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20. 12. 15. 10:38

§((004)) 참선은 어렵지 않다. 일어나는 중생심으로, 중생심 일어나는 곳을 찾기 때문에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다.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 / 쥐로 모든 쥐를 잡는 법 / '이뭣고?' 화두 드는 법 /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참선밖에는 없다.

 

참선법이란 게 바로 쥐 한 마리 길러 가지고, 그 쥐로 하여금 모든 쥐를 다 잡어먹는 이치와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話頭)는, 그 화두가 내나 우리 중생심으로 들기 때문에 중생심 가운데에 한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그 중생심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중생심이 화두여. 마치 훈련을 잘 시켜 놓은 쥐와 마찬가지다.

이 화두 하나만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일어나는 생각—성이 나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천하 없는 번뇌와 망상이 퍼일어난다 하더라도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온 세상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찼을 때, 항아리에다가 간장을 가뜩 넣어 놓고, 메갱이로 그 항아리를 팡! 쳤을 때 그 항아리는 쩍! 갈라지면서 간장이 와그르르 쏟아질 겁니다.

이 온 내 마음속, 가슴속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 일체시 일체처에 이 세계에 화두가 가뜩찼을 때, 그때에 그 화두 한 뭉텡이가 툭 터진 날에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지어온 우리의 한없는 다생(多生) 업(業)이 거기에서 찰나간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04)—1975년 동안거 결제 (75.11.17) (용004)

 

약 16분.

 

참선이라 하면 덮어놓고 '어렵다. 속가에 살면서는 도저히 하기가—좋은 줄은 알지마는 하기가 어렵다' 이리 생각하시지마는.

'그리고 하려고 하면은 졸음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도저히 근기(根機)가 약하고, 아무래도 정법에 인연이 희박하고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우리는 참선은 못합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혹 계실는지 모르지마는, 이 참선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중생심을, 한도 끝도 없이 퍼일어나는 그 중생심을 다 띠어 버리고, 그리고 난 다음에 참선을 해야 된다고 한다면은 그것은 어렵습니다.

중생심을 버리고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중생심 속에서 일어나는 중생심으로, 중생심 일어나는 곳을 찾기 때문에 밖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루에면 열두 때 24시간 보고, 듣고, 느끼고, 성내고, 웃고 하는 그 물 끓듯, 불타듯 일어나는 중생심 속에서, 그 중생심으로 찾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남녀노소와 유식 무식이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성낼 중도 모르고, 웃을 중도 모르고, 좋아할 중도 모르고, 골낼 중도 모른, 또 아무 욕심도 없고 그러한 사람은 차라리 이 공부에도 역시 박력이 없기 때문에 공부에 진취가 별로 보이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욕심 많고, 심술궂고, 신경질 잘 내고, 불칼 같은 성미를 가지고 있는 그러한, 다른 일반 사람들이 볼 때에는 '사람 못되었다'고 그러한 핀잔을 받을 만한 성격의 소유자일수록에 그 생각만 바로 돌이켜서 화두를 열심히만 거각(擧却)한다고 하면은 오히려 그 사람이 누구보다도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번뇌가, 망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짜증을 낼 게 아니라,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면 그만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 쥐가 너무나도 쥐가 번식을 해 가지고, 쥐 때문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갔더니 어떠한 사람이 그 쥐 잡는 법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냐 하면은 쥐 한 마리를 다치지 않게 잡아 가지고, 그 쥐를 항아리에다 담은 다음에 한 2~3일 굶겨라. 굶긴 다음에 다른 쥐를 쥐덫으로 잡어가지고 쥐 살을 조끔씩 띠어 가지고 그 항아리 속에 있는 쥐를 멕여라 그랬습니다.

그 쥐가 배고프니까—처음에는 쥐고기 넣어 줘도 잘 안 먹더니, 배고프니까 그놈을 먹기 시작했다. 날마다 쥐고기를 넣어 주고, 넣어 주고 하다가 나중에는 쥐 통채로 새끼 한 마리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쥐새끼 한 마리를 먹었습니다. 다음에는 산 쥐새끼를 넣어 주었습니다. 산 쥐새끼도 처음에는 이리저리 놀리다 결국은 다 잡아먹었습니다. 나중에는 큰 쥐도 넣어 주니까 다 잡아먹었습니다.

이제 아주 쥐고기 잡아먹는데 대단히 아주 숙달이 되어서 아주 주식(主食)이 쥐가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 쥐를 항아리에서 내 주었습니다. 당장 그전에 자기가 다니던 쥐구녁으로 들어가서, 쥐 앵긴 대로 그놈이 다 잡아먹었습니다.

 

고양이가 아무리 쥐를 참 잘 잡는다 하지마는, 구멍에서 나온 놈밖에는 잡을 수가 없고 또 고양이 소리만 나면은 쥐는 미리 도망가기 때문에 고양이로서는 도저히 쥐를 다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쥐를 훈련을 시켜 가지고, 쥐를 놓아서 쥐로 하여금 쥐를 잡게 하니까 못 갈 데가 없단 말이여. 구녁, 구녁이 다니면서 늙은 쥐고, 젊은 쥐고, 새끼 쥐고, 에미 쥐고, 닥치는 대로 다 잡어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주인은 마지막에 그 쥐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집에 쥐를 다 멸종을 했다고 하는 우화가 있습니다.

 

참선법이란 게 바로 쥐 한 마리 길러 가지고, 그 쥐로 하여금 모든 쥐를 다 잡어먹는 이치와 비교해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話頭)는, 그 화두가 내나 우리 중생심으로 들기 때문에 중생심 가운데에 한 생각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그 중생심은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중생심이 화두여. 마치 훈련을 잘 시켜 놓은 쥐와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이 화두 하나만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서 일어나는 생각—성이 나거나 웃음이 나오거나, 기쁘거나 외롭거나, 천하 없는 번뇌와 망상이 퍼일어난다 하더라도 화두로써,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일어났던 그 중생심은 자취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이 온 세상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찼을 때, 항아리에다가 간장을 가뜩 넣어 놓고, 메갱이로 그 항아리를 팡! 쳤을 때 그 항아리는 쩍! 갈라지면서 간장이 와그르르 쏟아질 겁니다.

이 온 내 마음속, 가슴속뿐만이 아니라 모든 곳 모든 것, 일체시 일체처에 이 세계에 화두가 가뜩찼을 때, 그때에 그 화두 한 뭉텡이가 툭 터진 날에는 무량겁으로 오면서 지어온 우리의 한없는 다생(多生) 업(業)이 거기에서 찰나간에 녹아 없어질 것이며,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수행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렵다고 미리 겁을 집어먹고 열심히 아니하고, 또 하려고 해도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지 못하고 잘못하기 때문에 그렇고, 또 지도는 옳게 받아도 정말 골똘히 하지 아니한 데에서 공부가 늦어지는 것이지,

첫째,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가지고 나도 꼭! 깨달을 수 있다고 철저히 믿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진리를 깨달라서 생사해탈, 생사에 자재한 그러한 성현이 되었는데, 나는 무엇 하느라고 오늘날까지 중생으로서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가? 생사에 자재 못하고 있는가? 그것을 이를 악물고 분한 마음을 내며, 그래가지고 선지식으로부터 지도 받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철저하고 간절하게 거각해 나가진다고 하면은 그 사람 공부는 빠르면 사흘이요, 글안으면 일주일이요, 늦어도 삼 년.

'삼 년을 여법(如法)하게 그렇게 생명 바쳐 알뜰히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혀를 빼서 쟁기질하는 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믿지 아니하고 공부를 열심히 아니한다면은 너는 세세생생에 호랭이 밥이 될 것이다' 4조 도신 스님은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법문을, 고려 시대 보조국사는 이 법문을 듣고 너무나도 감개무량해서 가슴이 벅차서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꼭! 나도 하면 된다고 믿고, 나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까지 뭣 하느라고 이 문제를 해결 못했던가? 하는 이를 악물고 분을 내는 그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 가십시오.

 

화두는 '이뭣고?'

대관절 지금 제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걸 듣고 계신 여러분은 귀가 듣는 게 아닙니다. 귀를 통해서 우리는 들을 뿐입니다. 대관절 무엇이 듣느냔 말이여.

들을 줄 알고, 눈으로 보면 희다 검다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듣기 싫은 욕하면은 썽낼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그놈이 대관절 무엇인가? '이놈이 무엇인고?' '이놈이 무엇인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집에서 빨래를 하거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놈이 무엇인고?' '이-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이 무엇인고?'하면 일곱 자인데,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뭣고?'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지마는 간단하고 뜻은 그 가운데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 공부를 할 때는 '이뭣고?' '이뭣고?'

나중에 썽도 안 나고 무슨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현재 이 '이뭣고?'할 때 '이- 하는 놈이 무엇인고?'하는 뜻으로 '이- 뭣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시면은—처음에는 잘 안되고 '이뭣고?'하면서도 번갯불 치듯 지내간 일들이 스쳐가고, 얼투당투않는 일이 생각이 떠오르지마는, 버쩍! 깜짝 놀래서 다시 '이뭣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지마는 자꾸 하고 또 하다 보면은 그 가운데 신심이 나고, 분심이 나고, 의심이 더욱 간절해져서 나중에는 하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 나가다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아! 공부가 잘되는구나. 참 좋다' 이러한 생각 갖지 말 것.

또 아무리 하려고 해도 화두가 들리지는 않고 가슴은 답답하고 몸은 괴롭고 영 화두가 잘 들리지는 않고, 그러한 때가 옵니다. 그러더라도 조끔도 번민심을 내지 말고, 썽내지 말고, 잘 그 마음을 돌이켜서 심호흡하고 또 산책도 하고 좀 거닐어서 정신이 개운해지면 다시 와서 또 '이뭣고?' 이렇게 해서 마음을 그렇게 잘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썽낼 때에도 그놈을 돌이켜서 '대관절 무엇이 이렇게 썽낼 줄 아나?' 썽내는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시지 말고, 썽내는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한번 떡 들고서 그 썽내는 일을 처리를 하시게 되면은 일이 감정적으로 처리가 되는 게 아니라, 아주 냉정한 이성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도 이 참선을 하게 되면은 대단히 유익한 것입니다.

 

하물며 열심히 하면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 바쳐 할 일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은 이것 하나 하자고 있는 것이지, 그 밖에 것은 이것을 하기 위한 방편(方便)들입니다. 배라고 하는 것은 물을 건너가기 위해서 배가 필요한 것이여.

불법에 팔만사천 가지 모든 방편은 내가 '나' 깨닫기 위한 방편들입니다. 그 방편 중에서도 이 화두참선,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정법, 활구참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렇게 어떠한 큰스님네나 다 화두를 다 그렇게 일러 주십니다. 그러나 똑같은 화두를 지도 받아서 하면서도 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바르게 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바르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르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느냐?

거두절미하고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다못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만 들어 가는 사람, 그것이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사구참선(死句參禪), 죽은 참선은 어떻게 하느냐? 또 삿된 참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삿된 참선이요, 죽은 참선이냐 하면은 이론으로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한—경전을 보았던지, 선지식의 또는 어록을 보았던지, 어떤 큰스님네 법문을 들었던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한 불교에 대한 지식, 상식, 교리 이러한 것을 동원해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 보고 연구해 보고 비교해 보고 또 분석… (15분24초~30분47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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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004)) 법문은 내가 나를 깨닫기 위해서 듣는 것 / 최고의 방편이 활구참선법 / 환성지안 선사와 월봉 스님 / 『백유경(百喩經)』 '나귀 젖' 이야기. 올바른 참선을 해야 한다.

 

외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깨닫지 못하고 깨달은 척하면은 그것이 바로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을 망해 먹는 외도가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포교를 하고, 또 참선법을 포교를 하고, 참! 그런 분들이야말로 자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런 좋은 법을 가르켜 줘야겠다' 해 가지고 포교를 하고, 설교를 하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참선법을 가르킨다든지, 불교의 진리를 설할 때에는 절대로 자기 자신이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No.004)—1975년 동안거 결제 (75.11.17) (용004)

 

약 16분.

 

을묘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법문(法門)은 무슨 이론을 배우기 위하거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 잘하기 위해서 듣는 것입니다.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있겠지마는, 부처님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에 가장 요긴하고 가깝고 빠르고 한 그러한 최고의 방편이 활구참선법입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조실 스님께 지도 받은 그 화두(話頭)를 큰 신심과 분심으로 바탕해서 의심을 일으키는 그 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을 훨씬 더 좋게 생각합니다.

그만큼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오늘 한 시간에 걸쳐서 들으셨으면은 불같은 신심(信心)과, 불같은 분심(憤心)과, 불과 같은 그런 의심(疑心)이 마음속으로부터 솟구쳐 오르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목탁을 세 번 칠 테니까 금방 조실 스님으로부터 들은 그 법문으로 인해서 큰 의심을 간절히 일으켜서 화두를 한번 들어 보십시다.

"목탁 세 번 치세요"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다시 그 법문을 듣고 다시 말씀할 바는 없지마는, 이 가운데에는 여태까지 다른 절에 다니시면서 이런 큰스님 법문도 많이 들어 보시지 못하고 이번에 처음으로 오신 그러한 신참보살님네들도 계시고 해서 그러한 분을 위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이, 깊은 법문이 다문 조끔이라도 이해가 되시게 하기 위해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아까 환성지안(喚醒志安) 선사라고 한 큰 도인과 월봉 외도(外道)라고 하는, 월봉 스님이라고 하는 큰 강사 스님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월봉 스님이 처음부터 외도가 아니라 대강사 스님이요. 아주 훌륭한 국사(國師)가 될 만큼 그러한 존경을 받는, 많은 제자를 가지고 계신 그리고 설교를 그렇게 잘하실 수가 없는 그러한 고승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글을 잘하고, 얼굴이 잘생기고,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지마는 바로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원각경』에 있는 말씀 한마디를 올바르게 새기지 못해서, 환성지안 선사로부터 할(喝)을 입고, 금강신장의 철퇴를 맞고 피를 쏟고 꺼꾸러졌던 것입니다.

 

외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깨닫지 못하고 깨달은 척하면은 그것이 바로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을 망해 먹는 외도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 부처님께서 『백유경(百喩經)』이라고 하는 경전에 말씀하신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마음을 닦고, 부처님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참으로 바른 선지식을 만나서 바로 지도를 받아야만 옳게 깨달을 수가 있지. 바른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고 그릇 공부를 하게 되면은 아무리 열심히 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생명을 바쳐서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결단코 나를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평생을 허송세월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까지 모다 그르치고 결국은 불법을 망하게까지 된다고 하는 그러한 내용입니다.

 

백유경에 말씀하시기를, '나귀 젖을 먹으면은 대단히 맛이 좋고, 몸에 보약이 될 뿐만 아니라 수명장수하고, 온갖 병이 다 낫는다' 이러한 말이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마을에 동장(洞長)이 멀리 여행을 갔다가 마침 어느 집에 나귀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가지고 바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와 가지고, 그 마을 사람들에게 "그 나귀의 젖을 먹으면 그렇게 좋다는데 내가 그 나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그 나귀값이 어떻게 비싸든지 내 혼자는 살 수가 없고, 온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다 모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나귀를 사다가 그 젖을 짜 먹으면은 우리가 모다 병 있는 사람은 병도 낫고, 수명장수하고 참 몸이 건강해져서 일생을 참 행복하게 살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그 동장이 똑똑하고 인격자고 그러기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돈을 백 냥씩, 이백 냥씩 모다 돈을 내가지고 그 나귀를, 그 동장을 시켜서 나귀를 사 오게 했습니다.

동장이 나귀를 떠억 사 왔는데, 무슨 나귀를 사 왔냐 하면은 숫나귀를 사 왔어요. 숫나귀를 뜨윽 사다가 며칠을 잘 멕여 가지고, 보리와 콩을 잘 삶아 멕인 다음에 마을 가운데 공회당 앞에다가 뜨윽 멍석을 깔고, 그 앞에다 나귀를 모셔 놨습니다. 모셔 놓고는 동장으로부터 온 마을 대표들이 나와서 생전 그 나귀는 처음 본 것이라 말만, 좋단 말만 들었지 그 나귀는 정말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그 대표자가 대여섯 분 나와 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멀찍이 서서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대표자가 나와 가지고 구녁 있는 대로 주물러서 그 젖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주무르다가 무슨 액체가 나오면 그것이 좋은 줄 알고 입을 대고 막 빨아먹고 그랬습니다. 뒤에 가서 빨아먹다가 나귀란 놈이 처음에는 가만히 있더니 발길로 차서 동장이 대골통이 터져서 꺼꾸러졌습니다. 그래 어디 한 군데를 만지니까, 차츰차츰 늘어나더니 거기서 물이 막 나왔습니다.

 

하! 그러니까 나귀에 젖이 나온다고 그놈을 갖다가 바께스를 갖다 대고 그놈을 받았습니다. 받아 가지고 그놈을 서로 먼저 많이 먹으려고 달려든 것을 간신히 제지를 해 가지고 조끄만한 잔으로 조끔씩 조끔씩, 돈 많이 낸 사람은 조끔 더 멕이고, 적게 낸 사람은 조끔 멕이고 해서 그놈을 고루고루 노놔 먹었습니다.

먹으니까 쯥쯜한 것이 대관절 처음 맛본 것이라 '그래서 이것이 몸에 그렇게 좋구나'하고, 그걸 먹고서 온 마을 사람들이 '인자 나는 가슴앓이도 낫고, 이질 배아피 곱똥 설사도 낫고, 허리 아프고 엉뎅이 쑤신 디도 다 낫겠다' 해서 대단히 기분이 좋게 잠을 잤습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타고 그 마을을 지내갔습니다. 그러니까 온 마을 사람들이 또 나귀가 왔다 해 가지고는 그 나귀 젖을 좀 또 돈을 내고라도 좀 짜 먹자고 달라들었습니다.

"이것은 암놈이 아니라 숫놈이라 이것은 젖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곧이를 안 들었습니다.

"접때 나귀를 돈을 많이 주고 사다 우리 짜서 온 마을 사람들이 노나 먹었는데, 내나 이 나귀도 그 나귀와 똑같은 것이 붙었는데 왜 젖이 안 나온다고 하느냐?" 절대로 곧이 안 듣고, 그 사람한테 사정을 해 가지고 나귀값 몇십 배를 주고 강제로 사다시피 해 가지고 또 그 말(나귀) 오줌을 빨아먹었습니다.

 

'경(經)에 무슨 그런 말이 있을까?' 하고 혹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마는 이것은 분명히 『백유경(百喩經)』이라, '일백 백(百)'자, '비유할 유(喩)'자, 백유경(百喩經)이라는 경전에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왜 내가 해필 이 말씀을 여러분께 하냐 하면은, '불법이 좋다. 불법 중에서도 참선이 참 좋다'—한국에 태어난, 한국에 지금 불교 신도가 천만 명이 된다 합니다마는 그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선 좋다'고 한 말은 다 들었을 것입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양 사람들도 지금 한참 참선에 열이 오르고 있습니다.

 

제가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이렇게 참, 불법 중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참선을 하려고 신심이 나는 것에 대해서는 자다가 생각해도 고맙고 감사하고 기쁠 도리가 없습니다마는, 행여나 이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참선을 한답시고, 나귀 오줌을 빨아먹는 그러한 식의 참선을 한다고 하면은 이건 큰일이다 이겁니다.

동장이 그 먼 데까지 가 가지고 나귀를 사 온 것까지도 대단히 고마운 일이고, 자기만 수명장수할 뿐만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을 다 같이 무병장수하고 수명장수하게 해야겠다'한 그러한 참 신심과 온 동민들을 위해서 그렇게 참 부지런히 성의껏 한 것까지는 좋으나, 아! 자기가 숫놈인지, 암놈인지를 알고 암놈을 사와야 할 텐데 숫놈을 사다가 그 오줌을 노놔 멕였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불법을 포교를 하고, 또 참선법을 포교를 하고, 참! 그런 분들이야말로 자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이런 좋은 법을 가르켜 줘야겠다' 해 가지고 포교를 하고, 설교를 하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참선법을 가르킨다든지, 불교의 진리를 설할 때에는 절대로 자기 자신이 먼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절이라고 다 절이 아니고, 절은 다 한 부처님이다. 이 절이나, 저 절이나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다. 어느 절에 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마는, 정말 우리는 우리를 바로 가르켜주시고, 우리를 눈뜨게 해 주시는 선지식(善知識)을 반드시 옳게 가려야만 되겠습니다.

다행히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께서는 그러한 훌륭하신 선지식을 만나 뵈옵고 법문도 많이 듣고, 설사 열반은 하셨다고 하지마는 우리는 오늘 생생하게 그 생존 시의 법문을 조금도 다름없이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러한 좋은 법문을 듣고, 우리가 실참실수(實參實修), 실다웁게 닦고, 실다웁게 깨닫지 아니한다면은 아무리 그런 좋은 법문이라 한들 백 번을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처음~15분2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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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