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자세 호흡)'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24.04.24 §(102) 단전호흡은 무리가 없이 해야 된다 / 빈자(貧者)의 일등(一燈) / 화두순숙, 의단독로가 일주일 그런 상태로 계속이 되면 어떠한 찰나에 확철대오를 하게 된다 /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
  2. 2024.03.16 §(195) 참선 자세, 준비호흡, 본호흡 / (게송)조유남악모천태~ /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한 놈을 깨달음으로써 그것을 누진통이라 한다. 그걸 깨달으려면은 공안을 타파해야 한다.
  3. 2024.02.17 §(세등27)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자세, 호흡, 생각을 바르게 해야 / 자세는 몸에 힘은 다 빼되 아주 단정(端正)해야 / 단전호흡을 잘 알아서 해야 상기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2
  4. 2023.12.06 §(세등08) 단전에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 단전호흡은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 / 깨닫기 전에도,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1
  5. 2022.01.31 §(158) '머리 정상에 있는 한 올의 머리칼로써 몸이 매달려 있다'고 생각 / 단전호흡은 저 궁댕이 뒤로 / 좌선하고 일어날 때에는 다리를 푼 다음 조용히 일어나라.
  6. 2021.02.10 §((세등28)) 단전호흡과 화두가 둘이 아니게 되면 몸과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한결같이 공부가 된다 | 단전호흡 방법.
  7. 2020.12.24 §((145)) 호흡하다 보면 화두가 헷갈리는데 단전호흡은 해야 하냐? 상기병 예방 / 스승의 중요성 / 복과 혜를 쌍(雙)으로 닦아야.
  8. 2020.02.27 §(345) 참선은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 올바른 화두 참구(參究) / 단정하니 앉되 힘은 다 빼라 / 참선은 적적(寂寂)하면서도 성성(惺惺)해야.
  9. 2018.05.10 §(578) 참선의 자세. 호흡(단전호흡) / 부정관, 수식관 / 화두를 단전에다 두고 관(觀)하라 / 반복-습관-체질화-본능 /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10. 2017.06.25 §(715) 호흡은 단전호흡을 권장 / 아직 화두를 안 탄 분은 이뭣고?를 산승은 권한다 / 이뭣고?는 천칠백 공안의 근본 화두. 어느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다.
참선(자세 호흡)2024. 4. 24. 19:54

§(102) 단전호흡은 무리가 없이 해야 된다 / 빈자(貧者)의 일등(一燈) / 정진을 해 나중에 화두순숙, 의단독로가 일주일 그런 상태로 계속이 되면 어떠한 찰나에 통 밑구녁 빠지듯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된다 /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 불보살이 우리 대신 해 주실 수가 없다. 불보살은 벗어날 수 있는 길만을 우리에게 가리켜 주실 뿐.

**송담스님(No.102)—1979년 하안거결제 법회(79.06.09) (용102)

 

약 14분.


'바빠서 못 한다. 아직은 애들을 다 가르켜 놓고 다 결혼을 시켜 놔야지, 아직은 그런 일들이 복잡해서 할 겨를이 없다' 이런 말씀들을 하십니다마는 그런 말씀은 참선(參禪)에 대해서 아직 잘 이해를 못 하신 탓으로 해서 그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모든 일 끝내 놓고, 병 다 고쳐 놓고 그리고 늙발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숨은 한 숨, 호흡 들어마셨다 내쉬었다—'일평생 동안 너는 몇 번 동안 숨을 쉬다가 죽어라', '나는 몇 번 동안 호흡을 쉬면 죽는다'고 하는 것이 결정이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숨 한 번 쉴 때마다 자기의 죽음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통해서 될 수 있으면 호흡을 천천히 쉬어서 횟수를 줄일 것이고, 그 호흡이 한 호흡, 한 호흡 줄어질 때마다 헛되이 지내지 말고, 그 호흡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잊어버리지 말고 화두(話頭)를 잘 거각(擧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화두를 놓쳐 버리고 공연히 숨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면 피땀 흘려서 벌어 논 돈, 한 군데도 쓸모 있게 쓰지 못하고 돈을 갖다가 풀풀풀풀풀 바람에 날려 버리는 미친 사람과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억지로 참아 가지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참고 있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제 말뜻을 잘 못 알아들으신 분입니다.

단전호흡은 어디까지나 무리가 없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깊이 수르르르르~ 들어마셨다가, 억지로 시계를 보고 20초, 30초, 50초, 1분 이렇게 손바닥으로 콧구먹을 막고 참으라는 게 아닙니다. 들어마신 호흡을 2-3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호흡이 길어져야지, 억지로 호흡만 참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호흡만 참을려고 하는 사람은 뭔 사람과 같으냐 하면은 '내가 이 피땀 흘려서 번 돈이니까 이것은 남편이 죽어도 이 돈은 못 쓴다' 꽉! 오그려 쥐고 금고 열쇠를 열지 아니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번 것은 요긴한 데 쓸려고 버는 것이여. 아무리 애끼고 싸 놔 봤자 죽을 때 한푼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이여. 아무리 애끼고 오그려 싸도 돈이 나갈 때가 되면 이상한 이유가 생겨 가지고 내 몸으로부터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부자가 될라면 오그려 쥐면 부자가 될 것 같지만 아무리 오그려 쥐어도 돈은 나갈 때 되면 나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쓸 때 올바르게 쓰면 바로 그것이 돈을 버는 목적이 될 것입니다. 올바르게 쓰면 다시 그것이 자본이 되어 가지고 또 돈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좀 있기는 있지마는, 나중에 많이 벌어 가지고 내가 솜씨 있게 돈을 좀 쓰리라' 그래서 우선 좀 생긴 돈이 있지마는, 나중에 크게 쓰기 위해서 오그려 싸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 당시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던지 이러한 법문(法門)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젖을 짜 먹는 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젖을 짜서 식구대로 노나 먹고, 노나 먹고 해서 아주 맛있는 우유를 짜 먹었는데, 며칠 후에 큰 잔치가 있어서 많은 손님들이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짜 먹다가는 그때 손님이 왔을 때 충분히 대접을 할 수가 없으니까 며칠 동안을 젖을 짜 먹지 아니하고, 그 젖이 소 뱃속에 많이 고여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여러 날 동안 지난 뒤에 잔칫날이 돌아와서 큰 널벅지를 몇 개를 갖다가 놓고 식구대로 달라들어서 젖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짜도 평소에 나오는 양 이상은 별로 나오지를 안 했습니다. 그 젖은 짜야, 짜야 또 고이고 짜야 또 고이고 하는 법이지, 짜지 않고 놔둔다고 해서 널벅지로 그렇게 많은 젖이 소 뱃속에 고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번 재산도 번 쪽쪽 작게 벌면 작게, 많이 벌면 많게,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보시(布施)를 하던지, 돈 없어서 공부 못한 사람에게 학비를 대주던지,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돈 없어서 고치지 못한 사람을 곤쳐 주던지, 또는 어떤 불사(佛事)에 시주(施主)를 하던지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적게 하고, 또 부자는 부자대로 넉넉히 하고, 많고 적은 것은 그 사람 형편에 있는 것이지 그 정성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이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에 한 등(燈), '빈자(貧者)의 일등(一燈)'이라는 말씀도 있는 것입니다.

참선하는 데 있어서 호흡도 한번에 오랫동안 참을려고 할 것이 아니라, 숨이 가쁠 때는 가쁜 대로 또 오랫동안 조용하게 앉았으면 상당히 호흡이 조용하고 안정이 되면 그때는 그런 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조끔도 부담 없이 부담 없이 호흡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길게 그리고 조용하게 호흡을 하면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한 번 들어마셨다 내쉬는 시간이 10초 또는 8초 정도 밖에는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걸어 다니거나 달음박질하고 난 뒤에는 5초도 못 되게 가슴이 헐근헐근합니다. 그때는 그런 대로 하고. 또 숨이 긴 사람은 15초, 20초 내지 30초까지도 가는 사람도 있고, 요가를 평생 동안 한 사람은 몇 시간 동안을 숨 한 번도 안 쉬고 있을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가의 전문가, 요기(yogi)들은 일주일 동안을 큰 물통 속에다 넣고 그 뚜껑을 단단히 닫아 놓고 나서 일주일 동안 뒤, 일주일이 지난 뒤에 그 뚜껑을 열고 꺼내니까 조끔도 상관이 없이 나와서 다시 숨을 쉬는 그러한 사람도 있다고 하는 것을 나는 책에서 봤습니다.

호흡은 자기의 분(分) 따라서, 체질 따라서 하되 수루루루 들어마셨다가 잠깐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공부를 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하신 분은 '이~뭣고?' 다 내쉬었으면 또 수루루르르~ 들어마셔,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진 상태에서 2-3초 머물렀다가 또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 시작한 사람은 숨 내쉴 때마다 화두를 한번씩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여러 날, 여러 달 해서 익숙해지면 숨을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쉴 때 들어 가지고, 그다음 들어마실 때도 고대로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하는 가운데, 몇 차례고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고, 들어마셨다 내쉬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화두가 고대로 들려 있기만 한다면 자꾸자꾸 들어쌀 필요가 없습니다.
숨을 한 열 번, 스무 번, 들어마셨다 내쉬고, 들어마셨다 내쉬면서도 한 번 들은 화두(話頭)가 고대로 딱 들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21분28초)

그렇게 해서 정진을 해 가면 나중에는 아침에 새벽에 한 번 따악 들었던 화두가 종일 화두가 들어져 있는 수가 있습니다. 밥 먹을 때도 고대로, 자꾸 들지 않아도 들어져 있어요.
저녁에 잘 때도 화두가 따악 들어져 있는 채로 잠을 자게 됩니다. 아침에 눈을 딱! 떠도 새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엊저녁에 들고 자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알뜰히 알뜰히 정진하신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러한 경지(境地)가 오게 됩니다. 그러한 경지가 와서 일주일이 그런 상태로 계속이 되면 어떠한 찰나에 통 밑구녁 빠지듯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됩니다.
비로소 자기에 본참공안(本參公案)을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불조(佛祖)에 패궐처(敗闕處)를 보게 됩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에 안목(眼目)을 일시에 투탈(透脫)하게 됩니다.

할 수가 있고, 반드시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조사(祖師)들이 한결같이 그렇게도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라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불보살(佛菩薩)이 자비(慈悲)가 넘쳐흐르신다 해도 이것만은 우리 대신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해야 합니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공부하는 이 길만을 일러주실 뿐 우리 대신 깨달라 주실 수가 없습니다.
불보살이 아무리 자비가 있으시다 해도 우리가 지어 놓은 업(業)을, 업으로 받아야 할 무간지옥(無間地獄)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우리 대신 벗어 주실 수는 없습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만을 길만을 우리에게 가리켜 주실 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그 우리가 지은 업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소멸을 해야 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무간지옥에 옥문(獄門)을 때려 부셔야 합니다.(30분46초~44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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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늙발 ; 늙은 무렵. 늙었을 때.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❶] 송담스님(세등선원No.09)—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4분21초)
다맛 단정(端正)히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이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싹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또 무자(無字)를 허는 이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혹 혼침(昏沈)이 와 가지고 꾸벅 또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또 (한두 번 소리내어) 화두를 또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한 5분—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한 5분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또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마(魔)가 소멸(消滅)이 되고. ‘마가 소멸된다’는 것은 혼침도 그것이 마(魔)고, 산란심(散亂心)도 그것도 마(魔)다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마(魔), 안에서 일어나는 마(魔), 모든 것이 다 마(魔)여, 마(魔)라고 볼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그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그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따악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12분8초~16분28초)


[참고 ❷]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3분57초)
화두를 들으라 들으라 하니까, "화두를 어떻게 듭니까? 어디가 놔졌어야 그놈을 들지, 어떻게 화두를 듭니까? 들어서 배꼽 밑에다가 딱 붙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거그다가 붙이며.." 아주 그 대답하기가 대단히 거북한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화두를 든다」고 하는 것은 「화두를 생각한다」고 우선 초학자(初學者)는 이해를 하시면 되는 것이고.

"생각은 되는데 관(觀)이 안 됩니다. 근데 그 어떻게 하면 관(觀)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을 묻는 이도 있습니다. 또 "관(觀)이란 게 또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도 있는데.
「관(觀)」이라 하는 것도 내나 「생각」입니다. 생각에 일종인데, 그 생각을 자꾸 화두를 생각하고—사량심(思量心)으로 생각해 갖고는 안 되고, 사량심이 아닌 꽉 맥힌 의심(疑心),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하면, 그렇게 한 번씩 하는 것을 「화두를 든다」고 그러고.

한 번 '이뭣고?' 하고 화두를 한 번 생각하면, 들었으면, 그 생각이 한참 동안, 1분이 되었건 3분이 되었건 내지 10분 동안이라도 그 생각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여가 딱 있으면 그동안에 「화두가 들어져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딴생각이 쑥 들어와 가지고 화두가 어디로 가 버리고 없으면 그때 다시 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게고.
또 딴생각이 들어오지는 안 했지마는 '이뭣고?' 한 그 생각이 희미해져 버려. 그래 가지고는 화두를 든 것인지 안 든 것인 중도 모르고 그냥 조용한 채 우두거니 앉어진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자기도 모른 새에 까빡 이렇게 (졸게) 되고 하는데. 그럴 때는 또 다시 화두를 떠억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또 한 번씩 챙기는 것이여.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으면, 알 수 없는 의심(疑心), '이뭣고?' 한 알 수 없는 의심이 딱 들어져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해서 계속 그렇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듯이 그렇게 화두를 드는 것은 아니에요.
한 번 들어서 그 생각이 쭈욱 있으면 자꾸 연거퍼 그 위에다 자꾸 포개 놓지 안 해도 되어요.

이 단전호흡(丹田呼吸)과 화두(話頭)가 언제나 같이 되어 가도록 그렇게 익혀 나가면, 단전호흡을 터억 하면 화두는 그 가운데 제절로 딱! 들어지고, 또 화두를 딱! 들면 제절로 단전호흡이 제절로 같이 따라오도록 이렇게 나중에는 되어 가는 것입니다.(15분5초~19분2초)


[참고 ❸] 송담스님(No.106)—1979년 7월 관음재일 법문(79.07.24.음)(2분28초)
내가 부모한테 태어날 때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원래 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본래 갖추고 있다. 진여불성이라고 편의상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마는 사실은 원래는 그러한 이름도 없는 것이고, 그런 특정한 모냥다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소소영령(昭昭靈靈)합니다.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썽낼 줄 알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대관절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길래 그렇게 조화(造化)가 무쌍(無雙)하냐 그 말이여.
여기 법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울을 생각하면 서울이 환하거든. 목포를 생각하면 목포가 환하고, 부산을 생각하면 부산이 환하고, 지리산을 생각하면 지리산이,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왔다갔다 번갯불보다도 더 빠르다.

눈을 통해서는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는 들을 줄 알고, 코를 통해서는 냄새를 맡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는 맛볼 줄 알고, 말도 할 줄 알고, 발로는 걸어 다니고, 손으로는 뭘 잡고, 대관절 무슨 물건이 눈에도 보이지도 않고 손에도 잡을 수가 없는 것이 그렇게 조화가 무궁무진하냐 그 말이여.

그러니, 그러면서도 알 수가 없으니, 그 알 수 없으면 그것이 벌써 그거 '이뭣고?' '이뭣고?'
자꾸 '이뭣고?'를 챙겨서 그놈이 무엇인가를 참구(參究)를 하다 보면, '이뭣고?' 하고 혀도 까딱도 않고 '이뭣고?' 소리도 하기도 전에 벌써 알 수 없는 생각이 탁! 있거든. 그러면 그것이 이미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여 그게.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현전(現前)하면 벌써 그것이 화두가 들어져 있는 거라.

지끔 요 얘기할 때도 환히 있거던, 화두가.
틀림없이 여러분들 지끔 제 말씀을 듣고 계시면서도 '이뭣고?'가 타악 되어져 있을 거여. '이뭣고?'(37분50초~40분19초)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널벅지 ;  ‘장독소래기(장독을 덮는, 오지나 질 따위로 만든 뚜껑)’의 사투리.
*보시(布施) : [산스트리트어] dāna 음을 따라 단나(檀那) · 다나(柁那) · 단(檀) 등으로 음사(音寫)한다. 물질 또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 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 · 탱화 · 불구(佛具) · 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 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❷]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그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날 정원 가운데 나무에 큰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두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또 생겼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이 때 가나제바 존자께서 그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그 집에 가셨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한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안(道眼)이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그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또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그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빈자(貧者)의 일등(一燈)’ ;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하나의 등(燈)’이라는 뜻으로,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 정성이 중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왕이 부처님께 바친 백 개의 등(燈)은 밤사이에 다 꺼졌으나, 가난한 여인 난타(難陁)가 정성으로 바치며 서원(誓願)을 세운 하나의 등은 꺼지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출전은 『현우경(賢愚經)』, 『아사세왕수결경(阿闍世王授決經)』이다.
[참고] 『현우경(賢愚經)』 제3권. 제20. 빈녀난타품(貧女難陁品).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그 나라에 난타(難陁)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고독하여 구걸하면서 살아갔다.
그녀는 국왕과 신민(臣民)의 노소들이 모두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供養)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로 빈천한 집에 태어나, 복밭[福田]을 만났건마는 종자(種子)가 없을까?’ 못내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미미한 공양이나마 기약하고, 곧 나가 구걸하기를 늦도록 쉬지 않았으나 겨우 돈 1전을 얻었을 뿐이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가서 기름을 사려 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물었다. “1전어치 기름을 사봐야, 너무 적어 쓸 데가 없을 텐데 무엇에 쓰려는가?” 난타는 그 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그를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다. 그는 그것을 얻고 매우 기뻐하여 등불 하나를 만들어 가지고 절로 갔다.
그것을 부처님께 바친 뒤 부처님 앞에 있는 여러 등불 가운데 두었다. 그리고 서원(誓願)을 세웠다. ‘저는 지금 빈궁(貧窮)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이 공덕으로써 저로 하여금 내생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하소서’ 이렇게 서원을 세우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다.

밤이 지나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그 등불만은 홀로 켜져 있었다. 그때 목련(目連)은 그 날 당번이 되었다. 날이 밝은 것을 보고 등불을 걷어 치우려다가 그 한 등불만이 홀로 밝게 타면서 심지가 닳지 않은 것이 새로 맨 등불 같은 것을 보았다.
그는 낮에 켜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고, 그것을 꺼 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켜려고 손으로 끄려 하였다. 그러나 불꽃은 여전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옷자락으로 부쳤으나 불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목련이 그 등불을 끄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지금 그 등불은 너희 성문(聲聞)들로서는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4해(海)의 물을 거기에 쏟거나 산바람으로 그것을 불더라도 그것은 끌 수 없다. 왜냐 하면 그것은 일체 중생을 두루 건지려고 큰 마음을 낸 사람이 보시한 물건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난타 여인은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그에게 수기(授記)를 주셨다. “너는 내세(來世)에 두 아승기(阿僧祗)와 백 겁 동안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등광(燈光)이라 하고, 10호(號)를 완전히 갖출 것이다”
이에 난타는 수기를 받고 기뻐하여 꿇어앉아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어 그는 비구니가 되었다.(이하 생략)

*헐근헐근하다 ; 숨이 가빠 헐떡이며 자꾸 그르렁거리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❶]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❷]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공안(公案,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패궐처(敗闕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곳 처) ; ①허물과 모자란 부분. 잘못된 부분. ②살아온 과정. 행장(行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기록한 글)의 뜻.
*패궐(敗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 ; 실패. 결함. 실패하였다. 잘못되었다. 부끄러움을 샀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안목(眼目) ; ①긴요한 것. 본질. 주안점 · 핵심. 이치의 관건이 되는 요소를 비유한다. ②견식. 견해. ③면목. 본래의 면목.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타고난 바탕을 말한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투탈(透脫 사무칠·꿰뚫을 투/벗을·벗어날·벗길·나올 탈) ; 깨닫는 일.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이것이 만약에 거짓말이라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 
[참고 ❶] 「최상승론(最上乘論)」 (5조 홍인대사 弘忍大師 602 ~ 675)
若有人依文行者即在前成佛. 若我誑汝當來墮十八地獄. 指天地爲誓. 若不信我世世被虎狼所食.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글(最上乘論)에 의지해 수행하면 곧 성불하게 될 것이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다음 세상에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지리라. 하늘과 땅에 맹세하노라. 만약 나를 믿지 아니하면 세세생생에 호랑이 밥이 되리라.

[참고 ❷]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 (백운화상초록 白雲和尙抄錄) ‘승고선사(承古禪師 ? ~ 1045)’
承古禪師 常勸諸人 莫學佛法 但自無心去 利根人晝時解脫 鈍根人或三五年 遠不過十年 若不悟去 老僧 替你入拔舌

승고선사께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권하되 “불법을 배우지 말고 다만 스스로 무심하여라. 영리한 근기의 사람은 한나절에 해탈하고, 둔한 근기의 사람은 혹은 3년 · 5년이며 멀어도 10년을 지나지 않는다. 만약 깨닫지 못하면 노승이 너를 대신해서 혀를 뽑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들어가리라”

[참고 ❸]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1231 ~ 1298 또는 1308)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p97-99. (가로판 p95~97)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참고 ❹]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立限示衆(其九)—9. 기한을 정하고 대중에게 보임’ (고봉원묘 高峰原妙 1238 ~ 1295) (통광 역주 | 불광출판사) p85, p88 참고.
參禪 若要剋日成功 如墮千尺井底相似 從朝至暮 從暮至朝 千思想萬思量 單單只是箇求出之心 究竟決無二念 誠能如是施工 或三日 或五日 或七日 若不徹去 西峰今日 犯大妄語 永墮拔舌犁耕

참선하는데 만일 한정된 날짜에 공(功)을 이루려면 마치 천척이나 되는 우물에 빠졌을 경우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이나 낮이나 천 생각 만 생각이 오로지 다만 우물에서 나오려는 마음뿐이고 끝끝내 결코 다른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이 하여라. 진실로 이렇게 공부하기를 혹은 3일, 혹은 5일, 혹은 7일 하고도 깨치지 못한다면 서봉은 오늘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했으므로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拔舌犁耕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참고 ❺] 『고봉화상선요·어록(高峰和尙禪要·語錄)』 ‘시중(示衆 其二二)’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145, 146 참고.
若論此事인댄 如萬丈深潭中에 投一塊石相似하야 透頂透底하야 了無絲毫間隔이니 誠能如是用工하며 如是無間하고 一七日中에 若無倒斷이면 某甲이 永墮阿鼻地獄하리라

만일 이 일을 말하자면, 만 길이나 되는 깊은 못에 돌멩이를 하나 던진 것과 같아서 위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어 실끝만치도 간격이 없는 것같이 해야 한다. 진실로 이렇게 공부를 하고 이렇게 간단없이 하고서도 만일 7일 동안에 깨치지 못한다면 나는 영원히 무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지리라.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 : 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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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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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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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24. 3. 16. 09:00

§(195) 참선 자세, 준비호흡, 본호흡 / (게송)조유남악모천태(朝遊南嶽暮天台)~ /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을 깨달음으로써 그것을 누진통이라 한다. 그걸 깨달으려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야 한다.

그 한 물건, 그놈이 항상 육근(六根)을 통해서 자유자재로 왕래(往來)를 하는데, 그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놈을 찾으면 자최가 없어. 그것을 깨달으는 법이 이 공안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95)—1983년 3월 첫째일요법회(용195)

 

약 10분.


오늘은 일요 법회(法會)입니다.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자세(姿勢)를 바르게 허리를 쭈욱 펴고,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고, 흔들다가 한 가운데에다 딱 중심(中心)을 잡으세요.
아금니는 지긋이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대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되 의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를 마십시오. 몸은 단정하게 갖되 어깨나 목이나 눈에다가 힘을 주지 말고 편안하게 긴장을 다 풀고 편안하게 가지세요.

처음에 준비호흡을 세 번을 하는데,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가뜩 가슴이 벅차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코로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한참 참었다가 입으로 '후-' 하고 내뿜으세요. 가슴을 아주 짜면서 다 내뿜었으면 또 한번 들어마시세요. 가뜩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3초고 5초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머물렀다가 또 입을 조끔 벌리고 '후-' 하고 내뿜으세요.
다 내뿜었으면 또 한번 들어마시고, 정지했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또 '후-' 하고 다 내뿜으세요. 이것이 준비호흡이어요.

그다음에 인자 본호흡(本呼吸)으로 들어가는데, 이제는 가슴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숨은 코로 들어마시되 배꼽 밑에 단전, 단전(丹田)이라 하면 불두던 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불두던 위가 볼록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셔요.
물론 코로 들어마시지만 '코로 들어마신다'는 생각을 갖지 말고 '저 뒤에 궁뎅이로 들어마신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들어마시는데, 들어마심에 따라서 하복부(下腹部)가 앞으로 볼록하게 나오도록 그러한 느낌으로 숨을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 말고 약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셔요. 팔부쯤 들어마셨으면 그 상태에서 약 3초 동안 딱! 정지(停止)를 해요. 3초 동안 정지를 했다가 조용하게 내쉬는데,
아까 준비호흡 할 때는 입으로 내쉬었지만 지금은 코로 내쉬는데, '코로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저 궁뎅이를 통해서 저 뒤로 내보낸다'는 기분으로 내보내요. 그러면서 아랫배는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그렇게 맨드세요. 그렇게 느끼시면서 숨을 내쉬세요.

계속해서 그렇게 호흡을 하는 겁니다.
준비호흡은 처음에 3번만 딱 하고, 네 번째부터서는 본호흡으로 하는데,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속으로 하면서 숨을 조용하게 내쉬는 거예요.

죽비(竹篦)를 쳐. (죽비 세 번)


조유남악모천태(朝遊南嶽暮天台)헌데  추이불급홀연래(追而不及忽然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독행독좌무구계(獨行獨坐無拘繫)허고  득관회처차관회(得寬懷處且寬懷)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유남악모천태(朝遊南嶽暮天台)하고, 아침에는 저 남악(南嶽)이라고 하는 산에서 놀더니, 모천태(暮天台)라, 해 저물게는 벌써 천태산에 가 있어.
추이불급홀연래(追而不及忽然來)로구나, 아무리 쫓아가서 따라잡으려고 해도 따라잡지를 못했는데, 홀연히 앞에 와 있다 그 말이여.

남악(南嶽)과 천태산(天台山)은 수천 리 수백 리 길인데, 아침에 벌써 남악에서 놀더니 번떡 한 사이에 벌써 천태산에 가서 있어. 몇백 리 밖에 천태산에 가서 있어. 아무리 그것을, 그 사람을, 그이를 따라잡으려고 해도 도저히 따라잡지를 못했는데, 저절로 앞에 와서 딱 있더라 그 말이여.

독행독좌무구계(獨行獨坐無拘繫)헌데, 홀로 행하고 홀로 앉었고, 자기가 앉고 싶으면 앉고, 가고 싶으면 가고, 전혀 거리낌이 없다 그 말이여.
득관회처차관회(得寬懷處且寬懷)로구나. 관회(寬懷)를 얻은 곳에 또한 관회롭다.

'관회(寬懷)'라는 것은 '너그러울 관(寬)' 자, '생각 회(懷)' 자. 조끔도 옹색함이 없이 그 회포(懷抱)가 너그럽다 그 말이여.
천태산이고 남악이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오고, 눈 한번 번쩍하면 천태 가 있다, 눈 한번 번쩍하면 남악에 가 있다. 하나도 걸릴 것이 없다 그 말이여.

아까 '누진통(漏盡通)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을 깨달음으로써 그것을 누진통이라 한다. 그걸 깨달으려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야 한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한 물건을—찾으면 자최가 없지마는, 그놈이 항상 육근(六根)을 통해서 자유자재로 왕래(往來)를 하는데, 그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놈을 찾으면 자최가 없어. 그것을 깨달으는 법이 이 공안을 타파하는 것입니다.(45분43초~55분3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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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法會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모이다·모임·만나다 회) ; 불교 의식의 하나.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등의 행사 모임을 가리킨다. 본래 부처님께서 불법을 설하시거나 그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모임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불두던 ; 불두덩(남녀의 바깥 생식기 주위에 볼록하게 솟은 부분)의 사투리.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게송) ‘조유남악모천태(朝遊南嶽暮天台)~’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14.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회포(懷抱 품을 회/안을 포)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迷惑)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이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미혹(迷惑 미혹하다·헷갈리다 미/미혹하다·번뇌 혹) ;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미(迷), 미망(迷妄), 미집(迷執)이라고도 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소소영령(昭昭靈靈) ; 밝디 밝고 신령하다는 말. 번뇌와 망상에 물들지 않은 마음의 본성을 묘사한다. ‘소소’는 밝게 아는 작용, ‘영령’은 대상의 변화에 잘 응하는 영활(靈活)을 뜻한다. 또는 마음의 본체(소소)와 보고 듣는 등의 신령한 작용 전체(영령)를 나타낸다.
소소영령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이것과 상응하는 자아가 있다는 망상을 견제하는 말도 선문헌에 적지 않게 보인다.
[참고] 『임제록』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공안(公案, 話頭)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한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한 물건’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3.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주해)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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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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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24. 2. 17. 07:39

§(세등27)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첫째는 자세, 둘째는 호흡, 셋째는 생각을 바르게 해야 / 자세는 몸에 힘은 다 빼되 아주 단정(端正)해야 / 단전호흡을 잘 알아서 해야 상기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참선을 하지 아니한 사람도 항시 일상생활 속에서 단전호흡을 하면 혈액순환이 잘되어서 몸안에 있는 모든 노폐물을 바로바로 배출을 시키기 때문에 피가 맑아지고, 피가 맑아짐으로 인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몸만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안정이 되고 깨끗해져서, 자연히 그 사람은 도(道)를 닦을 수 있게, 도를 닦는데 가장 좋은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7)—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80.04.17.음) (세등27)

 

약 16분.


<자세>

오늘은 입재(入齋) 결제일(結制日)인 만큼 처음으로 선방(禪房)에 나온 분, 또 처음으로 이 참선(參禪)을 앞으로 해 보고자 한 그러한 분들을 위해서 간략히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점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첫째, '자세(姿勢)'를 바르게 하고, 둘째는 '호흡(呼吸)'을 바르게 할 것이며, 셋째는 '생각'을 바르게 해.

자세와 호흡과 그리고 생각,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잘 알고 참선(參禪)을 해야지 이걸 잘 모르고 하면, 자기 딴은 애를 써서 한다는 것이 까딱하면 몸에 병이 생기기도 하고, 까딱하면은 정신이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사도(邪道)에 빠지게 되어 가지고, 본의 아니게 '참선을 하다가 그 사람은 잘못되었다. 그 참선이란 건 대단히 몹쓸 것이다' 그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많은 사람을 참선을 못 하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여.

자세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냐 하면 가부좌(跏趺坐).
가부좌는 처음에 오른다리를 꼬부리고 그 위에 왼다리를 딱 올려놔. 왼다리를 오른다리 무릎 위에다 올려놓고 그다음에 오른발을 갖다가 다시 들어서 왼 무릎 위에다가 이렇게 꼬아 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가부좌인데, 이렇게 안 앉아 버릇한 사람은 다리가 그 5분도 못 가서 다리가 저리고 아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반가부좌(半跏趺坐). 왼발 하나만 오른 무릎 위에다 이렇게 올려놓는 것이여. 이렇게 딱 앉아서 하되, 이렇게 해도 다리가 저리면 또 그 왼다리는 내려놓고 오른다리를 갖다가 왼쪽 무릎 위에다가 이렇게 올려놓아도 됩니다.

그렇게 하고, 손은 그 올려놓은 복사뼈 위에다가 딱 오른손을 갖다가 오른손을 손바닥을 위로 해서 딱 올려놓고, 그 위에다가 왼손을 갖다가 이렇게 해서 딱 포갭니다. 포개서 놓고서 엄지손을, 엄지손 끝에 배를 서로 이렇게 맞대는 것입니다.
맞대되 이 (엄지)손이 너무 되게 눌러서 이렇게 위로 솟구쳐 올라도 안 되고, 또 이렇게 삐뚤어지게 해도 안 되고, 이렇게 동그스름하니 보기 좋게 이렇게, 떨어지지도 말고 너무 되게 붙이지도 말고 아주 가볍게 이렇게, 이렇게 대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고.

고개는, 자세는 너무 뒤로 자지바지하니 앉았다 하고 참선을 잘한 척하고 투기로 버티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크게 잘못한 것이어요. 단정하게, 두 귀가 어깨 위에 놓이도록.

코끝은, 배꼽 밑에 아랫배 단전(丹田)과 코가 수직상(垂直上)에 놓이도록. 조끔 앞으로 기울어도 수직이 아니고, 뒤로 자지바지해도 안 되고, 좌우로 이렇게 기울어져도 안 되고, 단정하게 하면서도 조끔도 전후좌우(前後左右)에 기울어지지 않고, 그러면서도 어깨에 힘을 다 빼야 합니다. 어깨에다 힘을 이렇게 주면 안 되는 거여.
어깨에 힘을 다 빼고, 목에 힘도 다 빼고, 팔에 힘도 다 빼고, 전신(全身)에 힘은 다 빼는 것입니다. 다 빼되 아주 단정(端正)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정하면서도 힘을 다 빼되, 배꼽 밑에 단전(丹田)에만 아주 가볍게 지그시 그렇게 힘을 배꼽 밑에 단전에다 힘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다 미어터지도록 거기다가 용을 써 힘을 주는 것이 아니어요. 아주 힘을 주는 둥 마는 둥 하게 가볍게 힘을 줘.

이렇게 하고서, 좌우로 이렇게 서너 번 흔들어요.
서너 번 이렇게 궁뎅이가 뜰썩뜰썩하도록 요렇게 해 가지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정도에 가서 저절로 한 중심(中心)에 가서 딱 안정(安定)이 되도록. 그것은 궁뎅이 밑에 옷 같은 것이 혹 요렇게 구겨진 채 이렇게 있는 수가 있고 그래서, 너댓 번 이렇게 흔들흔들하면 옷이 싹 펴지도록.
옷 그렇게 해서, 그러면서 저절로 딱 하면 전후좌우에 기울어짐이 없이 딱! 중심이 요렇게 딱 잽히도록.

그리고 턱은, 너무 요렇게 하지도 말고, 앞으로 빼서도 안 되고, 단정하게 딱! 이렇게 붙이고.

이는, 저 아금니부터서 지그시 물어요. 너무 콱 다물어서도 안 되고, 이가 이렇게 떨어져서도 안 되고, 지그시 아금니부터서 이렇게 문다 말이여.

혀는 위로 꼬부려서,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 안에다 갖다 딱 갖다 대.
될 수 있으면 꼬부려서 저 안에다 갖다 대. 대고.

눈은, 감아서는 아니 되어요. 그렇다고 눈을 뚝 부릅떠서도 안 되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떠서 평지에 약, 거기서 자기 앉은 자리에서 약 3m 지점에다가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한 점(點)을 갖다가 주시(注視)하거나 응시(凝視)해서는 안 되고.
어떤 사람은 참선 할 때 콩알을 갖다가 떠억 3m 에다 갖다 놓고 계속 그것을 들여다보는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봤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3m 지점에다 떨구되 의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본 바가 없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본 바가 없이 그저 평상으로 떠억 뜨고서,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호흡>

그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하는데, '호흡(呼吸)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냐?' 하면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한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는 것입니다.
들어마시는 시간이 3초, 머무는 시간이 3초, 내쉬는 시간이 약 5초 가량 되도록. 그렇게 해서 한 번 들어마셨다 머물렀다 내쉬는, 한 번 하는 시간이 약 10초나 11초 이렇게 되도록.

들어마실 때에 코로 쑤욱 들어마시지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를 말고 저 뒤(궁둥이)에서, 저 뒤에서 쭈우욱 이렇게 들어마셔 가지고,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 배꼽 밑에, 아랫배에 가서 이렇게 담기도록.

다 들어마셨으면 3초 동안을 딱 정지를 했다가, 내쉴 때 물론 코로 내쉬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는 '코로 내쉰다'고 생각하지 말고, 또 쑤욱 배를 차츰차츰 차츰차츰 뒤로 잡아당기면서 '그 호흡을 저 뒤에로 쭈욱 밀어버린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또 다 내쉬었으면 그때 배가 홀쪽해져 갖고 있을 테죠? 또 쑤욱 들어마시되 저 뒤(궁둥이)에서 들어마시거든.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셔.

근데 주의할 것은, 볼록하게 들어마시라니까 배가 터지도록 들어마시는 사람이 있어 가지고 얼굴이 벌게져 가지고 한 번 두 번 하고는, "숨이 가뻐서 못 하겄다" 그래 가지고는 "후~ 이렇게 쉬어 갖고 다시 해야 하니 이렇게 해도 되냐?"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들어마실 때 100프로(%) 가뜩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팔부(80%)쯤만 들어마십니다.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만 팔부쯤만 들어마셨다가 3초 정지했다가 내쉬는데, 내쉴 때도 아주 등어리가 완전히 배가 등어리에 붙도록 다 내쉬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은 숨이 가뻐서 안 되어요.
팔부, 다시 또 더 내쉴 수 있지만 팔부(80%)쯤만 내쉬는 거여.

팔부(八部)쯤만 내쉬고서 또 스르르 들어마셔. 팔부쯤만 또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에는 내쉬는 시간이 약 5초니까—들어마시는 시간은 그냥 수르르~ 하니 부담 없이 들어마시는데 약 3초가 걸려요. 내쉴 때는 의식적으로 조끔 애끼면서 조용하게 천천히 내쉬어 보라 그 말이에요.
이것이 바로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단전호흡(丹田呼吸)이라 하는 것이여.

 



<준비호흡>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를 말고, 처음에 본(本) 단전호흡 들어가기 전에 준비호흡이 있습니다.
준비호흡은 어떻게 하냐? 하면, 숨을 가뜩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가뜩 가슴을 요렇게 위로 들어올리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셔 가지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입으로 '후~~' 이렇게 내쉬는 거야.
'후~~' 하고 이렇게 내쉬어. 다 내쉬되 가슴을 약간 이렇게 홀쪽하게 하는 듯하면서 다 쥐어짜면서 이렇게 내쉬는 거여. 다 내쉬어요. 이건 100프로(%) 다 내쉬는 거여.

다 내쉰 다음에 또 한 번 100프로(%) 들어마셔. 들어마셔 가지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후~~' 이렇게 내쉬는 거여.
이렇게 두 번 또는 세 번을 이렇게 하는 것, 이것을 '준비호흡'이라 해서 허파 속에 가뜩—허파가 이 어깨 위로부터 여기까지 이렇게 가슴에 요렇게 딱 있는데, 숨을 조끔 들어마셨다 내쉬고 조끔 들어마셨다 내쉬면 허파 가운데 부분만이 호흡이 이렇게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고,
지끔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가뜩 어깨를 들면서 이렇게 가뜩 들어마셨다가 다 내쉬면 허파의 구석구석까지, 허파의 그 뾰족한 부분까지 구석구석까지 새로운 공기가 들어갔다가 완전히 허파 속을 소지[掃除]를 해 가지고 깨끗이 요렇게 소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을 한 다음에 허파 소지를 해 놓고서 떠억 정식으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야 호흡이 제대로 되고 아주 그 공부 잘되는 것입니다.

이 준비호흡을 하지 않고서 처음부터서 단전호흡을 하면, 얼마 안 가서 여기가 답답해지고,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여기가, 가슴이 앞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반드시 언제라도 딱 앉어서 좌선(坐禪)을 시작할 때는 준비호흡을 먼저 하고서 단전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이 단전호흡은 참선을 하지 아니한 사람도 항시 일상생활(日常生活) 속에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 혈액순환이 잘되어서 몸안에 있는 모든 노폐물을 바로바로 배출을 시키기 때문에 피가 맑아지고, 피가 맑아짐으로 인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몸만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안정이 되고 깨끗해져서, 자연히 그 사람은 도(道)를 닦을 수 있게, 도를 닦는데 가장 좋은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을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나, 관공서나 회사에 다니는 사람, 요새는 너무너무 피로가 겹쳐서 견디기가 어려울 만큼 그렇게 세상이 일이 많고 복잡해졌습니다.
이럴 때 이 단전호흡을 항시 하면 그때그때 피로를 해소하게 되기 때문에 학생도 공부를 더욱 잘하게 될 것이고, 일반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도 그날그날 피로를 그때그때 풀어버렸기 때문에 건강하게 그렇게 능률 있게 일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하면 혈압도 내려가게 되고, 모든 노이로제 현상도 예방하고 치료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니, 이 단전호흡 하는 법을 잘 알아 가지고 열심히 하고, 그래도 해 보면 또 의심이 나는 것이 있으면 또 물어보시고 해서 어쨌든지 이것을 열심히 하시기를 권장합니다.

특히 참선하는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이 단전호흡을 잘 알아서 해야 상기병(上氣病), 선객(禪客)에 있어서 사형언도나 마찬가지인 그 상기병을 예방을 하고 또 그러한 기운이 있는 사람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단전호흡 밖에는 없습니다.

한번 상기병이 걸려 놓으면 약을 맞고 뜸을 뜨고 침을 아무리 맞어도 좀체 낫지를 않습니다마는, 이 단전호흡 하는 법을 알아 가지고 잘하면 백발백중(百發百中) 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미리 이 법을 알아 가지고 열심히 하면 그런 상기병에 걸리지 아니하고, 소화도 잘되고, 혈액순환도 잘되고, 그래서 마음도 안정이 되고, 화두(話頭)도 잘 들리게 되어서 결정코 금생(今生)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60분56초~1시간16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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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전가부좌(全跏趺坐) · 온가부좌(온跏趺坐) ·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엄지손 ; 엄지손가락.
*자지바지 ; 좌선(坐禪)할 때 몸에 너무 힘을 주어, 몸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할 때는 몸을 단정(端正)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주시(注視 물을 대다·마음을 쏟음 주/볼 시) ; ①어떤 일에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 ②어떤 목표물을 주의깊게 잘 살펴봄.
*응시(凝視 엉기다·집중하다·머무르다 응/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좌선(坐禪) ;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선(禪) 수행을 하는 것.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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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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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23. 12. 6. 16:21

§(세등08)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 수승화강(水昇火降) / 상기병(上氣病) / 단전호흡을 하는 것은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 / 깨닫기 전에도,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송담스님(세등선원No.08)—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17) (세등08) (자세호흡)

 

약 19분.

 

그런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고 '어째서? 어째서?' 하고 해 가다 보면은, 너무 힘을 써 가지고 하다 보면은 기운이 자연히 머리로 모여져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고 골치가 아프고, 이렇게 되어 가지고 공연히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혈액순환이 잘못되고, 소화가 잘못되고, 잘못 이 혈기(血氣)가 고르지 못한 그러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참선(參禪)을 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가지고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해야 하거든.

복식 심호흡이라 하는 것은 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저 아랫배까지 호흡을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는,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조용히 내쉬는, 깊이 들어마시니까 자연히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다음에는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니까 배가 홀쪽해지는, 숨을 마셨다 내쉬었다 하는데 따라서 아랫배가 볼록해졌다가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 하복부(下腹部) 단전(丹田)에다가 그 거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그거거든.

그렇게 하면은 우리의 기운은 자연히 아랫배로 내려가 가지고 머리가 시원해져서 그래서—이 사람 몸에는 불기운과 물기운이 있는데, 화(火)와 수(水) 있는데, 우리의 모든 생각은 불기운에 해당이 되는 것이여. 그래서 생각은 아래로 써야 혀.

 

그래서 단전에다가 생각은 거기다가 집중을 해야 불기운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단전 있는 데에는 우리의 그 콩팥, 신장(腎臟)이 있는데 신장은 그것이 수(水)인데, 그 콩팥에다가—우리의 생각은 화(火)인데, 생각의 불을 거기다가 지져 댐으로 해서 콩팥, 콩팥은 솥에 물이 담어진 거와 같아서 그 솥 밑구녁에다가 밑바닥에다가 불을 갖다가 지져 대니까 그 솥에 물이 끓어 가지고 수증기가 위에로 올라간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우리의 생각은 (몸) 앞에서 밑으로 내려가고, 수증기는 밑에서 (몸) 뒤로 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불기운은 (몸) 앞으로 해서 밑으로 내려가고, 물기운은 (몸) 뒤로 해서 위에로 올라가니까 물기운과 불기운이 수승화강(水昇火降),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서 수승화강이 잘되어 가지고 몸이 건강하고, 몸이 건강함으로 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져서 그래서 정진해 나가는 데 부작용이 없이 잘되어 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 못되기 때문에 그놈이 수승화강이 아니라, 까꾸로 불은 위로 올라가고 올라가기 때문에 물기운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물기운은 내려가고 불기운은 올라가서 수승화강이 아니라, 수화(水火) 승강(昇降)이 까꾸로 돌아가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맑은 정신이 없어 가지고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골치는 뽀개질라고 그러고, 정신이 안정이 안 되어 가지고 화두만 생각했다 하면 골치부텀 아프고 공부가 안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참선 공부를 참으로 밤잠을 안 자고 열심히 공부를 해도 몸에 지장이 없이 할라면은 호흡법을, 호흡법을 잘 알아 가지고 단전호흡, 복식 심호흡을 제대로 익혀 가지고 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런 위에 화두를 떠억 든다고 하면은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아무리 용맹정진한다고 해도 몸에 병이 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것을 모르고서 덮어놓고 말뚝 신심을 내 가지고서 억지로 파고들다 보니까, 수화승강(水火昇降)이 안 되어 가지고 상기병(上氣病)이라고 하는 그런 병에 걸리는, 상기병은 약으로는 안 고쳐지는 것이여. 결국은 그 상기병은 이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잘해 가지고 참선을 잘하므로 해서 그 병이 낫는 것이지, 상기병은 약 먹어 가지고 병이 고쳐지질 안 혀.

 

그래서 그전에도 이 호흡하는 법에 대해서 누차 말을 했지마는, 몸을 단정히 가지고 이 호흡을 하되 처음에 잔뜩 가슴으로 들어마셔, 호흡을. 가슴이 터지도록 그리고 빨리 호흡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는 잔뜩 들어마신 다음에 입으로 '후~' 하고 내쉬란 말이여. 다 가슴을, 아주 이 가슴 속에 있는 호흡이 한 점도 남김없이 다 내쉬어 버려.(한 번)

다 내쉰 다음에 다시 한번 또 들어마셔.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참어. 참었다가 또 '후~' 하고 다 내쉬어 버려.(두 번)

 

그렇게 두 번을 하고서 세 번째부터서는 조용히 들어마셔.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지 말고 들어마신 호흡을 아랫배까지 내려가도록 들어마시란 말이여. 아랫배까지.

그래서 좌선을 하려면은 허리띠를 느슨하게 매야 해. 너무 꽉 허리띠를 짬매 노면 안 돼. 그래서 느슨하게 매고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까지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이렇게 눌러 보면 빵빵하도록 그러되 100%로 다 들어마시지 말고 80%까지만 들어마셔.

들어마신 상태에서 한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호흡을 내쉬되, 호흡을 내쉼에 따라서 차츰차츰 배가 홀쪽해지도록. 그러니까 뱃속에 가득찬 호흡을 이렇게 눌러 가지고 (배) 뒤로 밀어 버리란 말이여. 뒤로 그 차츰차츰 (배를) 홀쪽이 맨들면은 그 호흡이 뒤로 해서 돌아 나가도록.

 

들어마신 호흡은 앞으로 해서 그 아랫배까지 들어마셔 가지고, 들어마신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뒤로 밀어. 살모시 아조 아껴서 뒤로 밀면은 그놈이 뒤로 해서 이렇게 나가도록.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뒤로 밀어 버리면은, 배를 홀쪽이 하면은 그 호흡이 뒤로 해서 요렇게 이 코로 나간다 그 말이여. 이것을 계속 되풀이하되 우리의 생각은 항시 아랫배 단전 거기에 가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생각을 두고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그 알 수 없는 의심, 의심하는 마음, 의심이 거기에다가 거기에 가서 항시 있도록 그렇게 화두를 해 나가면 저절로 수화...(녹음 끊김)

이대로 잘해 나가면은 아랫배는 뜨뜻해지고, 온기가 아랫배에서 생겨 가지고 차츰차츰 그 온기가 커지면은 온몸이 훈훈해지는 것이여. 그러고는 머리는 아조 뒤통수가 시원해져 가지고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것만 열심히 잘해도 '신선(神仙)이 되어 간다'고, 도교에서는. 도교에 신선들은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 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는 것이여. 일체 몸이 다 낫고, 밥을 먹지 아니하고 그 솔잎만 먹고 맹물만 마시고도 칠백 세, 천이백 세까지도 사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중국에 도교에 팽조(彭祖) 같은 신선은. 이 심호흡을 잘하면은 그렇게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정신을 맑게 하고, 수명까지도 연장을 하고, 오신통(五神通)도 난다는 것이여.

 

우리가 단전호흡을 하는 것은 그러한 무슨 신통이 나고, 무슨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건강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짐으로 해서 참선을 잘하자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도(外道)가 하는 목적과 우리가 이 호흡을 하는 목적은 다른 것이다 그 말이여.

이러한 그 기초를 모르고서 덮어놓고 해 가지고서는 우리의 목적인 깨달음은, 깨달음의 목적지에는 도달하기 전에 중간에 부작용이 생겨 가지고 병이 나 가지고 공부도 못하고 인생을 참 헛되게 보내게 되는 그러한 안타까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상기(上氣)가 있거나 없거나 이 호흡을 어쨌든지 잘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출가해 가지고 몸이 건강해야 공부를 하지, 몸이 아파 놓으면은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 그 말이여.

 

이 호흡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얼마든지 와서 의논을 해서 자기가 하고 있는 호흡이 옳은가 그른 것인가를 잘 알아 가지고, 잘 호흡법을 알아 가지고 해야—이 호흡만 잘되면은 추운 것도 잘 바우고, 더운 것도 잘 바우고 또 수화승강(水火昇降)이 잘되기 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머리가 깨끗해서 화두를 들어도 정진이 깨끗하게 잘 나가지는 것이니까 그걸 좀 잘하도록.

 

그리고 이 호흡은 어디까지나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方便)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참선은 어디까지나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하고 의심이 커야만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 궁극은 '참선'하면 화두(話頭)지마는 그 화두를 잘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골라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되도록 그러한 기초 위에 마지막에 가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해야 한다.

'의심(疑心)이 간절하다'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못 '어째서 무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무엇고?'

 

자기 화두(話頭) 해야 혀. 이 화두 좀 해봤다, 이것이 좀 안된다고 해서 다른 화두 좀 해봤다 그런 게 아니라, 잘되거나 안되거나 잘되면 잘되는 대로 화두를 관(觀)해 나가고, 잘 못되면 못되어도 그 화두를 계속 들고 나가야 하는데,

'잘 못된다' 하는 것은, 화두를 들면은 금방 든 지가 얼마 안 되는데 딴생각[別念]이 들어오고—이 생각, 저 생각이 아무 주책없는 생각이 지내간 생각, 현재 닥치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또는 얼토당토않는 쓸데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리고 시간은 지루하고 몸은 뒤틀리고 애를 먹게 되는데 그러한 경지가 오더라도 그것이 나쁜 경지가 아니여.

 

짜증을 내지 말고 조용히 일어서서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 가지고는 정신이 맑아지면 또 앉아서 하고. 하다가 또 몸이 뒤틀리고 혼침(昏沈)이 졸음이 와 가지고 영 맑은 정신이 안 나면은 다시 또 살모시 일어나 가지고 나가서 왔다갔다 정신을 좀 채려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또 하고 해서 그 고비를 넘기면은 또 한결 수월하게 또 잘되는 것이니, '잘된다'고 해서 또 좋아하지 말고 기쁜 마음을 내지 말고, 여법(如法)하게 화두만 들고 나가면은,

그렇게 해서 잘될 때도 있다가, 또 잘 안될 때도 있다가 하는 그런 많은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면서도 한결같이 퇴전하지 말고 번뇌심을 내지 말고, 여법히 화두를 들고 나가면은 반드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말이여.

 

확철대오하게 되면 반드시 선각자(先覺者)를 찾아서 점검을 받아야지,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 해 가지고는 선지식을 찾지 아니하면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라」 제호(醍醐)라고 하는 것은 우유로 만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데, 그 맛있는 음식이 변해 가지고 독약이 되는 격이 되아.

그 애써서 얻은 그 깨달음이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고 그것으로써 스스로 자족(自足)을 해 가지고 살림을 해 가면은 그 좋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독약이 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깨닫기 전에도 선지식을 의지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참 옳게 닦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해제(解制) 때까지 한 보름 남었는데 보름 동안, 정초(正初)가 되어서 좀 어수선한 점도 있겠지마는, 어수선하거나 말거나 언제든지 우리는 처음보다도 중간, 중간보다도 끝으로 가면서 공부가 알뜰하게 되어져야, 알뜰하게 공부를 지어가야 그 사람은 참으로 발심한 사람이고, 옳은 사람이여.

처음에는 근사하니 아주 발심한 것처럼 하다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그 신심(信心)이 식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그런 것을 용두사미(龍頭蛇尾)라 그러는데, 용두사미로 된 사람은 백사(百事)가 불성(不成)이여.

 

보통 납월팔일(臘月八日)이 지내면은 해제만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수가 있는데, 우리 대중은 해제가 가까워질수록에 더욱 채찍을 가하면서 알뜰히 정진을 해 가지고 그렇게 참 용두사미가 아니도록 끝으로 갈수록 점점 공부가 충실하도록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20분30초~39분30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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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육단심(肉團心) : [범어] Hrdaya. 흘리다야(紇利陀耶)는 번역해 육단심(肉團心)이며 약칭이 육심(肉心)이다. 4심(四心)의 하나. 사람 육신의 오장(五臟) 중의 심장(心臟)이다. 그 형태가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이루어졌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참선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하복부(下腹部) 단전(丹田)에다가 그 거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 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 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 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 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 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 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 시원한 물 기운은 위에로 올라가고, 더운 불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게 하는 것.

물이라 하는 것은 원래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리고, 불은 밑에서 위로 타오르는 것이 그 원래 가진 성질이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배꼽 밑에 단전에다가 집중을 함으로써 우리의 불기운은 밑으로 내려가서 아랫배가 뜨뜻해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머리가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이뭣고? ;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94-95 참조.(가로판 p99~100)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바우다 ; ‘감당하다(堪當--, 능히 견디어 내다) 혹은 피하다, 이겨 내다’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주책없다 ; (언행이) 일정한 줏대나 요량이 없이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실없는 데가 있다.

*얼토당토않다 ; ‘얼토당토아니하다(전혀 관계가 없다)’의 준말.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가로판 p78)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醍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 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오후공부 ; 오후보림(悟後保任).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용화선원刊)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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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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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22. 1. 31. 15:22

§(158) '머리 정상에 있는 한 올의 머리칼로써 몸이 매달려 있다'고 생각 / 단전호흡은 저 궁댕이 뒤로 / 좌선하고 일어날 때에는 다리를 푼 다음 조용히 일어나라.

단전호흡은 코로 들어마시되 '코로 들어마신다'하는 생각을 갖지 말고, 저 궁댕이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 단전(丹田)이 약간 볼록해진 것을 느끼면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8부(八部)쯤만 들여마셔.
들어마신 호흡을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되 '코로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로 수~욱 내보낸다는 기분으로 내쉬면서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셔.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속으로 하면서 내쉬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58)—1982년 1월 첫째일요법회(82.01.03) (용158) (자세호흡)

 

약 9분.


그러면 죽비(竹篦)를 치고 잠시 입선(入禪)을 하겠습니다.

자세를 편안하게 가지십시오. 반가부좌(半跏趺坐),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중심을 잡으십시오.

허리를 쭉 펴되, 항시 좌선(坐禪)할 때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자세를 잡느냐 하면 머리, 이 정수리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이렇게 쭉 들어가지고 그것을 저 천장에다가 달아매서 '이 몸뚱이가 머리카락 하나에 매달려 가지고 지금 앉아 있다'하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머리, 이 정상으로부터 얼굴과 몸뚱이가 수직으로 될 것입니다. 좌우나 전후로 기울거나 넘어진 법이 없이 한 시간 두 시간을 앉아 있어도 그 자세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자기 머리에, 정상에 있는 머리 한 올의 머리칼로써 지금 매달려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러 말이 필요 없이 몸은 단정하게 될 것입니다.

어깨의 힘도 다 빼고, 목의 힘도 다 빼고, 이는 어금니부터서 지그시 물되, 너무 힘들여서 물지도 말고 지그시 물고, 입은 '한 일(一)'자로 다물되 가볍게 다무는 것입니다.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대십시오.
눈은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너무 가늘게 뜨거나 감지 말 것이며 평상(平常)으로 뜨면 됩니다.


먼저 숨을 한 점도 남김없이 완전히 다 입을 통해서 토해 내십시오.
입을 동그스름하니 조그만하니 열고서 숨을 '후~'하고 완전히 다 내뿜으십시오. 가슴이 약간 홀쪽해진듯 하면서 다 내뿜으시는 것입니다.

다 내뿜었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코를 통해서 들어마십니다. 들어마실 때 가슴을 약간 드는듯 하면서 가슴에 가뜩 들어마시십시오. 가슴이 미여질 정도로 들어마셔.
더이상 들어마시지 못할 때 한참 그 상태로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또 내쉬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또 들어마셔. 한참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내쉽니다.
이렇게 세 번쯤 한 다음에 정식 단전호흡(丹田呼吸)으로 들어갑니다.

단전호흡은 코로 들어마시되 '코로 들어마신다'하는 생각을 갖지 말고, 저 궁댕이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 단전(丹田)이 약간 볼록해진 것을 느끼면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8부(八部)쯤만 들여마셔.
들어마신 호흡을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되 '코로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로 수~욱 내보낸다는 기분으로 내쉬면서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셔.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속으로 하면서 내쉬는 것입니다.

(정진)

참선(參禪)을 30분이나, 한 시간 이렇게 하고 이제 그만 좌선을 하고 일어서려고 할 때에는 숨을 다시 깊이 들어마셨다가 '후~'하고 또 한 서너 번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몸을 또 좌우로 서너 번 이렇게 흔들고.
그리고 인자 이 손을 요렇게 싹싹싹싹 비벼서, 손바닥이 뜨끈뜨끈한 손을 가지고 눈 위에다 이렇게 오목하니 해서 눈을 이렇게 가리고 그 속에서 눈을 딱 뜨세요. 그리고 그 손으로 또 얼굴을 이렇게 만지고요.

또 손을 비벼서.... 이 비빌 때 눈을 감고 비비고, 그래가지고 그 뜨끈뜨끈한 손을 눈 위에다 덮은 다음에 그 속에서 눈을 이렇게 뜨세요. 뜨고 난 다음에 그 손으로 얼굴과 귀와 얼굴을 잘 만지세요.

그렇게 한 다음에 다리가 저린 사람은 다리를 뻗고 다리도 좀 주무르고, 발목도 돌리고 이렇게 해서 잘 푼 다음에 조용히 일어서는 것입니다.
30분이나 1시간 또는 2시간 이렇게 앉아서 좌선을 하다가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일어설 때 갑자기 불끈 일어서고, 갑자기 나가서 달음박질을 한다든지, 뛴다든지 이것은 대단히 해로운 것입니다.

그리다가 혹 심장병이 생기기도 하고 또는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기도 하고, 그것이 앉았다가 일어설 때 함부로 해가지고 그런 병이 생기는 수가 흔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선을 많이 하신 스님네나 여러 청신사 청신녀들께서도 앉았다 일어설 때 항시 그런 준비 운동을 하고 나서 조용히 일어서도록 주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49분43초~58분1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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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좌선(坐禪) ;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선(禪) 수행을 하는 것.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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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21. 2. 10. 16:02

§((세등28)) 단전호흡과 화두가 둘이 아니게 되면 몸과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한결같이 공부가 된다 | 단전호흡 방법.

**송담스님(세등선원No.28)—1980년(경신년) 하안거 반결제 법문(80.05.30.음) (세등28)

 

약 8분.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왜 하라고 하냐 하면, 단전호흡을 하지 아니하고 화두(話頭)만을 간절히 들어 나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운이 머리로 모여서, 피가 머리로 모이고 기운이 머리로 모여 가지고 뒤통수가 뜨끈뜨끈 열이 오르고 모가지가 빳빳해지고, 그래 가지고 맑은 정신이 없어지고, 공부만 하려고 화두만 들려고 하면 골치부터 아파.
이래 가지고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사람은 먼저 단전호흡 하는 법을 잘 알아 가지고 수승화강(水昇火降), 시원한 물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머리가 시원해지고, 더운 불기운은 아래로 내려가서 단전(丹田) 부위 하복부(下腹部)가 따뜻해지도록.
이렇게 해서 시원한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더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야 혈액순환이 잘되고 몸이 가볍고 머리가 깨끗하고, 이리해서 몸은 건강해지고 공부는 지장이 없이 잘되어 가는 것입니다.

'오직 화두 하나만을 간절히 들 뿐이지, 무슨 정신 헷갈리게 단전호흡을 하냐?' '단전호흡(丹田呼吸) 할라, 화두(話頭) 들라 하면은 정신이 두 갈래로 갈라져 가지고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 화두만을 들어야지, 무슨 단전호흡이 필요 있느냐?'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화두만 들면, 다행히 그렇게 들어도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잘 들리고 수승화강이 잘되어서 조끔도 상기병(上氣病)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아니한다면 좋지만, 까딱하면 상기병이 일어나서 공부를 할 수 없을 단계에 이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단전호흡을 기초로 잘 익혀서 해 나가면, 나중에 익숙해지면 일부러 단전호흡을 하려고 안 해도 무의식 가운데에 제절로 단전호흡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화두만 떠억 들어도 단전호흡은 제대로 된다 그 말이여. 단전호흡만 해도 제절로 그 가운데 또 화두가 떡! 들리게 된다 이 말이여.
그래서 단전호흡과 화두가 둘이 아니게, 허리만 쭉 펴도 저절로 그 가운데 단전호흡이 되고, 단전호흡이 되면서 화두도 떠억 들리게 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정신이 헷갈리기 커녕은 오히려 혈액순환이 잘되고 정신이 깨끗하고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한결같이 공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잠깐 머물르는데—들어마실 때에 ‘코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차츰차츰 저 깊이 아랫배까지 밀어 넣는다’ 이렇게 생각하지를 말고—숨을 저 뒤에, 저 궁딩이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시되,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를 말고 약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신다.

쭈욱- 저 뒤에서 일직선으로 잡아댕겨.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팔부쯤만 들어마셔.
들어마신 상태에서 약 3초 동안을 머물러. 꼭 3초가 아니라, 약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또 내쉬는데,
이리 해서 '코로 내쉰다'고 생각하지를 말고 저 뒤에로, 저 뒤에로 내밀어 버리는 기분으로 배를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이 하라.

다 내쉬었으면 또 수르르르~ 들어마시는데, 들어마시는 시간이 약 3초 동안.
들어마셔 가지고, 머무르는 시간이 약 3초 동안.
머무르는 호흡을, 머물렀다가 호흡을 쑤욱 뒤로 내쉬는데, 내쉬는 시간이 약 5초 동안, 4~5초 동안.

이렇게 해서 모두 한 번, 들어마셨다가 · 머물렀다가 · 내쉬는데 약 10초나 11초, 이런 정도가 걸리도록.

처음에는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또 조끔씩 길게 해도 상관이 없는데, 억지로 그 시간을 늘리려고 무리를 하지 말아라 이것입니다.
억지로 무리를 해서 하면 서너 번도 못해서 벌써 숨이 가빠지고 힘이 들어서 오히려 못쓰는 것이니까, 아주 그 30분 동안을 계속해도 조끔도 힘이 들지 않고, 한 시간을 그렇게 해도 힘이 들지 않도록 조끔도 무리가 없이 해야 한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쉴 때, 그때 화두(話頭)를 들어라.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소리를 내서 하는 게 아니라, 소리를 안 내고 그렇게 하라.

또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쉴 때,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이렇게 하되, 눈은 항상 평상(平常)으로 뜨고 해야 하는 것이여.

눈을 감고 해 버릇하면, 눈을 감고 하는 것이 공부가 더 잘된 것 같고, 더 마음이 편안한 것 같고 고요한 것 같은데, 그렇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지만 절대로 눈을 감고해서는 아니 돼.
눈을 감고 하면 까딱하면 혼침(昏沈)에 빠지기 쉽고, 나중에는 이상한 것이 혹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눈을 평상으로 뜨고 해야 성성(惺惺)하고 그러한 잡된 것이 어리대거나 보이는 법이 없다 그 말이여.

눈을 평상으로 뜨고 호흡은 극히 자연스럽게 하되, 조용하게, 편안하게, 천천히 그렇게 하되 무리가 없이 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떠오르는 생각을 버리려고 하거나, 쫓아내려고 하거나, 그것을 누르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나두고 나는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화두만 딱! 들어버린다 그 말이여.
화두만 딱! 들어 버린 것이 그것이 가장 간단하게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을 처리하는 방법이다.(32분54초~40분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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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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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자세 호흡)2020. 12. 24. 11:14

§((145)) 호흡하다 보면 화두가 헷갈리는데 단전호흡은 해야 하냐? 상기병 예방 / 올바른 자세 ·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어야 공부가 지장이 없이 잘된다 /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不急尋師]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空過一生] / 복과 혜를 쌍(雙)으로 닦아야.

 

**송담스님(No.145)—1981년(신유년) 하안거 결제(81.05.18) (용145)

 

약 13분.

 

여기에 오셔서 즉접 참선을 못하시고 댁에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 설사 절에 와서 하시지는 못하더라도 댁에서 하신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러신 분일수록에 더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해서, 일하시면서 손자를 보면서 ‘이 뭣고?’, 서서도 ‘이 뭣고?’, 누워서도 ‘이 뭣고?’, 어디 출행(出行)을 하실 때 차를 타면서도 ‘이 뭣고?’, 차를 타고 오면서도 ‘이 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걸어다닐 때나 머물러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할 때나 말을 아니할 때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이 뭣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한 생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 다른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 바로 돌이켜서 '이 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숨을 조용하게 깊이 들어마십니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꼽 밑에 단전(丹田), 아랫배가 약간 볼록해짐을 느끼면서 들어마셔. 다 들어마셨으면 한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해 보시라 그 말이여.

물론 여러 철을 공부를 해서 이러한 자세한 말씀을 하지 안 해도 잘하신 분이 계시겠지만, 처음으로 선방에 나오신 분, 또는 처음으로 들으신 분을 위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話頭)만 잘 들면 그만이지 무슨 호흡(呼吸)은, 그까짓 거 호흡하다 보면 화두가 헷갈리는데 호흡은 할 것이 뭐 있느냐'

물론 화두만 여법(如法)하게 잘 들기만 한다면 호흡은 그까짓 거 상관이 없습니다마는, 이 화두를 드는데 있어서 ‘간절(懇切)하게 의심(疑心)을 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니까, ‘간절하다’고 하는 그 뜻을 잘못 이해해 가지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온전히 이 이마에다가 화두를 모아 가지고 그 이마로 화두를 든다 이 말이여. 너무 힘을 써 가지고 억지로 화두를 막 들고서 밀고 나간다.

 

그렇게 한즉슨은 기운이 전부 머리로 올라가게 되고, 따라서 몸안에 있는 피도 머리로 모이게 되어서 얼굴이 붉어지고 골이 아파지고 목이 뻣뻣해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 말이여.

이러한 병이 바로 상기병(上氣病)이라 하는 것인데, 어리석게 공부를 하면 이러한 약(藥)으로 곤칠 수 없는 이러한 고약한 병이 나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롭게 공부를 해라.

 

지혜롭게 공부해 나가는 하나의 방법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해서 혈액순환이 잘되게 하고, 생각이 안정이 되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기운은 머리로 올라가지 않고 저 배꼽 밑에 단전으로 기운이 다 내려가게, 그러한 상태에서 화두(話頭)를 들어야 머리도 개운하고 혈액순환이 잘되니까 몸안에 노폐물도 쌓이지 아니하고 밖으로 다 배출이 되고,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가행정진(加行精進)한다 해도 지치지를 아니하고, 부작용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소화도 잘되고, 공부가 지장이 없이 잘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잘하도록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모르고 어리석게 공부를 해 가다가 까딱하면은 이 건강이 악화가 되어 가지고 엉뚱한 병이 생기게 되면, 그때에사 ‘어떻게 해야 이 병을 고칠 수가 있는가?’ 이렇게 호소를 해 옵니다마는, 물론 병을 못 고치는 것은 아니로되 상당히 힘이 들고, 이런 상기병 때문에 일생 동안을 정진을 정진답게 해 보지를 못하고 고생을 하고 있는 스님네도 상당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반드시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스승을 잘 만나지 못해 가지고 잘못 공부를 하면 공부는 성취도 되기도 전에 병 먼저 나게 되고, 까딱하면 삿된 경계에 떨어진다던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을 스스로 깨달랐다고 착각(錯覺)을 해서 그 착각 속에 집착을 해가지고 일생을 허송세월하고, 그러한 사람이 구변(口辯)이 좋다던지 학식(學識)이 많다던지 그렇게 되면 삿된 소견(所見)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리켜서 다른 사람까지도 삿된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자기의 죄가 얼마나 되며, 자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을 그르치게 되고 나아가서는 불법(佛法)까지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이 공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는 것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이 남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은 마왕(魔王)이고, 바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에 법을 듣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마왕(魔王)에 백성(百姓)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혈맥론』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무너무 간절한 말씀인 것입니다.

 

여름 석 달 동안이 하루와 같이, 처음 마음먹은 그 결심이 날이 거듭할수록 더욱 견고해지면서 더욱 간절해지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히 공부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은 동시에 백일기도(百日祈禱) 입재(入齋)일입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同參)을 하셔서 집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사시고 선방에 방부 들인 선객(禪客)이라고 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사신다면, 복(福)과 지혜(智慧)를 겸해서 닦는 것이 되어서, 복과 혜를 쌍(雙)으로 닦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성인 가운데 성현(聖賢)이신 부처님께서는 이 복(福)과 지혜(智慧), 두 가지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대성현(大聖賢)입니다. 그래서 삼귀의례(三歸依禮)를 할 때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두 가지가 족(足)하신 부처님께 귀의(歸依)합니다' 그 두 가지가 바로 복과 지혜여. 복과 지혜를 다 같이 갖추신 대성현이 바로 부처님이시다.

우리도 공부를 할 때, 지혜만을 닦을 것이 아니라 복을 아울러서, 지혜와 복을 겸해서 쌍(雙)으로 닦으면 우리는 복과 지혜를 구족한 성현(聖賢)이 되는 것입니다.(23분58초~35분2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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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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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20. 2. 27. 18:13

§(345) 참선은 올바른 자세, 올바른 호흡, 올바른 화두 참구(參究) / 단정하니 앉되 힘은 다 빼라 / 참선은 적적(寂寂)하면서도 성성(惺惺)해야.

 

공부하는 법이 익숙해지면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순일하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되겠지만, 아직 우리 초학자(初學者)는 기본자세를 잘 익혀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본자세를 항상 잘 해야 합니다. 시간과 장소가 허락이 되면 언제라도 기본자세를 취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공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온가부좌(결가부좌)가 잘 안되면 반가부좌만 해도 됩니다. 반가부좌만 해도 조금도 상관이 없습니다. 단정하니 앉되 힘은 다 빼라. 눈은 감어서는 안되고 평상으로 떠라.

 

공부는 하고 싶을 때 그때 해야 하는 거고,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지,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한번 모처럼 불법(佛法) · 정법을 만나 가지고, 하고 싶은 마음 났을 때 계속해서 몰아붙이지 못하면 그래 가지고 그 고비가 식어 버리면 다시 그런 경계가 오도록 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송담스님(N0.345)—1988년 1월 첫째일요법회(88.01.03) (용345)

 

약 21분.

 

지난 12월 일요법회 때 오계(五戒)를 설하고, 또 불명(佛名)을 타고, 또 화두를 타고, 또 어린이 독경대회에서 뽑힌 사람의 수상식도 하고 그랬는데 시간이 없어서 이 화두(話頭)를 타신 분들에게 화두에 대한 법문을 자상하게 일러 드리지를 못했습니다.

앞으로 불명을 타고 화두를 받는 것은 3월 일요법회 때 하게 되는데, 그동안에 참선(參禪)을 열심히 하고 싶다. 그러니 지난 일요법회 때 그 화두 법문에 대해서 자세히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것을 좀 들려 달라고 여러분이 간청을 했습니다.

 

일요법회는 원래 이 사부대중(四部大衆), 특히 청신사 · 청신녀들 또 직장에 나가시는 분들, 학생들, 모다 그런 분들이 일요일이라야 이 법회에 나오실 수가 있기 때문에 관음재(觀音齋), 음력 매월 24일 관음재법회를 일요일로 돌렸습니다. 그분들로 하여금 이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시게 하기 위해서 일요일에 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참선은 법회 때마다 항상 이 법문(法門)의 그 요지(要旨)라고 할까, 초점을 항상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에 두고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도 거기에 대해서 항상 말씀을 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그 첫째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둘째는 호흡을 바르게 하고, 셋째는 화두를 잘 간택을 해서 화두를 올바르게 참구(參究)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한다'하는 것은—물론 참선은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걸어다니면서도 하고, 밥 먹고 옷 입고 똥 누면서도 하고, 차를 타면서도 하고 일을 하면서도 하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받지를 않습니다.

언제 어데서라도 되어져 있도록 노력을 해야만 그 사람은 참선을 바르게 해 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조용한 데서만 할 수가 있고 또 기본자세,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만 해야 되고, 시끄러운 데서는 안되고, 또 서서도 안되고, 일할 때는 안되고, 이렇다면 그 사람의 공부는 아직 초단계에 있어서 공부하는 법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행주좌와 어묵동정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순일하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야 되겠지만, 아직 우리 초학자(初學者)는 기본자세를 잘 익혀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본자세는 가부좌나 또는 반가부좌—이 가부좌를 할 수 있으면 참 좋고, 가부좌는 다리가 굳었거나 짧거나 모다 그 사람의 체질상 연습을 안 하면 처음부터 이 가부좌가 잘 안되는 수가 있습니다.

자꾸 연습을 하면, 처음 한 1분씩도 하고 2분씩도 하고 3분씩도 하고 5분 10분도 하고, 하다 보면 30분씩 할 수도 있고, 또 1시간씩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부좌는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모두가 다 이 가부좌를 많이 하셨고, 지금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 모든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도 다 가부좌를 하고 계시게 그렇게 조성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가부좌가 잘 안되면 반가부좌만 해도 됩니다. 반가부좌만 해도 조금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 반가부좌를 하고서 오른손을 놓고 왼손을 위에다 요렇게 포개고, 엄지손(가락)을 이렇게 딱 이렇게 맞되대 너무 힘을 주지 말고 또 이렇게 떨어지지 않도록, 이 엄지손과 엄지손이 예쁜 그 다리처럼 되도록, 무지개 다리처럼 이렇게 되도록 이렇게 해서, 딱 해서 배꼽 앞에 배에다가 이렇게 해서 놓고서.

 

허리를 죽 펴되 너무 뒤로 자지바지하지도 말고, 앞으로 숙지도 말고, 좌우로 기울지 않도록 단정하면서도 어깨에 힘을 빼고 목에 힘도 빼야 하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답시고 너무 허리에다 힘을 주고 목에다 힘을 주고 어깨에다 힘을 주어 가지고 뒤로 자지바지하니 너무 그렇게 하면 오래 앉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단정하니 앉되 힘은 다 빼라.

 

 

그리고 눈은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또 너무 감거나 가늘게 뜨지도 말고 평상(平常)으로 떠라.

아까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에도 '그 눈을 법문을 들을 때에나 또는 참선을 할 때에도 눈을 평상으로 따악 떠야지 눈을 감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말씀이 나왔습니다마는.

 

눈을 감으면, 처음 참선한 사람은 눈을 뜨면 자꾸 뭣이 눈에 보이고 마음이 산란하고, 눈을 감고 하면 마음이 잔잔하고 고요해져서 공부가 잘된 것처럼 느껴지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서 눈을 감고 해 버릇하면 계속해서 눈을 감아야만 공부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면 눈을 감고 하면 못쓰냐 하면은 망상이 차츰 잠잠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스르르르 하니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혼침(昏沈)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해도 이 참선을 하다 보면 망상(妄想)이 가라앉고 조용해지면 까딱하면 이 혼침에 빠지기가 쉬운 것인데, 더군다나 거기다가 눈을 감고서 공부를 익혀나가면 더욱 혼침이나 무기(無記)에 연결이 되어 가지고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공부를 진행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눈을 감고 하면 스르르르르 하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명 잔 것은 아닌데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뭣이 그런 경지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꾸뻑, 이렇게 꾸뻑꾸뻑 졸고 있는데, 본인은 전혀 자지 안 했다고 생각을 하고 그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사람이 보면은 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졸고 있으면서, 졸음에 들자마자 화두에 대한 의심은 스르르르 하니 없어지게 되고, 그래 가지고 그 혼침과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져 가지고,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그 적적한 데에 체해 가지고 그 맛을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량겁(無量劫)을 그 혼침에 빠져 있어도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적적(寂寂)하면서도 성성(惺惺)해야지,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하지 못하면 그것은 바른 참선이 아니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한 때에는 항상 눈을 평상으로 떠라. 단정하니 이렇게 앉아서 약 3미터, 2미터 내지 3미터 지점에 눈을 떨궈라 하거든.

'눈을 떨군다'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어떠한 점을 주시(注視)하거나 응시(凝視)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 의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본 바가 없어.

 

그래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평상으로 뜨고, 이는 아금니부터 지그시 감고서 혀는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에다 혀 끄터리를 갖다가 말아서 대라 이거거든.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참선하는 데 있어서 기본자세야.

 

기본자세를 항상 잘 해야 합니다. 시간과 장소가 허락이 되면 언제라도 기본자세를 취하는 것이 가장 편하고 공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이것이여.

 

 

기본자세를 잘하고 그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해라.

호흡은 단전호흡(丹田呼吸)—보통 사람은 다 허파로,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참선을 한 사람은 배꼽 밑에 단전(丹田)으로 호흡을 해라 이거거든.

 

가슴은 고대로 놔 두고서 숨을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쉴 때는 아랫배가 홀쪽해지도록 호흡함에 따라서 아랫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니까 배로 호흡을 한다, '단전으로 호흡을 하라' 그래서 이것을 단전호흡이라 그러는데.

 

이 화두만을 올바르게 참구를 해 나가면 자세도 둘째 문제고, 호흡도 둘째 문제라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화두를 참으로 바르게 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 화두를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는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자꾸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참구, 화두를 이렇게 의심을 해 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점점 이 골똘하고 간절히 하다 보면 이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게 되는 그러한 경우가 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물론 체질이 아무리 화두를 가지고 열심히 참구를 해도 기운이 올라가지 아니한 특수하게 잘 타고 난 사람은 상관이 없지만,

체질에 따라서 조금 신경을 쓰면 열이 올라가고 눈이 붉어지고 얼굴이 붉어지고 하는 그러한 체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참선을 열심히 한답시고 계속 단전호흡을 하지 않고서 열심히 화두만 하다 보면 그렇게 상기(上氣)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애당초에 참선을 시작할 때부터 바른 자세와 단전호흡을 기본으로 해서 그러면서 화두를 참구하면 백무일실(百無一失)이여. 백 명이면 백 명 다 이 부작용 없이 상기병(上氣病)같은 그런 무서운 병이 나타나지 아니하고 올바르게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 숨을 다 내뱉어버리고 그리고서 스르르르르 들어마시는데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약 3센치 가량 볼록하게 하라 그말이여.

들어마실 때 너무 가득 들어마시면 힘이 드니까 8부(八部)쯤만 들어마셔. 조금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만 완전히 뱃속이 가득차도록 들어마시지 말고 8부쯤만 들어마셔.

 

8부쯤 들어마셨거든 일단 정지를 해. 딱 정지를 하되 약 3초 가량 딱 정지를 했다가 또 조용하게 숨을 인자 코로 내쉬되 그 볼록했던 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이렇게 해서 숨을 내쉬고.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되 들어마심에 따라서 배가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8부쯤 들어마셨으면 또 일단 정지했다가 또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는데.

 

그러면 화두는 언제 드느냐 하면은 내쉴 때, 들어마셨다가 3초 쉬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속으로 하면서 화두를 이렇게 하는 거여.

 

또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이런 화두를 하신 분은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무르면서 '어째서?'해 가지고, 내쉬면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또는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셔 가지고 또 3초 동안 정지하면서 '어째서?'해 가지고, 내쉬면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처음 최초로 초학자는 이렇게 숨을 내쉴 때마다 이렇게 화두를 한번씩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공부가 익숙해지고 안정이 되어가면 숨쉴 때마다 화두를 들을 필요가 없어.

숨은 몇 번을 쉬되, 그 알 수 없는—'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또는 '이뭣고?'했을 때 하고 남은, 한 뒤 끝에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묵묵히 그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숨을 두 번을 쉬거나, 세 번을 쉬거나, 네 번을 쉬거나, 숨이야 그때그때 계속 쉬면서도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 데다가 거기다 대고 자꾸 '이뭐꼬, 이뭐꼬' 계속 그렇게 덮치기로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 의심이 희미해지거나 없어지거나, 딴생각[別念]이 들어오거든 그때 화두를 한번씩 챙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참으로 공부가 순숙(純熟)해지면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들고, 아침공양 할 때까지 한번 들어서 고대로 그 화두에 의심이 있으면은 계속해서 화두를 새로 안 들어도 된다 그말이여.

밥을 먹으면서도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그 순수무잡한 의단이 고대로 독로해 있으면은 화두를 거기다가 덮치기로 뭐 자꾸 '이뭣고, 이뭣고' 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오히려 잔잔한 물에다가 막대기를 휘저어서 물결을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이여.

 

한번 든 화두가 하루 종일 있고, 저녁에 자기 위해서 자리에 누워서도 고대로 화두가 성성하고, 언제 잠이 든 중 모르게 들었는데 꿈속에서도 화두가 성성하고, 새벽에 일어나서도 고대로 화두가 들려져 있다면 그건 참, 공부가 정말 순숙해진 경계다.

그러한 상태로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공부는 '정말 내가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다! 이것을 내 놓고는 내가 할 일이 없다!'

오직 여기에 나의 인생을 다 여기다 바치고, 나의 목숨을 다 여기다 바치고, 그러한 마음으로 알뜰히 해나가면 누구라도 다 이렇게 적적하고 성성해서 한번 든 화두가 하루도 가고 이틀도 가고 사흘도 가고, 이런 경지에 이런 순수무잡(純粹無雜)한 경지, 타성일편(打成一片)의 경지에 도달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면 그럴 때에 깨닫기를 바래지 말고, 누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 말고, 한결같이 그 적적성성(寂寂惺惺)한 의단을 갖다가 잘 거각(擧却)해 나가, 관조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수무잡한 경지에 들어가서 깨닫기를 바랜다던지, 누가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랜다던지, 빨리 깨달을려고 생각을 일으킨다던지 이런 것은 모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에까지 와 가지고 자기의 그것을 갖다가 망가뜨려 버리게 하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공부는 하고 싶을 때 그때 해야 하는 거고,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지,

한번 모처럼 무량겁을 지내오면서 모처럼 불법(佛法)을 만나고 정법(正法)을 만나 가지고 하고 싶은 마음 났을 때 계속해서 몰아붙이지 못하면 그래 가지고 그 고비가 식어 버리면 다시 그런 경계가 오도록 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39분39초~60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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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관음재일(觀音齋日) ; 매월 음력 24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전가부좌(全跏趺坐) · 온가부좌(온跏趺坐) ·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자지바지 ; 좌선(坐禪)할 때 몸에 너무 힘을 주어, 몸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할 때는 몸을 단정(端正)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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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적적(寂寂) ; 고요한 상태.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일체의 대(對)가 끊어진 마음의 본체가 드러난 상태.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 ; 완전히 잠이 들지도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정신이 어렴풋한 순간.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주시(注視 물을 대다·마음을 쏟음 주/볼 시) ; ①어떤 일에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 ②어떤 목표물을 주의깊게 잘 살펴봄.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1분 32초)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또는 '이뭣고?'했을 때 하고 남은, 한 뒤 끝에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묵묵히 그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5분 59초)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5분 57초)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딴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순숙(純熟 순수할·온전할 순/익을 숙) ; 완전히 익음.

 

*공안(公案, 話頭)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8. 5. 10. 14:23

§(578) 참선의 자세. 호흡(단전호흡) / 부정관, 수식관 / 화두를 단전에다 두고 관(觀)하라 / 반복-습관-체질화-본능 /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화두를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너무 용을 써서 되게 몰아붙인 것도 못쓰고, 그렇다고 해서 매카리 없이 멍하니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마는. 그래서 그런 상기병과 같은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아니하면서 정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단전호흡을 설하시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단전호흡을 전강 조실 스님께서 처음으로 그것을 창안하신 것이 아니고, 임제종 종사(宗師)들은 단전호흡에 대한 언급을 별로 안 하셨지만, 육조 스님 밑에 조동종에서는 단전호흡을 정식으로 다 수좌(首座)들에게 권장을 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화두를 드는 것은 간절한 의심이라고 하니까 '이뭣고?'하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머리로 화두를 해서는 안된다 그말이여. 알 수 없는 의심을 갖되, 그 화두가 배꼽 밑에 단전에다 두고 화두를 관(觀)하는 거야. 이건 말로써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나 자꾸 스스로 해 보면 그 말을 알아들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단전에 가 있게 하는 방법이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이렇게 불어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하니까 거기가 생각이 있게 되고, 차츰차츰차츰 내쉴 때는 배가 홀쪽한 것을 느끼면서 하니까 우리의 생각이 단전에 가서 머물게 된다 그말이여. 그 머무는 거기에서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렇게 해서 하면 단전에다가 화두를 두고 관하는 뜻이 거기서 스스로 계합을 하게 된다 그말이여.

 

**송담스님(No.578)—96년(병자년) 동안거결제 법어(96.10.15) (용578)

 

(1) 약 21분.

(2) 약 20분.

 

(1)------------------

 

초학자는 첫째, 앉는 자세—몸을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해서, 될 수 있으면 가부좌를 하면 몸을 단정히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단정하게 된다 그말이여.

한국 사람은 다리가 좀 짧아서 가부좌를 처음에 할 때에는 발목이 아프고 좀 힘이 들지만 자꾸 해 버릇하면, 처음에는 한 5분씩 하다가 나중에는 한 10분씩 하다가 15분, 차츰차츰 여러 달을 두고 익혀 나가면 그것도 인자 길이 들어서 가부좌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마는. 그것이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도저히 가부좌를 해 가지고는 발목이 부러질 것처럼 아파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억지로 그것을 끝까지 할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서서히 연습을 해서 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해 보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고.

정 가부좌가 안 되면 반가부좌만 해도 정진하는데 조금도 상관이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오른발을 구부려서 딱 잡아당겨서 놓고, 오른발 위에다가 왼발을 딱 올려놓거나 그렇게 해서 얼마쯤 하다가 정 다리가 저리면 다리를 또 바꾸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허리는 쭉 등뼈를 펴되, 너무 힘을 주어 가지고 뒤로 자지바지 하니 그렇게 할 필요는 없고, 단정하되 앞으로 기울지도 말고 뒤로 너무 자지바지 하지도 말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단정하면서도 어깨나 목에 힘을 빼고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세를 갖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너무 감지도 말고 평상으로 딱 떠서 평지에서 앉았을 때 눈앞에 2m 지점이 보일 정도로 이렇게 눈을 뜨되, 2m 지점 특수한 어떤 점을 지정해 놓고 거기를 응시(凝視)해서는 안 돼.

 

어떤 사람은 '2m 지점을 보이도록 하라'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그 지점에다가 콩 같은 것을 하나 놓고 종일 그 콩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런 사람을 봤는데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니어.

볼려면 2m 지점이 보이게 하라는 것이지, 그 지점을 응시하고 주시(注視)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고.

 

이는 지그시 물되, 너무 꽉! 물거나 위 아랫니가 떠서는 안돼. 지그시 이렇게 힘을 들이지 않고 이를 다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 안에다 혀끝을 갖다 대도록. 그러면 혀 밑에서 침이 인자 요렇게 솟아오르는데, 쪼끔 나오면 꼴딱 생키고 쪼끔 올라오면 꼴딱 생키고 자주자주 삼키지 말고, 입안에 가뜩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뜩차거든 가만히 삼키는 거야.

 

이것이 자세를 바르게 하는 법이고.

 

 

호흡을 단전호흡을 하는데, 부처님 당시부터 수식관(數息觀)이라고 하는, 참선 수행자가 그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행에 들어가는데 수식관이 대단히 요긴한 것인데.

 

어떻게 해서 부처님께서 수식관을 설하시게 되었느냐 하면은 비파사나(vipassanā)라고 신(身) · 수(受) · 심(心) · 법(法),

'이 몸뚱이[身]는 더러운 것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몸에 아홉 구멍으로부터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몸안은 피와 오줌과 고름과 똥이 가득차 있고, 머지않아서 인연이 다하면은 죽어서 썩어 문드러진다. 그런 이 몸뚱이는 하여간 더러운 똥 주머니다' 이러한 생각을 항상 그렇게 관(觀)하며.

 

밖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수(受),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눈으로 무엇을 받아들이거나, 귀로 받아들이거나, 코나 혀로 받아들이거나, 몸뚱이로 받아들이거나, 생각으로 받아들이거나 밖에서 무엇만 받아들였다 하면은 그것이 결국은 차츰차츰 변해 가지고 고통으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이다.

 

셋째에 가서는 우리의 마음[心]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하루에면 수천수만....  일(一) 호흡지간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모두 무상하다 그말이여.

아침에 먹었던 생각이 벌써 밤에는 딴 생각,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할려고 마음을 먹어도 금방 그 생각이 변해 버리고. 이것을 누구를 줄려고 마음먹었다 해도 돌아서면서 마음이 변해 가지고 줄 생각이 없어지고. 우리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시시때때로 변해서 무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내 몸[身]과 받아들이는 것[受]과 우리의 마음[心]을 제외한 것, 모든 것이 바로 법(法)인데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모든 법이다' 그러거든.

모든 법은 무아(無我)다. '내'라고 하는 자성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몸은 더러운 것이요,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것이요, 우리의 마음은 무상한 것이요, 그 밖에 모든 법은 다 무아 한 것이다.

 

그것을 제자들한테 설한 가운데에 유독(唯獨) 육체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또 이성 간에 이쁘게 생긴 사람, 마음에 든 사람에 애착심을 가지고 그러니까,

일단은 '이 몸뚱이라 하는 것은 내 몸이나 다른 사람 몸이나 할 것 없이 다 똥 주머니요, 피고름 주머니요, 다 더러운 것이다'하는 부정관(不淨觀)을 가리켜서 그것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이 몸뚱이가 정말 싫어지고.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자체가 이 몸뚱이를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고, 이 몸뚱이를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하고 그래 봤자 결국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밖에는 안되고. 이 몸뚱이가 싫어지고 아주 원수같이 느껴져서 이를 마치 뱀을 목에다가 칭칭 감고 다니는 것처럼 이 몸뚱이가 싫어지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녹장외도(鹿杖外道)한테 가 가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바리때하고, 요 입는 가사(袈裟)하고 밖에 없는데 이것을 당신한테 줄 테니 제발 자비로써 나를 좀 죽여 달라"고,

이래가지고 몽둥이로 쳐서, 맞아서 죽은 사람 또 목 매달아서 자살한 사람, 물에 빠져서 죽은 사람, 그래서 60명 가량이 한 여름에 죽었습니다.

 

포살(布薩) 날을 기해서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기 위해서 대중 종을 쳐서 모여 놓고 보니 60명이 비었으니 "어떻게 대중이 이렇게 많이 줄었느냐?" 아란존자 보고 물으니까,

"그렇게 해서 부정관(不淨觀)을 하다가 이렇게 60명이 자살하고 녹장 비구한테 자원을 해 가지고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여쭈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렇다면은 수식관(數息觀)을 해라"

 

수식관이 차츰 발달한 것이 지금의 단전호흡(丹田呼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수식관은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하니 내쉬고 '하나',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고 '둘',

이렇게 해서 열까지 세어 올라갔다가 열에서 그 다음에는 열하나로 가지 말고 아홉, 여덟, 일곱... 해서 까꾸로 해서 하나로 내려오고 해서 하루 종일 호흡을 세는 거여.

 

그것이 잘되면은 하나에서 스물까지 올라갔다가 열아홉, 열여덟 내려오고 그것이 잘되면 서른, 마흔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도록,

그런 동안에 중간에 망상이 일어나 가지고 '몇까지 세었는가?' 잊어버리면 다시 다 없었던 걸로 하고 다시 하나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이렇게 하기를 몇 날 며칠을—한 달, 두 달, 한철 내 하다보면 그것이 차츰차츰 되어간다 그말이여.

 

사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실 만한 일인데, 초학자들은 해 볼 만한 일인데,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것이 수식관인데, 지금 용화사에서 초학자에게 수식관부터 하라고 그렇게 간곡히 권(勸)은 하고 있지 않으나,

워낙 망상이 심하고 정진이 잘 안되고 건강도 안 좋고 그러면 수식관을 한번 자기가 몇까지 세었다가 또 내려올 수가 있는가. 그것을 자기가 얼마만큼 정신 집중력이 있고 되어가는 것을 시험 삼아 한번 해 보시길 바라는데.

 

전강 조실 스님 때부터서 단전호흡을 권하게 된 동기는 여러분께서도 조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으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첫 철에 너무 용을 쓰고 용기를 내서 의심을 하다가 결국은 상기(上氣)가 복받쳐 올라서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고 뒤통수가 툭 툭 터져서 곪아터지고, 목구멍으로부터서는 선지피가 막 쿨쿨 넘어오고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니까, 직지사에서 제산 스님께서 "그렇게 내가 시킨 대로 안 하고 네 멋대로 해 가지고 병이 나면 다 내가 너를 공부를 잘못 가르켜 가지고 그랬다고 할 것 아니냐"

 

제산 스님께서는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관(觀)하라.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을 관(觀)해라' 그렇게 참선하는 법을 일러 주셨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께서 『서장(書狀)』을 보나, 『선요(禪要)』를 보나 보면 그렇게 공부하라는 법은 없고.

 

조주 무자(無字)를 관하시는데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라는 것을 너무 용을 쓰고 하시다가 결국은 상기병(上氣病)이 나 가지고 그렇게 하시다, 결국은 그러한 병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계속해 가지고 깨달음을 얻으시긴 얻었지만,

그 상기병으로 해서 피가 거꾸로 넘어온 그걸로 해서 참 여러 해 동안을 고생을 하시고, 만행을 하신 그런 과거를 생각하셔서 우리 후학(後學)들에게는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그렇게 하지 말고 급(急)하고 완(緩)한 것을 득기중(得其中)이여. 그 중(中)을 얻어야 한다.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너무 용을 써서 되게 몰아붙인 것도, 과도하게 몰아진 것도 못쓰고, 그렇다고 해서 매카리 없이 멍하니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마는.

그래서 그러한 병을 미연에 방지하고 그런 상기병과 같은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아니하면서 정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단전호흡을 설하시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단전호흡을 전강 조실 스님께서 처음으로 그것을 창안하신 것이 아니고, 임제종(臨濟宗) 종사(宗師)들은 단전호흡에 대한 언급을 별로 안 하셨지만, 육조 스님 밑에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라고 조동종(曹洞宗)의 개종이신, 그 조동종에서는 단전호흡을 정식으로 다 수좌(首座)들에게 권장을 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래서 특히 이 간화선(看話禪)을 하는,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서 수행해 나가는 간화선에 있어서 폐단이 너무 간절하게 한답시고 용을 쓰고 의심을 일으키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와 같은, 약으로는 낫을 수 없는 그런 무서운 장애에 부닥치게 되기 때문에 초학자일 때부터 단전호흡을 잘 기본으로 익혀 나가는데,

 

처음에는 준비 호흡.

준비 호흡은 가뜩 가슴으로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꾸었다가 입으로 '후-'하고 다 내뿜어. 또 가뜩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 내쉬고 하기를 두서너 번 그렇게 해 가지고 허파 안에 있는 묵은 공기를 다 쓸어버리고.

 

그리고서 인자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조용히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아랫배 단전(丹田)이 약간 볼록하도록 들어마셨다가 잠시 쉬었다가 조용하니 코로 내쉬되,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이렇게 해 나가는데.

 

그 호흡을 수식관처럼 '하나, 둘' 셀 필요는 없고, 계속 그렇게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드는데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길게 이렇게.

다 내쉬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그러는데,

 

이것도 잘못하면 내쉬는 숨만 있고 들어마시지를 못해. 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콱! 맥혀 가지고 영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게, 이 단전호흡을 하는데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다 잘되는 게 아니라 어쩌다 하나씩은 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호흡이 잘되지를 않고, 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굉장히 그것 때문에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그러헐 때는 어떻게 허느냐?

 

숨을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를 볼록이 하고 내쉴 때는 배를 홀쪽이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체해 가지고 할 때는 그 반대로 하는 거여.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를 홀쪽이 하고, 숨을 내쉴 때는 배를 볼록하게 만들어. 반대로 하는 거여. 그렇게 하다 보면 이 가슴 답답한 것이 차츰차츰 없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가슴 답답한 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는 호흡법과 배가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것을 반대로 얼마 동안 해도 상관이 없고, 그렇게 해서 편안하면 상당히 오래까지도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16분32초~37분22초)

 

 

 

 

(2)------------------

 

그러나 답답한 것이 없는 사람은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볼록하게 하되 너무 가뜩 들어마셔 가지고 배가 터질 때까지 그렇게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참고 그렇게 무리하게 해서는 안 돼.

들어마시되, 준비 호흡 3번 할 때에는 가뜩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완전히 내뿜도록 다 내뿜고, 3번을 준비 호흡은 그렇게 하지만, 본 호흡으로 들어가서는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시는 거야.

 

팔부쯤만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 게 아니고, 한 3~4초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되 또 완전히 다 내뿜으려 하질 말고 편안할 만큼만 내쉬는 거여.

10분 20분 30분을 해도 숨이 가쁘거나 힘들게 하는 것은 그건 잘못한 거고, 한 시간 두 시간을 해도 조금도 무리가 없도록 자연스럽게 해야 해.

 

자기의 호흡량에 맞추어서, 자기 체질에 맞추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해야 되지 그것을 무리하게 하니까 꽉 체해 가지고, 막혀 가지고 숨도 못 쉬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야.

단전호흡을 하기는 하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해야지, 무리하게 하면 그런 부작용이 일어나서 고생을 하는 수가 있으니까 그 점을 유의를 하기를 바라고.

 

 

화두를 드는 것은 간절한 의심이라고 하니까 '이뭣고?'하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머리로 화두를 해서는 안된다 그말이여.

알 수 없는 의심을 갖되, 그 화두가 배꼽 밑에 단전에다 두고 화두를 관(觀)하는 거야. 이건 말로써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나 자꾸 스스로 해 보면 그 말을 알아들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볼록하게 하고, 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한 것을 느끼면서 하니까 우리의 생각이 단전에 가서 자연히 거기에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하는 그 의심이 단전에 가 있게 된다 그말이여.

 

단전에 가 있게 하는 방법이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이렇게 불어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하니까 거기가 생각이 있게 되고, 차츰차츰차츰 내쉴 때는 배가 홀쪽한 것을 느끼면서 하니까 우리의 생각이 단전에 가서 머물게 된다 그말이여.

 

그 머무는 거기에서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렇게 해서 하면 단전에다가 화두를 두고 관하는 뜻이 거기서 스스로 계합(契合)을 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렇게 해 나가면 상기병(上氣病)이 일어날라야 일어날 수가 없어.

단전호흡을 안 하고 이 머리로만 '이뭣고? 이뭣고?'하니까 자연히 우리의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는 머리가 뽀개지려고 그러고, 뒤통수가 뜨끈뜨끈하니 열이 오르고 나중에는 그렇게 해서 상기병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화두는 그렇게 초학자는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시작은 하되, 차츰차츰 화두를 드는 요령을 터득을 하게 되면 숨 쉴 때마다 화두를 새로 들 필요는 없어.

화두는 딱 단전에다 두고 알 수 없는 의심을 관하되, 숨이 다 나가면 제절로 숨을 쉬고 숨은 몇번을 쉬어도 상관이 없으되, 화두가 없어지거나 딴 생각[別念]이 들어왔을 때는 그때 화두를 한 번씩 챙기는 거여.

 

사람에 따라서는 처음에는 숨을 내쉴 때마다 들어야 하겠지만 나중에는 서너 번 할 때까지도 화두가 고대로 있으면 새로 들을 필요가 없고, 한 시간 동안에도 화두가 고대로 있으면 새로 화두를 들을 필요가 없어.

 

물론 누구를 막론하고 화두를 들고 '이뭣고?'하고 있는 동안에도 수없는 생각이 들랑날랑하지마는, 귓전에 봄바람 스쳐가듯이 스쳐가거나 말거나 내비둬 버리고 자기 할 일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가벼운 생각들이 왔다갔다한 것은 그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내버려둬 버리고는 자기는 가끔 한 번씩 화두를 챙기고 자꾸 하다보면, 그것을 반복해서 하면은 습관이 되고, 습관이 나중에는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일구월심(日久月深)해서, 날마다 그렇게 해 나가면 오래오래 하다보면 그것이 순숙(純熟)이 되어 가지고 화두를 일부러 들지 않아도 항상 들어져 갖고 있고, 놓쳤다가도 금방 척! 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는 본능(本能)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식(食) 본능이니, 색(色) 본능이니, 귀소(歸巢) 본능이니 그 본능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본능이 어디서 생기냐 하면은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반복해서 하는 데에서 본능이 생기는 것입니다.

 

미충(微蟲), 곤충, 동물, 사람 할 것 없이 남녀 간에 성(性) 문제는 누구한테 배우지 않아도 불구자나 되면 몰라도 성한 사람이면 배우지 안 해도 다 알고 있는 거고.

애기가 막 태어나면 젖 빠는 법을 가르키지 않아도 눈도 뜨지 않은 상태에서 젖꼭지를 찾고, 대주면 쭉쭉쭉쭉 빠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량겁으로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래서 화두도 자꾸 반복해서 하면은 나중에는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져. 뭘 봐도 화두요, 들어도 화두요, 잠깐 놓쳤다가도 금방 탁! 들어지게 된다 그말이여.

들지 안 해도 제절로 들어지고, 수없는 망상(妄想)이 드나들지마는 드나들거나 말거나 그것 억지로 떼어낼라 하지도 말고, 망상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성화를 내고 진심(瞋心)을 내고 번뇌심을 낼 필요도 없어.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 떡떡 챙겨 나간다 그말이여.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 먹을 때까지, 점심 먹으면서도 떠억 화두를 들고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넣고는 오십 번, 백 번 요렇게 씹으면서도 화두가 고대로 있도록 훈련을 쌓아나가라 그말이여.

양치질 할 때도 화두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도 화두를 하고, 목욕탕에 가서도 화두를 하고, 빨래를 하면서도 화두를 들고, 오고가면서도 화두를 하고.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이것뿐이여.

 

그밖의 모든 일은 오직 이 한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고, 한 일을 위해서 그런 것이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지, 이 한 일 말고는 우리는 할 일이 없어.

이 한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청춘도 버렸고, 고향도 버렸고, 부모형제도 다 버리고, 세상의 모든 명예와 권리와 지위 부귀도 다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출가 아니한 세속에서 몸을 담고 사는 거사님들이나 보살님네들도 세속일 하면서도 이것을 할려고 그 애를 쓴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한 동기에서건 간에 출가한 비구 · 비구니 · 사미 · 사미니가 됐다 그말이여.

그렇다면은 정말 이 법이 있는 줄을 몰랐을 때는 몰라도 이 정법(正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있는 줄을 안 이상에는 정말 이 한 일을 위해서 전력투구를 한번 해봐야 할 일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밥이 없어서 먹을려고 돈을 벌 필요가 있습니까? 얼어 죽을까봐서 옷을, 좋은 옷을 해 입기 위해서 돈을 벌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명예와 권리와 지위 부귀를, 그런 데에 눈을 뜰 리가 있느냐 그말이여.

 

출가한 스님네로서 특히 선방(禪房)에 나와 걸망 지고 나온 수좌 스님네로서 선배, 후배를 눈여겨봐야 합니다. 정말 저 스님네는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정말 몸과 목숨을 거기에다가 바치고 계신가?

 

그리고 어느 선방에 가든지 어느 스님이 과연 이 일대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걸고 정진하고 계신 분이 누군가를 한번 찾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 회중(會中) 가운데 그런 분이 한 분 또는 두 분이 계시면은 그분을 보고 자기의 거울을 삼고 자기를 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나도 과연 저렇게 할 수가 있는가? 저렇게 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아니하면 당장 그때부터서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에 채찍을 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선배들도 정신을 차리게 되고, 후배들을 위해서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단속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위해서 자기를 단속하고, 후배들은 선배들을 보고 거울삼아서 자기를 반성하고, 이렇게 해서 그래서 선방이란 데가 연세가 많고 법납(法臘)이 높은 선배 스님과 금방 출가한 후배들이 함께 모여서 정진하는 데에 큰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병자년 동안거를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을 믿고, 정진하려고 하는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많이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이런 말을 들을 필요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수행하시는 여러 도반들이 많이 계신 줄 알지마는, 노바심절(老婆心切)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다시 말씀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백일기도 입재식도 겸한 그런 법요식이니,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신남신녀 여러분들 또 용화선원이나 다른 선원에 방부를 들인 거사님이나 보살님네들은 정진에 있어서는 비록 속가에 몸을 담아 있지마는, 정법을 믿고 정진하는 마당에서는 꼭 스님네만 못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더 백배(百倍), 천배 더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해 가지고 더 열심히 하셔서 정진력을 얻고, 대도(大道)를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백일기도 동참하시고 결제에 참석을 못 하신 분은 댁에서 일하면서 앉아서나 서서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그리고 조실 스님 녹음 테이프(tape)를 구해서 시간 나는 대로 틀고 듣고, 들으면서 정진하고 일도 하고 하신다면 바로 가정이 선방이 될 것입니다.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생사 진로(塵勞)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이 보통 일이 아니어.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꽉! 승두(繩頭)를 잡아서, 승두는 우리의 입지요. 우리의 본참 화두(本參話頭)라고 해석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화두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어나가라.

 

왜 꽉 잡아야 하냐 하면은 우리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열때(열쇠)가 바로 이 화두 공안이기 때문에 그놈을 놓치지 않도록 잡드리를 잘해야 한다 그말이거든.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이 한번 뒤쳐서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까 보냐.

 

이 말은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한 뒤에 매화가 피어야 그 향취가 진동하고, 겨울에 이상난동(異常暖冬)으로 겨울이 춥지를 못하고 뜨뜻하면 논과 밭두렁에 벌레만 안 죽을 뿐만 아니라 매화꽃 향기도, 피기는 일찌감치 근사하게 피지만 향내가 하나도 없는 거여.

 

정진도 아까 상기병을 조심하고 몸에 건강을 유지하면서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기는 했지만 행여나 상기병 올까봐, 행여나 병 날까봐 미리 겁을 내가지고 공부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그저 방일(放逸) 속에서 그럭저럭 해 가지고는 정말 이 문제는 해결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용을 쓰지 말라는 것이지, 얼마든지 가행정진(加行精進)도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바탕 뒤쳐서 뼛골에 사무치지 않을 것 같으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이 게송(偈頌)은 황벽 선사(黃檗禪師)가 우리 후학들을 위해서 날마다 이것을 좌우명(座右銘)을 삼아서 정진하도록 이 게송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37분22초~57분3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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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주시(注視 물을 대다·마음을 쏟음 주/볼 시) ; ①어떤 일에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 ②어떤 목표물을 주의깊게 잘 살펴봄.

*수식관(數息觀) ;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부정관(不淨觀) ; 몸이 청정하지 못한 것을 관찰하는 것. 초기불교에서부터 강조되어 온 수행법으로, 특히 탐욕이라는 번뇌를 물리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몸의 더러움을 관찰하여 몸에 대한 싫어하는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탐욕을 없에게 한다. 부정상(不淨想)이라고도 한다.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다섯 가지 수행법[五停心觀] 중 하나로 첫 번째인 부정관은 탐욕, 두 번째인 자비관(慈悲觀)은 분노, 세 번째인 연기관(緣起觀)은 어리석음, 네 번째인 계분별관(界分別觀)은 아집(我執), 다섯 번째인 수식관(數息觀)은 산란한 마음을 대치하기 위해 닦는다. 또한 사념처(四念處) 중 신념처(身念處)의 여러 가지 수행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녹장외도(鹿杖外道) ; 녹장(鹿杖) · 녹장사문(鹿杖沙門) · 녹장범지(鹿杖梵志) · 물력가난제(勿力伽難提) · 미린전타라(彌隣陀羅) · 녹난제(鹿難提)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교설한 부정관(不淨觀)을 잘못 이해한 비구들이 세상에 대해 싫어하고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 녹장에게 찾아와서 목숨을 끊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 대가로 의발(衣鉢, 가사와 발우)을 주겠다고 하는 말에 욕심이 난 녹장이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살해하였다. 비구를 죽인 칼을 씻으러 강에 갔던 녹장은 천마(天魔)로부터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하게 한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하는 칭찬을 받자 더 큰 공덕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비구들을 찾아다니며 해탈시켜 주겠다고 하였고, 많은 비구들이 그에게 요청하여 모두 60여 명을 살해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들어서 아시고 대중을 모아 놓은 후,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 入出息念 : 數息觀)을 설법하였다. 그리고 살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죄가 된다는 것을 교설하고 4바라이(四波羅夷)의 제3에 해당하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을 제정하였다.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가사(袈裟) :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 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포살(布薩) ; 산스크리트어 poṣadha, 산스크리트어 upavāsa, 산스크리트어 upavasatha, 팔리어 uposatha의 음사. 단식(斷食)·정주(淨住)·선숙(善宿)·근주(近住)·장정(長淨)이라 번역.

출가자들은 음력 매월 15일과 29일(또는 30일)에 한곳에 모여 계율의 조목을 독송하면서 그 동안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재가(在家)의 신도는 육재일(六齋日) 곧 음력 매월 8·14·15·23·29·30일에 하루 낮 하룻밤 동안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는 일.  포사타(布沙陀,哺沙陀), 포쇄타(褒灑陀)라고도 쓴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선요(禪要) ; 『선요』는 중국 송대 말기에서 원대 초기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의 법어집으로 대중과 개인을 위한 법문과 편지글 및 스님 자신의 수행과정을 직접 말씀한 편지글을 포함해 29단락의 법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참선 수행인이 생사 일대사(生死 一大事)의 해결을 위하여 간절하게 화두 참구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매카리 ; 매가리. 맥아리. 맥(脈 기운이나 힘)을 속되게 이르는 말.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육조, 청원행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에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은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그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을 선양하였다.

 

이 이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하지 않으나, 법안 문익(法眼文益)선사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동」은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동이겠지만, 「조」는 동산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이 그 종지를 크게 밝혀서 완성한 때문이라 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문법에 선후와 시종을 거꾸로 붙이는 전례가 아주 없는 바도 아니지만 제자의 이름을 스승의 이름 위에 놓은 것이 당연한 경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이후에는 조계산(曹溪山)의 「조」로써 육조의 바른 갈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왔다. 또한 조산 본적의 조산도 조계산을 사모하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 가풍은 정편 오위(正偏五位)를 세워서 아주 세밀하고 말과 행실이 서로 일치하고, 이치와 일이 무르녹게 합하여, 본래면목으로써 종지(宗旨)를 삼는다.

일본의 조동종은 도원(道元, 1200-1253)이 1223년 송나라에 들어가 중국 조동종의 선승인 여정(如淨)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계승하였다. 도원 선사는 1227년 귀국하여 일본에 조동종을 전파하였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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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순숙(純熟 순수할·온전할 순/익을 숙) ; 완전히 익음.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걸망(乞網 빌다·구걸하다 걸/그물·싸다 망) ; 망태기처럼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바랑). 또는 동냥할 때 매고 다니는 베낭(배낭背囊)을 말한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회중(會中) ; 설법의 자리에 모인 사람들. 수행자의 집단.

*법납(法臘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스님의 나이·승납 납) ; 법세(法歲), 계랍(戒臘), 하랍(夏臘)이라고도 한다.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 비구니가 되고 부터의 햇수를 말한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녹음 테이프(tape) ;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를 말한다.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방일(放逸 놓을 방/제멋대로 일)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황벽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좌우명(座右銘) ; 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7. 6. 25. 11:17

§(715) 호흡은 단전호흡을 권장 / 아직 화두를   분은 이뭣고? 산승은 권한다 / 이뭣고? 천칠백 공안의 근본 화두. 어느 화두를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용715)

 

약 9분.

 

오늘 결제(結制)일이므로, 결제날이므로   나온 분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화두(話頭)에 대한 말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앉고, 아무렇게나 숨을 쉬고, 아무렇게나 이뭣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합니다. 가부좌(跏趺坐)나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

억지로  가부좌를  것은 없고 가끔 시간이 있으면 가부좌도 하고서  분씩,  분씩 그렇게 앉아보는 것도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옛날에  가부좌를 하셨기 때문에 가부좌를 평소에 익히고 앉도록 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부좌는 그렇게 오래 앉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반가부좌만 해도 되는 것입니다.

반가부좌는 보통 우리가 행감친다’고 이렇게 표현합니다마는 자세히 설명을 안 해도, 한 다리를 오그리고 다른 다리를  위에다가 포개는 것입니다. 그렇게 포개되 허리를 펴고 고개를 반듯이 드는 것입니다.

너무 뒤로 자지바지할 것도 없고, 앞으로 너머 숙여도 아니되고 반듯하되 어깨나 허리나 목에 너무 힘을 주어서는  됩니다. 정당(正當)하게 앉되  긴장을  풀고 앉는 것입니다.

 

눈은 너무 뚝 부르떠도 안되고 눈을 감어서도 안되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뜨는 것입니다.

 쳐다보라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서  2~3m 정도가 보일 정도로, 그렇다고 해서 거기다가 어떤 사람은 콩이나  그런 것을 갖다놓고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마는 그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눈을 뜨고 보되  바가 없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눈을 뜨면  2m 3m 지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로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자세를 그렇게 했으면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호흡은 보통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도록 권장을 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호흡에 대해서 말씀이 있었습니다마는 호흡은 대단히 참선(參禪)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참선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살아있다하는 것은 숨을 쉬고 있다’는 얘기고, ‘숨을  쉰다 것은 죽었다’고  말과 똑같은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밥은 며칠도 굶을 수가 있고,  달도 굶고,  달도 굶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호흡은   분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가를 하는 사람은  주일 동안을 물통 속에 들어가서 있다가 나온 그런 특수한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숨을  ,  분도  못 견디는 것입니다.

 

기왕 호흡을  바에는 바른 호흡을 해야 한다 이것입니다. 바른 호흡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깊이 들어쉬었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는 것입니다.

 

호흡은 슬플 때는 자연히 호흡이 제대로  되고, 흥분해도 호흡이   되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을 내도  되고, 병이 나도 호흡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호흡을 제대로 하면 혈액순환도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에 노폐물은 밖으로  배설해버리고 맑은 피를 몸으로 고루고루 순환시켜서 그래서 있는 병도 낫고 따라서 건강도 좋아지는 것입니다.

 

참선은, 아프면 아플수록에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고, 어떤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수록에 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을 해야 하고,

사업이  안되고 가정에 어떤 걱정스러운 일이 나더라도 오히려 몸을 가다듬고 호흡을, 깊은 호흡을 하면서 참선을 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안정을 시켜야 하는 것인데.

 

더욱이 부모와 형제와 가정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이 참선을 할려면, 첫째 건강해야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이  좋아가지고서는 절대로 정진을 충분히 잘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밤낮 보약을 먹고 그래가지고 건강을 회복해야 정진해야 된다 그런 얘기가 아니고.

 

첫째, 건강을 유지할라면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여법(如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여법하게 하는 데는 별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시간도 필요가 없습니다. 보약을 먹거나 특별한 운동을 할려면은 시간이 따로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그러겠지만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필요가 없고, 올바르게 하는데.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은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약간 볼록해진 것을 느끼고, 내쉴 때는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만 나중에 하루 이틀 열흘 한  하다보면 무의식중에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올바르게 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수가 있는것입니다.

 

화두를 옳게 든다고 하는 것은조실 스님께서 아까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 화두를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화두를  것이고, 아직 화두를   분은 이뭣고?’ 산승(山僧)은 권하고 있습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의 근본 화두라고  수가 있습니다. 어느 화두 공안을 가지고 참선을 해도 궁극에 깨닫는 것은 이뭣고?’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몸뚱이 끌고 다니는 , 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아는 , 그러한 주인공이 우리 사람마다  있습니다.

 

 육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송장과 같은 것입니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수가 있고 사람이라  수가 있습니다.

자성(自性)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性品)이라고도 하고, 불성(佛性)이라고도 합니다마는  불성이라 하는 것은 짐승이나 지옥중생이나 벌레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성현들은 말씀을 하셨습니다.(1728~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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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결가부좌(結跏趺坐) 줄임말.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행감치다 ; ‘양반다리 하고 앉다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자지바지 ; 좌선(坐禪)  몸에 너무 힘을 주어,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때는 몸을 단정(端正)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정당(正當)하다 ;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