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22. 11. 15. 17:25

§(308) (게송)대지산하시아가~ / 모든 경계에 즉(卽)해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관조할 때에 거기에서 견성성불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 “불법(佛法)을 먼 데에서 구하지 말아라. 불법은 너의 마음속에 있고 지금 이 자리, 이때를 버리고 찾지 말아라”
무량겁으로부터 영원한 미래가 다할 때까지 끊임없는 부처님의 살아 있는 법문이 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 갓없는 우주법계가 전판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법신(法身)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부처님의 화현신(化現身)이요, 바로 우리 몸뚱이 속에 삼세제불이 다 머물러 계셔서 지금도 법문을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법문을 듣고 있는 우리는 법문을 설(說)하면서 동시에 그 법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산승이 설한 것이 아니요 여러 사부대중이 설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이 설하시고 부처님이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同時)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대총상법문은 설한 바 없이 설하고, 들은 바 없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설할 것이 있다면은 그 법문은 바른 법문이 아니요. 들은 바가 있다면, 들을 것이 있다면 그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이렇게 법(法)을 설하고 이렇게 법을 들을 때에, 그 법은 우주법계에 가득차신 법신불(法身佛)과 우주 법계에 가득찬 일체 중생이 동시에 설하고 동시에 듣게 되므로 온 세계는 불보살(佛菩薩)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8)—1986년 칠석법회(86.08.12) (용308) (활구참선, 최상승법)

 

약 18분.


대지산하시아가(大地山河是我家)인대  갱어하처멱향가(更於何處覓鄕家)오
나무~아미타불~
견산망도광미객(見山忘道狂迷客)이  종일행행부도가(終日行行不到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대지산하(大地山河)가 이 나의 집이여.
갱어하처멱향가(更於何處覓鄕家)오. 다시 어느 곳에서 내 고향집을 찾을 것인가.

견산망도광미객(見山忘道狂迷客)이, 눈앞에 나타난 그 산을 보다가 자기의 길을 잃어버리는 그런 길 잃은 손이, 종일행행부도가(終日行行不到家)로구나. 종일토록 가고도 가도 집에는 이르지를 못하는구나.

대지산하(大地山河),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대지산하가 온통 이것이 다 나의 집이요 나의 고향인데, 그것이 자기 고향인 줄을 모르고 자기 고향을 평생토록 찾으러 다녀.
왜 자기 고향에 발을 디디고 자기 고향에서 살면서 왜 고향을 찾고 있느냐? 눈에 보이는 산을 기웃기웃 산을 보다가 자기의 갈 곳을 잊어버려, 길을 잊어버린다 그 말이여.

현실에 자기 발 디디고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자기의 고향이요, 자기가 설 곳이요, 자기의 바로 살아 갈 곳인데, 그 자리를 놔두고 저 눈에 보이는 저 먼산을 갖다가 '행여나 저기에 내 고향이 있는가? 저 산너머에 내 고향이 있는가?' 하고 멀리 찾다가 자기의 진짜 고향을 잊어버리더라 그 말이여.

우리 도 닦는 사람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기 위해서 온갖 고행(苦行)을 극복을 하면서 수행을 하는데, 현재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이러한 현실 경계를 내놓고 따로 도(道)의 경지를 찾고, 따로 견성(見性)할 것을 구하고, 따로 성불(成佛)할 어떠한 특수한 경지를 구하는 한은 참다운 견성은 이르러 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귀로 무엇을 들을 때, 현재 우리가 발로 걸을 때,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그곳을 여의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곳에 즉(卽)해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관조(觀照)할 때에 거기에서 견성성불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닥치고 있는 그 일이 자기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좋건 나쁘건, 기쁘건 슬프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여. 그놈을 여의고 찾지도 말 것이며, 그놈에 집착해서 구하지도 말 것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다그쳐 가야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의 땅[如來地]에 이르는 소식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법회 때마다 “불법(佛法)을 먼 데에서 구하지 말아라. 불법은 너의 마음속에 있고 지금 이 자리, 이때를 버리고 찾지 말아라”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방편(方便)이 아니라 그 말이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에 너무 적절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바르게 도를 닦아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이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설하셨는데 그것이 지금 목판(木版)으로 새겨져서 해인사 장경각(藏經閣)에 봉안이 되어있는데, 그 목판에 새겨진 부처님의 법문은 그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문 가운데에 천만분의 일, 백만분의 일도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정말 살아 있는 법문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세(出世)하시기 전 또는 부처님이 80세 동안 이 세상에 머무르시다가 열반하신 뒤,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무량겁으로부터 영원한 미래가 다할 때까지 끊임없는 부처님의 살아 있는 법문이 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육도법계(六道法界), 이 갓없는 우주법계(宇宙法界)가 전판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법신(法身)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 모래알 하나, 풀 이파리 하나, 꽃 이파리 하나, 구름 한 조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다 끊임없는 부처님의 몸이요, 그 부처님 몸뚱이에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모래알 속에 다 머물러 계시면서 끝없는 법문을 설하시고, 조그마한 풀 이파리 하나에서도 삼세제불이 그 속에서 다 설법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삼라만상 그런 현상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뚱이, 언필칭(言必稱) 우리는 '중생(衆生)'이라 그러는데 남녀노소 우리 자신들도, 물론 불교를 믿는 사람이나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이 일체가 다 전부 다 부처님의 화현신(化現身)이요, 바로 우리 몸뚱이 속에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다 머물러 계셔서 지금도 법문을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법문을 듣고 있는 우리는 무엇이냐?
법문을 설(說)하면서 동시에 그 법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법을 설하는 것과 법문을 듣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승(山僧)도 역시 설(說)하고 듣고 있고, 여러분도 들으면서 동시에 또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승이 설한 것이 아니요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설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이 설하시고 부처님이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同時)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묘(妙)하다고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동시에 설하고 듣고 있는 이것을 어찌 중생의 생각으로 이것을 구할 수 있으며, 어찌 범부(凡夫)의 알음알이로 이것을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것입니다.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는 이 돌아가신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遠近) 친척의 영가(靈駕)를 명복을 빌고, 천도(薦度)해 드리고 또 살아계신 부모 형제자매와 자녀들의 수명장수를 빌고, 복덕구족을 빌고,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 자리에 모다 운집을 하시고 아울러서 칠석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은 설한 바 없이 설하고, 들은 바 없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설할 것이 있다면은 그 법문은 바른 법문이 아니요. 들은 바가 있다면, 들을 것이 있다면 그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법(法)을 설하고 이렇게 법을 들을 때에, 그 법은 우주법계에 가득차신 법신불(法身佛)과 우주 법계에 가득찬 일체 중생이 동시에 설하고 동시에 듣게 되므로 온 세계는 불보살(佛菩薩)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불보살이 따로따로 떨어져서 온 세계에 퍼졌다 해도 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꽃대로 붉게 피어서 아름답고, 풀은 풀대로 파랗게 너울거리고, 김 서방, 이 서방은 각각 아들딸 낳고 장사하고, 농사짓고 그렇게 사는 것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관공리는 관공리대로, 농부는 농부대로, 승려는 승려대로, 신도는 신도대로, 각각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분상(分上)에 맞추어서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책무를 완수할 때에 전부가 다 한마음이 되고, 한 불사(佛事)를 이룩하고, 한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 흙과 종이와 철근과 기왓장, 그런 것들이 모두 다 여러 가지 재료가 합해져서 하나의 훌륭한 집을 짓듯이, 우리 김가, 이가, 박가, 고가, 성(姓)도 다르고, 피도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지만 각각 다른대로 저 나름대로의 생애가 있고, 저 나름대로 취미가 있고, 저 나름대로의 희망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마는,
바른 불법,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찾는다고 하는 점에서 올바르게 듣고, 올바르게 닦는 것을 우리 모두의 본업(本業)으로 해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때, 절에 오면은 훌륭한 신도요 법보제자요, 가정에 돌아가면 훌륭한 아내요, 어머니요, 아들이요, 딸이요, 아버지요, 형이요, 동생이요, 자식이 될 것입니다.(16분12초~33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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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대지산하시아가~’ ; 『소요당집(逍遙堂集)』 게송 참고.
*고향(故鄕) ; 본래 살던 곳. 본고향(本故鄕). 본향(本鄕).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견성의 성(性)은 본성(本性), 자성(自性), 본심(本心), 법성(法性) 등과 같으며, 이런 맥락에서 견성을 견자심불성(見自心佛性), 견불성(見佛性), 견자본성(見子本性), 견법성(見法性)이라고도 한다.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에서.(9분 10초)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業)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것.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은 티끌. 찰(刹)은 산스크리트어 kṣetra의 음사. 토(土), 국(國), 처(處)라고 번역. 국토. 세계. 땅. 장소. 영역.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다.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언필칭(言必稱) ; 말을 할 때면 항상 일컫기를.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화현신(化現身)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 ‘眞佛無口, 不解說法. 眞聽無耳, 其誰聞乎.’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此性縱汝迷時亦不失, 悟時亦不得. 天眞自性, 本無迷悟. 盡十方虛空界, 元來是我一心體. 縱汝動用造作, 豈離虛空. 虛空本來無大無小, 無漏無爲, 無迷無悟. 了了見, 無一物, 亦無人, 亦無佛,

이 본성은 비록 네가 미혹해 있을 때라도 결코 잃지 않으며, 또 깨달았을 때라도 역시 얻는 것이 아니다. 천진스런 이 자성(自性)은 본래 미혹함도 깨달음도 없다.
온 시방의 허공계가 원래 나의 한마음의 본체이다. 비록 그대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할지라도 어찌 허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허공은 본래 크지도 않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도 없고 유위도 없으며, 미혹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 뚜렷하고 분명하게 보아 한 물건도 없고, 또한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다.

絶纖毫的量, 是無依倚無粘綴一道淸流, 是自性無生法忍. 何有擬議. 眞佛無口, 不解說法. 眞聽無耳, 其誰聞乎. 珍重.

거기에는 털끝만큼도 계량(計量)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의지하여 기댈만한 것도 없고 달라붙을 것도 없는 한 줄기의 맑은 흐름인 것이며, 이것이 곧 자성(自性)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인 것이다. 어찌 무슨 의론의 여지가 있겠는가?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자신을 소중히 하여라.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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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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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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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