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입춘기도)2024. 3. 27. 17:27

§(161) (게송)철수화개별시춘~ / 진묵겁전(塵墨劫前)에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 / 진실하고 참된 마음을 가져야 업장(業障)이 소멸 / 입춘법회의 의의 / 탐진치, 오욕락을 비우고 자기의 참마음을 깨닫도록 지도하는 가르침이 정법이고 최상승법.

바른 법을 참되게 믿고 올바르게 실천하면 자연히 업장소멸이 되어 소원성취를 이룬다 / 함경도 사람의 좁쌀 공양(供養) / '사바세계' 뜻은 '참는 세계' / 어려운 고통, 난관에 부딪칠수록에 거기에서 더 발심해야 / 끝까지 쉬지 않고 공부하면 결국은 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야만 마는 것.

**송담스님(No.161)—1982년 입춘 법회(82.02.04) (용161)

 

(1) 약 21분.

 

(2) 약 21분.


(1)------------------

철수화개별시춘(鐵樹花開別時春)이요  사해향풍종차기(四海香風從此起)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본래성불비타득(本來成佛非他得)이요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철수화개별시춘(鐵樹花開別時春)이요, 쇠나무, 쇠로 된 나무에, 고목(枯木)나무에 꽃이 피니 별단(別段) 이 봄이요, 차디찬 쇠로 된 고목나무에 꽃이 피니 이 특별한 이 봄이다.
사해향풍(四海香風)이 종차기(從此起)로구나. 동해, 동서남북 사해(四海)에 향기로운 바람이 이로부터서 일어나는구나.

오늘은 임술년(壬戌年) 입춘일(立春日), 날입니다. 벌써 임술년 정월 초하루가 지내간 지 열하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춘은 오늘 오시(午時)에 입춘(立春)이 들었습니다. 오늘 오시부터 정식으로 임술년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지나간 열흘 동안은 신유년(辛酉年)의 절후(節候)가 먹은 것이고 오늘부터서 정식으로 임술년이 된 것입니다.

지난 삼동(三冬)에 소한(小寒) 대한(大寒)에 그 강추위가 오늘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날입니다.
천하 없이 추운 겨울이라 하더라도 입춘부터서는 맥을 추리지를 못하고, 하루하루 조끔 추웠다 더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보름이 지나가면, 15일간이 지나가면 또 우수(雨水)가 돌아와서 따듯한 봄날이 되고 여기저기서 꽃이 피게 됩니다.

본래성불(本來成佛)이 비타득(非他得)이여. 우리가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고향(故鄕)을 떠나서 타관(他官)살이를 했는데, 그 타관살이 하는 것이 마치 자기 따뜻한 자기 고향에 자기집을 여의고, 춥고 배고픈 세월을 보낸 것이 그동안에 엄동설한(嚴冬雪寒)을 지낸 거와 같애.
그런데 육도윤회(六道輪廻) 속에서 고향을 잃고 방황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자기 고향을 한 걸음도 떠나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진묵겁전(塵墨劫前)에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마치 평생 동안 먹고 쓰고 남을 보물을 몸뚱이 안에, 옷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춥고 배고픈 그러한 거지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본래성불(本來成佛)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잊어버리고 망각(忘却)하고 오늘날까지 윤회(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본래성불한 도리를 어떻게 하면은 깨달을 수가 있느냐?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다. 마음 하나 참되면 이것이 바로 도(道)와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조석지변(朝夕之變)이여. 아침 먹었던 마음 다르고 벌써 낮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고.
'이제는 내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철저하게 이 참선(參禪)을 하리라' 법문(法門) 들을 때에는 그렇게 결심(決心)을 하고, 해 놓고서도 법문이 끝나고 문밖에 나가면 벌써 딴생각이 들어오고.
법문 들을 때에는 '다시는 내가 딴생각을 먹지 아니하고 오직 이 정법(正法)만을 믿고 정법에 의지해서 살아가리라' 그렇게 굳게굳게 결심을 하고서도 집에 가면 누가 뭐라고 뭐라 하고, '어디를 가면 좋은 아주 기가 맥히게 잘 맞추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 가서 부작(符作) 하나만 가지면은 백사(百事) 소원(所願)을 성취한다' 그 말 한마디만 들으면 금방 귀가 솔깃해 가지고 당장 따라나서.

만약에 부작 한 장을 어디 가서 얻어 가지고 그 부작 하나로 해서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소원이 성취된다면 무엇을 이 세상에 걱정할 것이 있겠느냐 이 말씀이여.
부작으로써 업장을 소멸하고, 부작으로써 소원을 성취하고, 부작으로써 남편의 바람피우는 것을 막고, 아들 대학을 합격을 하고, 부작 한 장으로써 그러한 무서운 위력(威力)을 낼 수가 있다면, 만신이나 무당이나 점쟁이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하고 앉었겠느냐 그 말이여.
먼저 자기부터 팔자를 고쳐서 자기 자식이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만석꾼이도 되고 하지, 자기는 왜 그 짓 해서 먹고살면서 남에게 써준 것은 그렇게 되고, 자기는 그렇게 안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 일이냐 그 말이여.

마음이 참되지를 못하고 요망(妖妄)하고 삿되고 경박(輕薄)해서, 참된 말, 진리(眞理)의 말, 최상승법을 일러주면은 그 말이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지를 못하고, 간사(奸詐)한 말을 들으면은 그 말이 그렇게 고소하고 쏙쏙 마음에 들어가요.

오늘은 입춘날이라 인 · 오 · 술(寅午戌), 범해에 난 사람, 말해에 난 사람, 또 개해에... 개띠, 이 세 가지 띠를 가진 사람은 오늘이 삼재(三災)가 나가는, 금년(今年)이 나가는 해입니다. 그 '날삼재'라 해서, 그러께는 '들삼재', 작년에는 '앉은삼재', 금년이 인자 '날삼재'인데,
'날삼재가 진짜 조심을 해야 한다. 날삼재 일 년간을 잘 넘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 신령스러운 부작을 꼭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유혹을 하는데, 들삼재 · 앉은삼재 · 날삼재, 그런 삼재에 안 들은 사람도 뜻밖에 재난(災難)을 만날 수도 있고, 삼재가 든 사람도 그런 부작을 지니지 아니해도 별 탈 없이 지낸 사람도 있고 그러한 것이지,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무슨 좋지 않는 일이 있고, 그 부적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꼭 면(免)한 것이 아니거든.

어디 교통사고가 나서 여러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의 호주머니 속에서 그 여러 가지 부적(符籍)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 것이 연전(年前)에 내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데, 부작(符作)에다가 의지를 하지 말고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자기 마음을 진실(眞實)하게 갖고 참되게 마음을 가져 나감으로써 마음속에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해야 모든 재난(災難)을 면할 수가 있고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고요할 때에 생각해 보면 누구나 납득이 갈 수 있는 얘깁니다.


해마다 입춘이 되면 입춘 법요식(法要式)을 갖고 법문(法門)을 하고 또 공양(供養)을 올리고 축원(祝願)을 하고 이럽니다마는, 왜 입춘에 삼재(三災)풀이를 하고 또 입춘에 이 법요식을 갖느냐 하면, 입춘 날부터 새해의 절후(節候)가 정식으로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날짜로는 정월 초하루가 그 해의 시작하는 첫날이지만, 입춘(立春) 우수(雨水) 경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 입하(立夏) 소만(小滿)... 일 년을 스물네 가지 절후(節候)로 나눌 때,
절후로 따질 때에는 입춘일(立春日)이 그 해의 첫날이 되기 때문에, 첫날에 지나간 한 해를 반성(反省)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일 년간을 장애 없이 평화롭게 행복하게 뜻있는 한 해가 되도록 각오를 하고 마음을 다지는 그러한 날로 기념하기 위해서 절절이 입춘에 법요식(法要式)을 갖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고, 집을 하나를 지을 때에도 기공식(起工式)이라 하는 게 있고, 그 집을 다 짓게 되면 낙성식(落成式)을 하듯이, 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처음 탄생할 때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해마다 그 생일을 축하하고, 또 마지막 일평생을 살다가 하직한 날을 갖다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서 돌아가신 날을 추모(追慕)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일 년이 시작하는 날과 일 년이 끝나는 날은 언제나 마음을 가다듬고 반성을 하고 참회(懺悔)하고 새로이 뜻을 다져 나간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고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서 여행을 떠날 때에도 처음 한 발 내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북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출발을 남쪽을 향해서 출발을 하면 천리만리 엉뚱한 데로 가게 되고.
'천 리 길도 한 걸음으로부터' 라고 하는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그 한 걸음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종교를 믿을 때에도 맨 처음에 어느 종교 어느 종파(宗派)에 발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평생의 종교와 신앙이 결판이 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부처님을 모시면 다 마찬가지다. 부처님은 어느 절이나 한 부처님이다' 만신 집에 가도 부처님은 모셔져 있고, 무당집에 가도 부처님은 모셔 있고, 유사 종교(類似宗敎) 단체에도 가면 부처님이 다 모셔져 있어서, 부처님은 다 한 부처님인 줄 알고 지성(至誠)으로 다니지만,
다, 물론 말로는 한 부처님이고 같은 부처님이지만, 그 같은 부처님을 '어떻게 받들어 모시고 어떻게 실천해 나가느냐'는 절마다 다르고, 무당 다르고, 만신 다르고, 점쟁이 다르고, 다 다른 것입니다. 이름은 다 불교라 하지마는 그 종파에 따라서 그 '부처님의 법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용화사(龍華寺)는 참선법(參禪法)을 선양(宣揚)하고 최상승법이여. 용화사가 제일이고 다른 절은 못쓴다' 그러한 말이 아닙니다. 좋고 나쁘고, 그 정법(正法)이고 또는 방편 사법(邪法)이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각자가 보고 들어보면 스스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사법(邪法)이고, 정법(正法)이냐?

그것은 그 종교를 믿음으로 해서 중생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과 오욕락(五欲樂)을 조장(助長)을 시키는 그러한 종교는 바른 법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종교를 믿음으로 해서 삼독심을 버리고, 오욕락을 버리고, 버린다기보다는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을 추구하는 마음을 돌이켜서 그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해서 마음을 비우는, 비움으로 해서 자기의 참마음을 깨닫도록 지도하고, 그 신앙을 가짐으로 해서 마음이 그렇게 되는 그러한 가르침은 그것을 정법(正法)이라 하는 것이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 종교를 믿으면 병이 낫는다. 그 종교를 믿으면은 부자가 된다. 그 종교를 믿으면 아들을 난다. 그 종교를 믿으면 중생의 어떠한 욕구를 충족을 시켜준다' 이러한 식으로 선전을 하고 그러한 달콤한 낚숫밥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종파는 물어볼 것도 없이 삿된 종파다. 삿된 종교라고 결정을 해도, 판단을 해도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입니다.(처음~20분48초)




(2)------------------

'그러면 다른 종교 다른 종파에 가면 부자도 되고, 아들도 되고, 모든 소원을 성취된다 하고, 용화사는 가 봤자 그러면 그런 것은 소용이 없고 이뭣고? 만 하지, 그러면 부자도 안 되고, 만날 해 봤자 소원도 이루지 않단 말이냐?' 혹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러한 것을 그 신앙의 목적을 삼고, 자기가 그 종교를 실천하는 목적이 거기에 있다면 벌써 믿는 그 사람 자체가 훌륭하지를 못한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 올바른 실천으로 여법(如法)하게 도(道)를 닦아가면, 자연히 마음속에 업장이 소멸이 되고 마음이 청정해져서 불보살(佛菩薩)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무슨 소원을 성취를 못할 것이냐 이 말씀이여.
큰 목적을 설정을 해서 지혜(智慧)와 용기와 인내와 신심으로 여법하게 도를 닦아 나가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재산이건 권리건 명예건 건강이건 제절로 이루어진다면 그 이상 바랠 것이 무엇이 있느냐 이 말씀이여.

명색이 종교를 믿는다면서 미신(迷信)으로 종교를 믿는다면, 어디다가 내놓고 '나는 종교를 믿는다'고. '나는 무슨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떳떳하게 말할 수가 있겠느냐 이 말씀이여.
무당집이나 다니고, 만신집이나 다니고, 점이나 치러 다니고, 그래 가지고 어디 가서 '나는 만신을 믿고 산다. 나는 무당을 믿고 산다. 그랬더니 이렇게 부자가 되았다' 떳떳하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이나 딸에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친구 앞에 그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보살(佛菩薩)의 바른 법을 참되게 믿고 올바르게 실천을 해야만 자기도 떳떳하고 남편 앞에도 떳떳하고—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 몰래 만신을 불러서 푸닥거리를 하고, 만신한테 비밀리 왕래를 하고 그러지, 떳떳하다면 왜 말을 할 수가 없습니까?
얼마든지 남편과 같이 와서 법문을 듣고, 같이 와서 참선을 하고, 같이 참선을 도반(道伴)으로서 해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입춘에 좋은 부작 한 장 주지 아니하고, 할 말 없으니까 공연히 마음 닦으면 죄가 소멸이 되고 소원을 이룬다' 이렇게 생각하실 분은 한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저 옛날에 함경도 사람이 과거(科擧)를 보기 위해서 서울로 향해서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머나먼 길을 걸어서 가자니 그것도 중간에 도적을 만날까 걱정이 되고, 또 그 머나먼 길을 가 가지고 또 과거에 합격이 안 되면 안 되겠다 해서 좁쌀을 한 되를 싸 가지고 그 부처님 모셔져 있는 절을 찾아갔습니다.

부처님 앞에 좁쌀을 떠억 올려놓고서, 담뱃대를 손에 든 담뱃대를 들고 부처님 앞에 꺼떡꺼떡하면서, "부텨!" 그 함경도 사람은 부처를 '부텨'라고.
"부텨! 내 말 좀 잘 듣게. 내가 오늘 과거를 보러 가는데, 이번에 꼭 과거에 붙게만 해 주면 이다음에 이밥도 내가 갖다—그 쌀밥을 '이밥'이라 그러거든—이밥도 내가 갖다가 또 올릴 테니까 이번에 내가 꼭 과거에 붙게만 해 주게"

몇 번을 그 담뱃대를 흔들면서 간곡히 부탁을 하고 그리고서 과거를 보러 올라갔다가, 물어볼 것도 없이 낙동강 오리알 떨어지듯이 과거에 떨어졌는데, 떨어지자마자 인자 고향으로 내려와 가지고 다시 그 절에 찾아가서,
"내가 그 귀한 좁쌀을 갖다가 올려놓고 그렇게 내가 간곡히 부탁을 했는데, 내 좁쌀만 똑! 따먹고 얼굴만 노래져 갖고 앉어서, 내 말대로 과거만 합격해 주었으면 내가 쌀밥을 갖다가 올렸을 텐데 다 틀렸다"고, "'부텨, 부텨' 해서 영험(靈驗)이 있는 줄 알았더니 영판 점쟁이만 못하다"고.
"점쟁이는 다 과거에 붙고 떨어질 것도 알고, 잘하면 푸닥거리만 해도 병도 낫고 그러는데,  꺼먹꺼먹 우둑허니 앉어서 좁쌀만 똑 따먹고, 무당만 영판 못하다”고 아주 큰 기침을 하고 나갔다고 그럽니다.


오늘 입춘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동참(同參)을 하셨는데, '입춘에 동참을 하고, 모처럼 이제 금년부터서는 무당이나 만신집이 부적 사러 가지 아니하고 한번 시험을 한번 해 보자'
그러다가 무슨 조그만 뭣이 뜻대로 안되면, 함경도 사람처럼 '그 입춘에 동참해 봤자 별 수 없고, 그 내년부터서는 그래도 무당한테 가서 부작을 꼭 사야겠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신다면 함경도 사람만 조끔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부작을 사거나 입춘에 동참을 하거나 또는 참선을 하거나, 쇠털 같은 많은 날에 혹 뜻대로 안 되는 수도 있고 또 뜻대로 되는 수도 있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하는 데는—이 사바(娑婆)란 말이 인도 말인데, '인내(忍耐)', '감인(堪忍)', 인내, '참는다'는 말이거든. '사바세계' 하면은 '참는 세계'라.

여덟 가지 고(苦)—생(生) · 로(老) · 병(病) · 사(死)의 괴로움, 사랑하는 사람은 이별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또 미운 사람은 만나게 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또 구(求)하면 마음대로 얻어지지 아니한 구부득고(求不得苦), 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성고(五陰盛苦), 이 여덟 가지 고(苦)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중생(衆生)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러한 고해(苦海)에 왜 우리가 태어났느냐? 과거에 우리가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다 이 말씀이여.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으면서도 이만큼 살게 된 것, 이만큼 잘 사는 것도 이것도 다 참 천만다행(千萬多幸)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을 믿고 정법(正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그러기 때문에 이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살면서 이만큼 산다고 감사하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무엇이 뜻대로 안되면 거기에서 오히려 더 발심(發心)을 하고, '무엇인가 내게에 참회해야 할 일이 있구나' 이리 생각하고 자기의 내면으로 회광반조(廻光返照)해서 자기의 잘못을 참회를 하고, 다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신심을 내서 화두(話頭)를 들고 염불(念佛)을 하고 이렇게 다져 나가야만 불법을 믿는 사람,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요 바른 생활이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드렸지만, 한 나라가 발전해 나가려면 견디기 어려운 난관(難關)을 만나서 그것을 극복해야만 그 나라도 발전을 하는 것이지, 너무 편안하고 일없으면 그 편안하고 살기 좋은 데에 도취가 되어 가지고 자연히 해태(懈怠)해지고, 그래 가지고 차츰차츰 국력이 쇠퇴해서 모든 국민이 게을러빠지고 사치에만 흘러서, 그러는 동안에 이웃나라가 반드시 그러한 틈을 타서 침범을 해 들어오고 마는 것입니다. 백제가 망할 때에도 역시 그랬었고, 신라가, 그 꽃피었던 그 신라가 망할 때에도 너무너무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월이 몇십 년, 몇백 년 지나다 보면 결국은 그 나라가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맹자(孟子)』에도 '하늘이 장차 훌륭한 인재(人材)를 낼 때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갖은 고통과 시험을 주어서 그 사람을 단련(鍛鍊)을 시킴으로써 위대한 사람을 만든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잘 다스리도록 한다' 그런 말이 있고.
'나라에도 계속 그 충고하는, 나라의 정치와 통치자의 잘못을 힐난하게 비판하고 그 상소(上疏) 올리고 그러한 입바른 그러한 선비가 있어야 하고, 또 이웃나라에서 호시탐탐 그 나라를 침범하려고 하는 적성 국가(敵性國家)가 있어야만 그 나라는 계속 튼튼하고 나라를 발전시켜 나갈 수가 있다' 이러한 내용에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역사를 통해서 역력히 볼 수가 있는 바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대의정(大疑情)으로 도(道)를 닦아서 도업(道業)을 성취해 나가는 데 있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데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 난관에 부딪혀서 거기에서 대분심과 대신심이 불타올라야만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크게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 조그마한 사업(事業)을 하나 하더라도 물심양면으로 또는 인간적으로 갖은 고통을 극복해야만 하나의 사업을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실패하면 또 일어서고 두 번 실패하면 또 일어서고, 곧 기업체가 쓰러지고 '내가 오늘 죽느냐 내일 죽느냐' 한, 그러한 참 참기 어려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수없이 겪으면서 그러면서도 쓰러지지 아니하고 버텨 나가야만 사업을 마침내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해탈도(解脫道)요, 대안락(大安樂), 큰 안락의 법문(法門)이라 하지만, 이 참선을 시작을 해서 여법(如法)하게 도(道)를 닦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첫째, 육체적으로도 팔 다리 허리가 쑤시고 아프고 저리고,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 골치가 아픈 사람, 정신적으로도 온갖 번뇌(煩惱)와 망상(妄想)과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 퍼일어나 가지고, 조끔 공부하려면은 '가정에 뭔 일이 있다' 그래 가지고 잠시도 편할 날이 없이 이 일 저 일 구름 일어나듯이 일어납니다마는,
그러한 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착실히 다져 나감으로써 그렇게 백방(百方)으로 공부를 방해치는 그러한 사건들이 하나씩 둘씩 차츰차츰 고개를 숙이고, 나중에는 그러한 일들이 내 공부해 나가는 데에 박차를 가해 줄지언정 그것이 나를 공부 못하게 하는 마침내 하지 못하게 될 날이 오는 것입니다.

무량겁래(無量劫來)로 익힌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과 오욕락(五欲樂)으로 익혀 왔고,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다 되어져. 마치 잡초는 그렇게 뽑아 내버리고 약을 치고 해서 그것을 못 자라게 해도 잡초는 저절로 그렇게 잘 자라고. 곡식은 거름을 주고 그렇게 잘 가꾸려고 해도 영 잘 안 자라는 거와 같애서,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에 있어 번뇌망상 사량분별심은 그렇게 안 하려고 그러고, 쫓아내려고 그러고, 못 일어나게 하려고 해도 그렇게 잘 퍼일어나고, 화두(話頭)는 그렇게 생각 생각이 추켜들고 하려고 해도 그것은 잘 잊어버리고 안 되지요.

그러나 사불범정(邪不犯正)이여. 또 마침내는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제아무리 무성했다 하더라도 끈질기게 노력을 하면 그 잡초를 제거하고 마침내 우리가 좋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끝까지 주저앉지 않고 쉬지 않고 공부를 다져 나가면 번뇌망상,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를 항복받아서 결국은 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 모범을 보이신 분이 바로 삼세제불(三世諸佛)이시고, 역대조사(歷代祖師)요, 팔만사천 보살(菩薩)님네들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여실(如實)히 보여주신 것입니다.(20분49초~41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본래성불비타득(本來成佛非他得)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제29권 ‘寄同參十首’ 참고.
*별단(別段 다르다·따로 달리 별/층계·구분 단) ; ①보통과 다름. ②보통의 것과 특별히 다르게.
*임술년(壬戌年) ; 1982년.
*신유년(辛酉年) ; 1981년.
*절후(節候 철 절/철·절기·기후 후) ;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 15일 내지 16일에 한 번씩 돌아온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고향(故鄕) ;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타관(他官)살이 ; 자기 고향이 아닌 다른 고장에서 삶.
*타관(他官 다르다·다른 곳 타/마을 관) ; 제가 나서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고장.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진묵겁(塵墨劫) ; 티끌[塵]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劫].
*‘우리가 마치 평생 동안 먹고 쓰고 남을 보물을 몸뚱이 안에, 옷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춥고 배고픈 그러한 거지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 의주유(衣珠喩).
*의주유(衣珠喩) ; 『법화경(法華經)』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에 나오는 비유.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다’는 비유로 계주유(繫珠喩), 또는 의리계주(衣裏繫珠)의 비유라고도 한다.
가난한 사람이 친구 집에 갔다가 술에 취해 자고 있는데, 친구가 급한 볼일이 있어 그의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고 밖으로 나가니,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는 술이 깨자 그 집을 나와 방황하면서 음식을 구하느라 갖은 고생을 하는데, 훗날 우연히 만난 친구는 그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달아 주었던 사실을 말한다는 내용. 여기서 가난한 자는 중생을 상징하고, 친구는 부처님을, 보배 구슬은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누구나 이처럼 귀중한 보배[佛性]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한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설하고 있으며, 선종(禪宗)에서 자가보장(自家寶藏)이라는 용어로 널리 활용된다.
*자가보장(自家寶藏) ; '자기집[自家] 보배 창고[寶藏]' 중생이 각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가리킴.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부작(符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만석꾼(萬石꾼) ; 곡식 만 섬을 거두어들일 정도의 논밭을 가진 큰부자.
*만석(萬石 일 만·매우 많은 만/섬·10말 석) ; ①아주 많은 곡식. ②곡식 일만 섬(10말).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 ]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6분7초)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또 바람이 불고 한 그러한 재난은 사실은 큰 재난이라고 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재(水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재(火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팔풍(八風)의 그 풍재(風災), 이러한 재난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수재가 일어나서 육백 명이라고 하는 인명(人命)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참혹하고 무서운 재난은 우리 낱낱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무서운 재난인 것입니다.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얻은 재난은 재산을 앗아갑니다. 재산은 또 부지런히 벌면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수재로 인해서 생명을 잃었다 하드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지옥에 가란 법은 없습니다.
몸을 바꿔서 좋은 데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화재로 일어난 그 재난은 영락없이 우리를 축생(畜生)이나 또는 아귀(餓鬼)나 지옥(地獄)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무량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마음속에 그 수재와 화재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그 탐진치 삼독, 오욕락(五欲樂), 팔풍경계에 우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금 이 폭풍이나 태풍 이런 것은 여름 한때 장마철에 지나가 버리고 며칠간 그러다가 그치면 또 조용합니다. 또 내년에 이맘때 되면은 또 그러한 것이 오겠습니다마는,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거야 우리가 미리미리 취약지구에 대한 대처를 해 나가고 모다 댐이라든지 그런 것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잘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그건 온 나라의 여러 국민들이 모다 합심을 해서 모다 의연금품을 내고 나라에서도 모다 구제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또 상처를 또 아물게 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태풍과 폭풍, 폭우 모다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볼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나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나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단히 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재와 화재 또는 수재 이런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지나간 그러한 폭풍이 유(類)가 아닌 것입니다. 폭우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고대로 놔둔 채,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을 갖다가 지옥구덩이에 갖다가 처박기도 하고, 축생의 뱃속에—이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독사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또 아귀와 그런 악마가 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것입니다.

순전히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를 찰나간(刹那間)에 윤회(輪廻)를 하면서 백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 소리, 향기, 맛, 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낚숫밥 ; ‘낚싯밥’의 사투리.





------------------(2)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회광반조(廻光返照 방향을 바꾸다·돌리다 회/빛 광/돌이키다 반/비칠 조) : 회광자간(廻光自看).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자신의 본성을 조견(照見)하는 것. 언어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자기 본래의 면목(面目)을 보는 것.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참고] 송담스님(No.524)—19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 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2. (가로판) p117.
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입바르다 ; (주로 ‘입바른’ 꼴로 쓰여) 바른말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사도(四道) ;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 ①가행도(加行道). 번뇌를 끊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 ②무간도(無間道). 간격이나 걸림 없이 지혜로써 번뇌를 끊는 단계. ③해탈도(解脫道).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④승진도(勝進道). 뛰어난 수행으로 해탈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무량겁래(無量劫來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이래·그 이후로 래(내))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 이래(以來).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사불범정(邪不犯正 간사할 사/아닐 불/범할 범/바를 정) ; 바르지 못한 것, 삿된 것이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함.
*사필귀정(事必歸正) ;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돌아감.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산스크리트어]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 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여실(如實)히 ; 사실과 꼭 같게.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