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발심자경문(초심)2023. 1. 12. 19:23

•§• 초심(7/7) (暫伏還起~切須勉之)(끝) - 전강선사(No.151)

**전강선사(No.151)—초심(7/7)(暫伏還起~切須勉之)(끝)(임자72.08.19) (전151)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약 37분.

 


잠복환기(暫伏還起)가  여격일학(如隔日瘧)이라
일체시중(一切時中)에  직수용가행방편지혜지력(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잠복환기(暫伏還起)가, 잠깐 동안 엎드려져서 복종했다가 도로 일어나는 것이, 망상이 조끔 쉬어져 있다가, 조끔 안 날 때도 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격일학(隔日瘧)이여. 그 멀쩡헌데 그 아무 병 없다가 뜻밖에 병이 나가지고는 그만 죽네 사네 '아이고! 머리야' 하고 누워서 앓고 하루 쉬면 허고 헌 그거, 그와 같여. 이놈의 망상 일어나는 방법이.

뉘기나 다 그러지, 점잖다고 안 일어나는 법 없지. 겉으로는 점잖은 척 아무 망상 없는 것 같지마는 속에는 똑같아, 모도 그려. 일체 풀을 모도 베 놓으면은 그놈 움이 다 나지, 도로 나지. 이것 중생의 망상이라는 것이 아무리 해야 일어나는 법이여.

그러면 그 망상 일어나는 그놈을 대치허는 공(功)이—그놈을 대치혀. 언제 그 망상 일어날 도리가 없이 만들아. '이뭣고? 이뭣고?' 자꾸 그러기 따문에 '이뭣고?'를 그놈을 가지고 대치를 허거든. 그저 '이뭣고?'
그러면서도 망상만 대치해서, 망상만 안 나게 만들어서 일체 망상이 없는 것이 참선공부가 아니라, 그것은 또 망상만 안 나고 그대로 그만 아무 무념(無念) 무사(無思) 중에 빠져 있으면 그건 목석이나 토목이나 저 무정물(無情物) 같은 것이지, 그 뭐 소용이 있는 건가.

그러고 그것만 가지고는 뭣에다 써? 나중에 도로 그만 또 일어나는데, 또 퍼 일어나는데. '이뭣고?'가 없으면 또 일어날 것 아닌가.
'이뭣고? 이뭣고?' 늘 '이뭣고?'를 해서 '이뭣고?' 그놈이 또 허고 또 허고 또 허면 거그서 필경 뭣이 그 일어나느냐 하면은, 필경에 의단독로(疑團獨露) 허는 알 수 없는 그놈만 찾기 따문에 그놈만 다루기 따문에 그 알 수 없는 일체 망념이 거가 일어나지 못하지마는 일어나는 곳도 없고.
그 별로 그놈이 안개처럼 일어나는 것이 어디가 종자(種子)가 있어서 백혀서 뭐 뿌럭대기가 있어서 난 것이 아니라, 그까짓 것 그만 저절로 어디서 일어나들 못혀.

'이뭣고? 이뭣고?'만 자꾸자꾸 잡드리를 해서 그만 그놈이 또 허고 또 허고, 하루 허고 이틀 허고, 1년 허고 2년 허고, 그저 10년 허고 20년 허고, 죽드락까장 안 되면 또 죽은 후에 몸 받아 또 허고.
태중(胎中)에서도 허는 거여, 태중에서도. 하도 익혀 싸서. 견성(見性)은 못했으면 화두(話頭)만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도 뱃속에서도 허는 거여, 배꼽 밑에서도. 태중에 들어앉아서도 허는 거여.

그러니 그 '이뭣고?'가 그렇게 한 번 두 번 생각해서 그 뭐 사이사이 망상이 퍼 일어나니깐 그놈이 안 된 것 같고, 오늘 해보면 더 망상 나고, 내일 해보면 더 난 건 더 나고, 꼭 벌집 땡비집 쑤셔 논 것 같이. 그러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놈을 내던져 버리면, 안 해버리면 안 돼.

그렇게 허면 또 그저 일어나면 또 그저 그 화두를 챙기고 챙기고, 그 도대체 나를 내가 몰랐으니 그 의심(疑心)이 안 날래야 안 날 수도 없고 항상 의심이지. 모르니께 모른 것이지. 모른 놈이 고놈이 항상 있지. 항상 '뭐냔 말이여?'
그게 공부 참선인데, '의심, 의심' 허니깐 의심이 별다른 것이 의심인 줄을 알고는 자꾸 '의심이 안 난다' 허지. 모르면 그대로가 의심(疑心)인데, 그럼 아는가? 그 알면 그 어떻게 생겼난 말이여, 한번 일러보지?

꼭 격일학(隔日瘧)같이 학질같이 그렇게 밤낮 일어나는 법이니깐 그까짓 것을 한바탕 그저 항상 막망상(莫妄想)해 번지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제대로 두어 버리고, '이뭣고?'만 그저 항상 '이뭣고?~'

그래서 그놈을 꼭 헐 때 앉아서만 허는 것이 아니라, 감서 옴서 일체 때 가운데, 직수용가행방편지혜지력(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을 써라. 바로 모름이 방편 지혜의 힘을 더 써라. 지혜, 지혜의 힘 지혜, 지혜스러운 힘.
지혜라는 것은 내가 나를 깨달지 못하면은 필경 그 미(迷)해서, 미헌 것은 어따 비유할꼬? 눈깔 먼 봉사가 천일(天日)을 일월을 보지 못허듯기 그렇게 된 것이며, 안개가 꽉! 끼어서 눈앞에도 보이지 않는 그러헌 경계며, 우리 중생이 이렇게 온 곳이 있건마는 온 곳이 이렇게 깜깜허며, 가는 곳이 있건마는 갈 곳을 알 수 없으며, 당장 가지고 말하지마는 말하는 이놈이 이렇게 알 수 없으며, 오늘 일은 지내간 일은, 닥친 일 지내간 일은 겨우 보고 알기도 허고 허지마는, 뭐 내일 일, 그만 그저 미래 일 하나 모른단 말이여. 깜깜하지.

그러지마는 그렇게 썽도 그렇게 낼 수 없고, 그 무슨 별별 짓을 다하고, 도둑질 같은 거 악한 짓 같은 거 별 꾀는 다 나고, 아! 그런 것이 그것이 그 도대체 그 뭣일 것인가?
또 어질라면 한량없이 어질고, 사람같이 어진 사람이 어디 있나? 넘을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허고, 악할라면 그렇게 악할 수 없어. 사람을 찔러 죽이기도 허고. 아! 이런 놈의 것이 그것이 세상에 내 몸뚱이 속에 들어 있는데 아! 그놈을 그걸 그 항상 그저 반조(返照)해서, 항상 '이뭣고?' 해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조사 조사관(祖師關)이 다 그것이니까. '이뭣고?' 그것이 조사관인데, '판치생모(板齒生毛)‘는 조사관 아닌가? 알 수 없으니께. 판때기 이빨에 털 났으니까.

그래도 그 조사관이란, 조사 화두 조사관이라는 것은 고놈이 다 까닭이 있어서 판치생모란 거 고렇게 다 되는 것이지, 아무 때나 뭐 된 것이 아니니까.

맥혀도, 알 수 없는 것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알 수 없지 뭐. 원소를, 뭐 뭐 무엇을 한 번 생각해 보지, 뭐 아는 게 뭐 있는가? 모도 이름을 붙여 놓았지, 그 이름 붙이기 전에 무엇이겠는가? 일체 명상(名相)이 없을 때는 그 무엇이겠는가?
허니까 그것이 다 조사관, 알 수 없는 조사관은 관(關)이지마는 허는 화두(話頭)가 다 따로 있으니까, 따로 다 있는 고인(古人)이 맨들아 논 화두. 고인들은 왜 그렇게 모도 깨달아가지고 무수(無數) 성현이 났는데, 우리는 왜 또 깨달지 못할 것인가!

그 지혜도 내가 죽으면은 무간아비지옥에 떨어지면은 무량고(無量苦)를 받고, 당장 사람 몸뚱이가 되아가지고도 전겁에 닦지 못한 죄인지 이렇게 눈깔이 멀고, 이렇게 말을 못허고, 고자가 되고 이런고? 문둥이가 되고, 지랄병을 허고, 모도 그런 것이 되았는고? 그런 거 살필 줄 아는 것이 지혜(智慧)여.
아! 그러기 땀세 '꼭 해야겄구나! 안 허면 안되겄구나! 결코 해야겄구나!' 그건 지혜의 용맹, 용맹심, 가행(加行)이여. 더 행한다 그 말이여. 고놈을 가행을 한다. 꼭 허고 꼭 허는 가운데에도 가행을 해라!

허다 말다가, 헐 것인가 말 것인가, 믿었다가 말았다가, 고까짓 것이 참선인가? 꼭 해야 하고, 가행을 해라. 그 가운데에도. 이렇게 쉽게 된 말이 아니여. 그것도 방편(方便)이다. 그 방편이지 그것이 무슨 뭐. 그놈을 가자(假藉)해사 반다시 견성(見性)을 허리라.
흐리허니 몽롱허니 그럭저럭 들어와서 오늘 내일 하루, 그 짓이 무슨 짓일 것이냐? 천하를 다 준들 뭣 하며, 천하를 다 가진들 뭣 하며, 필경 이 몸뚱이까지 내버릴 것을. 그런 데 가 처백히지 말고, 이러헌 지혜의 방편을, 방편의 힘을 써라.

그래서 통자차호(痛自遮護)라. 매우 스스로 막아 두호(斗護)를 해라. 그런 매우, 매우라는 거는 결정코 그 못된 마음 항복 다 받고. 게으른 마음, 하기 싫은 마음 그건 마군(魔軍)이니까, 기어니 못허게 맨든 못된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졸이 고것인께 고.
팔만사천 마군, 그게 망상(妄想) 아닌가? 번뇌 망상이지 망념, 모도 그것이 시시때때로 그놈이 바꽈 들입대 처밀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사후, 사후를 허니까, 항상 사후를 혀. 기달고, 못허게 맨들고, 마음을 밖으로 모도 흩어지게 만들고.
그놈을 매우, 아주 매우 스스로, 매우 스스로는 내가 차호(遮護)를 해라. 막아서 두호를 해라. 그것이 어디 올 겨를이 있나? 고 화두 하나 가지고.

기가한만(豈可閒謾) 유담무근(遊談無根)이냐? 어찌 가히 한만(閒謾)되게 한만한 뜻을 가지고, 한만한 말을 가지고, 한만한 행을 헐 수가 있냐? 한만(閒謾)이 그것이 '한가할 한(閒)' 자, '업신여길 만(謾)' 자. 남 비방이나 하고, 남 말이나 하고, 뭐 쓸데없는 말이나 하고, 허지 않을 행동이나 하고, 고렇게 지낼 수가 있느냐?

그래서 모도 유담무근(遊談無根)해서, 무근(無根)헌 말을 모도 자빠져 놀면서 넘의 유담무근이나 하고, 뿌럭지 없는 말이나 모도 맨들어서 그렇게 허고 허상천일(虛喪天日)이냐? 헛되이 천일(天日)을 보낼 수가 있겠느냐? 그 좋은 천일, 날마다 하루씩, 하루씩 그 하루 천일이 얼마나 귀중하고 참 소중하냐!

벌써 오늘도 오늘로부터 곧 이 오늘 하루가 얼매나 소중하냐! 그날 하루만 용맹스럽게 또 해 나가도, 아! 그날 하루에 얼마나 이익이 있느냐?
화두가 그 자리가 잽히드래도 잽힐 수가 있고, 화두가 그래도 어저께보담 오늘 훨씬 수월한 지경이 올는지도 알 수가 없고, 또 홀연히 그건 오늘 깨달을는지도 알 수가 없고, 아! 그런디 그 하루를 허송하냐? 오늘 하루를 허송할 수가 있겠느냐?

욕기심종이구출로재(欲冀心宗而求出路哉)냐. 이렇게 헛되이 만약 지내 가지고는 심종(心宗)을 바르고저 허지마는, 견성해서 견성종통(見性宗通), 견성해 가지고 종통(宗通)까장 막 헐라면은 거 참 기맥히지마는,
종통을 해 버리면은 인자 그건 아주 보림(保任)까장 다 되어서 천하에 모를 것이 뭐가 있으며, 천하에 도무지 무슨 뭐 못헐 것이 뭐가 있으며, 무슨 생사(生死) 죽고 사는 생사가 있으며, 세상에 참 요사장부(了事丈夫)지, 일 마친 장부지. 그밖에 없는데 그렇게 귀중한 이 도(道)를 안 할 수가 있겠느냐?

심종(心宗)을 바래고저 허고, 견성헐라고 도 닦을라고 들어오기는 해서 헐라고는 허지마는 구출로재(求出路哉)냐? 무슨 출로가 있겠나? 언제 그런 심종을 한번 통해서 그런 때가 있겠나? 고따구로 지내 가지고, 고따구 출가해 가지고, 고따구 정진, 고따구 것 가지고 출로(出路)가 있겠나?

단견지절(但堅志節)해라. 다맛 뜻! 뜻을 기가 맥히게 간절히 참! 한 일념(一念)도 놓지 말고, 방념(放念) 말고 해 나가는 것이 그거 절개(節槪)다. 그 절개를 좀 가져라. 학자 절개, 도학자(道學者)의 절개를 가져라.
밤낮 그따구로 그따구로, 그날그날 헛되이 또 오늘 또, 내일 또 헛되이 허고. 기가 맥히다. 이 천일(天日) 이 날 헛되이 보낸 거 기가 맥히다. 그 좀 절개를 가져라.

책궁비해(責躬匪懈)해라. 그 몸뚱이에 게으른 것을 그걸 이겨라. 그놈을 한번 몸을 꾸짖어서, '네 이놈! 더러운 놈아 이놈아! 똥포대 짊어지고 이렇게 게을기만 하냐' 흐리해 가지고는 그 몸뚱이 그 게으른 놈 수용해 주니라고, 대접해 주니라고, 그저 허기 싫고, 그저 누워 자고 싶고, 가서 기어이 자야 하고.
좀 용맹스러워서 책궁(責躬), 게으른 그놈을 나무래라, 막 벼락을 내 가지고는. 그 게을치 말아라. 해태하지 말아라. 부지런헌 게 천하제일이다. 도 닦는 게 오직 부지런해야 닦는 거다.

지비천선(知非遷善)해라. 그리고 또 나쁜 것을 항상 알아서 선(善)으로 옮겨라. 항상 착해라.
다맛 천하 만물 가운데, 천지 만물 가운데 어진 것이 사람이고, 사람이면 어질어야 한다. 사람이면 헐 일만 꼭 해야 한다. 사람이 어찌 사람 노릇을 못하겠느냐, 꼭 사람 노릇을 해라. 헐 일만 꼭 허고, 자신 부끄럽지 않은 짓만 허고, 양심에 그저 항상 '아, 내가 이만 했으면 잘했지' 내 양심이 항상 무슨 책(責)이 없이, 가책(呵責)이 없이 고렇게 똑 해야 한다.

또 자올고 앉았지? 그만 꾸벅꾸벅 자올고 앉았는 거 꼬라지 보기 싫어.

개회조유(改悔調柔)해라. 항상 생각을 고치고 부드럽게 골라라. 그것 고치면 성현이고, 그 못된 거 그 버르정머리 그런 나쁜 거 고치면 선인(善人)이고, 세상에 그러한 참 최귀(最貴), 가장 귀여운 인물이다.

근수이관력(勤修而觀力)이 전심(轉深)이다. 부지런히 닦으면은 그래서 그렇게 부지런히 애써 닦아서 관력(觀力)이 전전(轉轉)이 깊어지면, 아! 늘 닦으니까 깊어질 밖에 없지.
그놈 망상 번뇌는 처음에 그리 뒤끓다가 물, 확탕(鑊湯)에 그게 팔팔팔팔 끓다가 냉수 찌끌면 푸르르 가라앉데끼 한 번씩 화두를 다잡아 야물딱지게 그놈 거각(擧却)을 떡 허면은, 물 펄펄 끓을 때 냉수 한 바가지 퍼붓는 것처럼 어디 간 곳도 없지.

연마이행문(鍊磨而行門)이 익정(益淨)이다. 또 허고 또 허고 자꾸자꾸 허면은 그 공부해 나가는 태도, 자태, 그 모도 연성(鍊成)을 연마(鍊磨)를 해서 그 행(行)하는 문(門)이 잘 단련하고 갈아서 잘 닦으면 그 행문(行門)이 더욱 조촐혀. 깨끗 깨끗하게 이렇게 닦아 나가 보아라, 날마다. 얼마나 재미가 나고 참 도문에 들어온 것이 얼마나 다행한가?

생각을 좀 해봐라. 오늘 무슨 짓이 날는지, 그만 이 시간적으로서 뭔 짓이 날는지.
삼계(三界)는 화택(火宅)이니, 이 세상은 불집이니 인생의 무상고화(無常苦火)가 인생의 이 고화(苦火) 고통불이 사면구분(四面俱焚)이다. 사면에 타 들어오지 않느냐? 사방 타 들어온다.
무슨 놈의 우리 인생고(人生苦), 무슨 놈의 활살이 들어올는지, 총살이 들어올는지, 난리에 죽을는지, 귀신이 잡아갈는지, 무슨 지진이 올란지, 염질(染疾)이 올란지 무엇이 올란지 알 수가 있나? 별별 것이 다 이놈 목숨 끊어 잡아갈라고 한 것 밖에는 없다.

그러헌즉 장기난조지상(長起難遭之想)해라. 좀 난조지상(難遭之想)을 한번 일으켜라. 길게 좀 그 난조지상을 일으켜라. '어쩌다가 내가 사람이 되았노?' 그거 무서운 말이여.
맨 동물 · 연비충(蜎飛蟲) · 괴기 떼 · 귀신 중밖에 없는데 그것이 숫자가 사람 숫자 몇, 뭔 그까짓 억조(億兆)가 뭣인가? 억조 밖에 모르지. 억조 밖에 뭐 억조 밖에도 경(京), 뭔 십경, 백경, 천경이 있고, 해(垓), 십해 백해 뭐 천해가 있고, 굉장한 숫자, 수학이라는 건 어디 있는가? 수학은 다함이 없어. 숫자박사는 수학박사는 없지? 도무지.
그 많은 숫자 가운데에 사람 그 뭐 몇 낱개 거, 세계 사람 다 세 봤자 숫자에 나와 있는 거 그거 뭐 밥알에 뉘, 손톱 위에 흙, 그거 비유헐 수 없지.

그놈의 속으로 모도 들어가지. 밤낮 동충 동물은 밤낮 모도 그 음교만 음행(淫行)만 허는 것들, 그만 그리 음행만 허면 되는 거인게 그놈의 것이. 가서 모도 알이 되고 모도 씨가 종자가 되니까.
모도 그런 데가 붙어 가지고. 이놈 영(靈)이란 큰가, 그 영이? 영이 뭐 허공만 할라면 허공만 허고, 겨자씨만 할라면 겨자씨만 허고, 눈에 보일락 말락도 허고, 이놈의 영이란 게 어디 뭔 뭐 그런 무슨 상(相)이 있어야지. 뭔 뭐 없는 상이 있나? 있는 상이 붙어 있나? 일체상이 다 없는데 뭐 그거 어디 가서 못 붙어? 들어붙으면 그만 내가 가서 헌 대로 되어 버려.

이 신령스럽게 이 아는 요놈, 요놈이 어디 안 붙은 곳이 없네, 망상 일어나드끼.
망상도 그 일념지간(一念之間)이란 그놈 그 일념(一念)은 역사가 얼마나 오래된 일념인가, 원 역사도 없는 일념인가 알 수 없지마는 '일념 중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일어난다'고 했으니 곧 일어나면 생각해 봐. 그저 일어나면 그저 미국 대국, 미국 그저 무슨 청국 무슨 뭐뭐 저 뭐 세계가 그저 그대로 안 일어나는가?

허니 그놈의 디서 사람 몸뚱이 하나 받아 나온 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이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뚱이를 얻어 만났느냐?' 그 난조(難遭)의,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뚱이 얻기 어려운 생각을 한번 지어봐라.

도업(道業)이 항신(恒新)이요. 도업이 그러면 항상 새롭다. 도밖에 닦을 게 없구나. 도업이 물러가는 법이 없다. 그만 도업이 자꾸 나온다. 점점 믿어진다. 점점 그밖에 없고. 누가 나를 도 닦으면 너 죽인다한들 안 닦아?
좀 해. 안 닦아져? 어찌 도업이 안 닦아져? 도업(道業)이 항신(恒新) 좋아, 항상 새롭고.

상회경행지심(常懷慶幸之心)을 한번 해 봐라. 항상 경행(慶幸)한 마음을 한번 품어 봐라.
'어쩌다가 내가 이런 참 장부(丈夫)의 사람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이 문중에 들어왔느냐? 이 도문중(道門中)에 들어와서 이 법을 알았느냐?'
뭐 행(幸)도 아니다. 도저히 믿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어쩌다가 내가 이 마음이 낫냔 말이여, 이 도 닦을 마음이 났어? 이 도문에 들어와 이 도학자가 되었느냐 말이여.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나 없나 좀 해봐. 그런 경행(慶幸)한 마음을 품으며 난조지상(難遭之想)을 항상 지어라. 항상 지어라! 그저 날마다 지어.

종불퇴전(終不退轉)허리라. 그 마음이 항상 있어야사 네가 물러가지 않으리라. 그 마음 없으면 한 해 해봐 안 되아, 몇해 해 봐 안 되아, 그럭저럭 그만 지내가. 발심(發心)켕이는 해태심만, 놀 마음뿐이여.

세상과는 떨어져—그동안 세상에 있었으면 무슨 직업이나 붙들어서 해 나가는 일이 있으련만, 이 사자오입(使自悟入) 허는 짓이 노는 짓밖에 없고, 잠자는 짓밖에 없고, 밤낮 뒷방에서 그저 앉아서 무담이나 하고 그저, 그럭저럭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산산수수 방방곡곡 그 무슨 기절경처(奇絶景處)나 찾아댕김서 밥 주면 또 밥은 얻어먹으니까. 밥은 또 주네. 하! 이거, 이렇게 지내봐라. 그거 타락이다.

그 짓을 했으니 네가 그 놀고 퍼먹고 돌아댕기면서 그렇게 뻘로 지냈으니 너의 미래의 네 수업과보(隨業果報)가 숭악하지.
배고픈 지경이 기가 막힌 지경이 아귀떼 중에 가서 인자 그런 보(報)를 받을 것이며, 거 또 그러고 돌아댕기면서 모도 지은 시은(施恩)이 있으니 그놈의 시은 갚을라니 육축(六畜)에 들어가서 개도 되어가지고 집도 지켜 주고, 돼지가 되어가지고 괴기 덤벵이 줄라고, 그놈 뚱뚱 살쪄 가지고 넘 멕여 줄라고 숭악한 것 그거나 처먹고 누웠다가 그런 짓을 헐, 그런 더러운 과보가 있으니 그걸 어찌 생각지 못하느냐? 도학자들이여,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러헌 마음을 가져야사 물러가지 않지. 항상 이러헌 만나기 어려운 상(想), 경행(慶幸)한 마음을 품어야사 물러가지 않고, 여시(如是) 이와 같이 오래오래 헐 것 같으면은 자연, 자연 절로 되는 것 도밖에 없어. 자연, 절로 그만 도업(道業)이 원명(圓明)혀.

도업이 차차차차 원명해져서 견자심성(見自心性)이다. 내 심성 바로 본다. 내가 내 심(心), 내 마음 모냥다리가 그대로 나와 보인다.
그 상도 없고, 일체상도 없고, 일체 이름 명상(名相)도 없고, 그 아무것도 거기에는 아는 것이고 모르는 것이고, 무슨 유(有)고 무(無)고, 비유(非有)고 비무(非無)고, 무슨 허공(虛空)이니 비허공(非虛空)이니 그런 상도 아니고, 그대로 보이는 놈이 있다.
누구한테 말할 것이냐? 부처님도 깨달아가지고는 넘한테 도무지 전해줄 수도 없고, 그 눈치로 밖에는 못 보이여. 이러 이렇게 떡 허면 그만 알아 버리고 그냥 봐 버려. 그 답 들어보면 알어. 허지마는 보일 수 없어. 견자심성(見自心性)이여. 심성(心性)밖에는 볼 것 없어. 다른 거 암 것도 없어.

용여환비지(用如幻悲智)해라. 그때 가서는 환(幻)이다마는—모도 환(幻)된 일이고, 위타위기(爲他爲己)가 나를 위허고 남을 위허고, 뭐 선허고 착허고 모도 그러헌 것이 개시환(皆是幻)이여. 뭐 그 무슨 뭐 환(幻)인들 뭐 허지마는, 슬픈 지혜를 환(幻)을 써서, 그러헌 환(幻), 그러헌 방편을 수단을 써서 어쨌든지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남을 기어니 깨달게 만들고, 남을 기어니 위해서 도문에 벗어나지 않게 허고, 항상 어쨌든지 발심(發心)을 해서 도 닦게 그러헌 마음을 가져야사 그것이 이타주의(利他主義)다. 그 이타주의가 어디 있냐?
그 나만 살고 넘은 죽으란 말이냐? 우리 사람은 그런 법이 없는데, 우리는 사람도 아니고 도학자(道學者)다. 도학자가 그럴 수가 있겠나?

도학자는 또한 나를 깨달아가지고 저 사람을 깨달게 만들아 주는 것이 그것이 그만 우리의 견성학자다. 견성 대도 학자가 나를 위허고 남을 위허는 법이지. 내가 또 깨달아서 내가 얻어야사 남을 인자 그렇게 알려 가르쳐 주지, 내가 없으면 어떻게 헐 것인가?
헐 수 없으니 자리(自利)를 해 가지고 이타(利他)를 해야지? 나는 또 이렇게 이만큼 발심을 해서 도법(道法)을 알았으니까 그래 들어와 도 닦는 게 아닌가? 다 싫어하고 미워한 응, 안 믿으니 뭐 알 수가 있나.

환도중생(還度衆生)이여. 그래서 중생을 제도해야 혀. 그래서 인천(人天)에 큰 복전(福田)을 지어라. 하늘과 이 사바세계에 제일가는 복전을 지어라.
남을 위해서 도를 통해서 그렇게 생사에 뛰어나게 만들어 주니 그것이 복 아니냐? 그런 복을 지어야 헐 것이 아니냐? 뭐 그 복 가지고 그만 복만 나만 받으라는 게 아니라, 그런 중생제도허는 것 그것이 대복(大福) 아니냐.

절수면지(切須勉之)어다. 내가 이렇게 해 준 말을 듣고만 잊어버리지 말아라. 절수면지해라. 간절히 모름이 힘써라. 참말로 힘을 써서 이렇게 똑 해 가야 할 것이니라.

처음에 들어온 마음, 자꾸자꾸 물러가지 말아라. 자꾸자꾸 좀멕이지 말아라. 좀 하나 멕이지 말고 점점 발심(發心), 발심이 증대해서 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허기를 바란다.

「초심(初心)」 끝나. 초심 법문이 이렇게 그 참 좋은 법문인데. (처음~37분20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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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심(6/7) (如是乃可能生正信~鍊磨而行門益淨) - 전강선사(No.150)

**전강선사(No.150)—초심(6/7)(如是乃可能生正信~鍊磨而行門益淨)(임자72.08.17) (전150)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약 19분.

 


차신(此身)이 진여행(眞旅行)인데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면  사군불사군(思君不思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신(一身)은 진여행(眞旅行)이다. 참 이 몸뚱이라는 것 잠깐 얻어다 나왔다마는 진짜로 이것 참 여관(旅館) 일숙(一宿)이여. 뭐 틀림없어. 객창(客窓)에 와서 하룻밤 자는 것이여.
내 본체는, 내 본집은 어따가 두고, 객지에 이렇게 만리 객지에, 몇만 리 객지에 이렇게 나와서 한 여인(旅人) 숙(宿)을 허고 있냐? 왜 이 여인(旅人) 숙(宿)을 헐까 보냐? 인생 일생이라고 허니까 아! 무슨 제법 아주 역사가 있는 줄로 믿고 있어?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다. 만사(萬事)는 부운(浮雲) 뜬구름이여. 천만사(千萬事)가 거 구름이여. 금방 있다 그저 가버리는 거여. 생각해 보아.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에, 이렇게 그만 잠깐 서로 왜 이까짓 이 몸뚱이 이별해 버린 뒤에는, 군사불사군(君思不思君)이냐. 아무리 무슨 찾아보고 아무리 무슨 뭐 함 만나볼래야 막무가내지. 없어.

이 몸뚱이 다시 만나? 요 몸뚱이 어떻게 만나? 요 썩어버렸는데 고만인데, 똑같이 생겨 나올 수 있나?
고런 것을 애착을 해 가지고는, 내 것이라 해 가지고는 누가 조금만 그 진심(嗔心) 폭 내고, 그것 참 그 게을러서 그만 그놈의 고까짓 것을 그렇게 더럽게 애끼고, 아! 그저 못 애껴 죽는구먼. 조금도 하기 싫고.
그저 그놈을 때려 부려서 그저 병 안 날 만큼 그저 부려먹어야지. 그래서 자비로 몸뚱이 보시해서 아주 모도 여러 대중 이익을 모도 올리고 그래야지.


이와 같이 정신(正信)을 내서 항상 도(道)! 도만 꼭 도를 생각 낸 것이, 도(道)로 회(懷)를 허는 것이 그 회(懷), 항상 '이뭣고?'냔 말이여 '이뭣고?' 그 도만 항상 생각해서 조금도 해태(懈怠)가 없이 잘 해 가야 한다.

비롯함이 없이 익혀 내려온, 그 처음이 없이 여태까장 과거에 살아오면서 익힌 놈의 죄업이, 그 에치(恚癡)가 지은 놈의 그 어리석은 죄업이 솜 같아서 솜, 옷에 넣어 입는 그 솜 한덩어리 같아서 똘똘 뭉쳐져 가지고, 가늘은 그 가늘어 그 가늘어서 그 털끝 같은 놈이 꽉 드리 쟁여져 뭉쳐 가지고는 의지(意地)에 가서 그만, 내 뜻뿌리에 가서 육근(六根) 그 뿌리에 가서 절렸다. 뗏뿌리 절리듯기 꽉! 절렸어.

아! 그래 놨으니 그놈의 몸뚱이가 게으른 마음만 나고, 허기 싫고, 넘의 거 얻어먹기 좋아하고, 넘 모략하기 좋아하고, 나쁜 짓 허기만 좋아하고, 넘 생명 죽이기 좋아하고, 그놈의 습기(習氣) 따문에, 서로 잡아먹을라고만 고렇게만 익혀 나왔기 땀세 조금도 없어지지 않는다. 항상 그놈이 막 내 육근 뿌럭때기에 꽉! 처백혔다.

잠복환기(暫伏還起)가, 조금 '아이고 안 해야겄다'고, 그 잠깐 그놈이 없어졌다가 굴복됐다가 환기(還起)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금방 일어나 그저 그만. 금방 없어지자 일어나.
일어나는 것이 마침 격일학(隔日瘧) 같다. 격일학이란 건 하루 쉬면 또 그놈의 병이 나오고, 또 하루 쉬면 병이 나고 저녁때마다 아픈 거 있지? 초학(初瘧)이라고. 고런 것 같다 그 말이여, 비유컨댄. 그보덤 백배 더 허지마는 격일학(隔日瘧) 같여. 금방 굴복되었다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그놈의 것 참 억지로 못하지?

일체시중(一切時中)에, 일체 때 가운데 그저 어쨌든지 때를, 그놈을 일체를 다 행주좌와(行住坐臥) 때를, 그놈을 다 허비허지를 말고 직수용가행방편지혜지력(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해야, 바로 모름이 더 가행(加行)을 허고 그 애써 방편(方便)을 더해서 지혜의 힘을 써라.

그렇게도 처백혀서 그만 못 견뎌서 죽지 못해 사는 것처럼 게을디, 그 게을러서 나온 병이여, 본래. 그 게으른게 그러지 달리 안 그런 거여. 아무리 일어나기 싫고, 먹기 싫고, 오직 해야 글씨 먹기가 다 싫을까? 께을 맞아서.
그러면 영 조져대야. 그 신세 조진 것이여. 살림도 못 살고 거그는. 마을에 가 살면 문도 하나 못해 달고 문도 없네. 방 문 한 쪼가리 못 바르고. 가난허디 가난해 가지고 천하에 못쓸 것이여.

그러니 그 방편지혜지력(方便智慧之力)을 얼른 써서, 아! 그놈을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뭐. 또 쓰고 또 쓰고 쓰면 자꾸 부지런해지고 신심이 나고. 그 가행(加行)할 마음이 더 나고. 신심도 한량이 없어.
그러헌 가행(加行) 지혜력(智慧力)을 써서 통자차호(痛自遮護)라. 매우 스스로 막아 두호(斗護)해라. 매우, 아주 참 절대, 조금도 남김이 없이, 철두한 마음으로 네가 네 마음을 꾸짖어서 막아 두호해라. 그놈을 잘 두호를—그렇게 안 해야지 그래서는 못쓴다.

꼭 신심(信心)과 참 부지런한 마음이래야 되지, 신심이 부지런한 마음이 신심이여. 부지런한 마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어. 이런 디 들어와서도 그저 어쨌든지 내가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하고, 넘 허기 싫어서 아주 못헐 걸 내가 기어니 해내고, 그놈을 기어니 참 성취를 성공을 허고, 아 이래야 되지.
아 게을러 빠져서 몸뚱이 하나를 죽어도—그 몸뚱이 하나 끌고 댕길 만한 힘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얼매나 더. 앉았다 일어날 만하면 되지, 얼매나 더?

기가한만(豈可閒謾) 유담무근(遊談無根)이냐. 어찌 가히 한만(閒謾)해서 그럭저럭 아무 마음 없이 그럭저럭 한만해서 유담무근해야, 그 놀면서 그저 그 가만히 자빠져서 잠이나 자고 놀면서 무근(無根)을 말해서, 아무 뿌럭대기 없는 근거 없는 말이나 하고. 뭐 뭐 헐 말도 못하고 근거 없는 말이나 배끼(괜히) 아무 쓰잘데없는 말헌다 그 말이여.
꼭 필요 있는 말 한마디 묻고 답하면 뿐이지, 뭐 이러고저러고 어쩌고어쩌고 그저 근거 없는 말을 왜 해? 내 그런 말 못허게 허지.

허상천일(虛喪天日)이냐. 헛되이 천일(天日)을 보낼까 보냐. 헛되이 조끔이라도 천일을 보낼 수가 있냐.
누웠더라도 그놈부텀 챙겨 가지고 누워야지. 잠이 그놈 푹 들어오면 얼른 일어나 또 앉아야지. 되게 고달프면은 그러기라도 허지마는 그러 않고야 어떻게 생사바다를 뛰어날 것인가? 건널 것인가? 죽고 사는 생사바다를 어떻게 넘어 건너며, 어떻게 그 뛰어넘을 것인가? 좀 해 되겄느냐 그것이?

무량겁으로 여태까장 생사(生死)만 받고 앉았어. 또 가, 그리 또 들어가. 이런 어리석은 중생 보소.
왜 출가를 했냐 이 말이여. 이 출가한 게 어떠허냐 그 말이여. 좀 생각해 봐. 천일(天日)을 허상(虛喪)할까 보냐.

욕기심종이구출로재(欲冀心宗而求出路哉)냐. 심종(心宗)을 버리고 출로재(出路哉)를, 삼계(三界)에 뛰어나는 생사해탈허는 도를 바랄 수가 있나? 그 심종, 내 마음 깨달은 것밖에 없는데 내 심종을 버리고 어떻게 생사바다를 뛰어날 것이냐?
내 심종(心宗) 하나 깨달은 거, 마음 하나 깨달은 거, 그것이 어렵기야—설찬히 가지고 있는 것이지마는, 내가 갖춰 있는 것이지마는, 그놈이 어렵기는 어렵다마는, 신심만 불퇴(不退)허면은 천하에 어려운 것이 조금도 없다.

꽉! 믿고 닦아 나가면 전전(轉轉)이 순일하게 정직한 마음뿐이고, 자비심뿐이고, 그게 발심(發心)이고, 신심이고, 어진 마음이고 그 화두(話頭)여. 다른 게 아니라 화두여. 심종(心宗), '이뭣고?'여. 출로재(出路哉)가 어디 있겠느냐? 그 꼭 심종, 내 심종 하나다.

단견지절(但堅志節)해야, 다맛 뜻 절개를 굳게 해라. 그 뜻 절개를 그걸 보통 허지 말고 굳게 한번 가져라. 여지없이 맹렬한 용맹을 다해라.

책궁비해(責躬匪懈)해라. 그 게으른 그 몸을 꾸짖어서 게을치 말아라. 항상 그려. 그 게으른 것이 그 차라리 그게 독사, 구랭이가 될라고 그러냐? 그만 이놈을 꾸짖어!
그 몸뚱이를, 천하에 그 더러운 몸뚱이를 그렇게 애착해 가지고는 놀라고만 하고, 게을기만 하고, 천하에 못쓴 것이여. 해태굴(懈怠窟)이 제일 못쓰구먼. 도 닦는 데는 해태굴이 제일 못써.

지비천선(知非遷善)해야, 그른 것을 알아 가지고—그 거의 다 그런 것이니깐, 그른 것을 알아 가지고 좋은 선(善)으로 옮겨서, 어쨌든지 옮겨서 자꾸 고쳐 나가는 것, 참고 고쳐 나가는 거, 그게 사람 가치라.
잘못함이 누가 없어? 그만 고쳐, 그저 고쳐, 고쳐 나가는 거.

'그까짓 놈의 거. 귀찮해, 더럽고, 추하고 에이, 퇴속이나 할밖에 없다'고. 마을에 가 살아보지? 그거 그거 마을에 가 살아봐 또 인자. 더 못 사네. 아이고! 이놈 또 중노릇 갈라고 또 허네.
이놈이 절에 와서 절 못 살고, 또 속가 퇴속하면 더 못 사네. 빌어먹게 되어 가지고 그만 나중에 그만 바가지나 차고 댕겨서 밥 얻어다 놓고는, 그저 이[蝨]가 몸에 들썩들썩한 놈 이도 못 잡네. 게으르니께 이도 못 잡아. 그놈 뜯기고 앉았어. 이게 모도 이 지경이지.

개회조유(改悔調柔)해야, 생각을 잘 고쳐서 부드럽게 해서, 유(柔)허게 해서, 유허게 골라서,
근수이(勤修而), 부지런히 닦으면은 관력(觀力)이 전전(轉轉)이 깊다. 부지런히 닦아 봐라. 관력이 자꾸 깊어지지 않는가, 커지지 않는가?

관력(觀力)이 점점 커지고 그것이 모도 인자 분심(憤心) 신심(信心)이 뭉쳐져서 그 화두 관(觀)하는 관력이, 의심(疑心)이 커지니 부지런해질 밖에 있는가? 아주 부지런해지고, 더 믿어지고, 더 허고 싶고, 못해서 한(恨)이고.
연마이행문(鍊磨而行門)이 익정(益淨)이니라. 연마하면 이렇게 자꾸 연마를 해 나가면은 공부해 나가는 행문(行門)이 점점 조촐해지고 더 깨끗해지고 더 허고 싶어. (처음~18분32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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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심(5/7) (智學成菩提~纏綿意地) - 전강선사(No.149)

**전강선사(No.149)—초심(5/7)(智學成菩提~纏綿意地)(임자72.08.16) (전149)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1) 약 28분.

 

(2) 약 29분.



(1)------------------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이  비희일침몽(悲喜一枕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언각회수(無言却回首)허고  산정백운중(山頂白雲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생몽(人生夢)이다. 사람의 꿈이다.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이 서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흩어지는 인생의 부부 내외간이든지, 자식지간이든지 모두 그 취산(聚散)이여. 모여졌다가 흩어져 버리는 것이여.
어디 그게 꼭 내 남편이며, 어디 그 꼭 내 마누라며, 내 자식이며, 어디 그 한 그저 잠깐 동안 뭔 인연이 그 뭐 모여져서 남편이니 마누라니 자식이니 허지, 그것이 무엇이여? 꿈 아니어?

그 10년 취산(聚散)이—10년이 될는지, 원 20년이 될는지, 5년이 될는지 그 취산이, 뭐 남편이니 마누래니 자식이니 아들이니 손자니 허지마는 그놈의 취산이라는 것이 그거 10년 꿈이여. 10년 꿈, '10년을 지낸들 꿈이라' 그 말이지.
10년 더 가기도 허고 그저 7~80년 되기도 허지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모여져서 죄만 짓기로 마련이거든, 그 화택 중생(火宅衆生)은. 우리는 화택 중생 아닌가?

날마다 가지고 있는 몸뚱이가 무상고화(無常苦火)가 사면구분(四面俱焚)이다. 무상(無常)한, 항상 함이 없는 고화(苦火)가 고통 불이 자꾸 타들어 와. 매일 그뿐이거든. 그것을 항상 생각해야 도인(道人)이여.
무상고화(無常苦火)가 사면구분(四面俱焚)헌데 인생취산(人生聚散)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지. 한바탕 봄꿈이여.

무언각회수(無言却回首)해라. 말없이 머리를 선(禪)으로 돌려라. 참선(參禪)!
그 인생 문제, 인생 해탈, 인생 생사 없는 그 도(道)를 찾아라. 헐 수 없다 그밖에는. 그밖에 찾는 길이 없고 그것밖에는 닦는 법이 없으니, 그밖에는 별 천만 가지를 다 해 봤던들 꿈이여.

쌍가마를 타고 무슨 허공에 잠을 자고 별짓 다 한들, 좋으면 뭣 혀? 일시 좋았다가 그만 그 또 나쁜 일이, 좋은 것만치 나쁜 일이 있음사 하지마는, 한번 좋으면 좋은 가운데—가령 그 좋고 맛있고 그 놀고 그 모도 그것이 방일(放逸)허고 그것이 죄인데, 모두 남의 목숨 그놈 잘 찢어서 먹고 그 좋아서 히히 하고 놀고 춤추고 야단치고, 맨 오락이라는 것이 그 죄 짓는 것인데.
먹어야 모도 놀고, 시은(施恩)을 지어야 놀고, 좋은 광음(光陰)을 허송해야 놀고, 맨 그 짓하다가 죄 받기는 고 짓 천배 만배 잠깐 진낙(塵樂), 인간의 그 티끌 속에서 낙(樂) 받은 그 억만 배를 그 악도(惡途)에 떨어져 받는다 그 말이여.

목숨 하나만 죽여도 죽인 건 잠깐 동안 죽였건마는, 나는 몇천만 번을 당허니까—"네 이놈, 살생을 헌 놈이니까 너 좀 받아 봐라" 허고는 몇천만 배를 받으니까. 낙시고인(樂是苦因)이냐? 즐거운 것이 고(苦)의 인연(因緣)이다. 괴로운 것, 고(苦) 받을라고 짓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악도에 떨어질라고 짓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것을 생각해라.

그래서 말없는 선(禪), 말없는 참선, 도(道)에 들어서 그 참선을 허는데 항상 백운중(白雲中)에, 저 백운 걸린 데, 항상 그 도 닦는 처소에, 도 닦는 방에 그 모도 그 백운중이여, 산중이고. 그 시끄러운 데를 피해서 고요한 데 앉아 지내는 것을 백운중이락 햐. 그렇게 똑 지내라.


공부를, 참선하는 사람이 제일 요긴한 것이 있다. 제일 요긴한 것은 법문(法門)이다. 법문이거든. 그 법문 들을라고 참 도 닦는 사람은 천하에 그 옳은 법문 한번 들을라고 기맥힌 것이여.
믿지 않는 사람은 그 뭐여, 그까짓 법문이 뭐여? 그 뭐. 노래 한마디 듣는 것만도 못하고, 좋은 얘기 한마디 듣는 것만도 못허지. 법문이 뭣이여? 귓가에도 들어오지도 않지. 그런 건 우(愚)니까. 타락우치(墮落愚癡)여. 우치에 떨어져서 죄 짓는 죄인이여.

그래 지학(智學)은, 지혜학은 법문이 소중하기를 기가 맥히지. 세상에 법문을 안 듣고야 알 수가 있어야지. 법문을 들어야 도행(道行)을 허고, 법문을 들어야 도를 닦고, 생사해탈허는 거 아닌가?

주법인(主法人)에. 우학(愚學)은 성생사(成生死)요. 어리석게 배우는 것은 생사의 죄만 짓는 것이니, 이렇게 인자 지학(智學)은 보리(菩提)허고 지학은, 지혜스럽게 배우는 것은 생사해탈 대도(大道)를 배우는 법이고, 이러하니 우리는 생사해탈도를 배우는 거 아닌가? 지학 아닌가? 지혜스러운 학자, 혜학자 아닌가?

주법인(主法人)에, 저 법 설(說)하는 주법인에, 법 설하는 주법인이면 지끔 오늘로 말하면 '나'지.
여기에 법(法)을 주법을 가진, 법을 가지고 설하는 조실 스님에게 법문하는데 경박상(輕薄想)을 내지 마라. 개벼이 개벼운 상을 짓지 마라.

'법문 그 뭐...' 그러니 잠밖에 올 것 없지. 벌써 법문 들을 때, 태도 보면 알거든. 반연(攀緣)을 허든지, 반연은 법문 들으면서 뭐 벽을 보든지, 사람을 쳐다보든지, 옆에 사람을 찝쩍거리던지 그거 반연이여. 그런 놈에 반연 경박상(輕薄想)을 가져? 경박상을 내지 말아라.

인지어도(因之於道)에 유장(有障)하야, 인(因)해야 도(道)에 장애가 되어서. 제 도에 장애가 되어, 제 도에. 제게 장애가 되어, 제게. 다른 사람께 아무 관계 없어. 법 설한 이에게도 관계 없고 똑 제 도(道)에, 저 도(道) 닦는 데 장애가 되아. 제일 해로워. 인(因)해야 저 도에 장애가 되어서.

그 장애 되는 것, 유장(有障)이여. '맥힐 장(障)' 자, 도에 맥혀 버려. 도는 소용없어. 불능진수(不能進修)다. 진수(進修)치 못한다. 도를 닦지 못하는 법이여.
법문을 벌써 듣기 싫어허고, 법문만 설허면 자고, 반연이경(攀緣異境)하고. 그 무슨 놈의 법문만 허면 슬무시 잠부텀 자고. 그 무슨 놈의 도여? 도 닦을 것이여, 그 사람이? 그러니 보면 알어. 대중 중에 따악 벌써 보면 옳다! 대번 보여. 절수신지(切須愼之)니라. 그 참 크게 삼가이 해라. 그렇게 허지 말아라.

논(論)에 이르되, '그 설(說)헌 것을 그 설허는가 보다' 그러지마는, 보이는 대로 설허지.
논(論)에 이르되, 이거 필요헌 말이거든. 논(論)이라는 것은 논설, 모도 부처님의 경율론(經律論) 그렇지 않는가?

논에 말씀허기를, 어떠헌 죄(罪) 진 사람이, 도둑놈이 횃불을 잡고 가거든 도둑놈 횃불이라고, 도둑놈이라고 그 횃불을 따라가지 아니허면 구렁에 떨어져 죽으리라. 아무리 도둑놈이고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횃불만, 불만 있거든 따라가거라, 밤중에. 그래야 광명(光明)을 따라가지, 안 따라가면 빠져 죽는다.

도인(道人)이, 도(道) 있는 도인이 아무리 도는 있다 하드래도 사람이 나빠. 사람 다르고, 사람 성질 다르고, 도 다른 것이여. '도인이니깐 좋다' 소용없어. 도인도 방정맞은 도인이 있고, 암만 도는 있어도. 그러니 영아행(嬰兒行)이라니까. 어린아 행이여. 오직 해야 도인을 어린아라고 했어.
도만 있으면 점잖을 줄 알고, 똥도 안 누고 오줌도 안 쌀 줄 알았어. 우리도 그런 줄 알았지, 어릴 때. 그게 아니어. 개벼운 사람은 개볍고, 무거운 사람은 무겁고, 그 도인의 성격이 달러.

혜월 스님은 그렇게 참 투철헌 도인이라고 다 한국에 그랬지마는 밤낮 솔방울, 그것도 그 부지런해서 그러지마는 방태를 짊어지고 솔방울 낭구를 어떻게 잘 올라가는지 냉기에 올라가서 솔방울은 다 따온다, 불 땔라고. 또 방에 들어오면은 놀들 못혀, 한시도. 그렇게 부지런혀.
밤낮 신 삼아서—평생에 당신 신 삼아? 당신 신을라고 삼아? 안 삼아. 똑 대중 신 삼아서 앞에 놓고. 모도 허는 짓이 모도 불때서 방 따숩게 맨들라 허고. 허는 짓이 대중 위해서 허는 것이거든. 내 몸보담도 스님네를 더 위한, 더 위한 몸이거든.

양식(糧食) 농사(農事)진다고, 밤낮 중방내 가 '농사지어서 우리 선객(禪客) 양식 헌다'고. 통 자기는 몰라. 자시는 것도 자기 잡숫는 것은 그만 그저 모르고, 똑 대중만 그렇게 위해서 한시도 안 노시지. 도인(道人)이 그런단 말이여. 그런 게 잘못 본 사람들은 그 '솔방울을 다 따? 신을 다 삼고?'

농사진다고 논두렁에 가 서서 모도 그 모도 이렇게 꽂고 저렇게 꽂고, "느그 이놈들, 잘못헌다 이놈들"
돈은 신도가 한 만 원쯤 넣으면—그때 돈 만 원 줬어. 그때 돈으로 만 원이면 지금 일 억은 될 것이여. 모도 신도가 모아서 스님 잡숫고 도 닦으시라고 준 걸 갖다가, "아! 내가 그 뭣 혀?"

말키 중방내 가서 논 친다고, 그 논을 넨장 그 산에다 갖다가 논을 쳐 놓으니 물이 어디서, 물 그놈 그 논에까장 오도록 그 산을 파서 산골짝 물이 내려오도록 헐라면은 인부가 당초에 말할 수가 없는데, 아! 그놈을 들이고는 이놈도 돈 쑥 빼주고 저놈도 돈 쑥 빼주고 그저 뭐...

그래가지고 농사지어 백만 원이나 들여서 논을 파 가지고 농사지어 놓으면, 나락 한 두어 다발 나오면, “봐라! 이 나락이 어디서 나오겄냐?” 돈 백 만원 들어간 건 생각도 안 하고, 나락 두어 다발 나온 것 보고 “이거 봐라!” 그런 이여.
아 그렇게 도무지 그 무심혀. 도인행(道人行)이라는 게 그렇게 어리석어. 도행은 그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영아행(嬰兒行)이여. 어린아행이여. 그런 모도 타산적(打算的)이, 내 생각 낸 건 조끔도 없고.


광명 안 따라가면 떨어져 죽는다. 문법지차(聞法之次)에, 법문 들을 때 여리박빙(如履薄氷)이여. 엷은 얼음 디디고 선 것 같이 딱 정신을 고루아서, 엷은 얼음을 디뎠으니 깊은 물에 엷은 얼음을 디뎠으니 그저 상신실명(喪身失命)이 착인데, 잠깐 푹 빠져 죽어 버려.
금생에 결코 이 참선허는 법을 배워서 결코 옳게 들어 가지고 알아 닦아야사, 얼음이고 지랄이고 뭐 빠져 죽고 뭐 없지. 다시 그 정직한 마음으로 도만 닦아 나가면은 견성(見性)은 못하더라도 얼마나 행실이 정직하고 도 닦는 사람이—항상 내가 말하지 않아? 십중대계(十重大戒)가 항상 있어. 그저 항상 '이뭣고?'만 찾으니 그 사람이 뭐 어디 죄지을 수가 있는가? 그 가운데에 그 몰리몰리 그 죄 짓고 속이고 그런 건 말할 것도 없고.

경허 큰스님 같이 훌륭하게 깨달은 이라도 가다가 그만 여자 젖퉁이를 가서 그만 드리 만지다가, 아! 그만 쫓아오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가네. 그런 어른이다니.
그 '키 큰 이가 사람 죽였다'고 소문이 다 안 났는가? 그렇다고 경허 스님, 아니라고 어디 헌가? 사람 죽였으니—도인의 비방은 그렇게 나.

아이 하나를 데리고 댕기네. 어린 시봉(侍奉)을 데리고 댕겨. 쪼끄만헌 어린 시봉을 데리고 댕기니까, 시봉을 데리고 저 갑산 재를 넘어가시다가 도둑놈을 만났어. 그 어린것을 끌고 가야 헐 것인데, 어린것 그거는 열 칠팔 살 먹은 놈이, 아직 숨도 덜 찬 놈이 어디 그렇게 걸음이 빠르도 못하고 둔한 놈인데, 그놈은 내던져버리고 당신 혼자 그만 산을 올라서 넘어서 그 도둑놈을 피했단 말이여. 화적(火賊)을 피했는데, 그때 당시에 화적이란 건 굉장했는데.

아! 도둑놈이 인자 가다가 그 쪼끄만헌 놈이 가다가 말 내면, 인자 즈그 '화적 그리 지내갔다'고 허면 즈그에게 큰일나니까 어린놈을 그냥 나무에다 똘똘 묶어 논께, 딱 묶어 버렸은께, 아! 이놈이 그냥 살 수 있는가, 산중에서? 그 죽었지.
옴폭 둘러썼지. '당신이 살인냈다'고, 아! 살인냈다고 둘러써 잡으러 그만 사방 그만 역졸(役卒)이 그때는 역인데, 역인이 잡으러 막 나와서 사방 송경허(宋鏡虛)를 찾는데 그만 그길로 간 김에 멀리 가 버렸지.

저 황해도(함경도) 갑산(甲山)을 들어가서 머리 길루어 버리고 속인 되어가지고는, 그때쯤이야 뭐 그 가 숨어버리면 그만이지. 속인 되어가지고 담뱃대 한발이나 되는 놈 하나 맞춰 가지고 잡숫고, 아이들 글이나 가르키고 이러다 돌아가셨어. 도인 생애가 그렇다 그 말이여.
어디 당신이 죽였나? 그 무슨 그 도둑놈이 죽였지마는 당신이 죽인 걸로 옴빡 둘러써 '사람 죽였다' 소문 다 나고. 별 소문 다 났지.

그 경허 스님 법문이라는 건 말할 수도 없고. 그 경허 스님이 중흥조여. 그리 거룩한 도인(道人)이라도 아!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말이여.
도인이라도 항상 그 위태로운 곳은 들어가는 법이 없고, 난방(亂邦)을 다 피허는 법이고, 그런 일이 있으면 피해서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고, 도인일수록에 더욱 몸을 조심해서 잘 가지고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여. 도(道)가 어디 전입전심(轉入轉深)이지. 전전(轉轉)이 더 깊고 더... 해 갈수록에 더해 가는 법이지.

그러헌 도인이, 훌륭헌 도인이 별 행(行)을 다 나투는 것이여. 팔십일[八十一] 행이 있는데 다 모도 고런 짓을 도행(道行)이라고 했다 그 말이여.

그러면 그렇게 되지도 못헌 것이 건방구지게 나와서 고런 행동을 허네. 고것은 망작무애(妄作無碍)의 행이여. 망령되이 걸림 없는 도둑놈의 행을 참말로 짓는 것이고, 참 고약한 죄를 짓는 놈이고, 남을 속이는 놈이여. 도(道)도 없는 것이 인자 또 고런 행동을 허네. 그 어디 도인이면 왜 그런 행동헐 것인가?
도인이 유시호(有時乎) 그런 행을 해서 사람에, 그 도학자(道學者)에 그 다루는 법이 있어. 그러니 '저놈 도를 닦을 놈인가 못 닦을 놈인가' 그럴 때 한 번씩 다뤄보는 그런 것이 뭣이 있는 법이다 그 말이여. 어디 또 도인이라고 다 그런가? 그럼 도인이 뭐 그런 81행만 하게, 나쁜 행만 하게?

도인이—홍도 비구! 구랭이 되어 가지고 이놈이 눈을 뜨고서는 '내가 홍도 비구인데 죄를 짓고 이놈의 몸뚱이 받았다' 모도 이러헌 권행(權行), 이러헌 권행이라는 것은 '봐라, 이런 것을 봐라' 그 말이여. '느그도 좀 봐라' 그 말이여. '죄짓고 나같이 된다' 이 말이여.

소가 되아 가지고도 “아! 이놈아 나도 아무 때 아무개 것 갖다 먹고 소가 됐다 이놈아, 너도 갖다 먹고 나처럼 될 것이다” 이래 모도 법문해 주는 일, 그거 도행(道行)이여. 아 세상에 위산 스님 같은 도인이 없는데, 위산 스님 “내가 죽어서 내가 넘의 것을 많이 먹었으니, 갖다준 것만 먹었으니 소가 되아 수고우(水牯牛)가 되아서, 물소가 되아 물에 소가 되아서 논 갈아주고 밭 갈아주고 내가 인제 그럴 것이다” 돌아가신 뒤에 참 대체 소가 됐지.
되어서 뿔따구에다가서 위산승(潙山僧)이라 쓰고, 협하서자(脇下書字)에 협하, 갈빗대 밑에 위산승(潙山僧)이라 써 가지고 나왔다 그 말이여.

소[牛]인디 위산승이라 했거든. 당신이 미리 말하고 가서, 당신이 미리 내가 위산승이 되지마는 소가 된다. 아 대체 그 시가(施家)에 그 너무 많이 갖다준 그래서 먹은 그 시가(施家)에 가서 큰 황소가 되어가지고 논을 갈았지?
그래서 법문은 당신이 그랬지? 돌아가실 때, "그때 내가 만약 소가 되어 나오는데 나를 갖다 '위산승'이라고 하면 소가 아니고, '소'라고 하면 위산승이 아니니까 한번 일러 봐라" 고 공안(公案) 한번 일러 봐라.

소라고 해도 아니고 위산을 잃어버렸고, 위산이라고 해도 소를 잃어버렸고, 소라고도 말고 위산이라고도 말고, 위산 · 소 둘 다 다 아니라고도 말고, 거 소용없어. "거 어디 바른 답 한마디를 해 봐라" 거 못했네, 그런 것 다 공안이여.
그러면 그 양구(良久)를 혀? 아무 말도 안 혀? 그 아무 말도 안 하면 못 이른 거지, 뭐 죽은 놈이 소용 있어?

그것 다 바로 보면 참, 소되면 뭐 상관이 있으며, 뭐 가서 물 논에 가서 소가 되어가지고는 논 갈아주면 뭐 조꼼도 그 무슨 거 뭐 지위가 붙어 있나, 지위가 떨어져 있나, 무슨 '소다. 더럽다. 추하다' 허는 것이 붙어 있나. 남의 논 잘 갈아주고, 농사 잘 지어주고, 마음대로. 그거 해탈(解脫)이여. 바로 해탈이여. 바로 생사 없는 그대로 해탈이여.

우리 참선법은 여의고 있는 거 아니어. 다 쓸어버리고 깨끗한 게 아니어. 정추(精麁)가, 정이나 추나 아무리 더러운 똥이나 정추가 일체여. 참으로 추도, 더러운 똥 추도 조끔도 해탈 분상에는 무비법(無比法)이여. 참 기가 맥힌 묘헌 법이지.
지옥에 가서, 지옥이 없는 게 아니라 지옥고(地獄苦)를 받어. “아이고! 아이고!” 허지만 해탈을 증(證)해 버렸으니 그까짓 놈의 “아이고 아이고”가 뭣이여. “아이고! 아이고!”가 바로 보리(菩提)여. 성불(成佛)이여. (처음~28분21초)





(2)------------------

광명(光明)을, 그런 도(道)를 법문(法門)을 바로 들어야지. 법문 바로 듣지 않고 뭣 헐라고 앉았어? 잠이나 자고. 그래 가지고 법문 들을라고 앉았어?
문법지차(聞法之次)에 법문을, 그런 법문을 들을 때 여리박빙(如履薄氷)해라. 얼른 그러기 따문에 엷은 얼음 디딘 것 같이 해라. 반다시 이목(耳目)을 기울어서 그 법문을 현음(玄音)을 들어라. 그 법문 무슨 말씀인가를 잘 들어라.

숙정진이상유치(肅情塵而賞幽致)다. 티끌 내 그 죄만 퍼 짓는 고약스런 도 닦지 않는 마음을 엄숙히 해서 그녀러 거 한번 한 뭉테기 맨들어 비벼, 비벼 버려. 그러고는 그 이치, 그 깊숙한 이치를 참으로 들어라. 그 깊숙한 참 생사 없는 법을 바로 들어라.
생사 없는 법을 바로 들을 때는 그까짓 놈의 진념(塵念)이 어디 있겄냐? 이 진념을, 이 티끌 중생념을 어느 때부텀 가졌냐? 어느 때 없어질 때가 있었냐? 때가 있었나? 생겨난 때가 있었나? 무척도 많이 받아 왔다, 그놈의 생사죄악(生死罪惡).

하당후(下堂後)에, 법문을 다 말씀 설허시고 내려온 뒤에, 묵좌관지(默坐觀之)해라. 그 화두 가르켜 준 고대로 참 묵묵히 앉아서 잘해라.
조끔만 그저 가서 뭐 있다가 그만 픽 쓰러지고 또 어디 가 잘라고만 뒷방만 파고, 어디나 가서 그 잠 못 자서 애쓰고, 그래서야 될 거냐 말이여. 그래 거짓 성, 고런 성을 가지고 들어와서 시가(施家)에 와서 시주것이나 먹고 일생 지낸 것 봐. 뭣 할 것이냐?

그 묵묵히 앉어서 좀 관(觀)해 봐라. 묵묵히 잘 앉아 관(觀)하면은, 화두(話頭)를 들면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편안하고 안락함서 깨끗하다, 화두가 들어와 있으면.
화두 없으면 그것 뭐 이것 뭐, 뭐 잠도 아니고 죽겄지. 그 뭐 자고 싶어 죽겄지. 그 잠 안 오면 망상 퍼 일어나지. 아 이까짓 더러운 놈의 이놈의 몸뚱이 요까짓 것 하나를 가지고는 밤낮 그저 퍼먹기나 하고, 어디 가 넘의 것이나 얻어먹고 살고, 가만히 해 준 밥 얻어먹고 살고, 그놈의 시은(施恩) 죄만 퍼지니 뭣 되아 글쎄. 그 좋은 것 같지마는 그게 좋아?

여유소의(如有所疑)어든, 그 공부를 해 들어가다가 의심이, '이렇게 허면 옳게 헌 것인가?' 고런 무슨 고 의심이 뭣이 나거들랑—여지없이 화두 의심만 나면 그만이지마는—혹 의심이 '이런가? 저런가?' 하는 뭔 그런 의심이 있거든 선각(先覺)해라. 또 깨달은 스님한테 가서 물어라. 꼭 선각을 해야지. 선각께 물어야지. 안 물어서는 안 돼.

'아 죽어도 말 말아라' 저 가르쳐 준 것 어따 어디 가 말 말라고 고렇게 부탁해 논 게 있구만. 행여나 제 근본 탄로 날까 싶은께.
화두 알아야지. 알도 못허고 깜깜한 것이 가르켜 놨으니, 만약 그 옳은 스승이 바로 한마디 턱 해서 툭 깨치면 저한테 쫓아오면 답 못하면 어쩔 거여? 그러니께 그 '죽어도 말 말고 고대로만 해 가거라' 뿐이거든. 아따 그놈 한 놈 여그 와서 죽어도 말 안 해. 허더니 가버린 것 봐.

석척조순(夕惕朝詢)해라. 아침에 생각하고 저녁에 듣고 그 공부 잘, 밤공부라도 애써 잘 생각해 가지고, 또 아침이라도 '잘못허는가?' 의심이 나거든 물어라.
불남사발(不濫絲髮)이니라. 터럭끝만큼도 어김이 없이 도를 닦아 나가야 한다. 도학자라는 것은 조끔도 어김이 없이 닦아 나가야 하지. 거짓말이나 하고 망담이나 하고, 다 알아 넘이. 협잡이나 할라고 요리조리 뭐 다 알아. 뭐 넘은 모르고 자기 혼자 한 것 같지마는 말 말에, 언어 동작에 다 나타나 버려.

한래한현(漢來漢現)이요. 거울이라는 것은 바탕이 본래 환해서 어두운 놈이 오면 어두운 놈이 나타나고, 밝은 놈이 오면 밝은 놈이 나타나고, 그와 똑같아서 도 닦는 데 들어가서는 거짓말 못해야. 세상 거짓말 해 봤던들 그저 속아서 들은 체허지마는 더 알고 있어. 환하니 알고 있거든.
그런 게 그러한 짓이 왜 해필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그 도 닦고 있는 도문에 와서 그러헌 왜 거짓말이나 허고, 협잡이나 할라 허고, 조그만한 소소헌 일이라도 요리조리 모도 속이고 거짓말이나 하고. 그럴 것인가? 그거 그것 그 오래 있을 것인가?

여 한 놈, 어디 가지 말라고 했더니 갔나? 뭐 '민적등본(民籍謄本) 하러 간다'고, 이건 아주 갈 놈이지 그놈이. 갔어? 그놈 아주 간 놈이여.
그것 간다고 해놨는데 '민적등본 시방 뭣 할 것이여?' '승적등본(僧籍謄本) 헐라'고 '누가 승적등본을 시방 해 주어서?' (저 안 갔는데요) 응? (안 갔습니다) 안 갔어? 오냐. 안 가야 옳지. 그럼! 가면 당장 그만 벼락이여.

아! 그까짓 승적 증명.
제 자격이 따악 나타나서 참 대중에서 옳게 인증이 다 되아 가지고 있으면 인자 스승을 딱 정해 줘. 여그 시방 스승 하나 안 정해 주었다. 스승을 하나 안 정해 준 사람이 어따가 승적을 헐 것이냐 이 말이여.
이름만 하나 해 놓고 내가 그저 행자(行者)들이라도 들어와서, 뭐 그 의복(衣服) 차별이 없어. 들어오면 뭐 들어와서 도문에 앉으면 그것 뭐 의복 차별할 게 있나. 여그 들어와서 입고 있다가 잘못하면 벗겨버리고 내보내는 거.

겪어 봐서—한 달 겪어 봐, 두 달 겪어 봐, 인자 한철 겪어 봐, 1년 겪어 봐, 다 안다 그 말이여. 한 3년 석상(石上)에도 과삼년(過三年), 3년을 겪어 보면은 본격이 다 나온 것이여, 본태(本態)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어. 그런데 나는 그 말해 놓고는 간 줄 알았더니 안 갔구나. 그래야지.
승낙도 없이 제가 가? 그놈 그만이지, 다시는 여그—머냐 그 와서 다시 들어와서, 되아? 못한다. 한낮 저녁때 내 빌다 갔어. 조그만한 놈, 그 여그 있나? 안 나왔나? 조그만헌 놈 나왔나? 또 안 나왔지? 그놈이 중노릇 할 놈이여 그놈이? 머냐도 또 안 나오더니 또 안 나와? (허리 아프다고 했습니다)

허리 아프다니 그놈 옷 벗겨서 보내 버려. 옷 벗겨 보내 버려. 저번에도 보니 예불 빠지더니 또 빠져, 살살.
벌써 내가 데리고 있다가 내려 보낼 때 알어. 대번 알어. 처음에야 대번 와서 그저 하룻밤만 자면 내가 아는 사람이라. 즈그는 내가 모르는 줄 알지? 흥! 그렇게 나를 알아서는 틀려. 그 도 못 닦을 걸 그거 두어 뭣 해?

날 찾아 나섰다고 그놈의 어린것이, "인천에 인가 전강 스님 있다 찾아왔습니다" 해서 그저 "대흥사 가고 안 계신다" 내가 인자 그러고. 대흥사까장 갈란다고 나서. 아 그놈 허는 짓이 혼자 그러네. 고때에 열일곱 살 먹고, 고때 나도 열여섯 살 먹어 들어왔는데 하룻밤인들 어디 가서...
그놈 옷 벳겨야지, 대그빡 쏵 벳겨, 즈그 집으로 보내. 편지해도 편지도 없으니 무슨 까달이 있어. 즈그는 위조 주소를 했는가? 뭔 주소를 했는가? 그러고.


터럭끝만큼도 그 참 어기지 않고 고대로 똑 해 나간다. 이 행실이니까. 행실 가운데 법문이 안 있는가.

여시(如是)하야사, 이렇게 공부를, 이렇게 마음먹고 들어와서 이러한 옳은 학자가 되어야사, 참 도학자가 되어야사, 설사 처음 들어올 때에는 몰라서 거짓말도 허고 그저 그럭저럭 속여서 어떻게 들어왔지마는 들어와 놓고 보니까 '아 그런 거 아니로구나' 딱! 고쳐야지. 여지없이 그만 방하(放下)를 해 버려야지. '아 여태까지 살아온 것은 헛살아왔고, 그까짓 것은 다 소용없는 것이로구나' 쏵 들어와서 방하해 버려.

이와 같이 해야사 내가능생정신(乃可能生正信)이다. 이에 가히 능히 정신(正信)이 났다. 바로 신(信)이 났다. 옳게 믿었다. 옳게 믿고 들어왔으니 인자 한 동작, 발 한번 떼 놓는 것도 그 화두다. 항상 그 '이뭣고?'
대체 '이뭣고'가 이 모냥이냔 말이여, '이뭣고'가? '이뭣고'가 이것이 이렇게 소소영령(昭昭靈靈)헌 것이 이것이 뭐냔 말이여? '이-' 헌 놈이 뭐여? 그놈이 밥 먹고 옷 입는데 '이뭣고?'냔 말이여.

도(道) 없이 도 닦지 못할 놈의 처소에 가서, 저 도(道)도 안 닦는 처소에 가 살림이나 해먹고 그저 돈이나 벌라고 애쓰고, 그 세상에 살지 뭘라고 그놈의 그런 짓을 혀?
그런데 업(業)이라 할 수 없거든. 그런 거나 맡아 가지고는 자식새끼나 낳아 놓고는 그런 것이나 살릴라고 애를 쓰고 그러다 보면 이 백두(白頭), 저 늙어 죽을 지경밖에 안 오는데, 그놈의 진 놈의 죄는 자식새끼가 그것들도 같이 지었은게 같이 받지마는, 참 죽을 죄를 제가 다 받지.
독살림허는 것, 중 혼자가 집 얻어 독살림하는 거, 천하에 도무지 죄여. 어쨌든지 서로 이렇게 모아서 같이 먹고 같이 닦고 그러헌 우리 수도원이란 그래야 하는 것이지.

이에 가히 능히 참 정신(正信)이 나는 법이다. 이러헌 마음을 잘 가다듬어야사 이도(以道)로 위회자여(爲懷者歟)인정, 도(道)로써서 항상 도만 가지고 생각을 헐지언정, '참 이번 목숨 끊어지면 무간지옥(無間地獄)인가? 개 배때기 말 배때긴가? 아이고! 엄청난 놈의 삼악도(三惡途)'
삼악도는 그렇지 않는가? 저 짐승, 날짐승 저 많은 놈의 짐승 속에 들어가지. 그놈의 짐승이라는 것은 생(生)은 똑같지 않은가? 즈그들도 다 소리 지르고 찔쨀쨀쨀쨀 그렇게 우는 저 귀뚜래미 같은 것도 다 즈그끼리 말하고, 서로 여기 있다고 군호(軍號)허고. 서로 즈그 자식 나 가지고가 그 미충(微蟲) 잔벌레도 기어니 그 새끼를 칠라고 애써서 그놈은 한 놈이 들어서 천 명, 만 명씩을 맨들어 내네.

사람은 겨우 하나씩 열 달 만에 하나 낳는데, 그 사람은 또 어디 그렇게 정몽을, 운우(雲雨)를, 아 부부지간에 서로 운우정몽을 행한다한들 어디 그 어디 뭐 어디, 밤에 밤중에 아무도 몰리 자식도 몰리 즈그끼리 둘이 어쩌 그래가지고 하나씩 겨우 낳는 거.

이놈의 짐승 떼는 즈그 마음대로 낮도 밤도 없고 그저, 넘 본 거 안 본 것도 없고 그저 밤낮 쳐 퍼 낳는구만. 한 배만 낳으면 몇백씩 나. 고놈의 축생 속에 그 물고기 그 봐. 뱃속에서 몇천 마리씩 나오냐 그 말이여.
모도 그런 떼 중(中)으로 몸뚱이 그저 금방 금방 받아 들어가는 거여. 금방 목숨 뚝 끊어지면 혼(魂)이 바로 나. 그, 그거여. 몸뚱이 받아 들어가는 게 혼(魂)이라는 놈이여. 칠백(七魄), 혼이 있는데 혼 그놈이 그것부텀 찾는 것이여. 뭐 벼락같이 들어와.
축생취(畜生趣)로 들어갈라면 그렇게 들어가고, 글안으면 잡아가 지옥에서 잡아가지. 지옥부텀 머냐 가지. 죄를 지었으니. 참 쇠사슬도 엄청난 놈의 그 쇠사슬이 사방 깔꾸리가 있네.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깔꾸리가 대글빡을 누르며 내려오네.

귀신 몸뚱이 받아 놓으면, 제 업(業)으로 제 몸뚱이가 그렇게 커. 그 수미산(須彌山)만하게 커. 그놈 무겁고 사람 뚱뚱허면 배지 이렇게 불러 가지고 주체 못하듯기. 귀신이라도 그려. 그 몸은 백만 명이 같이 있어도 차도 안 해. 없어. 없지마는 죄업 몸뚱이가 그렇게 되아. 되아.

그 삼악도, 세상에 삼악도. 삼악도. 육취(六趣), 육취인데 육취, 취(趣)가 육취여. 천도(天道) · 인도(人道) · 아수라취(阿修羅趣)는—사람, 사람취인데, 거그는 그래도 몸뚱이, 이런 사람 몸뚱이를 받아 나오는, 천취(天趣)는 복을 받아 나오는, 아수라는 싸움만 싸운 놈들 나오는, 그래도 그 취는 사람취 좀 나아. 또 삼악도는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 세 가지.

요 육도(六途) 있는데 이 육도에 똑! 복을 지어서, 여그서 복을 잘 지어 참 깨깟이 착실히 하면은 그 깨깟이 착실히 정직한 행동을 했으니께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아 나오던지, 글안으면 백만장자 복을 많이 지어서 백만장자가 되아 나오던지, 착한 사람이 되아 나오던지, 이렇게 인자 등분이 있어 나오지.
나오지마는 더 잘 지었으면은 여그서는 못 받아, 많이 지었기 따문에. 사왕천(四王天)부텀 올라가지. 더 지었으면 보리장천 올라가지. 이렇게 올라가 28천, 33천까장 그렇게 천(天)이 있는데 거그는 한량없이 복을 지을수록 올라가.

허지만 죄만 퍼 진 놈은 자꾸 내려 그저, 그저 그만 지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또 그런 축생도 또 지어 가지고 또 도로 받고, 받고 허지. 쥐 보(報)를 받아도 쥐 보가 한 번 받고 만 게 아니라, 죽으면 또 쥐 되고, 또 쥐 되고, 밤낮 되아 가지고.
또 그가 그래도 아냐, 그 어쩌다가 다행히 또 보(報)를 전(轉)해서 딴 놈이 되면 딴 도(途)를 그렇게 받고. 배암 되면 배암 그놈 또 되아가지고 그놈 또 살생 자꾸 해 갖고 받고. 이놈의 이 악취(惡趣) 악도(惡途), 이 지옥 축생취만 해도 다시 나올 수가 없네. 이놈의 축생취에 한 번 떨어지면. 징그랍네, 못 나와. 이놈의 축생취 못 나와.

축생에 돌다가 어쩌다가 인자 또 축생취가 아귀취로 바뀌면 또 아귀취에서 또 얼매 진저리 몸서리, 어디 어디 때가 있나? 거기서 나올—배고파 죽으면서도 또 생긴께 나올 마음도 먹지 말아야지. 나올 마음도 먹어도 소용없고, 먹어진다고 어떻게 나오나? 제 죄업(罪業)으로 제가 얽혀서 그 죄를 받는데.
지옥에 들어가서 물 끓는 놈의 데 한 번씩 집어넣을라고 허면 '아이고!' 죽겄다 소리, 그놈의 죽겄다 소리 한 번인가? 때도 없는데.
아 이런 것을 한 번 생각해 봐야지! 이렇게 다행 다행히 사람 몸뚱이, 이 좋은 몸뚱이를 어쩌다 얻었냔 말이여. 어쩌다가 이렇게 얻었어? 생각해 봐.

그래 용케 참 인신(人身)을 얻었어. 인신난득(人身難得)인데, 인신 얻었어. 인신 얻어 가지고야 닦는 것인께. 왜 지혜학자(智慧學者)가 바로 되지 못하냐 그 말이여. 바로 지혜학자가 되아가지고는 지혜를 닦는 우리 선학자(禪學者)는 행(行)이 깨끗, 아무리 거짓말할래야 할 것이 있나. 어디 뭘 거짓말을 혀?
나 원 거짓말 그거—아 그 어릴 때 그 거짓말 해 쌌는 거 나도 많이 했어. 어째 그렇게 거짓말이 나오든고 모르지. 인자 알고야, 알고야 거짓말이 어디 있나. 뭔 거짓말을 혀? 거짓말을 인자 할 필요가 있어야지.

조꼼이라도 거짓말이라든지, 그 이간(離間) 붙여, 기어(奇語) 꾸며대는 거 그런 거라든지, 그 두 가지 말을 이렇게 이렇게 넘 모도 해(害) 붙일 거짓말한다든지, 악한 말 모략중상을 한다든지, 그런 것이 어디 있나?
우리가 누구를 뭐, 어쨌든지 그저 누구라도 밥 한 숟가락이라도 줄락 하고 속으로는 멕일라 하지. 그놈들이 하도 와 싼 게 뭐라고는 허지마는.

도학자(道學者) 같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 우리 이 세계에서 시방 몇 된가? 참 어려와!
그 사람 몸 잔뜩 받으면 그 도학자여? 내가 지금 어디 어디 받아 거? 어림도 없어. 어쩔 수 없으니까 인자 그렇게 '있겄다'고 해 싸면 행여나 행여나 싶어서 받지. 받아가지고 그놈 시험해 봐서, 시험에 합격 안 되면 그것 뭐여, 그 뭐 왜 뭣하게?

이러헌 정신을 내가지고 똑! 도(道)로, 똑 도 하나 닦을, 도 닦을 사람이 벌써 보면 환하니 그 자비심도 있고, 뭣 앉었어도 좋지. 앉어도 좋지마는 밖에서 뭣 해도 그 좀 장한가. 그 뭐 이런 것 저런 것 다 같이 살면서 도문에 깨끗이 허고.
가만히 앉아서 또 잘 닦으면 좋지만, 가만히 앉아서 잘 닦는가? 가만히 앉아서 자빠져 잘라고 앉었는 거, 앉어서 그만 자고만 있거든. 그런 것은 그건 소용없어. 앉어도 소용없어. 글안하면 뒷방에 가서 눕기나 하고.
내가 날마당 여그 내려올 때 몇 번씩 내려온 줄 알어? 내려올 때 뭐 허러 내려오겠어? 아무 일 없이 내려와? '어떤 놈이 어떻게 헌가? 객실에 가서 신이 몇 커리 있나? 지대방에 가서 어디가 몇 커리 있나?' 그것 다 보고 내가.

아 밤으로는 내가 밤중 열한 시쯤 내가 나와서 몸이 무거우면사 못 나가지만 등불 딱 가지고 여그 와서 가만히, 불이 써 있길래 밤중에 요래 보니까, 지대방에서 그 딴짓허고 있든 놈이 있단 말이여. 요 가서 딱 내가 보고. 밖에 요래 요래 가만 벌써 문틈으로 다 봤거든.
그래도 내가 그런 것을 '내가 봤다' 뭐 폭로시키고 뭣 허고, 나쁜 행동을 헌 건 아니로되 어디 공부 응, 공부 안 허면 뭐 거 나쁜 놈의 행동이지 뭣이여.

저 심지어 여그서 누구를 건들고 안 건들고 어디서 어떠한 것까장도 내가 다 그런 거 어떻게 허던지—'누가 그랬는고? 누가 그랬는고?' 그따구 놈의 소리가 어디 있어? 제 안 했으면 그만이지. 그래 봐감서 그 행동을 내가 다 알아 가지고서는 그 도학자를 만들라고 내가 애쓰고 있는 사람 아닌가.
왜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애를 썼냐 그 말이여. 우리가 이 사바세계 이 악도(惡途) 중생을 그대로 두어서는 어떻게 되아? 우리도 이다음에 나오면 악도뿐이지, 인자 또. 도인(道人)을 안 맨들아 놓으면.


무시습숙애욕에치(無始習熟愛欲恚癡)가, 비롯함이 없이 습숙(習熟)헌 익힌, 비롯함이 없이 익힌 습기란 건—우리가 어디 비롯함이 있는가? 언제 처음 날 때가 있는가?
난 때가 있는 줄 알지, 생겨난 때가 있는 줄 알지? 생겨난 때가 없어, 무시(無始)여. 그러기 따문에 무종(無終)이여. 또 종(終)도 없어. 처음도 없고 종도 없으니 항상 있는 놈이 중생껍데기만 둘러써 가지고 죄만 지어 죄만 받아? 옳아 그것이? 그 옳겠냔 말이여. 생각해 봐.

결코 금생에 이 몸뚱이, 인신(人身) 인자 얻었으니 이 몸뚱이 가지고 해탈(解脫) 안 하면 안 되아. 꼭 해야 허는 것이 해탈이여.
비롯함이, 처음이 턱 낸, 난 때가 없이 항상 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헌 주인공이 내가 왜 이 죽고 살고 죽고 살고 허는 중생 껍데기를 덮어써 가지고는 찌르면 아프고, 찌르면 피 나오고 이런 거 얻어 가지고 내 몸뚱이라고 해 가지고 이 죄를 받고 있냐 그 말이여.
이까짓 몸뚱이 차라리 안 받았으면, 우리 뭐 이 사바세계 사람 몸뚱이는 좋다 해도 사람 몸뚱이 그까짓 거 안 받았으면, 아 구름처럼 돌아다니면 어쩌? 백운(白雲)처럼 떠억 어쩌냔 말이여.

비롯함이 없이 습숙(習熟)헌 그 생생(生生)에 날 때마다 죄를 퍼 지어서 우리 시방 쟁여 논 죄업이, 이 몸뚱이가 죄 없는 것 같지마는 과거 죄업도 그 습숙헌 익힌 죄업이, 죄업과 애욕에치(愛欲恚癡)가, 애욕, 애욕이란 건 뭣이냐?

그저 몸뚱이만 받으면 애욕뿐이여. 그저 내, 기어니 내 음행질 헐락하고, 그런 좋은 예쁜 남녀 만나서 서로 그저 그만 애욕 헐라고 허고, 거그서 좋은 새끼 나면 그것 핥고, 좋아서 핥고, 맨 거그서 인자 또 무슨 손자 낳으면 '손자 아이고, 아이고 우리 손자' 이 지랄뿐이여. 그 애욕뿐이여. 애욕 그것뿐이고.
잠깐 갈리는 건데. 그 에치가, 애욕에치(愛欲恚癡) 그 어리석은 것이, 고 모도 어리석거든.

구랭이가 되어 가지고 새끼를 나 가지고 그 빨고 왼통 알을 보관했다가 새끼 나오면 좋아서 에미가 빨고 그런 것이나, 사람이나 뭐 다를 것이 뭐여. 똑같지.
구랭이 새끼 사랑하나, 우리 사람 응, 사람 사랑하나 마찬가지지. 그렇게 그 애욕 속에서 그 에치(恚癡), 어리석은 것이 에치, 그 어리석은 것이 말이여.

전면의지(纏綿意地)다. 전면의지여. 전면의지라는 것은 솜 얽히데끼 솜, 솜 잔뜩 처쟁여서 그 모도 서로서로 이놈이 그 보드라운 놈이 얽히듯끼 그렇게 얽혀졌다 그 말이여.
전면의지(纏綿意地)여. 그 온 전신에 가서 내 전체에 가서 그 의지(意地)만 그 솜 뭉텅이처럼만 꽉! 처쟁여져. 이놈의 에치(恚癡)가, 우리 어리석은 에치가 이렇게 쟁여 있으니 그놈의 속에 법문(法門)이 들어가?

아, 참! 법문만 들어가도 설찬히 닦은 사람이고 지혜 있는 사람이다.
전면의지(纏綿意地), 전면의지 같이, 의지 같이 지금은 퍼 쟁여서 꽉! 찼다. (28분31초~57분23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초발심자경문(초심)2022. 12. 20. 18:00

•§• 초심(4/7) (必有機發之時~必須側耳目而聽玄音) - 전강선사(No.148)

**전강선사(No.148)—초심(4/7)(必有機發之時~必須側耳目而聽玄音)(임자72.08.13) (전148)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약 35분.



석가(釋迦)도 유미회(猶未會)요  가섭(迦葉)에 기능전(豈能傳)가
나무~아미타불~

부처님도 알 수 없는, 알 수 없었는데 몰랐는데 가섭(迦葉)에 기능전(豈能傳)가. 가섭에다가 어찌 전했겄느냐.
전(傳)도 없고, 부처님이 앎도, 아시는 것도 없고 그것이 참선이니, 거기에 공안(公案)이 있다 그 말이여.

판치생모(板齒生毛)라. 그 이상하지 않는가? 판치생모라. 뭔 따악 물건 가르켜 주듯이 이름도 있고 모냥도 있고, 그런 것을 가르켜 주듯이 꼭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니 그 무슨 뭔 어디 과학인가? 그게 무슨 뭐 철학인가? 과학도 아니요, 그놈의 건 철학도 아니요, 그건 뭐 불시심(不是心)이요, 불시귀(不是鬼)지. 그 뭐여, 귀신도 아니고 뭣이여?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세상에 간단하니 그 무슨 뜻이여? 힘들께 뭐 있어야지, 힘 하나 들 것 없다.
그러기에 그 도리를 힘있게 듣고, 힘있게 믿고, 힘차게 해야사 참선법(參禪法)인데, 부처님도 몰랐고, 가섭에 전하지도 못했으니 아 뭐 그 뭐 어떻게 했자 될 필요도 없고, 헐 것도 없고, 그 뭐 그래 버리면 그만이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천하에 미련허고 멍청허고 어리석어서 귀에 들어온 법도 없고. 그거 믿어지다니? 없지.

그러기 따문에 뭐 역사로 증명, 역사로 도무지 들어올수록 천억만 년을 지내도 여태까지 믿어 들어오지 못했고, 그러고 그러기 따문에 인자 그놈의 중생의 모도 소악(所惡)이, 짓는 바가 죄뿐이지.
그렇게 모르는 놈 하나를 알아야 바로 봐야 할 텐데, 몰랐다고 해 놨으니—전(傳)했다고 했지마는 '가섭에 어찌 전했으리요' 했으니 엄청나단 말이여. 그놈을 그래도 깨달은 법이 '판치생모니라. 판치?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그저 그놈만 단단히 영 믿었다.

그 공부를 믿은 사람은 요중정경정(要中正勁挺)이다. 중정경정(中正勁挺)을 요구헌 것이다. 중정(中正)이라는 것은 '가운데 중(中)' 자, 그 중정이 허허다고 안 해? '그 사람은 그 중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중(中) 자가 그게 위도 아니고 밑도 아니고 한복판, 한도막 제일가는 것이다 그 말이여.

우리 중도가 배꼽 밑에 손가락 두 마디 내려가서 그 단전(丹田)이 중도여. 중도에다가, 고 단전에다가 따악 알 수 없는 의심(疑心)만 길러, 키워. 자꾸 또 들어 붙이고 또 들어 붙이고, 그저 먼첨 판치생모가 없어지기 전에 밑을 괴아.
자꾸 그 판치(板齒)만, 송화두(誦話頭)라도 좋아. 아무 의심 없고 뻘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해도 자꾸 그저 그놈만 들어 붙이면은 그놈이 필경 진의(眞疑)가 나와. 처음에 그렇게 허면 대번 되나? 처음에 누가 그렇게 되나 말이여.
인연이 없으면 믿어지지도 않고 더군다나 또. 이렇게 들어온 것도 인연으로 왔지, 인연이 없으면 오는 법 없어.

'판치생모(板齒生毛)다' '어찌 판치생모인고?' 어찌 판치생모냔 말이여?
판(板) 자가 그게, 한문으로 판자가 그게, 그 '널 판(板)' 자인데. '널 판(板)' 자, '판때기 판(板)' 자, 두 가지로 났는데.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뭐 그 무슨 소리겄냐 말이여? 그놈을 암만 생각해야 사의상량(思議商量)으로는 된 법이 없고, 필경 눈에 보여. 덜그덕 그만!
별별 뭐, 뭐 부처님보담 더헌 이가 있다면은, 부처님보담 더헌 이가 나와서 아니라 해도 소용이 없어.

그래 가지고 와서 한번 선지식 스님한테 인가(印可)를 받는 것인데, 바로 본 스승한테 와서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놈을 해낼라면은 중정경정(中正勁挺)을 요구해라. 중정(中正)은 가운데로 정직하고 굳세고, 다시 변함이 없고 물러감이 없고, 아주 경정(勁挺), 경정도 마찬가지여. 중정경정을 꼭 요구해라.

하다가 개벼이 물러간다. 조끔 허다가는 그만 안 되니까 그만 에이! 그 안 된다고 가버린다. 가면 어디로 가는가, 그놈의 가는 길이 어느 길인가? 생각해 보소.
'아이고! 소용없다'고 그만 가는 길은 떨어진 길인데 숭악한 놈의 길이다. 세상에 악도(惡道)라니, 악도로 또 떨어져. 그렇게 처 많이 있다가 겨우 나와 인도(人道)에 와 가지고, 인도는 악도(惡道) 아닌가? 인도도 숭악한 놈의 오탁악세(五濁惡世)인데. 허지마는 인도에 와서야 되니까.

중정경정을 요구해서 '불근인정(不近人情)해라. 인정을 가까이 말아라' 허니, 인정은 부모 인정이 천하제일인데, 부모부텀 여위어 버려. 사람 정(情) 인정(人情), 어머니 아버지 그 어머니 애착 그것부텀 탁! 잊어버려라. 딱 떼 버려라. 그거 인정 그것 가지고 그 아무리 은혜를 가지고서 무슨 생사(生死) 문제를 해탈헐 수 있나. 인정부텀 끊어 버려라.

구순정응대즉(苟循情應對則), 그 인연을 끊지 못하고 부모, 어머니 아버지 그 무슨 형제 뭐 마누라 자식 그런 무슨 인정을 끊지 못헌즉, 공부주불상(工夫做不上)이라. 공부는 된 법이 없어. 올라가들 못해. 그놈에 항상 마음이 가버리니께 안 되아. 억지로 허더래도 화두를 자꾸 해 나가는데 부모 은애(恩愛)가 있으면 안 된다 그 말이여.

부단공부주불상(不但工夫做不上)이라. 다맛 공부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차츰차츰 부모 생각이 나 쌓고 이러면은 암만 있을래야 못 있어. 필수류속아사(必隨流俗阿師)하리라. 반다시 아사(阿師)가 되리라. 아사라는 것은 퇴속(退俗)헐 것이다 그 말이여.

퇴속을 참 안 해야 한다. 우리가 퇴속할 곳이 어디 있나?


법문을 들을 때에 모름이 생각을 비워 버리고 들으면은, 일체 모든 망념이 없이 법문을 잘 듣거드면, 필유기발지시(必有機發之時)허리라. 반다시 깨달을 때가 있으리라. 깨달을 때가 꼭 있지, 없지 않다. 한번 견성해 봐라 어떠헌고? 어제 거까장 했는데.

고 밑에는 부득수학어자(不得隨學語者)하야, 시러금 학어자(學語者)를 따라서, 말 배우는 자를 따라서 말만 배워. 입으로만 참선허고, 말로만 참선허고, '나는 참선한다' 허고 거짓 참선헌다 그 말이여.
단취구판(但取口辦)이어다. 다만 입으로만 판단하지 말지어다. 입으로만 따져서 '참선헌다'고 이치를 말하고 '참선이 어떻다'고 그 구판(口辦)만 한다 그 말이여. 입으로만 참선허는 것이여. 그런 것이 있다 그 말이여. 그 헛 견성, 견성도 아닌 것이 견성했다고 인가 받을라고 그 야단친 놈들이 다 있고, 별것이 다 있지? 거 뭣헐 것이냐 그 말이여.

소위사음수(所謂蛇飮水)허면, 뱀이 물을 마시면, 뱀이 음식을 먹으면, 아 음식이 다 거 똑같건마는 뭐 뱀이란 놈이 물먹으면 물 그놈이 물맛이 똑같고 물이지마는, 뱀이란 놈이 물을 먹으면 독(毒)을 이루고, 소란 놈이 물을 마시면 젖을 이룬다. 그 뱀은 그놈이 종자가 그놈이 이상해. 어디 같은 물을 먹어도 독을 이루어서 그놈의 독이, 배암 독이 사람을 죽인다. 소는 물을 먹으면은 젖을 이뤄.

그러니 그 참선도 잘못 배우면은 입 참선만 되고, 아무것도 아닌 참선, 그 도깨비도 안 되고, 그거 참선헌다고 돌아댕기고 해도 입으로만 참선해 사람만 속이고, 어짠지 그 짓을 헌다 말이여.
모도 그 남을 모도 그만 그릇 가르쳐 놓으니, 꿈에도 그 사람은 그릇 배운 줄 모르고 제가 제일인줄 알거든. 그만 제법 제 배운 것 제일이고. 그런 그 외도(外道)를 만나면은 그런 국집성(局執性)을 배와.

여기 성일이라고 있다 간 놈이 죽어도 '무슨 화두를 어디서 배왔냐?'고 물어봐도 어디서 배왔다는 말을 허지 않아. 화두를 배왔다는 말을 허지 않아. 그러더니 저는 배운 곳을 콱! 믿고 그러고 있든 것이여. 아무리 무슨 해봐도 안 된다 그 말이여.
구판(口辦)으로만 해 놓으면, 입으로만 허고, 겉으로만 허고, 믿지 않고, 스승을 믿지 않고 제멋대로 이 구피변(口皮邊)으로만 허면 그 모냥이 되어.

그 뱀이 물 마시면은 독을 이뤄서 사람 죽이는 것이여. 소란 놈이 물을 마시면은 떠억 젖을 이룬다. 도를 잘 배우면은 아 거 소젖 같이 우유 같이 된다.
그러니 지학(智學)은, 지혜스럽게 배운 것은 옳은 스승을 만나서 옳은 스승한테 옳게 배와. 참으로 옳게 배운다 그 말이여. 화두해 나가는 방법부텀 옳게 배와. 그 지학(智學)이여.

지혜스럽게 배운 지학(智學)은 보리(菩提)를 이룬다. 보리라는 것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인데, 아 내 견성해서 성불하는 것인데 좀 좋은가? 소란 놈이 물 마셔서 젖 이룬 것 같단 말이여.
뱀이 물 마셔서 독을 이루면 그놈의 독은 모도 제 놈도 남을 모도 가르키는 사람마당 다 죽이고, 부처님의 정법을 그놈들이 다 없애 모도 망하고 그런 것이다 이 말이여.

그러니 지학(智學)은 보리(菩提)를 이루어 깨달아 견성성불을 허고, 어리석게 배운 것은 생사(生死)를 이뤄. 생사를 이루니 생사는 그 죽고 사는 생사 아닌가. 우리 생사(生死), 우리 중생들 생사, 우리 생사가 어떤 독인가 거? 어떤 못된 것인가 거?

천하 망할 놈의 것은 생사여. 뭣 때문에 나와 가지고 뭣 땜에 죽냐 그 말이여. 나와 가지고 죽는 동안이 그 얼만가 그거 그까짓 거. 날마당, 오늘내일, 오늘내일 하다가 일생 그 뭐 가버리는 놈의 거. 뭣혀 그거.
원 생각해 볼수록에 그놈의 것 중생 생사(衆生生死), 나 원 정 떨어진 놈의 것이다 이 말이여. 이렇게 말씀을 시야(是也)니라. 이렇게 말씀을 해 놨느니라.

우부득어주법인(又不得於主法人)에, 또한 시러금 저 주법인(主法人)에, 법을 가진 스승한테, 조실 스님이 되았든지 안 되았든지 견성(見性)을 했으면은 아직 조실 스님이 안 되아 가지고라도 학자(學者)라도 견성한 사람이 있고 허니, 혹 저 법 가진 주법인(主法人)에 생경박상(生輕薄想)이니라. 그 경박상(輕薄想)을 내지 말아라.
경박상이라는 것은 아무때나 그만, '법(法)이고 뭐이고 법이라고 해 봤던들 똑같은 사람, 밥 먹고, 옷 입고, 오줌 싸고, 똥 싸고 똑같은데 그 뭐 공경이 뭔 공경, 그 뭐 공경할 거 뭐여. 제나 내나 뭐' 고렇게 천박상(淺薄想)으로 보지 말아라.

인지어도(因之於道)에 유장(有障)하야. 그것이 인(因)해야 도(道)에 장애가 되어서, 그 공부인을, 공부 잘한 견성한 스님을 믿지 않고 경박상을 내기 따문에 제게 해로와, 제게. 제가 그런 큰스님을 안 믿으니깐, 도 있는 이를 안 믿으니까 제가 해로와.

왜 그 도를 믿으면, 그 참 장한 그런 도를 믿으면은 그 이익이 한량이 없어. 그만 보리심(菩提心)이 증발(增發)하고 곧 화두가 그만 더 믿어지고, 화두에 의심이 더 돈발(頓發)하고 참 좋은 것이여. 그것이 그 신심(信心)이여. 그걸 도심(道心)이락 햐. 도를 배우는 학자락 햐.
아 그 경박상(輕薄想)을 내면은 도(道)도—'도가 뭐 그까짓 도고 지랄이고, 저나 내나 뭐, 저는 안 죽나?' 이래서 장애가 되어 버려. 그런 장애가 되어 버려.

그런 장애가 되어 버리니 불능진수(不能進修)여. 진수(進修)가, 닦아 나갈 수가 없어. 능히 닦아 나가지 못하느니라. 그건 지금 퇴타(退墮)뿐이고 악도(惡道)뿐이지 소용 하나도 없어. 선방에 들어와서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 열이면은 한 팔 명이나 될 것이여.
그러니 그 무슨 도 닦는다고 그런 사람 밥 멕이고 같이 살기 아깝지. 그 뭐 뭣 할라고 그 같이 있냐, 그런 사람을? 서로 같이 도를 믿어서 잘 닦아 나가야 아 그 이익이 한량이 없다.

절수신지(切須愼之)다. 그걸 간절히 삼가이 그러지 말아라. 주법인(主法人)을, 도 있는 그런 분을 갖다가 경박상 내지 마라. 잘 믿어라. 도원(道源)이 신(信)이다. 도(道) 믿는 근본 원칙이 신(信)이여. 꽉! 믿는 마음뿐이여.

논(論)에 이르되, 어떠한 사람이 밤에 밤길을 가는데, 그놈이 밤에 가는 놈이 그놈이 보통 놈이 아니라 죄인(罪人)이여. 큰 죄인이여. 도둑놈, 사람 죽인 놈이여.
그런 악한 도둑놈이 강도놈이 불을 써 가지고 가네. 누가 그 무서운 강도놈, 사람 죽인 놈 그놈을 따라가겄는가? 사람으로는 따라갈 도리 없지.

허지마는 그놈의 도둑놈, 도둑놈이라고 도둑놈 손에 든 횃불이 있는데 그 불을, 이리 훤한 그 불을 가지고 가는 불을 따라가야지, 깜깜한 그믐밤에 그런 불이 없이 길도 뭣도 모르고 그냥 나 혼자만 가다가는 어디 가서 빠져 죽을는지, 도둑놈 칼에 죽는 것보담도 어디 가서 처백혀 죽을는지 알 수가 있나? 허니 도둑놈의 횃불은 멀리 비추더라도 그 불을 따라가거라.

그놈 못된 놈이라고 도둑놈이라고 그 광명을 딸치 아니하면은 구렁에 떨어져 죽기가 쉽다. 그 뭐 틀림없이 구렁에 떨어질 수가 있다. 그런 데 빠져 그 죽을 것 아니냐?
그러니 법(法)이 있는, 법이란 게 달러. 법이 있는 큰스님이라도 그 한번 견성(見性)을 척 해서 견성 도리를 봐 놓으면은 별짓을 헌다한들 그것이 견성인은, 확철대오헌 이는—아 세상에 글쎄 늘 헌 말이지. 추담망담이... 아 구랭이가 되어가지고 모도 나온다.

견성 대도를 통한 이가 왜 구랭이가 되아 나오것느냐? 그걸 권행(權行)이락 햐. 구랭이가 되아가지고 나온 것도 자기가 구랭이 몸뚱이를 안 받을라고 그런 게 아니라, 역부러 구랭이 몸뚱이를 받아. 받아 가지고는 똥구녁으로 꽁댕이로 막 법문을 헌다 그 말이여.
'내가 성낸 죄로 구랭이가 되었다. 이거 좀 봐라' 하고, 막 재에다가 쓰기도 허고. 아 구랭이란 놈이 전생(前生)에 성내 가지고는 금생(今生)에 구랭이 됐다는 걸 그 알 것인가?
그 도인(道人)이 , 그 구랭이 속에 들어앉은 도인이, 확철대오헌 도인이 위증 권행(權行)이여. 권행이란 건 역부러 그 말이여. 역부러 그런 걸 나투어 가지고 중생을 모도 보이기 위해서 '성내고 진심(嗔心) 내고 다 이래 싸면 구랭이 이런 몸 된다'는 모도 그러헌 방편(方便)을 권행이라고 그려.

그 몸뚱이 안 받고 참 기가 맥힌 몸을 받을 수도 있고 마음대로 헐 수 있는 것인데, 왜 고런 것 몸뚱이를 받냐 그 말이여.
그러니 그런 몸뚱이를 받을 때에 뭐 뭐 별거 그보담 더 헌 무슨—아 견성을 해 가지고는,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는 지옥에 들어가서 지옥고를 막 받고, 왼통 그 그만 끓는 구리쇠 즙을 막 들어마시고는 '아이고 죽겠다'고 고함을 지르고, 훌훌 뛰고 헌 것을 모도 또 중생께 보인다 그 말이여. 이것 봐라!

하나도 그 본 당처(當處)에 확철대오했는데 어디가 그것이 무슨 죄 집(執)이 있을 것인가?
조달(調達)이가 부처님을 그렇게 비방을 하고 막 드리어. 조달이가 더 먼첨 깨달아가지고 그 부처님 후신(後身)으로써 그렇게 역부러 도를 닦게 맨드니라고 비방하고 못 닦게 허고 막 들입대 이렇게도 했다 그 말이여. 또 그 죄로 지옥 갔다.

지옥에 들어가서 지옥고를 받는데 "지옥고 맛이 어떠냐?" 부처님이 성불을 해 가지고는 아난존자를 시켜서 물으니깐, "지옥고 맛이 극락세계 맛보담 낫다"
극락세계 뭐 맛보담 나을 것이 뭣이여? 극락이 어디 있어? 낙(樂)이 벌써 있으면 고(苦)가 있는데, 고(苦)니 낙(樂)이니 어디가 붙어 있어? 그런 지옥 중에 가서 그런 권행을 보이여.

자올지 말고 들어라. 아이고!
법문이 자올기 좋을 만큼 나오니깐 다 자올지. 나도 기운이 없으니 헐 수 없어. 더 헐 수는 없는데 뭐.


그런고로 광명(光明)을 받아라. 광명은 법(法)이여. 그러헌 험악한 구랭이 몸뚱이 속에도 법이 있고, 지옥에 지옥귀신 “아이고! 아이고!” 허는 거가 법이 있고.
그러니 그 법을 모냥으로만 찾으면—얼굴 잘 생기고, 말 잘하고, 똑똑하고, 안 죽고, 먹도 않고 살고, 고런 것이 고런 사람이 도인(道人)이라고 찾으면 고것을 사견(邪見)이라. 고걸 상견(相見)이라 그려, 상견. 모냥으로만 찾는다 그 말이여. 사견으로만 찾고. 그러기 따문에 법(法) 있는 스님을 찾기가 그렇게도 어려워.

그 조주 스님 같은 큰스님이 아! 칠백 명 대중에 와서 '개고기를 삶아라' 그 개고기를 삶으니 누가 거그 붙어 있겄어. 누가 하나라도 도인으로 알겄어? 다 도망가지.
그거 학자들 한번 그러헌 개고기 삶아서 소견 보는 것이여. '참으로 법을 믿나?' '참으로 법을 믿는 학자 같으면은 내 개고기 삶는, 개고기 먹는 모냥다리를 보고 물러갈 것이냐?' 그놈을 먹더라도 제가 더 못해 주어서 애쓰고 참 법을 믿어야 그게 학자여.
그러니 도둑놈의 횃불을, 도둑놈인줄 알지마는 그저 어쨌든지 사람은 믿지 말고, 악한 사람 그것 도둑놈은 믿지 말고, 도둑놈한테 있는 법(法)은 믿어라. 구렁에 떨어져 죽는다, 안 믿으면은, 횃불 안 따라가면.

문법지차(聞法之次)에, 법을 들을 때, 설법을 허면 법을 들을 때 여리박빙(如履薄氷)해라. 엷은 얼음을 디디고 선 것 같이 해라.
깊은 못에 얼음이 얼었는데 그 얼음 위에, 엷은 얼음, 엷게 얼은 얼음 위에 서 봐라. 그대로 빠져 죽지. 그런 데 가서 섰으니 아이고! 얼음 빠진, 곧 빠진단 말이여. 곧 꺼져.

고렇게 얼음 디딘 것 같이 마음을 딱 가져라. 당장 그런 마음을 가져보아라, 정성스런 마음을. 어디 잠이 오는가?
눈을 지익 감고는 잠이 와 가지고 죽지. 막 법문 들을라니 오장(五臟), 온갖 데가 다 개렵고, 못 견디고 '아이고 그만했으면'

그놈을 법문을 꼭 견성한 법문이니깐 법문을 잘 들어봐라. 어디 몸뚱이 꼼짝이나 있는가?
아주 꿈적꿈적 그저 야단이고 그저 굉장하지, 못 견뎌서. 그게 그 무슨 놈의 무슨 참선헌다고 들어와서 자올다가 그저, 어디 아파서 그저, 어디가 못 견뎌서. 그럴 수가 있느냐?

법을 들을 때에는 똑 아주 엷은, 깊은 물에 엷은 얼음 디딘 것 같이 딱! 정성을 가지고 신심을 가지고, 필수측이목이청현음(必須側耳目而聽玄音)이니라. 반다시 그 이목(耳目)을 기울이고 다른 반연(攀緣)말고, 다른 경계(境界) 뭐 이런 것 저런 것 보지 말고 탁! 귀와 이목을 기울이고서는 현음(玄音)해라. 그 척! 청정한 법문을, 견성해서 생사해탈하는 법문을 들어라.

그 법문을 안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꼭 들어야 하는 것이 참선 법문 아니냐? 견성허는 법문 아니어? 법문을 안 듣고는 어떻게 헐 것이냐? 그러니 참 그 법문을 잘 들어라. (처음~34분45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초발심자경문(초심)2022. 12. 17. 21:10

 

 

•§• 초심(3/7) (切須堅持正念~必有機發之時) - 전강선사(No.147)

**전강선사(No.147)—초심(3/7)(切須堅持正念~必有機發之時)(임자72.08.12) (전147)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약 38분.

 


건곤만리일견납(乾坤萬里一肩衲)이  기처백운비단공(幾處白雲飛短筇)고
나무~아미타불~
만산홍록(萬山紅綠)이 개묘체(皆妙體)다  청산유수춘수족(靑山流水春睡足)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건곤만리일견납(乾坤萬里一肩衲)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그 너른 천지에 한 도 닦는 납승(衲僧)이 되았다. 그 도 닦을 마음이 그렇게 무량겁 중에, 억만겁 중에 난 때가 없었어.
'아! 내가 나를 찾아야지, 나를 알아야지' 못혀! 그 마음이 어째 그렇게 못 나? 세상에 그렇게 미(迷)할까, 원 미(迷)해도. 저 벌레 보소! 저 축생들 보소! 알 것인가? 그것이. 사람도 그 마음이 안 나는데.

세상에 이 마음이 났다. '내가 나를 찾아야지' 참 그 마음 한번 나는 것이 그 발보리심(發菩提心)이여, 보리심을 발한 것이여. 그걸 일견납(一肩衲)이락 햐.
그 마음 지금 한번 났겄당, 인자는 참 일견납이 되었으니 건곤에, 하늘과 땅 일천지(一天地)에 도학자가 되었으니 그 어느 곳에 그저 모도 기처백운(幾處白雲), 그 백운 흘러내리는 출출출출 흘러 넘어가고 흘러내리는 그러한 절벽산상(絕壁山上), 그저 깨끗한 모도 그런 곳이 그곳이 내 도 닦는 집이고, 내 행주좌와처(行住坐臥處)여 모도가.

만산홍록개묘체(萬山紅綠皆妙體)다. 그 만산(萬山)에 홍록(紅綠)도 일만 산에 홍(紅), 꽃핀 것 홍(紅)이고, 풀 잎사귀 푸른 것은 녹(綠)이고, 홍록(紅綠)이 다 묘체(妙體)여. 깨달아 놓고 보아라. 그게 다른 것인가? 내 살림살이지.
그 청산녹수(靑山綠水)에 인자 참 임자재(任自在)하고, 내가 설사 깨달지 못했더라도 어디가 걸릴 거, 어디가 애착이 있나? 무슨 애착이 있나?

돈에 시방 애착이 있나, 우리가 무슨 뭐 천만금을 주면서 '고놈 가지고 살고 도 닦지 말아라' 하면 안 닦겠나? 돈 뭣하게? 천만금 갖다가 앞에다 쟁여 놓고 밤낮 들여다봐라 뭣할 것이냐 그것이, 뭣이여 그까짓 그녀러 것이. 청산녹수가 다 그것이, 임산등수가 다 그것이, 한 번 인자 내 그저 앉고 눕고 좌와처(坐臥處)여.

청산유수춘수족(靑山流水春睡足)이다. 청산유수에 봄잠 잔다. 그런 데서 잠자면 떠억 자고. 그 이 마음밖에 없고 이것밖에 없으니, '이-?' 허는, '이뭣고?' 허는 사람이 뭐 어디 걸릴 데가 있나? 다시는 퇴타(退墮)할 길이 어디 있나? 어디로 갈 것이냐 가면?
아! 그놈의 더러운 놈의 그 숭악한 놈의 축생(畜生) 배때기 길을 얼마나 나왔기에, 얼마나 고생하고 한탄하고 원망을 헌 줄 알어. 천억만 번을 그놈의 숭악한 놈의 충사(蟲蛇) 배때기 속에서 그 고생만 허고 나와서도, 고생만 그 숭악한 놈의 지긋지긋하지 않는가?

꼭 봐야, 내가 꼭 그 봐야 그 몸뚱이를 받아야 알겠는가? 그 몸뚱이 받아 가지고는 더 모르네. 구랭이 몸뚱이 받아 가지고 '내가 구랭이다' 그건 모르네.
아는 줄 아는가 부네? 그렇게 콱! 드리 매(昧)해 가지고는. 또 그것은 오히려 축생취는 승취(勝趣)지. 그놈의 참 대악취(大惡趣)는 지옥이고. 그 지옥에 들어가서 내 그놈의 그, 그 연극에 갔다가 그, 그 꾸며 논 것 또 그것 보고 참 나, 참 무섭데. 에이 숭악하구나.
그놈의 독사지옥, 독사 그, 막 들입대 그만 위에서 내려오고 옆에서 들어오고 막 그저 입을 벌리고 뜯어먹고, 아이고 내가 참 그...

그놈의 아귀취(餓鬼趣)는 또 어떠헌가? 그 쎄를 빼물고 죽고 또 살고, 빼물고 죽고 또 살고, 목구녁이 당최 있어야지 목구녁은 없는데, 바늘귀 구녁만 헌데 배는 허공만 하단 말이여. 배는 고파, 또 죽고 살고 또 죽고 살고, 그놈의 짓을 또 혀?
이번에 이렇게 출가해서 이렇게 발심해 가지고 도 닦는 학자가 또 들어갈 거여? 퇴타(退墮)하면 들어가는 것이여. 퇴타하는 그 즉시의 삼악도(三惡途) 밖에는 갈 곳이 없는 것이여.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도학자가 되았음에 무슨 일이 있고 어디 걸리고 인제는 어디가 애착할 것이냐?

절수견지정념(切須堅持正念)하라. 간절히, 간절히 항상 정념(正念)을 가져라. 그 정(正)다우면—정(正)다운 짓 안 할 것 어디 있나? 사행(邪行), 나쁜 행동헐 것이 어디 있나? 한번 출가해 가지고 도 닦을 학자가 나와서 그 부정한 행동할 것이 뭐가 있나 말이여.
양심 속에 깨끗하지, 항상 정직하지. 세상에 뭐 쬐그만헌 무슨 눈깔 터럭끝만큼도 무슨 뭐 시시비비할 것이 뭣이 있나? 잘못헌 걸 보면은 내 잘못헌 것보담 더, 더 참 애석하게 생각하고 그저 그걸 옳게 모도 고치도록 해 주고, 그러헌 정념을 꼭 가져야 한다. 우리 중이라는 것은.

견색문성(見色聞聲)허고, 예쁜 색(色)을, 터억 저 예쁜 그 계집을 본다든지 그런 색을 보고. 또 그 문성(聞聲)허고, 좋은 무슨 소리를 듣고 유탕사심(流蕩邪心)이다. 사심(邪心)을, 거다가 삿된 마음을 두지 말아라.
예쁜 것이 그까짓 것이 무엇이냐? 제가 아무리 예쁘다 한들 부정관(不淨觀)을 해라. 아무리 제가 예쁘고 참 좋다마는 그 속에는 피고름은 똑같고, 똥은 마찬가지고 꾸린 냄새는 마찬가지로 나지, 안 날 것이냐 그것이? 그것이 뭐냐 그것이?
공중에 눈 아픈 놈이 보면은 눈 아픈 그 (사람 눈에) 보이는 것이 꽃으로 모도 허공에 막 보인다. 그것이나 마찬가지지, 일시에 나타나는 그런 좋은, 예쁜 무슨 빛깔 같은 것이지. 어디 본래 있는 것이냐 그것이?

사심을, 삿된 마음을 내지 말아라. 그런데 하물며 옷깃을 탁 헤치고 팔을 흔들면서 '히히히' 그러고 웃고 댕기겄나. 고런 고런 짓을 하겠나, 우리 도학자가?
언제 그런 짓 헐 겨를이 있어야지, 항상 속에는 그저 내 생명이라는 것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쉴 때 있는 건데, 어디 조금이라도 그 내 화두(話頭)를 버릴, 화두를 없애버리고, 여의어 버리고, 그만 화두 없이 그렇게 피금희소(披襟戱笑)를, 옷깃을 헤치고 팔을 흔들면서 들입대 웃으면서 어디 그럴 때가 있겠나? 그러지 말아라.

난설잡사(亂說雜事)를 해야? 잡된 일을 어지러운 모도 잡된 말을 혀?
잡사(雜事)를 난설(亂說)을 혀. 잡된 말을 어지럽게 모도 그만... 거 뭣이여? 난설이 어디가 있어?

비시주식(非時酒食)해라. '때 아닌 때 술을 먹지 말아라' 모두 이러지. 때에는 술 먹으란 말인가? 비시주식(非時酒食)이라, 아 때 아닌 때 술을 먹어서, 그 '때는 먹어라' 그 말인가? 말키 그릇 가르킨다.

비시주식(非時酒食)이라. 때 없이 술을 먹어서 그 말이여, 때 없이. 그 '없을 무(無)' 자로 새겨, 비(非) 자를. '아닐 비(非)' 자 인게 그것도 '없을 무(無)' 자 되거든. 늘 술만 퍼먹어서 그 말이여.
때 없이, 밤낮 술 먹은 놈이 요 술이나 그만 가면 퍼먹고, 몰리 퍼먹고, 가면서 먹고 오면서 먹고 늘 먹고, 늘 술만 퍼먹어 가지고는 걸림 없는 무애(無碍)의 행(行)을 짓느냐. 고런 걸림 없는 무애행을 짓느냐? 계행 파(破)하는 술 퍼먹고, 계행 파하는 그러한 무애행을 짓느냐? 그게 무애행이냐?

도에 깨달아서 생사(生死)에 무애행이래야 되는 것이지, 죽고 사는 생사에 자재자행(自在自行)해야 임수자행(任隨自行)해야 그것이 바로 참 걸림 없는 행이지, 술 처먹고 마구잽이 막 그만 난행(亂行)을 허는 것이 그것이 걸림 없는 행이여? 그 그까짓 한잔 먹고 무슨 뭐 '이게 다 모도 반야지 뭐' 이러고 돌아댕기는 게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심괴불계(深乖佛戒)따냐, 깊이 부처님의 계행을 어길까 보냐. 그런 행세를 해 가지고 그 부처님이 이렇게 똑 도행(道行) 가르킨 것을 어길까 보냐. 그 정직한 마음—화두 잊어버릴라, 행여라도 '이뭣고?'를 잊어버릴라.
그저 한번 생사에 뛰어나는 법은 '이뭣고?'뿐인께. 묘(妙)하다.

우처현선인(又處賢善人)의 혐의지간(嫌疑之間)이면, 또한 착한 사람에 혐의(嫌疑)한 사이에 처허면, 또한 착한 사람에 혐의에 처하면,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저 이렇게 도행을 똑 닦는 어진 대중들 가운데에 혐의를 받아.
아! 그 사람, 그 사람은 어찌 그 대중과 같지 않고 대중규칙에 벗어나고, 또 살모시 뒤로써 무슨 하는 행동이 이상스럽고, 항상 무슨 이런 도처(道處)에, 도를 배우는 이런 회상(會上)에서 대중처 회상에서 저 혼자 제대로 괴각행(乖角行)을 하며, 무슨 사심으로 여편네를 살모시 어디 관계나 할락하고, 몰리 그런 행동 저런 행동 모도 그런 것이 있어.

살모시 공양(供養)이나 빠져 안 먹고, 뒤에 살모시 가서 똑 뒤에—안 먹다 배고프면 먹지—뒤에 가서 살짝이 똑 가서 뒷 밥을 먹거든. 그거 공양에 참여 않고 중이 뒷설거지, 뒤에 가서 그만 그저 저 찬간(饌間)에 들어가서 지름도 드르르 부어서 막 퍼다 비벼서 저 혼자 그만 막 드리 퍼먹고, 그런 행실을 허는 학자가 무척 있다 그 말이여.
뒤로 살모시—안 먹는 체허지, 안 먹기는 뭘 안 먹어. '먹은 것이 있으니까 안 먹는다'는 말이 있지. 중, 때에 안 먹으면은 몰리 먹는다는 거 다 알고 있는 거여. 배때기는 채우지 안 채울 수 없는 거여.

모도 그런 짓—그 대중공양석(大衆供養席), 대중공양이라는 것은 그건 법공양(法供養)인데, 공양석에 항상 참여를 허는 법이지, 늘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배가 아파서 못 먹느니 무슨 뭐, 먹기 싫어서 못 먹느니 무슨 뭐, 별 핑계 대면서 못 먹네. 한 숟갈을 먹더라도 같이 참여해서 먹는 것이 그것이 학자(學者)지. 그것 안 돼, 못쓴 것이여. 될 수 있으면은 대중공양석에 같이 먹는 것이지.

그런 것이 현선인(賢善人)에, 여러분의 도 닦는 착한 대중 가운데 혐의(嫌疑)를 받는 것이여. 모도 다 그런 혐의하지. '그 사람 밥을 안 먹는다. 밥 안 먹는 사이에 무슨 짓을 허냐? 뭣을 하나 어디 가 뭘 사 먹나?' 별것 다 있는 그걸 의혹(疑惑)이락 햐. 확실히 알 수 없이 의혹이 난다 그 말이여.

기위유지혜인야(豈爲有智慧人也)냐. 어찌 그걸 지혜 있는, 현인 가운데서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헐 수가 있냐? 고런 행동허는 것이. 왜 그런 행동을 헐라면은 제대로 가 살지, 이 어진 대중 가운데 들어와서 그런 짓을 허냔 말이여. 왜 그런 괴각행(乖角行)을 허냐 그 말이여.
넘은 다 발우(鉢盂) 펴고 밥먹는데 자꾸 빠지며 뒤로 거둔다, 그 뒤로. 밥 안 먹어? 그 더 먹는 거여. 그게 지혜 있는 사람이냔 말이여, 괴각이지.

자지 말고 들어라. 잘라면 나가! 이놈들 모두 즈그 들으라고 이렇게 내가... 이걸 안 배우고 느그가 어디 중노릇 헐라고 자울고 앉았나. 사미과(沙彌科) 배웠냐?

도 닦는 사당(社堂), 사당에 가서 주(住)허되, 사당이라는 것은 여럿이 앉아 공부허는 데가 아니라 혼자 앉아 공부허는 사당, 저런 법당 같은 데 조그만한 데 그런데 가 앉어서 공부를 허더래도 사미(沙彌)와 동행(同行)하지 말아라.
옛 때는, 그 전에는 중이 장가를 통 가지 않고 고대로 중들만, 남중들만 사니까 여자가 어디가 있어? 어디가 여자가 같이 사는 데가 있어? 도 닦는 데서는 없어.

똑 승려들만 도 닦는 사람들만 사니까. 어린아이들 저 열댓 살썩 먹은 것, 이런 아이를 이 선방(禪房)에는 방부(房付)를 안 받아. 절대 안 받고. 그건 왜 그러냐? 젊은 한 삼십 살썩 먹은 모도 그런 사람들이 그 어린것들 그 열댓 살썩 먹은 것들 그런 것들 있으면은 그 모도 동성연애(同性戀愛)를 혀. 동성연애를 허는 그런 버릇이 있기 따문에 절대 못하는 것이여.
이 어린아이들은 더군다나 뒷방에 안 자고, 뒷방에 안 앉았었고, 또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도 혼자 자꾸 뒷방, 지대방 혼자 가서 누워 자고, 혼자 가서 자고, 그런 거 않는 것이여. 없어.
어디 뒷방에 가서 혼자 자꾸 그렇게 그런 짓이 없어야 한다 그 말이여. 이거 무서운 행실이거든. 몸이 아파서 헐수할수없어 병(病)을 조리한다든지, 그런 병석에는 헐 수 없지마는 그 이외에는 못하는 것이거든.

육십이 넘어 칠십 당년(當年)에는 다 별당(別堂)이라고 나가는 것이고, 앉어서 도를 못 닦으니까 늙은 노인이니까, 누웠다 앉았다 헐 수 없으니까 칠십이면, 환갑 지내면 계를 바치라는 거여. 계행(戒行)을 못 지키겠으니 바치는 거여.
허지마는 젊을 때 당시의 도 닦을 때는 어디 그럴 수 있나. 그런 혼자 어디, 혼자 뒷방에 있어도 사미(沙彌)와 어린 열댓 살 먹은 사미들과 같이 있지를 말아라. 동행허지 말아라.

뭔 어디 뭔 볼일 있다고, 무슨 볼일 있다고 일만 핑계 대고 자꾸 왕환(往還)한다 그 말이여. 무슨 일이든지 핑계 대고 나가거든. 핑계 대고 갔다왔다 갔다왔다. 대중에 너무, 대중에 지내면서 갔다왔다 갔다왔다. 그러니 대중이 '아무개 어디 갔소? 어디 나갔소?' 갔다왔다. 맨탕 뽄봐 가지고 당최 규칙이 서들 안 해.
처억 시간이 되아 하루 사분정진(四分精進)에 꼭 참여하고 꼭 요렇게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 것인데 갔다왔다, 뭔 일에 간다, 뭔 일에 온다, 이것 안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 선방이라 할 수 없는 거여. 어쩔 수 없어서 이것 선방이라고 지금 허고 있지마는 왕환(往還)을 허지 안 해.

거기에 그건 그러기 따문에 인자 그 선객 보호허는 사람이 있거든. 보호허는 사람이라는 것은 주지(住持), 그 관중자(管衆者)는 헐 수 없지. 그 모도 뭔 일을 봐서 그 처중(處衆)을 해 나갈라니까 그 사람 이외에는 수도인, 도 닦는 사람은 그렇게 갔다왔다 허는 법이 없어. 왕환(往還)을 그걸 허는 법이 아니다.
허락을 맡아서 인자 허라고는 했으니까, 그런 일이 가끔 있기야 있지, 꼭 갈 일이 있지, 없기는 꼭 전부 없을까마는 인사(人事)를 왕환(往還)치 말아라. 갔다왔다 말아라.

다른 사람의 밉다 곱다, 그 증발(增發)을 허지 말아라. 누구는 밉고 누구는 예쁘고 뭐 그러한 사량(思量)을 말아라. 증애심(憎愛心)을 그렇게, 그 평등심을 가지지 못하고 그 사람의 모냥을 봐 가지고는 '누구는 좋다 나쁘다' 해 가지고 거다 가서 무슨 좋은 사람은 친하고, 나쁜, 얼굴이 더럽게 생긴 사람은 미워하고, 증발을 하고 그런 마음을 말아라.

신탐구문자(愼貪求文字)해라. 이거 바로 했어. 문자를 탐구(貪求) 말아라. 글자를 자꾸 탐구 마라. 글자 알라고, 글 배워서 알라고 탐구 말아라.
거 문자 탐구(貪求)해서 뭣 혀? 도 닦자고 그 이치 알라는 것이지. 문자 탐구하는 게 뭣이여? 문자 탐구한다고 글 가르친다고 탐구헌다고 뒷방에 이렇게 앉어서 모아서, 뭐 서로 그저 그만 못 헐 소리, 헐 소리, 뭔 소리 해쌈서 남녀 앉혀놓고 그만 그저 글 가르킨다고 하다가 낱낱이 못써.

선방에는 없어. 그 못 혀. 선방은 뒷방 어디 글방이라고 없어. 글방이 강당(講堂)에가 있는 것이지, 선방에 어디 글을 가르킨 데가 있는가. 따악 그런 걸 배우다가도 내던져 버리고 들어와서 참선허는 것인데, 무슨 탐구문자(貪求文字)를 허냐 그 말이여.

아! 김설하가 그 뭐 김설하가 그 유명한 사람이여. 강사 훌륭한 강사인데, 경상북도 김천군 증산면 청암사 극락전, 극락전에 있으면서 그 주지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아! 인자 글을 가르키는데 그 건네 백련암, 그 젊은 예쁜 그 한 20살썩 먹은 가시나, 처녀가 일곱이 댕기면서 글을 배와. 아! 글을 배우는데 아! 그 연애를 허면 무슨 한 년이나 허면 허지마는 일곱을 글 가르치면서 다 해 놨네.

그녀러 것이 그 남녀 가까우면 못써. 그러고 또 우리 도 닦는 사람은—이 세상 사람들은 그 뭐 그까짓 상관없지마는, 도 닦는 사람은 절대 그 가까이 않는 것이여.
뭘라 가까이 가? 가까이 가 뭣 할 거여? 저 헐 일 저 허고 그러지. 자꾸 가, 옆에 가서 자꾸 그저 그 무슨 같이 뭐 손을 잡고, 그저 같이 뭣을 이렇게 받고 주고 그저 그러고. 그렇게 지내면은, 내가 그러기에 학자(學者)가 여그서 정지(부엌)에 푹푹 들어가면 벼락 내지 않어? 그러지 말아라.

그래 탐구문자(貪求文字)여. 문자를 탐허지 말아라. 공부헐라는 사람이 그 글 한 자 두 자씩 글 배우고 앉어서 뭣 하냔 말이여. 글도 우리나라 글도 아니고 타국 놈의 글, 외국 놈의 글, 그까짓 글 그거 배와 뭣햐? 국문(國文)으로 다 나오고 다 볼 수 있고.

참선(參禪)허면, 참선은 무식해도 한 글자 아지 못해도 법문 딱! 해 주면은 법 가르킬 이 있으면 거그서 배워 가지고 막 그래서 막 그저 그만... "즉심(卽心)이 불(佛)이니라. 곧 마음이 부처니라" 했는데, 아 짚세기, 짚세기가 부처라고 알아듣고는 "즉심(卽心)이 시불(是佛)이니라. 네 마음이 부처니라" 이렇게 말을 했는데, 이놈이 잘못 알아듣고 '짚세기가 부처다. 짚세기 신 신는 짚세기가 부처다' 아! 그렇게 알아듣고는 '짚세기가 부처여? 아 신이 부처라니? 아 짚세기 신이 부처여? 그 참 이상하다. 어째 그 신이 부처꼬?' 아! 하다가 툭 깨 버렸네.

아! 짚세기가 부처라고도 아! 깰 수 있지 그 뭐, 다시 그놈만 꼭 드리 몇 달을 했던지 몇 해를 했는지, 짚세기가 불(佛)이라고 허는 바람에 아! 툭 깨 버렸네. 아! 깨 놓고 보니께 짚세기도 불(佛)이지, 그 뭐 짚 아니 뭐 뭐여, 뭐 산산수수각완연(山山水水各完然)이라고 했는데.
산산수수며 산이면 산, 물이면 물, 무엇이 부처 아니며, 뭣이 해탈 아니며, 아 뭐 해탈 아닌 게 뭐 있어야지 깨달아 놓고 보니. 짚세기가 부처지. '하! 이 즉심(卽心)이 시불(是佛)인데, 짚세기가 부처라고 했구나! 이놈이' 이러고 그 그런 것인데 그까짓 탐구문자 할 것이 뭣이 있어?

신수면과도(愼睡眠過度)해라. 그놈의 잠을, 잠 땀에 도(道) 못 닦아. 한 번 누우면은 송장도 꽉 매(昧)해서 뭐, 그 꽉 착(着)해서 기맥히지. 한 번 누우면 그저 한 너댓 시간, 그저 한 두 시간 꼭 자 부려. 푹 자 부려.
세상에, 조끔씩 졸다가 깨고, 깨 가지고 '이뭣고?' 공부를 허다가 조끔 이래도 고 속에 다 있는 것이여. 이놈이 와도 그 속에 공부 그대로 화두 딱 들고 있거든.
아 그 좀 잠을 좀 졸다가 10분 졸던지, 10분 같으면 졸지, 졸다가 아 일어나 공부도 좀 허고, 자다가 눈 좀 뜨이면 바로 일어나 갖고 앉아 공부도 좀 해야지. 밤 공부는 하나도 안 혀. 밤 정진 같이 좋은 게 없어.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 낮에는 갈고 밤에는 읽는다. 공부하는 사람도 그랬는데, 세상 저 글 같은 것도 주경야독허고, 순임금 같은 임금도 그렇게 그 다 말 안 했는가?
밤에는 막 자 버린다. 그놈의 잠 속에 파묻혀서, 아무것도 모르고 미(迷)해서. 그 잠, 그 잠을 많이 자지 말아라. 절대로 과도(過度)치 말아라. 그저 조끔 자면 공부해라.

산란반연(散亂攀緣), 반연허지, 어디 반연허지 말아라. 산란(散亂) 난잡(亂雜)헌 데 가서 반연해서 자꾸 거기 가서 놀고, 습관 되고, 서로 같이 찾고 자꾸 그러니 산란반연허지 말아라.

여그 봐. 약우종사(若遇宗師)가, 종사(宗師)는 조실(祖室) 스님이 종사여. 약우종사가, 종사인데 대종사면 그만이여. 다시 조실, 저기 대종사(大宗師)라고 안 써 놨데야. 거 다 전국이 인증해야 대종사지. 조실이면.
만약 종사가 좌(座)에 올라서, 이런 설법상(說法床)에 올라서 설법을 허거든, 법문을 허거든, 아 법문한데 법문 듣고 자는 놈이 어디 있어? 잔 놈이 그놈이 공부인이여? 공부한 사람으로 들어온 사람이여? 처게으른게 놀고 처먹을라고 들어왔지. 놀고 밥이나 얻어먹고 그럴라고 들어온 놈이지, 공부할라고 들어왔어?

종사가 좌(座)에 올라서 법을 설허거들랑 절부득어법(切不得於法)에, 그 법 설(說)허는데 간절히 시러금 저 법 설허는데 설법하는데, 작현애상(作懸崖想)해야, 현애상(懸崖想)을 지어서 퇴굴심(退屈心)을 내 가지고 퇴굴심을 내지 말아라.

그 법문을 척 들으면은 '그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해 가지고, 성불해 가지고도 몇오백 겁을, 몇천 겁을 닦아야 증(證)이 있어. 견성 증(證)이 있어야 생사해탈한다' 이러면 '아! 그거 내가 어떻게 그 견성을 내가 견성을 해서 그 증을 헐까?' 겁약심(怯弱心)을, '아이고 못 허겄다' 그러헌 마음을 내지 말아라.
그것이, 어디 그것이 천하에 밥 먹기보담도 쉽고, 옷 입기보다 쉬운 것이다. 물러가지만 않고 퇴타(退墮)만 않고 간절히만 할 것 같으면은 벼락같이 오는 것이여. 물러가고 퇴타를 허면은 몇억만 겁을 안 된다 그 말이여. 그럴 거 아닌가.

종사가 설법허거든, 좌에 올라 설법허거든 간절허니 그 설법을 들어 가지고 현애상(懸崖想)을 내지 말아라. '아이고 내가 어떻게 해야' 그 마음 내지 말아라.
물러가지 아니허면 그만 되어버리는 건데 물러가면 안 되는 것이니까, 현애상은 '저그를 내가 어떻게 올라가? 저 높은 디를, 아이고 못 가겄다' 그런 생각은 내지 말아라. 올라가면 가지, 못 올라가?
현애상(懸崖想)만 내면 생퇴굴심(生退屈心)이다. 퇴굴심이 나는 거여. 물러갈 마음 나. 물러갈 것 같으면 그 쓸 것인가, 퇴타하면?

혹작관문상(或作慣聞想)하야, 혹 또 관문상(慣聞想)을 지어서, 혹 '그까짓 것 내가 못혀? 그건 뭐 그걸 못혀? 화두 참선 그걸 못혀? 그까짓 것 뭐 오늘 안 해도 괜찮고, 내일 안 해도 괜찮고, 내 나이 좀 늙으면 헐란다' '내 시집가서 시집살이도 해 보고 그러고 와서 참선헐란다. 아들이나 좀 낳아 나 놓고, 그러고 살림살이 좀 해보고, 그래 좀 내외간 맛도 보고 좀 그러고 해야겄다'
남자는 '내 이만큼 뭣 좀 가서 사업도 좀 이루고 내 돈도 좀 벌고 해놓고 해야겄다. 그까짓 것 못해?' 이러고 미룬다. 관문상이다 그건. 쉬운 마음을 내 가지고 너무.

그런 관문상을 지어서 생용이심(生容易心)이니라. 아주 쉽다고 너무 쉽다고 그런 생각을 내지 말아라.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현애상(懸崖想) 지으면 그렇게 못써. 퇴굴심도 내지 말고. 그저 이것밖에는 할 것이 없구나. 다시는 뭐 이밖에 없구나.

당수허회문지(當須虛懷聞之)허면, 마땅히 생각을 다 놔버리고—일체 것은 다 허망하고, 일체 것은 다 이 세상사라는 것은, 이 몸뚱이 해당된 모든 일이라는 것은 결국 이 몸뚱이 따라 있다가 이 몸뚱이 떨어지면 다 떨어져 버리고 다 없어버려. 허망하고 무상하고 소용없는 것이다. 허니 그러한 일체 속에 망념, 뭔 생각 쏴악 비워 버려라. 내던져 버려라. 그까짓 것 생각도 말아라.

허회문지(虛懷聞之)허면은, 그러헌 생각을 내던져 버리고 자꾸 법문(法門)을 들어봐라. 똑 법문 듣는 게 제일이니까. 그 법문을 들어봐라.
필유기발지시(必有機發之時)허리라. 반다시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다. 반다시 그 기틀 발(發)할 때가 있을 것인께. 기틀 발(發)할 때라는 것은 바로 깨달을 때가 있었다 말이여. (처음~38분12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초발심자경문(초심)2022. 12. 12. 06:54

 

 

•§• 초심(2/7) (讚唄祝願~流蕩邪心) - 전강선사(No.146)

**전강선사(No.146)—초심(2/7)(讚唄祝願~流蕩邪心)(임자72.08.11) (전146)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약 29분.


녹수청산천만리(綠水靑山千萬里)에  고인별후정하허(故人別後情何許)오
나무~아미타불~
일성장적(一聲長笛)은 이정고(離情苦)인데  제조낙화춘적적(啼鳥落花春寂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고인(古人)들도 서로 청산, 녹수청산(綠水靑山)에서 도를 닦다가 그 도반(道伴)이라는 것이 천하에 없단 말이여. 문수보살도 그 두 분이 도반이거든. 문수보살 (보현보살) 두 분이 도반으로서 조불양화(助佛揚化) 하기를 원력을 세웠거든.

어떤 부처님이든지 부처님이 출세(出世)허면은 쌍족제자(雙足弟子)가 되어가지고 그 부처님의 정법을 조불양화, 그 잘 발전을 허게 그렇게 허자고 원력을 세우고 두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 눈을 쥐어뜯고서 도를 닦았어. 서로 경책(警策)해 가면서 그 도를 뭐 일생뿐만 아니라 다생을 그렇게 도반이 되어가지고 닦아. 그 인연으로 늘 만나거든. 서로 도반이 되어서 도를 닦았기 따문에 또 만나고 또 만나고 그런 거여.

녹수청산천만리(綠水靑山千萬里)에 고인별후정하허(故人別後情何許)냐. 서로 살다가 도를 같이 닦고 살다가 한 분이 돌아가시면은 그 이별한 후에 정(情)을 어따가 그 하소연할 것이냐. 기가 맥히지. 그 정을 말로 다 할 수가 있겠나.

일성장적(一聲長笛)은 이정고(離情苦)다. 그 한 소리 긴 젓대소리는 기가 맥히게 좋은 그 젓대소린데, 그게 그 기가 맥힌 고(苦)다. 이별고(離別苦). 이별을 생각하니 천하 없는 젓대소리가 귀에 들리는데 그 젓대소리가 온전히 괴롭다. 정 따문에.
제조낙화춘적적(啼鳥落花春寂寂)이로구나. 새는 우는데 꽃 떨어진 봄 적적허구나. 고인(古人)의 시(詩)여.


부처님께 예경할 때, 찬패축원(讚唄祝願)허되, 그 축원을 떠억 부처님께 허는데, 수송문관의(須誦文觀義)다.
"앙고(仰告)~" 허면서도 그 송문(誦文)허면서, 축원(祝願)을 읽으면서 그 관의(觀義)를 해라. 의(義)를 관(觀)혀. 관이 제일이여. 그 축원, 그 뭐 입으로 '아무개 보체' 뭐 그 뭐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의(義)를 따악 관허는 법이다. 관법(觀法).

부득단수음성(不得但隨音聲)해라. 음성을 딸치 마라. 그 소리 그거 뭐, 뭐 무슨 소용이 있나?
또 할라면은 부득운곡부조(不得韻曲不調)다. 예경(禮敬)을 또 그래도 소리를 내서 헐 때는 있지 없는 건 아니니, 여러 이 대중이 모여서 부처님께 예경할 때 그럴 때 또 예경을 허는데 누구는 “지심귀명례” 크게 내고, 어떤 이는 “지심귀명례(낮은 음성)” 그러고, “삼계대사(높은 음성)”는 “삼계대사(낮은 음성)” 허고.
모도 이렇게 운곡(韻曲)을 따라서 창(唱)을 똑같이, 이 다 있단 말이여 「초심(初心)」에. 운곡을 똑같이 내서 정성스럽게 이렇게 할 것이다. 그래 운곡을 고르지 않지도 말아라. 그 골라야 한다 그 말이여. 같이 똑 골라서 그 예경답게 해라.

첨경존안(瞻敬尊顔)하되, 조실(祖室) 스님 같은 인자 그런 존안을 높이 보되, 날 가르키는 조실 스님이니, 선방(禪房)에는 조실 스님이 아 그 중 조실 스님 아닌가. 법(法)을 가르키는 조실 스님이니 그 법을 높일라니까, 법 가진 조실 스님이니 법을 높여야 할 것 아닌가. 법을 중히 여길 것 아닌가.

그 높은 얼굴을 공경히 보되, 부득반연이경(不得攀緣異境)이다. 요새 가만히 봐. 어디서 객(客)이든지 그 배우지 못한 객은 오면 절을 허면서, 절을 이렇게 허면서도 조실 스님한테 존안(尊顔)에 절을 허되, 이런다 그 말이여. 뭐 이래 보면서 이래. 그거 그 아니다 그 말이여.
꼭 존중히 예를 허는 것이지. 고갯짓을 허고 딴 걸 보면서, 이경(異境)을 보면서 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초심행, 우리 중, 도 닦는 중의 행이 그렇다 그 말이여. 부득반연이경(不得攀緣異境)이다. 그런 예경을 허는데 다른 경계를 보면서 그렇게 허지 말아라.

수지자신죄장(須知自身罪障)이, 모름이 알거라. 자신죄장(自身罪障)이, 내 이 몸뚱이 죄장(罪障)이 죄가—우리 몸뚱이—유여산해(猶如山海)다. 산과 바다 같다. 산 바다도 우리 죄장에 오히려 모지래, 비유헐 수 없어. 산이 그렇게 높고 많고, 바닷물이 그렇게 많지마는 산과 바다보담도 더 많이 죄를 지었다.
다생겁(多生劫) 중으로 지은 놈의 죄가 한량도 없다. 그 지금 저 숙업(宿業)이 한량이 없이 쌓여 있는데 차례차례 받는 것이여. 좀 암만 그 어떻게 마구잽이 막 드리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죄업 받는 것이 차례로 차례로 차츰차츰 아무 때 받을 때가 있고, 그 때가 있어.

자신죄장(自身罪障)이 산해(山海)와 같다. 그러니 이렇게 참회를 이참(理懺)으로, 사참(事懺)으로 해라. 우리가 사참으로 허는 것이 이 절을 이렇게 아침마당 지금 참회하는 것이여. 이 '참(懺)을 꼭 해라'고, 아 바로 「초심(初心)」에 안 있는가?
참회를 하되 껍데기로만 입으로만 다시는 살생 안 하고, 다시는 도둑질 않고, 사음질 않고, 그러지 말고 뜻으로 참말로 실행을 꼭 해라. 그 참회를 꼭 해 가지고는 꼭 실행을 닦아라.

그래서 가이소제(可以消除)니라. 그래사 가히 써 가이소제(可以消除)가 되는 법이다. 아 그 다시 안 할라고 맹세하고 아침마당, 아침마당 이렇게 사참(事懺)을 허니, 뜻으로 또 그렇게 이참(理懺)을 허니, 아 죄가 좀 사해질 것 아니냐.

심관능예소례(深觀能禮所禮)가, 깊이—우리가 부처님이 계시는데, 능예(能禮), 예를 받는 이가 부처님이고, 소예(所禮), 예를 허는 사람이 우리인데—부처님이 예를 받고, 우리가 절을 허는 것이 진성연기(眞性緣起), 내 참성품 인연으로 쫓아 일어난 것을 꼭 관(觀)해라.
내 마음으로 쫓아 일어나는 것을 그걸 관을 해라. 관법(觀法)이여. 몸뚱이만 그 아무것도 아니어. 몸뚱이만 허는 게 뭐냐? 관을 딱 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깊이 감응(感應)하는 것이, 부처님이 깊이 감응하는 것이 헛되지 아니한 줄로 관(觀)해라. 꼭 그 참 진실로 관을 해라. 그래서 영향상종(影響相從)이니라. 그림자와 메아리가 서로 쫓는 것 같이 해라. 여그서 “억!” 허면 저그서 “억!” 허지 않는가?
우리가 허는 것이 꼭 그런 거여. 부처님한테 한번 공경하고 진심으로 참된 마음으로 참회를 허면은 부처님이 참회를 받고, 응허고 죄업 소멸하는 것이 메아리여. 여그 “억!” 허면 저그서 “억!” 허데끼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렇게 안 될 것인가?

거중요(居衆療)허되, 중요에 살되, 중요(衆療)라는 것은 우리 선방 여럿이 살되 항상 상양(相讓)해서 내가 헌 것이라도 못헌 체, 아무리 잘한 것이라도 잘 못헌 체, “제가 소승(小僧)이 뭘 압니까?” 이렇게 상양(相讓)을 해서 다투지 말아라.
제가 잘헌 체해 가지고 꼭 싸우는 것이니까. 거 남의 허물을 기어니 파내 가지고 덕을 잃고 싸우는 것이니까. 상양해서, 허는 것도 못헌 것 같이 해서 항상 저 사람을 도와주고, 저 사람이 잘한 것 같이 해 주고 내가 못헌 것 같이 해서, 상양해서 싸우지 말아라. 서로서로 붙잡아 도와서 보호를 해라.

승부쟁론(勝負諍論)을 말아라. '내가 제일이고 너는 못쓴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헌 승부를 모도 말해 가지고는 '내 말이 옳다' 우겨 가지고 싸우지 말아라. 꼭 그 승부라는 게, 싸우는 게 거그서 나온 것이다.

머리를 모아 가지고 한화(閒話)를 말아라. 세상에 중이, 중 되어 가지고 도학자가 머리를 모아서 왜 한담(閒談)을 하냐? 한담할 겨를이 어디 있나? 꼭 그저 되나 안 되나, 망상이 나거나 말거나 항상 헐 것은 '이뭣고?'뿐이다. '이뭣고?'뿐인데 어디 한화(閒話), 한담(閒談)할 겨를이 어디가 있어서 머리 모아서 한담하냐? 그것 한담 못쓰는 것이여.
왜 방에서 항상 글안혀? 혹 물을 말만 묻고, 대답할 말만 대답하지, 말 두 말도 말어라. 어디서 뭐라고 뭔 말 한참 그런 뭔 말을 하면은 내 쫓아가서 말하지 않어? 왜 한담(閒談)하냐? 왜 머리를 모아서 무슨 그러헌 그 잡담을 하냐? 내가 그러지 않어?

저그 내려가서도 선방 안에서 뭔 말을 주고받고 무슨 말을 혀? 왜 왜 이 묵언(默言) 구역, 그대로 묵언 구역이 아닌가. 도 닦는 데가 묵언 구역이 그대로 아닌가. 항상 거그는 앉으면 화두만 들 일이지 무슨 얘기를 허냐 그 말이여. 선방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법 없어.

백월 스님이, 저 태백산 백월 스님이 선방 원주(院主) 스님인데, 양식이 떨어지면 속가에 어디 내려가서 시주 집에 가서 “양식을 좀 주십시오. 우리 선방에 양식이 떨어져 왔습니다” 아 그러면 시가(施家)에서 안 주어?
아 '선방에 양식이 없다'고 하니까, '아이고! 우리가 굶더라도 드려야겠다'고 모도 이런 원력으로써 정성적으로, 정성스럽게 쌀을 모도 주면은 그놈을 받아 가지고 올라와.

가만히 짊어지고 선방 앞으로 오면 선방 안에서 아무 말이 없이 가만히 도를 닦고 앉았으면 절을 백배(百拜)를 혀. 그저 절을 백배를 혀. 지극히 정성으로만 절을 혀. '참으로 감사하시다. 저렇게 도를 닦아서 중생을 제도헐 우리 스님네 참 감사합니다'
만약 얘기 소리가 나. 그 선방 안에서 얘기 무슨 한담을 혀. 잡담을 헌다든지 허면, 쌀을 놓고 말리(마루)에다가 쌀을 팍! 부딪쳐 버리고, “내가 저런 것들을 갖다가 쌀 갖다가 얻어다가 밥을 멕이다니 내가 죄를 더 짓는구나” 아 그러고 울었어. 그렇게 수좌(首座)를 보호를 했어. 백월 스님이여. 뭐 별로 오래 되지도 안 했어.

그런데 생전 당시에 뜻밖에 도솔천(兜率天)에서 동자가 내려왔다고, 도솔천에서 내려왔다고 떠억 그러면서 대중스님네 꿈에 '저 백월 스님을 도솔천으로 모시고 올라가니까 그리 아십시오' 아 모도 그렇게 현몽(現夢)을 했어. 도솔천에다 모신다고, 그 선객(禪客) 그 공부허게 그렇게 보호해 주는 거, 그거 참 그렇게 장하다 그 말이여.
'생전에 도솔천에서 모시러 왔습니다' 한두 분 꿈이 아니라 대중 전체 똑같이 그런 꿈을 꾸었어. 꿈꾸고 나서 아침에 대중이 모아 앉아서 꿈 얘기를 했어. "아! 우리 원주 스님이 도솔천 내원궁에서 모셔간다고 아! 이런 꿈을 꾸었으니 웬일인가 모르겠다"고, 아 모도 그 말 듣고, "아! 이거 참, 우리 원주 스님 도솔천에서 참말로 모셔 갈란갑다"고 이랬다 그 말이여.

과연 정오(正午)가 되니까, 한 오정(午正)쯤 되니까 백월 스님이 앞에 와서, 대중스님네 모도 앞에 와서 “소승은 박복(薄福)해서 큰스님네를 오래 모시지 못허고, 오래 좀 뒤를 보호허지 못허고는 오늘 갑니다, 소승은” 아주 목욕재계 따악 하고는 그만 그대로 와서 앉아서 예(禮)를 혀. “도솔천 내원궁에서 청장(請狀)이 왔으니 헐 수 없이 올라갑니다” 그러고 절을 허고는 그대로 사르르르르 좌탈입망(坐脫立亡) 했지.
그렇게 참! 그런 거여. 이 선객 보호허고 선방을 보호허고 선원을 짓고 도를 닦게 만드는 이 승복(勝福)은 말할 수가 없다. 백월 스님 역사가 증명하지 않아? 그런 일이 없어? 없는 걸 내가 얘기허고 앉았어?

항상 이렇게 상양(相讓)해서 다투지 말고 서로서로 부조(扶助)해서 보호허며 승부를 말아라. 그래가지고 머리를 모아서 그 한담(閒談), 취담(聚談), 그런 거 허담(虛談), 절대 말아라.

또 어디를 나감에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인 설법 장소라도 그런 데 나가고 들어갈 때, 신발 같은 것을 한쪽에 잘 벗어 놨다가 똑 찾아 신고 나가거라. 내 신 신지, 넘의 신 신고 그만 어디 가고. 그 중은 그런 법 아니어.
또 앉고 누울 때에 꼭 내 자리에 앉고 눕고 그러허지, 아무데나 가 푹 앉고, 아무 자리나 가서 눕고 그러지 말아라. 도학자라는 것은 그러는 것이 아니어.

객(客)을 대(對)해서 말을 헐 때, 어디서 객이 오면 그 객을 대해서 말을 헐 때, 가추(家醜)를 들날치지 말아라. 내 집안에 아무리 나쁜 일이 있닥 하드래도 그 나쁜 일을 객(客)한테 말허지 말아라. 그거 않는 것이여.

항상 '원문(院門)에 우리 참선하는 이 참선 대중이 잘 허신다'는 그러헌 불사적 말을 복 있는 말을 헐지언정, 원문불사(院門佛事)의 말을 찬탄헐지언정, 저 모도 어디 돌아댕이면서 댕이며 나가서 숭보고 돌아댕이지 말아라.
그 숭보고 돌아댕이는 그런 거, 그 무슨 허물이 있는 거 그런 거, 그걸 모두 들내서 역부러 말을 허고 돌아댕이거든. 그것 천하에 못쓴 것이여. 그건 쫓아내 버려야지 된 법이 없어. 그건 으레껀 쫓아내 버려야 하는 거여.

뭔 잡된 일을 못된 일을 보고 듣고, 어디 가서 잡된 그런 일을 듣고 의혹(疑惑)을 내지 말아라. 그 의심 내고 의혹을 내지 말어.
이번에 모도 뭣 저, 뭣 헌다고 모도 나와서 여 모도 말하지 안 했는가? 그 말하는데 왼통 이북(以北) 사람이 나와서 그 부모 만나기, 가족 찾기도 모도 운동헌다고 그 야단하고 했는데 뭐 나와서 라디오 방송으로 어떻게 말을 잘허고 당최 뭐 그 거그는 그렇게 잘 살고, 그렇게 좋게 되고 뭐 어짜고, 어저께도 누가 그런 소리를 헌다 그 말이여. 내 벼락을 내 버렸어.

'고놈들이 허는 지정머리라는 것은 곧 백성들 모도 피 전부 빨아서 제 혼자 제일이고, 제 혼자 독재주의를 해 나가는 놈의 정치를 가지고 그따구 놈의 소리를 허냐'고, 내가 그만 벼락을 내 버렸어. 그놈들 허는 지정머리가 전부가 그뿐 아닌가 말이여.
뭐 그런 짓이여. 그런 의혹 같은 거 모도 집안 잡된 일 같은 거 있닥 하드래도—왜 우리, 우리 국가에는 어째서? 이렇게 문화 건설을 잘 해놓고, 얼마나 우리 자유국이 얼마나 지금 자유스럽냔 말이여.

요긴한 일이 아니거든—저 어디 공원에 놀고, 뭔 요긴한 일이 없이 고약한 데 그런 데, 유주엽현(遊州獵縣), 엽현(獵縣)이라는 건 그건 모도 못쓸 데란 말이여.
잡된 데 가서 모도 놀고, 저 속인(俗人)으로 더불어서 도 닦지 않은 사람으로 더불어서 가서 쫓아가서 뭔 얘기나 하고, 그래가지고 모도 저로 하여금 미워허지 말아라. 미워허고 모도 그런 허물허지 말아라.

실자도정(失自道情)이어다. 이러헌 도정(道情)을 잃지 말 것이니라. 도(道), 이거 도정(道情) 잃는 것이거든, 도학자라는 것은 그러한 데 가서 그렇게 놀면서, 가추(家醜)를 모도 들내면서 도정을 잃지 말아라.
만일 꼭 요긴한 일이 있어서 출행(出行)을 허거들랑, 어디를 나가거든 조실 스님이나 주지 스님한테 고(告)해서, 말을 해서 관중자(管衆者), 그 관중자, 그렇게 대중을 가르켜 나가는 관중자한테 고해서 그 가는 곳을 꼭 알릴 것이니라.

같이 살다가 슬쩍 어디 간다고 가고 없으면은 그 어찌 간지 아냐 그 말이여. '어디 가 도둑놈이 잡아갔나? 어디 가서 무슨 큰일을 당했나? 어디 가 죽었나? 무슨 일이 있어 이렇게 없어졌노?' 거 되겄어?
절대로 '어느 때 뭔 일이 있으니 거가 좀 보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고(告)허고 거처를 알리고 갈 것이니라.

만약 속가(俗家)에 들거들랑 모름이 굳게 정념(正念)을 가져라. 어쩌다가 속가에 가거들랑, 출가한 사람이 도학자가 내 고향을 찾아 부모한테를 찾아갔다 하드래도 정직한 마음을 꼭 가지고 가거라. 저 색(色)을 보고 소리를 듣고 삿된 마음을 그 내서는 안 된다.

속가에 가면 흔히 부모라도 도 닦는 도를 잘 닦는 그 자식인데, 도를 잘 닦도록 그저 이렇게 보호를 해 주고 그 자식을 천하에 없이 부처님처럼 이렇게 보면 허지마는, "장가나 가거라"
그거 뭐 그저 가서 그저 멕일 것, 못 멕일 거 뭐 그저 산목숨이나 얼른 닭이나 모가지 홀켜 잡아 가지고는 푹푹 끓여서, "아나, 어서 먹어라" 모도 요런 짓이나 하거든. 속가라는 게 그렇거든. 어디 그 도 닦는 사람 대접인가?
전부 도를 못 닦게 하는 장애뿐이거든. 그러니까 정념을 가지고 갔다가 그 정념을 잃지 말고 와야 한다. 행여나 절대 삿된 마음을 내지 아니 해야 하느니라.

코가 꽉 맥혀서 당최 뭐... 또 코가 어째 이렇게 맥힌고? (처음~29분25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
초발심자경문(초심)2022. 12. 5. 21:44

 

 

•§• 초심(1/7) (夫初心之人~知衆行次不得雜亂) - 전강선사(No.145)

**전강선사(No.145)—초심(1/7)(夫初心之人~知衆行次不得雜亂)(임자72.08.10) (전145)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1) 약 20분.

 

(2) 약 28분.



(1)------------------

유유만고사(悠悠萬古事)야  성하수공류(城下水空流)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성초운안(一聲楚雲雁)이요  고범원객주(孤帆遠客舟)니라
나무~아미타불~

생각해 봐라. 모도 생각해 보아.(8초간 묵음)
내 몸뚱아리만 이거 온 곳도 모르고 가는 길도 모르고, 이런 것 하나 받아 가지고 이걸 몸뚱이라고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이라고 허면서 뭣이라고 허면서, 이거 뭐 살다가서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기도 허고.
그뿐만 아니라 만고(萬古) 모든 사(事)가 그 뭔 성하(城下)에 수공류(水空流)니라. 성 아래에 물 흘러가는 것 같여. 잠깐 있다가 숙홀즉무(焂忽卽無)허고, 모도 그저 없어져 버리는 법뿐이지.

일체 물질이 부증생(不曾生) 부증멸(不曾滅)이여. 일체 물질의 원소가 아주 없다는 것이 아니어. 일체 물질의 원소도 부증생 부증멸이언마는, 그 뭐 천변사(千變事)가 모도 변해져서 없어지기도 허고, 그저 뭐 어쩌 고쳐 이상스럽게 되어버리기도 허고, 어디 무슨... 다 그렇게 그 허망하게 모도 성 밑에 물 흘러가듯 혀.

일성초운안(一聲楚雲雁)이요. 한 소리 그 기러기 저 초운(楚雲)에, 저 초나라에서 날아오는 기러기 소리와 같어. 잠깐 그 날라감서 그 소리 삘삘삘삘 허고 가는 거와 같여. 우리 인생의 인생사도 그렇지 않는가? 무상(無常)한 법이.
고범원객주(孤帆遠客舟)니라. 외로운 배가 저 멀리 보이도 않게 떠나가는 것만 같어. 무상하고 허망한 것을 얘기헌다 그 말이여.

이렇게 무상하고 허망한 우리 인생이 이렇게 척 나와서—평생 과거 천만겁 중에 내가 어디 없나? '내'라는 내가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헌 주인공, 내 면목이 없어?
그건 없어진 법 없어. 허망하고 무상하고 뭐 그런 법도 없고 항상 있어. 부처도 있고 나도 있고, 다 있어. 그것을 없다는 건, 그것이 물 흘러가듯 헌다는 것이 아니어.

그 본각대지(本覺大智) 본래 근본면목이 그대로 있건마는, 그놈을 깨달지 못해서 알지 못해서 이 범부(凡夫) 이놈의 미(迷)해서, 미혀. 깨달지 못하고 미(迷)했으니 범부 아닌가? 범부 분상에 그렇게 모도 무상이 있고 허망이 있고.

이 몸뚱아리에 이놈, 이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가 이놈이 늙어 병들어 죽는 모도 전체와, 그 몸뚱이 가운데에서 퍼 일어나는 그 번뇌 망상 구백생멸(九百生滅) 망상식—망상식 그놈이 모두 눈깔 그 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에서 모도 퍼 일어나는 망상식, 그놈이 어디 그놈 뭐 그놈이 초운안(楚雲雁) 같고, 초나라 기러기 소리 공중에 날라간 것 같은 거여. 원객주(遠客舟), 멀리 저 배 떠나간 것 같고, 모도 만사가 성하(城下)에 물 흘러가는 것 같고, 그 허망하지 않는가? 그거 무상하지 않는가? 어디 항상함이 있나?
내 원리를 들고 말하는 것이 아니어. 우리 인생의 모도 이 미(迷)헌, 인생 분상을 들고 말한 것이여.

이러허니, 우리가 이렇게 도문(道門)에 이 몸을 받아 가지고, 허망한 무상한 이 몸을 받아 가지고 도문에 들어왔으니 이 도(道), 언제 도를 한 번이나 닦아 봤던가? 과거 인연이 있어서 뭐 닦았든가?
한번도 도라는 것은 닦아 보지 못헌 미(迷)헌 중생, 꽉 미해서 그 우치(愚癡)에 떨어져서 도 한번 배워 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 몸 받아 가지고 인자 참, 도문에 들어와서 도를 배우는 것을 그걸 초학자(初學者)여, 인자 초심(初心)이여. 처음 마음으로 도를 배운다.

도 배우지 않는 것이 그 어디 무슨 초심인들 뭐 있나? 처음 마음인들 거 있어? 그 무슨 놈의 처음 마음이여? 밤낮 그거 죄업이나 퍼 지었지 언제 도 닦았나?
비로소 도 닦을 마음을 내는 것을 초심(初心)이다. 처음 마음으로 인자 도를 닦을라고 나온 사람이여.

그러니 악한 것은 여의어라. 원리악우(遠離惡友)해라. 멀리 악한 벗을 여의어라. 악한 벗은, 도를 닦지 못하게 헌 것이 제일 나한테는 악한 벗이다.
어머니나 아버지라도 도를 못 닦게 허고, 수도(修道)허러 갈라카면 나를 출가 못하게 하는 것은 악우(惡友)다. 악연(惡緣)이여 그것이. 암만 부모요 자식지간이지마는 그 은혜야 참 기가 맥히지마는, 생사해탈을 못허게 만드는 아 그 악한 인연 아닌가.
그거 뭐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좀 낳아 주었다고 도를 못 닦게 만들아? 그 부모가 도를 못 닦게 헌다고 안 닦을 것인가?

그러니 도를 못 닦게 헌 인연은 여의어라. 그것이 모도 악연이고 악우니까 여의어라. 안 여읠 수 있어?

친근현선(親近賢善)해라. 현선을, 현선(賢善)은 성현(聖賢)이여. 도를 통헌 성현이여.
현인이 아니고는 도가 없어. 첫째, 도문(道門)에 나올 때에는 스승부텀 찾는 법이여. 법이 그려, 원칙이.

초조(初祖) 달마(達摩)가 바로 나와서 말씀해 주되,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니라. 어서 속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느니라」 그 스승은 어떠한 스승이냐? 나를 도를 가르켜 줄 스승이다.

도를 자기가 깨달지 못허고야 가르쳐 줄 수가 있나. 제가 깨달지 못허고 남을 가르키는 것은 그것은 제 모가지 제가 짤르고 남 모가지 짤르고 불법(佛法) 망하는 거 아닌가. 어디 그러한 응..

첫째, 도인(道人), 참도인, 바로 깨달은 도인을 현인이락 햐. 현선(賢善)을 찾아라. 그래서 그 성현한테, 그 내 스승한테, 옳은 스승한테 오계(五戒), 십계(十戒)를 받아라.
오계와 십계는 내가 늘 말했지마는 우리 아침에 십악참회(十惡懺悔)하는 거 그것이 십계여. 십중대계(十重大戒)여. 그것이 『범망경(梵網經)』 십중대계 아닌가? 범망경에 십중대계는 그대로 있어.
어디 찾아봐라. 천만 곳을 다 찾아봐. 비구계 250계 비구계가 어디 있으며 비구니계 500계가 어디 있는가, 좀 찾아봐. 알았단 사람 좀 나오고. 그것은 범망경에도 없어.

부처님이 십중대계를 설하셨다. 그 십중대계가 그것이 그 바로 심지법문(心地法門)이여. 참선허는 사람이 가지는 법이여. 참선허는 사람이 아니면 십중대계를 가질 수가 없는 거여.

화두(話頭)를 떠억 함에, 화두를 떡 벌써 인자 화두 가진 학자니, 화두를 선지식(善知識)한테 탄, 배운 학자니 항상 화두다. 내 살림살이가 화두여. 인자 참 내가 나 할 일이 화두여. 그 참사람 초심(初心)이여. 처음 마음 사람[初心者] 인자, 화두하는 게 처음 마음 사람이여.
항상 '이뭣고?'만, '이 뭐냔 말이다? 대체 그 뭐여?' 아무리 붙여 봤자, 무슨 물질 무슨 상견(相見)을 붙여 봤자 상견이 아니어. 사견(邪見)을 무슨 빛깔이나 무슨 그걸 붙여 봤자 사견이 아니어.

붙혀도 떼도 모도 모도 상견 사견뿐이여. 그러니 그거 알 수 없는, '이뭣고?'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지 다른 것이 뭐가 붙어 있나? 아무것도 붙들 못혀. 그러니 무슨 우리가 살생죄(殺生罪)를 아침에 참회했지마는, 거기에 무슨 살생죄가 있나? '이뭣고?'만 하는데 무슨 살생하나 말이여?

또 살생 않지마는 그 어디 또 가지는[持], 살생 안 하니 (계를) 가진 것이지마는 어디 그 가진 상(相)이나 있나? '가진다'고 해도 가진 상도 없다.
가진 상이 없는데 그 무슨 파(破)허는 상이 있겠나? 가지고[持] 범(犯)한 것이 어디 거 붙어 있나? 그러니 그 계상(戒相)인들, '가지고 범한다'는 상(相)인들 어디가 있나? '이뭣고?'뿐이지.
그거 옳게 닦는 거 아닌가? 옳은 참 본분학자(本分學者)의 계(戒)가 아닌가? 심지법문 그대로, 부처님 말씀 범망경 그대로 아닌가?

그다음에 도둑질. 도둑질 그놈도 그거 그게 그 어디 언제 어느 참선하는 사람이 남의 것을 돌라 와? 돌라 오지도 않지마는 돌라 온 상이 있어? 범(犯)한 상이 있어, 가지는[持] 상이 있어? 무슨 계상(戒相)이 또 거가 붙어 있어?

사음질할 마음은 어디 마음이나 내나? 또 그런 마음이 난다 한들 사음, 과거에 무량과거에 그저 숙습(宿習)이 있어서, 하도 많이 지어놔서 그런 생각이 난다한들 그까짓 놈의 생각 일시에 난 건, 유공각지(唯恐覺遲)해라. 각(覺) 더딘 걸 더디(두려워) 해라.
그러한 색심(色心)이 나더라도 난 놈은 제대로 내비두어 번지고 어서 속히 나만 찾아라, '이뭣고?' '뭣고?'만 해 보아라. 간 곳 온 곳 없지. 그 무슨 상(相)이니 어디가 무슨 뭐 뭐 뭣이 붙어 있나? 그렇게 화두만 잡드리해 나간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인들 또 거짓말이 어디 있어? 참말인들 어디 있으며, 무슨 거짓말허고, 참말 좋은 말허고, 그 어디, 어디가 붙어 있어? '이뭣고?' 하나뿐인데. 열 가지가 다 마찬가지지, 그 뭣이 뭐 또 더하고 덜할 것이 뭣이 있나?

인자 그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기어(奇語)도 마찬가지. 허고 안 헐 것도 없고 상도 없고.
양설(兩舌)도, 양설도 그 허지 안 허는 건 아니어. 넘이 싸움은 무수히 허고, 허면은 두 가지 말로 해서 잘 그 양편이 다 그 평화스럽게 해 주는 거, 허되 '이뭣고?' 하는데 무슨 뭐 뭐—그걸 보고 또 내비둘 것은 아니로되—능히 허지. 다 허지.

살생도 않지마는—왜 안 혀, 헐 때야 허지. 악한 도둑놈이 하나 있어 가지고서는 선한 사람을 백 명이나 천 명이나 죽이면은 아! 그놈 하나 죽여 버려야지 두어 쓰겄는가? 하니 그럴 때는 범(犯)을 해야 하지.
범(犯)은 허지마는 그 가운데 항상 알 수 없는 화두 하나만 다루면 '이뭣고?'만 해 나가면 그거 무슨 가지는[持] 상(相)이나 범(犯)허는 상(相)이나, 범했지마는 범하는 상이나 없어. 가지는 상이나 다 없어. 마찬가지여. 똑같은 것이여.

그저 이 항상 해 나가는 근본 원천, 근본 원인은 알 수 없는 의심(疑心) 하나뿐이다. 그놈 하나 해 나가는 가운데에서 지범개차(持犯開遮)를 해도 항상 알 수 없는 놈이 하나가 있기 땀세 계상(戒相)이고, 뭔 상이고 붙어 있들 안 해.
그래서 그 십계를, 오계와 십계 등을 받는 것이 우리 선방(禪房)에 들어와서 사교(捨敎)하고, 교를 다 버려 버리고 들어와서 참선하는 사람이 큰스님, 대도를 통한 스님을 찾아서 이렇게 십계를 받아 가지고, 대승계(大乘戒)를 받아 가지고는 그 대승계 닦는 것이 '이뭣고?'여. 화두학자야.

다맛 금구(金口)의, 성현의 말씀을 의지할지언정—부처님의 말씀을 금구(金口)라 햐. 부처님의 말씀을 의지할지언정 용류(庸流)의 망령된 말은 듣지 말아라. 용류는 못쓴 것이다.
용렬스러운 것들은 도를 못 닦게 만든 것이 용류고, 도를 안 닦는 것이 용류고,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 용류다. 용류 말을 들을 것이 어디 있느냐? 말도 아닌 걸 들을 것이 뭐냐?
또 그런 말이 들어올 것이 있나? '이뭣고?' 하나만 해 나가는 데. 화두 하나 해 나가는 데, 화두 학자한테 그런 말이 들리기로이 뭔 말인지, 바람 소린지 물소린지 그까짓 것이 걸리나?(처음~20분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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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출가(出家)했다. 이미 집에 나왔다. 내 집에서 내 부모 모시고 장가들어 자식 나서 향화(香火)를 전통하고, 그까짓 녀러 것을 다 내던져 버리고—내가 나를 깨달지 못하고 부모를 모시고 그 자식을 낳아서 전통해 나가면 그녀러 것 그 세상에서야 할 수 없지마는, 도학자가 그 뭐냐 그것이 그 뭐...

출가해서 청중(淸衆)을 참배(參陪)해서—대중(大衆)을 청중이랴 햐. 대중을, 청중을, 항상 도(道)만 닦으니까 어디 나쁜 대중인가? 깨끗한 청중이지.
청중을 참예(參詣)해 모실진댄, 어질고 부드럽고 화(和)하고 착하고 순한 그 어진 좋은 마음을 생각해라. 항상 그 마음을 내라.

'이뭣고?' 하나뿐인데, 언제 부드럽고 착하고 화하고 순하고 그까짓 것을 따로따로 생각할 게 있나? 알 수 없는 나만 찾으면, '이뭣고?'만 하면은 그 가운데 그대로 착하고 선하고 어진 것이 딱! 다 갖춰져 있는 것이여. 따로따로 분단할 것도 없어.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이 다 그대로가 어질고 착하고 부드럽고 화한 것이여. 뭐 거가 뭐가 붙어 있을 것인가? 그대로 갖춰져 있지.

아만(我慢)을 높이 바치지 마라. 아만, 아만을, '내가 제일이다. 나 하나뿐이다' 참 그 아소심(我所心), 아만이라는 것이 고놈이 나를 그 생사 죄를 받게 만든 놈이여.
그 '내'가 있기 따문에, 나, 내가 잘했기 따문에, 나뿐이기 따문에 넘을 업신여긴 것이고, 넘을 무시헌 것이고, 아무짝에도 못쓴다. 아만을 바치지 말아라.

큰사람[大者]은—나보담 아는 이는, 나이 많이 먹고 알고 다 그런 이는 형(兄)으로 똑 대접하고, 나이 어린 이[小者]는 동생으로 대접해서, 만약 싸우는 자가 있거든 두 말[兩說]로, 좋은 말로 잘 화합시켜서 다맛 자비스러운 마음으로써서 서로 생각해라.
항상 그, 그 몸이 다 내 몸이다. 내 몸과 똑같어. 이타주의(利他主義), 남을 이롭게 허는 주의가 그건 내 주의여, 그것이. 넘 이롭게 허는 주의가 전부 내 온당한 내 주의, 나 할 배여. 나는 그것밖에는 헐 것이 없어, 우리 도학자(道學者)니까. 도학자는 그밖에 오직 헐 것이 없어. 내 양심 밖에 조끔이라도 나쁜 행동이라는 것은 내 양심에 없어야 혀.
악한 말로 역부러 모도 맨들아서 모략중상해서 사람을 상(傷)허지 말어라. 그런 것이 그 어디 도학자냐?

만약 동반(同伴)을 속여서 시비(是非)를 의논헐진대는, 옳고 그른 걸 의논헐진대는 이같이 중이 된 것이 고것이 중이냐? 고건 중도 아니어. 초심인이 아니어. 처음 도(道) 배우는 사람이 아니다 그 말이여.
숭악한 요새 깡패, 요같이 거짓 중이 되어 가지고 전무이익(全無利益)이요. 온전히 이익도 없지마는 죄업만 퍼 짓고, 시은(施恩)만 퍼 짓고, 남을 모도 도(道) 못 닦게 만드는 것이여.

재물(財物)과 색(色)이라는 것은 그 화(禍)는 독사(毒蛇)보담 더 심하다.
재산이라는 것은 그놈이 좋기를 한량이 없는 것이지. 사람 목숨을 살리는 것이니, 왜 그놈을 잘 이용해서 돈을 갖다가서 그 나도 위성도업(爲成道業)하야 응수차식(應受此食)을 해야 하고, 남도 식량이 없으면 식량을 주어서 먹어서 도를 닦게 만들게 해야 하고, 불찰(佛刹)을 건설해서 모도 거그 앉아 도를 닦게 만들고, 잘 써 봐라. 그런 돈이 얼마나 좋으냐!
그놈을 악하게 모도 내 돈이라고 만들어 가지고는 고리대금이나 해서 착취해 가지고는 제 잘사는 거, 제 하나 사는 거, 제 자석 제 처자나 살려 가지고 그래 그 독재주의 허는 거, 그것은 독사보담도 더 심하다. 못쓰고.

또 색(色)은 그것이 어째 그렇게 못쓰냐?
아, 색이라는 것이 그 색을 쓰면은 마누라가 있어야 허니 마누라가 하나 있어야지, 자식 낳아야지, 자식 나면 그놈 기루어 키워야지, 키워서 잘 장관도 맨들고, 큰사람을 맨들어 놓으니 좋은 일은 했지마는, 부모 향화는 전통 잘했지마는, 출가인 분상에는 소용이 없어.

세상 사람은 정음(正淫)으로 그걸 해 나가야 하는 것이고, 우리 출가인은 그게 당치않다. 어서 속히 나를 깨달아 도를 통해서 천하인을 다 제도하고, 삼세인(三世人)을 다 제도해야 할 텐데 그까짓 것을 허고 있을 수가 있나?
그러니 색(色)에 한번 파묻히면은 자식 낳고 이렇고 저러고 허면 타락해 버리니까 독사보담 더 심허지. 그러니 이 초심(初心), 처음 마음으로 나와 도를 배우는 도를 닦는 사람은 헐 짓이 아니어.

그러니 재물 그놈도 그렇게 좋기도 허고, 그렇게 못쓸 것이 되기도 허고, 색이라는 것은 여자라는 것은 우리 출가인 분상에는 아주 그것은 그만이고, 그건 아주 금해야 하고.
그 태국 중 같은 중들은 여자가 저만큼 오면 뒤로 점점 물러가고, 뭔 물건 갖다 줄라고 하면 '거기 놓고 가라'고 허면 거그 놓고 가야 그 물건을 받아 온다는 것이여. 그건 태국 같은 데는 선(禪)은 모르고 소승 주의만 모도 소승행만 허는 것인게 그것도 그만두고.

그러니 몸을 살펴 그른 줄을 알아서, 항상 내가 나를 살펴서 그른 줄을 꼭 알아라. 알아서 상수원리(常須遠離)니라. 항상 그것을 가까이 말아라.
그 악한 벗, 도를 닦지 못하게 허는 그런 악우(惡友) 같은 거, 재색(財色) 같은 거, 그런 것은 도학자가 안 여읠래야 안 여읠 수가 없다.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

인연이 없는데, 무연사즉(無緣事則), 아무 인연 없는데 넘의 방안에 들어가지 말어라. 뭣허러 들어가냐? 도 닦는 사람이 항상 내 닦는 도좌(道座)가 있는데 내 도좌에 앉았지 왜 넘의 방에 들어갈까 보냐. 넘의 방에 들어가는 이유는 무슨 이유냐?

병처(屛處)를 당해서, 조용한 곳을 당해서 서로 무슨 말을 둘이 허는데, 그 말을 왜 들을락 허냐? 왜 넘의 비담(秘談)을 들을락 하느냐? 그 넘의 비밀 말을 들을라고 한 것이 천하에 못쓴 것이여. 그 비밀 말을 듣는 사람은 그 말을 들어서 좋게 갖다가 전해서 무슨 일을 잘, 좋은 데다가 이용할 사람이 아니어. 반다시 그건 나쁜 데다 이용하고, 그런 말을 내서 사람을 상하게 만드는 일이 있지.
근게 병처(屛處)는 병풍(屛風) 쳐 논, 병풍으로 막아 논 곳을 병처라고 그려. 병풍 막아 놓고 서로 말하는 것, 비밀리 조용한 데서 말하는 걸 병처락 햐. 병처에서 뭔 말을 소곤거리거들랑 그런 비밀을 듣지 말아라. 두터이 그걸 알면 못써.

6일(六日)이 아니거든—엿샛날이 똑 재일(齋日)이여. 6일 날, 빨래 같은 것도 씻고 다 모도 해도 짐승이 죽더래도 그 날은 좋은 날이다. 옷을 씻글 때, 안옷을 씻글 때에 똑 엿샛날 씻거라.
관수(盥漱)에 당해서, 세수할 때에 소리를 높여서 '웩-' 그러고 가래춤을 뱉아서는 안 된다. 가래춤 뱉지 말아라.

행익차(行益次)에 당돌히, 건방지게 그 말이여. 팔을 흔들면서 그렇게 가지 말아라. 당돌히 차례를 넘지 말아라. 차서(次序)를 넘어가지 말아라.
어디를 갈 때, 경행차(經行次)에, 경행할 때에 옷깃을 떡 헤치고 팔을 흔들지 말아라. 그거 되아? 팔을 흔듦서 옷깃을 흔듦서 그 가는 것이, 도학자가 항상 '이뭣고?'를 생각하는데 그렇게 걸음을 걸겄어? 어디를 갈 때에 옷깃을 헤치고 팔을 흔들고 건방지게 그렇게 가지를 말아라.

말할 때에, 언담차(言談次)에 부득고성희소(不得高聲戱笑)허며, 무슨 말할 때 소리를 높여서 "허허허허어~ 허허헤헤에~" 그렇게 웃지 말란 말이여. 희소(戱笑)치 말아라. 그럴 수가 있는가?

비요사(非要事)어든, 세상에서 마구잽이 살면서 발심(發心)도 못하고 도학자 아닌 것은 말할 것이 없고 초심(初心), 처음 마음으로 발심해 들어온 초심인이라야 이려.
비요사(非要事)어든, 요긴한 일이 아니거든 문밖에 나가지 말아라. 문밖에 뭣하러 나가? 밤낮 뻘뻘뻘뻘 문밖에 무슨 뭐 바람 쐰다고 우르르 나가. 아 여그서는 모도 저 밑에 사람들이 위에 올라와서 모든 경치를 보고 바람 쐴라고 올라오는데 뭣 허러 내려가냐 그 말이여. 뭣 허러 내려가서 저 골목에 돌아댕이면서 왜 그 짓을 헐 것이냐 말이여. 문밖에도 나가지 말라 했는데.
무슨 꼭 할 일이 꼭 있어야 문밖에 나가지. 문 열어 나오면 일도 없는데 꺼떡허면 '바람 쐬러 나갔다, 어디 나갔다'

병인(病人)이 있거든, 자비스런 마음으로 지켜 두호(斗護)해라. 병든 사람이 있거든 어쨌든지—나는 배부르게 먹고, 병들어 누워서 지금 죽을지 살지 모르는데 내비둬? 같이 이렇게 도를 발심을 해서 도학자가 내비둬 쓰겄어?
어쨌든지 병든 사람이 있으면은 그저 가서 뭘 자셨는가, 안 자셨는가 물어서 그저 어쨌든지 안 자셨거들랑 어서 속히 눌은밥이라도 만들어서 끓여서 갖다줌서 먹어라 하고. 그건 내 일이여. 세상에 그 좋은 일이 없어. 그 다 내 일이여. 남의 일이 아니어.

남의 일로 알고 께을케 내비두고, 저는 딴 디서 밥 먹고 와서 밥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모름서 내비두고 그냥 지내 간 것, 저 행실에도 못쓰고 자비심도 없고.
와서 반다시 인사를 허고. 더군다나 어른이 따로 거처를 허면은—같이 밥 먹으면 소용없고—와서 반다시 식후에는 인사를 허는 법이고. 어떻게 잡쉈는가 안 잡쉈는가 하는가 살펴야 하는 것이고 그런 것이여. 병든 사람은 더군다나 자비심으로 똑 그렇게 두호(斗護)해서 그렇게 또 하고.

빈객(賓客)을 보거든, 가난한 사람을 보거든 흔연(欣然)히 영접(迎接)해라. 오직 해야 그 돈 한푼 없으니 그 사람을 흔연히 영접해. 돈 한푼 없다고 천대 괄시 말아라.

존장(尊長)을 만나거든, 높은 어른을 만나거든 엄숙히 돌이켜 피(避)해라. 모름이 엄숙히 돌이켜 피해라. 돌이켜 피해란 건, 이렇게 가는데 휙 지내가지 말고 그저 엄숙히 따악 공경한 예(禮)를 가져라 그 말이여. 엄숙히 뭐 어디로 뭐 피하라는 게 아니라.
어른이 와도 떠억 걸치고 앉었던지, 건방지게 앉었던지, 오거나 말거나, 가거나 말거나 그건 못써. 될 수 없어. 우리 공부인의 일이여.

도구(道具)를 판단허되, 도(道)를 헐라고 이렇게 떠억 나와서 우리가 지금 걸망 짊어지고, 모도 옷 같은 것 만들아 짊어지고 도를 턱 찾을라고 나와, 도구를 판단을 하되 검약지족(儉約知足)이여. 그 호사스러운 것 다 소용없어. 검박(儉朴)한 것을 족한 줄 알아라. 아주 제일 검박한 거.
우리가 이렇게 옷도 더럽게 입고 그 물도 모도 들여서 함부로 저 넘이 보더래도 그것 똥걸레같이 보게 이렇게 허는 것이 그것이 모도 검박이여. 우리가 그 속에서 뭐, 뭐, 뭐 잘났다고 무슨 똑똑히 무슨 잘 입고 무슨 그러고 나서면 그 도인이여? 검박하게 옷을 입고, 그런 것을 항상 족한 줄 알고.

재식시(齋食時)에, 밥을 먹을 때에, 대중이 모아서 밥 먹는 걸 재식이라 햐. 주욱 대중이 밥 먹을 때 뭔 말이 없이 죽비(竹篦)를 치고 밥 먹을 때, 재식시(齋食時)에 음철(飮啜)을 부득작성(不得作聲)해라.
국이라고 뭘 마실 때 '후르르~ 훌, 훌훌' 그것 못써. 그렇게 먹으면 될 것이여? 또 씹는 것을 째금째금째금째금째금 소리가 나게 씹어 쓰겄는가? 근게 마시고 씹는 것을 소리를 짓지 말고 가만가만 가만가만 그렇게 먹어라.

뭣을 집고 놓음에, 집방(執放)에 요수안상(要須安詳)해라. 조용히 모름이 편안히 놔라. 가만히 소리 안 나게 놓아. 우당퉁탕 그렇게 놓지를 말아라.
뭣을 사람을 돌아보던지 볼 때 얼굴을 휘딱 들어서 그 사람 얼굴을 쳐다봐, 코빼기나 눈이나 이렇게 막 쳐다보지 말란 말이여. 부득거안고시(不得擧顔顧視)여. 시러금 낯을 들어서 얼굴이나 뭣을 그렇게 보지 말라 그 말이여.

정추(精麁)를, 더럽다 추하다, '에이, 그것 더럽다 추하다' 그러면 깨끗하고 좋은 것은 아주 좋아하고, 추한 거 좀 추하다고 아주 싫어하고, 그러지를 말어라.
그 정추라도 그저 그대로 담연히 보고 다 그러지, 그 정(精)하다고 그만 그건 그 좋아하고, 추(麁)하다고 그건 그리 나빠하고 그러지를 말아라.
그러면 알겄지 뭐, 그거 여러 가지가 있지. 하지마는 항상 묵무언설(默無言說)해라. 말이 없이 묵묵히 '이뭣고?'만 혀. 항상 '이뭣고?'를 해라. 그저 항상 '이뭣고?'가 묵묵이다. 묵묵이여. 아무 말이 없이 그저...

항상 잡념(雜念)을 방호(防護)해라. 그 못된 마음 일어나는 걸 방호하는 법이 천 망상 만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이뭣고?'만 혀. '이뭣고?'만 찾으면 그만 그 모든 일어나는 망상이 그대로 없어진다. 어디가 그것이 있을 것이냐? 하나도 없다.
그러니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하고, 무슨 망념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허지 말고 유공각지(唯恐覺遲)해라. 오직 그 각 더딘 걸 두려워해라. 어서 '이뭣고?' 어서 '이뭣고?'를 찾아라. 얼른 '이뭣고?'만 가서 추켜들어라. '이뭣고?~' 참 좋지. 공부해 나가는 이 초심(初心)이 인자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여.
잡념 그놈을 방호할라고 일어난 마음 잡념을 자꾸 없앨라고 허면 점점 더 일어나지. 내비둬 버려. 내비둬 버리고는 '이뭣고?'만 그만 추켜들면 그놈 그대로 없어진다.

수지수식(須知受食)이 단료형고(但療形枯)라. 모름이 밥을 받아서 밥을 먹는 것이 그것이 뭣이여? 그 시줏밥을 먹는 것이 한때라도 이 밥을 먹고, 이 배고픈 주린 창자를 위로해서 '이뭣고?'를 혀. '이뭣고?'를 허기 위해서 이 시줏밥을 먹는다. 가만히 놀고 앉아서 밥을 먹는다.
말하자면 수지수식(須知受食)이 단료형고(但療形枯)거든. 모름이 밥을 받아먹는 것이 마른 얼굴 낫을 줄을 알아. 그 안 먹으면 말라 죽을 테니까, 말라 죽으면 도를 닦을 수가 있는가?

그 도(道) 없는 몸뚱이 그까짓 것 말라 죽는 것이 차라리 낫지, 그 뭣혀? 허지마는 밥을 먹고 도를 닦을라니까 어쨌든지 좀 아무리 병이 나서 죽게 되더라도 억지로라도 그놈을 먹어 가면서 그 병을 낫우고 그 밥을 그렇게 어떻게 허던지 그 때에 먹고, 그런 것이 도 배울라고 그런 것이여. 도학자가 그걸 해야지, 그런 짓을 안 허고 써?
'에이, 그까짓 놈 죽거나 말거나 그만 먹기 싫다'고 안 먹고, 그거 어리석은 것이여. 그 위성도업(爲成道業)이니까 불가불 그렇게 해야 한단 말이여.

수념반야심경(須念般若心經)하야, 항상 모름이 반야심경을 생각해서, 반야심경이 무엇인가? 항상 '이뭣고?'지. '이뭣고?' 찾는 게 반야심경이지, 무슨 반야심경이 무슨 뭐 심경(心經), 경 읽는 거 그걸 갖다 말한 것인가?
항상 심경을 생각햐. '이뭣고?'를 항상 생각하지. 밤이나 낮이나 일체, 일체 말에 그저 '이뭣고?'뿐이지.

관삼륜(觀三輪)이 청정(淸淨)하야 불위도용(不違道用)이어다. 삼륜(三輪)이, 삼륜이라는 것이 시주인가? 시주(施主)와 또 그 물건과 받아먹는 사람과, 그 삼륜. 삼륜이—그 물건이나 받아먹는 '내'나, 준 이나—그 서이, 셋이 다 근본이 본래 깨끗하고 청정혀.
흥! 항상 그것이 본래 그 어디에 가서 붙어 있나, 어디 가서? '이뭣고?'뿐인데. '이뭣고?' 하나뿐인데, 어디가 준 사람이 따로 있고, 먹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물건이 따로 있고, 있는 걸 생각할 게 뭐 있는가?
그래 도용(道用)을 어기지 말아라. 항상 이게 도에 쓰는 것이다, 도(道)에. 도학자가 이렇게 어기지 않는 것이다. 이런 법을 어기지 말아라.

분수(焚修)에 나와 아침에 이렇게 예불을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같이 꼭 나와 예불하는가? 누구 하나라도 안 나오면 기어니 앉았다가 나와야 허지 않는가? 하나나 여그서 안 나온 사람이 있는가?
그것 뭐 한번 안 나와, "왜 안 나왔느냐?"
"어디가 아파서 안 나왔소"

환히 알지. 그러면 일어나서 밥은 한 그릇 딱! 먹고 집어샘키고, 또 그다음에 '좀 몸이 아파서 안 나왔소' 밥은 밥대로...
차라리 아파서 어디 누워서 밥도 못 먹고 막 끙끙 앓으면 앓는 줄 알지마는, 그런 꾀병허면서 안 나오네. 그걸 여그 내비둔가? 한 번 혀, 두 번, 세 번만 허면 돌려세워 버리지 않아? 여그 우리의 그거 두어 그것을? 그런 모도 그 거짓 행동허는 것이란 말이여.

분수(焚修)에 나가서, 항상 향(香)을 사루는 데 나가 가지고 조모근행(早暮勤行)이지. 그저 항상 부지런히 이렇게 아침 이 십악(十惡)—아침 예배, 아침 예불허고 그다음에 참회허는 거, 우리가 아침에 하루 언제든지 아침에 한 번씩 하지 두 번 뭐, 저녁에는 뭐 죽비만 치고 그냥 예경, 예(禮)허고 도 닦는 것이고.

아침에는 그렇게 분수(焚修) 예경(禮敬), 아 그렇게 참회를—죄를 퍼 과거 지었으니 그 죄를 참(懺)허는 것이지. 언제든지 지은 죄는 받고 마니까. 성불을 해도 받아. 안 받는 법이 없어. 지어 논 놈은 다 받으니까. 그 참회를 해야지.
참회해서 차라리 없어지면 참 그만이지마는 그래도 받아. 받지마는 그 과보가 등분(等分)이 한량이 없지. 항상 이렇게 아침에 이렇게 일어나서 같이 똑 예경참(禮敬懺), 참(懺)을 똑 하고.

자책해태(自責懈怠)해라. 아침에는 꼭 게으른 사람 보면 알아. 게으른 사람 일이라는 것은 아침에 보면 아는 것이여. 아침에 죽어도 일어나기 싫고, 일어나도 또 벌떡 일어나도 않고, 몸이 그냥 노곤해 가지고 그 성질 바탕이 그만 게을이 되면 그런 거여. 그 바탕을 보면 알어.
그 해태(懈怠)를 꾸짖어. 그게 내 것이 아니니까. 그 못된 것이 공연히 나를 상하는 것이여, 해태가. 해태 그거는 마(魔)여, 마구니여. 그 못된 마(魔)가 고놈이 들어와서 나를 그렇게 헌게 그놈을 어쨌든지 꾸짖어서 고놈 행동을, 그놈이 내게 붙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말이여. 자책해태(自責懈怠)해라. 그 게으른 것을 곧 꼭 해태(자책)할 줄 알아야 혀. 도 닦는 사람은.

지중행차(知衆行次)에, 여럿이 행할 때에, 여럿이 갈 때에도 어디를 이렇게 가면 난잡(亂雜)허지 말어. 그 난잡스럽게 이상스럽게 팔도 흔들며 고갯짓허며, 서로 이렇게 말을 해도 정직하게 또 이렇게 말하지 못하고는 뭔 눈을 끔적끔적 허면서, 입을 뭐 삐쭉삐쭉 허면서 뭐 이상스런 숭내를 내가면서 그거 못쓴다 그 말이여. 그게 그 무슨 그 도 닦는 사람의 행실이냐 그 말이여.
난잡하게 난행(亂行)을 허지 말아라. 벌써 그 속에는 '이뭣고?'가 항상 있는데 어째 그렇게 난잡한 행실을 '이뭣고?'는 잊어버리고 헐까 보냐 말이여.

너무 많이 허면은, 오늘 이놈을 딱 결집해 오늘 딱 써 가지고 그대로 결집을 해놔야 되니까, 그렇게 약속을 꼭 지켜줘야 되아.(20분15초~48분18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