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13. 11. 27. 16:08

§ 정진(精進)이란? 정진심(精進心)을 일으킨 것은 벌써 바른 정진이 아니다.

 

**송담스님(No.140) - 1981년 3월 첫째일요법회(용140)

 

약 17분.

 


해제가 지난 음력 대보름에 끝나고, 오늘이 벌써 열흘째 되었습니다.
앞으로 4월15일, 여름결제 때까지는 80일 가량이 남아 있습니다. 그 동안에 춥도 덥지도 않는 이러한 좋은 계절을 이용을 해서 산철 결제를 해 가지고 또 열심히 정진을 할려고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단히 갸륵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정진(精進)이라 하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덜 자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고, 묵언(默言)을 해 가지고 말을 않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다든지, 또는 아침밥을 안 먹는다든지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해 가지고 밥을 적게 먹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는다든지,
요새 무슨 그런 잠 안자는 거, 밥 안먹는 거, 말 안하는 거, 그러한 것을 정진으로 삼는 분은 안 계시겠지만,

좀더 알뜰히 공부하기 위해서,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혹 잠을 1~2시간씩 덜 자 보기도 하고, 말도-입을 열었다 하면 쓸데없는 말이 나오게 되고 시비(是非)에 참견하게 되고 그러니까, 그러한 뜻에서 묵언도 하고 또 가행정진(加行精進)도 하고 그러하신 걸로 생각을 할 때에,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마는,
말을 아니한 것보다는, 필요한 말 한마디 딱 해 버리고 또 화두를 들고 차라리 그것이 낫지, 아주 묵언을 하면 꼭 해야할 말을 아니하니까, 자연히 필답(筆答)으로 말하게 되고, 손짓으로 의사를 소통하게도 되고 하니 더 복잡하게 되고 답답하다 이 말씀이여.

조금이라도 공부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서 잠을 덜 자고 가행정진 하는 것 대단히 좋지만, 가행정진을 한다 해 가지고 잠을 적게 자 놓으면 그 이튿날 오히려 낮 정진할 때에 혼침에 빠지기가 쉬웁다고 볼 때에,
차라리 5시간이나 6시간 푹 자 주고, 그 대신 그 이튿날 성성(惺惺)하게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고도 보는 것입니다.

아침을 굶는다든지 또는 저녁을 굶는다든지 또는 단식을 한다든지, 이래 가지고 ‘정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이러한 생각을 가진 것 대단히 참 일리(一理)가 있지만,
차라리 세 때를 너무 적게 먹지도 않고 너무 과식하지도 않고 잘 저작(咀嚼)을 해서 적당히 먹고서, 원기(元氣)를 차려서 그래 가지고 정진을 알뜰히 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고 효과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진(精進)이라 하는 것은, 바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자기를 깨달은 사람만이 정진은 옳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산대사께서도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미심수도(迷心修道)는 단조무명(但助無明)이다.’ ‘마음을 미(迷)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하는 것은, 다맛 무명(無明)만 더 치성(熾盛)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정진심(精進心)을 일으킨 것은 벌써 바른 정진이 아니다. 정진심-오늘부터서 잠을 2시간씩 덜 자리라, 밥을 한끼씩을 덜 먹고 하리라, 묵언을 하리라, 오늘부터서는 가행정진을 하리라, 좀더 열심히 하리라-이러한 정진할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벌써 정진에서 탈선하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 바로 정진한 것인고?
당체(當體)가 변적(便寂)이다. 당체가 문득 공(空)한 것이다. 당체가 변시(便是)다.

당체(當體)!
눈으로 보는 놈, 귀로 듣는 놈, 코로 맡은 놈, 혀로 맛보는 놈, 손으로 만질 때 춥다 더웁다 부드럽다 깔끄럽다. 그 당체가 문득 고요해야 한다. 당체가 문득 이놈이다.

눈으로 볼 때 ‘이무엇고?’, 귀로 들을 때 ‘이무엇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이무엇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앉았을 때, 섰을 때, 걸어갈 때, 차를 탈 때, 음식을 먹을 때, 일을 할 때, 말을 들을 때, 말을 할 때, 일체처 일체시에 무엇을 하든지 간에, 바로 당체가 변적(便寂)으로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간다면,
잠을 덜 잘라고 할 것도 없고, 잠을 더 잘라고 할 것도 없고, 밥을 더 먹을라 할 것도 없고, 덜 먹을라 할 것도 없고, 말을 하느니 말을 안 하느니, 거기에 무슨 그러한 군더더기 생각을 일으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진하는 사람은 스스로 시비심(是非心)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시비를 일으켜 가지고 그 시비 속에 자기가 말려들어가 가지고, 그래 가지고 마음이 불안하고 짜증이 나고 불평과 불만이 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한테 시비를 걸어와도 내가 거기에 끄달리지 아니해야 수행인이거늘, 자기가 자기 속으로 공연히 시비를 일으켜 가지고, 자기가 그 시비의 물결 속에 휘말려 들어가 가지고,
그 원망을 남에게 갖다가 하고, 그 원인을 남에게 갖다가 전가(轉嫁)를 시키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서야 어찌 최상승 참선객(參禪客)이라 하겠습니까?

어느 선방이 좋다, 어느 사람이 좋다, 어느 사람은 나쁘다, 어떠한 사람하고는 내가 같이 공부를 아니하리라, 어떤 사람하고 같이 하면 좋다, 이러한 생각들이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너무나도 소승적인-최상승 활구참선을 하는 최상승 활구참선객답지 못한-그러한 생각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라도 어떠한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최상승적이어야 하고, 최상승 참선객다웁게 살아가야 하고 공부를 해 가야만 될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명색(名色)이 활구참선을 한다는 사람이, 마음자세가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너무나도 소승적(小乘的)인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아무리 해 봤자 공부에는 조금도 진취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는 (마음)자세부터 바로잡어버려.
그렇다면은 차 가운데도 좋고, 장바닥도 좋고, 산중(山中)도 좋고, 도시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고요한 데만 찾고, 편한 데만 찾고, 일 없는 데만 찾아서 공부하면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지고, 오히려 해태(懈怠)에 빠지고, 조그마한 일에도 시비(是非)가 일어나고 짜증이 나고 이럴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대승적이고 최상승적인 그러한 자세를 가질 때는, 눈으로 무슨 색상이 나타나도 상관이 없고, 귀에 어떠한 온갖 소리, 사람소리, 짐승소리, 어떠한 기계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들린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며,
오히려 그러한 소리가 내 귀에 울림으로써 그것을 계기로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화두를 거각하고 생각을 새롭게 가다듬는다면, 오히려 그러한 색상 그러한 음성이 없는 것보단 더 나을 것입니다.

최상승 참선을 하는 사람은 ‘니가 주인이다 내가 주인이다, 니가 객이고 나는 주인이다’, 그런 주객-주관, 객관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다, 대상이다’, 그러한 것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주객 또는 나다, 대상이다’ 이러한 소견, 이러한 생각이 결국은 나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육도윤회(六途輪廻)로 나를 끌어가고야만 말게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날 때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이뭣고?’, 누가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나는 ‘이뭣고?’, 누가 나를 비평하고 나의 흠처(欠處)를 말을 하고 비방을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속이 상할 것이 아니라 나는 ‘이뭣고?’

이렇게 화두로써 의단(疑團)으로써, 나를 다스리고 모든 것을 다스려 나갈 때 주객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거기에는 주(主)와 객(客)이 없기 때문에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참나’ 찾는 선불장(選佛場)이 되는 것이고,
이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것은 나를 위한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이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법문(法門)일 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비로자나불을 친견하고 눈을 떠도 삼세제불(三世諸佛)을 친견할 때에, 꿈에 부처님만 보고 꿈에 스님만 봐도 업장(業障)이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는데,
현실세계에 있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불보살을 친견하고 불보살의 법문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어디에 육도(六道)가 있으며 어디에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가 있겠습니까?

팔만사천 마군이는 나의 팔만사천 번뇌(煩惱), 나의 일신상(一身上)에서 일어나는 팔만사천 번뇌가 돌아서 나한테로 되돌아올 때에 그것은 마군이로써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념(一念)이 불생(不生)하면 팔만사천 마군이는 자취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이렇게 닦아 가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23분33초~40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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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精進) ; 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불교] 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옳고 그름.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일상생활보다도 좌선정진(坐禪精進)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함.
*필답(筆答) ; 글로 써서 대답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당체(當體) ; 본체(本體). 참 이치.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
*전가(轉嫁 돌릴 전, 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선객(參禪客)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소승적(小乘的) ; 작은 일에 얽매이는. 또는 개인의 이익이나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무사안일(無事安逸) ; ①아무런 일이 없이 편안하고 한가함. ②일을 쉽게 생각하고, 편안하게만 처리하려는 태도.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흠처(欠處 모자랄 흠,머무를 처) ; 잘못되거나 완전하지 못한 점.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참고 -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 ‘일념(一念)이 불생(不生)하면’ ; [참고] ‘경계를 당하여 마음이 일지 않은 것을(見境心不起) 나지 않는다고 이름하고(名不生),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不生名無念), 무념을 해탈이라 하느니라(無念名解脫).(선가귀감 四四, p103에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3. 11. 20. 14:05

§(140)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의 오종선(五種禪).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송담스님(No.140) - 1981년 3월 첫째일요법회(49분) (용140)

 

약 13분.


참선이라 하는 것은, 과거에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는 이 선(禪)에 다섯 가지가 있다.
외도선(外道禪)이 있고, 범부선(凡夫禪)이 있고, 소승선(小乘禪)이 있고, 대승선(大乘禪)이 있고, 그리고 최상승선(最上乘禪)이 있다.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를 해서 이 선(禪)을 설명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 항시 선양(宣揚)하고 있는 선(禪)은 그 다섯 가지 선 가운데 최상승선(最上乘禪)을 선양을 하고 있습니다.

<외도선(外道禪)>
떠억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참선을 하면 배꼽 밑에 환히 불이 켜져 가지고, 불 켜진 그 배꼽 밑에를 관(觀)을 해 나가면 천상 세계도 환히 보고 싶으면 볼 수가 있고, 저 지옥 세계도 보고 싶으면 환히 그 배꼽 밑에서 다 지옥 세계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내일 누가 오겠다. 오늘은 누가 오겠다. 언제 비가 오겠다.’ 이런 것도 환히 알 수가 있다. 그래 가지고 계속해서 이 배꼽 밑에 불 켜진 것을 관(觀)해 나가는, 그것도 하나의 외도선의 일종이고,

<범부선(凡夫禪)>
이 참선을 하면 혈압이 내려간다. 참선을 하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또는 정신통일이 된다. 이 참선을 하면 불같이 일어난 성격도 다 가라앉은다. 참선의 목적을 이러한 데에다가 두고 참선을 하면 이것은 범부선(凡夫禪)이 될 것입니다.

<소승선(小乘禪)>
우리의 육도윤회(六途輪廻)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짐으로써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국은 육도윤회를 한다. 그러니 이 생각을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 그래 가지고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들어가서 완전히 공(空)한 상태에 내 마음을 유지해 나가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없애고, 생각을 한 군데에 머물르려고 노력을 해 나간다면 이러한 참선은 소승선(小乘禪)이 될 것입니다.

<대승선(大乘禪)>
‘한 생각’이라 하는 것은 생사(生死)의 근원인데, ‘한 생각’이라는 것은 본래 일어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 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생(生)이라 하는 것이, 원래 남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멸(滅)할 것도 없다. 날 것이 없는데 무엇을 없앨 것이 있느냐.

일념(一念)은 무생(無生)이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당체(當體)가 몰록 고요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유루법이요 유위법인데,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그 원인으로 해서 무엇이 생겨났는데, 원인으로 인해서 어떠한 것이 생겨나고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없어지고 만다. 그런 원인이 있어서 구성이 된 것은 그것은 유위법이다. 그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없어질 때가 있기 때문에 허망한 것이요, 믿을 것이 없는 것이다. 무상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것이 소승적인 견해지만,

모든 것은 원래 생겨난 것이 없는 것이다. 생겨난 것이 없는데 어찌 없어질 것이 있는가.
이미 생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없이 할려고 하면 그것이 소승적인 견해가 되겠지만, ‘원래 생사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오직 ‘참나’의 표현이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전신체(全身體)다. 그러니 무엇을 없애고 적멸(寂滅)을 따로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것이 비로자나불 체다. 이러한 생각은 대승적인 견해로써,

<최상승선(最上乘禪)>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그러한 대승적인 견해에도 집착함이 없이,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화두를 간택을 해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맛 그 대신(大信) 과 대분심(大憤心)으로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을 관조해 나갈 때, 버려야 할 생사(生死)도 없고 구해야 할 열반(涅槃)도 없는 것입니다.

눈으로 어떠한 색상을 보거나, 귀로 어떠한 소리를 듣거나, 코로 어떠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어떠한 감촉을 받거나, 생각으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화두에 대한 의심만을 거각해 나갈 때, 앞에 말한 외도선•범부선•소승선•대승선 일체가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선(禪)에도 집착함이 없으면서, 일체가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는 참선, 이것이 바로 최상승선인 것입니다.

이 최상승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면 물론 우리의 번뇌와 망상이 가라앉게 되기도 하고, 혈액순환도 잘될 수 있고, 마음도 편안해질 수도 있고, 정신통일도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진심(瞋心)을 잘 내는 사람, 항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 안정성이 없고 경솔한 사람, 항시 밖으로만 치닫는 사람, 번뇌와 망상 속에 사로잡혀서 잠시도 마음이 편안치 못한 사람,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

어떠한, 그러한 인간으로써 버려야 할 또는 고쳐야 할, 개선해야 할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대인관계건, 활구참선을 여실히 여법(如法)하게 해 나감으로 해서, 다 그런 것들이 개선될 수 있고 보완될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정신적인 혁명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할 때, 최상승 참선을 하는 사람의 목표로서는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표는 분명히 바르게 세워놓고 올바르게 수행을 하면, 그러한 부산물로써 아까 말한 여러 가지 효과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바른 목표를 설정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르게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바른 스승을 만나서 철저하게 믿고 그 지도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이 바른 참선처럼 어려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냐?’ ‘달마 조사가 인도에서 이 동토(東土)로 오신 의지(意旨)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대해서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믿고 이렇게만 해 나간다면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복잡할 것인가.

그런데 1년을 하고, 이태를 하고, 3년씩 내지 10년씩 참선을 하면서도 이렇게 간단한 이렇게 쉬운 것을 잘못 행해 가고 있는 사람을 왕왕히 볼 수가 있습니다.

호흡이 잘 안된다는 둥, 의심이 잘 안된다는 둥, 어떻게 의심을 들며 어떻게 화두를 하며, 화두를 들면 호흡과 하나가 안된다는 둥, 가슴이 아프다는 둥, 뒤통수로 무엇이 근질근질 올라간다는 둥, 옆구리가 쑤신다는 둥,

천번 만번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도 이 화두가 잘 안 잡혀서 고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갈팡질팡, 마냥 참선을 하면서도 스스로 그 ‘참선(參禪)에 대한 신념(信念)’이 딱 서지를 못하고 초조해 하는 그러한 분들을 왕왕히 볼 때에,

‘이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이렇게 또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10분8초~22분4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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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종밀(圭峰宗密, 780 - 841)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조.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무념무상(無念無想) ; 선정 수행에서 그릇된 분별이나 집착을 떠나 마음이 빈 상태.
*번뇌(煩惱) ;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런 생각.
*당체(當體) ; 본체(本體). 참 이치.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
*몰록 ; 단박(에). 그 자리에서 바로 곧.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열반(涅槃) ;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왕왕히 ; 시간적으로 사이를 두고 가끔.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3. 11. 19. 21:13

§(140) (게송)야래풍우객문선~ / 불법(佛法) 나의 문제 / 생활속에서  생각 단속이 득력 /  생각 일어날  생각을 돌이켜서 본참화두를 들어야.

 

**송담스님(No.140) - 1981년 3월 첫째일요법회(49분) (용140)

 

(1) 약 10분.

(2) 약 9분.

 

(1)------------------


야래풍우(夜來風雨)로 객문선(客聞先)한데  격령사가전묘연(隔嶺思家轉杳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십년세사경백변(十年世事驚百變)한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늘은 3월 1일 삼일절(三一節) 날입니다.
기미년(己未年) 3월 1일에 3•1 만세(三一萬歲) 사건이 일어난,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지 못할 그러한 뜻깊은 날입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외국에게 빼앗겨서 국토도 잃고, 목숨도 살아있는 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이 짓밟히고 있을 때, 33인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의 겨레가 일어섰던 그날입니다.

이조 5백년 동안 당파(黨派) 싸움으로, 서로 자기의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파당을 지어 가지고 상대 당을 갖다가 쫓아내고 죽이고 모략중상(謀略中傷)해 가지고, 피차 그러는 동안에 나라는 망해 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그 치욕적인 그런 임진왜란을 당해 가지고 삼천리강토(三千里疆土)가 피바다가 되었고, 그리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당쟁(黨爭)은 치열해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경술년 한일 합방(韓日合邦)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보호해 준다는 명목을 뒤집어 씌워 가지고, 결국은 우리나라를 삼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수모를 당하게 된 것도 결국은 당파 싸움의 결과로써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들이 통치자를 중심으로 해서 온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가지고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을 위해서 합심이 되지 않는 한에는 그 나라는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나라 백성이 자기의 나라를 모든 것을 우선해서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민족을 항시 염두에 두고 서로 힘을 합해서 지켜나가지 않는 한은, 그 나라와 민족은 처음은 차츰 혼란해가다가 결국은 스스로 망하거나 외부에서 침략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한 회사나 단체도 역시 마찬가지고 모든 단체, 모든 것의 근본은 ‘나’ - 한 사람인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마을이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국가가 되고 그러기 때문에, 차츰차츰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결국은 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나의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내가 나의 인격을, 내가 나의 정신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내 몸도 역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 가장(家長)을 비롯한 온 가족이 질서가 있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웃어른을 존경하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각기 자기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그 집을 지켜나갈 때에 그 가정은 행복하고 편안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 일신상(一身上)의 문제도 내가 내 몸, 내 마음을 가다듬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 몸뚱이 건강도 나빠질 것이고, 우리의 정신은 황폐해서 결국은 폐인(廢人)이 되고 말 것이고, 나아가서는 이 세상에 태어날 필요조차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참선(參禪), 금방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수행인의 마음가짐, 자세 그리고 참선해 나가는데 구체적인 법문이 계셨지만,
내가 나를 다스려 나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절에 몇십 년을 다니고, 아무리 출가해서 선방을 한 철도 빠짐없이 선방으로 선방으로 다니면서 수좌(首座)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마냥 아무런 진취가 없을 것입니다.(처음~10분8초)

 

 

 

 


(2)------------------

 

죽비(竹篦)를 치고 잠시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십시오.(10분간 정진)

10분간 입선을 했습니다.

처음 오늘 법회에 나오신 분은, 대관절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한동안 아무도 아무 말 없이 앉았는가? 앉아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어떻게 앉아야 하며, 모다 그러한 것을 전혀 아시지 못하고 궁금한 가운데에 조용히 앉아서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다음 법회에도 빠지지 말고 계속해서 나오시면 차츰차츰 이 참선(參禪)은 목적이 무엇이며, 그 자세는 어떻게 갖고, 또 호흡은 어떻게 하고,
또 아까부터 화두(話頭)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화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화두를 참구(參究)를 하되 어떻게 하며, 모다 그러한 것에 대해서 차츰차츰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법회가 끝나서 일어서셔서 신발을 신을 때,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갈 때, 또 역(驛)으로 가시는 그 걸음 걸음, 또 역에 가서 전철을 타실 때, 타고 가시면서, 다 그 찰나 찰나간에 자기의 한 생각을 방일(放逸)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단속(團束)을 해 가지고,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무단히 방치해 두지 않고 그 놈을 단속할 줄 아는 거 이것이 바로 득력(得力)이라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앉아서나 서서나 그놈이 단속이 되고 공부가 되어 갈 때에 그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이지, 꼭 밤잠만 안 자고 며칠씩 버티고 앉아야만 된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넝쿨 사이로 달이 비치는 그러한 곳에 들어가서,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 샘이 없는(無漏) 영원한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하노라.

‘솔바람 불고 칡넝쿨 우거진, 그러한 고요하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이 조사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영원히 하고 싶다.’

문맥상으로 형식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할 법 하지만, 활구참선은 꼭 저 심산유곡(深山幽谷)-솔바람이 불고 칡넝쿨 사이로 휘영청 달이 밝은 그러한 속에만 들어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벌써 최상승적인 생각이 아닌 것입니다.

시중(市中)이건, 들녘이건, 속세(俗世)건, 또는 사찰이건, 시냇가건, 또는 산봉우리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 외경(外境)에 내가 집착하지 않고, 안으로 쓸데없는 번뇌•망상심에 빠지지도 않고,

다못 한 생각 일어날 때 그 생각을 돌이켜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무조건 하고 그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할 때 그 사람에게는 (그곳이) 바로 솔바람이 부는 곳이요, 칡넝쿨 우거진 사이로 달빛이 비치는 심산유곡과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대자연 속에서 언제나 쉴 사이 없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설법(說法)이 계속되고 있는 곳입니다.

아무리 깊은 산중에 들어가도 환경에 내가 집착을 하고 잠시도 쉴 사이 없이 번뇌와 망상이 퍼 일어난다면 어찌 그곳을 심산유곡이라 하겠습니까?

부처님 말씀과 조사의 어귀(語句)는 중생심(衆生心)으로 겉으로 읽어 가지고서는 한 글귀도 바로 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40분11초~48분45초)(끝)

 

 

 

 


------------------(1)

 

*삼일절(三一節) ;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문을 읽어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우리나라의 민족 독립운동, 삼일 운동(3•1 運動)을 기념하는 국경일.
*당파(黨派) ; 조선 시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붕당(朋黨) 내에서 다시 나뉜 파벌. *붕당(朋黨)=黨
*모략중상(謀略中傷) ; 속임수로 남을 해롭게 하는 모략과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중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삼천리강토(三千里疆土) ; 남북의 길이가 삼천리라 하여 우리나라의 땅을 이르는 말.
*한일 합방(韓日合邦) ; [역사] 대한 제국 융희 4년(경술년, 1910)에 일제가 강제적으로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은 일.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에 독립을 되찾았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게송) ‘야래풍우객문선(夜來風雨客聞先)~’ ; [매천집 제3권] (매천 황현의 시문집) ‘復至文星齋’ 참고.
[참고] [매천집(梅泉集)](제3권)-시(詩):신축고(辛丑稿)
〇 다시 문성재에 이르러〔復至文星齋〕 -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역)
밤에 부는 비바람 소리 나그네가 먼저 듣고 / 夜來風雨客聞先
고개 너머 고향 집이 더욱 아득히 생각나네 / 隔嶺思家轉杳然
첫 찻잎 딸 시기는 이미 제철 지나갔고 / 已過頭番摘茶候
한 뙈기 인삼 밭은 장차 묵밭이 되어 가리 / 將蕪一畝種蔘田
늙은이 회포를 익숙하게 동갑 벗과 주고받고 / 老懷慣與同庚話
시 짓는 비결은 부지런히 후배에게 전해 주네 / 詩訣勤從後輩傳
세상일은 십 년 동안 백번이나 변했지만 / 世事十年驚百變
봄 산은 예전처럼 초당 앞에 우뚝하네 / 春山依舊草堂前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 전남 광양 출생. 한말의 시인, 문장가, 우국지사.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절명시(絕命詩) 4편을 남기고 9월10일 음독 자결하였다.

 

 

 

 

 

------------------(2)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아무 ; 어떤 사람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가리키는 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심산유곡(深山幽谷) ; 깊은 산속의 조용하고 외진 골짜기.
*휘영청 ; 달빛 따위가 몹시 환하게 밝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
*시중(市中) ; 사람들이 많이 오가며 일상적으로 생활하거나 활동하는 곳.
*속세(俗世) ; 불가(佛家)가 아닌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외경(外境) ; 자기 몸 밖의 모든 바깥 세계. 객관적 대상. 자연계. 외부환경(外界).
*거두절미(去頭截尾)하다 ; 어떤 일의 요점만 간단히 말하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