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심(5/7) (智學成菩提~纏綿意地) - 전강선사(No.149)

**전강선사(No.149)—초심(5/7)(智學成菩提~纏綿意地)(임자72.08.16) (전149)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1) 약 28분.

 

(2) 약 29분.



(1)------------------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이  비희일침몽(悲喜一枕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언각회수(無言却回首)허고  산정백운중(山頂白雲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인생몽(人生夢)이다. 사람의 꿈이다.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이 서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흩어지는 인생의 부부 내외간이든지, 자식지간이든지 모두 그 취산(聚散)이여. 모여졌다가 흩어져 버리는 것이여.
어디 그게 꼭 내 남편이며, 어디 그 꼭 내 마누라며, 내 자식이며, 어디 그 한 그저 잠깐 동안 뭔 인연이 그 뭐 모여져서 남편이니 마누라니 자식이니 허지, 그것이 무엇이여? 꿈 아니어?

그 10년 취산(聚散)이—10년이 될는지, 원 20년이 될는지, 5년이 될는지 그 취산이, 뭐 남편이니 마누래니 자식이니 아들이니 손자니 허지마는 그놈의 취산이라는 것이 그거 10년 꿈이여. 10년 꿈, '10년을 지낸들 꿈이라' 그 말이지.
10년 더 가기도 허고 그저 7~80년 되기도 허지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모여져서 죄만 짓기로 마련이거든, 그 화택 중생(火宅衆生)은. 우리는 화택 중생 아닌가?

날마다 가지고 있는 몸뚱이가 무상고화(無常苦火)가 사면구분(四面俱焚)이다. 무상(無常)한, 항상 함이 없는 고화(苦火)가 고통 불이 자꾸 타들어 와. 매일 그뿐이거든. 그것을 항상 생각해야 도인(道人)이여.
무상고화(無常苦火)가 사면구분(四面俱焚)헌데 인생취산(人生聚散)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지. 한바탕 봄꿈이여.

무언각회수(無言却回首)해라. 말없이 머리를 선(禪)으로 돌려라. 참선(參禪)!
그 인생 문제, 인생 해탈, 인생 생사 없는 그 도(道)를 찾아라. 헐 수 없다 그밖에는. 그밖에 찾는 길이 없고 그것밖에는 닦는 법이 없으니, 그밖에는 별 천만 가지를 다 해 봤던들 꿈이여.

쌍가마를 타고 무슨 허공에 잠을 자고 별짓 다 한들, 좋으면 뭣 혀? 일시 좋았다가 그만 그 또 나쁜 일이, 좋은 것만치 나쁜 일이 있음사 하지마는, 한번 좋으면 좋은 가운데—가령 그 좋고 맛있고 그 놀고 그 모도 그것이 방일(放逸)허고 그것이 죄인데, 모두 남의 목숨 그놈 잘 찢어서 먹고 그 좋아서 히히 하고 놀고 춤추고 야단치고, 맨 오락이라는 것이 그 죄 짓는 것인데.
먹어야 모도 놀고, 시은(施恩)을 지어야 놀고, 좋은 광음(光陰)을 허송해야 놀고, 맨 그 짓하다가 죄 받기는 고 짓 천배 만배 잠깐 진낙(塵樂), 인간의 그 티끌 속에서 낙(樂) 받은 그 억만 배를 그 악도(惡途)에 떨어져 받는다 그 말이여.

목숨 하나만 죽여도 죽인 건 잠깐 동안 죽였건마는, 나는 몇천만 번을 당허니까—"네 이놈, 살생을 헌 놈이니까 너 좀 받아 봐라" 허고는 몇천만 배를 받으니까. 낙시고인(樂是苦因)이냐? 즐거운 것이 고(苦)의 인연(因緣)이다. 괴로운 것, 고(苦) 받을라고 짓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악도에 떨어질라고 짓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것을 생각해라.

그래서 말없는 선(禪), 말없는 참선, 도(道)에 들어서 그 참선을 허는데 항상 백운중(白雲中)에, 저 백운 걸린 데, 항상 그 도 닦는 처소에, 도 닦는 방에 그 모도 그 백운중이여, 산중이고. 그 시끄러운 데를 피해서 고요한 데 앉아 지내는 것을 백운중이락 햐. 그렇게 똑 지내라.


공부를, 참선하는 사람이 제일 요긴한 것이 있다. 제일 요긴한 것은 법문(法門)이다. 법문이거든. 그 법문 들을라고 참 도 닦는 사람은 천하에 그 옳은 법문 한번 들을라고 기맥힌 것이여.
믿지 않는 사람은 그 뭐여, 그까짓 법문이 뭐여? 그 뭐. 노래 한마디 듣는 것만도 못하고, 좋은 얘기 한마디 듣는 것만도 못허지. 법문이 뭣이여? 귓가에도 들어오지도 않지. 그런 건 우(愚)니까. 타락우치(墮落愚癡)여. 우치에 떨어져서 죄 짓는 죄인이여.

그래 지학(智學)은, 지혜학은 법문이 소중하기를 기가 맥히지. 세상에 법문을 안 듣고야 알 수가 있어야지. 법문을 들어야 도행(道行)을 허고, 법문을 들어야 도를 닦고, 생사해탈허는 거 아닌가?

주법인(主法人)에. 우학(愚學)은 성생사(成生死)요. 어리석게 배우는 것은 생사의 죄만 짓는 것이니, 이렇게 인자 지학(智學)은 보리(菩提)허고 지학은, 지혜스럽게 배우는 것은 생사해탈 대도(大道)를 배우는 법이고, 이러하니 우리는 생사해탈도를 배우는 거 아닌가? 지학 아닌가? 지혜스러운 학자, 혜학자 아닌가?

주법인(主法人)에, 저 법 설(說)하는 주법인에, 법 설하는 주법인이면 지끔 오늘로 말하면 '나'지.
여기에 법(法)을 주법을 가진, 법을 가지고 설하는 조실 스님에게 법문하는데 경박상(輕薄想)을 내지 마라. 개벼이 개벼운 상을 짓지 마라.

'법문 그 뭐...' 그러니 잠밖에 올 것 없지. 벌써 법문 들을 때, 태도 보면 알거든. 반연(攀緣)을 허든지, 반연은 법문 들으면서 뭐 벽을 보든지, 사람을 쳐다보든지, 옆에 사람을 찝쩍거리던지 그거 반연이여. 그런 놈에 반연 경박상(輕薄想)을 가져? 경박상을 내지 말아라.

인지어도(因之於道)에 유장(有障)하야, 인(因)해야 도(道)에 장애가 되어서. 제 도에 장애가 되어, 제 도에. 제게 장애가 되어, 제게. 다른 사람께 아무 관계 없어. 법 설한 이에게도 관계 없고 똑 제 도(道)에, 저 도(道) 닦는 데 장애가 되아. 제일 해로워. 인(因)해야 저 도에 장애가 되어서.

그 장애 되는 것, 유장(有障)이여. '맥힐 장(障)' 자, 도에 맥혀 버려. 도는 소용없어. 불능진수(不能進修)다. 진수(進修)치 못한다. 도를 닦지 못하는 법이여.
법문을 벌써 듣기 싫어허고, 법문만 설허면 자고, 반연이경(攀緣異境)하고. 그 무슨 놈의 법문만 허면 슬무시 잠부텀 자고. 그 무슨 놈의 도여? 도 닦을 것이여, 그 사람이? 그러니 보면 알어. 대중 중에 따악 벌써 보면 옳다! 대번 보여. 절수신지(切須愼之)니라. 그 참 크게 삼가이 해라. 그렇게 허지 말아라.

논(論)에 이르되, '그 설(說)헌 것을 그 설허는가 보다' 그러지마는, 보이는 대로 설허지.
논(論)에 이르되, 이거 필요헌 말이거든. 논(論)이라는 것은 논설, 모도 부처님의 경율론(經律論) 그렇지 않는가?

논에 말씀허기를, 어떠헌 죄(罪) 진 사람이, 도둑놈이 횃불을 잡고 가거든 도둑놈 횃불이라고, 도둑놈이라고 그 횃불을 따라가지 아니허면 구렁에 떨어져 죽으리라. 아무리 도둑놈이고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횃불만, 불만 있거든 따라가거라, 밤중에. 그래야 광명(光明)을 따라가지, 안 따라가면 빠져 죽는다.

도인(道人)이, 도(道) 있는 도인이 아무리 도는 있다 하드래도 사람이 나빠. 사람 다르고, 사람 성질 다르고, 도 다른 것이여. '도인이니깐 좋다' 소용없어. 도인도 방정맞은 도인이 있고, 암만 도는 있어도. 그러니 영아행(嬰兒行)이라니까. 어린아 행이여. 오직 해야 도인을 어린아라고 했어.
도만 있으면 점잖을 줄 알고, 똥도 안 누고 오줌도 안 쌀 줄 알았어. 우리도 그런 줄 알았지, 어릴 때. 그게 아니어. 개벼운 사람은 개볍고, 무거운 사람은 무겁고, 그 도인의 성격이 달러.

혜월 스님은 그렇게 참 투철헌 도인이라고 다 한국에 그랬지마는 밤낮 솔방울, 그것도 그 부지런해서 그러지마는 방태를 짊어지고 솔방울 낭구를 어떻게 잘 올라가는지 냉기에 올라가서 솔방울은 다 따온다, 불 땔라고. 또 방에 들어오면은 놀들 못혀, 한시도. 그렇게 부지런혀.
밤낮 신 삼아서—평생에 당신 신 삼아? 당신 신을라고 삼아? 안 삼아. 똑 대중 신 삼아서 앞에 놓고. 모도 허는 짓이 모도 불때서 방 따숩게 맨들라 허고. 허는 짓이 대중 위해서 허는 것이거든. 내 몸보담도 스님네를 더 위한, 더 위한 몸이거든.

양식(糧食) 농사(農事)진다고, 밤낮 중방내 가 '농사지어서 우리 선객(禪客) 양식 헌다'고. 통 자기는 몰라. 자시는 것도 자기 잡숫는 것은 그만 그저 모르고, 똑 대중만 그렇게 위해서 한시도 안 노시지. 도인(道人)이 그런단 말이여. 그런 게 잘못 본 사람들은 그 '솔방울을 다 따? 신을 다 삼고?'

농사진다고 논두렁에 가 서서 모도 그 모도 이렇게 꽂고 저렇게 꽂고, "느그 이놈들, 잘못헌다 이놈들"
돈은 신도가 한 만 원쯤 넣으면—그때 돈 만 원 줬어. 그때 돈으로 만 원이면 지금 일 억은 될 것이여. 모도 신도가 모아서 스님 잡숫고 도 닦으시라고 준 걸 갖다가, "아! 내가 그 뭣 혀?"

말키 중방내 가서 논 친다고, 그 논을 넨장 그 산에다 갖다가 논을 쳐 놓으니 물이 어디서, 물 그놈 그 논에까장 오도록 그 산을 파서 산골짝 물이 내려오도록 헐라면은 인부가 당초에 말할 수가 없는데, 아! 그놈을 들이고는 이놈도 돈 쑥 빼주고 저놈도 돈 쑥 빼주고 그저 뭐...

그래가지고 농사지어 백만 원이나 들여서 논을 파 가지고 농사지어 놓으면, 나락 한 두어 다발 나오면, “봐라! 이 나락이 어디서 나오겄냐?” 돈 백 만원 들어간 건 생각도 안 하고, 나락 두어 다발 나온 것 보고 “이거 봐라!” 그런 이여.
아 그렇게 도무지 그 무심혀. 도인행(道人行)이라는 게 그렇게 어리석어. 도행은 그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영아행(嬰兒行)이여. 어린아행이여. 그런 모도 타산적(打算的)이, 내 생각 낸 건 조끔도 없고.


광명 안 따라가면 떨어져 죽는다. 문법지차(聞法之次)에, 법문 들을 때 여리박빙(如履薄氷)이여. 엷은 얼음 디디고 선 것 같이 딱 정신을 고루아서, 엷은 얼음을 디뎠으니 깊은 물에 엷은 얼음을 디뎠으니 그저 상신실명(喪身失命)이 착인데, 잠깐 푹 빠져 죽어 버려.
금생에 결코 이 참선허는 법을 배워서 결코 옳게 들어 가지고 알아 닦아야사, 얼음이고 지랄이고 뭐 빠져 죽고 뭐 없지. 다시 그 정직한 마음으로 도만 닦아 나가면은 견성(見性)은 못하더라도 얼마나 행실이 정직하고 도 닦는 사람이—항상 내가 말하지 않아? 십중대계(十重大戒)가 항상 있어. 그저 항상 '이뭣고?'만 찾으니 그 사람이 뭐 어디 죄지을 수가 있는가? 그 가운데에 그 몰리몰리 그 죄 짓고 속이고 그런 건 말할 것도 없고.

경허 큰스님 같이 훌륭하게 깨달은 이라도 가다가 그만 여자 젖퉁이를 가서 그만 드리 만지다가, 아! 그만 쫓아오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가네. 그런 어른이다니.
그 '키 큰 이가 사람 죽였다'고 소문이 다 안 났는가? 그렇다고 경허 스님, 아니라고 어디 헌가? 사람 죽였으니—도인의 비방은 그렇게 나.

아이 하나를 데리고 댕기네. 어린 시봉(侍奉)을 데리고 댕겨. 쪼끄만헌 어린 시봉을 데리고 댕기니까, 시봉을 데리고 저 갑산 재를 넘어가시다가 도둑놈을 만났어. 그 어린것을 끌고 가야 헐 것인데, 어린것 그거는 열 칠팔 살 먹은 놈이, 아직 숨도 덜 찬 놈이 어디 그렇게 걸음이 빠르도 못하고 둔한 놈인데, 그놈은 내던져버리고 당신 혼자 그만 산을 올라서 넘어서 그 도둑놈을 피했단 말이여. 화적(火賊)을 피했는데, 그때 당시에 화적이란 건 굉장했는데.

아! 도둑놈이 인자 가다가 그 쪼끄만헌 놈이 가다가 말 내면, 인자 즈그 '화적 그리 지내갔다'고 허면 즈그에게 큰일나니까 어린놈을 그냥 나무에다 똘똘 묶어 논께, 딱 묶어 버렸은께, 아! 이놈이 그냥 살 수 있는가, 산중에서? 그 죽었지.
옴폭 둘러썼지. '당신이 살인냈다'고, 아! 살인냈다고 둘러써 잡으러 그만 사방 그만 역졸(役卒)이 그때는 역인데, 역인이 잡으러 막 나와서 사방 송경허(宋鏡虛)를 찾는데 그만 그길로 간 김에 멀리 가 버렸지.

저 황해도(함경도) 갑산(甲山)을 들어가서 머리 길루어 버리고 속인 되어가지고는, 그때쯤이야 뭐 그 가 숨어버리면 그만이지. 속인 되어가지고 담뱃대 한발이나 되는 놈 하나 맞춰 가지고 잡숫고, 아이들 글이나 가르키고 이러다 돌아가셨어. 도인 생애가 그렇다 그 말이여.
어디 당신이 죽였나? 그 무슨 그 도둑놈이 죽였지마는 당신이 죽인 걸로 옴빡 둘러써 '사람 죽였다' 소문 다 나고. 별 소문 다 났지.

그 경허 스님 법문이라는 건 말할 수도 없고. 그 경허 스님이 중흥조여. 그리 거룩한 도인(道人)이라도 아!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말이여.
도인이라도 항상 그 위태로운 곳은 들어가는 법이 없고, 난방(亂邦)을 다 피허는 법이고, 그런 일이 있으면 피해서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고, 도인일수록에 더욱 몸을 조심해서 잘 가지고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여. 도(道)가 어디 전입전심(轉入轉深)이지. 전전(轉轉)이 더 깊고 더... 해 갈수록에 더해 가는 법이지.

그러헌 도인이, 훌륭헌 도인이 별 행(行)을 다 나투는 것이여. 팔십일[八十一] 행이 있는데 다 모도 고런 짓을 도행(道行)이라고 했다 그 말이여.

그러면 그렇게 되지도 못헌 것이 건방구지게 나와서 고런 행동을 허네. 고것은 망작무애(妄作無碍)의 행이여. 망령되이 걸림 없는 도둑놈의 행을 참말로 짓는 것이고, 참 고약한 죄를 짓는 놈이고, 남을 속이는 놈이여. 도(道)도 없는 것이 인자 또 고런 행동을 허네. 그 어디 도인이면 왜 그런 행동헐 것인가?
도인이 유시호(有時乎) 그런 행을 해서 사람에, 그 도학자(道學者)에 그 다루는 법이 있어. 그러니 '저놈 도를 닦을 놈인가 못 닦을 놈인가' 그럴 때 한 번씩 다뤄보는 그런 것이 뭣이 있는 법이다 그 말이여. 어디 또 도인이라고 다 그런가? 그럼 도인이 뭐 그런 81행만 하게, 나쁜 행만 하게?

도인이—홍도 비구! 구랭이 되어 가지고 이놈이 눈을 뜨고서는 '내가 홍도 비구인데 죄를 짓고 이놈의 몸뚱이 받았다' 모도 이러헌 권행(權行), 이러헌 권행이라는 것은 '봐라, 이런 것을 봐라' 그 말이여. '느그도 좀 봐라' 그 말이여. '죄짓고 나같이 된다' 이 말이여.

소가 되아 가지고도 “아! 이놈아 나도 아무 때 아무개 것 갖다 먹고 소가 됐다 이놈아, 너도 갖다 먹고 나처럼 될 것이다” 이래 모도 법문해 주는 일, 그거 도행(道行)이여. 아 세상에 위산 스님 같은 도인이 없는데, 위산 스님 “내가 죽어서 내가 넘의 것을 많이 먹었으니, 갖다준 것만 먹었으니 소가 되아 수고우(水牯牛)가 되아서, 물소가 되아 물에 소가 되아서 논 갈아주고 밭 갈아주고 내가 인제 그럴 것이다” 돌아가신 뒤에 참 대체 소가 됐지.
되어서 뿔따구에다가서 위산승(潙山僧)이라 쓰고, 협하서자(脇下書字)에 협하, 갈빗대 밑에 위산승(潙山僧)이라 써 가지고 나왔다 그 말이여.

소[牛]인디 위산승이라 했거든. 당신이 미리 말하고 가서, 당신이 미리 내가 위산승이 되지마는 소가 된다. 아 대체 그 시가(施家)에 그 너무 많이 갖다준 그래서 먹은 그 시가(施家)에 가서 큰 황소가 되어가지고 논을 갈았지?
그래서 법문은 당신이 그랬지? 돌아가실 때, "그때 내가 만약 소가 되어 나오는데 나를 갖다 '위산승'이라고 하면 소가 아니고, '소'라고 하면 위산승이 아니니까 한번 일러 봐라" 고 공안(公案) 한번 일러 봐라.

소라고 해도 아니고 위산을 잃어버렸고, 위산이라고 해도 소를 잃어버렸고, 소라고도 말고 위산이라고도 말고, 위산 · 소 둘 다 다 아니라고도 말고, 거 소용없어. "거 어디 바른 답 한마디를 해 봐라" 거 못했네, 그런 것 다 공안이여.
그러면 그 양구(良久)를 혀? 아무 말도 안 혀? 그 아무 말도 안 하면 못 이른 거지, 뭐 죽은 놈이 소용 있어?

그것 다 바로 보면 참, 소되면 뭐 상관이 있으며, 뭐 가서 물 논에 가서 소가 되어가지고는 논 갈아주면 뭐 조꼼도 그 무슨 거 뭐 지위가 붙어 있나, 지위가 떨어져 있나, 무슨 '소다. 더럽다. 추하다' 허는 것이 붙어 있나. 남의 논 잘 갈아주고, 농사 잘 지어주고, 마음대로. 그거 해탈(解脫)이여. 바로 해탈이여. 바로 생사 없는 그대로 해탈이여.

우리 참선법은 여의고 있는 거 아니어. 다 쓸어버리고 깨끗한 게 아니어. 정추(精麁)가, 정이나 추나 아무리 더러운 똥이나 정추가 일체여. 참으로 추도, 더러운 똥 추도 조끔도 해탈 분상에는 무비법(無比法)이여. 참 기가 맥힌 묘헌 법이지.
지옥에 가서, 지옥이 없는 게 아니라 지옥고(地獄苦)를 받어. “아이고! 아이고!” 허지만 해탈을 증(證)해 버렸으니 그까짓 놈의 “아이고 아이고”가 뭣이여. “아이고! 아이고!”가 바로 보리(菩提)여. 성불(成佛)이여. (처음~28분21초)





(2)------------------

광명(光明)을, 그런 도(道)를 법문(法門)을 바로 들어야지. 법문 바로 듣지 않고 뭣 헐라고 앉았어? 잠이나 자고. 그래 가지고 법문 들을라고 앉았어?
문법지차(聞法之次)에 법문을, 그런 법문을 들을 때 여리박빙(如履薄氷)해라. 얼른 그러기 따문에 엷은 얼음 디딘 것 같이 해라. 반다시 이목(耳目)을 기울어서 그 법문을 현음(玄音)을 들어라. 그 법문 무슨 말씀인가를 잘 들어라.

숙정진이상유치(肅情塵而賞幽致)다. 티끌 내 그 죄만 퍼 짓는 고약스런 도 닦지 않는 마음을 엄숙히 해서 그녀러 거 한번 한 뭉테기 맨들어 비벼, 비벼 버려. 그러고는 그 이치, 그 깊숙한 이치를 참으로 들어라. 그 깊숙한 참 생사 없는 법을 바로 들어라.
생사 없는 법을 바로 들을 때는 그까짓 놈의 진념(塵念)이 어디 있겄냐? 이 진념을, 이 티끌 중생념을 어느 때부텀 가졌냐? 어느 때 없어질 때가 있었냐? 때가 있었나? 생겨난 때가 있었나? 무척도 많이 받아 왔다, 그놈의 생사죄악(生死罪惡).

하당후(下堂後)에, 법문을 다 말씀 설허시고 내려온 뒤에, 묵좌관지(默坐觀之)해라. 그 화두 가르켜 준 고대로 참 묵묵히 앉아서 잘해라.
조끔만 그저 가서 뭐 있다가 그만 픽 쓰러지고 또 어디 가 잘라고만 뒷방만 파고, 어디나 가서 그 잠 못 자서 애쓰고, 그래서야 될 거냐 말이여. 그래 거짓 성, 고런 성을 가지고 들어와서 시가(施家)에 와서 시주것이나 먹고 일생 지낸 것 봐. 뭣 할 것이냐?

그 묵묵히 앉어서 좀 관(觀)해 봐라. 묵묵히 잘 앉아 관(觀)하면은, 화두(話頭)를 들면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편안하고 안락함서 깨끗하다, 화두가 들어와 있으면.
화두 없으면 그것 뭐 이것 뭐, 뭐 잠도 아니고 죽겄지. 그 뭐 자고 싶어 죽겄지. 그 잠 안 오면 망상 퍼 일어나지. 아 이까짓 더러운 놈의 이놈의 몸뚱이 요까짓 것 하나를 가지고는 밤낮 그저 퍼먹기나 하고, 어디 가 넘의 것이나 얻어먹고 살고, 가만히 해 준 밥 얻어먹고 살고, 그놈의 시은(施恩) 죄만 퍼지니 뭣 되아 글쎄. 그 좋은 것 같지마는 그게 좋아?

여유소의(如有所疑)어든, 그 공부를 해 들어가다가 의심이, '이렇게 허면 옳게 헌 것인가?' 고런 무슨 고 의심이 뭣이 나거들랑—여지없이 화두 의심만 나면 그만이지마는—혹 의심이 '이런가? 저런가?' 하는 뭔 그런 의심이 있거든 선각(先覺)해라. 또 깨달은 스님한테 가서 물어라. 꼭 선각을 해야지. 선각께 물어야지. 안 물어서는 안 돼.

'아 죽어도 말 말아라' 저 가르쳐 준 것 어따 어디 가 말 말라고 고렇게 부탁해 논 게 있구만. 행여나 제 근본 탄로 날까 싶은께.
화두 알아야지. 알도 못허고 깜깜한 것이 가르켜 놨으니, 만약 그 옳은 스승이 바로 한마디 턱 해서 툭 깨치면 저한테 쫓아오면 답 못하면 어쩔 거여? 그러니께 그 '죽어도 말 말고 고대로만 해 가거라' 뿐이거든. 아따 그놈 한 놈 여그 와서 죽어도 말 안 해. 허더니 가버린 것 봐.

석척조순(夕惕朝詢)해라. 아침에 생각하고 저녁에 듣고 그 공부 잘, 밤공부라도 애써 잘 생각해 가지고, 또 아침이라도 '잘못허는가?' 의심이 나거든 물어라.
불남사발(不濫絲髮)이니라. 터럭끝만큼도 어김이 없이 도를 닦아 나가야 한다. 도학자라는 것은 조끔도 어김이 없이 닦아 나가야 하지. 거짓말이나 하고 망담이나 하고, 다 알아 넘이. 협잡이나 할라고 요리조리 뭐 다 알아. 뭐 넘은 모르고 자기 혼자 한 것 같지마는 말 말에, 언어 동작에 다 나타나 버려.

한래한현(漢來漢現)이요. 거울이라는 것은 바탕이 본래 환해서 어두운 놈이 오면 어두운 놈이 나타나고, 밝은 놈이 오면 밝은 놈이 나타나고, 그와 똑같아서 도 닦는 데 들어가서는 거짓말 못해야. 세상 거짓말 해 봤던들 그저 속아서 들은 체허지마는 더 알고 있어. 환하니 알고 있거든.
그런 게 그러한 짓이 왜 해필 도문(道門)에 들어와서, 그 도 닦고 있는 도문에 와서 그러헌 왜 거짓말이나 허고, 협잡이나 할라 허고, 조그만한 소소헌 일이라도 요리조리 모도 속이고 거짓말이나 하고. 그럴 것인가? 그거 그것 그 오래 있을 것인가?

여 한 놈, 어디 가지 말라고 했더니 갔나? 뭐 '민적등본(民籍謄本) 하러 간다'고, 이건 아주 갈 놈이지 그놈이. 갔어? 그놈 아주 간 놈이여.
그것 간다고 해놨는데 '민적등본 시방 뭣 할 것이여?' '승적등본(僧籍謄本) 헐라'고 '누가 승적등본을 시방 해 주어서?' (저 안 갔는데요) 응? (안 갔습니다) 안 갔어? 오냐. 안 가야 옳지. 그럼! 가면 당장 그만 벼락이여.

아! 그까짓 승적 증명.
제 자격이 따악 나타나서 참 대중에서 옳게 인증이 다 되아 가지고 있으면 인자 스승을 딱 정해 줘. 여그 시방 스승 하나 안 정해 주었다. 스승을 하나 안 정해 준 사람이 어따가 승적을 헐 것이냐 이 말이여.
이름만 하나 해 놓고 내가 그저 행자(行者)들이라도 들어와서, 뭐 그 의복(衣服) 차별이 없어. 들어오면 뭐 들어와서 도문에 앉으면 그것 뭐 의복 차별할 게 있나. 여그 들어와서 입고 있다가 잘못하면 벗겨버리고 내보내는 거.

겪어 봐서—한 달 겪어 봐, 두 달 겪어 봐, 인자 한철 겪어 봐, 1년 겪어 봐, 다 안다 그 말이여. 한 3년 석상(石上)에도 과삼년(過三年), 3년을 겪어 보면은 본격이 다 나온 것이여, 본태(本態)가.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어. 그런데 나는 그 말해 놓고는 간 줄 알았더니 안 갔구나. 그래야지.
승낙도 없이 제가 가? 그놈 그만이지, 다시는 여그—머냐 그 와서 다시 들어와서, 되아? 못한다. 한낮 저녁때 내 빌다 갔어. 조그만한 놈, 그 여그 있나? 안 나왔나? 조그만헌 놈 나왔나? 또 안 나왔지? 그놈이 중노릇 할 놈이여 그놈이? 머냐도 또 안 나오더니 또 안 나와? (허리 아프다고 했습니다)

허리 아프다니 그놈 옷 벗겨서 보내 버려. 옷 벗겨 보내 버려. 저번에도 보니 예불 빠지더니 또 빠져, 살살.
벌써 내가 데리고 있다가 내려 보낼 때 알어. 대번 알어. 처음에야 대번 와서 그저 하룻밤만 자면 내가 아는 사람이라. 즈그는 내가 모르는 줄 알지? 흥! 그렇게 나를 알아서는 틀려. 그 도 못 닦을 걸 그거 두어 뭣 해?

날 찾아 나섰다고 그놈의 어린것이, "인천에 인가 전강 스님 있다 찾아왔습니다" 해서 그저 "대흥사 가고 안 계신다" 내가 인자 그러고. 대흥사까장 갈란다고 나서. 아 그놈 허는 짓이 혼자 그러네. 고때에 열일곱 살 먹고, 고때 나도 열여섯 살 먹어 들어왔는데 하룻밤인들 어디 가서...
그놈 옷 벳겨야지, 대그빡 쏵 벳겨, 즈그 집으로 보내. 편지해도 편지도 없으니 무슨 까달이 있어. 즈그는 위조 주소를 했는가? 뭔 주소를 했는가? 그러고.


터럭끝만큼도 그 참 어기지 않고 고대로 똑 해 나간다. 이 행실이니까. 행실 가운데 법문이 안 있는가.

여시(如是)하야사, 이렇게 공부를, 이렇게 마음먹고 들어와서 이러한 옳은 학자가 되어야사, 참 도학자가 되어야사, 설사 처음 들어올 때에는 몰라서 거짓말도 허고 그저 그럭저럭 속여서 어떻게 들어왔지마는 들어와 놓고 보니까 '아 그런 거 아니로구나' 딱! 고쳐야지. 여지없이 그만 방하(放下)를 해 버려야지. '아 여태까지 살아온 것은 헛살아왔고, 그까짓 것은 다 소용없는 것이로구나' 쏵 들어와서 방하해 버려.

이와 같이 해야사 내가능생정신(乃可能生正信)이다. 이에 가히 능히 정신(正信)이 났다. 바로 신(信)이 났다. 옳게 믿었다. 옳게 믿고 들어왔으니 인자 한 동작, 발 한번 떼 놓는 것도 그 화두다. 항상 그 '이뭣고?'
대체 '이뭣고'가 이 모냥이냔 말이여, '이뭣고'가? '이뭣고'가 이것이 이렇게 소소영령(昭昭靈靈)헌 것이 이것이 뭐냔 말이여? '이-' 헌 놈이 뭐여? 그놈이 밥 먹고 옷 입는데 '이뭣고?'냔 말이여.

도(道) 없이 도 닦지 못할 놈의 처소에 가서, 저 도(道)도 안 닦는 처소에 가 살림이나 해먹고 그저 돈이나 벌라고 애쓰고, 그 세상에 살지 뭘라고 그놈의 그런 짓을 혀?
그런데 업(業)이라 할 수 없거든. 그런 거나 맡아 가지고는 자식새끼나 낳아 놓고는 그런 것이나 살릴라고 애를 쓰고 그러다 보면 이 백두(白頭), 저 늙어 죽을 지경밖에 안 오는데, 그놈의 진 놈의 죄는 자식새끼가 그것들도 같이 지었은게 같이 받지마는, 참 죽을 죄를 제가 다 받지.
독살림허는 것, 중 혼자가 집 얻어 독살림하는 거, 천하에 도무지 죄여. 어쨌든지 서로 이렇게 모아서 같이 먹고 같이 닦고 그러헌 우리 수도원이란 그래야 하는 것이지.

이에 가히 능히 참 정신(正信)이 나는 법이다. 이러헌 마음을 잘 가다듬어야사 이도(以道)로 위회자여(爲懷者歟)인정, 도(道)로써서 항상 도만 가지고 생각을 헐지언정, '참 이번 목숨 끊어지면 무간지옥(無間地獄)인가? 개 배때기 말 배때긴가? 아이고! 엄청난 놈의 삼악도(三惡途)'
삼악도는 그렇지 않는가? 저 짐승, 날짐승 저 많은 놈의 짐승 속에 들어가지. 그놈의 짐승이라는 것은 생(生)은 똑같지 않은가? 즈그들도 다 소리 지르고 찔쨀쨀쨀쨀 그렇게 우는 저 귀뚜래미 같은 것도 다 즈그끼리 말하고, 서로 여기 있다고 군호(軍號)허고. 서로 즈그 자식 나 가지고가 그 미충(微蟲) 잔벌레도 기어니 그 새끼를 칠라고 애써서 그놈은 한 놈이 들어서 천 명, 만 명씩을 맨들어 내네.

사람은 겨우 하나씩 열 달 만에 하나 낳는데, 그 사람은 또 어디 그렇게 정몽을, 운우(雲雨)를, 아 부부지간에 서로 운우정몽을 행한다한들 어디 그 어디 뭐 어디, 밤에 밤중에 아무도 몰리 자식도 몰리 즈그끼리 둘이 어쩌 그래가지고 하나씩 겨우 낳는 거.

이놈의 짐승 떼는 즈그 마음대로 낮도 밤도 없고 그저, 넘 본 거 안 본 것도 없고 그저 밤낮 쳐 퍼 낳는구만. 한 배만 낳으면 몇백씩 나. 고놈의 축생 속에 그 물고기 그 봐. 뱃속에서 몇천 마리씩 나오냐 그 말이여.
모도 그런 떼 중(中)으로 몸뚱이 그저 금방 금방 받아 들어가는 거여. 금방 목숨 뚝 끊어지면 혼(魂)이 바로 나. 그, 그거여. 몸뚱이 받아 들어가는 게 혼(魂)이라는 놈이여. 칠백(七魄), 혼이 있는데 혼 그놈이 그것부텀 찾는 것이여. 뭐 벼락같이 들어와.
축생취(畜生趣)로 들어갈라면 그렇게 들어가고, 글안으면 잡아가 지옥에서 잡아가지. 지옥부텀 머냐 가지. 죄를 지었으니. 참 쇠사슬도 엄청난 놈의 그 쇠사슬이 사방 깔꾸리가 있네.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깔꾸리가 대글빡을 누르며 내려오네.

귀신 몸뚱이 받아 놓으면, 제 업(業)으로 제 몸뚱이가 그렇게 커. 그 수미산(須彌山)만하게 커. 그놈 무겁고 사람 뚱뚱허면 배지 이렇게 불러 가지고 주체 못하듯기. 귀신이라도 그려. 그 몸은 백만 명이 같이 있어도 차도 안 해. 없어. 없지마는 죄업 몸뚱이가 그렇게 되아. 되아.

그 삼악도, 세상에 삼악도. 삼악도. 육취(六趣), 육취인데 육취, 취(趣)가 육취여. 천도(天道) · 인도(人道) · 아수라취(阿修羅趣)는—사람, 사람취인데, 거그는 그래도 몸뚱이, 이런 사람 몸뚱이를 받아 나오는, 천취(天趣)는 복을 받아 나오는, 아수라는 싸움만 싸운 놈들 나오는, 그래도 그 취는 사람취 좀 나아. 또 삼악도는 지옥(地獄) · 아귀(餓鬼) · 축생(畜生) 세 가지.

요 육도(六途) 있는데 이 육도에 똑! 복을 지어서, 여그서 복을 잘 지어 참 깨깟이 착실히 하면은 그 깨깟이 착실히 정직한 행동을 했으니께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아 나오던지, 글안으면 백만장자 복을 많이 지어서 백만장자가 되아 나오던지, 착한 사람이 되아 나오던지, 이렇게 인자 등분이 있어 나오지.
나오지마는 더 잘 지었으면은 여그서는 못 받아, 많이 지었기 따문에. 사왕천(四王天)부텀 올라가지. 더 지었으면 보리장천 올라가지. 이렇게 올라가 28천, 33천까장 그렇게 천(天)이 있는데 거그는 한량없이 복을 지을수록 올라가.

허지만 죄만 퍼 진 놈은 자꾸 내려 그저, 그저 그만 지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또 그런 축생도 또 지어 가지고 또 도로 받고, 받고 허지. 쥐 보(報)를 받아도 쥐 보가 한 번 받고 만 게 아니라, 죽으면 또 쥐 되고, 또 쥐 되고, 밤낮 되아 가지고.
또 그가 그래도 아냐, 그 어쩌다가 다행히 또 보(報)를 전(轉)해서 딴 놈이 되면 딴 도(途)를 그렇게 받고. 배암 되면 배암 그놈 또 되아가지고 그놈 또 살생 자꾸 해 갖고 받고. 이놈의 이 악취(惡趣) 악도(惡途), 이 지옥 축생취만 해도 다시 나올 수가 없네. 이놈의 축생취에 한 번 떨어지면. 징그랍네, 못 나와. 이놈의 축생취 못 나와.

축생에 돌다가 어쩌다가 인자 또 축생취가 아귀취로 바뀌면 또 아귀취에서 또 얼매 진저리 몸서리, 어디 어디 때가 있나? 거기서 나올—배고파 죽으면서도 또 생긴께 나올 마음도 먹지 말아야지. 나올 마음도 먹어도 소용없고, 먹어진다고 어떻게 나오나? 제 죄업(罪業)으로 제가 얽혀서 그 죄를 받는데.
지옥에 들어가서 물 끓는 놈의 데 한 번씩 집어넣을라고 허면 '아이고!' 죽겄다 소리, 그놈의 죽겄다 소리 한 번인가? 때도 없는데.
아 이런 것을 한 번 생각해 봐야지! 이렇게 다행 다행히 사람 몸뚱이, 이 좋은 몸뚱이를 어쩌다 얻었냔 말이여. 어쩌다가 이렇게 얻었어? 생각해 봐.

그래 용케 참 인신(人身)을 얻었어. 인신난득(人身難得)인데, 인신 얻었어. 인신 얻어 가지고야 닦는 것인께. 왜 지혜학자(智慧學者)가 바로 되지 못하냐 그 말이여. 바로 지혜학자가 되아가지고는 지혜를 닦는 우리 선학자(禪學者)는 행(行)이 깨끗, 아무리 거짓말할래야 할 것이 있나. 어디 뭘 거짓말을 혀?
나 원 거짓말 그거—아 그 어릴 때 그 거짓말 해 쌌는 거 나도 많이 했어. 어째 그렇게 거짓말이 나오든고 모르지. 인자 알고야, 알고야 거짓말이 어디 있나. 뭔 거짓말을 혀? 거짓말을 인자 할 필요가 있어야지.

조꼼이라도 거짓말이라든지, 그 이간(離間) 붙여, 기어(奇語) 꾸며대는 거 그런 거라든지, 그 두 가지 말을 이렇게 이렇게 넘 모도 해(害) 붙일 거짓말한다든지, 악한 말 모략중상을 한다든지, 그런 것이 어디 있나?
우리가 누구를 뭐, 어쨌든지 그저 누구라도 밥 한 숟가락이라도 줄락 하고 속으로는 멕일라 하지. 그놈들이 하도 와 싼 게 뭐라고는 허지마는.

도학자(道學者) 같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 우리 이 세계에서 시방 몇 된가? 참 어려와!
그 사람 몸 잔뜩 받으면 그 도학자여? 내가 지금 어디 어디 받아 거? 어림도 없어. 어쩔 수 없으니까 인자 그렇게 '있겄다'고 해 싸면 행여나 행여나 싶어서 받지. 받아가지고 그놈 시험해 봐서, 시험에 합격 안 되면 그것 뭐여, 그 뭐 왜 뭣하게?

이러헌 정신을 내가지고 똑! 도(道)로, 똑 도 하나 닦을, 도 닦을 사람이 벌써 보면 환하니 그 자비심도 있고, 뭣 앉었어도 좋지. 앉어도 좋지마는 밖에서 뭣 해도 그 좀 장한가. 그 뭐 이런 것 저런 것 다 같이 살면서 도문에 깨끗이 허고.
가만히 앉아서 또 잘 닦으면 좋지만, 가만히 앉아서 잘 닦는가? 가만히 앉아서 자빠져 잘라고 앉었는 거, 앉어서 그만 자고만 있거든. 그런 것은 그건 소용없어. 앉어도 소용없어. 글안하면 뒷방에 가서 눕기나 하고.
내가 날마당 여그 내려올 때 몇 번씩 내려온 줄 알어? 내려올 때 뭐 허러 내려오겠어? 아무 일 없이 내려와? '어떤 놈이 어떻게 헌가? 객실에 가서 신이 몇 커리 있나? 지대방에 가서 어디가 몇 커리 있나?' 그것 다 보고 내가.

아 밤으로는 내가 밤중 열한 시쯤 내가 나와서 몸이 무거우면사 못 나가지만 등불 딱 가지고 여그 와서 가만히, 불이 써 있길래 밤중에 요래 보니까, 지대방에서 그 딴짓허고 있든 놈이 있단 말이여. 요 가서 딱 내가 보고. 밖에 요래 요래 가만 벌써 문틈으로 다 봤거든.
그래도 내가 그런 것을 '내가 봤다' 뭐 폭로시키고 뭣 허고, 나쁜 행동을 헌 건 아니로되 어디 공부 응, 공부 안 허면 뭐 거 나쁜 놈의 행동이지 뭣이여.

저 심지어 여그서 누구를 건들고 안 건들고 어디서 어떠한 것까장도 내가 다 그런 거 어떻게 허던지—'누가 그랬는고? 누가 그랬는고?' 그따구 놈의 소리가 어디 있어? 제 안 했으면 그만이지. 그래 봐감서 그 행동을 내가 다 알아 가지고서는 그 도학자를 만들라고 내가 애쓰고 있는 사람 아닌가.
왜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애를 썼냐 그 말이여. 우리가 이 사바세계 이 악도(惡途) 중생을 그대로 두어서는 어떻게 되아? 우리도 이다음에 나오면 악도뿐이지, 인자 또. 도인(道人)을 안 맨들아 놓으면.


무시습숙애욕에치(無始習熟愛欲恚癡)가, 비롯함이 없이 습숙(習熟)헌 익힌, 비롯함이 없이 익힌 습기란 건—우리가 어디 비롯함이 있는가? 언제 처음 날 때가 있는가?
난 때가 있는 줄 알지, 생겨난 때가 있는 줄 알지? 생겨난 때가 없어, 무시(無始)여. 그러기 따문에 무종(無終)이여. 또 종(終)도 없어. 처음도 없고 종도 없으니 항상 있는 놈이 중생껍데기만 둘러써 가지고 죄만 지어 죄만 받아? 옳아 그것이? 그 옳겠냔 말이여. 생각해 봐.

결코 금생에 이 몸뚱이, 인신(人身) 인자 얻었으니 이 몸뚱이 가지고 해탈(解脫) 안 하면 안 되아. 꼭 해야 허는 것이 해탈이여.
비롯함이, 처음이 턱 낸, 난 때가 없이 항상 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헌 주인공이 내가 왜 이 죽고 살고 죽고 살고 허는 중생 껍데기를 덮어써 가지고는 찌르면 아프고, 찌르면 피 나오고 이런 거 얻어 가지고 내 몸뚱이라고 해 가지고 이 죄를 받고 있냐 그 말이여.
이까짓 몸뚱이 차라리 안 받았으면, 우리 뭐 이 사바세계 사람 몸뚱이는 좋다 해도 사람 몸뚱이 그까짓 거 안 받았으면, 아 구름처럼 돌아다니면 어쩌? 백운(白雲)처럼 떠억 어쩌냔 말이여.

비롯함이 없이 습숙(習熟)헌 그 생생(生生)에 날 때마다 죄를 퍼 지어서 우리 시방 쟁여 논 죄업이, 이 몸뚱이가 죄 없는 것 같지마는 과거 죄업도 그 습숙헌 익힌 죄업이, 죄업과 애욕에치(愛欲恚癡)가, 애욕, 애욕이란 건 뭣이냐?

그저 몸뚱이만 받으면 애욕뿐이여. 그저 내, 기어니 내 음행질 헐락하고, 그런 좋은 예쁜 남녀 만나서 서로 그저 그만 애욕 헐라고 허고, 거그서 좋은 새끼 나면 그것 핥고, 좋아서 핥고, 맨 거그서 인자 또 무슨 손자 낳으면 '손자 아이고, 아이고 우리 손자' 이 지랄뿐이여. 그 애욕뿐이여. 애욕 그것뿐이고.
잠깐 갈리는 건데. 그 에치가, 애욕에치(愛欲恚癡) 그 어리석은 것이, 고 모도 어리석거든.

구랭이가 되어 가지고 새끼를 나 가지고 그 빨고 왼통 알을 보관했다가 새끼 나오면 좋아서 에미가 빨고 그런 것이나, 사람이나 뭐 다를 것이 뭐여. 똑같지.
구랭이 새끼 사랑하나, 우리 사람 응, 사람 사랑하나 마찬가지지. 그렇게 그 애욕 속에서 그 에치(恚癡), 어리석은 것이 에치, 그 어리석은 것이 말이여.

전면의지(纏綿意地)다. 전면의지여. 전면의지라는 것은 솜 얽히데끼 솜, 솜 잔뜩 처쟁여서 그 모도 서로서로 이놈이 그 보드라운 놈이 얽히듯끼 그렇게 얽혀졌다 그 말이여.
전면의지(纏綿意地)여. 그 온 전신에 가서 내 전체에 가서 그 의지(意地)만 그 솜 뭉텅이처럼만 꽉! 처쟁여져. 이놈의 에치(恚癡)가, 우리 어리석은 에치가 이렇게 쟁여 있으니 그놈의 속에 법문(法門)이 들어가?

아, 참! 법문만 들어가도 설찬히 닦은 사람이고 지혜 있는 사람이다.
전면의지(纏綿意地), 전면의지 같이, 의지 같이 지금은 퍼 쟁여서 꽉! 찼다. (28분31초~57분23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