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목적)2026. 7. 24. 18:43

§(557)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면 제절로 계(戒)가 지켜진다 / 신토불이(身土不二)의 본뜻, 정보(正報)와 의보(依報) / (게송)신여백운래환계~ /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고 보면 우리는 비로자나 법신불(法身佛)과 더불어 영원을 사는 것.


연비(燃臂)하는 뜻은, 무량겁 이래(以來)로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罪)를 참회(懺悔)한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는 그러한 죄를, 그러한 악을 짓지 않겠다고 하는 맹서(盟誓)를 부처님께 한 것입니다. 계를 받고 연비를 한 이 공덕으로 우리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는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우리는 무량겁으로 내려오면서 익힌 바가 습기(習氣)로 남아 있어서 무심결에 그러한 악을 범하게 되는데, 그러한 생각이 일어날라가도 퍼뜩 '이 뭣고?' 화두를 들면 그 죄를 범하기 전에 막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항상 화두(話頭)를 챙기고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면 제절로 계(戒)가 지켜지는 거여. 참선하는 사람이 무슨 살생을 하며, 도둑질을 하며, 사음을 할 것인가.

우리가 '이 뭣고?'를 열심히 해서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를 깨닫고 보면 우리는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과 더불어 영원을 사는 것이여.
생사(生死)란 것이 그렇게 크게 좋아할 것도 없고, 크게 슬퍼할 것도 없어요. 구름이 나타났다가 날아가 버리면 그만인 것이고, 알고 보면 그렇게 두려워할 것도 없고 그렇게 싫어할 것도 없지만,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분명(分明)히 생사(生死)가 있고 분명히 육도윤회(六道輪廻)가 있다 그 말이여.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급한 것은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를 깨닫는 거여. '이 뭣고?'를 해서 결정코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라야, 그래야 이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것이 바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하는 거여.

**송담스님(No.557)—1995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557)(참선)

(1/3) 약 17분.

557-1:3(1995년 10월 첫째일요법회:약17분).mp3
7.88MB



(2/3) 약 16분.

557-2:3(1995년 10월 첫째일요법회:약16분).mp3
7.18MB



(3/3) 약 17분.

557-3:3(1995년 10월 첫째일요법회:약17분).mp3
7.60MB




(1/3)----------------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받고 연비(燃臂)를 마쳤습니다.

연비(燃臂)하는 뜻은, 무량겁 이래(以來)로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罪)를 참회(懺悔)한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는 그러한 죄를, 그러한 악을 짓지 않겠다고 하는 맹서(盟誓)를 부처님께 한 것입니다. 계를 받고 연비를 한 이 공덕으로 우리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는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다시는 그러한 악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10가지 악을 짓지 않을 수가 있을까? 10가지를 조목조목이 따로따로 지키려고 하면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마는, 항상 언제 어데서나 자연스럽게 간단하게 잘 지키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까 전강 조실(祖室) 스님께서 녹음법문(錄音法門)으로 들려주신 내가 나를 찾는 공부, 참선법(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면, 제절로 살생(殺生)을 안 하게 되고, 도둑질도 안 하게 되고, 거짓말도 안 하게 되고, 입으로 짓는 4가지 죄도 안 짓게 되고, 마음으로 짓는 3가지 죄도 제절로 안 짓게 된다 그 말이여.

우리는 무량겁으로 내려오면서 익힌 바가 습기(習氣)로 남아 있어서 무심결에 그러한 악을 범하게 되는데, 그러한 생각이 일어날라가도 퍼뜩 '이 뭣고?' 화두를 들면 그 죄를 범하기 전에 막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항상 화두(話頭)를 챙기고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면 제절로 계(戒)가 지켜지는 거여. 참선하는 사람이 무슨 살생을 하며, 도둑질을 하며, 사음을 할 것인가.

화두 드는 공부에 대해서는 방금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간곡히 설해 주셨다 그 말이여.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닌 이놈이 무엇인가?'
속이 상할 때나, 기분이 나쁠 때나, 썽이 날 때나, 외롭고 슬플 때나, 원망스러울 때나, 무슨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어날라고 하자마자, 퍼뜩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르~ 들여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하다 보면, 치밀어 올라오던 가슴이 스르르르르~ 가라앉으면서 제절로 계(戒)를 지키게 되고 참나를 찾는 공부로 나아가니 이것이 바로 최상법(最上法)이다 그 말이여.


이제 여름이 가고 이에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도 늦은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산에는, 들에는 여기저기 오곡백과(五穀百果)가 익고, 들에는 벼가 익어서 누렇게 금파(金波)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일향(一向)으로 자연을 예찬(禮讚)만 하고 있을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아름다운 산에 골짜구니는 등산객들로 인해서 물을 마실 수가 없는 형편이고, 그 공장 폐수다 생활 폐수다 그러한 것이 흘르고 흘르고 흘러서 한강 · 금강 · 영산강 · 낙동강 · 섬진강, 우리나라에 큰 강들이 그냥 그 물을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강에서 살고 있는 모든 크고 작은 고기들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강물이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르면 바닷물이 뿌옇게 오염이 되고, 바다 밑에는 그런 독한 물질들이 가라앉어서 바다 밑은 참 무서운 독약으로 쌓이고 쌓여서, 해일이 일어나고 태풍이 불면 그 바다 밑에 가라앉었던 물이 뒤집어지면 그것이 바로 적조 현상(赤潮現象)이라 하는 거여.
바닷물이 벌게져 가지고, 옛날에는 부분적으로 쪼끔 일다가 말았는데 지금은 그 적조 현상이 일어나 가지고 남해로부터 동해로 막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수억 마리의 고기떼들이 다 죽고, 조개들이 다 죽고, 미역 해조류(海藻類)가 다 썩어 문드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재지변(天災地變)도 아닙니다. 인간들이 어리석어 가지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몰지각(沒知覺)한 인간들의 행위로 말미암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유유히 흐르는 강이, 그 넓고 넓어서 맑은 물이 물결치던 저 바다가 오염(汚染)이 된 것입니다. 자연이, 산과 강과 바다가 오염이 되면 결국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미역이다, 다시마다, 김, 그리고 많은 생선들 안 먹어버리면 그만이다' 하겠지만, 어민들은 그것에 생계를 유지하고, 모든 국민들은 해산물을 먹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김이나 미역이나 고기들이 병들고 변질되고 그 많은 해변가에 조개들이 모다 썩어 문드러지는데, 아직 안 죽었다 하더라도 독(毒)한 물질로 전부가 병(病)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게 되면은 신경통이 생기고, 암이 생기고, 심장병이 생기고, 골수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공기는 오염이 되어서 밤이면 별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가을 하늘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것인데, 지금은 하늘이 파랗지를 않습니다. 언제나 시커먼 구름이 끼어 있어서... 이것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 먼지와 매연에 의해서 하늘이, 푸른 하늘이 없어진 것입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도 먹지 못하고, 또 들에는 독한 농약을 함부로 써서, 유기 비료(有機肥料)를 쓰지 아니하고 화학 비료만을 냅대 쓰고 농약을 처대가지고 곡식도 마음놓고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으니 그나마도 그걸 먹게 되니, 옛날에 그렇게 별로 구경하기조차 어렵던 각종 암(癌) 병이 여기서 저기서 우리의 가족들이 친지들이 암으로 모다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을 거리에 나가면 여기저기 모다 쓰여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어라. 외국산 먹지 말고 국산을 먹어라' 그러한 말로 널리 해석되어지고 있습니다.
신(身), 몸뚱이와 땅[土]은 둘이 아니여[不二]. 그러니 둘이 아니니까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을 먹어야 한다. 그 말이 대단히 좋은 말이나, 앞으로 외국 쌀이 값싸게 들어오고 맛이 좋으면, 농약에 쩔은 국산 쌀, 그리고 비싸고 한 국산 쌀 안 먹을 것입니다. 너도나도 외국 쌀을 사먹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값도 싸고 크고 안전하고 멋있으면 다투어서 외국차를 사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애국심을 가졌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것이 좋지 못하고 비싸기만 하면 누가 우리나라 것을 애용하겠습니까?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아무리 부르짖어도 아무 설득력이 없을 것입니다. 외제보다 값이 싸고 튼튼하고 멋있고 또 맛도 좋고 몸에 좋아야만 국산품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이 나왔으니, 그 본뜻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정(有情), 우리 모든 중생들이 과보(果報)에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 중생에 몸과 마음은 이것을 정보(正報)라 해. 정(正), 바른 과보(果報)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 밖에 세계(世界)와 국토(國土), 산과 강,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입고 있는 옷,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구들은 이것을 '의지할 의(依)' 자, 의보(依報)라 하는 것입니다.

정보(正報)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의탁(依託)하는 환경, 이것이 '의지할 의(依)'자, 의보(依報)인데, 정보(正報)와 의보(依報), 다시 말해서 신토, 신토(身土)—신(身)은 정보(正報)고, 토(土)는 의보(依報)다 그 말이여. 이 정보(正報)와 의보(依報), 2가지는 이것은 2가지가 아니여, 바로 하나다 그 말이거든.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은, 우리의 몸도 우리가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말미암아서 이렇게 받아난 것이여. 우리가 의지하여 살고 있는 세계(世界)와 국토(國土)도 우리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이러한 세계, 국토를 만나게 된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심식, 심식(心識)을 통해서 지은 과보(果報)로 이러한 몸도 받아난 것이여.

인간(人間)이라 하면, 저 위에 대통령으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 인간이여. 그렇지만 지혜, 머리, 지혜도 영리한 사람과 둔한 사람이 있고, 우리의 상호(相好)도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사지백체(四肢百體)가 아주 멋있게 잘생긴 사람도 있는가 하면은 아주 뵈기 싫고 흉하게 생긴 사람도 있어. 또 복록(福祿)이, 진진(津津)한 복(福)이 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은 아주 박복(薄福)한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이것이 다 자기가 무량겁으로부터 자기가 지은 업(業)으로 인(因)해서 각각 그렇게 다르게 태어난 것이여.(19분5초~36분15초)





(2/3)----------------

미국이나, 서양이나, 한국이나, 다 지구(地球)지마는, 각 나라마다 산과 강과 바다와 들, 다 다르다 그 말이여. 자기가 지은, 과거에 지은 과보(果報)에 의해서 좋은 곳에 태어나기도 하고, 저 아프리카 저런 대단히 살기 힘든, 사람으로서는 살기 어려운 그러한 곳도 있다 그 말이여. 한 나라 안에서도 또 다르다 그 말이여.
이것도 자기가 지은 과보(果報)에 따라서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곳에 태어나고, 물도 흔하고 토실도 비옥하고 바다도 맑아서 산에서 좋은 물이 흘러내리고, 들에는 오곡이 잘 익고, 바다에는 좋은 해산물이 많이 나와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그러한 곳을 만나게 된 것은 자기가 과거에 그만큼 잘 지었기 때문에 그런 곳에 태어나는 것이여.

다행히 우리 대한민국은 비록 나라는 조그마하지마는, 산 좋고 들 좋고 물 좋은 그러한 옛날부터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이름할 만큼 대단히 좋은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좋은 나라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 그만큼 잘 지었기 때문에 그런 좋은 나라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좋은 나라, 좋은 국토에 태어나 가지고 그러한 아름다운 산, 산에 놀러가면 쓰레기를 버리고 마구잽이 함부로 해 가지고 오염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강물을 마구잽이 공장 폐수, 생활 폐수, 쓰레기를 마구 버려 가지고 그 강물이 우리가 마실 수 없는 그러한 독한 고약한 강물로 우리 인간이 만들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이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사람의 발이 지나가기만 하면 산이고 강이고 바다고 온통 오염이 되고 난장판이 되냐 이거여.

우리의 조상들은 수천 년을 이 땅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산과 강과 바다가, 공기가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자연(自然)이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단군(檀君) 이래로 오천년을 내려오면서 우리의 많은 조상들이 이 강산(江山)에서 살다 가셨지만 우리에게 아름다운 산, 맑은 물, 맑은 바다를 고대로 우리에 전해 주신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되어서 우리는 옛날을 '미개(未開)한 시대(時代)'라 이렇게 말하고, 우리는 아주 발달한 '문명(文明)의 시대(時代)'라 해 가지고 뽐내지만, 우리는 어리석기가 곰보다도 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인간들은 잘살기 위해 사업을 하고 나라를 부국(富國)을 만들기 위해서 갖은 공장을 짓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이 파손이 되고, 강물이 오염이 되고, 바다가 온통 고기도 살 수가 없고, 미역도 자랄 수가 없고, 김도 자랄 수가 없는 그러한 황폐한 곳이 되고 만 것입니다.
돈은 좀 벌고 외화 획득을 해서는 차도 좋은 차도 타고 살기에 퍽 편리하게는 되었지만, 우리는 병들어 가고 있고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도 마음놓고 살 수 없는 지옥(地獄)보다도 더 고약한 곳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地獄), 지옥은 차라리 하룻낮 하룻밤에 만 번을 죽고 만 번을 살리고 하는 그런 무서운 고문과 고통을 받는 곳이지만, 자기가 살생(殺生)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사음을 하고,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고,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지옥에 갔어. 자기가 지은 과보로 지옥에 갔다 그 말이여. 그건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그 고통을 받으면서 뼈에 사무치는 정말 참회를 할 것입니다. 저절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지내다가 언젠가는 그 지옥에서 벗어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 것이 우리 중생들인 것입니다.

미리 조끔만 지혜가 있으면, 미리 참회를 하고 그랬으면 지옥에도 안 가게 될 것이고, 조끔만 우리가 앞을 내다보고 지혜(智慧)를 썼으면 산이 저렇게 망가지고, 강이 저렇게 더러워지고, 바다가 저렇게 더러워지지는 안 했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금수강산을 우리는 지옥보다도 더 고약한 못된 강토(江土)를 만들어서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그것을 남겨주고 가게 되었습니다.
좋은 공기도 못 마시고, 좋은 물도 마시지 못하고, 맛있는 김도 미역도 해물도 못 먹고 살아야 하는,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후손들은 소아마비와 심장병과 기형아가 많이 태어나게 될 것이고, 차라리 안 태어난 것만도 못한 그런 애들이 점점 많이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기와 물과 온갖 식품과 약품 이런 물질적인 오염의 탓도 있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은 삐뚤어지고 꼬이고 전도(顚倒)된 인간의 마음보, 그것이 더 큰 문제인 것입니다.
오장육부와 체내에 흐르고 있는 피가 오염이 된데다, 마음보까지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썩어 문드러진 그러한 인간들 사이에 태어난 우리의 후세가 어찌 온전하게 태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속담에, 「종기(腫氣)가 크면 고름이 많이 나고, 이다불대(泥多佛大)라, 진흙 덩어리가 많으면 불상(佛像)이 크게 조성이 된다」 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말인데 이 속에는 진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쬐끄맣게 뽀드락지가 난 것은 그 짜봤자 고름이 조끔 밖에 안 날 거고, 종기가 이만이나 하니 등창이 났다든지 허벅지에 났다면 그놈을 짜면 고름이 많이 쏟아지게 될 것이여.
불상(佛像)을 진흙으로 조성하는 데 진흙을 많이 갖다가 그놈을 잘 이겨서 그걸 그 많은 진흙으로 불상을 조성하면 큰 부처님이 조성이 될 것이여. 진흙을 조끔 갖다가 빚어서 불상을 맨들면 쬐끄만 불상 밖에는 못 만들 것이다 그 말이여.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허고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라
나무~아미타불~
만면천두수각이(萬面千頭雖各異)나  약문훈기일반향(若聞熏氣一般香)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 전단 향나무로 중생의 모냥을 조각을 하고,
급여여래보살형(及與如來菩薩形)이다, 부처님 상호와 보살 상호를 또 조각을 한다 그 말이여.

만면천두수각이(萬面千頭雖各異)여. 중생의 모습도 갖가지로 조성을 하고, 부처님 모습도 각각으로 조성을 하고, 보살(菩薩)의 모습도 각각으로 조성을 하고, 소나 돼지나 말의 모습도 갖가지로 조각을 했다 그 말이여.
그 모냥이 다 각각 다르지마는, 약문훈기일반향(若聞熏氣一般香)이여. 내음을 맡어 보면, 부처님 상을 조상한 것도 맡어 보면 전단향(栴檀香) 냄새가 나고,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의 상(像)을 조각한 것도 맡어 보면 전단향 냄새가 나고, 중생의 갖은 모습을 조각을 한 것도 맡어 보면 전단향 향내 냄새는 마찬가지다.
왜 그러냐 하면 그 근본이 전단향으로 조성을 했기 때문에 비록 모냥은 달라도 향내는 일반(一般)이다 이거거든.

좋은 공기, 좋은 물, 좋은 음식을 먹고,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합해서 그 사이에서 애기를 나면 아름답고 착하고 멋진 아기를 낳게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 말이여.
건강(健康)한 육체와 건전(健全)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정치를 해도 바른 정치를 할 것이고, 경제를 해도, 사업을 해도 올바른 사업을 할 것이고, 교육을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더라도 올바른 교육자가 되고, 올바른 농사꾼이 되고, 올바른 장사가 되고, 올바른 판검사가 될 것이다 그 말이여.(36분16초~51분56초)





(3/3)----------------

삐뚤어진 정신을 가진 사람이 공장 하는데, 공장을 하는 데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깊이 100m 이상 깊이 뽐뿌를 박아 가지고, 빠이프(pipe)를 박아 가지고 거기서 물을 뽑아서 쓰는데 몇천만 톤 뽑아 쓰면은 물도 한계가 있어서 안 나오거든.
그러면 공장에서 쓰고 남은 독한 약품이 섞여 있는 공장 폐수를 그 100m 이상 깊은—물이 인자 떨어져서 안 나오는—그 물구녁에다가 공장 폐수를 거기다 집어넣는다,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 100m 이상 깊은 우물 속으로 공장 폐수를 집어넣으면, 지하의 수맥(水脈)이 있는데 그 수맥으로 그 공장 폐수가 나가면 근처나 멀고 가까운 데에 우물을 파면 그 공장 폐수로 인해서 오염이 된 물이 솟아나옵니다. 저 100m, 1000m 밖에 흘러나오는 물이 바로 공장 폐수가 나오는 그 물을 사람이 먹으면 뭣이 되겠느냐.

자기도 잘살아야 하지만, 자기가 잘살려고 남에게 해를 끼쳐선 안 되는 거여. 자연을 오염을 시키고 자연을 파손을 해선 안 된다 그 말이여.
자기가 좀 돈 좀 벌려고 사업을 한답시고 자연을 파손하고 지하수를 갖다가 오염을 시켜 놓으면, 그러한 마음씨를 가지고 큰 부자 되겄습니까? 그러한 삐뚤어진 마음씨, 불량한 마음씨를 가지고 어떻게 큰 복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 이거여. 그러한 마음으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봤자, 부모를 죽이는 폐륜아 밖에는 그 속에서 태어나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요새 '환경을 보호하자!' 이러한 말이 자꾸 드높여지고 있습니다. 법(法)을 엄하게 제정을 해서 감시를 철저히 하고 벌칙을 강화를 하는 것,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고, 민간 환경을 정화하는 그런 운동이 전국적으로, 조직적으로 확대 전개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선행(先行)되어야 할 중요한 것은,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안 걸리고도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보를 고치는 것입니다.

아까 우리의 몸은 '정보(正報)'고, 우리가 몸담아 있는 세계 국토와 가옥과 의복과 음식 기구 이런 것은 '의지할 의(依)' 자, '의보(依報)'라 했습니다마는, 그 정보(正報) 가운데에 진짜 이 '마음보'라 하는 거, 이것이 정보(正報) 의보(依報)를 진짜 바로잡는 것이 우리 마음보입니다.
'마음보' 하나를 바로잡으면 몸도, 이 세계도 영원토록 우리가 살 수 있는 좋은 극락국토(極樂國土)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보 고치는 데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보를 고치는데 아까 받은 십선계(十善戒)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말이여.
십선계를 잘 지키면서, 막연하게 십선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건 사실상 이 어려운 일이여.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이냐? 이 뭣고?'

5년, 10년 내지 30년을 '이 뭣고?'를 해도 여전히 마음보를 고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참선(參禪)을 제대로 한 사람이 아니여.
자녀를 기르는 데 맛있는 음식과 고기를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면 그것이 자식을 잘 기른 것이 아니고, 목동이 소나 말이나 돼지를 길르는데 사료만 배가 터지도록 잔뜩 맥인다고 해서 좋은 목동이 아니여. 책상에 밤낮 붙어 있는다고 해서 그 학생이 공부 잘한 것이 아니여.

참선(參禪)도 마찬가지여. 제대로 참선을 하면은 첫째, 우리 마음보가 바로잡아지거든.
마음보가 바로잡어지고 안 잡아지고 한 것은 무엇으로 아느냐 하면은 몸으로 하는 행동을 보고, 입을 통해서 하는 말을 들어보고, 마음씨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마음보가 고쳐졌느냐 안 고쳐졌느냐, 알 수가 있는 거여.
밤낮 참선한다고 해도 썽을 잘 내고 탐욕심이 아주 시커먼 탐욕심을 내고, 심술(心術)궂고 그리고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사음을 하고 거짓말한다면, 그거 어떻게 그 사람이 바로 참선을 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겠느냐 이거여.

말과 행동과 마음 씀, 그것에 즉(卽)해서 '이 뭣고?'를 해야 돼.
'이 뭣고?'를 앉어서나 서서나 걸어가면서나, 일할 때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항상 '이 뭣고?'를 하면 자연히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 반영이 되고, 생활 속에서 '이뭣고?'가, 생활에 즉(卽)해서 '이 뭣고?'를 자꾸 챙기게 해서 참선과 생활이 둘이 아니여. 바로 '신토불이'가 거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거거든.

'외국산 먹지 말고 한국산 먹자' 신토불이(身土不二)의 뜻이 어찌 그렇게 값없이 해석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신토불이(身土不二)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몸과 이 세계가 둘이 아니다」 이거거든.
그러니 마음보를 고침으로 해서 몸도 건강하고 우리의 주변 환경도 아름다워지고 좋아져서, 그렇게 해서 이 세계를 극락정토로 만들자 이거거든. 이것이 바로 신토불이의 참뜻이다 이거거든.


오늘 이 법회(法會)에 참석하고 십선대계(十善大戒)를 받고 화두(話頭)를 탄, 그리고 불명(佛名)을 탄 이 공덕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우리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세세생생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화두(話頭)는 '이 뭣고?'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통해서 우리는 '이 뭣고?' 화두를 탔습니다. '이 뭣고?'
'이 뭣고?' 처음에는 별로 재미도 없고 맛도 없지만, 법문을 자주 듣고, 녹음법문을 자주 들으면서 자꾸 그 법문대로 '이 뭣고?'를 열심히 하면, 차츰차츰 하려고 안 해도 제절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번뇌(煩惱)가 일어나고 망상(妄想)이 일어나더라도 짜증을 내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채 '이 뭣고?~~~'만 추켜 들어라 그 말이여. 그러면 번뇌 망상은 원래 뿌리가 없는 것이라 제절로 없어지는 거고,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찰나에 통 밑구녁 빠지듯이 툭! 터져서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으면 오후(悟後)에 공부해 나가는 법을 지도를 받을 것이요, 그것이 바른 깨달음이 아닐 때에는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를 해 가야 할 것입니다.


신여백운래환계(身與白雲來幻界)하고  심수명월향하방(心隨明月向何方)고
나무~아미타불~
생래사거유운월(生來死去惟雲月)이라  운자산혜월자명(雲自散兮月自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신여백운래환계(身與白雲來幻界)여  심수명월향하방(心隨明月向何方)고.
몸은 흰구름처럼, 흰구름과 같이 이 사바세계에 왔다가 만났고, 심수명월향하방(心隨明月向何方)이냐, 마음은 밝은 달처럼, 밝은 달을 따라서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우리 몸뚱이는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몸뚱이입니다. 그 몸뚱이는 구름과 같애. 수증기가 올라가서 구름이 뭉쳤다가 바람이 찬 기운을 만나면 비가 되는 거고, 또 눈이 되는 거고, 또 바람이 불면 자최 없이 저 날아서 흩어져 없어지는 것이여. 우리의 육체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우리의 마음은 달과 같애. 달은 항시 밝아 있지마는 구름이 끼면은 그 달이 가리워져서 안 보여.
구름이 다 날아가 버리면 밝은 달이 휘황창 밝아지듯이, 비록 이 육체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병들어서 늙어서 죽게 되는데, 그게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인연(因綠) 따라서 뭉쳤다가 구름 흩어지듯이 흩어진 것인데, 이름을 그것을 '생(生)' 이라 그러고, 이름을 그것을 '죽었다' 그러는 것이지, 생사(生死)는 본래(本來) 없는 거여.

구름은 흩어져 버리고 날아가고 없으면은 달만 환하니 휘황창 밝아 있어.

우리가 '이 뭣고?'를 열심히 해서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를 깨닫고 보면 우리는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불(法身佛)과 더불어 영원을 사는 것이여.
생사(生死)란 것이 그렇게 크게 좋아할 것도 없고, 크게 슬퍼할 것도 없어요. 구름이 나타났다가 날아가 버리면 그만인 것이고, 알고 보면 그렇게 두려워할 것도 없고 그렇게 싫어할 것도 없지만,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 분명(分明)히 생사(生死)가 있고 분명히 육도윤회(六道輪廻)가 있다 그 말이여.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급한 것은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를 깨닫는 거여. '이 뭣고?'를 해서 결정코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라야, 그래야 이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것이 바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변하는 거여.

불명(佛名)은 이 법회가 끝난 뒤에 차례대로 다 노놔 드릴 것입니다. 서로 불명(佛名)을 부르고 불러주고, 불명을 부를 때마다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는 것이니 불명을 받은 사람은 그 계첩(戒牒)을 액자로 해서 잘 갖다 방에, 집에다 붙이고 친구간에나 가족끼리도 서로서로 불명을 부르도록 하시길 바랍니다.(51분57초~68분29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3)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연비(燃臂 불이 타다·불사르다·불을 붙이다 연/팔·팔뚝 비) ; ①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②팔[臂]을 태우는[燃] 고행. 고행의 한 방법으로 팔뚝을 향불로 지지는 일.
연비(然臂 · 煉臂)로도 쓴다. 발원(發願) · 입서(入誓) · 고행(苦行) · 희사(喜捨)의 등의 뜻으로 행한다.


[참고 ❶] 『박산참선경어(博山參禪警語)』 卷下 ‘시의정발불기경어(示疑情發不起警語)’에서.
做工夫  疑情發不起  便欲做有爲功行  或做解脫  或行苦行  冬不爐  夏不扇  人來乞衣  便全身脫去  甘心凍死  謂之解脫  人來乞食  便自己不食  甘心餓死  謂之解脫  更有種種  不可具說  總而論之  皆是勝心所使  誑惑無知  彼無知者  謂是活佛  謂是菩薩  盡其形命  承事供養  殊不知佛戒中謂之惡律儀業  雖是持戒  步步結罪

참선하는데 의정은 일으키지 못하고서 유위(有爲)공덕을 지어 해탈하고자 하거나 혹은 고행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겨울에 불도 피우지 않고 여름에 부채질도 하지 않으며, 누가 옷을 구걸하면 몽땅 다 벗어주고 자기는 얼어 죽어도 달갑게 여기는 일을 해탈이라 생각한다. 또는 누가 밥을 구걸하면 자기는 먹지 않고 굶어죽어도 달갑게 여기는 것을 해탈이라 생각한다. 이런 여러 가지를 다 말할 수는 없으나 총괄해 보면 이것이 다 뛰어나려는 마음에서 나온 번뇌이니, 무지한 이들을 속이는 짓이다.
저 무지한 사람들이 그를 생불이니 보살이니 하면서 신명을 다해 공양 올리고 받들어 섬기나, 본인은 부처님 계율 중에 이런 것을 악율의(惡律儀 청정한 계율을 더럽히는 악행)라고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계율을 지키고 있다 하더라도 걸음마다 죄를 짓는 것이다.

又有一等  燒身燃臂  禮佛求懺  謂之功課  於世法中亦是好事  參究分中當得甚麼事  古德云  切莫向他機境上求  謂禮佛是機境  求懺是機境  佛法中一切好事悉機境也  不是敎你不行此一切善事  但用心一處  此一切善事悉能助發  滋培善根  他日道眼忽開  燒香掃地皆佛事耳

또 어떤 무리들은 몸을 불사르거나 팔을 태우며 예불하고 참회를 구하면서 그것을 공부하는 일로 여긴다. 세속의 법도 안에서는 참으로 훌륭한 일이지만 참구하는 본분에서는 무슨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고덕(古德)은 “결코 그 어떤 기틀[機]과 경계[境]에서도 구하지 마라!”고 하셨는데, 예불도 기틀과 경계이고 참회를 구하는 것도 기틀과 경계이니, 불법의 관점에서는 어떠한 훌륭한 일이 되었건 기틀과 경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대들에게 이런 좋은 일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한 곳에 마음을 쓰다 보면 이러한 모든 좋은 일이 의정(疑情)을 발(發)하도록 돕고 선근(善根)을 늘리다가 뒷날 도안(道眼)이 홀연히 열리면 향 사르고 청소하는 일까지 다 불사(佛事)가 될 것이다.

 

(26)연비(세등26:3분37초).mp3
1.66MB


[참고 ❷] 송담스님(세등선원No.26)—기미년 동안거 해제 법어(80.01.17)에서.(3분37초)
한철 동안을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한 대중 여러분!  그리고 제방(諸方)에서 해제를 마치고 여기에 참례(參禮)하신 수좌(首座) 여러분!
신심있는 단월(檀越)들이 바친 곡석과 의복, 자기의 공부도 뒤로 미루고 우리를 외호해 주신 이 본방...(녹음 끊김)...용맹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신라 때 욱면만큼의 고생에는 미치지 못했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리의 신심, 우리의 용맹정진은 한량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신라 때 욱면 낭자처럼)전부 다 손바닥에다 구녁을 뚫으라는 말씀도 아니고, (혜가대사처럼)모두 다 칼로써 왼팔을 끊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분들이 한 그 목숨을 바칠만한 그 신심!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법을 위해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그 무서운 정진, 그 굳은 9년 동안을 하루같이 한 그 철썩 같은 뜻!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 ‘소신연비(燒身燃臂)를 하지 아니하면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치기 어렵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당장 손가락에다 불을 지르고, 몸을 갖다가 장작을 쌓아 놓고 몸을 태우고, 이렇게 경전의 말씀을 받아들여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 뜨거운 것을 참고 이길만한 그 참을성 있는—난행(難行)을 능행(能行)하는 그런 굳은 뜻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몸을 갖다가 태울만한, 몸을 헌신짝같이 버릴만한 위법망구적인 그러한 정성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손가락을 태우고,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태우고, 도끼를 가지고 손가락을 짜르고, 이러한 어리석은—물론 그 신심은 물론 찬양할만 하지만.
그 신심이 어떻게 신심을 내느냐? 지혜로운 신심,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 알맹이 신심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45분12초~48분48초)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맹서(盟誓 맹세 맹/맹세할 서) ; '맹세(盟誓 임무나 약속을 꼭 실행하거나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함. 또는 그 다짐)'의 원래 말.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 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습기(習氣 익히다·익숙하다·습관 습/기운·기세·힘 기)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0)계(340:1987년 10월 첫째일요법회:2분3초).mp3
1.89MB


[참고] 송담스님(No.340)—1987년 10월 첫째 일요법회.(2분3초)
계(戒)는 계기(戒器)라, 그릇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定)은 정수(定水), 물에다가 비유를 하고, 혜월(慧月), 혜(慧)는 달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계(戒)를 잘 가짐으로 해서 참선, 정(定)을 잘 장애 없이 닦을 수가 있고, 그래서 지혜(智慧)를 얻을 수가 있다.
계의 그릇이 온당(穩當)해야 선정(禪定)의 맑은 물을 그 그릇에 담을 수가 있고, 그 맑은 물이 그릇에 잘 담겨져 있어서 안정이 되어야 하늘에 있는 밝은 달이 그 그릇에 나타나는 거와 같이, 계(戒)를 지키지 않고서는 온당하게 참선(參禪)을 할 수가 없고, 온당하게 정진을 하지 않고서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선을 하고자 하고 지혜의 눈을 뜨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부처님의 계를 받아서 그것을 잘 가짐으로 해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14분31초~16분33초)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금수강산(錦繡江山 비단 금/수놓을 수/강 강/뫼 산) ; 비단(緋緞)에 수(繡)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일향(一向 하나의·한결같은 일/향할 향) ; 언제나 한결같이.
*몰지각하다(沒知覺-- 빠지다·어둡다 몰/알 지/깨닫다·깨우치다 각) ; (사람이나 그 행동이) 깨달아 인식하거나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유정(有情) ; 산스크리트어 sattva. 생명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생(生)이 있는 것. 감정이나 의식을 가진 것. 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옛날에는 중생(衆生)이라 번역하고, 현장(玄裝)이후의 새로운 해석에서는 유정(有情)이라 한역함. 정(情)은 마음이라는 뜻. 일체 살아 있는 것의 총칭.
*과보(果報 열매 과/갚을 보)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 · 구 · 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 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심식(心識) ; 심과 식. ①식신(識神). 영혼. ②식(識). ③차별에 대한 인식. 분별의식(分別意識).
*복록(福祿 복 복/복 록) ; 타고난 복과 벼슬아치의 녹봉(祿俸 예전에, 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살이에 대한 보수로 주던 곡식이나 베, 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에서, 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진진하다(津津-- 나루터·진액·넘치다·윤택하다 진) ; ①입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이 좋다. ②물건 따위가 풍성하게 많다. ③재미 따위가 매우 있다.





----------------(2/3)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즉 단국(檀國)을 세워 약 2천 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지옥은 차라리 하룻낮 하룻밤에 만 번을 죽고 만 번을 살리고 하는 그런 무서운 고문과 고통을 받는 곳’ ; 만사만생(萬死萬生).
*만사만생(萬死萬生) ;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하루 밤과 낮에 만번 죽고 만번 다시 태어난다’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고 또 고통으로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기를... 하루 밤낮에 만번이나 겪는다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표현한 말.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 성냄 ·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전도(顚倒 정수리·머리·근본·미혹하다·넘어지다·뒤집히다 전/넘어지다·거꾸로 되다·거꾸로 도) ; ①바른 견해 · 본연의 상태의 반대인 것. 우리들의 미혹하여 있는 견해. 진리에 어긋나는 것. 거꾸로 된 생각. 그릇된 생각. ②사전도(四顚倒). 일체 세간의 무상(無常), 고(苦), 부정(不淨), 무아(無我)인 진리와 배반(背反)한 견해를 취하는 것. ③넘어지는 것. 뒤집히는 것.
*(게송) ‘전단목주중생상(栴檀木做衆生像)~’ ;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梵音删補集)』 (中 < 佛像點眼作法 < 禮八金剛四菩薩) (해동사문海東沙門 지환智還 집集)
*상호(相好) ; ①얼굴의 생긴 모양. ②부처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音寫)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일반(一般) ; ①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것. ②서로 다를 바가 없는 마찬가지의 상태.





----------------(3/3)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이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43)즉해서(434:91년2월:9분10초).mp3
4.20MB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91.02.03)에서.(9분10초)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놈이 딱 이 몸뚱이 속에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가 가지고, 부모에게 이 몸뚱이를 받아서 그래서 태어나 가지고 젖 먹고 밥 먹고 해서 이렇게 컸는데. 이 몸뚱이는 맛있는 음식, 밥 반찬 모다 그런 것을 먹고 영양을 섭취해서 이 몸뚱이는 자라고 건강하고, 또 잘못 먹고 과식하고 그러면은 또 병이 나기도 하지마는.

그런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우리 주인공은 무엇을 먹어야 그놈이 잘 자랄까? 그건 보약을 먹는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진 않아. 돈이 많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도 않고, 명예와 권리가 높아진다고 해서 그놈이 잘되지는 않아.

그놈은 발심(發心)을 해서 도(道)를 닦아야, 도 닦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자리 자성(自性)을 갖다가—그걸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영혼이라 그러는데, 영혼과 우리의 자성과는 엄격히 구별을 하면은 뜻이 차이가 있겠으나 알기 쉽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육체와 영혼 다 그렇게 생각을 해서 보통 사람의 말을 따라서 영혼이란 단어를 쓰는데.

영혼은 물질로써 그놈이 훌륭해지지를 안 해. 경을 읽는다던지, 염불을 한다던지, 주력을 한다던지, 무슨 계행을 닦는다던지, 여러 가지 다 조도(助道) 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이거든. ‘이뭣고?’거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놈은 경을 많이 읽고, 많이 해석할 줄 알고, 많이 외우고 그러므로 해서 이것이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물론 안 읽는 사람보다는 마음이 좋아질 수도 있고 또 간혹 경을 읽으므로 해서 또 이 지혜의 눈을 뜨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하기 쉽고 간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이뭣고?’거든.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소승법(小乘法)에서는 그런 생각을 자꾸 없애고 버리고 띠어 내버리고 그래 가지고 열반을 증득을 할려고 그런 것인데, 그래 가지고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데. 이 최상승법은 그게 아니거든. 버리고 띠어 번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 딱! 화두(話頭)만 들면 되거든. ‘이뭣고?’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거든. 어려운 것은 과거에 무량겁을 두고 오늘 이 금생까지 오면서 수없는 생을 거듭하고, 수없는 업을 쌓아온 습기(習氣)가 있어서 끝없이 업이 발동이 되어. 그러나 그놈을 버릴려고 그러고, 누를려고 그러고, 띠어 낼라고 한다고 해서 버려진 것도 아니요, 띠어 내지지도 않는 거여.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만 들면, 화두 드는 생각이 뚜렷하고 간절하면 어떠한 업(業) 발동도 거기에서 그냥 찰나간에 이렇게 바뀌어지거든. 왜 그러냐? ‘이뭣고?' 하는 놈이나, 업 발동하는 놈이나 근본은 내나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놈에 즉해서 화두만 들면 되는 것이지 띠어 내고 자실 것이 없거든.

파도가 물에서 일어났는데, 파도가 일어난다고 해서 그 파도가 일어난 부분을 자꾸 퍼낸 그런다고 해서 파도가 가라앉는 것은 아니여. 그 파도에서 바로 물을 봐 버려야 하는 거여. 파도 여의고 물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고, 영원히 파도를 없앨 수가 없는 거여. 건드릴수록 파도는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 파도를 여의지 않고 그 파도가 바로 물인 줄 봐야 하는 것처럼 번뇌 망상을 여의고 진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즉해서 화두만을 들어.

화두라 하는 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좋은 약초를 갖다가 고아 가지고 그놈을 삶아서 물을 내어 가지고 그놈을 계속해서 대리면은 이렇게 고(膏)가 나온 것처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그렇게 해서 뽑아 낸 것이 ‘시삼마(是甚麼, 이뭣고?)’거든. 그래서 ‘시삼마’ 한 번 하는데 팔만대장경 한 번 읽은 거와 마찬가지여.
오히려 그보다도 백 가지 풀을 그놈을 다 먹으면 배만 터지지 무슨 약이 그것이 되겠습니까? 몇날 며칠을 그놈을 먹어야 하겠습니까? 그놈을 삶아서 고(膏)를 내서 먹으면 먹기도 좋고 약 효험도 빠를 거다 그말이여.

팔만대장경 구구절절이 다 부처님의 묘법(妙法)이시지만 그걸 우리가 어떻게 그걸 다 읽으며, 읽은들 그 참뜻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읽어봤자 한문이 어렵고 번역을 한 거 읽어봤자 많이 읽다 보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는 거고.
과거에 도(道)를 깨달은 조사(祖師)들이 그 팔만대장경의 뜻을 무루 읽도록 다 터득을 해 가지고는 확실히 그 근본의 진리를 깨달은 도인(道人)이 탁! ‘시삼마’ 화두를 이것을 참구함으로써 팔만대장경의 뜻 뿐만이 아니라 우주법계의 진리를 탁! 깨달을 수 있도록 해 논 것이 바로 이 활구참선이고 화두거든.(44분3초~53분14초)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19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번뇌 망상 다스리는 법 ;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내버려 두고, 즉각 자기 본참공안을 들고 나간다.
[참고] 송담스님(No.531)—1994년 5월 첫째일요법회.
처음에는 암만 망상을 안 할려고 해도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아무리 화두를 간단없이 들려고 해도 1분도 안 가서 딴생각[別念]이 들어오고 끊어지고, 그러지만 끊어지면 또 들고, 끊어지면 또 들고,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내버려 둬 버려. 내버려 두는 것이 망상을 다스리는 법이여.
지나간 생각이 일어나거나 미래 생각이 일어나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그냥 일어난 그 찰나에 그냥 고대로 놔두어 버리고 자기 본참공안을 터억 거각을 해 나가. 「이뭣고?」(18분26초~19분18초)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52분33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선지식(善知識) ; 산스크리트어 kalyāņa-mitra. 팔리어 kalyāņa-mitta.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가라밀(迦羅蜜) • 가리야낭밀달라(迦里也曩蜜怛羅) 등으로 음사(音寫)하고, 지식(知識) • 선우(善友) • 친우(親友) • 선친우(善親友) • 승우(勝友) • 시우(時友) 등이라고도 한역한다. 반대로 악도(惡道)로써 이끄는 사람을 악지식(惡知識)이라고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으면 오후(悟後)에 공부해 나가는 법을 지도를 받을 것이요’ ; 오후보림(悟後保任).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게송) ‘신여백운래환계(身與白雲來幻界)~’ ; 『천경집(天鏡集)』 (하권) ‘행적(行蹟)’에 있는 함월 해원(涵月 海源) 스님의 임종게(臨終偈).

*사바세계(娑婆世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hā-loka-dhātu.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현실세계. 사바(산스크리트어 sahā)란 사하(沙訶) · 사가(娑呵) · 삭하(索訶) 등으로 음사(音寫)하며, 인(忍) · 감인(堪忍) · 능인(能忍) · 인토(忍土) 등으로 한역(漢譯)한다.

이 세계의 중생들은 십악(十惡)에 안주하면서도 여기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없으므로 온갖  번뇌, 고뇌를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뜻에서 인(忍) · 감인(堪忍) · 능인(能忍) · 인토(忍土) 등이라고 한다. 사바세계의 삼천대천국토(三千大千國土)는 한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영토이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생사(生死)는 본래(本來) 없는 거여’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 · 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 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계첩(戒牒 삼가할 계/증명서 첩) ; 계(戒)를 받았다는 증명서(證明書). 츨가한 스님이나 재가 신도들이 계를 받은 다음 계를 받았다는 신표(信表)로서 주는 증서.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 『선가귀감(禪家龜鑑)』 전자책(PDF) 다운로드.
>>> 『선가귀감(禪家龜鑑)』 전자책(PDF)을 여기에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몽산법어(蒙山法語)』 전자책(PDF) 다운로드.
>>>『몽산법어(蒙山法語)』 전자책(PDF)을 여기에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 다운로드.

>>>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전자책(PDF)을 여기에서 다운로드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