을 얻으면 썩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재미에 팔려서 공안을 이리저리 따져서 수수께끼 풀듯이 그것을 풀고, 그것을 뭐라고 대답하면 '옳다' 하고 일러주고, 또 다른 공안을 또 주어서 그 공안을 가지고 며칠이고 몇 달이고 그 애를 써서 궁리를 하고 따져서 그럴싸한 답을 얻어서 '이것이다' 하고 그러면, '그러면 옳다' 그렇게 해서 또 한 공안을 통과를 하고, 또 그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해서 열 개, 스무 개, 오십 개, 백 개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참 '누구는 오십 개가 통과했다, 누구는 백 개가 통과했다' 이래 가지고 그것 많이 통과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그걸 많이 통과함으로써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본인도 착각을 하고 남에게 과시를 하고, 이러한 참선이 일본에 진즉부터서 수십 년, 백여 년, 몇백 년 전부터서 일본에서는 그러한 참선이 유행을 해 가지고 헌데, 그러한 참선이 우리나라로 역수입(逆輸入)이 되어 가지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참선을 가리키고 배우고 하는 그러한 경향이 지금 유행을 하고 있는데.

이 임제종(臨濟宗) 조사문중(祖師門中)에 있어서는 차라리 아니할지언정 그러한 참선은 해서는 아니 되고, 차라리 깨닫지 아니할지언정 그러한 식에 깨달음을 요구(要求)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왜그러냐?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의리(義理)로 따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다' 하고 아는 것이라면 구태여 애써서 알 것이 없고, 수십 명 수백 명을 모아 놓고 계속 공안(公案)을 해설하는 강의(講義)를 한다면 그 강의를 들은 사람은 전부가 다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라면 뭣 하러 부처님께서 49년을 설하시며,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어떻게, 조사 밑에 이미 다 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전부 다 깨달라 마쳐 버렸을 것입니다.

근데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여. 배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여.
부처님이나 조사가 깨달음을 그런 식으로 가리켜서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 도가 어렵다고 하며 깨달음이 귀하다고 하겠습니까? 깨달음은 가리킬 수 없는 것이고, 배울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러면 부처님과 조사는 무엇을 하셨냐 하면 깨닫는 방법, '어떻게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가 있다. 그러니 너희들이 그렇게 도를 닦아라'
깨닫는 것은 바른 방법으로 수행을 해 가지고 스스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육신통(六神通)이 자재(自在)하신 부처님의 힘으로도 중생에게 가리켜서 깨닫게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소중한 것이고 깨달음을 위해서 수없는 목숨을 바쳐 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많이 들으셨고 또 이 용화(龍華) 이 법보전(法寶殿)에서 많은 법문을 들으신 분은 이미 그러한 사상이 철저해서 누가 뭐라 해도 그런 데에 흔들림을 받으시지는 않겠지만, 행여나 누가 그러한 말로써 유혹을 한다 하더라도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고 한 생각이라도 바로 돌이켜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을 거각(擧却)해 나가도록.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저절로 소멸(消滅)이 되고 거기에서 확철대오할 수 있는 인연(因緣)이 성숙(成熟)되어 가는 것입니다.(9분38초~24분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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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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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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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