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목적)2024. 2. 24. 11:19

§(163) (게송)다년농중조~ / 참선을 해 가지고 '깨닫는다' 그러는데 무엇을 깨닫느냐? 두 눈은 옆으로 붙어 있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깨달은 것 / (게송)허공경계기사량~ / (게송)막파무심운시도~.

노란 개나리꽃, 빨간 진달래꽃, 파란 버들을 보실 때마다 그 사이사이에 우는 새소리를 들을 때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빌고 해제 법어를 마치고자 합니다.

**송담(No.163)—1982년 동안거 해제(82.02.08) (용163)

 

(1) 약 17분.

 

(2) 약 10분.

 

 

(1)------------------

다년농중조(多年籠中鳥)가  금일부운비(今日負雲飛)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임하십년몽(林下十年夢)이  호변일소신(湖邊一笑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다년농중조(多年籠中鳥)가  금일부운비(今日負雲飛)로구나.
여러 해 동안 농 속에,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가 오늘에사 새장 속에서 풀려나 가지고 저 하늘에 구름을 등지고 날으는구나.

임하십년몽(林下十年夢)타가  호변일소신(湖邊一笑新)이로구나.
숲속에서, 숲 아래서 10년 동안을 꿈을 꾸다가 이제 호숫가에서 한바탕 웃으니 마음이 새롭구나.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수레바퀴, 생사고해(生死苦海)라고 하는 그 새장 속에 갇혀서 구속 생활을 하다가 오늘에사 그 생사(生死)의 감옥 속에서 풀려나 가지고 저 갓없는 푸른 하늘에 자유자재로 날을 수가 있게 되었구나.
석 달 동안 안거(安居)를 한 것을 마치 새장 속에다가,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것에다가 비유해서 한번 생각해 본 것입니다.

석 달 안거를 어찌 구속된 생활이라고 말하기는 안 되었지만, 맘대로 외출도 못하고 맘대로 여행도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하고 대중 규칙에 따르면서 대중과 같이 모든—잠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목욕하고 삭발하고 참선하고 소제하고, 모든 생활을 대중 법도에 맞춰서 해야지, 자기 맘대로 단 한 가지도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없으니 새장 속에 갇혀서 사는 새와 같이 비교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해제(解制)를 맞이해서 해제가 끝나면 당장 문밖에 나가 가지고 어디를 갈 것인가?
그동안에 만나고 싶었던 도반(道伴)도 찾아가고, 가서 찾아가 뵈옵고 싶은 선지식(善知識)도 찾아가 뵈옵고, 또 어디 성지(聖地)도 가보고 싶고 또 몸이 아픈 이는 의원도 찾아가 보고 싶고, 찾아간다고 해서 누가 붙잡을 사람도 없고 막을 사람도 없고, 동서남북 어느 곳이고 가고 싶은 대로 갈 수가 있습니다.

숲속에 10년 동안을 꿈속에서 살다가, 10년 동안을 숲속에서 참선(參禪)을, 도(道)를 닦는데 그 10년이라고 한 세월이 꿈결같이 지내갔다 이 말씀이여.
석 달이라고 하는 세월도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데, 석 달 동안이 언제 어떻게 지내간 줄 모르게 지내갔습니다. 하루처럼 지내갔습니다. 하룻밤 꿈꾸듯이 석 달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내갔습니다.

석 달 동안 그 지내는 것을 하나의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제(解制)를 하고 어느 산기슭에 호숫가를 지나다가 그 호수 잔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물새 퍼득이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할런지 누가 알겠습니까.

흔히 해제가 끝나고 떠억 걸망을 짊어지고 어느 개천을 건너고, 어느 산골짜구니를 지나고, 어느 산마루를 넘어가다가 홀연히 꿈을 깨고 지혜의 눈을 떴던 우리들의 과거에 선각자 스님네가 종종 계셨습니다.
과거 선지식만 그러란 법은 없고,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法寶禪院)에서 정진한 여러 스님네, 여러 보살님네 가운데도 가시는 차 속에서 또는 어느 숲 아래 개천가를 거닐면서 또 어느 산골짜기 오솔길을 가시다가 확철대오 할런지, 나는 반드시 그러한 납자(衲子)와 불자(佛子)가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대관절 이 참선을 해 가지고 '깨닫는다' 그러는데 무엇을 깨닫느냐?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들이 갖은 고행(苦行),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하시면서 도를 닦아 가지고 과연 무엇을 깨닫느냐?

오늘 산승(山僧)은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님네가 깨달은 바를 감히 공개하고자 합니다.
다른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고, 각기 자기의 눈이 자기의 두 눈은 옆으로 백혀 있고, 자기의 코는 세로 붙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랐습니다. 두 눈은 옆으로 붙어 있고, 코는 길이로 이렇게 붙어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 스님네만 눈이 옆으로 붙어 있고, 우리 중생들은 그렇지 않느냐?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눈은 옆으로 붙어 있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습니다.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가 눈은 옆으로 붙어 있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을 함께 다 그 도리를 깨달랐고, 모든 부처님께 승사(承事)하면서 불법을 믿고 수행하는 많은 불자(佛子)들 납자(衲子)들도 목적이 뭣이냐 하면 눈은 옆으로 붙어 있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배우기 위해서 이렇게 고향을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형제간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목숨 바쳐서 이렇게 고행을 하면서 일생을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장서방 이서방도 눈은 옆으로 붙어 있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습니다. 모든 동서고금에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눈은 두 눈이 나란히 옆으로 백혀 있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건마는,
날마다 세수할 때마다 그 눈은 옆으로 붙어 있고, 코는 길이로 백혀 있는 것을 느끼면서 거울을 볼 때마다 그것을 확인하면서 그러면서도 눈은 옆으로 백혀 있고, 코는 길이로 세로 백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왜 깨닫지를 못한 것입니까?

분명 눈은 옆으로 붙어 있고, 코는 세로 붙어 있다고 하는 사실은 알면서도, 그 도리는 깨닫지 못한 탓으로 해서 우리들은 오늘도 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산승이 오늘 이 자리에서 감히 이렇게 공개하는 이유가 뭣이냐 하면, 이 법회가 끝나거든 거울을 보고 확인을 하시던지, 가만히 손으로 두 눈을 더듬어 보고, 자기 코가 혹 옆으로 붙어 있지 않나? 눈은 혹 세로 박혀 있지 않는가를 확인을 해 보시고,
진정 자기 코도 모든 불조(佛祖)의 코와 다름없이 눈은 옆으로 백혀 있고, 코는 세로 백혀 있다고 하는 사실을 확인하신 찰나에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生死)에 근본을 요달(了達)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처음~16분30초)




(2)------------------

허공경계기사량(虛空境界豈思量)고  대도청유이갱장(大道淸幽理更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단득오호풍월재(但得五湖風月在)하야  춘래의구백화향(春來依舊百花香)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경계(虛空境界)를 기사량(豈思量)고, 갓없는 이 허공 경계를 어찌 사량(思量)으로 더듬어 알 수가 있겠는가?
대도청유이갱장(大道淸幽理更長)이니라. 대도(大道). 대도가 청정하고 한없이 깊은 그 이치는 다시 길고 무한한 것이다. 허공보다도 더 크고, 허공보다도 더 높고, 허공보다도 더 맑은 이 대도(大道), 사량심(思量心)으로는 도저히 더듬어 알 수가 없는데.

단득오호풍월재(但得五湖風月在)라, 다못 오호(五湖)에 풍월(風月)이 있음을 얻어. 가을에는 서늘바람이 불고 둥근달이 휘황창 밝으며 단풍이 지고, 겨울에는 눈보라가 치고 기러기가 나르고.
그러다가 춘래의구백화향(春來依舊百花香)이라. 봄이 오면 옛을 의지해서 온갖 꽃이 향기롭게 피는 것, 가을이 오면 서늘해서 국화가 피고, 봄이 오면 따뜻해서 온갖 꽃이 난만(爛漫)히 피는 이 도리가 한없이 넓고 깊고 크고 맑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써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도리를 여지없이 잘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모질게 추웠던 삼동(三冬)이 지내가고 입춘을 맞이해서 이제 해제를 해서 머지않아서 산과 들에는 푸릇푸릇 풀과 나무에 싹이 트게 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개나리는 노랗게 피어 늘어지고, 산에 산에는 빨간 진달래가 불타듯이 피어나겠습니다. 노란 개나리꽃, 빨간 진달래꽃, 파란 버들을 보실 때마다 그 사이사이에 우는 새소리를 들을 때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빌고 해제 법어를 마치고자 합니다.

 

 

 

막파무심운시도(莫把無心云是道)하라  무심유격일중관(無心猶隔一重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무심운시도(莫把無心云是道)하라. 무심(無心)을 잡아서 이것이 도(道)라고 이르지를 말어라.

무심(無心)도 유격일중관(猶隔一重關)이라. 무심(無心)도 오히려 한 중관(重關)을, 무거운 관(關)이 맥혀 있느니라.

 

도를 닦으면 자꾸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없어져서 무심(無心) 경계에 들어가고, 일체 번뇌와 망상이 끊어져 가지고 삼세육추(三細六麤)의 모든 번뇌가 다 끊어지면 무심 경계에 들어가는데, 그 무심 경계를 가지고 도(道)라고, 도라고 말을 하지를 말아라. 무심 경계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오히려 한 중(重)한 관(關)이 맥혀 있느니라.

 

오늘 해제를 했는데, 보름 뒤에 음력 2월 초하루에 선방 스님네들은 산철 결제를 하게 됩니다. 2월 초하룻날 산철 결제를 해 가지고 3월 그믐날 해제를 합니다. 이 두 달 동안 산철 결제를 해 가지고 이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두 달 동안을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하시게 되겠습니다.(16분38초~26분2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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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다년농중조(多年籠中鳥)~  ; 『선림구집(禪林句集)』 (일본) (영조선사英朝禪師 편집)
*(게송) 임하십년몽(林下十年夢) 호변일소신(湖邊一笑新) ; 『괴안국어(槐安國語)』 제2권. 日僧 白隱慧鶴(1685~1768) 著.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고해(生死苦海) ; 생사윤회하는 고통(苦痛)의 바다[海].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윤회의 고통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 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무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법도(法度 법 법/법도 도) ; 법칙(法則)과 제도(制度). 법규(法規)라고도 한다. 지켜야 할 규칙이나 의례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보선원(法寶禪院) ; 인천시 미추홀구 주염로 43에 있는 용화선원(龍華禪院)에 있는 스님 선방(禪房)의 이름.
*납자(衲子 깁다·꿰매다·스님·장삼·스님의 옷 납/사람 자) ;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子]」이란 뜻으로 스님이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납(衲)」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수지백납천창리) 三足金烏徹天飛(삼족금오철천비)』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本色)을 말하는 것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 석취미모(惜取眉毛).
*석취미모(惜取眉毛 아낄 석/어조사 취/눈썹 미/터럭 모) ; '눈썹을 아낄지어다' 또는 '눈썹 아까운 줄 알라'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 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11~12.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說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 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三敎聖人이 從此句出이니라 誰是擧者오 惜取眉毛어다
삼교의 성인이 모두 이 글귀를 쫓아 나왔느니라. 뉘라서 말할 텐가, 눈썹을 아낄지어다!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47. (가로판 p253) '권말(卷末)에'
권말(卷末)에

인간의 두뇌와 손으로 이룩된 물질문명에 의해서 인간 자신들은 물론 온 자연계가 병들어 가고 있고 자칫하면 파멸해 버릴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시점에서 나와 인류와 자연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자아를 자각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갈 때 온 세계는 한 집안이 되고 법계는 적광토가 될 것이다.
선가귀감은 서산대사의 저술로 팔만장경의 골수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의 안목이다. 종파와 종교를 초월해서 참사람 되는 길이 여기에 있다.
금번에 조선조 목판본 8~9종을 참조하여 원문(原文)과 현토(懸吐)를 바로잡았고 번역은 선학원판(1948년)을 본(本)으로 했으되, 지나친 의역(意譯)과 현대어투는 고전답게 교정하였다. 국내외적으로 참선에 대한 관심도가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이때에 참선수행의 올바른 지침서가 간절히 요청되고 있으므로 분(分)을 생각지 않고 감히 선가귀감을 간행하게 되었다. 이 책이 자아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면 눈썹을 아끼지 않은 보람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자기의 두 눈은 옆으로 백혀 있고, 자기의 코는 세로 붙어 있다’ ; 안횡비직(眼橫鼻直).
*안횡비직(眼橫鼻直) ; ‘눈은 가로 박혔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 ‘모든 사상(事象)이 그대로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뜻. 유록화홍(柳綠花紅)이라고 하는 것과 동일.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十類生與十方佛  一時成道  十方佛與十類生  同日涅槃  生佛相  本寂  能所度  亦寂  能所度  旣寂  我人相  何有  伊麽則  釋迦眼橫鼻直  人人亦眼橫鼻直  同居常寂光土  共受無生法樂

시방세계 온갖 중생이 시방의 부처님들과 더불어 일시에 도를 이루고, 시방의 부처님들이 시방세계 온갖 중생과 같은 날 열반(涅槃)하니 중생과 부처님의 상(相)이 본래 공적(空寂)하고, 능도(能度, 제도하는 이)와 소도(所度, 제도받는 이)도 또한 공적(空寂)이로다.
제도하는 이[能度]와 제도받는 이[所度]가 이미 공적한데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어찌 있으리오.
이런즉 석가(釋迦)도 안횡비직(眼橫鼻直, 눈은 가로 박혔고 코는 길이로 붙어 있다)이요, 사람사람도 또한 안횡비직이니 상적광토(常寂光土 법신불이 머무르는 정토)에 함께 머물러 무생법락(無生法樂 생멸이 없는 법의 즐거움)을 같이 받도다.

*승사(承嗣 받들 승/이을 사) ; 후임자나 후대가 선임자나 선대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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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허공경계기사량(虛空境界豈思量)~’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야부 게송 참고.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사량계교(思量計較).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난만히(爛漫- 빛날 란(난)/넘쳐 흐를 만) ; ①꽃이 한창 만발하여 성하게. ②빛이나 광채가 어지롭도록 강하고 선명하게. ③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충분히 많고 활발하게.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 회광(回光). 회광반조(廻光返照).
*회광반조(廻光返照 방향을 바꾸다·돌리다 회/빛 광/돌이키다 반/비칠 조) : 회광자간(廻光自看). 불법은 밖으로 내달으면서 구하지 말고 안으로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날 때에 곧 그 일어나는 곳을 돌이켜 살펴보라.
자신의 본성을 조견(照見)하는 것. 언어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자기 본래의 면목(面目)을 보는 것. 廻,迴,回 모두 동자(同字).

'회(廻)'는 전환의 뜻이고, '광(光)'은 광명, 즉 불심 · 본성 · 본심을 가리킨다. '반조(返照)'는 석양이 비치는 것을 의미하는데, 밖으로 구하는 마음을 안으로 향하여 본심 · 불성을 밝힌다는 의미이다.

[참고] 송담스님(No.524)—19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회광반조(廻光返照)라 하는 것은, ‘빛을 돌이켜서 다시 비춘다’ 하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그놈을 밖으로 발산을 해 가지고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으로 나가면 그것은 회광반조가 아니고,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오고,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곳을—다시 이렇게 참구(參究)하는 것이니까—바로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에도 보는 대로 쫓아가지 말고, 보자마자 바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를 참구하면 그것이 회광반조가 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그 경계(境界)에서 즉각 ‘이뭣고?’로 생각을 돌리면 그것이 회광반조(廻光返照)다 이거거든.

*(게송) 막파무심운시도(莫把無心云是道)  무심유격일중관(無心猶隔一重關) ; 『전등록(傳燈錄)』 제29권. 동안찰선사(同安察禪師) 십현담(十玄談) 참고.

[참고] 동안찰선사(同安察禪師) 십현담(十玄談)에서 ‘심인(心印)’.

問君心印作何顏 心印何人敢授傳 歷劫坦然無異色 呼爲心印早虛言 須知本自虛空性 將喻紅爐火裏蓮 莫謂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삼세육추(三細六麤 석 삼/가늘 세/석 삼/거칠 추) ;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의 3상(相)과 지말무명(枝末無明)의 6상(相)을 말함. 3세(細)란 그 상(相)의 작용이 미세하므로 세(細)라 하고, 6추(麤)는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추(麤)라 함.

 

청정한 진여의 마음이 근본무명에 의하여 망동하여 유전하는, 진실에서 어긋난 마음으로의 3가지 미세한 마음 상태[三細]와 이어지는 거칠은 6단계의 마음 상태[六麤]를 설명하는 '대승기신론'에서 밝힌 교설.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 동안거)가 아닌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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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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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