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의 오종선(五種禪).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송담스님(No.140) - 1981년 3월 첫째일요법회(49분) (용140)
약 13분.
참선이라 하는 것은, 과거에 규봉종밀(圭峰宗密) 선사는 이 선(禪)에 다섯 가지가 있다. 외도선(外道禪)이 있고, 범부선(凡夫禪)이 있고, 소승선(小乘禪)이 있고, 대승선(大乘禪)이 있고, 그리고 최상승선(最上乘禪)이 있다.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를 해서 이 선(禪)을 설명을 하셨습니다.
지금 이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 항시 선양(宣揚)하고 있는 선(禪)은 그 다섯 가지 선 가운데 최상승선(最上乘禪)을 선양을 하고 있습니다.
<외도선(外道禪)> 떠억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참선을 하면 배꼽 밑에 환히 불이 켜져 가지고, 불 켜진 그 배꼽 밑에를 관(觀)을 해 나가면 천상 세계도 환히 보고 싶으면 볼 수가 있고, 저 지옥 세계도 보고 싶으면 환히 그 배꼽 밑에서 다 지옥 세계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내일 누가 오겠다. 오늘은 누가 오겠다. 언제 비가 오겠다.’ 이런 것도 환히 알 수가 있다. 그래 가지고 계속해서 이 배꼽 밑에 불 켜진 것을 관(觀)해 나가는, 그것도 하나의 외도선의 일종이고,
<범부선(凡夫禪)> 이 참선을 하면 혈압이 내려간다. 참선을 하면 마음이 안정이 된다. 또는 정신통일이 된다. 이 참선을 하면 불같이 일어난 성격도 다 가라앉은다. 참선의 목적을 이러한 데에다가 두고 참선을 하면 이것은 범부선(凡夫禪)이 될 것입니다.
<소승선(小乘禪)> 우리의 육도윤회(六途輪廻)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짐으로써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국은 육도윤회를 한다. 그러니 이 생각을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 그래 가지고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들어가서 완전히 공(空)한 상태에 내 마음을 유지해 나가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없애고, 생각을 한 군데에 머물르려고 노력을 해 나간다면 이러한 참선은 소승선(小乘禪)이 될 것입니다.
<대승선(大乘禪)> ‘한 생각’이라 하는 것은 생사(生死)의 근원인데, ‘한 생각’이라는 것은 본래 일어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 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생(生)이라 하는 것이, 원래 남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멸(滅)할 것도 없다. 날 것이 없는데 무엇을 없앨 것이 있느냐.
일념(一念)은 무생(無生)이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당체(當體)가 몰록 고요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유루법이요 유위법인데,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그 원인으로 해서 무엇이 생겨났는데, 원인으로 인해서 어떠한 것이 생겨나고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없어지고 만다. 그런 원인이 있어서 구성이 된 것은 그것은 유위법이다. 그 유위법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없어질 때가 있기 때문에 허망한 것이요, 믿을 것이 없는 것이다. 무상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것이 소승적인 견해지만,
모든 것은 원래 생겨난 것이 없는 것이다. 생겨난 것이 없는데 어찌 없어질 것이 있는가. 이미 생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없이 할려고 하면 그것이 소승적인 견해가 되겠지만,‘원래 생사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믿고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오직 ‘참나’의 표현이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전신체(全身體)다. 그러니 무엇을 없애고 적멸(寂滅)을 따로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것이 비로자나불 체다. 이러한 생각은 대승적인 견해로써,
<최상승선(最上乘禪)>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그러한 대승적인 견해에도 집착함이 없이,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화두를 간택을 해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맛 그 대신(大信) 과 대분심(大憤心)으로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을 관조해 나갈 때, 버려야 할 생사(生死)도 없고 구해야 할 열반(涅槃)도 없는 것입니다.
눈으로 어떠한 색상을 보거나, 귀로 어떠한 소리를 듣거나, 코로 어떠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어떠한 감촉을 받거나, 생각으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화두에 대한 의심만을 거각해 나갈 때, 앞에 말한 외도선•범부선•소승선•대승선 일체가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선(禪)에도 집착함이 없으면서, 일체가 다 그 속에 갖추어져 있는 참선, 이것이 바로 최상승선인 것입니다.
이 최상승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면 물론 우리의 번뇌와 망상이 가라앉게 되기도 하고, 혈액순환도 잘될 수 있고, 마음도 편안해질 수도 있고, 정신통일도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진심(瞋心)을 잘 내는 사람, 항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 안정성이 없고 경솔한 사람, 항시 밖으로만 치닫는 사람, 번뇌와 망상 속에 사로잡혀서 잠시도 마음이 편안치 못한 사람,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
어떠한, 그러한 인간으로써 버려야 할 또는 고쳐야 할, 개선해야 할 어떠한 것이라도, 그것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대인관계건, 활구참선을 여실히 여법(如法)하게 해 나감으로 해서, 다 그런 것들이 개선될 수 있고 보완될 수가 있습니다.나아가서는 정신적인 혁명도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할 때, 최상승 참선을 하는 사람의 목표로서는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표는 분명히 바르게 세워놓고 올바르게 수행을 하면, 그러한 부산물로써 아까 말한 여러 가지 효과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바른 목표를 설정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르게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바른 스승을 만나서 철저하게 믿고 그 지도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이 바른 참선처럼 어려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냐?’ ‘달마 조사가 인도에서 이 동토(東土)로 오신 의지(意旨)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대해서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다못 이렇게 믿고 이렇게만 해 나간다면 무엇이 어렵고 무엇이 복잡할 것인가.
그런데 1년을 하고, 이태를 하고, 3년씩 내지 10년씩 참선을 하면서도 이렇게 간단한 이렇게 쉬운 것을 잘못 행해 가고 있는 사람을 왕왕히 볼 수가 있습니다.
호흡이 잘 안된다는 둥, 의심이 잘 안된다는 둥, 어떻게 의심을 들며 어떻게 화두를 하며, 화두를 들면 호흡과 하나가 안된다는 둥, 가슴이 아프다는 둥, 뒤통수로 무엇이 근질근질 올라간다는 둥, 옆구리가 쑤신다는 둥,
천번 만번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도 이 화두가 잘 안 잡혀서 고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갈팡질팡, 마냥 참선을 하면서도 스스로 그 ‘참선(參禪)에 대한 신념(信念)’이 딱 서지를 못하고 초조해 하는 그러한 분들을 왕왕히 볼 때에,
‘이 최상승 활구참선은 너무 간단하고 쉬웁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겠구나.’ 이렇게 또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10분8초~22분4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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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종밀(圭峰宗密, 780 - 841)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조.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무념무상(無念無想) ; 선정 수행에서 그릇된 분별이나 집착을 떠나 마음이 빈 상태. *번뇌(煩惱) ;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런 생각. *당체(當體) ; 본체(本體). 참 이치. 모든 법(法)의 실상(實相). *몰록 ; 단박(에). 그 자리에서 바로 곧.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열반(涅槃) ; 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오늘은 3월 1일 삼일절(三一節) 날입니다. 기미년(己未年) 3월 1일에 3•1 만세(三一萬歲) 사건이 일어난,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지 못할 그러한 뜻깊은 날입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외국에게 빼앗겨서 국토도 잃고, 목숨도 살아있는 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이 짓밟히고 있을 때, 33인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의 겨레가 일어섰던 그날입니다.
이조 5백년 동안 당파(黨派) 싸움으로, 서로 자기의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파당을 지어 가지고 상대 당을 갖다가 쫓아내고 죽이고 모략중상(謀略中傷)해 가지고, 피차 그러는 동안에 나라는 망해 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그 치욕적인 그런 임진왜란을 당해 가지고 삼천리강토(三千里疆土)가 피바다가 되었고, 그리고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당쟁(黨爭)은 치열해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경술년 한일 합방(韓日合邦)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보호해 준다는 명목을 뒤집어 씌워 가지고, 결국은 우리나라를 삼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수모를 당하게 된 것도 결국은 당파 싸움의 결과로써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들이 통치자를 중심으로 해서 온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가지고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을 위해서 합심이 되지 않는 한에는 그 나라는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나라 백성이 자기의 나라를 모든 것을 우선해서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민족을 항시 염두에 두고 서로 힘을 합해서 지켜나가지 않는 한은, 그 나라와 민족은 처음은 차츰 혼란해가다가 결국은 스스로 망하거나 외부에서 침략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한 회사나 단체도 역시 마찬가지고 모든 단체, 모든 것의 근본은 ‘나’ - 한 사람인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마을이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국가가 되고 그러기 때문에, 차츰차츰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결국은 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나의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내가 나의 인격을, 내가 나의 정신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내 몸도 역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 가장(家長)을 비롯한 온 가족이 질서가 있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은 웃어른을 존경하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각기 자기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그 집을 지켜나갈 때에 그 가정은 행복하고 편안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 일신상(一身上)의 문제도 내가 내 몸, 내 마음을 가다듬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 몸뚱이 건강도 나빠질 것이고, 우리의 정신은 황폐해서 결국은 폐인(廢人)이 되고 말 것이고, 나아가서는 이 세상에 태어날 필요조차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참선(參禪), 금방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수행인의 마음가짐, 자세 그리고 참선해 나가는데 구체적인 법문이 계셨지만, 내가 나를 다스려 나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절에 몇십 년을 다니고, 아무리 출가해서 선방을 한 철도 빠짐없이 선방으로 선방으로 다니면서 수좌(首座)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마냥 아무런 진취가 없을 것입니다.(처음~10분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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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竹篦)를 치고 잠시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편안하게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십시오.(10분간 정진)
10분간 입선을 했습니다.
처음 오늘 법회에 나오신 분은, 대관절 가만히 앉아서 무엇을 생각하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한동안 아무도 아무 말 없이 앉았는가? 앉아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며, 어떻게 앉아야 하며, 모다 그러한 것을 전혀 아시지 못하고 궁금한 가운데에 조용히 앉아서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다음 법회에도 빠지지 말고 계속해서 나오시면 차츰차츰 이 참선(參禪)은 목적이 무엇이며, 그 자세는 어떻게 갖고, 또 호흡은 어떻게 하고, 또 아까부터 화두(話頭)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화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화두를 참구(參究)를 하되 어떻게 하며, 모다 그러한 것에 대해서 차츰차츰 구체적으로 이해를 하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 법회가 끝나서 일어서셔서 신발을 신을 때,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갈 때, 또 역(驛)으로 가시는 그 걸음 걸음, 또 역에 가서 전철을 타실 때, 타고 가시면서, 다 그 찰나 찰나간에 자기의 한 생각을 방일(放逸)하지 말고 그 일어나는 그 생각을 단속(團束)을 해 가지고,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그 한 생각 한 생각을 무단히 방치해 두지 않고 그 놈을 단속할 줄 아는 거 이것이 바로 득력(得力)이라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앉아서나 서서나 그놈이 단속이 되고 공부가 되어 갈 때에 그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이지, 꼭 밤잠만 안 자고 며칠씩 버티고 앉아야만 된다고 하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넝쿨 사이로 달이 비치는 그러한 곳에 들어가서,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길이 샘이 없는(無漏) 영원한 조사선(祖師禪)을 관(觀)하고자 하노라.
‘솔바람 불고 칡넝쿨 우거진, 그러한 고요하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이 조사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영원히 하고 싶다.’
문맥상으로 형식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석할 법 하지만, 활구참선은 꼭 저 심산유곡(深山幽谷)-솔바람이 불고 칡넝쿨 사이로 휘영청 달이 밝은 그러한 속에만 들어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벌써 최상승적인 생각이 아닌 것입니다.
시중(市中)이건, 들녘이건, 속세(俗世)건, 또는 사찰이건, 시냇가건, 또는 산봉우리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 외경(外境)에 내가 집착하지 않고, 안으로 쓸데없는 번뇌•망상심에 빠지지도 않고,
다못 한 생각 일어날 때 그 생각을 돌이켜서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무조건 하고 그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할 때 그 사람에게는 (그곳이) 바로 솔바람이 부는 곳이요, 칡넝쿨 우거진 사이로 달빛이 비치는 심산유곡과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대자연 속에서 언제나 쉴 사이 없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설법(說法)이 계속되고 있는 곳입니다.
아무리 깊은 산중에 들어가도 환경에 내가 집착을 하고 잠시도 쉴 사이 없이 번뇌와 망상이 퍼 일어난다면 어찌 그곳을 심산유곡이라 하겠습니까?
부처님 말씀과 조사의 어귀(語句)는 중생심(衆生心)으로 겉으로 읽어 가지고서는 한 글귀도 바로 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40분11초~48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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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三一節) ;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문을 읽어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우리나라의 민족 독립운동, 삼일 운동(3•1 運動)을 기념하는 국경일. *당파(黨派) ; 조선 시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붕당(朋黨) 내에서 다시 나뉜 파벌. *붕당(朋黨)=黨 *모략중상(謀略中傷) ; 속임수로 남을 해롭게 하는 모략과 근거 없는 말로 남을 헐뜯어 명예나 지위를 손상시키는 중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삼천리강토(三千里疆土) ; 남북의 길이가 삼천리라 하여 우리나라의 땅을 이르는 말. *한일 합방(韓日合邦) ; [역사] 대한 제국 융희 4년(경술년, 1910)에 일제가 강제적으로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삼은 일.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에 독립을 되찾았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게송)‘야래풍우객문선(夜來風雨客聞先)~’ ; [매천집 제3권] (매천 황현의 시문집) ‘復至文星齋’ 참고. [참고] [매천집(梅泉集)](제3권)-시(詩):신축고(辛丑稿) 〇 다시 문성재에 이르러〔復至文星齋〕 -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역) 밤에 부는 비바람 소리 나그네가 먼저 듣고 / 夜來風雨客聞先 고개 너머 고향 집이 더욱 아득히 생각나네 / 隔嶺思家轉杳然 첫 찻잎 딸 시기는 이미 제철 지나갔고 / 已過頭番摘茶候 한 뙈기 인삼 밭은 장차 묵밭이 되어 가리 / 將蕪一畝種蔘田 늙은이 회포를 익숙하게 동갑 벗과 주고받고 / 老懷慣與同庚話 시 짓는 비결은 부지런히 후배에게 전해 주네 / 詩訣勤從後輩傳 세상일은 십 년 동안 백번이나 변했지만 / 世事十年驚百變 봄 산은 예전처럼 초당 앞에 우뚝하네 / 春山依舊草堂前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 전남 광양 출생. 한말의 시인, 문장가, 우국지사.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절명시(絕命詩) 4편을 남기고 9월10일 음독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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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아무 ; 어떤 사람을 특별히 정하지 않고 가리키는 말.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심산유곡(深山幽谷) ; 깊은 산속의 조용하고 외진 골짜기. *휘영청 ; 달빛 따위가 몹시 환하게 밝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 *시중(市中) ; 사람들이 많이 오가며 일상적으로 생활하거나 활동하는 곳. *속세(俗世) ; 불가(佛家)가 아닌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외경(外境) ; 자기 몸 밖의 모든 바깥 세계. 객관적 대상. 자연계. 외부환경(外界). *거두절미(去頭截尾)하다 ; 어떤 일의 요점만 간단히 말하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중생심(衆生心) ; ①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②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진여심(眞如心). ③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세상이 이렇게 말세(末世)가 되어 가지고 온통 오욕락(五欲樂)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오욕락은 재산 - 요새 같으면은 국가적으로는 경제라고 하는데, 물론 나라가 부흥하고 백성이 잘 살라면은 경제가 부흥을 해야 하지요.
그러나 경제가 아무리 GNP가 만 불, 백만 불, 천만 불 올라간다 허드라도 인간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에 불이 타는 한, 아무리 경제가 부흥한다 해도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말세에 정치니, 경제니, 교육이니, 일등국이니, 후진국이니 해 봤자 불법(佛法)을, 참다운 불법을 옳게 믿고 실천하지 않는 한은, 이 세상은 점점 말세적인 증상을 노출해 가지고 서로 죽이고 서로 침범하고 이웃나라끼리도 무력으로 싸우다, 사상으로 싸우다가, 경제적으로 싸우다가, 급기야는 종교로 싸우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서로 죽이고 서로 죽음을 당하고 그래가지고 세상이 결국은 지옥으로 변해 가고 있다 그말이여.
나라와 나라 뿐만이 아니라 기업체와 기업체가 싸우고, 개인과 개인이 싸우고, 정치가는 당과 당이 싸우고, 이렇게 되어 가고 있다 그말이야. 이러한 싸움이 GNP가 올라간다고 그 싸움이 없어지겠습니까? 올라 갈수록 싸움은 더욱 악랄해지고 피비린내 나는 지옥(地獄)세계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런 불법(佛法)을 만났는가?세계 60억 인구 가운데에 어떻게 해서 우리가 불법(佛法)을 만나서 생사없는 도리(道理)를 위해서, 도를 닦을 수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기왕 이렇게 불법을 믿고 결제에 방부(房付)를 드리고 참선을 할 바에는 올바르게 해야겠다 이거거든.
수참활구(須參活句)언정 막참사구(莫參死句)하라.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할지언정 사구참선(死句參禪) 하지 말아라.
그러면 활구참선은 무엇이냐? 활구참선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불조의 스승이 되는 것이여. 불조(佛祖),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되는 거여. 사구참선을 해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얻은 바가 있다고 해 봤자, 자기 스스로도 구제를 못하는 것이다. 조사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을 허셔.
그러면 활구(活句)는 무엇이냐 하면은 경절문(徑截門) 활구여.마음 길이 끊어지고 뜻 길과 말 길이 끊어져. 그리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없어.
그러면 사구(死句)는 무엇이냐 하면, 이치 길이 있고 말 길이 있어.이렇게 따져 들어가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어. 그리고 듣고, 알고, 생각할 것이 있다 그말이야.
화엄경이나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이런 경전들이 다 일승 원교니, 대승 종교니 해 가지고 경전 중에서는 참 훌륭한 경전이고 그렇지만, 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인 조사선에서는 그런 경전에 있는 말씀도 의지해서는 안 돼. 따지면 벌써 그것이 사구(死句)가 되어.
이런 말은 불교학자나 교가에서 들으면 불법을 비방한다고 그렇게 말을 헐는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경전을 비방한 것이 아니여. 이 활구선(活句禪)은 사교입선(捨敎入禪)이거든. 그런 경을 다 보고 알더라도 그 경을 다 버리고서 일체 이론을 떠나서, 바로 이 화두를 참구해 가지고 확철대오하는 이 조사선(祖師禪)에 있어서는 경전에 대해서 놓아라고 헐 수밖에는 없는 거여.그렇다고 해서 경 자체를 비방하는 것은 아니야. 여러분이 그 분간을 잘 아셔야 돼.
참선을 허시기 전에는 참선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금강경도 공부를 해야 하고 반야심경도 공부를 해야하고 법화경도 독송을 허고 화엄경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 해서 숙세에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인연이 있어서 참선법을 믿고 알게된 때부터서는 경을 탁 놔야 하는 거야. 놓고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턱 타 가지고 - 자기가 믿을 수 있는,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타 가지고 그때부터서는 경에 있는 말씀도 탁 놔 버리고, 오직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영한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알 수 없는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참구(參究)해야 한다 그말이야.
‘이래서 무(無)라고 했는가? 저래서 무(無)라고 했는가?’. 그렇게 따지는 것이 아니야. 또 정전백수자는 ‘뜰 앞에 잣낭구?’ ‘뜰 앞에 잣낭구가 무엇인가?’ 그렇게 뜰 앞에 잣나무를 쫓아가서 그 놈을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뜰 앞에 잣낭구라 했는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거야.
어느 화두가 좋고 어느 화두가 나쁜 것이 아니고, 일단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하나 탔으면 아무리 공부가 안 되더라도, 그 한 화두를 가지고 한결같이 해 나가야 돼.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의심이 안 난다고 해서 또 다른 스님한테 가서 또 화두를 타 가지고 해 보고, 그 놈이 안 되면 또 저 다른 스님한테 가서 해 보고, 그리하다 보면 맨 처음 탄 화두가 좀 의심이 난 것 같으면 그놈 좀 해 봤다, 이놈 좀 해 봤다 이래 가지고서는 확철대오를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우물을 파되 열 자를 파서 안 나오면 오십 자를 파고, 오십 자를 파서 안 나오면 백 자를 파고, 백 자를 파서 안 되면은 백 미터를 파고, 이렇게 해서 목숨을 바쳐서 한 우물을 파야 참으로 가물어도 줄지 않고 장마에도 불지 않는 좋은 물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조금 파 가지고 물이 나왔다면 그것은 의심할 것 없이 건수(乾水)로써, 장마철에는 풍풍풍풍풍 넘쳐흐르고 가뭄이 들면은 물이 차츰 줄어서 결국은 물이 밭어지게 될 것이여.
조금 이리저리 해 가지고 뭐 소견이 났다고 해서 그런 것을 견성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불조의 지경(至境)에 이르기 전에는, 뭐 조금 한 소견났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도 깨달랐다고 착각을 하고, 그래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을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뭐 한 소식했다고 남한테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불조의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그까짓 무슨 소견이 난 걸 그것에 만족을 해?
스스로 그것이 참 깨달음이 아닌 줄 (알고) 스스로 그것을 탁 부인해 버리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의 마음으로써 구경각(究竟覺)을 얻을 때까지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자기가 불조의 지경에 이르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기 전에 스스로 자기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말이야.(17분6초~28분37초)
*말세(末世 끝 말, 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지옥(地獄 땅 지/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리(道理) ; 이치.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방부(房付 방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 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 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불교의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건수(乾水) 평상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다가, 장마 때 땅속으로 스몄던 빗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샘물. *밭다 ; (무엇이)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지경(至境 이를 지/지경 경) ; 대상에 도달하는 것.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경각(究竟覺) ;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켜 마침내 마음의 근원을 깨달음.
§(653) (게송) 물어중노사공왕 책장수심달본향 약야인순허상일 갱대하물답명왕 / 공(空)에 떨어져 있지 말아야.
〇정진하다 보면 차츰 망상도 가라앉고 마음이 고요해져, 화두드는 것도 잊어버리고 텅 빈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취해 빠져 있다 보면, 참다운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고인이 말씀허시기를 ‘의심이 크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 밖에는 못 얻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오늘 여름 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형제 자매 도반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통해서 오늘 결제 법문을 잘 들었습니다.
각자 용주사나 세등선원이나 위봉사나 각처에서 자기 있는 선방에서 결제 법요식을 허고 거기서 결제를 들어가면 되겠지만, 어째서 먼길을 이렇게 용화사까지 와서 우리가 이 결제 법요식을 갖느냐. 자기 있는 곳에서 조실스님 녹음 법문을 듣고 결제를 허면 충분한 것을, 왜 이렇게 여기에 모이셨느냐. 그것은 한철 공부를 시작하는데 우리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결제 법문을 듣고 한철을 잘 지내자고 허는 결의를 허기 위해서 이렇게 일부러 먼길을 와서 여기서 법요식을 갖게 된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조실스님 녹음 법문은 너무도 간절하고 간절한 법문을 해 주셔서, 산승(山僧)도 혼자 듣는 거 보단 뜻을 같이한 도반들과 한 법당에서 같이 들음으로 해서, 더욱 감동이 되고 감개가 무량함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너무 구구절절이 간곡한 법문을 다해 주셔서 산승도 너무 감동이 되어 가지고, 여러 도반들한테 무슨 말씀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기왕 이 자리에 올라 왔으니,게송(偈頌)을 하나 읊었고 그 게송의 뜻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고향이 어딘가? 그리고 ‘공왕(空王)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무엇이며, 본고향에 도달허도록 힘써서 정진을 허라는 것은 무엇이냐?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정진하다 보면 차츰 망상도 가라앉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화두드는 것도 잊어버리고 텅 빈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취해 가지고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는 거여. 그러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없이 맑고 깨끗해서 무기공에 떨어져서, 그 상황에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지내면 그것이 바로 공왕(空王)을 섬기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경지가 무척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좋긴 허지만, 화두를 -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잊어버리고 그러헌 경계에 빠져서 그 경계를 맛보고 있다 보면, 그것은 참다운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고 조사스님네는 한결같이 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스님께서도 오늘 설하신 법문이 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시삼마(是甚麼) 화두를 헌 분은 시삼마, 알 수 없는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허도록 그렇게 정진을 해 가도록 말씀을 허셨습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허시기를 ‘의심이 크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 밖에는 못 얻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허신 법문도 있습니다.
‘제일 도(道)를 닦아 가는데 무서운 것이 뭣이냐’허면, 바로 이 공(空)의 경지에 떨어져 갖고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살•도•음•망(殺•盜•淫•妄)을 저질러서 지옥에 갈지언정, 공(空)에 떨어져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무서워해야 할 그런 경계라고 허는 것을 부처님께서도 말씀을 허신 것입니다.
약야인순허상일(若也因循虛喪日)하면, 만약 그럭저럭 헛되이 세월을 허비를 허면, 갱대하물답명왕(更待何物答冥王)고. 다시 무슨 물건으로서 염라대왕한테 가서 대답을 헐 것이냐.
해 갈수록 알 수가 없고, 알 수가 없는 의단이 독로허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가야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고, 얻은 것이 있고 이러한 공부는 실다운 활구참선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처음~9분30초)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운집(雲集) ; 구름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 무엇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찾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명왕(冥王) = 명계(冥界)의 왕 = 염마왕(閻魔王) = 염라대왕(閻羅大王) ;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를 재판하는자. 사자(死者)의 죄를 재판하는 지옥의 주인.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흉중(胸中)에 하애부하증(何愛復何憎)이요. 가슴 가운데에 무엇을 사랑하고 다시 무엇을 미워할 것이 있느냐. 자괴인전백불능(自愧人前百不能)이다. 스스로 사람 앞에 백 가지 능치 못한 것을 부끄러워할 뿐이다.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에, 이 현성공안(現成公案)허는 일 밖에 이것을 제(除)해 놓고, 차무불법계전등(且無佛法繼傳燈)이다. 무슨 불법의 등(燈)을 계승해서 전해 내려가는 그럴 것이 뭐 있느냐? 오직 현성공안 할 뿐이지, 현성공안(現成公案) 하는데 전심전력을-몸과 목숨을 거기에 다 쏟을 뿐이지, 불법의 등을 전(傳)하고, 안 전(傳)하고 한 거기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둘 것이 있느냐?
수행자는 애착을 가지고 누구를 사랑할 것도 없고 또 미워할 것도 없어. 미워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벌써 생각이 도 닦는데 철저하지 못한 증거고,
또 보조국사의 진심직설(眞心直說)에 보면 자기의 수행의 경지가 얼마만큼 왔는가? 정말 공부가 상당히 깊은 지경에 왔나 안 왔느냐? 그것을 스스로 점검을 해 볼라면 마음속에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증애심(憎愛心)이 얼마만큼 심한가, 또는 그것이 완전히 떨어졌는가? 이것을 증험(證驗)을 해보라 그러셨거든.
그러니 수행자가 오직 생사무상(生死無常)함을 요달하고 그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정진해 나가는 사람이 무슨 사랑할 것이 있으며 미워할 것이 있느냐. 다만 부끄러운 마음이..., 자기는 백 가지도 능(能)치 못해. 아무것도 능(能)한 것이 없는 거.
오직 내가 나를 찾는 화두(話頭)에 대한 간절(懇切)한 의심을 거각하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헐 줄을 모르고 누구 앞에 내세울 것이 없어야 하는 거야.
그래서 만공 스님께서도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도업(道業)을 성취하느니라’
무엇도 잘하고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능한 것이 많으면 자연히 그런 데에 끄달리게 되고, 그런 데에 끄달리게 되면은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되니까,
아무것도 능치 못한 바보 천치 그래서 다못 사람 앞에 부끄러워하는 마음, 무량겁을 내려오면서 과거의 모든 불보살과 성현들은 진즉 이 일대사(一大事)를 요달해 가지고 생사해탈을 해서 중생교화를 하시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왜 도업을 성취 못했던가? 그러한 부끄러움.
그러기 때문에 제차현성공안외(除此現成公案外)에, 이 현성공안, 현성공안(現成公案)이라 하는 것은 지금 공안이라 하면 화두를 공안이라 그러는데, 문헌상에 오른 것이 지금 천칠백 공안이다, 천칠백 화두라, 이렇게 일컬어지지만 문헌에 오르지 않은 공안까지 하면은 몇 만개가 될는지 몇 십만 개가 될는지 모르고,
또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돌멩이나 한 포기의 풀이나 하늘에 반짝이는 저 수많은 하나하나의 그 별들, 나무의 이파리, 뭐 벌레,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거, 일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낱낱이 그 나름대로 하나의 공안이여.
근데 우리 중생은 삼라만상을 볼 때에 그 놈을 보고 눈으로 보면은 그리 끄달려서 집착심을 낸다든지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은 그 듣는 소리로 인해서 벌써 경계에 끄달리고 망상이 일어나고, 그렇지만 정말 귀로 들을 수 있는 자동차 소리, 바람 소리, 개 짖는 소리, 새 우는 소리 하나하나가 전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공안이여. 사량분별로 따질 수 없는 공안으로 보여야 한다 그 말이여.
깨달은 분상에는 그 자체는 그것이 전부가 진여(眞如)요, 비로자나(毗盧遮那) 법신(法身)이요, 진리요, 깨달음의 경지겠지만,
깨닫지는 못했으나 정법(正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색상(色相)을 보던지, 무슨 생각이 속에서 일어나던지, 일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공안으로써 현성(現成)이 된다. 현성(現成)된 공안(公䅁)이다.
다못 그렇게 나갈 뿐이지. 거기에다 불법(佛法)이다, 무슨 조사의 전등을 계승해야 한다, 그러헌 생각도 이 현성공안하는 이 자리에 와서는 그것도 번뇌요 그것도 망상이여.(처음~9분44초)
*(게송)‘흉중하애부하증~’ ;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二十九 ‘山居十首’ 게송 참고.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나무둥치 ; 큰 나무의 밑동(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毗盧遮那) 법신(法身)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송담스님(No.457) - 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67분)법문에서. (용457)
(1) 약 20분.
(2) 약 8분.
(1)------------------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를 이취화중재(移就火中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대삼춘우(不待三春雨)라도 홍화난만개(紅花爛漫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주무영수(一株無影樹)를 이취화중재(移就火中栽)다.
한 그루 그림자 없는 나무를 불 속에다가 옮겨 심어서 재배를 했더라.
부대삼춘우(不待三春雨)라도 삼춘(三春)—봄, 삼춘의 비를 기다리지 안 해도 홍화(紅花)가 난만개(爛漫開)다. 붉은꽃이 난만히 피었더라.
나무는 다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여. 큰 나무나 작은 나무나 그림자가 다 있는 것인데, 이 한 그루의 나무는 그림자가 없는 나무여. 그 그림자 없는 나무를 땅에다가 심는 것이 아니라 불구덩이 속에다가 심었더라.
그림자 있는 나무를 땅에다 심으면 반드시 비가 내려야 그 수분을 흡수해 가지고 다 자라게 되고 꽃도 피고 그럴텐데, 이 그림자 없는 나무는 땅에다 심지 않고 불구덩이에다 심었어. 그러기 때문에 봄비를 기다리지 아니해도 봄비가 오지 안 해도,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그 붉은 꽃이 곱게 곱게도 피었더라 이거거든.
이 그림자 없는 나무, 이것은 그 나무 모양이 푸른 것도 아니요 노란 것도 아니요 빨간 것도 아니여. 일체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그 나무를 또 불구덩이 속에다 심느냐 그거거든.
볼래야 볼 수 없고 들을래야 들을 수 없고 잡을래야 잡을 수 없고 아무리 알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이 소소영영(昭昭靈靈)한 그놈을 나무에다가 비유해서 읊은 시(詩)다 그거거든.
그 나무를 왜 하필 불구덩이에다 심느냐 하면, 우리 중생의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몸뚱이요, 그 몸뚱이 속에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이 항상 훨훨 타고 있거든. 그 불구덩이 속에, 탐진치삼독에 훨훨 타오르고 있는 그 불구덩이 속에다가 이 그림자 없는 나무를 한 그루를 심었더라.
이 우리의 몸뚱이는 항상 이 몸뚱이 자체는 똥과 피와 오줌 고름 모다 그런 것이 속에 가득차 있는데, 그것을 엷은가죽으로 싸아 가죽 주머니 속에다 그것을 담어놨다 그말이여.
그래서 나오느니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꾸역꾸역 기어나와, 매일 같이 아침 저녁으로 씻고 닦고 분을 바르고 향수를 발라봤자 아홉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더러운 것이 기어나오거든.
그리고 그 더러운 똥주머니속에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그 마음의 불—그 탐진치 삼독의 불이 끊임없이 타오르고있거든 훨훨~훨훨훨 타올라.
혹 부처님 경전을 읽거나 이렇게 법문을 들을 때에는 잠시 그것이 꺼진 듯 했다가 금방 돌아서면 도로 타오르거든.
어떻게 하면 이 똥주머니를 좋게 가꾸며 영양을 섭취하고 건강관리를 하고, 그리고 또 예쁘게 옷을 입히고 단장을할까?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데,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이 탐진치 삼독의 불 그놈을 잡드리하는 데는, 물론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참 그 문제 때문에 지금 여기에 오시고 정진(精進)을 할라고 애쓰신 분들이지만 세계 50억 60억 인구가거개가 다 별로 그 그림자 없는 나무를 가꾸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봤자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금방 무너져 버린거여. 십 분도못 가서 내장부터서 썩어 들어가는 것이야. 그렇게 저를 위해서 참 몇십 년간을 공력을 들여서 봉양(奉養)을 했건만 한 숨에 배신을 해 버려.
그놈 받들다가—속담에 ‘모진놈 옆에 있다가 벼락맞는다’고, 그놈 하나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단속하다가 결국은가는 것은 잔뜩 업(業)을 짓고 결국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림자 없는 나무가 불구덩이 속에 심어져 있는데 그냥 그대로 놔 둬도, 삼춘(三春)의 비를 맞지 않아도 붉은 꽃이 난만(爛漫)하게 필 수가 있을까?
그 타오르는 불속에 있는 그림자 없는 나무를 잘 가꾸어서 거기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그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할라면 정말 나의 모든 것, 이 몸뚱이와 우리의 모든 정신을 거기에다 바쳐서 그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할려고노력을 해야 그 그림자 없는 나무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봄비는 필요가 없어. 봄비가 온다고 해서 불속에 있는 『그림자 없는 나무』가 꽃이 필 리는 없거든. 그래서 봄비는기다릴 것은 없으나,
정말 발심을 해서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고 명예와 권리와 재산과 모든 그런 오욕(五慾)이 정말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는 철저한 발심(發心),
그리고 ‘이 문제는 오직 내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결심,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해결할 수있다’고 하는 신념,
그러한 바탕 위에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간택 받아 가지고 이 화두에 대한 의심, 아까 전강 조실스님의 임자년 녹음법문을 통해서 여러분은 아주 잘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마는,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염염상속(念念相續), 오직 인생으로 태어나서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철저한 신념만 있다면,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 누면서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가만히 있어도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듣고, 몸뚱이를 통해서 모든 것을 감각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생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때로는 성을 내고 때로는 슬퍼하고 기뻐하고, 우리는 아무 그런 생각없이 완전 무념(無念)의 경지에는 단 1분 동안도 있어 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생각이 일어나고, 무엇인가 육근(六根)을 통해서 무엇인가 알음알이가 움직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에 그 곳에서 화두를 드는 것 뿐이여.
망상(妄想)이 일어난다고 조금도 걱정할 것도 없어. 그 망상 일어나는 그 찰나에 떠억 고대로 놔둔 채, 일어나는 망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그대로 놔둔 채, ‘이뭣고?’ 화두만 거각하면 되는 것이여.
학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똑똑하고 안 똑똑한 것도 상관 없고, 남자니 여자도 따질 것도 없고, 출가 재가도 따질 것도 없어.
앉았을 때는 앉아서 ‘이뭣고?’
서 있을 때는 서서 ‘이뭣고?’
슬픈 생각 일어날 때는 슬픈 그 생각에 오래 잠겨 있지 말고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속상하는 생각에 왜 오래 거기에 머물러 있느냐 그말이여, 속상하는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터억 숨을 들어마셔. (그리고) 내쉬면서 ‘이뭣고?’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하고도 쉬운 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그 괴로움을 이기고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가 있느냐.
그렇게 해서 자꾸 거각하고 또 거각하고.
‘화두가 잘 안 들린다, 망상 때문에 화두가 잘 안 들린다,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안된다’ 안된다고 걱정할 시간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안되면 다시 들면 그만이고.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것이 뭐 있느냐 그말이여, 일어난 줄 알면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공안,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이는 무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는 분은 정전백수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시는 분은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단만을 자꾸 거각해서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해 나가거든.
거기에 무슨 망상이 거기에 붙으며, 붙어봤자 그냥 놔둔 채 화두만 들면 망상은 저절로 자취가 없어져 버리는 건데,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거기에 의단을 타파(打破) 그래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도리(道理)는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몸으로써 경험을 하고 깨달음으로써 우리에게 증명(證明)을 해 주신 것이여.
이 세상에 이것 밖에는 믿을 것이 없고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이거거든.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을 낳기를 원하고,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은 많은 재산을 갖기를 원하고, 명예나 권리가 없는 사람은 갖은 수단을 써서 그런 것을 구하지만,
그 마음먹은 대로 다 구해지지도 아니 할 뿐 아니라 설사 뜻대로 이루어졌다 해도 그건 영원성이 없고 잠시 그러다가 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가는 거여.
그런데 이 일대사 문제는 자꾸 하고 또 하고 하면 아무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마는 그 속에 신심이 나고 환희심이 나고 분심(憤心)이 나고 더욱 해 갈수록 더 발심이 되는 거여.
‘내가 어쩌다 이런 좋은 법을 만났을까? 내가 만약에 이 법을 안 만났으면 내 신세가 어떻게 되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신심이 굳건해져 가고.
그렇다고 해서 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거든. 급한 생각을 낸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된 것이 아니여.
초심(初心), 초발심(初發心), 처음으로 발심을 해 가지고 참선을 시작한 사람은 그 초발심의 그 강렬한 신심으로 우격다짐으로 막 몰아부칠라고 그러거든.
초발심자가 그만한 분심이 있어야 하고 그만한 열의가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차츰차츰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다 보면 그런 만용적인 우격다짐 식의 그런 신심이 차츰 순화가 되고,
그래서 이 몸뚱이와 생각을 알날신심(遏捺身心)—막 완력으로 몰아붙이고 몸뚱이를 들볶으고 생각을 너무 지나치게 막 몰아대고—하는 그런 것이 차츰차츰 순화가 되어서 정신을 올바르게 가다듬고 나가는 묘한 관(觀)을 스스로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까지는 정말 참 열심히 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럭저럭 하다말다 해 가지고서는 안되는것입니다마는.(처음~19분51초)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냐. 몇 번이나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고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을 몇 번이나 겪어왔더냐 그말이여. 몇 수십만 번을 짐승이 되었다가 날짐승이 되었다가, 긴짐승이 되었다가, 네발 달린 짐승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이러면서 돌고 돌아서 금일에까지 왔더냐.
원래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法身佛)과 똑같은 조금도 차등(差等)이 없는 본심왕이었다 그말이여. 그 본심의 왕을 배반한 탓으로 해서 우리는 삼악도와 사생을 돌고 돌아서 몇 억만겁을 겪어가지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더라.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오늘 번뇌에 물든 그 번뇌염을 깨끗이 다 씻어버리고,
수연의구차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을 떠나서 객지(客地)로 객지로 떠돌아 다니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써 참 거러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떠돌다가 비로소 자기 고향 갈 길을 찾았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기쁘겠느냐.
남북 이산가족들이 몽매지간에도 잊지 못할 가족 상봉, 그것참 그러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정든 사람과 이별하고, 고향과 가족 친지를 이별하고, 한 나라에 손바닥만한 땅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런 것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히지마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였었는데 그 왕이 그 본심왕을 갔다가 등져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가지고 삼악도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돌고 돌면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 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來生)에도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또 그런 것이 거듭될 그런 신세가,
다행히 불법(佛法)을 만나고 정법(正法)을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의 본위치로 돌아갈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참 50억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고 할까, 가장 행복한 삶을 받아났다고 할것입니다.
이 정법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이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話頭)를 잘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함으로써 우리의 본고향(本故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이거거든.
고향을 모를 때에는 갈 곳도 없고, 가 봤자 별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우선 잘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三水甲山)을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 보자, 좋은 차도 가져 보자, 좋은 집도 가져 보자 하지만,
고향이 있는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하거든. 입는 것도 얼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쨌든지 한 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게으르지 않게 걸어가는 것 밖에는 어디에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그거거든.(19분 50초~27분13초)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네 가지 생(生),네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을 이른다. *육도(六途) ; (=六道)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인(業因)에 의하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육도윤회(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道)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삼수갑산(三水甲山) ; ‘삼수(三水)’와 ‘갑산(甲山)’은 각각 함경남도 북서쪽과 동북쪽에 있는 오지(奧地)의 지역명이다. 이 두 지역은 특히 날씨가 춥고 산세가 험하여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귀양지로 유명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삼수갑산(三水甲山)’은 ‘춥고 험한 지역’이나 ‘유배지’ 등과 같은 일반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삼수갑산을 가다 ; ‘멀고 험한 곳으로 가다’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르다’의 의미를 지님.
항상 공안(公案)을 조주(趙州) 공안을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났느니라.
무슨 도리(道理)냐 말이여. 따져가지고는 되지 않는 도리여. 아무리 이놈을 수수께끼처럼 별 생각을 다 붙여봐도 고것은 안되거든, 선(禪)이라는 것은. 그러니 그걸 주의하라는 것이여.
그러헌 의리선(義理禪), 해석선(解釋禪), 따지고 붙이는 선(禪) 그것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그런 종자(種子)는 여지없이 쫓아내 버리고 그것은 기르지 않아야 돼. 그래야 활구학자(活句學者) 활구선(活句禪)이지. 그런 것이 생겨 나오면 못 쓰거든.
다언(多言) 말을 하지 말고 공안선(公案禪)을 해라. 공안을 떠-억 염념상연(念念相連)해라. 생각생각에 그 의심(疑心)을 연(連)해라. 의심(疑心), 알 수 없는 놈을 연속해라. 시심마(是甚麼)면, ‘이뭣고?’ ‘이-뭣고?’
‘이-’ 아! ‘이-’한 놈이 있다 말이여 분명히. ‘이-’해 놓고 보니 뭐냔 말이다. 도대체 뭐냔 말이다. 별 놈의 이치를 다 때려 붙여 봐라. 모양있는 지견을, 모양있는 무슨 모양을 다 때려 붙여 봐라. 오색을 다 갖다 붙여보고 오색없는 지경을 다 붙여봐라. 그런건 공안참선(公案參禪)이 아니야.
‘이뭣고?’ 알 수 없는 하나가 떠억 나와 가지고는 그만 그놈 하나 뿐이다. 전체가 그놈 하나 뿐이여. 가나 오나 그놈 하나 뿐이여. 일체처(一切處)에 그놈 하나 뿐이여. 행주좌와(行住坐臥)에 그놈 하나 뿐이여. 똥 눌 때라도 오줌 눌 때라도 밥 먹을 때라도 그놈 하나 뿐이야.
그놈 하나 다뤄 나가는데 뭐가 그리 어렵냐 그말이여. 천하에 쉬운 것이 그뿐인데.
이놈을 생각생각이 연(連)해라. 전념(前念)이 끊어지기 전에 곧 후각(後覺)이, 뒤에 깨달은 그 알 수 없는 놈이 항상 꼬리를 연(連)해. 염념상연(念念相連)을 해라.
좋지, 참 재미나지.
그 일념(一念)이, 알 수 없는 일념이 독로(獨露)된데 가서 일체 중생고(衆生苦)가 거기 없다. 중생고가 뭐냐하면,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중생고인데 그저 그 분별식이 일어나 가지고는 못 견디지.
그 분별식 가운데 얻지 못한 것이 있고, 되지 않은 일이 있고, 무슨 애가 탄 일이 있고, 뭐 별 놈의 중생고가 다 거기서 일어난다. 중생고 퍼 일어나는 것이 망상번뇌(妄想煩惱)에서 일어나는건데, 망상번뇌가 붙덜 못혀. ‘이뭣고?’에는.
‘이뭣고?’. ‘이뭣고?’ 그놈이 또 ‘이뭣고?’. 찾는 놈 또 찾는구나 ‘이뭣고?' ‘이뭣고?’한 놈을 또 ‘이뭣고?'한다.
아,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아침마다 일러주는데 무엇을 물어 사석(私席)으로, 사석으로 물을게 뭐여. 물을게 있어야 묻지.
‘이뭣고---?’ ‘이뭣고?’해 놓고는 알 수 없는 ‘이뭣고?’ 그 의심 그놈의 덤뱅이가 그놈이 참, 그것 ‘이뭣고?’라도 깰래야 깰 수 없고 흩을래야 흩을 수 없고 그놈 뭐. 잘~ 그놈 해보지. 당장에 거가서 직하(直下)에 거가서 무변리(無變理)거가 있고 변함이 없는 도리가 있고.
그대로가 독로(獨露)인대, 의단독로(疑團獨露) 그것이 바로가 그대로가 그놈 연속(連續)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지경인대, 언제나 언제나 오래오래 몇 철 몇 해 해가지고사 타성일편이 올라는가 그때 올라는가. 요런 놈의 소견(所見)봐라.
직하에 그만, 타성일편도 오는 것이고, 지금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도 거기서 오는 것이고.
항상 상연(相連)해라. 그 상연(相連) 참 묘(妙)하다.(11분29초~17분24초)
(2)------------------
‘이뭣고?’ 하나 득력(得力)해서 그만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보지. 깨닫지 못하고 죽더라도 그 일편(一片)이 그대로 가서 그만 정법신심가(正法信心家)에 가서 그대로 몸뚱이 턱 받아 가지고 나와서 또 ‘이뭣고?’하는 것이여.
상대목전(相對目前)해라. 목전(目前)에 탁 드러나야 한다. 독로, 독로(獨露)가 그거야. 눈 앞에, 이 내 눈 뜬, 이 눈깔 눈 앞에도 나타나지마는 심안(心眼)에, 내 마음 눈이 있지 않은가. 이 눈 보다도, 눈 감아도 보이는 눈이 있지 않은가. 눈 감아도 보이는 눈 앞에 탁 나타날 것이다.
분금강지(奮金剛志)해라. 금강같은 뜻을 가지고 분(奮)을 한번 내라. 스르르르 풀어지는 고런놈의, 그 금방 났다가 금방 없어진 놈의 고런놈의 마음, 거 뭣 할거냐. 그게 도심(道心)이냐. 도 닦는 마음이 그러하냐. 금강(金剛)같은 마음을, 분(奮)을 내라.
분심(奮心)이 제일이다. 왜 내가 나를 모르다니. 왜 내가 내 면목(面目)을 내 낯빤대기를 내가 몰라. 내 콧배기를 내가 몰라. 우째서 모르냐 말이여. 무슨 까닭으로 몰라? 왜 못 봐.
그런 뜻을 한번 가지고 일념만년(一念萬年)이다. 그 생각이, 그 깨짐이 없는 그 철저한 마음, 그 뭉태기는 만년(萬年)이다. 만년이면 만년 지낸들 없어지나, 벌써 만년인대. 만년이면 또 만년이지. 또 만년이면 또 만년이지. 억만년(億萬年)이지.
그 염(念)이 도렴(道念)이 ‘이뭣고?’마음이, 이처럼 견고하고 이처럼 맺어져 한 덩어리로, 풀려지지 않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는 화두(話頭)가 자꾸 민첩하게 아름답게 틈없이 온당한 한 덩어리 떠억 될때 회광자간(廻光自看)해라
회광자간(廻光自看)이라는 건, 다시 더 맹렬하게 ‘이뭣고?’를 한번 봐라. 관(觀)해라.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그 의지(意旨)를, 조주(趙州)가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고 했으니, ‘어째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놈을 한번 심안(心眼)으로 회광(廻光)해라.
가만~히 관(觀)을 해라. 관(觀)이 의단(疑團)뿐이거든. 알 수 없는 놈 뿐이다 그말이여. 알 수 없는 놈 딱 틀림없이 나온 놈이 그놈이, 그것이 반조(返照)여. 회광반조(廻光返照)를 달리 했다가는 큰일나. 여기 다 그렇게 해 놨으니.
그놈을 찰이(察而)하고 부관(復觀)해라. 살피고 또 다시 관(觀)하라 하는건, 의심(疑心)을 더 맹렬히 하고 후렴(後念)을 더 알 수 없는 의심을 자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