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발심자경문(초심)2022. 12. 17. 21:10

 

 

•§• 초심(3/7) (切須堅持正念~必有機發之時) - 전강선사(No.147)

**전강선사(No.147)—초심(3/7)(切須堅持正念~必有機發之時)(임자72.08.12) (전147)
*「초심(初心)」은 「초심문(初心文)」으로 고려 보조지눌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의 준말이다. 이 「초심」과 신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야운 스님의 「자경문(自警文)」을 합쳐 한 권으로 엮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다.

 

약 38분.

 


건곤만리일견납(乾坤萬里一肩衲)이  기처백운비단공(幾處白雲飛短筇)고
나무~아미타불~
만산홍록(萬山紅綠)이 개묘체(皆妙體)다  청산유수춘수족(靑山流水春睡足)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건곤만리일견납(乾坤萬里一肩衲)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그 너른 천지에 한 도 닦는 납승(衲僧)이 되았다. 그 도 닦을 마음이 그렇게 무량겁 중에, 억만겁 중에 난 때가 없었어.
'아! 내가 나를 찾아야지, 나를 알아야지' 못혀! 그 마음이 어째 그렇게 못 나? 세상에 그렇게 미(迷)할까, 원 미(迷)해도. 저 벌레 보소! 저 축생들 보소! 알 것인가? 그것이. 사람도 그 마음이 안 나는데.

세상에 이 마음이 났다. '내가 나를 찾아야지' 참 그 마음 한번 나는 것이 그 발보리심(發菩提心)이여, 보리심을 발한 것이여. 그걸 일견납(一肩衲)이락 햐.
그 마음 지금 한번 났겄당, 인자는 참 일견납이 되었으니 건곤에, 하늘과 땅 일천지(一天地)에 도학자가 되었으니 그 어느 곳에 그저 모도 기처백운(幾處白雲), 그 백운 흘러내리는 출출출출 흘러 넘어가고 흘러내리는 그러한 절벽산상(絕壁山上), 그저 깨끗한 모도 그런 곳이 그곳이 내 도 닦는 집이고, 내 행주좌와처(行住坐臥處)여 모도가.

만산홍록개묘체(萬山紅綠皆妙體)다. 그 만산(萬山)에 홍록(紅綠)도 일만 산에 홍(紅), 꽃핀 것 홍(紅)이고, 풀 잎사귀 푸른 것은 녹(綠)이고, 홍록(紅綠)이 다 묘체(妙體)여. 깨달아 놓고 보아라. 그게 다른 것인가? 내 살림살이지.
그 청산녹수(靑山綠水)에 인자 참 임자재(任自在)하고, 내가 설사 깨달지 못했더라도 어디가 걸릴 거, 어디가 애착이 있나? 무슨 애착이 있나?

돈에 시방 애착이 있나, 우리가 무슨 뭐 천만금을 주면서 '고놈 가지고 살고 도 닦지 말아라' 하면 안 닦겠나? 돈 뭣하게? 천만금 갖다가 앞에다 쟁여 놓고 밤낮 들여다봐라 뭣할 것이냐 그것이, 뭣이여 그까짓 그녀러 것이. 청산녹수가 다 그것이, 임산등수가 다 그것이, 한 번 인자 내 그저 앉고 눕고 좌와처(坐臥處)여.

청산유수춘수족(靑山流水春睡足)이다. 청산유수에 봄잠 잔다. 그런 데서 잠자면 떠억 자고. 그 이 마음밖에 없고 이것밖에 없으니, '이-?' 허는, '이뭣고?' 허는 사람이 뭐 어디 걸릴 데가 있나? 다시는 퇴타(退墮)할 길이 어디 있나? 어디로 갈 것이냐 가면?
아! 그놈의 더러운 놈의 그 숭악한 놈의 축생(畜生) 배때기 길을 얼마나 나왔기에, 얼마나 고생하고 한탄하고 원망을 헌 줄 알어. 천억만 번을 그놈의 숭악한 놈의 충사(蟲蛇) 배때기 속에서 그 고생만 허고 나와서도, 고생만 그 숭악한 놈의 지긋지긋하지 않는가?

꼭 봐야, 내가 꼭 그 봐야 그 몸뚱이를 받아야 알겠는가? 그 몸뚱이 받아 가지고는 더 모르네. 구랭이 몸뚱이 받아 가지고 '내가 구랭이다' 그건 모르네.
아는 줄 아는가 부네? 그렇게 콱! 드리 매(昧)해 가지고는. 또 그것은 오히려 축생취는 승취(勝趣)지. 그놈의 참 대악취(大惡趣)는 지옥이고. 그 지옥에 들어가서 내 그놈의 그, 그 연극에 갔다가 그, 그 꾸며 논 것 또 그것 보고 참 나, 참 무섭데. 에이 숭악하구나.
그놈의 독사지옥, 독사 그, 막 들입대 그만 위에서 내려오고 옆에서 들어오고 막 그저 입을 벌리고 뜯어먹고, 아이고 내가 참 그...

그놈의 아귀취(餓鬼趣)는 또 어떠헌가? 그 쎄를 빼물고 죽고 또 살고, 빼물고 죽고 또 살고, 목구녁이 당최 있어야지 목구녁은 없는데, 바늘귀 구녁만 헌데 배는 허공만 하단 말이여. 배는 고파, 또 죽고 살고 또 죽고 살고, 그놈의 짓을 또 혀?
이번에 이렇게 출가해서 이렇게 발심해 가지고 도 닦는 학자가 또 들어갈 거여? 퇴타(退墮)하면 들어가는 것이여. 퇴타하는 그 즉시의 삼악도(三惡途) 밖에는 갈 곳이 없는 것이여.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도학자가 되았음에 무슨 일이 있고 어디 걸리고 인제는 어디가 애착할 것이냐?

절수견지정념(切須堅持正念)하라. 간절히, 간절히 항상 정념(正念)을 가져라. 그 정(正)다우면—정(正)다운 짓 안 할 것 어디 있나? 사행(邪行), 나쁜 행동헐 것이 어디 있나? 한번 출가해 가지고 도 닦을 학자가 나와서 그 부정한 행동할 것이 뭐가 있나 말이여.
양심 속에 깨끗하지, 항상 정직하지. 세상에 뭐 쬐그만헌 무슨 눈깔 터럭끝만큼도 무슨 뭐 시시비비할 것이 뭣이 있나? 잘못헌 걸 보면은 내 잘못헌 것보담 더, 더 참 애석하게 생각하고 그저 그걸 옳게 모도 고치도록 해 주고, 그러헌 정념을 꼭 가져야 한다. 우리 중이라는 것은.

견색문성(見色聞聲)허고, 예쁜 색(色)을, 터억 저 예쁜 그 계집을 본다든지 그런 색을 보고. 또 그 문성(聞聲)허고, 좋은 무슨 소리를 듣고 유탕사심(流蕩邪心)이다. 사심(邪心)을, 거다가 삿된 마음을 두지 말아라.
예쁜 것이 그까짓 것이 무엇이냐? 제가 아무리 예쁘다 한들 부정관(不淨觀)을 해라. 아무리 제가 예쁘고 참 좋다마는 그 속에는 피고름은 똑같고, 똥은 마찬가지고 꾸린 냄새는 마찬가지로 나지, 안 날 것이냐 그것이? 그것이 뭐냐 그것이?
공중에 눈 아픈 놈이 보면은 눈 아픈 그 (사람 눈에) 보이는 것이 꽃으로 모도 허공에 막 보인다. 그것이나 마찬가지지, 일시에 나타나는 그런 좋은, 예쁜 무슨 빛깔 같은 것이지. 어디 본래 있는 것이냐 그것이?

사심을, 삿된 마음을 내지 말아라. 그런데 하물며 옷깃을 탁 헤치고 팔을 흔들면서 '히히히' 그러고 웃고 댕기겄나. 고런 고런 짓을 하겠나, 우리 도학자가?
언제 그런 짓 헐 겨를이 있어야지, 항상 속에는 그저 내 생명이라는 것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쉴 때 있는 건데, 어디 조금이라도 그 내 화두(話頭)를 버릴, 화두를 없애버리고, 여의어 버리고, 그만 화두 없이 그렇게 피금희소(披襟戱笑)를, 옷깃을 헤치고 팔을 흔들면서 들입대 웃으면서 어디 그럴 때가 있겠나? 그러지 말아라.

난설잡사(亂說雜事)를 해야? 잡된 일을 어지러운 모도 잡된 말을 혀?
잡사(雜事)를 난설(亂說)을 혀. 잡된 말을 어지럽게 모도 그만... 거 뭣이여? 난설이 어디가 있어?

비시주식(非時酒食)해라. '때 아닌 때 술을 먹지 말아라' 모두 이러지. 때에는 술 먹으란 말인가? 비시주식(非時酒食)이라, 아 때 아닌 때 술을 먹어서, 그 '때는 먹어라' 그 말인가? 말키 그릇 가르킨다.

비시주식(非時酒食)이라. 때 없이 술을 먹어서 그 말이여, 때 없이. 그 '없을 무(無)' 자로 새겨, 비(非) 자를. '아닐 비(非)' 자 인게 그것도 '없을 무(無)' 자 되거든. 늘 술만 퍼먹어서 그 말이여.
때 없이, 밤낮 술 먹은 놈이 요 술이나 그만 가면 퍼먹고, 몰리 퍼먹고, 가면서 먹고 오면서 먹고 늘 먹고, 늘 술만 퍼먹어 가지고는 걸림 없는 무애(無碍)의 행(行)을 짓느냐. 고런 걸림 없는 무애행을 짓느냐? 계행 파(破)하는 술 퍼먹고, 계행 파하는 그러한 무애행을 짓느냐? 그게 무애행이냐?

도에 깨달아서 생사(生死)에 무애행이래야 되는 것이지, 죽고 사는 생사에 자재자행(自在自行)해야 임수자행(任隨自行)해야 그것이 바로 참 걸림 없는 행이지, 술 처먹고 마구잽이 막 그만 난행(亂行)을 허는 것이 그것이 걸림 없는 행이여? 그 그까짓 한잔 먹고 무슨 뭐 '이게 다 모도 반야지 뭐' 이러고 돌아댕기는 게 있다 그 말이여.

그래서 심괴불계(深乖佛戒)따냐, 깊이 부처님의 계행을 어길까 보냐. 그런 행세를 해 가지고 그 부처님이 이렇게 똑 도행(道行) 가르킨 것을 어길까 보냐. 그 정직한 마음—화두 잊어버릴라, 행여라도 '이뭣고?'를 잊어버릴라.
그저 한번 생사에 뛰어나는 법은 '이뭣고?'뿐인께. 묘(妙)하다.

우처현선인(又處賢善人)의 혐의지간(嫌疑之間)이면, 또한 착한 사람에 혐의(嫌疑)한 사이에 처허면, 또한 착한 사람에 혐의에 처하면,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저 이렇게 도행을 똑 닦는 어진 대중들 가운데에 혐의를 받아.
아! 그 사람, 그 사람은 어찌 그 대중과 같지 않고 대중규칙에 벗어나고, 또 살모시 뒤로써 무슨 하는 행동이 이상스럽고, 항상 무슨 이런 도처(道處)에, 도를 배우는 이런 회상(會上)에서 대중처 회상에서 저 혼자 제대로 괴각행(乖角行)을 하며, 무슨 사심으로 여편네를 살모시 어디 관계나 할락하고, 몰리 그런 행동 저런 행동 모도 그런 것이 있어.

살모시 공양(供養)이나 빠져 안 먹고, 뒤에 살모시 가서 똑 뒤에—안 먹다 배고프면 먹지—뒤에 가서 살짝이 똑 가서 뒷 밥을 먹거든. 그거 공양에 참여 않고 중이 뒷설거지, 뒤에 가서 그만 그저 저 찬간(饌間)에 들어가서 지름도 드르르 부어서 막 퍼다 비벼서 저 혼자 그만 막 드리 퍼먹고, 그런 행실을 허는 학자가 무척 있다 그 말이여.
뒤로 살모시—안 먹는 체허지, 안 먹기는 뭘 안 먹어. '먹은 것이 있으니까 안 먹는다'는 말이 있지. 중, 때에 안 먹으면은 몰리 먹는다는 거 다 알고 있는 거여. 배때기는 채우지 안 채울 수 없는 거여.

모도 그런 짓—그 대중공양석(大衆供養席), 대중공양이라는 것은 그건 법공양(法供養)인데, 공양석에 항상 참여를 허는 법이지, 늘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배가 아파서 못 먹느니 무슨 뭐, 먹기 싫어서 못 먹느니 무슨 뭐, 별 핑계 대면서 못 먹네. 한 숟갈을 먹더라도 같이 참여해서 먹는 것이 그것이 학자(學者)지. 그것 안 돼, 못쓴 것이여. 될 수 있으면은 대중공양석에 같이 먹는 것이지.

그런 것이 현선인(賢善人)에, 여러분의 도 닦는 착한 대중 가운데 혐의(嫌疑)를 받는 것이여. 모도 다 그런 혐의하지. '그 사람 밥을 안 먹는다. 밥 안 먹는 사이에 무슨 짓을 허냐? 뭣을 하나 어디 가 뭘 사 먹나?' 별것 다 있는 그걸 의혹(疑惑)이락 햐. 확실히 알 수 없이 의혹이 난다 그 말이여.

기위유지혜인야(豈爲有智慧人也)냐. 어찌 그걸 지혜 있는, 현인 가운데서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헐 수가 있냐? 고런 행동허는 것이. 왜 그런 행동을 헐라면은 제대로 가 살지, 이 어진 대중 가운데 들어와서 그런 짓을 허냔 말이여. 왜 그런 괴각행(乖角行)을 허냐 그 말이여.
넘은 다 발우(鉢盂) 펴고 밥먹는데 자꾸 빠지며 뒤로 거둔다, 그 뒤로. 밥 안 먹어? 그 더 먹는 거여. 그게 지혜 있는 사람이냔 말이여, 괴각이지.

자지 말고 들어라. 잘라면 나가! 이놈들 모두 즈그 들으라고 이렇게 내가... 이걸 안 배우고 느그가 어디 중노릇 헐라고 자울고 앉았나. 사미과(沙彌科) 배웠냐?

도 닦는 사당(社堂), 사당에 가서 주(住)허되, 사당이라는 것은 여럿이 앉아 공부허는 데가 아니라 혼자 앉아 공부허는 사당, 저런 법당 같은 데 조그만한 데 그런데 가 앉어서 공부를 허더래도 사미(沙彌)와 동행(同行)하지 말아라.
옛 때는, 그 전에는 중이 장가를 통 가지 않고 고대로 중들만, 남중들만 사니까 여자가 어디가 있어? 어디가 여자가 같이 사는 데가 있어? 도 닦는 데서는 없어.

똑 승려들만 도 닦는 사람들만 사니까. 어린아이들 저 열댓 살썩 먹은 것, 이런 아이를 이 선방(禪房)에는 방부(房付)를 안 받아. 절대 안 받고. 그건 왜 그러냐? 젊은 한 삼십 살썩 먹은 모도 그런 사람들이 그 어린것들 그 열댓 살썩 먹은 것들 그런 것들 있으면은 그 모도 동성연애(同性戀愛)를 혀. 동성연애를 허는 그런 버릇이 있기 따문에 절대 못하는 것이여.
이 어린아이들은 더군다나 뒷방에 안 자고, 뒷방에 안 앉았었고, 또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도 혼자 자꾸 뒷방, 지대방 혼자 가서 누워 자고, 혼자 가서 자고, 그런 거 않는 것이여. 없어.
어디 뒷방에 가서 혼자 자꾸 그렇게 그런 짓이 없어야 한다 그 말이여. 이거 무서운 행실이거든. 몸이 아파서 헐수할수없어 병(病)을 조리한다든지, 그런 병석에는 헐 수 없지마는 그 이외에는 못하는 것이거든.

육십이 넘어 칠십 당년(當年)에는 다 별당(別堂)이라고 나가는 것이고, 앉어서 도를 못 닦으니까 늙은 노인이니까, 누웠다 앉았다 헐 수 없으니까 칠십이면, 환갑 지내면 계를 바치라는 거여. 계행(戒行)을 못 지키겠으니 바치는 거여.
허지마는 젊을 때 당시의 도 닦을 때는 어디 그럴 수 있나. 그런 혼자 어디, 혼자 뒷방에 있어도 사미(沙彌)와 어린 열댓 살 먹은 사미들과 같이 있지를 말아라. 동행허지 말아라.

뭔 어디 뭔 볼일 있다고, 무슨 볼일 있다고 일만 핑계 대고 자꾸 왕환(往還)한다 그 말이여. 무슨 일이든지 핑계 대고 나가거든. 핑계 대고 갔다왔다 갔다왔다. 대중에 너무, 대중에 지내면서 갔다왔다 갔다왔다. 그러니 대중이 '아무개 어디 갔소? 어디 나갔소?' 갔다왔다. 맨탕 뽄봐 가지고 당최 규칙이 서들 안 해.
처억 시간이 되아 하루 사분정진(四分精進)에 꼭 참여하고 꼭 요렇게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 것인데 갔다왔다, 뭔 일에 간다, 뭔 일에 온다, 이것 안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 선방이라 할 수 없는 거여. 어쩔 수 없어서 이것 선방이라고 지금 허고 있지마는 왕환(往還)을 허지 안 해.

거기에 그건 그러기 따문에 인자 그 선객 보호허는 사람이 있거든. 보호허는 사람이라는 것은 주지(住持), 그 관중자(管衆者)는 헐 수 없지. 그 모도 뭔 일을 봐서 그 처중(處衆)을 해 나갈라니까 그 사람 이외에는 수도인, 도 닦는 사람은 그렇게 갔다왔다 허는 법이 없어. 왕환(往還)을 그걸 허는 법이 아니다.
허락을 맡아서 인자 허라고는 했으니까, 그런 일이 가끔 있기야 있지, 꼭 갈 일이 있지, 없기는 꼭 전부 없을까마는 인사(人事)를 왕환(往還)치 말아라. 갔다왔다 말아라.

다른 사람의 밉다 곱다, 그 증발(增發)을 허지 말아라. 누구는 밉고 누구는 예쁘고 뭐 그러한 사량(思量)을 말아라. 증애심(憎愛心)을 그렇게, 그 평등심을 가지지 못하고 그 사람의 모냥을 봐 가지고는 '누구는 좋다 나쁘다' 해 가지고 거다 가서 무슨 좋은 사람은 친하고, 나쁜, 얼굴이 더럽게 생긴 사람은 미워하고, 증발을 하고 그런 마음을 말아라.

신탐구문자(愼貪求文字)해라. 이거 바로 했어. 문자를 탐구(貪求) 말아라. 글자를 자꾸 탐구 마라. 글자 알라고, 글 배워서 알라고 탐구 말아라.
거 문자 탐구(貪求)해서 뭣 혀? 도 닦자고 그 이치 알라는 것이지. 문자 탐구하는 게 뭣이여? 문자 탐구한다고 글 가르친다고 탐구헌다고 뒷방에 이렇게 앉어서 모아서, 뭐 서로 그저 그만 못 헐 소리, 헐 소리, 뭔 소리 해쌈서 남녀 앉혀놓고 그만 그저 글 가르킨다고 하다가 낱낱이 못써.

선방에는 없어. 그 못 혀. 선방은 뒷방 어디 글방이라고 없어. 글방이 강당(講堂)에가 있는 것이지, 선방에 어디 글을 가르킨 데가 있는가. 따악 그런 걸 배우다가도 내던져 버리고 들어와서 참선허는 것인데, 무슨 탐구문자(貪求文字)를 허냐 그 말이여.

아! 김설하가 그 뭐 김설하가 그 유명한 사람이여. 강사 훌륭한 강사인데, 경상북도 김천군 증산면 청암사 극락전, 극락전에 있으면서 그 주지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아! 인자 글을 가르키는데 그 건네 백련암, 그 젊은 예쁜 그 한 20살썩 먹은 가시나, 처녀가 일곱이 댕기면서 글을 배와. 아! 글을 배우는데 아! 그 연애를 허면 무슨 한 년이나 허면 허지마는 일곱을 글 가르치면서 다 해 놨네.

그녀러 것이 그 남녀 가까우면 못써. 그러고 또 우리 도 닦는 사람은—이 세상 사람들은 그 뭐 그까짓 상관없지마는, 도 닦는 사람은 절대 그 가까이 않는 것이여.
뭘라 가까이 가? 가까이 가 뭣 할 거여? 저 헐 일 저 허고 그러지. 자꾸 가, 옆에 가서 자꾸 그저 그 무슨 같이 뭐 손을 잡고, 그저 같이 뭣을 이렇게 받고 주고 그저 그러고. 그렇게 지내면은, 내가 그러기에 학자(學者)가 여그서 정지(부엌)에 푹푹 들어가면 벼락 내지 않어? 그러지 말아라.

그래 탐구문자(貪求文字)여. 문자를 탐허지 말아라. 공부헐라는 사람이 그 글 한 자 두 자씩 글 배우고 앉어서 뭣 하냔 말이여. 글도 우리나라 글도 아니고 타국 놈의 글, 외국 놈의 글, 그까짓 글 그거 배와 뭣햐? 국문(國文)으로 다 나오고 다 볼 수 있고.

참선(參禪)허면, 참선은 무식해도 한 글자 아지 못해도 법문 딱! 해 주면은 법 가르킬 이 있으면 거그서 배워 가지고 막 그래서 막 그저 그만... "즉심(卽心)이 불(佛)이니라. 곧 마음이 부처니라" 했는데, 아 짚세기, 짚세기가 부처라고 알아듣고는 "즉심(卽心)이 시불(是佛)이니라. 네 마음이 부처니라" 이렇게 말을 했는데, 이놈이 잘못 알아듣고 '짚세기가 부처다. 짚세기 신 신는 짚세기가 부처다' 아! 그렇게 알아듣고는 '짚세기가 부처여? 아 신이 부처라니? 아 짚세기 신이 부처여? 그 참 이상하다. 어째 그 신이 부처꼬?' 아! 하다가 툭 깨 버렸네.

아! 짚세기가 부처라고도 아! 깰 수 있지 그 뭐, 다시 그놈만 꼭 드리 몇 달을 했던지 몇 해를 했는지, 짚세기가 불(佛)이라고 허는 바람에 아! 툭 깨 버렸네. 아! 깨 놓고 보니께 짚세기도 불(佛)이지, 그 뭐 짚 아니 뭐 뭐여, 뭐 산산수수각완연(山山水水各完然)이라고 했는데.
산산수수며 산이면 산, 물이면 물, 무엇이 부처 아니며, 뭣이 해탈 아니며, 아 뭐 해탈 아닌 게 뭐 있어야지 깨달아 놓고 보니. 짚세기가 부처지. '하! 이 즉심(卽心)이 시불(是佛)인데, 짚세기가 부처라고 했구나! 이놈이' 이러고 그 그런 것인데 그까짓 탐구문자 할 것이 뭣이 있어?

신수면과도(愼睡眠過度)해라. 그놈의 잠을, 잠 땀에 도(道) 못 닦아. 한 번 누우면은 송장도 꽉 매(昧)해서 뭐, 그 꽉 착(着)해서 기맥히지. 한 번 누우면 그저 한 너댓 시간, 그저 한 두 시간 꼭 자 부려. 푹 자 부려.
세상에, 조끔씩 졸다가 깨고, 깨 가지고 '이뭣고?' 공부를 허다가 조끔 이래도 고 속에 다 있는 것이여. 이놈이 와도 그 속에 공부 그대로 화두 딱 들고 있거든.
아 그 좀 잠을 좀 졸다가 10분 졸던지, 10분 같으면 졸지, 졸다가 아 일어나 공부도 좀 허고, 자다가 눈 좀 뜨이면 바로 일어나 갖고 앉아 공부도 좀 해야지. 밤 공부는 하나도 안 혀. 밤 정진 같이 좋은 게 없어.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 낮에는 갈고 밤에는 읽는다. 공부하는 사람도 그랬는데, 세상 저 글 같은 것도 주경야독허고, 순임금 같은 임금도 그렇게 그 다 말 안 했는가?
밤에는 막 자 버린다. 그놈의 잠 속에 파묻혀서, 아무것도 모르고 미(迷)해서. 그 잠, 그 잠을 많이 자지 말아라. 절대로 과도(過度)치 말아라. 그저 조끔 자면 공부해라.

산란반연(散亂攀緣), 반연허지, 어디 반연허지 말아라. 산란(散亂) 난잡(亂雜)헌 데 가서 반연해서 자꾸 거기 가서 놀고, 습관 되고, 서로 같이 찾고 자꾸 그러니 산란반연허지 말아라.

여그 봐. 약우종사(若遇宗師)가, 종사(宗師)는 조실(祖室) 스님이 종사여. 약우종사가, 종사인데 대종사면 그만이여. 다시 조실, 저기 대종사(大宗師)라고 안 써 놨데야. 거 다 전국이 인증해야 대종사지. 조실이면.
만약 종사가 좌(座)에 올라서, 이런 설법상(說法床)에 올라서 설법을 허거든, 법문을 허거든, 아 법문한데 법문 듣고 자는 놈이 어디 있어? 잔 놈이 그놈이 공부인이여? 공부한 사람으로 들어온 사람이여? 처게으른게 놀고 처먹을라고 들어왔지. 놀고 밥이나 얻어먹고 그럴라고 들어온 놈이지, 공부할라고 들어왔어?

종사가 좌(座)에 올라서 법을 설허거들랑 절부득어법(切不得於法)에, 그 법 설(說)허는데 간절히 시러금 저 법 설허는데 설법하는데, 작현애상(作懸崖想)해야, 현애상(懸崖想)을 지어서 퇴굴심(退屈心)을 내 가지고 퇴굴심을 내지 말아라.

그 법문을 척 들으면은 '그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해 가지고, 성불해 가지고도 몇오백 겁을, 몇천 겁을 닦아야 증(證)이 있어. 견성 증(證)이 있어야 생사해탈한다' 이러면 '아! 그거 내가 어떻게 그 견성을 내가 견성을 해서 그 증을 헐까?' 겁약심(怯弱心)을, '아이고 못 허겄다' 그러헌 마음을 내지 말아라.
그것이, 어디 그것이 천하에 밥 먹기보담도 쉽고, 옷 입기보다 쉬운 것이다. 물러가지만 않고 퇴타(退墮)만 않고 간절히만 할 것 같으면은 벼락같이 오는 것이여. 물러가고 퇴타를 허면은 몇억만 겁을 안 된다 그 말이여. 그럴 거 아닌가.

종사가 설법허거든, 좌에 올라 설법허거든 간절허니 그 설법을 들어 가지고 현애상(懸崖想)을 내지 말아라. '아이고 내가 어떻게 해야' 그 마음 내지 말아라.
물러가지 아니허면 그만 되어버리는 건데 물러가면 안 되는 것이니까, 현애상은 '저그를 내가 어떻게 올라가? 저 높은 디를, 아이고 못 가겄다' 그런 생각은 내지 말아라. 올라가면 가지, 못 올라가?
현애상(懸崖想)만 내면 생퇴굴심(生退屈心)이다. 퇴굴심이 나는 거여. 물러갈 마음 나. 물러갈 것 같으면 그 쓸 것인가, 퇴타하면?

혹작관문상(或作慣聞想)하야, 혹 또 관문상(慣聞想)을 지어서, 혹 '그까짓 것 내가 못혀? 그건 뭐 그걸 못혀? 화두 참선 그걸 못혀? 그까짓 것 뭐 오늘 안 해도 괜찮고, 내일 안 해도 괜찮고, 내 나이 좀 늙으면 헐란다' '내 시집가서 시집살이도 해 보고 그러고 와서 참선헐란다. 아들이나 좀 낳아 나 놓고, 그러고 살림살이 좀 해보고, 그래 좀 내외간 맛도 보고 좀 그러고 해야겄다'
남자는 '내 이만큼 뭣 좀 가서 사업도 좀 이루고 내 돈도 좀 벌고 해놓고 해야겄다. 그까짓 것 못해?' 이러고 미룬다. 관문상이다 그건. 쉬운 마음을 내 가지고 너무.

그런 관문상을 지어서 생용이심(生容易心)이니라. 아주 쉽다고 너무 쉽다고 그런 생각을 내지 말아라.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현애상(懸崖想) 지으면 그렇게 못써. 퇴굴심도 내지 말고. 그저 이것밖에는 할 것이 없구나. 다시는 뭐 이밖에 없구나.

당수허회문지(當須虛懷聞之)허면, 마땅히 생각을 다 놔버리고—일체 것은 다 허망하고, 일체 것은 다 이 세상사라는 것은, 이 몸뚱이 해당된 모든 일이라는 것은 결국 이 몸뚱이 따라 있다가 이 몸뚱이 떨어지면 다 떨어져 버리고 다 없어버려. 허망하고 무상하고 소용없는 것이다. 허니 그러한 일체 속에 망념, 뭔 생각 쏴악 비워 버려라. 내던져 버려라. 그까짓 것 생각도 말아라.

허회문지(虛懷聞之)허면은, 그러헌 생각을 내던져 버리고 자꾸 법문(法門)을 들어봐라. 똑 법문 듣는 게 제일이니까. 그 법문을 들어봐라.
필유기발지시(必有機發之時)허리라. 반다시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다. 반다시 그 기틀 발(發)할 때가 있을 것인께. 기틀 발(發)할 때라는 것은 바로 깨달을 때가 있었다 말이여. (처음~38분12초) (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