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입춘기도)2014. 6. 24. 16:16

§(114)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 번뇌·망상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거든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정말 이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야무지게 단속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은 꼭 절에만 가야만 되는 것이고, 머리만 깎아야만 되는 것이고, 깊은 산중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번뇌·망상이 저 어디 지옥의 변소간 같은데서 끌어온 것이 아니라, 바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계시는 진여불성에서 나온 것이거든. 그래서 그놈 나온 곳을 더듬어 들어가면 바로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진여적멸궁(眞如寂滅宮)에 우리는 들어갈 수가 있다 그말이여. 성이 나면 그 성이 딴 데서 나온 게 아니라 적멸궁에서 나온 소식이거든. 그래서 그놈을 없앨랴고 하지도 말고, 버릴랴고 하지도 말고, 누를랴고 하지도 말고, 일어나는 그 성내는 마음 그놈으로 「이 뭣고?」


**송담스님(No.114) - 1980년(경신년) 입춘법회 법문(1980.02.05)에서. (용114)

 

(1) 약 15분.

 

(2) 약 20분.

 


(1)-----------------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무엇을 맛을 보거나, 차웁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지나간 일이 생각이 나거나,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이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량겁을 두고 쌓아 놓은 아뢰야식 속에 업(業)의 종자를 돌려서 보리(菩提)의 종자로 승화(昇華)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미 업의 종자를 보리심(菩提心)으로 승화를 시켰기 때문에 업의 종자는 소멸이 되었다고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소멸이라기보다는 승화를 시켰다고 표현헌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편의상 알기 쉽게 소멸을 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는 부적(符籍) 천 장, 만 장 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영원히 업장(業障)을 소멸(掃滅)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방법입니다.

녹음 중단·중복(18초간)

하루를 그렇게 살고, 이틀을 그렇게 살고, 한 달을 그렇게 살고, 1년을 그렇게 살아 보십시오.

사실 아까 말씀드리기를 석 달을 해봤자 아들딸·손자·영감님께 아무것도 보일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만은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다져나가고 하루하루를 다져나가고 한 달 한 달을 다져나가면, 자기 스스로 생각헐 때 또는 주위 사람들이 볼 때 모든 점에 있어서 사람이 개선되어 가고 개조되어 가고 승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이 오직 깨달음을 향해서 목적을 하고 닦아가는 것이지만은, 인간으로써 우리가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빨리 얻어지는 효과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까짓 나쁜 성격이 원만해지고, 옹졸했던 성격이 관대해지고, 이러헌 것이 참선의 목적은 아니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나가면, 구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러헌 인간에 있어서 존경받을 수 있고, 평온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성격이 개선되어 간다면 그것도 또한 대단히 소중한 수확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옹졸한 성격, 비열한 성격, 이기적인 성격 때문에 얼마를 자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맨들고, 가치 없는 인간을 맨들고,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그러헌 일이 우리의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를 우리는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부모로써, 자식으로써, 시부모로써, 며느리로써, 동생으로써, 형으로써,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 「이뭣고?」로써 생각을 돌려나가는 길을 행하지를 못하고, 사소한 일로 해서 두 번째 생각, 세 번째 생각으로 계속 올바르지 못한 중생심을 갖다가 방자히 해 가지고, 자기 스스로도 불행하고 남까지 언짢게 맨드는 사례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우리는 생활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이 법회가 끝나자마자 부적(符籍)을 사러 가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은, 정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면 부적을 몇 장을 사서 가지셔도 괜찮습니다만, 그러나 이 공부를 철저히 하면 그러헌 부적을 한 장도 갖지 않더라도 모든 재앙은 소멸이 되고, 있는 재앙을 소멸허는데 끄친 것이 아니라-소멸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러헌 재앙이 속에서 나오는지 밖에서 다가오는지 그걸 표현허기가 어렵습니다마는,

어떤 부정적인 사건을 만났을 때, 먼데서 가까이에서 만났을 때 그것이 물질적인 문제가 되었건, 정신적인 문제가 되었던, 인간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건,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그러헌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그러헌 조건을 만났을 때,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보다 더 행복한 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뭣고?」 한번 함으로써 재앙을 뒤집어서 복(福)으로 맨드는 것입니다.
중생의 번뇌·업식(業識)을 돌려서 보리심(菩提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여서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1원 1원이 모여가지고 100원이 되고, 1원 1원이 많이 모이면 1000원도 되고 백만 원도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여가지고 무량겁이 되고, 1초 1초가 모여가지고 한 달·1년·100년·무량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잔돈을 애낀다’고 헌 속담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10원짜리 100원짜릴 돈으로 알지 않고 풀풀풀풀 막 함부로 합니다마는, 참으로 부자는 큰돈은 갖다가 유용하게 몇천 만원씩 희사(喜捨)도 하고 기부도 하고 그렇게 쓰면서 10원 20원 굉장히 피나오게 애끼는 것을 나는 봤습니다.

정말 이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야무지게 단속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연히 이 생각, 저 생각,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허면서 별별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내싸두고 삽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1년이 지나갑니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여.
참선은 꼭 절에만 가야만 되는 것이고, 머리만 깎아야만 되는 것이고, 깊은 산중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성이 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차를 타건, 버스를 타건, 걸어가건, 댁에 돌아가셔서 방을 닦건, 밥을 지으시건, 빨래를 하건, 앉었건, 누었건, 이야기를 하건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건 간에 그때그때 한 생각,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이뭣고?」
남편이 속상한 소리를 해도 「이뭣고?」  아내가 바가지를 긁어도 「이뭣고?」  자식이 불효한 짓을 해도 「이뭣고?」  「이뭣고?」허는 마음을 근본으로 해서 모든 생활을 지어나가라 이것입니다.

근본이 다 「이뭣고?」로써 중심이 딱 잡힌 가운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일을 하고, 음식을 먹고, 발로 걸어가고, 이렇게 된 사람은 뿌리가 제대로 박힌 나무와 같아서 그 나무는 싱싱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허지 아니하고 밤낮 눈으로 보는 데에 끄달리고, 귀로 듣는 데에 끄달리고, 이 생각 저 생각 자기 딴은 가정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도록 애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이뭣고?」를 아니한 사람은 뿌리는 방치해 버리고, 그 가지에 이파리에 벌레를 떼어주고 소독을 치고 물을 뿌리고 온갖 노력을 다해봤자, 뿌리가 드러나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 나무는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일도 안 하고, 착한 일도 안 하고 그래도 괜찮으냐?
그게 아닙니다.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이겁니다.

참선을 함으로서 우리 근본 마음을 바로잡고 바로 닦아나간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집안에 가면 집안에서 부모에게 할 일, 남편에게 할 일, 자녀들에게 할 일, 해야 할 살림, 자기 자신을 위한 일, 얼마든지 있습니다. 절에 왔어도 얼마든지 헐 일이 있습니다. 직장에 가면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헐 일이 있습니다.

근본이 서있는 상태에서는 모든 일이 다 불사(佛事) 아닌 것이 없고, 모든 일이 다 좋은 일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근본이 서있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을 헌다고 헌 것이 제대로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죽도록 헌다고 하는 것이 헛일만 하게 되고, 죽도록 애써서 한다는 것이 속상할 일만 허게 되고, 후회헐 일만 허게 되고, 한탄해야할 일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참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마음속에 업(業)의 원인을 해결을 해 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은 내가 지어가지고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도록 지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속에 원인을 잘 다스려 놓으면, 영락없이 재앙으로 나한테 다가져 올 수밖에 없었던 그것이 나에 가까이 오면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법을 믿고 참선을 열심히 헌 사람이면, 누구나 미묘한 그 법을 스스로 느끼고 정법의 고마움과 신기하고 묘한 것을 뼛속에 사무치도록 느끼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43분18초~58분23초)

 

 

 



(2)------------------

부처님 당시에 왕사성에 장사를 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주 그 형제는 대단히 합심을 해서 장사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한마을에 사는 아주 가문이 좋은 부자집 따님이요 아주 인물이 좋은 규수(閨秀)허고 눈이 맞아 가지고 약혼을 허게 되었습니다.
약혼을 해 놓고 장사일로 해서 수백 리 멀리 떨어진 도시로 떠났습니다. 가 가지고 사업관계로 해서 여러 해를 고향으로 돌아오질 못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통신이 있어서 편지도 할 수가 있고 전화도 할 수가 있었지만, 삼천년 전에는 그러헌 통신수단이 없어서 그리고 너무 사업에 몰두하고 복잡했기 때문에 연락헐 겨를이 없었습니다.

근데 그 규수 댁에서는 아! 신랑이 먼데로 가 가지고 소식이 없으니 딸은 자꾸 나이만 먹고 너무너무 기다리다가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규수의 부모는 차라리 그 형이 소식이 없으니까 동생을 갖다가 사위로 맞이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냈습니다. 동생이 인물도 더 좋고 성격도 좋고 그러니 차라리 그 동생을 사위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리 생각을 하고 동생한테 사위가 되어 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그 동생이 말하기를 『그럴 수가 있습니까? 형님이 멀리 가셨다가 지금 사업상으로 못 오시는데 어떻게 제가 형수 될 분하고 결혼을 헐 수가 있습니까? 그건 당치 안합니다. 지금 형님이 살아계시는데 그럴 수가 있느냐?』고 아주 딱 끊어서 거절을 했습니다. 그 참! 그 동생이 허는 말 들어보니 또 말은 옳은 말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또 며칠을 두고 연구를 한 결과, 어떤 그 장사하는 사람을 시켜가지고 돈을 주어서 그 형이 거기서 그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실패가 되어가지고 병이 나서 죽었다.

녹음 중단(8초간)

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 그 규수의 부모가 동생 찾아가서 『아! 인자 당신 형이 병들어서 죽었으니 인제는 내 사위가 되어줘도 되지 않겠느냐?』
찝찝허니 생각하고 응하지를 않다가 몇 달이 지내갔습니다.

계속해서 사위를 삼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간곡히 교제를 해 가지고 결국은 그 동생이 형수 될 그 규수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해 가지고 포태(胞胎)를 했습니다. 포태를 했는데 갑자기 그 형이 돌아온다고 허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것 참 큰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떤 산파를 시켜서 배를 이리저리 만져가지고 그 포태된 애기를 갔다가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래놓고 있는데 그 형이 과연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맨 처음에 그 아내가 될 규수를 찾았는데, 벌써 그때는 형이 근처에 와서 ‘그 규수가 자기 동생하고 결혼을 했다’고 허는 말을 듣고, 당장 그 동생과 그 자기 아내가 될 여자를 갔다가 한칼로 요절을 내서 죽일라고 칼을 가지고 왔는데, 벌써 그런 소문을 듣고 동생은 이웃나라로 피해 갔습니다.

피해 가지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무슨 형수 될 규수가 욕심이 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참 형님하고 약혼만 해놓고 결혼도 못허고 병이 나서 죽게 된 규수가 딱하고, 동생으로써 그 형이 저지른 일을 수습해야겠다고 허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명감에서 그 규수하고 결혼을 한 것이, 아! 이렇게 형님이 살아오고 보니 변명할 길도 없고 무슨 사과할 수도 없고, 죽인다고 칼을 가지고 찾으러 다니니 그거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웃나라로 피신을 우선 해 가지고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스님은 그러헌 상황 속에서 출가를 했기 때문에 정말 생명을 바쳐서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식음(食飮)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도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은 계속해서 그 동생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런 결과 이웃나라에 부처님 제자가 되어가지고 어느 산에서 도를 닦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활을 잘 쏘는 포수를 갖다가 매수를 해 가지고 차마 형으로써 동생을 갖다가 더군다나 출가한 동생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가 없어서, 그 포수로 하여금 그 동생을 죽이면 후한 상을 준다고 해 가지고, 그 포수하고 둘이 가 가지고 포수는 저만큼 숨어 있으라고 그러고, 자기는 동생한테 찾아갔습니다.

동생은 반가워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인간적으로 대단히 딱한 그런 상황이었지만은, 이미 도를 얻은 스님이라 자기의 죄를 억지로 피할라고 하지도 않고 또 웬수로 상대해 가지고 형을 갖다가 상대하지고 않고 순수한 평범한 마음으로 형을 만났습니다.

형은 아주 그 속의 마음을 감추고 반가운 듯이 인사를 하고 『그 동안에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 난 처음에는 너를 원망을 했지만 너를 사실은 만나고 싶었다.』 이런 얘기 등등 하고 있을 때 약속을 했던 그 포수가 그 동생을 겨냥해 가지고 활을 쐈습니다.
아! 그 활 잘 쏘는 사람이 활을 쐈는데 그 활이 빗나가 가지고 형 모가지에 맞어 가지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동생은 그 형을 시체를 거두어서 잘 장례를 지내주고 천도를 잘 해주었습니다.

얼마나 원한을 깊이 먹었던지 그 형은 죽어가지고 독사가 되었습니다. 독사가 되어가지고 그 동생의 공부하고 있는 그 토굴에 문틈 밑에 가서 가만히 숨어서 컸습니다.
그래 가지고 언젠가 몸에 독이 오를 때를 기다려서 독이 몸에 잔뜩 어리면은 그 동생이 문으로 나올 때 탁 물어버릴려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그 문을 열고 닫고 하는 그 좀에 문에 치여 가지고 독사가 깨져서 죽었습니다.

아! 그 복수를 할랴고 그랬던 것이 그 문에 치여 가지고 본의 아니게 죽게 되니까 더욱 독이 나 가지고 독거미가 되어가지고 천장에 가서 붙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차츰차츰 컸습니다. 커 가지고 아주 독이 올랐을 때 천장에서 내려와 가지고 그 공부허고 있는 동생을 갖다가 물어서 죽게 했습니다.

그 뒤에도 또 그 동생은 어떻게 되고 형은 어떻게 되고 헌 얘기가 장황이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해서 친구 간에 웬수가 되고, 형제와 부자 간에 웬수가 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웬수가 되고, 일가친척과 웬수가 되어서, 금생에는 내가 저 사람을 죽이면 내생에는 저 사람은 나를 죽이고,
이렇게 해서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으면, 그 다음에는 그 쥐는 고양이가 되고 그래 가지고 엎치락뒤치락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점점 더 약이 올라가기 때문에, 처음에 바늘 가지고 싸움을 하다가, 다음에는 칼 가지고 싸움을 하다가, 다음에는 도끼 가지고 싸움을 하다가, 다음에는 총질을 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소한 일을 잘못 처리해 가지고 큰 재앙을 맞아드리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참선한 사람은 작은 일로 해서 큰일로 나아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작은 일을 발판으로 해서 큰 깨달음에 이르를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황금을 갖다가 똥처럼 쓰고, 지혜로운 사람은 똥을 갖다가 황금처럼 쓴다’고 허는 말이 있습니다.
똥은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지만 농부가 그것을 잘 발효를 시켜서 퇴비를 맨들어 가지고 비료로 사용허면은 농사를 잘 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우리 중생의 번뇌(煩惱)·망상(妄想)은 똥보다도 더 더러운 것입니다-그러헌 번뇌·망상을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면, 그 번뇌·망상이 완전히 승화(昇華)해 가지고 보리심·깨달음을 증득하게 헌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불법(佛法)이 어렵다, 어렵다. 팔만대장경 그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다 읽으며, 읽어봤자 아지도 못하고, 한문이 어려워서 아지도 못하고, 알아봤자 그 많은 것을 다 읽을 수가 없다. 아! 불법을 어려워서 못 헌다' 이러헌 분들을 가끔 많이 만남니다만은 불법(佛法)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아직 정법(正法)을 만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불법은 막연하게 어렵고 깊고.... 그렇게 겁을 내서 생각하는 것이지, 참으로 이 참선법(參禪法)을 믿고 행할 줄만 알면 불법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번뇌·망상은 끝없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하나도 겁낼 것이 없습니다.

그 번뇌·망상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거든.
우리 중생-업(業)이 아무리 많은 중생이라도 낱낱이 다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어. 부처님과 똑같은 마음자리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자리에서 수없이 한없이 번뇌·망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 번뇌·망상이 저 어디 지옥의 변소간 같은데서 끌어온 것이 아니라, 바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계시는 진여불성에서 나온 것이거든.
그래서 그놈 나온 곳을 더듬어 들어가면 바로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진여적멸궁(眞如寂滅宮)에 우리는 들어갈 수가 있다 그말이여.

성이 나면 그 성이 딴 데서 나온 게 아니라 적멸궁에서 나온 소식이거든.
그래서 그놈을 없앨랴고 하지도 말고, 버릴랴고 하지도 말고, 누를랴고 하지도 말고, 일어나는 그 성내는 마음 그놈으로 「이 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 허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갑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나가는 것이 바로 이것이 정법이요, 참선법이요, 최상승법이요, 불에 넣어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아니한 영원한 부적이다 이 말씀이여.

오늘은 입춘날이라 여러분에게 부적을 노놔 드리겠습니다. 다 받으셨습니까? (‘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러분은 금방 받으신 그 부적으로 어떠헌 재앙을 만나더라도 그 부적을 내세우십시오.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도 그 부적 앞에는 꼼짝을 못하고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며, 항복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충실한 협조자가 되어줄 것입니다.(43분18초~78분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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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掃滅 쓸·제거할 소,멸망할·다할 멸) ; 모조리 쓸어서 없앰.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희사(喜捨 기쁠 희, 버릴 사) ; 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를 베푸는 것. 정사(淨捨)·정시(淨施)라고도 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내싸두다 ; '내버리다'의 사투리.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 『치문경훈(緇門警訓)』에 있는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팔일성해탈문(八溢聖解脫門)’에 아래 구절이 있습니다.
〇實際理地, 不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 實際理地는(眞如자리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으나,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을 이르는 말.

 

 

 



-------------------(2)

*규수(閨秀) ; 혼기에 이른 남의 집 처녀를 점잖게 이르는 말.
*포태(胞胎) ; 아이나 새끼를 뱀.
*주야불철(晝夜不撤) ; 불철주야(不撤晝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밤낮을 가리지 않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게송)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진로를 멀리 벗어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니 승두(繩頭-화두)를 꽉 잡고 한바탕 지을지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한 차례 추위가 뼈골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오?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화두불명수계)2014. 6. 23. 14:49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33분28초부터 시작됩니다>

 

 

§(306) 화두 / ‘이뭣고?’-효과와 공덕 / 법(法)의 양식(糧食), 심농(心農) / 노정기(路程記) / 법의 기쁨 / 참선은 우리의 본업(本業), 그 밖에 모든 것은 부업.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당신네 농사는 당신 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뭣고?’는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의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의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6) - 19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어(86.08.03)에서.(용306)

 

(1) 약 14분.

(2) 약 15분.

 

(1)-------------------

 

지금부터서 그 오계(五戒)를 지키면서 부처님 제자로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기 위해서 닦아 가는 화두(話頭) 법문을 설하겠습니다. 불명(佛名)을 이제 타신 분이나, 또 화두를 타신 분이나, 오계를 받고자 하신 분도 다 같이 들으시면 좋습니다.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을 하는 그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 퍼르르 성을 내는데 그 성낼 줄 아는 놈. 칭찬하면 기뻐하는데 그 기뻐할 줄 아는 놈. 다치면은 아픈데 그 아플 줄 아는 놈. 배가 고프면 배고픈 밥먹을 줄 아는 놈.

한 생각 악한 생각이 일어나면 독사와 같은 마음이 나는데-나찰귀(羅刹鬼)와 같고 독사와 같이 되는데, 또 한 생각 탁! 돌이켜서 착하게 먹으며 또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찰나(刹那) 간에 독사도 되기도 하고, 찰나 간에 천사도 되기도 하는, 그러한 그 신기하고도 묘하고 소소영령한 놈이 우리 모두 가슴속에 있어.

그놈을 성이 날 때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중생들은 뭐 하나가 기분이 나쁘면 이 생각 저 생각, 점점 더 생각에 생각을 더 펴 가지고 점점 속이 상해 나가고, 또 누가 미우면 조금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과거에 몇해 전에 있었던 일까지 이 생각 저 생각 기억을 더듬어 가지고 점점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러는 법이고,
도(道)를 닦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은 언짢은 일을 당하더라도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다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냉큼 ‘이뭣고?’ 이래 버리거든.

누가 미운 짓을 해도 냉큼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구태여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욕을 하고 때리고 속상하는 소리를 해 가지고 그 사람과 다툴 필요가 없는 것이여.

그래서 도를 안 닦는 사람은 사소한 일로 해서 점점 죄를 짓게 되고 웬수를 맨들고 시끄럽게 맨들고 남과 웬수를 맺게 되는 거고, 집안을 결국은 수라장(修羅場)으로 맨드는 거고,

이 도를 닦는 사람은 여간해서 그런 환경에 휩쓸리지를 아니하고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어.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언제나 마음속은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사는 또 귀빈을 맞이해서 사는 그런 마음, 항상 천상(天上)이나 극락(極樂)에서 사는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를 젓고 갈 때, 노젓는 사람이 노젓기에 따라서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는 거와 마찬가지여.

도 닦는 사람은 자기의 한 생각을 잘 조정 함으로써 자꾸 자꾸 승화되어 가고 도가 깊어지는 것이고,
도를 안 닦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눈을 보면 봄으로 해서 죄를 짓고, 뭣을 들으면 들음으로 해서 점점 번뇌(煩惱)의 불집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은 최상승법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한마디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팔만대장경-해인사에 그 팔만대장경 판이 있는데 그놈을 목판에다 찍어보면 수천 권이 되는데 그놈을 읽을 수 있습니까. 읽어도 다 해석도 못하죠.
그러나 ‘이뭣고~?’ 한마디를 하면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거와 똑같애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는 공덕이 다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만,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 할라면 백일 동안을 계속 불러야 하는데 ‘이뭣고?’ 한번 하는데 1초도 안 걸립니다.   그만큼 ‘이뭣고?’는 공덕이 장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뭣고?’는 ‘이뭣고?’할 때에 당장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바로 실천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여.

노정기(路程記), ‘여기서 어느 목적지에 갈라면은 어디행 기차를 타고 가서 내려 가지고, 그 다음에 버스를 타고 얼마를 북쪽으로 가다가 뭐이 나오면 한다.’
그렇게 적혀있는 노정기만 자꾸 읽고 있는 사람과 직접 그런 것을 다 알아 가지고 당장 한걸음 출발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여. 밤낮 농사짓는 법을 책으로 연구하고 해 봤자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당장 논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서 밥을 지어 가지고 밥을 바로 입에다 떠 넣는 것이여, ‘이뭣고?’는.
당장 밥을 떠서 입에다 넣어서 깨물어 먹으면은 배가 부르지만, 밤낮 책만 펴 가지고 농사짓는 법만 연구해 가지고 언제 그것이 배가 부르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농사짓는 법을 잘 연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농사짓는 법도 있지만,
이미 농사 잘 짓는 법 아는 사람과 같이 그 사람과 같이 농사를 짓고, 이미 다른 사람이 농사를 지어논 놈을 갖다가 밥을 해서 딱 놔주면 입에다 떠 넣어준 것입니다.

‘이뭣고?’하라고 가르쳐 준 것은 밥을 여러분 입에다 떠 넣어준 거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기만 하면 되는데, 입에다 이렇게 떠 넣어 주어도 뱉어 버리고 씹지도 않고 삼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힘으로도 어찌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 해 보세요. ‘이뭣고?’.  ‘이뭣고?’ 한번 할 때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는 거와 같애.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법(法)의 양식(糧食)’입니다. 법의 양이여, 도(道)의 양식이거든.

그래서 이 법의 양식을 부지런히 먹고 잘 씹어서 삼키면 여러분은 도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 심(心)’자, ‘농사 농(農)’자, 심농(心農)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하루는 수행하실 때에 들녘을 지나는데,
어느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바라문(婆羅門)이 부처님이 탁발(托鉢)을 하시니까, ‘밥을 못주겠다.’ ‘왜 못주느냐.’

‘우리는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지어가지고 이렇게 먹지만, 당신네들은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고, 밤낮 서늘한 그늘속에 앉아서 있다가 때만 되면 거저 밥을 얻어 먹으러 오니 우리는 공밥 먹는 사람에게는 밥을 줄 수가 없다. 이 피땀 흘려서 농사지은 것을 어찌 당신들한테 줄 수가 있겠느냐.’

부처님 말씀이 ‘당신만 농사를 짓는게 아니라 나도 농사를 지었소. 당신보다도 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소.’ (바라문) ‘어찌 도를 닦는 사문(沙門)이 거짓말을 허요.’

‘아하, 거짓말이 아니요. 당신네들은 몸뚱이를 가지고 몸뚱이를 먹여 살리는 양식을 가꾸는 농사를 짓지마는, 우리는 영혼을 해탈케하는 도를 이루게 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다.
당신이 짓는 농사 양식(糧食)으로는 먹어봤자 하루 밖에는 참을 수가 없지만, 우리 마음의 농사는 금생 뿐만이 아니라 영원을 두고 배부르는 그런 농사를 짓는 것이고,
당신네 농사는 당신 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어서 보리심(菩提心)을 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농사는 ‘마음의 농사’야.

농사는 짓는 때가 있고 그 때를 타서 열심히 해야지, 씨만 심어놓고 가꾸지를 안하면 그 농사는 폐농(廢農)을 하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때 맞춰서 땅을 갈고, 모자리를 해서 그놈을 때 맞춰서 심고, 그래 가지고 농약을 주고 비료를 주고 그래 가지고 그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짓게 되는데 그걸 등한히 해 보십시오.
벌레가 다 먹어버리고 물을 맞춰서 주지 않으면 말라죽거나 물에 너무 오랫동안 잠기면은 병이 생기고, 그렇게 해서 수확을 거두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가꾸는데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농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농사짓는 모자리의 씨를 심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가꾸어서 때 맞춰서 잘 가꾸어 나가야지, 일시라도 등한히 해 버리면 벌레가 와서 침식을 하게 되고 말라죽거나 떠 죽거나 그렇게 해서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32분48초~46분11초)




(2)-------------------

우리의 도(道)도 잠시도 등한히 하면 그렇게 안이비설신의-육근(六根)을 통해서 팔만사천마군(八萬四千魔軍)이가 도를 이루지 못하도록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왜 우리 도 닦는 것을 방해를 치냐’하면 도인(道人)이 생겨나면 자기네 설 땅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군이의 궁전이 흔들리게 되고 마군이가 소탕이 되어서 마군이 살곳이 없기 때문에, 마군이가 자기 설 땅을 지키고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도 닦는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방해를 놓는 것입니다.

그 마군이를 항상 우리는 잘 대항해서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 심왕(心王) 국토를 잘 지켜나가야만 우리는 도를 성취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군이는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귀를 통해서 들어오고,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오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올라고 하는 그 찰나에-이미 들어와 버리면 쫓아내기가 어려워, 들어올라고 할 때 딱! 그놈을 문을 닫아 걸어야 되거든.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 때, 무엇이 눈을 통해서 들어올 때, 어떠한 사물이 귀를 통해서 들릴 때,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올 때에,
바로 그 즉시 ‘이뭣고?’ 이렇게 한다면, 마군이가 우리의 국토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의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의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달·두 달·석달·1년·이태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날의 자기가 아닌 딴 사람으로 성장 또 향상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도를 향해서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닦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세속의 다 직업이 있지만, 이 ‘이뭣고?’ 내가 나를 닦는-나의 영혼을 갖다가 해탈케 하는 이 직업이 정말 우리의 본업(本業)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저 몸뚱이를 살찌게 하고 또 의식주를 위해서 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까짓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영혼을 위하는 직업에다 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정이나 개인이나 사회·국가에 있어서 정말 충실하고자 하면 이 ‘이뭣고?’사업을 잘해야 그래야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정말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루어져 봤자 별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정말 우리는 몸과 목숨을 다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 바칠 것은 오직 이것뿐인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 한번 앉아 보세요.
가부좌를 할 때는 몸을 단정히 하되 너무 힘을 주어 가지고 뒤로 자지바지하거나 어깨에다 힘을 주거나 목에 힘을 주어서는 아니됩니다. 단정하면서도 힘은 다 빼야 하는 것입니다.

어금니는 지긋이 물고 또 혀는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에다 꼬부려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은 평상으로 뜨되 자기 자리에서 약 3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는 것입니다.
'눈을 떨군다'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한 점을 응시(凝視)하거나 주시(注視)하는 것이 아니고, 본다면 그 점이 보이되 의식적으로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평상으로 뜨되 뜨고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은 좌우나 전후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두 어깨위에 두 귀가 수직으로 놓이도록 하고 이렇게 해서 몸을 단정히 한 다음에,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단전-배꼽밑에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하고, 숨을 내쉴 때는 그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 지도록,
들어마신 호흡이 그까지 가도록 몰아부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숨은 코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생각은 배가 볼록하게만 맨들면 되어요. 그냥 배를 요렇게 내밀면 되어.
들어마실땐 내밀고 또 숨을 내쉴 때는 배를 홀쪽하게 잡아댕기면 되는 것입니다.

들어마셔 보세요. 배를 볼록하니 내밀면서 숨을 쑤욱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하나·둘·셋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를 등쪽으로 홀쪽하게 맨드는 것입니다.

또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하니 들어마셔. 그래서 들어마시는 시간은 약 3초 동안에 걸쳐서 들어마시고, 들어마셨다가 딱 정지하는데 정지하는 시간은 약 3초, 또 정지했다가 내쉬는 시간이 약 3,4초 조금 긴 듯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데, 들어마실 때 너무 배가 가뜩 이렇게 들어마시면 안 되어요. 8부 정도만 들어마시고.
또 딱 정지하는 것도 약 3초 정도만 해야지 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으면 그것도 안되고,
또 내쉴 때에도 약 8부 정도만 내쉬어야지, 뱃속에 하나도 없을 때까지 완전히 뱃가죽이 등어리가 닿을 때까지 다 내쉴려고 하면 그것도 힘이 들고 무리가 가니까 그래도 안 되고,

그래서 들어마신 호흡도 8부 정도 들어마시고, 내쉬는 호흡도 약 8부 정도 들어마셔서 호흡을 하는데 조금도 무리가 안 가도록, 힘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마셨다가 3초 정지했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할 때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하니 숨을 또 들어마셔 가지고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 주욱 하셔 나가면 나중에는 한달, 두달, 석달 이렇게 하다보면 ‘이뭣고?’를 숨 내쉴 때마다 안해도 괜찮게 되어요.
숨은 서너번 할 때에 ‘이뭣고?’ 한번 해 놓고서, 숨은 서너번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해도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참으로 익숙해지면 아침에 ‘이뭣고?’ 한번 하고 점심 때까지 ‘이뭣고?’는 들지 안해도 항상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심만 있으면 그만 그것이 화두를 이미 들어...(녹음 불량)
‘이뭣고?’ 딱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챙겨 가지고 또 금방 또 망상에 들면 그때 또 ‘이뭣고?’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이뭣고?’한 알 수 없는 의심이 고대로 딱 있으면, 뭐 구태여 ‘이뭣고?’ ‘이뭣고?’ 자꾸 되풀이해서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미타불·관세음보살은 하루에 십만 독(讀), 이십만 독해서 횟수를 채우기 위해서 염주(念珠)를 부지런히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는데 ‘이뭣고?’는 그게 아니어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번 부른 것이 관세음보살 육백만 번 공덕에 해당된다고 그러니까, 이놈을 하루에 오만 독을 하면은 육백만에다 오만을 곱하면 얼마냐? 진짜 이렇게만 하면은 며칠 안가서 툭 터질거다.

절대로 ‘이뭣고?’는 횟수가 문제가 아니고 그 간절(懇切)한 간절한 그 의심, 의심(疑心)이 나중에는 의단(疑團)이 되어.

한번 화두를 들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 뭉탱이'가 고대로 있어 가지고 무엇을 봐도 그 의단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무엇을 들어도 흔들림이 없이,
알 수 없는 의단이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차를 타거나, 누가 옆에서 나한테 욕을 하거나 억울한 소리를 해도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화두만이 떠억 드러나게 된다면 그게 공부가 자리가 잡혀가는 거여. 익숙해지는 거여.

그렇게 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잠을 자면 꿈에서도 그 의단이 없어지지 않고, 새벽에 눈을 떠도 엊저녁에 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있게 된다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하는 건데,
공부가 익숙하게 되어서 그렇게 되어야 머지 않아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알뜰히 열심히 해야 그런 타성일편 지경이 오는 것인데, 열심히 하지 아니하고 허다 말다가 그저 그래 놓고서,
‘아이고, 참선해봤자 되지도 않고 우리는 근기(根機)가 얕아서 염불이나 해야지, 참선은 좋은 줄은 알지마는 죄 많은 중생이라 못한다’고, 이런 자포자기를 하신 분이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를 않습니다.

열심히 해서 발심(發心)하고 분심(憤心)을 가지고 의심(疑心)을 내서, 대신심과 대분심,
‘어째서 과거에 불보살과 선지식은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해탈도를 증득했는데 나는 왜 같은 사람으로서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했는가.’
속에서 분한 생각이 나고 그래 가지고 도를 아니 닦을라야 아니 닦을 수 없는 그런 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의단, 대의심,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하는 그 간절한 의심.
이 3가지 요소가 동시에 일어날 때에 우리는 화두를 들랴고 안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계를 지킬랴고 안해도 저절로 계가 지켜지는 것이고, 참선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는 그 가운데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오계를 받고 또 화두를 타고 또 불명(佛名)을 받게 되겠습니다. 앞으로 스님네가 부르는대로 차례차례 나오셔서 이 불명을 받아 타셔서,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잘 아셔야 합니다.
속에 이와 똑같이 생긴 계문(戒文)이 들어있고 거기에 여러분의 불명이 씌여 있습니다. 한문으로 씌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봉투에는 한글로 씌여 있으니까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아시고,
가정에서도 내외 간에 서로 불명을 부르시면 더욱 좋고, 형제자매 간에도 불명을 부르고 ‘아무개 엄마, 아무개 엄마’하지 말고 ‘아무개 보살’ 이렇게 해서 불명을 서로 부르면 불명을 부른 사람도 공덕이 되고 부름을 받는 사람도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피차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불명 한번 부를 때마다 ‘이뭣고?’를 하는 데에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되는 것이니만큼,
불명을 잘 스스로 잊지말고 남의 불명도 잘 알아서 서로 서로 불러주게 된다면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또 부처님의 아들로서 도반으로서 좋은 인연이 깊어지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32분48초~60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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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바라문(婆羅門) ; ‘브라만(Brahman)(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사제 계급)’의 음역어.
*탁발(托鉢 밀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2)

*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부업(副業) ; 본업 이외에 여가를 이용하여 갖는 직업.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계문(戒文) ; 불자(佛子)가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을 조목별로 적은 글.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화두불명수계)2014. 6. 22. 09:17

 

 

§(306) 오계(五戒) / 계·정·혜(戒·定·慧)-삼학(三學) / 자각(自覺)·각타(覺他)·각만(覺滿) / 소승계(小乘戒)와 대승계(大乘戒) / 연비(燃臂)와 참회.

삼학은 계·정·혜(戒·定·慧) 이것을 삼학(三學)이라 그러고, 탐진치를 삼독(三毒)이라 그러는데, 삼독을 돌이켜서 바꾸어 가지고 삼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참선을 해야 하고, 바른 참선을 하고자 하면 계율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앞으로 올바른 부처님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가고 바른 지혜를 얻어서 영원한 깨달음과 행복을 얻고자 하거든, 맨 먼저 부처님의 계를 잘 지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로 지키는 계’는 소승계(小乘戒)고, 대승계(大乘戒)는 ‘마음으로 지키는 계’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향불로써 여러분의 팔에 연비(燃臂)를 받게 됩니다. 연비를 받는 뜻은 우리가 이 시간 이전에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범한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참회하고, 참회함으로써 깨끗이 다 씻어버리고 앞으로는 다시는 범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뜻.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어(86.08.03)에서(용306)

 

(1) 약 18분.

 

(2) 약 11분.

 

 

(1)------------------

지금부터 여러분께서는 불명(佛名)과 오계(五戒)와 또 화두(話頭)를 타시게 되겠습니다.

첫째, 이 오계(五戒)를 먼저 설하게 되겠습니다. 아까 법상에서 잠깐 말씀드린바와 같이 부처님의 제자가 될 때에는 오계를 받고 또 불명을 타고 또 공부해 나가는 바른 법을 배워서 마음을 닦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佛敎)를 한마디로 말해서 삼학(三學)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 중생은 탐진치-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이 탐진치(貪瞋痴) 3가지의 옳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을 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을 돌이켜서 삼학(三學)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삼학은 계·정·혜(戒·定·慧) 이것을 삼학이라. 석 삼(三)자, 배울 학(學)자, 삼학(三學)이라 그러고, 탐진치를 삼독(三毒)이라 그러는데, 삼독을 돌이켜서 바꾸어 가지고 삼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삼학(三學)의 첫째는 계(戒)입니다. 계(戒). 계율(戒律).
5계와 10계 또는 비구 250계 또는 보살 십중대계(十重大戒)와 48경계(四十八輕戒) 이런 계가 있는데, 이 계는 '몸으로 지키는 계'와 '마음으로 지키는 계'가 있습니다.

이 계(戒)를 몸(身)과 말(口)과 마음(意)을 올바르게 가져나감으로 해서 계를 지키고,
그 다음에 정(定)은, 우리의 마음이 항상 그 탐진치 삼독으로 훨훨 불이 타 가지고 안정을 얻지 못하고 노상 둥둥 떠다니고, 노상 치닫고, 잠시도 고요히 안정되는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參禪)을 해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한곳에 안정을 시킴으로 해서 자기의 본성을 찾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정(定)을 닦음으로 해서 그래서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닫는데,
비유를 들어서 말하자면 계(戒)는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定), 선정(禪定)은 그 물그릇에 물을 담는 거와 같고.
그래서 계기(戒器)요-계의 그릇이요, 정(定)의 수(水)요-선정(禪定)의 물이다 그말이죠. 그리고 혜월(慧月)이요. 지혜는 달과 같은 것입니다.

계의 그릇이-계를 잘 닦음으로서 그 그릇이 깨끗하고 바로 놓여져야, 거기에 맑은 참선의 물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맑은 물을 담음으로 해서 하늘에 떠있는 달이 그 그릇안에 물속에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달이 물속에 잘 나타나기를 바래거든, 그 물이 맑고 고요해야 하고, 물이 맑고 고요하게 잘 담기게 할라면은 그릇이 깨끗하고 그릇이 바로 놓여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戒)와 정(定)과 혜(慧)는 항상 셋이 같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계(戒)만 있고 정(定)이 없어서는 혜가 이룰 수가 없고, 혜(慧)만을 바라면서 선정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계와 정과 혜, 삼학은 삼위일체(三位一體)인 것입니다. 3가지가 한 체(一體)인 것입니다.
계 있는 곳에는 정과 혜가 있고, 정이 있는 곳에는 계와 혜가 있고, 혜가 있는 곳에는 정과 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3가지는 항상 동시요 한 뭉텅이인 것입니다.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참선을 해야 하고, 바른 참선을 하고자 하면 계율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앞으로 올바른 부처님 제자로서 바르게 살아가고 바른 지혜를 얻어서 영원한 깨달음과 행복을 얻고자 하거든, 맨 먼저 부처님의 계를 잘 지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지 아니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은 저 산에 나무에 올라가 가지고 물속에서 사는 고기를 구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또 모래를 쪄 가지고 밥을 맨들라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모래를 솥에다 넣고 불을 지핀다 하더라도 그 모래는 밥이 되지 아니헌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또 좋은 집을 지을라면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나 질컥벌컥한 그 굳지 않는 땅에다가 아무리 설계를 잘해서 훌륭한 집을 지은다해도 그 집은 얼마가지 못해서 기둥이 가라앉고 벽이 갈라지고 집이 쓰러지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타시는 계율이 얼마만큼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가를 여러분은 잘 아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불살생(不殺生),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둘째, 불투도(不偸盜),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자기 물건 아닌 것을 취하지 말아라.

셋째, 사음(邪淫)을 하지 말아라. 자기의 아내나 자기의 남편이 아닌 사람과 방사(房事)를 하지 말아라.
자기 남편, 자기 아내 아닌 사람과 사랑을 하게 되면은 그것은 피차에 괴로움과 불행을 가져오고 가정을 파탄시키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그래서 마침내 자기도 불행하고 남도 불행하고 사회도 시끄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음을 하지 말아라.

넷째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거짓말하면은 진실성을 잊어버려서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직업을 갖건 진실하지 못하면 자기는 설 곳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다섯째는 술을 마시지 말아라. 술을 마시게 되면은 차츰 과음을 하게 되고 술 취한 마음 상태에서 말을 하게 되면 실수를 하게 되고 아무도 그 사람을 인격적으로 믿어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술을 많이 먹게 되면 머리가 나빠지고 결국은 중독이 걸리게 되면은 폐인(廢人)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는 이상 말한, 산목숨을 죽이지 말아라, 도둑질을 하지 말아라, 사음을 하지 말아라, 망어(妄語)를 하지 말아라, 술을 먹지 말아라, 이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왜 죽이지 말아야 하냐. 산목숨을 죽이게 되면 자기 자비심(慈悲心)을 손상하게 되어.
아까 자각(自覺)·각타(覺他)·각만(覺滿), 스스로 자기가 깨닫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깨달은 사람으로 온 법계가 가득차게 하려는 이런 3가지의 큰 목적이 우리 불법의 목적인데,

그 목적을 달성할라면 첫째 자비심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살생을 하게 되면은 그 자비심이 없어져 버려.
그러니 도를 이룰 수도 없고, 도를 이룬다고 해도 무엇을 위한 도냐 이말이여. 그래서 불자(佛子)는 마땅히 살생을 하지 말고 자비심을 길러야 한다.

또 불자는 마땅히 도둑질 하지 말아라. 불자는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고, 각만(覺滿)이 되도록 하는 게 목적인데 남의 것을 훔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남의 것을 훔치는 이 도둑질을 하면은 복덕(福德)을 손상을 해.
복력(福力)이 있어야, 내 복덕이 있어야 나의 모든 좋은 영향력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서 배고픈 사람은 배부르게 해주고, 옷이 없는 사람은 옷을 주어서 따뜻하게 하고,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는 약이 되어주고,

이 보살행(菩薩行)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을 위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까지도 다 바치면서 베풀면서, 그래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인데,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칠 것이냐.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것을 남에게 보시하는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음을 하지 말아라. 사음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항상 내 몸과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가져야 자기도 도를 이룰 수가 있고 또 다른 사람도 제도를 할 수가 있지, 내 몸과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더러운 상태에서 어떻게 남을 청정하게 할 수가 있습니까.

결국은 도(道)는 자비와 복덕과 이 청정한 마음이 모두가 도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고, 그것이 도를 이루는 바탕이 되는데 어찌 몸과 마음을 부정(不淨)하게 가질 수가 있느냐. 그래서 셋째에 가서는 사음을 하지 말아라 그것이여.

넷째에 가서 망어(妄語)를 왜 하지 말아야 하냐. 망어를 하면 진실(眞實)한 마음을 손상하게 되어.
도를 이룰라면 앞에 말한 3가지에다가 또 이 진실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서 도를 이루고 일체중생을 제도하게 되는데,
거짓말을 풀풀 해 가지고 스스로 진실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기도 도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실치 못한 사람의 말을 누가 믿어주며 어디 가서 중생을 제도를 할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항상 진실한 행동과 진실한 말과 진실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에 가서 술을 먹지 말아라. 세속에서 살라면은 남녀간에 다 술을 마시게 되고 술을 권하게 되고 이러는데,
‘아! 이 5계를 받어서 '술을 먹지 말아라'하는 계를 받게 되면 이제 술은 입에다도 못 대겠다. 이거 참! 그 5계 중에 고놈 하나는 뺐으면 좋겠다’ 그러한 말을 하는 분도 있는데,

그래도 부처님께서는 ‘술을 먹지 말아라’한 계율을 다섯 가지의 계(戒) 속에 ‘술을 먹지 말라’고 하는 조목을 넣으신 데에는 큰 뜻이 있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지혜(智慧)를 손상을 해.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다가, 또 나중에는 술이 술을 먹다가 마지막에는 술이 사람을 거꾸로 먹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든지 다 제정신으로 술을 먹고 권하고 그러지만, 차츰 주기(酒氣)가 돌게 되면 자기도 막 먹고 남도 무리하게 권하고 해 가지고 술이 술을 먹게 되고, 나중에는 제정신을 완전히 잃게 되면 그 술이 사람을 먹어버리게 되어서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이 되면 나중에는 중독이 걸리고 술을 안 먹고는 배기지를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서 마시고, 그 술이 주기(酒氣)가 가시기 전에 또 마시고, 가실라 하면 또 목이 좀 마를라 하면 또 홀짝 마시고 홀짝 마시고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하루종일 아주 술이 취해 가지고,

혀는 꼬부라지고 두 다리는 헛발질을 하고, 하는 말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되고, 그러한 사람이 장사를 하면 옳게 하겠습니까? 사업을 하면 옳게 하겠습니까? 무슨 정치를 하면 옳게 하겠습니까?

결국은 이 '술'이라 하는 것은 세속에서 참 아주 끊기 어려우면서도, 이 술 때문에 눈이 나빠지고, 술 때문에 심장이 나빠지고, 제일 두려운 것이 술 때문에 간이 나빠지고, 술 때문에 사람이 자기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리석은 우리 하근기(下根機) 중생들에게는 ‘술을 먹지 말아라’한 계율은 대단히 중요한 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지금 사람을 죽이며, 도둑질을 하며, 사음을 하며, 누가 거짓말을 쓸데없이 풀풀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헌 앞에 말한 4가지는 어지간한 사람이면 설사 계를 받지 안해도 산목숨을 죽이기를 다 싫어하고 또 이 도둑질하라고 해도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또 사음도 역시 마찬가지고 거짓말도 누가 쓸데없이 거짓말 풀풀 하고 다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술은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걸 먹은 것이 별로 죄가 안 되리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도를 닦고자 하는 사람은 이 술을 참 삼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처음~18분1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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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계율은 형식적으로 지키는 몸뚱이 형식적으로 지키는 계가 있고, 마음으로 지키는 계, 두 가지로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몸뚱이로 지키는 계’는 소승계(小乘戒)고, 대승계(大乘戒)는 ‘마음으로 지키는 계’인 것입니다.
‘실지로 저 놈을 내가 죽이리라’ 이렇게 마음을 먹었어도 실지로 죽이지만 아니하면 소승계는 범한 것이 안됩니다.
그러나 대승계는 이미 마음속에 ‘그를 죽이리라’하고 마음먹었다면 이미 대승계는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질이나 사음이나 그런 것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실지로 도둑질을 안 하고 속으로 마음으로 ‘저걸 내가 기어코 훔치고야만 말리라’하고 마음을 먹었어도,
기회가 안 닿던지 중간에 마음이 ‘에이, 내가 그래서는 안 되겠다’하고 안 했다면 그건 소승계는 범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마는 대승계는 이미 한 생각 도둑질한 마음을 냈을 때 대승계는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승계는 차라리 지키기가 쉬웁습니다. 허나 대승계는 '한 생각' 탁 일어나면 이미 범한 것이 되기 때문에 대단히 지키기가 어렵고 또 차원이 높은 계인 것입니다.

우리 하근기, 중근기, 말법(末法)에 우리 초학자들에 있어서는 첫째 이 ‘소승계-몸뚱이로 지키는 계’부터서 철저히 지키고 나아가서는 ‘마음으로 지키는 대승계’까지도 잘 지킬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승계와 소승계를 우리는 아울러서 잘 지키는 그러한 최상승 정법학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상 말한 다섯 가지 계율은 불자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그러한 소중한 것인데 이것을 파(破)하게 되면 이것을 범(犯)하게 되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살생(殺生)을 범한 사람은 평생동안 병치레를 하거나 또 오래오래 살지를 못하고 단명(短命)을 하거나 이렇게 되고,
또 도둑질을 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평생동안 가난뱅이가 되고 남의 것을 훔친 그 죄로 항상 가난뱅이 보(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돈을 빌려 줘도 갚지를 않게 되고 무엇을 해도 재수가 없어서 사업도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사음(邪淫)을 한 사람은 사음을 한 죄로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되 부정(不淨)한 남편·부정한 아내와 짝지어지게 되어서 항상 불행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고민을 하는 사람, 또 아내가 부정하다고 밤낮 가정에 불화(不和)가 일어나는 그러한 것은 과거 전생에 자기가 부정한 행실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바람 피는 남편 꼴을 보게 되고 부정한 아내를 맞아서 속을 썩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그렇게 지어 가지고 금생에 그렇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생에 혹 그러한 일을 당하고 있거나 당하더라도 이것이 전부 전생에 자기가 지은 죄값으로 이런 일을 당한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을 하고 그것을 상대를 용서하고,
자기를 앞으로 그러한 일이 없도록 스스로 청정한 행을 갖도록 노력을 한다면 복잡했던 가정 문제가 다 해결이 되고 다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많이 먹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지옥에 가서 한량없는 고를 받다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면,
여간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렵게 어렵게 사람이 된다하더라도 돌대가리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지능지수가 50도 못되게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바보 천치로 태어나서 먹을 것 밖에는 모르고, 무엇이 좋고 하는 선악을 분별을 못하고, 본말(本末)을 가리지를 못하고, 사람은 분명히 사람인데 아주 바보로 그렇게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도 그렇게 폐인이 되지만 세세생생에 그런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속에 몸담아 살면서 그렇지 않아도 살기가 어려운데 이 5계를 받아가지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다 보면 꼼짝을 못하겠다. 정말 자유없는 그러한 참 구속된 부자유한 그런 생활을 살게 될 것이 아닌가. 차라리 받지를 말까.

이런 망설임을 가지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만큼 어렵지만,
그것을 부처님 법을 믿고 그것을 잘 지켜나감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자비심이 넘쳐 흐르고, 복덕이 풍족하고, 몸과 마음이 청정하고, 그리고 진실하고, 그리고 지혜가 넘친다면,

우리는 금생에 인격을 완성을 하고, 어디를 가나 모든 사람의 신망을 받고 존경을 받고,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한마디를 하고 뭣을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고 나를 따라 주고,
그렇게 해서 내가 모든 사회의 등불이 되어주고, 나침반이 되어주고, 소금이 되어서 사회를 가는 곳마다 다 정화를 할 수 있는 그러한 인격자가 된다면,
그것이 우리 불자가 부처님의 계율을 철저히 지키면서 참선을 열심히 해서 도를 닦은 보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상 설한 다섯 가지 계율은 불자(佛子)로써 마땅히 자진해서 잘 지켜야 할 것이니 능히 잘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그래.
‘능히 잘 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이상 설한 다섯 가지 성스러운 계는 불자로써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이상 설한 다섯 가지 성스러운 계는 불자로써 자각(自覺)·각타(覺他)·각만(覺滿)의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마땅히 잘 지켜야 할 것이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지키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키겠다고 맹세를 하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향불로써 여러분의 팔에 연비(燃臂)를 받게 됩니다.
연비를 받는 뜻은 우리가 이 시간 이전에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범한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참회하고, 참회함으로써 깨끗이 다 씻어버리고 앞으로는 다시는 범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뜻으로,
그리고 새로 태어난-새로 불자(佛子)로 태어나서 새사람이 되어서 살기를 맹세하는 뜻으로 연비를 받게 되겠습니다.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우리는 오계를 받고 연비를 하고 부처님께 서약(誓約)을 하고 참회를 함으로써 우리의 과거에 지은 모든 죄는 봄눈 녹듯이 다 녹아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허공과 같이 맑고 깨끗해졌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지은 크고 작은 모든 죄에 대해서는 여러분 이 시간을 기해서 다 깨끗해졌습니다.

그것을 다시는 생각해내지도 말고 그것을 돌아보지도 말고 오직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은 부처님 아들로 딸로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부처님 제자로서 희망과 보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처음~32분4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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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48경계(四十八輕戒) ; [불교] 범망경(梵網經)에 있는 대승계(大乘戒) 가운데 열 가지의 무거운 계에 대하여 비교적 가벼운 죄를 경계한 48가지의 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정(定) : ①계(戒)•정(定)•혜(慧) 3학의 하나。 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혜(慧) ; 지혜(智慧).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방사(房事) ; 남녀가 성적(性的)으로 관계를 맺는 일.
*자비심(慈悲心)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복덕(福德) ; ①착하고 어진 행실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행복과 이익. ②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인사불성(人事不省) ; 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2)

*말법(末法) ;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정법(正法)-오백 년 또는 천 년, 상법(像法)-천 년 다음에 오는 만년(萬年)의 시기이다. 곧 불법이 다하여 구제를 받을 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을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진언(眞言) ; [범] mantra  음대로 써서 만달라(漫怛羅)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진언(眞言) • 신주(神呪) • 비밀어(秘密語)라고도 한다。
'참되어서 허망하지 않은 말'이란 뜻도 되고, '진여(眞如)의 법을 가르치는 말씀'이란 뜻도 되며, 그 미묘한 뜻과 신비한 힘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생각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 하여, 신주(神呪)라고도 하며 비밀주(秘密呪)라기도 하고, '모든 이치가 다 갖추어 있다(總持)'하여 다라니(陀羅尼)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것은 번역하지 않고 범음(梵音) 그대로 외게 된다。여러 글자로 된 것도 있고, 한 자로 된 것도 있으며, 글자 없는 것도 있는데, 이치로 볼 때에는 물 소리나 바람 소리까지도 모두 다 진언 아님이 없다。
*참회진언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