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공안)2023. 12. 8. 10:24

§(414) 무자(無字) 화두 / 불급불완(不急不緩)한 묘한 관, 의심관(疑心觀) / 무자(無字)를 드는데 두 가지, 단제(單提), 전제(全提) / 전강선사와 산승의 공부 지도 방법은, 처음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되 처음에는 수식관(數息觀)으로부터 들어가 가지고 나중에 수식관이 잘되면은 그다음에 전제(全提)로 공부를 해 나가라.

**송담스님(No.414)—1990년 4월 첫째 일요법회(용414) (화두공안)

 

약 11분.



이 화두,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이 화두를 하시는 데에 무(無) 자를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뭐, 두 주먹을 부릅쥐고 무릎 위에다가 탁!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뭐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 “지심귀명례...” 하고 엎드려 가지고는 “삼계대사 사생자부...” 떠억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 해도 다 일어나는데 안 일어나시고 엎드린 채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 “일어나라”고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 “그거 놔두라”고. “밤잠 안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좀 자게 놔두라”고.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뭐 빈정대고, 그렇지만 한 달, 두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 ‘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그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몇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해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하고 화두를 의심한 것은 대단히 좋은데, 조실 스님께서는 그 불급불완(不急不緩)한 묘한 관으로, 의심관(疑心觀)으로 해 가는 것을 모르셨어.
 어려서 워낙 발심(發心)을 철저히 해 놓고 분심(憤心)이 솟구쳐 오르니까 목숨을 바쳐서 거기에다 아주 용맹스럽게 해 나가실중만 알으셨지, 불급불완한 묘(妙)한 의관으로 해 나가는 것을 그걸 누가 선배가 있어서 그것을 일러주셨으면 되었을텐데 그걸 못하셨어.

『몽산법어(蒙山法語)』에 보면은 무자(無字)를 드는데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단제(單提), 그냥 ‘무~~’ 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무~’만을 항상 들여다보는 거여. 조주 스님이 ‘무’ 했으니까 ‘무~’만 들여다보는 거여. 숨을 들어마시다 내쉬면서 ‘무~’
‘어째서 무라 했는고’ 그런 게 아니여, 그냥 ‘무~’만 들여다보는 이것을 단제(單提)라고 그러고.

전제(全提)는 ‘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조주 스님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의심을 하는 거 이것은 전제인데, ‘무~’ 하고 단제로 하는 데에도 장단점이 있고, 전제로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하는 데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면 ‘무~’ 하는 데는 무슨 장점이 있느냐 하면,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하고 (전제로) 자꾸 하다 보면 성질이 급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너무 되게 몰아대다가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고, 생각이 끊어지질 않아. 점점 어지러운 생각, 복잡한 생각이 막 일어나거든.
그냥 ‘무~’ 하면 이 생각 저 생각 그런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아니한데 의심(疑心)이 없어.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거든.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 그랬어.

그런데 ‘무~’ 하고 무(無)만 항상 들여다보면 이 생각 저 생각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조용해지고 좋기는 좋은데, 까딱하면은 너무 조용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昏沈)에 빠질 우려가 있고 무기(無記)에 떨어지거든. 무기에 떨어지면 아무리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다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는 거여.

그러면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고 의심이 있어야 하는데,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라, 큰 의심이 있어야 크게 깨닫는다」 그랬으니 ‘처음부터서 크게 의심을 해야겠다’ 해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 아주 여기다가(미간에다) 그냥 '내 천(川)' 자를 쓰고서 막 몰아대면 영락없이 피가 넘어오고, 상기(上氣)가 되어 가지고 눈알이 튀겨져 나올려고 하고 골이 벌어질라 그러고 목이 뻗뻗해져. 이뭣고 ‘이‘ 소리만 하면 벌써 골치부터 아퍼지기 시작하는 거여.

그러니 몽산(蒙山) 스님은 처음에는 단제로 ‘무~’ ‘무~’ 하고 무만 자꾸 들어서 그래 순일(純一)해져. 순숙(純熟)해져서, 인자 순숙해진 다음에 2단계에 나아가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고 의심을 든다면, 전제로 한다면 이것이 가장 단제와 전제를 효율적으로 활용을 해서 폐단 없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수행을 할 수가 있다. 몽산어록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 하고 무(無) 자만 바라만 보도록 그렇게 하라고는 전강 조실 스님도 가르키시지를 않았고 또 산승(山僧)도 그렇게 공부를 하라고는 한 번도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처음에는 단제 전제 할 것 없이, 처음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나 반가부좌 하는 법을 잘 자세를 익히고 그다음에는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서 그 단전호흡이 잘 되도록 그렇게 익힌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 하라고 지도를 해 왔습니다.

이렇게 해 가면 몽산 스님이 염려하시는 단제와 전제의 장단점이 잘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전호흡을 잘 익히고, 단전호흡을 하되 처음에는 수식관(數息觀)으로부터 들어가 가지고 나중에 수식관이 잘되면은 그다음에 전제(全提)로 공부를 해 나가되 별 탈이 없으리라고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단제(單提)에 대한 것은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전제(全提)를 하도록 많은 설법을 하셨고, 산승도 역시 조실 스님의 뜻을 따라서 그렇게 말씀을 해 왔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처음에 전제로 공부를 하시되 너무 힘을 써 가지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병이 나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단전호흡에 대한 법문을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아마 이 자리에는 앞으로 여름 안거를 위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갈려고 하는 수좌(首座)님들이 몇 분인가 있을 줄 생각합니다. 따로 내가 만나서 화두를 일러드림사 좋지마는 그러한 시간이 없으니 이 법상(法床)에서 이렇게 말씀을 한 것을 잘 명심해서 듣고, 그렇게 해서 화두를 탄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선방에 가서 정진을 잘하기를 바래고.

또 여기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새로 오신 분이나, 오래 전부터서 이 법문을 들으시고 공부를 하신 분이나, 오늘 이 조실 스님의 법문이나 또는 산승의 말씀은 앞으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잘 명심해서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51분42초~62분1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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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저서로는 《전강대종사 법어 「언하대오(言下大悟)」》가 있다.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 · 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禮拜)하는 의식.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불급불완(不急不緩 아닐 불/급할 급/아닐 불/느릴 완) ;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조실 스님께서는 그 불급불완(不急不緩)한 묘(妙)한 관으로, 의심관(疑心觀)으로 해 가는 것을 모르셨어’ ; 묘관(妙觀). 묘한 관(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급하고 조급하게도 하지 말고 너무 늘어져 처지지도 말게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❶]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1987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음)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 말이여.


[참고 ❷]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몽산법어(蒙山法語) ; 중국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한 법어집.
[참고] 송담스님(No.299)—1986년 5월 첫째 일요법회
『몽산법어』는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데에 관한 법문(法門)만을 수록한 법어집입니다. 여러분이 이 『몽산법어』 서문(序文)을 읽어보시면 이 책이 어떠한 책이며, 얼마나 공부해 나가는 데 요긴한 책인가를 아실 수가 있고.
그리고 이 몽산법어를 한 구절씩—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을 항상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까 공부하다가 가끔 법문을 듣고 싶으면, 이 몽산법어를 한 편씩을 보시면 선지식 법문 들은 거와 같아서 신심(信心)이 돈발(頓發)하고 또 의정(疑情)이 돈발을 해서 참선이 잘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몽산법어> 총 68편의 동영상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몽산법어'에도 자세한 용어풀이와 함께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단제(單提) ;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단제(單提)는 그냥 ‘무~’ 하고, 의심을 붙이지 않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무~’만을 관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No.423)—1990년(경오년) 하안거해제 및 8월 첫째일요법회(편집 정리)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단제(單提)는 그냥 ‘무~’ 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무~’를 관하는 것. 단제는 무자(無字)를 하는데 생각을 한군데다 집중하는 데에는 좋은 이익이 있는데, 까딱하면 ‘무(無)~~’ 그놈만 들여다보다가 스르르르 혼침(昏沈)에 빠지기가 쉽다. 그리고 혹 오신통(五神通)은 날른지는 모르나, 확철대오는 할 수가 없다. 누진통(漏盡通)은 할 수가 없다.

전제(全提)는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조주는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하고 그 조주의 뜻을 의심하는 것이다. 전제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간절히 의심을 들다보면 의심을 들어서 정신을 성성(惺惺)하게 하는 데에는 대단히 좋으나, 성성(惺惺)한 가운데에도 적적(寂寂)하고, 성성하면서도 적적하도록 참구(參究)하는 묘리(妙理)를 얻지 못하면은 공연히 생각이 어지러워.
적적하게 들어가지를 못하고 비교적 성성하기는 하는데 생각이 이렇게 고요해지지를 못하는 흠집이 있어. 그래 가지고 좀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하고 의심을 아주 힘을 써서 간절히 간절히 하다 보면 상기(上氣)가 되는 폐단이 있고, 골치가 아파지는 폐단도 있다.

그리고 화두가 의심이 자꾸 끊어져. 잠깐 들으면 있다가 또 끊어지고 또 끊어지고 자꾸 이렇게 단절이 되면, 그때는 근제(勤提)를 하라. ‘부지런할 근(勤)’ 자, 자주자주 부지런히 화두를 들어라.

그래서 몽산 스님은 이 단제(單提)와 전제(全提)를 초학자의 단계에서는 단제로 해 가지고, 기초가 이루어져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된 다음에는 전제(全提)로써 화두를 잘 거각(擧却)해 나가라.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또 금강과 같은 그 금강지(金剛志), 견고한 뜻을 분(奮)내서 일념만년(一念萬年)이 되도록 그렇게 해서 항상 행주좌와 간에 회광반조(廻光返照)하고 살피고 또 살펴서, 혼침(昏沈)이 오면은 전제(全提)를 하고, 산란심(散亂心)이 일어나면 단제(單提)를 하고, 간단(間斷) 자꾸 생각이 끊어지고 화두가 순일하게 연속이 안 될 때에는 부지런히 화두를 들어서[勤提],
일구월심해서 밀밀면면(密密綿綿)하고 면면밀밀해서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면 그 순수무잡한 의단(疑團)이 끊어지지 않도록 잡드리를 해 나가면 수질각차(手跌脚蹉) 해서, 어떠한 찰나에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많은 도인들이 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도업(道業)을 성취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잡드리해 나간다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만 명이면 만 명 다 틀림이 없이 다 깨달음에 이를 것입니다.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從諗)이고 속성은 학(郝)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의 법을 받고, 그 문하에서 20년 동안 있었다。80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의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40년。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년 120세에 입적하였다。<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전제(全提) ; 전(全) 부분이 들고 일어남(全分提起)의 뜻. 본래 그대로 나타냄. 전부를 그대로 나타내 보임.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 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전제(全提)는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조주는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하고 그 조주의 뜻을 의심하는 것이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 ; 대의대오(大疑大悟) 소의소오(小疑小悟) 불의불오(不疑不悟).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
[참고] 『박산화상참선경어(博山和尙參禪警語)』 (成正 集) <卍續藏 第63冊 No.1257> '시초심주공부경어(示初心做工夫警語)'에서.
做工夫 貴在起疑情 何謂疑情 如生不知何來 不得不疑來處 死不知何去 不得不疑去處 生死關竅不破 則疑情頓發 結在眉睫上 放亦不下 趁亦不去 忽朝樸破疑團 生死二字是甚麼閑家具 噁 古德云 大疑大悟 小疑小悟 不疑不悟

공부를 짓되 귀한 것이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데에 있으니 무엇을 일러 의정이라 하는고? 태어나되 어디서 온 줄을 모를진댄 온 곳을 의심치 않을 수 없고, 죽되 어디로 가는지 모르건댄 가는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나니라.
생사(生死)의 관문을 깨뜨리지 못한 즉 의정이 몰록 일어나리니, 눈썹 위에 맺어 두어 놓을래야 놓을 수 없고 쫓아도 가지 아니하야 홀연 하루아침에 의심덩어리[疑團]를 깨뜨리면, 생사 두 글자가 이 무슨 부질없는 것일까 보냐? 엑[噁] ! 고덕(古德)이 말씀하시기를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❶] 『몽산법어』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가로판 p53)
當於本參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參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疑情)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이뭣고? ;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몽산(蒙山) : 남송과 원(元)대의 임제종 양기파 스님, (1231 ~ 1298 또는 1308)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그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한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 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에 있었으므로 전산 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에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의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의 법을 이었다。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순일(純一)하다 ; 다른 것과의 섞임이 없이 순수하다.
*순숙(純熟 순수할·온전할 순/익을 숙) ; 완전히 익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전가부좌(全跏趺坐) · 온가부좌(온跏趺坐) ·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 (산) ānāpāna-smrti (팔) ānāpāna-sati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염입출식(念入出息) · 식념관(息念觀) · 지식념(持息念) 등이라고도 한다.

음사어(音寫語)로 아나반나삼매(阿那般那三昧) · 아나파다념(阿那波那念) ·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 · 안반(安般) · 안반념(安般念) · 안반관법(安般觀法) · 안반수의(安般守意) 등이라고도 한다.
『대안반수의경(大安般守意經)』은 이 수식관을 집중적으로 설한 경전이다. 수식관에 제시된 기초적 관법은 사념처(四念處)에서 간화선(看話禪)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행법의 저변에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여름 안거 ; 하안거(夏安居).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원(禪院). ③‘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ā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 靑信男, 信男, 信士, 居士, 近事男, 近善男, 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āsikā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 信女, 近事女, 近善女, 善宿女)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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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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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상(相)없이2015. 12. 6. 19:50

§(414) (게송)견색비간색~ /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은 자기의 얼굴 /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도에 들어가는 관문은 아상(我相) 깨트려야.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그것이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 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 경전 속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용414)

 

(1) 약 16분.

(2) 약 21분.

 

(1)------------------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있는 모든 색상(色相)—청황적백의 빛깔이나, 크고 작고 짧고 길고 하는 모든 모양이 그것이 () 아니여.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여. 모든 소리를 듣되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있는 것은그것이 색상(色相)이다. 저것은 집이요, 저것은 나무요, 저것은 바위요, 저것은 자동차다. 저것은 산이고 저것은 들이다 색상으로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그것이 푸르다 붉다 희다 검다 이렇게 그것에 대해서 자기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렇게 생각이 자꾸 생각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색상(色相) 색상(色相) 아니다』 이거거든. 중생은 그걸 보고색상이다하고 색상이라고 보고서 온갖 색상에 대한 알음알이가 일어나는데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소리를 들으면저건 애기가 우는 소리다, 자동차 소리다, 비행기 소리다, 저건 기계 돌아가는 소리다, 저건 기침 소리다 소리를 듣고서 소리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 생각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이거거든.

 

그러면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고, 온갖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온갖 색상, 온갖 소리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런데 거기에 걸리거든.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서보면 보는 대로 끌려 나가 가지고 그놈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무슨 소리를 들으면 소리라고 하는, 소리의 올가미에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다녀.

 

그런데 그놈에 걸리지 아니하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다. 친히 법왕(法王) 계시는 곳에 도달하느니라.

 

 

우리 앞에 보는 모든 , 눈으로 있는 , 귀로 들을 있는 , 코로 냄새 맡을 있는 , 손으로 만져 있는 , 생각으로 느낄 있는 , 전부가 그것이 제법(諸法)인데,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자기의 얼굴이여! 그것이.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

 

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정든 사람이 죽으면정든 사람이 죽었다 가지고 울고불고 슬픔에 잠기고 그것에 끝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일단은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의 죽음만 생각할 아니라,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알아야 한다.

 

그러한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소리와 모양을 보고서 전부 그리 끌려다니고, 일생을 그러고 무량겁(無量劫) 그렇게 내려오기 때문에 생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눈으로 보는 모든 색상, 귀로 듣는 모든 소리, 우리의 생각에 떠오르는 온갖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생각들,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거든.

우리가 ()하면은불법승(佛法僧) 삼보의 법하면은부처님과 법과 거룩한 스님은 삼보(三寶) 일체(一體)그러는데,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우리 눈으로 보면은 전부가 무상(無常) 것이고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생로병사(生老病死) 있고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어서 전부가 무상하고 허망하고 믿을 없는 뿐인데 그것을 어째서 거기다가 제법(諸法)이라 하냐?

그것이, 바로 그것이 법이기 때문에 법이라 그런 거여.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모든 삼라만상의나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런 () 있는 모든 동물, 무정물(無情物)—산천초목, 일월성진 그런 것들이,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이.

그것이? 그것은 법신불(法身佛)이기 때문에 그래. 법신불의 몸뚱이요, 법신불의 설법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있어야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 아니냐!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진진찰찰(塵塵刹刹)— 해나 달이나, 산이나 돌이나, 포기의 이파리나, 우는 새소리 이것이 진진찰찰인데 이것이 법신불(法身佛) 모습이요, 법신불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냐 하면 법신불은 『무설이설(無說而說)인데, 설한 없이 설하신 것』이 법신불의 설법인데 어떻게 설하시냐? 동시(同時) ()하시면서 동시에 듣는 거여.

 

포기의 풀도 간단(間斷)없이 법을 설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설법을 듣고 있어. 한덩어리의 주먹만한 , 좁쌀알 만한 모래알 하나하나라도 바로 위치에서 위없는 법을 설하면서 동시에 법을 듣고 계신 것이여.

설할 따로 있고, 들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 () 동시(同時).

 

이러한 도리(道理) 우리가 바로 깨달라야 것이다. 이러한 도리는 말이나 생각으로 구할 없는 것이여. 중생의 사량분별로 헤아려서 있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거여.

 

이러한 법문은 어떻게 하면은 그러헌 도리를 깨달을 수가 있느냐?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소리 듣자마자이뭣고~?’ 눈을 통해서 무슨 모양을 보자마자 바로 거기에 즉해서이뭣고?’

슬픈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기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붉은 것을 봐도이뭣고?’, 파란 것을 봐도이뭣고?’,  좋은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속상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모양을 보던지 그것을 듣고 봄과 동시에 그것을 인연해서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즉시이뭣고?’

이렇게 다잽이를 가면 마침내는 진진찰찰(塵塵刹刹) 설하고 들음이 동시인 법신불의 () 없이 설한 법문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신불은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수가 없다. 오직 보신(報身)이나 화신(化身)만이 우리는 수가 있다일반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초보의 단계에서는 그렇게 말할 밖에 없고 그렇게 말을 해야 이해할 있을 것입니다마는,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1633~3231)

 

 

 

 

 

(2)------------------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에 상관이 없고, 지식의 유무도 상관이 없고,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식이 있다고 뽐낼 것도 없고, 재산과 권리가 높다고 남을 업신여길 것도 없고,

공부를 나가는 최상승법에서는 첫째, 내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아상을 갖거나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으니도에 들어가는 관문이 아상(我相) 무너져야 하는 것인데, 아상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권리가 높다고 권리를 부리거나, 아무리 내가 재산이 많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는데, 그리고서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이뭣고?’ 화두만을 거각하고, 거각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어디에 아상(我相) 붙고, 아만(我慢) 붙고, 남을 경멸하는 생각이 잠시인들 어디가 붙을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읽고 외우고, 아무리 박사 학위를 수십 개를 가졌고, 모르는 것이 없이 세상의 학문을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잘났다, 내가 제일이다, 아상과 아만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짓밟고이러한 생각이 마음속에 있다면 정말 사람은 존경받을 없는 보잘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벼는 익을수록에 고개를 숙인다했습니다. 학벌이 높고 재산이 많고 권리가 높을수록에 아만심(我慢心) 없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남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어디를 가나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은 아만심과 아상이 가지고 목에 힘을 주고 있으면, 가는 곳마다 사람은 미움을 받게 되고, 아무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무엇을 많이 가지고 가야 시집가서 업신여김을 받고 그런다고 부모를 졸라서 기둥뿌리까지 뽑아 가지고 무엇을 잔뜩 가지고 갈려고 그러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니까 그러한 정도의 인간으로 밖에는 취급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절대로 귀여움 받고 존경받지 못합니다. 가지고 가는 것은 가정 형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리를 해서 빚을 내다가 가는 것도 옳지 못하고, 형편이 넉넉하면 잘해 가지고 가는 것도 좋지, 형편이 넉넉하면서도 쬐금 가지고 가고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여. 형편대로 하면 되는 거여.

 

곤란하면 곤란한 대로 가고, 넉넉하면 넉넉허니 가지고 가서 모다 선물도 하고 그게 좋지마는, 첫째는 가지고 사람도 그러려니와, 시댁에서도 그거 많이 것으로서 며느리의 점수를 매겨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형편이 어려운데 너무 많이 가지고 오면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미리서부터서 조금만 오라고 이렇게 주어야 하거든.

 

며느리가 누구입니까? 생전 사후에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식구로 사람이니, 바로 호적으로 들어와 가지고 나의 혈통을 이어갈 며느리니, 얼마나 소중하냐 그말이여.

어찌든지 자기 뱃속에서 딸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귀엽게 주어야 하거든딸은 자기 뱃속으로 낳지마는 결국은 자기를 버리고 신랑 따라서 사람이니까.

 

며느리는 비록 남의 뱃속에서 나왔지마는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나의 혈통을 이어주기 위해서 자식과 일심동체가 되어서 손자를 낳아 며느리니,

어쨌든지 처음부터서 그러헌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그러헌 마음으로 안아주면, 얼마나 시부모를 마음으로부터서 존경하고 친정 어머니보다도 좋아할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그러면은 아들 마음도 편하고, 시부모 마음도 편하고, 며느리 마음이 편해야 식구 마음이 편하고, 뱃속에서 나오는 손주 손녀도 이쁘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말이여.

 

포태(胞胎) 가지고 포태하기 전부터서 썩고 한탄과 원망, 슬픔과 괴로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애기를 포태를 하게 되면 애기가 절대로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포태한 뒤에도 계속 썩고 원망하고 슬픔과 원한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달을 지내면은 바로 애기가 그런 생각을 먹고 삽니다.

 

낳아 가지고 아무리 잘먹이고 입혀 봤자 뱃속에 있는 동안에 애기의 엄마가 썩고 원망하고 신경질 내고 미워하고 이러한 생각으로 되면은, 애기는 나중에 잘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 태교(胎敎)라고 그러죠.

 

가끔며느리시어머니말씀을 법상(法床) 와서 하게 되는데, 여러 보살님네나 거사님네, 아직 결혼을 청년이나 처녀들, 일단은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시부모를 모시게 되고, 자기도 얼마 가면 애기를 포태하고, 애기가 나서 자라면은 며느리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에도,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六百部) 경전 속에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이것은 도에 들어가는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속에 사는 데에도 아상 그놈 때문에 부부간에도 싸우게 되고, 며느리와 시부모와도 싸우게 되고, 형제간에도 싸우게 되고, 세계가 아상 그놈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마음을 비우고, 피차 자기 마음을 비우면 사람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 각자 마음을 주장을 하고, 의견을 주장하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그런 데에서 남의 의견은 무시하고 짓밟게 되니까,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념의 전쟁,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다 민주주의다 자본주의다하는 이념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를 않고, 앞으로 언젠가는 신앙의 종교의 싸움이 있으리라고 진즉부터 그런 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이념의 전쟁이나, 종교 신앙의 전쟁도 한마디로 말해서 아상(我相) 때문에 그런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세계로 도약할 있는 그러한 오천 역사에 처음 맞이하는 그러한 세계에 도약하는 그런 좋은 계기를 맞이했으면서도 아상(我相),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그러한 좋은 도약의 계기를 살려나가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노사의 관계가 공장, 회사의 경영자나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어찌 따로따로 남이겠습니까?

사장이 공장을 지음으로 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거기에 직장을 얻어 가지고 일을 하게 되고,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잘함으로 해서 회사가 잘되어야 사장도 사업이 번창을 것이고, 아무리 노동자가 일을 할라고 해도 회사 자체가 문을 닫고 망해 버리면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고,

다같이 피차(彼此)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관계이면서 어찌 자기 쪽만 생각하고 웬수처럼 미워하고, 자기 욕심만 챙겨 가지고서야 어떻게 회사가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정부와 백성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백성이 세운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백성을 위해서 모든 일을 잘해야 것이고, 백성은 정부가 잘되어갈 있도록 모두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열심히 함으로 해서 나라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져야 우리나라가 잘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역시 나라고 하는 아만(我慢), 아상(我相) 놈을 비움으로 해서 그것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아만(我慢) ‘내가 제일이고 내가 나만이 옳다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의사나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화가 통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항상 사람이 얼굴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듯이, 해방 40 년이 지낸 동안 똑같은 민족이면서 체제가 다르니 만큼, 교육제도가 다르니 만큼, 이념이 다른 만큼, 많이 차등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고, 체제가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단군(檀君) 후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38(三八線)이라고 하는 선이 가로막혔다 하드라도 남북이 우리 나라인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만 하고, 다시는 민족끼리 싸우는 일이 없어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부터 아만심 먼저 꺾고 아상을 꺾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있고, 상대방을 도와줄 수도 있고, 대화할 있는 길도 트이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가 옳다. 속담에방에 들어오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나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그러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겠지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해 가지고서는 대화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은 아상(我相) 꺾느냐? 분별심(分別心),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이뭣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이뭣고?’ 먼저 !

이뭣고?’ 먼저 터억 챙기고 나면처음에는 어렵지만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해도 저절로 챙겨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무엇이고 항상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집으로 오고, 직장으로 집으로 오고, 항상 그렇게 댕겨 버릇한 사람은 직장에서 나와 가지고 술을 잔뜩 먹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다시피 그래도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냐 하면, 많이 길을 다녔기 때문에 술이 만취가 되어 가지고 전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집을 찾아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꾸이뭣고?’ 하면, ‘ 된다 하지 말고 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뭣고?’ 챙겨.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은 나중에는 챙길려고 해도 저절로 챙겨지는 거여.

! 눈에 무엇이 들어왔다 하면이뭣고?’ 먼저 나오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하면은이뭣고?’ 

 

나중에는이뭣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를 아니해. 수백 수천 명이 북실거리는 시장 바닥에 가서 있어도 아무것도 보여. 하나도 시끄럽지도 않고.

 

그래서 옛날에는 공부하시던 도인들이 일부러 요중 공부(鬧中工夫) 시험해 보고 익히기 위해서 장날이 돌아오면은 점심밥을 가지고 장터에 가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가서 어디 한쪽에다가 방석을 하나 놓고 가만히 앉아서 정진을 하고, 점심때가 되면 그놈 까먹고, 그러고 저물 때까지 하다가, 장이 파하면은 토굴에 돌아와서 공부하고.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고 그럽니다.

 

화두, 아까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3232~532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莊嚴淨土分, 야부 게송 참고.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울고불고 ;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법신불(dharma-kaya 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영장(靈長) ; 영묘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 티끌. () 산스크리트어 kṣetra 음사. (), (), ()라고 번역. 국토. 세계. . 장소. 영역.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세운 서원(誓願)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報身, 化身)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2)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아만(我慢 /거만할·게으를 )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오온(五蘊)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 지혜를, 바라밀(波羅蜜)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 줄임말이다.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 뜻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내용이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아애(我愛)자아에 대한 애착심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치(我癡)자아(自我)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 환인(桓因) 손자이며 환웅(桓雄)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아사달(阿斯達)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단국(檀國) 세워 2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38(三八線)2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 815 맥아더가 발표한일반명령 1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요중 공부(鬧中工夫)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공부.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3. 10. 9. 17:34

 

§(414) 공부는 간단하고 쉬운 . 언제 어디서든 항상 화두를 잡드리해야. 우주는 우리의 생각 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 (게송)춘유백화추유월~.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용414)

 

약 11분.

 

 

공부는 복잡한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천하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초학자(初學者) 불가불 장소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자꾸 버릇 하면 장소도 상관이 없고 시간도 상관이 없습니다.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설거지 하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잘려고 잠자리에 누웠서도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렇게 하면서 언제 잠든 모르게 잠이 들어. 꿈속에서도 화두(話頭) 그대로.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면 엊저녁에 들던 화두가 그대로 들어 있게 되거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항상 잡드리를 하시면, 그렇게 공부가 결국은 색을 보되 색이 아니요(見色非干色),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요(聞聲不是聲). 성색(聲色) 걸림이 없이(色聲不礙處), 그래서 법왕성(法王城) 도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親到法王城).

 

우주법계(宇宙法界) 우리의 생각일어남으로 해서 벌어진 것입니다.

극락세계(極樂世界)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극락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고, 무서운 지옥(地獄) 자기의 생각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을 만들어서 지옥으로 들어가서 () 받는 것도 자기의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고, 천국을 건설을 해서 천국에서 유희를 하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무량겁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 즉일념(卽一念)』이라고 법성게(法性偈)에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법화경도 읽어 보시고, 화엄경도 읽어 보시고, 원각경, 금강경, 경이란 경은 읽어 보신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경을 참으로 뜻을 옳게 알고 읽으셨다면 일념(一念) 속에 육도법계(六途法界) 있는 것이고, 생각 단속함으로 해서 불국토를 건설하느냐, 지옥을 만드느냐는 달려 있는 도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하고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춘유백화추유월(春有百花秋有月)이요, 봄에는 가지 꽃이 있고 가을에는 휘황찬 밝은 달이 있구나.

하유청풍동유설(夏有清風冬有雪)이로다. 여름에는 맑은 바람이 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있구나.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하면, 만약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아니하면,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이다. 문득 이것이 인간의 좋은 시절이더라.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 부질없는 일이 마음에 걸려 있지 않는다. 무엇이 부질없는 일인가?

지나간 일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 아직 닥쳐오지 않은 장차 미래 일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댕겨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 현재 보고 듣고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 끌려가 가지고 생각 생각 하는 .

 

과거의 마음, 미래의 , 현재 닥쳐 있는 모든 귀와 눈을 통해서 제출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사량(思量) 분별(分別) 따지고, 이래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그래 가지고 스스로를 들볶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석(木石)이나 되면 모를까, 지나간 일도 생각이 나고, 앞으로 일도 생각 걱정도 하고, 현재 닥친 일도 생각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지나간 일도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일도 생각하지 말고, 현재 닥치는 일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라.

그럼 목석(木石) 되란 말인가? 그게 아니거든.

 

살아 있으니까 지나간 일도 불현듯 생각날 것이고 앞으로 일도 무엇인가 필요해서 생각을 수가 있고, 현재 눈으로 보고 듣고 하다 보면 무슨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마는, 살아 있으니까.

 

무슨 생각이 나자마자 화두(話頭) 돌리는 , 천하에 묘한 법이거든. ‘이뭣고~?’

 

아무 생각 할려고 한다고 해서 해지는 것이 아니예요. 할려고 하는 생각도 또한 생각이기 때문에, 할려고 하지도 말고 쫓아낼려고 하지도 말고이뭣고~?’ 챙기거든.

이런 간단하고도 쉽고도 묘한 법이 그래서 이것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이제 겨울이 지내가고 입춘, 우수, 경첩, 춘분, 이제 개나리가 피고,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목련이 도처에 피고, 그래도 조석으로는 꽃샘추위로 춥기는 허지만, 이제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헌 좋은 때에 나라는 정치적으로는 시끌사끌하고 국제적으로도 복잡하고 모다 그렇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중요한 때일수록 우리가 있는 일은 열심히 정진을 해서참나 깨달라야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이 것이고 세계평화도 것입니다.

 

앞으로 십여 , 열흘 후에는 음력 316 법보재(法寶齋)일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겠지만 법보단(法寶壇) 만년위패(萬年位牌) 봉안한 여러 영가(靈駕),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원근친척과 유주무주(有主無主) 법계 고혼(孤魂)까지도 천도(薦度)하는 대법요식이 거행되는 날입니다.

 

법보재에 들으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법보재에 들으신 분들도 서로서로 권고해서 법보재에 들으시도록 권고를 하시고, 분도 빠지시지 말고 모두 그날 참여하셔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의 영가들을 천도하는 중대한 법요식에 빠지지 않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설사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참석을 하신다 하더라도 법보영가들을 천도하는 데에는 차질이 없겠습니다마는 기왕이면은 참석을 하시면은 영가들도 기쁜 마음으로 좋은 곳으로 가서 왕생을 하시게 것입니다.(6213~7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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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 30(210) 게송.

*(게송) 춘유백화추유월~’ ; [무문관(無門關)] 19 '평상시도(平常是道)' 무문혜개(無門慧開) 게송 참고.

*부질없다 ; (사람의 언행이나 일의 형편이)공연하여 쓸모가 없다.

*쓸데없다 ; (무엇이)아무런 쓸모나 값어치가 없다.

*닥쳐오다 ; (일이나 시일이 무엇에)빠르게 가까이 다가오다.

*닥치다 ; 어떤 일이나 대상 따위가 가까이 다다르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무엇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무엇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문상(問喪) 사람이 없는 외로운 .

*천도(薦度)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부처님의 가르침(法門)’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 건너가도록 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
전제 단제2013. 10. 8. 09:46

§(414) 전강 선사의 단제, 전제의 장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있는 공부법.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용414)

 

약 11분.

 

 

화두,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

 

그런데어째서 () 했는고?’ 화두를 의심한 것은 대단히 좋은데 조실 스님께서는 불급불완(不急不緩) 묘한 관으로, 의심관(疑心觀)으로 가는 것을 모르셨어.

 

어려서 워낙 발심(發心) 철저히 놓고 분심(憤心) 솟구쳐 오르니까 목숨을 바쳐서 거기에다 아주 용맹스럽게 나가실중만 알으셨지, 불급불완한 () 의관으로 나가는 것을 그걸 선배가 있어서 그것을 일러 주셨으면 되었을텐데 그걸 못하셨어.

 

몽산법어(蒙山法語) 보면 무자(無字) 드는데 가지,

 

하나는 단제, 그냥~~’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만을 항상 들여다 보는 거여.

조주 스님이했으니까~’ 들여다 보는 거여. 숨을 들어마시다 내쉬면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그런게 아니여, 그냥~’ 들여다 보는 이것을 단제(單提)라고 그러고.

 

전제(全提)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조주스님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의심을 하는 이것은 전제인데,

~’하고 단제로 하는 데에도 장단점이 있고, 전제로어째서 무라고 했는고~?’하는 데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면~’하는 데에는 무슨 장점이 있느냐 하면,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하고 자꾸 하다 보면 성질이 급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너무 되게 몰아대다가 상기병(上氣病) 생기고, 생각이 끊어지질 않아 점점 어지러운 생각, 복잡한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냥~’하면 생각 생각 그런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아니헌데 의심(疑心) 없어.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거든.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그랬어.

 

그런데~’하고 () 항상 들여다 보면 생각 생각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조용해지고 좋기는 좋은데, 까딱하면은 너무 조용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昏沈) 빠질 우려가 있고 무기(無記) 떨어지거든.

 

무기에 떨어지면 아무리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다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하는 거여.

 

그러면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이 있어야 하는데,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의심이 있어야 크게 깨닫는다』 그랬으니처음부터서 크게 의심을 해야겠다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여기다가 그냥 ' ()'자를 쓰고서 몰아대면,

영락없이 피가 넘어오고 상기(上氣) 되어 가지고 눈알이 튀겨져 나올려고 하고 골이 벌어질라 그러고 목이 뻗뻗해져. 이뭣고소리만 하면 벌써 골치부터 아퍼지기 시작하는 거여.

 

그러니 몽산 스님은 처음에는 단제로~’ ‘~’하고 무만 자꾸 들어서 순일해져 순숙해져서,

순숙해진 다음에 2단계에 나아가서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을 든다면, 전제로 한다면 이것이 가장 단제와 전제를 효율적으로 활용을 해서 폐단없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수행을 수가 있다. 몽산어록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하고 무자만 바라만 보도록, 그렇게 하라고는 조실스님도 가르키시지 않았고 산승(山僧) 그렇게 공부를 하라고는 한번도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처음에는 단제 전제 할것 없이, 처음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나 반가부좌 하는 법을 익히고 다음에는 단전호흡(丹田呼吸) 해서 단전호흡이 되도록 익힌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 하라고 지도를 왔습니다.

 

이렇게 가면 몽산 스님이 염려하시는 단제와 전제의 장단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수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전호흡을 익히고, 단전호흡을 하되 처음에는 수식관(數息觀)으로부터 들어가 가지고 나중에 수식관이 잘되면은 다음에 전제(全提) 공부를 나가되 탈이 없으리라고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단제(單提) 대한 것은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전제(全提) 하도록 많은 설법을 하셨고, 산승도 역시 조실 스님의 뜻을 따라서 그렇게 말씀을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처음에 전제로 공부를 하시되 너무 힘을 가지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러헌 병이 나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단전호흡에 대한 법문을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마 자리에는 앞으로 여름 안거를 위해서 방부(房付) 들이고 갈려고 하는 수좌(首座)님들이 분인가 있을 생각합니다.

따로 내가 만나서 화두를 일러드림사 좋지마는 그러헌 시간이 없으니 법상(法床)에서 이렇게 말씀을 것을 명심해서 듣고, 그렇게 해서 화두를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선방에 가서 정진을 잘하기를 바래고.

 

여기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새로 오신 분이나, 오래 전부터서 법문을 들으시고 공부를 하신 분이나, 오늘 조실 스님의 법문이나 또는 산승의 말씀은 앞으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명심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5142~621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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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이고 속성은 ()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 법을 받고, 문하에서 이십 동안 있었다. 팔십 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사십 .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 120세에 입적하였다. <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몽산(蒙山) :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 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들숨과 날숨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Posted by 닥공닥정
거울 법문2013. 10. 5. 19:28

§(414) (게송)견색비간색~ /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은 자기의 얼굴 /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도에 들어가는 관문은 아상(我相) 깨트려야.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그것이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 경전 속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용414)

 

 

(1) 약 16분.

 

 

(2) 약 21분.

 

 

(1)------------------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있는 모든 색상(色相)—청황적백의 빛깔이나, 크고 작고 짧고 길고 하는 모든 모양이 그것이 () 아니여.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여. 모든 소리를 듣되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있는 것은그것이 색상(色相)이다. 저것은 집이요, 저것은 나무요, 저것은 바위요, 저것은 자동차다. 저것은 산이고 저것은 들이다 색상으로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그것이 푸르다 붉다 희다 검다 이렇게 그것에 대해서 자기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렇게 생각이 자꾸 생각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색상(色相) 색상(色相) 아니다』 이거거든. 중생은 그걸 보고색상이다하고 색상이라고 보고서 온갖 색상에 대한 알음알이가 일어나는데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소리를 들으면저건 애기가 우는 소리다, 자동차 소리다, 비행기 소리다, 저건 기계 돌아가는 소리다, 저건 기침 소리다 소리를 듣고서 소리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 생각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이거거든.

 

그러면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고, 온갖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온갖 색상, 온갖 소리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런데 거기에 걸리거든.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서보면 보는 대로 끌려 나가 가지고 그놈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무슨 소리를 들으면 소리라고 하는, 소리의 올가미에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다녀.

 

그런데 그놈에 걸리지 아니하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다. 친히 법왕(法王) 계시는 곳에 도달하느니라.

 

 

우리 앞에 보는 모든 , 눈으로 있는 , 귀로 들을 있는 , 코로 냄새 맡을 있는 , 손으로 만져 있는 , 생각으로 느낄 있는 , 전부가 그것이 제법(諸法)인데,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자기의 얼굴이여! 그것이.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

 

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정든 사람이 죽으면정든 사람이 죽었다 가지고 울고불고 슬픔에 잠기고 그것에 끝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일단은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의 죽음만 생각할 아니라,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알아야 한다.

 

그러한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소리와 모양을 보고서 전부 그리 끌려다니고, 일생을 그러고 무량겁(無量劫) 그렇게 내려오기 때문에 생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눈으로 보는 모든 색상, 귀로 듣는 모든 소리, 우리의 생각에 떠오르는 온갖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생각들,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거든.

우리가 ()하면은불법승(佛法僧) 삼보의 법하면은부처님과 법과 거룩한 스님은 삼보(三寶) 일체(一體)그러는데,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우리 눈으로 보면은 전부가 무상(無常) 것이고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생로병사(生老病死) 있고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어서 전부가 무상하고 허망하고 믿을 없는 뿐인데 그것을 어째서 거기다가 제법(諸法)이라 하냐?

그것이, 바로 그것이 법이기 때문에 법이라 그런 거여.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모든 삼라만상의나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런 () 있는 모든 동물, 무정물(無情物)—산천초목, 일월성진 그런 것들이,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이.

그것이? 그것은 법신불(法身佛)이기 때문에 그래. 법신불의 몸뚱이요, 법신불의 설법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있어야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 아니냐!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진진찰찰(塵塵刹刹)— 해나 달이나, 산이나 돌이나, 포기의 이파리나, 우는 새소리 이것이 진진찰찰인데 이것이 법신불(法身佛) 모습이요, 법신불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냐 하면 법신불은 『무설이설(無說而說)인데, 설한 없이 설하신 것』이 법신불의 설법인데 어떻게 설하시냐? 동시(同時) ()하시면서 동시에 듣는 거여.

 

포기의 풀도 간단(間斷)없이 법을 설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설법을 듣고 있어. 한덩어리의 주먹만한 , 좁쌀알 만한 모래알 하나하나라도 바로 위치에서 위없는 법을 설하면서 동시에 법을 듣고 계신 것이여.

설할 따로 있고, 들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 () 동시(同時).

 

이러한 도리(道理) 우리가 바로 깨달라야 것이다. 이러한 도리는 말이나 생각으로 구할 없는 것이여. 중생의 사량분별로 헤아려서 있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거여.

 

이러한 법문은 어떻게 하면은 그러헌 도리를 깨달을 수가 있느냐?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소리 듣자마자이뭣고~?’ 눈을 통해서 무슨 모양을 보자마자 바로 거기에 즉해서이뭣고?’

슬픈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기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붉은 것을 봐도이뭣고?’, 파란 것을 봐도이뭣고?’,  좋은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속상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모양을 보던지 그것을 듣고 봄과 동시에 그것을 인연해서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즉시이뭣고?’

이렇게 다잽이를 가면 마침내는 진진찰찰(塵塵刹刹) 설하고 들음이 동시인 법신불의 () 없이 설한 법문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신불은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수가 없다. 오직 보신(報身)이나 화신(化身)만이 우리는 수가 있다일반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초보의 단계에서는 그렇게 말할 밖에 없고 그렇게 말을 해야 이해할 있을 것입니다마는,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1633~3231)

 

 

 

 

 

 

 

(2)------------------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에 상관이 없고, 지식의 유무도 상관이 없고,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식이 있다고 뽐낼 것도 없고, 재산과 권리가 높다고 남을 업신여길 것도 없고,

공부를 나가는 최상승법에서는 첫째, 내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아상을 갖거나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으니도에 들어가는 관문이 아상(我相) 무너져야 하는 것인데, 아상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권리가 높다고 권리를 부리거나, 아무리 내가 재산이 많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는데, 그리고서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이뭣고?’ 화두만을 거각하고, 거각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어디에 아상(我相) 붙고, 아만(我慢) 붙고, 남을 경멸하는 생각이 잠시인들 어디가 붙을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읽고 외우고, 아무리 박사 학위를 수십 개를 가졌고, 모르는 것이 없이 세상의 학문을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잘났다, 내가 제일이다, 아상과 아만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짓밟고이러한 생각이 마음속에 있다면 정말 사람은 존경받을 없는 보잘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벼는 익을수록에 고개를 숙인다했습니다. 학벌이 높고 재산이 많고 권리가 높을수록에 아만심(我慢心) 없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남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어디를 가나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은 아만심과 아상이 가지고 목에 힘을 주고 있으면, 가는 곳마다 사람은 미움을 받게 되고, 아무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무엇을 많이 가지고 가야 시집가서 업신여김을 받고 그런다고 부모를 졸라서 기둥뿌리까지 뽑아 가지고 무엇을 잔뜩 가지고 갈려고 그러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니까 그러한 정도의 인간으로 밖에는 취급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절대로 귀여움 받고 존경받지 못합니다. 가지고 가는 것은 가정 형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리를 해서 빚을 내다가 가는 것도 옳지 못하고, 형편이 넉넉하면 잘해 가지고 가는 것도 좋지, 형편이 넉넉하면서도 쬐금 가지고 가고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여. 형편대로 하면 되는 거여.

 

곤란하면 곤란한 대로 가고, 넉넉하면 넉넉허니 가지고 가서 모다 선물도 하고 그게 좋지마는, 첫째는 가지고 사람도 그러려니와, 시댁에서도 그거 많이 것으로서 며느리의 점수를 매겨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형편이 어려운데 너무 많이 가지고 오면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미리서부터서 조금만 오라고 이렇게 주어야 하거든.

 

며느리가 누구입니까? 생전 사후에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식구로 사람이니, 바로 호적으로 들어와 가지고 나의 혈통을 이어갈 며느리니, 얼마나 소중하냐 그말이여.

어찌든지 자기 뱃속에서 딸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귀엽게 주어야 하거든딸은 자기 뱃속으로 낳지마는 결국은 자기를 버리고 신랑 따라서 사람이니까.

 

며느리는 비록 남의 뱃속에서 나왔지마는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나의 혈통을 이어주기 위해서 자식과 일심동체가 되어서 손자를 낳아 며느리니,

어쨌든지 처음부터서 그러헌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그러헌 마음으로 안아주면, 얼마나 시부모를 마음으로부터서 존경하고 친정 어머니보다도 좋아할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그러면은 아들 마음도 편하고, 시부모 마음도 편하고, 며느리 마음이 편해야 식구 마음이 편하고, 뱃속에서 나오는 손주 손녀도 이쁘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말이여.

 

포태(胞胎) 가지고 포태하기 전부터서 썩고 한탄과 원망, 슬픔과 괴로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애기를 포태를 하게 되면 애기가 절대로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포태한 뒤에도 계속 썩고 원망하고 슬픔과 원한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달을 지내면은 바로 애기가 그런 생각을 먹고 삽니다.

 

낳아 가지고 아무리 잘먹이고 입혀 봤자 뱃속에 있는 동안에 애기의 엄마가 썩고 원망하고 신경질 내고 미워하고 이러한 생각으로 되면은, 애기는 나중에 잘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 태교(胎敎)라고 그러죠.

 

가끔며느리시어머니말씀을 법상(法床) 와서 하게 되는데, 여러 보살님네나 거사님네, 아직 결혼을 청년이나 처녀들, 일단은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시부모를 모시게 되고, 자기도 얼마 가면 애기를 포태하고, 애기가 나서 자라면은 며느리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에도,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六百部) 경전 속에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이것은 도에 들어가는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속에 사는 데에도 아상 그놈 때문에 부부간에도 싸우게 되고, 며느리와 시부모와도 싸우게 되고, 형제간에도 싸우게 되고, 세계가 아상 그놈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마음을 비우고, 피차 자기 마음을 비우면 사람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 각자 마음을 주장을 하고, 의견을 주장하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그런 데에서 남의 의견은 무시하고 짓밟게 되니까,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념의 전쟁,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다 민주주의다 자본주의다하는 이념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를 않고, 앞으로 언젠가는 신앙의 종교의 싸움이 있으리라고 진즉부터 그런 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이념의 전쟁이나, 종교 신앙의 전쟁도 한마디로 말해서 아상(我相) 때문에 그런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세계로 도약할 있는 그러한 오천 역사에 처음 맞이하는 그러한 세계에 도약하는 그런 좋은 계기를 맞이했으면서도 아상(我相),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그러한 좋은 도약의 계기를 살려나가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노사의 관계가 공장, 회사의 경영자나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어찌 따로따로 남이겠습니까?

사장이 공장을 지음으로 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거기에 직장을 얻어 가지고 일을 하게 되고,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잘함으로 해서 회사가 잘되어야 사장도 사업이 번창을 것이고, 아무리 노동자가 일을 할라고 해도 회사 자체가 문을 닫고 망해 버리면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고,

다같이 피차(彼此)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관계이면서 어찌 자기 쪽만 생각하고 웬수처럼 미워하고, 자기 욕심만 챙겨 가지고서야 어떻게 회사가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정부와 백성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백성이 세운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백성을 위해서 모든 일을 잘해야 것이고, 백성은 정부가 잘되어갈 있도록 모두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열심히 함으로 해서 나라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져야 우리나라가 잘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역시 나라고 하는 아만(我慢), 아상(我相) 놈을 비움으로 해서 그것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아만(我慢) ‘내가 제일이고 내가 나만이 옳다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의사나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화가 통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항상 사람이 얼굴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듯이, 해방 40 년이 지낸 동안 똑같은 민족이면서 체제가 다르니 만큼, 교육제도가 다르니 만큼, 이념이 다른 만큼, 많이 차등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고, 체제가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단군(檀君) 후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38(三八線)이라고 하는 선이 가로막혔다 하드라도 남북이 우리 나라인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만 하고, 다시는 민족끼리 싸우는 일이 없어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부터 아만심 먼저 꺾고 아상을 꺾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있고, 상대방을 도와줄 수도 있고, 대화할 있는 길도 트이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가 옳다. 속담에방에 들어오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나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그러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겠지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해 가지고서는 대화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은 아상(我相) 꺾느냐? 분별심(分別心),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이뭣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이뭣고?’ 먼저 !

이뭣고?’ 먼저 터억 챙기고 나면처음에는 어렵지만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해도 저절로 챙겨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무엇이고 항상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집으로 오고, 직장으로 집으로 오고, 항상 그렇게 댕겨 버릇한 사람은 직장에서 나와 가지고 술을 잔뜩 먹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다시피 그래도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냐 하면, 많이 길을 다녔기 때문에 술이 만취가 되어 가지고 전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집을 찾아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꾸이뭣고?’ 하면, ‘ 된다 하지 말고 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뭣고?’ 챙겨.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은 나중에는 챙길려고 해도 저절로 챙겨지는 거여.

! 눈에 무엇이 들어왔다 하면이뭣고?’ 먼저 나오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하면은이뭣고?’ 

 

나중에는이뭣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를 아니해. 수백 수천 명이 북실거리는 시장 바닥에 가서 있어도 아무것도 보여. 하나도 시끄럽지도 않고.

 

그래서 옛날에는 공부하시던 도인들이 일부러 요중 공부(鬧中工夫) 시험해 보고 익히기 위해서 장날이 돌아오면은 점심밥을 가지고 장터에 가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가서 어디 한쪽에다가 방석을 하나 놓고 가만히 앉아서 정진을 하고, 점심때가 되면 그놈 까먹고, 그러고 저물 때까지 하다가, 장이 파하면은 토굴에 돌아와서 공부하고.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고 그럽니다.

 

화두, 아까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3232~532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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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莊嚴淨土分, 야부 게송 참고.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울고불고 ;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법신불(dharma-kaya 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영장(靈長) ; 영묘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 티끌. () 산스크리트어 kṣetra 음사. (), (), ()라고 번역. 국토. 세계. . 장소. 영역.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세운 서원(誓願)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報身, 化身)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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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아만(我慢 /거만할·게으를 )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오온(五蘊)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 지혜를, 바라밀(波羅蜜)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 줄임말이다.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 뜻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내용이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아애(我愛)자아에 대한 애착심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치(我癡)자아(自我)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 환인(桓因) 손자이며 환웅(桓雄)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아사달(阿斯達)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단국(檀國) 세워 2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38(三八線)2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 815 맥아더가 발표한일반명령 1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요중 공부(鬧中工夫)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공부.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3. 10. 5. 14:33

 

 

§(414) (게송)무변찰해허명경~ / 발심 가운데는 포구발심(怖懼發心)이 제일,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 / 전강 조실스님의 포구발심 직지사 용맹정진.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 생사(生死) 정말 무섭구나'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바세계가 닦기에 가장 좋다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하늘나라에 () 받는 천국보다도 사바세계가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있고 귀로 들을 있고 느낄 있고 노상 접할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사바세계는 '참나'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공부는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414) - 1990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용414)

 

약 17분.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헌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나무~아미타불~~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이요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다.

갓 없는 우주법계가 텅 비고 밝은 거울인데, 그 거울이 무량겁 동안 거울에 쌓이고 쌓인 티끌로 그 밝은 빛이 나타나지를 못하는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인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역대조사와 모든 성현들은 그 티끌에 파묻히지 아니하고 터억 자아를 자각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했는데,

우리 중생들은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그 소리와 빛깔의 티끌 속에 파묻혀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고.

이러한 고인의 게송을 읊었습니다.

 

 

오늘 경오년 4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처음에 선방에 나오셔서 직지사(直指寺)에서 첫 철을 공부하시는 그 지경을 들었습니다.

열아홉 살 열여덟 살 한참 그 어리신 나이에 같이 뛰어놀고, 같이 글을 배우고 공부하던 친구가 병이 들어서 죽은 것을 보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 충격을 받고 있는 차에 마치 밤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그 하룻밤 하루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깨어나면서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그 무서운 피비린내 나는 지옥고(地獄苦) 받는 광경을 보셨습니다.

사람을 세워 놓고 톱으로 머리로부터서 두 쪽으로 썰어 내리고, 또 사람을 수십 명씩 콩나물처럼 그렇게 잡어 가지고 큰 맷돌에다가 넣어서 맷돌로 갈아서 죽이는 모습, 또 그렇게 죽여 가지고 다시 또 살려 내 가지고 또 그와 같은 것을 수없이 되풀이를 하는 그러한 광경들, 그러한 꿈을 또 꾸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어서 빨리 내가 선방에 나아가서 참선을 해야겠다’ 그러한 참 불같은 발심을 해 가지고 직지사로 나오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것,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포구발심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해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18~9세 어린 나이로 그런 친구의 죽음을 보시고, 지옥고의 꿈을 꾸시고서 포구발심을 하셨어.

 

그런데 우리는 정든 가족이 죽어도, 친구가 죽어도, 도처에서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강도로 인해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전쟁으로 죽고 그 사람들이 죽는 그런 비참한 광경을 수없이 보면서도 과연 생사에 대한 포구발심을 한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저 하늘나라에 낙(樂)을 받는 천국보다도 더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노상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참나'를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세의 그 어린 나이로 첫 철에 직지사 선원에 나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공부를 하시는데 아침공양을 하시고는 자리에 앉아서 참선을—입선(入禪) 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큰방에서 대중 스님네와 같이 그렇게 하면 입선 시간이 있고, 방선하면 일어서야 하고, 대중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하니까,

그러기가 불편하니까 법당 뒤에다가 방석 하나를 갖다 놓고 거기서 공양시간에는 불가불 가서 공양을 드셔야 하니까 그때만 일어서시고 공양만 끝나면은 바로 그 자리에 와서 앉었어.

 

그렇게 하기를 하루, 이틀, 사흘, 열흘, 두 달, 석 달을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다.

대중이 ‘어린 사람이 첫 철 말뚝 신심이 나 가지고 저런다고 며칠이나 갈까 보냐?’고 모다 수군덕거리고 그랬다고 아까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그걸 허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이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어.

 

그러나 이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드는 바른 법을 알고서 하셔야 할 텐데, 누가 그걸 자세히 일러준 분도 없었고, 또 그렇게 자세히 해 놓은 책도 볼 수 없었고,

 

또 그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는 제산(霽山) 스님께서 조실로 계신 때인데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관(觀)하라.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을 관하라’ 이렇게 화두를 일러 주셨으니,

그것이 도저히.. ‘일념미생전을 관한다’ 어떻게 관(觀)하며, 또 들은 법문에 의하면은 ‘화두는 의심을 관하는 것인데 의심도 없이 한 생각 이전의 상태를 관하라?’

 

도저히 바른 공부가 아닌 것 같아서 단독으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스스로 간택을 해 가지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파고 또 파고 해 가지고 어떻게 간절히 그리고 몹시 알날신심(捺身心)하면서 막 파고 들어갔다.

그러니 마침내는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그렇게 코로 입으로 많은 피를 토하셨다고 그럽니다.

 

결과적으로는 피를 토하셨거나 말았거나 그렇게 무섭게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결국은 대도를 성취하셨다고 하는 생각이 됩니다마는, 애당초에 바른 자세법과 바른 호흡법과 바른 화두를 드는—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하는가?

그 화두를 드는 그런 가장 불급불완(不急不緩)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늘어지지도 않는 가장 그 묘한 의심관(疑心觀)으로 해 나가셨다면은 그렇게 피를 토하시지 않고도 도를 이루셨지 않을까? 이렇게도 생각이 들기도 하지마는.

 

하여간 그 어리신 나이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무서운 신심과 무서운 분심으로 그렇게 밀고 나가 가지고, 병이 난 뒤에도 계속해서 목숨을 거기다 전부 다 바치고 결국은 정진을 중단하시지 않고서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정말 친구나 정든 사람의 죽음을 보고 그렇게 철저히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라고 한 분도 지금도 역시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설사 그렇게 발심을 하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화두를 간택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바로 알아 가지고 하신다면은 중간에 무서운 그런 병이 일어나지 않고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은 그 어려서 그렇게 피가 넘어오는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그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뒷머리가 툭툭 터져서 머리에 참 많은 흉터가 계셨고, 고생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하시고 밤잠을 안 주무시고 공부를 하시고 그래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섭게 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평생 동안 후배들을 위해서 후학들을 위해서 참 감동적인 법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무량겁 동안을 수행을 하시는 가운데에 수없는 몸을 던지시고 참 무서운 고행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사바세계에 탄생하셔 가지고 그 팔만사천 무상법문을 그렇게 많이 남기신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이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공부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 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6분3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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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14권) ‘別傳覺心’

**복전암 29번에도 이 게송이 있음.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가없는 시방세계가 텅비어 밝은 거울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 무량겁 동안 티끌이 쌓여도 그 빛은 이지러짐이 없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 종래로 모든 성인은 티끌과 함께 하지 않았는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 무슨 일로 우리는 성색의 티끌속에 죽어가느냐!

*虧 (이지러질 휴) 이지러지다. 손상됨. 그치다. 줄다.  *裏 (속 리) 가운데, 뱃속, 다스려지다. 안에 받아들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땅 지, 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알날신심(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몽산법어]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에 나오는 구절.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불문곡직하다(不問曲直-- 아니 불/물을 문/옳지 않을 곡/곧을·맞을 직) ; 곡직불문하다. (사람이)옳고 그름을 따져 묻지 아니하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