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정진(요중선)2019. 3. 29. 07:05

§(세등41) 공양하는 법, 먹는 시간만 한 30분 천천히 먹어라 / 삼요를 갖추어 정진하라 / (게송)종전공주부지명~ /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해 나가면 그것이 바로 용맹정진, 백일기도.

 

속가에서 '머슴, 일꾼을 부리는 주인이 일꾼을 잡을라면은 잘 먹이는 것으로써 일꾼을 휘어잡고, 머슴은 일을 잘하는 것으로써 주인을 휘어잡으라' 이런 속담이 있는데, 우리 수좌는 정진 잘하는 것으로써 나의 힘을 과시해야 한다.

 

아까 산승(山僧)이 말씀한 대로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밥 먹을 때나, 일할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해 나가면 그것이 바로 가행정진(加行精進)이요, 용맹정진(勇猛精進)이요, 그것이 바로 백일기도입니다. 그렇게 해 나가면 승속(僧俗)이 차별이 없는 것이며, 선방과 속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41)—임술년 동안거 결제 법어(82.10.17) (세등41)

 

약 20분.

 

선방(禪房)에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하면, 선방이나 강원이나 발우공양만 하면 쫓기는 사람처럼 막 국에다 반찬에다 밥에다가서 비벼 가지고 그냥, 당장 난리라도 몰아온 것처럼 그냥 후닥닥 긁어 넣는데, 그래 가지고 먹고 나면 가슴이 쓰리고, 트림이 나오고, 소화가 안되고.

 

금년에 반야선원이나 이 세등선원 대중은 특별히 주의할 것이 공양을 잘 씹어서, 한 숟가락을 입에다 떠 넣으면, 밥만 떠 넣고 반찬은 아직은 넣지 아니한 채 50번을 씹어.

50번을 씹은 다음에 그때사 반찬을 집어 넣고 한 20번을 씹어. 그래 가지고 최소한도로 7~80번을 씹어 가지고 따악 삼키라 그말이여. 그렇게 삼키고 또 국을 한 숟갈 떠먹어.

 

또 맨밥을 떠 넣고 한 50번을 씹다가, 완전히 입안에서 밥이 미음(米飮)이 되도록 씹어 가지고 거기다 또 반찬을 또 집어 넣고 한 2~30번을 씹어. 그리고는 그놈을 삼키고 또 국 한 번을 떠먹어.

이렇게 해서 최소한도로 30분간에 걸쳐서 공양을 하라. 먹는 시간만 한 30분을 잡으라.

 

밥 먹는 것도 정진인데, 빨리 밥 먹고 참선 할라고?

그것은 벌써 정신이 틀려 버린 거여. 밥 먹은 것은 정진이 아닌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빨리 밥을 먹고 소화가 안되고, 그런데다 또 무슨 간식을 하고 무슨... 일평생을 끌끌.

 

그 사람은 정진을 바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여. 선방을 몇십 년을 당겨도 그 사람은 벌써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밥도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밥이 그것이 이 몸뚱이, 법당을 잘 간수하는 그 불사(佛事)인데,

첫째, 그 법당을 잘 간수해야 부처님을 잘 모시게 되는 것인데, 법당 하나를 잘 간수를 못한 사람이 무슨 부처님을 옳게 모실 수가 있겠느냐.

 

입승(立繩) 스님이 단단히 알아서 죽비(竹篦)를 천천히 치고.

첫째, 어간(御間)에 앉은 구참 스님들이 느긋하게 공양을 들어야 돼. 그래야 저 탁자(卓子) 밑에서 그 진지를 하는 대중, 진지하고 들어가서 밥을 먹고 또 숭늉을 돌려야 하고 그러니 시간이 없다 그말이여.

 

어간에서 일찌감치 먹고 쳐다보고 있으니 밥을 빨리 먹을 수밖에 없고, 그 빨리 먹어놓으니 소화가 안되고, 그리고 또 넉넉히 먹을 수도 없고 그러니 첫째, 어간에서 천천히 먹어줘야 그래야 그것이 자비고.

 

우리가 무슨 영양을 취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밥이라도 잘 소화를 시켜야 하거든. 또 넉넉히 먹어줘야 하고. 그리고 간식을 안 하는 것이 좋아요.

밥을 넉넉히 잘 먹고, 그놈을 흡족하게 완전히 흡수를 해서 뱃속이 편안해야 화두가 잘 들리지, 소화가 안되면은 영 호흡도 잘 안되고 화두도 잘 안 들립니다. 소화가 안되면은 또 영양을 흡수를 못하기 때문에 건강도 좋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한 근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일이 전국 남녀를 막론하고 선방에서 제대로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30여 년을 겪어봐서 너무나도 이 평범한 일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 잘못되어 가지고 선객(禪客)들의 건강이 좋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이니까 깊이 명심을 해서 이것을 실천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공양을 그렇게 50번을 씹는 동안에 무엇을 생각할거냐 그말이여. 그때 화두(話頭)를 들어 보라 그말이여. 혼침은, 누가 밥 먹다 조는 사람은 없거든. 그러니 혼침(昏沈)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그 딱딱딱딱 씹으면서 화두를 떠억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화두를 그놈을 관조를 하면서 공양을 들어 보라 말이여. 어떻게 신심이 저절로 나거든.

 

밥을 먹고 나면은 그 밥 먹는 시간이 정말 정진이 옳게 되어 가는 시간이여. 그 시간이 정진이 잘되고, 그때 먹은 그 밥이 소화가 잘되고 흡수가 잘되고 그래.

 

밥 먹을 때 제대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또 세수할 때도 해야 하거든. 여러분이 세수할 때 화두를 들어 봐. 양치질 할 때도 화두가 고대로 들어 있고, 세수를 할 때도 고대로 들어 있고,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면서도 화두가 고대로 들어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변소에 가서 똥을 눌 때에도 화두가 터억 들어져 있고, 똥을 누고 나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오면서도 화두가 고대로 또 들어 있어야 될 것이다 그말이여.

 

잠을 잘 때 자리에 들어서도 화두가 터억 들어 있도록 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래야 잠을 자면서 꿈에서도 화두가 들어질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설사 꿈에는 안 들어지더라도, 마지막 잠이 딱 들 때까지도 화두가 떠억 들어 있는 상태에서 잠이 들면, 그 이튿날 아침에 딱 눈을 떴을 때 화두를 새로 들지 안 해도 엊저녁에 들었던 그 화두가 저절로 딱 들어 있어야 된다 그말이여.

 

이렇게 석 달을 지내 봐요. 정말 수행이란 것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할 것이고.

 

누구를 위한 참선이여? 누구한테 자랑을 하기 위해서 참선을 한 거여?

 

애들은, 유치원에 댕기는 애는 짜증이 나면, '나, 밥 안 먹는다'고. 밥을 안 먹으면 엄마가 제일 걱정을 하거든. 그러니까 엄마 애 태우고 엄마를 이기기 위해서 뭔 데모할 일이 있으면, '나, 밥 안 먹는다'고 떼를 쓰거든.

그건 어릴 때는 그것이 통해서 밥을 안 먹으면 '아나, 돈 줄께 밥 먹어라' '아, 너 뭐 좋은 것 공책 사 줄께 밥 먹어라' 이렇게 달래겠지만, 우리 수좌(首座)는 정진 안 한다고 떼장 놔봤자 저만 불쌍하고 생사윤회 하지, 별 수가 없어.

 

어린아이는 우는 것이 자기 힘을 과시하고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여자는 남편 앞에 골을 부리는 것이 자기 어떤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방법이여. 돈을 울궈낼라면 골낸 척 해 가지고 신경질을 내면 남편이 돈을 줘. 이건 경전에 있는 말이여.

 

『치문(緇門)』을 보니까 '치문사기(緇門私記)'에 그런 말이 쓰여 있더라 그말이여.

어린애는 우는 것으로써 힘을 과시하고, 여자는 성내는 것으로써 남편 앞에 힘을 과시하고, 임금은 교만을 부리는 것으로써 신하들 백성들 앞에 힘을 과시하고, 수행인은 정진을 잘하는 것으로써 힘을 과시해라 그랬단 말이여.

 

속가에서 '머슴, 일꾼을 부리는 주인이 일꾼을 잡을라면은 잘 먹이는 것으로써 일꾼을 휘어잡고, 머슴은 일을 잘하는 것으로써 주인을 휘어잡으라' 이런 속담이 있는데, 우리 수좌는 정진 잘하는 것으로써 나의 힘을 과시해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진을 잘하는 거여?

잠을 안 자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는 것이냐? 묵언을 하고 말을 안 하는 것이 정진을 잘하는 것이냐?

 

물론 묵언을 하면서 정진을 애를 쓰는 것도 정진 잘하는 하나 방법이 될 것이고.

또 단식을 한다든지 일종(一種)을 한다든지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한다든지 그렇게라도 해서 내가 공부에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되게 하자. 이러한 마음으로 하는 것도 그것도 정진의 한 방편(方便)이 될 것이고.

 

'내가 대도를 성취하기 전에는 장좌불와를 해서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리라' 또는 '내가 세 시간 이상은 잠을 안 자고 정진하리라' 이러한 것도 또한 수행을 애써서 하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묵언을 해서 내가 견성성불 하기 전에는 내가 말을 아니하리라' 또는 '내가 한 소식 하기 전에는 내가 말을 아니하리라' 이렇게 해서 묵언을 하는 것도 발심한 사람의 수행하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말 안 한 것이 정진에 전부가 아닐 것이요,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한 것이 정진에 전부가 아닐 것이요, 밥을 안 먹는 것이 정진에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말 안 한 것이 정진에 제일가는 수단이라면 어릴 때부터 벙어리는 뱃속에서부터 도통(道通)해 나와야 할 것이고, 장좌불와 한 것만이 정진에 전부라면은 앉은뱅이는 참선 안 하고도 도통을 할 것이고, 밥을 안 먹는 것이 정진에 전부라면은 목구녕에 병이 있거나 위장병이 걸려서 밥을 못 먹는 사람은 공부가 아주 잘될 것 같지만 그렇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한 방편 하나는 될지라도 그것만이 정진에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말이여.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단(大疑團)이 독로해서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화두가 저절로 들려져.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성성(惺惺)한 가운데 적적(寂寂)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성성해. 일념만년(一念萬年) 회광반조(廻光返照) 하는 이렇게 정진이 되어 가야 해.

 

그렇다면은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누워서도 정진이요, 밥을 먹을 때도 정진이요.

하루 세 때 먹어. 잠도 5시간 내지 6시간 자. 자되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자라 그말이여. 대신심과 대의단과 대분심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잔다면 잠도 정진이요. 삼시 세 때를 먹되 먹는 것도 정진이요.

 

아까 그대로 먹어봐. 그것이 그대로 정진이여.

꼭 두 끼만 먹을라고 할 것이 없어. 아까 내가 말한 대로 밥을 먹으면 세끼를 먹으되 소화가 잘돼. 그리고 속도 편안하고. 먹은 밥이 그대로 흡수가 잘돼.

 

그러니 한 숟갈 떠먹는 그 자체가 정진이요, 자리에 누워서도 고대로 정진이요,

구태여 자리에 눕자마자 잘라고 할 것이 없거든. 잠이 올 때까지는 떠억 화두를 들어.

자리에 누워서도 10분 20분 30분 1시간 내에 잠이 안 들어도 상관이 없는 거여. 안 들면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면서 누웠어. 그러다 언제 든 줄 모르게 들으면 그때부터 잠을 자겠지.

 

잠을 자되 아침에 눈을 딱 뜨면, 내가 한 십분도 안 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은 한 너댓 시간이 잘 자졌다 그말이여. 하! 그런데 화두는 엊저녁에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거든. 그렇게 정신이 맑고 몸이 가벼워.

 

이렇게 정진을 해 가면 구태여 옆구리를 땅에 안 댈 것도 없다 그말이여. 구태여 밥을 억지로 안 먹을라고 할 것도 없다 말이여.

이렇게 정진을 하면 몸도 건강하고 정진도 잘되고 어느 사람이 도(道)를 못 통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이번 석 달 동안을 그렇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종전공주부지명(從前共住不知名)이요  금일상봉차비이(今日相逢且非爾)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연만수이물침(月娟萬水而勿沈)이요  풍랭육창이자계(風冷六窓而自啓)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전공주부지명(從前共住不知名)이요. 앞을 좇아 이전부터 함께 살아왔건만 그 이름을 아지 못하고,

금일상봉차비이(今日相逢且非爾)로구나. 오늘 서로 만났으되 또한 그가 아니더라 그말이여.

 

무량겁 이전부터서 언제나 같이 살아왔어. 단 일분일초도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건마는 그 이름을 알 수가 없어. 오늘 이 자리에서 방금 이 찰나에 서로 상봉을 했건만 그 사람이 아니더라 이 말이여.

 

달은 연연히 일만 물에 비추건만, 그 달이 물에 빠지지를 아니해.

바람은 냉랭해서 육창(六窓)에 부는데, 창이 저절로 열리더라.

 

 

오늘은 삼동결제와 아울러서 백일기도가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 선방에 들어오셔서 공부는 직접 스님네와 같이 정진은 못하시지만, 여러 신남신녀께서는 각자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는 것, 일하는 그 자체가 스님네가 선방에서 죽비를 치고 정진한 거와 똑같은 것입니다.

 

아까 산승(山僧)이 말씀한 대로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밥 먹을 때나, 일할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해 나가면 그것이 바로 가행정진(加行精進)이요, 용맹정진(勇猛精進)이요, 그것이 바로 백일기도입니다.

그렇게 해 나가면 승속(僧俗)이 차별이 없는 것이며, 선방과 속가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이 백일기도에 한 분도 빠짐이 없이 모두 동참을 하셔서 여러분도 같이 이 삼동결제에 방부(房付)를 들인 것으로 그렇게 믿고 알뜰히 정진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35분5초~55분19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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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공양(鉢盂供養) ;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발우(鉢盂)라고 하여,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하는 식사’를 말한다. 발우공양을 할 때 《소심경(小心經)》이라는 경전을 외운다.

이 공양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깨달아 신과 인간의 공양 받기를 원하는 ‘하발게(下鉢偈)’, 부처님 일생의 중요한 4대 성지를 생각하는 ‘회발게(回鉢偈),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 삼륜(三輪)이 공적함을 생각하는 ‘전발게(展鉢偈)’

그리고 위로는 부처님, 성인 아래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봉반게(奉飯偈)’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하는 ‘오관게(五觀偈)’

그리고 생반게(生飯偈), 정식게(淨食偈), 삼시게(三匙偈), 절수게(絶水偈), 해탈주(解脫呪)를 하면서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벗어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며 공양하는 수행 의식이다.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어간(御間 거느릴·다스릴 어/사이 간) ; 절의 법당이나 큰방 한복판에 있는 칸.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 ; 비위에 거슬리거나 언짢은 일을 당하여 벌컥 내는 화.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치문사기(緇門私記) ; 조선 후기의 태선(太先) 스님이 『치문경훈(緇門警訓)』을 주석한 책.

사기(私記)란 경론이나 어록 또는 중요 저술 등의 깊은 뜻을 개인 견해로 풀이하여 기록한 것. 사집(私集)이라고도 한다. 사사로운 견해를 덧붙인다는 뜻이 있지만, 구절이나 대의를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놓은 주석서 혹은 참고서로서 조선 시대 이후에 많이 썼다.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①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②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③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 생각이 만년(萬年) 가도록’의 뜻으로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낸 말.

*회광반조(廻光返照) :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연연히(娟娟- 예쁘다·아름답다·맑고 밝은 모양) ; ①빛이 엷고 산뜻하며 곱게. ②아름답고 어여쁘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삼동결제(三冬結制)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결제,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