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칠석)2021. 2. 24. 15:35

§((084)) 칠석날 의의, 모든 소원성취 / 용화사 모든 법회의 목적은 업장소멸하고, 참나의 주인공을 깨달라 영원한 생사해탈 / 참선을 함으로 해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생사윤회를 끊어야 / 법(法)을 들었걸랑 일분일초를 아껴서 열심히 수행해야 / 죄의 종자(種子)가 따로 있어서 죄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우리의 마음자리로부터 일어나는 파도.

(게송)전빙시수수성빙~ /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세계에 모든 것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 /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

생사심(生死心), 번뇌망상심 속에서 나를 찾아야 됩니다. 그것 보는 방법이 바로 '이뭣고?' / '이뭣고?' 이 글자 석 자가 무량겁 생사(生死)로부터 해탈(解脫)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해탈길 / 점철성금(點鐵成金). 우리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가장 최상승(最上乘) 불법(佛法)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하고자 하면 참나 찾는 '이뭣고?'를 해야 / 부처님이나, 우리나, 어떠한 죄 많은 중생이라도 그 근본 마음자리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이 빛이 환희 밝게 나고 있다.
지옥(地獄)에 있는 모든 중생이 바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입니다. 7월 15일 백중날은 지옥에 문이 잠시 동안 열렸다가 닫히는 날 /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화두 들기를 머리에 불붙었을 때 후닥닥닥 머리를 끄듯이. 여구두연(如救頭燃).

**송담스님(No.084)—1978(무오)년 칠석 법회(78.08.10) (법회칠석)

 

(1/3) 약 15분.

 

(2/3) 약 18분.

 

(3/3) 약 11분.


(1/3)----------------

오늘은 무오년(戊午年) 7월 7일, 칠석(七夕)날입니다. 고래(古來)로 칠석날에는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서로 만나는 날이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한테 묻기를, "칠석 행사는 불교와 관계가 없는 날이 아닙니까?" 그렇게 묻는 분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서 절에서 칠석(七夕)날에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고 칠석에 모다 불공(佛供)을 드리고 그래 왔는가? 그것은 확실히 알 수가 없지마는, 오래전부터서 우리 불교(佛敎)에서 절에다가 칠성(七星)님, 치성광여래불(熾盛光如來佛), 칠성님 모시고, 특히 일반 그 신앙이 칠성님께 공(功)을 들이면은 수명장수(壽命長壽)하고 모다 그렇다고 해서 참 칠성(七星)에 대한 신앙이 돈독(敦篤)했습니다.

그 칠성에 대한 신심(信心)이 바로 이 칠월 칠석날, 유독 칠성불공(七星佛供)을 많이 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 그 살아 있는 사람의 수명장수를 위해서 지금 칠성법회(七星法會)를 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칠석(七夕)날은 어떠한 의의(意義)가 있느냐?
정월(正月)에 그 한 해 동안 무장무애(無障無礙)해서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정월에 신수기도를 열고, 그리고 난 다음에 2월 3월 4월 5월 6월까지 6개월이 지나고, 그리고서 7월부터서 섣달까지 앞으로 또 6개월이 남았습니다.
반년(半年)이 지내갔으니까 다시 남은 반년을 무장무애(無障無礙)하게 우리가 마음먹은 멀고 가까운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렇게 칠석날 각 사원(寺院)에서 모여서 법회(法會)를 열고 동참공양(同參供養)을 올리고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에 천도(薦度)를 올리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이 깊은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절에서는 어떠한 의미에서 했건 간에, 우리 법보선원에서는 그러한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의미를 부정하지 아니하면서 우리 법보선원 나름대로 깊은 의의(意義)를 거기에다 부여하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지나간 모든 우리의 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하고 앞으로 새로 악업(惡業)을 짓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정월(正月)이나 또는 초파일(初八日)이나 칠석(七夕)이나 백중이나 어떠한 날짜에 열리는 행사건 간에 그 날짜의 명목은 다를망정 그 법회(法會)의 목적은 언제나 한 가지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내간 그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우리의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하고, 나아가서 앞날에 있어서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한 가운데 나 자성(自性), 참나의 주인공(主人公)을 깨달라서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 있는가. 오직 그 목적 하나가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祖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앞으로도 몇억만 겁을 육도(六道)를 윤회하면서 생사고통(生死苦痛) 속에서 흘러갈 것인가.
그 문제를 해결 짓기 위해서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조사선(祖師禪) 활구법문(活句法門)을 자주자주 들어야 하고, 그런 법회를 열기 위해서는 법당(法堂)을 넓혀야겠고, 법당을 넓히는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에 전라북도 남원 대복사(大福寺) 중창(重創)에 대한 유래(由來)에 설화를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정말 우리는 과거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우리가 지은 그 업(業)의 원인으로 인해서 이렇게 여기서 죽어서 저가 태어나고, 저기서 죽어서 여기 태어나기를 몇천만 번을 거듭하면서 천당(天堂)에 올라갔다, 사람이 되었다, 지옥(地獄)으로 떨어졌다, 축생(畜生)이 되었다, 귀신(鬼神)이 되었다, 수라(修羅)가 되었다, 이렇게 육도(六道)를 돌고 돌면서 금생(今生)에 다행히 인도(人道)에 태어나 가지고 법보선원 이 법당(法堂)에 모여서 오늘 이 같은 자리에, 같은 시간에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모인 그 원인이 아무 까닭 없이 우연히 이렇게 만나지는 것이 아니라, 꼭 이 자리에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원인을 우리 스스로가 심어 놓아 가지고 그 종자(種子)로부터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결과를 우리는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단 일분일초 동안도 아무 생각 없이 고냥 고대로 있기가 어렵습니다.
무슨 생각이던지 일어나면 그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또 그 생각이 꺼지면 꺼지자마자 또 딴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이 일어났다 또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없어지고, 없어지면 또 생겨나고, 이래서 생각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 생각이 바로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 행동으로 인해서 업(業)을 짓고, 업을 지음으로 해서 또 다음 업을 또 맞이하게 되게,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참선법(參禪法)을 통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 해서 그 생사심(生死心),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지 아니한 이상은 우리는 그러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앞으로 한량없는 세월 동안 또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남원 읍내 대복이와 같이, 관리(官吏)로서 그러한 착취(搾取)를 하고, 대복이의 증조, 대복이의 부친, 대대(代代)로 내려가면서 못된 짓을 하게 되면 구렁이 되기 십상팔구(十常八九)입니다. 구랭이가 안 되면은 지옥(地獄)에 갈 것이고, 지옥에 안 가면은 소나 말이 되어 가지고 그 빚을 갚아야 되는 것이여.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罪)를 갚으려고 든다면 과거로부터 금생에까지 온 세월, 몇백만 배의 세월을 거쳐도 갚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아무리 갚는다 해도 갚으면서 또 업을 짓게 되기 때문에 생사윤회는 끊일 날이 없는 것이여.

다행히 우리는 삼천년 전에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같이 버리시고 설산(雪山)에 들어가셔서 12년간의 고행(苦行) 끝에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부처님의 은혜로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 생사윤회로부터 해탈(解脫)할 수 있는 위없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활구참선법에 의해서만이 그 무량겁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하면서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윤회(生死輪廻)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도 그러한 법(法)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도량(道場)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그러한 도량에 발을 들여놓았건만, 바른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용화선원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아니하고 여기서 먹고 자고 똥을 싸면서 죽을 때까지 있어 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바른 약(藥)을 알고, 바른 약을 얻었으면 그 약을 여법(如法)히 잘 복용(服用)을 함으로써 병(病)을 낫을 수가 있는 것이지, 약을 알았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그 약을 구해서 호주머니에 넣어 놓고 있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이 아닌 것처럼, 법문(法門)을 들었다고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용화사에서 기거를 하고 있다고 해서 또 공부가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法)을 들었걸랑 한시 일분일초를 아껴서 잠시도 끊일 사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생각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일어날 그 찰나(刹那)를 바로 되잡아 돌려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회광반조(回光返照)를 할 때에 우리의 한량없는 업장(業障)은 봄눈 녹듯이 그 자리에서 녹아지는 것입니다.

원래 죄(罪)라고 하는 것은 뿌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죄의 종자(種子)가 따로 있어서 죄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우리의 마음자리로부터 일어나는 파도이기 때문에 그 마음자리 그것만을 올바르게 찾아서 깨달을 때에, 올바르게 찾고 있을 때, 죄는 이미 우리로부터 녹아지는 것이고 새로운 죄도 우리에게는 발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처음~15분2초)




(2/3)----------------

전빙시수수성빙(全氷是水水成氷)이요  고경불마원유광(古鏡不磨原有光)이로다
나무~아미타불~
풍자동혜진자기(風自動兮塵自起)라  본래면목노당당(本來面目露堂堂)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얼음이 온전히 이 물이여. 그리고 물이 곧 얼음이 된 것이다(全氷是水水成氷).
얼음을 내놓고 물을 찾아서는 아니 됩니다. 얼음이 바로 그것이 물인 것이고, 그 물이 영하로 내려가면 얼음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에게는 생사(生死)가 있습니다.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잠시 머물렀다가, 또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생주이멸(生住異滅)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의 공덕으로 태어나 가지고, 얼마 동안 자라다가, 자라는 것이 바로 늙어가는 과정이죠. 이 세상에 태어나 가지고 늙어서, 그래가지고 병들어 가지고 죽어갑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몸뚱이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世界)에는, 우리 몸밖에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무슨 물건이던지 이루어졌다가, 얼마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해 가다가, 그 모냥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마침내는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이 우리의 생각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고, 우리의 몸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 모든 것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 허망한 것이다.
일체(一切)의 유위법(有爲法)은 꿈[夢]과 같고, 꼭두각시[幻]와 같고, 물거품[泡]과 같고, 그림자[影]와 같고, 풀끝에 이슬[露]과 같고, 또 번갯불[電]과 같다. 이렇게 무상하고 허망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허망하지 아니하고 참되고 영원(永遠)한 것이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영원히 생사가 없는 참 이치'를 우리는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이 허망한 모든 것들을 여의고, 그밖에 참된 것을 구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영원히 참된 것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번뇌망상심(煩惱妄想心) 속에서 나를 찾아야 됩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보리열반(菩提涅槃)을 찾아야 합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 하는 이 삼라만상 그 허망한 것들 속에서, 그 놈을 버리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참된 것을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 보는 방법이 바로 '이 뭣고?'입니다. '이 뭣고?'

대관절 눈을 통해서 볼 줄 아는 놈, 귀를 가지고 들을 줄 아는 놈, 코로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놈, 입으로 말하고 혀로 맛볼 줄 아는, '아! 이것은 쓰다 달다', '더웁다 차다' 느낄 줄 아는 이 몸뚱이.
여기에 앉아서도 서울도 순식간에 왔다갔다하고, 10년 20년 전 옛날 어릴 적에도 순식간에 왔다갔다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대관절 무엇이냐?'
아무리 그놈을 볼려고 해도 볼 수가 없고,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건만, 분명히 들을 줄 알고, 분명히 볼 줄 알고, 성내고 울고 웃을 줄 아는 이놈!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뭣고?' 이 글자 석 자가 무량겁 생사(生死)로부터 해탈(解脫)하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해탈길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이 칠석 법요식(法要式)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되겠습니다.

얼음이 곧 이것이 물이여. 번뇌(煩惱) 망상(妄想)—성내고 슬퍼하고 웃고, 오고 가고 이것이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번뇌 망상이요, 생사윤회(生死輪廻)의 모습이요,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겠지마는, 그놈을 여의고 '생사 없는 도리'가 없는 것이올시다. 그 속에서 바로 '이뭣고?'
성낼 때 그 성내는 놈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썽이 폭! 한 생각이 속에서 뒤집어질 때, 뒤집어지려고 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 이 속 뒤집어지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썽내는 놈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것이 바로 점철성금(點鐵成金)입니다.

무쇠 덩어리를 딱! 갖다가 '금(金)이다!' 하고 탁! 점(點)을 치면 무쇠 덩어리가 찰나간에 황금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점철성금(點鐵成金)!
번뇌 망상 '한 생각' 폭! 일어나는 그 진심(瞋心)이 참선(參禪)을 안 하는 사람에게는 금방 독사(毒蛇)의 몸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서운 원인이지마는, 참선을 하는 사람은 폭! 썽이 날 때 바로 '이 뭣고?' 이것이 바로 독사의 몸을 받기 전에 깨달음에 한 걸음 다가서는 도리(道理)올시다.

불법(佛法)은 우리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데에 가장 최상승(最上乘) 불법(佛法)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칠석날에 공(功)을 들이고 '아무개 보체(保體), 아무개 보체' 축원(祝願)을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축원을 해 봤자—물론 그러한 유루(有漏)의, 유상(有相)의 공양(供養)도 복(福)이 아닌 것은 아니나—상(相)이 있는 공양, 유루복(有漏福)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을, 아무리 힘센 사람이 화살을 공중에다 대서 쏘아 올렸다 하더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가 힘이 떨어지면 다시 땅에 떨어지듯이, 우리가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머무른 바 있는 마음으로 지은 복은 언젠가는 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공덕(功德)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상(相)이 있는 것을 여의고 무상(無相)을 찾지 못한다'고 한 말씀이 생사심(生死心)을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몸이 있는 동안에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고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하고,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인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에 거기에만 꽉 착(着)해 가지고 그것이 다 인 줄 알지 말고, 정말 그 가운데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해야 그러한 모냥 있는 것들도 바로 참 진리에 계합(契合)하는 불사(佛事)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한다고 해서 복(福) 짓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공부한 사람일수록에 더욱 상(相)이 없는 깨끗한, 영원히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복을 지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참선을 열심히 해야—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남편이 수명장수하고, 사업이 잘되기를 바래고, 아들과 딸이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짝을 만나서 행복(幸福)하게 살기를 바래고,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 돌아가신 어른들의 명복(冥福)을 비는 그러한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해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도 상당수 계실 줄 생각합니다. 다 좋은 생각이고 참 훌륭한 생각입니다.

참으로 돌아가신 선망부모, 돌아가신 남편, 비명(非命)에 간 아들과 딸의 명복(冥福)을 빌고, 살아계신 부모와 아들과 딸, 남편, 온 가족이 정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물질적인 공양에만 머무르시지 말고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내가 나를 찾는 참선법(參禪法)을 잘 귀담아들으시고 마음에 명심(銘心)을 하셔서 댁에 가시는 걸음걸음이, 차 속에서, 댁에 가셔서 살림을 하면서,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신경질이 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언짢은 일을 당하거나,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이 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참나를 찾는 데에 돌리면서 살아가신다면, 여러분의 소원은 정말 눈앞에서 너무나도 신기하게도 성취되실 것을 나는 보장합니다.

모든 업(業)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업을 소멸(消滅)하는 것은 그 업의 근원(根源)인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흘러간 물을 깨끗이 하려면 그 위에 가서 꾸정커리지를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밑에 아래에 물을 맑게 할려고 애를 써봤자 저 상류(上流)에서 흙탕물을 계속 일구고 있다면 아래에 물이 맑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랫물을 맑게 하기를 바랜다면 저 위에서, 근원에서 흙탕물 일구는 일을 그만두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자 하면, 우리의 소원(所願)을 성취하고자 하면 우리의 업(業)을 소멸(消滅)해야 하고, 우리의 업을 소멸하고자 할진댄 바로 그 업(業)의 근원(根源)인 나의 마음, 나의 마음자리로 부터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흙탕물을 바로 되돌려서 참나 찾는 최상법 '이뭣고?'로 돌릴 때에 구정물은 순식간에 가라앉고 말간 물이 흘러내릴 것입니다.

옛 거울은 닦지 아니해도 원래로 빛이 있는 것이여(古鏡不磨原有光).
우리의 마음자리는 언제 생겨난 때가 없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는 그 본래(本來)의 우리 마음자리는 부처님이나, 우리나, 어떠한 죄 많은 중생이라도 그 근본 마음자리에 있어서는 조끔도 차등(差等)이 없이 빛이 환희 밝게 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거기에 먼지가 끼여서 그 빛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을 뿐, 그렇게 빛이 나고 영롱하고 밝고 깨끗한 거울 위에 끼여 있는 띠끌만 닦아 버린다면은 새로 빛을 내게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빛이 날 것입니다.

바람이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띠끌이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여(風自動兮塵自起).
그렇게 해서 거울 위에 있는 때[塵]만 '이 뭣고?'를 통해서 닦고 또 닦아 가고 열심히 닦는다면, 우리의 자성(自性), 우리의 참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눈 한번 감았다 뜨는 사이에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이 날 것입니다(本來面目露堂堂). (15분3초~32분55초)




(3/3)----------------

오늘 날씨가 삼복중(三伏中)에 있습니다. 엊그제 입추(立秋)가 지내가서 아침저녁으로는 조끔 산들바람이 불고 있고, 또 오늘은 다행히 제법 가을 날씨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고 있어서 대단히 우리 법회 열리고 있는 이 법당에서 이렇게 참 다행일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여름 석 달 안거(安居)에 해제(解制)를 맞이하게 되고, 백일 동안 거행하던 백일기도도 7월 15일 날, 7월 15일에 그 백일기도 회향(回向)이 동시에 열리게 되고.

또 7월 15일 그날은 백종(百種)이라 해서 우리의 무량겁 과거에 선망부모(先亡父母)들이 불행하게도 지옥에 계신 분—지옥(地獄)에 계신 모든 분들이 우리의 선망부모 아닌 분이 없는 것입니다.
무량겁을 두고 여기서 나서 저기에 죽고, 저기서 나서 여기서 죽는 동안에 수없는 생사를 되풀이하는 동안에 소 뱃속에도 들어가고, 말 뱃속에도 들어가고, 뱀 뱃속에도 들어가고, 개 뱃속에도 들어가고, 사람 뱃속에도 들어가고, 천상(天上) · 인간(人間) ·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 · 수라(修羅), 육도(六道)를 돌아치면서 어느 것 하나라도 그 뱃속에 들어가 보지 아니한 그러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地獄)에 있는 모든 중생(衆生)이 바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입니다.

7월 15일 백중날은 지옥에 문이 잠시 동안 열렸다가 닫히는 날입니다. 그날 지옥문(地獄門)이 열리자마자 그 지옥 속에서, 화탕지옥 · 빙설지옥 · 차압지옥...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는 그 참혹한 지옥 속에서 고(苦)를 받던 우리의 선망부모가, 지옥문이 열리자마자 팔당 댐에 수문(水門)을 열어 놓았을 때 그 무서운 폭류(暴流)가 쏟아져 나오듯이 지옥에 선망부모들이 앞을 다투어 나올 것입니다.

그 선망부모가 나와서 어디로 가냐?
방방곡곡(坊坊曲曲)에 부처님 모신 도량(道場)에서 백종날은 선망부모에 천도재(薦度齋)를 올립니다. 인도에서, 중국에서, 우리나라에서, 일본에서.
특히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는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수천 위(位)의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를 모셔놨습니다.
여기서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說)하고, 법회(法會)가 열릴 때마다 천도(薦度)를 올리고, 특히 백중날은 융숭하게 천도재(薦度齋)를 올린 만큼 아마 지옥문이 열리자마자 용화사 법보선원을 어떻게 알던지 알아 가지고 거의 그 많은 선망부모가 우리 용화사에 다 몰려오실 런지도 모릅니다.

왔다가 거기 법문(法門)도 잘 들으실 것이고, 또 재단(齋壇)에 올린 음식도 잘 공양(供養)을 하시겠지마는 첫째, 내 딸이 안 왔나, 내 아내가 안 왔나, 내 손녀가 안 왔나, 그것부텀 찾아보실 것입니다.
왔다가, 와야 할 딸을 못 만나고 가시거나, 아들이나 손녀나 며느리를 만나지 못하고 가실 때에 얼마나 허통하실 것을 생각하신다면은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백중날에는 정성스럽게 선망부모를 위해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목욕재계(沐浴齋戒)하시고 그날 법회에 빠짐없이 참여(參與)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구명소일모공성(求名少日慕孔聖)타가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로다
나무~아미타불~

명예를 구하고, '좀 더 잘살아 보겠다' 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겠다' 그러한 명예와 권리와 재산, 그러한 것을 구하던 젊은 때에는 공자님을 숭배하다가,
파사노년친석가(怕死老年親釋迦)라, 죽음이 두려운 늙으막에는,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잡혀서 얼마 안 가서 죽게 된 이 늙으막에사 겨우 부처님을 알게 되었다.


두상광음전두비(頭上光陰轉頭飛)하니  절심거화구두연(切心擧話救頭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젊었을 때에는 돈 벌고 재산 모이고, 명예와 권리와 좀 더 잘살아보겠다고 허둥대다가 늙으막에사 겨우 부처님 법을 알고 말았는데, 머리 위에 광음(光陰)은, 세월은 화살처럼 날아가 버린다 그 말이여.
퍼뜩허면 하루해가 저물고,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하루해가 저물고, 이럭저럭 그럭저럭하다가 하루해가 저물고, 썽 한 번 냈다 웃었다 하다가 하루해가 저물고.

그러니 간절한 마음으로 '이 뭣고?' 화두(話頭)를 들고 또 들고 하기를 수염에, 불붙은 수염에 불 끄듯 해라. 수염이 없는 보살님네들은 머리털에 불이 붙었을 때에 무슨 아들 걱정, 남편 걱정, 무슨 다른 것 곗돈 걱정, 무슨 가게 걱정할 겨를이 있어요?
머리에 불붙었을 때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그저 손이 머리로 올라가 가지고 후닥닥닥 머리를 끄듯이, 화두(話頭)를 들고 들고 또 들고 해서, 흘러가는 세월 무상(無常)한 것을 한탄(恨歎)하지 말고, 흘러가는 그 세월 그 세월 마디마디가 나 찾는 공부가 되도록 그렇게 지혜스럽게 시간을 관리를 한다면, 지혜스럽게 나의 생각을 잘 돌려서 관리를 한다면, 시간 흘러간 것을 두려워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부처님께 공양(供養)을 올리고 또 축원(祝願)을 하고, 그리고 선망부모의 영가에 천도재(薦度齋)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장성불궁 보살의 친정아버지, 장양석 영가에 사십구재(四十九齋)도 아울러서 봉행(奉行)을 하게 되겄습니다.
우리 모두 여러 법보제자는 돌아가신 장양석 거사가 장성불궁 한 사람에 아버지에 끊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바로 무량겁 윤회(輪廻)하는 동안에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이 우리의 선망부모라고 한다면, 살아계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모든 사람도 우리의 선망부모 아닌 사람이 없는 것이고, 오늘 사십구재(四十九齋)를 맞이한 장양석 영가도 우리와 결단코 멀지 아니한 지극히 가까운 인연(因緣)에 의해서 맺어졌기 때문에 우리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그 사십구재 우리가 같이 참석을 해서 명복(冥福)을 빌게 되는 것입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한 생각 간절한 마음으로 명복을 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32분59초~44분2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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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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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