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1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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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3호) 혜월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08)—전강선사 일대기 제3호(경술1970년 12월 1일 새벽.음)

(1/3) 약 42분.

 

(2/3) 약 43분

 

(3/3) 약 20분.


(1/3)————————----------

모산촉공우(暮山促笻雨)요  기립원강풍(欹笠遠江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모산(暮山)에 촉공우(促笻雨)다. 저문 날에 작대기가 급허고 그 걸음이 바쁘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모산(暮山)에, 날은 저물었는데 발도 바쁘고 작대기도 급허고 비는 오는구나.

거, 우리가 이렇게 참 온 곳이 하도 무량겁(無量劫)이요, 하도 과거요, 하도 구원겁(久遠劫)이요. 말로 할 수 없다. 저물었다 그말이여. 이렇게 이렇게 저물도록 왔구나.
뭘 했느냐? 여때까지 뭘 했어, 대관절.

오늘이 경술년 동짓달 보름 지나고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半山林)이로구나. 발써 금년 삼동(三冬)도 반산림이 되았다. 여태까지 오면서 오늘 섣달, 음력 섣달 초하룻날 반산림까지 왔구나.
그게 모산(暮山)이요, 저문 산이요. 작대기가 급허고 발자취가 급허다. 비는 오는구나.
비가 와, 비가 와. 이렇게 저문 산에 그 바쁜 가운데 비는 온다.

우중(雨中) 속에 비 가운데 있는, 비가 오니 비 온 속에 들었으니, 우중에 있으니 깜깜한 우중에 있어. 여태까장 깨달지 못했구나. 여태까장 날 밝은 비 안 오는 하날(하늘)을 보지 못했구나.
비 안 온 하날을 봐야 할턴디. 이 비 가운데서 이렇게도 발자취도 급하고, 작대기도 급허고, 산은 저물었구나.

기입원강풍(欹笠遠江風)이냐. 또 거다가 비는 오니까 삿갓을 뒤집어썼는데 그놈의 그 산풍이 냅대 불어 제끼니 작대기가(삿갓이) 벗거지면 왼 몸뚱이에 비를 맞게 되었구나.

이게 무슨 짓이냐. 중생의 버르정머리가 여차(如此)허구나.
원, 강풍에 삿갓은 벗어지제, 비는 냅대 오제, 저 발자취는 급허제, 산은 저물었제, 이 지경이로구나. 아, 이렇게 지경이 됐으니 어쩔 꺼나.

처억 한번 거 비바람 없는 곳, 한번 쾌청헌 날빛. 아, 그 툭! 한번 터져보지 못헐 꺼나?

한번 툭 깨달라버린 지경이 있을 텐디, 반다시 비 갠 하날이 있을 텐디, 구름 안개가 다 벗겨지고 환헌 화창헌 천일(天日)이 있을 텐디. 없을까?


장천척안몰(長天尺雁沒)이요  추공한영락(秋空寒影落)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장천(長天)에는 척안몰(尺雁沒)이요, 긴 하날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졌고,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로구나, 가을 하날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건 무슨 말인고?

장천에는 재질을 허는 기러기가 빠진다.
아, 이놈 저 창공 장천(長天)에 구름이 벗겨지고 만리청천(萬里靑天)에 확! 거 구름 한 점 일점무운(一點無雲)헌데, 외기러기란 놈은 재질을 해서 간다. 훌훌 날아가는 게 시방 재질 헌 거 아닌가. 허공 재질을 혀.
처억 그저 그러다가 빠진다. 빠진 것은 멀리 가버리니 빠졌지. 없지. 허공 속에 풍 빠져 버리드라.

추공(秋空)에 한영락(寒影落)이다. 거 뭐가 있나?
가을 하날에 차운 그림자가 떨어진다. 그 바로 갖춘 놈 아닌가. 바로 조사관(祖師關) 바로 갖춘 놈 아닌가. 그놈 봐버리면 아! 그만 그 문제 해결이지.

장천(長天)에 척안몰(尺雁沒)이요, 진(긴) 하날에는 재질해 가는 기러기가 빠졌어.
추공(秋空)에는 한영락(寒影落)이다. 가을 허공에는 차운 그림자가 떨어졌느니라. 아, 그 그...


오늘은 경술년 동안거 반산림이다. ‘내가 견성(見性)을 했다’
허, 인자 또, 또 인자 또 천하에 못된 자찬(自讚), 제 자랑은 천하에 못된 것이라는구만.

마누래 자랑 반 미친 이고, 온 미친 이라 하드나? 온 미친 이고. 자식 자랑 그 반 미친 이고.
자찬(自讚), 제 자랑은 그건 못 쓴다는구만, 그녀러 건. 암작에도 못 쓴대야.

반만 미쳤으니 그래도 그 뭐 좀 쓸모가 있고. 다 미쳤드래도 그래도 그 미친놈이라도 그래도 그 등거리는 남아 있고. 자찬은 못 써, 그녀러 거. 버려버려.
허지마는 독찬, 자찬이란 것도 그것도 어디 꼭 못 쓸데만 갖다 붙일 것 뭐 있나. 그것 쓸디다가 붙여 보지.

바로만 견성을 했고, 바로만 일 마쳤으면 그대로 참, 이상 더 있어?
견성을 잘 못했으면 영 못쓴 것이고, 옳게 했다면 영 쓰는 것이고, 남 찬(讚)을 바랠 것도 없고 자찬도 능히 할 수 있는 문제지.

내가 견성을 해 가지고—몰라 인자 참 했는지, 그릇했는지 내가 견성을 내가 했다 이게니깐.
다 인자 그, 인자 참, 선지식(善知識)들이 다 시험을 해 보아야 하고 시험에 합격이 되아야 하는 것이지, 제 자랑, 제 찬, 제 견성은 소용없다 그말이여.

나는 내 견성을 했드라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선 그 오도송(悟道頌)을 척 그날 저녁에, 뭐 그대로 나와.
참 견성인지, 거짓 견성인지 그건 분간할 것 없고, 그대로 나와.

산 넘어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에 턱 거닌디 그날 밤의 달은 환허다.
나온 것이 견성—내가 언제 글 지어 봤나. 뭐, 글을 한바탕 해 봤나. 아, 그런 그 경계가 척 들어오면서 나온다 그말이여.

그때 진 것은, 요새는 내가 그걸 조금 그냥 거다가서 떼어 버렸지만 그때 진 놈은 그대로여.
거그 좀 가닥을 추켜들어서 머냐(먼저) 헌 놈을 다시 해야사 분단이 있으니까 그래서 헌 거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요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이요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昨夜三更)에 월만루(月滿樓)다. 어젯밤 삼경 달도 누(樓)에 가득찼다.
작야(昨夜)를 넣었어. 오늘밤인데, 오늘밤 밝은 다락 누(樓) 앞에서 지은 글이 작야(昨夜)를 넣었다 그말이여. 어젯밤 삼경 달, 다락에 그득 찼다.

고가창외(古家窓外)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그때 가을이제. 뭐 다른 말 썼나? 아무 다른 말 없어.
달빛에 보니 거 턱 태안사 그 밑에, 그 모두 그 인자 경계,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불조(佛祖)도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인디, 부처님과 조사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상신실명(喪身失命)을 했는데, 상신실명은 거다가 붙일 것 없어.
상신(喪身)과 실명(失命) 왜 둘을 놓았는고? 상신도 몸 죽은 것이고, 실명도 명 잃었는데.

암하(岩下)에 유수(流水)는 과교래(過橋來)로구나.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이놈을 했지.
그 경계가 어떻게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그 경계를 말을 헐 것인고.

그러고 나서 아침에, 저번에 했지마는 아침에 그만 아무데나 갔다 오줌을 싸버리니까 그 원주(院主)란 놈이 나오더니—그 경계를 알 수가 있나.
그 오줌도 못 가렸으니 나는 거그서 쫓겨나야 옳고, 아침도 못 얻어먹어야 옳지. 그 옳은 일이여. 허지마는 저 원주, 저는 그 경계를 모른다 그말이여.

나는 미친 행동을 했으며 쫓겨난 짓을 했거니와 그 감원 원주는 제가 선방 원주를 허지마는 그 도리(道理)를 알 수가 있나. 아무데나 오줌 퍼싼 것을 저는 보들 못혀.

허지만 또 거다가 “어디가 이놈 오줌 눌 곳이냐. 진대지(盡大地)가 부처의 전신(全身)인디 어따가 눌 것이냐?” 한바탕 또 물었다. 그것 뭐 물어 보니 쌩댕이가 뭐 뭔 말이 있나.
아침에 밥도 안 주고 쫓겨났네. 그래 가지고 마곡사를 갔다 그말이여.

마곡사 혜봉 스님이 계시니까, 혜봉 스님한테를 가서 다짜고짜 뭐 절 한 자리 턱 해부치고는—패철(佩鐵) 차고 댕겨. 도인(道人)이 풍수(風水), 산에 묏자리 잡는 패철 차고 댕겨.

머리도 안 깎아서 이렇게 흘러내려와 가지고는 그냥 영감탱이로 아들, 큰 아들 작은 아들 둘이 있고,
마누라는 그 혜봉 스님 부인은 천하에는 그렇게 못난 분은 어디 시집갈 데 없을 거여. 어디로 시집갈 수가 있나, 그렇게 못난 이가.
눈도 홱 비틀어지고 볼 아래 뽈따구는 하나도 없고 그 이상해. 다 얘기 헐 수가 없어. 그렇게 생긴 인데, 아마도 그분은 어디 시집갈 데가 없겄드구만. 아무디 시집갈 데 없을 꺼여.

허니, 혜봉 큰스님 그 도인 스님이라 누가 하나 거둬 둘 이가 없을 것 같으니까 마누라를 했든가 부여. 그러니까 그런 못난 부인을 살제. 초가집에서.
아들은 참 잘 나놨어. 그렇게 얼굴이 못난 이라도 아들은 잘났단 말이여. 둘이 다, 다 잘났제.

지금도 혜봉 스님 아들이 큰아들이 다 있고, 어머니 잘 못났단 말 들으면은 섭섭할 터이지마는 또 거다가서 ‘아들 잘 낳았다’하니 들으면 좋아할 터이지. 그거 그저 그 내 사실대로만 허니까.

그래 가지고는 뭔 인자 머리는 기다큼헌 참 촌노인처럼 된 이가 나이는 그때 한 50살, 거지반 50살 되었는데 패철을 딱 찼어. 묏자리 잡는 동서남북 가르키는 패철 차고 그러고 계셔.(20분18초)


가서 절 한 자리 턱 하고. 수좌(首座) 옷 입었으니까 그 뭐 수좌인 줄은 알 터이고.
절을 척 허니까, 나를 척 쳐다봐.

나도 한번 쳐다보고서 합장을 허고서 “무자(無字) 반(半)만 일러주십시오” 그저 간단허게, 뿐이지.
“무자 반만 일러주십시오.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반만 요구합니다. 일러주십시오”
“무(無)”

“그거 반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수좌가 이르게. 어떤 것이 무자의지(無字意旨) 반인가?”

내가 합장을 허고 “무” 이렇게 했지.

“고인이 이르되, 고인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지(無立錐之地)여. 송곳 꽂을 땅이 없어. 금년 가난은 시(是)가난이여. 금년 가난이 참으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다. 송곳도 없다’했으니 수좌는 어떻게 이를 텐고?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게” 저번에 여까장 했겄다.

법문(法門) 들을 때에는 화두를 혀. 내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혀. 본참화두를 딱! 헌 가운데에서 법문도 안 들어와. 그 지경 좋지.
법문도 귀에 안 들어온디, 내 참선은 내 화두 허느라고 법문도 안 들어온디, 거 뭐 뭐 다시 그 경계 외에 뭣을 구헐 것이여. 뭣을 바랠 것이여. 법문은 들어서 뭣 헐 것이여. 화두 의단(疑團)만 독로(獨露) 했는데.

그러면 화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가운데에서 이 법문도 안 듣킨가? 법문도 통 귀에 들어오지 않고 화두 의단독로만 나오는가?

법문, 법문이 딴 것이 아니라 그 화두 고놈의 대의(大意)여. 큰 의정(疑情)의 근본 뜻이여.
언하(言下)에 대오(大悟) 할 수 있는 것이여. 언하에 대오를 허는 법이여.

참선 화두 그대로 역력(歷歷)허면서, 법문 대의는 그대로 낙구(落臼)라. 그대로 척 들어오는 것이여. 헌디, 화두 독로 했다고 법문이 안 듣켜? 다 듣고도 능히 화두는 그대로 독로 헌 것이여.

저 조인광중중(稠人廣衆中)에, 조인(稠人)이라는 것은 모지라질 조자인디, 사람이 수천 명이 꽉 콩나물처럼 섰는 디가 조인이여.
우묵허니 조인광중중에 여러 조인(稠人)들이, 여러 사람들이 그저 떠들고 대고 잡화(雜話)하고 뭐 와각 와각 그런 것은 소용없어.

의단독로에 뭐가 들어와? 뭔 말, 그 같은 게 들어올 게 뭐 있어?
아무리 시끄럽게 아니라, 아무리 무슨 천지를 뒤집는다 하드래도 화두학자한테는 안 들어와.

허지마는 이런 공안 법문이 화두 역력허면서 그 법문은 그대로 낙구(落臼)가 척척 되아.
낙구(落臼)라는 것은 뭐냐? 문을 척 열면 제대로 가서 탁 맞는 것을 낙구라 하고, 방아 찧으면은 올려 놔두면 제대로 툭 떨어진 게 낙구여. ‘구(臼)에 떨어진다[落]’ 그말이여.

뭐 들을라고 해서 들어지나. 화두 헌 학자가 그래도 법문이 그만 그 제일구(第一句) 법문 턱턱 들어온 거지. 그래서 언하대오(言下大悟)여, 언하에 대오다. 말 아래 크게 깨달는다.

‘공부, 참선 화두, 화두 허니라고 언제 법문 들을 겨를이 있느냐?’ 이런 말도 들었지마는,
그렇게까장 공부를 헐 것 같으면은, 화두 허니라고 법문도 안 듣키면은 그 지경—그 화두가 그것이 그 법문도 안 듣킨다 허는 그 지경이 반 쪼가리밖에는 안되는 것이여.

화두를 들고 역력헌 가운데에 이러헌 공안(公案) 법문을 들을라고 듣는 것이 아니라 낙구가 된다 그말이여, 내 말은.

이런 말을 잘 들어! 부처님 설법을 족 설법헐 때에는 그 뭐락 했어? 뭐라고.
‘허공이 되아가지고 들을지니라. 다 비워라! 다 비워 놓아 버려라. 안 마음, 바깥 경계 툭 놓아 버려라’
뭐 놓을 것이 뭣이 있나? 처컥 귀 들고 들으면은 그 놓고, 안 놓은 게 어디 있는가? 여여독문(如如獨聞) 이지.


‘거년 가난은 참으로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다’ 그 뭔 말이여?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도 없다’ 뭐 그런 말을 못 알아들을 이치가 있으며, 거가서 낙안성예(落眼成翳)가 될 것이 뭣이 있나.
밝은 눈이면 다 볼 수 있지. 왜 그 밝은 눈에 가시가 될 것이 뭣이 있어. 그 밝은 눈깔에 티끌 될 것이 뭐냔 말이여.

‘거년 가난은 비(非)가난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까장 없구나’
그 어떻게 했으면은—거그서 고인(古人)이 점검하되 ‘여래선(如來禪) 밖에는 네가 몰랐느니라 했으니, 어떻게 했으면은 조사선을 옳게 이르겄는가?” 무섭게 잡드린 말이제.

혜봉 스님, 패철을 타고(차고) 묏자리나 잡고 지나셨지마는 참 도인이여. 참으로 도인은 툭! 깨달라 버리니 그것 뭐 어디 가서 무슨 뭐 인연도세(因緣度世)를 헐 것이제. 인연(因緣) 따라서 도세(度世) 헐 것이제. 별것 뭐 있나.

그때 어디 가서 조실(祖室) 스님이 되아 가지고 학자를 제접(提接)했으면은 대단히 좋으련만, 또 그 혜봉 스님의 그때 사정이 형편이 그렇게 못 되아서 그랬을런지 모르제.
허지마는 속가에 가서 패철을 차고 천하에 못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턱 나 놓고 요요자재(了了自在)하게 자재요요하게 그렇게 지내드란 말이여.

거그서 말이여, 그것 참.
내가 답을 허되, 대답을 했단 말이여. “능각(菱角)은 첨첨불사타(尖尖不似他)입니다. 능각은 첨첨해서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아, 이랬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어른이 그때 ‘아니다’ 이 말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내 거그 안 떠나. 세상없어도 안 떠나!
내가 그 어른 밑에서 불을 때주고 내가 심바람 해주고 마당을 쓸어주고 패철을 내가 가지고 대니면서, 산에 대니면서 내가 시봉(侍奉)을 헐지언정 안 떠나.

옳단 말도 없고! 거 학자를 그렇게 잡드리해서는 안 되겄드구만.

‘옳다’고 헌 말도 없고, ‘그르다’고 헌 말도 없고, 그만 그대로 그 뒤가 그만 아무 말씀도 없고, 그 말씀 없는 태도도 그렇게 부인(否認), ‘아니다’ 소리 아니여.
그래서 ‘아니다, 기다’할 것도 없고 맞으니께 그런가 보다.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그런 말이 없이 태연허니 그래서, 옳다! 인가(印可)를 허신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았다 그말이여. 여그는 그래 두거든 내가.

능각첨첨불사타(菱角尖尖不似他)가 절대 아니여,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그말이여. 아, 이런 놈의 꼴 좀 보소.
그 뒤에 내가 아닌 걸 발견했거든. 내가 스스로 발견을 다 한 거여.

그만 거그서 뚝 떠나 가지고는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지리산 쌍계사(雙磎寺) 위에 동방장(東方丈)이라고 있어. 아, 학자들이 다 봤을 터이제.

동방장에 그때 누가 있었드냐 하면 허태오라는 스님이 있어. 허태오.
허태오인디 이름은 태오인디, 그 다음에는 당호 누구한테... 그 당호(堂號)를 허운송이여. 운송(雲松), 구름 운자, 솔 송자, 허운송 스님이여.

운송 스님이 그때는 허태오라고 했제, 운송 스님이라고 안 했는디.
동방장에 계시는데, 동방장 조실(祖室)로 있는 것도 아니고—언제 그분이 나와서 조실 살림 헌 일도 없고 동방장 뒷방에 가만히 이래 앉어 공부헌 분인데.
누데기는 누데기는 한국에서 그런 누데기는 없어. 참 진짜 누데기인데. 무풍 스님보담 더 혀.

왜, 옛날에 만공 큰스님 다 계시고 헐 때 무풍 스님이 있었거든. 무풍 스님은 누데기로 누데기로 유명한 분인데, 이 허태오 스님은 그 무풍 스님 계통도 아닌데, 그렇게 누데기를 입었어.
굉장하니 전부 실이제, 바늘로 꾸맨 실뿐이제, 베 자체라는 건 하나도 없어. 고렇게 집어서 입고.

음식은 잡숫되, 솔잎을 따다가서 빻아서 그 가리를 바리때에다 넣어가지고는 물에다 타서 자시고. 그밖에는 없제. 아무것도 먹는 게 없어. 거 무슨 콩가리 조금씩 먹는다 하드구만.

세상에는, 그러헌 누데기에다가 송엽 빻아서 가리, 콩가루에다 묻혀서 그 물에 좀 타서 자시고 그러고 앉었는 걸 보니 참, 세상에 도인의 아무리 참 탈속(脫俗)헌 도인의 생활이라고 헌다 헐지라도 그 이상은 더없어. 참 고상허고 깨끗허고 기맥히게 해가지고는 딱 지내는데.

마침 그 스님 책상 위에다가서 법문을 하나 써 붙여 놨는디. 그 또 책도 그 뭔 책을 많이 그 법문을 해서 모도 지어 놓고 책상에다가 걸어 놨는디.

그 법문이 월조(月照) 스님 찬(讚)이여. 달 월자, 비출 조자, 월조선사찬(月照禪師讚)이여. 영찬(影讚).
‘월야할(月也喝)이요, 월에도 할이고. 조야할(照也喝)이요, 조에도 할이요. 월조니까. 월도 할, 조도 할. 비월비조(非月非照)라도 역할(亦喝)이니라. 월도 아니고 조도 아니드래도 또한 할이다’
요렇게 딱 해 놨어. 월조 스님 영찬에다가.

내가 묻기를, 거가서 인자 보고 절 한 자리 하고는 앉었다가 내가 묻되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라도 역할이라 했으니”
그 할도 빈할(賓喝)도 있고, 주할(主喝)도 있고—빈은 ‘손 빈(賓)’자, 손에 대해서 할도 있고, 주인에 대해서 할도 있고, 빈할도 있고 주할도 있으며 타할(他喝)도 있고 자할(自喝)도 있을 터이제. 다른 이한테 할도 있고 나, 내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지마는 이건 내가 헌 소리고.

‘빈할 주할 타할 자할도 있을 터이제. 그러니 월도 할이요 조도 할이요 비월비조도 할이다 하는 것이 그렇게 다 할 수가 있겠다’ 내가 짐작을 딱 하고서는,
“그래 그러면 월(月) 조(照) 비월비조(非月非照) 다 할(喝)을 했다면은 그 할은 어따가 하는 것입니까?”

불가불 할로 들어갈 밖에 없제. 빈할 주할 타할 자할 다 툭 떼 번지고 인자 불가불 바로 들어갈 수 밖에 있나. “할(喝)은 어따가 허는 것입니까?” 고런디 가서...

잔 사람은 나가! 눈깔 감고 잔 사람은 나가!
고런 놈의 심리를 가지고 선방에 들어와서 밥 도둑질 말어! 공연히 씨잘데 없이 밥 도둑질이나 해 먹고 앉아서 그렇게 지낼라고 말아!
시주것 함부로 없앨 수 없고. 제 죄 퍼짓고. 고래 가지고 무슨 되나 말이여.

그런디 그 바로 보이면은 답 하나 해야 혀. 그 바로 보이지 않고는 답 못혀. 왜 못 허냐?
왜 그렇게 어리석게 해가지고 어쩔라고? 응, 더듬허니 의심이 나 가지고는 그...
자기를, 내 경계를 내가 살펴 봐. 그래 가지고 해 되야? 바로 보이거든 해 봐.

아, 그래야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서로 탁마(琢磨)인디. 탁마상성(琢磨相成) 해야 하는디.
그 묻는 것 그런 거, 벌써 척 헌 데 가서 처컥 보면 왜 못혀.

허태오 스님이, 그때 허태오 스님이어. 그 말 대답을 나한테 통쾌하게 한마디를 못 일러 주었겄다.
다 알면서도, 나한테 그랬던지 어쨌든지 법을 애꼈든지 안 해 주었어.
나 안 해 준 줄만 알지, ‘몰랐다, 못 봤다, 못 깨달랐다’ 그런 말 안 해아. 나 고때 그 지경만 얘기했지.

또 그런 것을 그렇게 탈속하게 참 도를 닦고 계신 분한테 내가 함부로 거다가서 뭐 방맹이—요새 꺼떡 허면 무슨 방맹이 준다고. 제가 무슨 뭐 방맹이, 무슨 갖춘 방맹이나 있나?
쫓아 들어가서 선지식 방맹이부터 줄라고? 고렇게 평생 고런 것이 있어. 거, 천하 그런 것 천하 참 때려잡기 천하 쉽네.

그놈이 참말로 눈깔 가진 놈이야 아! 그것 무슨 뭐 편영이행(鞭影而行)이제. 말헐 것이 있나.
발써 남 방맹이 줄라고 고런 것 엿보고 댕기는 것은 가짜인 것이여. 틀렸어.(처음~41분33초)





(2/3)————————-----

내가 뭐 들으니 어저께 여그 무슨 자혜 수좌 한테 들었나?
자혜가 통 묵언허고 들입대 공부를 해제끼는디 하! 가당(可當)토 안 혀. 지금 이 대중에서 응, 압도(壓倒)구만. 압도적이여.
그 밖에 나가서도 그만 그 공부를 허는 것 보면 냅대 버티고 허며 아! 한바탕 그래야제. 저 담 밖에 댕긴 걸 봐도 화두를 꽉 붙잡고 그 들입대 참 용맹 참 정진이여.

그런디 저 먼첨은 원청 여그가 그려. 원 돌아설 디도 없어. 방이 좀 넉넉한 방이 아! 여그저그 좀 있어야 헐턴디.
저 저짝 방, 선객 스님네 지금 지내는, 우리 대중 지내는 선방 쬐끄만헌 디서 밥을 먹고 거그 잠자고, 거그서 서서 왔다갔다 하고, 원 이것 당최 원청 복잡햐.
고런 것이 그만헌 방이라도 어디 서너 개나 있어야 헐 텐디, 원 없어. 개복실(改服室)도 있어야 하고 좀 허리 펴는 디도 있어야 헐 것인디.

아! 뒷방은 쬐깐헌 것 메주를 거다가 시방 띄우느라고 두고. 거, 부인 손님 오시면은 그 방에서 밥을 잡숫게 하고, 원 당최 꼼짝헐 수가 없어.

어디 뒷방이라도 넉넉한 방이 있으면은 같이 큰방에서 정진허고 나와서, 그 뒷방에 와서 용맹정진을 헐 생각이 꽉 차고.
거 그런 숭악헌 방에라도 들어가면 그만 정진을 허고 있고. 아, 어떻게 했으면 참 쓰련만 당최 뭐 용납헐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는 당최 마음대로 제 양대로 한바탕 도를 닦아 봐야 하겠는디, 그 양대로 못해 봅니다. 자연 모도 걸리게 되고.

그래 내가 말을 허되, “자, 천 경계 만 경계가 내게 있으니 그 좀 복잡허고, 그 좀 처소가 방연(尨然)치 못허드래도 어쨌든 그런 데서 한번 참, 인행(忍行)을 허소. 참는 행을 허고. 약무인행(若無忍行)이면 만행(萬行)은 불성(不成)이여. 참는 행이 없으면 만행을 이루지 못혀.
집도 절도 없어 바위 틈새기 가서도 도를 닦고, 거 다 고인(古人)네가 다 옛날 고인네가 토굴터, 산중에 들어가서 토굴터 잡아 가지고 방을 맨들되 둘도 못 앉게 맨들어 가지고 눕도 못허고 다맛 앉어서 다리도 못 펴고 꼼짝없이 들어앉아서 공부헌 도인도 있어.

역부러 그렇게 방을 지어. 발 뻗고 허면은 눕고 싶기도 허고, 그런게 이리 앉어도 당최 뭐 몸뚱이 돌이킬 곳이 없이 혼자 몸뚱이 꽉 찌어 앉게 요렇게 해 가지고 도(道)도 닦았으매, 한 철 넉넉헌 방이 없고 그러드래도 불끈 참고 산림(山林) 중에 휘딱 달아나고 그러지를 말고.
다 똑 도 닦는 스님네니까, 도 닦는 스님네가 모여서 서로서로 찡겨서 그 용납할 길이 없다 하드래도 다 도 닦는 스님네니 그러헌 디서 넉넉헌 마음을 품고 화두(話頭)를 잘 잡드리허고 좀 지내고 잘 지내소.

모든 경계(境界)가 내게 있고, 삼라만상 일체 외경(外境)이 바깥 경계가 내 한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분다헌 것이라든지, 시(是)와 비(非)라든지, 일체 추헌 경계와 만경(萬境)이 내 자심소현(自心所現)이니, 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마음을 단속하고 어쩠든지 도를 한번 참아, 그 참아 가면서 닦아 보소”

그래서 내가 가서 인자 대중 큰방에서 묵언도 허고 좀 잘 좀 닦아 달라고 부탁하고, 그래서 그동안에 공부를 알뜰이 잘 허더니 또 엊저녁에 또 다시 와서 묵언(默言)을 트고—나한테 와 또 틀 밖에 없지.

묵언을 트고 말을 허되 “스님네는 참 그렇게 공부를 알뜰히 잘 허십니다. 허신 가운데 저도 좀 그 가운데 들어서 참아 가면서 잘 닦았으면 좋겠는디, 늘 그 가운데 공부는 허느라고 딴에는 애를 씁니다.
허지마는 양껏 못 해서, 양대로 좀 못 해서, 아! 우리 스님한테 ‘그 용(茸)을 좀 보내 달라’했더니 용을 보내 주어서 그놈을 달여서 먹고는 기운도 나고 앉어서 정진허기도 좋고 아, 그래서 양대로 좀 해 보고 싶은디 뒷방이 하나가 있으면은 한바탕 거그서 했으면 좋겠는데.

아, 모도 공부허시는 방에 나 혼자 부셔대고 나 혼자 잠을 안 자고, 다 주무시는디 혼자 부스럭 대고 거그서 잠 오면 또 일어나기도 허고, 또 잠 안 오면 앉기도 허고, 일어났다 앉었다 허는 가운데도 제 좀 그 양대로 한바탕 해 볼 마음이 납니다.
그러헌디 아, 뒷방 하나가 없고 허니까 양껏 못 해서 이것 큰일나고, 반산림은 다 되아 가고 또 금년 삼동에 일을 마추지 못헐 것을 생각하니 참 근심이 됩니다” 아, 이려!

아, 거 인자 나이도, 뭐 나이가 있을까마는 5세에 견성도인도 있는 것인데, 나이 18세니 뭐 넉넉허지마는 그때를 여의고 언제 있겄는고 말이여. 아! 그 참 기특허다 그말이여.

“오냐, 정 그렇다면은 내가 네 허는 짓을 보니 그래 애쓰는 것이 보인다. 그거 참 퍽 기특하다. 나는 아무것도 없고 그것밖에는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 와서 그저 내 이 처소도 아닌디 토굴도 아닌디, 이런 데 오셔서 모도 고생허고 계신 그것은 내가 미안키도 허고, 허지마는 그 가운데에 참말로 그렇게 용맹정진 헌 것이 보인다면은 자기 일이고 당신네 일이... 자기네 일이기 따문에 내가 고마운 것이여. 누가 나 해달락 하나? 무척 고마운디.

오냐, 그렇다면 방 하나를 들여 만들아 줄 수가 있나. 어디 여그서 방 하나를 치워 줄 수도 없고. 그러헌즉 용주사로 가거라.
용주사도 내가 조실로 있고 내가 거그 중앙선원(中央禪院)이라고 허고 있으니 거그는 방이 많다마는 원청 경제 곤란으로 큰방만 불 딱! 너 놓고는 ‘큰방에 모여서 삼직(三職)이고 누구고 아무도 거그는 도 닦을 사람이면 다 들어오니라’해 가지고는 사미(沙彌), 지금 저 사미가 아니라 행자(行者)라도 다 내려와서 도를 닦고 있어. 거그 들어가서 한번 해봐라.

방이 원청 넓찍허니 큰디 그 방이 훈훈허니 좋다. 저 한쪽에 앉아서 제 마음대로 해도 누가 시비 헐 사람도 없지마는 눈에 어디 뭐 원청 큰게 아무 걸림 없다.
그러고 또 다른 방은 모두 안 때아. 다 그 꼭다리만 열어 놓으면은 곧 훈훈허지마는 기름 관계로써 기름을 한 달에 10만원 어치나 가량 때아.

그러니 그렇게 경제가 없기 따문에 큰방 하나만 때면은 불과해야 돈 몇만 원만 가지면 때니까, 그런 데 가서—그래 뒷방 하나 불 때 달라고 해서 하나를 떡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없을 것이나, 지대방도 또 있으니깐 어떻게 그렇게 어떻게 한번 해 봐라”했더니 참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그러면 그래 보겄습니다” 여까장 했어.

내가 오늘 법상(法床)에서 법문 겸해서 그런 어린 사람이 발심(發心)해서 도 닦는 것이 참 찬탄헐만하고 그래서 내가 여까장 말한 것이니 대중은 그렇게 알고, 오늘 반산림이니까 반산림 법문 듣고 그렇게 그리 가도록, 내나 해야 한 산림, 한 산림, 한 중앙선원이니까 그렇게 대중이 다 알아주어.


그래 또 연속해서 ‘거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어서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이 참말로 가난해서 추야무(錐也無)로다. 송곳도 없도다’
그래 우리 도인은 참선법(參禪法)은, 참선 도리는 그 가난헌 법이여. 이렇게 가난혀.
돈과 쌀과 뭐 그런 것이 없어서 가난이 아니라 우리 참말로 가난헌 도리가 있어.

생사(生死)가, 죽고 사는 것이 없으니 발써 가난하제. 사는 것도 없다. 죽는 것도 없다. 생사가 우선 없으니 퍽 무척 가난하지 않는가.

흉중무물(胸中無物)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다. 고인도 ‘흉중무물이니라,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무슨 물건이 있어? 아무것도 없제.

그 의리(義理)로 거, 저 수수께끼처럼 그 ‘흉중무물이라, 가슴 가운데 물건이 없느니라. 아주 가난해서 생사가 없느니라’
그러면 흉중무물 가운데에 참말로 그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다’한디,
그런데 가서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이 없느니라, 물건이 없느니라. 또 생사가 없느니라’ 고런 것은 비유해서 말허자면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밖에는 안 되거든.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다. 그밖에는 안 되아.

반기이파(飯器已破)가 있어. 밥그릇은 이미 깨졌느니라. 고 어디가 들어맞는 말일까?
이것 이렇게 무척 가깝고, 내가 자꾸 바탕을 울려준디 이렇게도 모도 멍청헌가.
멍청허단 말 들어야제. 멍청이 소리 들어야제. 어째 할 수 없제.

어째 반기이파(飯器已破)일까? 응, 모두가 공안이라는 것도 경계요, 비유인디.

아! 뭐 공안이 뭣인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인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다. 바로 경계 아니여. 그놈 갖다 막 잡아 썼지, 뭐여.
그놈을 바로 봤다면은 다른 공안이 왜 맥혀. 천칠백(공안)이 왜 맥혀. 맥힐 거가 뭐여. 하나면 똑 같은디.

흉중무물이다. 가슴 가운데 물(物)이 없느니라. 그런 데가 인자 조사관(祖師關)이 딱딱 백혀야 되아.
생사가 없느니라. 생사가 없는 데 거가 조사관이 꽉꽉 들어가서 탁! 탁! 장엄을 해버려야 되아.
반기이파가 그놈이 있어야 되거든.

격외(格外)로 볼 게 따로 있제.
서식묘아반 반기이파는 격외로 봐도 안 되거든. 거 격외로 보면 되아? 큰일나지. 안 되아.
모도 그만 격외로만 보면 될꺼여? 평상화(平常話)로만 보면 될 꺼여? 되지 않아.


허태오 스님한테 가서 그 법문을 딱 내가 인자 물었어. 답이 없었고.
여까장 허다가 지금 모도 별상(別相)에 가서 여태까지 있었어.

내가 하룻밤 자고 떠나올 적에 또 물었다. 이것 천천히 해야 되는 법문이여.
한참 내가 견성했다고 미쳐 가지고 지금 인자—왜 미쳐 미치기야 행각(行脚), 활발헌 행각이지.
아침 하룻밤 자고, 나는 그래도 밥을 얻어먹었어. 공양주가 밥—다른 사람 다 밥을 먹으니까. 허태오 스님만 뒷방에서 그렇게 지내지.

아침에 떠나올 적에 물었어. 고봉 스님 사구게(四句偈).

해저이우함월주(海底泥牛啣月走)허고  암전석호포아면(岩前石虎抱兒眠)이라
바다밑에 진흙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는디 바위 앞에 돌 호랭이는 아이를 안고 조는구나.

철사찬입금강안(鐵蛇鑽入金剛眼)이여. 쇠뱀이는 금강눈을 뚫고 들어가는디,
곤륜기상노사견(崑崙騎象鷺鷥牽)이여. 곤륜산이 쾨코리(코끼리)를 타니 해오라비란 놈이 말 마부가 되어 가지고 이끈다.

사구내(四句內)에, 이 네 글귀 가운데 유일구(有一句)한디, 한 글구가 있는디, 능살(能殺)이요 능히 죽이고. 능활(能活)이여 능히 살리고. 능종(能縱)이요 능히 주고. 능탈(能奪)이요 능히 뺏고.
그러헌 글구가 있으니 고놈만 가려내면 네가 견성했다고, 일 마쳤다고 허락해 주마.

“그런 공안, 그런 글귀가 있으니 그 글귀 하나를 일러 줍소사” 공경히 묻제.

‘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하라’ 뭐 어쩌고 그려? 건방진 녀러(놈의) 녀석들. 제가 견성해 가지고 요렇게 일구래(一句來)라 하는가?

공경히, 참 그 이상 더 공경(恭敬)이 어디 있어. 공경히 묻제.
허니까, “해저이우함월주에, 혜월 스님이 해저이우...” 그이는 평생에, 허태오 스님은 혜월 스님을 제일 믿어. 그때 알았어, 또 믿은 것도.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드라”고. 이려. 대답이 아니라 혜월 스님한테 핑계를 대서 그렇게 말을 햐.
“아, 거 혜월 스님께서는, 혜월 큰스님께서는 해저이우함월주라고 그렇게 일렀다 하시드라도 아, 스님 바로 일러 주신 말 한마디 요구헙니다. 한마디 일러 줍소사” 그러니, 그 말 한마디뿐이고는 어름혀.

내가 그때에 가서 허태오 스님의 그 살림살이를 그대로 다 봐 버렸제. 틀림없어.
뭣 헐라고 바로 봤으면은 바로 한마디를 일러 주든지, 못허면 못허든지, ‘혜월 스님은 해저이우함월주라고 했다’고. 될 수가 있나.

그러고, 해저이우함월주가 될 리가 있는가? 생각해 봐.
살림살이 다—그만 그저 “예”허고는 나는 물러났지. 더 말헐 필요가 없어.

살림살이 보기가 그렇게도 쉽고, 벼락이여.
억지로는 도인 노릇 못허는 것이고, 억지로는 천하 없이 해도 그렇게 겉으로 참 없어. 도인인 체허고 암만 채리고 앉었어야 소용없는 거여.

도만 있다면 척! 세상에 초부아동(樵夫兒童)이 되드래도, 나무 베는 아이가 되고 별 천하에 걸객(乞客), 비는 걸인이 된다 하드래도 천하에 그건 거그 있지.
누구 어떻게 속이고 어떻게 헐 것이냐 이말이여. 허지마는 아무리 채려야 소영없어. 묘허제.

내가 거그서 떠나와서 그 다음부터는 그 허태오 스님이 나와서 용성 큰스님 밑에 와서 제자가 되아 가지고는 ‘제2세 교주다’ 나오드구만.
‘2세 교주(敎主)다’ 나와 가지고는 대구를 들어와서 대구에서 참선을 가르킨다고 있어.

허지만 나는 다 알아 버렸은게 소용없지. 나와 태오 스님과는 거리가 참 퍽 멀어져 버렸지.
방장(方丈)에서 떡 하룻밤 자고 허태오 스님과 그와 같이 문답을 헌 후에는.(63분9초)


거그는 외산(外山)이제, 쌍계사는. 그래 그 그때 참 내가 옳게도 지내왔구만.
거기서 쌍계사에서 안산(安山)으로 넘어왔다. 그 쌍계사에서 넘어오제? 그 재를 뭐 벽소령(碧宵嶺)을 넘어오나? 하도 오래되서, 아마 벽소령 재를 넘어와야제? 거 아는 사람 다 있제? 없는가 보다.

그 벽소령 재를 넘어서 영원사(靈源寺)를 들려 와 가지고는 영원사에서 상무주(上無住)를 올라갔다 그말이여.
상무주를 올라가니께 그때 하혜일(慧日) 스님이여. 하혜일 스님이 누군지 모르제? 하혜일이여. 하동산이다 그말이여. 동산 스님.
하동산 스님이 그 상무주 계셔. 그래서 하동산 스님은 그때 의학전문학교 댕기시다가 졸업은 못 허고 들어오셨나, 졸업은 했나? 그건 내 잘 몰라.

들어와 도를 닦고 계시는디 아주 청정하게 참, 도를 닦고 계셔. 그럴 때 당신이 뭐 견성했느니, 안 했느니 그런 말은 전혀 없을 때고. 또 뭐 견성했다, 안 했다 그러고 지내시도 안 허고, 탈속(脫俗)허니 깨끗허니 그래 가지고 거그서 지내셔.
그래 또 거그서 하룻밤 자고. 별 도담(道談) 해 본 일은 없고, 할 재료도 없고 서로 뭐 문답(問答)도 없었고.
그 성질이 또 그 어른은 원청 청정하고 까끄라와서 뭔 말 함부로 해 봤던들 뭐 별 용맹도 없고, 잠깐 거그 다녀서 김천 직지사, 내 첫 철 지낸 직지사를 척 왔지.

제산 큰스님이 떡 계셔. 거기에서 나를 처음에 가르킬 때에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봐라. 일념미생전을 보라고 허는 그 화두를 내가 안 허고 조주 무자(趙州無字)를 그때 헐 땐디, 무자 허다가 그만 병이 그렇게 나 가지고는 피를 흘리고 피덤뱅이가 되어 가지고 그만 있다가,
해제를 헌 뒤에 꼭 죽게 된 몸뚱이 그저 어쩔 수 없지, 뭐 죽게 된 몸뚱이가 석장(錫杖)을 날렸제. 내가 뭐 거그 오래 있을 수도 없고 석장하춘풍(錫杖下春風)으로 그만 그때 나섰제 뭐.

그랬는디 다시 휙 둘러 북회우동류(北廻又東流)를 해 가지고는 인자 척 거그를 들어가서 아주 그만 인자 내가 견성헌 체를 허고 굉장했다. 뭐 뭐 거 가서 그만 뭐 내 요요한 경계를 턱 야단이제.

그러나 그 어른은 뭐 조실방 벽안당에 딱 앉아서 도 닦으면 도 닦고 계시제. 조끔도 뭐 그런 거 견성했다 어쨌다 해야 그런 것은 뭐 알은 체도 안 허고, 네가 견성했냐 말았냐 그럴 것도 없고, 가서 자꾸 인자 그 큰스님께...
그 어른이 참, 만화 스님한테 계를 받았고 만화 스님이 거다 전계(傳戒), 제산 스님한테 전계를 해서 한국에 그 전계 율사(律師)로 유명헌 이로구만. 그 어른한테서 다 계가...

그런 그 어른이 계를 받아가지고는 학자를 제접하고 있는데, 견성은 아마도 그 어른이 견성했다고는 모도 안 해 주어.
그 참, 행(行)은 그렇게 고상하고 또 조실방에 앉어서 공부를 허되 늘 일념미생전을 보고 앉어 계시는가. 그냥 참, 정진은 눈 한번 깜짝거릴 사이도 없이 해아. 그렇게 장하게 해 나가지마는 제방(諸方)에서 그렇게 알아주지는 안 해아.

그런게 거그서 오래오래 있을 것도 없고 얼매 또 있다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어.
혼자 견성했다는 생각이 막 나가지고는 그저 그만 선지식(善知識)만 있으면 어디—목구녕에 피는 늘 토험서도 그러고 그랬어. 그래 그런 데 가서 구애(拘礙)도 없어.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그만 혜월 스님한테를 갔다 그말이여.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니까,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는데 소를 두 마리를 길러 키워. 큰 황소를 키움서 밤낮 소꼴 베다가서 소 주고, 소 요리저리 모두 옮겨 매고 그러고 계시어.
학자(學者)는 뭐 몇 안되고. 학자 그저 그 스님, 그 어른 믿고 있는 학자 불과해야 한 2-3인 될까 시봉 겸해서, 뭐 그 어른이 시봉도 안 시키고 그저...

그런데 소를 멕이는 것은 그 통도사 그 극락 평전(平田) 그 밑에 모도 산비탈 극락평전을 논을 쳐서 농사지어가지고 수좌 멕인다고 그 소를 사논 거여.
아! 그 산비탈을 언제 땅을 파서 어디 물을 잡아 넘겨서 그 헐 것이여. 편편하기는 허니까.

아! 그래 가지고는 그저 그만 앉으면 법문, 서면 법문, 가면 법문허기 때문에 그 어른을 모시고 따라 댕기면서 법문을 들어.
들은데, 오늘 들으나 내일 들으나 열흘을 들으나 똑같은 법문이여. 헌 놈 또 했지, 딴 놈이 없어.

평생 그 가운데 무슨 법문을 허냐 하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다” 이말이 처음 나와. 당신 자랑이란 건 말헐 수가 없어. “우리 큰스님이 나를 인가했다” 꼭 그려.

언제든 눈꼽재기 여가 여 둘이 달렸어. 허연 놈이 달려 가지고. 말만 허면 입에서 침이 튀튀튀튀튀 튀어 나와, 이렇게.
그래가지고 앉어서 여 앉어서 이렇게. 하도 들을 수가 없어, 오래 들으면 듣기 오죽헌게 살며시 밖으로 나가면—하도 오래 있어 나가야제. 나가면 혼자 그러고 앉었어, 혼자.
아주 한참 (법문)허다가 “어디 갔나? 응, 갔어? 갔구나” 이런 어른이라.

다시 뭔 세상에 무슨 인사(人事), 뭐 그런 것 없어.
“아, 저 스님, 군수가 큰스님 뵐라고 왔읍니다. 인사헐락 합니다”
“군수가 왔어? 응. 군수가 어디 있나? 내가 보제” 아따 가만히 계시라니 “그 내가 봐야지, 오라고 혀”

아, 이래가지고 “군수 응, 군수 군수여? 어디 군수여? 응” 그 어른은 평생에 반말이제, 온말 헐 줄 몰라.

“밥 채려! 밥해! 군수 밥해” 밥을 시켜 놓고는 “찬 놨나?” 찬 논디 가서 요것도 좀 집어서 잡숫고, 요것도 집어서 잡숫고 “짜냐, 싱겁냐?” 짜고 싱거운지도 몰라.
참 도인이제. 참 도인이여. 꾸며 대고 억지 없제.

아, 그러고 댕기니께 군수겉은 사람이 이렇게 보면은 어쩔 것이냐 그말이여. 그런게 가리와. 중이 있다가 가리와. 스님 못 보게 가린다.
또 거그 못 오게 허면 “왜 그래?” 아, 원 홰를 내고 야단인게 못혀. 참 세상에는.

그러고 조끔 있다보면 없어. 아! 조실 스님 어디 가셨는고 허면, 그 앞에 가서 저 솔방울 따네.
망태 하나 요만한 것, 망태 쬐끄만한 것 하나 턱 짊어지고 올라가서 솔방울 따네. 불 땔라고 솔방울 따.

천하에 도인이란 행은, 도행(道行)은 81행이 있닥 하지마는 그런 행이 없어. 그 천진행(天眞行) 영아행(嬰兒行), 그 영아행을 제일 쳤거든.

도인행이 광행(狂行)이나 미친 행, 광행. 광행이나.
또 그렇다 해서 도인행(道人行)이 광행(狂行)이고, 모도 그러헌 천진행이고, 그러헌 영아행 어린아 행이니까 도인행 헌다고 해 봐. 그녀러 건 참 못 본다.

그 위조로 나와서 해 봐. 견성도 못헌 것이, 도인도 아닌 것이 해 봐.
그런 똥을 콧구녁에다 붙여 가지고 대니지, 고놈의 더러운 냄새는 못 맡네. 보도 못허고.

천진행과 영아행이라는 것은 꾸며서 된 법이 없어. 억지로 된 법이 없어. 조태가 나타나기 따문에 안되야.
혜월 스님은 그게 안 나타나. 아무리 볼래야 소용없어. 꾸미도 않고 뭣도 소용없어. 뭐 그대론게 소용 없어.

그래 가지고는 법문을 해 주시되, 내가 그래 중방내까지 따라갔구만. 법문 들을라고. 그런 법문이라도 들을라고 거그 따라갔어.
경허 큰스님이 천하 도인이니까 ‘다시는 도인밖에 없다’고 그 믿음이 내 모가지까장 차올랐으니.

뭐 소용 있나? 소용없어.
뭐 눈에 눈꼽재기가 드글드글허거나 말거나, 뭐 허는 행은 당최 어따 비유헐 수 없는 아, 글쎄 어린아 행이라니까.
어린아가 그 뭐 서너살 먹은 놈이 애비상이 있고, 할아버지상이 있고 뭐, 뭐이고 소용 있어? 밥상에 올라가 똥을 싸고 그러지 뭐, 소용 있어?

그 영아행이라는 것은 미친놈도 그래도 말귀는 알아듣지마는, 영아(嬰兒)라는 건 말귀도 못 알아들어. 그 영아행을 제일 쳤어.
바로 옳은 도인 같으면은 옳은 영아행을 헌디 그건 위조가 없어, 위조 못햐.
참, 진짜지. 우리나라에서 혜월 스님같이 진짜 영아행이 없어.

그래 가지고는 턱 법문을 헐땐 처음, 처음 시작헐라면 그게여.
“우리 큰스님이 나를 여지없이 인가했지. ‘북으로 관세음보살이 향(向)헌 의지(意旨)가 여하(如何)냐?’ 우리 큰스님이 물어 내가 대답했지. 아, 우리 큰스님이 인가했제!” 평생 그려.

틀림없거든, 뭐 틀림없어. 그 뭣 헐라고 감춰. 감추면 뭣혀.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오면은 인자 법문부터 물어. 그 자주 묻는 것도 좋은 것이여.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이르라”
공적영지를 대답하면,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또 그놈 대답하면, “공적영지 등지(等持)를 일러라”

등지(等持), 같을 등자, 가질 지자, 고놈을 일러야사 인가를 혀. 그건 참, 참! 기가 맥힌 공안이제.

당신이 이렇게 맨들아 묻는 것인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를 일러라’ 고놈 묻고, 공적영지를 묻고, 영지에 공적영지를 묻고,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해야사 인가를 혀.
그것! 참, 내가 대답했지. 나도 역시 혜월 스님 타겠구만. 내가 대답했어.

공적영지 물어 딱! 대답헌게,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 착, 고 둘만 대답하면 그 밑 등지는 바로 있는 것 아닌가.
“등지를 일러라” 그놈 척 일러 논게, “아따야! 이 우리 한국에, 우리 한국에 참 이 큰 도인 났다. 이런 도인이 나!” 아! 이러고는 대찬(大讚)을 허는디,
“누가 공적영지 등지를 이를 사람이 있느냐?” 아, 이래 가지고는 대찬을 했네.


그래 놓고는 일러 놓고는 ‘자, 내가 큰스님을 좀 좋은 디다 모셔야겄구나’ 그런 마음이 난다.
‘그래 가지고는 학자가 스님 밑에서 모도 나야겄구나’ 이 마음이 나 가지고는 거그서 하직허고 직지사(直指寺)를 또 올라왔네. 또 올라와 가지고는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公布)를 허고.

직지사로 말하면 산중이 크고 한국에 제이창이여. 규모는 이창이고, 선방도 천불전(千佛殿)은 조그만 허지마는 도량은 크고 그 어른이 오셨으면은, 그 국내(局內)가 널직허고 그때에 토지도 많고 거다가 모셨으면 좋을 듯 해서 아! 내가 그때 그 운동을 했네.

그러면 제산 큰스님은 벽안당에 조실로 계시는디, 가만히 조실로만 앉어 계시제 학자 눈을 띄울 수가 없으니까. 하나도 일구(一句) 법문을 해 준 법도 없고.
아,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도 혜월 큰스님이 여그 와 계셔야만 도량이 참말로 불일증휘(佛日增輝)가 되고 법륜상전(法輪常轉)이 되겄어.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여그서 한번 크게 휘황찬란허게 될 듯 허고 이래서 “혜월 큰스님을 직지사 조실로 한번 모셨으면은 어떻겠습니까?”하고는 내가 인자, 그때쯤 벌써 인자 소문이 나 가지고는 ‘정영신(鄭永信)이...’ 해가지고 이름이 났어.
내 말 한마디—공부헐 때 원청간 다잽이를 기가 맥히게 했기 때문에 그 애를 써 가지고는 견성했다 해 노니까 소문이 다 나 버렸거든 인자.

아, 다 날 것 아닌가. 그만 벌써 혜봉 스님한테로 해서, 허태오 스님한테로 해서, 하혜일 스님한테로 해서, 그 다음에는 인자 공부 잘헌다는 스님네는 다 찾아댕긴다 인자. 방방곡곡이고 어디고 다 가지.

혜월 스님한테를 척 가서 공적영지, 영지 공적영지, 등지를 대답 딱! 했다고 소문이, 뭐뭐 소문이 앞을 서.
소문이 나 가지고 직지사에 와서 대중께 공포허고, 제산 스님한테 가 그런 말씀을 허니 ‘아! 선방에서 다 도 닦는 공부허는 스님네가 아, 그런 큰스님이 오셔서 그 조실로 계시면은 좀 좋겄나’

다 그런 마음 뿐이지. 그때 모도 인자 선방에 그 스님네 이름 다 잘 모르겄구마는.
아, 그래 공포를 헌게 좋다고, 아주 좋다고.

그래 내가 또 들어갔어. 가서 “큰스님, 김천 직지사에서 아주 큰스님을 청해서 거가 큰 선불장(選佛場)이 되도록 이렇게 모두 대중이 기다리고 있고 헌게 가셔야 겄습니다”
“그리야, 갈꺼나” 뭐 두 말도 헐 것도 없고 “가 볼꺼나” 아, 그래 나섰어요.

그래 모시고서는, 내가 그만 모시고서는 올라오다가 너무 밤에 갈 수가 없고 해서 김천에 내려서, 그때 그 김천에 경상북도 김천 역전(驛前)에 대화여관이라고 있어.
대화여관에 들어가서 하룻밤 모시고 자고서는 아침에 올라갈라고 자시는디, 요런 놈도 거다 집어넣어야 되겄구만.

여관 주인이 그 아침 진지를 해 드렸는데 “아! 당최 고기도 안 잡숫고 허니까, 청정허게 마늘겉은 거 넣지 말고 깨끗하게 그래 좀 해 주십시오”
아, 그랬더니 여관에서 어디 무슨 뭐, 저 따로 된장을 찌질 수가 있나. 된장을 그놈을 잘 지졌는디 모두 손님상에 놀라고 지졌는디 거다가는 파 마늘도 넣고, 소고기를 다져서 소고기 좋은 놈을 잘 다져서 그 무슨 그놈이 그 된장도 아니고 찌개처럼 맨들은 거여. 찌개로 맨든 것이여.

잘 지져서 요런 냄비, 쪼그만 냄비에다가 찌개를 딱 놨네. 아, 이놈을 떠억 잡순디, 한참 잡솨. 아주 잘 잡솨.
한참 잡숫더니 고기 덤벵이가 그놈이 좀 씹히든 것이여. 하나도 없이 잘 쫒다가 씹히든 것이여.
근게, “이거 뭐냐?” 맛있은 게 씹힌게, “이거 뭐냐, 괴기냐?”
“된장이요”

“된장 아니다. 괴기다. 맛있다, 맛있어” 괴기로 발견허고는 안 잡솨. 그래 놓고는.
아! 그 잡솨 버리지 잡솨지, 그녀러 것을 뭐 해필 또 그럴게 뭐 있냔 말씀이여, 그러지만 또 그래도 안 잡솨. 그거 잡술리야 없지마는 아, 그것들이 그렇게 나와서 잡솼다.

잡숫고는 그날 그만 모시고 올라와서 대중 공포를 허고, 큰스님께서 여그 와서 조실로 계셔서 광도중생(廣度衆生) 허시도록 이렇게 대중 결의를 했지.(41분34초~1시간23분52초)





(3/3)————————------

아, 통도사에서 또 안 된다고, 또 저 중방내 토지 뭐 그런 것 저런 것을 전부 인자 여그 조실 스님이 모두 농사짓고 어쩌고 해서 선객(禪客) 기룬다고 허면서, 거그서 초청이 다시 뭐...
아, 이래 가지고 여그 모실라 거그 모실라 야단스럽게 헌디. 그때에도 벌써 동부산(東釜山) 신도가 꽉 차 가지고는 그 큰스님, 저 무슨 계? 그 어른 모신다는 계(契)를 모두 조직했네.

계를 조직해 가지고 그때쯤 수도든가, 계(契)를 떡! 조직해 가지고는 그 계금(契金) 만 원을 갖다 가서 그 어른을 드렸네. 내나 그 어른 위허는 계니까, 그 어른 갖다 드리면은 알아서 범연히 잘 허리야고는 돈 만 원을 올려 놓고.
이렇게 부산서 왼통 신도들이 야단친디, 모시고 올라니 될 수 있나? 뭐, 뭐 어떻게 헐 수가 있어야지.

돈 만 원, 그래 그 계를 모아가지고 계금이니까 큰스님께 맽긴다고 갖다가 맽긴 모냥이지.
돈을 한푼이나 헛돈 써 뭣혀. 조실 스님 갖다 드리면은 당신이 무슨 뭐 어따 쓸 것이여. 학자 위해 쓸 것이지.

그래 그만 갖다 드렸든가. 이놈을 가지고는 논을 친닥 하면서 논 나락 한 다발이나 두 다발, 그걸 가을에 가면은 한 다발 두 다발도 안 나오는 놈의 논을 그놈을 쳐 가지고.
가을에 한 거다가 몇십 원을, 그때 몇십 원인가? 몇십 원을 들여서 고까짓 놈의 논, 고것 쳤자 뭐 그 일 원어치도 안되는 놈의 것을 몇십 원을 주고 모도 쳐 가지고는,
가을에 나락 한 다발 나면, “봐라, 이 나락이 어디서 나오냐? 이거 봐라” 든 밑천은 하나도 안 생각하고.
그런 양반이라 무슨 그 획량이 있어? 그런 그 무슨 계획량이 어디 있어? 요것만 보시제. 돈 많이 들어간 것은 못 봐.

그래 가지고서는 아, 이 만 원 돈을 막 집어써 버리네. 이놈도 달라면은 ‘그래’ 저놈이 달라면은 ‘그래’ 아! 이렇게 써 버린다 그 말씀이여. 아! 그러니 그 못 쓰게도 못하고 이것 참 큰일났제.
그래 가지고 되야 있는 형편, 만 원을 모두 모아 드린 그런 것이 모두 있제, 저런 것이 있제, 어디 가 있을 도리가 있어야제. 당신 못 있어. 본래 또 그저, 여까장 해 놓고.


본래 그 저 견성해 가지고는 ‘관세음보살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턱! 허니까—그 본래 견성헌 공안은 그건 아니여. 견성헌 후에 고놈 물어 대답했지.

이것이 나와야 되겄는디 나올란가 모르겄네. 역사 법문인게 내 이런 걸 다 집어넣어야겄다 그말이여.
‘단지불회면...’ 저 혈맥론에 가서, 혈맥론(血脈論)에 있나?
그 무슨 그 위에는 다 내가 다 외울 수 없고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니라.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다’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 언하대오(言下大悟)여, 그 뭐. 단지불회면 시즉견성이니라. 거그서 견성을 했어.

그만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그만, 그 또 그 어른이 글쎄 어린아같은 양반이 거 뭐 앞뒤 무슨 뭐 조리 여하약하(如何若何)가 뭐 있나. 나온대로 막 해버리는디.
아, 그러니깐 경허 큰스님이 묻기를 “관세음보살님이 북으로 향한 의지가 여하냐?” 대답 탁! 허니까 거기에 인가를 어떻게 한고 하니, 이거 다 중요하거든. 나 밖에 몰라. 아무도 모르는 거여.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이거 꼭 여그 시방 혜월 스님한테다 인가한 것이여. 그런 인가가 있어야 하는 거여, 꼭.
염득분명(拈得分明)이여, 잡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등등(燈燈)이 상속헐 것이니라. 네 깨달은 도리를 또 상속해라. 인가한 것이여.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정혜사에서 견성헌 후에는 그만 뭔 산하석벽(山河石壁)이 불응장애(不應障碍)요, 산하석벽이 어디가 장애가 있으며. 녹수(綠水)가 하구여청산(何拘與靑山)가, 녹수가 어찌 청산에 걸릴까보냐.
그만 그길로 나가서 아무 참, 무애(無礙)라. 무애여. ‘걸림이 없다’ 그말이여.

그 무애라는 것은 법체(法體)에 걸림이 없다 그말이지, 무애에 가서 술 먹고 고기 먹고 마음대로 헌 무애 그것인가, 어디? 잘못 알면 큰일나, 그런 것 다. 소용없어.
술 먹을디 술 안 먹는 것이 그것이 걸림이 없는 도리고. 잡행(雜行), 못된 행실 안 헐 것을 않는 것이 그것이 무애지.

막 무애 잡행(雜行), 막 음주식육(飮酒食肉)이 무방반야(無防般若)고, 막 떨어져 거꾸러지고 그것이 무애가 아니여. 잘못 알면 못써, 학자들이.
술 안 먹을 걸 꼭 안 먹어야 하고, 계행(戒行) 지킬 걸 꼭 지켜야 그것이 곧 자체가 무애지.

술 그까짓 것 막 먹고, 그저 괴기도 막 먹고, 그저 질도 막하고, 질도 여러 가지여. 도둑질도 있고 음행질도 있고, 무슨 뭐 질도 막하고 그것이 무애 아닌 것이여. 그것 고약한 짓이제.
왜 처음에 내가 그 동리(桐裏山)에서 왜 견성했다 해 가지고 마당 앞에다 갖다 뜰에다 오줌을 싸고는 그게 옳다고 그려? 고런 것이 그 못쓴 것이다 그말이여. 어디가 있을 것이여.

탁자에 부처님을 모셔 논 것을 ‘저걸 뭐 부처냐?’고 가서 쿡 밀어 버리고, 그게 무애여? 그게 거 도통(道通)헌 짓이여?
숭악한 그거는 무애가 아니라 못된 사마외도행(邪魔外道行)이다 그말이여. 이걸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그만 그대로 무애여. 아무 거침없다. 어디가서 뭘 허든지 거침없다. 도행이다.
길가에, 홍성 나가다 길가에 숭악한 집이 있는디, 그 숭악한 집 그것 다 떨어져 엎어진 그런 집이 인자 누가 내던져 버려서 살 사람도 없고 헌 것을 꼬쟁이로 겨우 괴우고, 작대기로 괴우고 거그를 쓸고서는 뭔 짚다발 갖다가 우게다(위에다) 이어 놓고서는 신을 삼아.

그 어른이 어릴 때, 뭐 어릴 때 교육이 저 속가 저 마을 촌가에서 교육을 받았어.
혜월 스님도 역시 어릴 때에 무슨 거 부모 밑에서 따뜻허게 교육 받고 커나지 않은 어른이거든. 그래 아주 무식해. 무식헌 어른인디, 또 육조 스님 뭐 무식허데끼 다 그렇지 뭐.

그 천박허게 마을에서 날처럼 커나든 안 했지만, 나같이 무슨 서모 밑에 커나든 안 했겠지마는 그 어른도 역시 글 하나 못 배우고 커났으니까 알아볼 지경이지 뭐. 그래 가지고 국문(國文)도 잘 모르시는 어른이니까.

당신이 평생에 아는 것이 신 삼는 것이여. 신 그걸 삼아서 알아.
‘신을 삼아서 벌어먹고 살아야겄다. 견성을 했으니까 보림(保任)을 해야 허겄다’
보림을 헌 지경인디 거그서 그런 찌그러진 집 하나를 어떻게 가다가 줏어 가지고는 거그 들어앉아서 신을 삼고 있는디, 그때 나이 그렇게 많지 않으시고 헌게 마누라를 하나 얻었다 그말이여. 마누라를 얻어야지, 혼자는 있을 수가 있나. 고독해서.

그러니 그 마누라도 무슨 뭐 부귀헌 그런 마누라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이도 역시 가난헌 그런 마누라를 하나 얻어 가지고서는 내외간에, 그 큰스님은 신을 삼는다.
그러면 그 여자는 신 수장을 혀. 요렇게 뀌어서 옛날에 짚세기같은 거 뀌어서 모도 그 수장을 해서 신도록 만드는 거여. 골 치고.

아, 이렇게 해서 하루 다섯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네 커리썩 삼을 때가 있고, 밤까장 삼으면 다섯 커리씩 삼고 요렇게 해서 그 이튿날은 홍성장에 가서 팔아 와.
팔면은 그 몇 냥 받으면은 쌀팔고 해가지고 먹고, 두 분이 혜월 큰스님은 신 삼고 그 부인은 신 삼으면은 수장 다 해가지고 갖다 팔아서 양식 사다가서 참, 생애가 족혀.

그래 먹고 살았는데 ‘혜월 스님 견성해서 경허 큰스님이 인가했다’는 말씀은 확 났고.
그때에는 한국의 수좌가 몇 못 되아. 얼매 없어. 전부 다 보탰자 수좌라고 공부헌 이가 몇 안되아.
그러지마는 견성한 이는 썩 귀헐 때거든.

경허 스님 마침 계셔 가지고 인자 경허 스님 밑에 제일 수제자 하나 났는데, 그 다음에 만공 스님이지마는.
그래 그만 그대로 떡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마을에 저 나가다 어디 길가에서 떨어진 집, 무너진 집 하나 얻어 가지고 신 삼아 팔고 사는데.

없어, 선객이. 인자 이렇게 많이 모두 선(禪)이 자꾸 발전되제. 앞으로 인자 참선 참 크게 발전되는구만.
저 범어사도 미국 사람이 시방 와서 여그서 배워 가지고 나가 즈그 나라에 선(禪) 편다고 있다구만.
아! 여그 이 녀석은 나가더니 그 어디 붙잽혔다는구만, 인자 들은게. 아주 붙잽혀서 아(兒)들 가르키기 겨를이 없다는구만. 영어 가리키고 막 반하제, 모두 배울라고.

아, ‘혜월 큰스님이 홍성 노변(路邊)에서 그렇게 신 장사허고 계신다’ 그말 듣고는, 그때 인자 차츰 그때도 선이 좀 발전되든 때인디,
아, 젊은 선객이 한 몇 있다가는 ‘아! 그럴 수가 있겠냐’고 ‘모시러 가야겄다’고. 그래 사방 찾아서 인자 큰스님을 모시고.

아! 와 보니까 홍성 노변에서 이리저리 참 찾다 보니 거기에서 신 장사를 허고 계시는디 참, 형편없네.
그렇게 바쁘니까 언제 무슨 뭐 그릇 치울 겨를도 없고, 밥 먹으면 밥그릇 숟구락 치우도 않고 고대로 놔두고, 또 된장도 떠먹다가 씻도 안 허고 고대로 놔두고, 고러고는 앉어서 두 내외가 신 삼으면 수장허느라고 정신없어. 그러 안혀. 반찬이고 뭐 아무것도 없고 깨진 솥.

아, 그래 가서 “큰스님 모시러 왔습니다”
“모시러 와야? 어디서 왔냐?”

“저 통도사에서 왔습니다”
“그려? 나 봐라. 신 삼고 나 우리 마누라허고 산디 내가 어찌 가야?”

“아따, 가셔야 합니다. 마나님이랑 가시지요. 가셔야 합니다”
“못 간다. 안 된다”

“아, 가셔야 된다”고, 아! 그만 대들어서, 서넛이 가서 대들어서 뒤에서 밀고 그만 앞에서 스님을 업고, 업고 밀고 아! 이러고는 가자고 헌게.
업힘서 말여 “아이고,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라고 이러냐”

“아따 가셔요, 마누라...”
“아이고, 우리 마누라 어쩌란 말이냐, 아아아!” 아, 이럼서 그만 업혀 가네.

그때 참 기가 맥혀. 돌아보고 울고 돌아보고, 기어니 업혀가 간게. 남에 업힌게 떠방치는 못허고 가시기는 가시면서도 돌아보면서 울어. ‘불쌍하다’고. 허허.
마누라도 문턱에서 문가에서 울고. 그래 거그서 아! 이렇게 작별을 시켰오.

자, 도인은 여차(如此)하거늘, 이와 같이 참, 노변에 신 삼고 그러고 계시는 그런 큰스님을 그렇게 모시러 가는데.
세상에, 시방은 도인이라고 허면 숭부텀 볼락 하네. 어디 도인, 도인이면 무슨 도인은 구름 속에서나 사는 줄 알고, 어디 저 무슨 탁자에 부처님보담 더 높은 줄 알고. 이런 꼴 좀 봐.

그렇게 믿겄오, 누가? 누가 믿어?

그것 저것을 불구허고 도 배울 욕심으로 학자들은 가서 업고 그만 나와 가지고는 그 어른을 모셔다가 놨오 그려.
모셔다 놓고는 절을 턱 허고는, 산중이 모도 큰스님 모셔 왔다고 절을 헌게, 응 절 딱 받고는 또 그냥 마누래 생각은 꿈도 없네. 거, 뭐 마누래 그까짓 녀러 것, 뭐 또 그때뿐이제. 아무 소용없어.

“아 큰스님, 거 거그 그 모도 집안 생각 안 납니까?”
“뭔 집이야? 아따 뵈기도 싫다, 인자. 그 뵈기도 싫다” 그러고는 인자 논 친다고 그러고 계셨다 그 말씀이여.
그러니 도인이 그런 영아행같은 그런 도인을 그래 인자 참 믿을 줄 알아야 하고, 모실 줄 알아야 하고. 위법망구(爲法忘軀)를 헐 줄 알아야 혀. 그래야제.

넨장칠 것! 정전강 조실 스님이요, 정전강이 큰스님 스님이라고 턱 해 가지고 여그서 6년 동안이나 앉어서 도(道) 가르키고 요러고 앉었는디, 밤낮 내가 요렇게 6년 동안 설법허되 꼭 참선법밖에는 설해 드리들 않고 아! 이러고 있는디.

밤낮 그 내 모두 숭만 봐내지, 뭐 누가 한 번이나 참말로 법을 배울 줄 알어?
내 참말로 가만히 앉어서 내 혼자 우는구만. 나 혼자 울어.

세상에 내게도 이러헌 법이 있건만, 혜월 큰스님도 나한테 인가를 했고, 이게 자랑이여. 별수없어.
없는 걸 내가 있다고—내게 답이 다 있어. 그놈 답 다 해놔야 되지만 학자한테 해로워. 그래 내가 안 혀.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영지에 공적영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등지를 일러라. 공적영지 등지를 일러라” 대답했지.

그놈을 내가 여그서 턱 해 놓으면 좋지. 하지마는 학자한테 해로워서 그래 내가 안 혀.

그래도 죽백천추(竹千秋)에, 인자 여 오늘 설법이 지금 기재(記載)를 헌다니까 여그 다 들어 가가지고 이 다음엔 결집(結集)을 해 놓으면은 거그 다 나올 터이니, 학자가 모도 그런 걸 봐 가지고서는 대단히 해로워. 그래서 내가 그건 않고 인가를 받았단 말만 해 놔.

고 가다가 그 제일귀 답 같은 것도 있어. 용성 스님한테. 그런 것은 답을 바로 해 놔. 바로 그놈이 해서 그놈 공포된 놈이니께 그리 해 논다 말이여.

이것도 혜월 큰스님한테 헌 것도 그때 당시에 다 알아. 다 알지마는 그거는 너머 갖다 그만 드러나 버려서, 그런게 인자 저놈 모도 헌 놈은 내가 다 해 놓지마는 요것은 헐 수가 없어.
내가 먼첨 헐 때는 그걸 갖다 해 놨어. 그놈을 가서 어디 해 논 것을 들어보고 찾아보고 그러지 말어. 알 필요가 없어.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이 중헌 게 아니여.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서 설파치 말어라. 이것이 참으로 진면목(眞面目)이요, 참말로 도가(道家)에 가서는 여차(如此)헌 법이다 그말이여.
그 해석을 기달치 말고, 그러헌 데 법문을 알라고 말어. 학자한테 해로워.

그렇게 혜월 큰스님 어른을 갖다 모셔 놓고는 그 당시에 동래 범어사와 그때 당시에 학자가 혜월 큰스님을 어떻게 모셨냐 그말이여.
인자 선지식 모시는 법을 여까장 말씀했지마는 여그서 이어서 또 인제 더 헐 것이여. 많이 헐 것이여.

오늘 법문 아침에 마쳤어. 반산림 법문을 여까장 마쳤어.
왼통 못 견디는구만. 모도 법문 듣느라고 되아서. 응, 세 시에서 네 시, 다섯 시 삼십 분인데.

올 삼동에 법문 무척 헌다 인자.
이 법문을 옳게 들어서 양을 채와야 하는 거여. 법량(法量)을 채와야 혀. 법밖에 없는 거여.

들을 때는 싫으면 되아? 귀찮으면 되아? 듣기 싫어서 왼통 야단이다. 궁딩이를 드리 받치고 무릎도 꿇고. 에이고, 나 참말로.(1시간23분54초~1시간43분58초) (일대기 3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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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모산촉공우~’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송원선자지관동(送願禪子之關東) - 원선자(願禪子)를 관동(關東)으로 보내며’ 참고.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구원겁(久遠劫) ; 아득하게 멀고 오랜 옛날.
*반산림(半山林) ; 안거 기간의 중간.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의 사투리.
*제끼다 ; 제치다(동사의 연결어미 ‘-어’ 뒤에 쓰여, 어떤 동작이 신나고 거침없음을 나타내는 말).
*버르정머리 ; ‘버르장머리(‘버릇’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날빛 ; 햇빛.
*반다시 ; ‘반드시(틀림없이 꼭)’의 사투리.
*천일(天日) ; ①하늘과 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하늘에 떠 있는 해. 또는 그 햇볕.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그녀러 ; ‘그따위(그러한 부류의.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의 사투리.
*암작 ; ‘아무짝(‘아무 데’를 비하하여 이르는 말)’의 사투리.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머냐 ; ‘먼저’의 사투리.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셀·가릴 력)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조인광중(稠人廣衆) ; 빽빽하게 모인 많은 사람.
*조인(稠人 빽빽할 조/사람 인) ; 많은 사람.
*낙구(落臼 떨어질 락/절구·곡식을 찧는 기구·찧다 구) ; ‘절구[臼]에 떨어진다[落]’는 말로 ‘백발백중(百發百中)‘, ’틀림없는 결과’의 뜻을 나타낸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화상 | 조계종출판사) ‘7. 示衆‘ p65 주석에서.
추문낙구(推門落臼) : 문을 여닫을 적에 문이 암돌짝[臼 : 절구처럼 구멍이 패인 곳]을 벗어나지 않고 자유롭게 열리고 닫히는 상태로서,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말과 같다.[臼是門開閉之處也 開門之時 亦發於臼 閉門之時 亦落於臼 猶言百發百中].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도세(度世 건널 도/인간 세상 세) ; 생사윤회하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또는 중생을 구제하여 해탈하게 하는 것.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게. 분명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세상없어도(世上---) ;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심바람 ; ‘심부름(남이 시키는 일을 하여 주는 일)’의 사투리.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당호(堂號 집 당/이름 호) ; 당호(幢號)라고도 한다. 출가한 스님으로서 사미나 소비구(小比丘 : 젊은 비구) 시절에는 휘(諱)인 법명(法名)을 사용하지만, 법랍(法臘 :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터의 햇수)과 도덕이 높아지면 남들이 감히 그의 이름을 부르기를 기피(忌避 : 諱)한다.
그러므로 종사(宗師)와 법을 거량(擧揚)하여 종사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를 법사로 하여 입실건당(入室建幢)의 전법식을 가질 적에 당호와 가사, 장삼, 전법게(傳法偈) 등을 받는다. 당호란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절 이름, 또는 지명, 그가 거처하던 집 이름 등을 취하여 호를 삼는 예가 많았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집다 ; ‘깁다(떨어지거나 해어진 곳에 다른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꿰매다)’의 사투리.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찬(讚, 贊) ; ①남의 훌륭한 행적이나 서화 따위를 기리어 칭찬하는 글. ②서화(書畵)에 쓰는 시문(詩文)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영찬(影讚) ; 어떤 사람의 초상화를 보고 찬양하여 지은 글.
*씨잘데 없이 ; ‘쓸데없이. 소용없이(아무런 쓸모나 득이 될 것이 없이)’의 사투리.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편영이행(鞭影而行) ; ‘여세양마(如世良馬) 견편영이행(見鞭影而行),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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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입다 ; 세차게 마구.
*가당하다(可當-- 옳을·정도·가히 가/마땅·필적하다 당) ; ①대체로 이치에 맞다. ②능력이나 수준 따위가 비슷하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당최 ; 도무지(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 영.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개복실(改服室) ; 옷을 갈아입는 방.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방연하다(尨然-- 삽살개·높고 크다 방/그럴·~이다 연) ; 두툼하고 크다.
*약무인행(若無忍行) 만행불성(萬行不成) ;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7~108.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註解) 行門이  雖無量이나  慈忍이  爲根源이니라  古德云,  忍心은  如幻夢이요 辱境은  若龜毛라 하시니라.
수행하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되느니라. 고덕이 이르되 「참는 마음이 꼭둑각시의 꿈이라면, 욕보는 현실은 거북의 털 같으리라」 하시니라.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산림(山林) ; 안거(安居).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빈부귀천, 부모형제, 희로애락, 시비이해, 삼독오욕, 춘하추동,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내용이나 각자의 능력 등이 분명한 한계지어진 범위 · 영역 등을 말한다. 부처님과 중생이 인지하는 능력의 범위가 구분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 ‘此佛境界 一切衆生 及諸菩薩 所不能知 이것은 부처님의 경계로 모든 중생과 보살들은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금계(禁戒 부처님께서 제정한 나쁜 행위를 금하고 경계하는 계율)를 깨뜨리는 인연이 되는 것과 그것의 어떤 환경을 뜻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환경을 순경계(順境界), 자신의 마음에 어긋나서 마음이 언짢은 것을 역경계(逆境界)라고 한다. 경(境)에는 본래 차별이 없으나 중생의 마음이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언짢거나 수순하는 구별이 있다.
*한마음 ; 일심(一心). 궁극적 근저(根底 사물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사물이 생기는 본바탕)로서의 마음. 만유(萬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체진여(實體眞如)를 말함. 모든 현상의 근원에 있는 마음. 우주 사상의 기본에 있는 절대적인 진실.
*용(茸) ; 녹용(鹿茸 : 새로 돋은 사슴의 연한 뿔). 녹용은 양기(陽氣)를 보하며 심장, 근골(筋骨)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보약으로 쓰인다.
*삼직(三職) ; 주지(住持)를 돕는 세 직책. 곧 총무, 교무, 재무를 말함.
*사미(沙彌) ; 산스크리트어 śrāmaṇera 팔리어 sāmaṇera의 음사. 근책(勤策)·구적(求寂)이라 번역. 출가하여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比丘)가 되기 전의 남자 수행자.
십계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뿐만 아니라, 때가 아닌 때에 식사하는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높고 큰 평상에 앉는 것, 금은 보물을 지니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가지이다.
*행자(行者) : ①수행자.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 ②계(戒)를 받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절에 있으면서 여러 소임 밑에서 일을 돕고 있는 사람.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내나 ; ①다름이 아니라. ②결국에 가서는.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들어맞다 ; 정확히 맞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 반기이파(飯器已破) ;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4) - 기미년 동안거결제 법문(79.10.17)에서.(4분18초)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것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67분13초~71분33초)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해오라비[鷺鷥 노사] ; ‘해오라기(왜가릿과의 새)’의 사투리.

*백로(白鷺) ; 왜가릿과의 새 가운데 몸빛이 흰색인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속도일구래(速道一句來) ; ‘속히 일러 보시오’
*녀러(-녀러) ; ‘~놈의’를 뜻하는 단어.
*어름하다 ; 어떤 상황을 대강 짐작으로 헤아리는 데가 있다.
*초부(樵夫 나무할 초/지아비·사내 부) ; 나무꾼(땔나무를 하는 사내).

*외산(外山) ; 바깥쪽에 멀리 있는 산.
*안산(安山) ; 주산(主山 : 도읍, 집터, 무덤 따위의 뒤쪽에 있는 산).
*도담(道談) ; 도(道)에 관한 이야기.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탈속(脫俗 벗을·벗어날·나올 탈/풍속·관습 속) ; ①부나 명예와 같은 세속적(世俗的)인 관심사로부터 벗어남. ②스님이나 수도자가 되어 속세(俗世, 일반 사회)를 떠남.
*석장(錫杖) ; 스님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 비구스님이 거처를 떠나서 돌아다닐 때 휴대하는 도구(道具)이다. 성장(聲杖), 지장(智杖), 덕장(德杖), 금석(金錫) 등이라고도 한역한다.
석장 윗부분에 큰 고리가 있고, 그 고리에 작은 고리를 여러 개 달아 움직이면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나게 하여, 원래는 독사나 해충을 쫓아내거나 걸식할 때 석장을 울려서 멀리서도 들리게 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지니고 다녔지만, 후세에 법기(法器, 수도修道를 돕는 기구) 중 하나로 바뀌었다.
*전계(傳戒) ; 보살계(菩薩戒 : 대승계大乘戒)를 전수(傳授 전하여 줌), 또는 전해 받는 것.
*율사(律師) ; 계(戒)와 율(律)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구애(拘礙 잡다·거리끼다 구/거리끼다·장애가 되다 애) ; 거리끼거나 얽매임.
*소꼴 ; 소에게 먹이는 풀.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평전(平田 평평할 평/ 밭 전) ; ①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 ②평야에 있는 좋은 밭.
*오죽하다 ;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대단하다.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조태 ; 자태(姿態). ①어떤 모습이나 모양. ②몸가짐과 맵시(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
*영아(嬰兒 어린아이·갓난아이 영/아이·아기·젖먹이·나이가 어린 사람 아) ; 젖먹이.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
*타기다 ; ‘닮다’의 사투리.
*대찬(大讚 큰 대/기릴·찬양할 찬) ; 크게 칭찬함. 또는 큰 칭찬.
*공포(公布 공개·공적인 것·널리 공/펼·드러낼 포) ; 일반 대중에게 공개적(公開的)으로 널리 알림[布].
*국내(局內 판·마을·방·구획 국/안 내) ; ①묘지나 절의 구역 안. ②관청이나 회사에서 부서(部署)의 하나인 국(局)의 안.
*일구(一句) ; 진리를 표시하는 한 구절. 상대적 언어를 넘어선 한마디의 말이나 글.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 일구도득(一句道得), 말후일구(末後一句), 투관일구(透關一句) 등을 말함.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 ‘부처님의 지혜 광명이 더욱 빛나고, 법의 수레바퀴가 항상 구르다(불법의 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불일(佛日) ;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佛]를 태양[日]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의 허망한 집착을 부수는 것을 태양의 광명으로 어둠을 없애는 것에 비유한 것.
*원청간 ; ‘워낙(두드러지게 몹시)’의 사투리.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역전(驛前 역·역참·정거장 역/앞 전) ; 역의 앞쪽. ‘역 앞’. 정거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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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계(契) ; 주로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거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든 옛날부터 전해 오는 상부상조의 민간 협동 조직.
*계금(契金) ; 곗돈(契-). ①계에 들어서 내는 돈. ②계를 부어 찾는 목돈. ③계에서 가지고 있는 돈.
*집어쓰다 ; 돈 따위를 닥치는 대로 쓰다.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무애(無礙, 無碍) ; 산스크리트어 apratihata 의 한역어(漢譯語). 무애(無閡), 무장애(無障礙), 무가애(無罣礙)라고도 한다.
①물질적으로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지 않는 것. 다른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 장애를 주지 않는 것.
②막힘이나 걸림이 없음. 거침없음. 거리낌없음.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 어떤 것에도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 자재함.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잡행(雜行 섞이다·천하다 잡/다닐·행할 행) ; ①잡스러운(순수하지 아니하고 천하고 교양이 없는) 행실. ②스님이 계율을 범하는 행위.
*음주식육(飮酒食肉) 무방반야(無防般若) ;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일이 반야에 방해되지 않는다’라는 삿된 소견.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사마외도(邪魔外道) ; 불법(佛法)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외도. ‘사마’란 삿된 마구니라는 뜻으로 불도(佛道)를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외도 중 삿된 견해로써 불도 수행자를 어지럽히는 자를 사마외도라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국문(國文 나라 국/글월 문) ; 나라 고유의 글자. 또는 그 글자로 쓴 글.
*삼다 ; 짚신이나 미투리 따위를 결어서(겯다 : 대, 갈대, 싸리 따위로 씨와 날이 서로 어긋매끼게 엮어 짜다) 만들다.
*짚신 ; 볏짚으로 삼아 만든 신.
*미투리 ; 삼[麻]이나 노(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 만든 줄)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골 치다 ; 골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다. * :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일정한 모양을 잡거나, 잘못된 물건의 모양을 바로잡는 데 쓰는 틀.
*커리 ; ‘켤레(신발, 버선, 방망이 따위의 두 짝을 한 벌로 하여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의 사투리.
*다섯 커리썩 ; ‘다섯 켤레씩’ *-썩 : ‘-씩’의 사투리.
*쌀팔다 ; 쌀을 돈주고 사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넨장칠 ; 네 난장(亂杖)을 칠 만하다는 뜻으로, 못마땅할 때 욕으로 하는 말.
*난장(亂杖) ; ①고려 · 조선 시대에, 신체의 부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마구 매로 치던 고문. ②몰매(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어 때리는 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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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8/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713)—몽09. 몽산시 각원상인(8) (기유69.07.11)

(1/5) 약 20분. (2/5) 약 21분. (3/5) 약 20분. (4/5) 약 20분. (5/5) 약 15분.

(1/5)----------------


계한상수(鷄寒上樹)허고  압한하수(鴨寒下水)니라

나무~아미타불~


계한상수(鷄寒上樹)요  압한하수(鴨寒下水)다. 닭은 차우면 냉기(나무)로 올라가는 법이고. 압한하수(鴨寒下水)다, 기러기란 놈은 차우면 물로 들어간다.

닭이란 놈은 추우면 냉기에 올라가고, 오리란 놈은 차우면 물로 들어가고. 배고프면 밥 먹는 법이고, 추우면 옷 입는 법이고. 밖에 무얼 찾냐 말이야.


망각화두즉(忘却話頭則) 화두를 잃어버린 즉(則)—아무리 별것이 다 나와서 천하없는 무슨 별것을 보고 앉았다. 뭣 별걸 볼 것이 무엇이여?

아무리 해 들어갈수록에 뭣이 나와서 거가서 어리댈 거냔 이 말이여. 뭣이 보이며?

아무리 정(定)이 무슨 그 정(定)이 나와도, 일체 망상이 다한 곳에 가서 정이 하나가 나와도 그건 안된다.


이망화두즉(而忘話頭則) 화두를 잃어버린 즉, 낙무기공(落無記空)이다. 그 정(定)이, 화두 없는 정(定)은 그놈이 곧 무기공(無記空)이여.

무기공(無記空)이라 하는 것은 무유묘오(無有妙悟)다. 오(悟)가 있음이 없어. 벌써 정(定)이라도 정 가지고는 견성헌 법이 없어. 정(定)에만 떨어지면.


그러니 「서장(書狀)」에 보면 대혜 선사가, 대혜 스님이 전부 말씀해 놓기를 묵조사선(默照邪禪)을 제일 말 많이 했거든.

묵조사선은 묵조(默照)는 묵묵히 비춘다. 묵묵히 비추니 그 비춘 곳에 나아가서 일체 망상이 있을 건가? 한 망상도 없지.

망상도 없는 그 오히려 정(定)이라고 하지마는, 정(定)도 거기에는 뭐라고 무슨 붙일 것이 무엇이 있나? 정(定)도 거 없지.


허공도 아니고, 비허공도 아니고, 하! 도무지 참,

구주노상낙매화(狗走路上落梅花)지. 개 달아나는 길 위에는 매화 떨어지지. 또 강남삼월낙매화(江南三月落梅花)한들, 삼월 달에 매화가 떨어진들 역부패궐(亦復敗闕)이지. 또한 패궐(敗闕) 아님이 아니여.


허니, 이망화두(而忘話頭)면 화두만 잃어버리면, 알 수 없는 놈이 없으면,

‘어째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그게 화두(話頭)인디, 화두 하나 척 거각(擧却)하면 아무것도 거가 뭣이 붙어? 무슨 정(定)이 붙어? 정이 벌써 붙으면 못쓰니까.


화두 하나가 딱! 온당하게 거각되아 들라면은 그대로가 고놈이 정(定)이고, 그놈이 화두고, 그놈이 대의(大疑)고, 그 타성일편(打成一片)이고, 그렇게 공부해 들어가는 법뿐이지. 고것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지.

고놈 여의고 다른 것이 뭣이 붙어 있으면은 못쓴 법이고. 쓸 것인가?

화두만 하나 없으면 낙무기공(落無記空)이다. 어제 아침에 여까장.


무기공에 떨어지면 오(悟)는 없다. 그 묘오(妙悟)가 없어. 그건 모두 인자 그 외도(外道) 참선법이요,

우리 참 이 정법문중에는 오직 활구참선법, 알래야 알 수 없는 화두 의심,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허는 의심뿐이여.

아, 그것 내가 늘 간택해 주는 것뿐이지 뭐 있어? 왜 안되고, 뭣이 안되고 될 게 뭐가 있어?


기정시(起定時)에—화두를 그 정시(定時), 정(定)을 일으킬 때 그말이여. 그 정력(定力)을 잘 보호(保護)해라. 정력이 그것이 화두니까. 알 수 없는, 알래야 알 수 없는 그놈 하나를 보호를 혀.

요게 인자 이게 의단독로(疑團獨露), 이게 정(定)이다 그말이여. 자꾸 정을 따로 보면 안되거든?


아, 내가 같이 도 닦든 그 도우(道友)가 하나 있었는데, 가만히 앉어서 그 집착을 되게 헌 것 같애서, “아! 이 사람아, 화두를 맹렬히 해 나가는 데는 그렇게 그 집착법이 없는 법인데, 그 좌(坐)에 너무 집착해서 그렇게까지 집착을 해야 어떻게 허는가?”

그런게 “정(定)이 있어야 되지. 정이 있어야 되지, 정력(定力) 없으면 생사를 면치 못허네”


그래서 그러고는 “어떤 것이 정(定)인가?”하니까, 일체 생각 일어나기 전에, 무슨 일체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햐.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이나, 일체 생각 일어나기 전이나, 그 마찬가지 아닌가. 그것에 가서 가만히 비추고 앉았다” 하거든.


그 무엇일 건가? 그 생각해 봐.

일체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니까, 한 생각도 일어나기 전이지. 아무것도 없는 데다 가만히 비추고 앉았다는구만.

그게 정(定)이 아니여. 그 모두 정(定)이 아니거든!


‘일념 일어나기 전을 본다’거나, ‘일념 후를 본다’거나, 그 ‘일념을 본다’거나, 또 어떤 분은 ‘일념을 본다, 한 생각 일어나는 놈을 본다’

그 한 생각 일어난 놈이 늘 일정하게 있으면 허는데, 가령 무상이 하나가 일어나면 무상 그놈이 항상 있으면 무상 그놈만 항상 보면, 그 무슨 한 생각을 본다고 할 수 있지마는,


그놈의 일념이, 중생 일념이 수(數)도 없고, 그저 그 명두래(明頭來) 밝은 놈이 오면 밝은 놈이 일어나고, 암두래(暗頭來) 어둔 놈은 어둔 놈이 일어나고, 색색 따라서 모든 그저 물건 빛깔 따라서 일어나는 놈의 것을 낱낱이 이놈 일어난 놈을 자꾸 보는가? 일념 일어나는 걸 보면.


‘그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본다’ 일념미생전을 보면, 항상 한 생각 일어나는 고놈만 들여다보면 옳는지 모르는데, 별놈의 생각이 다 일어나는데, 항상 그놈 일어나면 똥구녕을 찾아가 볼 것인가?

그것이 다 그게 선(禪)이 아니거든. 그 다 외도선(外道禪)이거든. 그 못쓸 선이여.


일어나기 전이니, 일어난 후니, 일어난 놈이니, 그런 것이 문제 아니여.


용케 말했지. 참, 고인(古人) 말씀이 그 이상 더헐 수가 없어.

항상 고인 말씀을 의지해서 닦아 나가야 하고, 그리 믿어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 화두 들어가는 그 법에는, 화두법에는 고인의 말씀 이상 더할 수 없어.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해라. 일어나는 생각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염기(念起)라는 것이 어디 쉴 때가 있나? 중생념이라는 것이, 번뇌 망념이라는 것이 쉴 사이가 있어야지. 한 번도 쉴 사이가 없는 것이여. 밤낮 일어나는 것이 중생념이다.


풍정(風停)하야도 파상용(波尙湧)이다. 바람은 잤지마는 물결은 늘 일어나고 있다. 큰 바다 물결이 아무리 바람이 없어도 물결은 늘 동(動)허는 것이여. 언제든지 동허고 있는 것이여.

중생 번뇌망상도 똑 바다 물결같다 그랬어. 허니, 안 일어날 때가 있어야지. 언제든지 일어나는 중생념이니까.


그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해라. 그렇게 쉴새없이 일어나는 그 망념을 두려워허지 말아라. 유공각지(唯恐覺遲)니라. 오직 각(覺) 더딘 걸 두려워해라.

각(覺)이라는 것은 때때로, 그 시간 시간이 때때로 알 수 없는 화두, 알 수 없는 놈만 항상 일으켜라.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版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내가 없는 화두를 가르켰으면사 내가 외도(外道)지. 내가 어찌 없는 화두를 가르켰을 것인가 말이여.

없는 화두를 가르켰다고 내가 이런 시비를 듣고 앉었어. 저 『염송(拈頌)』이 거짓 말씀인가? 그 가 보란 말이여.


단순허게 ‘여하시조사서래의인고? 판치생모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불가불 그놈을 새기자면 지나(支那) 말로는 음(音)으로 ‘판치생모(版齒生毛)’니까, 판때기 판(版)자, 이 치(齒)자, 판때기 이빨이라고 헐 수 있지?

생모(生毛)다. 날 생(生)자, 터럭 모(毛)자, ‘판치(版齒)에, 판때기 이에 털이 났다’ 그말이여. 간단하지 뭐.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는고?’ 그렇게 화두에 송(頌) · 염(拈)이 많이 있지마는, 이 조주 스님 판치생모는 똑! 송(頌) 하나 딱! 있다.

그 송(頌) 그놈을 부디 잘 봐. 부디 잘 보란 말이여. 그 어째 송(頌) 그렇게 하나 딱! 해 놨는고 좀 봐.



역요보호정력(亦要保護定力)이다. 여기다가 ‘또한 정력(定力) 보호허기를 요구해라’ 그랬거든?

그러니 화두가 다르고 정력(定力)이 따로 있는 것으로 안다 그말이여. 무서운 것이여, 선문이라는 게.


역요보호정력(亦要保護定力)이다. 그것은 자꾸 화두가 이놈이 전념(前念)이, 알 수 없는 의심이 없어지기 전에 또 장만혀. 없어지기 전에—자꾸 이놈은 멸했다 꺼졌다 멸했다 꺼졌다 하니까, 알 수 없는 의심 그놈이 없어지기 전에 또 염염(念念)을 상속(相續)해라. 생각 생각 상속해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판치생모? 어째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이 염(念)이 항상 거각해 줘야 혀. 항상 따라 일어나 줘야 혀.


그놈이 조금만 늘어지면, 생각이 그놈이 조금만 늘어져 있으면 고 사이에는 못된 것이 또 들어온다. 다른 염(念)이 뭣이 침범허거나, 산란(散亂)이 그놈이 들어오거나, 무기! 무기(無記) 중에 잠이 들어오거나, 요런 것이 침범허거든.

허니까, 곧 고놈이 거기에 들어올 겨를이 없이, 언제 뭔 틈을 비질 수가 없이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했는고?’ 요렇게 자꾸 염(念)을 상속(相續)해야 한다 말씀이여.


어저께도 그렇게 또 불가불 ‘하도 화두 안된다’고 그래싸서 또 내가 이렇게 말씀해 드렸지마는, 천 번 해 드리고 만 번 해 드리지, 어쩔 것인가 말이여.

이외에 딴 말이 있어야지. 없는 걸 내가 다 뭐 따로 붙일 수 있나? 고인의 말씀 그대로 내가 해 드리지.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해라. 염(念) 일어나는 걸 두려워허지 마라. 그까짓 상관 하나 없다. 별별 망상(妄想)이 다 들어오거나 말거나.


평생 이 몸뚱이 가지고도 소문자(所聞者)가 있고, 소견자(所見者)가 있으니, 평생 듣고 보는 것이 있으니 고놈만 일어나드래도 한정이 없어. 헌디, 그놈이 그 듣는 놈과 보는 놈만 있나?

그저 맛본 놈도 있고, 그저 냄새 맡은 놈도 있고, 그 촉식도 있고, 그 의식이 모도 있어서, 그놈의 육식(六識)이 교차구전 해 가지고는 맨 망상 덤뱅이 뿐인데, 그 안 일어날 수가 있어야지. 밤낮 일어나 있는 것을.


그까짓 것을 왜 두려워 혀? 무서울 게 뭐여? 망상 나거나 말거나.

‘망상 때문에 공부 안되야, 그놈 때문에 안되야’ 이게 무슨 짓이냐 그말이여. 밤낮 그런 소리 하고 앉아 있지.


망상 그놈이 아니면 뭐 공부라고 할 수 있는가. 본래 망상이 없으면은 뭐 그 공부라고 헐 것도 말 것도 없지. 그놈 번뇌 망상 때문에 헐 수 없이 해 나가는 것이여.


열염(烈焰)이 긍천(亘天)해 증무소간(曾無少間)이다. 큰 불무더기가 긍천(亘天)했다. 하늘까장 뻗질렀다. 어떻게 크던지.

그러헌 큰, 대(大)불무더기 속에 점착변소(點着便消)다. 그 뭘 집어넣은들 안 탈 것이냐 그말이여. 다 집어넣으면 다 타지. 안 타는 것이 뭐여?


세간소유지물(世間所有之物)을 실개투지(悉皆投至)해 봐라. 세간에 있는 바 모든 물건을 거그 다 집어넣어 봐라. 다 탄 뒤, 쟁용호말(爭容毫末)이냐? 거 다 호말(毫末) 같은 것이야 말할 것이 뭣이 있느냐.


허니, 화두 역시 그렇다. 화두라는 것은 큰 하늘에 뻗질른, 하늘까장 꽉 찬 그런 불무더기와 같다.

그런 불무더기, 무슨 세간소유지물이 거기에 무슨 뭐 다 타 용납 못하는 것인데, 그 가운데 내 화두도 역시 불무더기와 같애서 알 수 없는 한 의심뿐인데, 거가서 무슨 놈의 망상이 거가서 올 것이며, 붙을 것이며, 어디서 일어나리야.


그런 것은, 망상 나거나 말거나 그런 것은 내비둬 버려라. 제대로 임타(任他)해 버려라.

‘어째서 판때기 이빨에 털이 났다 했는고?’ 이놈뿐이다. 다시 뭐 똘똘 몰아 그뿐이다. 그놈 하나가 온당해서 그대로 턱 독로(獨露)헌 것이 그것이 정(定)이여.


알 수 없는 놈을 자꾸 전념(前念)이 없어지기 전에 또 다시 생각을 상속해서, 알 수 없는 놈을 상속해서 그놈 단속허는 것이 보호정력(保護定力)이여. 그 점을, 그놈을 갖춰야지.

대학자(大學者), 우리 참선학자를 대학자라고 햐. 대학자의 그 정(定)이 이것이지. 고것 내버리고 정(定)은 아무짝에도 못쓸 정이여.


보호정력해라. 자꾸 화두를 이와 같이 동중정중(動中靜中)에—분다(紛多)한 가운데나 어떠헌 동(動)헌 가운데에나, 정(靜) 가운데 고요헌 가운데, 일여(一如)허다.

일여(一如)라는 것이 그 한 일(一)자, 같을 여(如)자인디, 일여 속에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헌 걸 일여(一如)라고 햐.

의단 없이 일여는 못쓸 일여(一如)여. 의단 없이 일여라는 건 없어. 의단 없이 어디 일여(一如)가 오나?


일념도 일어나는 건 없어.

알 수 없는 놈이 그대로 들나야사 다른 놈이 범치 못혀. 어디 뭐가, 거 뭐가 붙어? 거가.


알 수 없다. 참 묘(妙)허다. 차개염두(此箇念頭)여.

이 이상 더 요긴헌 거 어디 있는가?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전편(全篇)도 다 이뿐이야.(처음~20분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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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침(昏沈) 도거(掉擧)가 실절(悉絶)이다. 혼침(昏沈)이라는 것은 무기(無記), 잠 오는 거 혼침이고, 혼혼(昏昏)허니 잠기는 거여. 혼침, 잠 오는 거여.

도거(掉擧)다. 도거라는 것은 이 생각 저 생각 그저 쓸데없는 번뇌 망념이 도거여.


그 혼침(昏沈)과 도거(掉擧)가 그대로 절(絶)이다. 의단이 독로허면, 알 수 없는 놈만 하나가 척 들나 있으면은 그대로 독로(獨露)헌 것이여.


공연히 화두헌 사람들이 ‘일 년 해 봐도 소용없고, 삼 년 해 봐도 소용없고, 몇 달 해 봐도 소용없고, 암만 해야 그 모냥이고. 원, 해 봐도 그 모냥이니, 이놈의 것...?’

그 무엇을 찾는고? 그 무엇을 바라는고? 그 무슨 상견(相見)을 찾고, 무슨 사견(邪見)을 발하는가 말이여?


그게 그 무엇이 나올 줄을 알거든?

배고프면 밥 먹고, 추우면 옷 입고, 닭이라는 놈은 차우면은 냉기 위에 올라가고, 오리라는 놈은 차우면 물에 들어가는 놈이 달른가?

환동범부(還同凡夫)라니! 도리어 범부(凡夫)지. 뭐가 그 이상스러움을 찾기 때문에 그게 그러헌 소리를 허거든.


화두 하나, 알 수 없는 놈 독로해 나오면 ‘알 수 없다’ 말이다.

알 수 없는 놈 따문에, 공안 그놈이 맥히기 따문에 내가 온 곳이 맥히고, 갈 곳도 맥히고, 성숙시위 전체가 통 맥혔다.


조사관(祖師關)이 맥혔기 따문에 내 온 곳 맥혀, 내 갈 곳도 맥혀.

아! 이놈 밤낮 가지고도 이놈을 알 수 없는 것이 모두 그 조사관 아닌가? 꽉 미(迷)헌 놈, 꽉 미(迷)해서 맥혀서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고놈 알 수 없는 놈, 알 수 없다.

대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했으니, 그놈이 내 코빼기 아닌가. 아! 고놈이 내 면목(面目) 아닌가.


아! 알 수 없으니, 지금 직접 미(迷)한 면목(面目)이여. 그놈 툭 깨달라 버릴 것 같으면은 응, 그 참 그게 무슨 일이 있겄는가?

알 수 없는 일이 하나뿐이어늘 화두 학자가 이것 하나뿐인데, 그 무엇이 나오기를 찾냐? 말이다. 나 참, 알 수가 없지.


그러면 저 인자 무슨 상견(相見)으로 찾기 따문에, 그러면 그 인자 무슨 하늘에나 기어 올라가고, 땅속에나 기어 들어가고, 뭐 무슨 신통변화나 놓고 모도 그런 것, 뭐 그런 것을 구헌건가?

모냥, 뭐 그건 사견 상견이라고 안 했는가?


방광(放光)이나 하고, 앉아서 떠억 해탈해 가지고 그만 가니까, 제가 제일이다는 말이여. ‘향불 피워놓고 향불 꺼지기 전에 연기 따라 스르르르 죽고, 참 생사해탈이다, 자유해탈이다’

고것을 법이라 햐? 뭐 그까짓 놈의, 그런 놈의 법을 내가 만날 허지 않아?


천동각선사(天童覺禪師)가 아니였었으면은 꼼짝없이 그런 사견(邪見)에 속지.

그것 사람 속이는 거 아닌가. 그런 것을 생사해탈이라고 하지 않어.


허니, 꼭! 화두 하나 잘 다루어 나가.


알 수 없는 놈 하나 잘해 나가다가 그놈 툭 깨면, 툭 깨는 곳에 가서는 뭐가 나올 것인가?

그 광명 덩어리가 나올 것인가? 일월 같은 무슨 그런 것이 나와? 그러면 무슨 또 광명, 그놈 밝은 놈 광명과 또 그 광명 허공과 그런 놈이 허공과 대지가 한목 나올 것인가?


허공 그대로 그놈을 왜 못 봐서? 일월(日月) 다 보고, 광명 다 보고, 천지허공 다 보는디, 그건 뭔가? 그밖에 또 뭐 나올 걸 바란가?


아무리 깨달라 놓고 보았자, 흥! 뭐가 있을 것인가?

없지마는, 없는 놈을 찾아서 거기 떨어지면 저 죽어.


그러니 그 부디 사견(邪見) 상견(相見) 그런 것 두지 말고.

어쨌든지 십 년을 해도 그 모냥이고, 이십 년 해도 그 지경(地境)이지, 뭐 다른 지경은 없으니까. 화두 하나 알 수 없는 지경, 독로지경 하나 얻어. 화두학자가 그거 목적이니까.


그저 고인도 모두 다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말씀 전체가 그뿐 아닌가.

화두,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큰 의심 아래에 필득대오(必得大悟)다. 반다시 큰 대오를 얻느니라.

오경(悟境)을 또 말해 놨는데 그 뭔 말을 해 놨는고? 깨달은 뒤에.


그러니 화두 하나를 잘 거각해서 의심 하나 지어 나가는 데는 실절(悉絶)이다. 다 거기는 붙도 못허고 오도 못혀. 무기(無記)니, 무슨 망상이니, 망념이니 오덜 못혀.


역막생환희심(亦莫生懽喜心)이니라. 일체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화두가 온전혀. 의심이 그대로 돈발(頓發)해서 낭연독존(朗然獨存) 허드래도, 의심이 그대로 독존 허드래도 환희심을 내지 말아라.

‘좋다! 이것 참, 이뿐이로구나!’ 좋아서, 인자는 그런 좋은 경계가 나온다고 좋아서... 그렇제.


그래 ‘요런 경계가 나는 안 나온다. 타성일편(打成一片) 경계가 안 오는구나’ 이래서 항상 이 모냥이라고 통탄헐는지 모르지마는, 이런 경계가 나와 봤던들 좋아서 또 환희심을 두지 말아라. 그건 또 뭐여? 그까짓.

그 경계는 좋아하는 것이, 이런 경계가 온다는 것이, 또 무슨 그 구(求)헌 것 아닌가? 공연히 거다가서 딴 망상 경계 아닌가, 그것이?


화두 하나만 잡드리해서 알 수 없는 그 경계만 점점점점 더 살찌울지언정 더 보호헐지언정, 뭐 거다가 ‘좋다!’ 왜 그래?

그저 그러헌 무슨 그 일체 망상 경계 그놈이 실절(悉絶)된 곳에서 그 의심이 독로했다고 좋아한 상(相)까장도 짓지 말고 거기서 더 화두를 거각해라.


알 수 없는 놈만, 참 좋다.

이렇게만 해 나갈 것 같으면은 홀연화지일성(忽然㘞地一聲)에, 홀연히 숨바꿈질 땅에—아이들이 숨바꿈질을 할 때, “너, 날 찾아라. 내가 숨을 터이니 너는 나를 찾아라”

“오냐. 그러면 나 눈 감을 터니까 가서 숨어라” 이놈이 눈을 딱 감고 있으면 어디 가서 숨네.


딱 숨어 있으면 요놈이 쫓아다니다가는 찾아 가지고, 옳게 찾아 가지고는 “허허! 이놈들, 내 찾았다!”한게, “하하!” 웃고 돌아선다 그말이야, 찾았다고. 그 숨바꿈질 땅에 한 소리.

그와 같이 꼭 견성이 있다, 거기에.


무슨 뭔 잡팅이가 보여서, 뭔 별것이 나와서 “하하!” 가가대소(呵呵大笑)허리요?

가가대소가 있지.


투과조주관이(透過趙州關已)다. 척! 깨달으면, 뭘 깨달랐느냐? 조주관(趙州關) 깨달았다.

‘어떤 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하는 조주관을 탁! 봐 버린다.


그 조주 판치생모만 깨달른 것 아니여. 조주 인자, 공안은 다 깨닫고.

조주 공안만 깨달을 것인가?


그 고봉 스님께서 하도 공부를 해도 안 된다. 3년을 사한(死限)허고—늘 헌 소리 아닌가!

‘3년 사한허고, 만약 3년만에 내가 대도를 깨닫지 못허면 죽으리라’ 딱 작정을 허고서는 3년을 해 보니 더 안 된다. 또 3년을 해 놓고 나니 처음에 시작할 때 보담도 아무 진취 없다. 아무것도 없어.


삼년이나 했으니 무슨 좀 진취가 있어야 할턴디, 이상스런 뭣도 있어야 할 것이고, 공부가 좀 무슨 증거가 뭣이 좀 있어야 할턴디, 점점 더 깜깜허고 점점 더 잠은 더 오고. 잠이 더 오네!


처음에 첫 철에 들어와서는 잠 별로 안 오는구만. 말똥말똥허니 앉아서 뭐 살림살이 요런 것 저런 것 해 나오던 그런 것 저런 것 여기 와서 앉아서도 환허니 보이네.

내가 장독 속에다가서 뭐 넣어 논 것까장 다 보이고, 정재(淨齋)에 무슨 뭐 주벅 엎어 논 것까장 다 보이고, 뭐 조리(笊籬) 뒤집어 놓은 것까지 다 보이지.


그러니 뭐, 잠 안 자, 첫 철에 들어오면. 그런 것 모도 그 망상 경계가 나와 가지고, 살림살이 모도 그런 것이 눈에 보여 가지고 잠이 안 와. 손자도 얼굴이 환허니 나오고.

아주 무슨 뭐, 그러니깐 첫 철에 들어와서 잠 안 자올고 앉아 있으니까 “아따! 그 공부 잘한다”고.


또 고런 것 생각하고 앉았으면은 앉았는 좌(坐)도 하나 뭐 괴롭지 않네. 잠도 안 오고. 고런 거 생각하고 앉았으니까.


그 백양사 서호 스님이 사십 년 독(獨)살림 헌 뒤에 주지(住持)가 떨어졌어.

사십 년 독살림 속에서 내소사 주지 허는디, 그 근 백 석(石) 받는 절이니까 해마다 곡식은 받아 가지고 그놈은 늘리우고, 불공(佛供) 들어오는 놈 가지고도 능히 살고, 또 불공 들어온 돈도 모으고.


또 도량에 감냉기가 한량이 없거든? 감나무가 같은 데서 나온 놈 그 기타 수입, 산(山) 수입, 모도 그놈 합산해서 일 년 유지허고도 훨씬 남으면 그놈 또 보태고, 지상 수입 그놈 허고 해서,

그 몇십 년 주지—젊을 때 그만 들어와 가지고는 나이 오십 되드락까장 주지만 했으니 수백 석, 삼백여 석지기를 논 샀단 말이여.


그러고는 주지가 떨어지니깐 그놈 안 먹을라고 백양사 선방에 들어왔거든? 우리 같이 지냈었구만.

들어와서는 가만히 참선을 허고 앉어. 그거 참선방에 들어와야 공식(空食)을 허니까, 자기 양식 먹지 않고 그 공식허니까.


참선 가만히 허고 앉었다가 밥 먹고 또 앉으면 참선허는데, 그 참선은 무슨 참선인고 하니 ‘논 참선’이여.

‘올해 삼백 석(石)지기 수(收) 받으면 삼백 석 그놈을 가지고 내서 아무 들 논, 그놈 몇 마지기 또 사야겠다’ 맨 요것만 딱 작정하고, ‘그놈 한 달에 이자가 얼마고?’ 요런 것 모도 허다 보면 언제 한 시간 간지 몰라.


앉었어도 고로운 줄도 모르고, 그놈 망상 참선이기 때문에, 논 살 참선이기 때문에, 앉어도 뭐 그렇게 고롭도 않고, 잠은 하나 오지도 않고 성성(惺惺)허네.


아! 그렇게 허다가 병이 나서 죽게 되았는데, 염라국(閻羅國)을 갔어.

가서, 아따! 그만 대왕(大王)이 묻는디 “너 이놈! 중이 되아가지고 평생에 상주재물(常住財物) 갖다가, 부처님 재산 갖다가 네 재산 만들어 놓고, 너 이놈! 네 죄가 여차(如此)하다. 저 지옥 봐라”고 지옥을 가리키는디 7년 지옥이여, 7년. 7년이라 나와.


왜 칠 년이냐? 지옥 칠 년이면 솔찬혀. 상당한 연조여. 말로 헐 수 없어.

지옥 일주야(一晝夜)가 인간 몇백 년이라고 안 했어? 거 그런 일이 있으니 그까장 다 말할 것도 없고.


첫 철은 도대체 잠도 오지 않어. 그게 아주 참선 잘해 잠 안 와?

망상 그놈, 모도 그  경계 때문에 안 오는 거여. 한 철 지내, 두 철 지내, 세 철만 지내 놓으면 잠이 오기 시작하는디 걷잡을 수 없어.


3년을, 고봉 스님의 3년 만에는 잠이 더 와. 아무리 안 잘라고 해도 더 와.

잠만 오지. 진취(進趣)는 아무것도 없지. 대체 뭔 좀 공부 진취가 좀 있을 줄 알고 3년 사한(死限) 허고 공부를 했지마는, 3년을 해놓고 보았자 아무것도 없고 잠만 더 오고.

잠 안 오면 또 망상은—벌써 무기(無記)가 들어올 땐 그렇게 잠이 자꾸 오고, 무기가 올 때에는 그 산란이 올 장본이여. 무기는 산란(散亂) 근본이여. 또 잠 깨면 산란심뿐이지.


오직 해야사 ‘부처님과 고조사들이 거짓말을 했구나. 중생을 속였구나. 무슨 놈의 견성성불법이 있어? 무슨 놈의 생사해탈법이 있어? 꼭 속였다. 없다! 그놈의 것’

‘없다’ 해버리고는 그만 그대로 참선이고 지랄이고 내던져 버리고 세상에 나가서 그저 세상 사람 사는 그대로 한 번 살아볼랴고 마음을 내 보면은 또 불안혀.


‘그럴 리가 있는가? 부처님으로부터 삼세제불(三世諸佛)도 있고 또 역대조사(歷代祖師)도 있는데,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쭉 내려오면서 만약 속였을 것 같으면, 견성성불법을 속였을 것 같으면은 이렇게 전통헐 수가 있느냐?

한 사람한테도 못 전해오고, 두 사람한테도 오들 못헐 것이거늘, 이렇게 삼세불조가 있고 역대조사가 있고,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하고는 또 해보면은,


또 그렇게 안되면은 ‘암만 해도 이거 없지. 견성성불법이 없지. 있으면 이렇게 안될 수가 있나?’

자기 근기는 하나 자기가 참 증명허지 못허고는 그렇게 까지도 생각을 허다가.


아! 그 홀연히 참, 그렇게 안되고 애쓰다가 홀연히 그만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를,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디 일(一)은 귀하처(歸何處)냐?’

아, 이런 화두 하나를 꿈에 얻어 가지고는 차차로 의정(疑情)이 돈발(頓發)해서 그때부텀 의심이 어떻게 나던지 참 이건 자기도 알 수가 없다.


‘세상에 이렇게 안되다가 이러헌 경계가 어디 있을 것이냐?’ 하지마는 자기도 몰라. ‘이러헌 경계가 어디 있을 거이냐?’ 해도 몰라, 그때는. 얼마나 취했던지.

알 수 없는 의심 한 경계에, 의단독로에 그대로 그만 취해버렸다.


하! 그 지경에 떡 당도허니—바로 그 가 봐, 그 편(篇)을.

부지동서(不知東西)여. 동서도 알들 못허고. 무슨 동서를 알아?

산도 봐도 산이 아니고, 물을 봐도 물이 아니고. 행야부지행(行也不知行)이요, 행해도 행을 모르고, 좌야부지좌(坐也不知坐)요, 앉아도 앉은 줄 아지 못혀.

먹어도 몰라. 끽다부지다(喫茶不知茶)요, 다(茶)를 먹어도 다(茶) 먹은 줄 아들 못허고, 끽반부지반(喫飯不知飯)이요, 밥도 마찬가지제. 밥 먹어도 밥을 알지 못허고.


하! 이놈의 것 뭐, 무슨 놈의 동서(東西)니 무슨 뭐 서동(西東)이니, 그것 뭐 분다(紛多)할 게 뭐 있어?

다시 그 의단독로 경계는—이거 깨달은 후에 헌 말이지, 그 지경에는 못허는 것이여.


그 지경이 떡 오니깐—아, 그만 일주일도 그렇게 된 때가, 그렇게 의심이 돈발헌 때가 일주일도 없었더니, 아! 그만 그놈이 한 일주일 떡 허다가 보니 수중재삼탑(隨衆在三塔)해 가지고, 대중 따라가서 삼탑(三塔)에 가서 경 읽다가 머리 한번 휘딱 들어 가지고 저것 보다가,

아! 그만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다’ 툭 깨!  하! 툭 깨쳐부러. 깨달라!


화지일성(㘞地一聲)에 투과조주관이(透過趙州關已)란, 여기에 내가 한 말이여.


척! 깨달라 가지고는 백장야호(百丈野狐)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과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와 마삼근(麻三斤)과 천칠백 공안을 척 한번 밀거(密擧)해 보니 턱 들어보니—들어보니 들 것도 없다. 들 것도 없어.

그 무불요요(無不了了)다. 공안부텀 무불요요여. 하나도 무슨 맥힌 것이 없다. 어디가 맥혀? 맥히다니!


반야묘용(般若妙用)이 신불무의(信不誣矣)다. 세상에 확철대오법이, 견성해탈법이 삼세제불과 조금도 거짓 말씀 없는 것을 여기서 믿었다.(20분27초~41분21초)



(3/5)----------------


흥! 그래 깨달라 가지고 그 지경을 얻어 가지고는—자기 혼자 깨달랐지. 그렇게까장 깨달랐지마는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그때에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 안되아. 그 소용없어.

그러헌 좋은, 참말로 깨달라서 얻었지마는 좋은 천하에 회생기사(回生起死)하는 보약을 만나 얻었지마는, 보약 그놈이 먹는 법도 알아야 하고, 그놈 사용하는 법을 알아야 하지.


한 첩을 먹는지, 반 첩을 먹는지, 다려서 식혀 먹는지, 그놈을 어느 때 먹는지를 다 의사를 만나서 진찰해야 알아 가지고야 그 보약을 먹는 법이지,

알지 못허고 보약이라고 덮어놓고 그놈을 한 번에 대려서 열 첩을 한 번 먹는다든지, 지어 두 첩이라도 그만 한 번 먹는다든지, 때도 모르고 먹는다든지, 이놈 허면은 죽어.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니라.


오후(悟後)에 약불견인(若不見人)이면, 깨달은 뒤에 참말로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니라. 제호(醍醐) 같은 좋은 약이 사약(死藥)이 되느니라.


용하지. 혼자 공부허다 견성해 가지고는 그만 견성해 나와서, 이 사람 보다 “내가 견성했다”허고, 저 사람 보고 “내가 견성했다”하고, “내가 알았다”허고, 이러고 돌아다니네.

그 자기가 속아 가지고 인자 남을 속이는 것이거든. 세상에 죄 중에는 그 죄보덤 더 큰 죄는 없으니까.


글안했어? 방반야자(謗般若者)는,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는 거, 그거 반야 비방한 거거든?

미득(未得)을 위득(謂得)이여. 얻지 못헌 걸 얻었다. 미증(未證)을 위증(謂證)이다. 증치 못헌 걸 증했다. 그것이 반야(般若)를 비방한 것이여.


깨닫지 못허고 ‘깨달랐다’하고, 증치 못허고 ‘증했다’고 해 가지고, “내가 인자 깨달라 증했으니 느그가 내 법문 들어라” 그것이 속인 거 아닌가? 그렇게 미득위득, 미증위증이 제일 큰 죄업(罪業)이여.

그 죄업 왜 그렇게 크냐? 아! 저도 깨닫지 못허고 그만 속아 가지고는 남까장—비유자오(非唯自誤)라. 저만 그르친 게 아니여. 겸역타오(兼亦他誤)라. 다른 사람을 그만 그르쳐 버리거든.


또 하나만 그르쳐 놓으면, 그것도 그렇게 해 가지고는 또 번식을 허네. 또 전해 가.

그래서 갱생지반을 해 가지고는 모도 차암타무한지남녀다. 한정 없는 남녀를 모두 속여서. 영입마괴(入魔魁)요, 영()이 마구니의 굴에 들게 허고. 영타화택(墮火宅)이라, 영이 화택에 빠지게 허고, 삼악도에 모두 들어가게 맨든다. 그 죄같이 큰 죄는 없다.

 

살부살모자(殺父殺母者)는 아비를 죽이고 에미를 죽인 죄업은 부처님한테 참회해서 그 죄를 없애려니와, 방반야자(謗般若者)는 이 불법을 이렇게 아지 못하고 알았다는 요런 행사를 해서 죄를 짓는 것은 참회할 길이 없느니라. 이것 참 어쨌어? 무섭지.


그와 같이 깨달라 가지고도, 고봉 스님이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도 그만 그때 가서는 인자 참 무애(無礙) 횡설이다. 걸림 없는 횡설을 막 한다.

인자는 뭐 내가 이렇게 깨달랐으니, 대체 깨달라 놓고 보니 고인의 그 모도 그만 공안, 천칠백 공안이 명백간이(明白簡易)허니 하나도 걸림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그때에 그 단교화상(斷橋和尙)? 무슨 그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들 어떻게 되았으리오? 안되지.


출가 취인이요. 모두 말하면, 저 혼자 깨달랐다고 말하는 놈한테 말하면 취언취담(醉言醉談)이여. 못쓴 것이여.

척 깨달라 가지고 옳게 공안 바로 봐 가지고 인가를 바로 척! 받은 도인이야, 그때 가서는 환동범부(還同凡夫)여. 범부와 똑같고.


세상에 그저 큰 놈은 ‘크다’고 했고, 적은 놈은 ‘적다’고 했지. 푸른 놈은 푸르고 누른 놈은 누르다고 했지.

푸른 놈을 누리다, 누른 놈을 푸르다, 큰 놈을 적다, 적은 놈을 크다, 고런 놈의 소리가 어디가 있는가?


발써 ‘없는 놈을 있다, 있는 놈을 없다, 없고 있는 놈도 없다’ 요러고 돌아댕긴 것이, 요러고 야단친 것이 발써 그것은 그거 아닌 것이여. 왜냐?

조사관(祖師關)이, 조사의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이 하나도 사(事)에 어긋난 법이 없어. 이사(理事)가 그대로 딱 딱 들어맞지.

그건 출처도 아니고, 없는 놈을 있다고 해 논 것도 아니고, 있는 놈을 없다는 것도 아니여. 그것이 그런 법이 없어, 조사관이라는 것은.


내가 늘 허는 말 아닌가? 나 뭐, 한 이삼십 년 동안 내가 그러고 밤낮 헌 소리가...

내가 무엇을 봐? 내가 어디 글 한 자를, 책을 한 자리 본 사람이여? 무슨 뭣을 보고 앉었어?

나, 그 헌 놈 또 허고 또 허고. 그 설법 아니면, 헌 놈 또 아니면 말이 있어야 하지.



그때에 그 (설암)화상을 만나 화상이 “네가 그렇게 깨달은 경계가 네 일체...” 뭔 여러 가지 그 안에 있는데, 거 좀 더 말해 볼까?

“밥 먹을 때도 네가 안신입명(安身立命)허냐?” 안신입명이여. 편안할 안(安)자, 몸 신(身)자, 설 입(立)자, 목숨 명(命)자, “몸이 편안하고 명(命)을 세우냐?”

“예! 밥 먹을 때도 안신입명헙니다”


“옷 입을 때도 안신입명?”

“예, 옷 입을 때도 안신입명헙니다”


“갈 때도 안신입명(安身立命)? 올 때도 안신입명?”

“밥 먹을 때나, 옷 입을 때나, 갈 때나, 올 때나, 다 일체처에 안신입명합니다”


안신입명이라는 것은 인자 무슨 뭐, 안신입명(安身立命)이니까 다 된 것 아닌가? ‘깨달은 경계를 매(昧)하지 않았습니다’ 그말이여.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헌 경계라도 하나도 매(昧)허지 않습니다. 밥 먹을 때, 옷 입을 때, 갈 때, 올 때, 일체처에 있습니다’


“너, 그러면은 정수착시(正睡着時)의, 잠이 꼭 들어서 잠잔 상(想)도 없고 꿈도 없을 때에는 네 일각주인공(一覺主人公)이, 너 툭 깨달은 네 생사 없는 해탈 주인공, 다 깨달라 버린 그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어 안신입명허느냐?”


이것 참! 기찰 공안(公案)이지. 꽉! 맥혀. 맥혀부러.

깨달라 가지고 각견(覺見)이 하나가 붙어 있어도 안되아. ‘깨달랐다’는 각견 속에만 주저앉아도 안되아.


“인자 그러면은 꿈도 없고 정수착시(正睡着時)의—잠이 꼭 들어서 잠도 없고 꿈도 없을 때에는, 네 주인공이 어디 있느냐?”

꽉! 꽉 맥혔어.


그러면 ‘그까짓 뭐, 본래 한 물건도 없고, 부처도 없고, 마음도 없고, 비심비불(非心非佛)이요 도역가명(道亦假名)이다. 마음도 아니요, 도도 아니요, 마음도 또한 거짓 것이요, 그만 거가 무엇이 있어?

역무허공(亦無虛空)이요, 역무일물(亦無一物)이요, 역무허공지해(亦無虛空之解)요,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인디, 뭐가 붙어 있을 거여?’


거, 이까짓 놈의 소리로 갖다 붙여봐? 거다가?

고런 놈의 소리로 갖다가 주뎅이 벌렸다가는 주뎅이 없는 곳에서 저 화장 당해 버렸어. 소용없어.


공안이라는 건 그런 거 아니여.


“정수착시(正睡着時), 잠이 푹 들어서 잠잔 상(想), 수착상(睡着想)이니 무슨 뭐 몽상(夢想)이니 그것 없을 때에는 고 경계에 들어가서 고거 고대로 한마디 일러봐라”

꽉 맥혀 부렀네. 다시 삼 년을 했단 말씀이야, 다시 삼 년.


다시 삼 년 해서—그때에 못 깨달은 건 아니여. 깨닫기는 깨달랐지마는, ‘반기이파(飯器已破)’ 가지고 삼 년 헌 거여.


“견성 했습니다”

“그럼, 견성헌 경계를 일러라!”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입니다. 쥐가 괴(고양이)밥 먹었습니다”

“아니다”

고건 깨닫지 않은 것은 아니여. 허지마는 그놈 방(棒) 맞아야 되고. “그럼 다시 일러라”


다시 척 이른다.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옳다”

반기이파(飯器已破)에 가서 깨달랐어. 그러면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에 못 깨달은 건 아니여.


그러면은 ‘정수착시(正睡着時)를 일러라’고 하니깐, 맥혔어. 삼 년 했어, 삼 년 혀.

“정수착시(正睡着時)의 무몽무상(無夢無想)시에는 취득이 어디 있느냐?” 그 콱 맥혔어.

그때에 그 스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안되아.



투과조주관이(透過趙州關已)다. 한번 깨달을 것 같으면은 조주관을 뚫어 지내가버린다.

일일하어제당(一一下語諦當)이다. 낱낱이 하어(下語)에, 언하(言下)에—하어(下語)란 건 언하대오(言下大悟)란 말이여.

하어(下語)에 제당(諦當)한다. 언하에 대오다. 제당(諦當)이라는 건, 자성(自性)이 당(當)한다 그말이여. 확! 확!


그래서 전전주봉(箭箭拄鋒)이다. 활살 활살이 칼에 대질었다. 전전주봉이지. 활살 활살이 칼날에 대야.

공안 공안이, 천칠백 공안이 낱낱이 안 나온 놈이 없어, 안 보인 놈이 없어. 하나도 맥힘이 없어. 공안에 맥히면 오(悟)가 아니니까.


감파조주(勘破趙州)해라. 그때 가서는 조주도 한번 감파(勘破)한다.

일체 법문 공안답이, 그 답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은 그 패궐처(敗闕處), 패궐처를 감파한 것이여. 조주 스님도 감파해야 하거든. 득인증처(得人憎處).


또 감파조주(勘破趙州)허고 득인증처(得人憎處)하리라. 인증처(人憎處)라는 건, 부처님 미워허는 곳 얻은 걸 감파해라.

‘조주도 한 방맹이, 부처님도 한 방맹이다. 갱유일방(更有一棒)은 어떻게 헐 테냐?’ 이래 가는 거여.


그러면 여기서 인자, 불(佛)도 일방(一棒)이다. 조사(祖師)도 한 방맹이다.


자지 말고 들어. 꾸뻑꾸뻑 말어. 안 잘 때는 좀 안 자야 할 거 아닌가. 법문 속에서 ‘자지 말라’고 내가 부탁을 몇 번 헌가?

하지만 양쪽에서 모도 코 고는 소리가 나 싼께 나도 한번 골아 버릴 것이다. 나도 법문 허다 잠 오면 자야지 그러면?


견성을 툭, 화두를 턱 조주관(趙州關) 하나 깨달아 놓고 보니, 조주 방(棒)밖에는 없네.

‘조주가,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툭 깨놓고 보니, 조주부텀 한 방맹이 올리는 거여.


또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다. 불조인증처 얻음을 감파한다. 부처님도 그 방(棒)을 올려야 되아. 부처님한테 올려.

아, 그 방(棒)이 무슨 턱 때리는... 이런 미친 놈들 방(棒) 쓰는 것이 사람 죽지.


어제 아침에 했거니와, “종미명고미타(鐘未鳴鼓未打)하니, 종도 울지 않고 북도 치지 아니했거니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 저두거(低頭去)야. 아! 제자가 묻는데, 머리를 이렇게 숙이고 간다.

그때, 덕산(德山)이 쳤으면 되아? 덕산은 가풍이 방(棒)이니께? 이걸 알아야 되아.


‘부처도 일방(一棒)이요, 조주도 방이요, 갱유일방이다. 거 일러라’ 어디서 부른 걸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방맹이를 짊어지고 물러나 알아야 한다 그말이여.


이래 놓고 보니 조주부터 우선 방맹이, 선사로 올려드리고. 부처님한테도 올려 드려, 다시 일방(一棒). 흥! 좀 있다가...


법법(法法) 원통(圓通)이다. 법법이 원통혀.

법법이 못 통(通)헌 거냐? 아! 조사관을 통해 버렸는데 무엇을 못 통혀? 어디 맥힌 것이 있어? 맥힌 것도 없... 어디 맥힘이 있나? 또 맥힐 것이 있나? 어디 또 능(能)이 있고 소(所)가 있나?

거기 무슨 생사(生死)가 있나? 생과 사가 어디 있나? 늘 그러니, 그 어디 거가 무슨 상견이 있나, 무슨 사견이 있나?


뭐여? 도무지. 아! 이놈의 일 마친 곳이 이렇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터억 그 무슨 생사니, 무슨 사견이니, 무슨 비법이니, 무엇이 거가 붙어 있나?

아무것도 붙어 있을 거 없지마는, 밥 먹고, 그래도 옷 입고, 그래도 가고. 접화(接化)도 하고. 그것도 없어?

다 인자 그때는 그렇게 원통(圓通)해 버렸기 때문에 그대로 다 있고, 여주여역무(與住與亦無)다. 또 있고, 또 없고 또 있다.


거가서 무엇이 안 갖춰져 있나. 거가서는 참 구족동시(具足同時)요, 조용동시(照用同時)요, 살활동시(殺活同時)요, 법법동시(法法同時)요, 무엇이 무슨...



차별기연(差別機緣)을 일일명료(一一明了)다. 차별기연, 밥 먹고 옷 입고 똥 싸고 일체 기연(機緣)도 명료(明了)여. 낱낱이 그놈이 다, 그대로가 다, 뭐 여의고, 없고, 떼고 그런가? 명료(明了)여.

낱낱이,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뭐가 도무지 조사의... 이렇게도 붙여 볼 수 있지.

그런 거 전체가 시방 아닌가? 방맹이 무서워서 방을 못 쓸 것인가?


차별기연(差別機緣)이 일일명료(一一明了)다. 아! 이래 가지고 정요구오후생애(正要求悟後生涯)다. 이렇게 적혀 있구만.

정요구오후생애(正要求悟後生涯)다. 정(正)히 오후생애(悟後生涯)를, 깨달은 뒤의 생애를 또 구해라. 이럴 때 가서 또 선지식(善知識)을 찾으라 했네.

오전(悟前) 선지식이지마는, 오후(悟後) 선지식을 바로 찾아라. 아, 이래야 할 것 아닌가?


요새 말세 중생이 스님도 없이, 누가 인가(印可)한 사람도 없이 지가 깨달라 가지고 보살... 내, 참 사실 보살님들 잘 들으시오.

보살님네가 “아이고! 저 스님 도통해 견성했어. 아이고! 저 우리 스님이여. 저 큰스님이여” 이렇게 맨들지 마시오. 그 죄가 제일 큽니다.


아, 공연히 그만, 그저 조금 별다른 소리 입에서 나오면은 “아이고! 우리 큰스님 도인이네” 이래 맨들아 놓은 도인이 있어!

고것 가지고 맨들어 놔 봤던들 사람 죽이는 것이여. 참, 사람을 다 죽이는 것이여.


이걸 내가 여 없는 말을 혀? 큰일나!

모두 보살들, 시방 말 많이 듣습니다. 보살이 선지식을 많이 만들어 놨다고 야단입니다. “우리 스님, 우리 스님, 하이고! 그 스님이다”


전강(田岡)한테 이렇게 올 때에도 이렇게 보살님네가 각지서 많이 왔지마는 전강 보면 바로 알아봐야 할 것 아닌가? 여지없이 알아봐야 혀.

내가 전강이 설법상 올라와 “전강이니까, 날 믿어라” 고따구 놈의 외도(外道), 내가 설(說)을 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 가지고 와서 잘 배우십시오” 이뿐이여.


참말로 잘못 아는 것이여. 아! 그래가지고 모두 보살들이 선지식 만들어 인가해 놓네. 이런 놈의 선지식이 고금을 막론허고 있다 그말이여.


어디 스승 없이, 그 스승한테 인가 없이, 고금불조(古今佛祖)가 인가 없이 나온 이가 누가 있어? 그 인가 가닥 없으면은 절대 소용없어.(41분24초~61분20초)



(4/5)----------------


월봉(月峰) 외도가 그와 같이 득세를 했지마는, 어디 그 월봉 누가 인가했소? 그 누가 인가해서 나와서 제가 제일이라고 했어? 천하에 제가 제일이네.


성중에 와욕댄디 성에는 성중하에 크지마는 천하의 월봉대다, 천하의 월봉(月峰)이다. 아! 이래가지고 이것 참 뭐 그때,

그때에 만약 지안(志安) 도사가 없었으면 큰일났지. ‘너 이놈, 그렇게 안다고 하니 너 이놈, 한번 네 법을 들어보자’고 척 법석(法席)에 앉았는데. 똥을 싸버렸네.


어떻게, 법식자구의(法識者懼矣)다. 말 한마디 않고 앉었건마는 저 말석에 앉었는.. 아 그 눈을 한번 척 보고는 놀래 버렸네. 기겁해 버렸어. 법식자구의(法識者懼矣)여.

그 앞에 가서 법문을 설할라니 벌써 되진 입이 응, 모도 죽은 놈의 주둥이가 어찌 벌어졌는고?


“무변허공각소현발(無邊虛空覺所顯發), 갓 없는 허공에서 각(覺)이 현발(顯發)한 바다”

“에끼 이놈!”하는데 뚝 떨어져 죽어버렸어. 안 죽어? 뚝 떨어져 죽어버렸지.


그때 그렇게 안 죽었던들—그러면 왜 환성지안(喚醒志安) 도사 같은 그러헌 큰스님이 아! 그 어찌 그런 걸 한마디 발써 가서 “에끼 이놈!”헐 때 죽을 줄 알았음서 왜 글쎄...

그건 없애 버려야 하거든? 없애 버려야 혀. 그거 살생이 아니여. 천하 중생을 다 속여 죽일 테니까 헐 수 없어. 그렇게 참 그 정화(淨化)요. 그것이 참말로 정화여.


지금 이때에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인자 여기서 아주 끝이냐? 또 다시 조금 어디 있냐? 이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어떻게 되았는가를 봐. 차라리 정화(淨化) 말고 내비둘 것을, 왜 정화하다가 이 지경 되아 버렸냐 그말이여. 어디 지금, 사무만 본다고 앉았는 게 뭐여? 도대체가?


절절이 그 모도 그저 삼보 재물(三寶財物) 모아서 그 절 그 절 겨우 살아 나가는 놈, 거다가서 무슨 뭐 ‘종비(宗費)를 내라’ 무슨 그 모도 그 뭐 있잖아? ‘분담금(分擔金)을 내라’ 모두 이래서 그놈 갖다가 척 모아 주었자, 사업허느니, 뭣허느니.


사업은 첫째 무엇이 사업이냐?

적어도 선방을 맨들아서 모두 그저 발심 모두 공부해서 대도를 통하게 만들아, 사방 여기도 큰 선방을 만들려니와,

우리 부처님의 정법은 속(俗)을 여의고, 세상을 여의고 들어와서 부모가 다 허락해서 그래 들어와서 산중에 도 닦아.


도 닦는 데는 시주(施主)가 모두 양식을 올려서 그놈이 모두 사찰 재산이 되었으니, 그 재산을 온당하게 거두어서 도를 닦게 모두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니여?

중앙에도 선방(禪房)을 잘 만들아 주고, 각처에 모두 선방을 다 만들아 주고, 그 다음에는 또 재산을 또 갖다가 정재(淨財)를 또 분할해서 모두 포교사업을 해야 하고, 포교를 해야 할 거 아닌가?


포교사업 해라. 부처님의 경서 가르키고, 그 교당 맨들어야 허고, 그 다음에는 강당 좀 만들어야 하고, 그 다음에 선방 만들아서 삼대 사업을 해 나가야 할 거, 그 이상 밖에 뭐가 있어?


아! 이놈의 무슨 일로 ‘그 사업은 소용없네. 선객들 그 뭐, 뭐 살림헐 줄 아나? 뭣 헐 줄 아나? 뭐 선객이 무슨 뭐 살림헐라고 들어왔나?’ 그 가운데 다 할 줄 알지, 몰라?

이래 가지고는 즈그들이 그만 돈만 가지고는 착취해 가지고는, 하! 이놈들 한 몇이 그만 갈라 먹고, ‘선방 뭣 혀? 수좌(首座)들 뭣 하는 거여? 그것이’ 아! 이것 참, 이 정화가 소용이 있소?


우리 큰스님네가 나와서 모두 그 배를 졸라 가면서 단식해 가면서, 아! 이거 우리 부처님의 정법은 그대로 정화해야겄다고 아, 애를 쓰다 몇 분 돌아가시니까, 인자는 지지리 아 인자, 참 어떻게 헐 것이여? 요렇게 되아 버렸네.

끝 말법(末法)에 설법도 여기서 영원히 아주 그만 매장되게 되아 버렸어. 


그래 내가 생각 다 못혀. 나는 오늘 죽을는지 저녁 때 죽을는지 내가 뭐 이건 알 수가 없어.

허지마는 나는 큰스님네가 다 그대로 다 보조(普照) 큰스님을 모시고, 다 종조(宗祖)를 모시고, 다 이렇게 원력 세우시고 정화해 놓고 돌아가셨는데.


나는 그 이력을 받들아서 나 혼자나마, 나 혼자나마 나는 보조 스님 종조를 모시고, 조계종 그대로 해 논 종조를 모시고, 나는 용화사에다가 여기서 내가 둘이면 둘, 아무도 없으면 나 혼자라도 이렇게 있다가,

나는 그 보조 스님 우리 종조(宗祖)로 모시고 이 일념 고치지 않고, 나는 그 속에서 이 몸뚱이 내던져 버리고 또 가 바꿔 오드래도, 이 몸뚱이 다시 바꿔 와서라도, 또 이 용화사를 내가 다시 찾고 용화사에 와서 내가 또 다시 보조 종조(宗祖)를 모시고 난 또 이렇게 지내갈 생각이여. 작정이여 인자.


그래서 내가 이 무슨 보조 스님 이외에 그 무슨 지나(支那)에서 전해 내려오면서 5종(五宗)이나 전해 왔지마는 그건 가닥이.. 일구.. 바로 전법게(傳法偈)도 없어. 나 전법게까지 찾아본 일 없어.

그저 임제가풍은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다. 이런 것만 있지. 바로 육조 스님이 전허고 뭐 그런 것도 없어.


바로 회양선사(懷讓禪師)한테는 바로 그만 문답 그대로가, “설사일물즉부중(說似一物卽不中)입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입니다마는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여시여시(如是如是)다. 적적(嫡嫡)다”해서 그 적종(嫡宗) 딱 이어온 보조 스님 그대로 나오셔서 사십 년 결사(結社)하시고 오십세 살 밖에 못 살기는 못 살았어. 오래는 못 살으셨어.


53세면 또 무던하지. 보조 스님 53세에 돌아가셨거든. 그 보조 스님 문집을 보란 말이여. 그대로 하니  나와서 똑 선(禪) 가지고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여.

헌디, 아! 중간에 그놈의 무슨 놈의 대처승(帶妻僧)들이 모두 전에 맨들아 논 놈의 그거 이리저리 모두 맨들아 가지고는 그 ‘환부역조(換父易祖)다’ 야단이지. 야단이여.


역사가들도, 황의돈이 허고 내가 같이 있었어, 망월사에서. 역사가 더 알지.

달마 스님은 언제 나오셨느냐? 대명 원년에 나왔거든. 대명 원년 이월 보름날 나오셨거든. 나 그런 것 역사가 어디서 알았나면 내가 황의돈한테 다 배운 것이여. 내가 어디서 알 것인가 말이여.

대명 원년이면 지금 일천이백 몇십 년 되지? 다 그런건 다 역사가들이기 때문에 사구에 아는 것이여.


절대 보조 종조(普照宗祖)가 옳다는 것이여. 헌디 태고보우선사(太古普愚禪師)...

아 우선 조계사도 그 조계사 아닌가? 그 조계사라는 거, 육조 스님 인자 이름이 조계사라는 거, 똑같다 이말이지.


나는, 죽으나 사나 나는 이 마음은 곧... 나 그런다고 해서 지금 무슨 뭐 탈종헐 것 또 뭐 있어?

난 이 자리에 여기서 응, 나는 여기서 그저 뭐라고 하던지 말던지 예식(禮式)도 여차(如此)하고—쌀 가져오면 가져온 것 다 올려. 쌀 뿐인가? 과자고, 신도가 뭘 가져오면은 그대로 이리 가져오라고 하면은 저리 가져가 건네 가서, 거기서 분식(分食)을 해버린다 그말이여. 여 얼른 가지고 오라고 해야지.


그런데 내가 무슨 하나라도 여기서 무슨 달리—적으면, 개수(個數)가 적어 무엇은 조금 두었다 나눠서 내가 이렇게 부여해 줄 그러헌 작정하고, 또 어디 무슨 대중공양 하라는 것도 여기서 내가 법상에서 이런 말 하는 것이 옳지 뭐, 별수 있어?


가져오면 그대로 갖다가, 그저 그대로 갖다 부처님께 올려. 이게 어디 식(式)이냐? 부처님 식이 다 그래.

나는 안 가봤지마는 그 돌아가신 큰스님네가 네팔까장 다 가서 보고, 거기 중까장 다 보고, 와서 일일이 말씀 다 해줘서 내가 다 알고. 자유중국 지나(支那)도 역시 그렇고. 세계가 다 그려. 그대로 갖다 올렸지.


손으로 무슨 쌀을 씻거서 이놈의 손이 안 간 데 없네. 어떤 건 손 안 간 거 아니리요마는, 채소 같은 거 과자 같은 거 다 손 갔지마는, 이놈을 갖다가 씻거서 야단쳐 가지고 갖다 올릴 필요, 그건 다 없어.

신라 때도 우선 없었고, 아조(我朝)에 내려와서 모두 이 용호 스님 당시 때 모두 퍼진 일이여. 그저 이놈을 씻가서, 이것 다 없어. 불국세계, 부처님 나신 세계에 하나도 없데야.


나 그래 그 말 딱 듣고 고쳐부렀지. 그대로 쌀 갖다 올리고.

어디서 쌀이 들어오든지 이리 다 들어와 여다 딱 놓고 올렸지. 그게 다 딱 맨들어 버렸어. 저 아래로 내려갈까 싶어서.


부처님한테 ‘이렇게 아무개가 가져왔습니다’

‘이거 누가 가져왔습니다’ 그 말은 뭐 보는게—갖다 놓으면 부처님이, 아! 천하에 부처님같이, 사사무애(事事無礙)를 증(證)해 버리셨는데 거다가 무슨 뭐 모르시고 무슨 알으시고, 무슨 뭐 어둡고 밝은 게 어디 있어?


갖다 올려 봐. 그러면 그것이 직접 기도고, 내가 절 한번 허고 절 이렇게 허면 그것이 축원(祝願)이고, 그것이 은밀 기도지.

넨장, 쌀 좀 갖다 놓으면 쌀 좀 갖다 놓았으니깐, 아무개 인자 고 대가로—쌀 좀 갖다 놓고 돈 좀 갖다 놓았으니, 그 대가로 명(命) 좀 주시오, 복(福) 좀 주시오, 병 낫게 해 주시오. 이런 야박스러운 놈의 축원이 어디 있어?


갖다 척 놓으면, 그대로가 그만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으로, 원컨대 내 절 한번 한 내 이 공덕으로써 내가 성불(成佛)헌 것보담도 개공(皆共), 다 성불허게 해 줍소사’ 이랬지. 우리 부처님 법이 그렇찮어?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이 공덕이 널리 일체에 미쳐서 다 성불을 허게 해 줍소사. 자타(自他)가 한목 다 성불허게 해 줍소사.

이러헌 대원융, 이러헌 대평등, 이러한 대무아(大無我)란 말이여. 우리 부처님도 이렇거늘.


예경(禮敬) 많이 하고. 나, 어쩔 수 없어 축원허란 그 얘기야.

인자 정법문중(正法門中)에 영불퇴전(永不退轉)허고, 영원히 이 법에 물러가서는 못 쓰겄어. 해탈대도에 물러가면 못써. 속성대각(速成大覺)해서 광도중생(廣度衆生) 이뿐이여. 속히 대각 이루어서 중생 제도해 줍소사.

아! 이것이 무루(無漏) 축원이요. 이것이 자타(自他)가 원성(圓成) 축원이고. 이렇잖어?


넨장, ‘돈 가져왔으니 아들 하나 더 넣으시오, 딸 하나 더 넣으시오’ 돈 가지고 아들딸 이름을 더 주고 더해 주고 싸우네, 이놈의 것. 이 지랄허고 앉았네. 이 외도(外道) 축원허고 앉았어.


내가 축원은 다 써 놓지마는, 어쩔 수 없어 내 인자 그걸, “축원을 낱낱이 해 드리까요? 그냥 법계 축원으로 동참 축원 허리까요?”

아! 한둘이 많어... “자 일제히 손들어 보시오?” 일제히 손을 들지. 인자 일제히 다 손들어. 하나도 안 든 사람은 없어. 그래 해 두니까 아무 일 없어.


인자 축원 써 놓고도 ‘아무개 보체(保體), 수명장수(壽命長壽) 복덕구족(福德具足)’ 없습니다, 인자. 없어.

“그대로 갖다 올리고 기도해 보십시오” 했더니, 갖다 올리고 작년 기도를 헌 이가 와서 자기네 한 소리여. “아이고! 우리 아들 대학 입학되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아들, 어쨌습니다” 이것이 참 많이 들어오네.


허지마는 “여보시오, 당신 아들 ‘수명장수 복덕구족 대학입학’ 요러헌 기도를 해 줘 가지고 입학이 되았으면은 ‘아이고! 우리 아들 축원 잘해서 입학되었습니다’ 그럴 것 아니요? 그렇게 야박하게 믿지 마시오.

어쩌다가 대학에 들어갈 그 공부를 했으니까 들어갔지, 여기 뭐 불공했다고 기도했다고 똑 들어갔겠소 마는, 어떻게 들어갔던지 어떻게 했던지 ‘부처님 덕택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만 관(觀)을 가지십시오” 내 이래 버리지.


“꼭 부처님을 믿어서 축원해서 기도드려서 입학됐소!” 나 이렇게 해 간 법이 없어.

“아들이 그저 운이 있고 공부 잘해 들었겄지” 그랬지마는 “‘부처님 덕택으로 되았다’ 이렇게는 믿으십시오” 내 이뿐이여.


용화사는 마지(摩旨)도 이렇게 쌀로 올리고, 과자고 국수고 뭣이고 그냥 그대로 갖다 딱 올렸다가 내려다가 대중공양(大衆供養)하고. 인자 이렇게 아주 꽉 작정해 버렸고.

참회((懺悔) · 예경은 꼭 해야 하고. 부처님 전에 해 나온 것을 왜 우리는 안 혀?


여기다 불태우면 딱 가면, 그거 죄가 참말로 무슨 죄상(罪相)이 있어 다 타지고 녹아지나? 그따구 놈의 소리 허지 말어.

딸그닥 헌 것이 불불조조(佛佛祖祖)가 다 해 나온 것이여. 연비(燃臂)법이라고는 있어.


그놈을 잘못 악용해 가지고는 연비(燃臂)에 가서 몸뚱이 태워, 소신연비(燒身燃臂)라고 헌께 소신—몸에다 따끔 대도 따끔하면 거기서 허라는 것이지, 몸뚱이 없이는 성불을 못허고 몸뚱이를 얻어야만 성불헌다는 말씀.

몸뚱이란 허망하지마는 그 몸같이 귀엽게 잘 그놈을 지혜 있게 거두어서 그 몸뚱이 가지고 대도를 닦아라 했지. 몸뚱이 다 태와 버리고 뭐가 닦아? 뭣이, 영혼이 닦아?


아, 이놈 상견 중생이 이놈 팔 다 태우고, 손가락 다 태우고, 이거 다 태우고 나와서는 이러고 돌아대니네. ‘참회했다’고.

이 무슨 놈의 짓이여, 이것이?


태워놓고는 모두 후회헌다 그말이여. 허니, 그런 짓이 어디 있어.

해역 같은 그 좋은 아이도, 여까장 태우고 나서 그 당장 병이 들어 가지고 영양실조에 죽었구먼. 참 아까운 놈이지.

다 태우고 나서 죽게 될 때에사 잘못했다는 걸 한탄하고. 그 스승 잘못 만나서 사견에 거꾸러져 가지고 그 지경이거든.


그러니 ‘더러운 똥이니까, 똥자루, 똥 푸데기, 이 몸뚱이는 더러우니까 내던져 버려라’ 불에 태와 죽여버리고, 땅속에 제가 들어가서는 묻혀져 버리고, 제 화장(火葬) 제가 해버리고.

무엇이 해야? 사견, 상견으로써 모두 이렇게 갖다가 그만 차오(差誤)를 해버린 거여. 깜깜해 논께 깜깜혀.


일체 죄장(罪障)을 한번 입으로 엮어서 참회해 가지고는—살생 · 도(盜)를 십악중죄(十惡重罪) 십참회(十懺悔) 개(皆)참회 해서, 딱 한번 마음으로 해 버리고. (팔뚝에 잠깐 향불이 닿는) 따끔한 그 가운데에서 결심허는 것이여.

왜 이렇게 결심이 없어 가지고는 늦어졌다. 다생다겁에 몇 다생 몇 다겁이 부처님과 나와 뭐 별 불별(不別)이 없거늘, 부처님도 몇천만 겁을 그 어디에 생겨난 때가 없이, 몇천만 겁을 이렇게 왔다갔다 생사광야(生死曠野)에 이렇게 돌아, 억겁다생(億劫多生)에 돌아.


우리는 또 동일 범부(凡夫)지, 부처님도 동일 범부지, 별수 있나?

나도 역시 부처님같이 날 때가 없이 똑 같거늘, 우리도 같이 이렇게 무시겁래(無始劫來)로 오면서 여태까장 찾지 못허고, 여태까장 깨닫지 못허고, 이렇게 미(迷)해 있으니,

미(迷)해 있는 가운데에서는 악업만 퍼지었으니, 살생 · 도둑질 십악중죄만 퍼지었으니, 이 죄를 이렇게 어따가 뭉치를—죄상(罪相)이 있다고 하면은 어따가 상대할 데가 없네, 하도 커서.


“허공이 아무리 크다고 하지마는 허공보담도 더 큰 놈의 죄상이 죄를 퍼지었으니 이런 무거운 죄, 이러헌 너른 놈의 큰 죄를 퍼지었으니 다시는 짓지 않겄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는, 기(旣)히 지은 죄, 부처님께 그저 참회합니다. 멸(滅)헐 수 있으면 멸하게 해 주시고 앞으로는 절대로 맹세허고 짓지 않고 어서 속히 확철대각해서 중생교화 허겠습니다” 하고 결심 아닌가!


그 결심헌다고 화두 잊어버릴 것인가? 화두 하나 척 가지고서 '따끔' 그 맹서 결심허고는 도 닦아 나가는 것이 그게 옳지. 그런 결심이 없으면 어떻게 헐 것인가?


‘에잇! 그놈의 데 가니까 손에 불 받고, 손에 팔이나 지지고, 그놈의 데 안되었더라’ 시방 그런 패가 있다는구만. 그까짓 놈의 비방 패 무서워서 못할 것인가?

추허다 그말이여! 해란 말이여, 더 좋아! 그런 것은 차라리 그런 비방한 줄 알아야 여기 간택하지. 속으로는 비방하고 껍딱으로는 어떻게.. 그게 더 못써, 그것은. 이중물이라.(61분20초~80분40초)



(5/5)---------------


영(靈)은, 불가불 영은, 내가 갈 곳 올 곳도 모르는 이 중생이 세상에 왔다가 그만 부처님 정법도 믿지 못허고 그럭저럭 죽은 중생,

신도가 아버지나 어머니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천도(薦度)허겄다’고 해서 그 영혼 여기 모셔오면, 여다 이름 하나 붙여 놓고. 일 년에 한번씩 좋은날 받아서 이렇게 천도를 허되 그 대중, 다 참선하신 대중이 그대로 모아 앉아서 금강경 딱 읽어서 천도허고.


부처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닌 다음에야 영혼이라는 것도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이여.

아무리 죄를 짓고 무간악도(無間惡途)에 떨어졌다 하더래도 부모나 자식이나 그 인연 있는, 그 참 그 영혼에 인연 있는 분들이 부처님 앞에다가 딱 영(靈)을 위해 놓고 천도를 해서—금강경, 그 부처님 경서(經書) 읽어서 천도헐 것 같으면은, 그 업이 다 자연 업(業)이 다 소멸되고 정취(正趣)에 가서 나고.


어디 꼭 그 혼백이 여그 온다고 해서 그런 건가? 수업감보(隨業感報) 윤회제취(輪廻諸趣)인디. 죄 지어 가지고 죄 받으러 다 가버렸는데 영(靈)이 밤낮 여기 와 있나?

지옥에 내려가서 지옥고를 받는 영(靈)이라도 이 자리에서 친척이나 다 그 인연 있는 가족이 그 영혼을 잘 위해 놓고, 그 부처님의 묘법(妙法)으로써 천도를 할 것 같으면은 그 업이 가벼워지고 차츰 나오고 차츰 정취가 나고. 이렇다고 했어.


그것도 안 해주고 저것도 안 해주고, 그런 것도 없고 저런 것도 없고, 부모가 아무리 천만 재산을 벌어 물려주었어도 그놈 받아 가지고 막 나 혼자 처먹음서, 어머니는 악도에가 떨어졌다, 아버지는 악도에가 쳐백혔다고 내비둬 버리면 아귀나 뭐 짐승 같은 것이지, 뭐냐 그말이여?


부처님 갖다 여그 위에 놓고 돈 만원 그 뭐 여다 올려서 위해 드리면은, 그때 가 보시란 말이여. 탱화라도 차려놓고 경 쭉 읽어서 해 드리는 것이 죽백천추(竹帛千秋)에 저 도솔천에 가 났다고 하드래도 이 세상에서 항상 여기서 축원해주면 어쩔 것이냔 말이여?


이렇게 해 주고는 그 들어오는 그 돈,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들어온 그 돈 만원 놓은 놈 고놈이 아! 그거이 차츰차츰 그 이자가 늘어가. 이 요새 현대 이자율이 있으니까. 내 꼭 고대로 작정해 나가거든.


여기에 내가 빈주먹 쥐고 척 들어와서 저 앞집 지어 이놈—여기가 이젠 4년째 나요. 앞집 지어, 저 집 지어, 저 밑에 또 한 채 요것까지, 요 뒤에 껀 내가 그때 갔다왔다함서 내가 이렇게 지으라고 해 지은 것이지마는, 이것도 내가 지은 것이여. 허지만 내가 들어와서 실지로 재작년부텀 지은 것이 그것이여.


저 밑에 시방 두 채, 저 모도 이 곳간, 그 다음에 이천백 평 절 땅 사놓은 거, 담 쌓아놓은 거, 전부다가 무슨 뭐 누가 ‘담 쌓으요, 시주 좀 해주시오. 내 땅 사요, 시주 좀 해주시오’ 나 돌아댕긴 일도 없고,

앉아서 ‘하이고, 이거 사야겄는디 돈이 없다, 어쩐다’고 허면 그 자리에서 조금 봐주고 조금 봐주고, 이래저래 해서 산 것이 다 샀지.


또 인제 종각(鐘閣) 짓지. 종(鐘) 해 놓았지.

나 종 시주허라고 책 하나 매 가지고 누구 주고, ‘가 종 시주해’ 없어.


아! 이래도 거기서 또한—내가 사실이여. 37명까장 지냈고, 올 여름에도 허나 못허나 처음에 있을 때는 근 삼십여명 이렇게 되고, 우리 또 대중 이렇게 모아 계시고.

이렇게 해서 60명, 70명 이렇게 지내도 내가 뭐 무슨 놈의 빚이, 누가 빚져? 내가 빚 갖다가 빚져? 외상은 모도 있지만 나도 외상까지는 그건 뭐 또...


이럭저럭 살아가면서도 이 대중을 거느리고 이렇게 아침마다 이렇게 참회기도 해가면서, 이렇게 상비기도 해나가면서, 상수기도 해나가면서 이렇게 살아간다 그 말씀이여. 


허! 총무단이라고 이렇게 되아 버렸네, 인자.

맨 두서너 놈이 앉아서, 몇 놈이 앉아서 그냥 사무 본다고 허다가 다 그만 그거 소비해 버리고는—그 근 억대 그 재(財)를 그대로 그만 부처님 재산 소비해 버리고 뭔 참선, 뭔 염불, 뭐 뭣은 하나 없네, 지금.

말만 꺼떡허면 ‘참선헌다’고 해놓고 ‘에이, 그것 소용없다’고 내쳐서 버린께, 와지직 해버려.


이게 말세(末世)입니다. 말세가 여차(如此)하니 여기에 모인 대중은 어쨌든지 굳은 결심 참다운 마음, 이럴수록에—이렇게 형편없고, 이렇게 말세가 되고, 이렇게 부처님 법이 마강법약(魔强法弱) 될수록에, 더욱 강하고 더욱 철저허고 더욱 믿고 이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적극적 주의라고 그려. 그거 다 임운주의(任運主義)라 해야. 적극적 임운주의로써 부처님을 봉행해 나가고 그럴수록에 나는 생사해탈 공부를 더 해야 하는 것이지, ‘에이! 다 이렇게되었으니, 에이 물러가고 나도 그만이다. 나도 어디 간다’ 그건 아니여.


나는 그게 아니여. 나는 보조종 모시고 나간다 이말이여. 또 잘못 들으면 안되아.

보조종(普照宗), 우리 큰스님네가 있다가 해 나온 보조종, 따로 내가 혼자라도 내가 모시고 나가는디, 여다가 여다 보조, 내가 여전히... 송광사 보조 스님이 가서 지나(支那)에 가서 조계종 가지고 나와서 송광사 적굴에가 앉아 계셔도 되었다 그말이여.


처음에 나와서 천장암 계셔 가지고—천자 아들 하나 데리고 나와서 천장암 가 아무것도 아닌 데 가서, 작대기 그놈 꽂아 가지고 나와서 꽂아 갖고, 거가 앉아서 조계종 만들아 가지고는 거기서 송광사가 승찰대본산(僧刹大本山)이요, 조계종 만들아 가지고 40년 결사하시고 거기서 모두 간화결의(看話決疑) 하시고,

그 불법을 모두 척사현정(斥邪顯正) 능히 밝혀서, 「수심결(修心訣)」에다가 착 갖다가 그 본분구만 딱 맨들아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다’ 딱 해놨거든. 반드시 견성해 보란 말이여.


응, ‘불설(佛說)이 아니니, 뭐 보조 스님도 견성 못했니’ 요렇게 갖다가서 되아?

모두 그런 스님네가 있다는구만 그려. 내 들어보면 어디서 그랬다고 그런 말이 더러 나오드구만.


누가 그런지는 나는 몰라. 내가 뭐 단독으로 내가 누가 그랬다고 내가 그런 말 내가 안다한들, 누가 그랬다는 말 할 필요도 내가 없어.

내가 뭐 사람을 비방한가? 나는 사람 비방한 법도 없고, 넘 내가 시비헌 법도 없고.


그 공안에 대해서만 말이여. 가 보란 말이여.

단지불회(但知不會)면 시즉견성(是卽見性)이라 하는디, 우리나라에 클썩 들썩 큰 혜월 큰스님께서도 그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했구만, 거기서. 수심결 거 보다 ‘단지불회면 시즉견성’ 탁! 깨달라.


“너 그럼 깨달랐으면 관세음보살이 북향의지를 일러라. 관음북향의지(觀音北向意旨)를 일러라. 관음 북으로 향한 의지를 일러라”헌게, 척 그때 이른 내 그런 말, 하도 장하게 이른 내 말 않는구만.

내가 알지. 안 혀. 파설(破說)과 거지반 같애서 안 혀. 말세 중생은 너무 그만 삐죽한 지혜가 많아서, 갈애가 많애서 안 헌다 그말이여. 둔다 그말이여.



오후생애(悟後生涯)라. 여까장 하다가 여까장 왔어.

또 오후생애를 구(求)해라. 약불연(若不然)이면, 만약 오후(悟後)에 그렇게 깨달라 가지고도 오후에 만약 옳은 스승을 만나지 못허면, 여하득성법기(如何得成法器)냐?


어떻게 탁마(琢磨)를 해가지고는 여지없이 인가(印可)해서 전해 주어야 되는 것이지. 저 혼자 나와서 이빨 벌리면서 “내가 견성했다” “내가 알았다”

“내가 견성했다, 내가 알았다”해도 인가 다 받아 가지고 나와서 혜월 스님같이 “누가 이거 이를 것이냐? 나 밖에는 못 이른다. 공적영지(空寂靈知), 영지공적영지(靈知空寂靈知), 등지(等持) 일러라”

그거 달라요. 그런 스님네 말과 달라요.


아! 그런 어른은 여지없이 등등상속(燈燈相續)이니라.

인가 받아 나왔으니 누가 안 믿으리오. 허지마는 참말로 인가를 받았다 하면 ‘뭔 법문에 인가를 받았느냐?’ 그걸 물어봐. 벼락같이 나오니까.


‘단지불회(但知不會) 시즉견성(是卽見性)이요?’ 물으니까, 북의지(北意旨)가 여하(如何)오? 허니께, 대답 떡! 허니까 염득분명(拈得分明) 등상이니 해 논 것이 다 있어. 그렇게 다 했고.


부처님 가섭존자 바로 해놓은 것 다 있고. 전부 내려오면서 그 인가(印可) 전통법이 다 있고, 인가 가닥이 다 있는 것인데, 무조건 “인가 받았다” 말이 되아? 아무 말도 안 해도 “인가했다” 말이 되아?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원 거짓말도 분수가 있지,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을까?


어디다 가나 그래 가지고 처음 와서 이렇게 보이면서 뭘 뾰족헌 걸 그려놨어.

그래 내가 있다가, 원상에다가 이리이리 뭘 그려놓고는 뭐 뾰족허니 뭐라 이래 놨대. 그래 놓고는 “내가 견성 요렇게 했다”고 그래.


아 이놈의 것, 참나! 그 뭐라고 답할 수가 없어, “몽마하주사사종이냐? 남의 말도 네 뱀이 달리는 법이 있느냐?” 내가 그러고는 보도 않고 말아버렸더니, “인가했다!” 아 이런 놈의 꼴이 있는가?

그래 내 그 다음에는 대중을 모아놓고 “내가 어떤 스님한테 인가를 했다 하니 무슨 법문을 물어서, 무슨 공안을 물어서, 내가 그 공안답에 뭐라고 했는가 그걸 물어오너라”


“아, 뭔 말을 물어서 무슨 말에 답을 했소?” 그러니께, 그 말은 못혀. 무슨 공안에 어떻게 답했냐는 걸 대답을 못혀.

“무엇을 물어 어떻게 당신 답헌 걸 말하시오”헌게 못혀. 그거 판명 난 것이여. 그게 다 판명 나고 마는 것이여. 그럴 거 아닌가.


그거 소용없는 것이여. 혼자 그래 싸 봤던들 누가 신용헐 것인가?

그 오히려 자기 법기(法機)만 소모된 것이여. 자기 양만 절단나고, 자기 인격만 부서져 버리는 것이여. 그 알아야 되아.


의관선성(宜觀先聖)의 표격(標格)이니라. 척! 선성(先聖)의 표격(標格)이 되고, 인가를 척! 받아 가지고는 아무 스님한테 인가 받고.

그 참 오도송(悟道頌) 척! 해서 인가 척! 받고 탁마해 가지고 나와야사, 선성표격(先聖標格)이 되아.


참말로 인자 여러 대중들이 다 믿어주고.

“암! 인가가 있는 어른인디, 그 어른은 똥을 싸고 다니거나 오줌을 싸고 다니거나, 영아(嬰兒)허고 희롱을 하고 다니거나 말거나 우리 모양 볼 것도 없고. 아주 그 어른은 그 인가가 있는 어른이다”고 쫙 믿어주어 저절로.


보면, 그이 갖다가 저 허고 개인감정으로 맞지 않다고, 그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거 저 죽는 것이여. 소용없어. 안된 것이거든. 흐흥! 될 것인가 거?


의관선성(宜觀先聖)의 표격(標格)이다. 절기두찬(切忌杜撰)이다. 간절히 두찬을 꺼린다.

쓸데없이 그 모두 두찬(杜撰)해 가지고는 미득(未得)을 위득(謂得), 미증(未證)을 위증(謂證)해 가지고는 고 거짓말을 해 가지고 공연히 사람 속이고 나 속지 말아라!


옳게 가서 바로 믿어라. 스승이면 바로 찾고, 스승이면 바로 믿어라.


여기 여러분들이 모두 오셨지마는 정전강(鄭田岡)은 어떠헌 사람이냐? 이것부텀 찾아보아라.

내가 찾을 만한 법이 없거들랑, 들어 봐. 이리저리 다 들어 봐도 또 아는 거여. 가닥이 다 있고, 다 그걸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여.


내가 법문할 때 마다 ‘내 오늘 법문이, 오늘 어떻게 법문이 잘 되았나? 잘됐어?’

그것 무엇인데? ‘네가 법을 어떻게 들었느냐?’ 이걸 묻는 것이여.

‘네가 신(信)가, 불신(不信)가?’ 그 어디 다 그랬지. ‘네가 신마불신마(信麽不信麽)?’ 이게여.


회마(會麽). 그쳐. 일로 끝마쳤습니다.


간절히 그 두찬(杜撰)말아라.

공연히—생사해탈법이요, 내가 깨달라서 내가 생사해탈하는 법이지—입으로만 까 가지고 구두선(口頭禪) 배와 가지고 두찬(杜撰)해 가지고, 뭣 할 것이냐?


차생실각(此生失却)이면  만겁추한(萬劫追恨)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차생(此生)에 실각(失却)이면, 금생(今生)에 실각(失却)해 버리면은 그만 그릇지네. 잊어버리면 만겁(萬劫)에 한(恨)밖에 없으리라.(80분43초~95분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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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鷄寒上樹  鴨寒下水’ ; ‘닭은 추우면 나무에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간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340 참고.

〇 제1221칙. 「계한(鷄寒)」

巴陵因僧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云鷄寒上樹  鴨寒下水

파릉(巴陵)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교리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닭은 추우면 나무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로 내려가느니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패궐(敗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 ; 실패. 결함. 실패하였다. 잘못되었다. 부끄러움을 샀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풍정(風停)하야도 파상용(波尙湧)이다’ ; ‘바람은 잤지마는 물결은 늘 일어나고 있다’

[참고]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80~182.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78~80참고.

凡夫  無始廣大劫來  至於今日  流轉五道  生來死去  堅執我相  妄想顚倒  無明種習  久與成性  雖到今生  頓悟自性  本來空寂  與佛無殊  而此舊習  卒難除斷  故逢逆順境  瞋喜是非  熾然起滅  客塵煩惱  與前無異  若不以般若  加功著力  焉能對治無明  得到大休大歇之地


범부는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섯 가지 세계(지옥·아귀·축생·인도·천상)에 유전(流轉)하여 나고 죽으면서 '나'라는 생각[我相]에 굳게 집착하여 망상으로 전도(顚倒)된 생각과 무명(無明)에 익힌 습기로 오랫동안 습성(習性)을 이루어왔다.

비록 금생에 이르러 단박 자기의 성품[自性]이 본래 공적하여 부처님과 다름이 없음을 깨치더라도 오랫동안 익혀온 옛 습성은 갑자기 없애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좋고 나쁜 경계를 만나서 즐거워하고 짜증내며, 옳고 그르다는 생각이 불처럼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여 번뇌가 그 전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만약 지혜로써 더욱 공들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찌 능히 무명을 다스려 크게 쉬고 쉬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如云  頓悟雖同佛  多生習氣深  風停波尙湧  理現念猶侵  又杲禪師云  往往利根之輩  不費多力  打發此事  便生容易之心  更不修治  日久月深  依前流浪  未免輪廻  則豈可以一期所悟  便撥置後修耶


이것은 ‘단박 깨달은 것이 비록 부처님과 같지만 여러 생의 습기가 깊으니, 바람은 그쳤으나 물결은 아직도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생각은 아직도 침노한다’고 한 말과 같다.

또 대혜 스님도 ‘가끔 영리한 무리들은 별 힘들이지 않고 이 이치를 깨치고는 쉽다는 생각을 내어 다시 닦지 아니하다가, 세월이 가면 깨치기 전처럼 유랑하며 윤회를 면치 못한다’고 하셨다. 그러니 어찌 한 때의 깨달은 바로써 뒤에 닦는 것을 버릴 수 있겠는가.


故  悟後長須照察  妄念忽起  都不隨之  損之又損  以至無爲  方始究竟  天下善知識  悟後牧牛行  是也


그러므로 깨달은 뒤에도 항상 모름지기 비추고 살펴서 홀연히 망념이 일어나거든 도무지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서 ‘할 것이 없는 데[無爲]’에 이르러야 비로소 구경(究竟)이니 천하 모든 선지식의 깨달은 뒤에 소 먹이는 행[牧牛行]이 바로 이것이다.


*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不怕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송(頌) ; 송고(頌古). 선가(禪家)에서 고칙(古則, 고측) 즉 공안(公案)의 요점을 게송으로 선양하는 것. 고칙에 대해 운문(韻文 : 언어 문자 배열에 일정한 규칙이 가미되어 운율이 형성된 글)의 게송으로 그 취지를 발휘하는 것.

*염(拈) ; 염고(拈古). 염제(拈提). 어떠한 고칙(古則 : 공안)에 대해 산문체로 기술한 짤막한 해설이나 비평.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여대화취(如大火聚)] 열염(烈焰)이 긍천(亘天)해 증무소간(曾無少間)이다 ;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다’

[참고] 『선요(禪要)』 (고봉 화상 |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시중(示衆) 其五’ p69~70. 72.

若論此事인댄  如大火聚  烈焰亘天하야  曾無少間이라  世間所有之物을  悉皆投至라도  猶如片雪  點着便消어니  爭容毫末이리오.

若能恁麽提持하면  剋日之功을  萬不失一이어니와  儻不然者인댄  縱經塵劫이라도  徒受勞矣리라


만일 이 일[此事]을 말하자면 마치 큰 불무더기의 맹렬한 불길이 하늘까지 뻗쳐서 조금도 간단(間斷)이 없는데, 세간의 온갖 물건을 무엇이나 집어 던져도 한 조각의 눈[雪]이 닿자마자 곧 녹아버리는 것과 같나니 어찌 털끝만치인들 딴 생각이 용납되겠는가.

만일 이렇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면 기한내에 성취하는 공을 만에 하나도 잃지 않겠지만 만일 그렇게 못한다면 비록 오랜 세월을 경과하여도 고생만 할 뿐이리라.

*임타하다(任他--) ; 남의 행동에 대하여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다.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 · 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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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 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 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祖師西來意)」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낭연독존(朗然獨存 밝을 랑/그럴 연/홀로 독/있을 존) ; 밝게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정재(淨齋 깨끗할 정/재계할·공경할·깨끗할·집·법회 때의 음식 재) ; 절에서 밥 짓는 부엌. 정재소(淨齋所).

*주벅 ; ‘밥주걱’의 사투리.

*조리(笊籬) ; 쌀에 섞여 있는 돌과 뉘를 걸러내기 위해서 쌀을 이는 데 쓰는 도구. 가는 대오리나 싸리 따위로 결어서 조그만 삼태기 모양으로 만드는데, 손잡이가 기다랗게 달렸다.

*독(獨)살림 ; 독산림(獨山林). ‘독살이’라고도 한다. 토굴 또는 작은 절에서 본사(本寺)에 기대지 않고 혼자 거주하면서 수행하는 살림. 또는 사찰 운영을 독단으로 혼자서 처리하는 것. 이에 상대하여 여러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중의(衆意)를 모아 사찰 운영을 하는 것을 원융산림(圓融山林)이라고 한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지기 ; (곡식의 양을 나타내는 명사구 뒤에 붙어) ‘그 정도 양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논밭의 넓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공식(空食) ; ①노력하지 않고 재물을 얻거나 음식을 거저 얻어먹음. ②(불교) 무료로 손님에게 음식을 먹이는 일.

*수(收 거둘 수) ; 도조(賭租 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논밭을 빌린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나 길미(다른 사람에게 논밭이나 돈을 빌려주고 이자로 받는 돈) 따위의 받을 곡식이나 이자.

*염라국(閻羅國) ;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다스리는 나라. 곧 저승을 뜻한다.

*상주재물(常住財物) ; 상주하여 대중들이 공용하는 절에 늘 있는 재물.

[참고]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권상 제3 관중생업연품(觀衆生業緣品)에서.

若有衆生  偸竊常住財物穀米  飮食衣服  乃至一物不與取者  當墮無間地獄  千萬億劫  求出無期

만약 어떤 중생이 상주재물이나 곡물 · 음식 · 의복 등을 비롯하여 주지 않은 물건을 하나라도 훔쳤다면 장차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 동안 구출될 기약이 없을 것이다.

[참고]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 권제4. 제6 양서장(兩序章) ‘부사(副寺)'에서.

凡常住財物雖毫末  竝是十方衆僧有分  如非寺門外護官員檀越賓客迎送慶吊合行人事  竝不可假名支破侵漁

상주재물은 비록 털끝만한 것일지라도 모두 시방 대중들의 몫이다. 만약 절을 외호하는 관원(官員)이나 단월빈객(檀越賓客)의 영송(迎送) · 경조(慶吊) 등 마땅히 행해야 할 인사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가명을 발급하여 침탈해서는 안 된다.

*솔찬하다 ; 솔찮다. ‘①꽤 많다. ②수월하지 않다’의 사투리.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분다(紛多 어지러울·많은 분/많을 다) ; 많이 어지러움. 엉클어짐이 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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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醍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 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제호(醍醐) : 옛날 인도에서 우유로써 만드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 맛이 제일 좋고, 열병(熱病)에 귀중한 약품도 되는 것이 제호다。이것은 히말라야 산에 있는 '비니'라는 풀만을 먹은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이 더욱 좋다고 한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사(理事) ; ①깨달음의 진리와 차별 현상. ②본체와 차별 현상.

*하어(下語) : 고칙공안(古則公案) 또는 송고(頌古)•수시(垂示)•상당(上堂)등의 법어에 대해서 자기의 견해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르는 말.

*체당(諦當) : 사물의 도리를 밝게 안다는 뜻.

*전전주봉(箭箭拄鋒) : 전봉상주(箭鋒相拄)라고도 하는데 화살과 화살이 서로 맞부딪치는 것과 같다는 말。 스승과 제자와의 의기(意氣)가 딱 맞아 조금도 틈이 없는 것。 또는 물음과 대답이 척척 들어맞는다는 말.

*감파(勘破 헤아릴·조사할 감/깨뜨릴·째다 파) ; 간파(看破) 또는 알아차림. 곧 상호 비교 · 시험 · 질문하는 수법으로, 일의 옳고 그름을 감정하는 것이다.

*패궐처(敗闕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곳 처) ; ①허물과 모자란 부분. 잘못된 부분. ②살아온 과정. 행장(行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기록한 글)의 뜻.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모두 그대로 법(法)이다’

[참고]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 卷上.

居士一日坐次  問靈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如何會  照曰  老老大大  作這箇語話  士曰  你乍麼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어느날 거사가 집에서 쉬고 있다가 영조에게 물었다. “고인의 말에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이냐?”

영조 : “나이도 많으신 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방거사 : “너는 어떠하냐?”

영조 :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입니다” 그러자 거사는 웃었다.

[참고] 전강선사(No.569)—이차돈 선사기(무신68.07.01)에서.(3분57초)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요  능각첨사추(菱角尖似錐)니라

구구팔십일(九九八十一)이요  팔팔육십사(八八六十四)니라


‘법문(法門), 법문’허니, 법문이 다른 것이 뭣이 있어? 무슨 무엇을 법문이라고 그려?

법문부텀 벌써 뭐 그저 그대로 평상화(平常話)가 법문인디.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다. 연잎파리, 연잎사귀는 둥그래서 거울같다. 물도 아무리 묻혀봐도 물도 안 묻고 그만 염착이 없어. 그만 흔들어 그대로 물러가 버려. 똑 거울같다 말여.

능각(菱角)은 첨사추(尖似錐)다. 능각이라는 것은 뾰쪽해서 송곳같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여. 암만 세봐도 구구(九九)가 틀림없어, 팔십일이지.

팔팔(八八)은 육십사(六十四)여. 팔팔은 별별 구구를 다 붙여봐도 소용없어. 육십사지.


우리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그만 그대로가 평상화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백초두에 조사의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여. 백초! 초두가, 꽃 머리가 다 그게 개시법(皆是法)이다. 거 무슨 법이 따로 붙어 있나? 모두 그게 그대로 법(法)이지.(처음~4분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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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

*정화(淨化) ; 한국불교 정화운동.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경술국치(庚戌國恥)이후, 1911년 일제는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사찰령을 제정·공포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불교계를 혁신하고 한국불교에 남아있는 식민주의 불교, 왜색불교를 청산하기 위해 1954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어난 한국불교 정화운동.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이다.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이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선원(禪院).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정재(淨財 깨끗할 정/재물 재) ; 신불(神佛)을 섬기거나 자선(慈善)을 위해 깨끗하게 쓰는 재물.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말법(末法 끝 말/부처님의 가르침 법) ; 말법시대(末法時代).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정법이 쇠퇴한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보조국사(普照國師) ; (1158~1210) 고려의 스님.

스님의 휘(諱)는 지눌(知訥)이니 경서(京西)의 동주(洞州 : 황해도 서흥) 출신이다. 자호(自號)는 목우자(牧牛子)이며, 속성은 정씨(鄭氏)이다.

의종(毅宗) 19년(1165) 8세에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파에 속하는 종휘(宗暉)에게 출가하였으나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오직 도덕이 높은 스님이면 곧 찾아가서 배웠다. 명종 12년(1182) 25살 때인 임인(壬寅)에 대선고시(大選考試)에 합격하였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전남 창평군 청원사(淸源寺)에 이르러 주석하던 중 하루는 육조 혜능의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다가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켜서 육근(六根)이 비록 견문각지(見聞覺知)하나 삼라만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진여(眞如)의 성(性)은 항상 자재(自在)하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스스로 얻은 바가 있었다.

명종 15년(1185 乙巳)에는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에서 대장경을 열람하다 이통현(李通玄) 장자(長者)가 지은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을 보다가 거듭 신심(信心)을 일으켜 화엄경의 오묘한 이치를 찾아내고 난해한 뜻을 드러내어 제가(諸家)의 설(說)과 비교하여 더욱 정통하였다.

1190년 팔공산 거조암(居祖庵)에서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지어 정혜쌍수(定慧雙修)할 것을 권하였다.


신종(神宗) 1년(1198 戊午) 몇 사람의 도반과 함께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은거하였다. 

스님께서 일찍이 말씀하되 “내가 보문사(普門寺)에서 지낸 이후 10여년이 경과하였다. 비록 뜻을 얻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허송한 적이 없으나 아직 정견(情見)이 사라지지 아니하여,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어 원수와 함께 있는 것과 같아서 항상 꺼림직 하였다.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주석하면서 정진하는 여가에 대혜보각선사(大慧普覺禪師 1089-1163)의 어록(語錄)을 보다가,

‘…… 선(禪)은 고요한 곳[靜處]에도 있지 않고 또한 분요한 곳[鬧處]에도 있지 아니하며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상생활에서 인연에 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와같으나 제일(第一)에 정처(靜處)와 요처(閙處)와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와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를 버리고서도 아니됩니다. 참(參)하여 홀연히 눈을 뜨면 바야흐로 모두 다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 자기 집안의 일)입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뜻이 딱 들어맞아 마음에 깨달으니, 자연히 가슴이 후련하며, 원수와 멀리한 것 같아서 곧 마음이 편안하였다”고 하였다.


1200년(신종 3, 庚申)에 조계산 길상사(吉祥寺), 곧 지금의 송광사(松廣寺)로 옮겨 11년간 대중을 지도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킴.

그리고 대중에게 송지(誦持)하기를 권함에는 항상 『금강경(金剛經)』으로써 법을 삼도록 하고, 교의(敎義)를 연설함에는 『육조단경』을 강설하며, 통현장자(通玄長者)의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으로써 주장을 펴고, 『대혜어록(大慧語錄)』으로써 함께 우익(羽翼)을 삼았다.

수행에는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과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과 경절문(徑截門)을 세워 수행자들을 지도함.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역설하고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상수(定慧雙修)를 권하고 간화선(看話禪)으로 증오(證悟)할 것을 주창하였다.

1210년(희종 6년) 3월 27일 53세의 나이로 입적(入寂). 희종은 그에게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그의 묘탑에도 감로(甘露)라는 이름을 내렸다.


3월 27일 아침, 스님께서 세수와 양치질을 한 다음, “이 눈은 조사(祖師)의 눈이 아니고, 이 코도 조사의 코가 아니며, 이 입은 어머니가 낳아주신 입이 아니고, 이 혀도 어머니가 낳아준 혀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법고(法鼓)를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하여 설법을 하고 문답을 하신 다음, 마지막으로 어떤 스님이 묻기를 “옛날 유마거사가 비야리성(毘耶離城)에서 시질(示疾)한 것과, 오늘 조계산에서 목우자(牧牛子)가 작병(作病)한 것이 같은가? 다른가?” 하니, 스님께서 이르되 “너희들은 같은지 다른지를 배워라” 하고, 주장자(柱杖子)를 잡고 몇 번 내리치고 말하되 “천가지 만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느니라” 하고, 주장자를 잡고 법상에 걸터앉아 고요히 입적하였다.


저서 :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수심결(修心訣)·진심직설(眞心直說)·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염불요문(念佛要門) 등.

*종조(宗祖  마루·근본 종/할아비·조상·개조開祖 조) ; 조사(祖師). 한 종파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펼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오종(五宗, 五家)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제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 및 남악회양(南嶽懷讓)의 계통으로부터 일어난 선문오종(禪門五宗, 禪門五家)을 말한다.


오가(五家) 가운데 제일 먼저 일어난 종은 위앙종(潙仰宗)으로 남악회양 아래 제2세 백장회해(百丈懷海)의 제자 위산(潙山靈祐)에서 일어났고,

임제종(臨濟宗)은 백장회해의 제자 황벽희운(黃檗希運)의 법을 받은 임제의현(臨濟義玄)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조동종(曹洞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3세 운암담성(雲巖曇晟)의 제자 동산양개(洞山良价)에서 일어났고,

운문종(雲門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5세 설봉의존(雪峰義存)의 제자 운문문언(雲門文偃)에서 일어났으며,

법안종(法眼宗)은 청원행사 아래 제7세 나한계심(羅漢桂琛)의 제자 법안문익(法眼文益)에서 일어났다.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로다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1.

[ 臨濟家風(임제가풍) ]  赤手單刀(적수단도)로  殺佛殺祖(살불살조)로다  辨古今於玄要(변고금어현요)하고  驗龍蛇於主賓(험용사어주빈)이라  操金剛寶劒(조금강보검)하야  掃除竹木精靈(소제죽목정령)하며  奮獅子全威(분사자전위)하야  震裂狐狸心膽(진열호리심담)이로다  要識臨濟宗麼(요식임제종마)아  靑天轟霹靂(청천굉벽력)이요  平地起波濤(평지기파도)로다.


임제가풍 : 맨손에 한 칼 들고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임이로다。예와 이제를 삼현 삼요로써 판단하고, 용과 뱀을 빈주구(賓主句)로 알아낸다。금강의 보검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위엄을 떨쳐 여우와 너구리의 넋을 찢네。임제종을 알려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파도가 이는도다.

*적적(嫡嫡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 ; 적자(嫡子)에서 적자로 대를 이어받음. 정통의 혈통을 이른다.

*적자(嫡子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아들·자식·남자·사람 자) : ①정실(正室, 본처本妻)이 낳은 아들. ②스승의 법을 바르게 이어받은 제자. 정통제자. 사법(嗣法)제자.

*적종(嫡宗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마루·근본 종) ; ①동족중(同族中)의 총본가(總本家). 종가(宗家). ②정계(正系). 정통(正統).

*결사(結社) ;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관심에 따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결합한 집단.

불교의 경우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진할 것을 위해 또는 불교 내부의 잘못을 혁신하려 할 때 결사(結社)를 함.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定慧結社)와 요세(了世)의 천태종 백련결사(白蓮結社)가 유명하다.

*대처승(帶妻僧 띠·데리고 있다 대/아내 처/중 승) ; 살림을 차리고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승려.

*환부역조(換父易祖 바꿀 환/아비 부/바꿀 역/조상 조) ; ‘아비[父]를 바꾸고[換] 조상[祖上]을 바꾼다[易]’ 조상의 계보(系譜)를 바꾸는 것.

*분식(分食) ; ①나누어 먹음. ②나누어 가짐.

*사사무애(事事無礙) ; 현상계의 일체의 사상(事象)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함. 일체의 사물이 서로 상즉무애(相卽無碍)인 것을 말함.

단일한 하나의 현상이 다른 모든 모든 현상과 어김없이 하나가 되는 관계처럼, 모든 차별적 존재가 서로 걸림없이 다른 모든 존재를 포섭하고 포섭되며 자재하게 뒤섞여 있는 법계의 실상을 나타낸다.

*증(證) ; ①증득(證得, 산스크리트어: adhigama 또는adhisajbodha). 증오(證悟).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 수행한 결과로 얻는 과보를 증과(證果)라고 하며, 최종의 증과는 성불(成佛: 부처가 됨)이다.

②증(證)은, 《대승의장》 제 10권에 따르면, 지득계회(知得契會) 즉 앎·증득·계합·깨침을 뜻하는데, 마음이 실성(實性)에 그윽히 잠겨서[冥] 분별을 잊고 실성(實性)에 계합하고 실성(實性)을 깨쳐서 실성(實性)과 평등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모두 함께 불도(佛道)를 이루어지이다.

*예경(禮敬) ; 불보살님께 예배와 공경을 드리는 일. 경례(敬禮)라고도 한다. 몸으로는 법식(法式)에 따르고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불(佛)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 루) : 샘[漏]이 없는[無]. 한도(限度)가 없어 영원한.

*보체(保體 보전할·지킬 보/몸 체) ; 몸[體]을 보호(保護)한다는 뜻. 축원문에 적힌 살아 있는 사람의 성명 밑에 붙이는 축원(祝願)의 뜻이다.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연비(燃臂 불이 타다·불사르다·불을 붙이다 연/팔·팔뚝 비) ; ①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②팔[臂]을 태우는[燃] 고행. 고행의 한 방법으로 팔뚝을 향불로 지지는 일.

연비(然臂 · 煉臂)로도 쓴다. 발원(發願) · 입서(入誓) · 고행(苦行) · 희사(喜捨)의 등의 뜻으로 행한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26)—기미년 동안거 해제 법어(80.01.17)에서.(3분37초)

한철 동안을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한 대중 여러분!  그리고 제방(諸方)에서 해제를 마치고 여기에 참례(參禮)하신 수좌(首座) 여러분!

신심있는 단월(檀越)들이 바친 곡석과 의복, 자기의 공부도 뒤로 미루고 우리를 외호해 주신 이 본방...(녹음 끊김)...용맹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신라 때 욱면만큼의 고생에는 미치지 못했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리의 신심, 우리의 용맹정진은 한량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신라 때 욱면 낭자처럼)전부 다 손바닥에다 구녁을 뚫으라는 말씀도 아니고, (혜가대사처럼)모두 다 칼로써 왼팔을 끊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분들이 한 그 목숨을 바칠만한 그 신심!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법을 위해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그 무서운 정진, 그 굳은 9년 동안을 하루같이 한 그 철썩 같은 뜻!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 ‘소신연비(燒身燃臂)를 하지 아니하면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치기 어렵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당장 손가락에다 불을 지르고, 몸을 갖다가 장작을 쌓아 놓고 몸을 태우고, 이렇게 경전의 말씀을 받아들여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 뜨거운 것을 참고 이길만한 그 참을성 있는—난행(難行)을 능행(能行)하는 그런 굳은 뜻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몸을 갖다가 태울만한, 몸을 헌신짝같이 버릴만한 위법망구적인 그러한 정성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손가락을 태우고,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태우고, 도끼를 가지고 손가락을 짜르고, 이러한 어리석은—물론 그 신심은 물론 찬양할만 하지만.


그 신심이 어떻게 신심을 내느냐? 지혜로운 신심,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 알맹이 신심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45분12초~48분48초)

*차오(差誤 어긋나다·잘못·틀리다 차/잘못·잘못하다 오) ; 틀리거나 잘못됨.

*죄장(罪障 허물 죄/막을·장애 장) ; 죄악이 선한 과보(果報)를 얻는 데 장애가 됨을 이르는 말.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을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생사광야(生死曠野) ; 생사의 광야(曠野,廣野). 중생이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스런 윤회의 세계를 광야(황폐한 벌판)에 비유한 말.

*억겁다생(億劫多生)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태어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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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 ; ‘[극락으로] 가시는 길은 어디에든 있사오니’

[참고] 『불교의식각론(다비작법 하)』 (심상현 저) p312-313.

<행보게(行步偈)> (행보, 일정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감)

이행천리만허공(移行千里滿虛空)  귀도정망도정방(歸道情忘到淨邦)  삼업투성삼보례(三業投誠三寶禮)  성범동회법왕궁(聖凡同會法王宮)

[극락으로] 가시는 길은 어디에든 있사오니, 도(道)에 돌아가 망정만 잊으시면 정방(淨邦, 정토淨土)에 이릅니다. 삼업으로 정성을 다해 삼보께 예(禮) 하시면 성현과 범부가 함께 법왕궁에 모이게 됩니다.

*정취(正趣 바를 정/뜻·달리다·빨리 달려가다·향하다·다다르다 취) ; ①올바른 해탈의 길. 올바른 해탈의 세계. ②발보리심(發菩提心)으로 팔정도(八正道)를 닦는 것.

*수업감보(隨業感報) 윤회제취(輪廻諸趣) ; 업에 따르고 과보가 일어나 중생 세계[諸趣]에 윤회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한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임운(任運 맡길·마음대로 할 임/옮길·움직일·운수 운) ;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일어남. 아무런 조작이나 인위적인 힘을 첨가하지 않고, 법이(法爾), 여연(如然), 자연(自然), 으레히라는 뜻.

*마강법약(魔强法弱 마구니 마/강할 강/부처님의 가르침 법/약할 약) ; 마구니의 힘이 강해지고 불법은 쇠퇴해진다는 말. 말법시대에 악한 사람들이 진리와 배반되는 마구니와 같은 해독을 퍼트려 점점 불법의 힘은 약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간화결의(看話決疑) ;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의혹(疑惑)을 풂.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의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수심결(修心訣) ; 고려 때 보조지눌(普照知訥 一一五八 ~ 一二一O) 스님의 저술. 1권.

삼계의 윤회를 벗어나 부처가 되기 위하여 마음 닦는, 수심(修心)의 요결(要訣)을 밝히는 내용으로 본문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홉 번의 문답으로 전개되는데, 불성(佛性) · 돈오점수(頓悟漸修) · 공적영지(空寂靈知) · 정혜등지(定慧等持) · 정혜체용(定慧體用) · 목우행(牧牛行) · 이즉돈오 사비돈제(理卽頓悟 事非頓除) 등에 관한 내용이 있고 결론으로 간절히 금생에 이 몸을 제도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 · 『보조국사수심결(普照國師修心訣)』 · 『보조선사수심결(普照禪師修心訣)』 이라고도 한다. 저술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 주석 시기(一一九八 ~ 一二OO) 전후로 추정한다.

*단지불회 시즉견성(但知不會 是卽見性) ;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問  作何方便  一念廻機  便悟自性

答  只汝自心  更作什麼方便  若作方便  更求解會  比如有人  不見自眼  以謂無眼  更欲求見  旣是自眼  如何更見  若知不失  卽爲見眼  更無求見之心  豈有不見之想

自己靈知  亦復如是  旣是自心  何更求會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문)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한 생각 기틀을 돌이켜서 곧 자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답) 다만 너의 스스로의 마음인데 다시 무슨 방편을 지으려 하는고. 만일 방편을 지어서 다시 알기를 구한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하고서는 ‘눈이 없다’고 하여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의 눈인데 무엇을 다시 보리오. 만일 잃지 않은 줄 알면 곧 눈을 본 것이다. 다시 보려는 마음도 없거니 어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으리오.

자기의 영지(靈知)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일 알려고 한다면 곧 알지 못할 것이니, 다만 알지 못할 줄 알면 곧 성품을 본[見性] 것이니라.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파설(破說) ; 설파(說破).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오후생애(悟後生涯)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법기(法機)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또는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법기(法器)와 같다.

*두찬(杜撰) : 원래 두가(杜家)의 찬집(撰集)이라는 뜻으로 저술에 전거(典據)•출처(出處)가 확실치 않은 문자를 쓰거나 오류가 많아 그 내용이 실다웁지 못한 글을 이름.

*미득위득(未得謂得) 미증위증(未證謂證) ; 얻음[得]이 없는데 얻었다고 말하고, 증(證)한 것이 아닌데 증했다 말하는 것.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의리선(義理禪).

이런 구두선(口頭禪) ·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Posted by 닥공닥정