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보시2024. 2. 8. 12:53

§(세등27) 세속에 살수록에 더 야무지게 정진해야 / 죽을 때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의(誠意)를 다해서 보시(布施)를 해야 / 보시(布施)는 복의 씨를 심는 것.
(게송)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 ‘석 달 결제한다’고 생각 말고, ‘하루 결제(結制)다’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알뜰히 정진하라.

부디 금년 한 철 석 달을, '석 달 길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 '오늘 하루 결제(結制)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날 하루를 알뜰히 정진(精進)을 하고, 그리고 그날 저녁에 떠억 자리에 누워서, '내가 과연 오늘 하루를 얼마만큼 알뜰히 공부를 했는가?' 따악 하루를 간단하게 한번 점검(點檢)을 하고,
또 '그 이튿날, 내일은 오늘보다도 더 알뜰히 공부를 해야겄다. 오늘은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 가지고 시비(是非)를 했지. 오늘은 공연히 부질없이 오늘은 하루가 지내갔구나. 내일은 더 알뜰히 해야겠구나' 그러면서 화두(話頭)를 떠억 들고 하루저녁을 하루를 자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7)—1980년(경신년) 하안거 결제(80.04.17.음)(세등27)

 

약 15분.


여기에 참석하신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도, 설사 이 선방에서 결제를 아니하셨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은 공부를 안 하고 그럭저럭 지내도 된다고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세속(世俗)에 살면서 좀 더 잘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치다 보면 본의(本意) 아니게 많은 죄(罪)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전생(前生)에 숙연(宿緣)이 있어서 이러한 불법(佛法)을 만나시게 된 것입니다. 금생에 어쨌든지 정법(正法)을 믿고 몸은 비록 세속에 담겨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스님네보다도 더 이를 갈아붙이고 생활 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또 내생(來生)에 정법을 만나고, 내생에는 보다 더 큰 복(福)과 큰 지혜(智慧)를 받아 타고나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세속에서도 유족하게 살고 좋은 환경에서 사시고, 불법을 만나서 이렇게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보시(布施)를 하셔서 이렇게 선원(禪院)이 잘 유지되어 가도록 뒷받침을 하시면서 동시에 또 여러분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
어쨋든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질은 아무리 그 재산이 많다 하더라도 내생에 한푼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자,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라 하더라도 죽을 때에는 한푼을 가지고 가지 못하고, 관 속에다가 칠보(七寶)를 갖다가 가뜩 채워서 가지고 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가(靈駕)가 그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시체와 더불어 묻혀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가지고 가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가느냐?
일생 동안에 지은, 그러한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모이는 동안에 본의 아니게 지은—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지은 죄업(罪業)만을 한 짐 짊어지고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갈 따름인 것입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 가지고 보시(布施)를 하리라'
'돈을 많이 번다면 내가 선방을 하나 지으리라'
'돈을 많이 벌면 내가 법당을 내가 단독으로 지으리라'
'돈을 많이 벌면 내가 양로원을 하나 하리라'

돈 많이 벌 때를 기다려서, 그때를 기다려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의(誠意)껏 하고,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성의껏 보시를 하고 희사(喜捨)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백유경(百喩經)』에 보면 어떤 사람이 집에 염소를 길렀는데, 날마다 그 염소의 젖을 짜 가지고 식구대로 한 공기씩을 먹고 먹고 해서 아주 그 잘살고 있었는데, 앞으로 한 일주일 있으면 큰, 그날 무슨 생일잔치가 있어서 손님들이 많이 오게 되었어.
그래서 '그때 그 손님들에게 대접하기 위해서는 지금 양을 날마다 짜 먹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짜 먹지 말고 그동안 저장을, 염소 뱃속에다가 저장을 시키자' 그래 가지고 젖을 짜지 않고 며칠 동안을 그렇게 놔뒀습니다.

그래 가지고 손님이 온 날, 그날 새벽같이 큰 그릇을 준비를 해 가지고 아무리 젖을 주물러도 젖이 삘삘 쪼끔 나오다가 나오지는 않고, 염생이는 죽는다고 아프다고 펄쩍펄쩍 뛰고,
"아! 어떻게 젖을 짜 가지고 그렇게 젖은 안 나오고 염소가 죽을라고 하냐? 저리 지내라. 내가 짠다" 아버지가 달라들어서 되게 갖다가 주물러 짜도 나오질 안 해.

"아니 무슨 젖을 그렇게 짜느냐"고. 엄마가 달라들어서 짜도 나오지 않고, 식구대로 달라들어서 힘을 들여서 쥐어 짜는데 젖이 벌게져 갖고 나중엔 피만 삐죽삐죽 나오는데, 젖은 한 방울도 안 나온다 이 말씀이여.
젖이라 하는 것은 짤수록 매일 적당하게 짜 주어야 젖이 계속 나오는 것이지, 젖을 안 짜면 잔뜩 불었다가 결국은 밭아 버린 것입니다.
애기에게 젖을 먹여 봐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매일 매일 젖을 빨려야 그 젖이 적당히 불어서 잘 나오지, 젖을 안 먹이면 하루 이틀은 터지도록 불어 가지고 아프다가 나중에는 결국은 그 젖은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재산도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의(誠意)를 다해서 보시(布施)를 해야, 그래야 또 돈이 또 벌려서 사업도 잘되고 계속 또 재산이 윤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여. 지금은 한참 지금 장사를 한다, 무슨 사업을 하기 위해서 돈이 아쉬워서 빚을 내다 쓸 판인데, 단 한푼이라도 애껴야지 무슨 희사(喜捨)를 하고 보시를 하느냐. 거지에게도 못 주고 양로원 · 고아원 · 형무소 어림도 없다. 또 군인에게 위문 어림도 없다. 내 자신 들일 것도 없는데 어떻게 주느냐. 더군다나 절에 안 된다. 나중에 많이 벌어 가지고 하리라'
그러다 보면은 늙어 버리고, 그러다 보면 별로 사업도 별로 보잘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생기는 대로 먹고살고, 그 가운데에도 조끔씩 거기서 마련을 해서 성의껏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께도 보시를 하고, 스님네에도 보시를 하고, 양로원이나 고아원이나 또는 형무소, 또 그 우리의 아들딸들이 나라를 위해서 가서 목숨을 바쳐서 싸우고 있는 군인들에게도 겨울 철철이, 여름 더울 때, 명절에 모다 모두 정성을 모여서 희사(喜捨)를 하고.
이렇게 하면 자기가 천석꾼이 할 만한 복을 진 사람은 보시를 해도 천석꾼이고, 아무리 피가 나게 애껴도 천석꾼을 넘지를 못하고 결국은 천석꾼 받을 만큼 복 받으면 다 내 몸으로부터서 떠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과거에 천석꾼 할 만큼 복(福)을 지어서 천석꾼을 하게 된 사람이, '금생에 그 돈이 전부가 자기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주 진리(眞理)가, 천주교(天主敎)나 유교(儒敎)의 말을 빌리면 '하느님이 자기에게 임시 맽긴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돈을 어쨌든지 나와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적당히 쓰지만, 그리고서도 이것은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 또는 삼보(三寶)에 보시를 적당히 하고 이런 사람은 천석꾼이 복(福)을 누리면서 동시(同時)에 앞으로 복을 더 받을 수 있는 복(福)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복(福)을 받기만 하고, 전생에 쌓은 복을 금생에 받기만 하고 새로 복(福)을 심지 아니한 사람은 그 복이 다해 버리면 금생에 가난뱅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손 대에, 자손(子孫) 앞에 넘겨준다 하더라도 머지않아서 그 복이 바닥이 나고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금생에 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복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복을 심고, 넉넉한 사람은 넉넉한 대로 복을 심어야, 또 그 심은 복의 씨가 싹이 트고 잎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지 않겠습니까?

부자가 보시(布施)를 아니하고 그렇게 해서 복을 짓지 아니한 사람은 당대(當代)에 망(亡)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복을 갖다가 자기 혼자만 쓰지 아니하고 온 마을 사람, 이웃, 불쌍한 사람, 거지, 절, 돈 없어서 공부 못한 사람, 또 사회 복지시설 그런 기관, 그런 데다가 막 풀어서 쓴 사람은 9대를, 만석꾼이로 9대를 내려간 사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대전에 그런 사람이 있어요.

만석꾼이는 절대로 당대(當代)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석꾼이가 9대(代)를 내려간 사람이 있어. 그래도 그 사람은 계속 망하지 아니할 텐데 토지개혁으로 말미암아서, 자유당 때 토지개혁으로 만나서 그 논을 갖다가 다 뺏겼습니다.
그래서 어려워졌지, 그러지만 안 했으면 그 만석꾼이가 계속 그 선조(先祖)에 유언(遺言)을 따라서 그렇게 보시를 하면서 살았다면은 9대뿐만이 아니라 90대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시(布施)는 나무지가 아니라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이여.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요  삼일수심(三日修心)은 천재보(千載寶)니라
나무~아미타불~

백 년 동안 재물을, 불같은 욕심으로 재물(財物)을 탐(貪)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날려 버리는 띠끌에 지내지 못하고, 3일 동안 발심(發心)을 해서 이 세상 인생(人生)이 무상(無常)한 것을 철저히 깨닫고 3일 동안 도(道)를 닦은 것은 천년(千年)에 보배가 되는 것이다.

부디 금년 한 철 석 달을, '석 달 길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 '오늘 하루 결제(結制)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날 하루를 알뜰히 정진(精進)을 하고, 그리고 그날 저녁에 떠억 자리에 누워서, '내가 과연 오늘 하루를 얼마만큼 알뜰히 공부를 했는가?' 따악 하루를 간단하게 한번 점검(點檢)을 하고,
또 '그 이튿날, 내일은 오늘보다도 더 알뜰히 공부를 해야겄다. 오늘은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 가지고 시비(是非)를 했지. 오늘은 공연히 부질없이 오늘은 하루가 지내갔구나. 내일은 더 알뜰히 해야겠구나' 그러면서 화두(話頭)를 떠억 들고 하루저녁을 하루를 자고.

그 이튿날 아침에 떠억 일어나서 '오늘 하루는 더 열심히 해야겄다'고 딱! 한 생각 각오를 하고서 하루 정진을 하고. 그날 저녁에 또 그날 하루 자기가 어떻게 공부를 했나. '이웃 사람과 잡담(雜談)을 하지 안 했나?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 가지고 옆에 사람 신경을 건드리지 안 했나?'

참을성 없고 잡담하기 좋아하고 시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음 인자 되았어. 내가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나를 문수보살로 생각해 줄 테니까' 이리 생각하고, 시비와 잡담으로 대중(大衆)에 괴각(乖角)을 부린 사람은 진짜 문수보살(文殊菩薩)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문수보살이 아닌 사람이 공연히 문수보살인 척하고 대중에 시비를 일으키고 했다면 그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지옥에 갈 것은 분명할 것이여.
부디 열심히 공부를 하고 금년 한 철이 출가(出家)한 목적(目的)을 달성하는 그러한 중대한 한 철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46분7초~60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어)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세속(世俗) ; 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숙연(宿緣 오래 되다 숙/인연 연) ; ①오래 묵은 인연. ②전생(前生)의 인연.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갈아붙이다 ; (사람이 이를) 모질고 독한 마음으로 바짝 갈다.
*‘생활 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 일념단속(一念團束).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보시(布施) : [산스크리트어] dāna  단나(檀那) · 다나(柁那) · 단(檀) 등으로 음사(音寫)한다. 물질 또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 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칠보(七寶) : [산스크리트어]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 즉 금(金), 은(銀),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과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 : 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희사(喜捨 기쁠 희/버릴·베풀 사) ; ①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를 베푸는 것. 정사(淨捨 : 깨끗하게 내놓는 것), 정시(淨施 : 깨끗하게 베푸는 것)라고도 함. ②기껍게 자기의 의견, 생각을 버리는 일.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버리는 일.
*백유경(百喩經 satavadana-sutra, 일백 백/비유할 유/말씀 경) : 일반 대중들에게 불교적 깨우침을 주고자 짤막한 교훈적 우화(寓話)들을 모아서 5세기 인도의 상가세나(Saṅghasena 僧伽斯那)스님이 편찬한 작품. 그의 제자 구나브리디(Guṇavṛddhi 求那毘地)가 492년에 한문으로 번역했다.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천석꾼(千石꾼) ; 곡식 천 석을 거두어들일 만큼 땅과 재산을 많이 가진 부자.
*만석꾼(萬石꾼) ; 곡식 만 섬을 거두어들일 정도의 논밭을 가진 큰부자.
*‘자유당 때 토지개혁’ ; 1950년 남한에서 실시된 농지에 대한 개혁조치로 유상몰수 · 유상분배 원칙에 입각했다.
*나무지 ; ‘나머지’의 사투리.
*(게송)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띠끌 ; ‘티끌’의 사투리.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괴각(乖角 어그러지다·어긋나다·거스르다·비정상이다·비뚤어지다 괴/뿔·모진 데·다투다 각) ; 어긋나고 틀어지다. 언행(言行)이 대중의 질서를 따르지 못하고, 유달리 어긋나는 짓을 말하며, 또는 그러한 짓을 하는 사람.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 · 묘덕(妙德) · 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룸.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자비, 보시2023. 7. 7. 13:57

§(356) (게송)증위탕자편련객~ / 활구참선의 삼요(三要), 신심(信心) · 분심(憤心), 의심(疑心), 이 3가지를 한목 갖추어야 진실한 수행자 / 내 자신이 바로 부처라고 믿는 것이 신심.

**송담스님(No.356)—19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 (용356)

 

약 12분.



증위탕자편련객(曾爲蕩子偏憐客)이여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내하유자부지반(乃何遊子不知返)하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증위탕자(曾爲蕩子)라 편련객(偏憐客)이여. 일찌기 방탕, 방랑하는 사람이 된지라, 치우쳐 객을 어여삐 여김이라.
부처님 자신이 무량겁을 두고 고향을 떠나서 육도(六途)를 돌면서 그 방랑자 된 그러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러한 방랑 생활을 한 그러한 뼈에 사무치는 그러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치우쳐 객을 어여삐 여겨. 지나치리만큼 일체 중생의 그 생사윤회(生死輪廻)하고 있는 일체 중생에 대해서 정말 가슴깊이 불쌍하게 여기신다 그 말이여.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다. 평생 동안을 술을 많이 먹고 과음 폭음을 해서 그렇게 이 술을 많이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술 취한 사람을 갖다가, 그 술 취한 사람의 속사정을 이해를 한다 그 말이여.

내하유자부지반(乃何遊子不知返), 유랑하는 방랑하는 사람은 객지로 객지로 떠돌기만 하고, 본고향(本故鄕)으로 자기집으로 돌아올 줄을 몰라.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다. 길이 타향에 길을 잃고 풍파를 쫓아가고 있구나.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선지식(善知識)들은 자신이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 속에서 그렇게 많은 그 고통을 받아왔고 그렇게 받은 그러한 스스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부모를 여의고 고향을 떠나서 출가를 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하고, 대도를 성취한 뒤에도 일신상의 안락을 불구하고 일평생 동안을 중생과 후래 학자들을 위해서 그렇게 그 생사해탈(生死解脫), ‘어떻게 하면 이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그렇게 목이 쉬도록,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그렇게 간곡히 노바심절(老婆心切)하게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일러주시건만 각자 업(業)이 지중(至重)해서 계속해서 그 업의 풍파, 업풍(業風)에 따라서 계속 객지로 객지로 떠돌고 있을 뿐 고향으로 그렇게 돌아오지를 못한다.

불법(佛法)을 믿지 않고 다른 외도(外道)를 믿는다던지 또는 불법을 믿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지 못하고 방편설(方便說)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이 최상승법을 믿고 또 활구참선을 의지해서 공부를 시작한 지가 벌써 오래된 그런 사람도 진정으로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활구참선의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그 삼요는 대신심(大信心) · 대분심(大憤心) 그리고 대의심(大疑心) 대의단, 이 3가지를 한목 갖추어야 그래야 진실한 수행자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신심이란 게 무엇이냐? 무엇을 믿어야 대신심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냐?
내가, 내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 내 자신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믿는 것이 그것이 바로 대신심이여.

‘이론상으로는 우리도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참선을 해서 가지고 있는 불성을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견성(見性)이다’ 이렇게 다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따로 있고, 내라고 한 놈이 불성을 속에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 줄 알고, 말을 들을 줄 알고, 성도 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그 당처(當處), 그 당처를 여의지 않고 그 당처가 바로 불성이라, 바로 그것이 자성불(自性佛)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놈을 철저히 믿어야 그놈을 여의고 따로 부처를 찾지 않게 되는 거여. 그놈을 여의고 따로 ‘참 부처’를 찾는 한에는 영원히 찾어도 부처님은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이 신심이 꽉 아주 견실(堅實)해야 그래야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여. 바른 참선을 할 수가 있어.

그 다음에 대분심(大憤心).
‘왜 내 자신이 부처이고, 그러면서 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불보살, 역대조사는 진즉 이 문제를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을 해서 생사해탈을 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면서 생사고해 속에서 이렇게 헤매이고 있는가? 왜 멀쩡한 부처님이면서 부처님으로서 살지를 못하고, 부처님으로서 행하지를 못하고, 어찌 이렇게 업풍에 따라서 이렇게 윤회를 거듭하고 있고, 언제 그 기한 없이 이렇게 고취(苦趣) 속에 빠져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뼛골에 사무치도록 분심! 한탄이라고 할까? 원망이라고 할까? 기가 맥힐 일입니다. 그러한 뼛속에서부터 사무치는 그런 분심이 없고서는 도는 닦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은 동시에 발(發)해져야 하는 것입니다.(11분18초~22분49초)





---------------------

*(게송) ‘曾爲蕩子偏憐客 慣愛貪盃惜醉人’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야부 스님 게송 참고.
*(게송) ‘乃何遊子不知返 長在迷途逐風波’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탕자(蕩子 쓸다·움직이다·동요함·옮기다·장소를 바꿈·방자하다·제멋대로 굶 탕/사람 자) ; ①멀리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사람. ②주색에 빠진 남자.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본고향(本故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①]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고 ②]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뜻.

*지중하다(至重-- 이를 지/무거울·소중할 중) ; ①(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②(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업풍(業風) ; 업의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 업의 바람. 업의 세력[業力]을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선하거나 악한 업력에 따라 생사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중생의 현실이 마치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에 날리는 낙엽이나 배와 같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방편설(方便說 방법·수단 방/편할 편/말씀 설) ; 실상(實相)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상대와 조건에 알맞는 방법을 설정하여 말하는 것.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부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 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당처(當處) ; ①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②그대로. 지금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곳에서.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견실하다(堅實-- 굳을·강할 견/열매·실하다 실) ; ①튼튼하고 굳건하다. ②의지가 굳고[堅] 착실(着實)하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고취(苦趣) ; 고통의 세계. 공포와 고통이 극심한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 취(趣)는 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지은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발하다(發-- 일어날 발) ; 생기게 하거나 일어나게 하다. 생기거나 일어나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자비, 보시2021. 12. 16. 06:36

§((128))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재송(栽松) 도인이 몸을 바꿔서 4조(四祖) 도신(道信) 스님을 찾아온 법문 / 인정(人情)과 성현의 자비(慈悲)와는 동질성의 것이 아니다 / 도를 닦아 가는 데 있어서는 정(情)에 떨어진 일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 / (게송)약이색견아~. 『금강경』 사구게(四句偈).

**송담스님(No.128)—1980(경신)년 칠석법회 법문(80.08.17) (용128) (자비)

 

 

(1) 약 12분.

 

(2) 약 13분.

 


(1)------------------

금방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통해서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법문과 최상승법인 이 활구참선을 하는 법에 대해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오조 홍인대사는 부처님으로부터 서른두 번째, 32대 조사(祖師)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육조(六祖) 스님의 법사 스님이신 것입니다.

그 5조 스님은 원래 노인 노승(老僧)으로서 4조(四祖) 스님께 인가를 맞으러 갔는데, 그 4조 스님은 법을 전할 만한 제자를 만나지 못해서 날마다 그 자기, 당신의—이 부처님으로부터 서른한 번째, 31대까지 당신에게 이 법(法)이 전해 내려왔는데 당신의 법(法)을 전해 받을 제자를 만나지 못해서 날마다 제자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하룻날 어느 제자가 찾아왔습니다. 보니 당신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제자가 왔습니다.

법거량(法擧揚)을 해 보니 분명히 깨달았는데, 깨닫기는 깨달았지만 자기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법을 전해 봤자 법을 전하나 마나, 마치 장님 불 끄나 켜나 마찬가지로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서 먼저 죽을 사람한테 법을 전해 봤자 다리 뻗고 잘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니가 분명히 깨닫기는 깨달았지만 법을 전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가서 몸을 바꿔 가지고 오너라"
그래서 "그러면 제가 이 기념으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그 소나무, 조그마한 소나무 한 그루를 팔십 먹은 노승(老僧)이 캐다가 뜰 앞에다 딱 심어 놓고 그리고서 떠나는데 그 4조 스님이 "니가 소나무를 갖다가 심었으니 니 이름을 재송(栽松)이라고 해라. '재배한다' 해서 '재(栽)' 자 하고, '소나무 송(松)' 자, 재송(栽松)이라고 니 이름을 내가 지어주마"

그렇게 해서 그 재송은 거기서 하직을 하고 내려가다가 시내를 따라서 죽 내려가다 보니 시냇가에 어떤 이쁘게 생긴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노승이 걸망을 처녀 옆에다가 부려 놓고 그 처녀한테 "내가 부탁할 말이 있소"

"무슨 말씀이요?"
"처녀 댁에서 하룻밤만 쉬어 갑시다"

이 5조 재송(栽松) 법문에 대해서는 이 가운데는 여러 번 듣고 잘 아신 분도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 오신 분도 계시고 또 금방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은 후반부만 말씀을 하셔서 조금 보충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재송 스님께서, 오조 홍인대사가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 하는 참 불법의 최고의 법문을 설하신 것이 있기 때문에 오늘 전강 조실 스님께서 최상승법인 참선법,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설하시기 전에 간략히 재송 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처녀가 "어른이 계시니 우리집에 가서 어른한테 허락을 맡으십시오"
그러니까 아니라고 "어른은 어른이고 처녀가 한마디만 허락을 하면 내가 가서 어른한테 말을 할 테니까 처녀는 처녀대로 한마디만 허락을 해달라"고. "하룻밤만 쉬어 가자"고.

"그러면 쉬어 가시라"고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 "참 고맙다"고 하고는 그 옆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좌선(坐禪)을 하고 앉았는데, 그 처녀는 '조금 쉬었다가 가실려나 보다' 이리 생각하고 한참 동안 빨래를 하고는 아! 이리 돌아다보니까 아 그 스님이 앉은 채 아조 열반(涅槃)에 드셨다 그 말이여. 앉은 채 딱! 숨을 거두어 버렸어.

아 그 흔들고 "스님, 스님" 하고 아무리 흔들어 봤자 까닥도 안 한다. 아 그래서 겁이 잔뜩 나고 그래서 주섬주섬 해 가지고 집으로 쫓아가서 부모님께 "아, 그 어떤 노스님이 우리집에서 하룻밤만 쉬어 가자고 하도 간청을 하셔서 그러라고 그랬더니 앉은 채 그냥 돌아가셔 버렸다"고. 그래서 어른들 모다 오셔서 장례를 치러 드렸는데 그 뒤로 그 처녀 배가 날을 거듭하면서 차츰차츰 부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는 자기 딸을 갖다가 의심을 하고 '누구의 자식이냐?'고 아무리 힐책을 했지만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봤자 아무도 곧이듣지를 않고, 결국은 '불 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이래 가지고 그 처녀는 집안을 위해서,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감쪽같이 죽여 없앨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옛날에는 집안에 그러한 일이 나면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참 깊은 소(沼)에다가 갖다가 넣어 버리기도 하고 또는 푸대로 싸서 수백 리 밖에 갖다가 버리기도 하고 그랬던 것입니다.

요새는 그런 일들이 보통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으레히 결혼 전에 모다 그 먼저 그럴 수도 있고 모다 그래 오고 있지만 옛날에는 그러한 법이 대단히 엄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인을 시켜서 괴에다 넣어 가지고 참 깊은 소(沼)에다 갖다 넣어 버리기로 했는데, 다행히 그 모친 배려로 해서 많은 금품을 주어 가지고 하인들에게 부탁을 해서 소(沼)에다 넣지 말고 저 수백 리 밖에다 갖다가 버리고 다시는 고향 근처에 어리대지 말도록 이렇게 해 가지고 그 처녀는 수백 리 밖에 가서 풀어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거지로 돌아다니면서 얻어먹다가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달이 차서 남의 집 담 밑에서 해산(解産)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해산을 해 가지고 그걸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으니까 그 애기를 갖다가 그 폭포수 밑에 강가에다 갖다가 가만히 넣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밤새 참 울고 울어 지새우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너무너무 불쌍하고 궁금하고 해서 다시 그 물 소 있는 데를 가보니까 물오리들이 수십 마리가 모여 가지고 그 강보에 쌓인 갓난아기를 등으로 모다 받치고 입으로 모다 어루만지면서 그 물위에 동동동동 이렇게 떠다니면서 오리들이 참 신비하게도 그렇게 애기를 갖다가 떠받치면서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애기는 물오리들의 날개와 등으로 떠받쳐진 채 거기서 죽지 아니하고 보송보송한 채 떠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엄마는 쫓아가서 애기를 들어내 가지고 그 애기를 안고 다니면서 애기를 키웠던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참 거지의 신세지만 이상하게도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친절로 해서 그 애기를 키웠습니다마는 집도 절도 없는 그러한 신세로써 그 애기를 하나를 믿고 한 살, 두 살, 세 살 이렇게 키우는데 너무너무 애기가 잘 생기고 영리하고 귀엽고 똑똑해서 참 그러한 자기의 외로운 신세지만 그 애기 하나 길르는데 보람을 느끼면서 고생이 고생인 줄 모르고 그 애기를 길르다가 애기가 십여 세가 되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믿고 오늘날까지 살았는데 니가 나를 두고 가다니 될 말이냐?" 아무리 울며 붙잡았지만 그 애기는 뿌리치고 바로 4조(四祖) 도신대사(道信大師)가 계신 곳으로 쫓아갔던 것입니다. 가자마자 "그 팔십 년 늙은 노인이 결국은 이렇게 몸을 바꿔서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도신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서 부처님으로부터 32대 조사(祖師)의 전법을 받게 되셨던 것입니다.(14분47초~26분50초)





(2)------------------

여러분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 오조 홍인대사를 그 어머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서 그 아들(오조)이 계신 황매산을 찾아갔다 이것입니다. 찾아갔는데 그 아들이 우리 인간의 정(情)으로는 외로우신 어머니가 찾아왔으니 당연히 반갑게 맞이할 것 같은데, 그 어머니를 갖다가 저 뒷방에다가 갖다가 가두어서 굶어서 돌아가시게 했다. 그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고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 되겠습니다마는, 인정(人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다, 인정머리가 없다—그 인정이 참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정은 바로 성현의 자비(慈悲)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인정이 있는 사람을 그렇게 훌륭한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엄격하게 따지면 인정(人情)과 성현의 자비(慈悲)와는 동질성의 것이 아닙니다.

성현의 자비에는 따뜻한 인정도 있지만 동시에 참 서릿발보다도 더 차웁고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울 수도 있는 그런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생(衆生)의 인정이라 하는 것은 정에 빠지면 이성(理性)을 잃어버리게 되어서 정(情)으로 남을 보살피고 정(情)으로 남을 사랑하면 그 결과는 그 사람을 위하기보다는 오히려 해롭게 하는 그러한 역효과를 가져오는 수가 너무나 많고 그 정(情) 때문에 결국은 가슴이 쓰리고 아픈 그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이 홍인대사(弘忍大師), 이 재송 도인, 이 홍인대사인들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없으리오마는 또 어머니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잘 받들어 모시려는 인간으로서의 정이야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참으로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영원한 영혼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 드릴 수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 밑에 모여 있는 칠백 명의 제자들로 하여금 수행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도(道)를 닦아야 한다고 하는 표본을 보이시기 위한 뜻도 거기에 있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무릇 도를 닦아 가는 데 있어서는 정(情)에 떨어진 일 그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또는 형제간 친구 일가 간 모두가 다 정과 정에 얽히고설켜서 서로 좋아하고, 그것이 한 생각 변하면 미워하고 그것이 더 나아가면 웬수가 되고 전부가 다 그 원인은 정으로부터 그러한 웬수가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줄 생각합니다.
정법을 믿고 참나를 깨닫는 그러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어리석음에는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정(情)이 사람의 전부인 줄 알고 정에 떨어져서 정에 얽히고 그래 가지고 부부가 한 생각에 웬수가 되고, 형제가 웬수가 되고, 부모 자식 간에 웬수가 되고, 친구가 웬수가 되어서 어제에 가장 친했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웬수가 되어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서로 해코자하고 서로 죽이고 그러다가 또 한 생각이 풀어지면은 또 가까워졌다 풀어졌다 가까워졌다 얽혔다 설켰다 이리해서 무량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윤회(輪廻)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를 갖다가 방에다 가둬서 굶어 돌아가시게 하는 것을 보고 칠백 명이 넘는 그 제자들은 '세상에 도인(道人)이 저럴 수가 있느냐? 저런 것이 어찌 도인이라 할 수가 있겠나? 우리는 이런 참 무도한 사람을 스승으로 알고 이 밑에서 우리가 있을 수는 없다' 그리해 가지고 모다 걸망을 싸가지고 전부 거기를 떠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있기를 "여러분들은 내 말을 잘 들으시오. 나는 이 오조 홍인대사의 어머니입니다. 나는 아들을 잘 두어서 그 덕택으로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좋은 아들을 두지 않았던들 나는 인간으로서 정(情)에 떨어져서 아들을, 도인인 아들을 도인으로 보지를 못하고 내 배 속에서 나왔다고 하는 그 사실로 해서 '내 아들, 내 아들' 그러한 정(情)으로 아들을 보다가 일생을 외로움과 서글픔 속에서 인생을 살면서 아들에게, 중생교화를 하는 아들의 신경을 쓰게 만들어 주고 나아가서는 사찰에 피해를 끼치다가 내생에는 다시 어느 곳에 떨어졌을는지도 모르는데, 다행히 아들의 그러한 용감한 적극적으로 이 에미를 생각하는 그 뜨거운 자비, 뜨거운 자비로 해서 나는 모든 업(業)을 뿌리치고 선도(善道)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여러분들은 이 도량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 철저히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대도를 깨달으십시오" 이러한 우렁찬 목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나왔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칠백 명은 일제히 감격해 가지고 다시 걸망을 내려놓고 그전보다도 훨씬 더 철저한 신심으로 도를 닦고 홍인대사를 정말 위대한 스승으로 신봉(信奉)을 했던 것입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약 색상(色相)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고 있음이라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부처님께서 설하신 『금강경』에 있는 사구게(四句偈)입니다.
'내 모습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었기 때문에 그래서 참 성현이다, 그래서 부처님이다' 하고 나를 보거나, 나의 음성은 원음(圓音)이라—한 말로 말하되 16군생(十六群生)이, 일체중생이 각기 자기 근기(根機) 따라서 사람으로 사람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성인은 성인대로 각기 열 가지의 모다 자기의 입장에 따라서 나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래서 나의 목소리는 '뚜렷한 소리'다 해서 원음(圓音)이라 그러는데, '나는 원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음으로 설법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참 부처님이다' 이렇게 나를 찾은 사람, 이 사람은 바로 삿된 도를 행하고 있는 사람, 소견이 삿된 사람이라 이러한 사람은 참으로 여래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부처님을 찾을 때, 선지식을 찾을 때, 정법을 찾은 때 있어서 이 금강경에 사구게를 깊이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겉모양을 보고 음성을 듣고 그래 가지고 그 색상에 떨어져서 스승을 구하고 정법을 구하고 부처님을 구할 때에는 벌써 그 생각 자체가 그릇된 생각이여. 그릇된 소견에 떨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정법, 참나, 참 부처님은 만나지지 못할 것입니다.(26분53초~39분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자비, 보시2021. 7. 19. 07:20

§((512)) 방생(放生)의 뜻.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하면 그것이 벌써 방생을 하고 있는 것 / 마음속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 이미 총칼보다도 무서운 살생(殺生)을 하고 있는 것.

**송담스님(No.512)—1993년 하안거해제 및 백종, 백일기도회향(93.09.01) (용512) (자비)

 

 

(1) 약 17분.

 

 

(2) 약 11분.

 


(1)------------------

그리고 이 7월에는 해제 때를 기해서 전국 각 사암(寺庵)에서 또 방생(放生) 법도 많이 행하는데, 이 방생이라 하는 것도 대단히 뜻이 깊은 것이어서 ‘죽어가는 생명을 놓아준다’ 그래서 방생이라 그러는데. 방생에는 흔히 자라나 잉어 등 어류(魚類)를 많이 사 가지고 그래 가지고 강물이나 호수나 그런 데에다 모다 많이 놔주고 그러는데.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생존(生存) 시에 많은 방생을 하셨습니다. 차떼기로 엄청난 고기를 갖다가 사서 방생을 하시고 몇백 관(貫)씩 이렇게 하셨는데, 마땅히 조실 스님의 법을 신(信)하는 우리로서는 조실 스님의 그런 행하시던 좋은 일을 본받아서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방생 법회를 갖음직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전강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방생을 하지 안 하고 2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왜 그 방생을 하지 않았냐? 마땅히 그런 좋은 것을 왜 안 하고 있나?' 신도들로부터 종종 요청도 있었고 그런 질문도 받았습니다마는.
원래 방생의 뜻이 죽어 가는 사람, 죽어 가는 동물—비단 꼭 물고기뿐만이 아니라 육지에서 사는 동물, 하늘에 나르는 새, 무엇이고 죽어 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어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나아가서는 그래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비심, 자비 종자(種子)를 잘 증장을 시키고, 그래서 어떠한 종류의 생명이라도 그 생명 자체는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라 ‘자기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죽어 가고 있는 그러한 생명을 그걸 놔주자, 죽지 않도록 해 주자’는 데 그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월 해제라든지, 7월 해제를 기해서 전국 사찰에서 방생을 한다 해 가지고 며칠 전부터 고기 장수에게 부탁을 해 가지고 ‘자라를 이백 마리, 잉어를 몇백 마리 그리고 뭐 미꾸라지를 몇백 관, 이렇게 어김없이 그날 잡아다가 놔라’ 이렇게 미리 계약을 해 가지고, 그 고기 장수는 그날 그만한 양을 대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살로 자라를 찍고, 그물로 고기를 잡고 해 가지고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래서 그전에 더러 보면 자라 등어리에 작살이 찍힌 자죽이 있는 자라도 보았습니다.

그 자라들이 입이 있어서 말을 한다면 또는 그런 잉어나 고기들이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방생 법회인가 뭐 그것 때문에 이렇게 등어리에 작살을 찍히고 우리는 이렇게 곤욕(困辱)을 치르고 있습니다” 하고 스님네한테 원정(原情)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연히 강변에를 갔다든지, 우연히 바닷가를 갔다든지 해서 ‘자라가 잡혀서 죽게 된다 또는 잉어가 죽어 가게 되었다’ 이럴 때에 자기에게 있는 돈을 털어서 사 가지고 그래 강에다도 놔주고, 바다에다도 놔준다면 그건 대단히 좋은 방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흥부(興夫)가 우연히 제비 새끼가 떨어져서 발목이 부러져서 버르적거리고 있는데 그걸 가는 실로 잘 짬매서 약을 발라서 그걸 나꾸어 가지고 날려 주어서 그래서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어 가지고 그렇게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니까, 그 형 놀부는 멀쩡한 제비를 후려잡아 가지고 다리를 부질러 가지고 그놈을 짬매서 날려 주어 가지고, 그 참 엄청난...
그 재미있는 내용의 흥부전(興夫傳)을 여러분도 봐서 아시겠지만, 마치 전국 사찰에서 행하는 방생 법회라 하는 것이 놀부가 하는 그러한 식의 방생이 된다면, 방생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전강 조실 스님 생존 시에 제가 조실 스님께도 말씀드렸는데 “그런 고기를 몇백 관씩 차떼기로 해서 방생을 하신 것도 참 좋은 일인데, 우선 대중 가운데에 병 있는 대중에게 약을 먹이고 병을 치료해 준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씀도 여쭈었는데, “누가 아프냐?”
“아무개가 치질로 앓고 있습니다”
“그럼 진즉 나한테 말하지, 말을 않으니 내가 치질을 앓는지, 치통을 앓는지 내가 알 수가 있냐? 왜 너는 나를 무자비한 사람을 만드느냐” 이렇게 해서 꾸지람을 들은 기억이 지금도 남니다마는.

여러분들도 방생은 7월 백중이나 정월 보름을 기해서 정기적으로 행사로써 그렇게 방생하는 방생보다는 항상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날짜를 정하지 않고서 언제라도 죽어 가는 그런 생명이 있으면 살려주고, 사람도 병들어서 돈이 없어서 죽게 된다든지 그런 사람이 있으면은 그럴 때에 우연히 자비심이 발동이 되어 가지고 그렇게 행해져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기는 연전(年前)에 '외국 화물선을 타고 저 남미를 가는데, 갑판에 올라가서 그 선원이 바람을 쐬다가 발을 헛디뎌서 바다에 떨어져서 밤중에 영락없이 죽은 줄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 배가 짐을 풀고 다시 돌아오면서 보니까 저만큼 바다에 까마니 무엇이 떠다닌 것이 보여서 그래 망원경으로 보니까 그 전날 물에 빠져서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물에서 떠다닌다 그 말이여.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큰 거북이를 타고 해상에 이렇게 떠돌고 있어서 그래서 건져 냈다. 알고 보니 그 선원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어서 항상 방생을 행했다. 자라도 많이 놔줬다' 이런 이야기도 신문에 난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어떤 사람은 음식점을 하는데 파리 한 마리도 안 죽였어. 그리고 음식에 혹 파리가 빠지더라도 그것을 좋게 건져서 습기를 제거해 가지고 날려 주고. 그 음식점을 하니 얼마나 많은 파리가 성가시게 했겠습니까마는, 될 수 있으면 한 마리의 파리도 죽이지 않고 그렇게 날려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죄에 혐의로 잡혀 들어가 가지고 영락없이 살인 혐의(嫌疑)를 받아 가지고 그렇게 죽게 되었는데, 판사가 '사형(死刑)'이라고 이렇게 판결문을 쓰려고 하면 붓 끄터리에 파리들이 모여들어서 글씨를 도저히 쓸 수가 없어. 그래서 그 파리를 내키고 다시 쓰려고 하면 또 모여들고 모여들고 그래서 그 사람 보고 “평소에 네가 파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저는 별거 없고 음식점을 하는데 약허약허했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파리 한 마리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고 죽이지 않는 사람이 어찌 사람을 죽였겠느냐?' 다시 여러 가지로 심사를 해 가지고 알아본즉 모략에 의한 애매한 혐의로 잡혀왔다는 것을 알아서 석방이 된 그런 일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몸에—요새는 약이 많이 발달이 되어 가지고 '이[蝨]'를 구경할래야 할 수가 없지만, 옛날에는 몸에 '이'가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가 드글드글했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이'를 죽이지 않고, ‘이[蝨]도 저도 살라고 이 세상에 나왔는데 그걸 뚝뚝 죽일 수가 있느냐’ 해서 '이'도 안 죽이고 항상 가려우면 슬슬 긁고 그렇게 살았는데, 어떤 원결(怨結) 관계가 있어 가지고 그 사람이 자고 있을 때 자객이 칼을 품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보니까, 가슴에 벌써 누가 한 걸음 먼저 와서 가슴을 찔러서 죽였다 그 말이여. 벌거니. 그래서 칼을 들고 찍을려다가 도로 가버렸어.

그런데 사실은 그 몸 안에 있던 '이'들이 전부 스스로 부딪치고 해 가지고는 몸에 있는 피를 터뜨려 가지고 마치 칼에 찔린 것처럼 그렇게 보여서 '이'들이 그 사람의 생명을 보호했다. 그러한 설화도 전해오고.

또 어떤 큰 부자는 집안에 어떻게 쥐가 많던지 창고에도 몇백 마리가 드글드글 끓고, 온 집안에도 쥐 때문에 살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쥐덫을 놔라. 쥐약을 놔라’ 모다 그랬지만 “아니다. 저 쥐들도 나와 인연이 있어서 우리집에 와서 사니, 쥐가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사람 먹을 것은 남겠지. 죽이지 말라’ 해 가지고 살렸는데, 하루는 쥐들이 수백 마리가 마당에 모여 가지고 쥐들이 춤을 춘다는 거여. 그래서 온 집안 식구가 나와서 야단이여.
그래서 그 주인도 그걸 구경하러 마당에 나와서 그걸 구경을 하는데, 나오자마자 대들보가 부러져 가지고 집이 왕창 가라앉았다 그 말이여. 그 주인이 쥐들의 춤을 구경하기 위해서 나오지 않았으면은 영락없이 대들보와 서까래에 깔려서 즉사(卽死)를 했을 것이다. 그런 쥐들도 자기네들의 생명을 그렇게 죽이지 않았다고 한 것에 대해서 은혜를 갚았다 이거거든.

이런 것으로 보면 쥐나 파리나 또는 몸의 피를 빨아먹는 '이'까지도, 하물며 영특한 자라라든지 용이 되어갈 잉어라든지 그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 같은 그런 작은 존재도 자기의 생명의 은혜를 알더라 그거거든.부처님 말씀에 「사람이나 동물이나 저 꿈적꿈적한 준동함령(蠢動含靈)까지라도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시는 그 말씀이 이러한 설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정말 믿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몸을 빨아먹는 '이'를 죽이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 또 변소에 가서 더러운 곳에 앉았다가 그 발에는 균이 드글드글할 텐데, 그 발로 밥상에 날아와서 앉고, 응당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도 인간에 해를 끼치는 그런 해충을 약을 써서 구제(驅除)해야 할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그러한 작은 벌레도 자기가 살라고 하는 그 생명력, 스스로 그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벌레까지도 차마 죽이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이 어찌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8분33초~25분16초)





(2)------------------

법정 스님의 수필집에 보니까, 모기가 가면서 그 며느리 보고 ‘오늘 내가 나가면은 어떤 모진 사람의 손바닥에 맞아서 내가 죽을는지도 모르고, 다행히 그렇지 않은 분을 만나면 다시 살아올는지도 모르나, 하여튼 잘 있거라’ 그리고 나갔다고 그러는데.
모기가 와서 붙어 가지고 피를 빨아먹으면 무의식 중에 탁! 쳐 가지고 죽이기도 하고 또 모기가 날랜 놈은 또 피해서 도망가기도 하겠는데, 정말 요새처럼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이렇게 함부로 취급을 당하는 세상은 일찍이 없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교통사고로도 날이면 날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무슨 공사장에서도 실수로 많이 죽고, 비행기가 떨어져서 죽고, 기차가 가라앉아서 죽고, 자동차가 접촉 사고로 죽고 또 강도로 죽고, 자식이 애비를 죽이고 일가족을 죽이고 해서 날마다 사람이 죽이고 죽는 그러한 생명을 경시하는 그러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정말 깊이 반성을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기 목숨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목숨도 소중한 것입니다. 인간의 목숨이 소중하면 동물의 목숨도 소중합니다. 자기의 목숨이 참으로 소중한 줄 안 사람은 남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인간의 목숨이 소중한 줄 알면 동물의 목숨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동물뿐만이 아니라 식물, 더 나아가서는 자연환경까지라도 정말 소중히 할 줄 알아야 그것이 바로 문화인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성을 바로 지닌 사람의 행위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歸依)해서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법보재자(法寶弟子) 여러분! 정말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소중한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게송(偈頌) 속에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갔는데 기러기가 놀다 간 모래사장에는 발자죽만 남아 있고, 사람은 황천(黃泉)에 갔는데 그 이름만 집에 남아 있더라’(人去黃泉名在家) 그런 게송을 읊으셨는데, 정말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영원성이 없는 무상(無常)하고도 허망한 물거품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보다 더 자기가 많이 소유하고 갖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짓밟고,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고 이러한 풍조가 만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러면 다른 사람도 또 그렇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도 내 생명을 소중히 여겨 주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업자득(自業自得)인 것입니다.
산에다 대고 고함을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게 되는 것처럼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크게 돌아오고,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돌아오고, 좋은 말을 하면 그 메아리는 좋은 말로써 돌아오고, 산에다 대고 입에 못 담을 고약한 욕을 퍼부으면 메아리는 그런 무서운 욕으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메아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서로서로 존중히 여기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자비롭게 상대하면 상대방도 역시 또 나한테 그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살고 갈 이 세계를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우리만 살고 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이 살 이 세계를 보다 더 살기 좋은 세계로 만들어 놓고—자식들을 위해서 집은 좋은 집을 줄라고 하면서 정말 우리 모두가 살 이 세계는 어찌 피비린내 나는 수라장(修羅場)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집만 잘 단속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백중날 방생을 할 생각이 있으신 분은—자기 아들이 꼭 외항선을 타는 선원이 된다면 거북이를 사서 바다에다 혹 넣고 싶은 생각이 나실는지 모르나, 방생의 참뜻을 깊이 이해를 하셔서 마음속에 자비심을 가져서, 항상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생명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하면 그것이 벌써 방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꼭 죽어 가는 것을 찾아다니면서 ‘어디 자라 잡아서 죽이는 데 없나? 잉어 잡아서 죽일라는 거 없나?’ 그걸 찾으러 다닐 게 아니라, 집안에서 직장에서 또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고, 자기 마음속에 자비심을 항상 이렇게 일으키고 자비로운 말, 자비로운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자라 천 마리, 만 마리를 사서 물에다 넣어준 것 못지않게 큰 공덕(功德)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금생에 태어나서 일생 동안 병치레만 하거나 또는 인생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단명(短命)하게 죽거나, 본의 아니게 불의(不意)의 어떤 사고로 비명액사(非命縊死)를 한 거나, 이런 것이 다 우연한 결과가 아니고 과거에 우리가 지은 업(業)에 의해서 그러한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장래에 있어서 또는 저 영원한 내세에까지라도 항상 건강하고 수명이 장수하고 그럴러면, 그리고 그런 비명액사를 당하지 않고 자기의 명(命)대로 행복하게 잘 살라면 방생을—경우에 다라서는 자라나 잉어나 그런 죽어가는 동물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식의 방생도 하지마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의 마음을 자비롭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꼭 몽둥이나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죽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 이미 총칼보다도 무서운 살생(殺生)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 가지고도 사람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주는 그런 악한 말을 하는 것도 역시 살생에 준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때리고 치고 찌른 것, 말로써 사람을 그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주는, 근심과 고통과 공포를 주는 그런 말도 역시 마찬가지고, 행동으로는 안 나타냈어도 속으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죽일 생각을 하고, 저 사람이 오그라 죽기를 바라고 저주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25분18초~36분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자비, 보시2014. 3. 23. 09:09

§(445)(게송)화소산전설천기~ / 본분(本分) 신훈(新熏) / 무풍기랑(無風起浪) / 운문 선사의 () / 부처님의 자비.

 

본분(本分) 들어가서는 () () 것도 없고, 법을 들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그런 것이지만, 신훈(新熏) 나아가서는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법을 설해야 하고  법을 들어야 하고  화두를 타서 목숨 바쳐 참구를 하고 ()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분 실상(實相) 들어가서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세하시고 가섭 존자에 법을 전하고  것들이 모두 무풍기랑(無風起浪)이여. 바람 없는데 물결이 일어나는 것이여. 그래서 본분 도리에 들어가서는 삼계의 대성현이시고 삼계도사(三界導師)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운문 선사의 ()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  있으면 2535년의 부처님오신날이 돌아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실 것도 없는 곳을 향해서 출세하신 것은 중생을 위한 너무나 뜨거운 자비심에서 하신 것이다. 생사(生死) 없는데, 분명히 생사를 받고 한량없는 고통 속에 헤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생사 없는 도리 일러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생사가 없는데,  중생은 생사고(生死苦) 그렇게도 받고 있는가? 그것은 생사 없는 도리 ()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거든.

 

정법(正法) 믿는 사람, 불법(佛法) 바로 믿는 사람은 오히려 천상 세계보단  사바세계,  오탁악세에 태어난 것을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있고, 그것을 소화시켜 나갈 수가 있고, 이런 것을 발판으로 해서 더욱  발심으로 정진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도업(道業) 성취할  있는, 그렇게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45)—1991 5 첫째 일요법회. (용445)

 

약 18분.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洩天機)하고  조가임외설무생(鳥歌林外說無生)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하니  득지무처불봉원(得至無處不逢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소산전설천기(花笑山前洩天機)  조가임외설무생(鳥歌林外說無生)이다.

 앞에 꽃이 웃으니 천기(天機) 누설(漏洩)함이요.  밖에  노래는 무생(無生) 설하는구나.  앞에 꽃이 울긋불긋 곱게  것은 바로 천기를 누설한 것이다. 그리고  밖에서 새가 노래하는 것은 바로 무생(無生), 진리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하니, 꽃이 곱게 피는 것이나, 새가 노래하는 것이나  밖에 바람이 부는 소리, 기차 소리, 자동차 소리, 일체 하늘의 , 태양, 우리 눈으로   있고 귀로 들을 있고 육근(六根) 통해서 접할  있는 모든 것들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낱낱이  자체가 무궁(無窮) 뜻을 지니고 있어.

득지무처불봉원(得至無處不逢原)이라.  도리(道理) 바로  버리면 근원을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다. 어데서나 언제나 진리, 근원을 만나게  것이다.

 

 

오늘 신미년 5 첫째 일요일을 맞이해서 신해년에 설하신 전강 조실(祖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화두를 참구(參究)해서 참나 깨달아 가는  수행 참선학자에게 간곡한 법문을  주셨습니다. 

 

본분(本分) 들어가서는 () () 것도 없고, 법을 들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그런 것이지만, 신훈(新熏) 나아가서는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법을 설해야 하고  법을 들어야 하고  화두를 타서 목숨 바쳐 참구를 하고 ()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분 실상(實相) 들어가서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세하시고 가섭 존자에 법을 전하고  것들이 모두 무풍기랑(無風起浪)이여. 바람 없는데 물결이 일어나는 것이여.

그래서 본분 도리에 들어가서는 삼계(三界) 대성현이시고 삼계도사(三界導師)이신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도 운문 선사의 ()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 사람이 본래부터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닦을 것이 없는 것이고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여. 누구를 제도(濟度)하며, 제도받을 자가 누구냐 그말이여.

 

앞으로 얼마  있으면 2535년의 부처님오신날이 돌아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실 것도 없는 곳을 향해서 출세하신 것은 중생을 위한 너무나 뜨거운 자비심에서 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생사(生死) 없는데, 분명히 생사를 받고 한량없는 고통 속에 헤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생사 없는 도리 일러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말이여.

 

생사가 없는데,  중생은 생사고(生死苦) 그렇게도 받고 있는가? 그것은 생사 없는 도리 ()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거든.

내게 좋은 보물이 있어도 있는 줄 모르면 천상 가난뱅이로 거지 신세를 면하지를 못하니, 내게 평생 쓰고도 남을 보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일러주는 것은 그것은 자비의 소치(所致) 그말이여.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궁에 태자로 탄생을 하셨어.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 가운데에도 그렇게 무서운 고행(苦行) 하신 분은 없을 것이라고 부처님 자신께서 술회를 하실만큼 그런 무서운 고행을 겪으시고 그리고 나아가서 대도(大道) 성취하신건데.

 

그것 자체가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그러한 발자취를 보고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서 나오는 오욕락(五欲樂) 거기에 빠지지 말고 용기로써 그것을 박차버리고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도록 하시기 위해서 몸소 시범을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넘치는 자비가 없으셨다면 진리 속에서 영원히 열반(涅槃) () 누리시고 계시면 그만이지만, 원래가 부처님이나 우리 육도(六途) 법계에 모든 중생이 원래  몸뚱이였었거든.

 가족이요,  몸뚱이였는데  생각 () 탓으로 해서 우리는 무량겁(無量劫)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고 있으니, 부처님으로서 어찌 그것을 보고 가만히 계실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보잘것없는 우리 중생도  가족으로 태어나면원래는  가족도 아니지만 과거의 업연(業緣)으로  가족으로 태어나는 것인데,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형제의 인연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부부의 인연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일가친척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친구 간으로 태어나기도 하는데,

그러한 조그마한 인연으로 태어났어도  사람이 곤경에 처해 있으면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그것을 도와주고 붙들어주고 이끌어주고자 하는 것인데,

 

하물며 진리이신 부처님이야 일체 중생을 어찌 고통을 받고 있는 그것을 보시고 그냥 놔둘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은 일체 모든 중생을 당신의 아들이신 라후라 존자처럼, 그렇게 조금도 라후라와 차등이 없이 그렇게 사랑하시고 그렇게 자비심으로 보살펴 주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돌아가실 때까지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 설하셨습니다. 그 부처님의 법문 가운데  말씀이라도,  글귀라도 올바르게  버리면 자기의 면목을  있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면목(面目) 바로  버리면  부처님의 설하신 법문의 요지를 바로 깨닫게 되면,  앞에 피어있는  송이   나무가지에서 노래하는 새소리,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이런 것은 보통 () 속에 나오고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방향을 바꿔서 어린 아이가 넘어져서 우는 소리, 어떤 사람이 병으로 꿍꿍 앓는 소리,

요새 사람이 이래 죽고 저래 죽고 날마다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는데 심지어는 교통사고로 수없는 사람이 죽어가고, 학생들이 자기의 주장을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방법으로 부르짖고 있고, 앞으로  얼마가 죽어 갈른지도 모릅니다마는 이러한 극한적인 중생의 생로병사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이런 것들마저도  눈으로 보면, 깨달은 눈으로 보면 진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본분(本分) 들어가서 보면 ()이나 () 똑같은 것이고, () () 똑같은 것이고, () () 똑같은 것이여. 부처와 중생이  똑같은 것이여. 그러니 제도할 중생도 없는 것이고  법을 설할 부처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생보다는 죽음이 괴로운 것이고, 흥보다는 망하는 것이  괴로운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는  괴로운 것이고, 병난 것이 건강보다는 확실히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닌 것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모습은 좋은 것보다는 고통이  많고, 착한 것보다는 ()  많어.

이런 속에 태어났으니, 우리가 과거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좋은 천상(天上) 세계를 가지를 못하고  사바세계에 태어났고,  사바세계도 오탁악세(五濁惡世) 태어났다 이렇게 말할 수도있지마는.

 

정법(正法) 믿는 사람, 불법(佛法) 바로 믿는 사람은 오히려 천상 세계보단  사바세계,  오탁악세에 태어난 것을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있고, 그것을 소화시켜 나갈 수가 있고, 이런 것을 발판으로 해서 더욱  발심으로 정진을 해서 결정코 금생에 도업(道業) 성취할  있는, 그렇게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17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화소산전설천기~ ; [금강경오가해] 如法受持分, 함허득통 說誼 게송 참고.

*()새다,비밀이 흘러나옴 *()다하다,궁구하다 *()만나다

*천기(天機) ; 매우 중대한 기밀. 하늘, 대자연의 기밀. 또는 신비.

*누설(漏洩  / ) ; 비밀이 남에게 새어 나감 또는 그렇게 .

*무생(無生) ; 생멸(生滅)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 없는 도리.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육근(六根) ; 육경(六境 : ,,,,,)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 , , , , (,,,,,) 이른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무궁(無窮 없을 무/다할·끝날 궁) ; 끝이 없음.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 올바른 .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 가리킴. ⑤본성. ⑥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신훈(新熏) : 어떤 중생이나  저절로 두렷한 본래 면목(本來面目) 부처님과 털끝만큼 이라도 다를 것이 없다。그것을 본각(本覺)이라 한다。그러나 무명의 업장(業障) 두터운 중생은 불보살의 교화를 받아서 발심(發心)하고 부지런히 닦아 비로소 크게 깨치는 부처의 열매(佛果) 새로 맺게 되는 것이다。이것을 시각(始覺)이라 하는데, 시각을 이루는 수단 방법이 새로 닦는   신훈이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실상(實相) :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무풍기랑(無風起浪)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 ) p19~20에서.

〇佛祖出世가  無風起浪이니라.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이 마치 바람 없는데 물결을 일으킴이로다.

 

<註解> 佛祖者는 世尊迦葉也요  出世者는  大悲爲體하야  度衆生也라.  然이나  以一物觀之則人人面目이  本來圓成커니  徦他人  添脂着粉也리요.  此가  出世之所以起波浪也라.

虛空藏經云, 「文字도  是魔業이요,  名相도  是魔業이라,  至於佛語하여도  亦是魔業이라」하심이  是此意也라.  此는  直擧本分인댄  佛祖도  無功能이라.

 乾坤이  失色하고  日月이  無光이로다.

 

 부처님과 조사는  석가세존과 가섭존자로, 세상에 나오신 것은 대자대비가 바탕이 되어 () 중생을 건지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물건으로써 본다면, 사람마다 본래 면목이 저절로 원만히 이루어졌거늘, 어찌 남이 연지 찍고  발라 주기를 기다리리요. 그러므로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잔잔한 물에 파도를 일으키는 격이다.

<허공장경> 이르기를 문자도 () ()이요, 이름과 형상도 마의 업이라,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또한 마의 업이라 하신 것이  뜻이다. 이것은 본분(本分) 바로 들어 보일 때에는 부처님이나 조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말함이다.

  하늘과 땅이 빛을 잃고, 해와 달도 어둡구나.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단계로 나눈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이른다.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 중생을 열반(涅槃)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 어머니가 그를 낳은  7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함.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음.

 

29( 19)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 만나 6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 .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  갠지스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심. B.C 544 2 15. 입적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운문 선사의 ()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내용을 말함. <선문염송(禪門拈頌)> 1권에 나옴.

[참고]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당시에 있었더라면,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 뜻을  설명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운문문언(雲門文偃)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가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건널 )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②태어나는 .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③세간을 초월하는 . 출세간(出世間) 준말. 삼계(三界) 나오는 .

*소치(所致) : [주로 ‘~ 소치 구성으로 쓰여]어떠한 까닭으로 빚어진 .

*삼세(三世) : 과거와 현재와 미래. 또는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이른다.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업인(業因) 의하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있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보잘것없다 ; (무엇이)가치가 없고 하찮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인연을 부른다.

*물심양면(物心兩面) :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중생을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 색계무색계의 여러 () 통틀어 일컬음. ()들이 사는 . () 세계.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흐릴 /악할 /세상 )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을 이르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