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등10) 환(幻) / 순행보살(順行菩薩)과 역행보살(逆行菩薩) / 결제 때의 공부를 해제 때도 이어가야.

 

착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化身)은 순행보살(順行菩薩)이고, 마왕 파순이나 조달이나 나찰 귀신으로 나타난 불보살은 역행보살(逆行菩薩)인 것입니다. 순행보살 보다는 오히려 역행보살로 나타나 가지고 나의 육체와 정신에 자극을 주고 충격을 주어서 대발심(大發心), 대분심(大憤心)을 일으키게 해 준 경우가 훨씬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불보살의 화현을 원수를 만들고 자기는 따라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느냐, 금생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되느냐는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고봉 선사(高峰禪師)가 확철대오를 해서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에는 3년 동안의 피나는 정진, 죽음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3년이 하루 같이 지낸 데에서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세등10)

 

약 11분.

 

공부를 해 지어 가는 가운데 부처님이 나타난다든지, 관세음보살 모습이 나타난다든지, 어떠한 신기한 것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환(幻)입니다.

실상(實相)이 아니라 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두 번 다시 눈여겨볼 필요도 없고, 생각을 거기다가 쏟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나타나건, 어떠한 것이 보이건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렇게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로 돌아와서, 들고 또 들고 이렇게 간절히 공부를 지어 간다고 하면은, 시비에 걸려서 속상할 까닭도 없고, 계행(戒行)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날 까닭도 없는 것이고, 그 가운데에 그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단속하는 가운데에 무량겁 업장(業障)은 거기에서 소멸이 돼.

 

앞으로 그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에게 무슨 삼재팔난(難)이 있을 까닭이 있습니까? 있을 경우는 불보살(佛菩薩)의 화현(化現)이 나타난 경우가 있습니다.

 

불보살은 화현으로 나타날 때에 마냥 거룩한 모습으로만 나타나는게 아닙니다.

나찰(刹)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왕(魔王) 파순(波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조달(調達)이와 같은 그러한 무도(無道)한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 가지고 수행인으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게 하고, 신심(信心)을 일어나게 하고, 분심(憤心)을 일어나게 해서 해태(怠)로부터 벗어나고 하루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그렇게 화현하신 수가 너무 많습니다.

 

착하고 거룩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化身)은 순행보살(順行菩薩)이고, 마왕 파순이나 조달이나 나찰 귀신으로 나타난 불보살은 역행보살(逆行菩薩)인 것입니다.

순행보살 보다는 오히려 역행보살로 나타나 가지고 나의 육체와 정신에 자극을 주고 충격을 주어서 대발심(大發心), 대분심(大憤心)을 일으키게 해 준 경우가 훨씬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바른 신심이 있는 사람은 거기에서 정말 발심을 해서 대도를 성취하는 것이고, 바른 신심이 없는 사람은 거기에서 중생심,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가지고 그 불보살이 주는 약을 바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꺼꾸러져 가지고 무간(無間) 악도(惡途)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역행보살로 나타난... (녹음 끊김) 불보살의 역행으로 나타난 화신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처님 인행(因行) 시에 나찰 귀신이 나타나 가지고 부처님을 깨닫게 해 주신 열반경(涅槃經)의 설화를 잘 아실 것이고, 조달이가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음으로 양으로 직접 간접으로 부처님을 해롭게 함으로 해서 부처님으로 하여금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크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 바로 조달입니다.

 

조달이는 역행으로 나타나신 불보살의 화현인 것입니다.

 

만일에 부처님이 나찰 귀신이라 해 가지고 미워하고 배격을 함으로 해서 법문을 듣지 아니 했다든지, 10생을 따라다니면서 해꼬자하는 조달이를 미워하고 원수로서 상대를 하셨다면은 부처님은 대도를 성취하시기 커녕은 악도에 떨어질 길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부처님은 그 나찰 귀신에게 몸을 바쳤어.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이 반 구절을 듣기 위해서 몸을 바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이웃에 여러분을 험담하고, 여러분을 해롭게 하고, 여러분의 돈을 가져다 쓰고 갚지 아니하고, 갖은 방법으로 여러분을 해꼬자한 사람을 원수로서 상대하지 말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더욱 발심을 하시고 신심을 내서 ‘이뭣고?’를 하십시오.

 

그러면은 여러분을 해꼬자한 그 마구니들은 마구니가 아니라 불보살의 화현으로서 여러분의 훌륭한 스승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나간다면은 이 세상에 나의 원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채찍질해 주는 선지식(善知識)이요, 불보살 화현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 하나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 불보살의 화현을 원수를 만들고 자기는 따라서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느냐, 금생에 대도(大道)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 대자유인이 되느냐는 내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석 달 안거가 끝나는 해제일로서 앞으로 석 달 동안은 산철이 됩니다.

석 달 동안 외출을 금지하고 결제(結制)를 하는 것은 앞으로 돌아오는 자유롭게 지내는 산철 동안을 철저히 공부가 잘되게 하기 위한 기본 수련기간입니다.

 

석 달 동안 외출을 끊고 구속된 제한된 규칙 내에서 정진을 한 그 기초 공부를 자유기간 동안에 훌륭히 활용을 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도업(道業)을 하루속히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해제(解制)했다'고 해서 여기저기 싸다니면서 구경으로 한 철을 보내고, 히히닥거리고 시비(是非)로써 세월을 보낸다고 하면은 그동안 애써서 석 달 동안 닦아 놓은 공부가 다시 쑥대밭이 되고,

 

그렇게 해서 쪼끔 병이 나을 듯 하다가 함부로 조리(調理)를 잘못해 가지고 팍! 악화가 되고, 또 그다음 석 달 동안 쪼끔 치료를 해서 나을 성 하다가 또 다시 해제가 돌아오면 조리를 잘못해 가지고 팍! 악화가 되고, 그러다가 종내(乃) 병을 낫으지를 못하고 한(恨) 많은 일생을 마치는 그런 환자가 있다면은,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겠지마는,

 

결제 동안에 쪼끔 공부를 애써서 하다가 해제가 되면은 뿔뿔거리고 돌아다니고, 시비와 탐진치 삼독을 불태우면서 그럭저럭 지내다가 또 그다음 결제가 돌아오면 또 결제에 앉어서 공부한 척 하다가, 이러한 식으로 공부해 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한 선지식은 없습니다.

 

고봉 선사(高峰禪師)가 확철대오를 해서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에는 3년 동안의 피나는 정진, 죽음을 걸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3년이 하루 같이 지낸 데에서 마침내 대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수좌(首座) 스님네들 그리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오늘을 기해서 더욱 마음을 가다듬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서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빌고 오늘은 이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이렇게 말씀해 드린 이 말씀을 명심해서 듣지 아니한다면은 후생(後生)에 지옥고(地獄苦)에—지옥에 떨어져서 하루에 만 번 죽고, 만 번 살아나서 한없는 고통을 받을 때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49분38초~60분1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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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500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무도(無道)이나 행동 인간으로서 지켜야  도리 어긋나서 막됨.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순행(順行) ; 거스르지 아니하고 행함.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역행보살(逆行菩薩) ; 그릇된 짓의 나쁜 과보를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그릇된 짓을 하는 보살.

*무간(無間) ; ①곧. 즉시. 끊임없이. ②무간업(無間業)의 준말. ③무간지옥(無間地獄)의 준말.

*악도(惡道)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 설산게(雪山偈)라고 한다.

번역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이 나고 죽는 법이로다. 생과 멸이 다하면은(생멸심이 끊어지면), 적멸이 낙이 되느니라.’

열반경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설산동자로 고행을 하고 계실 때, 앞의 두 구절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을 들은 후에, 나머지 게송을 듣기 위해 나찰귀신으로 변한 제석천왕(帝釋天王)에게 몸을 바친 전생담에서 나온 게송.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산철(散철) ; 본철(本철-하안거,동안거)가 아닌 시기.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조리(調理)건강 회복되도록   보살핌.

*종내(乃) ; ①까지 내내. ②마지막 드디어또는 끝판 가서는.

*고봉 선사(高峰禪師) ; 분류 ‘고봉스님(선요)’ 참고.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10)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화두의 핵심 / 화두를 들면 호흡이 되고, 호흡을 하면 화두가 들리게, 화두와 호흡이 한목 나아가도록.

복식 심호흡이 잘된 연후에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지도 받아 가지고, 자기의 생각을 옳게 단속해 나간다고 하면은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화두는 ‘알 수 없는 것’이 그 화두의 핵심입니다. 화두를 아무리 들되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몰록 드러나지 아니한다고 하면, ‘알 수 없는 의심’에 마음이 꽂히지 않는다고 하면은 그건 옳은 화두가 아닙니다.

 

복식 심호흡을 하면—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에는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생각을 거기에다 붙여서 해라.
그러면은 복식 심호흡을 시작하면 벌써 ‘이뭣고?’가 거기 붙어가고, ‘이뭣고?’하면 벌써 복식 심호흡이 되도록, 이 심호흡과 화두가 동시에 나아가도록.

 

천 생각, 만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을 그것을 싫어하고 성화를 대지 말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놈을 되잡아서 ‘이뭣고?’로 돌아오면 백만 번 일어났자 두려워할 것이 없다.

 

화두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선지식, 또 내 자신이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간택을 받고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세등10)


약 9분.


참선은 첫째, 몸을 바르게 가져라.
둘째에 호흡을 바르게 해라.
셋째에 생각을 바르게 가져라.

‘몸을 바르게 갖는다’고 하는 것은 가부좌(跏趺坐), 가부좌가 어려우면 반가부좌(半跏趺坐)도 상관이 없습니다.

반가부좌를 하고, 그리고서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심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몸을 혈액순환을 촉진을 시켜서 몸의 노폐물을 빨리 배설을 시키고, 몸을 가볍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그러한 묘방(妙方)이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데에는 복식 심호흡을 잘 그 방법을 알아 가지고 복식 심호흡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식 심호흡이 잘된 연후에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지도 받아 가지고, 자기의 생각을 옳게 단속해 나간다고 하면은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만 명이면 만 명 다 반드시 대도(大道)를 성취하고 마는 것입니다.

몸을 바르게 갖지를 못하고, 호흡을 바르게 갖지 못하고서, 화두만 열심히 들고 나간다고 하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 가지고 골치가 아픈 병이 생기고, 그래서 상기병(上氣病)으로 공부는 성취하기도 전에 병에 걸려서 일생을 한숨 속에서 지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하고자 하면은 첫째 몸을 바르게 가지고, 둘째에 호흡을 바르게 하고, 그리고서 화두를 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화두(話頭)입니다.

화두는 ‘알 수 없는 것’이 그 화두의 핵심입니다.
화두를 아무리 들되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몰록 드러나지 아니한다고 하면, ‘알 수 없는 의심’에 마음이 꽂히지 않는다고 하면은 그건 옳은 화두가 아닙니다.

「화두를 의심한다」고 하는 것은 의심(疑心),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 하시는 분은 ‘이뭣고?’  ‘이~ 이뭣고 하는 놈이 뭣고?’ ‘이~?’하는 놈이 무엇이냐 말이야.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는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도 여기에는 끌어들여서는 안됩니다. 화엄경의 말씀도 이 ‘이뭣고?’하는 데에는 끌어들여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팔만대장경을 육두 백방으로 외우고 꿴다 하더라도 ‘이뭣고?’하는 데에는 그것를 등장시켜서는 안돼.

다못 바보 천치가 되고, 멍청이가 되어 가지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무조건으로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똥누면서도 ‘이뭣고?’ 불칼 같은 신경질이 볼쏙 솟아 나올 때도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배가 아퍼서 몸부림을 칠 때도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차를 타고 갈 때도 ‘이뭣고?’

그렇다고 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루에 만독(萬讀)이나 십만독 채우기 위해서 염주를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런 염불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뭣고~?’ 깊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조용히 내쉬면서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이 꽂히도록, 알 수 없는 생각에 눈을 박고,
그 화두를—복식 심호흡을 하면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에는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생각을 거기에다 붙여서 하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복식 심호흡을 시작하면 벌써 ‘이뭣고?’가 거기 붙어가고, ‘이뭣고?’하면 벌써 복식 심호흡이 되도록, 이 심호흡과 화두가 동시에 나아가도록.

처음에는 ‘이뭣고?’하면 호흡이 잘 안되고, 호흡을 하면 ‘이뭣고?’가 잘 안되고 이러는 수가 있지마는, 자꾸 훈련을 쌓아서 자꾸 간절히 간절히 해가다 보면은 ‘이뭣고?’하면 벌써 호흡이 되고, 복식 심호흡을 하면 화두가 저절로 들려지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화두와 호흡이 한목 나아가도록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 처음에는 ‘이뭣고?’해도 금방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지마는 딴 생각이 들어온 것을 성화대지 말고, 들어온 줄 알면 벌써 ‘이뭣고?’로 돌아오면 그뿐이여.

그래서 천 생각, 만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을 그것을 싫어하고 성화를 대지 말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놈을 되잡아서 ‘이뭣고?’로 돌아오면 백만 번 일어났자 두려워할 것이 없다.

‘이뭣고?’ 자꾸 화두를 해 가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조용하고 그러면은 혼침(昏沈)에 떨어지기가 쉬운데 허리를 쭈욱 펴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이뭣고?’하되,

그래도 잠이 달아나지 아니하면은 조용히 일어서서 밖에 나가 가지고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좀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은 다시 정신이 깨끗해 지면 다시 또 방석으로 돌아와 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 ‘이뭣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 무엇인고?’



화두는 어느 화두나 다 마찬가지여. 어느 화두가 좋고, 어느 화두가 나쁘고 한 것은 없지마는 화두는 간략(해야) 하고, 이런가 저런가 사리상량(邪理商量)을 붙일 수 있는 소지가 있는 화두는 좋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따질 수 있는 그런 꼬타리 붙일만한 그런 가능성이 있는 화두는 까딱하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사량심(思量心)이 일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화두는 자기 멋대로 골라잡는다든지, 올바르게 화두 간택을 해 줄 수 없을만한 사람한테 화두를 간택을 받는다고 하면은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하고 더듬거리게 됩니다.

그러니만큼 아까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화두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선지식, 또 내 자신이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간택을 받고 공부를 계속해야 하고,
공부를 하다가 어떠한 이상한 경지가 나타나면 바로 그 선지식한테 가서 감정을 받어서 옳은 것이면 옳은대로, 그른 것이면 깨끗이 씻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 가야 하는 것이다.(41분3초~49분5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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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묘방(妙方) ; ①기묘한 방법. ②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이뭣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 무엇인고?’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사리(邪理) ; 그릇된 이치나 생각.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5. 3. 5. 14:51

 

 

 

§(세등10) 화두는 삼재소멸 부적 / 죽은 참선과 산 참선 / 소무공덕(小無功德) / 참선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 / 참선 외에는 다 소무공덕 / 복(福)과 혜(慧) 쌍으로 닦아야.

 

‘이뭣고~?’하는 골똘한 그리고 간절한 의심의 뭉침이 없다고 하면은 아무리 입으로 ‘이뭣고’를 백 번 천 번을 해도 그것은 입 껍데기로만 하는 것이지, 옳게 화두를 관(觀)할 줄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삼재의 원인을 소멸하고, 앞으로 삼재를 물리치고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화두 하나만을 옳게 듣고 옳게 지어 나간다면 삼재, 무량겁 죄업(罪業)도 거기에서 녹아지는 것이며, 사백사병, 팔만사천 마구니도 이 화두 앞에는 머리를 싸매고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니가 너를 깨달어라!’ ‘너의 참마음을 깨달어라’ 이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불교(佛敎)의 ‘불(佛)’자는 인도의 ‘붓다(Buddha)’라 하는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해서, 그것이 불타(佛陀)가 한국에서는 ‘부텨, 부텨님, 부텨님’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 ‘부처님’하면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닫는 길이다, 깨닫는 가르침이다’ 이런 말씀이여.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 부처님 신도(徒)가 된다」고 하면은 「깨닫기 위한 수행」 이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깨닫기 위한, 나를 깨닫기 위한 참선, 이것 말고 다른 어떠한 훌륭한 일을 하고 어떠한 남의 이목을 끄는 그러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무공덕(小無功德)’인 것이여.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법」 이것이야말로 무량겁을 두고 윤회할 생사의 근원을 끊는 것이여.

 

복(福)과 혜(慧) 두 가지를 쌍으로 닦아야만 내가 도(道)를 닦아가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이고, 도를 성취한 뒤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세등10)

 

 

(1) 약 21분.

 

(2) 약 10분.

 

(1)------------------

 

참선(參禪)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發心)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

 

출가해서 10년, 20년, 30년을 ‘이뭣고?’를 하고 선방(禪房)에 다니시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참선을 해도, 나를 깨닫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 그런 스님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심성(心性)도 얌전하고 인자하고, 행동도 바르고 깨끗하고, 철저히 참선할라고 그렇게 애를 쓰면서도 10년, 20년, 30년이 되도록 나를 깨닫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냐? 

 

문제는 화두(話頭), 화두를 어떻게 단속해서... (녹음 끊김)... 마음의 눈을 닦느냐?

이러한 구체적인 곳에 들어가서 자기의 정진을 지어 나갈 줄 모르기 때문에 ‘이뭣고 이뭣고’ 입으로만 관세음보살 부르듯이 ‘이뭣고’를 천만 번을 찾아 봤자,

 

그 ‘이뭣고~?’하는 골똘한 그리고 간절한 의심의 뭉침이 없다고 하면은 아무리 입으로 ‘이뭣고’를 백 번 천 번을 해도 그것은 입 껍데기로만 하는 것이지, 옳게 화두를 관(觀)할 줄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금년은 해·묘·미(亥·卯·未), 돼지띠, 토끼띠, 염소띠 이 세 가지 띠를 가진 사람이 삼재(三災)를 맞는 해입니다.

 

인천 용화사에 신도들이 많이 와 가지고 금년에 삼재가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이 삼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입춘일을 기해서 보통 평상시 오시는 신도 보다도 훨씬 많은 신도들이 와 가지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불공(佛供)을 올리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서 삼재 면하는 부작(作)을 달라고 모다 그럼니다.

 

그러나 다른 절에서는 많이 부작을 모다 찍고 마련해서 나눠 드리기도 하는 절이 많은 모양입니다마는 인천에서는 그러헌 종이로 이루어진 부적(籍)을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서 그런 것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부적을 드린 것도 신도의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하고 나아가서 정법(正法)에 발심해서 복과 혜를 닦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方便)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지마는 용화사에서는 그러헌 종이로 된 부적을 나눠 드리지 안했습니다.

 

그리고서 삼재 소멸하는 기도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열심히 듣는 것으로서 삼재 소멸하는 불공 기도를 삼고,

또 앞으로 3년 동안 삼재 액난(難)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부적은 무엇으로서 드렸느냐 하면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의 화두를 분명히 일러 드렸습니다.

 

이 화두 하나만을 옳게 듣고 옳게 지어 나간다고 하면은 삼재 뿐만이 아니라 무량겁(無量劫) 죄업(罪業)도 거기에서 녹아지는 것이며, 사백사병(四百四病), 팔만사천 마구니도 이 화두 앞에는 머리를 싸매고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삼재는 저 밖에서 뿔 돋친 귀신이 나한테 달라드는 것도 아닌 것이고, 무슨 대가리만 있고 아랫도리는 없는 이상스럽게 생긴 더벅머리가 나한테 달라드는 것도 아닙니다.

 

「삼재는 어디서부터 일어나느냐」 하면은 내 마음으로부터 좇아 일어나는 것이여.

 

설사 병고(病苦)라든지 손재(財)라든지 또는 생명을 잃는다든지 또는 관재구설(舌)이라 하드라도 그것이 전부 과거에 내가 마음으로 지은 그 죄의 원인으로 해서 금생에 받는 것이고, 금생에 내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한 생각을 단속을 못함으로서 그것이 악한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이 앞으로 받을 삼재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지은 삼재의 원인을 소멸하고, 앞으로 삼재를 물리치고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죄를 지을 수 있는 근원을 다스린다’고 하면은 이 방법 이상 더 좋은 삼재소멸 기도는 없는 것이며, 삼재소멸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부적은 없는 것입니다.

 

 

참선, 참선, 요새 굉장히 승속을 막론하고 외국에까지도 이 참선의 붐이 일어나 가지고 입으로는 아니하는 사람이 없고 말로는 이 참선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선에는 크게 나눠서 두 가지를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구(死句) 참선—죽은 참선 또 하나는 활구(活句) 참선—산 참선, ‘죽은 참선’과 ‘산 참선’이 있습니다.

 

‘죽은 참선’은 아무리 해봤자 점점 삼재를 불러 일으키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점점 충동이 쳐 가지고 마구니의 권속으로 떨어져 가지고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佛法)을 망하는 마구니로 떨어지는 길이고,

‘산 참선’—활구(活句) 참선을 해야만 나를 생사로부터 건져내고 다른 사람을 생사의 윤회로부터 건져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영원히 이어 나가는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죽은 참선’이냐?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고, 교리로 따져 들어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이렇게 자꾸 따져 들어가고 알아 들어가고 더듬어 들어가는, 그리고 차츰차츰 알아지는 것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무엇이 보이는 것이 있고 이러한 참선은 이것이 바로 ‘죽은 참선’—죽음으로 들어가는 생사윤회로 떨어지는 참선입니다.

 

제가 아무리 경을 많이 읽고 교리에 무불통지(知)하고 일체 철학·문학·과학 그런 학문에 맥힘이 없다 하드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지식이요, 지식은 중생심(衆生心)으로 알아 들어가는 것이요 중생심으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았다 해도 그것은 중생심 안에서 있는 일입니다.

많이 알수록 중생심만 더욱 치성(盛)하게 만드는 까닭으로 해서—중생심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여—생사심을 치성하게 하므로서 생사윤회에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

 

활구 참선은 알아 들어가고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나 교리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알고 연구해서 얻어져 갖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그러한 것을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동원를 해 가지고 그러한 것으로 더듬어 들어간다면은 그것은 활구참선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그리고 내가 믿어지는 선각자(先覺者)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공부를 시작해야 하고, 공부를 진행해 나가야 하고, 공부를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아라」

 

달마 스님은 인도에서 향지국(國)이라고 하는 나라의 제3 왕자로 태어난 분으로 일찍이 출가해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140세가 되도록 서인도 천지을 다니시면서 대법(大法)을 선양을 하시다가 인연이 중국에 있는 것을 짐작을 하시고 말년에 중국으로 건너오셨습니다.

 

중국에 건너오셔 가지고 맨 처음에 양무제(梁武帝)라고 하는 천자(天子)가 불교에 신심이 장하다는 말씀을 듣고 양무제를 찾아가 면회를 했습니다.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향해서 묻기를 “짐(朕)이 많은 경을 인쇄해서 널리 보시를 하고, 많은 절을 짓고 많은 승려들을 득도를 해서 절을 짓고 탑을 많이 세우고 했으니 짐의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하기를 “소무공덕(小無功德)입니다. 조끔도 공덕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장 성스러운 뜻입니까?”

“확연(廓然)해서 조끔도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은 짐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

“모르겠습니다[不識]”

 

이렇게 대화가 오고 감으로 해서 달마대사는 양무제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그 길로 물러나와서 위(魏)나라 숭산에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사람을 상대하지 아니하고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했습니다.

 

양무제는 그 뒤 훌륭한 의인으로부터서 “대관절 그 왔다간 달마대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요?”

“그이는 불(佛) 후신(後身)으로서 생불(生佛)과 같은 어른으로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이어받은 대도사입니다.”

“하 그러냐고, 그러면 그이를 다시 모셔 오도록 하자”

“아닙니다. 그이는 천하의 사람이 다 가서 청한다 해도 그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리해서 양무제는 정말 자기가 그런 대도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푸대접한 것을 깊이 뉘우치고 그 뒤로 부터서는 정말 마음으로부터 달마대사를 숭배하고 존경해 마지않았던 것입니다.

 

드디어 달마대사는 그러한 천자의 귀위(歸依)를 받고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마는 그것을 시기하는 다른 율사의 무리들의 무고로 인해서 독약을 여섯 번이나 받았으나 번번이 토해 버림으로서 죽음을 면했습니다.

일곱 번째 독약이 또 왔습니다. 그때는 이미 당신이 인연이 그것인 줄 알고 독약을 토하지 아니 함으로 해서 조용히 열반을 맞이했습니다.

 

그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오셔서 어떻게 법을 선양하셨느냐?

달마대사가 중국에 오시기 전에 이미 많은 불경(佛經)이 중국에 들어왔었고 불상(像)도 들어왔었고 많은 강사, 율사들이 건너와서 굉장히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달마대사는 ‘불입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바로 그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이 말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그것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달 가리키는 손가락은 어찌 달을 보라고 하는 것인데,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면 그것이 말이 될 말이냐?

 

팔만대장경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못하거늘 어찌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볼 수가 있느냐? 이것은 불법(佛法)이 아니다. ‘참 불법’은 달을 보는데 있는 것이지 손가락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강사(師)들의 비위를 건드렸고, 율사(師)들의 비위를 건드려서 달마대사는 정말 죽음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참선법은 ‘내가 나를 깨닫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많은 경을 읽고 교리에 밝고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에 밝은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면은 그 경을 옳게 본 사람이라면은 반드시 나를 깨달을 수 있는 참선을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경을 잘못 보기 때문에 일생을 경만 뒤적거리고 경만 읽고 있지, 경을 옳게 본 사람이면 바로 참선을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참선(參禪)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입니다.

‘내’라는 것이 무엇이냐?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아는 놈!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일어나는 곳에 ‘나’는 있는 것입니다. 번뇌, 망상, 중생심 이것이 바로 ‘참나’가 있는 증거입니다. 그놈을 버리고 나를 찾아서는 안되는 것이여.

 

큰 강물이 흘러갈 때 그 강물이 대관절 어느 수원(源)으로부터서 그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는가? 그 근원을 알고자 하면은 그 강물을 따라서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흘러가고 있는 그 강물을 떠나서 다른 데를 아무리 방황을 해봤자 그 근원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며, 그 강물을 따라서 밑으로 내려가 봤자 바다 밖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여.

 

그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면 반드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여.

성냈다·웃었다·근심·걱정·번뇌·망상 일어나는 그것을 강물에다 비교한다면 그 일어나는 곳, 그것이 바로 근원이 ‘참나’요, 그것이 나의 ‘본 성품(本性品)’이요, 진여자성(眞如自性)이요, 불성(佛性)인 것입니다.

 

‘이뭣고?’ 성이 날 때나, 슬플 때나, 근심 걱정이 있을 때나, 언제 어디에서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려서 ‘이뭣고?’

 

화두(話頭)에는 천칠백 공안(公案)이 있지마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이요, 생겨나기 이전에 노상 있었던 화두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이전에도 이 ‘이뭣고?’ 화두는 온 법계에 노상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10분24초~31분18초)

 

 

 

 

 

(2)------------------

 

이것을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지혜스러운 부처님께서는 먼저 어릴적부터서 이 화두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12년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녹음 끊김)... 납월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서 솟아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그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하늘에 뜬 별의 원리가 아니라, 바로 ‘나’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나! ‘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우주의 근본이요, 우주인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우주는 존재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우주라고 하는 것은 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없는 허공을 커다란 하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면은 그 거울에 나의 모습이 비추어서 반사해서 돌아온 것이 바로 이 우주의 가득찬 삼라만상(象)인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꽃이 피어 있어도 그 마음이 슬픈 자는 그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기보다는 슬픔에 눈물이 흘르는 것입니다.

밝고 밝은 하늘의 달을 보고도 마음이 기쁜 사람은 흥겨워 노래가 나오지만 마음이 슬픈 자는 그 달을 보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입니다.

 

달은 슬픔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꽃도 자체가 슬프거나 기쁜 것도 또는 자체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비단 달과 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요, 일체 사람도 마찬가지여.

 

부모, 자식, 일가 친척, 모든 사람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마음이 기쁘고 내 마음이 착하면 모든 사람이 다 착한 법이여. 내 마음이 삐뚤어지고, 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내 마음이 뒤숭숭하면 그렇게 사랑하던 자식도 귀찮고 뵈기 싫어지는 것이여.

 

정말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여. 내 마음 하나 바르고, 안정되고, 맑게 유지한다고 하면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고해(苦海)가 아니라 극락정토(極樂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니가 너를 깨달어라!’ ‘너의 참마음을 깨달어라’ 이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많은 말씀은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이렇게도 말씀하시고 저렇게도 말씀하셨을 뿐, ‘니가 너를 깨달어라’하는 그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佛敎)’라고 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불교(佛敎)의 ‘불(佛)’자는 인도의 ‘붓다(Buddha)’라 하는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해서, 그것이 불타(佛陀)가 한국에서는 ‘부텨, 부텨님, 부텨님’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 ‘부처님’하면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닫는 길이다, 깨닫는 가르침이다’ 이런 말씀이여.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 부처님 신도(徒)가 된다」고 하면은 「깨닫기 위한 수행」 이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깨닫기 위한, 나를 깨닫기 위한 참선, 이것 말고 다른 어떠한 훌륭한 일을 하고 어떠한 남의 이목을 끄는 그러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무공덕(小無功德)’인 것이여.

 

왜 ‘소무공덕’이냐? 절을 짓는데 시주(施主)를 하고, 부처님 금을 입히는데 시주를 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돈과 옷을 많이 보시를 하고, 병든 사람 약을 사주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질적인 방법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생사(生死)를 끊는 무루복(無漏福)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는 어디까지나 착한 일이고, 그런 착한 일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은 아니지마는, 궁극적으로 볼 때에는 그것으로 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는 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끊는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데에는 별로 큰 공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소무공덕(小無功德)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착한 공덕을 지었다고 해서 ‘나는 이런 좋은 일을 했다’하고 그러한 자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뽐내고 이러한 것은 더군다나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양무제가 경을 그렇게 많이 찍어서 보시를 하고, 절을 많이 짓고 탑을 많이 세우고, 스님네에게 그렇게 많은 공양구(供養具)를 올려서 보시 공덕을 지은 것을 크게 자랑을 세워 가지고,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에게 “내가 이러헌 착한 일을 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대사가 너무나 점잖으셨기 때문에 ‘소무공덕(小無功德)’이라고 간단히 한마디 하셨을 뿐, 참으로 달마대사가 양무제를 정말 자비심으로써 상대를 하셨다면은 그 자리에서 양무제를 가만히 둘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법」 이것이야말로 무량겁을 두고 윤회할 생사의 근원을 끊는 것이여.

 

일년 이태 삼년의 삼재(三災),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삼재, 과거의 죄(罪)를 소멸하고 금생의 업(業)을 소멸하고,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부적(籍)이요, 불공(佛供)이요, 공덕이 되는 것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선만 한다’ 해 가지고 다른 어떠한 착한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써야 할 최소한도의 액수를 내놓고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보시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福)과 혜(慧) 두 가지를 쌍으로 닦아야만 내가 도(道)를 닦아가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이고, 도를 성취한 뒤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입니다.

지혜만 닦고 복을 짓지 아니하면, 혜(慧)는 밝지마는 너무나 모든 여건이 맞지 안 해서 자기와 남을 생사로부터 건져내는 데에 필요한 여건이 갖추지를 못해서 중생 교화하는 데에 막대한 장애에 부닥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복도 지어야 하는 것이고 복만 짓는 데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찾는 참선 공부, 활구참선 그것이 오히려 선행(先行)되어야 하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고 근본이 되어서 그 위에 복을 닦는 행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31분19초~41분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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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부작(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액난(厄難)뜻밖에 당하는 불행한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사백사병(四百四病) ; 인체에 일어나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사대(四大)—지(地)·수(水)·화(火)·풍(風)의 부조화로 각 요소에 대해서 101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지(地)와 화(火)에서 일어나는 열병(熱病)이 202가지, 수(水)와 풍(風)에서 일어나는 냉병(冷病)이 202가지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경전에 그들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이 일정하지 않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손재(財)재물 잃어 버림또는  재물.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무불통지(知)무슨 이든지 두루 통하여 모르는  없음.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치성( 성할 치,성할 성) ; 불길 일어나는  같이 성하게 일어남.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천자(天子) ; 천제()의 아들 하늘의 을 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으로, 군주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이르는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이라고 하였다.
*짐(朕)예전임금이나 군주 자기 이르던 .
*후신(後身) ; 내생(來生)의 몸. 후의 몸. 후세의 생존. 다시 태어난 몸.
*생불(生佛) ; ‘현실로 살아있는 부처님’이라는 의미로, 부처님과 같이 덕이 높은 사람을 존칭하여 부르는 말로 고승(高僧 행동이나 덕이 높은 스님)을 찬미하는 호칭이다.
*심법(心法) ; ①마음. 심왕이라고도 함. 심소법에 대한 심왕. 마음의 본체. ②심소(心所, 심작용. 마음의 움직임. 정신작용. 心所有法의 준말)와 같음. ③마음의 법. 마음의 모습.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율사(律師) ; 계()와 율()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수원(水源)물이 흘러나오는 근원.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자성(自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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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말함.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삼라만상(森羅萬象)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3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5. 3. 3. 14:33

 

 

§(세등10) 인생 무상,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가 내려져 있는 신세 / 몽산 화상 출가 동기 / 생사가 무서운 포구발심(怖懼發心)과 철저한 일념 단속.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헌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세등10)

 

약 11분.

 

 

오늘 삼동 구순 안거(九旬安居)를 마치는 해제일을 맞이해서 방금 고(故)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 우리 세등선원의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 전강 대종사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잘 들으신 바와 같이 몽산 화상(蒙山和尙)의 출가 동기와 중국의 고봉 선사(高峰禪師)께서 3년을 기한을 하고 ‘3년 동안 열심히 도를 닦아 가지고 견성(見性)을 못하면 내가 죽어 버리리라’ 이렇게 결심을 하고,

 

3년 동안 밥 먹고 옷 입고, 일체 생활을 다못 화두(話頭) 하나 들고 정진하는 것으로서 3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건마는 조그만큼도 공부가 진행이 없어서, 3년 기한은 머지않았는데 도는 성취를 못해서,

‘이제 나는 죽는 수 밖에는 없구나’ 이렇게 앞이 캄캄하고 그러던 차에 꿈에 화두를 얻어 가지고 일주일 만에 대도를 성취한 고봉 스님의 도를 통하신 설화를 말씀을 해 주시고, 그러는 가운데 무자(無字)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러한 화두 드는 법에 관해서 자세히 말씀이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조실 스님께서 법문을 하실 때 마다 참선 이야기를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느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머지않아서 우리는 죽음의 마당을 만나지 않고서는 아니 됩니다.

단명한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죽어서 나오기도 하고, 나오다 죽기도 하고, 10년 또는 30년 많이 살아 봤자 육칠십세 혹은 칠팔십세까지 살다가 죽는 이도 있지마는, 한번 태어난 사람치고 죽지 아니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코앞에 ‘죽을 사(死)’자를 딱 써서 붙여 놓은 이 마당에 사소한 일로 시비, 인간으로 태어나서 크고 작은 어떠한 일이라도 ‘죽을 사(死)’자 앞에는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도(道)를 닦을라면은 철저히 무상(無常)을 느끼고 깨닫지 아니하고서는 그 사람은 도를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맨 처음에 말씀하신 몽산 화상도 애당초에는 유교 사상(想)에 철저히 젖어 있는 선비였습니다.

 

‘불교’ ‘스님’하면은 진절머리를 내고, 절 근처에는 지나가다가도 보지도 아니하고, 목탁 소리가 나면 귀를 막을 정도로, 중을 보면은 어제 먹은 밥이 거꾸로 넘어올 정도로 비위가 상하고 이렇게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반대하던 그런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선영(塋)에 성묘(省墓)를 갔다가 오는 길에 비가 쏟아져서 잠깐 절 일주문(一柱門)에서 비를 피하다가, 거기서 절에서 화엄경을 설하는 법문을 한마디 듣고 그리고 집에를 와서 낮잠이 들었다가,

 

꿈에 어떤 노인이 와 가지고 흰 옷을 입힐라다, 검은 옷을 입힐라다 이러는 가운데에 그런 싱갱이를 하고 있자,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그 노인을 꾸짖으면서 ‘금방 오늘 절에서 화엄경 법문을 들었는데 그 사람에게 어찌 그런 옷을 입힐 수가 있느냐’고 꾸짖어서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깨서 보니까, 그 꿈에 본 그 자리를 찾아가 보니 강아지 새끼가—개가 새끼를 나았는데 흰 새끼가 죽어 있었다.

 

이러헌 광경을 보고서 ‘아하, 내가 틀림없이 이 흰 강아지로 태어날 것을 오늘 절 일주문에 비를 피하다가 화엄경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그 공덕으로 강아지 보(報)를 받을 것을 면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그길로 절에 가서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를 만나 가지고 참선법(參禪法)을 배워 그래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했다고 하는 그러한 법문이 계셨습니다.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헌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출가(出家)한 스님만 할 수 있는 것이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속가(俗家)에 있어도 정말 생사가 두려운 줄 깊이 느끼고, 생활 속에서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만을 올바르게 단속 할 줄만 안다면 어디서나 바로 그 자리가 참선하는 도량(道場)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하더라도 무상을 철저히 느끼지 못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한량없는 무명(無明), 업식(業識), 번뇌(煩惱), 망상(妄想) 일어나는 놈을 단속할 줄을 모르고, 일어나는 한 생각을 점점 발전시켜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을 훨훨 피우며 오욕락(五欲樂)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하면은, 아무리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고 가사(袈裟)를 몸에 걸쳤을망정 견성성불은 막연하고 요원한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처음~10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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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안거(九旬安居)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라 하는데, 하안거(夏安居,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동안거(冬安居,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의 한 안거 기간이 90일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라 한다.

*전강 선사, 몽산 화상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봉 선사(高峰禪師) ; 분류 ‘고봉스님(선요)’ 참고.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무자(無字)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진절머리 ; ‘진저리(몹시 귀찮거나 싫증 나서 끔찍할    것)’를 속되게 이르는 말.

*선영(先塋 조상 선,무덤 영) ; 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성묘(省墓 살필 성,무덤 묘) ;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산소를 돌봄. 주로 설, 한식(寒食), 추석(秋夕)에 행한다.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싱갱이 ; 승강이(서로 자기 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완산정응(皖山正凝)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스님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에서.(3분 21초)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가사(袈裟) ; 스님이 장삼 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으로 걸쳐 입는 의().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