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26. 3. 28. 07:11

§(341) 사바세계에서 불법을 최상승법을 믿는 것은 「화리생련(火裏生蓮)이다, 불 속에서 연꽃이 났다」 /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만남, 거기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의 면목을 바로 드러냈다.

**송담스님(No.341)—1987년 11월 첫째일요법회(87.11.01) (용341)(활구참선최상승법)

 

약 9분.

341(1987년 11월 첫째일요법회:약9분).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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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참 누누이 말씀이 계셨지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욕락(五欲樂)—재산이다, 명예다, 권리다, 색(色)이다, 안락이다, 이러한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착각을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시간과 목숨까지라도 거기에 바치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말세 중생(末世衆生)들이 어떻게 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생사(生死) 없는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최상승법을 믿게 되며 또 그걸 믿고 실천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온 세상은 온통 명예와 권리와 부귀영화, 모다 색(色), 모다 이러한 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것을 갖다가 보다 더 많이 획득을 하고 그것을 수용을 하기 위해서 참 부자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모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싸우고 있는 이 속에서 어떻게 해서 우리는 불법(佛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게 되었는가?

그래서 이러한 것을 비유해서 「화리생련(火裏生蓮)이다. 불 속에서 연꽃이 났다」
그 연꽃이라 하는 것은 진흙과 물속에서 뿌리를 박고 피는 것인데, 훨훨 타고 있는 불 속에서 연꽃이 어떻게 필 수가 있겠습니까? 그 필 수 없는, 도저히 상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에다가 그렇게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해 나가는 데 그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나서 그 불법 가운데에도 여러 가지 모다 그 권(權), 방편(方便), 수없는 방편에 모다 떨어져 가지고 허송세월(虛送歲月)을 하고 있는 사람이 참 많은데 그 가운데에서 천행(天幸)으로 최상승법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달마대사(達摩大師)께서도 150세의 고령으로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오셔서 양무제(梁武帝)를 만나 가지고—그 양무제가 중국 천자(天子) 중에서는 제일 불법에 대한 신심이 돈독한 천자인데, 그분은 천자이면서 가사(袈裟)를 수(垂)하고 정사(政事)를 볼 만큼 그렇게 신심이 돈독했습니다.

절을 짓는다든지, 경을 판각을 해서 모다 편다든지, 스님네를 모다 도 잘 닦아가도록 많은 스님네를 외호를 한다든지, 탑을 세운다든지, 불상을 조성한다든지 그러한 상(相)이 있는 그러한 불사(佛事)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불법(佛法)을 여의고는 살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불사 밖에는 모르고 그러던 양무제가 ‘달마 스님이 인도에서 오셨다’ 하는 말을 듣고 칙사(勅使)를 보내서, 저 남해로 보내 가지고 달마 스님을 영접을 해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짐(朕)이 이렇게 절을 짓고 탑을 세우고, 많은 스님네를 이렇게 도승(度僧)을 하고 그랬으니 짐의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이렇게 달마 스님께 자기가 그동안에 한 불사에 대한 공덕도 자랑 겸해서 또 달마 스님한테 칭찬도 받기 아울러서 그렇게 해서 떠억 물으니까, 달마 스님이 “소무공덕(小無功德)입니다. 조금도 공덕(功德)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 달마 스님이 ‘아! 참 장하시다’고, ‘천자로서 그렇게 불법을 숭앙하고, 이렇게 불사를 많이 하니 그 공덕이 참 한량이 없어서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터억 찬양을 해 주었으면 양무제가 신심을 더욱 발해 가지고 온통 중국 천지를 아주 불법으로 장엄을 하고 그럴 텐데, 아 그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양무제가 “그러면 어떠한 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그렇게 물어보니까,
“확연해서 성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러면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보니까,
“불식(不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 말이여.

양무제와 달마 대사의 대화는 거기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 양무제가 달마 스님을 푸대접을 해서 달마 스님은 그길로 돌아서서 양자강을 건너 가지고, 위나라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묵언을 하면서 면벽(面壁)을 하고 계시다가, 혜가 대사(慧可大師)가 나타나 가지고 팔을 끊어서 올리고 신심을 보여 가지고, 드디어 달마 스님의 법(法)을 이어받았습니다마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말씀에도 달마 스님이 그때, 양무제를 만났을 때 양무제를 찬양을 해서 그렇게 해서 양무제의 절대적인 외호(外護)를 받으면서 법을 설하고 참선법을 선양을 할려고 했다면은 중국 천지에 최상승법을 그렇게 널리 펼 수도 없고, 융숭하게 선양을 할 수도 없었고, 오늘날까지 참선법이 전해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확연무성(廓然無聖)입니다”

“짐을 대한 그대는 누구냐?”
“모르겠소”

탁! 이렇게 함으로써 여지없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의 그 면목을 바로 거기서 드러내 버린 것입니다.(9분38초~18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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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오욕락(五欲, 五慾, 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 소리, 향기, 맛, 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사(生死) 없는 영원한 진리~’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우리가 공부를 해 나가는 데 그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나서’ ; 인신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인신난득(人身難得) 불법난봉(佛法難逢) ;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
[참고 ❶] 『서장(書狀)』 '답탕승상(答湯丞相)' 참고.
人身難得 佛法難逢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참고 ❷] 『선관책진(禪關策進)』 「제1 제조법어절요(諸祖法語節要 : 여러 조사의 법어 중에서 오직 공부 지어 가는 데에 요긴한 대목만을 뽑아 요약함)」 '황룡사심신선사소참(黃龍死心新禪師小參)' 참고.
諸上座 人身難得 佛法難聞 此身不向今生度 更向何生度此身

상좌들이여!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듣기 어려우니,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겠느냐.

*인신난득(人身難得) ;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❶]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❷]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권•실(權•實) : 부처님의 깊은 이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대번에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방편으로써 처음에는 옅은 이치의 차별법(差別法)을 중•하(中•下) 근기에게 설한 가르침을 권(權)이라 하는데 소승교를 가리킴이요,
나중에는 참된 실상(實相)의 둘 아닌 법(不二法•眞如•平等), 영원히 변함이 없는 구극적(究極的)인 진리법을 설한 가르침을 실(實)이라 하는데 대승교를 가리킨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천행(天幸) ; 하늘이 내린 큰 행운.
*달마대사(達摩大師, 達磨大師) : [산스크리트어(범어)] Bodhi-dharma.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는 보리달마(菩提達摩 ·菩提達磨)의 생략형이다. 보리달마다라(菩提達磨多羅) · 달마다라(達磨多羅) · 보리다라(菩提多羅) 등이라고도 하나 보통 달마라고 한다.
달마의 생몰연대는 ?~495, ?~436, 346~495, ?~528, ?~536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선종의 전등(傳燈) 계보상 인도로부터는 제27조인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의 법을 이어 제28조이며, 중국에 건너와서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가 된다.

여러 자료를 토대로 달마의 전기를 살펴보면, 달마의 출신지는 파사국(波斯國) · 향지국(香至國) · 바라문국(婆羅門國) · 남천축국(南天竺國) 등이라고 하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는 남천축국 향지왕의 셋째 아들이라고 한다.
반야다라(般若多羅) 존자의 법을 받고 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배를 타고 바다를 통해 건너가 3년이 지나서야,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광주 자사가 예를 갖추어 영접하였으며, 표(表)를 올려 무제에게 아뢰자 무제가 표를 읽고는 사신을 보내 조서를 가지고 가서 영접하게 하였는데 10월 1일에 금릉(金陵)에 이르렀다.

무제가 대사에게 묻기를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로 절을 짓고, 경전을 쓰고, 스님을 득도시키기를 셀 수 없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습니까?[朕卽位已來 造寺寫經度僧不可勝紀 有何功德]”
대사가 대답했다.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並無功德]”

“어찌하여 공덕이 없소?[何以無功德]”
“이는 다만 인간과 하늘의 작은 과보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이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하나 실답지가 않습니다[此但人天小果有漏之因 如影隨形雖有非實]”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이오?[如何是眞功德]”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해서 체(體)가 스스로 공적(空寂)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 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淨智妙圓體自空寂 如是功德不以世求]”

무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가는 뜻[第一義]이오?[如何是聖諦第一義]”
“확연(廓然)해서 거룩함[聖]도 없습니다[廓然無聖]”

“짐을 대하고 있는 이는 누구요?[對朕者誰]”
“모르겠습니다[不識]“
무제가 알아듣지 못하자, 대사는 근기가 계합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 후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는데, 석굴에서 면벽(面壁)하고 앉아서는 종일토록 침묵을 지키니, 아무도 그 연유를 아는 이가 없어서 그를 일러 벽을 보는 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하였다.

당시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달마 대사에게 가서 아침저녁으로 섬기고 물었으나, 대사는 늘 단정히 앉아서 벽을 바라볼 뿐이어서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마침내 신광은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끊어서 대사의 앞에 놓으니, 대사는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알고서 말했다. “부처님들이 처음 도를 구하실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끊으니, 법을 구할 만하구나”

대사가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바꿔 주자, 신광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습니까?[諸佛法印可得聞乎]”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諸佛法印匪從人得]”

“제 마음이 아직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我心未寧 乞師與安]”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편안케 해주리라[將心來與汝安]”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覓心了不可得]”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我與汝安心竟]”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대사는 끝내 소림사(小林寺)를 떠나지 않았다. 황제는 더욱 더 흠모를 하면서 예물을 하사했으나 대사는 굳게 사양하면서 세 번이나 돌려보냈다. 그러나 황제의 뜻이 더욱 단호해지자 대사는 그때서야 비로소 받았다.

다시 9년이 지나자, 대사는 서쪽의 천축으로 돌아가고자 해서 제자[門人]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제가 본 바로는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는 것으로 도의 작용을 삼는 것입니다[如我所見 不執文字不離文字而爲道用]”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汝得吾皮]”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지금 이해한 바로는 아난(阿難)이 아촉불국(阿閦佛國)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我今所解如慶喜見阿閦佛國 一見更不再見]”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汝得吾肉]”

도육(道育)이 말했다.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온(五蘊)이 있지 않으니, 제가 보기에는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四大本空五陰非有 而我見處無一法可得]”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汝得吾骨]”

마지막에 혜가가 절을 한 뒤에 제자리에 서 있자, 대사가 말했다.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最後慧可禮拜後依位而立 師曰 汝得吾髓]

이에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혜가에게 부촉하고 가사(袈裟)를 전해서 법의 신표로 삼았으며,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당시 광통 율사(光統律師)와 보리유지 삼장(菩提流支三藏)은 대사가 현묘한 교화의 바람을 널리 떨치고 법의 비를 두루 뿌리자, 그들의 치우치고 옹색한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서, 앞 다투어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켜 자주 독약(毒藥)을 음식에 넣었다. 그 일이 여섯 차례에 이르렀을 때 이미 교화의 인연도 다하였고 법 전할 사람도 만났으므로, 더 이상 독약에서 벗어나지 않고 단정히 앉아서 열반하니, 웅이산(熊耳山)에 장사지내고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웠다.

그 뒤 3년 후에 위(魏)의 사신이 서역(西域)에 갔다 오다가 달마대사를 총령(葱嶺)에서 만났는데, 맨발 벗고, 손에는 신 한 짝을 들고 훌훌히 혼자 가고 있었다. 사신이 묻기를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하자, 대사가 대답하기를 ‘서천(西天)으로 간다. 그리고 그대의 임금은 벌써 세상을 뜨셨다’라고 하였다. 사신이 이 말을 듣고 아찔하여 부지런히 동으로 가서 국왕께 복명(復命)하니, 명제(明帝)는 이미 승하하고 효장제(孝莊帝)가 등극해 있었다. 사명을 받들어 위의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황제가 무덤을 열어 보게 했는데, 빈 관에 신 한 짝만이 남아 있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전등록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28조 보리달마」 p154~p183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하였음>

저서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이종입二種入(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 『심경송(心經頌)』 · 『파상론(破相論)』 · 『안심법문(安心法門)』 · 『오성론(悟性論)』 · 『혈맥론(血脈論)』 등 여섯 법문(法門)으로 이루어진 『소실육문(小室六門)』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때 간행한 『선문촬요(禪門撮要)』 가운데 『혈맥론』 · 『관심론(觀心論)』 · 『사행론(四行論)』 등이 들어 있다. 『파상론(破相論)』과 『관심론(觀心論)』은 중복되며 달마대사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북종 신수(神秀)의 저술로 보고 있다.

달마의 전기에 관한 자료는 『낙양가람기(落陽伽藍記)』(574년 성립),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담림(曇林)의 「서문」(600년경), 『당고승전唐高僧傳(속고승전續高僧傳)』(649년), 『전법보기(傳法寶紀)』(712년경),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713년),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774년경), 『보림전(寶林傳)』(801년), 『조당집(祖堂集)』(952년) 등이 있다.
『보림전』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년)과 『전법정종기(傳法正宗紀)』(1061년)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최징(最澄)의 『내증불법상승혈맥보(內證佛法相承血脈譜)』(819년)와 신회(神會)의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菩提達磨南宗定是非論)』(732년) · 『문답잡징의(問答雜徵義)』, 종밀(宗密)의 『선문사자승습도(禪門師資承襲圖)』 · 『도서(都序)』 · 『원각경대소초(圓覺經大疏鈔)』 등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대화(조당집) ;
[참고] 『조당집(祖堂集)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43~147.
그때에 달마 화상이 바다를 지나 동쪽으로 온 지 3년이 지났다. 양(梁)의 보통(普通) 8년 정미(丁未) 9월 21일에 광주(廣州)에 이르자, 자사(刺史)인 소앙(蕭昂)이 마중을 나왔다가 10월 1일에 무제(武帝)에게 알렸는데, 이듬해 정월 보름에 이르러서야 왕이 몸소 연(輦 : 천자가 타는 수레)을 타고 나와 대사를 청해 대궐로 모셔다가 공양을 올렸다.

그때에 지공(志公) 화상이 고좌사(高座寺)의 수축을 감독하고 있었는데, 주지 영관(靈觀)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영관靈觀이라는데 진짜 영관靈觀인가?[汝名靈觀 實靈觀不]”
주지가 대답했다. “예, 그저 화상께서 지시해 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唯願和尙指示唯願和尙指示]”
지공이 말했다. “서천에서 대승 보살이 이 땅에 들어오실 것이다. 만약 그대가 믿지 못하겠거든 나의 참언을 들어라[從西天有大乘菩薩而入此國 汝若不信 聽吾讖曰]”

(중략)

그때 무제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성제(聖諦)의 제일의(第一義)입니까?[如何是聖諦第一義]”
달마 조사가 대답했다. “텅 비어 성(聖)이랄 것이 없습니다[廓然無聖]”

무제가 물었다. “짐을 대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對朕者誰]”
조사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不識]”

무제가 다시 물었다. “짐이 즉위한 지 14년 동안 사람을 제도하고 절을 짓고 경을 쓰고 불상을 조성했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朕自登九五已來 度人造寺 寫經造像 有何功德]”
조사가 대답했다.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무제가 말했다. “어째서 공덕이 없습니까?[何以無功德]”
조사가 말했다. “이는 인천(人天)의 작은 과보요, 유루(有漏)의 원인이어서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선인(善因)이 있다고 하나 실상(實相)이 아닙니다[此是人天小果 有漏之因 如影隨形 雖有善因 非是實相]”

무제가 물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입니까?[如何是實功德]”
조사가 말했다. “청정한 지혜는 오묘하고 원만圓滿해서 본체가 절로 공적하니, 이런 공덕은 세상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淨智妙圓 體自空寂 如是功德 不以世求]”

무제는 달마 조사의 말뜻을 알지 못하여 얼굴을 붉힌 채 말이 없었다. 달마는 그 해 10월 19일에 인연이 맞지 않는 줄을 스스로 알고 몰래 강을 건너 북쪽의 위(魏)나라로 들어갔다.

지공(志公)이 특별히 무제에게 와서 물었다. “듣건대 서역에서 스님이 왔다는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我聞西天僧至 今在何所]”
무제가 대답했다. “어제 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소[昨日送過江向魏]”
지공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보아도 보지 못하셨고, 만나도 만나지 못하셨습니다[陛下見之不見 逢之不逢]”

양무제가 물었다. “그게 누구였던가요?[此是何人]”
지공이 대답했다. “그는 부처의 심인(心印)을 전하는 관음대사(觀音大士)이십니다[此是傳佛心印觀音大士]”
무제가 이내 한탄하면서 말했다. “보아도 보지 못했고, 만나도 만나지 못했도다[見之不見 逢之不逢]”

그리고는 곧 중사(中使) 조광문(趙光文)을 그곳으로 보내 모셔 오게 하였는데, 이에 지공이 말했다. “조광문뿐 아니라 온 나라 사람이 다 가서 청해도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非但趙光文一人 闔國取亦不迴]”

*가사(袈裟) : [산스크리트어(범어)] kasaya.  범어를 음대로 쓴 것인데, 뜻대로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 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 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 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수(垂)하다 ; 가사(袈裟), 장삼(長衫) 따위를 걸쳐 입다.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 · 구(口) · 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 · 탱화 · 불구(佛具) · 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칙사(勅使 칙서·조서 칙/사신·하인 사) ; 임금의 명령을 받아 전하여 주는 사신(使臣).
*짐(朕) ; 예전에, 임금이나 군주가 자기를 이르던 말.
*도승(度僧 법도·모습·깨닫다·승려가 되다 도/중·스님·승려 승) ; 일정한 의식을 거쳐 속인을 승려로 만듦.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❶]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참고 ❷] 『육조단경(六祖壇經)』 (덕이본德異本) 「2. 공덕과 정토를 밝히다[釋功德淨土]」에서.
公曰 弟子聞達磨初化梁武帝 帝問云 朕一生造寺供僧 布施設齋 有何功德 達磨言 實無功德 弟子未達此理 願和尙爲說
師曰 實無功德 勿疑先聖之言 武帝心邪 不知正法 造寺供養 布施設齋 名爲求福 不可將福便爲功德 功德在法身中 不在修福

자사(刺史) 위공(韋公)이 말했다. ‘제자가 듣기에 달마대사께서 처음 양무제를 교화할 때 황제가 「짐은 평생 절을 짓고 스님을 공양하며 보시를 하고 재를 베풀었는데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달마대사께서 「실로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제자는 이 이치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화상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습니다. 옛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무제는 마음이 치우쳐 정법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절을 짓고 공양을 올리고 보시를 하며 재를 베풀어 행한 것은 복(福)을 구했다고 하는 것이니 복이 공덕(功德)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지 복을 닦는 데 있지 않습니다.

師又曰 見性是功 平等是德 念念無滯 常見本性眞實妙用 名爲功德 內心謙下是功 外行於禮是德 自性建立萬法是功 心體離念是德 不離自性是功 應用無染是德 若覓功德法身 但依此作 是眞功德
若修功德之人 心卽不輕 常行普敬 心常輕人 吾我不斷 卽自無功 自性虛妄不實 卽自無德 爲吾我自大 常輕一切故

대사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견성(見性)이 공(功)이요 평등(平等)이 덕(德)이니, 생각 생각에 막힘이 없이 항상 본성품의 진실하고 묘한 작용[眞實妙用] 보는 것을 공덕이라 합니다. 안으로 마음이 겸양하여 낮추면 이것이 공이요 밖으로 예(禮)를 행하면 이것이 덕이며, 자신의 참성품[自性]이 만법을 건립하는 것이 공이요 마음의 본바탕[心體]이 생각을 여읜 것[離念]이 바로 덕이며, 자성(自性)을 여의지 않음이 공이요 사물에 응해 쓰되 물들지 않음이 덕입니다. 만약 공덕의 법신을 찾으려면 다맛 이에 의하여 공덕을 지어야 참된 공덕입니다.
공덕을 닦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가볍지 않아 항상 널리 공경을 행합니다. 마음이 항상 남을 가벼이 여기고 나를 내세우는 생각을 끊지 않으면 스스로 공이 없는 것이고, 자심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하면 스스로 덕이 없는 것이니, 이는 나를 내세우는 생각이 스스로 커져서 항상 일체를 가벼이 여기기 때문입니다.

善知識 念念無間是功 心行平直是德 自修性是功 自修身是德 善知識 功德須自性內見 不是布施供養之所求也 是以福德與功德別 武帝不識眞理 非我祖師有過

선지식이여, 생각 생각 끊임이 없는 것이 공이요, 마음을 평등하고 곧게 쓰는 것이 덕이며, 스스로 성품을 닦는 것이 공이요,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덕입니다.
선지식이여, 공덕은 모름지기 자성(自性) 안에서 보는 것이요, 보시나 공양만으로 구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복덕(福德)과 공덕(功德)은 다른 것이니, 무제가 진리를 알지 못하였을 뿐 우리 조사에게 허물이 있지 않습니다.
*소림(少林) : 중국 하남성(河南省) 숭산 소실봉(嵩山少室峰) 아래에 있는 소림사(少林寺)를 말한다.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達摩大師)가 9년 동안 이 절 석굴 속에서 면벽(面壁)하고 있다가,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하여 중국에 선법(禪法)이 퍼지게 되었다.
*‘위나라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묵언을 하면서 면벽(面壁)을 하고~’ ; 면벽구년(面壁九年).
*면벽구년(面壁九年) ;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가 9년 동안 면벽했던 고사를 가리킨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하였으나 무제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마침내 물러나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낙양으로 가서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다.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말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기 9년을 지냈다.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뒤부터 선승(禪僧)들이 선원에서 벽을 향하여 좌선하게 되었다.
*면벽(面壁) ;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벽(壁)을 향[面]하여 좌선하는 것.
*‘혜가 대사(慧可大師)가 나타나 가지고 팔을 끊어서 올리고 신심을 보여 가지고~’ ; 혜가 단비구법(斷臂求法).
*혜가 단비구법(斷臂求法) ; 중국 선종의 2대 조사인 혜가(慧可)가 달마대사 앞에서 팔을 잘라 구법(求法)의 결심을 나타낸 고사.
[참고 ❶] 『조당집(祖堂集)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47~149.
大師自到東京 有一僧名神光 昔在洛中久傳莊老 年逾四十 得遇大師 禮事爲師 從至小林寺 每問於師 師竝不言說 又自歎曰 古人求法 敲骨取髓 刺血圖像 布髮掩泥 投崖飼虎 古尙如此 我何惜焉

조사가 동경(東京)에 이른 뒤에 신광(神光)이란 스님이 있었다. 예전에는 낙중(洛中)에서 오래도록 노장(老莊)의 학문을 익히다가 나이 40을 넘어 조사를 만나 스승으로 섬겼다. 소림사(小林寺)까지 따라오면서 항상 조사에게 법을 물었으나 조사는 전혀 말을 해주지 않았다. 또 스스로 한탄하였다.
‘옛사람은 법을 구하기 위해 뼈를 깨고 골수를 꺼내고 피를 뽑아 성상(聖像)을 그리고, 머리채를 풀고 진창에 엎드리며, 벼랑에 몸을 던지고, 주린 범에게 몸을 주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했는데, 나는 무엇을 아끼랴?’

時大和十年十二月九日 爲求法故 立經干夜 雪乃齊腰 天明師見問曰 汝在雪中立 有如何所求耶 神光悲啼泣淚而言 唯願和尙開甘露門 廣度群品 師云 諸佛無上菩提 遠劫修行 汝以小意而求大法 終不能得

때는 태화(太和) 10년 12월 9일, 법을 구하기 위해 선 채로 밤을 샜는데, 내린 눈이 허리까지 쌓였다. 날이 밝자 조사가 이를 보고 물었다. “네가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고 있었느냐?”
신광이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말했다. “오직 화상께서 감로(甘露)의 문을 여시어 뭇 중생을 널리 제도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사가 말했다. “부처님들의 위없는 보리(菩提)는 여러 겁을 수행해야 하는데, 너는 작은 뜻으로 큰 법을 구하려 하니, 애초부터 얻을 수 없는 것이다”

神光聞是語已 則取利刀自斷左臂 置於師前 師語神光云 諸佛菩薩求法 不以身爲身 不以命爲命 汝雖斷臂求法 亦可在 遂改神光名爲惠可 又問 請和尙安心 師曰 將心來 與汝安心 進曰 覓心了不可得 師曰 覓得豈是汝心 與汝安心竟

신광이 이 말을 듣고, 곧 날카로운 칼을 뽑아 자기의 왼팔을 끊어서 조사 앞에 놓으니, 조사가 말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법을 구할 적엔 몸을 몸으로 삼지 않고 목숨을 목숨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네가 이제 팔을 끊었으니 법을 구할 만하구나” 마침내 신광이라는 이름을 고쳐서 혜가(惠可)라 했다.
혜가가 말했다. “화상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請和尙安心]”
조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가져오너라.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리라[將心來 與汝安心]”

혜가가 말했다. “마음을 찾아도 끝내 찾을 수 없습니다[覓心了不可得]”
조사가 말했다 “찾아지면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겠느냐?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느니라[覓得豈是汝心 與汝安心竟]”

達摩語惠可曰 爲汝安心竟 汝今見不 惠可言下大悟 惠可白和尙 今日乃知一切諸法本來空寂 今日乃知菩提不遠 是故菩薩不動念而至薩般若海 不動念而登涅槃岸 師云 如是 如是 惠可進曰 和尙此法有文字記錄不 達摩曰 我法以心傳心 不立文字

달마 조사가 혜가에게 말했다. “그대를 위해 마음을 이미 편안하게 해주었는데, 그대는 이제 보이는가?”
혜가가 말씀 끝에 크게 깨닫고[言下大悟] 화상에게 말했다. “오늘에야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적(空寂)하고, 오늘에야 보리(菩提)가 멀리 있지 않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보살은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살반야(薩般若 : 一切智) 바다에 이르고,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열반(涅槃)의 언덕에 오릅니다”
조사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혜가가 계속 말했다. “화상이시여, 이 법을 문자로 기록할 수 있습니까?”
조사가 대답했다. “나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므로 문자를 세우지 않느니라[我法以心傳心 不立文字]”

[참고 ❷] 『전등록 1』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제28조 보리달마」 p173~p174.
時有僧神光者 曠達之士也 久居伊洛 博覽群書善談玄理 每歎曰 孔老之敎禮術風規 莊易之書未盡妙理 近聞 達磨大士住止少林 至人不遙 當造玄境 乃往彼晨夕參承 師常端坐面牆 莫聞誨勵

당시 신광(神光)이라는 활달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낙양(洛陽)에 살면서 온갖 서적을 많이 읽고 현묘한 이치[玄理]를 잘 이야기하곤 하였다. 그는 늘 이렇게 탄식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예절[禮] · 술수[術] · 풍류[風] · 법규[規]뿐이요, 『장자(莊子)』와 『주역(周易)』 따위의 글은 묘한 이치를 다하지 못했다. 요사이 듣건대 달마대사가 소림사에 계시면서 찾아가는 사람을 맞이하지 않고, 현묘한 경지를 이룬다고 했다”
그리하여 달마대사에게 가서 아침저녁으로 섬기고 물었으나, 대사는 늘 단정히 앉아서 벽을 바라볼 뿐이어서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光自惟曰 昔人求道 敲骨取髓 刺血濟饑 布髮掩泥 投崖飼虎 古尙若此 我又何人 其年十二月九日夜天大雨雪 光堅立不動 遲明積雪過膝

신광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옛 사람이 도를 구할 때에는 뼈를 깨뜨려서 골수를 빼내고, 피를 뽑아서 주린 이를 구제하고, 머리털을 펴서 진흙땅을 덮고, 벼랑에서 떨어져 굶주린 호랑이를 먹였다. 옛사람도 이러하였거늘 나는 또 어떤 사람인가?” 그 해 12월 9일 밤에 하늘에서 큰 눈이 왔다. 신광은 꼼짝도 않고 서 있었는데, 새벽녘에는 눈이 무릎 너머까지 쌓였다.

師憫而問曰 汝久立雪中 當求何事 光悲淚曰 惟願和尙慈悲 開甘露門廣度群品 師曰 諸佛無上妙道 曠劫精勤 難行能行非忍而忍 豈以小德小智輕心慢心 欲冀眞乘徒勞勤苦

대사가 불쌍히 생각해서 물었다. “그대는 오랫동안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신광이 슬퍼 울면서 말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감로(甘露)의 문을 열어서 온갖 중생들을 널리 제도해 주소서”
대사가 대답했다. “모든 부처님들의 위없는 묘한 도는 오랜 겁을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작은 공덕과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진승(眞乘)을 바라는가? 헛수고를 할 뿐이다”

光聞師誨勵 潛取利刀自斷左臂 置于師前 師知是法器 乃曰 諸佛最初求道爲法忘形 汝今斷臂吾前 求亦可在 師遂因與易名曰慧可 光曰 諸佛法印可得聞乎 師曰 諸佛法印匪從人得

신광이 달마대사의 훈계를 듣자 슬며시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끊어서 대사의 앞에 놓으니, 대사는 비로소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알고서 말했다. “모든 부처님들이 처음 도를 구하실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다. 네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끊으니, 법을 구할 만하구나”
마침내 대사가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라고 바꿔 주자, 신광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들을 수 있습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부처님들의 법인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니라”

光曰 我心未寧 乞師與安 師曰 將心來與汝安 曰覓心了不可得 師曰 我與汝安心竟

신광이 말했다. “제 마음이 아직 편안치 못하오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我心未寧 乞師與安]”
대사가 대답했다.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편안케 해주리라[將心來與汝安]”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 수 없습니다[覓心了不可得]”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다[我與汝安心竟]”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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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