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칠석)2014. 7. 3. 18:59

§(272) (게송)적하위망적하진~ / 비로자나 법신불, 참선법(參禪法) /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 / 참회(理懺,事懺)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 모셔도 일체 선신(善神)과 삼세 제불보살(諸佛菩薩) 전부가 이 부처님 품안에 다 갖추어 계신 것입니다.


불법(佛法)도 팔만사천 그 무수 방편설, 소승·중승·대승 그런 모든 법문을 갖다가 한데 모여서 고아 가지고, 한 법으로 수습헌 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이요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라.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불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사참(事懺)을 통해서 궁극에는 이참(理懺)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참회의 뜻을 잘 인식을 하고 항상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죄와, 이 찰나찰나 생각이 일어나고, 숨을 쉬고 이렇게 생활하는 가운데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를 통해서 소멸을 하고, 참회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72) - 1985년(을축년) 칠석법회(65분)에서. (용272)

 

(1) 약 21분.

 

(2) 약 20분.

 


(1)------------------

적하위망적하진(摘何爲妄摘何眞)고  진망유래총부진(眞妄由來總不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하비엽하추용결(霞飛葉下秋容潔)하면  의구청산대면진(依舊青山對面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적하위망적하진(摘何爲妄摘何眞)고. 무엇을 가리켜서 망령된 거짓 것이다 하고, 또 무엇을 가리켜서 참이라 할 것이냐.

진망유래총부진(眞妄由來總不眞)이다. 진(眞)이니 망(妄)이니 하는 것이 본래 다 그것이 참다운 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참이오 저것은 거짓이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며, 이러한 시비심(是非心)이 일어나는진(眞)이라고 한 놈도 참이 아니오, 망(妄)이라 한 놈도 참이 아니여. 진이니 망이니 그것이 본래 '참'이 아니니라.


하비엽하추용결(霞飛葉下秋容潔)하면, 안개가 날으고 잎이 떨어지면 가을빛이 맑아진다. 안개가 날으고 서리가 쳐서 잎이 다 져버리면, 그때 추색(秋色)이 강산에 깨끗해지면,

의구청산대면진(依舊青山對面眞)이여. 옛을 의지해서 떠억 본 푸른 청산(青山)의 면목(面目)만이 드러나더라.
울긋불긋 잎이 피고 꽃이 피고 할 때에는 그런 잎과 꽃에 가리어서 그 산의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지만, 서리 쳐서 잎이 다 떨어져 버리고 꽃도 다 져버리고 그러면, 그 산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은 을축년 7월 7일, 칠석(七夕)날입니다.
칠석날이라 하면 우리나라 저 옛날 신라 때부터 또 그 이전에부터서 우리의 토속(土俗) 신앙으로,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온 자손에 이르기까지 몸 건강하고 수명장수(壽命長壽)를 빌고 그러기 위해서 절에 가고 또 칠성(七星)님께 모다 공(功)을 드리고 이러한 토속 신앙으로써, 이 칠석날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마음속에 잊지 않고, 절에 잘 다니지 아니한 사람도 칠석날은 그러한 소원을 빌기 위해서 불공(佛供)을 드리러 가고 치성(致誠)을 드리러 가고, 그래 내려 옵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는 칠석날에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서로 만나지를 못하고 1년 내 떨어져 있다가 이 칠석날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서로 몸과 몸을 이어서 놔준 그 다리, 그것을 오작교라 그러는데 그 오작교(烏鵲橋)를 통해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 이러헌 전설도 있고 그렀습니다.

'헌데 무슨 업으로써 견우와 직녀는 서로 사랑하면서도 만나지를 못하고 그렇게 1년 내 떨어져 있다가 칠월 칠석날 만난다' 그 전설이지만...

우리 용화사는 부처님 한 분, 청정법신(清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이 법당에 모시고, 여러 부처님과 보살상도 모시지도 아니하고, 더군다나 신장(神將)님이라던지 칠성(七星)님이나 산신(山神) 모다 그러한 탱화(幀畵)도 모시지 아니하고, 다못 이 법신불(法身佛) 부처님 한분만을 모셨다 그말이야.

여러분 가운데는 '오늘 칠석날이니까, 용화사는 칠성당도 없고 그러니 빨리 법회가 끝나면은 칠성님 모신 절로 가서 공을 드려야겠다' 혹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째서 용화사는다른 절에는 오백 나한(羅漢)도 있고 천불님도 있고 칠성·산신·독성님 그런 여러 성현들도 다 모시고 하는데왜 부처님 한 분만 딱 모셔 가지고, 점쟁이는 ‘칠성단에 공을 드려라’ 그러고 또 ‘산신 기도를 해라’하는데, 용화사는 칠성당도 없고 산신님도 없고 참 거 안 갈 수도 없고 또 딴 데로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속으로 항시 불평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가 기회만 있으면 산신 모신 데로 갈 생각을 하고,
그런데 그건 전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 이 우주 법계에서 최고의 높으신 부처님, 그리고 가장 근본 부처님이 누구시냐 하면은 바로 이 법신불, 비로자나 법신불이시다 그말이여.

그 비로자나 법신불로부터서 모든 보신(報身)도 나오고, 천백억 화신(化身)도 나오는 것이고,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이 법신불에서 다 나오신 거여.
칠성님이나 산신•독성 그 밖에 이 우주에 가득찬 모든 하늘나라의 천신이나 땅에 모든 산신, 지기(地祇)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이 법신불의 다 부하이시고 권속이시다 그말이여.

그래서 법신불 한 분만 모셔도 일체 선신(善神)과 삼세 제불보살(諸佛菩薩)이 다 이 한 부처님 슬하에, 부처님 품안에 전부가 다 갖추어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한 부처님만 모시되 일체 제불보살과 선신이 다 계시기 때문에 구태여 여러 분을 눈에 보이게 모시지를 아니하고 이렇게 한 분만을 딱 모시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뜻을 잘 파악을 해서 실천허는 것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을 다 설하셨지만 교외별전(敎外別傳), 이 팔만대장경을 한데 뭉쳐서 그놈을, 무슨 100가지 약초를 모아 가지고 그놈을 한 솥에다 넣어서 몇날 며칠을 고아서, 찌끄레기는 다 건져 내버리고 그 물만을 계속해서 고우면, 마지막에는 조그만한 한 그릇의 진액(津液)으로 모여진 것처럼, 조그만 환약 하나로 뭉쳐진 것처럼,
이 불법(佛法)도 팔만사천 그 무수 방편설, 소승·중승·대승 그런 모든 법문을 갖다가 한데 모여서 고아 가지고, 한 법으로 수습한 것이 바로 이 최상승법이요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소의경전(所依經典)이 없어. 그 주(主)로 삼는 경전이 없지마는, 한 경전도 이 참선법에 있어서는 세울 것이 없지만, 한 글자도 주장한 바가 없는 이 가운데에 팔만사천 묘법이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고 팔만대장경이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여.

그래서 산신님도 칠성님도 그 밖에 모든 불보살의 상호(相好)도 모시지 아니했지만, 이 비로자나 법신불 한 분만을 모시되 일체 성현이 여기에 다 모셔져 있는 거와 마찬가지고, 어떠한 경전도 여기서 내세우지 않지마는 일체 경(經)이 한마디 화두(話頭) 하나 속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견우와 직녀, 항시 만나고 싶고 그리웁고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다가 오작교로 인해서 칠월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우리 정법(正法)을 믿는 법보제자 여러분은 이 칠석날 칠석 법요식을 통해서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함으로서, 그 정법의 다리를 통해서 부모 자식간에 또는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또는 도반끼리, 크고 작은 모든 원한이나 섭섭한 그런 거리가 있는 분은 오늘을 기해서 깨끗이 참회를 해 버리고, 그리고서 정법을 다리로 해서 화합을 하고 하나가 되어서 ‘참나’를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상대방도 또 나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그 조그만한 원한이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고, 조그마한 서운함이 나중에는 큰 원한 관계로까지 확대가 되는 것인 만큼, 어쨌든지 내가 먼저 마음에 꼬부라진 것을 펴 버리고 내 마음 속에 언짢은 생각을 털어버리고서 상대방을 응어리 없이 활짝 개인 마음으로 상대를 하면 상대방도 따라서 가슴의 문을 열게 될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어느 사람을 막론하고 여덟가지 고통(八苦) 중에 여덟가지 고통을 다 받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반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 한 두가지 고통만 있는 사람, 그 차등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그 고통을 다 벗어버린 사람은 만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여덟가지 고통(八苦)이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별하게 되고, 미운 사람은 만나게 되고, 무엇을 구하고자 하되 내 마음대로 얻어지지 아니하고,
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五陰)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것이 고르지를 못해서,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오장육부와 사지백체(肢百體)의 기관이 고르지를 못해가지고 항상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생로병사-나는 것도 고통이요, 늙는 것도 고통이요, 병드는 것도 고통이요, 죽는 것도 고통이요, 이래서 이것이 중생의 여덟가지 고통인데, 이 고통은 ‘남의 염병(染病)이 내 감기만 못하다’고, 다른 사람은 염병이란 무서운 병을 걸리면 죽게 되는데 내가 감기 좀 들은거야 그까짓 병이라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남은 염병을 걸려서 죽게 되드라도 나는 조그만한 감기 좀 걸려도 내 감기가 더 고약한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사람은 그러한 여덟가지 고통 속에서 어떠헌 형태로든지 고통을 다 받고 있습니다. 다 자기만이 그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도 다 그 고통을 다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조그만한 고통은 큰 고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큰 고통은 별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고통은 어떠헌 작은 고통이나 큰 고통이나 다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여, 같이 앓고 있는 처지에는 서로 돌봐줄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 돌봐줌으로써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 나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 돌봐줄랴면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볼 줄 아는 그러한 마음의 너그러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을 갖다가 등한히 생각하고 심지어는 남을 짓밟고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되면, 우리 사는 집이 정말 지옥(地獄)으로 변헐 것이며, 우리가 사는 마을이 지옥으로 변할 것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와 국가가 지옥·수라장(修羅場)이 되고 말것입니다.

세계가 온통 싸움·전쟁속에 있고 전쟁이 일어날려고 하는 그런 직전에 모다 놓여져 있는데, 이러한 싸움이 ‘과연 왜 그러한 싸움이 일어나냐?’하면 서로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남의 괴로움이 존재하는 한은 나도 편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21분6초)

 

 

 



(2)------------------

그래서 이 싸움을 없앨랴면 다시 말해서 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 올라면, 먼저 우리나라가 단합을 해야 하고, 나라가 잘 살려면 우리가 사는 고을이 잘 살게 되아야 하고, 우리 고을이 잘 살라면 우리 집안이 잘 살아야 하고, 우리 집안이 편안헐랴면 내 마음이 먼저 편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은 ‘밖으로 구하지 말고 안으로 구해라. 안에서 진리를 찾아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이 이 불교의 근본인 것입니다.

‘이 인생에 고통이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하면, 전부 중생들은 그 원인이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한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형을 잘못 만나서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또는 남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아내를 잘못 얻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는다 생각하고, 사장을 잘못 만나서 내가 이렇게 못 산다 생각하고, 전부 자기 불행의 원인을 자기 이외의 다른사람에게서 찾기 때문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 하면 ‘전부 그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불행과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기한테 있다'고 생각하고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맨 먼저 자기의 고통이 소멸이 되고 행복을 얻게 될 것이며, 각자 그렇게 나아갈 때 온 집안이 평화를 찾게 되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평화롭게 되고 이 세계가 바로 천국이 되고 극락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먼저 모든 고통의 원인을 자기에게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참회(懺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회를 해야 자기의 죄(罪)를 소멸(消滅)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죄를 소멸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고통은 없어지지 아니해.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행복과 평화를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참회문(懺悔門)을 열어서 참회를 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속에 고통, 육체상의 고통, 가정의 불행, 사회의 고통을 해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참회에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 2가지 형식이 있는데, 이치(理致)로 참회하는 것과 또 실질적인 사(事)로 참회는 그런 2가지가 있는데. 사참(事懺), 일반적으로 우리가 ‘참회한다’하면 다 이 사참을 일컫는 것입니다.
‘사참은 어떻게 하느냐?’하면 부처님께 삼보(三寶)께 몸으로 백팔참회(百八懺悔) 또는 삼천배(三千拜), 이렇게 계속해서 부처님 앞에 예배(禮拜)를 하면서 또 부처님의 경전이나, 주문(呪文)이나, 부처님의 법과 덕을 찬양하는 그러한 예경문(禮敬文)을 외우면서 계속 절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절을 하고, 입으로 삼보를 찬탄하고 또 경을 외우고, 마음으로는 그 부처님의 거룩한 상(像)을 염(念)하면서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계속 참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내가 지은 바 죄업, 모든 악업은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이여. 몸과 입과 마음으로부터 다 생긴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전부 탐진치(貪瞋癡)-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그것이 근본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몸으로 짓고 입으로 짓고 마음으로 짓고 해서 이런 죄를 지었으니 이걸 참회합니다.
이렇게 해서 무수배례(無數拜禮)를 하면서 이렇게 독송을 하면서 이렇게 참회를 하고.

이참(理懺)은 이치(理致)로 참회하는 것이여.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여. 죄라고 하는 것은, '죄'라고 하는 자성(自性)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그말이여.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이여. 마음이 공(空)해 버리면, 마음이 비어 버리면 죄도 또한 없어진다.

이 도리를 철저히 믿고 참선을 하면 거기에서 죄가 소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참(理懺)은, 참선을 해서 그 힘을 얻은 사람은 찰나간(刹那間)에 무량겁 죄도 눈 한번 감았다 뜬 사이에 참회하는 도리가 있습니다.
아직 참선을 통해서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헐랴고 해도 가슴속에 띠끄름한 생각이 깨끗이 떨어지지를 않고 계속 가슴속에 두려움과 원망하는 마음과 괴로운 생각이 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근기, 하근기는 부처님 앞에 향을 올리고 그리고서 매일같이 백팔참회를 하고 또 천배·천배·천배해서 삼천배, 또 삼천배를 수십번 해서 삼만배·삼십만배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

그러면서 경을 외우고 참회진언을 외우고 그리고 또 자기의 죄를 갖다가 소멸하기 위해서 물질적으로 남에게 베풀고 또 보시하고 시주를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자기의 지은 죄업을 갖다가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 하근기에게는 이러한 사참(事懺)이 매우 효과적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참을 많이 하면 결국에 가서는 자기의 마음속에 업(業)이 소멸이 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그러고 나면은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두려운 생각도 없어지고, 그 먹구름이 끼고 폭풍이 불고 하던 날씨가 쏴악 구름 흩어지고 샛파란 하늘이 보이면서 밝은 태양이 빛나듯이, 마음속이 그렇게 후련해지고 미운 생각도 없어지고 원망하는 생각이 없고, 모든 그렇게 그 전에 미웁고 원망스럽던 사람이 전혀 그러헌 감정은 없어져 버리면서 고마운 생각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고맙고, 모든 일들이 다 고맙고,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고맙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회, 이것이 바로 사참(事懺)인 것입니다.

사참(事懺)을 통해서 궁극에는 이참(理懺)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찰에서 대중 스님네들이 모여서 수도를 해나간 데에도 이 참회법(懺悔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죄(重罪), 큰 죄를 지었을 때에는 네 사람 이상의 대중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을 하고 그리고서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법참(衆法懺)이라 하는 거고. 그 다음에 그렇게 무겁지 않지마는 비교적 중한 죄를 지을 때에는 자기가 존경하는 스님 한 분 앞에 가서 자기의 잘못을 다 털어놓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대수참(對首懺)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주 미미한 조끄마한 그런 죄를 지은 것은 자기혼자 법당에 들어와서 아무도 없을 때에 부처님 앞에 와서 다 마음으로 고백을 하고 절을 하면서 스스로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념참(心念懺)이라 해. ‘마음 심(心)자’ ‘생각 념(念)자’ 자기 마음속으로 참회를 한다 해서 이것을 심념참이라 하는데.

이 중법참이나, 대수참큰스님 앞에 가서 참회하는 것, 그리고 자기혼자 마음으로 참회하는거 이거 심념참인데 이러한 참회를 통해서, 항시 자기 마음속에 크고 작은 잘못을 반성을 하고, 그것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소멸을 함으로써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참회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에서는 아침마다 예불할 때에 이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합니다.
향불로 팔을 따끔하게 지지면서 10가지의 죄를 참회를 하는 것인데, 도를 닦은 수행인이 무슨 살생을 하며 도둑질을 하며 음행을 하며 거짓말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라고 하는 것이 꼭 몸으로실질적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물건을 도둑질을 하거나, 또는 음행을 한 것만이 죄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 생각' 번쩍 일어났다가 사라져도남을 죽일 마음을 낸다던지,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낸다던지, 남을 해롭게 할 마음을 낸다던지, 남의 물건을 욕심내는 마음을 낸다던지, 어떤 이성간에 색심을 일으킨다던지, 이리해도 이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그것도 계를 파(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뜨고 살면 숨 한번 마시고, 물 한모금 먹고, 말 한마디 허고, 발 한발 움직이는 가운데에도 전자현미경과 같은 그런 업경대(業鏡臺)를 통해서 비추어져 볼 때에는 죄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석(朝夕)으로 예불하면서 참회하고, 참회하면서 새롭게 또 발원(發願)을 하면서 이렇게 수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스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을에 계시는 신남신녀 여러분께서도 비록 몸은 속세에 계신다 하더라도 마음은 이미 발심출가(發心出家)한 부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특히 세속에서 생활을 해 나가고 사업을 해 나갈라면 크고 작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본의거나 타의거나 간에 이 죄업을 짓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참회의 뜻을 잘 인식을 하고 그래 가지고 항상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죄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찰나찰나 생각이 일어나고, 찰나찰나 숨을 쉬고 이렇게 생활을 해나간 가운데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를 통해서 소멸을 하고, 참회 죄업소멸을 통해서 ‘참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 여러분께서는 여러 가지 정성스러운 공양(供養)을 부처님 앞에 가지고 오셔서 모다 바치셨습니다.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는 오늘 칠석날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동참(同參)을 하고 그래 가지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그래서 집안 식구의 아픈 사람 병낫기를 바래시고, 또 아들딸 모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발원하시고, 사업이 모다 재수대통 하고, 관재구설이 없어서, 다 뜻대로 성취하시기를 바래고, 그런 크고 작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시고 모다 오신 분이 많으실줄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특히 세속에 사신 분들은 그러한 소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시고 오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반드시 그 소원은 이루어지시리라고 생각하고 또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알고 보면 참 이 조그마한, 이루어져도 그것이 큰 행불행(幸不幸)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이루어져 봤자 그때 잠깐 기쁘고 흐믓한 것뿐이요, 안 이루어져 봤자 그때 좀 안 좋았을 뿐이지, 지내놓고 보면 그 일이 되거나 안되거나 그렇게 나의 근본 행복을 위해서 또는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는 별것도 아닌 일인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우선은 그것이 꼭 이루어져야겠고 우선은 아주 긴박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조그마한 소원을 성취하게 위해서 오셨지만, 산승(山僧)은 여러분이 그러한 조그마한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래는 마음으로 간절히 부처님께 축원(祝願)을 해 드리고, 또 여러분의 그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은 큰 자비(慈悲)로써 반드시 그 소원이 이루어지시도록 가피(加被)를 내려 주시리라 생각이 됩니다마는,

산승의 원(願)으로서는 그러한 조그만한 원은 여러분 잠깐 마음속에 간직만 하시고 여기에 오셨어도 부처님은 이미 알고 계시고, 내가 간절히 여러분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바는 정말 영원한 행복을 얻을수 있는 그러한 소원을 이루시게 되길 바래고, 또 그러한 큰 소원 성취하는 방법을 일러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의 말씀을 드렸고, 이참과 사참을 통해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그 '업(業)의 뭉탱이'가 녹아져 없어져야 될 것이고 그리해야 참선을 올바르게 할 수가 있고 또 하루하루를 보람있게 사실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처음~41분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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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적하위망적하진~' ; [경허집(鏡虛集)] (명정 역 | 극락호국선원) '與永明堂行佛靈途中(영명당과 함께 불령을 가는 도중)' p224 참고.
*수명장수(壽命長壽 목숨 수,목숨 명,길 장,목숨 수) ;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삶. 어린아이의 명이 길어 오래 살기를 빌 때에 쓴다.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이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치성(致誠 이룰•이를 치,정성 성) ; ①하느님 이나 부처님 등 신적 대상에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다하여 빎. ②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산신(山神) ; 산신령(山神靈). 산을 수호하는 신령(神靈).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보신(報身)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세운 서원(誓願)과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몸.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후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지기(地祇) ; 땅을 다스리는 신령. 지신(地神).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상호(相好) ; 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팔고(八苦) ;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여덟 가지의 괴로움.
생(生)·노(老)·병(病)·사(死)를 사고(四苦)라 하고, 여기에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
*오온(五蘊) : [범] panca-skandha 또는 오음(五陰) • 오취(五聚)라고도 한다。범어 panca는 다섯이란 말이고 skandha는 덮인다·쌓인다·뭉친다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곧 인연으로 화합한 모임을 말한다.
①빛(色)은 물질인데, 우리의 육신과 우리를 싸고 있는 환경을 가리킨다.
②받음(受)은 우리가 환경에서 받는 촉감.
③생각(想)은 우리에게 접촉되는 대상에 대하여 분별하며 생각하는 것.
④움직임(行)은 접촉되는 대상에 대하여 미워하고 사랑하고 가지고 버리고 기뻐하고 골내는 것같이, 착하고 악한 것을 물론하고 마음의 활동을 말한다.
⑤알음알이(識)는 모든 일이나 물건에 대하여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집행하게 하는 마음의 주체이므로 마음 임금(心王)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다섯 가지는 물질과 정신의 전체를 통괄하여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망상으로 실다운 것인 줄 착각한 것일 뿐이다。실지는 다 인연 따라 꿈같이 나타나는 빈 것이다.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염병(染病) ; ‘장티푸스(腸typhus)’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2)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백팔참회(百八懺悔) ;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108가지의 모든 번뇌에 대한, 번뇌·업장소멸과 참회의 뜻으로 108배의 절을 하는 것.
*예배(禮拜) ; 거룩하고 성스러운 대상에 대하여 존경하는 뜻을 가지고 절을 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1 참고.
(五一)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身口意가  清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무수배례(無數拜禮) ; 헤아릴 수 없이(無數) 많은 절을 하여 예를 표함.
*찰나(剎那) : [범]  ksana  시간의 제일 작은 단위로 말한 것이다。하루가 648만 찰나라 하였는데, 지금 시간으로는 1초의 75분의 1에 해당한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업경대(業鏡臺) ;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가지고 있다는,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업경 혹은 업경륜(業鏡輪)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어 지옥에 이르면 염라대왕은 업경대 앞에 죄인을 세우고, 업경대에는 그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나며, 죄의 경중이 판가름나면, 그에 따라 가야 할 지옥이 정해진다.
*발원(發願) ; 원하는 마음을 냄. 원을 세움.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동참(同參) ; 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3. 10. 20. 15:23

§(세등46) ()없이 정진을 해야 / 다른 종교를 비방 말라 / 관심일법총섭제행 / (게송)청군앙면간허공~ / 여의고 찾지 않고 바로 그놈에 즉해서 화두 들어야.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정진을 하되 자기가 정진을 잘한 하고, 아주 의식적으로 자기 정진 잘하는 () 가지고 그러지를 말아라.’ ‘여법(如法) 정진을 하되 () 없이 정진을 해야 것이다.’ 이런 말씀도 계셨습니다.

 

해제를 하면 인연 따라서 걸망을 지고 어느 산천, 어느 계곡, 어느 모퉁이를 가더라도 걸음 걸음 옮길 때마다 염염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거각해 나간다면, () 속이 바로 입선(入禪) 시간이 것이고, 걸음걸음이 바로 선방(禪房) 것입니다.

 

신도 여러분들이야말로 출가한 스님네 보단 () 노력을 더해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오욕락 속에서 자칫하면 죄를 의식적으로 짓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짓게 되기 때문에 배의 신심을 돈독히 갖지 아니하면 후회막급(後悔莫及) 일을 당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1 1초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상살귀(無常殺鬼) 생각 생각에 우리의 뒤를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생각 늦추면 바로 무상살귀에 따라잡음을 당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세등46)

 

(1) 약 17분.

 

(2) 약 15분.

 

(1)------------------

 

옛날에 공자님이 사서삼경 가운데에논어(論語)’라는 () 있는데, 경의 첫머리에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워서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하냐.

유붕(有朋) 자원방래(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 벗이 있어서 데로부터 나를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되내가 이렇게 공부를 잘하고 도가 있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아니하되 성내지 아니하면 그것이 군자가 아니냐. 이러한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배워서 때때로 익힌다 하는 것은글을 배워 가지고 열심히 읽는다그러한 뜻이 아니라,

마음 닦는 공부를 배워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법희선열(法喜禪悅)! 정진을 가면은 거기에서 말로서 표현할 없는 기쁨이 있어. 그건 유교나 불교나 밖에 모든 예술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공부를 잘하면 물론 깨달음을 얻었으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하드라도 올바른 방법으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면, 자연히 데서! 그분이 그렇게 정진을 잘한다니 우리도 그분하고 같이 정진을 하자’ ‘그분이 정진을 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니 우리도 그분한테 가서 지도를 받고 공부를 하자이래가지고 데로부터서 많은 도반(道伴)들이 찾아오면 그것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 이건 유교나 우리 불교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마즈막에 가서,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되 성내지 아니하면 이것이 또한 군자가 아니냐. 유교에 있어서 군자(君子) 하는 말은 불교에 있어서 보살(菩薩)이라고 하는 말로 대치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정진을 잘하고, 내가 법력(法力) 있고 도력(道力) 있으되,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해.

요새 무엇을 잘하면 알아주기를 바래서 신문에 내고, 무슨 책에다가 발표를 하고, 라디오나 TV 방송을 하고 해서, 자꾸 요새는 자기의 잘하는 것을 만천하에 널리 널리 알려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알아주기를, 알아주도록 이렇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마는,

옛날 성현들은 구태여 자기를 알아 달라고 선전을 하지를 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해도 조금도 부족함을 느끼지를 했습니다.

 

성현들이 자기가 깨달은 진리법을 자꾸 설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양(宣揚) 하는 것은 자기를 알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바른 길을 사람이라도 알려서 지혜의 눈을 떠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기 위해서 중생들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자기 자신을 알아 달라고 그러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번을 청해야 법을 설하되, 법을 설해 가지고 사람이 알아듣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기뻐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깨닫지를 못한다고 해서 언짢게 생각하지를 말어라' 하셨습니다.

그러냐 하면() 없이 ()하기때문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마음을 내기때문에, 자기의 () 들은 사람이 알아듣고 깨달았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알아듣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해서 또한 언짢이 생각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되 성내지 아니한다 말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말이 것입니다.(3533)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정진을 하되 자기가 정진을 잘한 하고, 아주 의식적으로 자기 정진 잘하는 () 가지고 그러지를 말아라.’ ‘여법(如法) 정진을 하되 () 없이 정진을 해야 것이다.’ 이런 말씀도 계셨습니다마는, 계행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계행(戒行) 청정하게 지키되지킨다 () 없어야 참으로 사람이 율사(律師) 것이고, 정진을 하되 정진하는 () 없이 다못 여법하게 정진을 하되내가 정진을 잘한다 아주 거만을 빼고 그래서는 그것이 실다웁게 정진을 한다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교나 불교나 도교나 또는 밖에 어떠한 ()라도 그것이 참다운 길일진댄, 중요한 점에 있어서는 우리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른 종교를 비방하고 헐뜯고 그러지를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외도(外道) 지은 어떠한 신당이나 무슨 탑이나 그런 것을, 불자(佛子) 그것을 헐거나 파괴를 하지 말아라그러셨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헐고 뜯고 싸우고 그러지를 말아라하신 까닭은, 눈으로 보면 세계의 모든 법이 속에 포함이 되어 버린 것이며,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법신불(法身佛) 표현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구태여 그것을 때려부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맛 정법(正法) 우리가 믿고, 정법을 실천하고, 정법을 깨달라서, 정법을 선양(宣揚)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얼음을 깨고 부시고 그래 가지고 그것을 없앨랴고 것이 아니라, 봄이 돌아와서 태양이 빛나서 날씨가 화창하면 얼음을 뿌시고 칼로 쫒고 불을 피워서 녹일라고 하지 않아도, 제절로 얼음과 눈이 녹아 가지고 물이 되며 그것이 증발을 해서 천하에 잎이 피고 꽃이 피게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 일어나는 것을 그놈을 물리칠랴고 몸부림을 치고, 그놈을 없앨랴고 이를 악물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터억 화두만을 거각해 버리면은 번뇌와 망상은 자취가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3937)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하는 말씀이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 있습니다마는, ‘마음 관하는 법이 모든 행을 섭화한다. 포섭해 버린다.’ 바로 이러한 뜻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믿고 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뿌리를 해결지음으로서 가지와 이파리는 제절로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나무를 가꿀 때에 뿌리 닿는 곳에 좋은 흙이 닿도록 주고, 거기에 적당한 수분과 적당한 영양을 공급을 주면 제절로 줄기가 크고 가지가 번성을 하고, 거기에 잎이 피고 꽃이 피어서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뿌리에는 좋은 흙이 닿지를 못하고 뿌리에는 수분과 비료를 공급해 주지 아니하고, 이파리에만 매달리고 가지에만 매달려 가지고 아무리 그것을 키우고 헐랴고 한들, 뿌리가 썩어들어 간다든지 아무 영양이 없고 수분이 없다면은 잎에다가 아무리 약을 풍기고 손질을 한다 해도, 나무는 결국은 시들어 죽고 좋은 꽃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좋은 열매도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법참선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달마 스님이 천삼백여년 전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오시기 전에, 이미 수백 전에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경전이 들어오고 불상도 들어오고, 스님네도 들어오고, 그래서 중국에 많은 절도 세워졌고, 많은 강사도 나와서 활발하게 경을 연구하고 했습니다마는, 달마 스님이 백사십 세의 고령으로 중국에 건너오신 것은 바로내가 나를 깨닫는 최상승법을 위해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최상승법이 오늘 우리 한국에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한국에 모든 불자,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최상승법으로 지혜의 눈을 뜨게 하고, 나아가서는 세계에 최상승법을 선양을 해서 부처님의 본뜻이 온누리에 가득차게 되도록 우리는 해야 것입니다.(4319)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천육백 , 동안에 신라·고구려·백제·고려를 통해서 불교가 국교로서 숭앙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많은 불교문화재를 남기고 오다가, 이조 오백년 동안에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는 관계로 불교가 침체를 해서 내려오다가,

해방된 차츰차츰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불어나고, 지금 천삼백만을 헤아리고 있습니다마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가운데 불과 몇백 명을 넘지를 못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참선을 하되 참으로 올바르게 참선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은 같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드라도 올바르게 하지 아니하면, 차라리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한 것입니다. ‘호리지차(毫釐之差)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털끝만큼의 차이로 하늘과 땅으로 차이가 벌어져 버린다하는 것입니다.

 

지지리 옳게 가다가 마지막 중요한 고비에 가서 생각 삐끗 잘못하면제호상미(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이요.’

우유로 맨든 음식 가운데에 가장 맛있고 좋은 것이 제호()라는 약인데, 제호상미가 잘못 관리를 가지고 변해 버리면은 사람이 먹고 중독을 일으켜 가지고 죽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제호의 상미(上味) 독약(毒藥)으로 변한 거와 마찬가지여.

 

이렇게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만나서 실천하기 어려운 최상승법을 만나 가지고 실천을 하되, 생각 삐끗하면 사마외도(邪魔外道) 변해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를 가지고 화두가 순일(純一)해져 가지고 그럴 때에 생각 더디 의심하면,

거기서누가 나를 깨닫게 주었으면, 이럴 누가 나를 깨닫게 주었으면, 어서 깨달랐으면, 또는 이러한 상태로 영원히 갔으면이러한 생각으로..... (녹음이 끊김)(2954~4633)

 

 

 

 

(2)------------------

 

(게송 처음 구절 녹음이 끊김)

청군앙면간허공(請君仰面看虛空확락무변불견종(廓落無邊不見)

나무~아미타불~

약해전신사자력(若解轉身些子力)하면  두두물물총가옹(頭頭物物總家翁)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면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몸을 돌이켜서 아래를 쳐다보면 거기에는 산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도 있고 바위도 있고, 사람도 있고 짐승도 있고 벌레도 있고, 집도 있고 삼라만상(森羅萬象) 없는 것이 없이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달은 하나지만, 땅에 있는 모든 강과 호수와 모든 물에는 달이 수억만 개로 있습니다. 그릇에 있는 달은, 수억만 개의 달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거든. 하늘에 있는 달은 고대로 있으면서 지상에 있는 모든 강물과 호수와 모든 물에 달이 떠있다 그말이여.

 

달을 보고서 우리는 하늘에 있는 달을 수가 있듯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있는 온갖 경계를 통해서 우리는 볼래야 없고, 알래야 없고, 잡을래야 잡을 없는, 그놈을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 귀로 듣는 , 코로 냄새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뜻으로 있는, 온갖 희로애락과 행주좌와와 생로병사를심소(心所) 통한 백법(百法), 그놈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윤회(輪廻) 하고 있지만, 그놈을 여의고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학자는 여의고 찾지를 말아라. 여의고 찾을라고 데에서 길은 점점 멀어져 버리고, 짜증이 나고 시간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여의고 찾지 않고 바로 그놈에 즉해서 화두를 돌이킨다면 오늘 해제를 했다고 해서 조금도 마음 해이해지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해제를 하면 인연 따라서 걸망을 지고 어느 산천, 어느 계곡, 어느 모퉁이를 가더라도 걸음 걸음 옮길 때마다 염염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거각해 나간다면, () 속이 바로 입선(入禪) 시간이 것이고, 걸음걸음이 바로 선방(禪房) 것입니다.

 

앞으로 돌아오는 석달 동안, 지난 석달 동안보다도 훨씬 알뜰하게 단속(團束) 하고 화두를 거각해 나간다면, 지난 여름 동안 무더웠던 더위 속에서 닦고 닦은 힘이, 돌아오는 석달 동안에 정말 발휘가 되야서 반드시 지혜의 눈을 뜨게 납자(衲子) 생겨날 것입니다.(531

 

여름은 다른 해에 비교해서 후반에 상당히 더웠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더위를 무릅쓰고 그렇게 모다 알뜰히 정진들을 하고, 그렇게 해서 이렇게 한자리에 다시 모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무엇인가 깊은 뜻이 있음직한 그러한 얼굴로 자리에 다시 만나게 되니 기쁜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여기저기서 우절기에 결제(結制) 하고 안거(安居) 하고 해제(解制) 하면 한자리에 모여서 자자(自恣)회를 거행을 하고, 동안에 공부한 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를 반성을 허고, 서로 충고를 하고, 마음에 깨달은 바를 점검을 하고 이러한 의식이 엄숙히 거행되었던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부처님은 열반하셨지만은 거룩한 법은 오늘도 여전히 이렇게 전해 내려와서, 이렇게 한자리에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 만나서 최상승법을 설하고 듣고 이런 법요식을 거행하게 것은 이러한 다행스럽고 경행(慶幸)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법이 오늘도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증거며, 부처님의 법신(法身) 오늘도 살아계신 우리의 마음과 법계에 가득차 계신 것을 우리는 확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건한 마음으로항시 살아계신 부처님과 조사를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의 코앞에 항시 모시고 살고 있다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정법시대(正法時代) 것입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공부를 하시되 그러한 마음으로 공부를 가시고 생활을 나가신다면, () 있어서는 승속(僧俗) 없는 법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세속에 오욕락(五欲樂) 속에 몸을 담아 있으면서 바로 오욕락을 초월해서 공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요구하는 수행법이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출가한 스님네 보단 () 노력을 더해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오욕락 속에서 자칫하면 죄를 의식적으로 짓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짓게 되기 때문에 배의 신심을 돈독히 갖지 아니하면 후회막급(後悔莫及) 일을 당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에 공부하는 스님네를 위해서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공양(供養) 올리고 신심으로 받들어 모시고, 그러면서 여러분은 가정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시니 어깨에 , 내지 짐의 짐을 지고 정진을 하시느라고, 수고를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1 1초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상살귀(無常殺鬼) 생각 생각에 우리의 뒤를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생각 늦추면 바로 무상살귀에 따라잡음을 당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을 것이 없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할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생(多生) 숙연(宿緣) 있어서 최상승법을 만났으므로 다못 생각 생각을 그렇게 알뜰히 단속만 가면 지옥에 떨어져도 겁날 것이 없고, 불구덩이에 빠져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불이 훨훨 타는 가운데에서도이뭣고?’ 것이며, 지옥에 끌려가서도이뭣고?’ 든다면 마침내 최상승법은 모든 마귀(魔鬼) 이겨내고야만말 불가사의(不可思議) 힘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지기량(汝之伎倆)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여지기량(汝之伎倆) 유진(有盡)이어니와, 너의 기량(伎倆)—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아지불채(我之不采) 시무궁(是無窮)이다,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내가 너한테 끌려들어 가지 . 너한테 말려들어 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 영원이다 그말이여.

 

멋대로 한번 나를 유혹할라면 보고, 나를 갖다가 막을라면 막아 보고, 멋대로 해봐라 그말이여.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팔만사천 모든 경계(境界)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니가 그럴수록에 나는 오히려 화두를 거각할 따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해제 이후에 정진을 가다듬고 정진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원 백씨 복순 영가(靈駕) 자리에 초청된 법계(法界)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 고혼(孤魂)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오늘 법회의 법문을 듣고 이고득락(離苦得樂)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4634~613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마즈막 ; ‘마지막(시간상이나 순서상의 )’ 사투리.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 증득하는 .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 . ②가르침의 . 불법의 공덕. 보살의 위신력(威神力)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

*선양( 베풀널리 알릴 /오를나타낼 ) ; 명성이나 권위 따위를 널리 떨치게 .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일맥상통(一脈相通)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대상 간에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짐.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율사(律師) ; () ()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신봉자.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법신불(dharma-kaya 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 ;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의 법문을 기록한 선어록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2)

 

*(게송) 청군앙면간허공~’ ; [금강경오가해] 離色離相分 야부 게송 참고. *(넓을 ) *확락(廓落) ; 기개(氣槪) 크고 넓음. *(자취 ) *(적을 )

*가옹(家翁) ; 집안의 주인(主人). 주인공. 진리.

*심소(心所) ; 심작용. 마음의 움직임. 정신작용.

*백법(百法) ; 모든 현상을 가지 요소로 분류한 .

*단속(團束) ; 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납자(衲子 옷을 꿰맴 /사람 ) ; 남이 버린 옷이나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 자신을 가리킬 사용.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서 외출을 금지하고 안주하여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하고 끝을 해제(解制) 한다.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들어간다.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자자(自恣 스스로 /마음대로 ) ; 여름 안거(夏安居)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경행(慶幸 경사 /다행할 ) ; 경사스럽고 다행한 .

*정법시대(正法時代) ; 불법이 바르게 행해져 가르침과 수행자와 깨달음을 이루는 자가 있는 시기.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후회막급(後悔莫及) ; 이미 잘못된 것을 뒤늦게 뉘우쳐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귀신(鬼神)이라는 . ‘인간존재가 무상하다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

*숙연(宿緣) ; 전생(前生) 인연.

*이뭣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무엇고?(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

*여지기량(汝之伎倆)~’ ; 고봉 스님 [선요(禪要)] 示衆(其二) 천태(天台) 스님의 글로 인용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 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법계(法界) ; 전세계. 전우주. 모든 장소.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문상(問喪) 사람이 없는 외로운 .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누림.

 

Posted by 닥공닥정
거울 법문2013. 10. 5. 19:28

§(414) (게송)견색비간색~ /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은 자기의 얼굴 /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도에 들어가는 관문은 아상(我相) 깨트려야.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그것이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 경전 속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용414)

 

 

(1) 약 16분.

 

 

(2) 약 21분.

 

 

(1)------------------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있는 모든 색상(色相)—청황적백의 빛깔이나, 크고 작고 짧고 길고 하는 모든 모양이 그것이 () 아니여.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여. 모든 소리를 듣되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있는 것은그것이 색상(色相)이다. 저것은 집이요, 저것은 나무요, 저것은 바위요, 저것은 자동차다. 저것은 산이고 저것은 들이다 색상으로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그것이 푸르다 붉다 희다 검다 이렇게 그것에 대해서 자기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렇게 생각이 자꾸 생각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색상(色相) 색상(色相) 아니다』 이거거든. 중생은 그걸 보고색상이다하고 색상이라고 보고서 온갖 색상에 대한 알음알이가 일어나는데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소리를 들으면저건 애기가 우는 소리다, 자동차 소리다, 비행기 소리다, 저건 기계 돌아가는 소리다, 저건 기침 소리다 소리를 듣고서 소리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 생각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이거거든.

 

그러면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고, 온갖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온갖 색상, 온갖 소리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런데 거기에 걸리거든.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서보면 보는 대로 끌려 나가 가지고 그놈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무슨 소리를 들으면 소리라고 하는, 소리의 올가미에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다녀.

 

그런데 그놈에 걸리지 아니하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다. 친히 법왕(法王) 계시는 곳에 도달하느니라.

 

 

우리 앞에 보는 모든 , 눈으로 있는 , 귀로 들을 있는 , 코로 냄새 맡을 있는 , 손으로 만져 있는 , 생각으로 느낄 있는 , 전부가 그것이 제법(諸法)인데,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자기의 얼굴이여! 그것이.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

 

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정든 사람이 죽으면정든 사람이 죽었다 가지고 울고불고 슬픔에 잠기고 그것에 끝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일단은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의 죽음만 생각할 아니라,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알아야 한다.

 

그러한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소리와 모양을 보고서 전부 그리 끌려다니고, 일생을 그러고 무량겁(無量劫) 그렇게 내려오기 때문에 생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눈으로 보는 모든 색상, 귀로 듣는 모든 소리, 우리의 생각에 떠오르는 온갖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생각들,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거든.

우리가 ()하면은불법승(佛法僧) 삼보의 법하면은부처님과 법과 거룩한 스님은 삼보(三寶) 일체(一體)그러는데,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우리 눈으로 보면은 전부가 무상(無常) 것이고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생로병사(生老病死) 있고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어서 전부가 무상하고 허망하고 믿을 없는 뿐인데 그것을 어째서 거기다가 제법(諸法)이라 하냐?

그것이, 바로 그것이 법이기 때문에 법이라 그런 거여.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모든 삼라만상의나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런 () 있는 모든 동물, 무정물(無情物)—산천초목, 일월성진 그런 것들이,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이.

그것이? 그것은 법신불(法身佛)이기 때문에 그래. 법신불의 몸뚱이요, 법신불의 설법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있어야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 아니냐!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진진찰찰(塵塵刹刹)— 해나 달이나, 산이나 돌이나, 포기의 이파리나, 우는 새소리 이것이 진진찰찰인데 이것이 법신불(法身佛) 모습이요, 법신불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냐 하면 법신불은 『무설이설(無說而說)인데, 설한 없이 설하신 것』이 법신불의 설법인데 어떻게 설하시냐? 동시(同時) ()하시면서 동시에 듣는 거여.

 

포기의 풀도 간단(間斷)없이 법을 설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설법을 듣고 있어. 한덩어리의 주먹만한 , 좁쌀알 만한 모래알 하나하나라도 바로 위치에서 위없는 법을 설하면서 동시에 법을 듣고 계신 것이여.

설할 따로 있고, 들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 () 동시(同時).

 

이러한 도리(道理) 우리가 바로 깨달라야 것이다. 이러한 도리는 말이나 생각으로 구할 없는 것이여. 중생의 사량분별로 헤아려서 있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거여.

 

이러한 법문은 어떻게 하면은 그러헌 도리를 깨달을 수가 있느냐?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소리 듣자마자이뭣고~?’ 눈을 통해서 무슨 모양을 보자마자 바로 거기에 즉해서이뭣고?’

슬픈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기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붉은 것을 봐도이뭣고?’, 파란 것을 봐도이뭣고?’,  좋은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속상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모양을 보던지 그것을 듣고 봄과 동시에 그것을 인연해서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즉시이뭣고?’

이렇게 다잽이를 가면 마침내는 진진찰찰(塵塵刹刹) 설하고 들음이 동시인 법신불의 () 없이 설한 법문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신불은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수가 없다. 오직 보신(報身)이나 화신(化身)만이 우리는 수가 있다일반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초보의 단계에서는 그렇게 말할 밖에 없고 그렇게 말을 해야 이해할 있을 것입니다마는,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1633~3231)

 

 

 

 

 

 

 

(2)------------------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에 상관이 없고, 지식의 유무도 상관이 없고,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식이 있다고 뽐낼 것도 없고, 재산과 권리가 높다고 남을 업신여길 것도 없고,

공부를 나가는 최상승법에서는 첫째, 내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아상을 갖거나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으니도에 들어가는 관문이 아상(我相) 무너져야 하는 것인데, 아상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권리가 높다고 권리를 부리거나, 아무리 내가 재산이 많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는데, 그리고서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이뭣고?’ 화두만을 거각하고, 거각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어디에 아상(我相) 붙고, 아만(我慢) 붙고, 남을 경멸하는 생각이 잠시인들 어디가 붙을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읽고 외우고, 아무리 박사 학위를 수십 개를 가졌고, 모르는 것이 없이 세상의 학문을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잘났다, 내가 제일이다, 아상과 아만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짓밟고이러한 생각이 마음속에 있다면 정말 사람은 존경받을 없는 보잘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벼는 익을수록에 고개를 숙인다했습니다. 학벌이 높고 재산이 많고 권리가 높을수록에 아만심(我慢心) 없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남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어디를 가나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은 아만심과 아상이 가지고 목에 힘을 주고 있으면, 가는 곳마다 사람은 미움을 받게 되고, 아무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무엇을 많이 가지고 가야 시집가서 업신여김을 받고 그런다고 부모를 졸라서 기둥뿌리까지 뽑아 가지고 무엇을 잔뜩 가지고 갈려고 그러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니까 그러한 정도의 인간으로 밖에는 취급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절대로 귀여움 받고 존경받지 못합니다. 가지고 가는 것은 가정 형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리를 해서 빚을 내다가 가는 것도 옳지 못하고, 형편이 넉넉하면 잘해 가지고 가는 것도 좋지, 형편이 넉넉하면서도 쬐금 가지고 가고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여. 형편대로 하면 되는 거여.

 

곤란하면 곤란한 대로 가고, 넉넉하면 넉넉허니 가지고 가서 모다 선물도 하고 그게 좋지마는, 첫째는 가지고 사람도 그러려니와, 시댁에서도 그거 많이 것으로서 며느리의 점수를 매겨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형편이 어려운데 너무 많이 가지고 오면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미리서부터서 조금만 오라고 이렇게 주어야 하거든.

 

며느리가 누구입니까? 생전 사후에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식구로 사람이니, 바로 호적으로 들어와 가지고 나의 혈통을 이어갈 며느리니, 얼마나 소중하냐 그말이여.

어찌든지 자기 뱃속에서 딸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귀엽게 주어야 하거든딸은 자기 뱃속으로 낳지마는 결국은 자기를 버리고 신랑 따라서 사람이니까.

 

며느리는 비록 남의 뱃속에서 나왔지마는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나의 혈통을 이어주기 위해서 자식과 일심동체가 되어서 손자를 낳아 며느리니,

어쨌든지 처음부터서 그러헌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그러헌 마음으로 안아주면, 얼마나 시부모를 마음으로부터서 존경하고 친정 어머니보다도 좋아할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그러면은 아들 마음도 편하고, 시부모 마음도 편하고, 며느리 마음이 편해야 식구 마음이 편하고, 뱃속에서 나오는 손주 손녀도 이쁘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말이여.

 

포태(胞胎) 가지고 포태하기 전부터서 썩고 한탄과 원망, 슬픔과 괴로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애기를 포태를 하게 되면 애기가 절대로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포태한 뒤에도 계속 썩고 원망하고 슬픔과 원한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달을 지내면은 바로 애기가 그런 생각을 먹고 삽니다.

 

낳아 가지고 아무리 잘먹이고 입혀 봤자 뱃속에 있는 동안에 애기의 엄마가 썩고 원망하고 신경질 내고 미워하고 이러한 생각으로 되면은, 애기는 나중에 잘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 태교(胎敎)라고 그러죠.

 

가끔며느리시어머니말씀을 법상(法床) 와서 하게 되는데, 여러 보살님네나 거사님네, 아직 결혼을 청년이나 처녀들, 일단은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시부모를 모시게 되고, 자기도 얼마 가면 애기를 포태하고, 애기가 나서 자라면은 며느리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에도,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六百部) 경전 속에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이것은 도에 들어가는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속에 사는 데에도 아상 그놈 때문에 부부간에도 싸우게 되고, 며느리와 시부모와도 싸우게 되고, 형제간에도 싸우게 되고, 세계가 아상 그놈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마음을 비우고, 피차 자기 마음을 비우면 사람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 각자 마음을 주장을 하고, 의견을 주장하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그런 데에서 남의 의견은 무시하고 짓밟게 되니까,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념의 전쟁,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다 민주주의다 자본주의다하는 이념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를 않고, 앞으로 언젠가는 신앙의 종교의 싸움이 있으리라고 진즉부터 그런 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이념의 전쟁이나, 종교 신앙의 전쟁도 한마디로 말해서 아상(我相) 때문에 그런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세계로 도약할 있는 그러한 오천 역사에 처음 맞이하는 그러한 세계에 도약하는 그런 좋은 계기를 맞이했으면서도 아상(我相),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그러한 좋은 도약의 계기를 살려나가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노사의 관계가 공장, 회사의 경영자나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어찌 따로따로 남이겠습니까?

사장이 공장을 지음으로 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거기에 직장을 얻어 가지고 일을 하게 되고,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잘함으로 해서 회사가 잘되어야 사장도 사업이 번창을 것이고, 아무리 노동자가 일을 할라고 해도 회사 자체가 문을 닫고 망해 버리면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고,

다같이 피차(彼此)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관계이면서 어찌 자기 쪽만 생각하고 웬수처럼 미워하고, 자기 욕심만 챙겨 가지고서야 어떻게 회사가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정부와 백성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백성이 세운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백성을 위해서 모든 일을 잘해야 것이고, 백성은 정부가 잘되어갈 있도록 모두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열심히 함으로 해서 나라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져야 우리나라가 잘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역시 나라고 하는 아만(我慢), 아상(我相) 놈을 비움으로 해서 그것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아만(我慢) ‘내가 제일이고 내가 나만이 옳다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의사나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화가 통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항상 사람이 얼굴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듯이, 해방 40 년이 지낸 동안 똑같은 민족이면서 체제가 다르니 만큼, 교육제도가 다르니 만큼, 이념이 다른 만큼, 많이 차등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고, 체제가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단군(檀君) 후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38(三八線)이라고 하는 선이 가로막혔다 하드라도 남북이 우리 나라인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만 하고, 다시는 민족끼리 싸우는 일이 없어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부터 아만심 먼저 꺾고 아상을 꺾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있고, 상대방을 도와줄 수도 있고, 대화할 있는 길도 트이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가 옳다. 속담에방에 들어오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나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그러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겠지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해 가지고서는 대화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은 아상(我相) 꺾느냐? 분별심(分別心),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이뭣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이뭣고?’ 먼저 !

이뭣고?’ 먼저 터억 챙기고 나면처음에는 어렵지만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해도 저절로 챙겨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무엇이고 항상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집으로 오고, 직장으로 집으로 오고, 항상 그렇게 댕겨 버릇한 사람은 직장에서 나와 가지고 술을 잔뜩 먹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다시피 그래도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냐 하면, 많이 길을 다녔기 때문에 술이 만취가 되어 가지고 전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집을 찾아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꾸이뭣고?’ 하면, ‘ 된다 하지 말고 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뭣고?’ 챙겨.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은 나중에는 챙길려고 해도 저절로 챙겨지는 거여.

! 눈에 무엇이 들어왔다 하면이뭣고?’ 먼저 나오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하면은이뭣고?’ 

 

나중에는이뭣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를 아니해. 수백 수천 명이 북실거리는 시장 바닥에 가서 있어도 아무것도 보여. 하나도 시끄럽지도 않고.

 

그래서 옛날에는 공부하시던 도인들이 일부러 요중 공부(鬧中工夫) 시험해 보고 익히기 위해서 장날이 돌아오면은 점심밥을 가지고 장터에 가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가서 어디 한쪽에다가 방석을 하나 놓고 가만히 앉아서 정진을 하고, 점심때가 되면 그놈 까먹고, 그러고 저물 때까지 하다가, 장이 파하면은 토굴에 돌아와서 공부하고.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고 그럽니다.

 

화두, 아까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3232~532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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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莊嚴淨土分, 야부 게송 참고.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울고불고 ;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법신불(dharma-kaya 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영장(靈長) ; 영묘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 티끌. () 산스크리트어 kṣetra 음사. (), (), ()라고 번역. 국토. 세계. . 장소. 영역.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세운 서원(誓願)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報身, 化身)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2)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아만(我慢 /거만할·게으를 )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오온(五蘊)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 지혜를, 바라밀(波羅蜜)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 줄임말이다.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 뜻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내용이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아애(我愛)자아에 대한 애착심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치(我癡)자아(自我)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 환인(桓因) 손자이며 환웅(桓雄)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아사달(阿斯達)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단국(檀國) 세워 2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38(三八線)2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 815 맥아더가 발표한일반명령 1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요중 공부(鬧中工夫)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공부.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