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20. 11. 14. 14:33

§(세등31) (게송)삼십년래반고향~ / 황벽선사 「전심법요」 / 도(道)는 교리적으로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가리킬 수 없고, 따져서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공안을 사량심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고 또 설파를 해 그 학자로 하여금 가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고 하는 이러한 참선은 백년을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해서 천칠백 공안이 하나도 걸림이 없이 환히 다 안다 하드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요, 마침내 분별심에 지내지 못한 것이라, 생사해탈을 못하는 것이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공부를 하고 앉았어도 그것은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삿된 방법으로 그릇된 방법으로 공부를 하면 금생에 도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재앙을 누겁을 두고, 여러 겁을 두고 받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금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를 하기는 올바른 방법으로 받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1)—경신년 동안거 반결제 법어(80.11.22) (세등31)

 

약 17분.

 

삼십년래반고향(三十年來返故鄕)  인망택폐우촌황(人亡宅廢又村荒)

청산불어춘천모(靑山不語春天暮)  두우일성래묘망(杜宇一聲來杳茫)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偈頌)은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고향에 돌아가셔서, 고향에 가셔서 읊으신 게송입니다. 출가하셔 가지고 도를 닦아서 견성(見性)하신 뒤에 30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서 느끼신 바를 읊으신 게송입니다.

그런데 그 고향이 당신이 태어난, 육신이 태어난 그 고향에 돌아가서 그래 가지고 읊었다고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니라,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그 깨달음의 본고향(本故鄕)에 돌아가셔서 읊었다. 이렇게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삼십년래반고향(三十年來返故鄕)하니, 삼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가니,

인망택폐우촌황(人亡宅廢又村荒)이라, 사람도 죽고 집도 다 허물어지고 마을도 또한 다 황폐해 버렸더라.

 

청산(靑山)은 불어춘천모(不語春天暮)헌데, 푸른 산은 말이 없고 봄 산은 저물었는데,

두우일성내묘망(杜宇一聲來杳茫)이라. 두견새, 두견이 한 소리가 아득히 오는구나.

 

인망택폐우촌황(人亡宅廢又村荒)은—이 게송, 도인(道人)이 읊으신 게송(偈頌)이라 하는 것은 중생 분별심(分別心)으로 따져 가지고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깨달은 참 경계는 설명해 줄 수도 없고 또 분별심으로 따져서 알 수도 없는 것이지만, 글의 그 뜻은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인망택폐우촌황(人亡宅廢又村荒)은, 중생의 온갖 분별심, 사량심 그런 것, 번뇌 망상 이런 것들이 다 끊어져 버린 경계를 읊었다, 이렇게 볼 수가 있고.

청산(靑山)은 불어춘천모(不語春天暮)헌데 두우일성내묘망(杜宇一聲來杳茫)은, 바로 그 깨달은 경지를 읊으신 것이다. 이런 정도는 우리가 얘기할 수가 있는 것이고.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언제나 말을 한 바와 같이,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누누이 말씀을 하신 바와 같이—아난존자(阿難尊者)가 30년을 부처님 시자(侍者)를 했는데, 그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한마디, 한 글귀도 놓치지 아니하고 다 그것을 듣고 다 외우고 있었다 그말이여. 그런데도 불구하고 깨닫지를 못했어.

 

그래서 부처님께서 아난존자를 꾸짖으시기를 「니가 천일 동안을, 여천일학혜(汝千日學慧)가 불여일일학도(不如一日學道)니라. 천일 동안 혜(慧)를 배운 것이 하루 도(道)를 배운 것만 못한 것이다. 약불학도(若不學道)면, 만약 도를 배우지 아니하면, 적수(滴水)도 난소(難消)니라. 한 방울 물도 소화를 시키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난존자를 부처님께서 꾸짖으셨습니다.

30년 동안을 시봉(侍奉)을 하면서 아! 법문 한마디를 놓치지 아니하고 주르르허니 녹음해 놓은 것처럼 그렇게 다 외와 알고 있는데, 지금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은 어느 강원을 가거나, 어느 선방을 가거나 다 칭찬을 할 것이여. 그런데 왜 부처님은 꾸짖으셨을까? 「천일 동안 혜(慧)를 배운 것이 하루 도(道) 배운 것만 같지 못하다」

 

도(道)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져서 가리킬 수 없고, 따져서 배울 수가 없는 것이여.

 

요새 참선을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참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 가고 있는데, 특히 거사들, 청년들, 학생들, 굉장히 그 참선에 대한 열의가 있어서 모다 이 공부할려고 애를 쓰고 있고, 또 비구니 스님들이 그렇게 여기저기 선방이 꽉꽉 차 가지고 모다 정진을 할려고 애를 쓰고 있고, 밤잠을 안 자고 공부를 하고 모다 대단히 좋은 현상이나, 참선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제각기 바르게 한다고 생각하고 애를 쓰고 있지만, 공부하고 있는 내용을 잘 알아보면 썩 그렇게 올바르게 하고 있는 사람이 적더라. 어째서 그러냐?

 

'그 스승이 어떻게 참선을 지도를 하고 있느냐? 어떻게 지도하는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느냐? 어떠한 방법으로 참선을 하느냐?' 그것이 대단히 중대한 문제가 되아 가지고 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활구참선법은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 이외의—화두에 대해서 사량심으로 따지고 분별심으로 더듬어서 그렇게 짐작해 가고 그러한 참선은 올바른 참선이 아니다.

그런데 간혹 들으면, 와서 자기 공부해 나가는 경계, 소증처(所證處)를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떠한 선지식(善知識)은 화두(話頭)를, 자기 본참화두를 놔두고 이 공안 저 공안을 힌트를 줘 가면서 설파(說破)를 해서 학자로 하여금 무슨 화두에 대한 알음알이로 해석을 하도록 은근히 그렇게 이끌어 가는 그러한 큰스님이 계시지 않은가?

 

내가 직접 그 선지식을 만나서 듣지는 안 했지만, 그 선지식 밑에서 공부를 해 가지고 거기서 '어떠한 공안을 어떻게 어떻게 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보았다' 그래 가지고 나한테 와서 그것을 점검을 받으러 온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그렇게 와서 얘기한 것을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나는 생각을 하나,

그 와서 말한 사람한테는 '니가 잘못 알아들었지 그 스님이 그렇게 지도를 할 까닭이 없다'고 그렇게 말을 막아 버리기는 했지만, 혹 여러분 가운데에도 그러한 식으로 참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결정코 그것이 바른 참선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잘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공안을 사량심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고 또 분별심, 설파를 해 가지고 그 학자로 하여금 가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가고 하는 이러한 참선은 백년을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해서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하나도 걸림이 없이 환히 다 안다 하드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요, 마침내 분별심에 지내지 못한 것이라, 생사해탈(生死解脫)을 못하는 것이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공부를 하고 앉았어도 그것은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일 동안을 지혜를 배우는 것이 하루 동안 도 배운 것만 같지 못하다. 참으로 올바르게 도를 닦아야지 그렇지 않다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화를 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아난존자를 꾸짖으신 바가 바로 그것을 두고 하는 말이여.

 

천 인, 만 인이 공부를 해도, 이 문중에 들어와서 공부를 해도 겨우 세 개, 너댓 개, 3,4명—천 명 가운데에, 천만 명 가운데에 다못 세 사람이나 댓 사람 정도 밖에는 도를 얻은 사람이 없는 까닭이 바로 공부를 여법(如法)하게 하지 못하고, 그러한 식으로 공부를 하고 앉았기 때문에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를 못하는 것이다.

올바르게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결국은 재앙(災殃)을 받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금생에 올바르게 공부를 하지 아니하면 그 재앙이 누겁(累劫)을 두고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황벽 선사께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삿된 방법으로 그릇된 방법으로 공부를 하면 금생에 도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재앙을 앙화(殃禍)를 누겁을 두고, 여러 겁을 두고 받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금생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를 하기는 올바른 방법으로 받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숨이 딱! 끊어질 때까지라도 올바른 방법으로 화두를 들고 숨을 거두어야만, 내생에 다시 사람 몸을 받아서 금방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르게 또 공부를 하게 되기 때문에 내생에는 젊어서, 이 금생에 공부한 그 뒤를 이어서 하게 되기 때문에, 바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지만,

금생에 마지막 죽을 때까지라도 올바르게 하지 못하면 내생에 다시 정법(正法)을 만나게 될는지 기약을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삿된 스승 밑에 가서 외도(外道)의 제자가 되기가 십상팔구(十常八九)고, 그렇게 되었을 때에 삿된 도를 만나서 삿되게 닦으면 결국은 무엇이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처음~16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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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십년래반고향~' ; 『청허당집(淸虛堂集)』 3권. '환향(還鄕)'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의 스님. 평남 안주 출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고도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남아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 : 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지리산·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석(禪敎釋)·청허집(淸虛集)·운수단(雲水壇).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본고향(本故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난존자(阿難尊者) : [범] Ananda 음을 따라 아난타(阿難陀)로 쓰고, 줄여서 아난(阿難) 또는 아란이라 하며, 뜻으로 번역하여 환희(歡喜) 또는 경희(慶喜)라고 하니, 「기쁘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사촌이며 조달(調達)의 친 동생이다。부처님 성도하시던 날 밤에 났고, 스물다섯 살에 출가하여 25년 동안 부처님의 시자(侍者)로 있었으며 십대제자 가운데서도 다문제일(多聞第一)로 그 총명이 놀라웠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의 주관으로 왕사성 밖에 있는 필발라굴(畢鉢羅窟 Vaibhara)에서 오백 성승(聖僧)이 모여 경전을 결집하는데 아난존자는 그 때까지 아직 성과(聖果)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섭존자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사형(師兄)에게 법을 전하실 때에 금란가사(金襴袈裟)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신 것이 있읍니까?』

 

『아난아』

『예?』

 

『문 밖에 찰간(刹竿)대를 꺾어 버려라! 』하였다。그러나 아난은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용맹정진 사흘 만에야 비로소 크게 깨치고 나서, 회의에 참석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다 외니 하나도 틀림없음을 대중이 증명하여 경의 결집이 완성된 것이다。그 후 가섭존자로부터 법통(法統)을 받았다가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법을 전하였다.

*시자(侍者) ; ①시중(侍從)을 드는 사람. ②스승, 장로를 따라서 시중을 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승(高僧)의 가까이서 시중을 들고 명령에 따르며, 항상 용무를 다하는 제자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아난존자를 꾸짖으시기를 「니가 천일 동안을, 여천일학혜(汝千日學慧)가 불여일일학도(不如一日學道)니라. 천일 동안 혜(慧)를 배운 것이 하루 도(道)를 배운 것만 못한 것이다. 약불학도(若不學道)면, 만약 도를 배우지 아니하면, 적수(滴水)도 난소(難消)니라. 한 방울 물도 소화를 시키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난존자를 부처님께서 꾸짖으셨습니다' ; 『전심법요(傳心法要)』 황벽선사(黃檗禪師). 「被佛訶云 汝千日學慧 不如一日學道 若不學道 滴水難消」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가로판 p179)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80-181) (가로판 p171~172)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참고 ③] 송담스님(No.122)—1980년 5월 첫째일요법회 (80.05.04)에서.

학자(學者)에게, 참선(參禪)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공안을 설파해 주면 이 세상에 제일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힘으로 타파(打破)를 해야지, 이론을 통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스스로 타파를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지, 이 공안을 갖다가 요리조리 힌트를 줘가지고 알것께 맨든 것은 이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이 되아서 그것은 그럴싸하니 답을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깨달을 분(分)을 없게 맨들아 주는 것이 되는 것이여.

 

참선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중생(衆生)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신음을 하던 사람이 겨우 인자 그 병을, 병근(病根)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공안을 갖다가 설파를 해주면 겨우 일어설라고 몸부림친 놈을 여지없이 몽둥이로 쳐서 꺼구러뜨려 버린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힘이 없어가지고 일어설라 말라 하는데 몽둥이로 쳐서 꺼꾸러뜨려 버리니 인자는 그 사람은 일어나기가 틀린 것입니다. 공안을 설파해 준 것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57분59초~59분25초)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 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천 인, 만 인이 공부를 해도, 이 문중에 들어와서 공부를 해도 겨우 세 개, 너댓 개, 3,4명—천 명 가운데에, 천만 명 가운데에 다못 세 사람이나 댓 사람 정도 밖에는 도를 얻은 사람이 없는 까닭이 바로 공부를 여법(如法)하게 하지 못하고, 그러한 식으로 공부를 하고 앉았기 때문에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를 못하는 것이다.

올바르게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결국은 재앙(災殃)을 받을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금생에 올바르게 공부를 하지 아니하면 그 재앙이 누겁(累劫)을 두고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황벽 선사께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 『전심법요(傳心法要)』 황벽선사(黃檗禪師) 「此門中千人萬人 只得三箇五箇 若不將爲事 受殃有日在 故云 著力今生須了却 誰能累劫受餘殃」

「이 불법 문중(佛法門中)에서 천인(千人)·만인(萬人)이 있지만 겨우 서너, 너댓 사람만이 깨달음을 얻는다. 만약 이 도 닦는 일을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금생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러면 누가 오랜 세월(累劫) 남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재앙(災殃 재앙 재/재앙 앙) ;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생긴 불행한 사고.

*누겁(累劫 묶을·포갤·쌓을 누/겁·오랜 세월 겁) ; 여러 겁이 쌓여서 이루어진 기간. 곧 한없이 길고 오랜 시간.

*황벽(黃檗) : (? – 850) 법명은 희운(希運),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민현(閩縣)에서 났다。어려서 신동이라고 불리더니, 강서성 서주부 황벽산에 가서 출가하였다가, 백장에게서 마조의 할에 백장이 깨치던 사연을 듣고, 그 자리에서 크게 깨치고 나서 백장의 법을 이었다。그 뒤에 배휴(裵休)의 청을 받아 여러 곳에서 교화하였으나, 가는 곳마다 그 산 이름을 처음 출가하던 산 이름 그대로 황벽산이라 하였다.

그가 염관사(鹽官寺)에 있어 예불하는 자리에서 뒷날의 선종(宣宗)이 그에게 법문을 묻는데, 그가 세 번이나 뺨을 때린 일이 있었다。뒤에 선종이 즉위하여 그에게 「추행사문(麤行沙門)」 곧 행실이 거친 중이란 법호를 주려고 하자, 배휴가 간하기를 『황벽선사가 폐하에게 세 번 손질한 것은, 폐하의 삼제(三際 곧 三世) 윤회를 끊는 뜻입니다』하여 단제선사(斷際禪師)의 호를 내리게 되었다.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십상팔구(十常八九) ; 열[十]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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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