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문2019. 3. 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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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참선 / 참선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 / 염라대왕과의 대화 / 저(송담스님)와 여러분과는 저 전생부터서 도반.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는 정말 영원한 세계가 아니고 무상한 세계지마는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한 사람은 사바세계야말로 정말 살맛 있는 좋은 수도장이요, 모든 사람은 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좋은 생사해탈하는 도반이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2018. 11.22) (용793)

 

(1) 약 20분.

 

(2) 약 20분.

 

(1)------------------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당당(堂堂)한 대도는 밝고 분명한데, 사람사람이 본래부터 원만히 성취됨을 갖추고 있구나.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다못 한 생각 어긋짐으로 말미암아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다. 무량겁을 두고 만 가지 형태로 현출(現出), 나타나면서 윤회를 해 가지고 오늘날까지 왔구나.

과거에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선지식(善知識)들은 본래 당당하게 갖추고 있는 자기 자성 부처를 깨달아 가지고 대도를 성취해서 생사해탈을 하셨는데, 우리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영겁을 두고 돌고 돌아서 오늘 이 자리에까지 왔구나.


평범하게 생각하면 부모로부터서 이 몸체를 받아나 가지고 한 살 두 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이렇게 살다가 그 가운데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어. 사람 죽는 것도 보고, 나도 일념 일념, 일 초 일 초 숨을 쉬면서 죽음을 향해서 살고 있는데.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우주 법계도 이루어졌다가 차츰차츰 변해 가지고 결국은 무너져서 없어지는데 사람인들 어떻게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안 죽고 살 수가 있겠는가' 아무렇지도 않고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우리는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수없이 많은 불보살과 선지식과 모든 분들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셨다가 다 또 열반(涅槃)에 드셨고, 지금 우리 눈으로 그 과거의 모든 선지식들의 육체를 볼 수는 없지마는,
그 선지식과 도인들의 법문에 의지해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도리가 있음을 우리는 믿고, 오늘 이 자리에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듣고, 자기 마음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가 있음을 깨닫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생사라 하는 것은 우주 법계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 몸에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도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생주이멸이라는 게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가 또 금방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꺼지면 꺼지자마자 또 무슨 생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생각이 일어나고, 일 초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슨 생각인가 일어났다가 또 이리저리 변해 가지고 없어지고 그러기를 과거에도 그렇게 해서 지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구구히 설명한다고 될 것이 아니고,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경허 스님, 만공 스님, 전강 스님을 통해서 전수해 온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에 의지해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수행해 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간단한 법에 의해서 수행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도 맡고 호흡도 하고, 입을 통해서 밥도 먹고 말도 하고, 육체를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좋은 일을 보면 기뻐하고 언짢은 일을 보면 속이 상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렇게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고 그렇게 살아가면 뭐 살아지는 것이나, 그렇게 산다면 그것이 축생이 사는 것과 인간이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축생도 밥도 먹고 똥도 누고, 축생도 그렇게 살아가는 거고. 사람도 축생처럼 살면 뭐 살아지는 것이지만.

우리가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고, 특히 우리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그 육체를 통해서 살아가면서 축생처럼 살라면은 얼마든지 살 수 있으나, 우리가 축생처럼 살다가 말아서는 너무나 허무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서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이렇게 보기만 지나가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나, 불법을 믿고 이 최상승법인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축생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삶을 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내가 참나를 찾는 참선을 하는 것」이 우리가 모든 축생과 다른 점이고 일반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슬플 때 슬픈 데에 빠져서 슬퍼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슬플 때 ‘이뭣고? 대관절 무엇이 내 몸에 있길래 이렇게 슬퍼할 줄 아는가?’
기쁠 때도 기뻐하고만 말 것이 아니라, 기쁠 때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 기뻐하는, 그 기뻐할 줄 아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그러는데.
눈으로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이뭣고?’ 코로 냄새 맡을 때 ‘이뭣고?’ 혀로 음식을 먹을 때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가 내가 나를 찾는, 나의 참나를 찾는 수행 도량(道場)으로 살아가야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고, 인간이 인간다웁게 사는 값있는 삶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하는 사람은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이 육체가 있어서 일반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나, 이렇게 일반 사람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냐 하면은—우리는 평범한 중생으로서 인생을 마쳐 가지고 업(業)에 따라서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만 만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나를 찾는 이 수행을 하는 사람은 이 무상한 속에서 살면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별로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있거나 지식이 없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자기가 자기를 찾는 인생으로써 최고의 삶을 살아가는 길이 있어도 믿지 않고 실천을 안 하면 우리도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이 사람의 몸으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이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으레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람 몸으로 태어난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개가 되기도 하고, 소가 되기도 하고 업을 지어 가지고 지옥에도 가고, 육도윤회를 무량겁을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다행히 금생에 우리는 사람 몸으로 태어났고, 불법을 믿고 이렇게 생사 속에서 살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참선을 얘기하고 참선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한 생사 속에 살면서 생사를 해탈하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 생각을 잘못 먹어 가지고 육도윤회를 할 수도 있고, 한 생각을 잘 돌이켜서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하면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처음~20분56초)

 

 




(2)------------------

우리는 세계에 지금 60억 인구가 있다고 하지마는 나름대로 다 종교가 있고 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의 주인공인 자기의 부처님을 찾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60억 가운데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여기에 있는 것을 믿고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대단히 희귀하고도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 참선법을 믿지 않고 그럭저럭 살다 보면 금방 10년 20년이 지나고, 언제 숨 한번 따깍 그치면은 내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한 속에서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한 사람은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역대 부처님과 삼세제불(三世諸佛), 역대조사가 사바세계에 나오셔서 이 법을 설해 놓으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났고 또 다행히, 많은 종교가 있지마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을 우리가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다.
기왕 이 법을 듣고 믿을 바에는 올바르게 열심히 하면은 우리도 이 무상한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이 많아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꼭 남자라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야만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면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속이 상하면 물건을 내패다치고 신경질을 내고 그렇게 살다 보면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 생각 한 생각을 번뇌(煩惱)와 망상(妄想)과 희로애락 속에 노예가 되어 가지고 그럭저럭 살다 보면 금방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어서 언제 숨 한번 딸깍 멈추면 금생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상하고 허망한 세계에 우리는 태어났으나 우리는 불법을 만났고 최상승법을 우리는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항상 ‘이뭣고?’를 챙기고 챙기면 거기에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입니다.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이라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꿈속에 한 알갱이 쌀에 탐착하다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금선대에 만겁 동안 먹고도 남을 양식을 잃어버리는구나.

무상찰나(無常刹那)라 실난측(實難測)이여, 시간은 잠시도 머꾸지 않고 똑딱똑딱 시계가 가는 쪽쪽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무상 속에서 한 알갱이 쌀에 탐착(貪着)해.
명예와 지위와 부귀와 권리는 다 인생 살아가는데 다 그런 것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것 때문에 울고 웃고 재판도 하고 그러다가 한 생각이 뚝 그치면 벌써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무상하고 허망한 세상에 우리는 비록 태어났지마는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인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뭣고?’ 열심히 하다 보면 그것이 바로 이 중생의 몸으로써 부처님 되는 길이 거기에 있으니.

염라대왕 앞에 언젠가는 우리는 가게 되는데, “네가 뭣을 하다가 왔느냐?”
“‘이뭣고?’를 하다 왔습니다”

“‘이뭣고?’가 무엇이냐?”
“‘이뭣고?’는 이 육체 속에 영원한 부처님이 살아 계시는데, 그 자성 부처님을 찾는 공부가 바로 ‘이뭣고?’입니다”

“그래서 ‘이뭣고?’를 해서 네가 무엇을 얻었느냐?”
“얻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마는, 생사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고 생사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너는 죽어서 내 앞에 왔지 않느냐?”
“내가 죄를 지었으면은 지옥에 보낼 것이고, 좋은 일을 했으면 천당에 보내주시던지 알아서 하십시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면서 “너는 어디를 가고 싶으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고 싶습니다”

“도솔천 내원궁은 왜 갈려고 그러냐?”
“거기에는 미륵(彌勒) 부처님이라고 하는 위대한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부처님 계신 세계로 가고 싶습니다”

“그래, 너는 지옥은 안 가겠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면서 “여봐라! 이 사람을 도솔천 내원궁으로 안내를 해라”

이것은 우스개 소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송담(松潭)이 여러분께 꼭 해 드리고 싶어서 이 말씀을 해 드린 것입니다.(박수)

왜 이 말씀을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냐 하면은 이것이 바로 불법이요, 최상승법이요,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누가 나를 험담을 하고 욕을 할 때에도 속상할 것이 아니라 ‘이뭣고?’
이렇게 살아가면 이 사바세계는 무상하고 허망하고 나쁜 곳이 아니라 참나를 찾는 좋은 수행 도량인 것입니다. 천당보다도 더 좋은 곳인 것입니다.

천당에는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다 되고 좋을 것 같지마는 거기에 별로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슬플 때 슬프기도 하고, 기쁠 때 기쁘기도 하고, 속상할 때 속을 상해도 그냥 그러고 말면 별로 뜻이 없으나, 그 속에서 ‘이뭣고?’해서 내가 부처님 되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내가 성불하는 수도장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불법을 믿고, 이 용화선원에 와서 생사 없는 활구참선법을 듣게 되었으니 저와 여러분과는 금생에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서, 저 전생부터서 이렇게 최상승법을 믿고 같이 수행해 온 도반(道伴)들이기 때문에 금생에 이렇게 만나서 내가 이렇게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 말씀을 웃고 그냥 지나치지 말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나를 찾는 수행 도량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면 이 사바세계는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살맛이 있는 곳이고, 바로 여기가 내가 성불(成佛)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람은 이 생사 속에, 이 무상한 생사 속에서 사는 존재이기는 하나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인 참선을 믿고 참선을 열심히 하다 보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고.

비록 우리가 밥 먹고 똥 누고 울고 웃고 이렇게 살아가는 하찮은 중생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참나를 찾는 정말 귀한 수행자인 것입니다.
자기를 귀한 수행자로서 살아가느냐, 하찮은 중생으로서 탐진치 삼독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절대로 여러분의 권한인 것이고.

여러분이 활구참선을 믿고 수행하면 소중한 수행자가 되는 거고, 참선법을 믿지 않고 그럭저럭 살다 보면 생사윤회 속에서 울다 웃다가 내생에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염라대왕 앞에 가서 "사바세계에서 무엇을 하고 왔느냐?"
"별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럴 수가 있느냐? 무엇인가 했지 않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재산을 모아나 봤자, 관 속에다가 돈을 가뜩 담아 가지고 가 봤자 염라대왕이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가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뭣고?’를 열심히 해 놓으면 마지막 숨 거둘 때도 ‘이뭣고?’하면서 숨을 거두고, 관 속에 들어가서도 ‘이뭣고?’를 하고. 염라대왕 앞에 가도 “저는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이뭣고?’만 하고 왔습니다”

“‘이뭣고?’를 해서 무엇을 얻었느냐?”
“얻은 것은 없으나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너는 어디를 가고 싶으냐?”
“도솔천 내원궁이 좋다고 하지마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뭣고?’를 하고 싶습니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면서 “그러면 사람 몸으로 가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라” 염라대왕이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내가 이 말씀을 여러분께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이 믿으면 다행이고, 믿지 않으면 어찌해 볼 수가 없으나 내 생각에는 여러분은 반드시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하실 각오를 하신 분은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박수)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은 이 세상에 원망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남을 미워할 사람도 없고,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나를 찾는 내가 성불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이니 이런 좋은 법이 다시 또 어디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시계가 똑딱똑딱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인데 시간이 흘러가면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되고, 가을이 되면 또 겨울이 되고, 겨울이 되면 끝이 아니라 또 새봄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상하다고 하면 무상하나 얼마나 여름만 있고 가을이 없고, 가을만 있고 겨울이 없고, 겨울만 있고 봄이 없다면은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웃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이 사바세계는 그런 것인데 그러한 속에서 최상승법인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하는 사람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사는 그런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슬프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당해도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하면 이 사바세계야말로 정말 살맛 있는 좋은 세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까 손을 들고 전부 다 이 산승이 하는 말을 믿어 주신다고 생각이 됩니다.
사바세계는 정말 영원한 세계가 아니고 무상한 세계지마는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한 사람은 사바세계야말로 정말 살맛 있는 좋은 수도장이요, 모든 사람은 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좋은 생사해탈하는 도반이 되는 것입니다.

말이 한이 없습니다. 더 말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마는 말을 너무하면은 귀가 입맛이 없다고 할 것 같아서 말을 줄이고자 합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말로다 다 할 수가 없고, 내가 말로써 할 수 없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이 주장자(拄杖子)로 하여금 주장자한테 맡기고 내려가고자 합니다.(20분57초~40분3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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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당당대도혁분명~’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당당하다(堂堂-- 집·당당할 당) ; ①(모습이나 태도가)남 앞에서 내세울 만큼 떳떳하다. ②(형세가) 위엄 있고 훌륭하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〇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 사람의 몸으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이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으레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람 몸으로 태어난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으레히 ; 으레(①거의 틀림없이 언제나 ②두말할 것 없이 마땅히)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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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에서 ‘회두(回頭)’ 게송 참고.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도솔천(兜率天)은 욕계(欲界) 육천(六天)의 넷째 하늘로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서 여기에 있으면서 하늘나라 사람들을 제도하며 남섬부주에 하생(下生)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이 보살이 불교의 33천 중 도솔천에 머무는 이유는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도솔천은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 도리천(忉利天) · 야마천(夜摩天)이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들뜬 마음이 많은데 비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五慾樂)에 만족한 마음을 냄으로, 다음에 성불할 보처(補處)보살이 머문다고 한다.
도솔천의 수명은 4천 세라 하고, 도솔천의 하루는 인간의 4백 세라 하였으니, 도솔천의 수명을 인간 수명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5억 7천 6백만 년에 해당하지만(4천 x 3백 6십, 1년 x 4백 = 5억 7천 6백만), 고대의 기수법(記數法)에 따르면 57억 6천만 년이라고 한다.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인연은 ①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②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③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④경전을 독송하는 자. ⑤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⑥팔계(八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⑦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⑧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⑨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등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 오직 한 번만 생사(生死)에 관련되고, 일생을 마치면 다음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보살.
*일생보처(一生補處) : 일생(一生)은 '한 번 난다'는 뜻이니, 한 번 다른 지위에 난 뒤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 보처(補處)는 후보(候補)의 자리[處]라는 뜻.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