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부처님의제자들이부지런히신(身)·수(受)·심(心)·법(法)의사염주(四念住)를닦아서탐욕과분심을끊으면정법은영원토록세상에머물러빛나게될것이나, 수행하지않게되면정법은곧소멸하고말것이다』라고하였으며, 여러경전에도『누구나부처님말씀대로닦으면다반드시견성성불한다』하였고,
§(119) 내 공부는 아무도 내 대신해 줄 수 없다 /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참선법을 만났을 때 철두철미 정진해서 생사해탈 해야.
〇어떠한 불보살과 성현과 선지식이라 하더라도 내가 공부해 나가는 방법은 일러주실 수 있지만, 내 대신 공부는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효성스런 제자나 상좌나 아들과 딸이라 하더라도 내 대신 이 공부를 해 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 대신 죽어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엄숙한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〇정법을 만났으되 목숨을 바쳐서 철저히 수행을 하지 아니 한다면 마치 보배가 많이 있는 산속에 들어가서 보배를 찾아서 얻지를 아니하고 빙글빙글 서성대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9)—80년 1월 관음재일 법어(80.01.24) (용119)
약 12분.
경신년(庚申年)을 맞이해서 처음으로 관음재(觀音齋) 법요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지나간 신해년(辛亥年 1971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0월 15일 결제날 설하신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갑인년(甲寅年 1974년)에 열반을 하셨습니다마는 우리는 10년 전에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생생한 육성으로 생존해 계실 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그 법문을 감격스럽게 들을 수가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은 전국 방방곡곡에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들이 녹음 카세트(cassette)를 통해서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또 들을수록에 조실 스님 생존하셨을 때 왜 직접 친견을 못했던가? 또 친견하신 일이 있는 분도 한번이라도 더 친견을 못했던가? 또 생존하셨을 때 좀 더 열심히 정진을 해서 왜 그때 힘을 얻지 못했던가? 이렇게 해서 한탄을 하고 후회를 하신 분들이 수없이 많이 계신 것을 듣고 알고 있습니다.
부모 살아 계실 때에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등한히 하고 불효를 하고, 그러다가 부모 돌아가신 뒤에사 살아 계실 때 효도 못한 것을 한탄을 하고 후회를 하는 사람이 유사 이래(有史以來)로 그러한 말이 전해 내려옵니다.
조실 스님 살아 계실 때에 그때 철저히 정진을 못하고 득력(得力)을 못했다고 한탄하는 분이 지금 적지 않지만, 앞으로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마저도 듣기 어려운 때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녹음기에 녹음되어 있는 것은 앞으로 몇 해를 더 음성이 변하지 않고 존재할런지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마저도 듣지 못할 때, 그때는 참으로 무슨 법문을 듣고 우리가 발심(發心)을 하고 분심(憤心)을 내서 활구참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아직까장은 다행히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오늘 이럭저럭, 내일 이럭저럭, 금년 봄을 이럭저럭, 금년 여름을 그렁저렁 지내다가 한 해 두 해가 가다보면 우리는 차츰 늙어가고 조실 스님 법문마저도 녹음을 통해서나마 듣지 못할 때가 온다면 그때는 누구를 붙잡고 한탄을 할 것인가?
세월은 흐르는 화살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하루하루 기력이 떨어져 가며 머리에는 흰머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내 공부는 내 자신 외에는 아무도 내 대신(代身)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어떠한 불보살과 성현과 선지식이라 하더라도 내가 공부해 나가는 방법은 일러주실 수 있지만, 내 대신 공부는 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효성스런 제자나 상좌나 아들과 딸이라 하더라도 내 대신 이 공부를 해 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 대신 죽어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다’고 하는 엄숙한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진리에 입각(立脚)해서 보면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원래로 없다’고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몸을 받아난 이상 마침내 죽음이라고 하는 엄연한 사실을 도피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이 몸을 잃으면 다시 어느 생에 사람의 몸을 다시 받을 것인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육도윤회(六道輪廻)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사바세계보다는 저 하늘나라는 훨씬 편안하고 즐겁고 아무런 괴로움도 없다고는 하되 거기에서는 도(道)를 닦을 수가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즐겁고 편안해서 도를 닦을 필요도 없고 도를 닦을 마음도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천당(天堂)에 한번 올라가서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또 그것도 괜찮지만, 천당에서 복을 받을 만큼, 자기가 지어 놓은 만큼 다 받으면 다시 인간 세상이나 축생이나 지옥에 떨어지고만 말기 때문에 천당에 갔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안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축생이나 지옥이나 귀도(鬼道)에 떨어지면 너무 괴로워서, 지옥에는 너무 지옥고(地獄苦)가 괴로워서 도를 닦을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고, 축생이 되면 어리석어서 법문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지금 부처님 열반하신 뒤 3천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내서 말세(末世)라고는 하지만, 과거에 무슨 복을 지었고, 무슨 수승한 인연을 지었기에 금생에 받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 법문인 참선법(參禪法), 이 정법(正法)을 만나게 되었겠습니까.
정법을 만났으되 목숨을 바쳐서 철저히 수행을 하지 아니 한다면 마치 보배가 많이 있는 산속에 들어가서 보배를 찾아서 얻지를 아니하고 빙글빙글 서성대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쌀을 구해서 솥에 밥을 지어서 맛있게 지어놨지만 그 밥을 그릇에 퍼서 상에 놓아야 하고, 상에 차려놨지만 숟갈로 떠야 하고, 숟갈로 떴지만 입에다 떠 넣어야지, 입에다 떠 넣으되 그것을 잘 씹어서 삼켜야만 배가 부를 것입니다.
입에다 넣었다고 해서 도로 토해 내버린다면 배가 부를 까닭이 없고 그것을 잘 저작(咀嚼)을 해서 삼켜서 흡수를 해야만 비로소 피가 되고 살이 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났고 정법을 만나서 활구참선을 배우고 듣고 했다하되, 정말 온갖 정성과 힘을 기울여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소홀히 지내 보내지 아니하고 철두철미 정진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깨달음을 얻으며 어찌 생사해탈(生死解脫)을 기(期)하겠습니까.(처음~11분48초)
*관음재일(觀音齋日) ; 매월 음력 24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카세트(cassette) ; ①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를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할 수있도록 만든 녹음기. 원어—카세트 테이프 리코더(cassette tape recorder). ②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 1963년 네덜란드의 필립스사가 개발하였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법문에서) *대신(代身 대신할 대,몸 신) ; 어떤 대상과 역할이나 책임을 바꾸거나 그것을 떠맡아 함. 또는 그렇게 된 새로운 대상.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천당(天堂) ; 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귀도(鬼道) ; 아귀(餓鬼), 야차(夜叉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힌다는, 모습이 추악하고 잔인한 귀신), 나찰(羅刹) 등의 세계를 말한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저작(咀嚼 씹을 저,씹을 작)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기(期)하다 ; 이루어지도록 기약하다.
§(115) 하루하루가 쌓여 무량겁 / 공부하기에 이 사바세계가 적당 / 핑계를 말고 투철한 각오로 수행해야 / 다른 사람 공부에 지장을 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
〇하루가 지나 그것이 쌓이면 한 달이 되고, 그것이 쌓이면 1년이 되고, 그것이 쌓이면 무량겁이 되는 것입니다.
〇절에 와서는 “바뻐서 못 왔습니다. 바뻐서 참선을 잘 못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해도 “아! 그러셨느냐”고, 이렇게 내가 인사로 받기는 합니다. 그러나 염라대왕 앞에 가서는 그런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〇오직 참선을 해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생사 없는 진리, 열반(涅槃)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우리는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대자유(大自由)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전히 일어나는 생각을 그때 그때 단속함으로써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이것이 바로 정법이요 불법인 것입니다.
〇과거에 불보살은 어느 손바닥 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몸을 바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몸을 중생을 위해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성현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그 뜻을 받들어 행한다고 하는 불자로서 어찌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게 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송담스님(No.115)—79년 12월 관음재일 법어(79.12.24)(용115)
약 18분.
금년 기미(己未)년은 앞으로 일주일이면 끝납니다. 이름을 붙여서 기미년입니다. 기미년이 되었건, 경신(庚申)년이 되었건 해는 동쪽에서 떠 가지고 서쪽으로 집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가 지나 가지고 기미년 365일이 지나갔습니다.
앞으로 경신년이 되어도 역시 해는 동쪽에서 떠 가지고 또 서쪽으로 지나갑니다. 꼬박꼬박 하루에 24시간씩이 지나가면 또 그 다음날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경신년 1년이 또 그렇게 지나갈 것입니다. 경신년이 지나면 신유(辛酉)년이 또 돌아올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금생에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 나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왔고 금년부터서 또 내년, 내후년(來後年) 해서 우리는 금생에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또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갈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불보살(佛菩薩)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해 가지고 스스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서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하루하루를 지내 가지고 금년까지 왔습니다.
아직도 이 정법을 믿는 신심(信心)이 철저하지 못해 가지고 또 내년에 또 내명년(來明年)으로 간다면 우리는 금생 일생도 또한 이렇다한 진취(進取)가 없이 일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내생에 다시 또 사람 몸을 받느냐? 축생이 되느냐? 지옥을 가느냐? 천당을 가느냐? 아무도 보장한 사람이 없습니다.
보장한 사람이 없습니다마는 저는 여러분이 정법을 믿고 이렇게 법회에 참석해서 한 말씀이라도 듣고서 부처님의 혜명을 이을려는 그 신심 그것만으로 내생에 또다시 불회상(佛會上)에서 만날 것을 축원(祝願)하고 또 간절히 축원을 합니다마는, 여러분이 과거에 어떻게 닦아 왔으며 금생 일생 동안을 정말 어떻게 닦았느냐에 따라서 내생에 분명 우리가 다같이 한 회상(會上)에서 또 만나게 될 것인가? 여러분 자신들이 정말 깊이깊이 반성을 해보실 필요가 있을 줄 생각합니다.
‘이뭣고?’
그럭저럭 하루를 지나면 그것이 쌓이면 한 달이 되고, 그것이 쌓이면 1년이 되고, 그것이 쌓이면 무량겁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밥도 먹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하고, 몸도 씻어야 하고 또 일도 해야 하고, 누구하고 얘기도 해야 하고, 어디 외출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일 하다가 그럭저럭 방치를 하고 하루를 하는 일 없이 지낸다면 나의 생사 문제는 내 대신 아무도 해결해 주지를 않습니다.
‘그런 일이 바뻐서 못한다’ 이런 핑계를 대신 분은 혹 없으십니까? 그러한 핑계가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는 듣지를 않습니다. 절에 와서는 “바뻐서 못 왔습니다. 바뻐서 참선을 잘 못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해도 “아! 그러셨느냐”고, 이렇게 내가 인사로 받기는 합니다. 그러나 염라대왕 앞에 가서는 그런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그러헌 일은 자기가 과거에 지어 놓은 빚—자기가 과거에 지은 원에 의해서 그러한 숙제를 금생에 가뜩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인간으로서의 숙제 문제고, 영원한 자기의 마음, 자기의 영혼의 숙제는 그러한 일에 핑계 대 가지고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사바세계, 이 말세(末世)라고는 하지만 천상(天上)보다도 더 공부하기에 좋고, 육도(六途)의 어느 세계보다도 공부하기에 적당하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세입니다.
정법을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사바세계가 온통 불구덩이고, 고해(苦海)이고, 그렇게 여겨지겠지만 정법을 믿는 사람은 차라리 천당보다도 더 좋고, 지옥보다 더 좋은 것은 설명할 여지가 없겠습니다.
어째서 천당보다 더 좋으냐? 천당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가 내 마음대로 되고 하나도 내 뜻에 어긋나는 일이 없이 모든 일이 즐겁고 편안하고 좋기만 한 곳입니다.
‘그렇게 좋으면 참 공부하기는 대단히 좋겠구나. 마음껏 먹고, 마음껏 입고, 마음껏 즐기면서 하나도 공부에 방해될 것이 없으니 누워서 떡 먹듯이 공부가 잘될 것이 아니냐’ 혹 그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거기는 너무 좋기만 하고, 너무 내 뜻에 맞는 일만이 있기 때문에 발심(發心)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역경계(逆境界)를 만나야만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역경계를 만나야만 정신을 차리고 분심(憤心)을 내고 신심을 내고, 각오를 새롭게 해서 다시 새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천당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우리의 충격적인 일은 없고 모든 것이 편안하고 즐겁고 좋기만 하니 발심할 필요도 없고, 도를 닦을 필요도 없고, 거기에는 오직 즐거움과 편안함과 안일(安逸)만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것이라도 영원히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또한 무방하겠으나 자기가 복을 지은 만큼 다 받아 버리면 다시 뚝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통장에 예금을 많이 해 놓은 사람이 당분간 돈을 벌지 않고 그놈만 곶감 빼먹듯이 인출을 해다가 잘 먹고 잘 입고 쓰는 동안에는 좋지만 아무리 많은 액수를 예금을 해 놓았다 하더라도 쓰기에 따라서는 금방 바닥이 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어떤 복을 지어서 천당에 간다 하더라도 천당의 복을 누릴 만큼 다 누리면 결국은 바닥이 나서 지옥이나 축생이나 인간에 다시 되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참선을 해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생사 없는 진리, 열반(涅槃)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우리는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대자유(大自由)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전히 일어나는 생각을 그때 그때 단속함으로써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이것이 바로 정법이요 불법인 것입니다. ‘이뭣고?’
삿된 말, 마구니의 말은 즐겨 받아 듣고, 성인의 가르침과 이 정법의 말을 하면은 짐짓 들을려고 하지를 않는다.
‘어디를 가면 병이 낳는다. 어디를 가서 기도를 하면 재수가 대통한다. 어디가서 무슨 부적을 사 가지고 하면은 삼재가 면한다’ 이러한 삿된 소리는 대번에 귀를 기울이고 솔깃하고 무슨 거짓말, 핑계를 대 가지고라도 빠져나가 가지고 거기는 잘들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참선법, 정법을 설하는 법회에는 핑계가 굉장히 많습니다. ‘무슨 날이라 못 오고, 어째서 못 오고, 어째서 못 오고’ 이것은 웃을 일도 아니고, 예수교에서는 일요일마다 가게문을 닫고 전부 다 교회를 가고, 중간에도 무슨 설교가 있다 또는 부흥회가 있다 하면은 밤이고 새벽이고 노상 아주 제백사(除百事)하고 온 가족이 참여를 합니다.
거기에 비교하면 불교를 믿는 신자들은 겨우 한 달에 한번이나 두 번 밖에 없는 법회인데 너무 핑계가 많고, 그 핑계가 결국은 자기 수행하는데까지 핑계를 대서 그 아까운 시간이 하루하루 무료하게 지나감으로서 또 한 해를 넘기게 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도 이렇다한 투철한 결의와 각오가 없이 맞이했다 또 보내고, 맞이했다 보내고 해서 세월만 흘러갑니다.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지 벌써 6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법회 때마다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듣고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많은 감명을 받고 신심이 돈독해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그러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보다 더 혁명적인 정신, 정신에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 줄 생각합니다.
앞으로 해제도 한 20여 일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해제가 있을 수 없지만 우리는 편의상 정월 보름날을 해제날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20여 일 간을 여태까지 결제 동안에 지나온 그러한 정도에 그치지 말고, 보다 더 알뜰하게 한 시간 한 시간,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결제 중에 보살님네 선방에서 크고 작은 일들, 어린이와 같은 철이 안든 일들, 철철이 같은 내용의 비슷한 일들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은 그러한 사건들이 한 건, 두 건 이렇게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보다 더 공부를 잘할 수 있게는 못할지언정,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 공부에 지장(支障)이 있게 한다고 하는 것은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이라면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에 불보살은 어느 손바닥 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몸을 바치지 아니한 곳이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몸을 중생을 위해 버리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성현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그 뜻을 받들어 행한다고 하는 불자로서 어찌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게 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보다 더 채찍을 가하고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 간곡한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내생에 지옥에 떨어져서 ‘그때 그 말을 내가 어째서 깊이 듣고 실천을 안했던가’ 아무리 후회를 하고 한탄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41분23초~58분54초)(끝)
*내후년(來後年) ; 후년(後年 올해의 다음다음 해)의 바로 다음에 오는 해. 곧 올해로부터 3년 뒤의 해를 이른다. *이승 ;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나 일생 동안을 이르는 말.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내명년(來明年) ; 올해의 다음다음 해. 후년(後年)과 같은 말. *진취(進取) ;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함.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제백사(除百事)하다 ; 오직 한 가지 일에만 힘을 쓰기 위하여 다른 일은 다 제쳐 놓다. *지장(支障 가를 지,막을 장) ; 어떤 일을 하는데 거치적거리거나 방해가 되는 장애.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772) (게송)정종소식몰자미~ / 왜 출가를 했는가? / 공부는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있다 / (게송)수행막대빈모반~ / 수행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〇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밥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가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깨달음을 얻느냐,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늙어서 죽음을 맞이하느냐는 거기에 달려있는 것.
〇오늘 여러분께 말씀한 이 두서 없는 말을 깊이 명심하고 다행히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 테이프가 있고,또 산승이 해 놓은 녹음 테이프도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녹음 법문을 들으면서 가정에서나 절에 와서나 선방에 방부를 들이거나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하면 반드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〇그 ‘한 생각’을 착실히 단속을 하므로써 우리는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말고는 인생으로 태어난 본의가 없는 것입니다.
〇받아나기 어려운 인생으로 태어났을 때 정말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이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을 위해서 해 줄 수 없고, 아무리 효심이 있는 아들과 딸이나 며느리가 부모를 위해서 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부 자기 수행(修行)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72)—2015(을미)년 동안거해제 및 백일기도 회향(15.03.05) (용772)
정종소식(正宗消息)은 몰자미(沒滋味)다. 정말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참나’를 깨닫는 이 소식은 몰자미(沒滋味)여, 자미가 없다 그말이여.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다. 이러쿵저러쿵 전혀 재고 따질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은 콱~ 막혀서 나아갈라야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설라야 물러설 수도 없는, 그러한 절대절명(絕對絕命)의 그 자리에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콱~ 막혀서 알 수가 없어.
꽉 막혀서 알 수가 없는 거기에서,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다.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가는 길이 바로 거기에서 있느니라.
오늘은 을미(乙未)년 정월 15일, 지난 삼동(三冬)결제 해제일입니다. 지난 3개월 동안을 어떻게 지냈느냐?
시간 맞춰서 죽비(竹篦) 치면 앉고, 죽비 치면 일어서고, 때 되면 공양하고, 시간이 되면 잠자고, 규칙적인 생활을 아니할라야 안할 수가 없이 했는데, 규칙적으로 그렇게 생활한 것만이 거기에 공부가 다 잘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지냈느냐 한 것은 밖에서 남이 보아서는 알 수가 없고, 자기 자신이 지난 석 달 동안을 지내온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반성을 해보고 관찰을 해봐야 할 오늘이 바로 그 해제일입니다.
안으로 철저하게 본참공안에 막혀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밥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나 포행을 할 때나, 그 화두가 역력(歷歷)하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알뜰히 잡드리를 했는가 안 했는가는 본인이 반성을 해보면 알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시간 맞춰서 규칙적인 생활을 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알맹이가 정말 의단이 독로해서 알 수 없는 대의단이 코앞에 떠억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독로를 했나 안 했나?
그렇게 알뜰히 정진을 해야 정진이 되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데 끄달리고, 귀로 듣는데 끄달리고, 먹을 때는 먹는데 끄달리고, 제 일인 척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는데 끄달리고 그렇게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석 달도 금방 지나가고, 또 다음 철도 그렇게 그럭저럭 지나가고, 그렇게 일생을 지내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를 하고 얼굴에 주름살만 생겨 가지고 머지않아서 죽을 날을 맞이할 수 밖에는 없으니, 그렇게 지내 가지고서는 머리를 깎은 본의(本意)가 과연 무엇이었던가? 무엇을 위해서 부모를 하직하고, 세상을 하직하고 출가(出家)를 했는가?
정말 냉정하게, 엄하게, 철저하게 자기가 지내온 석 달을 양심적으로 반성을 하고 되돌아보아야 그래야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가 결정이 될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어떻게 정진(精進)을 하며 어떻게 생활을 했는가, 그것은 상관없이 시간은 1초 1초, 1분 1분, 한 시간 한 시간이 지나서 금방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하루 24시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이틀이 그렇게 지나가서 공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주름살만 생기면서 죽음을 맞이해서는 출가 본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명색(名色)이 불법을 믿고,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머리를 깎고 중노릇을 한 그 본의를 정말 양심적으로 반성을 하고 지나간 일을 철저히 반성을 하므로써 앞으로 다가올 하루 하루를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를 판단이 날 것입니다.
아깝고 소중한 시간, 그 시간에 따라서 우리는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불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번연히 그것을 알면서도 그럭저럭 지내서는 부모에게 죄송하고, 우리에게 음식과 의복을 조달해 주는 신도 여러분께도 죄송하고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이 자리에는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어린애기와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니가 가득 모이셨습니다. 출가를 한 스님네나 출가를 아니하고 머리를 깎지 않은 신도 여러분이나 우리의 생사(生死) 문제는 똑같습니다. 똑같은 그 생사 문제 때문에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불법을 믿고 출가도 하고 참선을 하는데 자기의 한 시간 한 시간,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알뜰하게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단이 충실하도록 잡드리 하고,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밥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가 독로하도록 잡드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깨달음을 얻느냐,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늙어서 죽음을 맞이하느냐는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니,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정말 생각해 보면은 날마다 회초리를 가지고 자기 종아리를 부르트도록 종아리를 치면서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경책(警策)을 하며 그렇게 단속을 해야만 할 그런 중대사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 자매 도반 여러분! 산승(山僧)이 앞으로 얼마 안 있으면 죽음을 맞이할텐데 앞으로 몇번이나 이런 말씀을 하게 될런지 나 자신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내가 지나온 90년을 반성하고 돌아본 바, 정말 이런 말씀을 여러분께 하고 싶어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한 이 두서 없는 말을 깊이 명심하고 다행히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 테이프가 있고, 또 산승이 해 놓은 녹음 테이프도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녹음 법문을 들으면서 가정에서나 절에 와서나 선방에 방부를 들이거나 정말 알뜰히 단속을 하면 반드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 세계 65억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인생이 전부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 그런 것에 얽매여서, 그런 것이 인생인 줄 알고 다투고 싸우고 몸부림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도반 여러분은 그래도 그러한 인생살이 속에서 그래도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이 자리에 모이셨으니, 제가 이런 말씀을 하게 되는 것을 산승은 고맙게 생각하고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공부라는 것은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오래 앉았다고만 해서 꼭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시간 있으면 가부좌도 하고, 반가부좌도 하고 항상 화두(話頭)를 챙기고, 걸어가면서도 챙기고, 앉아서도 챙기고, 밥 먹으면서도 챙기고, 화장실에 가서도 챙기고 그렇게 단속을 하므로써—지식이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머리를 깎았건 안 깎았건 그것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한 생각’을 그렇게 착실히 단속을 하므로써 우리는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이것말고는 인생으로 태어난 본의가 없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뭐할 것이며, 그걸 가지고 저승에 가봤자 염라대왕이 알아주지도 않고, 명예나 권리나 지위, 부귀가 아무리 하늘을 찌를듯 한다 하더라도, 그것도 인생의 무상(無常)한 속에서 비 오고, 바람 불고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 한 장면에 불과하지, 그것이 나의 진정한 행복도 아니고 인생의 목적도 아닌 것입니다.(처음~15분25초)
수행(修行)을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수행을 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마라. 나이가 들어가면 귀밑에 머리털이 흰머리가 나는데, 금방입니다. 20세, 30세도 휘딱 지나가고 30, 40이 되면 더 빠르고 50, 60이 되면 하루 시간이 20시간이 아니고 10시간도 못 되는 것입니다.
호리신분(蒿裡新墳)이 개소년(皆少年)이다. 공동묘지에 가면은 무덤이 참 많은데, 그 다 노인의 무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년이나 청년이나 어린애 무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젊으니까 돈도 벌고 좀 살아보자. 참선은 늙어서 하자.’ 그런 생각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일실인신기시환(一失人身幾時還), 한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언제 다시 사람 몸을 받아날 것인가? 정말 그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도(六途)! 천당·인간·아수라·지옥·아귀·축생 육도가 있는데 사람 몸으로 받아나서 태어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한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내생에는 축생이 될런지, 아귀가 될런지, 또는 혹 좋은 일도 많이 한 사람은 천당에도 가겠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아귀가 되거나 축생이 되거나 또 지옥에도 가게 됩니다 그 육도 중에 제일 고약한 데가 지옥인데, 지옥에 한번 빠지면 몇억 광년이 지나가야 나올 둥 말 둥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살면서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남을 해롭게도 하고, 사기도 치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는 욕심에 정에 끄달려 가지고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을 수도 있겠으나 그 지은 죄는 하나도 에누리 없이 자기가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몇백 배, 몇천 배로 죄를 받게 되는데, 정말 인생으로 태어나서 - 받아나기 어려운 인생으로 태어났을 때 정말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이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을 위해서 해 줄 수 없고, 아무리 효심이 있는 아들과 딸이나 며느리가 부모를 위해서 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부 자기 수행(修行)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 받기 어려운 사람 몸 받았을 때, 출가 아니한 사람도 속가에서 생활하면서도 이것은 꼭 해야 하는 거고, 더군다나 머리를 깎고 출가한 스님네는 정말 알뜰하고 간절하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정진을 하는 것 밖에는 없어.
이런 말씀을 오늘 해가 지도록 말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정말 앞으로 또 결제날이 올라면은 석 달이 지나야 여름 결제를 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지금 모이신 분을 또 만나게 될런지, 내가 이 세상을 떠날런지, 또는 여러분 가운데도 또 세상을 떠나시는 분도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생사 문제는 정말 무상한 것이니 시간 아껴서 열심히 알뜰히 ‘이뭣고?’를 해주시기를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리면서 더하고 싶은 많은 말을 이 주장자(拄杖子)에다 부탁을 하고 내려가고자 합니다.(박수)(15분26초~22분1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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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권6) '贈淳長老' 사명대사 게송 참고. *정종(正宗) ; 석가세존으로부터 대대로 조사(祖師)들이 연면(連綿)하여 바르게 전해온 바른 종지(宗旨, 근본이 되는 중요한 뜻). 올바른 가르침. 선종에서 자기의 종지(宗旨)를 가리켜 말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미(滋味 맛있을 자,맛 미) ; 자양분이 많으며 좋은 맛. 또는 그런 음식.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절대절명(絕對絕命) : 절체절명(絕體絕命-몸도 목숨도 다 되었다는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궁박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역력(歷歷) ;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본의(本意) : 본심(1. 본디부터 변함없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마음. 2.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참마음)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명색(名色) ; ①어떤 부류에 붙여져 불리는 이름. ②실속 없이 그럴듯하게 불리는 허울만 좋은 이름. *번연히 ; ‘번히(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 따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뚜렷하고 분명하게)’의 본말.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〇「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〇굉지(宏智)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수행(修行) ; ①실천하는 것. 행하는 것. ②오로지 한 생각에만 집중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고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326) 전강 선사의 발심수행 / 억지로라도 노력하면 된다 / (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깨닫는 일이 나의 본업(本業) / 언제나 지금 / ‘딴 생각(別念)’하지 마라.
〇‘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〇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〇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〇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26) - 1987년 3월 첫째일요법회(87.03.01)에서. (용326)
(1) 약 15분.
(2) 약 18분.
(1)------------------
우리가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조실 스님께서 그 어려서 아주 소년시절에 출가를 해 가지고 어떻게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셨던지, 법당 뒤에다가 멍석을 깔고 거기에 방석 하나를 떠억 갖다 놓고서, 가서 공양시간에 공양만 드시고는 바로 나오셔서 그 법당 뒤에 자리에 와 가지고 앉아서 정진하시고, 그러다가 조금만 졸음이 오는 성 싶으면 일어나서 법당 뒤에서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하시다가, 또 잠이 깨지면 다시 또 그 자리에 와서 정진하고, 한 철을 그렇게 한결같이 정진을 하셨습니다.
입선(入禪)·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그저 밥만 한 숟갈 자시면은 바로 그 자리에 가서 공부를 하시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린 것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이거 아주 공부한 척 한다고, 지가 저 며칠을 갈까 보냐고?’ 모다 수근덕거리고 모다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그랬었지만, 하루를 그렇게 하시고, 이틀을 그렇게 하시고 사흘, 나흘, 1달, 2달, 계속 한결같이 그렇게 하시거든.
어떻게 참 철저하게-그것이 일부러 지어서 헐랴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그냥 한목 돈발(頓發)을 하신 것이여. 지어서 한 것 같으면 며칠 하다가 배시시하고 식어버릴 텐데 그것이 아니거든.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이 그렇게 참 신심과 분심이 한목 났는가? 어릴 때 같이 놀고 같이 공부하던 사람이 병이 나가지고 그래 가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 정든 친구, 같이 뛰놀고 공부하던 친구가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서 거기에서 결국은 발심(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그 친구가 죽은 뒤에 꿈을 꾸셨는데, 지옥 구경을 하시는 꿈을 꾸었어. 사람을 갖다가 톱으로 썰어서 죽이는 거 또 큰 맷돌에다가 사람을 콩나물처럼 여러 명씩을 집어넣으면서 맷돌을 들들들들 돌리니까 사람이 거기서 뼈와 살과 창자가 짓이겨져서 핏물이 꿀꿀꿀 쏟아지는 그런 광경하며. 그 지옥 구경을 하시고서 놀래서 꿈을 깨셨는데, 꿈을 깨가지고도 그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콧전에서 사라지지 아니하셨다 이거거든. 그런 꿈을 꾸시고서 대발심(大發心)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어떠한 계기를 만나서 그런 발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상(無常)을 느낀다든지,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 흥망성쇠와 생사고뇌 속에서 가정에서나 또는 이웃친구나 그러한 인간의 영욕득실 경계에서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계기를 만나가지고 발심을 해야, 그래야 참 분심이 솟구쳐 오르고 공부를 해도 억지로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께서는 어려서 경을 배우시다가 그만 두어버리고 선방으로 나오셔서, 그때 선방에 나오신 수좌(首座) 가운데에 제일 나이가 어리셨다고 하니까, 그 어린 나이에 출가하셔 가지고 무섭게 정진을 해서 결국은 코에서 피가 쿨쿨 선지피가 넘어오고 그래도 공부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그때 앉는 자세라든지 또는 호흡하는 법이라든지, 화두를 드는 법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상하게 지도하신 스님이 있었다면 그렇게 피가 넘어오지 않고도 이 공부를 잘 하실 수가 있었을 텐데, 그러한 분을 만나지를 못해가지고 그 신심과 분심이 복받쳐 오르는 바로 그것으로 화두를 맹렬히 들고 막 부셔나가다 보니까,
그냥 그렇게 기(氣)가 상충(上衝)해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어서, 그렇게 피가 목구멍으로 나오고 콧구멍으로 나오고 해 가지고 하룻밤 지나고 나면은 턱밑에 가슴에 피가 아주 그냥 흘러내려 가지고 멍어리가 지고, 눈알은 벌게 가지고 충혈(充血)이 되고,
그래도 ‘내가 금생에 도(道)를 이루지 못하고 100세를 살면 뭐하느냐. 내가 공부하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공부를 내가 그만 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마침내 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 그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전라남도 곡성(谷城) 태안사(泰安寺)를 가시는 도중에 개천을 건너면서, 그 돌로 이렇게 징검다리를 놓은 거기를 건너시다가 거기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를 하신 것입니다.
『운무(雲霧) 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하면 소를 찾겠는가?』 불현듯 그 생각이 나시면서 『담 너머 외 따오너라.』 ‘외’라고 한 것은 ‘오이’를 말한 것입니다. ‘담을 넘어가서 오이를 따오너라.’ 그 생각이 떠억 떠오르면서 그 심안(心眼)을 뜨셨는데, 그길로 태안사에 들어가 가지고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고,
이 법당 앞에서 오줌을 출출출출 누니까, 주지 스님이 나와 가지고 법당 앞에다 오줌 싼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님 앞에서 오줌을 눈다고 호통을 치니까, 『부처 없는 곳을 일러라!』 이렇게 조실 스님께서 대들었습니다. 『요새 수좌 놈들이 건방진 놈의 자식들. 당장 가라!』해 가지고 아침도 못 얻어 잡숫고 쫓겨났다고 그런 일화가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라 하는 것은 그렇게 발심이 되어야 하고, 발심이 되어서 헐 때에 정말 그때 참 잘 단속을 하고 공부를 몰아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면 다시 또 생각을 아무리 가다듬고 할라고 해도 억지로는 힘만 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러한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경계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역경계(逆境界)인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또는 육체상으로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나, 가정적으로나 또는 사회 무슨 사업관계로나 도처에 우리가 발심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수없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계기를 거기서 놓치지 말고 거기서 돌이켜 나간다면, 우리는 조실 스님과 같이 정말 발심을 하게 되는 것이고 발심이 되어야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발심이 안 되고 ‘참선이 좋다 하니까 나도 좀 해볼까’ 이러한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억지로 하는 것은 그것은 흉내내는 것 밖에는 안 되고, 흉내도 또 안 내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마는,
옛날에 원숭이가 산중에서 이리 뛰놀고 저리 뛰놀고 하다가 그 산중에 숲속에서 참선하시는 스님을 보고서 그 원숭이도 그렇게 그 스님의 흉내을 내서 떠억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 지가 무슨 참선이 무엇인줄 알겠습니까? 원숭이란 놈은 원래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짐승이라, 스님이 참선하고 있으니까 저도 그와같이 흉내를 내고 앉어.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출가해서 참선을 해가지고 도과(道果)를 이룬 것이 그게 바로 독성(獨聖)님이라 그런 것입니다.
잠시 흉내만 내는 인연으로도 그렇게 도과를 이루거든, 사람으로써 참선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기도 좀 아침·저녁으로 해 보기도 하고, 또 토요일에 철야정진하기도 하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아! 그것도 쉬지 않고 애를 쓰다 보면 언젠가는 헐랴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그냥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독로(獨露)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다행이 그러한 어떠한 경계를 만나서 신심과 분심이 돈발한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런 경우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자꾸 할라고 노력을 하고, 시간을 정해놓고 노력을 하고, 기회를 만들어서 노력을 하고, 방부를 들여서 노력을 하고, 또 이 선학원이라든지 그밖에 일요선방이라든지 그런데 가서도 할려고 노력을 하고, 가정에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1시간~2시간씩 하고 생활 속에서도 자꾸 할려고 노력을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히 분발(奮發)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할 것은 이것 밖에는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은 결국은 진발심(眞發心)이 되는 것이니까, 이 세상에 할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명예나 부귀·공명,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시 꿈꾸는 것에 지내지 못해여. 산더미 같은 재산을 모여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온 세상을 다 차지할 만큼 큰 부자라도 한 푼 가지고 가지를 못하고, 명예나 권리가 하늘을 뻗지른다 하더라도 10년 20년을 넘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閻羅大王)은 하나도 그것을 두려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23분36초)
빈궁치천부생교(貧窮致賤富生驕)로구나. 가난하고 빈궁(貧窮)하면 천(賤)하게 되고 부자가 되면 교만(憍慢)이 생겨.
사업에 실패해서 재산이 다 없어져 버리고 가난해지면 스스로 아주 천둥이가 된다 그말이여. 기를 피지 못하고 기운이 없고 살맛이 없고 어디 친구도 만나기가 싫고. 그러다가 사업이 잘되어서 돈푼 벌고 좋은 집을 살고 여유가 생기면 교만이 생겨. 남을 업신여기고 아주 자기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처럼 으시대고. 그런데,
등시무명화자소(等是無明火自燒)여. 가난해서 천하게 느껴지거나, 부자가 되어 가지고 교만심이 나거나, 다 같이 무명(無明)의 불로써 자기가 자기를 태워 죽이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숙홀보연전도전(焂忽報緣顚倒轉)이여. 그러다가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이승을 하직하고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는데, 부자라고 했다고 해서 더 알아주지도 않고, 가난했다고 해서 동정을 받지도 못해.
방지일점불상요(方知一點不相饒)여. 염라대왕 앞에 턱 끌려가고서야 비로소, 하! 가난하고 부자고 그래봤자 그거 한 점(點)도 소용이 없다고 한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생사없는 도리, 무위·무위법(無爲法)은 가난한 사람도 가난할수록에 이것을 해야 천둥이가 안 되는 거고, 명예와 권리가 있고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교만심을 낼 것이 아니라 이 무위법-참선(參禪)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설사 가난해졌다 하더라도 천둥이가 되지를 않고, 사업이 잘되어서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남을 업신여기고 교만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부자고 한 것이 잠깐 꿈속에서 가난뱅이가 되고 꿈속에서 부자가 된 것뿐인대, 꿈속에서 가난해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해질 까닭도 없고, 꿈속에서 무슨 대갑부(大甲富)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교만을 낼 건덕지가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것이라는 하는 것은 이 무위법-흥망성쇠와 희로애락과 빈부귀천과 이 생노병사 속에서 생사가 없고 교만하고 천할 것도 없고 하는-이 참선법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니 해 놓으면 천상 천둥이가 되었다가 교만을 부렸다가 허면서 꿈속에서 결국은 지옥 갈 채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하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인데, 아무 소용도 없다면 결과도 아무 소용이 없으면 괜찮하겠는데 결과적으로는 지옥 갈 준비를 한 것 밖에는 안 돼.
그래서 부자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이뭣고?’를 하고, 병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죽을 고비에 든 사람도 ‘이뭣고?’를 해야 하고,
오직 이것,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 이 무위의 이치를 깨닫는 이 한 일에 나의 본업(本業)을 삼고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바칠 때에,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이 거기에 있고 참다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겪고 다 겪을 대로 겪어놔야 겨우 그때사 조금 ‘그렇구나’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겪는 것을 보고도 내가 그것을 깨달아버려야 하는데, 자기가 남하는 것은 예사로 보고, 자기가 겪고 겪을 대로 겪고 난 뒤에사 겨우 조금 ‘아하, 그렇구나’하고 느끼는데 그것도 오래가지를 못하고 금방 또 다시 경계(境界)에 끌려가고 경계에 속게 되는 것입니다.
‘행여나 이제는’하고 자꾸 바래고, ‘이번만 지내고 이 다음부터서 해야겠다’하고 자꾸 뒤로 미루고, 다른 것은 뒤로 미룰 수가 있지만 이 생사 문제, 일대사 문제는 뒤로 미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녀와 노소와 지식의 유무와 빈부귀천 그걸 가리지 말고 금생에 이 사람 몸뚱이 받았을 때 철저하게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늙어서야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어서도 많이 죽습니다. 어려서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니하면 영원히 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부터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돌아오는 여름부터서 해야겠다 그것도 안 되고, 내일로 미뤄도 안 되고, 오늘 저녁으로 미뤄도 안 되고, 지금! 언제나 지금부터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법당에 앉아계실 때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법당에서 나갈 때는 나갈 바로 그때, 앉았을 때는 앉았을 때 하고, 일어섰을 때는 일어섰을 때 하고, 걸어갈 때는 걸어갈 때 하고, 언제나 지금이거든.
사실은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에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지금이라고 할 때 시계바늘은 벌써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란 시간도 우리는 붙잡을 수가 없고, 다맛 ‘이뭣고?’ 뿐입니다.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1초 1초 생각 생각이 ‘이뭣고?’거든.
공부가 처음에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또 화두드는 법을 배워서 해보면 처음에는 곧잘 잘 된 것 같애.
그런데 한달 두달 석달 해가다 보면 영판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이렇게 해 갖고 될 것인가 새삼스럽게 회의심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보면은 모다 참선한다고 하지마는, ‘참말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見性)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된가. 에이 해봤자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낸들 될 것인가’ 이렇게 해서 스스로 의심하고 자포자기를 하고.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할라고 할수록에 뭔 일이 자꾸 사건이 생겨. 집안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자손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일신상에 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병이 나기도 하고, 무슨 근심 걱정거리가 생기기도하고, 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되어간다 싶으면 꼭 무슨 사건이 일어나거든.
이것이 다 우연한 일이 아니고 ‘공부를 잘해서 도를 이루게 되면 제일 그것을 싫어한 사람이 누구냐?’하면 마군(魔軍)거든. 마군이는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멸망을 하게 되거든. 도인(道人)이 하나 태어남으로 해서 마군이가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 마치 대한민국이 모든 것이 잘 되어가면은 제일 싫어한 것이 이북의 공산당이거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치거든.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잘되고 세계적으로 훌륭해지면 자기네 설자리가 없어지거든. 결국은 전 이북(以北) 동포들이 이남(以南)이 행복하고 잘 살고 한줄 알면 전부 대한민국을 그리워하고 모두다 38선을 넘어오게 될것이고 전부 자유통일이 되기를 바라게 되면, 그 공산정권은 아무리 무섭게 탄압을 한다해도 결국은 전 백성이 민주주의를 원하고 전 백성이 대한민국을 그리워한다면 이북 공산당 무너진 것은 그건 참 봄이 돌아와서 얼음 녹듯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그것을 다 증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치하에서 그렇게 무서운 탄압을 해서 그렇게 모다 서로 감시를 시키고 꼼짝을 못하게 하고 여행도 못하게 해도 전 백성이 자유을 원하고 민주주의를 원하고 그렇게 되면은 그 정권은 오래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인심(人心)이 천심(天心)’이라고 모든 백성이 한결같이 바래면 그것이 바로 하늘의 마음이요 우주의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 닦는 불자(佛子)도 열심히 도를 닦으면, 마군이가 여러 가지 각도에서-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코를 통해서, 입을 통해서, 몸뚱이를 통해서, 우리의 심식(心識)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갖다가 현혹을 시키고 유혹을 하고 방해를 놓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군이의 현혹에 우리가 흔들리지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육근(六根) 문 뒤에서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잠깐 딴 생각 먹고 한눈을 팔면 바로 그 구멍을 통해서 마군이는 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1분 1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그 ‘딴 생각(別念)’이라 하는 것은 명예에 대한 딴 생각, 권리나 부귀영화나 오욕락이나 그런것도 물론이지만, 가장 우리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 있어서는 ‘빨리 깨달으리라’하는 그런 생각, 누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기를 바래는 생각, ‘이렇게 해 갖고 이 공부가 깨달을 것인가?’ 그러한 생각, 또 공부해서 조금 득력(得力)을 해서 화두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면 ‘아! 좋다’고 하는 생각, 조금 얻은걸 가지고 만족하는 생각, 이런 것들도 오히려 세속의 그런 명예·권리·재산 그런 것에 대한 생각보다도 더 무서운 생각이 바로 이러한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선지식(善知識)을 여의지 않고 좋은 도반(道伴)을 여의지 아니하고 같이 정진을 하면 자연히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킬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8분28초~41분2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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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상충(上衝) ; 위로 치밀어 오름. *멍어리 ; ‘멍울(우유나 풀 따위 속에 작고 둥글게 엉겨 굳은 덩이)’의 사투리.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심안(心眼) ; 마음의 눈. 지혜.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전강 선사 오도송(悟道頌).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刊 p23.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가부좌(跏趺坐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도과(道果 길·불교 도,결과 과) ; 불도(佛道) 수행의 결과(結果). 깨달음. 열반. *독성(獨聖) ;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였다고 하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함.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분발(奮發 떨칠 분,꽃이필·이룰 발) ; 마음과 힘을 다하여 기운을 내어 떨쳐 일어남.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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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빈궁치천부생교~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三十'에서 '警世卄二首' 게송 참고. *致(치)이루다. 이르다. 도달함. *賤(천)천하다. 신분이 낮다. *驕(교)교만하다. 자만함. *燒(소)타다. 사르다. *焂(=倏)(숙)갑자기. *忽(홀)문득. 갑자기. *饒(요)넉넉하다. 너그럽다. 풍요. 여유. *點(점)점. 작은 흔적. 작은 조각. *빈궁(貧窮) ;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교만(憍慢) ; 자신이나 자신의 행위에 도취되어 일으키는 거만함을 교(憍),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일으키는 거만함을 만(慢)이라 함. *천둥이 ; ‘천더기(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 또는 그런 물건)’의 사투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무위(無爲) ; ①(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 팔리어: asavkhata) 무위(無爲)는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이 없는 것으로 유위의 대(對)가 되며, 조작되지 않은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세계, 즉 생멸변화를 떠난 절대적이며 항상 존재하는 진리 또는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②온갖 분별이 끊어진 마음 상태.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③참학(參學)의 일대사. 절대의 수행이라는 것. 일대사는 수행의 목적으로 말하면 ‘깨닫는 것’이고, 실천으로 말하면 ‘참선(參禪)’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間’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 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행여나 ; [주로 부정문이나 반어 의문문에 쓰여]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행여(幸-)’를 좀더 분명하게 이르는 말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 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고] ‘딴 생각(別念 별념)’에 관한 [몽산법어] (용화선원刊)에 있는 글. 〇“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몽산법어]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64-166.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복포사아귀(腹飽思餓鬼)하고 신안염지옥(身安念地獄)이다. 배부르고 등 따실 때에는 아귀(餓鬼)를 생각을 하고, 아귀는 물 한 방울만 먹어도 목구녁이 맥혀서 불이 나고, 밥 한 숟갈만 먹어도 목구녁이 맥혀서 불이 나서 타 죽습니다.
아귀는 어떻게 생겼냐 하면은, 목구멍은 머리카락만한 실낱 끝 목아지고, 배는 산등이만 해 가지고 배는 항시 고픈데, 먹으면 목구녁이 실낱 끝 목아지라 아무 것도 넘어가지를 않아 목구녁이 맥혀서 타 죽고. 그런데 배는 큰 태산만 해 가지고, 그러니 배부른 때가 없어서 항시 배가 고파.
뭣만 배가 고파서 먹었다 하면은 목구녁이 콱 맥혀서 불이 나서 죽고, 죽자마자 금방 또 아귀로 태어나고, ‘장구통 배아지에 실낱 끝 목아지’가 이 아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배부르고 등 따시고 잘 살지마는, 도(道)를 닦지 아니하고 그럭저럭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속에 빠져 가지고 이렇게 살다가는 머지않아서 아귀가 될 것이다’하는 것을 생각을 허라 그말이여.
신안염지옥(身安念地獄)이요. 몸이 편안할 때에는 그 편안한 데에 빠져 가지고 그렇게 지내지 말고, 지옥고(地獄苦) 받을 일을 생각을 허라 그말이여.
우선 잘 먹으니까 배가 부르나 지옥에 갈 것이 두렵고, 우선 몸이 편안해서 좋기는 좋으나 그럭저럭 이렇게 편안히 살다가는, 지옥에 갈 것을 한번 생각해 봐라 이거거든.
인생행락처(人生行樂處). 인생으로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입고 그렇게 이럭저럭 즐겁게 지내다가는,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에서 눈 한번 감아 버리면,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세(來世)다 그말이여. 내세의 지옥 아니면은 아귀도에 떨어질 것을 생각을 하라.
고인(古人)이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탐진치 삼독에 얽혀서 배불리 먹고, 등 따시게 자고 편안히 살다가, 어언간(於焉間)에 지옥이나 아귀도에 떨어질 것을 경계(警戒)해서 읊어 주시는 게송이었습니다.(86분38초~91분12초)(끝)
*(게송)‘복포사아귀(腹飽思餓鬼)~’ ; [청허당집(清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143 ‘응선자(應禪子)에게 주면서 신수사미(神秀沙彌)에게도 보임’ 게송 참고. p57 ‘탄서(歎逝)’ 게송 참고. *어언간(於焉間) ;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경계(警戒) ; ①뜻밖의 사고나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여 단속함. ②잘못이 없도록 미리 타일러서 주의하게 함.
*결제(結制맺을결/만들·법도제) ; 안거(安居)에들어감. 하안거는음력 4월 15일에, 동안거는음력 10월 15일에들어간다.
*정사(精舍) ; vihara. 수행승들이머물면서불도(佛道)를닦는집. 사원. 절.
*한데 ; 사방(四方)과하늘을지붕이나벽따위로가리지않은자리.
*안거(安居편안할안/있을거) ; ①인도의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간우기(雨期)때에외출하면풀이나나무,작은곤충을모르고밟아죽일까두려워했고그래서동굴이나사원에들어가서수행에전념했다. 이것을우안거(雨安居)라고한다. ②선종(禪宗)에서는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다음해 1월 15일까지를동안거(冬安居)라고해서각각 90일간사원에서머므르면서외출을금지하고, 오로지좌선을중심으로한수행에전념한다. 처음을결제(結制), 끝을해제(解制)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