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환희마(歡喜魔), 번뇌마(煩惱魔) / (게송) 견색비간색~ .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약 15분.

 


역지즉노순지환(逆之則怒順之歡)헌대  천하인정몰양반(天下人情沒兩般)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지즉노(逆之則怒)요 순지환(順之歡)이다. 자기의 마음에 거슬리면 성을 내고, 자기 마음에 순(順)하면 기뻐하는데 이것은 세속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서도 그렇고,
일체처에서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에 들면 다 사람들은 기뻐하고, 자기 마음에 거슬리면 다 성을 내는 것입니다.

천하인정(天下人情)이 몰양반(沒兩般)이여. 천하 모든 사람이 이 두 가지-성내지 아니하면 기뻐하고, 기뻐하지 아니하면 성내고.
왜 그러냐? 모든 것이 역경계(逆境界) 아니면 순경계(順境界)거든.

긍신순궁환역지(肯信順窮還逆至)하면, 순경계가 다하면 다시 역경계가 돌아온다고 하는 사실을 긍정하면 그것을 믿으면,

안개휴파자심만(眼開休把自心瞞)이여. 바로 모든 인간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모든 인연법(因緣法)에 눈을 뜨게 되어. 눈을 뜨게 되어가지고 스스로 속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 흥망성쇠(興亡盛衰)와 모든 생노병사가 전부 역경계, 순경계로 이렇게 새끼 꼬아지듯이 꼬아지면서, 그렇게 해서 성립이 되었다가 그놈이 또 무너지고 무너졌다가 다시 또...
오른손에 쥐었던 새끼와 왼손에 쥐었던 새끼가 번갈아가면서 서로 바뀌면서 이렇게 새끼가 꼬아지는데,

우리의 무량겁(無量劫) 지내온 것이 그렇게 꼬아졌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서 순경계·역경계, 생(生)과 사(死), 기쁨과 슬픔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면서 무량겁을 또 그렇게 갈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기쁨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나 슬픔만 있으라는 것이 없고, 언제까지 부자가 되어라 하는 법도 없고, 언제까지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란 법이 없어요.

가난해졌다 부자되고, 부자가 되었다 가난해지고, 친해졌다가 친한 사람이 웬수가 되고, 웬수가 다시 풀어지면 또 친해지고, 그러한 변화무쌍한 참 믿을 수가 없는거, 허망한 거,

그러한 것에 우리가 말려 들어갈 것이 없고 그런데에 속지를 말고 그런데에 집착을 하지 말고,
바로 거기서 ‘참나’로 돌아와야, 그 속에 살면서 거기에 빠지지 않고 거기에 속지 말아야, 우리가 참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내고 기뻐하는거, 그래서 뭔 사업이 좀 잘되어도 너무 좋아서 못 견디지 말고. 그렇게 좋아서 훌훌 뛰고 야단을 칠 것이 못되어. 그러다 보면 금방 언짢은 일이 툭 생기거든.
사업이 여의치 못하고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해서 그렇게 의기소침(意氣銷沈)이 되고 비관하고 아주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럴수록에 오히려 더 정신을 가다듬고 부처님 믿는 마음으로 ‘이뭣고?’를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여건을 최대한으로 잘 살려서 노력을 하다보면 반드시 밝은 길이 또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잘되었다고 뭔 일이 성공을 했다고 지나치게 좋아서 훌훌 뛰고 하면 그것이 또 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좋아할 것도 없고 지나치게 비관할 것도 없어요.

공부가 잘되어도 지나치게 좋아하는 생각을 내면, 환희심을 내면 환희(歡喜)라고 하는 마군(魔軍)이가 벌써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되고,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내면 번뇌(煩惱)의 마군이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있거든.
마군이는 ‘환희의 마군이’도 마군이고, ‘번뇌의 마군이’도 마군이거든.
그래서 우리 공부하는 사람이 어찌 그런 환희마(歡喜魔)나 번뇌마(煩惱魔)를 갖다가 우리 안으로 불러들일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번뇌마도 좋은 것이 아니지만 환희마도 못쓰는 것이여. 환희마가 들어오면 벌써 그게 바르게 공부가 되어간 것이 아니거든. 마군이가 딱 차지하고 있는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냐.

공부는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스님네나 또 보살님네나, 또 방부를 들이지 아니한 분이나,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방부를 안 들인 사람도 세 때 밥을 먹고, 방부를 들인 분도 세 때 밥을 먹고, 똥 누고, 걸어가고, 씻고 그게 바로 인간 생활인데 그 생활을 여의고 따로 얻은 공부해야 할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눈으로 모든 색상(色相)을 보되 그것이 그 색상이 관계치 않어.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그말이여.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이 소리가 소리가 아니여.
참선 공부를 아니한 사람은 무엇을 보면  붉다, 노랗다, 저것은 푸르다, 저것은 산이다, 저것은 자동차다. 떡 보는 순간부터서 둘째 생각, 셋째 생각이 계속해서 연달아서 막 가지가 번져 나가는 거여.

또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새소리가 들리면 새에 관해서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이,
새소리를 들으면 ‘아유, 봄이 왔구나. 봄이 오면 얼마 안 있으면 또 꽃이 피겠지. 그러면 밭에 또 채소 씨를 심어야겠다.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작년에는 농사가 시원찮았으니까 금년에는 잘 지어야겠지’
한 생각이 두 생각, 두 생각에서 세 생각으로 막 번져나가.

참선하는 사람은 눈으로 무슨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여. 색상에 관계를 하지 않고 바로 ‘이뭣고?’거든. 바로 자기로 돌아와 버려. ‘이뭣고?’ ‘이뭣고?’
귀에 무슨 소리가 들려도 그리 따라가지 말고,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나는 겨를도 없이 ‘이뭣고?’ 이렇게 돌아와버리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그말이여.

눈으로 보는 색상, 귀로 듣는 소리 거기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것이 바로 법왕이 계신 곳에 도달하는 길이다(親到法王城). 법왕(法王), 진리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눈을 뜨면 무엇인가 보게 되어 있고, 귀는 항상 열려 있으니까 무슨 소린가 듣게 되어 있어.
눈으로 볼 때마다 ‘이뭣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뭣고?’
우리 생각에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인가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있어.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소리가 소리가 아니요,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요, 모든 잡념이 잡념이 아니야.
전부가 다 ‘함이 없는 진리’로 돌아가는 길목이요 발판이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은 경묘년 3월 첫째 일요법회입니다. 그리고 어제가 바로 봄철 산철 결제(結制)날이었습니다.
오늘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다시 새로 결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일초일초를 한생각 한생각을 빈틈없이 단속을 하셔서 어린 소년이 발심을 해가지고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가지고 그어린 나이에 확철대오하신 조실스님의 법문을 항상 마음에 새겨서,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못 할 바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만 한다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41분23초~56분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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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역지즉노순지환~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의기소침(意氣銷沈) ;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음.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환희(歡喜) ; ①기쁨. 종교적으로 만족했을 때 일어나는 신심(身心)을 모두 바친 기쁨을 말함. 또, 기뻐하는 것. ②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기쁨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자기의 뜻에 알맞은 경계를 만났을 때의 기쁨. ③정토종(淨土宗)에서 사후(死後)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미리 기뻐하는 것.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장엄정토분, 야부 스님 게송 참고.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
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〇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〇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Posted by 닥공닥정
발심 자신(自信)2014. 6. 4. 16:33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1) 약 15분.

 

(2) 약 18분.

 


(1)------------------

우리가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께서 그 어려서 아주 소년시절에 출가를 해 가지고 어떻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지,
법당 뒤에다가 멍석을 깔고 거기에 방석 하나를 떠억 갖다 놓고서, 가서 공양시간에 공양만 드시고는 바로 나오셔서 그 법당 뒤에 자리에 와 가지고 앉아서 정진하시고,
그러다가 조금만 졸음이 오는 성 싶으면 일어나서 법당 뒤에서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하시다가, 또 잠이 깨지면 다시 또 그 자리에 와서 정진하고, 한 철을 그렇게 한결같이 정진을 하셨습니다.

입선(入禪)·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그저 밥만 한 숟갈 자시면은 바로 그 자리에 가서 공부를 하시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린 것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거 아주 공부한 척 한다고, 지가 저 며칠을 갈까 보냐고?’ 모다 수근덕거리고 모다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그랬었지만,
하루를 그렇게 하시고, 이틀을 그렇게 하시고 사흘, 나흘, 1달, 2달, 계속 한결같이 그렇게 하시거든.

어떻게 참 철저하게-그것이 일부러 지어서 헐랴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그냥 한목 돈발(頓發)을 하신 것이여.
지어서 한 것 같으면 며칠 하다가 배시시하고 식어버릴 텐데 그것이 아니거든.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이 그렇게 참 신심과 분심이 한목 났는가?
어릴 때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병이 나가지고 그래 가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 정든 친구, 같이 뛰놀고 공부하던 친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서 거기에서 결국은 발심(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그 친구가 죽은 뒤에 꿈을 꾸셨는데, 지옥 구경을 하시는 꿈을 꾸었어.
사람을 갖다가 톱으로 썰어서 죽이는 거 또 큰 맷돌에다가 사람을 콩나물처럼 여러 명씩을 집어넣으면서 맷돌을 들들들들 돌리니까 사람이 거기서 뼈와 살과 창자가 짓이겨져서 핏물이 꿀꿀꿀 쏟아지는 그런 광경하며.
그 지옥 구경을 하시고서 놀래서 꿈을 깨셨는데, 꿈을 깨가지고도 그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콧전에서 사라지지 아니하셨다 이거거든.
그런 꿈을 꾸시고서 대발심(大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어떠한 계기를 만나서 그런 발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상(無常)을 느낀다든지,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 흥망성쇠와 생사고뇌 속에서 가정에서나 또는 이웃친구나 그러한 인간의 영욕득실 경계에서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계기를 만나가지고 발심을 해야,
그래야 참 분심이 솟구쳐 오르고 공부를 해도 억지로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께서는 어려서 경을 배우시다가 그만 두어버리고 선방으로 나오셔서, 그때 선방에 나오신 수좌(首座) 가운데에 제일 나이가 어리셨다고 하니까,
그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 가지고 무섭게 정진을 해서 결국은 코에서 피가 쿨쿨 선지피가 넘어오고 그래도 공부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때 앉는 자세라든지 또는 호흡하는 법이라든지, 화두를 드는 법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상하게 지도하신 스님이 있었다면 그렇게 피가 넘어오지 않고도 이 공부를 잘 하실 수가 있었을 텐데,
그러한 분을 만나지를 못해가지고 그 신심과 분심이 복받쳐 오르는 바로 그것으로 화두를 맹렬히 들고 막 부셔나가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기(氣)가 상충(上衝)해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어서,
그렇게 피가 목구멍으로 나오고 콧구멍으로 나오고 해 가지고 하룻밤 지나고 나면은 턱밑에 가슴에 피가 아주 그냥 흘러내려 가지고 멍어리가 지고, 눈알은 벌게 가지고 충혈(充血)이 되고,

그래도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마침내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전라남도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를 가시는 도중에 개천을 건너면서, 그 돌로 이렇게 징검다리를 놓은 거기를 건너시다가 거기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하신 것입니다.

『운무(雲霧) 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하면 소를 찾겠는가?』 불현듯 그 생각이 나시면서 『담 너머 외 따오너라.』 ‘외’라고 한 것은 ‘오이’를 말한 것입니다.
‘담을 넘어가서 오이를 따오너라.’ 그 생각이 떠억 떠오르면서 그 심안(心眼)을 뜨셨는데, 그길로 태안사에 들어가 가지고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고,

이 법당 앞에서 오줌을 출출출출 누니까, 주지 스님이 나와 가지고 법당 앞에다 오줌 싼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님 앞에서 오줌을 눈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 없는 곳을 일러라!』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 대들었습니다.
『요새 수좌 놈들이 건방진 놈의 자식들. 당장 가라!』해 가지고 아침도 못 얻어 잡숫고 쫓겨났다고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라 하는 것은 그렇게 발심이 되어야 하고, 발심이 되어서 헐 때에 정말 그때 참 잘 단속을 하고 공부를 몰아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또 생각을 아무리 가다듬고 할라고 해도 억지로는 힘만 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러한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경계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역경계(逆境界)인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또는 육체상으로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사회 무슨 사업관계로나 도처에 우리가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기를 거기서 놓치지 말고 거기서 돌이켜 나간다면, 우리는 조실 스님과 같이 정말 발심을 하게 되는 것이고 발심이 되어야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발심이 안 되고 ‘참선이 좋다 하니까 나도 좀 해볼까’ 이러한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억지로 하는 것은 그것은 흉내내는 것 밖에는 안 되고, 흉내도 또 안 내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마는,

옛날에 원숭이가 산중에서 이리 뛰놀고 저리 뛰놀고 하다가 그 산중에 숲속에서 참선하시는 스님을 보고서 그 원숭이도 그렇게 그 스님의 흉내을 내서 떠억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
지가 무슨 참선이 무엇인줄 알겠습니까? 원숭이란 놈은 원래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짐승이라, 스님이 참선하고 있으니까 저도 그와같이 흉내를 내고 앉어.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출가해서 참선을 해가지고 도과(道果)를 이룬 것이 그게 바로 독성(獨聖)님이라 그런 것입니다.

잠시 흉내만 내는 인연으로도 그렇게 도과를 이루거든,
사람으로써 참선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도 좀 아침·저녁으로 해 보기도 하고, 또 토요일에 철야정진하기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아! 그것도 쉬지 않고 애를 쓰다 보면 언젠가는 헐랴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그냥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독로(獨露)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다행이 그러한 어떠한 경계를 만나서 신심과 분심이 돈발한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런 경우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자꾸 할라고 노력을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노력을 하고, 기회를 만들어서 노력을 하고, 방부를 들여서 노력을 하고, 또 이 선학원이라든지 그밖에 일요선방이라든지 그런데 가서도 할려고 노력을 하고,
가정에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1시간~2시간씩 하고 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히 분발(奮發)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명예나 부귀·공명,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해여.
산더미 같은 재산을 모여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온 세상을 다 차지할 만큼 큰 부자라도 한 푼 가지고 가지를 못하고, 명예나 권리가 하늘을 뻗지른다 하더라도 10년 20년을 넘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은 하나도 그것을 두려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23분36초)

 

 

 



(2)------------------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하되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니라
나무~아미타불~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헌디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니라
나무~아미타불~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로구나. 가난하고 빈궁(貧窮)하면 천(賤)하게 되고 부자가 되면 교만(憍慢)이 생겨.

사업에 실패해서 재산이 다 없어져 버리고 가난해지면 스스로 아주 천둥이가 된다 그말이여. 기를 피지 못하고 기운이 없고 살맛이 없고 어디 친구도 만나기가 싫고.
그러다가 사업이 잘되어서 돈푼 벌고 좋은 집을 살고 여유가 생기면 교만이 생겨. 남을 업신여기고 아주 자기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처럼 으시대고. 그런데,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여. 가난해서 천하게 느껴지거나, 부자가 되어 가지고 교만심이 나거나, 다 같이 무명(無明)의 불로써 자기가 자기를 태워 죽이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이여. 그러다가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이승을 하직하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부자라고 했다고 해서 더 알아주지도 않고, 가난했다고 해서 동정을 받지도 못해.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여. 염라대왕 앞에 턱 끌려가고서야 비로소, 하! 가난하고 부자고 그래봤자 그거 한 점(點)도 소용이 없다고 한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생사없는 도리, 무위·무위법(無爲法)은 가난한 사람도 가난할수록에 이것을 해야 천둥이가 안 되는 거고,
명예와 권리가 있고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교만심을 낼 것이 아니라 이 무위법-참선(參禪)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설사 가난해졌다 하더라도 천둥이가 되지를 않고, 사업이 잘되어서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남을 업신여기고 교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부자고 한 것이 잠깐 꿈속에서 가난뱅이가 되고 꿈속에서 부자가 된 것뿐인대,
꿈속에서 가난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해질 까닭도 없고, 꿈속에서 무슨 대갑부(大甲富)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교만을 낼 건덕지가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것이라는 하는 것은 이 무위법-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빈부귀천과 이 생노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고 교만하고 천할 것도 없고 하는-이 참선법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니 해 놓으면 천상 천둥이가 되었다가 교만을 부렸다가 허면서 꿈속에서 결국은 지옥 갈 채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하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인데, 아무 소용도 없다면 결과도 아무 소용이 없으면 괜찮하겠는데 결과적으로는 지옥 갈 준비를 한 것 밖에는 안 돼.

그래서 부자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병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죽을 고비에 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겪고 다 겪을 대로 겪어놔야 겨우 그때사 조금 ‘그렇구나’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겪는 것을 보고도 내가 그것을 깨달아버려야 하는데, 자기가 남하는 것은 예사로 보고, 자기가 겪고 겪을 대로 겪고 난 뒤에사 겨우 조금 ‘아하, 그렇구나’하고 느끼는데 그것도 오래가지를 못하고 금방 또 다시 경계(境界)에 끌려가고 경계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제는’하고 자꾸 바래고, ‘이번만 지내고 이 다음부터서 해야겠다’하고 자꾸 뒤로 미루고, 다른 것은 뒤로 미룰 수가 있지만 이 생사 문제, 일대사 문제는 뒤로 미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녀와 노소와 지식의 유무와 빈부귀천 그걸 가리지 말고 금생에 이 사람 몸뚱이 받았을 때 철저하게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법당에 앉아계실 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법당에서 나갈 때는 나갈 바로 그때,
앉았을 때는 앉았을 때 하고, 일어섰을 때는 일어섰을 때 하고, 걸어갈 때는 걸어갈 때 하고, 언제나 지금이거든.

사실은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에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지금이라고 할 때 시계바늘은 벌써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는 붙잡을 수가 없고, 다맛 ‘이뭣고?’ 뿐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1초 1초 생각 생각이 ‘이뭣고?’거든.

공부가 처음에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또 화두드는 법을 배워서 해보면 처음에는 곧잘 잘 된 것 같애.

그런데 한달 두달 석달 해가다 보면 영판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해 갖고 될 것인가 새삼스럽게 회의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보면은 모다 참선한다고 하지마는, 참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見性)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된가. 에이 해봤자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낸들 될 것인가’ 이렇게 해서 스스로 의심하고 자포자기를 하고.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할라고 할수록에 뭔 일이 자꾸 사건이 생겨.
집안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자손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일신상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무슨 근심 걱정거리가 생기기도하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되어간다 싶으면 꼭 무슨 사건이 일어나거든.

이것이 다 우연한 일이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도를 이루게 되면 제일 그것을 싫어한 사람이 누구냐?’하면 마군(魔軍)거든. 마군이는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멸망을 하게 되거든.
도인(道人)이 하나 태어남으로 해서 마군이가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마치 대한민국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면은 제일 싫어한 것이 이북의 공산당이거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치거든.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잘되고 세계적으로 훌륭해지면 자기네 설자리가 없어지거든.
결국은 전 이북(以北) 동포들이 이남(以南)이 행복하고 잘 살고 한줄 알면 전부 대한민국을 그리워하고 모두다 38선을 넘어오게 될것이고 전부 자유통일이 되기를 바라게 되면,
그 공산정권은 아무리 무섭게 탄압을 한다해도 결국은 전 백성이 민주주의를 원하고 전 백성이 대한민국을 그리워한다면 이북 공산당 무너진 것은 그건 참 봄이 돌아와서 얼음 녹듯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것을 다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치하에서 그렇게 무서운 탄압을 해서 그렇게 모다 서로 감시를 시키고 꼼짝을 못하게 하고 여행도 못하게 해도 전 백성이 자유을 원하고 민주주의를 원하고 그렇게 되면은 그 정권은 오래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이라고 모든 백성이 한결같이 바래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마음이요 우주의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 닦는 불자(佛子)도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마군이가 여러 가지 각도에서-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뚱이를 통해서, 우리의 심식(心識)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갖다가 현혹을 시키고 유혹을 하고 방해를 놓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군이의 현혹에 우리가 흔들리지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육근(六根) 문 뒤에서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잠깐 딴 생각 먹고 한눈을 팔면 바로 그 구멍을 통해서 마군이는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1분 1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그 ‘딴 생각(別念)’이라 하는 것은 명예에 대한 딴 생각, 권리나 부귀영화나 오욕락이나 그런것도 물론이지만, 가장 우리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 있어서는 ‘빨리 깨달으리라’하는 그런 생각, 누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기를 바래는 생각, ‘이렇게 해 갖고 이 공부가 깨달을 것인가?’ 그러한 생각, 또 공부해서 조금 득력(得力)을 해서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면 ‘아! 좋다’고 하는 생각, 조금 얻은걸 가지고 만족하는 생각, 이런 것들도 오히려 세속의 그런 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에 대한 생각보다도 더 무서운 생각이 바로 이러한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선지식(善知識)을 여의지 않고 좋은 도반(道伴)을 여의지 아니하고 같이 정진을 하면 자연히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킬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8분28초~41분22초)

 

 

 


------------------(1)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상충(上衝) ; 위로 치밀어 오름.
*멍어리 ; ‘멍울(우유나 풀 따위 속에 작고 둥글게 엉겨 굳은 덩이)’의 사투리.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심안(心眼) ; 마음의 눈. 지혜.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전강 선사 오도송(悟道頌).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3.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가부좌(跏趺坐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도과(道果 길·불교 도,결과 과) ; 불도(佛道) 수행의 결과(結果). 깨달음. 열반.
*독성(獨聖) ;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였다고 하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함.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분발(奮發 떨칠 분,꽃이필·이룰 발) ; 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2)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致(치)이루다. 이르다. 도달함. *賤(천)천하다. 신분이 낮다. *驕(교)교만하다. 자만함. *燒(소)타다. 사르다. *焂(=倏)(숙)갑자기. *忽(홀)문득. 갑자기. *饒(요)넉넉하다. 너그럽다. 풍요. 여유. *點(점)점. 작은 흔적. 작은 조각.
*빈궁(貧窮)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교만(憍慢) ; 자신이나 자신의 행위에 도취되어 일으키는 거만함을 교(憍),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일으키는 거만함을 만(慢)이라 함.
*천둥이 ; ‘천더기(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 또는 그런 물건)’의 사투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무위(無爲) ; ①(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일대사는 수행의 목적으로 말하면 ‘깨닫는 것’이고, 실천으로 말하면 ‘참선(參禪)’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행여나 ; [주로 부정문이나 반어 의문문에 쓰여]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행여(幸-)’를 좀더 분명하게 이르는 말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 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고]딴 생각(別念 별념)’에 관한 [몽산법어] (용화선원刊)에 있는 글.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몽산법어]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 6. 3. 17:30

§(326) (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모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탐진·번뇌가 바로 그 ‘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하나의 나타남이다, 진여불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도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번뇌망상을 여읠라고 할 것도 없고, 무위의 이치를 구할라고 할 것도 없다.


물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얼음을 보고 바로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는 줄 안다면, 얼음을 버리고서 따로 물을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약 9분.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하면  쟁사치원왕노형(爭似癡猿枉勞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군금욕식무위리(君今欲識無爲理)인댄, 그대가 이제 ‘함이 없는 이치(無爲)’를 알고자 할 진댄,
불리천차만별중(不離千差萬別中)이다. 천차만별(千差萬別) 가운데를 여의지를 말어라.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인데는, 다못 저 허공의 달이 못 가운데에 떨어진 줄만 안다면,
쟁사치원(爭似癡猿)이 왕노형(枉勞形)이리요. 어찌 어리석은 원숭이가 헛되이 수고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함이 없는 이치, 우리가 참선(參禪)을 해서 고행 정진(苦行精進)을 한 목적은 무위(無爲), ‘함이 없는 이치’를 깨닫고자 한 데에 있는 것이여.

우리 인생은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이 모든 것이 전부가 유위법(有爲法)이거든.
어떤 원인이 있어서 생겨나고, 어떤 일이 성립이 되었다가, 그 원인이 흩어지면 그것이 죽거나 또는 없어지거나 그러는데, 인간 세상에 그 오욕락(五欲樂)이 모두가 다 ‘함이 있는 법’이고, 흥망성쇠·희로애락·생노병사 일체가 다 유위법(有爲法)이여.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어 가지고, 그러다가 그 원인이 소멸이 되면은 모두가 다 죽게 되고 또 파괴가 되고 멸망하게 되고 그러는데.

영원히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생노병사를 초월한 것을 갖다가 무위(無爲)라 그러는데,
‘함이 없는 이치’다, ‘함이 없는 법’이다 그러는데.

그 ‘함이 없는 법’을 어떻게 해야 깨닫느냐? 어디서 찾아야 하느냐 하면, 바로 인간의 생노병사와 희로애락과 번뇌망상과 흥망성쇠(興亡盛衰) 바로 그 차별세계, 생멸·차별의 세계를 여의지 아니해야 한다.(不離千差萬別中)
바로 거기서 찾아야 생사없는 도리를 깨닫게 되지, 그 차별세계를 여의고 따로 ‘함이 없는 이치’를 찾을라고 하면 벌써 틀려버린 것이다.

단지공월낙담심(但知空月落潭心), 저 허공의 휘황찬 밝은 달이 못 가운데에 떨어져 못 가운데에 비춘 줄 안다면, 뭣하러 그 못 속에 있는 그 달을 건질라고 할 것이 있느냐.(爭似癡猿枉勞形)

원숭이가 샘을 들여다보니까 그 속에 휘영청 밝은 아주 좋은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건질려고 손을 넣으면은 흩어져 버리고, 또 손을 빼고 한참 있으면 또 나타나고, 또 그놈을 건질라고 손을 집어넣으면 또 흩어져 버리고, 아! 그런 참 어리석은 짓을 한 그 설화가 있는데.
그 허공의 달이 거기에 비추지, 그 물 속에 본래 달이 있는 것이 아니요. 물 속에 비친 것은 허공에 있는 달이 비췄다고 하는 사실만 안다면, 뭣하러 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질라고 할 것인가.

우리 인간의 차별 세계에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반겨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사랑하고 하는, 모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탐진·번뇌가 바로 그 ‘남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의 하나의 나타남이다, 진여불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파도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번뇌망상을 여읠라고 할 것도 없고, 무위의 이치를 구할라고 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물이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얼음을 보고 바로 얼음이 물과 다르지 않은 줄 안다면, 얼음을 버리고서 따로 물을 찾을 것이 없을 것이다.(처음~8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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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군금욕식무위리~ ; [금강경오가해]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무위(無爲) : 조작(造作)을 뜻하는 위(爲)가 없는 생멸변화가 없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함. 곧 실상•열반•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천차만별(千差萬別) ; 여러 가지 사물이 모두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음. 세상 사물이 한결같지 아니하고 각각 모습ㆍ모양이 다름을 이르는 말. ‘온갖 차별이 있는 모양·경계’의 뜻. 모든 경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고행(苦行)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유위(有爲,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