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산화상시유정상인(蒙山和尙示惟正上人) (2/3) 몽산화상이 유정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344)—몽산시 유정상인(2) (계축73.12.13.새벽) (전344)

 

(1) 약 18분.

 

(2) 약 18분.

 

(1)------------------

통곡사금궐(痛哭辭金闕)이다  천변백일침(天邊白日沈)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지삼척토(誰知三尺土)가  매각아전신(埋却我全身)고
나무~아미타불~

통곡사금궐(痛哭辭金闕)이다. 금궐(金闕)을 이별할 때 통곡 안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무슨 임금이라도 뭐 천하 없는 부귀(富貴)라도 안 내버릴 수가 없으니, 다 내버리고 죽으러 가는 길뿐인디 통곡 안 할 수가 없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이것 산다고 해 봤던들 필경 통곡밖에는 없다 그 말이여.
대성통곡(大聲痛哭)이여. 보통 통곡이 아니여. 이것 뭐 몸뚱이 이녀러 것 그건 허망하기가 세상에 원, 몸뚱이에 모도 부속 물건인디, 몸뚱이에 모도 부속된 물건인디 이 몸뚱이도 무너지는디, 무엇이 모도 견고한 것이 있어? 이 몸뚱이 내버릴 때에는 다 내버린다 그 말이여.

천변백일침(天邊白日沈)이다. 이 백일(白日) 하늘에 갔다 왔다 해주는 이 백일(白日)만 속절없이 보내버려. 이 몸뚱이 그 가지고 나와서 죄만 퍼지으면서 백일(白日)만 속절없이 모도 그만 허송해 버려. 아무 쓰잘데없이, 뭐 뭐 뭐 뭣혀?
세상에 부귀를 한들 부귀 그놈이, 아 그거 한 그것 뭐 햇수로 넉넉히 한정헌다면은 그 한 칠팔십 년 그런데, 어디 칠팔십 년이 누가 그렇게 칠팔십 년 다 사는가? 모도 그 안에 다 내던져 버리지. 다 무너져 버리고.

이렇게 허망하고 무상한 놈의 몸뚱이 이걸 가지고 칠팔십 년을 설사 부귀영화를 허고 지위 만능으로 산다한들 그거 그 뭐여? 마지막 내버리고 이놈 몸뚱이 내버리고 통곡하고 돌아서는 놈의 인생이, 아 그러고 그러고 말면 헌디, 이 몸뚱이 하나 가지고 살다가 통곡하고 한번 대성통곡하고 그 마쳐 버리면 그만 뭐 그 무슨 토목와석(土木瓦石)처럼 뭔 끝도 뭣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아무 무정(無情)처럼 그래 버리면은 아무 관계없지마는, 어디 그 무정처럼 그런가?

참말로 이 몸 주인, 이 몸을 끌고 댕기던 주인공, 그 주인은 그대로 있는데, 어디 전생이 있고, 어디 금생이 있고, 후생이 있나?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 다 뭐 그만 금(今)이지. 오늘이지.
삼아승지(三阿僧祇)라는 것은 숫자로 세아릴 수 없는, 역사 없는 과거 · 현재 · 미래를 다 들어서 삼아승지겁인디, 삼아승지겁 겁 전(前)에는 또 처음이 있으며, 겁 후(後)는 뭔 후(後)가 있나? 역사가 있어야지. 항상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 내가 나는 그대로 있는디 뭐.

그대로 있는 주인공(主人公)을 좀 어떻게 허든지 닦아 봐야지, 바로 깨달라 봐야지, 찾아 알아봐야지, 내비둬 번지고는 그만 세상에 와서 부귀니 무슨 공명이니, 무슨 지위니 권리니 요따구 놈의 디 빠져 가지고는 죄업만 잔뜩 퍼지어 놓고는, 그 신세는 어떻게 혀?
그 주인공 내, 참말로 내, 나는 어떻게 헐 거여? 그 주인공을 좀 잘 그 앞길을 잘 닦아서 훌륭하게 닦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시켜 놓던지, 참말로 불생불멸 본구저대각(本具底大覺)을 이루어 놓던지 아 뭔 까닭이 있어야 할텐디, 이렇게 그만 속절없이 백일(白日)만 허송해 번지고.

수지삼척토(誰知三尺土)가, 누가 이 석 자, 한 서너 자 되는 땅이 매각아전신(埋却我全身)고. 내 몸뚱이 갖다 파묻어 버릴 줄을 알았으리요. 알 거냐? 뭐 누구나 다 아지마는, 그건 뭐 생각지도 않지.
모도 갖다 그저 파고, 그저 그만 무덤 하나 묻어버리고 말지. 요까짓 놈의 세상을 이렇게 허망하게 이렇게 살아버리고 말 것인가? 참으로 그 참 삶이 있고, 참 해탈이 있고, 불생불멸 본각이 있고, 생사해탈이 있는 아 우리 부처님의 정법, 이 문중에 들어와서 한번 도(道)를 닦아야지.

도(道)를 닦을 거 같으면은 참말로 도학자가 되어야 하고, 도학자의 행을 가져야 하지. 그저 그만 일생 괴각질이나, 괴각(乖角)이라 하는 것은 굉이 뿔다군디, 천하에 못쓸 게 괴각이여. 여기 여 가도 그저 괴각질, 저 가도 괴각질, 공연히 쓰잘데없이 그 괴각이나 부리면서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런 행동을 허고, 나도 닦지 못허면서 대중까장 요란하게 맨들고 그래 쓸 것인가? 그렇게 한 법이 있어?
백장 스님의 청규법이라든지, 석교 스님의 법이라든지, 과거에 도 닦아 나온 스님네의 그 무섭고 엄한 규칙을 다 들어봐도 알고. 다 알겄지. 도학자가 되았으면은 벌써 그것부텀 알아 가지고 청정한 대중에 규칙부텀 지켜 가지고 도학을 도학 군자, 도를 잘 닦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은 일생에 그 죄만 지어. 무익, 한번 모도 넘까장 모도 해롭게 만들고 되지 않는 법이란 말이여. 그런 법이.


각요화두(卻要話頭)가 현전(現前)해야, 문득 화두가 현전헌 걸 요구혀.
화두(話頭) 없는 법이 없어. 우리 활구문중(活句門中)에는 화두법 밖에 없거든. 여태까장 내가 해 나와, 설(說)해 나오지마는 화두가 아니면은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 화두가 아니면은, 견성법이 아니면은 해탈한 법이 없어. 아무리 깨달을락 해도 깨달은 법이 없어.

사구(死句)라 하는 것은 깨달은 법이 없거든. 어떤 것이 사구(死句)냐?
이치 길이 있다. 말 길이 모도 있어. 해석할 길이 있고, 분석할 길이 있고. 뭐 '허공이다', '허공도 없는 참말로 진공이다', '진공도 아니다' 무슨 뭐 '말 길도 끊어지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뭐 '무언어 동작이, 언어 동작도 없다' 뭐가 있나? 일물(一物)도 부중(不中)인디, 한 물건도 맞지 않는디, 한 물건도 맞지 않는 곳에 가서 뭐라고 불러 지어놓을 거냐? 막도무사(莫道無事)이 호(好)타. 일 없다고 이르지 않는 게 좋다.
아! 그러면은 일 없다고 막도무사(莫道無事)이 호(好)타, 한 물건도 없단 말도 안 해야 헌다 그 말이여. 한 물건도 없는 곳을 뭘라고 '한 물건도 없다' 하노? '없다'고 말까장도 없어야겄다. 뭘라고 말을 허노? 뭐 허공(虛空)이니, 무슨 뭐 비허공(非虛空)이니, 그건 뭘라고 거다 갖다 붙여 놔.

허! 고래 놓으면은 고것이 그 모도 공견(空見)이여. 공견. 공견이여, 아무리 떼고 아무리 여의어도 공견밖에 안 되아. 공(空)을 열댓 개를 떼고 백천만 개를 떼도 도로 공(空)밖에는 안 되아.

고런 걸 가지고서는 견성이니 거다가서 무슨 뭐 관이니—관법(觀法)이 무엇이여? 관(觀)이 그 되나? 중생 관(觀)이 되어야지. 중생 관이라는 것은 똑 태말충, 태말충(太末蟲)이란 건 파리여. 파리 같은 거여. 파리 같은 놈, 파리 그놈이 여기 날려 놓면 저가 붙고, 저기 날려 놓면 여가 붙고, 안 붙는 디가 없어.
안 붙는 데가 없지마는 불에는 못 붙거든. 불에는 붙들 못혀. 파리와 같애서 파리 그놈이 일체처에 다 붙는디 뜨거운 끓는 물이나 불에는 못 붙어. 끓는 물이나 불이라는 것은 그 도무지 붙을 수 없다 그 말이여. 그 끓는 물과 불은 반야광(般若光)이여. 화두(話頭)여.

화두 하나 그놈, 그 천하 없는 것을 분석하고 천하 없는 것을 거다가 디 때려 붙여놔도 소용없다 그 말이여. 파리 못 붙는 거와 같여. 붙들 못혀. 해석이 붙들 못혀. 파리가 불꽃에 못 붙듯기 붙들 못혀. 무엇을 붙이냐 그 말이여. 화두에는 별수 없이, 그러니까 의단독로(疑團獨露)여. 의심 하나밖에는 없어. 알 수 없는 의단독로다.
이러헌 화두가 현전(現前)허기를 요구헐 것이니라. 꼭 공부허는 사람이 이것을 요구치 않을 것 같으면—화두 없이 어떻게 혀? 화두 없이 아무리 앉어 보지? 아무리 앉어 뭘 관(觀)해 보지? 그 관이 그 무슨 관인고? 막작시관(莫作是觀)하라. 이와 같은 관을 말아라. 되들 않는 것이여.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크게 의심한디 크게 깨달른 법이여. 불의언구(不疑言句)가 시위대병(是爲大病)이다. 언구를 의심 않는 것이 제일 큰 병이여. 그보덤 더 큰 병은 없다 그 말이여. 그러니 다만 학자(學者)가 참으로 도(道) 닦는 법이라는 것은, 이것이 이 화두가 요 묘(妙)여. 화두 하나 따악 알 수 없는 화두다.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어떤 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 털 났느니라"

이것 참 해석헐 수 없지. 그 뭔 소리냔 말이여? 도대체 말이 맞아야지. 원 우에도 안 맞고 아래도 안 맞고 무슨 가운데도 안 맞고, 어따 떼 붙여도 안 맞아.
똑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에 꽉 맞는 놈인데, 뻘로 그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한 게 아니여. 어디 그렇게 할 수가 있나? 그 역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모도 차츰차츰 깨달라서 상전(相傳)해서 내려와, 이렇게 전통해서 내려온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 이 생사해탈법인데 아무때나 해 논 말이여 그것이?
그런디 나 혼자 들어와서 공연히 공부한닥 하다가선 그만 '뭣이 나온다'고 나온 거 하나 관해 가지고 뭐 그걸 보고 앉었으면 그거 쓸 것이냐 그 말이여? 참 천겁만겁에 큰일나지.

불의언구(不疑言句)라니! 언구(言句) 의심 없는 것이 그거 참선 아니여. 대의단(大疑團)이여.
대청정신(大淸淨信), 큰 청정헌 신(信)이 있어야 하고, 대분심(大憤心)이, 큰 분심이 있어야 하고, 대의정(大疑情)이, 큰 의심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의심 없이 화두를 해서는 큰일나지. 제일가는 병이여 그것이. 병 중에는 막과(莫過)여.

화두가 현전헐 때 불가탐정(不可貪定)이 이망화두(而忘話頭)니라. 저 화두가 딱 나타나서 알 수 없는 놈이 독로(獨露)되거들랑, 눈앞에 처억 나타나거들랑, 그거 그 나타난 화두야 뭐 눈을 감던지 뜨던지 무슨 뭐 일관지경(一貫之境)을 가지고 말헌 것이 아니라, 그 관 심관(心觀), 심(心) 마음으로 관도 있고 그 뭐, 뭐 똑같지. 뭐 뭐 별거 있나?
헌디, 그 화두가 현전(現前)헐 때에는 정(定)이 있어, 정이. 정이라는 건 '정할 정(定)' 자, 꽉 정해지는 정이 있어. 정(定)을 그놈을 탐(貪)하고 화두를 잊어버려서는 못쓴다. 그거 그걸 잘 알아들어야 되아. 화두 없고, 의단 없고, 정(定)만 관하고 있으면은 그것이 내나 해야 그 뭘 관허고 있는 것이여? 큰일나지.

멸진정관(滅盡定觀)도 있고 관이 여러 가지 있어. 멸진정관(滅盡定觀)이라는 것은 일체가 다 붙들 못허고 일체가 아무것도 없어. 내나 해야 아까 앞에 말하던 뭐 '공(空)' 자를 백을 붙이고 천공.. 천(千) 자를 붙인다 한들 그거 공(空) 아니여. 그까짓 공(空)을 관허고 있으면 뭣이여? 그런 것 관하고 있으면은 그것 안 되아. 억만 겁(却) 가도,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가도 깨닫는 법이 없고 각(覺)이 없어.

우리 부처님의 법은, 우리 부처님의 정법은 꼭 각(覺)이거든. 지(知)가 아니여. 아무리 알았다, 아는 것 가지고는 소용없어. 지지일자(知之一字)가 중화지문(衆禍之門)이지. 아는 것이 중화(衆禍)의 문이지. 그게 아니거든.
허니 꼭 깨달라야 한다 그 말이여. 그 진묘(眞妙)를 깨달라야 혀. 진묘, 내가 나를 깨달라야 혀. 견성성불(見性成佛)이여.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허는 법이여. 그렇찮어? 우리 부처님의 법은 견성성불법이다 그 말이여. 그것 내놓고 없어.

아 견성(見性), 성(性)을 성품(性品)을 깨달라 가지고는 부처 되아버리면은 생사(生死) 없는 법인데, 그 뭔 법이 거가 있냐 이 말이여. 간단혀.
그런데 뭐 해 들어가다가 화두도 없고 그만 뭐 하나 나온 걸 내가 관허고 앉았으면 될 것이여? 세계가 광명이면 뭣하며, 광명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뭣이여 그것이? 뭐 뭐 광명이 그것이 법(法)인가?(처음~18분25초)





(2)------------------

정(定)을 떡! 만약 관(觀)하고서 화두를 잊어버리면,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하지 아니하면—의심을, 독로(獨露)헌 의심(疑心)을 떡! 관해야지, 정(定)을 관해서는 못쓴다 그 말이여. 정(定)은 관하거나 있거나 말거나 내비두어 번지고 화두만 관하거든.
화두만 현전(現前)허면 정(定)이라는 건 따라와서,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헌 디 가서는 정(定)이 없을수록 그대로 정(定)이 갖춰져 있는 것이여. 마음이, 그 중생 분별심이 사량계교심이 일어날 곳이 없고, 어디 붙을 곳이 없는 것이여. 그런게 화두 헐 때는 제일 묘(妙)한 것이 항상 의단독로(疑團獨露)를 갖춰야 혀.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게 갖춰라.

망즉낙공(忘則落空)이다. 그 화두를 관허지 않고—그 화두 관(觀)허라는 것이여. 다 관개무자(觀箇無字)요, 관기도개무자(觀其道箇無字)컨댄, 다 그래 놓았지. 화두를 관허라고 했지. 의심을 허라는 것도 아니여.
화두를 가만히 관(觀)허는 것이, 거 뭘 관(觀)하느냐? 알 수 없는 것을 관(觀)하는 거여. 그것이 의심이여. 알 수 없는 걸 관(觀)한다 그 말이여.
그 관(觀)에 가서 딴것이 있으면은—뭣 하나가 관(觀)이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이 딴것이 뭣이 있어서 의심이 없으면은 낙공거(落空去)니라. 공에 떨어져 버리느니라. 이게 낙공 외도(落空外道)거든.

반피미정(反被迷定)하야, 그 미정에 가서, 그 정미(定迷)여. 정(定)에 가서 미(迷)해 버려. 그 관에 가서, 화두 없는 관에 가서 미(迷)해 버린다 그 말이여, 공에 떨어져.
무유묘오(無有妙悟)다, 묘오가 있지 못허고. 무유시처(無有是處)다. 이건 옳지 못혀. 된 법이 없어.

정중(定中)에 득력(得力)이 이(易)다. 정중(定中)에 득력(得力)이 이(易)다.
정중(定中)은 망상 없는 것이—딱 정(定)해 버렸으니까 망(妄)이 없어. 망(妄)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없어. 항상 중생이라는 것은 중생심이라는 것은 일어나지 안 하면 멸하고, 멸허지 않으면 일어나고, 밤낮 밤낮 이건 기멸(起滅)이 있어.

그 일어나고 멸하는 놈이 없어야사 정(定)인데, 그 정(定) 가운데는 의호이 화두가 들어 있어. 알 수 없는 화두가 들어 있어야 그게 옳은 정(定)이고, 화두가 온전히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그것이 정(定)이지, 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그래 어쨌거나 화두헐 때에는 이것을 조심해야 되아. 화두가 없어져 번지고 고요헌 데가 떨어져 잼겨 있어. 그럴 수가 많거든. 그거 안 되아. 아무짝에도 못 쓰는 공부여.

각요성성불매(卻要惺惺不昧)니라. 화두가 온당하게 의심이 일어나거들랑 깨끗 깨끗이 해서 화두 하나 안 매(昧)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깨닫기도 기다리지 말어. 깨달을락 하면 벌써 그 기다리는 마음이 벌써 거가서 찡겨 있으면은 그것이 틈사구니가 생겨서 화두에 못쓸 잡독(雜毒)이 들어온다 그 말이여.

'어째 그거 아무 도무지 해봐도 이 모냥인고? 항상 이 모양이여? 깨달은 깨달라진 것도 없고, 보인 것도 없고 깜깜허니, 아 알 수 없는, 알 수 없는 것만 밤낮 보라고 하니, 이것 뭐여?' 그러지 말라 그 말이여.
알 수 없는 놈이 아니면은 중생 번뇌 양이, 번뇌 그 망상이 그 꺼진 법도 없고, 멸헌 법도 없고, 밤낮 일어나는 것이여. 될 수 있으면 의단독로(疑團獨露)를 갖추어야사 그 거기에는 그 망(妄)이 망념(妄念)이 붙들 못하고, 들어오들 못허고, 일어나는 곳도 없지. 그러니 깨끗 깨끗이, 매(昧)하지 않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그렇게 해 나간 가운데에 홀유일체호악경계(忽有一切好惡境界)가 현전(現前)커든, 그렇게 깨끗이 해 나가다가도 홀연히 대지(大地)가 빠진 수도 있고, 대지가 그만 큰 공(空)이 되아 가지고서는 그만 퉁! 비어 버리고, 그만 광명이 콱! 차기도 허고, 별별 선악 좋은 경계 나쁜 경계가 다 나타날 수가 있다 그 말이여. 그런 경계가 오거든, 공부해 들어갈 것 같으면.
허든 도불요관타(都不要管他)니라. 그러헌 경계 나타나는 것을 아주 그것은 무서워해라. 그까짓 거 관계허지 말아라. 추호도 관계허지 말어라. 그대로 두어 버려라. 그 나온 거 나타난 거 제 나타났지, 뭣할 것이냐?

네 깨닫지 못한 중생의 심리 가운데에 밤낮 과거 전생으로부터서 오늘날까장 오면서 만날 육근(六根) 육식(六識)이 그 모도 퍼일어나면서 무슨 경계가 안 나타났느냐? 그까짓 경계가 뭣할 것이냐? 경계와 모양은 상견(相見)이요, 빛깔은 사견(邪見)인데, 상견 사견에 떨어지면 뭣할 거냐? 절대 그건 관계치 말아라.

화두(話頭)가 분효(分曉)하야사, 화두 하나만 분명히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하나 나와야사, 홀연숙청경계(忽然倐淸境界)가 자청(自淸), 그만 그까짓 경계 나타난 놈 뭐 앞에 아까 그 모도 허공 대지 별것 나타난 것이 숙청(倐淸) 되아. 아무것도 없다, 화두만 딱! 가서 관해 버리면. 아무것도 거그는 없어. 그만 자청(自淸)하다.

허니 화두를 항상 할 때에는 완완동신(緩緩動身)해라. 급하게도 말고 늘어지게도 말고 거문고 팅기듯기 거문고 줄 고르듯기 그렇게 완완동신을 해서 두수정신(抖擻精神) 정신을 챙겨서 급해도 못쓰고, 늘어져도 못쓰고 그렇게 정성 각기를 해라. 각기 정념을 해라.
그래서 그 항상 화두정(話頭定)을 보지(保持)해라. 화두정 화두, 화두정(話頭定)이래야 하지, 화두 없는 정은 미정(迷定) 못써. 큰일난다 그 말이여. 화두정을 보지를 해라. 보호해서 가져라.

그놈을 가져 가지고는 어동용중(於動用中) 보지득화두(保持得話頭)해야, 동용(動用) 가운데에 화두를 보존해서 가져. 동용 가운데—일어나나, 앉으나, 서나, 누우나, 그놈으로써 평생 하면 어째? 평생 못 깨달으면 어째? 화두를 못 깨닫드래도 그렇게 의단독로만 갖추어 나가는 화두는 그건 참! 활구화두(活句話頭)라! 활구학자라! 활구 대학자, 반야학자(般若學者)라!
그 반야학자는 화두만 그렇게 해나가는 학자는 염라대왕도 소용없고, 염라대왕도 그만 방추(棒鎚)를 놓아번지고 절을 허고, 제석천주(帝釋天主)도 그 앞에 와서는 그만 항복을 해버리고, 제석천주의 그렇게 권위가 장하지마는 이 욕계천(欲界天)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화두해 나가는 선학자(禪學者), 그 학자밖에는 존중헌 이가 없어.

그 반야학자, 반야학자한테는 염라대왕도 소용없고, 천하 없는 죄(罪)도, 과거에 천만겁 중에 아무리 퍼지어 논 죄도 소용 하나 없네. 없어. 그 당장 없어. 그 자리 가서 죄가 뭐 죄업 받고, 없어. 아 그 성불(成佛)허나 마찬가진디 왜 그 좋은 화두를 내던져번지고, 그 딴짓...
내가 없는 말혀? 이 여기 모도 고인(古人)네의 이렇게 설해 놓은 말 고대로 내가 설한 거지. 내가 지어서 헌가?

유의(有疑) 제시(提撕)니라. 꼭 의심이 있는 의심 도리만 잡드리해서 항상 보호를 할 것이니라. 그놈 아니면 안 돼. 그놈 아니면, 활구(活句) 아니면 견성할 도리가 없어. 생사 없는 도리를 증득(證得)할 수가 없어.
그 증득이지. 증(證)해 얻어야지. 그것 조끔 깨달라 가지고 알아 가지고 깨달라 가지고만 말아도 그 오(悟)만 해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여.

이 화두를 그렇게 평생 못 깨닫고 의단독로만 다루드래도 고렇게만 철저히 해 나갈 것 같으면, 화두와 그만 오후(悟後)에 깨달라 가지고 보림(保任)과 한목 겸해 버렸네? 그게 겸한 것이여 그것이.
그 화두를 그렇게 일생 정력껏 잘해 놓으면 그것 그렇게 그대로 보림(保任)이여. 보림해서 깨달으면 그만 돈오돈수(頓悟頓修)가 한목 되아버려. 돈오돈증(頓悟頓證)이 되아버려. 깨달라 가지고 오후에 또 수증(修證)헐 것이 없어. 그 돈오돈수(頓悟頓修)지. 한목 깨달라 가지고는 한목 증해 버렸지. 이런 것이여.
그러니 화두 하나 온당하게 안 된 것만 그것만 항상 학자가 염려를 해야 하는 것이고, 화두를 어쨌든지 독로(獨露)해야 하는 것이지, 그밖에는 안 된다 그 말이여.

헌디다가 불용력(不用力)이니라. 힘을 쓰지 마라. '어째서 판때기 털,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그래 힘을 자꾸 쓰지 말라 그 말이여.
힘을 쓰면은 한 번 혀, 두 번 혀, 자꾸 힘든 바람에 힘이 든 바람에 거가서 모도 그만 피 혈기가 응(凝)해 가지고 뭉쳐 가지고는 모도 체증(滯症) 병도 생기고, 모도 혈압 병도 생기고 여러 가지 병이 생겨 못쓰니까, 평생 헐 것을 갖다가 그렇게 너무 급하게 갖다가 혈량이 혈(血)이 모도 동(動)하게 허면 못쓰니까, 완완동신(緩緩動身)해라. 천천히 그 화두만 정성껏 내 마음으로 허는 건데, 뭐 뭐 몸뚱이 마음 쓸 거 있나?

그래서 면면밀밀(綿綿密密)해야, 똑 솜 한덩어리처럼, 솜이 한뎅이 뭉친 것처럼, 그 또 밀밀(密密)해서 은밀해서 조금도 사이가 없이 화두를 이렇게 해서 무유간단(無有間斷)이니라. 간단(間斷)이 없게 헐 것이니라. 그래서 그 간단이 없을 때가 돌아오면은 화두가 공부가 점점(漸漸) 성편(成片)이다. 점점 편(片)을 이룬다. 한덩어리를 이뤄.
그래서 득여징추야수(得如澄秋野水)라. 농사 다 지어버린 뒤에 들, 깨끗한 물 같다. 일체 거름물도 하나 섞이지 않고, 일체 무슨 뭐 비료 하나 섞이지 않고, 깨끗한 그런 물 같여. 화두 경계가 그려.
무슨 뭐 화두(話頭) 없이 의단(疑團) 없이 그러헌 그 깨끗헌 물 깨끗헌 경계가 나타나 가지고 그걸 지키라는 게 아니라, 화두 의단독로 경계가 그렇다 그 말이여. 그 잘못 들으면 못써.

담담청청(湛湛淸淸)해야, 그 맑고 맑고 맑고 맑아서, 그 화두가 아무것도 안 섞인 거동이여, 일체 망념이. 종유풍동(縱有風動)이라도 별별 풍동이 다 있드래도, 그 깨끗헌 물은 풍동(風動)이 다 있드래도 병시청파(竝是淸波)다. 별 뭐 바람이 불어서 풍랑이 아무리 일어난들 그 물은 항상 깨끗한 물이다. 버큼도 깨끗허고 조금도 섞임이 없어. 그러헌 경계가 올 것이다.

도여시시(到如是時)에, 이와 같이 될 때, 경계가 이와 같이 될 때에 대오(大悟)가 근의(近矣)여. 크게 깨달은 시절이 앞에 닥쳐와. 안 깨달은 법은 없어.
각부득장심대오(卻不得將心待悟)니라. 시러금 마음을 가져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그러헌 때가 온다고, 화두가 순일하고 청정해서 그 화두 타성일편(打成一片) 경계(境界)가 온다고, '아이고 어서 깨달랐으면! 이거' 이러지 말라 그 말이여. 또 혹 그럴 수가 있거든. 그렇게 허지 말고.

불요구인천착(不要求人穿鑿)하라. 사람을 구해서 천착(穿鑿)을 기다리지 말아라. '아 그게 누가 일러주면 내가 툭 깰까? 좀 화두를 이놈을 좀 어떻게 좀 날 해석해 주었으면' 요런 짓 말란 말이여.
그 깨닫지 못허고, 왜 화두를 천칠백 공안이나 모도 고인(古人)들이 말해 놓은 화두를 가르켜 주어서 알게 맨들라고 할 것 같으면은 다 가르켜 주어서 해석해 주어서 알게 만들지, 왜 그렇게 깨닫지 못허게, 역부러 그렇게 깨닫지 못허게, 그 해석허지 못허게 만들고, 그렇게 단속을 해 놨어?

필경(畢竟)에 자기가 깨달라야 하니까. 그 깨달른 것은, 화두 깨닫는 것은 제 면목(面目) 제가 깨닫는 것이여. 제 눈깔 제가 보는 것이고, 제 마음 제가 보는 것이여.
누가 가르켜 주어 되야? 가르켜 주어서 알아버리면은 글 배운 것이나 똑같고, 아무 히마리 없네. 그 뭣헐 거여? 그따구로 해서 뭣혀?
구인천착(求人穿鑿) 절대로 마라. 누가 해석해 줄까, 행여나 진실한 학자는 행여나 해석해 줄까 무서워혀. 큰일나지.

고렇게 철저히 허다가, 아! 언하(言下)에 툭! 깰 수도 있고, 대 마주친 소리에 툭! 깰 수도 있고, 죽비 친 소리에 툭! 깨기도 하고, 가다 오다가 툭! 깨기도 하고, 아 이래야 되는 거여. 그래야 오(悟)가 크지. 부처님 하늘에 별 보듯, 새별 보다가 툭 깨고. 그 뭐 어디...

화두에 묘한 것은 이뿐이지, 더 헐 것도 없어. 더 말할 것도 없고.(18분28초~35분55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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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