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인연 비유'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15.01.02 §(406) (게송)시비일침몽~ / 자기반성, 참회, 용서, 이해, 화합 / 새해에는 마음보를 새로 갈아야 / (게송)몽중확득황금장~ / 오욕락 탐착이 마약 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
  2. 2014.10.31 §(251) (게송)풍우황엽락~ / 가사불사(袈裟佛事) / 원나라 공주 와 상사(相思)뱀의 청평사 가사불사 일화 / 가사의 공덕.
  3. 2014.10.20 §(219) 미묘 비구니 설화 / 고약한 맹세는 하는 것이 아님 / 대승계(大乘戒)는 마음의 계(戒) /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것이 요점.
  4. 2014.10.05 §(335) ‘토끼고기’로 인한 왕자비의 노여움 / 부부싸움 법규 / (게송)여군동보우동행~ / 바로 지금 이때를 여의고는 공부할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5. 2014.05.11 §(240) 숯쟁이영감 /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인과설을 들으면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 /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불법(佛法)이다 / 숙명론(..
  6. 2014.04.02 §(521) 3능, 3불능 / 정업(定業)은 난면(難免) /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 찰나(刹那) 간에 몰록 / 신•분•의(信•憤•疑) 삼요.
  7. 2014.03.18 §(184) 5백 마리 박쥐, 5백 마리 기러기 떼의 인연 / 다 같이 법문 듣고 참선한 이 공덕이 금생에 세세생생에 반드시 우리가 함께 대도(大道)를 성취허는 깊은 인연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
  8. 2013.10.04 §(457) 세속적인 정(情)은 담박하게 하고 숙세의 인연은 받아들이되, 정법을 믿고 하심(下心)해야.
인과 인연 비유2015. 1. 2. 10:41

 

 

§(406) (게송)시비일침몽~ / 자기반성, 참회, 용서, 이해, 화합 / 새해에는 마음보를 새로 갈아야 / (게송)몽중확득황금장~ / 오욕락 탐착이 마약 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

자기반성으로 참회로 용서로 이해로 해서 그런 다음에사 화합으로 들어가지 않고 즉각 화두(話頭) 하나만 딱! 들어버리면, 그 속에 반성과 참회와 용서와 이해가 다 그 숨 한번 내쉬고 화두 한번 드는 속에서 다 되어버린 것.
인생으로 태어나서 바르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이 무상(無常)한 몸뚱이로서 영원을 사는 길이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 밖에는 없다.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불교신자는 인과법칙을 잘 이해를 해야 하고 인과의 원리를 깊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과의 법칙을 나름대로는 모다 이해하고 계시지만 남의 문제를 볼 때에는 다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자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인과의 법칙을 덮어두고 그걸 잘 이해를 못하시게 된다.


금생에 사람은 잠잘 때 꾸는 꿈만 허망한 줄 알았지, 이생에 태어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사는 것도 그것도 사실은 틀림없는 꿈인 것인데, 그것이 꿈인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못해.
참선을 해서 자꾸 수행을 쌓아서 우리의 팔식(八識) 속에, 잠재의식 속에 잠겨있는 선악(善惡) 종자(種子)가 다 승화(昇華)가 되어야 저절로 마음이 평등해지고 그냥 미운사람도 별로 없고 그냥 이쁜 사람도 없고 모두가 다 평등하게 수수하게 그런 마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6)—90년 1월 첫째일요법회 (용406)

 

(1) 약 20분.

(2) 약 16분.


(1)------------------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하면  인간대장부(人間大丈夫)로다
나무~아미타불~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다.
옳다 그르다,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 옳다 그르다 하고 시비(是非)를 하는 것은 하룻밤 한 벼개 꿈이여. 하룻밤 꿈에 지나지 못한 것이여.

세월이 지내 놓고 보면은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고, 글렀다고 생각한 것이 세월이 지내 놓고 보면 그것이 차라리 옳은 일이 되는 수가 있더라 그거거든.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여. 모았다가 흩어졌다 하는 거.
한 가정으로 한식구가 되어서 모았다가 또 생이별(生離別) 사이별(死離別)하는 것이나, 한 국민으로 태어났다가 다시 죽고 다시 내생에는 또 다른 나라에 태어나는 것이나,
이 당(黨) 저 당 당원이 되어가지고 어느 정도 지내다가 나중에는 또 다른 당으로 옮겨가고 그 당이 깨지고 하는 것이 전부가 한때의 정(情)이여.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하면, 자기의 분(分)에 편안히 해서 만족을 해 가지고 마음에 헐떡거리는 생각을 쉬어버리면, 인간 가운데에서도 대장부더라.(人間大丈夫)

그 분(分)에 편안히 하들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탐심을 내고 시비심을 내서,
그 이끗을 좇아서 다투고 싸우고 상대방을 누르고 해꼬자하고 그리고 자기가 더 큰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마음을 쉬지 못하면 시비는 점점 더 일어나고 더 깊어지고 원수는 깊어지고 해서 백만사(百萬事)가 되는 일이 없어.

그러니 안분(安分)해서 마음을 쉬어버리면 인간 가운데에서도 참다운 대장부가 될 것이다. 이런 고인(古人)의 시를 읊었습니다.


경오년, 불기(佛紀) 2534년, 서기(西紀)로는 1990년, 경오년을 맞이해서 1월 첫째일요법회가 되었습니다.

나라안도 화합(和合)을 해야 하고, 가정도 화합을 해야 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세계도 화합을 해야 할 그러한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화합이 되고, 가정이 화합이 되고, 나아가서는 세계도 모다 화합을 해서 평화를 이룰 수가 있을 것인가?

첫째는 화합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반성(自己反省)을 해야 해. 자가반성(自家反省).
전부 잘못한 것은 상대방에다 전부 전가(轉嫁)를 시키고 자기만 옳다고 주장을 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화합은 이룰 수가 없어.

첫째 자기반성을 해야 하고, 반성을 해서 자기의 잘못을 참회(懺悔)를 해야 하고 그러면 자연히 상대방의 설사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는 아량(雅量)이 생기는 것이여.
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그러면은 어찌 화합이 안될 수가 있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고 가정내에 있어서의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자식은 부모를 원망하고 부모는 밤낮 자식 잘못했다고 나무라고. 부부간에도 역시 마찬가지여. 고부간(姑婦間)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또 사회에 나가서도 또는 직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여. 어떠한 기업체도 마찬가지. 노사관계도 그렇고 또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

이러한 자가반성으로 참회로 용서로 이해로 해서 화합으로 나가는 길은 이것은 하근기들이, 하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되는데,

상근기(上根機)는 그러한 반성으로 참회로 용서로 이해로 해서 그런 다음에사 화합으로 들어가지 않고 즉각 화두(話頭) 하나만 딱! 들어버리면,
터억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한참 머물렀다가 후~하고 숨을 내쉬면서 화두 한번만 딱 들어버리면 그 속에 반성과 참회와 용서와 이해가 다 그 숨 한번 내쉬고 화두 한번 드는 속에서 다 되어버린 거여.

그러니 화두 한번 들므로써 자기의 마음속이 깨끗해져버려. 그러니 반성할 것이 따로 무엇이 있으며 참회할 것이 따로 무엇이 있으며 용서하고 이해할 과정이 필요 없어.

금방 고대로 내 마음이 허공과 같이 되기 때문에 다 상대방이 하나도 미웁게 보이질 않아. 그러니 화합을 할려고 안 해도 내 마음이 허공과 같이 되어버리니까 금방 화합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버린 것이다.

방금 조실스님의 법문—참선, 활구참선. 인생으로 태어나서 바르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이 무상(無常)한 몸뚱이로서 영원을 사는 길이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 밖에는 없다 이 말씀이야.


새해를 맞이했으니 여러분이 다 섣달그믐 안에는 모두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목욕을 하셨을 것이고 또 속옷부터서 전부 모다 새로 다 갈아입으시고 겉옷도 모다 갈아입으셨을 것이다.
달력도 묵은 달력은 치우고 새 달력을 걸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또 떡국도 한 그릇 더 잡숫고 그리고 연세도 한 살이 첨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마음보를 새로 갈아서 가져야 할 것인데, 내나 묵은 마음보 그놈을 고대로 간직한 채,
미운 사람은 고대로 미운 사람 남아 있고, 억울한 생각 고대로 속에다 담아 있고, 감정 고대로 담아 있고, 케케묵은 묵은 시비와 원한관계를 고대로 간직한 채, 껍데기만 씻고 닦고 갈아입었으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설사 옷은 헌옷일망정 깨끗이 씻어 입으면 그만이고 마음보를 첫째 새로 갈아 가져야겠다 이 말씀이여.
집단속만 잘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은 새롭게 하지 않고 집 겉껍데기로만 페인트만 잘 칠하고, 속은 방문을 열고 보면은 코를 두를 수가 없이 집안을 해 놓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새해를 맞이해서 화합하고 좀 더 새롭게 발전을 할려면 우리 모두가 다 마음보를 고쳐야겠다 이것입니다.

옷은 갈아입을 수가 있고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비싸고 좋은 옷,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지만 마음보를 어떻게 해야 갈아 넣을 수가 있을까?
정신병원에 입원을 할까? 외과병원에 가서 염통을 갈아 넣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 마음보 갈아 넣는다는 것은 말로는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어떻게 하면 그 마음보를 갈아 넣어서,
탁! 그 마음보를 갖다가 정말 관세음보살과 같은 부처님과 같은 마음보를 간직했으면, 천사와 같은 그러헌 마음보를 갈아 넣었으면 자기도 좋고 남도 좋고 할텐데,

어떻게 그 마음보를 새롭게 갈아 넣을까? 지금 그 문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병원에 가도 이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보는 돈도 필요가 없습니다. 수술도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도 그렇게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힘도 들지 않습니다.

이 마음보 하나만 고쳐버리면—시어머니가 마음보를 고치면은 우선 자기가 좋고, 왜 좋으냐? 마음보를 고쳐 놓으면 우선 자기 마음이 편하고 즐겁고 좋다 그말이야.

마음보를 고약한 마음보를 가지고 있으면 남을 들볶지 않고는 심심해서 못 견디거든.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남의 오장을 확 찍어서 긁어 잡아당겨야 밥맛이 생기거든.
그러니 남의 마음을 쑤시고 긁어서 비틀어 잡아당겨 놓으면, 상대방 마음을 그렇게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해 놓으니 그 사람이 나한테 좋은 얼굴을 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나한테 잘해 줄 리가 없거든.

남을 물구덩이에다 집어넣을라면 먼저 자기가 들어가서 잡아당겨야하고, 남을 밑으로 넣을라면 그냥 그 사람이 들어가겠습니까.
물구덩이에 안 빠지기 위해서 밑으로 넣은 사람 팔이고 옷이고 붙잡지. 붙잡고 자빠지니 밑으로 넣은 사람도 같이 빠질 수 밖에는 없다 이 말씀이여.

그러니 상대방 보고 잘못했다고 밤낮 미워하고 성질을 낼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보부터 딱 고쳐버리면 상대방도 자기한테 아주 참 잘해 줄 것인데 어째서 그만한 것을 모를 것이냐 그말이여. 50, 60, 70이 넘어가면서 그만한 쉬운 이치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또 그 동안에는 제가 이 법상에 올라와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을 무수하게 했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께 잘하라’고 그것을 참 많이 주장을 했는데, 그 며느리 보고만 꼭 잘못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부모 된 분이나 시어머니 된 분이나 시아버지 된 분, 노인들 어른들도 그 효도를 받을 수 있도록 효도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언제나 이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좋은 자식, 효자, 효부(孝婦)를 두는 것도 전생에 자기가 효자, 효부를 둘 만한 복을 심고 공덕을 쌓아야 좋은 며느리, 좋은 자식을 두는 법이지, 자기가 그러한 복을 쌓지 않고 공덕을 쌓지 않고서 좋은 효자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전생에 내가 잘못해 가지고 누구에게 해를 끼쳐서 원한을 심어 놓으면 그놈이 그 심은 원한을 갚기 위해서 다 불효자식으로 태어나가지고 부모를 갖다가 애를 먹이는 것입니다.
남에게 잘해주고 은혜를 끼쳐 놓으면 은혜를 갚기 위해서 자식으로 태어나고 그 집의 며느리로 들어오면 부모가 별로 잘해준 것도 없으면서도 그렇게 부모에게 효자, 효부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것인데, 그러한 인과(因果)의 법칙을 이해를 못하고 철저하게 믿지를 못하니까 밤낮 남의 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불교신자는 인과법칙을 잘 이해를 해야 하고 인과의 원리를 깊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믿으면 도대체 남을 원망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이 전부 자기한테 있는 것을 아니까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리고 염불을 하던지, 경을 독송을 하던지 또 참선을 하던지 이래가지고 자꾸 자기를 승화(昇華)를 시키면 자연히 전생의 원결(怨結)이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정화(淨化)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업(業)을 참회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죄업을 소멸시키지 않고 자꾸 상대방만 나무라고 상대방을 족쳐봤자 점점 원한만 더 깊어지고 해결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인과의 법칙을 나름대로는 모다 이해하고 계시겠지만 남의 문제를 볼 때에는 다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자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인과의 법칙을 덮어두고 그걸 잘 이해를 못하시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9분54초)

 

 

 



(2)------------------

몽중확득황금장(夢中钁得黃金藏)하고  우과청란상보대(又跨靑鸞上寶臺)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진야희환무착처(盡夜喜歡無着處)타가  천명지락득장애(天明只落得場獃)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몽중확득황금장(夢中钁得黃金藏),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황금의 보배, 황금의 뭉텅이를 얻었어.
그래 가지고 청란(靑鸞), 파란 청란새를 떠억 타고서 저 천상 옥경(玉京)에를 올라갔다 그말이야, 꿈에.

그래 가지고 그 청란새를 타고 옥경에 올라가서 하늘나라를 구경을 하니 기가 막히다 그말이야. 너무너무 좋아서 그 난봉새를 타고서 옥경을 이리저리 돌아댕겨.
도대체 앉을 곳이 없어. 어떻게 좋던지 내려앉지 않고 새를 타고 다니면서, 난새를 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를 구경을 하다가 날이 새 가지고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니까 깜짝 놀라서 깨보니 뚝 떨어졌다 그말이여.

그 금은보화 그 좋은 보배로 좋은 옷을 입고 목에다가 머리에다가 팔에다가 모다 그 찬란한 목걸이와 팔걸이·반지·귀걸이 모다 한 것도 간 곳이 없고 그 고운 난봉새도 간 곳이 없고, 자기 방바닥에 누워있다 그말이여.

꿈을 깨고 보니 그 꿈을 좀 더 오래 꿀 것을 일찍 깼다고 아무리 후회를 한들, 꿈을 깨버리니 허망하기가 말로 할 수 없다 그말이야.
밖에서 떠든 사람보고 떠들었다고 혼구녕을 내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가 있느냐 그말이여. 낮에까지 꿈꾼다고 해서 소용 있습니까? 언젠가는 깨고 말텐데.

이승에 와서 부자가 되고, 또는 높은 벼슬을 하고, 또 명예와 권리를 한몸에 지고, 마음먹은 대로 천하를 호령을 하고 휘둘러 봤던들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 버리면 꿈 다 꾸고 난 뒤와 마찬가지여. 다 가고만 마는 것이여.

금생에 사람은 잠잘 때 꾸는 꿈만 허망한 줄 알았지,
이생에 태어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사는 것도 그것도 사실은 틀림없는 꿈인 것인데, 그것이 꿈인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못해.

살다가 죽을 때 가서 겨우 ‘아! 인생이라는 것은 꿈이었구나’ 그때 가서도 알면 다행인데 그때 가서도 몰라요.

‘아이고! 내 재산을 어느 놈이 먹을란가’ 그래 가지고 죽으면서도 문서를 손에다 쥐고 죽는다 그말이여. 그 가봤자 소용 있겠습니까? 가지고 가봤자?
죽으면서도 꿈인 줄을 모르고 계속 그 애착과 집착, 탐욕심을 끌어안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확실히 이 인간 세상에 흥망성쇠(興亡盛衰)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면 그러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부터 수월하게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꿈인 줄만 안다면 이쁜 사람을 봐도 그것이 꿈인 줄 아니 집착할 것이 없고, 미운 사람을 만나되 그것이 확실히 꿈에 만난 줄 안다면 그렇게까지 미워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다 미운 사람이나 이쁜 사람이나 그저 무심한 마음으로, 평등한 마음으로 상대하면 참선도 훨씬 더 잘 될 것이고, 참선을 또 열심히 하면 자연히 그런 평등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지로 분명하게 깨닫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산승이 이렇게 말씀드린 것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생활에 있어서는 그것이 잘 ‘그렇게 안 하리라’해도 딱 되어지거든.

참선을 해서 자꾸 수행을 쌓아서 우리의 팔식(八識) 속에, 잠재의식 속에 잠겨있는 선악(善惡) 종자(種子)가 다 승화(昇華)가 되어야 저절로 마음이 평등해지고 그냥 미운 사람도 별로 없고 그냥 이쁜 사람도 없고 모두가 다 평등하게 수수하게 그런 마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활구참선, 참선이라 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설사 확철대오를 못해도 여법(如法)하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 일년 이태 삼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고약한 성격도 많이 순화가 되고 집착심(執着心)도 담박(淡泊)해지고, 탐착심(貪着心)도 담박해지고 흥망성쇠에 그저 그런대로 다 큰 충격 받지 않고 다 적절히 처신을 해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워낙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그러한 탐진치로써 살림을 해 왔기 때문에 워낙 깊이 그 뿌리가 박혔어. 그래서 알면서도 그것이 잘 안되는데.

요새 온 세계가 마약(痲藥)을 가까이 해 가지고 마약에 중독(中毒)된 사람이 나날이 불어나고 있는데, 그 마약이라고 하는 것이 꼭 무슨 아편이나 또는 뭐 대마초 그런 것만이 마약이 아니고, 술이나 담배 그런 입을 통해서 마시고 먹는 그런 것만이 마약이 아니고,
명예나 권리 또 오욕락(五欲樂) 그런 것에 탐착하는 거, ‘그것이라야만 되겠다. 그것만을 얻어야 내가 정말 행복하게 살겠다’고 이렇게 오욕락에 탐착하는 것도 역시—그놈의 탐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마약에 중독된 것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것이다.

요새는 물질문명이 모다 끝없이 자꾸 발달되어 가서 사람이 무척 살기에 편리하게 되었으나, 마음보를 바로잡지 못하면 그런 물질문명을 갖다가 올바르게 사용을 못하고 결국은 남을 해롭게 하고 세계를 멸망케 하고, 자기까지 멸망케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우리의 심성을 순화시키고 자아(自我)를 자각해서—자아라고 하는 것은 나의 불성(佛性)이거든.
그 불성을 갖다가 깨달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다 불성이 있어.

악한 사람에게도 불성이 있고 선한 사람에게도 불성이 똑같은—부처님과 똑같은 불성을 모든 사람이나, 모든 동물이나, 모든 생물이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아를 자각(自覺)하는 수행을 쌓은 사람은 모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성도 소중하게 생각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갖다가 미워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할 수가 없고 해꼬자할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러니 자기의 생명도 소중하듯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게 볼 수가 있게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다른 사람을 다 자비(慈悲)로서 상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성(心性)이 된 사람이 어찌 마약을 피울 수가 있게 되겠습니까? 마약은 당장 육체적인 자기를 멸망시키고 나아가서는 자기의 정신까지 아주 못쓰게 만드는 것인데 어찌 마약 같은 것을 함부로 가까이 하겠습니까.

보통 마약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만큼 마음이 괴로우니까—어떤 것에 대한 압박, 구속, 피해의식 그런 것으로 해서 자기 자신을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우니까, 잠시라도 그런 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 것을 한 번 맞고 두 번 하다가 세 번, 네 번하면 벌써 안 하고는 못 배기게 된다 그말이여.

그런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괴롭고 곧 미쳐서 죽을 거 같으니까 그걸 안 하고는 못 배기고, ‘그걸 하면 좋다’고 그런 말하는 나쁜 친구를 사귀어 가지고 ‘한번 해 보라’고, ‘그러면 괜찮다’고.
처음에는 담배를 좀 피워보고 그것으로 안되면 술도 좀 먹어보고, 처음에는 술을 한잔 먹어 놓으면 그럭저럭 괜찮다가 나중에는 술 갖고도 안되니까 또 마약을 가까이 하게 된다 그말이여.

불법을 믿고, 이 최상승법을 믿고 단전호흡과 화두를 거각(擧却)하므로 해서, 자기의 중심을 잡아나가고 자기를 승화시켜 나갈 수 있는 법을 알고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야 아무리 괴롭기로서니 그런 것을 가까이해 가지고 그런 환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자기를 유지해 나갔을 때, 그럴 때에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해서 힘을 얻어 놓으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진다 하더라도 능히 다 적응 할 수 있고 다 극복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19분55초~35분2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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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시비일침몽~’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8 ‘준선자(俊禪子)에게’, p47 ‘감흥(感興)’ 게송 참고. *枕(침)베개. 말뚝. *歇(헐)쉬다. 그치다.
*벼개 ; 베개(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 밑에 괴는 물건)의 사투리.
*생이별(生離別) ; 혈육이나 부부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짐.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이끗(利끗) ; ①이익이 되는 실마리. ②잇끝(말리 末利)—지말(枝末), 지엽(枝葉)적인 이익. 작은 이익.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대장부(大丈夫) ;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백만사(百萬事) ; 모든 일.
*안분하다(安分--) ; (사람이)편안한 마음으로 자기의 분수를 지키다.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화합(和合) ; 서로 간에 마음이나 뜻을 모아 화목하게 어울림.
*모다 ; ‘모두, 전부’의 옛말.
*자기반성(自己反省) ; 자기의 언행에 대해 스스로 돌이켜 봄.
*전가(轉嫁 돌릴 전, 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아량(雅量 우아할 아,헤아릴 양) ; 깊고 너그러운 마음씨.
*상근기(上根機 위 상,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매우 뛰어난 사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섣달그믐 ;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마음보 ; 마음을 쓰는 속 바탕.
*내나 ; 결국에 가서는.
*효부(孝婦) ; 시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지극한 며느리.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2)

*(게송) ‘몽중확득황금장~’ ; ; [신심명(信心銘)-벽의해(闢義解)]-중봉명본 선사(中峰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2014) p114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난(鸞 난새 란[난]) ; 난새. 난조(鸞鳥).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 모양은 닭과 비슷하나 깃은 붉은빛에 다섯 가지 색채가 섞여 있으며, 소리는 오음(五音)과 같다고 한다.
*옥경(玉京) ; 하늘 위에 옥황상제가 산다고 하는 가상적인 서울.
*한몸 ; 주로 ‘한몸에’의 꼴로 쓰여, '있는 대로 모두'를 이르는 말.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집착심(執着心)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담박하다(淡泊--, 澹泊--) ; ①(사람이)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②(음식맛이)깔끔하고 느끼하지 않다. ③(치장이)연하고 산뜻하다.
*탐착심(貪着心)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마약(痲藥 마비 마,약 약) ; 강한 진정 작용과 마취 작용을 지니고 있으며 습관성이 있어 오래 사용하면 중독이 되는물질. 아편(阿片)ㆍ모르핀ㆍ코카인ㆍ헤로인ㆍ코데인ㆍ페티딘ㆍ메타돈ㆍ엘에스디(LSD) 따위가 있으며, 의료에 사용하지만 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있어 취급 및 사용을 법률로 규제하고 있다.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배기다 ; ①(사람이)끝까지 참고 견디다. ②(사람이 힘든 일을)끝까지 참고 견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화두를 든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10. 31. 16:17

 

 

§(251) (게송)풍우황엽락~ / 가사불사(袈裟佛事) / 원나라 공주 와 상사(相思)뱀의 청평사 가사불사 일화 / 비화경(悲華經). 가사의 공덕.


가사는 성불을 한 부처님으로부터 견성한 도인에 이르기까지, 또 앞으로 견성성불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모든 수행자들이 이것을 수(垂)하는 그러헌 법복(法服)이기 때문에 이 법복에는 그만한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1)—84년 12월 첫째일요법회(84.12.02) (용251)

 

(1) 약 20분.

(2) 약 21분.


(1)------------------

풍우황엽락(風雨黃葉落)헌데  난지상설한(亂枝霜雪寒)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천모불각(秋天暮不覺)한데  청산백운외(靑山白雲外)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풍우황엽락(風雨黃葉落)헌데, 바람이 불고 비가 온 뒤에 누런 이파리가 떨어지는데,
난지상설한(亂枝霜雪寒)이로구나. 이리저리 얽혀서 어지러운 가지에는 서리와 눈이 차웁더라.

추천모불각(秋天暮不覺)한데  청산백운외(靑山白雲外)여. 가을 하늘은 모르는 결에 저물어 가는데 청산은 백운 밖에 있구나.

아름다운 우리나라 금수강산이 한참 단풍이 불타듯 아름답던 때가 엊그제인데 어느덧 소설(小雪)·대설(大雪)이 닥쳤습니다. 아름답던 단풍은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찬바람 속에 울부짖고 있는 때가 돌아왔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평생을 이 강산에 살면서 그러헌 상황을 보고 지내지만 모르는 사람은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지고, 겨울이 오면은 눈이 내리고 다못 으레이 계절 따라서 그러헌 것으로 알고, 봄에 등산가고 가을에도 단풍놀이 가고 그저 그러한 정도로 지나치고 말게 됩니다.

그러나 이 평범한, 계절 따라서 산천의 모든 경계가 변화한 그 아무렇지도 않는 평범한 그런 상황이 우리가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못하고 그 도리를 알기 위해서 목숨 바쳐서 도를 닦고 있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조금도 숨김없이 여지없이 그 도리를 자연이 설파하고 있는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오늘은 금년 마지막 12월 일요 법회날이면서 가사불사(袈裟佛事) 회향 법요식을 겸해서 거행하는 날입니다.
그 동안에 가사불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장애없이 여러 신남신녀와 비구·비구니, 사부대중이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가사불사를 원만히 마쳤습니다. 진즉 마쳤지만 일은 끝났지마는 그 회향 법요식을 오늘 이 일요법회와 아울러서 거행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앞에 탁자 위에 봉안되어 있는 가사를 백 령(百領), 보통 백 바탕이라 이렇게도 말합니다마는 백 령의 가사를 조성해 모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 가사는 다섯 가지 덕이 있고 열 가지 이익이 있어서, 크게 추려서 말한다면 5덕과 10가지 이익이 있다 하지만, 미세하게 자상하게 말한다면은 입으로 다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원(元)나라 시대—원나라 시대면 우리나라 고려 시대가 되겠읍니다마는, 그 원나라 순제라고 하는, 그 원순제 천자에게 한 공주가 있었는데 그 공주는 참 절세의 미인이었었고 행실이 아름다웠었고 학덕이 높았었고 그러한 훌륭한 공주가 있었는데,
조정에서나 항간(巷間)의 민간들이나 본 사람 안 본 사람 할 것없이 그 공주의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상한 공주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서, 누구든지 한 번만 보면 그 공주를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참 훌륭했었던 것입니다.

마치 그 조정의 젊은 관리 한 사람이 궁정에서 거닐고 있는 공주의 모습을 잠깐 보고서 완전히 매혹이 되어가지고 자나깨나 공주의 그 삼삼한 얼굴과 거동이 잊을 수가 없어서 너무너무 혼자 짝사랑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부모한테도 말하지 아니하고 혼자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차츰차츰 밥을 잘 못 먹게 되고 잠을 잘 못 자게 되니까 살이 빠지고 몸이 수척해졌던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대관절 네가 무슨 걱정이 있어서 그렇게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그렇게 살이 빠지느냐?”
처음에는 말을 안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점점 세월이 지나가다 보니까 출근도 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되어서 앓아 눕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주마마에 자기를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관말직(微官末職)에 있는 그런 사람으로 감히 공주를 넘나본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냈다가는 삼족(三族)을 갖다가 멸망을 당할런지도 모를 그러한 처지라,

어머니로서도 “그 공주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 이렇게 위안을 했지만 별 수가 없고, “그 여자 아니라도 너한테 적합한 여인이 이 천하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쨌던지 마음을 돌리라”고 달래고 꾸짖고 했지만 마침내 굶고 잠을 못 자고 하니까, 나중에는 헛소리를 하다가 결국은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었는데, 죽으면서 '이생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어서 몸을 바꾸어서라도 기어코 그를 사랑하리라'하는 그런 깊은 한을 품고서 그 젊은 사람은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주는 그런 까닭도 전혀 모르죠. 그런 까닭도 모르는 사이에 있는데 하룻날은 낮에 곤해서 낮잠을 한숨 침대에서 자다가 몸이 이상하고 아랫도리로 배로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까 아! 이상하다 그말이여. 손으로 아랫배로 고리 더듬어 보니까, 무엇이 미끈덩 하는데 깜짝 놀랬다 그말이어.

팔뚝만한 구렁이란 놈이 몸을 칭칭 틀어감고 그래 가지고 꼬리를 갖다가 두 다리 사이에다가 딱 꽂아 놓고는, 아! 그러고 구렁이란 놈이 있다. 기절을 해 가지고 고함을 질렀는데, 그 황후가 그 소리를 듣고 와서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것을 널리 소문을 낼 수도 없고 그래서 아주 믿을만한 하인을 불러다가 뱀을 갖다가 모가지를 잡어서 띌라고 하니 떨어지들 않어.
그래서 간신히 모가지를 졸라매 가지고는 억지로 그냥 생껍데기를 베끼다시피 해서 그냥 그놈을 띄어서 저 멀리 갖다가 던져 버렸는데, 금방 그놈이 그 이튿날이면 또 기어와 가지고 또 틀어감고, 또 띄어내면 또...

 

하다 하다 못해서 그놈을 아주 짤라 가지고 불에다 태워서 버렸는데도 며칠 안 있으면 도로 딴 놈으로 태어나 가지고...
벌써 금방 죽어 가지고 원한에 사무쳐서 그것이 업(業)으로 태어난 경우는 금방 시간이 걸리지 않고 그렇게 커 버리는 것입니다.


옛날에 운광 법사라는 법사는 법문을 하면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지고, 어떻게 법문을 잘하던지 바위돌도 그 법문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바위돌도 머리를 끄떡끄떡 할 정도로 그렇게 설법을 참 잘하고 훌륭한 운광 법사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운광 법사가 법문을 하시기를 “시주(施主)것을 많이 받어 먹고, 많이 입고 해서 도를 이루지 못하면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소가 되어서 그 빚을 갚게 되느니라. 그러니 죽어서 소가 되지 말기 위해서는, 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쨌든지 밤낮을 가리지 말고 열심히 도를 닦어라.” 이러한 요지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그 법문을 듣고 어떤 스님이 묻기를 “그러면 운광 큰스님께서는 소가 되지 아니할 자신이 있습니까?”하고 여쭈니까, “능히 (시주 빚을) 녹일 수가 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운광 법사가 죽어 가지고 죽자마자 큰 황소로 몸을 받아났는데, 그래 가지고 황소가 되었는데, 그 운광 법사 껍데기를 벗겨 가지고 북을 만들었어.
여러분이 큰 절에 가면 큰 소가죽으로 만든 북을 보셨을 것입니다마는, 최초에 절에다가 북을 매달게 된 최초의 역사는 운광 법사가 소가 된 그 소가죽으로 만든 것이 시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새벽에 예불할 때는 종을 치고 또 북을 쳐서, ‘운광 법사와 같은 그러한 설법을 잘하고 계행이 청정하고 훌륭한 그런 큰스님도 죽어서 소가 되었는데, 대중들은 어서 정신을 차려서 정진을 하라’하는 그런 뜻으로 북을 치는데,

그래서 어째서 운광 법사와 같은 그러헌 큰스님이 죽어서 소를 받았겠느냐?
“스님도 능히 그 시주 빚을 녹일 수가 있습니까?”하니까 “능히 녹일 수가 있다. 능소(能消)! 능소!”했는데 '어떻게 해서 소가 되었느냐?'하는 것이 공안(公案)의 하나입니다마는.

업으로 받아난 몸뚱이는 금방 태어나고, 그놈을 또 없애도 금방 또 태어나고 그런 것입니다.
죄를 많이 지어서 지옥에 태어나면은, 그놈을 갖다가 하룻밤 사이에 만 번을 죽였다 만 번을 살렸다 그러거든.

 

몸을 톱으로 머리 꼭대기에서 밑으로 썰어 내리기도 하고, 몸을 갖다가 큰 돌 위에다가 수십 명 씩을 갖다가 뉘어놓고 큰 돌로 위에서 탁 눌러서 그렇게도 죽이기도 하고,
콩나물을 넣어서 맷돌에다 갈듯이, 수십 명 씩을 한목 큰 맷돌에다 넣어 가지고 들들들 갈아서 그렇게 죽이기도 하고, 또 칼날, 바늘 칼산이 있는 데에다가 옷을 발가벗겨서 내굴리기도 하고,

그러헌 참혹하고 이야기조차도 할 수 없을 그런 무서운 벌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죽으면 금방 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태어나면 또 죽이고, 또 태어나면 또 죽이고—사람이 태어나면 한 10년 크고, 한 20년 커야 겨우 사람 구실을 하는데, 업으로 태어난 몸뚱이는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푹 커 버리고 푹 커 버리고 그러거든.

그래서 이 뱀을 갖다가 죽여 버리면 또 와서 그러고, 죽여 놓으면 새로 금방 또 생겨나 가지고 또 와서 틀어 감고, 그래서 처음에는 극비밀리에 그것을 띄어다 버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는데, 워낙 자주 그래 놓으니 차츰차츰...

 

그 비밀이라 하는 것은 사람은 속에다 두고 말을 안 하면은 병이 나는 법이라, 결국은 소곤소곤 아는 사람한테만 극비밀로 귓속말한 것이 차츰차츰 번져 가지고 온 조정이 다 알게 되고,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다 알게 되고 온 항간에 그 소문이 좌악 번져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중국 천지에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비밀도 무엇도 없고, 인제는 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으니까, 약을 먹어도 소용없고, 뱀한테 독약을 발라도 소용없고, 짤라내도 소용이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할 수 없이 거지 복색(服色)을 하고 강산 유람을 나섰던 것입니다.(처음~19분27초)

 

 

 



(2)------------------

황하를 몇 번을 건너고, 양자강을 몇 번을 건너면서—중국 저 북쪽으로부터서 저 남해와 동쪽 서쪽을 가릴 것 없이 방방곡곡이 거지로 당기면서 얻어먹고 댕기다가, 인제 중국도 갈만한 데는 다 가고 나니까, 다시 인제 한국에까지 왔던 것입니다.

고려, 한국에까지 왔는데, 그러다 보니 10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어디에 도달을 했느냐 하면, 춘천에까지 왔어. 춘천에 여러분이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거기에 청평강이라 하는 큰 강이—지금 댐을 여러개를 막고 그랬는데, 그 청평강을 갖다가 건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걸 인제 건너 가지고 가니까 청평사(淸平寺)라 하는 절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이 절 가까이 왔으니 한번 부처님께 절이나 하고 와야겠다” 그런 마음을 먹고 있는데, 아! 사람들이 자꾸 그 절로 들어가고 오고 들어가고 야단이다 그말이어.

“절에서 무슨 좋은 행사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한다” 그러거든.

“그럼 내가 가사불사를 하는 데를 구경을 해야겠다” 그러고는,
그러니 뱀이 몸에 틀어 감긴 채 거길 갈 수도 없고, 그래서 뱀 보고 “너, 여기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면 내가 가서 부처님께 절도 하고 가사불사를 하는 것을 구경을 하고 올테니 여기 좀 있어라.”

처음에 갈려고... 떨어지지 아니하니까, 10년을 단 한번도 떨어진 일이 없으니까, 그냥 갈려고 하니까 몸뚱이를 감고 있는 뱀이 막 요동을 부리면서 막 반대를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왜 그러냐? 네가 그렇게 가기 싫어서 그런다면은 나만이라도 잠깐 갔다 올테니까 여기 있거라. 내가 도망가 보았자 어디로 도망가겠냐? 나는 인제 너하고 10년을 살아왔으니 너를 띄어내버리고 도망갈 수도 없고 그런 생각도 없으니까, 차마 너같은 흉한 몸뚱이를 몸에다가 감고 부처님한테 내가 갈 수가 있느냐? 그러니 너, 여기에 바위에 가만히 좀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을 했던지 구렁이가 스르르 풀어졌단 말이어. 풀어져 가지고 그 바위 위에 의지해서 또아리를 틀고서 가만히 있는데.

그래서 인제 그 공주는 그 강가에서—그 10년 동안을 거지로 돌아댕겼으니 눈만 빠끔하지, 도대체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되었는데,
그래도 부처님한테 간답시고 거기서 옷을 벗고 머리도 좀 씻고 손도 씻고 얼굴도 씻고 발도 씻고, 옷은 남루하지마는 그렇게 하고서 인자 청평사를 떠억 들어가니까,

그때 스님네랑 모두 다 공양 시간이 되어서 다 공양을 하러 가고. 또 한 방이 비어 있는데 거기를 보니까 비단천을 온 방에다가 가득 널어 놓고 쪼가리 쪼가리 해서 바느질을 하고 뭐 다리미질을 하고 그러다가 잠시 빈 틈인데.

아! 이 공주가 들어가 가지고는, 그 하도 옛날 10년 전에 공주로 있을 때 입어 보던 비단, 그때 보고서 10년을 보지 못한 아름다운 빨간 비단을 보니까 울적하니 고향 생각이 나고, 부모 생각이 나고,
옛날에 그 화려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거지 주제에 그 방에 들어가 가지고 그걸 만져 보았단 말이어.

만져 보면서 그 바느질하던 실이 거기 고대로 바늘에 실이 꽂혀 있으니까, 자기도 고대로 몇 땀을 떠 보고 그랬단 말이어.
그러다가 아! 가사하는 편수 스님이 와서 보더니, “웬 거지가 여기 신성한 가사당(袈裟幢)에 들어와 가지고 이런 걸 만지느냐?”고 혼구녘을 내서 그냥 “나가라!”고. 그 통에 그냥 나왔다 그말이여.

쫓겨나와 가지고는 눈물이 글썽글썽 해 가지고 부처님께 또 절을 하고서, 그리고서 인자 일주문을 막 나올라고 하니까, 시커먼 먹구름이 일더니 뇌성벽력(雷聲霹靂)을 해 가지고 그냥 벼락을 치는데, 아주 눈앞이 그냥 번쩍하니 아주...

아! 그래서 비가 갤 때까지 일주문에서 따악 기다리고 있다가 비가 개인 다음에 아까 뱀과 이별했던 그 바위 있는 데로 가 보니까 바위가 산산이 부서졌는데, 아! 구렁이도 그냥 도막도막 시커멓게 타서 죽어버렸다 그말이어.

‘참 이상하다 이거. 그렇게 띄어내 버릴려고 해도 안 떨어지고, 그렇게 죽여서 버려도 소용이 없더니, 아! 오늘은 어떻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가지고 그 구렁이를 갖다가 박살을 냈다’ 이걸 생각해 보니까,
‘틀림없이 이것은 부처님 가피력(加被力)이다’ 이리 생각을 하고 그길로 다부 돌아와서 부처님께 무수, 백 배 천 배 절을 하고서,

‘내가 부처님께 이러한 은혜를 참 입었으니 내가 이런 몸으로 다시 고향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차라리 이 고려 땅에서 사는데, 기왕이면 절에서 공양주도 하고 채공도 하고 하면서 일생을 이렇게 마쳐야지, 내가 구렁이에 감겨서, '상사(相思)뱀'한테 감겨서 살은 공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갈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그 주지 스님한테 부탁을 해서 “내가 여기서 공양주(供養主)라도 하면서 여기서 살 수가 없겠습니까? 염불하면서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거지가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하고 처음에는 아주 상대도 안하더니, 몇 번을 간청을 하고 말 안 들으면 또 부처님께 가서 절을 하고 와서 또 그러고, 또 그러고 하면서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주욱 얘기하니까,

아! 주지 스님이 그 말을 듣고 감동이 되었던지 “그러면 여기서 염불도 하고 공양주를 하면서 대중시봉(大衆侍奉)도 하면서 여기 좀 있어 보라.”고.
그래서 인자 본격적으로 목욕을 하고 옷을 주어서 옷을 갈아입고, 그래 가지고 일심전력(一心專力)으로 공양주를 하고 채공(菜供)도 하고 나물도 가꾸고 해서 몇 달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절에서는 가사불사도 그럭저럭 끝나고 난 다음에 대중공사(大衆公事)를 해서 여러 스님네를 다 큰방에 오시라 해 가지고 “인자 가사불사도 끝나고 했으니 우리가 대웅전을 중수(重修)를 해야겠는데 대웅전을 중수할라면은 어느 스님이 자원을 해서 화주를 해서...'

전국에 인연 따라서 시주금을 갖다가 모집하는 그런 책임을 화주(化主)라 그러는데 “화주를 누가 자원을 하라” 그러니까, 서로 서로 “나는 자신이 없어 못하겠다” 서로 서로 안할려고 뒤꽁무니를 빼.

그 말을 문밖에서 듣고서 그 공주가 “그 화주는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하니까, “어떻게 그런 책임을 할 수가 있겠느냐?” 처음에는 가당찮게 생각을 했지마는 하도 간곡히 “나한테 일임(一壬)만 해 주신다면, 내가 한번 해보겠다”

그래서 그 공주가 편지 두 장을 써 가지고 하나는 춘천 부사한테 보내고, 하나는 강원 감사한테 보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이나 하면은 ‘자기는 저 원나라 공주로서 한국에까지 왔다가 지금 이렇게 이 절에, 청평사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법당을 갖다가 이번에 중수를 하게 되었으니 어쨌던지 춘천 부사와 강원 감사가 여기에 적극 협조를 해주셔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니까, 편지를 받자마자 즉각 감사와 부사가 부하를 거느리고 그 청평사에까지 도달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원나라 조정에서 기별이 오기를 ‘공주가 혹 고려 땅에 건너 갔을런지 모르니 자세히 찾아서 잘 좀 보호를 해 달라’고 그런 요청이 있었는데 전혀 소식을 모르다가 이렇게 알았다고, 그렇게 반갑게 와서 인사를 하고서,
그래서 감사가 조정에까지 또 보고를 해 가지고 그 엄청나고 거창한 불사를 원만하게 마쳐서 6·25 전까지도 그 절이 죽 유지를 해 오다가 6·25동란 때 그게 타버렸습니다. 타버리고 난 뒤에 또 그 절을 중수를 했다고 그럼니다.

여러분이 혹 청평댐이나 거기를 가실 기회가 있으면 그 청평사란 절을 한번 찾아가 보시고, 그러헌 가사불사와 유래가 있는 상사뱀의 전설이 있는 곳을 한번 찾아가 보시는 것도 재미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를 들었읍니다마는 이러한 원나라 공주의 일화 뿐만이 아니라, 가사불사는 수없이 그런 일화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화경(悲華經)이라는 경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저 옛날 보장불(寶藏佛) 부처님 앞에 서약을 하시기를 “제가 만약에 성불한 날에는 성불한 뒤에 내가 입고 나의 제자들이 입는 그 가사불사에 동참을 한 사람이나, 그 가사를 입는 사람이나, 그 가사를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5가지 공덕이 있게 되기를 서약합니다.”

아미타불도 법장비구(法藏比丘)라 하는 스님으로 있을 때, 마흔여덟 가지에 대한 원을 세워서 “내가 48가지의 원을 성취할 수 있기 전에는 성불(成佛)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원을 세우고 도를 닦아서 결국은 48가지의 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되어서 성불하시게 된 것입니다.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도 보장불 앞에 서약을 하시기를 “(첫째) 누구라도 가사를 일념으로 존중히 여기면, 어떠한 중한 죄를 지은 비구·비구니나 우바새·우바니도 그 죄가 소멸이 되고, 삼승(三乘)의 도를 성취할 수기(授記)를 받게 하여지이다.

또 둘째는 하늘나라의 천룡이나 또는 사람이나 귀신도 조그만큼이라도 가사를 존중히 여기면, 삼승법(三乘法)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여지이다.

또 셋째는 어떤 귀신이나 모든 사람들도 가사불사하고 남은 조그마한 쪼가리 하나라도 몸에 지니게 되면은 그 사람은 평생 동안 음식에 배고픈 일이 없게 하여지이다.
‘고생 고생해도 배고픈 고통만큼 큰 고통은 없다’고 그러는데, 이 가사 쪼가리 조그만한 것 하나만 몸에 지녀도,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고 살더라도 배고픈 고통을 면케 한다.

넷째는 중생과 중생이 서로 원한이 있어서 서로 미워하고 서로 어긋났을 때, 부모 형제간이나 친구 간이나, 또 상관과 부하 관계나, 누구라도 서로 마음과 마음이 어긋나 가지고 좋지 않을 때도 이 가사를 생각만 해도 자비심이 일어나게 되어지이다.

또 다섯째는 전쟁터에서 서로 싸울  때에 이 가사 조그만한 쪼가리 하나만 가지고 있거나 또 가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존중한 마음을 가지면 항상 싸움을 하면 이기게 되고,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서도 자기 몸을 잘 보존할 수가 있게 하여지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조항에 대해서 보장불 앞에 맹서(盟誓)를 하셨는데, 과연 석가모니 부처님이 삼천 년 전에 사바세계에 출현하셔서 성불을 하셨습니다. 성불을 하셨기 때문에 이 가사에 대한 다섯 가지 공덕이 원만히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사불사에 동참을 하거나, 또 가사불사에 직접 와서 바느질을 하거나, 또는 가사불사하고 남은 쪼가리 조그마한 것 하나라도 몸에 지니게 되거나, 또 가사를 보고 존중하는 마음을 잠깐이라도 내게 된다면, 아까 말한 그런 다섯 가지 공덕을 우리는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비화경(悲華經)이라고 하는 경전에 분명히 씌여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가사(袈裟)에는 그런 공덕이 있느냐 하면, 이 가사는 성불을 한 부처님으로부터 견성한 도인에 이르기까지, 또 앞으로 견성성불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모든 수행자들이 이것을 수(垂)하는 그러헌 법복(法服)이기 때문에 이 법복에는 그만한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무량 죄업이 소멸이 되는 그러헌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가사를 수하게 되기 때문에 가사에는 그만한 공덕이 있어야 하고 또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서약을 보장(寶藏) 부처님 앞에 하시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가사라고 하는 것은 몸을 가리우는 인도(印度)의 옷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방이 인도와 달라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그래서 그 한서(寒暑)의 계절 따라서 옷을 입게 됩니다마는, 인도는 상하(常夏)의 나라이기 때문에 옷이 별도로 따로 없고,

가사가 오조 가사(五條袈娑), 칠조 가사(七條袈娑) 그리고 9조 이상 25조까지 있는데, 오조 가사는 소가사(小袈裟)라 그러고, 칠조는 중가사(中袈裟)라고 그러고, 구조 이상은 대가사(大袈裟)라 그러는데.
이 오조 가사는 속옷인 것입니다. 맨 속에, 살에 딱 닿게 입는 속옷이고, 칠조 가사는 그 속옷 위에다가 일상생활하면서 입는 옷인 것입니다. 그리고 9조 이상 대가사는 외출할 때나 설법을 할 때나 또 법요식을 할 때나 그런 때 입는 옷인 것입니다.

 

그래서 5조·7조·9조 이상을, 항시 이 3가지 옷을 스님네는 자기의 옷으로 항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옷은 몸을 가리우는데 쓰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그것을 평상시에 입는 옷은 저고리·바지 모다 그 속에 다시 또 내복이 있고, 그 위에다가 특별한 때 인자 법복이라 해 가지고 장삼(長衫) 수하고 그 위에 또 가사 수하고, 장삼은 하지 아니하고 가사만 수하기도 하고 그럽니다마는.
그리고 춥고 더운 것을 막고, 모기나 모다 그런 벌레가 오는 것을 막기도 하고 또 사문(沙門), 스님으로서의 위신을 갖추고 또 모든 삿된 마음을 물리치기 위해서 가사를 수하면 그렇게 되고,

또 그래서 이 가사라 하는 것은 '공덕의(功德衣)다, 복전의(福田衣)다, 해탈의(解脫衣)다' 이런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그렇게 가사에 대한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은 가사에는 그만한 여러 가지의 목적과 공덕이 있기 때문에 '복전의다, 해탈의다, 또는 공덕의다' 이런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한 그 소중한 가사불사를 이번에 용화사에서 해 가지고 여러 스님네들이 또 그것을 수하시게 되는데, 여기에 동참하시고 또 직접 와서 바느질을 하시고 그런 분들은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고, 또 이 정법에 귀의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 반드시 해탈도를 증득하실 수 있는 대공덕을 지으신 것입니다.

이 가사불사하고 남은 쪼가리를 조그만한 명함만큼씩 이렇게 끊어서—아마 여러분이 일주문에 들어오실 때에, 아마 조그마한 쪼가리 하나씩을 모두 받으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을 패스포드 같은 데에다 잘 간직을 해서...

더 많이 남았으면 여러 장 씩을 드렸으면 할 텐데, 그것이 많이 남지를 못해서 한 앞에 한 개 씩만 이렇게 나눠 드렸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또 가사불사에 직접 와서 일을 하신 분은 그때 그때 모두 얻어 갔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그것을 소중히 몸에 간직하시고 그리고서 항시 그 쪼가리를 볼 때마다 최상승법을 생각을 하시고 화두를 열심히 들고 공부를 잘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19분28초~40분4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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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풍우황엽락~’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4 ‘왕사국(王師菊)’ 게송 참고.
*몽매지간(夢寐之間) ;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동안.
*가사(袈裟) : [범] kasaya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
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
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령(領) : 가사 숫자 세는 단위.
*미관말직(微官末職) ; 지위가 아주 낮은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
*삼족(三族) ; 부계(父系), 모계(母系), 처계(妻系)의 세 족속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만조백관(滿朝百官) ; 조정(朝廷)의 모든 벼슬아치.
*복색(服色) ; 예전에,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입던 옷의 빛깔과 꾸밈새.

 

 



------------------(2)

*편수 ; 공장(工匠, 수공업에 종사하는 장인) 두목. ‘編首(엮을·만들 /머리·우두머리 )’ 적기도 한다.

*가사당(袈裟幢) ; 가사 짓는 .

*뇌성벽력(雷聲霹靂) ; 천둥소리와 벼락을 아울러 이르는 .

*가피력(加被力 더할·베풀 ,입을·두를 , ) ; 불보살(佛菩薩) 위신력(威神力). 불보살이 중생에게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불가사의한 . 가호력(加護力) 같음.

*다부 ; ‘다시 사투리.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대중시봉(大衆侍奉) ; 대중(大衆 많은 스님이나 신도,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모시고 시중드는 .

*일심전력(一心專力) ; 마음을 오직 한군데에 두어  힘을 기울임.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대중공사(大衆公事) ; 사찰에서, 사찰 운영이나 공지 사항 또는 스님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문책 등이 있을 , 사찰에 있는 모든 스님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 얻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비화경(悲華經) ; 담무참(曇無讖) 한역. 『비련화경(悲蓮華經)』이라고도 한다. 다른 한역으로는 역자 미상의 『대승비분다리경(大乘悲分陀利經』 8권이 있다.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의 본생(本生 : 붓다의 전생 이야기)을 설명하고, 이 두 가지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정토성불(淨土成佛)과 예토성불(穢土成佛)의 사상을 서술하지만, 무엇보다 석가모니불의 예토성불이 들어 있는 대비(大悲)를 찬양하는 내용이 중심이 된다.

첫 번째 「전법륜품(轉法輪品)」  두 번째 「다라니품(陀羅尼品)」  세 번째 「대시품(大施品)」  네 번째 「제보살본수기품(諸菩薩本授記品)」  다섯 번째 「단바라밀품(檀波羅蜜品)」  여섯 번째 「입정삼매문품(入定三昧門品)」으로 모두 6품으로 되어 있다.

 

이 중에 네 번째 「제보살본수기품(諸菩薩本授記品)」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비(大悲)보살이었을 때 보장불(寶藏佛) 앞에서, 본인이 성불하였을 때 가사(袈裟) 지니고 공경하여 얻을  있는 다섯 가지 공덕[袈裟五種功德, 또는 袈裟功德]을 서원하신 내용이 있다.

 

①世尊, 我成佛已若有衆生入我法中出家著袈裟者, 或犯重戒或行邪見, 若於三寶輕毀不信集諸重罪, 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 若於一念中生恭敬心, 尊重世尊或於法僧,

世尊, 如是衆生乃至一人不於三乘得授記莂而退轉者, 則爲欺誑十方世界無量無邊阿僧祇等現在諸佛, 必定不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세존이시여, 제가 성불하고 나서 만약 어떤 중생이 저의  가운데 들어와서 출가하여 가사를 입으면,  무거운 계를 범하거나  삿된 견해를 짓고, 삼보(三寶) 경멸하여 믿지 않고 모든 무거운 죄를 모았더라도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니가 만약  생각만이라도 공경심(恭敬心) 내어서 부처님이나 혹은 법과 승려를 존중한다면,

세존이시여, 이러한 중생이  사람이라도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  삼승(三乘)의 수기를 얻지 못하고 퇴전한다면  시방세계의 무량 무변 아승기 현재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것이므로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②世尊。我成佛已諸天龍鬼神人及非人, 若能於此著袈裟者, 恭敬供養尊重讚歎, 其人若得見此袈裟少分, 即得不退於三乘中.

세존이시여, 제가 성불하고 나면 모든 하늘··귀신·사람·사람 아닌 것들이라 할지라도 만약  가사 입은 자를 공경·공양·존중·찬탄하거나  가사 자락을 조금만 보아도  3 가운데서 퇴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③若有衆生爲饑渴所逼, 若貧窮鬼神下賤諸人乃至餓鬼衆生若得袈裟少分乃至四寸, 其人即得飲食充足, 隨其所願疾得成就.

만약 굶주리고 목마른 중생이나 가난한 귀신이나 하천한 모든 사람이나 나아가 아귀 무리들이 가사를 조금만, 아니 네 () 얻더라도 그가  음식을 충족하게 얻고 그가 원하는 바에 의하여 빨리 성취하게  주십시오.

 

④若有衆生共相違反起怨賊想展轉鬪諍, 若諸天龍鬼神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拘辦荼毘舍遮人及非人, 共鬪諍時, 念此袈裟, 尋生悲心, 柔軟之心, 無怨賊心, 寂滅之心, 調伏善心.

만약 중생이 서로 어기고 반대하여 원수로 생각하고 투쟁하며, 모든 하늘··귀신·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반다·비사차·사람·사람 아닌 것들이 서로 투쟁할   가사를 생각하면  자비심·부드럽고 순한 마음·원수와 적이 없는 마음·적멸한 마음·조복된 착한 마음이 생길 것이며,

 

⑤有人若在兵甲鬪訟斷事之中, 持此袈裟少分至此輩中, 爲自護故供養恭敬尊重, 是諸人等無能侵毀觸嬈輕弄, 常得勝他過此諸難.

만약 군병의 전란과 투쟁·송사로 결단나게  일에도  가사의 조그마한 조각만 가지고 가면 저절로 보호되기 때문에 공양·공경·존경 받게 되나니, 모든 사람들이 능히 침략하고 헐뜯고 야유(揶揄)하고 가볍게 희롱할  없어서 항상 상대방을 이기고 모든 어려움을 통과하게  주십시오.

 

世尊, 若我袈裟不能成就如是五事聖功德者, 則爲欺誑十方世界無量無邊阿僧祇等現在諸佛, 未來不應成耨多羅三藐三菩提作佛事也, 沒失善法必定不能破壞外道.

세존이시여, 만약  가사가 능히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거룩한 공덕[五事聖功德]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시방 세계의 무량 무변 아승기 현재 모든 부처님을 속이는 것이니, 미래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서 불사를 짓지 못할 것이며, 착한 법을 잃어서 능히 외도(外道)들을 파괴하지 못할 것입니다’

 

善男子, 爾時寶藏如來伸金色右臂, 摩大悲菩薩頂, 讚言, 善哉善哉, 大丈夫, 汝所言者, 是大珍寶, 是大賢善, 汝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已是袈裟衣服, 能成就此五聖功德作大利益.

선남자야,   보장여래께서 금빛의 오른팔을 펴서 대비보살의 이마를 만지면서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대장부여, 그대가 말한 바는 바로 진귀한 보배이며, 크게 어질고 착한 것이로다. 그대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면  가사와 의복이 능히  다섯 가지 거룩한 공덕을 성취하여  이익을 지을 것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있는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 2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48()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 이전에  원행(願行)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사십팔원(四十八願) : 아미타불이 지난 세상에서 수행할 때에,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 였을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 - Buddha) 앞에서 장차 자기가 성불하여 주지(住持) 이상적인 국토의 구체적 조건을 들어서, 그것이 실현될 때라야 성불한다고 맹세하고 발원하였던 것이다。마침내 그가 무한히 분투 노력하여 그의 복과 덕이 쌓이고 쌓여, 그가 목표한 극락세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서원 가운데서 주요한 것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1.  나라 안에는 온갖 고통과 비참한 일이  아주 없을 것。3. 나라 사람들은 모두 얼굴이나 몸이  같게  것。5.  나라 사람들은 모두 육신통이 있을 것。15.  나라 사람들은 모두 끝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을 가질 것。18. 어느 세계의 어떤 중생이나  이름(아미타불)  번만 염하면  나라에 태어날수 있을 것。33. 시방 세계의 어떤 중생이나 모두 그의 빛을 쏘이면  몸과 마음이 함께 아름답게   등등。<무량수경> 나오는 .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깨달음을 여는 .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삼승(三乘) ; 3가지  . 3가지 길을 걷는 . 깨달음에 이르는 3가지 실천법. 산스크리트어 tri-yāna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르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중생 각각의 능력·소질에 맞게,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 3가지 능력에 맞도록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는 가르침을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보살승(菩薩乘)으로  것에 비유한 .


「법화경」에 나오는 말로 윤회가 거듭되는 육도(六道) 벗어나기 위해, 삼승에 의해 부처님의 세계에 이른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나 부처님을 지향하는 일승(一乘) 중점을 두고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 소승(小乘)이라 해서 격하하기도 하나, 「법화경」은  어느 것이나 역할과 의의를 인정하고 모든 것은 부처님의 자비로 구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일승(一乘)

*수기(授記) ; 부처가  제자들에게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의 결과로서 언제 어디서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함. 또는  교설(敎說).

*맹서(盟誓 맹세 /맹세할 ) ; '맹세(盟誓 임무나 약속을  실행하거나 목표를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함. 또는  다짐)' 원래 .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하다 ; 가사(袈裟), 장삼(長衫) 따위를 걸쳐 입다.

*장삼(長衫) ; 스님의 웃옷.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패스포드(passport) ; 여권. 여권케이스. 지갑.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10. 20. 11:48

 

 

§(219) 미묘 비구니 설화 / 고약한 맹세는 하는 것이 아님 / 대승계(大乘戒)는 마음의 계(戒) /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것이 요점.

‘저와 같은 이러헌 미천한 그런 여자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도를 닦을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참으로 발심(發心)을 해서 한다면 왜 못 닦겠느냐’


자기의 과거를 숙명통으로 비추어보니까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서’ 털끝만큼도 어기지 아니한 사실을 분명하게 봤다.


대승계는 '마음의 계(戒)'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어도 대승계는 이미 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이다』하는 것을 우리 대승법,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이라,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하는 좋은 시련이요. 나를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신심과 발심을 해서 도업을 성취하게 하는 불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19)—83년 11월 첫째일요법회(83.11.06)에서. (용219)

 

(1) 약 20분.

 

(2) 약 20분.


(1)------------------

〇미묘 비구니 설화.

부처님 당시에 미묘(微妙)라 하는 비구니(比丘尼)스님이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바라문(婆羅門)의 딸로 태어났어.
그 부친이 일국에 널리 이름이 날 만큼 인격이 높고 덕망이 있는 그러한 가정에 태어났는데, 그 미묘라 한 그 여성도 절세의 미인이었습니다.

그래 멀지 않는 곳에 또 한 바라문이 있어서 그 미묘라고 하는 그 여성이 그렇게 좋은 집안이요, 또 그렇게 인물이 아름답고 행실이 얌전하고 그러니까 거기서 며느리로 맞아 갔습니다.

그래서 좋은 신랑과 결혼을 해서 머지않아서 첫아들을 낳습니다. 첫아들을 나서 온 집안에 경사가 일어났는가 싶어서 그리 좋아했는데 시어머니가 병들어 돌아가시고 이어서 또 시아버지가 병들어서 돌아가셨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즐거운 뒤끝에는 흔히 그러한 또 슬픈 일이 뒤따르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 시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또 그러한 슬픈 뒤끝에 언제 생겼는지 또 두 번째 애기를 또 뱄습니다.
그때에 풍습으로 애기를 배면 친정(親庭)으로 돌아가서 해산(解産)을 하는—역시 지금 우리나라에도 해산할 때는 친정으로 가서 해산을 한다든지, 친정어머니가 적극적으로 돌봐 주신다든지 지금도 역시 그러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친정으로 가서 해산을 하기 위해서 남편과 의논을 해가지고 첫아들을 데리고 남편과 같이 친정으로 가는 길인데, 길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인자 가는데 갑자기 가다가 해산이 임박했었던지 배가 아프고 진통이 일어나서 할 수 없이 근처에 나무 밑에다가 자리를 펴고 거기에 누었습니다.

누워서 얼마 동안을 기다리니까 배가 아프다 가라앉다, 아프다 더하다 그러다가,
인자 해가 저물어도 애기는 아직 해산을 못하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서 남편은 저만큼 다른 나무 밑으로 가서 지쳐가지고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사 배가 몹시 아프더니 해산을 했습니다.

몸부림을 치면서 불러도 남편이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영 오지를 않고,
간신히 혼자 애를 낳아 놓고 그리고서 남편을 아무리 불러도 안 오니까, 금방 애를 낳아 놓고는 기어서 남편 있는 데로 가니까 남편이 새파랗게 질려가지고 꼼짝도 안한다 그말이여.

막 흔들어 봐도 영 움직이지 않아서 맥을 짚어보니까 이미 죽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나무 그늘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독사가 와서 물어가지고 그 독이 몸에 번져서 그래가지고 죽어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남편이 죽은 것을 보고, 그렇지 않아도 해산할 때에는 산모(産母)가 신경이 날카롭고 그런 것인데 남편이 죽은걸 보고 기절을 해버렸어.
기절을 해가지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새벽녘에 그 어린아이가, 그 장남이 막 우는 소리에 깨 보니까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을 갖다가 숲 밑에다가 그럭저럭 긁어 묻어 놓고는 장남은 걸리고, 금방 난 애기는 보자기에다 싸서 품에 안고서 친정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얼마를 걸어가니까 큰 강물을 만났다 그말이여.

그 강을 건너야겠는데, 그 서이 같이 건너갈 수는 없고 그래서 장남은 그 강둑에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일러놓고는,
갓난애기만 안고서 강을 건너가는데 굉장히 깊고도 넓어서 간신히 건너가 가지고, 애기를 그 강 건너 언덕에다가 가만히 뉘어놓고 다시 그 장남을 데리러 올라고 하니까,
장남이 그걸 참지를 못하고 엄마를 부르면서 저 혼자 강을 막 건너오다가 넘어져가지고 강물에 떠내려간다.

그래서 그 부인이 쫓아가니까 벌써 급류에 휩쓸려서 저 어디로 떠내려가서 찾지를 못하고 그래서 울면서 되돌아서 이쪽 건너 언덕 갓난애기 있는 데로 향하고 있는데,
그동안에 그 갓난애기, 그 핏덩어리 애기, 그 애기 냄새를 맡고 늑대란 놈이 와서 애기를 꿀떡 삼켜 버렸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걸 보고는 또 기절을 해버렸어.

기절을 했다가 다시 눈을 떠서, 다시 또 슬픔과 산후(産後)의 그 무거운 몸을 끌고서 울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친정을 가다가 어떠한 사람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자기 친정아버지의 친구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사연을 전부다 울면서 얘기를 하고서 친정 소식을 물으니,
아! 친정 부모와 동생들이 며칠 전에 자다가 화재가 일어나가지고 친정 부모도 타서 돌아가시고 동생들도 모다 타 죽었다 이말이여. 그 말을 듣고는 또 기절을 했어. 몇 번을 기절을 했어.

그래가지고는 눈을 떠 보니까—그 친정아버지의 친구가 업어다가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서 병구완을 해주어서, 눈을 떠보니까 그 댁에 누워있다 그말이여.

몇백 리를 걷고, 그 연거퍼 시부모 돌아가고, 남편 죽고, 큰아들 죽고, 금방 난 애기 죽고, 친정 부모·동생 다 죽고, 산후에 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받은 그 충격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면 아주 죽지 않고 살아난 것도 기적이라 할 수가 있지요.

그래 몇 달을 그렇게 친딸처럼 돌봐주어서 그래서 치료를 잘 받고 있는데, 마치 이웃집에 바라문이 있어가지고, 어떻게 그 미모(美貌)로 생겼던지 청혼이 들어와서 그래서 그분하고 또 두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해놓고 하루·이틀·사흘, 한 달, 두 달 있어보니까 흉악한 술주정뱅이여.
무슨 사업한다고 나가서는 잔뜩 술을 먹고 들어와서 그 주벽(酒癖)이 심해가지고 꺼떡하면 뚜드려 패고, 도저히 하루 이틀을 참다 참다, 한 달 두 달을 참다 못해서 거기서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해서 저 멀리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을 쳐가지고 인도에 그 베나레스(Benares)라고 하는 그 성밖에 나무 밑에 앉아서 거기다가 의지를 하고—뭐 친정도 집이 다 없어져 버리고, 시집도 없어져 버리고,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이여.

그래놓으니 인자 천상—그런 부잣집 딸로, 부잣집 며느리로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러한 부인이었었고 일세(一世)의 미인이었었지만, 그러한 연속적인 재난을 당하고 보니 갈 곳 없는 거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무 밑에 의지해서 얻어먹으면서 지내고 있는데, 날마다 근처 무덤에 와 가지고 그 무덤 앞에 절을 하고 가고, 무덤 앞에 와서 울면서 절을 하고 가고 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는 부잣집이요 좋은 사람인데, 상처(喪妻)를 해가지고 너무 아내가 그리우니까 날마다 그 아내의 무덤에 와 가지고 울고 가고 울고 가고 그랬는데,

그렇게 해서 몇 번 그 나무 밑에를 지나면서 그 미묘(微妙)라고 하는 여인의 얼굴과 서로 마주치고 마주치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며칠이 지나자 서로 이야기가 되어가지고 또 청혼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이 사람도 남편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픔으로 인해서 마음 붙일 곳이 없고, 또 그 미묘라는 여인도 친정과 시집과 온 가족이 다 비명횡사(非命橫死)를 해가지고 의지할 곳이 없고 피차 외로운 처지에 우리가 서로 같이 사는게 어떠냐 해가지고, 그냥 결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사랑을 하고 참 심덕(心德)이 좋고 얌전한 사람이었었는데, 아! 그 남편이 병이 들어가지고 시늠시늠하다가 백약이 무효로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남편이 죽으면 여자도 같이 무덤 속에 산 채로 들어가서 같이 죽는 그러한 인습이 있어서 이 미묘라는 여자는 그 남자와 같이 생매장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자 무덤 속에 들어가서 그 며칠간 먹을 양식과 음식과 그 촛불 같은 것을 켜서, 인자 그 불도 꺼지고 먹을 것도 떨어지고 하면 그 안에서 그냥 죽는 거죠.

그래서 인자 그 안에서 얼마를 울면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 밤중에 텅텅 무덤을 누가 파 들어오는데, 아! 자기를 꺼내서 데리고 간 뒤에, 가서 보니까 흉악한 도둑놈들이여.
도둑놈이 ‘예쁜 여자가 생매장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서, 그 무덤을 파가지고 여자를 데려다 제 마누라를 삼았어.

도둑놈 계집이 되었으니 죽은 것보단 나을란가 모르겠으나, 그래도 죽지 못해서 도둑놈을 남편으로 그렇게 살고 있는데, 아! 그 얼마 안 되어가지고 그 도둑놈이 무슨 죄 있는 것이 들통이 나가지고 체포가 되어서 살인강도질을 했든가 그 교수형에 처해가지고 세 번째 남편을 잃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우리의 주변에 말로 다 못할 기구한 그러한 참 처참한 환경을 당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아무리 많다 해도 이 '미묘'라고 하는 이 사람만큼 그렇게 처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소설에도 그렇게 비참한 사람은 구경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〇미묘 비구니의 출가, 정진.

그래가지고 거기서 비탄에 빠져가지고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이여.
그러다 어디서 말을 들으니까 기원정사(祇園精舍)라 하는 곳에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하는 성현이 계시는데 그분은 전생 일도 환히 알고, 내생 일도 훤히 알고 하는 그러한 성현이 계신다하는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자살할 수도 없고, 모진 것이 목숨이라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네 번째 남편을 또 얻을 수도 없는 것이고, 얻어봤자 또 팔자가 빤 할 것 같고,
그래서 그 석가모니라고 하는 부처님한테 가서 대관절 내 팔자나 한번 물어보고 죽어야겠다, 그래가지고는 거기를 갔어.

그 기원정사를 찾아가서 멀찌감치 서서 이래보니까,
막 춘삼월에 꽃이 활짝 핀 것처럼 환하고, 하늘에 그 많은 별 속에 둥근달이 떠있는 것처럼 그렇게 먼데서 봐도 그렇게 위엄스럽고 거룩하고 환한 그런 어른이 계신데, 바로 저 어른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러거든.

그러나 감히 자기와 같은 그런 비참한 여인이 찾아가서 뵈올 수는 없고 머뭇머뭇하고 있으니까,
그 부처님이 떠벅 떠벅 자기 가까이로 걸어오셔서 ‘어디서 왔느냐? 이리오라’해 가지고는, 그 지난 모든 사연을 두루 다 들으시고—그거 다 말씀을 여쭙고서,

‘저와 같은 이러헌 미천한 그런 여자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도를 닦을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참으로 발심(發心)을 해서 한다면 왜 못 닦겠느냐’

그래가지고 고타미 비구니를 시켜서 머리를 깎이고 계(戒)를 설해서 그래서 비구니가 되게 하셨습니다.(5분54초~25분18초)




(2)------------------

 

비구니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열심히 도를 닦았던지,
인자는 누가 잘했다 못했다 그런 말도, 자기한테 잘하네 못하네 그런 시비도 자기한테는 귀에 들리지도 않고, 누가 다른 사람이 잘하고 못하고 한 것도 그런 것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대중과 같이 탁발(托鉢)을 할 때는 따라가서 탁발을 하고, 밥을 먹을 때는 같이 먹고, 소지(掃地)할 때는 같이 소지를 하고, 그저 눈을 뜨나 감으나 앉으나 서나 부처님께서 지도하신 고대로 도를 닦아 가는데 세월가는 줄을 몰라.
비가 오는지, 해가 뜨는지 지는지, 도대체 그 여러 대중 속에 살아도 대중이 하나도 눈에 보이지를 안하는 거여.

지금도 누구를 막론하고 참선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 돼.

앞으로 음력 10월 보름이 되면 또 겨울 결제가 시작이 되지만, 보살님네가 5~60명 내지 70명 방부(房付)를 들여도 그렇게 철저히 도를 닦아야 무엇이 뚫리던지 뚫리지,

밥이 되니 지니, 반찬이 짜니 싱거우니, 네 떡이 크고 내 떡이 작으니, 왜 너만 먹고 나는 안 주느니, 방이 더웁다 차웁다, 너는 왜 저만큼 안 앉고 내 바짝 옆에 왔느냐, 너는 왜 저기 안 앉고 여기 왔느냐, 여기가 내 자리다 네 자리다,

사사건건이 시비(是非)를 하고 그래가지고 무슨 참선을 할 것이냐. 남의 흉보느라고 언제 참선을 하냐 그말이여.

참선한다고 선방에 와 가지고 자기 집안 망신하고, 자기집에서는 절로 참선한다고 의기양양하게 와 가지고 하는 짓이 똥싸고 뭉개는 그러한 참선을 해가지고 무슨 도를 통할 것이냐.

그렇게 무섭게 도를 닦아 가지고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어.
확철대오를 해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는데, 겸해서 숙명통(宿命通)까지 툭 뚫어졌는데,
자기의 과거를 터억 숙명통으로 비추어보니까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참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서’ 털끝만큼도 어기지 아니한 사실을 분명하게 봤다 그말이여.




〇미묘 비구니의 전생(前生).

전생(前生)에 어느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부인도 얌전하고 가정도 넉넉하고 한데 아들을 못 낳아서 할 수 없이 작은 마누라를 얻어가지고, 아들을 보기 위해서 작은 마누라를 얻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작은 마누라는 별로 양갓집 규수가 아니고, 천한 집 딸을 작은 마누라로 데려 왔는데 얼굴은 참 기가 막히게 예뻤다 그말이여.
속담에 재취(再娶)나 작은 마누라한테 미치지 아니한 남자는 ‘배안에 병신’이라고 그런 말도 있는데,
아들 낳는 것이 목적이어서 작은 마누라를 얻었건만, 얻어가지고 살아보니까 큰 마누라보다 훨씬 정이 그리 쏠린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머지않아서 포태를 해가지고 애를 낳는데, 마치 다행히 옥동자(玉童子)를 낳다 그말이여.
그렇지 않아도 예뻐서 죽겠는데 아들까지 낳았으니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니까 큰 마누라는 그저 든든하게 저만큼 놔두고 그저 점잖하게만 상대하고, 밤낮으로 작은 마누라한테 아주 퐁 빠졌어.

그러다가 아들까지 낳으니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야단이고, 이웃집에서도 모다 야단이고 그런데, 그 사람마다 다 잘했다고 그러는데, 한 사람이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이 슬프고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말이여.
물어볼 것도 없이 그게 큰 마누라여.

가만히 생각해보니 겉으로는 좋아한 척 하지마는 속으로는 기가 막히다.
이 재산도 저놈이 크면은 저놈 앞으로 다 갈 것이고, 저놈이 크면은 자기 생모(生母)만 알지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남편도 작은 마누라와 자식만 좋아하지 나는 벌써 인자 저 무용지물로 취급을 하고,
지금도 그러거든 나중에 10년 20년 뒤에 가서 생각해보면 빤하다 그말이여.

그러니 저것을 ‘어쨌던지 크기 전에 저것을 없애야겠다.’ 아! 이러한 못된 생각을 냈어.
그래가지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한 끝에 그 애기 정수리에다가 바늘을 갖다가 꽂아 넣었어.

그래놓으니 겉으로는 감쪽같은데 애가 울고 보채고, 젖도 안 먹고, 업어줘도 소용없고, 달래도 소용없고, 별짓을 해도 소용이 없어.
의사한테 별별 약을 갖다 먹여도 소용없고 열흘이 못되어서 그 애기는 결국은 죽어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애기 엄마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고 그렇게 울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달덩어리 같은 어린아이가 왜 죽었을까? 생각해보니 알 수가 없어.
그런데 마음이 짚이는 데가 있는데, ‘틀림없이 이것은 큰엄마가 이것을 죽였지 않는가?’하는 의심이 단통 고리 간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애기는 당신이 죽인 거 아니요?’하고 물어보니까,
펄쩍 뛰면서 ‘자네가 그 애기를 낳지마는 그것이 바로 내 자식인데 내가 왜 죽일 리가 있겠느냐’고.

‘그러면 이 애기가 어째서 갑자기 그렇게 병이 나서 죽을 리가 있느냐?’
‘왜 내가 죽이냐? 내가 만약에 이 애기를 죽였다면, 내생(來生)에 내가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을 것이요, 자식은 물에 빠져 죽거나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것이요, 친정 부모와 동생은 불에 타서 죽을 것이요. 나는 생매장을 당할 것이요,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내가 맹세를 해도 나를 못 믿겠느냐?’
어떻게 그런 입에도 못 담을 무서운 맹세를 하고 펄쩍 뛰던지, ‘과연 큰 마누라가 죽이지는 안 했는가 보다’하고 그냥 비통하기만 하고, 큰 마누라에 대한 의심은 그런대로 그냥 일단락이 되었는데,

바로 작은 마누라한테서 난 애기 머리에다 바늘을 꽂고 그 무서운 맹세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그 미묘(微妙)라고 하는 비구니였더라 그말이여.

그러니 그 비구니는 아무도 모르는 병을 혼자만 앓고 백방으로 약을 먹어도 안 낫는 병이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서 평생 동안 아라한과를 증득했어도 그 안 낫는 병이 있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여기가 아파! 여기가 득신득신 득신득신 정수리가 아파가지고 아무리 약을 먹어도 안 낫는 거여, 일평생 동안을.

그게 전생에 그 애기 머리빡에다가 바늘을 꽂은 그 과보로 평생 동안을 머리 아픈 병을 면(免)치를 못했다 그거여.

소설에나 옛날 얘기에 가끔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와의 사이, 그 본마누라한테서 난 애기를 재취가 괄세하는 팥쥐 콩쥐 그런 얘기 참 많지만,
참 이러한 경전에 있는 말씀으로써 가만히 이 설화를 듣고 여러분도 생각해 보시면 인과(因果)의 법칙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그 인과는—이 여자가 지은 죄는 바늘로 애기를 하나 죽인 것 뿐인데, 그리고서 맹세를 하기를 그렇게 고약한 맹세를 했다 그말이여. 자기가 자기의 혐의를 갖다가 엄폐(掩蔽)하기 위해서 그렇게 무서운 맹세를 했어.
그 맹세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꺼떡하면 그 맹세를 잘 하지요.
내가 뭐 모래에다 혀를 박고 죽어도 어쩌고 저쩌고 하고, 무슨 내가 당장 바가지를 차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네 돈은 안 쓰겠다는 둥—무슨 입에 못 담을 그런 독한 고약한 맹세를 하는데, 그거 하는 것 아닙니다.

설사 그러헌 죄가 없을 경우라도 그런 맹세를 하는 게 아니에요. 한번 그 입에 그런 고약한 말을 하면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러한 고약한 맹세, 자기의 그 혐의(嫌疑)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고약한 맹세는 하는 법이 아닙니다. 그 입으로 맹세한 그것이 고대로 다 받아졌다 그말이여.
죽였기 때문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죽이지 안했다 하더라도 그런 맹세를 하면 그 맹세한 그 과보로 그것이 그와 비슷한 과보를 또 받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행동으로도 죄를 안 지어야 하고, 입으로도 그러한 고약한 말은 혀나 입에 건너지를 말아야 하고, 생각으로도 그런 고약한 생각은 해서는 아니 된 거다.

몸으로 짓는 죄, 입으로 짓는 죄, 마음으로 짓는 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은 다 마찬가지여.
마찬가지인데 제일 우리가 소홀히 취급한 것이 '마음으로 지은 죄'다 그말이여.

‘행동으로만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하지만 행동으로 안 해도 마음으로 이미 살생(殺生)을 할 생각을 먹으면 이미 살생죄를 범(犯)한 거여.
마음으로 ‘저것을 내가 훔쳐야겠다’하면 벌써 도둑질을 범한 것이고, 저 사람을 내가 한번 기어코 가까이 해야겠다하는 그런 음심(淫心)을 품으면 벌써 음행(淫行)을 범한 것이다 그말이여.

이건 대승계(大乘戒)에 있어서는 대승계는 '마음의 계(戒)'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지어도 대승계는 이미 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무서운 것은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도 '마음으로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이다』하는 것을 우리 대승법,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그것을 깊이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먼저—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마음에서 먼저 일어나가지고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마침내는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중대하거든.
성냥불은 성냥개비 하나지만 그놈하나 탁! 쳐댐으로 해서 큰 집도 태울 수 있고, 큰 공장도 태울 수도 있고, 한 도시도 태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마음으로 『‘한 생각’ 탁! 일어난 것』이 결국은 바늘로 찌르게 되고, 바늘로 찌른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그 무서운 여러 가지 맹세를 입으로 했기 때문에 그러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그 마음에 ‘한 생각’ 탁! 먹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그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는 데에 요점을 두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 가기 전에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이 탁! 일어나도 그 미워하는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이렇게 해서 그 미워하는 생각이나, 또는 사랑하는 생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바로 단속을 해서 화두(話頭)를 들도록 이렇게 습관을 들여 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뭣고?’해도 한번 속에서 부애가 나면은 아무리 ‘이뭣고? 이뭣고?’해도 속에서 뽀글뽀글 화가 치밀어 오르지요.
그러지만 자꾸 하면은—심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후우~하고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2번 3번하면 그 치밀었던 화가 스르르 가라앉게 되거든.

그렇게 해서 노여움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미운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억울한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슬픈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고, 기쁜 생각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면,
그것이 세월이 흘러가면, 탁! ‘이~’ 하면 벌써 터억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면서 자취 없이 그 미웁고 노여운 생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처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해서 힘을 얻은 사람은 성도 낼라면 내고 안 낼라면 안 내고, 통곡을 하고 슬퍼할라면 하고 또 슬퍼 안 할라면 안 하고, 맘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받는 모든 업(業)이 전부가 다 우리 자신이 전생에 지어서 받는 일이라,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달음의 경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어려운 일은 우리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하는 좋은 시련이요.
나를 미워하고 해코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신심과 발심을 해서 도업을 성취하게 하는 불보살의 화현(化現)으로 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은 ‘한 생각’ 돌이켜서 한걸음에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의 길인 것입니다.(5분54초~44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비구니(比丘尼) ; 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具足戒)인 348계(戒)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스님. 팔리어 bhikkuni  걸사녀(乞士女)라고도 한다.
*바라문(婆羅門) ; 산스크리트어 brāhmaṇa의 음역어.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카스트(caste 네 가지[四種姓]로 분류되는 세습적 신분 계급 제도) 제도의 최상위 계급인 사제(司祭) 계급을 일컫는다.
베다(Veda 바라문교 근본 경전)를 교육하고 사원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제식(祭式)을 관장했다.
*서이 ; ‘셋’의 사투리.
*병구완(病구완) ; 병을 앓는 사람을 돌보아 줌.
*주벽(酒癖 술 주,버릇 벽) ; 술 마신 뒤에 나타나는 버릇.
*야반도주(夜半逃走) ; 남의 눈을 피하여 밤사이에 도망함.
*베나레스(Benares) ;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위치한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다. 바라나시(Varanasi) 또는 카시(Kashi)라고도 한다.
이 바라나시의 북방 약 10km에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과 함께 고행했던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초전법륜 初轉法輪)을 한 녹야원(鹿野園 사르나트)이 있다.
*사고무친척(四顧無親戚) ; 주위에 의지할 만한 친척이나 사람이 전혀 없음.
*시늠시늠 ; 시름시름(병세가 더 나빠지지도 않고 좋아지지도 않으며 오래 계속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범] Sakyamuni 한문으로는 음대로 써서 석가모니(釋迦牟尼) 또는 석가문(釋迦文)이라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라 한다。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능유(能儒)라 한다.
Sakya는 종족(種族)의 이름이고, muni는 존칭이니, 곧 「석가 종족에서 나신 거룩한 어른」이란 뜻이다.

서력 기원전 565년(<중성점기衆聖點記>를 표준한 연대)에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vastu) 성주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 나시었다。난 지 칠 일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摩耶夫人)을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波闍波提)에게 자랐다.
어릴 때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Gautama;Gotama) 혹은 실달다(悉達多 Siddhartha)라 하였다。어려서 온갖 학문과 무예를 고루 배워서 정통하고, 17살에 선각왕(善覺王)의 딸 야수다라(耶輸陀羅)와 결혼하여 한 아들을 두었다.
그 나라의 제도에 종교와 학문을 차지한 바라문족과, 정치와 군사를 차지한 왕족과,그 다음으로 평민과 노예족의 네 가지 계급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개혁할 뜻을 늘 품고 있었다.
하루는 농부들이 밭 가는 것을 보고, 똑 같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불볕에 죽도록 일하고, 어떤 이는 놀기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과,사람이 동물을 학대하는 참혹한 일을 아프게 생각하여, 모든 것이 평등하고 싸움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국가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다시 인간에는 살아가고 늙고 병들고 죽는 큰 고통이 있음을 느껴, 누구나 다같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할 도리를 찾고 있었다。그리고 우주의 온갖 것에 대하여 생각하여 갈수록 의문 아님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드디어 19에 왕궁을 뛰쳐나와 산중으로 갔다。처음 6년 동안은 바라문 교도들이 하는 대로 심한 고행(苦行)을 하다가,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몸을 보살펴 가면서 마음을 닦아 설흔 살에 비로소 우주의 진리를 크게 깨쳐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
그 뒤 49년 동안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면서 묘한 법을 가르쳐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시고, 여든 살(기원전 486년)에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2)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재취(再娶) ; 아내를 여의었거나 이혼한 사람이 다시 결혼하여 맞아들인 두 번째 아내.
*옥동자(玉童子) ; 옥(玉)같이 잘생긴 사내아이란 뜻으로 어린 사내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
*단통 ; 그 자리에서 대번에 곧장.
*엄폐(掩蔽 가릴 엄,가릴 폐) ; 보이지 않도록 가리어 숨김.
*삼업(三業) : trini karmani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淫) 3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기어(綺語)·양설(兩舌)·악구(惡口) 4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진심(瞋心)·치심(痴心)의 3가지가 있다。이것이 삼업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10. 5. 08:33

§(335) ‘토끼고기’로 인한 왕자비의 노여움 / 부부싸움 법규 / (게송)여군동보우동행~ / 바로 지금 이때를 여의고는 공부할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부에 있어서는 승속(僧俗)도, 남녀도, 빈부와 노소와 귀천도 없는 것이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선의의 경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나 지금, 앉았을 때는 바로 앉은 그 시각, 섰을 때는 서 있는 그 시각,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그 시각, 속이 상할 때는 속이 상한 바로 그 시각을 여의고 따로 내가 도를 닦아서 깨달을 시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언제 어느 시각에 터질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간절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해 나갈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경계(境界)에 휩싸여서 있다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한 상태에서 보다가 터지고, 듣다가 터지고, 앉다가 터지고, 넘어지다 터지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5)-87년 7월 첫째일요법회(87.07.05)에서. (용335)

 

(1) 약 20분.

 

(2) 약 21분.


(1)------------------

옛날에 대단히 성미가 급한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자기 비위에 조금만 틀린 소리만 해도 당장 엄벌을 내리고 귀양을 보내고 때로는 죽이기도 하고 추방도 하고 그랬습니다.
신하나 백성이나 그 앞에만 가면은 벌벌벌 떠느라고 말을 못했습니다. 무슨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은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되고.

하루는 그 왕자가 있었는데, 왕자가 무슨 왕의 비위를 건드려 가지고 사소한 일에 불같은 호령을 내리고 당장 그 왕자 내외를 국외로 추방을 했습니다.
잡아 죽여 버릴려고 하는 것을 대신들이 말려 가지고 간청을 해서 간신히 국외로 추방을 했습니다.

국외로 추방된 왕자 내외는—추방하면서 그 왕비가 금은 보물을 얼마 정도 그 임금님 몰래 좀 싸 주어 가지고 그놈을 가지고 저 국외로 추방을 당해 갔는데, 처음에는 가지고 간 그 금패물을 조금씩 팔아 가지고 먹고살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상 살 수가 없어서, 인가가 없는 산중에 들어가서 거기 그렇게 숨어서 아주 검박하게 겨우겨우—그래 추방된 왕자가 사치스럽게 살 수도 없는 것이고,
그래 인자 검박하게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렇게 살다 보니 1달·2달이 가고 1년·이태가 가서, 가지고 간 것도 한도가 있어서 다 양식도 떨어져 버리고 금패물도 다 떨어져 버리고,

그래서 할 수 없이 사냥을 해 가지고 토끼도 잡고, 노루도 잡고, 새도 잡고 그저 그렇게 먹고사는데,
하루는 간신히 토끼 한 마리밖에는 잡히지를 않아서 그래서 토끼를 갖다가 가죽을 벗겨 가지고 솥에다 넣어서 끓이는데, 어떻게 물은 조금 붓고 불을 너무 과열로 땠던지 물은 다 달아져 버렸는데 탄내가 나서 소댕을 열어보니까 고기는 반도 안 익었다 그말이여.

반도 안 익고 물은 떨어져 버려서 그래서 그 왕자비(王子妃) 보고 ‘저 개천에 가서 물을 좀 떠오라’고.
그래서 물을 뜨러 갔는데 암만 기달려도 안 와. 안 오니까 배는 고프고 그러니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냥 반도 안 익은 고기를 먹어버렸습니다.
조금 다 익었나, 안 익었나 맛본다는 것이 한 점 띠어먹고 두 번 띠어먹고 하다 본 것이 차츰차츰 배는 고프고 하니까는 피는 조금 덜 익었지만은 그냥 다 먹어버렸어.

그래서 아내가 그 물을 떠 가지고 와서 소댕을 열고 물을 부을려고 하니까 고기가 없어졌습니다.
‘아이! 고기가 어떻게 되었냐? 고기가 없다!’고 그러니까,
‘아! 고기가 그놈이 내가 열어 보니까 훌떡 솥 밖으로 뛰어나오더니 막 뛰어 가지고 저 산으로 도망가 버렸다’고. ‘잡을려고 쫓아갔지만은 어떻게 이놈이 빨리 도망가던지 놓쳐 버렸다’고 그러니까,

‘가죽을 벗겨서 불을 때 가지고 반쯤 익은 놈의 고기가 어떻게 도망가야?’
‘참! 나도 알 수가 없다’고 왕자가 시치미를 뚝 뗐습니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논다'고.

그래 아내가 그 왕자를 떠억 보니까 이상하다 그말이여.
사람이 시치미를 아무리 뗀다 해도 거짓말을 어지간히 해야지, 당치도 않는 거짓말을 하면 약간 눈가시라든지 코가 약간 벌심거린다든지 그 눈치를 보면 알 수가 있거든.

그래서 그때부터서 그 왕자비가 매우 괘씸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쫓겨나 가지고, 자기 때문에 상감한테 미움을 사 가지고 나까지 이렇게 산중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토끼고기를 잡아서 삶았으면 익거나 안 익거나 같이 먹을 일이지, 물 떠오라고 보내 놓고 저만 혼자 먹어.

괘씸하게 생각을 하니까 그 동안에 지내온 모든 일들이 새록새록 괘씸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그때부터서 ‘이런 작자를 내가 믿고 살 수가 없구나.’
그래 가지고는 그때부터서 웃지도 아니하고, 여간해서 말도 아니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걸 버리고 일반 사람처럼 백성들처럼 싫다고 도망가 가지고 개가(改嫁)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냥 같이는 살되 아무 재미가 없어.

그 동안에는 ‘이렇게 고생을 하고 살다 보면 그 임금이 언젠가는 노여움을 풀면은 다시 자기네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이리라’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는데,
‘이러한 괘씸한 인간이라!’하고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멸시를 하니까 도저히 사람이 사람같지 않고,

‘저런 것이 나중에 임금이 되어봤자 무슨 나라를 바로 다스릴 것인가?’ ‘이러한 인간을 믿고 어떻게 내가 그 밑에서 왕비 노릇을 하며, 어떻게 정사(政事)를 할 것인가?’
이것저것 생각하니까 생각할수록 왕의 자격이 없어 보이고, 저런 것 사람답지 않게 보이니까 도저히 얘기할 재미도 없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살맛이 전혀 없어졌다.

속에 확! 괘씸한 생각이 뭉쳐 가지고 도저히 풀 길이 없어. 그러한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낸 것이 몇 해를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니까 고생도 막심한데다가, 의식주 문제가 전부가 막심한데다가, 마음까지 그렇게 괘씸한 생각으로 꽉 뭉쳐가지고 그 남편이라고 하는 것이 천하에 몹쓸 놈으로 보이니까 도저히 희망이 없어.
그래도 하루하루 지낸 것이 한 해·두 해가 가고 5년·10년이 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왕이 승하(昇遐)하자 대신들이 용케 찾아 가지고 그 왕자를 모셔 갔습니다.
가 가지고 새 왕으로 모셨는데, 그래 가지고 이 왕자가 새 왕이 되어 가지고, 좋은 옷에다가 머리에 목에 팔에 그 칠보로 장엄을 해서 왕비를 위해서 다 해 주었습니다.

10여 년간을 산중에서 자기의 잘못으로 해서 고생한 그 죄과(罪過)를 보상하는 뜻으로,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사치와 호강과 영화를 갖다가 다 시켜 줄라고 마음을 먹고 물심양면으로 다해 주는데, 왕비는 조금도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산중에서 그렇게 한 그 노여움이 왕비가 되어 가지고서도 풀어지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왕이 ‘대관절 무엇 때문에 그러요? 어디가 아픈 데가 있소? 무슨 근심있소?’
‘아니요. 아무 아픈 데가 없어요’
‘무슨 걱정이 있소?’
‘아무 걱정이 없어요’

’그러면 어째서 그러요. 나는 나의 모든 정성과 사랑을 다해서 당신을 잘해 주고 싶고, 호강을 시켜주고 싶고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이렇게 성의를 다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그럴 수가 있소’하니까,
‘당신은 저 산중의 움막에서 우리가 고생하고 살 때에, 그때 내가 개천으로 물을 뜨러 갔을 때에 그 반쯤 익은 토끼가 솥 밖으로 뛰어나와 가지고 도망쳐 버린 일을 잊어 버렸습니까?’
그렇게 물으니까 왕이 깜짝 놀랬습니다. 입이 딱 붙어 버렸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변명 할 수도 없고, 그것에 대해서 벌써 20년이 되었는데 오늘날에 와서 그것을 사과할 수도 없고,
자기는 그때 잠깐 장난끼로 그런 것뿐인데 그 한 사실을 20년간이나 마음속에 간직을 하고 그 노여움을 풀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왜 산승(山僧)이 오늘 이러한 동화같은 설화를 말씀을 드리냐 하면, ‘여자의 그 원한심은 오뉴월에 서리가 친다’ 그러한 속담도 있습니다.

사소한 한 생각으로 해서 그 왕비의 부귀영화도 기쁘지를 않고, 왕을 갖다가 인격적으로 멸시하고, 자기의 왕비로서의 모든 영화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국모로써의 모든 것도 아무 이 부귀영화가 마음에 와서 닿지를 않아.
생각 생각이 토끼가 산으로 도망한 것만을 염두에다 두고 일평생을 남편을 원망하면서 미워하면서 그렇게 살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든지,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 원한을 산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일이고,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한마디 한 것이 상대방에서는 대단히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 간에는 500생 내지 1000생의 과거에 숙세의 인연으로 부부 간이 되고 그러는데 그래서 만났는데, 순 남남끼리 만나가지고 일심동체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한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고 그렇게 해서 가정을 이뤄 나가고 그 가정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그 가정이 모여서 국가가 되고, 그 가정이 모여서 또 세계가 됩니다.

그런데 촌수(寸數)가 부모 자식 간에도 1촌 간(間)인데, 부부 간에는 무촌(無寸)입니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데 한 생각 어긋나면 완전히 원수가 되고마는 것입니다.
다정할수록에 자주 다투게 되고, 그렇게 사랑하고 잠시도 떨어져서는 못 살만큼 그렇게 애정이 두터워서 결혼을 했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참 많이 싸우는 수가 있습니다.

부부 간에 한번도 싸우지도 않했다면 그것은 아마 사람 탈을 타고났으면서도 사람이 아니라 천상에서 잠시 인간 세상에 유희(遊戱)를 하러 나왔거나, 그렇지 않으면 참 그건 상상이 미치지 못할 그러헌 사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부 간에 크고 작고 간에 참 싸우지 않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싸우면서 자식을 낳아서 기르고 살림도 해야 하고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또 참선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싸우면서도 참선을 잘하고, 싸우면서도 가정의 화목을 유지해 나가고, 일생동안 같이 살면서도 질리지 아니하고 또 항상 새롭고, 잘 살 수가 있느냐?
싸움을 하되 속전속결(速戰速決), 병아리 싸움하듯이 후닥닥 싸우고 금방 화해를 해 버리는 그런 속전속결하는 싸움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싸움을 하되 과거 일을 들춰내지 말아라.
싸움을 하면은 지나간 일을 들춰내 가지고 ‘무슨 소리를 하면 상대방이 오장(五臟)이 뒤집어질까?’ 그것을 용케도 연구를 해 두었다가 싸울 때면 그놈을 끄집어 내 가지고 박박 긁어대거든. 그래서 과거를 들춰내지 말아라.

또 상대방의 약점을 갖다가 들춰내지 말아라.
친정 문제라든지 또는 과거의 문제라든지 그 사람의 약점을 용케 찾아내 가지고는 일침을 가해 가지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만든다 그말이여. 이러한 일은 대단히 졸렬하고 비열한 전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싸움을 하되 그러한 과거를 들춰내고 또 상대방의 약점을 갖다가 쑤셔서 그래 가지고 헌 싸움은 이것은 신사도에 어긋나는 것이여. 페어 플레이(fair play)가 되지를 못합니다.
싸움하고 나서도 자기 자신이 부끄러운 일이고 인격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존경받지를 못합니다.

배가 고파서, 아내가 물을 뜨러 간 사이에 토끼고기를 먹은 것은 그 애교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아! 익지도 않은 것을 자셨구료’ ‘아, 조금만 참았다가 잘 끓여서 자시면 할텐데 그 익지도 않은 것을 그걸 잡숫느라고 애썼구료’하면서 웃어 버렸으면 그것으로 말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속에다가 콱! 넣어 두고서 상대방을 갖다가 괘씸하게 생각하고, 고생을 하면서 그 괘씸한 생각으로 여러 해를 지낼 때 얼마나 마음속으로 괴로웠겠느냐? 그말이여.

또 귀양이 풀려서 다시 왕이 되고 왕비가 되어 가지고서도 그 노여움을 풀지를 못했다니 세상에 그럴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그 토끼고기 한 마리 먹어 버렸다고 해서도 10년, 20년을 원한을 품고 괘씸하게 생각하고 노여움을 풀지 안허거든,
하물며 상대방의 약점 또는 과거를 들춰내 가지고 아무리 부애가 난다고 그러한 식으로 싸움을 해서는 참 그것은 용서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14분3초~34분4초)

 

 



(2)------------------

남자가 아내에 대해서 해도 그렇고, 아내가 남자의 과거를 들춰내고 허물을 들춰낸다 하더라도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속이 상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한번 싸워 보는 것이 그것 참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계속 공격을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갖고 한바탕 신나게 싸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싸울려고 마음을 먹은다면, 아무리 주먹을 쥐고 이를 갈아붙인다 해도 싸움이 안 되지 아니 할까? 이리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는 싸움을 하지 말아라.
부부싸움이라는 게 둘이 싸워야 그것이 재미가 있는 것이지, 이웃 사람이 그 싸움 구경을 해도 창피한 일이고,
아무리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라 하더라도 자식 앞에서 싸우는 것은 차라리 이웃 사람이 보는 앞에서 싸우는 것보다도 더 챙피하지 않을까? 이리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람은 싸움 구경을 하고 가서 모두 흉을 보고, 안 보는데 가서 싸움하는 얘기를 하면서 웃고 그러고 말겠지만, 자식이 부모 싸우는 것을 보고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 앞에서는 싸움을 하지를 말아라.

또 애가 아직 돌이 안 지나갔건, 돌이 지나서 1살·2살·서너 살이 되었건, 그렇더라도 잠이 들었을 때라도 그 애기 있는 데서는 싸우지를 말아라.
잠은 들어서 의식은 잠을 자고 있지만, 잠재의식(潛在意識)은 고대로 다 싸우는 것을 다 듣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보면 귀로 통해서 듣고 눈을 통해서 의식을 하겠지만,
잠이 들었을 때에는 눈도 감고 귀로는 잘 못 알아듣지만, 잠재의식은 우리의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은 고대로 다 듣고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고 잠재의식 속에 다 녹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존경하지 않게 되고, 그 입은 마음의 상처가 일생동안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 앞에서는 눈을 뜨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거나 싸우지를 말고,

이러한 몇 가지의 규칙을 ‘부부싸움 법규’라 제목을 딱 써 놓고 방금 말씀드린 조항을 적어 놓고서, 싸움을 할 때에는 둘이 서로 그 조항을 한번 낭독을 하고 그리고서 한바탕 싸우도록 한다면 대단히 좋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남편의 한 말, 아내가 한 말 한마디를 그렇게 깊이 새겨 가지고 두고두고 일생동안 괘씸하게 생각하고 일생동안을 울거 먹는 그러한 무서운 그 결심과 기억력을 참선하는 데에 이용을 한다면 참선은 그 길 성공을 하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대분심(大憤心), 대신심(大信心), 대의단(大疑團).

대신심(大信心), ‘내가 부처다.’
나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원래 부처라고 하는 깊은 믿음, 본래 내가 부처이기 때문에 새로 부처를 이룰 것이 없어.
다맛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疑團)만 타파(打破)해 버리면 자기의 불성(佛性)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마음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여.
바로 자기가 부처고, 말하고·옷 입고·밥 먹고·울고·웃고·성내고·근심·걱정하는 바로 이놈을 여의지 않고 바로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는 도리를 믿어야 하고.

왜 과거에 모든 불보살과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무엇을 하느라고 이렇게 캄캄해 가지고 있는가? 도저히 그 분심이 속에서 부터서 끓어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무서운 그 집념, 훨씬 여성이 남성보다도 더 독하고 모질다고 하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 남자들은 도저히 그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고생을 이기지 못할 그런 처지에서도 여성들은 다 그것을 참고 견디고 이겨낸 것입니다.
'남자는 뭐 사흘만 굶어도 죽고 여자는 석달을 굶어도 안 죽는다'는 말도 있습니다만은 그건 왜 그러냐?

자식을 위하는 생각, 남편을 위하는 생각, 그런 무서운 집념이 콱 쩔어 있기 때문에 도저히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나 부모나 남편이나 재산에 대한 애착도 훨씬 여성이 더 강합니다.

그러한 무서운—쇠심줄보다도 더 강인한—그러한 결심을 가지고 참선하는데 동원을 한다면, 남자보다도 훨씬 더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본래 남성·여성의 그 성품 자리에 있어서는, 불성(佛性) 자리에 있어서는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고 남녀의 구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본래부터 남성이 따로 있고 여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업(業)에 따라서 여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나오면 여자고 또 다음 생에 남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나오면 남자이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장부(丈夫)의 마음을 가지고 장부의 성격을 쓰고 장부의 행실을 하면은 내생에 장부가 되는 것이고, 여자의 성격을 쓰고 여자의 행위를 하면은 여자의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금생에는 남자가 되어 버렸고 여자가 되어 버렸으니 껍데기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나,
그 남녀가 구별이 없는 그 본성(本性) 자리에 있어서는, 자기가 여자라고 해서 뒷걸음질 칠 필요도 없고 자포자기 할 필요도 없고, 다 같이 부처님의 제자로써 정법(正法)을 믿는 최상승 학자로써 당당하게 선의(善意)의 경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공부에 있어서는 승속(僧俗)도, 남녀도, 빈부와 노소와 귀천도 없는 것이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선의의 경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과 남한도 언젠가는 선의의 경쟁을 해 가지고 모든 면에 있어서 우위를 가진 사람이 결국은 그이 쪽으로 통일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치적으로도 또 경제적으로도 모든 문화·예술·교육 일체 면에서 앞장서서 나아가면 그것이 바로 통일을 앞당기고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자분도 그러한 남성보다도 더 크고 무서운 그러한 집념(執念)을 갖다가 발심(發心)하고 도 닦는 데에 돌이킨다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용화사에는 거사님들이 공부할 수 있는 선원이 아직 마련되지 안해서 와서 정진하시는 분들이 없습니다마는 그런 선원이 열리게 된다면 거사님네 선방도 잘 되지 않을까 이리 생각을 합니다.

물론 직장을 가지고 계신 분은 와서 석달 동안을 정진을 하시기에는 어렵겠습니다만은,
이 보살님네들은 금년에도 7~80명, 해마다 100여 명을 넘어서 방부를 들이고 모두 정진을 하시고 그러는데, 다 가정의 일이 바쁘시고 모두 그런데도,

‘어떻게 하면은 금생에 이 불법을 만났을 때 다만 조금이라도, 어쨌든지 이 몸뚱이 받았을 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야겠다’하는 그 신심이 돈독(敦篤)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보살님네들이 와서 정진을 하시게 된다고 그렇게 믿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거사님네보단 보살님네들이 이 법을 믿고 공부하시는 면에서 앞장서 가고 계시지 않는가 이리 생각을 합니다.
내생에 몸을 바꿔서 남자로 태어나시면 그러한 보살님네들은 금방 출가해서 큰스님이 되어 가지고 불법을 갖다가 재흥(再興)하는 그러한 역군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하고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하고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이여, 그대와 더불어 함께 걷고 함께 행하며,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로구나. 함께 일어나고 함께 앉고 같이 이렇게 지내오기를 세월이 길었다.
몇십 년, 몇백 년, 몇 억겁다생(億劫多生)을 그렇게 같이 걷고, 같이 행하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자고, 같이 이렇게 살아왔다 그말이여.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그렇게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항상 같이 해 왔다.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니라. 모름지기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생각하지를 말어라.

바로 여읠래야 여읠 수 없고, 앉았을 때는 같이 앉았고, 누울 때도 같이 눕고, 섰을 때도 같이 서고, 걸어갈 때도 같이 걸어가고, 일 할 때 같이 일하고, 1분 1초도 여읠래야 여읠 수 없는 그대를,
어디를 머리를 돌이켜서 생각을 해? 머리를 돌이켜서 찾으면 어디가 있을 거여?

오늘 정묘년 7월 첫째 일요일을 맞이해서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전강 조실스님의 그 감동적인 법문, ‘어묵동정(語黙動靜)을 여의고 일러라’한 공안(公案)과,
경허스님의 오도송(悟道頌)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라 한 구절에 대해서 그 전강 조실스님 소년시절에—20여세 된 그 아주 새파란 청년 시대에,
그 만공 대선사와 보월 선사와 그 기라성 같은 여러 구참납자(久參衲子)들 앞에서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을 그렇게, 참 멋들어지다고 할까? 상쾌하다고 할까? 참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영원히 우리가 도업을 성취할 때까지 잊지 못할 그런 감동적인 법문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위가 본격적으로 닥쳐올 것입니다. 여러 선방에 계신 스님네 또 가정에서 정진하시고 또 직장에 나가시는 여러 청신사·청신녀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이때, 바로 지금 이때를 여의고는 공부할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지금, 앉았을 때는 바로 앉은 그 시각, 섰을 때는 서 있는 그 시각,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그 시각, 속이 상할 때는 속이 상한 바로 그 시각을 여의고 따로 내가 도를 닦아서 깨달을 시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인(古人)은 장터에서 이 자식, 저 자식하고 싸우는 그 소리를 들은 그 찰나에 확철대오를 한 분도 있고,
복숭아꽃이 활짝 핀 바로 그것을 보고 깨달은 분도 있고,
빗자루로 뜰을 쓸다가 거기서 튀긴 돌멩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분도 있고,
물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여름에 발을 갖다가 이렇게 걷어올리다가 깨달은 분도 있고,
자다가 뚝! 목침(木枕)에서 머리빡이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에 확철대오하신 분도 있습니다.

우리도 언제 어느 시각에 터질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간절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해 나갈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경계(境界)에 휩싸여서 있다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한 상태에서 보다가 터지고, 듣다가 터지고, 앉다가 터지고, 넘어지다 터지는 것입니다.

더웁다고 한 생각 늦추지 마시고, 더위를 정진으로 이겨 나가도록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14분3초~55분4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소댕 : 솥앵. 솥뚜껑.
*승하(昇遐 오를·죽음 승,멀 하) ;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는 말.
*촌수(寸數) ; 친족(親族) 사이의 멀고 가까운 정도를 나타내는 수.
*유희(遊戱 놀 유,놀 희) ; 즐겁게 놀며 장난함.
*속전속결(速戰速決) ; ①싸움을 오래 끌지 않고 되도록 빨리 끝장을 냄. ②어떤 일을 빨리 진행하여 빨리 끝냄.
*오장을 뒤집다 ; ‘오장(五臟)을 긁다’, ‘오장을 건드리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비위를 건드려서 기분 나쁘게 하다’라는 뜻.
*부애 ; 부아(분하고 노여운 마음).

 

 



------------------(2)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의단(疑團)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쇠심줄 ; 소의 힘줄. 주로 드센 성질이나 고집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쓴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장부(丈夫) ; 다 자란 씩씩한 남자.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집념(執念) ; 한 가지 일에 매달려 마음을 쏟음. 또는 그 마음이나 생각.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돈독(敦篤)하다(도타울 돈,도타울 독)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신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재흥(再興) ; 쇠(衰)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또는 다시 일으킴.
*(게송) ‘여군동보우동행~’ ; [금강경오가해]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억겁다생(億劫多生)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태어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세상).
*‘어묵동정(語黙動靜)을 여의고 일러라’한 공안(公案) ;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선사 법어집(용화선원刊) p7~8.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서울 선학원에서 만공 스님과 용성 스님 두 선지식이 서로 법담을 하시게 되었다.
 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시오.” 하시니 만공 스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계셨다.
 그러자 용성 스님은 만공스님에게 “양구(良久)를 하시는 겁니까?” 하고 물으니 만공 스님의 대답이 “아니오.” 라고 하셨다.

 그 후 이 법거량(法擧揚)의 내용을 들은 나는 용성 스님을 뵙고 “두 큰스님께서는 서로 멱살을 쥐고 흙탕에 들어간 격입니다.”하니 용성 스님께서 “그러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스님께서 한번 물어 주십시오.”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하셨다. 내가 대답하기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하니 용성 스님은 “옳다, 옳다.” 하시었다.
불법이란 것은 이렇게 한번 방망이를 업고 들어가서 뒤집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경허스님의 오도송(悟道頌)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라 한 구절에 대해서~ ;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선사 법어집(용화선원刊) p8~11.
근세 한국불교에서 선의 중흥조이신 경허 대선사의 오도송(悟道頌)을 한번 말하여 보겠다.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하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로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로다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삼천세계가 나의 집인 줄 깨달았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허물이 있으면 한번 방(棒)을 쓰고 들어가는 법이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후, 일곱 걸음을 걸으신 뒤 사방을 돌아보시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시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하셨는데, 그 후 운문선사(雲門禪師)가 나와서 말하기를 “내가 당시에 만약 보았더라면 한 방망이로 타살하여 개에게 주어 씹혀서 천하를 태평케했으리라.”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운문긱구자(雲門喫拘子)’라고 하는 선문중(禪門中)의 ‘척사현정(斥邪顯正)’ 공안이다.

그런데 나도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에 대하여 일방(一棒)을 쓰고 한마디 하였다.
우리 선가(禪家)에는 참선해서 견성(見性)하는 법을 소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 있는데, 만약 중이 시주의 은혜만 지고 도를 닦아 해탈하지 못하면 필경 죽어서 소밖에 될 것이 없다는 말을 어떤 처사가 듣고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만 되어라.”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경허 큰스님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였던 것이다.

유마경의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문수보살은 말로써 이를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유마거사는 묵묵히 말이 없음으로써 이르니 유마거사야말로 불이법문을 가장 잘 설했다고 찬탄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도는 승속에 관계없는 것이다.
단 한마디 ‘소 콧구멍 없다’는 언하(言下)에 대오하였던 것이다. 견성하여 생사해탈법을 얻어 삼천세계가 그대로 나의 집인 줄 깨달았으니 무슨 일이 있으리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야인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참으로 훌륭하고 거룩한 오도송이라고 여러 큰스님들이 모여서 찬탄하시기에 나는 경허 큰스님의 제자이신 만공 스님과 만공 스님의 제자 보월 스님이 계신 앞에서 직접 말하였다.

“무비공(無鼻孔)에는 없다(無)는 허물이 있고, 돈각시아가(頓覺是我家)에는 깨달았다는 각견(覺見)의 허물이 있으며,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에도 역시 허물이 있으니, 이런 것이 붙어서 생사묘법(生死妙法)을 못 보고 또 제구 백정식(白淨識)을 못 건너가게 딱 가로막고 있어서 학자가 그 곳에서 넘어지게 되는 것이니 학자를 바로 지시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니 보월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 참 공연히 말을 제멋대로 하네.”하셨다.

그때 만공 스님께서 “그러면 자네가 한번 일러보소.”하셨다.
“예. 참, 저보고 일러 보라고 하시니 참말로 감사합니다. 천하에 없는 해탈 보배를 바로 주신들 그 위에 더 반갑겠습니까. 그러면 큰스님께서 한번 청하여 주십시오.”하니,
만공 스님께서 물으시기를 “그러면 경허 큰스님의 ‘무비공 도리’나, ‘각견 도리’ 나 ‘무사태평가 도리’ 를 어디 한번 제쳐 버리고 일러 보소.”하시었다.

내가 말하기를 “ ‘유월연암산하로’까지는 경허 큰스님이 송(頌)하신대로 두고, 제가 외람되지만 큰스님 송의 끝구절 ‘야인무사태평가 도리’ 만 이르겠습니다.”하고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내가 농부가를 부르듯이 이렇게 일렀다.
그랬더니 만공 스님이 있다가 “아, 이 사람아 노래를 부르는가? '여여로 상사뒤여'가 노래가 아닌가, 노래를 부르는 일이 무슨 일인가.”하시었다.
그래서 나는 “스님이 재청하시면 다시 한번 이르지요.” 그러고는 보기 좋게 춤을 추면서 곡조를 부쳐서 다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하니 “적자농손(嫡子弄孫)일세.”라고 만공 스님은 점검하셨다.
*경허선사, 만공선사, 보월선사, 전강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구참납자(久參衲子)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목침(木枕 나무 목,베개 침) ;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5. 11. 14:34

§ 숯쟁이 영감 /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인과설을 들으면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불법(佛法)이다 / 숙명론(宿命論).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용240)

 

약 21분.

 


언젠가 그 정승(政丞)을 한 사람이 마누라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어서 찾어봤더니 저 강원도 산골짜기의 숯쟁이 영감한테 가서 살고 있게 된 것을 발견을 했어.
그래서 그 할머니 보고  ‘왜 와 버렸냐?’고 ‘따라가자’고 허니까, ‘싫다’고 숯쟁이 영감이 좋으니까 거기서 살겠다고 안 와.

그래서 기가 맥혀서 정승이고 판서고 다 소용없고,
대관절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저 할망구가 나 같은 - 이 임금님 밑에는 이 나라에서 내가 최고인데, 나를 버리고 저 천하에 보기 싫게 생긴 숯쟁이 영감한테 반해가지고 저리 가버렸냐? 너무너무 궁금하고 기가 맥혀서,

그길로 오대산에 들어가 가지고 스님한테 물어봤더니,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참선을 허면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은 그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지 참선을 하라고’

너무너무 분하고, 속이 상하고, 또 의심이 나고 한 바람에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배고프면 한 숟갈 얻어먹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허면서 3년간을 죽어라하고 공부를 했는데,

아! 그까짓 것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런 것 알 생각을 말고 오직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원(願)을 세우고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하도 마누라 도망가 버린 것이 분하고 억울하고 가슴이 아퍼서 마냥 그 생각을 속에다 꼭 가지고서 자나깨나 참선을 했는데,

아! 툭 터져 가지고 터진 것이 누진통(漏盡通)을 한 것이 아니라 숙명통(宿命通)이 터져 가지고 보니까, 전생(前生)에 자기가 그 오대산에서 공부한 스님이었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전에 해서 알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 그 할멈은 무엇이냐 하면 전생에 자기 누데기 속에서 살고 있던 '이'였었다 그말이여.

누데기 속에서 '이'가 되어가지고 사는데 그놈이, 겨울에 누데기를 빨 수가 없어서 한 해 겨울을 누데기를 빨지 않고 입은 바람에, '이'가 그 속에서 차츰차츰 큰 것이 상당히 커졌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똑 까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밖에다 버리면 얼어죽을 것 같고,
이것도 다 전생의 인연이니까 누데기 속에서 살어라 해 가지고, 가려우면 요리 떠들고 보면 크막한, 보리쌀만한 '이'란 놈이 거기서 피를 빵빵허니 빨아먹고 거기서 뻐르적뻐르적 뻐르적하는데,

그놈이 새끼를 쳐 가지고 새끼도 여럿 낳고, 그놈을 집어내 놓고 심심하면 지대방에서 씨름도 시키고 달음박질도 시키고 그랬는데 그렇게 한 해 겨울을 지낸 다음에 인자 누데기를 벗어서 빨게 되는데,
그 누데기를 벗어서 빠는데 그냥 갖다가 삶으면 '이'가 죽을 것 같아서 그 마치 개가 왔길래 개한테다 '이'를 다 건너주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 개한테 가서 잘 살어라’ 그러고 보냈는데, 아! 그 개가 숯쟁이 영감이 되었어.
그 스님한테 있는 동안에는 정승·판서 마누라 노릇을 허다가, 그 개한테 건너간 그 시절이 돌아오니까 어떻게 찾어갔는지 그 산중에 - 서울 사는 그 정승부인이 보따리 하나 싸 짊어지고 그 무작정 걸어간 것이 그 강원도 산중으로 해서 숯쟁이 영감을 찾어가게 됐다 그말이여.

대번에 숯쟁이 영감 집에 간 것이 아니라, 강원도 어느 장터에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까 숯쟁이 영감을 보니 숯쟁이 영감하고 이야기가 되어 가지고 눈이 맞아서 결국은 졸랑졸랑 따러가게 됐어.

가서 보니 생전 처음 만나 - 그 정승의 부인으로서 얼마나 고귀한 집안에서 호강을 하고 살았겠습니까마는, 아! 그 숯쟁이 영감 첫눈에 그냥 그 전에부터서 같이 살던 사람과 같이 그렇게 남같이 느껴지지를 않고 대번에 그냥 따라가는데 조금도 서슴이 없이 따라갔다 그말이여.

이조 때만 해도 남녀가 분명해서 외간남자(外間男子) 하고는 함부로 얘기도 못허고 그러는데, 대번에 첫눈에 그냥 싹 마음에 들면서 기분이 좋다 그말이여.
그래서 따라가 가지고 그 숯쟁이 영감하고 당장 물 한 그릇 떠 놓지도 않고 그냥 사는데, 정승이 자기 본 남편이 와서 그렇게 가자고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고 사정을 해도 다 소용이 없고,
팔팔 잡아떼고 안 가는 바람에 영감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억장이 무너져 가지고 울면서 오대산을 찾아가 가지고 결국은 그 전생사(前生事)를 다 알게 됐다 그말이여.

지금 내가 이 이야기는 인과설(因果說)을 이야기하자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참선(參禪) 이야기만 허면 꾸벅꾸벅 졸고, 어째서 멀쩡허니 앉어서 잡담을 허거나 그럴 때에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도 참선 법문만 허면 꾸벅꾸벅,
조실스님 법문에도 ‘그 꼬라지 보기 싫으니까 눈을 감고 법문(法門)을 한다’ 그러셨는데,

‘왜 참선법을 들으면 졸음이 오냐?’허면, 이 참선법을 바로 듣고 바로 공부를 하게 되면 마군(魔軍)이가 자기의 궁전이 흔들리고 자기의 영토가 좁아지고 자기의 모든 것이 다 권속이 멸망이 되니까,
그래서 그 법문을 못 듣게 허기 위해서 온 천하에 마군이는 그 참선 법문 듣는 사람의 눈탱이로 다 올라붙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눈을 갖다가 잡어 누르는 바람에 아무리 정신을 채리고 눈을 부릅뜰려고 해도 안 된다 그말이여. 손톱으로 허벅지가 멍이 들도록 집어뜯어도 눈탱이 무거운 것은 안 없어져.

그래서 이 참선법을 얘기하면은 조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끔 이런 인과설도 얘기하게 되는데,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멀쩡한 나무랄 데 없이 이쁘고 얌전하고 솜씨있고 한 자기를 놔두고, 한눈을 팔고 첩을 얻거나 외박을 하거나 그러헌 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이 숯쟁이 영감과 그 정승 판서 부인을 생각해보면 ‘아! 이것이 내가 전생에 지은 업(業)의 인연(因緣)으로 이런가 보다’ 내가 미웁고 내가 싫어서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전생에 내 몸 안에 살던 '이'를 내가 개한테 건네주었기 때문에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아니 할만큼 그렇게 못 생기고 천한 숯쟁이 영감한테 간 그 정승의 부인을 생각을 해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거나 또는 남편이 좋아하는 그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갖은 수단을 써서 기어이 뗄라고 하고,
뭣한 이는 남편의 그것을 알기 위해서 그런 남의 뒷조사 잘하는 그런 데다가 돈을 많이 주고 부탁해 가지고 그 뒷조사를 시키니까, 하다 보니까 남편의 법에 저촉된 잘못된 것이 드러나 가지고 그 여자 밝혀낼라다가 남편을 쇠고랑을 차게 허는 그런 참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습니다마는,

그런다고 바가지를 긁고 싸움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자기한테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그럴 때 알면서도 모르는 듯 오히려 더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에게 잘하고 애들한테도 잘하고 그러면서도 인과법을 철저히 인식을 해가지고 이 참선을 열심히 허신다면,
남편도 용서가 되고 자기도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없어지면서 참으로 인생을 똑바로 보고 살게 되고, 더 훌륭한 아내로서 가정주부로서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뜻있게 살 수 있고,
오히려 그런 것이 계기가 되어가지고 진실하게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면 남편이 잠시 바람을 피우다가도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인식을 못하고 기다릴 줄을 모르고 계속 강짜를 부려가지고 기어이 아주 죽여서라도 그것을 뗄려고 하면 무장 더 되게 들어붙는 거고,
처음에는 그래도 비밀리 지낼 때에는 가정에 대해서도 남편으로서 최소한도로 의무를 다허고 그러다가, 자기 부인이 정말 그 내용을 확실히 알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허면 인자 형식마저도 지키지 아니하고 아주 남남이 되고 원수가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나중에 다시 가정에 돌아오지 않고 마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인연이라 하는 것은 전생에 그렇게 맺어서 또 만나게 되는데, 남편이 외도를 허는 것이나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이나 이러헌 관계가 다 전생에 자기가 그렇게 지어 가지고 그러헌 남편을 만나게 되고, 또 그런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생에 참 많은 여자를 울리고 그렇게 난잡허게 지낸 사람은 그 사람이 금생에 여자로 태어나 가지고 그렇게 행실이 얌전하고 얼굴도 참 이쁘고 솜씨도 좋고 허면서도 계속 남편한테 소박(疏薄)을 당하는 그러헌 예도 많습니다.

이 세상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인과의 법칙에 어긋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물질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정확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생성이 되고 변해가고 이렇게 자꾸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법을 한낱 권선징악(勸善懲惡)하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것은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듯이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한 생각’ 잠깐 먹은 것도 그것이 한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런 것까지도 낱낱이 다 현실화되고 마는데, 하물며 내 입을 통해서 밖으로 표현이 되고 행동을 통해서 밖에 표현이 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더 구체적으로 실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그러헌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철저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인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부정(否定)하고 인증을 아니 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증을 하고 틀림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잘못 인식하면 인과를 갖다가 부정해 버리는 그러한 데에 떨어질 수가 있는데,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잘못 이해하면 거기에 딱 국집(局執)을 해서 구속이 당해가지고 자유를 얻지를 못하는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현대인들은 인과의 법칙을 인정(認定)을 할려고 하지 아니하고 부정을 해버리고 그럽니다마는 그런 사람은 극도의 근시안(近視眼)이 되어 가지고 아직 귀가 맥혀 갖고 있어서, 이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매우 유치한 단계에 있는 것이지 과학이 그렇게 훌륭하게 발달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과학은 4천 년 전에 이미 다 발달이 되어 있었고, 만 년 전에는 더 과학이 발달된 때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야 문명이라든지 모다 그런 것이 지금 땅 속에서 바다 속에서 현대 문명보다도 훨씬 발달된 문명의 자취가 지금 다 발굴이 되어 갖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오늘날 과학이란 것은 별로 바람직하게 발달을 못했고, 또 발달했다는 것이 유치한 단계에 놓여있다.
과학이 발달했지만 인간을 쪼끔 편리하게는 해주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인간을 갖다가 매우 해롭게 허는 나아가서는 인류를 멸망하게까지 하는 그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방면으로 발달이 되어서 매우 우려되는 바입니다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살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그 유치한 단계에 있는 과학에 빠져 가지고, 그나마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꺼떡허면 불교를 미신(迷信)이라고 이렇게 비방을 하고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이 세계는 점점 병들어 가고 살기가 어려운 그러한 세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불자들은 철저하게 인과법을 믿고 옳게 인식을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나아가서 실천을 해 나가야만 우리 자신도 바르게 그리고 참되게 살아가는 것이고,
어리석고 불쌍한 인류들을 바르게 살아가고 참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큰 그리고 절박한 의무가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을 하시고, 금년 여름 안거 동안을 보다 더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방부를 들인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정신적으로는 방부를 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가정에서 생활을 하시는 가운데에 무엇을 하시거나,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또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 무엇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48분14초~69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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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이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외간남자(外間男子) ; 여자가 상대하는, 남편이나 친척이 아닌 남자.
*억장이 무너지다 ; 극심한 슬픔이나 절망 따위로 몹시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
*억장 ; ①‘가슴’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억장(億丈)으로 '썩 높은 것. 또는 그런 높이.'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꼬라지 ; ‘꼬락서니(사람의 모습이나 행색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눈탱이 ; 눈퉁이(눈두덩의 불룩한 곳을 속되게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강짜 ; ‘강샘(결혼한 상대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무장 ; 갈수록 더. 더욱. 한사코.
*소박(疏薄 멀리할·거칠 소,엷을·업신여길 박) ; 아내나 첩을 인격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모질게 대함.
*권선징악(勸善懲惡 권할 권,착할 선,혼날 징,악할 악) ;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데 ; ①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 곧 집채의 바깥. 노천(露天). ②일정하게 정하여진 자리가 아닌 다른 곳.
*인증(認證) ; 인정(認定)하여 증명(證明)함.
*부정(否定) ; ①그렇지 않다고 단정함. 또는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음. ②옳지 않다고 반대함.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숙명론(宿命論) ; 운명론(運命論).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
세상이나 인생의 모든 것이 숙명(宿命-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에 의해 예정되고 절대적으로 지배받는다고 보아 인간의지의 자유와 창조는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무력하다는 주장.
*인정(認定) ;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근시안(近視眼) ;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먼 앞날의 일을 짐작하는 지혜가 없거나 소견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4. 2. 02:46

§ 3능, 3불능 / 정업(定業)은 난면(難免) /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 찰나(刹那) 간에 몰록 / 신•분•의(信•憤•疑) 삼요.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다.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른지 모르는 거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을 꾸는 동안에는 정말 아프지만 꿈을 깨자마자 꿈에 앓던 종기가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간에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송담스님(No.521) - 19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에서.(용521)

 

(1) 약 21분.

 

(2) 약 18분.

 


(1)--------------------

 

새해가 돌아오면 토정비결을 본다든지, 어디 또 만신이나 점쟁이한테 가서 신수도 보고 해서 금년 운수가 어떤가? 뭔 일이 좀 잘될란가?

참 답답해서 가시는 분도 있고, 누가 족집게 점쟁이다 잘맞춘다 하니까 호기심으로 따라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냥 좋다고 하면은 좋아가지고 복채도 많이 주고 돌아오지만,
‘대주(大住)가 금년에 대단히 안 좋다고.. 굿을 몇 번을 해야 하고, 무슨 몇십만 원 짜리 부적(符籍)을 사서 몸에 지녀야 하고..’ 이거 참 겁나는 소리를 하면 그 말을 듣고는 속이 편틀 못하다 그말이여.

아무리 여기서는 이런 말을 들어도 집에 가서 어쩌고저쩌고 하면 금방 생각을 내신다 그말이여. 이건 지식이 있건 없건 여자분은 여간해서 그런 데에 속지 않기가 어렵다 그말이여.
‘남편한테 해롭고 자식한테 해롭다’하는 데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 나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그것이 별로 그렇게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거 왜 그러냐?

점쟁이는 혹 지내간 일은 더러 맞추는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못 맞춰. 점쟁이 한테는 삿된 귀신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삿된 귀신이 돌아다니면서 봐서 일러주면은 지내간 일은 잘 맞추는데, 귀신도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잡귀는 모르거든.

부처님처럼 삼명육통(三明六通)이 나서 육신통(六神通)으로 보신다면은 과거•현재•미래를 손바닥 안에 보듯 환히 아시지만, 점쟁이는 육신통이 난 게 아니여. 잡신(雜神)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잡신의 힘으로 지내간 일 뭘 좀 아는 소리를 하는데, 그것 가지고 미래 일까지는 다 모르거든.
혹 맞추기도 하고 안 맞추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말을 믿고 우리가 중대한 일을 추진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건 정신병자가 운전하는 차를 탄 거와 같아서 그놈이 언제 어디다 꿀어박을지 모르거든.

우리는 아무리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해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만나고, 슬픈 일도 만나고, 괴로운 일도 만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한테도 3불능(三不能)이 있어. 3능(三能)과 3불능이 부처님한테 있다고 그러는데, 부처님께서 세 가지 능한 것은 무엇이냐?
(첫째는) 일체 상이 다 공(空)해서 그래 가지고 만법의 지혜를 이루시는 것이 부처님이 능하는 일이여.
두 번째는 모든 중생의 성품을 환히 다 알고, 억겁의 모든 일을 다 맥힘이 없이 다 아시는 거여.
셋째는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가 있어. 이것이 부처님이 세가지 능하신 것인데,

그러한 삼명육통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하신 그러한 부처님도 세 가지 능(能)치 못한 것이 있는데,
당신이 무량겁으로부터서 오시면서 지으신 정업(定業)은 멸(滅)할 수가 없어. 그래 모든 것을 환히 다 아시고 육신통이 자재(自在)하시고 팔해탈이 자재하신데 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하실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정업을 멸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어.
셋째는 중생계를 다하지 못혀. 이 세상의 한 중생도 없이 다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가 완전히 다 없어지도록 하실 수는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의 그러한 법력(法力)과 도력(道力)과 신통력(神通力)으로서도 부처님의 고국인 가비라(迦毗羅) 왕국이 멸망할 때 그걸 번연히 알고 계셨고 보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으신 것이여.
과거의 삼천불, 현겁 삼천불, 미래 삼천불 삼천(三千)의 부처님이 계셔도 중생계는 다하지 못하는 거여.

부처님의 자비는 인연이 있고 없고 간에 다 똑같이 베풀어지지만, 인연(因緣) 있는 중생이라야 제도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인연을 부처님과 맺음으로 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게 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믿게 되고, 믿고서 실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부처님께도 그런 삼불능(三不能)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부처님께서 능(能)치 못한 3가지도 우리는 또 마찬가지고, 우리는 그보다도 수수 백만 가지가 능치 못한 것이 너무너무 많은데, 우리가 과거에 지은 그런 정업(定業)을 우리가 점쟁이 말 듣고 그것이 면(免)해질 수가 없어.

방법은, 이미 우리가 지어 가지고 받는 것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것이고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받아 넘기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여.

공자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중국을 이렇게 유행을 하시는데, 관리한테 붙잡혀 가지고 큰 난을 당했어. 그것은 양호라고 하는 악인이 있었는데, 공자님이 그 양호란 놈하고 얼굴이 비슷하게 생겨 가지고 양호인줄 알고 체포를 당해 가지고 참 억울한 어려운 일을 당하다가 간신히 풀려났는데,

그 제자가 묻기를 ‘성현(聖賢)도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 제자들은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을 숭배하듯이 공자님을 그렇게 숭배하는데, 「어찌 공자님과 같은 성현이 이런 참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겠느냐?」 의심이 나서 여쭈어 본 건데,

성현이라고 해서 어려운 일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의 그 마음은 다를지언정 - 중생이나 범부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은 당황하고 겁을 내고, 마음이 동요가 되어서 겁에 질려서 자기의 마음을 지닐 수가 없어. 그런데 성현은 당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당한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범부 같으면 당신의 고국이 그렇게 망할 때 신통력으로 그 적군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때려 부수고 죽이고 물리치고 혹 그런 마음을 냈을런지도 모르는데, 부처님은 환히 알고 그 광경을 다 보시면서도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시지 않았어.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그 고국의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을 시켰어.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가라앉은 다음에 가서 바리때 가지러 가니까 속에서 다 죽어갖고 있어. 과거에 죽을 업을 지어 가지고 금생에 그걸 받게 될 때에는 피할 길이 없어.

목련존자도 5백 생을 결국은 타살(打殺)을 당했는데 과거에 업연(業緣)으로 그랬는데, 마지막 5백 생도 결국은 당신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외도(外道)들이 자꾸 불법(佛法)이 흥왕을 하니까,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을 끊어야만 되겠다’ 그래 가지고 목련존자가 숲속에서 턱 이렇게 좌선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수백 개의 돌팔매질을 해 가지고 결국은 몸이 부서지게 되었다 그말이여.

목련존자의 같은 고향에서 같이 출가한 도반인 사리불(舍利佛)존자가 『왜 그대는 신통이 제일인데 왜 신통술을 어디다 두고 그렇게 맞었냐?』 그러니까,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이 안 나더라』 그렇게 경전에 쓰여 있는 데도 있고,  『내가 불자(佛子)로서 인과법(因果法)을 아는 사람이 피해서 되겠느냐』 또 그렇게 된 데도 있습니다마는 두 가지가 다 맞는 말씀이고.

점쟁이 말 듣고 재앙을 면할려고 해서는 안 돼. 그런데 점쟁이가 가끔은 절에 가서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치성(致誠)을 드리라고 그렇게 보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와서 절에 와서 천도재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런 분도 있습니다.
부처님께 시주도 하고, 치성도 드리고, 또 조상의 천도재(薦度齋)도 지내고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천도재를 지내 가지고 집안에 우환이 없어진 그런 경우도 나는 많이 봤습니다.

많이 보기는 했으나, 정업(定業)은 난면(難免)인 것입니다.
받되 정법(正法)으로써 마음이 딱 기둥이 서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바른 마음으로, 바른 정신으로, 신심과 원력으로, 지혜와 인내로써 그런 일을 잘 처리해 나가고 그 일을 소화를 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나 탤런트는 각본을 쓴 작가가 따로 있고, 그 각본에 의해서 감독이나 연출이 그것을 연출을 해 가지고 배우나 탤런트를 잘 선정을 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연극을 하게 하는데, 그것은 배우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각본에 의해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길 밖에는 없는 것이고, 배우 지 마음대로 이리저리 못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무량겁이라고 해도 좋지만 가깝게 금생 일생 이렇게 사는 것만을 우선 생각을 해 보자 이겁니다.
우리가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어렸을 때를 살고, 어떻게 유치원으로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을 다녀 가지고, 어떻게 누구와 결혼을 했고,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고 어떤 자식을 낳았냐? 그리고 일생 동안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갔느냐?

생로병사 일생만을 생각해 본다 하면 그것이 무슨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제석천왕(帝釋天王)이나, 또 어떤 뭐 염라대왕이나, 어떠한 다른 사람이 그렇게 시켜갖고 되는 일이 아니여.

전부 우리 자신이 그러한 각본을 썼어. 각본을 써 가지고 자기가 그 각본에 의해서 지금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마지막 죽어갈 때까지 각본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여.
하나도 부모를 원망할 것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어. 선생을 원망할 것도 없고, 사회를 원망할 것도 없고, 국가를 원망할 것도 없어. 부부 간에도 남편이 아내를 원망할 것도 없고, 아내가 남편을 원망할 것도 없어.

도둑질하다가 감옥을 가도 검사나 판사를 원망할 것이 없는 거여. 지가 그 죄를 지어 가지고 판결을 받아 가지고 징역을 사는데, 감옥에 들어가서 내나 자기를 잡아넣은 형사를 '내가 나가기만 하면은 그놈의 형사 가만 안 놔둔다'고 이를 갈아붙이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를 무기 징역을 청구를 하고, 무기를 갖다가 판결을 내리는 검사와 판사를 원망하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거냐 그말이여.

가끔 전혀 자기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징역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는 자기를 억울하게 그 징역을 살게 하는 형사나 검사나 판사를 정말 중생으로서는 참 원망 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원망할 것이 없어. 과거에 자기가 그렇게 사람을 억울하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금생에 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그말이여.

과거가 없는 금생(今生)은 없어. 전부가 금생에 우리가 지은 업과 과거에 지은 업이 다 연관성 있게 우리의 모든 것이 전개되어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래서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그말이여.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은 거기서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고 야단들이여.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은 작가한테 막 편지질을 하고 전화질 하고 방송국에다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된다, 살려야 한다’고 야단들인데, 그렇게 하두 전국에서 들어오면은 처음에 작가의 생각은 죽일라고 했다가도 하도 그래싸면 그거 바꾼다고 그래.

그까짓 TV에 나오는 거 죽이면 어떻고 살리면 어떻고 별 것이 아닌데,
우리 자신이 과거에 지은 업이 있어가지고 금생에 이렇게 불행한 일만 당하게 되었다 하면, 그 각본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썼기 때문에 금생에 각본을 달리 쓸 수는 있다 그말이여.
달리 써 가지고 어쨌든지 좋은 방향으로 요렇게 틀으면 좀 힘은 들랑가 모르지만, 자기가 쓴 각본을 자기가 방향을 바꿔나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 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42분45초~63분35초)

 

 

 

 

 

(2)--------------------

 

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

과거에 지은 업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지만, 금생에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것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각본을 바꿔쓰면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 어떻게 각본을 쓰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은 바꿀 수가 있다 그말이여.

인과의 법칙을 정말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활용을 해 나가야 한다.
인과법을 잘못 믿으면 완전히 숙명론•운명론에 떨어져 가지고 그러고, 그렇지 않으면 까딱하면 인과법을 믿지 않고, 발무인과(撥無因果) 『에잇 그까짓 거 소용이 없다고!』

못된 짓을 하면 응당 잘 못살아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극악무도하고 못된 짓만 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러고 정직하고 착하고 참 그런데 사사건건이 불운(不運)을 당하고 못살고 억울하게 그렇게 일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 그런 걸 보면 『그것 인과법 소용 없다고!』 안 믿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니거든.

금생에 것만 갖고 우리의 앞이 그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지은 것까지 합해져서 되기 때문에, 과거에 워낙 좋은 복을 지어놓으면 금생에 못된 짓을 해도 우선 괜찮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금생에 나쁜짓 한 건 또 언젠가는 꼭 받게 되지만, 우선 과거에 지어놓은 것이 워낙 많으면 그것이 금생에 좀 나쁜짓 해도 그럭저럭 잘사는 사람도 있어. 그러나 그것 믿을 것이 못되는 거고.

금생(今生)에 착하고 부지런히 해도 못 당할 일 많이 당하는 것은 전생(前生)에 지은 나쁜 악업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 좀 잘해도 별로 좋은 꼴을 못 보는 거여.

그래서 인과의 법칙에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바로 현실적으로 받는 경우가 있고, 금생에 지어 가지고 바로 이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가지고 다음 생, 저 다음 생, 몇 생을 건너 뛰어 가지고 가서 받는 수가 있어.
현생보(現生報)•순생보(順生報)•순후보(順後報) 이것이 세 가지 차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이지 안 받는 것은 아니여, 언젠가는 다 받게 되는데.

그렇게 지어서 받는 것은 면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전부 우리의 마음으로 지어서 이렇게 벌어지는 일들이라,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법(萬法)의 근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환상이요 물거품 같은 것이다.』 다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래서 범부(凡夫)는 모든 것이 환(幻)인데 환인 줄을 모르고서 환(幻)의 업(業)에 집착을 해 가지고 거기에 끄달리는 거고.

성문(聲聞)은 모든 환(幻)을 그것을 굉장히 두려워 해. 생로병사를 굉장히 두려워 해가지고 어떻게 하면 - 죽음이 무서우니까, 죽음을 안 당할라면은 태어나지 말아야겠다.
태어나기만 하면 늙어서 병들어서 결국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니까, 죽음이 없을라면은 태어나지 않아야겠다. 그래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말이여.
멸진정은 영원히 아주 정(定)에 들어가 버린 거여. 그러면 태어나지를 않기 때문에 죽음도 없다. 이게 소승(小乘)의 생각이다.

보살(菩薩)은 이 세상의 모든 경계는 환(幻)의 경계여. 본래 없는 것이고 본래 남이 없는 거여.

눈병 든 사람에게 이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 우리는 눈동자를 옆에서 요렇게 눌루고 보면 해도 둘로 보이고, 달도 둘로 보이고, 뭔 물건도 둘로 보입니다. 여러분 댁에 가서 시험을 해보세요.
그냥 보면 하나인데, 눈동자를 요렇게 눌러가지고 압력을 가해 가지고 보면은 삐뚤어지게 보이고 둘로 보인다 말이여.

눈이 멀쩡한 사람에게는 허공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 난 사람은 뭣이 이상한 것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불이 켜진 것처럼도 보이고 모다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는 꽃이 안 보이거든.

눈병이 나기 전에도 없었던 거고, 눈병이 난 뒤에도 허공에는 꽃이 없는 거고,
그러다가 눈병이 나은 뒤에도 - 허공의 꽃은 원래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눈병 난 사람은 보이니까 그 눈병 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할거라 그말이여. 눈병이 없는 사람에게는 (허공의 꽃이 원래)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나 그런 것은,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거,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은 명상(名相)이여 그게. 명상(名相)!

명상(名相)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여 그것이.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어린애들은 크레용이나 무슨 연필을 가지면 벼람박이고 어디고 마구잽이 막 그려 젖히거든.
철없는 중생이 우리의 마음으로 일체 경계(境界)를 당해서 온갖 것을 정말 미친 사람이 어떠한 연극에 각본을 쓰듯이 종잡을 수 없이 쓰거든.
죽일라고 했다가 살리고, 살릴라고 했다가 죽이고 그저, 도둑놈을 갖다가 착한 사람을 만들고, 착한 사람을 어떤 때는 또 도둑놈으로 만들고 해 가지고는 종잡을 수 없이 계속 끝이 없는 각본을 써 가는데.

우리 중생이 하는 짓이 바로 미친 정신병자가 연극 각본을 쓴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우리의 무량겁을 그런 각본을 써 왔고,
앞으로 정법(正法)을 믿고 바른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계발하고 그놈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간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모르는 거여. 그래 가지고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해 갈 거다 그말이여.

조금 착한 짓 한 사람은 좋은 곳에 태어날 거고, 악한 짓 한 사람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고, 천당에 좋은 곳으로 가봤자 받을 만큼 복을 받으면 또 떨어지는 거고, 삼악도에 떨어지면 그 받는 기한이 길고 길어서 언제 나올 기약 있을는지 모르나, 나와 봤자 또 마찬가지여. 언제 무슨 짓을 또 하냐.

그래서 무슨 소리를 듣든지 「이뭣고?」, 무슨 것을 눈으로 보든지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를 하시라 그말이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등창을 앓거나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이라 하지마는 실지로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정말 아퍼. 무서운 걸 보면 무섭고, 괴로운 것을 보면 괴롭고, 아플 때는 정말 꿈에도 아퍼요.

아프다가,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그러다가, 누가 와서 꿈을 깨거나 잠을 깨주면 눈을 뜨고 보면, 깨고 나서도 한참 아퍼. 아퍼도 정신을 차려서 보면 진짜는 안 아픈 거여 그게.
정말 눈 딱 떠서 정신만 차려버리면 그렇게 아프던 종기가 깨끗이 낫어 버리는 거여. 몰록 낫어, 몰록.

세속의 사전에는 ‘몰록’이란 말이 있는가 어쩐가 모르는데, 이 불가(佛家)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이래서 ‘몰록 깨닫고 몰록 닦는다’는 것이,
전기 스위치를 탁 올리면 찰나(刹那) 간에 탁 켜지고 탁 내리면은 찰나 간에 깜깜해지듯이, 그 꿈에 앓던 몸의 종기가 잠을 깨자마자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어가는 게 아니라.

그래서 방편(方便)•점차(漸次)가 없어. 점차(漸次)라고 하는 것이 없는 거여. 차츰차츰 요렇게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 간에 탁!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이궁어시(理窮於是)다. 모든 이치가 여기에서 다해 버린 거여.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고 차츰차츰 깨달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뭣고?」를 해 가면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계속 의심으로 참구(參究)를 해 가면,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그 의심이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우리의 속도 의심으로 가득차고, 온 세계의 무엇을 보나 듣거나 산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꽃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이뭣고?’를 ‘이뭣고?’들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고 한 게 아니라, 들고 놓고 할 것이 없이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온 법계에 가득차게 되서 더이상 커질 수가 없을 때는 어떠한 찰나에 툭 터지게 되는 거여.

그래 가지고 의단(疑團)을 갖다가 통 밑구녁 빠지듯이 의단이 탁! 터지는 거여. 그러면서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거여.

비록 석 달 만에 깨달은 사람, 3년 만에 깨달은 사람, 30년 만에 깨달은 사람, 마지막 죽을 때까지 못 깨달은 사람도 있을 수가 있으나, 다른 모든 것은 하다가 안 되면 그것은 실패고, 소용이 없는데, 이 공부는 끝까지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해도 깨닫지 못했어도 그것이 헛일이 아니여.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놓은 것은 고대로 그 공덕이 거기에 다 있어서 금방 새로운 몸을 받아가지고 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젊어서 정법을 만나게 되고, 그 믿어지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면 젊어서 툭 3일 만에 깨닫고, 언하(言下)에 깨닫고, 한철 만에 깨닫는 것이 그 까닭이 있는 거여.
전생에 그렇게 하다가 몸을 바꿔났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툭 깨닫게 되는 거여.

그래서 ‘하! 내가 이렇게 아무리 할라고 해도 안 된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도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믿음이 적기 때문에 그렇다’ 조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결국은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해야 혀.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하고, 허다가 말다가 하고, 그래 갖고는 언제 그것이 될 거냐 그말이여.

할 때는 정말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믿은 데에서 열심히 하면은 거기서 또 분심(憤心)이 나고, 분심 있는 곳에 신심이 더욱 깊어지고 해서, 그래 가지고 결국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여.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는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이것이 삼요소(三要素)인데, 이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새해에 우리의 법보 가족은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어떠한 종류의 일을 당하거나, 어떠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써 단속해 나가기를 우리는 1994년의 첫 번째 법회날을 맞이해서 다 같이 다짐을 합시다.(63분10초~81분1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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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大主) ; ①무당이, 굿하는 집이나 단골로 다니는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②여자가 자기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잡신(雜神) ; 온갖 잡스러운 귀신.
*삼능(三能)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을 세움.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정업(定業) ; 과거에 지은 업에 따라 현세에서 받게 되는 과보(果報).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석가족의 멸망 ; BC 6세기에 코살라국(Kosals國) 사위성(舍衛城)의 왕인 파사닉왕(波斯匿王)이 석가족 사람과의 혼인을 청해 왔는데, 석가족은 파사닉왕이 낮은 신분 출신의 왕이어서, 왕의 청을 거만하게 생각하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나, 파사닉왕의 세력이 워낙 강했으므로 왕족 하녀의 딸을 석가족의 처녀라 속여 파사닉왕에게 보냈다.
이 하녀의 딸과  파사닉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유리(琉璃)태자가 8세 때 어머니의 나라인 석가족의 카필라국(Kapila國)을 방문했는데, 석가족의 사람들은 유리태자를 무시하고 ‘종년의 자식’이라 하며 천대하고 모욕을 주었다. 이에 태자는 원한을 품고 보복하려 마음 먹었다.

한 신하의 계략으로 파사닉왕이 죽고 유리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지난날 석가족에게 당한 모욕을 보복하고자 출병을 하였는데, 그 소식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유리왕(琉璃王)과 그 군사들이 카필라국으로 가는 길목에-말라 죽은 고목 밑에 앉아 계셨다.
유리왕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왜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앉지 않으시고, 말라 죽은 고목 아래 계십니까?’하고 여쭙자 ‘친족의 그늘은 나무의 잎과 같이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니, 유리왕은 부처님의 뜻을 알고 군대를 돌렸다. 그러나 또다시 석가족에 당한 모욕을 기억하고 카필라국으로 향했다.

이런 중에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는 석가족을 구하고자 부처님께 나아가 사뢰었다.
‘저의 신통력으로 유리왕의 군대를 타방 세계로 던져버리거나, 카필라국을 허공에다 옮겨 놓거나, 카필라국 위에 쇠그물을 덮을 수 있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석가족의 전생 인연도 타방 세계에 던져 버릴 수 있겠느냐, 전생 인연도 허공에 옮겨 둘 수 있겠는가, 쇠그물로 전생 인연을 덮을 수 있겠는가’ 되물으시고,
‘지금 석가족들의 전생 인연이 이미 다 익었으므로, 이제는 그 갚음을 받아야 한다.’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록 저 허공을 이 땅으로 만들고, 또 이 땅을 허공으로 만들려 해도, 그것은 다 본디 인연에 매었나니, 그 인연은 영원히 안 썩느니라.”
목련존자가 그 석가족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시키려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지나고 나서 바리때 속을 보니 다 죽어 있었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 진군하다 돌아오고 진군하다 돌아왔으나 네 번째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다.
이리하여 유리왕과 그 군대는 석가족을 잔인하게 짓밟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사위성(舍衛城)으로 되돌아 갔다.

부처님은 비구들과 함께 유리왕과 그 군대가 휩쓸고간 불태워진 카필라국을 보시고 곧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현상은 덧없는 것이니, 한 번 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네. 나지 않으면 곧 죽지 않나니, 이 열반이 가장 큰 즐거움이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셨다. 그 때에 비구들에게 말씁하셨다.
“지금 저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이 세상에 오래 살지 못하고 지금부터 일주일 뒤에는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
과연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일주일 뒤에 강가에서 밤에 비바람이 몰아쳐 물에 떠내려가 죽어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또 하늘 불이 내려와 궁전을 모두 불살랐다.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으로 유리왕과 그 군사들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아시고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악(惡)을 행하되 못내 심한 것, 그것은 모두 몸과 입의 행(行)이다. 지금의 몸으로도 고통 받지만, 타고 날 목숨도 짧을 것이다.  만일 집에서 살게 될 때는 그 집은 모두 불에 살리고, 만일 목숨을 마치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부처님께서는 석가족과 유리왕의 전생 인연을 말씀하셨다.
“옛날 이 왕사성에 한 어촌이 있었다.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먹었는데, 그 촌에 큰 못이 있었고 또 거기는 물고기가 많았다. 왕사성의 사람들은 그 못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 물고기중 하나가 `우리는 전에 이 사람들에게 아무 허물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와서 우리를 잡아먹는다. 다음에 원수를 갚자.`하였다.
그 촌에는 어떤 어린애가 있었는데, 물고기를 잡지도 않고 또 목숨을 죽이지도 않았으나 물고기들이 죽는 것을 보고 매우 재밌어하였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때의 그 왕사성의 사람들이 석가족이고, 그 물고기중 하나가 지금의 저 유리왕이요, 그 때에 죽는 물고기를 보고 웃던 어린애는 바로 나이니라.
그 물고기를 잡아먹은 과보로 무수한 겁을 걸쳐 지옥에 떨어졌고 또 지금에 그 갚음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 때에 물고기 죽는 것을 보고 웃었기 때문에 지금 머리가 아파 돌로 치는 것 같고 또 머리에 수미산을 인 것처럼 무겁다.
이것이 이른바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런 갚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잘 단속하고 범행을 닦는 이를 생각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도록 하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번연하다 ; 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 따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분명하다.
*삼천불(三千佛) ; 과거세(過去世)의 천불(千佛), 현재세(現在世)의 천불, 미래세(未來世)의 천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인연(因緣)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목건련 (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목련존자의 과거 업연(業緣) ; 먼 과거 전생에 목련(目連)은 늙은 눈먼 부모를 모시고 나이가 들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고 살고 있었는데, 부모는 그것이 안타까워 성화를 하는 바람에 그는 젊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시집온 여인은 처음 며칠 동안에는 별 불평없이 눈먼 시부모를 잘 모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부모를 보기만 해도 짜증을 내며 같이 살수 없다고 했으나,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모른 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외출하여 일을 보러 간 사이에 그녀는 일부러 진흙과 쌀겨와 쌀죽의 찌꺼기를 집안 여기저기에 흩뜨려 놓았다.
이렇게 해 놓고 돌아온 남편에게 눈먼 당신의 부모가 이렇게 해 놓았다고, 자기는 이제 시부모와 더이상 같이 못 산다고 하며 계속 들볶자 그는 아내의 말만 믿고 부모를 버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딴 곳에 사는 친척이 부모님더러 한번 오라고 한다고 말하고는 수레에 태워 숲속에 깊이 들어가서, ‘아버지, 이 고삐 좀 잡고 계세요. 황소가 길을 잘 알고 있어서 가만 놔두어도 잘 갈 겁니다. 여기는 도둑들이 출몰하는 곳이니 저는 내려서 살펴봐야겠습니다.’하고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에 들어간 그는 마치 도둑들이 공격을 해오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니까, 부모는 놀라면서 ‘아들아,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너라도 어서 도망쳐라’고 하였다.
아들은 소리를 외치며 도적들처럼 다가와 부모를 죽여 시체를 숲속에 버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악업으로 그는 무수한 세월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고도 악행의 과보가 아직 다하지 않아서 100생 동안 온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아죽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과거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을 모시고 열심히 수행하면서 서원을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 때 그는 미래 세상에 고따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면 자기는 그 부처님 밑에서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많은 공덕 바라밀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목련존자의 태어남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고, 결국 외도들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라한을 이룬 성자였기 때문에 중생처럼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적멸(寂滅)을 실현했던 것이다.

이같이 목련존자의 전생과 그에 따른 과보를 말씀하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법구경 137~140)을 읊으시었다.
“죄가 없고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는 자에게, 폭력를 사용하여 해를 끼치면, 참으로 아주 빠르게 다음 10가지 중 하나에 떨어지리라.
①심한 고통을 당함. ②아주 가난해짐. ③몸의 상해(신체적 절단). ④중대한 질병이나 정신이상을 일으킴. ⑤왕의 노여움을 사 모든 재산을 빼앗김. ⑥재산과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고소를 당함. ⑦가족이 생명을 잃음. ⑧재산이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됨. ⑨집에 벼락이 내리거나 불에 탐. @그런 뒤 그 어리석은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리.”
[참고] [법구경-담마파다] (전재성 역주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p451~454, [법구경이야기 2] (무념·응진 역 | 옛길) p 384~390.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의 가르침(道). 또는 그 신봉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鶖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빠띳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그렇게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었다.
*치성(致誠 이룰 치,정성 성) ; 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천도재(薦度齋)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각본(脚本) ; ①[연극][영화] 연극이나 영화, 방송극을 만들기 위해 배우의 대사나 동작, 장면 순서, 무대 장치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은 글. ②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사전에 꾸민 계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석천(帝釋天)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숙명론(宿命論) ; 세상의 모든 일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견해나 학설. 같은말-운명론(運命論).

 

 

 


---------------------(2)

 

*현생보(現生報) ; 현세(現世)에서 업(業)을 지어 현세에서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순현보(順現報). 현보(現報).

*순생보(順生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 받는 인과응보를 이른다. 생보(生報), 순차보(順次報).
*순후보(順後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삼생(三生) 이후에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후보(後報).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①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자. ② 성문승(聲聞乘)의 준말.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 · 각유정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육경(六境) ; 육진(六塵).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한다.
*육식(六識) ;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곧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4. 3. 18. 10:24

§(184) 오백 마리 박쥐, 오백 마리 기러기 떼의 인연 / 다 같이 법문 듣고 참선한 이 공덕이 금생에 세세생생에 반드시 우리가 함께 대도(大道)를 성취허는 깊은 인연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송담스님(참선법C)(No.184)-1982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2.10.03)(77분)에서.(용184)

 

약 10분.

 


 그러면 죽비(竹篦)를 치고 잠깐 입선(入禪)을 허겠습니다.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허십시오. 허리를 쭉 펴고, 아금니를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대십시오, 혀 끄터리를.

그리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숨을 깊이 들여마십시오. 가슴이 벅차도록 들어마시세요. 코로 들어마셨다가 한참 참았다가 입으로 후~ 허고 입으로 다 내뿜으세요.(한번)
다 내뿜었으면 또 코로 스르르르 들어마시세요. 가슴이 가뜩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또 입으로 후~ 하고 내뿜으세요.(두번)
다 내뿜었으면 또 한 번 들어마시세요.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히 다 내뿜으세요.(세번)
이것이 준비호흡입니다.

준비호흡을 해서 다 내뿜었으면 인제 코로 들어마시되,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 단전 부위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 말고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셔.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코로) 조용허게 내쉬면서 ‘이 무엇고—?’허고 내쉬어. 내쉬면서 아랫배는 차츰 차츰 차츰 홀쪽해지도록,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시고.
이렇게 계속해서 해 나갑니다.

죽비 치세요.  (탁 탁 탁)

 법회 끝에 다만 10분 씩이라도 이렇게 같이 입선(入禪)을 허냐 하면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과거세에 저 남해 바닷가에 큰 고목나무가 있었는데, 그 고목나무에는 5백 마리의 박쥐 떼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폭풍우가 불고 풍파가 세니까 배를 타고 장사를 허는 상선이 그 해변에 피난을 해 가지고,
그 고목나무 밑에서 밤새 불을 피면서 그 풍파를 피하고 있었는데, 그 불이 잘못 해 가지고 차츰차츰 번져서 그 고목나무에 번졌습니다.

고목나무에 불이 붙으니까 그 고목나무 속에서 살고 있던 5백 마리의 박쥐 떼가 영락없이 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박쥐 떼들은 불이 타올라서 뜨거워서 곧 죽게 됨에도 불구하고 거길 도망가지를 않았습니다.

왜 안했냐 하면, 그 상인 가운데에 밤새도록 부처님의 경전, 아비담론(阿毘曇論)의 일부를 외우고 있었습니다. 그 경(經) 외우는 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거기를 떠나지 않고, 그 5백 마리의 박쥐가 고목나무 속에서 질식해서 드디어 타 죽었던 것입니다.

그 인연으로 부처님 열반하신 뒤 4백 년, 협존자(脇尊者)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라고 하는 경율론 삼장의 해설서인데,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이라고 허는 그 경을 갖다가 결집을 했는데,
결집을 헐 때에 5백 명의 아라한(阿羅漢)을 모아 가지고 했는데, 그 5백 명의 아라한이 바로 그 고목나무에서 죽은 박쥐 떼들인 것입니다.
그 박쥐 떼들이 목숨을 바치면서 그 경전 외우는 소리를 들은 그 공덕으로 마침내는 아라한과를 증득해서 성현이 된 것입니다.

 또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마자 그 해에 가섭존자가 상수(上首) 제자가 되어 가지고 제일(第一) 결집(結集)을 헐 때에 오백 성승(聖僧), 오백 나한(羅漢)님들이 모여서 제일 결집을 했는데, 그때 그 아라한들은 과거세에 5백 마리의 기러기 떼인 것입니다.

5백 마리의 기러기 떼가 하늘에 날아가는데, 임금님에게 바치기 위해 기러기를 잡기 위해서 엽사(獵師)가 그물을 쳐 놨는데 그 기러기 떼의 왕이 그물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러기를 잡아서 죽일려고 그러는데 그 5백 마리 중에 한 마리가 자기네 왕이 붙잡혀서 죽게 되니까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 기러기 왕 있는데다 던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왕을 갖다가 날개로 부둥켜안으면서 슬피 울면서 우리의 왕을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고, 나머지기 사백구십팔 마리의 기러기 떼들도 슬피 울면서 그 하늘을 떠나지 아니하고 빙빙 선회를 허면서 그 왕을 살려줄 것을 간청을 허면서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러기를 잡아서 죽일랴고 했던 엽사가 그 기러기 두 마리를 - 왕과 또 한 마리를 하늘에 날려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날 임금님 수랏상에는 기러기 고기를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 왕이 ‘어째서 오늘은 기러기 고기를 올리지 안 했느냐? 내가 그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데 왜 고기를 안 올렸느냐?’ 그러니까 그와 같은 사실을 임금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그 말씀을 듣고 ‘그 미물의 중생도 그런 짐승도 자기의 왕을 위해서 목숨을 던졌고, 그 왕의 죽음을 슬퍼해서 그 하늘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랬다니, 어찌 내가 앞으로 기러기 고기를 먹을 수가 있단 말인가. 다시는 기러기를 잡지를 말어라’ 이렇게 엄명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 때의 그 기러기가 바로 누구냐 허면 전생(前生)에 부처님 인행(因行) 때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을 던진 기러기는 아난존자고 나머지기 기러기들은 바로 아라한과를 증득한 성현이 되어 가지고 부처님 열반하신 그 해에 제일 결집을 헐 때에 모이신 그 오백 성승들이신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서 다 같이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의 참선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리고 법문 끝에 다 같이 10분 동안 이렇게 죽비를 치고 입선을 한 이 공덕(功德)이, 금생에 또는 세세생생에 반드시 우리가 함께 대도(大道)를 성취허는 그러한 깊은 인연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66분56초~77분9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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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끄터리 ; ‘끄트머리’의 사투리. 끄트머리—>맨 끝 부분.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 모두 2백 권. 협존자(脇尊者) 외 5백 명 편찬, 당(唐)의 현장(玄奘) 번역.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을 중심으로 하여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교리를 상세하게 해설하고, 다른 부파와 외도의 교리를 비판한 저술. <대비바사론>이라고 약칭한다.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敵)•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다른 사람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으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어울리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敵),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결집(結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ṃgīti  붓다의 입멸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함께 외워 기억하는 형식으로 모아서 정리한 것.
제1차 결집은 붓다의 입멸 직후, 왕사성(王舍城) 부근의 비파라산(毘婆羅山)에 있는 칠엽굴(七葉窟)에서 가섭(迦葉)이 선출한 5백 여 명의 비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교법에 대해서는 아난(阿難)이, 계율에 대해서는 우바리(優波離)가 소리내어 외우면 비구들이 합송(合誦)하는 형식으로 진행됨.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엽사(獵師) ; 사냥을 직업이나 취미로 하는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
*수랏상 ; ‘수라상(水剌床)’—> [역사] 예전에, 궁중에서 임금에게 올리는 밥상을 높여 이르던 말.
*인행(因行) ; 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Posted by 닥공닥정
인과 인연 비유2013. 10. 4. 14:22

§(457) 세속적인 정(情)은 담박하게 하고 숙세의 인연은 받아들이되, 정법을 믿고 하심(下心)해야.

 

**송담스님(No.457) - 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67분)법문에서. (용457)

 

약 7분.

 

알게 되면 친하게 되고 친하게 되면 그것이 나중에 한 생각 변하면 원수(怨讐)가 되는 것이여.

그래서 고조사(古祖師)도 원수를 만들고 싶지 아니하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말아라. 사람을 알고 지내면 정(情)이 들고 친하게 되면은 그것이 나중에 원수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 누구든지 웬수처럼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실 분은 안 계시겠지만 인간은 다 정으로 산다 그러지만, 이 정이라 하는 것이 부모 자식간의 정 또 부부간의 정, 그 정이라 하는 것이 참 사람으로서 정이 없을 수가 없지만, 정이라 하는 것이 참 이 고약한 거여.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면치를 못하고, 그런 정 때문에 많은 이들이 신세를 망치고 큰일을 그르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이라 하는 것은 너무 깊이 관여하다 보면 거기에 얽매이게 되는 거여. 얽매였다 하면은 헤어날 수가 없어.

그래서 자식이나 부부를 웬수처럼 볼 것까지는 없지만, 너무 정 가지고 죽고 못살고 그러지 말고, 반(半)만 덜어서 참선하는 데다가 정열을 쏟고, 그저 세속적인 정은 담박(澹泊)하게 사는 것이 좋다 그거거든.

어피차 인생은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있어. 생이별(生離別) 아니면 사이별(死離別) 하게 되어있는 것이거든. 그러니 너무 정을 붙일 것이 못되야.

그저 숙세에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어쨌든지 정법(正法)을 믿고 정심(正心)으로 담박하게 살아갈지언정, 거기에 빠져가지고 헤어나지 못하면 도(道)도 못 닦고 결국은 그것이 육도윤회(六途輪廻)의 근본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그거거든.

그래서 전생(前生)의 업연(業緣)으로 만난 것이 자식이고 아내고 남편이고 그렇거든, 업연으로 만났기 때문에 좋은 일 보다는 근심 걱정 속상한 일이 더 많아 일생을 살다보면,

그러니 내가 지어서 만났고 내가 지은 업연으로 다 받게 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대번에 하루 아침에 탁! 끊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런 용기도 있을 수가 없고 또 그렇게 끊는다고 한다면 가정이 파탄이 되고 큰일나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저 살되,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해 나가면 자연히 모든 일이 다 풀려가는 거여.

속상하는 일이 있어도 그 속상하는 마음을 밖으로 함부로 노출을 시키고, 함부로 표정을 짓고, 함부로 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을 하면 하루도 가정이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니, 속상하고 언짢더라도 턱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스스로 그 마음을 안정을 해 나가도록 해 나가면, 자연히 다 해결되어 갈 것이다 그말이여.

억지로 참는 것, 우선 일단은 참아야겠지마는, 억지로 참고 또 참고 참는다고 하는 것이 능사(能事)가 아니여. 참고 참다가 나중에 그놈이 쌓이고 쌓여서 터질 때에는, 자기도 감내(堪耐)를 못하고 막 일을 저지르고 참 무서운 결과가 오는 것이니까.

참는다기 보다는 그 생각을 돌이켜. 숨을 터억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뭣고~? 몇번만 그렇게 하면 그 치밀어 오르는 놈이 스르르 가라앉게 되거든.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과의 관계, 내게 닥쳐오는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 자연히 거기에서 스스로 하심(下心)을 하게 되고, 스스로 하심을 하면은 만복(萬福)이 다 돌아오는거고,

하심을 못하고 그놈을 진심(瞋心)으로써 모든 것을 해결할려고 하면은 백 가지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생사바다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가 생사의 바다요 우리의 마음속도 생사심(生死心)의 그 바다속이여 바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생사대해(生死大海)인데, 그 생사대해 속에서 정신을 못차리면 죽는 거여.(40분19초~46분5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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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박(澹泊)하다 ; (사람이)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생이별(生離別) ; 혈육이나 부부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만날 기약 없이 헤어짐.
*정심(正心) ; 마음을 곧고 바르게 가짐.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능사(能事) ; 잘하는 일. 또는 쉽게 잘 해낼 수 있는 일.
*감내(堪耐) ; 어려움을 참고 견딤.
*진심(瞋心,嗔心) ; 왈칵 성내는 마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