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자세 호흡)2023. 12. 6. 16:21

§(세등08)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 수승화강(水昇火降) / 상기병(上氣病) / 단전호흡을 하는 것은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 / 깨닫기 전에도,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송담스님(세등선원No.08)—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17) (세등08) (자세호흡)

 

약 19분.

 

그런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고 '어째서? 어째서?' 하고 해 가다 보면은, 너무 힘을 써 가지고 하다 보면은 기운이 자연히 머리로 모여져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고 골치가 아프고, 이렇게 되어 가지고 공연히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혈액순환이 잘못되고, 소화가 잘못되고, 잘못 이 혈기(血氣)가 고르지 못한 그러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참선(參禪)을 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가지고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해야 하거든.

복식 심호흡이라 하는 것은 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저 아랫배까지 호흡을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는,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조용히 내쉬는, 깊이 들어마시니까 자연히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다음에는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니까 배가 홀쪽해지는, 숨을 마셨다 내쉬었다 하는데 따라서 아랫배가 볼록해졌다가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 하복부(下腹部) 단전(丹田)에다가 그 거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그거거든.

그렇게 하면은 우리의 기운은 자연히 아랫배로 내려가 가지고 머리가 시원해져서 그래서—이 사람 몸에는 불기운과 물기운이 있는데, 화(火)와 수(水) 있는데, 우리의 모든 생각은 불기운에 해당이 되는 것이여. 그래서 생각은 아래로 써야 혀.

 

그래서 단전에다가 생각은 거기다가 집중을 해야 불기운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단전 있는 데에는 우리의 그 콩팥, 신장(腎臟)이 있는데 신장은 그것이 수(水)인데, 그 콩팥에다가—우리의 생각은 화(火)인데, 생각의 불을 거기다가 지져 댐으로 해서 콩팥, 콩팥은 솥에 물이 담어진 거와 같아서 그 솥 밑구녁에다가 밑바닥에다가 불을 갖다가 지져 대니까 그 솥에 물이 끓어 가지고 수증기가 위에로 올라간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우리의 생각은 (몸) 앞에서 밑으로 내려가고, 수증기는 밑에서 (몸) 뒤로 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불기운은 (몸) 앞으로 해서 밑으로 내려가고, 물기운은 (몸) 뒤로 해서 위에로 올라가니까 물기운과 불기운이 수승화강(水昇火降),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서 수승화강이 잘되어 가지고 몸이 건강하고, 몸이 건강함으로 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져서 그래서 정진해 나가는 데 부작용이 없이 잘되어 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 못되기 때문에 그놈이 수승화강이 아니라, 까꾸로 불은 위로 올라가고 올라가기 때문에 물기운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물기운은 내려가고 불기운은 올라가서 수승화강이 아니라, 수화(水火) 승강(昇降)이 까꾸로 돌아가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맑은 정신이 없어 가지고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골치는 뽀개질라고 그러고, 정신이 안정이 안 되어 가지고 화두만 생각했다 하면 골치부텀 아프고 공부가 안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참선 공부를 참으로 밤잠을 안 자고 열심히 공부를 해도 몸에 지장이 없이 할라면은 호흡법을, 호흡법을 잘 알아 가지고 단전호흡, 복식 심호흡을 제대로 익혀 가지고 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런 위에 화두를 떠억 든다고 하면은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아무리 용맹정진한다고 해도 몸에 병이 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것을 모르고서 덮어놓고 말뚝 신심을 내 가지고서 억지로 파고들다 보니까, 수화승강(水火昇降)이 안 되어 가지고 상기병(上氣病)이라고 하는 그런 병에 걸리는, 상기병은 약으로는 안 고쳐지는 것이여. 결국은 그 상기병은 이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잘해 가지고 참선을 잘하므로 해서 그 병이 낫는 것이지, 상기병은 약 먹어 가지고 병이 고쳐지질 안 혀.

 

그래서 그전에도 이 호흡하는 법에 대해서 누차 말을 했지마는, 몸을 단정히 가지고 이 호흡을 하되 처음에 잔뜩 가슴으로 들어마셔, 호흡을. 가슴이 터지도록 그리고 빨리 호흡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는 잔뜩 들어마신 다음에 입으로 '후~' 하고 내쉬란 말이여. 다 가슴을, 아주 이 가슴 속에 있는 호흡이 한 점도 남김없이 다 내쉬어 버려.(한 번)

다 내쉰 다음에 다시 한번 또 들어마셔.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참어. 참었다가 또 '후~' 하고 다 내쉬어 버려.(두 번)

 

그렇게 두 번을 하고서 세 번째부터서는 조용히 들어마셔.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지 말고 들어마신 호흡을 아랫배까지 내려가도록 들어마시란 말이여. 아랫배까지.

그래서 좌선을 하려면은 허리띠를 느슨하게 매야 해. 너무 꽉 허리띠를 짬매 노면 안 돼. 그래서 느슨하게 매고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까지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이렇게 눌러 보면 빵빵하도록 그러되 100%로 다 들어마시지 말고 80%까지만 들어마셔.

들어마신 상태에서 한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호흡을 내쉬되, 호흡을 내쉼에 따라서 차츰차츰 배가 홀쪽해지도록. 그러니까 뱃속에 가득찬 호흡을 이렇게 눌러 가지고 (배) 뒤로 밀어 버리란 말이여. 뒤로 그 차츰차츰 (배를) 홀쪽이 맨들면은 그 호흡이 뒤로 해서 돌아 나가도록.

 

들어마신 호흡은 앞으로 해서 그 아랫배까지 들어마셔 가지고, 들어마신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뒤로 밀어. 살모시 아조 아껴서 뒤로 밀면은 그놈이 뒤로 해서 이렇게 나가도록.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뒤로 밀어 버리면은, 배를 홀쪽이 하면은 그 호흡이 뒤로 해서 요렇게 이 코로 나간다 그 말이여. 이것을 계속 되풀이하되 우리의 생각은 항시 아랫배 단전 거기에 가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생각을 두고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그 알 수 없는 의심, 의심하는 마음, 의심이 거기에다가 거기에 가서 항시 있도록 그렇게 화두를 해 나가면 저절로 수화...(녹음 끊김)

이대로 잘해 나가면은 아랫배는 뜨뜻해지고, 온기가 아랫배에서 생겨 가지고 차츰차츰 그 온기가 커지면은 온몸이 훈훈해지는 것이여. 그러고는 머리는 아조 뒤통수가 시원해져 가지고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것만 열심히 잘해도 '신선(神仙)이 되어 간다'고, 도교에서는. 도교에 신선들은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 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는 것이여. 일체 몸이 다 낫고, 밥을 먹지 아니하고 그 솔잎만 먹고 맹물만 마시고도 칠백 세, 천이백 세까지도 사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중국에 도교에 팽조(彭祖) 같은 신선은. 이 심호흡을 잘하면은 그렇게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정신을 맑게 하고, 수명까지도 연장을 하고, 오신통(五神通)도 난다는 것이여.

 

우리가 단전호흡을 하는 것은 그러한 무슨 신통이 나고, 무슨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건강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짐으로 해서 참선을 잘하자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도(外道)가 하는 목적과 우리가 이 호흡을 하는 목적은 다른 것이다 그 말이여.

이러한 그 기초를 모르고서 덮어놓고 해 가지고서는 우리의 목적인 깨달음은, 깨달음의 목적지에는 도달하기 전에 중간에 부작용이 생겨 가지고 병이 나 가지고 공부도 못하고 인생을 참 헛되게 보내게 되는 그러한 안타까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상기(上氣)가 있거나 없거나 이 호흡을 어쨌든지 잘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출가해 가지고 몸이 건강해야 공부를 하지, 몸이 아파 놓으면은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 그 말이여.

 

이 호흡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얼마든지 와서 의논을 해서 자기가 하고 있는 호흡이 옳은가 그른 것인가를 잘 알아 가지고, 잘 호흡법을 알아 가지고 해야—이 호흡만 잘되면은 추운 것도 잘 바우고, 더운 것도 잘 바우고 또 수화승강(水火昇降)이 잘되기 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머리가 깨끗해서 화두를 들어도 정진이 깨끗하게 잘 나가지는 것이니까 그걸 좀 잘하도록.

 

그리고 이 호흡은 어디까지나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方便)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참선은 어디까지나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하고 의심이 커야만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 궁극은 '참선'하면 화두(話頭)지마는 그 화두를 잘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골라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되도록 그러한 기초 위에 마지막에 가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해야 한다.

'의심(疑心)이 간절하다'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못 '어째서 무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무엇고?'

 

자기 화두(話頭) 해야 혀. 이 화두 좀 해봤다, 이것이 좀 안된다고 해서 다른 화두 좀 해봤다 그런 게 아니라, 잘되거나 안되거나 잘되면 잘되는 대로 화두를 관(觀)해 나가고, 잘 못되면 못되어도 그 화두를 계속 들고 나가야 하는데,

'잘 못된다' 하는 것은, 화두를 들면은 금방 든 지가 얼마 안 되는데 딴생각[別念]이 들어오고—이 생각, 저 생각이 아무 주책없는 생각이 지내간 생각, 현재 닥치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또는 얼토당토않는 쓸데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리고 시간은 지루하고 몸은 뒤틀리고 애를 먹게 되는데 그러한 경지가 오더라도 그것이 나쁜 경지가 아니여.

 

짜증을 내지 말고 조용히 일어서서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 가지고는 정신이 맑아지면 또 앉아서 하고. 하다가 또 몸이 뒤틀리고 혼침(昏沈)이 졸음이 와 가지고 영 맑은 정신이 안 나면은 다시 또 살모시 일어나 가지고 나가서 왔다갔다 정신을 좀 채려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또 하고 해서 그 고비를 넘기면은 또 한결 수월하게 또 잘되는 것이니, '잘된다'고 해서 또 좋아하지 말고 기쁜 마음을 내지 말고, 여법(如法)하게 화두만 들고 나가면은,

그렇게 해서 잘될 때도 있다가, 또 잘 안될 때도 있다가 하는 그런 많은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면서도 한결같이 퇴전하지 말고 번뇌심을 내지 말고, 여법히 화두를 들고 나가면은 반드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말이여.

 

확철대오하게 되면 반드시 선각자(先覺者)를 찾아서 점검을 받아야지,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 해 가지고는 선지식을 찾지 아니하면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라」 제호(醍醐)라고 하는 것은 우유로 만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데, 그 맛있는 음식이 변해 가지고 독약이 되는 격이 되아.

그 애써서 얻은 그 깨달음이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고 그것으로써 스스로 자족(自足)을 해 가지고 살림을 해 가면은 그 좋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독약이 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깨닫기 전에도 선지식을 의지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참 옳게 닦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해제(解制) 때까지 한 보름 남었는데 보름 동안, 정초(正初)가 되어서 좀 어수선한 점도 있겠지마는, 어수선하거나 말거나 언제든지 우리는 처음보다도 중간, 중간보다도 끝으로 가면서 공부가 알뜰하게 되어져야, 알뜰하게 공부를 지어가야 그 사람은 참으로 발심한 사람이고, 옳은 사람이여.

처음에는 근사하니 아주 발심한 것처럼 하다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그 신심(信心)이 식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그런 것을 용두사미(龍頭蛇尾)라 그러는데, 용두사미로 된 사람은 백사(百事)가 불성(不成)이여.

 

보통 납월팔일(臘月八日)이 지내면은 해제만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수가 있는데, 우리 대중은 해제가 가까워질수록에 더욱 채찍을 가하면서 알뜰히 정진을 해 가지고 그렇게 참 용두사미가 아니도록 끝으로 갈수록 점점 공부가 충실하도록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20분30초~39분30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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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육단심(肉團心) : [범어] Hrdaya. 흘리다야(紇利陀耶)는 번역해 육단심(肉團心)이며 약칭이 육심(肉心)이다. 4심(四心)의 하나. 사람 육신의 오장(五臟) 중의 심장(心臟)이다. 그 형태가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이루어졌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참선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하복부(下腹部) 단전(丹田)에다가 그 거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 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 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 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 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 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 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 시원한 물 기운은 위에로 올라가고, 더운 불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게 하는 것.

물이라 하는 것은 원래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리고, 불은 밑에서 위로 타오르는 것이 그 원래 가진 성질이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배꼽 밑에 단전에다가 집중을 함으로써 우리의 불기운은 밑으로 내려가서 아랫배가 뜨뜻해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머리가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이뭣고? ;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94-95 참조.(가로판 p99~100)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바우다 ; ‘감당하다(堪當--, 능히 견디어 내다) 혹은 피하다, 이겨 내다’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주책없다 ; (언행이) 일정한 줏대나 요량이 없이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실없는 데가 있다.

*얼토당토않다 ; ‘얼토당토아니하다(전혀 관계가 없다)’의 준말.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가로판 p78)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醍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 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오후공부 ; 오후보림(悟後保任).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용화선원刊)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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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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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