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자신(自信)2019. 10. 25. 19:03

§(214) (게송)찰나만겁비연착~ / 1초를 단속할 줄 알아야 무량겁 문제가 해결된다 / 자기가 제도(濟度)를 해야지, 부처가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다.

 

부처님이나 선지식(善知識)은 중생으로 하여금 깨닫는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을 뿐이지, 부처님이나 선지식이 중생을 깨닫게는 할 수가 없어. 깨닫는 방법만을 일러주면 본인이, 중생 자신이 목숨을 걸고 달라들어서 그 방법에 의해서 도를 닦아서 스스로 깨달라야 하는 것이다.

 

**송담스님(No.214)—83년 추계산철 결제법회(계해년 음 8.1) (용214)

 

약 8분.

 

찰나만겁비연착(刹那萬劫非延促)이요  불파허공교단장(不把虛空較短長)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변여마시환제당(便與麽時還諦當)이니  차귀문외착상량(且歸門外錯商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찰나만겁비연착(刹那萬劫非延促)이요. 찰나간이, 눈 한 번 깜박할 그 찰나간이 만겁(萬劫)이나 된다. 그러면 찰나가 만겁이면, 그 찰나간의 시간을 갖다가 늘여 가지고 잡아 늘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찰나(刹那)가 무량겁(無量劫)이다 그말이여.

불파허공교단장(不把虛空較短長)이니라. 허공을 잡어 가지고 어느 허공이 더 길고, 어느 허공이 더 짧은가를 비교할 수가 있겠느냐.

 

변여마시(便與麽時)에 환제당(還諦當)이니, 문득 이와 같을 때에 도리어 알아차려야 할 것이니,

차귀문외착상량(且歸門外錯商量)이라. 또한 문 밖에 돌아가서 그릇 상량(商量)하지를 말 것이니라.

 

세월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갑니다. 금방 엊그제 더워서 앉어도 더웁고, 서도 더웁고, 밖에를 나가도 더웁고, 방안에 들어와도 더웁고 그렇게 발광할 정도로 더웠었는데 금방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해져서 오동나무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또 이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금방 또 서리가 내리고 눈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해가 또 지내가고 또 한 해가 지내가다 보면 어느덧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잡히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눈이 어두워지고 그래 가지고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날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만큼 건강하고 이만큼 젊었을 때 이 일 저 일 뒤로 미루거나 핑계대지 말고, 어쨌던지 일 초 일 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알뜰히 단속해서 화두(話頭)를 놓치지 말고 관조(觀照)해 나가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1초를 단속할 줄 아는 사람은 무량겁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고, 1초 1초를 등한히 한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가 갈 곳이 없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衆生)의 식심(識心)은, 중생의 깨닫지 못한 그 마음은 자기가 제도(濟度)를 해야 하지, 불불능도중생(佛不能度衆生)이다. 부처가 능히 그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중생으로 하여금 다 깨달라서 성불(成佛)시켜 줄 수가 있는 것이라면, 과거에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恒河沙) 모래수만큼 그렇게 많이 계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성불을 못한 채 있을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부처님이나 선지식(善知識)은 중생으로 하여금 깨닫는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을 뿐이지, 부처님이나 선지식이 중생을 깨닫게는 할 수가 없어.

깨닫는 방법만을 일러주면 본인이, 중생 자신이 목숨을 걸고 달라들어서 그 방법에 의해서 도(道)를 닦아서 스스로 깨달라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정성이 형식적으로, 결제(結制)하니까 죽비(竹篦)치고 돌아앉고 방선(放禪)하면 잡담하고, 온갖 시비에 다 참견하고, 이것이 좋고 나쁘고, 밥이 맛이 있고 없고 반찬이 좋고 나쁘고,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쁘고, 니가 잘하고 내가 잘못하고,

밤낮 눈으로 보면 보는 대로 시비, 귀로 뭔 소리를 들으면 듣는데에 신경을 쓰고 이렇게 해 가지고서는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도를 닦아도 끝장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자기 마음 속으로부터 자동으로 터져 나와야, 그래야 이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의 근원을 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19분58초~27분50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오조 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최상승론(最上乘論)』 에서.
經云衆生若情誠不內發者 於三世縱値恒沙諸佛無所能爲 經云衆生識心自度 佛不能度衆生 若佛能度衆生者 過去諸佛恒沙無量 何故我等不成佛也
 
경(經)에 이르되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스러운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에 비록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득(無所得)이니라. 어찌할 바가 없느니라.
또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고 한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을 못했을 것이냐.
 
只是情誠不自內發 是故沈沒苦海 努力努力 勤求本心勿令妄漏 過去不知已過未來亦不及 今身現在有遇得聞妙去 分明相勸決解此語 了知守心是第一道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돈발하지 못한 연고로 생사고해에 침몰한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부지런히 본심을 깨달라서 잠깐 동안도 한눈을 팔지 말지니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어. 다못 지금 우리가 현재 이 묘법(妙法)을 만났으니 분명히 서로 권고해서 결정코 내가 이제 말한 이 법을 깊이 이해해 가지고 확실하게 자기의 본심을 지킬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일의 도(道)니라.
 
不肯發至誠心求願成佛受無量自在快樂 乃始轟轟隨俗貪求名利 當來墮大地獄中受種種苦惱 將何所及 奈何奈何 努力努力
 
지극한 정성스런 마음을 발하지 못해 가지고 막연하게 성불하기를 바라고 자재해탈(自在解脫)을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될 일이 아니고, 그럭저럭 속심(俗心)을 버리지를 못하고 명예나 이끗을 탐구해서 그렇게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당래(當來)에 대지옥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노력하고 노력할지니라.
 
但能着破衣飱麤飱 了然守本眞心 佯癡不解語 最省氣力而能有功 是大精進人也 世間迷人不解此理 於無明心中 多涉艱辛廣修相善 望得解脫 乃歸生死苦 了然不失正念而度衆生者 是大力菩薩
 
다만 능히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거짓으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바보처럼 하는 것이 가장 힘은 적게 들이면서 공부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이니라.
세간(世間)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아지를 못하고서 무명심(無明心) 가운데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널리 상(相)에 나타나는 그러한 선(善)을 닦음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바래니, 그러다가 결국은 생사고(生死苦)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요연히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만이 이것이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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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찰나만겁비연착~’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p234 게송 참고. *(頻伽藏)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下 信心銘闢義解下 게송 참고.

*延(연)끌다,시간을 끌다,늘이다 *促(착)재촉하다,악착스럽다 *便(변)곧,문득,바로 *還(환)돌아오다,도리어,다시 *諦(제)살피다,자세히 알다 *當(당)마땅 *且(차)또,또한 *錯(착)섞이다,어긋남,잘못하다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봄)함. ②지(智)로써 사(事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와 이(理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를 관(觀)하여 바르게 아는 것.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를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등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을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공(空)하여 체성(體性)이 없음이 마치 물에 뜬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남[出]이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 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그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온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성(城)을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행[功行]은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煩惱盡時 生死卽絕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곧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적(寂)과 조(照)가 앞에 나타나 응(應)해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일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에 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등한(等閑)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생사윤회(生死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안(公案, 話頭)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Posted by 닥공닥정
오조 홍인대사2019. 10. 20. 13:29

 

 

§(214) (게송)고금천지수증오~ / ‘최상승론’ 안으로부터 진정한 발심을 해야 / 삼요(三要)가 돈발 / 썩은 나무둥치 · 바보 · 천치가 되어 정진만을 해야 대정진인(大精進人).

 

정말 안으로부터 신심 · 분심 · 의심이 돈발(頓發)을 해야만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도를 이룰 수가 있다.

만공 스님께서도 학자들에게 항시 말씀을 하시기를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공부를 할 수가 있느니라.

 

**송담스님(No.214)—83년 추계산철 결제법회(계해년 음 8.1) (용214)

 

약 20분.

 

고금천지수증오(古今天地誰曾悟)헌디  무오하증갱유미(無悟何曾更有迷)리요

나무~아미타불~

번억온주노진각(飜憶溫州老眞覺)헌디  무단일숙게조계(無端一宿憩曹溪)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금천지(古今天地)에 수증오(誰曾悟)헌디, 고금천지(古今天地)에 누가 일찍이 깨달았는냐?

무오하증갱유미(無悟何曾更有迷)로구나. 깨달음이 없을진댄 어찌 일찍이 다시 미(迷)할 것이 있겠는가.

 

번억온주노진각(飜憶溫州老眞覺)허니, 도리어 온주땅에 늙은 진각 선사를 생각하니, 진각 선사는 육조 스님께 법(法)을 이어 받은 영가진각 선사(永嘉眞覺禪師)를 뜻합니다.

온주의 노진각을 생각하니 무단일숙게조계(無端一宿憩曹溪)로구나. 무단히 쓸데없이 조계산에, 육조 스님이 계신 그 조계산에 하룻밤을 잤구나.

 

영가 스님이 깨달라 가지고 육조 스님을 조계산으로 찾아가 뵈었습니다.

가서 육조 스님과 법거량(法擧揚)을 하고 그리고 ‘여역여시(汝亦如是)하고 오역여시(吾亦如是)다. 너도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쾌히 인가(印可)를 받고서 그길로 돌아서서 떠날려고 하니까, ‘하룻밤 쉬어가거라’

이렇게 해서 하룻밤을 쉬어간 일이 있어서 그래서 영가진각 선사의 별호(別號)가 일숙각(一宿覺)이라, ‘하룻밤 쉬어간 객이다’해서 일숙각이라고 하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본각(本覺) 도리에 입각해서 보면 본래 미(迷)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시 또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따라서 미할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기 때문에 구태여 미한 것을 돌려보내지 아니해도, 미(迷)함을 쫓아 보내지 아니해도 깨달을 것도 또한 없다 그말이여.

 

미(迷)한 바가 없으니 무엇을 다시 더 깨달을 것이 있느냐? 깨달을 것이 없으니 또한 닦을 것이 무엇이 있어?

깨달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그렇다면은 오늘 이렇게 결제(結制)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부터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해마다 여름이 오고 겨울이 오면 결제를 해서 석 달 안거(安居)를 했습니다.

 

지금은 엊그제 7월 백중날 해제(解制)를 하고 지금은 해제 기간이라 걸망을 짊어지고 동서남북에 걸림이 없이 행각(行脚)을 하며 도반을 찾고 선지식(善知識)을 찾는 그러한 계절인데,

수년 이래로 산(散)철 동안이라 할지라도 공연히 동서남북으로 왔다갔다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산철 결제를 해 가지고 알뜰히 정진(精進)을 하는 것이, 정진해 나가는 데에 이익이 많을 것이다 해 가지고 이렇게 산철 결제를 여기저기 선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도 전강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산철에도 결제 때나 다름없이 계속해서 그렇게 정진을 쭉 해 오다가, 수년 전부터서는 산철에 그냥 막연하게 정진하기 보다는 정식으로 간략히 결제 법요식(法要式)을 갖고서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고 정진을 하는 것이 좋다, 이래 가지고 이렇게 산철 결제 법요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용화사에서 이렇게 하게 되니까 이 용화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봉산 원효사라든지, 저 의정부 회룡사라든지, 또 수원에 봉래사 같은 절에서도 비구니 수좌(首座)들이 10여 명씩 모여서 거기서도 산철 결제를 하게 되어서 오늘 이 결제 법요식에 모다 참석을 했습니다.

 

기왕 이렇게 결제 법요식을 갖고 산철 결제를 할 바에는 다른 여름 안거나 겨울 안거 못지않게 더욱 굳게 정신을 가다듬어서 알뜰하게 정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여름에는 그 오뉴월, 유월 칠월 계속해서 더워, 더위 속에 시달리면서 더위와 싸우느라고 참 애를 많이 쓰고 그랬지만 앞으로 두 달간 가을 산철 결제는 춥지도 더웁지도 안 해서 정말 정진을 할 마음만 낸다면 밤에나 낮에나 마음껏 정진할 수 있는 계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조 홍인대사(五祖弘忍大師)께서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 한 법(法)을 설하셨는데 그 최상승론에 보면,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을 안으로부터 발(發)하지 아니하면 삼세(三世)에 비록 모든 항하사(恒河沙)와 같은 부처님을 만난다 할지라도 무소능(無所能)이니라. 능히 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삼세제불(三世諸佛)을 다,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삼세의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속으로부터 안으로부터 진정한 발심(發心)을 하지 못한다면은 도(道)는 이루지를 못할 것이다 이말이여.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 데에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정(大疑情)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참선의 삼요(三要)인데 세 가지 요긴한 것인데, 신심과 분심과 대의정이 한목 속에서부터서 자발적으로 폭발을 하지 아니하면,

억지로 신심을 내고 억지로 분심을 내고 억지로 의심을 낸다 하더라도 잠시 뿐이고 금방 비그르르 하니 식어 버리고, 아무리 의심을 내서 화두(話頭)를 들려고 해도 들 때 뿐이지 1분도 못 가서 의심이 없어져 버리고 이러한 것은 그 정성이 안으로부터 발하지 아니하고, 지어서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정말 안으로부터 신심과 분심과 의심이 돈발(頓發)을 해야만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다 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을 하시기를 ‘다만 능히 떨어진 옷과 거치른 밥을 먹으면서’, 이것은 떨어진 옷과 거치른 음식이라고 하는 것은 검박한 생활을, 잘 먹을라고 하지도 아니하고 잘 입을라 하지도 아니하고,

'다못 근본 참마음을 지켜서 말귀도 못 알아들은 거짓 바보가 되라' 바보는 뭔 말을 일러줘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만공 스님께서도 학자들에게 항시 말씀을 하시기를 ‘썩은 나무둥치가 되어야 공부를 할 수가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썩은 나무둥치’는 왜 그러냐 하면, 산에 좋은 나무가 있으면 목수가 비어 가고 또 나쁜 나무도 다 쓸데가 있어서 비어 가는데 그리고 나무 비어 간 나뭇등걸도 썩지 않은 나무는 그걸 패다가 짜개서 화목(火木)으로 쓰기 위해서 그것도 파 가지만,

그 썩어서 버글버글버글한 아주 썩은 나무둥치는 목수도 돌아다보지도 아니할 것이며 또 땔나무로 연료를 할 것도 못 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은 캐 가는 사람이 없어.

 

이것이 바로 말귀도 못 알아들은 그런 바보 천치(天癡)와 같이—진짜 속속들이 바보 천치가 아니라, 사리(事理)가 분명한 다 발심한 수행인(修行人)이니 그렇게 바보가 분명 아니지만 정말 그런 말귀도 못 알아들은 바보 천치가 되어라 이거거든.

 

거짓 바보 천치가 되어 가지고, 남이 보면은 진짜 바보처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그러한 바보가 되어야만 가장 도를 닦는데 효과적이다.

 

쓸모가 있고 똑똑하고 그러면은 자기 공부해 나가는데 여러 가지로 시간적으로 이리저리 불림을 받게 되고 이용을 당하게 되고 그러니까,

썩어빠진 나뭇등걸이나, 완전히 바보 천치가 되어 버려야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도 시비(是非)를 걸어올 까닭도 없고, 그 사람보고 이 일을 해라 저 일을 해라 할 까닭도 없고, 그렇게 되어 버려야만 정말 목숨을 바쳐서 일분일초도 딴 데에 정신을 쓰지 아니하고 오직 정진만을 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능히 이렇게 공부를 해 가야만 비로소 '대정진인(大精進人), 대정진, 크게 정진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오늘부터 두 달간 용화선원이나 또는 원효사나 회룡사 봉래사 선원에서 정진하는 납자(衲子)들은 이 두 달간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철저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한 신도 여러분들도 각기 가정에서—그 바보가 되어 가지고 계속 그렇게 해서는 집안 살림이 말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할 일은 하고 처리할 것은 처리하면서, 꼭 필요한 데에는 모두 여법(如法)하게 일을 처리해야겠지만,

그밖에 쓸데없는 잡담, 친구끼리 만나서 남의 흉이나 보고, 시부모 흉이나 보고, 남편 흉이나 보고, 이러한 쓸데없는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정말 이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을 항시 생각하면서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처음~19분5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오조 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최상승론(最上乘論)』 에서.

經云衆生若情誠不內發者 於三世縱値恒沙諸佛無所能爲 經云衆生識心自度 佛不能度衆生 若佛能度衆生者 過去諸佛恒沙無量 何故我等不成佛也

 

경(經)에 이르되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스러운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에 비록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득(無所得)이니라. 어찌할 바가 없느니라.

또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고 한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을 못했을 것이냐.

 

只是情誠不自內發 是故沈沒苦海 努力努力 勤求本心勿令妄漏 過去不知已過未來亦不及 今身現在有遇得聞妙去 分明相勸決解此語 了知守心是第一道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돈발하지 못한 연고로 생사고해에 침몰한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부지런히 본심을 깨달라서 잠깐 동안도 한눈을 팔지 말지니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어. 다못 지금 우리가 현재 이 묘법(妙法)을 만났으니 분명히 서로 권고해서 결정코 내가 이제 말한 이 법을 깊이 이해해 가지고 확실하게 자기의 본심을 지킬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일의 도(道)니라.

 

不肯發至誠心求願成佛受無量自在快樂 乃始轟轟隨俗貪求名利 當來墮大地獄中受種種苦惱 將何所及 奈何奈何 努力努力

 

지극한 정성스런 마음을 발하지 못해 가지고 막연하게 성불하기를 바라고 자재해탈(自在解脫)을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될 일이 아니고, 그럭저럭 속심(俗心)을 버리지를 못하고 명예나 이끗을 탐구해서 그렇게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당래(當來)에 대지옥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노력하고 노력할지니라.

 

但能着破衣飱麤飱 了然守本眞心 佯癡不解語 最省氣力而能有功 是大精進人也 世間迷人不解此理 於無明心中 多涉艱辛廣修相善 望得解脫 乃歸生死苦 了然不失正念而度衆生者 是大力菩薩

 

다만 능히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거짓으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바보처럼 하는 것이 가장 힘은 적게 들이면서 공부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이니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이니라.

세간(世間)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아지를 못하고서 무명심(無明心) 가운데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널리 상(相)에 나타나는 그러한 선(善)을 닦음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바래니, 그러다가 결국은 생사고(生死苦)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요연히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만이 이것이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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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고금천지수증오~’ ; 『신심명(信心銘)-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p161 게송 참고. *(頻伽藏)天目中峰和尙廣錄 卷第十二之中 信心銘闢義解中 게송 참고.

*曾(증)일찍,지난날 *飜(번)뒤치다,엎어짐,날다,넘치다 *憶(억)생각하다,늘 생각하다 *端(단)바르다,끝,실마리,근본,일 *憩(게)쉬다

*고금천지(古今天地) ;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온 세상.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영가(永嘉)스님, 육조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육조 스님과 법거량 ; 『육조단경(六祖壇經)』 (덕이본 德異本) (원순 역해 | 법공양) p244~249.

영가현각(永嘉玄覺) 선사는 어려서 경전과 논서를 익혀 천태(天台)의 지관(止觀) 법문에 정통하고 『유마경(維摩經)』을 본 인연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우연히 육조 스님의 제자 현책(玄策)이 찾아와 그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는 이야기들이 모든 조사 스님의 말씀과 합치되었다. 현책 스님이 말하였다.

 

현책 : 그대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현각 : 제가 『방등경론(方等經論)』에서 “공부를 마친 이는 누구나 나름대로 스승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뒷날 『유마경(維摩經)』을 보다 부처님 마음의 종지를 깨달았지만 이를 증명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현책 : 위음왕(威音王) 이전은 혼자서도 깨달음을 얻었지만, 위음왕 이후에는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은 모두 천연외도(天然外道)입니다.

현각 : 당신께서 저를 위하여 증명해 주옵소서.

 

현책 : 저는 큰 법을 감당 못합니다. 조계에 계신 육조 스님께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그대가 가신다면 같이 가겠습니다.

 

현책과 함께 육조 스님을 찾아갔던 현각은 최소한의 존경심은 나타내었지만 육환장을 흔들며 그대로 우뚝 서 있었다.

육조 : 사문(沙門)이란 삼천위의(三千威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대는 어디에서 왔기에 잘난 마음이 그리 크신가?

현각 : 생사의 일이 큰데 세상의 변화는 너무나 빠릅니다.[生死事大 無常迅速]

 

육조 : ’생멸이 없는 법’과 변함이 없는 영원한 자리를 어찌 체득하여 알지 못하는가?[何不體取無生 了無速乎]

현각 : 체득해보니 생멸이 없는 법이고, 알고 보니 본디 빠르고 더디게 변해 갈 것이 없었습니다.[體卽無生 了本無速]

 

육조 : 맞다, 맞는 소리이다.[如是如是]

현각이 위의를 갖추어서 육조 스님께 절을 하고 떠날 인사를 하니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육조 :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그리 크신가?[返太速乎]

현각 : 본디 마음은 움직이는 것이 아닌데 어찌 빠르고 더딘 마음이 있겠습니까?[本自非動 豈有速耶]

 

육조 : 누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는고?[誰知非動]

현각 : 스님께서 분별하고 계십니다.[仁者 自生分別]

 

육조 : 그대는 정말 ‘생멸이 없는 뜻’을 알았구나.[汝甚得無生之意]

현각 : 생멸이 없거늘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無生 豈有意耶]

 

육조 :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는고?[無意 誰當分別]

현각 : 분별한다 해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分別亦非意]

 

육조 : 훌륭하다. 적어도 하룻밤은 쉬었다 가라.[善哉 少留一宿]

이때의 인연으로 그를 일숙각(一宿覺)이라고 불렀다. 뒷날 증도가(證道歌)와 영가집(永嘉集)을 저술하니, 훌륭한 책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많이 보았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별호(別號 나눌•따로 별/부를 호) ; 본이름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걸망(乞網 빌다·구걸하다 걸/그물·싸다 망) ; 망태기처럼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바랑). 또는 동냥할 때 매고 다니는 베낭(배낭背囊)을 말한다.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 동안거)가 아닌 시기.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오뉴월[五六月] ; 오월과 유월을 아울러 이르는 말. 흔히 여름 한철을 이른다.

*오조 홍인대사(五祖弘忍大師)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최상승론(最上乘論) ; 1권.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을 확인하여 잘 지키는 수심(守心)을 강조한 저술.

돈황 출토본 중에 「기주인화상 도범취성 오해탈종 수심요론(蘄州忍和尙導凡趣聖悟解脫宗修心要論)」이 이것과 같은 것으로, 제목은 다르나 기주 인화상이 곧 홍인대사이며, 「수심요론」이 우리나라에서 「최상승론」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정성(情誠 진심·성심·참마음 정/정성·진실 성) ; 정성(精誠).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삼세(三世) : 과거와 현재와 미래. 또는 전세(前世)와 현세(現世)와 내세(來世).

*항하사(恒河沙) ; 갠지스 강(Ganges江)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를 가로질러 벵골 만(灣)으로 흘러들어 가는 인도 최대의 강. 길이는 2,510킬로미터)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 大疑情)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정(疑情) ; 의심(疑心).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목 ; 한 번에 모두. 한꺼번에 몰아서 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말귀 ; 말이 뜻하는 내용.

*만공 스님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나무둥치 ; 큰 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나뭇등걸 ; 나무를 베어 내고 난 밑동.

*화목(火木) ; 불때는 데 쓰는 나무.

*천치(天癡, 天痴 천성·성질 천/어리석을 치) ; ①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사리(事理) ; 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납자(衲子 기울·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법 법) ; 마땅히 지키고 따라야 할 법령이나 이치 · 규범에 맞음.

* ; 남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비웃음을 살 만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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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